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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色 그리고 空/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조각가 박헌열은 난해하다. 그로테스크하다.‘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을 화두로 가진 최근 조각전도 마찬가지다. 그는 무의식의 관념을 뒤틀어 표현했다. 작가는 육신을 가둔 미망의 영혼을 그려내려 애썼다. 욕정이나 세속적 욕망의 덧없음을, 고뇌하는 육신의 형상으로 표현했다.2,3명의 나신이 붙어있고, 머리도 여럿이다. 구상속의 비구상이다. 매끈한 브론즈가 불편함을 더한다. 섹스는 증오와 사랑, 분노의 표출이라고 했다. 얼마전 베니스 영화제에서 ‘색, 계(色,戒)’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타이완출신의 미국 영화감독 이안의 얘기다. 한국을 찾았다. 그는 “극도로 억눌린 감정은 마지막에 육체로 표출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엔 증폭된 심연의 갈등과 고뇌가 뒤엉켜 있다. 어느 탤런트 부부의 간통 공방이 화제였다. 부인은 11년 결혼 생활에 섹스는 10여차례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남편은 정상의 남성이라고 반박한다. 민망하다. 고뇌하는 영혼을 그린 박헌열 조각을 이들에게 보라고 권하고 싶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늙는다는 것/이목희 논설위원

    지천명(知天命) 전후의 친구 몇명과 스스로가 느끼는 늙음을 얘기했다. 흰머리가 생기고, 눈이 침침해지고, 무릎이 시큰거리고, 치아가 부실해지고, 기력이 떨어지고, 피부가 푸석해지고, 잠이 없어지고, 뽕짝이 좋아지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짠해지는 기분이 늙음의 표시라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다 참석자들이 박수친 답이 나왔다.“20,30대 여성이 모두 예뻐 보일 때.” 노년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뭘까.20,30대의 젊음을 오래 연장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고, 그래서 그 연배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여성쪽도 마찬가지라고 본다.20,30대 남성이 파릇파릇하게 느껴지면 “나도 늙어가는구나.”라고 자인해야 할 것이다. 의학자 조레스 메드베데프는 노화의 원인을 설명하는 생물학 이론이 무려 300개가 넘는다고 밝혔다. 노화를 막는 연구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늙음을 너무 억제할 필요는 없다. 모든 여성이 예뻐 보이는 것을 포함, 신이 주는 늙음의 기쁨 또한 만만찮기 때문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길섶에서] 설거지 단상/ 육철수 논설위원

    퇴근해 집에 들어가면 주방 개수통에 수북이 쌓인 그릇들이 나를 기다린다. 맞벌이 아내를 도와주려고 시작한 설거지가 이젠 거의 내 몫이 돼 버렸다. 아내보다 일방적으로 설거지를 많이 하게 되면서 가끔 짜증을 부려본다. 하지만 효과는 별로다. 연애시절 무슨 콩깍지가 씌었던지,“결혼하면 물에 손 담그지 않게 해주겠다.”고 한 약속이 지금까지 두고두고 할말 없게 만든다. 딱 귀찮은 설거지지만 그래도 다소의 소득은 있다. 착실한 가사분담으로 어지간해선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히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상체운동도 된다. 팔뚝하고 어깻죽지, 어깨판 부위 등 남자들의 보통운동으로는 근력을 키울 수 없는 근육이 단련된다. 이건 약과다. 인생의 진리도 터득한다. 사람은 평생 아무리 깨끗하게 살았어도 지저분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것도 평소에 깨끗하게 씻고 닦아놔야 삶의 뒤끝이 깔끔한 법 아니겠나. 쓸데없이 욕심부려 재산을 많이 남겼다가 나중에 자식들 서로 원수지는 꼴 안 보려면, 재산 설거지도 미리미리 잘 해두는 게 지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길섶에서] 올 연말엔/우득정 논설위원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밤 그 먼 거리를 사랑으로 실천하는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은 친구 부부가 쑥스러움을 미처 떨치지 못한 채 무대 위로 등장하면 환호와 함께 박수가 쏟아진다. 그리고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서 친구 부부 가족을 위해 무대 뒤 벽면에 투사되는 가사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합창한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올 연말엔 뭔가 뜻 있는 행사를 갖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해마다 부부동반으로 떠들썩하게 망년 행사를 했지만 이젠 ‘의미’를 더했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즉각 세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친구 부부를 위한 ‘입양아 후원의 밤’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만장일치 가결. 초청대상자 선정, 행사 장소 및 진행, 비용 분담…. 모두가 마음속 한편에 담아두고 있었던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올 겨울엔 성탄절 다음날 밤 함박눈이 내릴 것 같다. 작은 사랑을 실천했다는 기억이 오래도록 남을 망년회가 벌써 기다려진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길섶에서] 첼로의 가을/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도심 단풍이 현란하다. 세상이 갈색과 선홍의 향연이다. 찬바람속 눈의 호사다. 화가 모딜리아니도 가을을 좋아했을까. 주황과 검붉은 색을 즐겨 썼다. 짙은 푸른색과 함께. 모딜리아니 특유의 미묘한 색조였다. 그는 간결하면서도 길쭉한, 독창적 데생의 인물들을 만들었다. 그림 ‘첼로를 켜는 사람’을 떠올린다. 리드미컬하고 힘찬 선의 구성이다. 가을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깊고 묵직한 첼로 음은 어쩐지 가을을 닮았다. 쓸쓸한 외모도 그렇다. 시인 박남준은 첼로를 빌려 흔들리는 삶의 아픔을 절규했다.“검은 나무에 다가갔다/첼로의 가장 낮고 무거운 현이 가슴을 베었다…/이 상처가 깊다/잠들지 못하는 검은 나무의 숲에/저녁 무렵같은 새벽이 또다시 밀려오는데” ‘저녁 무렵에 오는 첼로’다. 첼리스트 양성원이 얼마전 베토벤의 첼로소나타 전곡집을 냈다. 첼로의 신약성서로 꼽힌다. 재작년 바흐의 무반주 첼로 전곡을 녹음했다. 첼로에 조응하는 갈색의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깊어가는 가을을 음미하는 것도 운치있는 일이 아닐까.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길섶에서] 요즘 학생들/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시다바리’. 영화 ‘친구’ 이후 오랜만에 들어 본다. 대학잡지에 실린 조교들의 푸념에서다. 이들은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 교수, 교직원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교수, 학생 뒤치다꺼리가 ‘전공’이다. 이들은 ‘요즘 학생들’의 예의 없음을 성토한다.75분짜리 시험이었다. 화장실 가겠다는 학생이 80명 중 30명이 넘었단다. 한 조교는 시험내내 학생들 꽁무니만 따라다녔다고 했다. 황망한 분위기가 선하다.B-를 받은 학생이 재수강하겠다며 C+를 달라고 우기기도 한다고 했다. 좋게 보면 자기주장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싸가지가 없다고 했다. 뜬금없는 질문이 왜 많아졌을까.‘이해찬 세대’ 이후의 현상이 아닐까 했다. 중·고등학교 때 기초과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뜻이다. 예의 없음이 조금은 이해되는 부분이란다. 학생들과는 불과 몇 살 차이인 조교들이다. 스피드시대의 세대간격을 실감케 한다. 예절시비도 따지고 보면 소통의 부재탓 아닐까.‘시다바리’의 고단함보다는 소통이 쉽지 않아 더 힘들다는 하소연처럼 들린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길섶에서] 말 한마디/함혜리 논설위원

    파리에서 함께 특파원 생활을 하던 타사 후배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모두들 파리에서 지낼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첫 인사가 한결같이 “얼굴 좋아졌다.”였다. 프랑스 생활이 남들에겐 굉장히 멋져 보이지만 특파원 임무를 탈없이 수행해야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여간 고달픈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특파원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누군가 던졌다. 전화선으로 들려오는 말 한마디, 메신저로 들어오는 말 한마디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고들 했다.“잘 좀 해라.”“그것밖에 못하나?”이런 말들이다. 멀리서 있으니 분위기를 알 수도 없고, 항변을 할 수도 없다. 혼자 듣고 혼자 끙끙 앓는 수밖에 없다. 이런 말 한마디들이 쌓여서 막판에는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가 됐다고 했다. 그런데 귀국해서 보니 그런 말들을 너무 쉽게 하고들 있더란다. 나의 말 한마디가 혹시 다른 사람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멀리 있는 사람일수록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줘야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설악 유감/ 임병선 체육부차장

    설악에 다녀왔다. 한밤에 설악동에 들어가 주차하는데 어김없이 문화재관람료 2500원씩을 걷는다. 별을 보며 비선대 쪽으로 오르다 ‘문화재 관람을 위해’ 신흥사를 힐끗 쳐다보는데 숲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공룡능선으로 올라붙었다. 몇년 전만 해도 질척거려 궂기 짝이 없던 길에 돌을 깔고 목재데크를 설치해 길이 아주 편해졌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없어진 마당에 무슨 돈으로 이런 친절을 베풀까 싶기도 했고, 편해진 길이 더욱 많은 발길을 불러들여 때를 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아등바등 오른 뒤, 동해와 내설악을 시원하게 조망하는 맛도 반감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해질 무렵, 대다수 등산객처럼 신흥사 쪽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설악동을 빠져나오기 바빴다. 그날 경북 문경 봉암사에선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는 60년 전 결사(結社)의 참뜻을 되돌아보는 법회가 열렸다. 부처님 법대로 살려면 제 손에 쥐어진 것부터 놓고 볼 일 아닌가 싶었다. 임병선 체육부차장 bsnim@seoul.co.kr
  • [길섶에서] 붉은 휘파람/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가을이 깊어간다. 담장의 자줏빛 장미 꽃닢은 날갯짓을 멈췄다. 추운 모양이다. 움츠린 채 검은 빛을 더하고 있다. 말린 꽃을 닮았다. 최창일 시인을 생각한다.‘가을에는 풀잎도 떨고 있습니다/끝내 말없이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기 때문입니다/바람은 텅 빈 들에서/붉은 휘파람을 불며/떠나는 연습을 합니다’ 주말 대전에서 고등학교 동기생들과 운동을 했다. 경주·대전·서울 등에서 모였다.10여년 만인 친구도 있다. 그들의 외모엔 내가 담겼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이 묻어난다. 나를 본 친구들도 같은 느낌이었을까. 그래도 여유와 함께 얻은 삶의 무게가 아닌가. 친구들의 웃음이 편안하다. 한 친구가 디지털카메라 셔터를 누른다.“제대로 찍어봐!” 다른 친구의 고함이 살갑다. 문득 전장에서 ‘인간’을 기록하다 삶을 놓친 사진작가를 떠올린다.“당신의 인물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카메라에 다가가는 노력을 덜 기울였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치열하게 다가가려는 노력만큼 넉넉하고 풍성해지지 않을까. 최태환 수석논설위원yunjae@seoul.co.kr
  • [길섶에서] 춘추복/이용원 수석논설위원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진 날 아침 외출을 하려고 옷장을 뒤지다 보니 낯선 양복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쥐색 춘추복이다. 구입한 지 10년 가까이 된 듯한데도 새것이나 진배없는 이 춘추복을, 지난봄에 과연 입은 적이 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럼 지난해 가을에는 입었을까? 예전에 양복은 기본이 세 벌이었다. 여름에 입는 하복, 겨울용 동복, 그리고 봄·가을에 입는 춘추복이다. 하지만 춘추복은 매장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점원 말로는 지금은 춘하복·추동복 두가지로만 출하된다고 한다. 양복 입는 사람이 미처 춘추복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계절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다시 겨울로 줄달음질치기 때문일 게다. 올여름 더위는 유난히 길었다. 추석이 지난 한참 뒤에도 반팔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막 가을을 느끼려는 참인데 동장군은 어느새 코앞에 잠복한 모양이다. 어차피 가을의 풍요가 지나면 대지에 휴식을 주는 겨울이 오는 법. 그래도 춘추복이 제 몫을 하게끔 이번 가을은 길게 이어졌으면 한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길섶에서] 흰소의 눈물/최태환 수석논설위원

    화가 이중섭과 교유했던 인물 가운데 한묵을 빼놓을 수 없다. 재불 원로화가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거장이다.93세다. 지금도 현역이다. 그는 이중섭의 고향 원산 시절부터 화우였다.1956년 이중섭이 외로이 세상을 떴을 때 그가 시신을 거뒀다. 한묵은 40대 후반 훌쩍 파리로 떠났다.“떠나는 순간 박혀버리는 총알처럼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실험의 욕구를 이보다 더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수구초심일까. 이따금 한국을 찾는다.2003년 제주를 찾았다. 불우했던 이중섭의 서귀포 피란시절을 떠올리며 눈물 흘렸다. 헌시를 바쳤다.“바다는 항시 푸르러/항시 부풀어/고함쳐 달려든다”고 했다. 이중섭은 소를 즐겨 그렸다. 황소, 흰소, 소와 어린이 등. 큰 눈망울의 소는 때론 슬퍼 보였다. 향토적 포비즘이다. 미술계가 시끄럽다. 그의 미공개 작품들이 위작인 것으로 수사결과 확인됐기 때문이다. 몇 해전 현대화랑에서 있었던 이중섭전의 소가 떠오른다. 그 소가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만 같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길섶에서] ‘합창’ 그후/임태순 편집국부국장

    지난달 본면에 ‘합창’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합창단을 만들어 취미활동을 함께하고 있는 고교동창들이 자녀들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준다는 내용이었다. 얼마전 아버지들의 결혼식 축가를 실제 한번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와 흔쾌히 따라나섰다. 결혼식은 교회에서 목사님 주례로 진행됐다. 목사님은 자녀를 갖지 않는 사람들에겐 주례를 서지 않는다며 2명 이상 자녀를 가지라고 당부해 웃음이 일게 했다. 주례사에 이어 합창순서. 신랑 아버지도 합창단이 서 있는 곳으로 갔다.20명의 합창단은 혼인서약을 한 신랑·신부에게 복음성가를 들려주었다.‘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노래는 커졌다 작아졌다, 때로는 이중주로 울려퍼졌다. 그 속에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잘살라는 부모들의 간절한 기대와 바람이 담겨 있었다. 합창이 끝나자 하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뭔가 참된 것을 봤을 때 느끼는 감동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박수였다. 합창단은 경복고 39회였다. 임태순 편집국부국장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아! 레소토/ 송한수 국제부 차장

    어느 가을날 여섯 살 먹은 동생은 자꾸 가슴을 할딱였다. 그러곤 곧 숨이 끊겼다. 모질게도 결핵이 어린 녀석을 삼키고 말았다. 우리에겐 달려갈 틈도, 이웃한 병원도 없었다. 나 역시 어렸어도 아직껏 뼈아프게 남아 있다. 레소토란 나라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이 나라가 꼭 30여년 전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수도 마셀루에 사는 네살배기 레보항은 폐결핵을 앓고 있다. 그런데 아동을 맡는 의사가 턱없이 모자란다고 한다. 여섯 살 이하 어린이가 80만여명인데 소아과 의사는 달랑 여섯명이란다. 지구 반대편 얘기이지만 쓰리다. 레소토 정부는 ‘열쇠’를 돌릴 힘도 없어 보인다. 그저 국제사회의 손길에 기댈 뿐이다. 더 속상한 게 있다. 지난해 이맘때 이곳에서 603캐럿 다이아몬드가 나왔다. 빼어난 품질 덕분에 ‘레소토의 약속’이란 이름이 붙어 120억원에 팔렸다. 국영 광산에서 캐냈다고 관리들은 뽐냈다. 그 말과 숨이 끊길 듯한 아이의 모습이 겹쳐 내 숨도 막힌다.‘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약속은 아니어도…. 송한수 국제부 차장 onekor@seoul.co.kr
  • [길섶에서] 추기경의 향기/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최종태(75) 작품이 집에 있다. 구상조각 1세대다. 그의 조각과 그림은 담백하다. 덜고 또 덜어냈다. 원형질만 남았다. 그의 성모상은 한국형 성모상의 전범이 됐다. 어느 성당에서나 만날 수 있다. 단순한 형상과 절제된 선이 포근하다. 그러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살아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구도자와 같은 모습이 더해졌다. 더욱 검박해졌다. 그는 “작품 형태는 인체일지 모르겠지만, 내용은 인간의 내면을 다뤘다.”고 했다. 작고한 월전(月田) 장우성 화백의 말년 작품이 오버랩된다. 군더더기 없는 묵선이 범접하기 어려운 달관을 전했다. 하얀 한복을 즐겨 입던 월전의 모습이 새삼 선명하다. 김수환 추기경이 첫 그림전시회를 갖고 있다. 드로잉 18점을 내놓았다. 함축미가 강하다. 최종태를 연상케 한다. 동그라미, 그리고 눈·코·귀·입의 부드러운 선. 자화상이다. 그림 밑엔 ‘바보야’라는 글이 보태졌다. 평생 성직자로 살아온 절제미와 인간적 향기가 전해온다. 어느 행사에선가 김수희의 ‘애모’를 부르던 순박했던 추기경 모습이 떠오른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길섶에서] 둘을 안다는 것/육철수 논설위원

    중국의 교육사업가 리즈쥔(李志君)이 최근에 쓴 ‘혼자병법’이란 책을 읽었는데 재미있는 대목이 눈에 띈다. 경찰과 도둑에 얽힌 얘기다. 리즈쥔은 글 서두에 ‘도둑은 경찰을 두려워할까, 고마워할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은행털이전문 도둑이 하루는 제자를 데리고 은행에 갔다. 그런데 재수없게 범행중 경찰에 들켜 쫓기는 신세가 됐다. 정신없이 도망쳐 경찰을 따돌리고 숨을 돌리는데, 제자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사부님! 경찰만 없으면 참 좋겠어요.” 그러자 스승도둑은 “헛소리 마라! 경찰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전문직을 해먹겠어?”라고 했다. 제자가 의아해하자 스승도둑의 설명이 이어졌다.“이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 생각해 봐라. 우리가 가진 거라곤 남보다 용감하고 간이 좀 부은 것밖에 더 있냐. 경찰 덕에 그나마 이 바닥에 우리 경쟁자들이 적은 거야.” 경험자가 세상을 넓게 보고, 인간관계의 종합판단 능력을 갖춘 것은 하찮은 도둑도 예외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하나를 아는 것과 둘을 아는 것은 차이가 크다. 육철수 논설위원
  • [길섶에서] 처삼촌/육철수 논설위원

    며칠전 아내의 큰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돌아가신 분이 장인어른 형제 넷 가운데 맏형이니까 처가 쪽에선 대소 집안의 큰 장례였다. 처가 친척들의 경조사에 꼬박꼬박 참석해 온 터라, 부고를 받고 부랴부랴 상경한 처가 식구들 틈에 끼어 문상을 갔다. 그런데 문상 후 음복을 하면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술에 취한 상주(아내의 사촌 오빠)가 대뜸 나에게 두건과 완장을 들이밀었다. 고인의 조카사위인 나더러 예의를 갖추라는 것이었다. 상주들과 자식, 상주의 사촌형제들이 열댓명이나 되는데 굳이 나까지 두건을 쓸 필요가 없다 싶어 거절했다. 그랬더니 상주는 무척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두건을 그냥 받아뒀다가 몰래 놔두고 빠져 나오면 될 일을, 괜히 문상 잘 해놓고 상주의 감정만 상하게 한 꼴이어서 뒤늦게 후회했다. 그 이튿날 관혼상례에 정통한 L선배에게 전후사정을 털어놨더니,“조카사위는 그런 격식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려줬다. 근심을 좀 덜었지만 그날의 문상을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건성으로 다녀온 것 같아 자꾸 마음에 걸린다. 육철수 논설위원
  • [길섶에서] 전조등/구본영 논설위원

    지난 주말 광명의 한 병원으로 문상차 차를 몰고 가다가 아찔한 순간을 겪었다. 어두운 밤에 차선을 잘못 보고 사고를 당할 뻔했다. 그래서 ‘조명 가변형’ 전조등이 도입된다는 소식에 유난히 관심이 쏠렸다. 차량 진행 방향에 따라 전조등 불빛이 같은 방향으로 바뀌도록 하는 기술이다.‘눈동자 굴리는 헤드라이트’라는 신문의 표제도 재밌었지만, 퍽 요긴한 시스템이란 생각도 들었다. 연말부터 도입되면 교통사고도 꽤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자동차 운전자의 전방 시야 못잖게 중요한 게 국정을 맡은 공직자들의 정책 설계 및 예측 역량일 것이다. 얼마 전 정부가 올 상반기 나라살림 통계를 17조원 이상 잘못 집계했다고 실토한 뒤에도 원인규명도 못하고 있기에 하는 얘기다. 근년 공무원 해외훈련 예산이 국비 유학생의 10배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공직자들이 각종 혜택을 입는데도 정책집행상의 오류가 빈발한다면 문제가 아닌가.‘조명 가변형’ 전조등을 정책당국자들의 이마에도 달았으면 하는, 망발같은 상상까지 하게 된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전영혁씨의 경우/임병선 체육부차장

    그 엄혹했던 80년대를 견뎌낸 힘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난, 전영혁이란 이름을 대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1986년 4월29일 방송을 시작한 그는 21년을 한결같이 좋은 음악 들려주는 일에만 매달려 왔다. 전씨는 ‘전영혁의 음악세계’(KBS 2FM, 새벽 2∼3시)가 15일 새벽을 마지막으로 폐지되면서 마이크를 놓았다. 그가 없는 새벽이 두렵다. 건강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자신의 학력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지 못했다.’는 게 진짜 이유란다. 그답다. 비슷한 문제를 일으킨 다른 진행자들이 이번 개편에서 살아남은 반면, 그는 방송국의 만류를 한사코 뿌리쳤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새벽을 지샌 이들은 세상 모든 이를 속인 자보다 자신을 속인 자의 처절한 채찍질에 눈물을 삼키고 있다. ‘음악세계’ 수호천사들은 게시판에 그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새기고 있다. 언젠가 그 상처를 다 기운 새벽, 너무 투명해 깨질 것 같은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임병선 체육부차장 bsnim@seoul.co.kr
  • [길섶에서] 공허감/이목희 논설위원

    금전적으로 풍족한 이들을 만났다. 검사직을 접고 재벌회사로 옮긴 선배는 연봉이 십수억원이라고 했다. 부럽다고 얘기했더니 손사래를 쳤다.“직장을 옮긴 뒤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권력욕을 버리지 못한 탓이라고 지레짐작했는데 다른 이유를 댔다.“잘나가던 검사 시절 양지만을 찾았던 게 무지하게 후회되더라.” 골프장 사장인 친구는 부인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부족한 것이 없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의사의 도움 등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썼는데 깨끗이 낫지를 않는다.” 초년에 고생하다가 근래 들어 학원사업으로 큰돈을 번 친구 역시 공허함을 토로했다.“지방을 돌면서 정신없이 학원 강의할 때는 몰랐는데 이제 돈을 좀 벌고 나니까 왠지 가슴이 뻥 뚫린 것 같다.”고 했다. 공허감의 해법이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운동, 취미생활, 봉사…. 학력을 위조한 여인에게 푹 빠진 고위공직자가 이해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가장 그럴 듯한 결론은 역시 종교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길섶에서] 종갓집 며느리/함혜리 논설위원

    경북 봉화 유곡리의 풍수는 예부터 영남의 대표적 길지(吉地)로 꼽힌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어서 ‘닭실마을’이라고 불린다. 조선 중종 때 충재(忠齋) 권벌이 자리를 잡은 이래 안동 권씨 집성촌을 이룬다. 이 마을 안쪽에 500년 세월을 고고히 지켜낸 권씨 종택이 있다. 마당 한쪽엔 조선시대 정자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기품이 있다고 평가받는 청암정이 있다. 거북 모양의 바위를 그대로 살려 주춧돌과 기둥의 높이를 조절해 가며 지었다. 자연미와 인공미를 조화시킨 충재 선생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지난 주말 안동 지역에 내려갔다가 닭실마을에 들렀다. 평소 굳게 닫혀 있던 고택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들여다 보니 대청에 광목 포장이 쳐져 있고 마당에는 조화가 늘어서 있다. 마을 사람에게 들으니 이날 종손의 발인이 있었다고 했다. 상여가 나간 빈집을 며느리들 대여섯이 지키고 있었다. 부인들은 운구행렬을 따르지 못하는 전통 때문이다. 종가 며느리, 듣기엔 좋지만 당사자들에겐 커다란 희생이 따르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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