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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릴리프 투수/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이해경은 소설 ‘말하지 못한 내사랑’에서 야구를 재미있게 해석한다. 노동과 유희의 경계가 없는 삶. 작가는 이같은 이상을 야구에서 찾았다. 야수는 투수가 와인드업 모션에 들어갈 때까진 릴렉스한다. 관중을 되레 관람하든, 어슬렁이며 엉뚱한 몸짓을 하든 자유다. 노동이 곧 유희다. 그러나 투수가 공을 놓는 순간 자신의 영역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선 무한 책임이다. 피말리는 처절한 노동이다. 이완과 긴장의 미학, 야구는 그래서 더 흡인력이 있는지 모른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화려한 휴가’의 감독 김지훈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을 릴리프 투수에 비유했다. 중간 계투로 나서 잊혀져 가던 5·18 광주항쟁의 의미를 어느 정도 전달했으니, 누군가가 마무리하지 않겠느냐는 의미가 담겼다. 어느 시점에서 마무리 투수가 매듭을 짓고 자신은 잊혀졌으면 한다고 했다.5·18에 대한 부채의식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그는 영화 후반부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시민군 회의때 선글라스를 쓰고 나왔다가, 주의를 받는 인물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릴렉스를 상징하는 의미였을까.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행복지수/이목희 논설위원

    방글라데시로 봉사를 다녀온 교회 청년들이 뿌듯해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에 새벽부터 줄지어선 사람들. 몇분 진료를 위해 한나절을 기다려도 불평 한마디 않는 순박함. 몇만원의 임금으로 한달 내내 험한 일을 해야 하는 곤고한 생활. 지구촌 최빈국 사람들을 돕는 보람이 컸다고 했다. 몇년전 취재를 위해 방글라데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공항부터 달려드는 거지들. 시내를 걸어가는데 할 일 없는 남녀노소가 우리 일행이 구경거리인 양 따라다녔다.“이런 나라가 어떻게 행복지수 1등인가.” 런던 정경대 연구팀의 행복지수 연구결과가 엉터리 아니냐는 의문이 일었다.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행복의 개념이 혼란스러웠다. 다만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인으로서 행복을 느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들은 빈곤 속에서 웃고 사는데, 우리의 행복지수가 왜 하위권인가.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방글라데시를 가보라. 그곳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이방인의 행복지수는 확실히 높아진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길섶에서] 모시 저고리/이동구 사회부 차장

    내게도 모시 저고리가 한벌 있다. 요즘처럼 더운 날이면 보기만 해도 시원하지만 난 입지 못한다. 때가 묻을까 염려해서다. 모시옷은 손질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올이 엉키지 않게 곱게 세탁한 뒤 풀을 먹인다. 빳빳한 감촉을 살려야 멋스럽고 시원하고 때도 덜 타기 때문이다. 풀 먹인 모시는 고운 보자기에 싸서 몇시간이고 밟아 결을 편다. 세탁기에 돌리고 다림질로 마무리하는 여느 옷과 다르다. 그러기에 모시옷 손질은 꼬박 하루일이다. 어머니는 여름이면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모시옷을 다듬으셨다. 지금 남은 비취색 모시 저고리도 어머니께서 손수 지어 주신 것이다. 어머니는 몇해 전 아들 넷의 저고리를 한벌씩 만드셨다. 그리고 여름이 되기 전 돌아가셨다. 새로 만든 모시 저고리를 입은 아들들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떠나셨다. 내 비취색 모시 저고리는 그뒤 4년째 옷장 안에 걸려 있다. 어머니께서 손수 풀 먹이고 다듬으신 상태 그대로이다. 아직도 어머니의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내가 모시 저고리를 입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동구 사회부 차장 yidonggu@seoul.co.kr
  • [길섶에서] 추억/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대중가요에 꽤 조예가 깊은 선배가 있었다. 특히 1940∼50년대 흘러간 노래의 탄생 내력이나, 노랫말에 숨은 뒷얘기 등을 그럴싸하게 풀어나가곤 했다. 때론 ‘구라’가 섞인 것 같았지만 즐겁게 맞장구를 쳤다. ‘사십계단 층층대에/앉아 우는 나그네/울지 말고 속 시원히/말 좀 하세요/…피란살이 처량스레/동정하는 판잣집에/경상도 아가씨가/애처로워 묻는구나.´ 한국전쟁 피란민의 애환을 그린 ‘경상도 아가씨’다. 전란 중에도 레코드가 엄청 팔렸다고 한다. 선배는 피란살이 아저씨를 짝사랑한 부산 처녀의 애달픈 심정이 녹아 있다고 했다. 행여 북의 가족 곁으로 돌아가는 날이 올까 애타는 심경이 담겼다고 했다. 사십계단 층층대는 영도 부근에 있었단다. 부산 중구청장이 한국전쟁 당시 대중가요와 자료를 모아 책으로 냈다.‘그때 그 가요’다.10년간 자료를 모았단다. 한 초등학교 배지는 일본에서 구했다고 했다.‘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걸쭉했던 선배 목소리가 새삼 그립다. 선배는 몇년 전 작고했다. 살아 있다면 책을 펼치며 ‘구라’를 풍성하게 보탤 텐데.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길섶에서] 북악산/이목희 논설위원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쪽으로 택시를 타고 가다가 깜짝 놀랐다. 경복궁 뒤의 북악산. 비구름이 한 자락 걸쳐 있었다. 궁궐 지붕과 멋드러지게 어우러진 비경(境). 황홀해지면서 행복감이 밀려왔다. 복원을 준비 중인 광화문이 잠시 사라지니까 저런 경치가 보이는 것인가. 차라리 광화문이 없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좌회전한 뒤에도 한참 고개를 돌려 북악산을 바라보았다. 광화문 복원 공사는 지난해 말 시작되었다. 그런데 멋진 북악산의 자태를 이제서야 보다니. 광화문이 버티고 있었을 때도 눈을 조금만 더 치켜뜨면 북악산이 다가왔을텐데…. 무슨 잡념에 사로잡혀 이곳을 지나곤 했나. 이번에는 후회의 물결이 밀려왔다. 광화문 앞길을 일년에 백 번만 지난다고 해도, 그동안 수천 번의 북악산을 놓친 셈이다. 얼마 전에 ‘내가 만약 다시 인생을 산다면’이란 책을 읽었다. 앞부분에 한 노인의 고백이 나온다.“더 우둔하게 살겠노라고, 심각해지지 않고, 즐거운 기회를 많이 잡으리라고….” 그래서 결심했다. 광화문 앞길을 지날 때에는 머리를 비우고 위를 올려다 보기로.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길섶에서] 불한당/구본영 논설위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염천이다. 그렇지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뭐니뭐니 해도 뭔가 한가지 일에 몰두하며 땀 흘리는 모습일 게다. 동서고금을 통해 땀 흘리지 않은 이들을 칭송하는 사례는 없었다. 특히 우리 선조들이 그랬다. 남의 것을 가로채거나, 거저 놀고 먹으려는 자들을 불한당(不汗黨)이라고 부른 데서도 알 수 있다. 불한당은 사전에서는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의 무리”로 새겨진다. 한문 그대로라면 ‘땀을 흘리지 않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마음껏 땀 흘리고 싶은데도 그럴 기회가 없을 때에 생긴다. 상반기 실업급여 신청자가 36만명으로, 지난해보다 13%나 늘어났다기에 하는 얘기다. 더욱이 청년층 실업률이 평균실업률의 2배를 웃돈다지 않은가. 이는 개인의 문제이기에 앞서 투자의 우선순위 등 경제정책을 잘못 다룬 정부의 실패다. 일터에서 땀 흘려야 할 청년들이 휴일도 아닌 평일에, 찜질방에서나 억지로 땀을 흘려야 한다면 여간 딱한 일이 아니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토요일 장/최종찬 국제부 차장

    내가 사는 소만마을엔 토요일마다 장이 선다. 인도를 따라 ㄷ자로 펼쳐지는 이 장은 아파트단지에 인간적인 때깔의 옷을 입힌다. 청양고추 한바구니에 1000원, 토마토 한바구니에 2000원. 바구니마다 먹음직스러운 과일이나 채소를 가득 담고 새 주인을 기다린다.1000원,2000원만 있어도 한 끼 식사나 간식에 요긴하게 쓸 것들이 널려있다. 물론 비싼 것도 있지만 소수에 그친다. 대부분 손자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의 넉넉지 않은 지갑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해서 이 장엔 늘 싼 것을 찾아 이동하는 아낙네들로 붐빈다. 이곳엔 주인과 고객 사이에 밀고 당기는 살가운 흥정도 있다. 기분이 좋으면 물건 하나 더 얹어 주는 넉넉함도 있다. 사지 않아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가대로 사고파는 곳과는 다른 풍경이다. 아파트 단지는 토요일마다 활력에 넘친다. 그래서 나도 토요일이 기다려진다. 다음 번엔 장의 구경꾼으로 머물지 않고 지갑을 털어 당당하게 참여하리라. 최종찬 국제부 차장 siinjc@seoul.co.kr
  • [길섶에서] 뒷모습/최태환 수석논설위원

    해가 나는가 싶더니, 이내 빗발이다. 하늘이 종일 변덕이다. 흰구름이 비쳤다간 사라지곤 한다. 길을 걸으며 ‘몰도바’를 듣는다. 집시 바이올린 곡이다. 애잔하지만, 달뜨게 한다. 가슴 벅찬 경쾌함을 준다. 달빛 내려앉은 푸른 몰도바의 들판이 아른댄다. 밤이슬을 피하려는 집시 캠프가 다가온다. 모닥불 가에서 바이올린을 들어올리는 집시 처녀가 떠오른다. 지난해 내한 공연을 가진 몰도바 출신 연주자 세르게이 트로파노프와 오버랩된다. 집시 음악의 정수를 선사했다. 기분이 환해진다. 눅눅한 기분을 잠시 멀리하게 한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더 크게 와 닿는다. 앞모습은 우산에 가렸다. 그럼에도 몸매를 추스른다. 그러나 뒷모습은 꾸밈이 없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모델, 농약 기구를 둘러멘 농부, 조심스레 단장하고 무대에 나서는 오페라 가수…. 뒷모습까지 신경쓰고 배려한 이가 있을까. 누군가가 그랬다. 뒷모습은 솔직하다고. 숨길 것도, 가릴 이유도 없다고 했다. 뒷모습만큼 진솔한 앞모습을 드러내는 이를 만나고 싶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길섶에서] 3代의 휴가/ 육철수 논설위원

    모처럼 처가 어른들을 모시고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지난 몇년 동안 집안에 수험생이 있어 휴가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 부부, 아이 둘, 이렇게 3대(代)가 길을 떠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휴가를 기획하고 경비를 집행하는 ‘총책’인 내 입장에선 쉽지만은 않았다. 휴가 성수기라 숙소 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차 한 대에 6명이 포개다시피 타고 이동했다. 비좁은 숙소에 어른들이 계셔 조심스럽고, 냉방시설도 그에 맞추다 보니 불편했다. 음식점에 들어가면 원하는 메뉴도 제각각이다. 어른들을 생각해서 가까운 관광지를 골랐더니 아이들은 아예 숙소에서 쉬겠다고 한다. 어른들도 무더위에 젊은 자식들 따라다니느라 힘든 표정이 역력했다. 놀러 다니는 게 즐겁긴 한데,3대가 모두 만족스럽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장인·장모는 휴가를 함께 보내준 사위가 고마웠나 보다. 연신 “덕분에 구경 잘했다.”며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나흘 동안 운전하랴, 분위기 살리랴, 지친 심신이 한꺼번에 싹 풀렸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길섶에서] 아, ‘돌베개’/이용원 수석논설위원

    누구에게나 평생 간직하고픈 책이 몇권 있을 터인데, 내게는 그 중 하나가 고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였다.10대 중반이던 1971년 그 책을 사서 읽고는 장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마음에 심어두었다. 아울러 ‘돌베개’는 가장 아끼는 책이 되어서, 가령 친구가 빌려달라고 해도 무슨 핑계를 대서건 손에서 놓지를 않았다. 내가 결혼해 분가할 때도 ‘돌베개’는 당연히 챙겼다. 그런 어느날 시골 작은아버지가 집에 와 하룻밤 묵으셨다. 그리고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네 책 몇권 빌려가야겠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돌베개’를 집어드시는 게 아닌가. 말릴 방도가 없었다. 다음에 시골집에 내려가 찾아보니 ‘돌베개’는 이미 없었고 작은아버지는 그 행방을 모르셨다. 그 ‘돌베개’가 며칠 전 돌아왔다. 그때 그 책이 아니라 2007년 나온 개정판으로. 책장을 넘기며 옛날의 감동을 되살리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 돌아온 책은 아들·딸에게 먼저 읽혀야겠다. 그러면 우리 사이에 공감대가 또 하나 형성될 테니까.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길섶에서] 빈 손/이목희 논설위원

    선물받은 책을 읽다가 한 대목에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저자가 자신의 어린 아들 얘기를 쓴 부분이었다. 대형마트에서 장난감을 사 주었는데 아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계산대 앞. 완전히 자기 것을 만들려면 계산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장난감을 놓지 않으려 했다. 울고, 떼쓰고…. 도저히 설득을 못 시키고 장난감과 함께 아이를 통째로 계산대에 올려야 했다. 오래 전 원숭이를 잡는데 쓰였다는 독특한 방법이 떠올랐다. 빈 손이 들어갈 정도의 조그만 구멍 안에 먹이를 넣어 놓는다. 원숭이는 손을 넣어 먹이를 잔뜩 집지만 다시 뺄 수가 없다. 사냥꾼이 다가와도 먹이를 포기하지 못해 붙잡힌다는 것이다. 채우기 위해 먼저 비워야 한다. 무엇이 가득 든 손으로는 남의 손도 잡을 수 없다.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고 있는지 새삼 돌아본다. 호주 원주민들은 패권을 추구하고 탐욕에 휩싸인 문명인을 무탄트(돌연변이)라고 부른다. 장난감을 움켜 쥐고 계산대에 오르는 아이가 어른 돌연변이에 비하면 그래도 순수해 보인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길섶에서] 숏다리 클럽/송한수 국제부 차장

    ‘숏다리 클럽’이 떴다.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쳤다. 연령층도 다양하게 선후배끼리 맞닥뜨렸다.“너, 무릎 위까진 잘라야지.”하고 막내를 가리켜 어느 선배가 운을 뗐다.“그러고 보니 다들 반토막(?)이네.”라고 누군가가 거들었다. 금세 웃음이 쫙 퍼졌다. 헬스클럽에 다니는데, 여자가 옆에서 러닝머신을 타고 있으면 눈치가 뵌다며 또 누군가가 끼어든다. 자신도 모르게 속도계를 곁눈질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리하게 따라 잡으려다 운동은커녕 체력만 더 소진하게 된단다. 그러나 실망할 이유는 없다. 모인 사람들 가운데 꽤 장신(長身) 축에 드는 이는 “이번만 끼게 해준다.”는 꼬리표를 달아 가까스로 명예회원이 됐다. 청소년들 체격이 나날이 커지는 마당에 ‘숏다리’는 콤플렉스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우리 클럽에 못 들어와 안달인 사람들도 많은데. 다리가 짧아야 출세(?)한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꿔 놓은 위인들 가운데는 작은 거인들이 많다. 나폴레옹이나 덩샤오핑도 160㎝가 될까말까 했다지 않은가. 송한수 국제부 차장 onekor@seoul.co.kr
  • [길섶에서] 장독/국제부 최종찬 차장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늦은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 수위실을 지나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기에 아파트 실내 계단을 오르내리기로 했다.15층 아파트를 계단으로 오르내리면 그것도 산책 못지않은 운동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헉헉거리며 계단을 오르다가 14층과 15층 중간계단에서 장독 하나를 발견했다. 한 구석에 버려진 쓸쓸한 표정의 장독 안엔 헝겊 조각, 광고 전단지, 신문지 등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중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작은 장독. 엄마인 큰 장독 품에서 잠든 아기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독은 이젠 사라져가는 물건 중의 하나. 집집마다 마당이 있던 시절엔 어디서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는 지금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이리저리 떠도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세상에서 그 쓸모를 잃어버리고 사라져가는 것이 어찌 장독뿐이랴. 하지만 가엽고 불쌍한 장독의 모습은 당분간 내 가슴의 한 구석을 차지할 듯싶다. 국제부 최종찬 차장 siinjc@seoul.co.kr
  • [길섶에서] 편지쓰기/황성기 논설위원

    인터뷰한 분에게 기사가 난 신문을 몇 부 보내는 김에 고맙다는 인사를 할 겸 편지를 써서 따로 부쳤다. 보통 이메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왔지만 이번에는 미처 이메일 주소를 알아두지 못했다. 몇해 만에 써보는 편지인가. 만년필로 쓰는 글이 쉽게 나아가지 않는다. 이메일은 몇분이면 써 보낼 수 있지만 이 육필이란 게 여간 고통스럽지 않다. 글씨도 형편없고, 한 번 쓴 문장이 맘에 안 들어도 파지를 내지 않는 한 고칠 재간이 없다. 생각과 동시에 두드리는 자판과는 달리 몇 번 생각을 가다듬어야 하니 시간도 제법 걸린다. 지난 5월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의 강연때 들은 얘기다. 이 강연의 말미, 어떻게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도쿄대 학생의 질문에 오에의 대답은 이랬다.“무조건 많이 읽고 많이 써보라. 이메일이건 편지건 보내기 전에 며칠 뒀다가 다시 읽어보라.”고. 어떤 글쓰기건 예전에는 그리 했던 것 같다. 쓰자마자 등기로 편지를 보낸 이튿날 “잘 받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편지를 며칠 묵혔더라면 글쓴 정성이 달라졌을까 생각하니 뒤늦게 아쉽다. 황성기 논설위원
  • [길섶에서] 뺄셈의 미학/우득정 논설위원원

    대학시절 은사 한 분은 젊어선 열심히 사랑하고 나이 들면 끊임없이 용서하라고 했다. 젊어선 욕망이 키잡이 노릇을 하고 나이가 들면 비우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뜻이리라. 그래서인지 요즘 낮보다 밤이,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푸근하게 느껴진다. 호기심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봐야 한다는 것이 점점 더 부담스럽다. 자연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윤곽을 드러내고 나머지는 흑색 또는 잿빛으로 배경처리해주는 밤과 흐린 날에 마음이 더 끌린다. 어느 화가는 예술의 정의를 ‘뺄셈의 미학’이라고 단언했다. 사진조차도 예외는 아니란다. 강조할 부분만 도드라지게 하고 나머지는 여백이나 단조로운 배경으로 처리하는 것이 예술의 기법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관객을 위한 상상력의 공간이다. 정치권에서 뺄셈이 유행어가 되고 있다. 도토리 키재기 식의 후보군들이 합칠수록 지지율은 떨어진다며 서로 상대편에게 하선하란다. 난파선의 생존게임이다. 뺄셈의 여유에 상상력이 미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우득정 논설위원원 djwootk@seoul.co.kr
  • [길섶에서] 선한 사마리아인/구본영 논설위원

    한국인 맹인 목사가 공공봉사 부문 막사이사이상을 받는다는 조간 신문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수상자 김선태 목사는 6·25전쟁 때 부모와 시력을 잃고 걸인으로 자랐다고 한다. 그런 그가 안과병원을 설립해 2만여명 시각장애인에게 무료 시술 등 봉사활동을 해왔다니 큰 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기자에게 시쳇말로 ‘필이 꽂힌’ 대목은 따로 있었다.“개인의 상이 아니라 실명예방과 개안수술을 도와 주신 많은 분들을 대신해 받는 것”이라고 밝힌, 겸손한 수상 소감이었다. 이는 재계와 교계의 숱한 독지가들이 김 목사의 봉사활동을 음지에서 도왔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문득 ‘德不孤必有隣(덕불고필유린)’이란 말이 떠올랐다.“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논어의 고사성어다. 남의 선행을 소리없이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이 많았다니, 우리 사회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엔 교통사고로 장기입원 중인 선배 문병이라도 가야겠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웃어요’/함혜리 논설위원

    집 근처 매봉산으로 아침 산책을 나섰다. 나이 지긋한 외국인이 저쪽에서 걸어온다. 무언가를 적어 목에 걸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왔을 때 들여다 보니 의외의 문구다. 서툰 글씨체로 ‘웃어요’라 적혀 있었다. 순간 내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눈이 마주치자 그도 미소 지었다.‘웃어요’의 효과였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처음 와서 사람들의 표정이 화난 것처럼 굳어 있는 것에 놀란다고들 한다.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웃지 않으면 그가 이런 글을 써서 목에 걸고 다닐 생각을 했을까. 요즘 들어 많이 밝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눈이 마주쳤을 때 미소 짓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고개를 돌리면서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한다. 단지 웃었다는 이유로 치한이나, 정신나간 사람 취급당한다. 웃음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라고 한다. 웃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심장질환이 적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준다. 주위를 밝게 한다. 웃는 얼굴은 화난 얼굴보다 훨씬 아름답다. 웃어야 하는 이유는 참으로 많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양심불량/함혜리 논설위원

    아침 출근준비가 늦어져 택시를 탔다. 기사가 대뜸 한다는 말이 “제발 차비는 떼먹지 마슈.”다. 왜 그러느냐고, 내가 차비도 없이 택시 탈 사람처럼 보이냐고 물었다. 사연인즉, 새벽 3시에 나와 일을 시작했는데 첫 손님부터 차비를 안 내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대방동에서 거나하게 취한 20대 초반의 남자 두명이 탔다. 한명은 봉천동서 내리고, 나머지 한명은 사당동 골목을 누비게 만들고 나서 “집에 가서 택시비를 갖고 오겠다.”고 한 뒤 자취를 감춰 버렸다고 했다. 택시 기사는 “가방이라도 두고 내리라고 하는 건데 그말이 도저히 입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그만….”하면서 속탕을 끓였다. 택시비 2만 8700원을 한푼도 못 받은 것은 물론이요, 좁은 골목에서 차를 돌리다가 차의 옆구리까지 긁혔단다. 기사에게 하루 몇시간이나 일하느냐고 물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둘을 두었다는 그는 13시간은 일해야 생활비와 아이들 학원비를 댈 수 있다고 했다. 새벽까지 술 마실 돈은 있으면서 택시비는 떼어먹은 사람, 누군지 정말 양심없는 사람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날벼락/구본영 논설위원

    엊그제 북한산과 수락산에서 등산객 5명이 낙뢰 사고를 당했다. 폭우와 예기치 않은 천둥·번개가 내리치면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기상청도 “이런 사고는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한 유족들이 얼마나 황망했을까 싶다. 이상기후 등 불가측적인 생태계 변화가 잦아진 데다 세상살이조차 복잡해진 까닭일까. 개인의 입장에선 속수무책인 재해 사례가 늘어나는 것 같다. 멀리 이라크에선 아시안컵 축구대회 우승 축포에 맞아 최소 7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황당한 사건이다. 천려일실(千慮一失), 즉 “지혜로운 사람도 천가지를 생각하다 한가지 실수는 한다.”는 말이 있다. 한 고조 유방과 함께 중원을 제패한 한신에게 참모인 이좌거가 한 조언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선 개개인도 조심해야 하지만 사회적 시스템도 정밀하게 가동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축포금지령이 제대로 발령됐으면 이라크인의 횡액도 없었을 터이다. 마찬가지로 외교부의 아프가니스탄 여행자제 권고가 엄격히 지켜졌으면 이번 인질사태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 [길섶에서] 모정(母情)/이목희 논설위원

    공직 은퇴 후 농사를 짓는 이가 전하는 이야기가 눈물겨웠다. 제초기로 풀을 깎는데 갑자기 까투리 살점이 튀더라고 했다. 까투리는 제 살이 다 해어질 때까지 꼼짝않고 자리를 지켰다. 엄청난 굉음의 제초기가 다가오는데 왜 피하지 않았을까. 풀섶을 헤쳐 보니 답이 있었다. 알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어미의 희생으로 깨끗한 모습 그대로였다. 책에서 읽은 다른 까투리 이야기가 떠올랐다. 산불이 꺼진 뒤 현장을 정리하는데 까투리 한마리가 불타 숨져 있었다. 시커먼 사체를 한쪽으로 밀자 새끼들이 올망졸망 걸어나왔다. 온 몸을 태워가며 새끼들을 지켜낸 것이다. 누군가 까투리의 명복을 빌었고, 하늘을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못난 사람을 “알 품는 닭 잡아올 놈”이라고 한다.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아 손님 접대를 하려면 번거롭다. 푸드덕거리며 달아나는 닭을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 닭이 있다. 알을 품고 있는 암탉이다. 모정(母情)을 폄훼하는 자, 짐승 앞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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