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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난 있다/임병선 체육부차장

    난 있다. 대선 때마다 큰 파도에 휩쓸렸다. 마음에 둔 후보 대신 누군가의 당선을 막기 위해, 어느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마음에 없는 후보를 찍었다.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돼 잠깐 기뻤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다.‘역사를 위해’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는 자책을 오래도록 해야 했다. 이마누엘 칸트가 말했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마음 속에 늘 살아있는 도덕률”에 따르지 못했던 것을 후회해야 했다. 누구나 이번 대선, 별 볼일 없다고 말한다. 혼란스럽다고들 한다. 누가 되든 대한민국은 끝났다는 자탄도 들린다. 하지만 어두운 사위, 온갖 잡소리를 하나씩 제거하고 가만히 내면에 귀기울이면 별처럼 다가오는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를 찍으면 된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당장 사표가 될지라도 하나하나 모여 세상을 바꿀 것임을 굳게 믿으면 된다. 산에나 가야겠다는 생각이 산을 얼마나 모독하는 일인지 깨달아야 한다. 단 한 사람이 있다. 투표장에서 그 뜻을 실천한 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일이다. 임병선 체육부차장
  • [길섶에서] 은행나무/최종찬 국제부차장

    순도 99.9%의 노랑으로 물든 은행잎을 주렁주렁 달고 있을 때 나는 이 거리의 최고 멋쟁이였다. 눈부신 자태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더러는 부러운 눈길을 던졌다. 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며 찬사를 보냈다. 수은주가 떨어지면서 겨울을 재촉하는 비바람에 자식처럼 사랑했던 은행잎들이 차례차례 내 곁을 떠나갈 때만 해도 사람들의 눈길엔 그래도 사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한동안 사색에 빠지기도 했다. 떠나가려는 계절에 대한 동병상련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고생대 삼엽충의 화석같은 모습으로 쓸쓸하게 서 있는 지금 나는 이 거리의 절대 고독 그 자체다. 모든 것이 떠나가고 남은 것은 빈 가지뿐. 쉼터가 못 되는 곳엔 바람도 새도 더이상 찾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엔 짜증스러움이 담겨 있다. 바람이 날려보낸 검은 비닐이 내 신세를 더 처량하게 만든다. 외로움이 뼛속 깊이 파고든다. 가족들이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는 따스한 아랫목의 풍경이 그립다. 최종찬 국제부차장 siinjc@seoul.co.kr
  • [길섶에서] 마음의 겨울/이목희 논설위원

    겨울이 깊어지면 고민이 생긴다. 올해는 내복을 입을 것인가. 위는 코트가 있어 덜 춥다. 그러나 몇년 전부터 무릎 아래가 시리다. 내복을 입고 실내온도를 낮추자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도 있지만 왠지 내복을 가까이하기가 꺼려진다.“나도 이제 한물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다른 차원의 대답이 돌아와 깜짝 놀랐다. 내복을 입느냐는 늙음과 관계 없다고 했다.‘마음의 겨울’이 문제라는 것이다. 아빠가 나이들어감을 느끼는 이유로 세가지를 댔다. 첫째, 한 말을 자꾸 되풀이한다. 둘째, 머릿속에 한번 틀리게 입력된 사항을 쉽게 바로잡지 못한다. 셋째, 고집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좋은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나름대로 자상한 아빠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내가 한 말들을 아들은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곰곰이 돌아보니 맞는 지적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들에게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하기 전에 공부를 하기로.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야 하고, 틀린 입력을 고치는 노력을 해야겠다. 이목희 논설위원
  • [길섶에서] 간으로 쓰는 소설/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소설은 가슴이나 머리가 아니라, 간으로 쓴단다. 튼튼한 간만이 문제작을 만들 수 있다 했다. 작가 이기호의 주장이다. 글쓰는 이들이 히말라야를 오르고, 자전거를 타고, 마라톤을 하는 것, 애오라지 건강한 간을 위해서란다. 그는 간 수치가 높으면 시를 쓰고, 덜하면 소설을 쓰라고 권한다. 간 수치가 높은데도 소설을 쓰고 싶으면 우루사를 먹으라고 했다. 재치와 강변이 상큼하다. 몸과 영혼을 갉아가며 씨름하는 작가들의 아픔이 찌릿하게 전달되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소설 창작은 곡괭이를 들고 콘크리트 벽을 부수는 것과 같다 했다. 간으로 쓴다는 말과 통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간으로 쓴 소설은 그 맛이 너무 쓰다. 깊고 진하다. 처절한 경험과 현장학습, 탐구가 토해낸 아픔 때문이다. 조정래의 아리랑, 최명희의 혼불, 최인호의 잃어버린 왕국, 모두 간으로 쓴 소설이 아닐까. 작고한 이문구는 문장 하나 하나를 피를 찍어 쓴다고 했다. 이들의 고통이 깊을수록 우리는 억병으로 취해들어 간다. 새해에도 간이 건강한 작가를 자주 만나고 싶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길섶에서] ‘모른다 당’/임병선 체육부차장

    믿기지 않겠지만 ‘아무것도 모른다(Know-Nothing) 당(黨)’이 있었다. 미국의 13대 대통령 밀러드 필모어가 백악관 재입성을 노려 반이민을 내건 이 정당과 손잡았다. 지하철에서 낄낄대며 들여다 보는 책 ‘대통령의 위트’에서 이 대목을 읽고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밥 돌 전 상원의원이 쓴 이 책에는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떠받들리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유머감각 역시 제일 윗길로 꼽혔다. 정적(政敵)인 스티븐 더글러스가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비난하자, 그는 “여러분께 판단을 맡깁니다. 제게 또다른 얼굴이 있다면 지금 이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고 맞받았다. 남북전쟁 와중에 링컨이 상세한 전황 보고를 독촉하자 짜증 난 장군이 짤막한 전보를 쳤다.“암소 6마리를 막 포획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링컨 역시 단답형으로 맞대응했다.“우유를 짜십시오.” 그제 대선 2차 TV토론을 봤다. 시쳇말로 ‘드럽게 재미없었다.’우리 정치의 비극은 웃음의 실종에 연유하고 있다. 임병선 체육부차장 bsnim@seoul.co.kr
  • [길섶에서] 겨울나기/구본영 논설위원

    가난한 이들에게는 추운 겨울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계절일 게다. 퇴근 길 전철 역 근처의 지하 보도에서 라면 박스를 깔고 새우잠을 청하는 노숙자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선 열기는 뜨겁지만, 오랜 불경기에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면서 기분마저 우울해지기 십상인 요즈음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들른 성당에서 ‘무지개 원리’의 저자인 차동엽 신부의 강론을 들었다. 누구보다 신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그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에 ‘긍정의 힘’이 전염되는 듯했다. 책을 펼치자 “반드시 밀물은 오리라. 그날 나는 바다로 나아가리라!”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다. 그 누구든 때로는 현실이 고달프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을 이유는 없다. 한뼘도 안되는 감방의 창으로 바깥을 내다봐야 하는 죄수 중에서도 “진흙탕 같은 땅바닥만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란 어느 시인의 시구를 되뇌면서 이 겨울을 보내야겠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시험/황성기 논설위원

    얼마 전 시험 하나를 봤다. 외국어 인증시험이다. 고1인 아이와 동행했다. 아이도 나와 같은 급수의 시험을 치렀는데, 비슷한 시기에 접수해서인지 고사장에 도착해 수험번호를 확인하니 같은 반이다. 내가 7년 전, 아이가 3년 전 본 이 시험에서는 내가 2점 높았다. 해서 진반농반으로 시험 전 내기를 하지 않겠냐고 아이에게 제의했다. 시험 1주 전 함께 푼 기출문제집 평균 점수는 내가 2점 낮았다. 그런데도 안한단다. 세 시간에 걸친 시험의 매교시가 끝날 때마다 아이와 답을 맞춰본다. 미세한 열세 혹은 우세다. 딱히 이 나이에 내게 외국어 공인 성적이 필요할 리 없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가끔 언어영역 공부를 같이 한다. 수십년 전 배웠던 과목이라 아이에게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공부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똑같은 문제를 풀고 틀린 문제가 있으면 정답을 맞힌 쪽이 해설을 해주는 식이다. 이런 공부가 아이에게 도움이 될지 의문이지만 부자간 대화를 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바람부는 아침/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바람이 분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마른 가지를 흔드는 까치의 비상이 화사하다. 인상파 화가 에드가 드가가 빛처럼 다가온다. 발레 작가다. 날아오를 듯한 발레리나를 많이 그렸다. 춤추는 여인들, 리허설 등에서 발레리나의 순간 동작과 예기치 않은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는 크로키를 하듯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생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들 그림이 더욱 주목받는 건, 작가의 시선 때문이다. 사실 발레만큼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장르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그는 ‘들러리’ 발레리나를 즐겨 그렸다. 작가의 따듯한 시선과 감성이 가슴을 녹인다. 주목받지 못하지만, 완벽한 공연을 위해 혼신의 몸짓을 하는 들러리들의 숨결이 들리는 듯하다. 발레뿐일까. 우리가 이만큼 지탱하는 건, 드러나지 않은 주위의 도움 덕분이 아닌가. 또다른 주인공이 돋보인다면, 누군가가 기꺼이 들러리를 섰기 때문이 아닐까. 출근길에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깃발이 흔들린다. 드가의 작품이 흩날린다. 바람불어 좋은 아침이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어머니의 김장/구본영 논설위원

    시골의 어머니가 다시 김치를 담가 보내시겠단다. 노모의 건강을 걱정해 전화로 여러 차례 말렸는데도 고집을 꺾지 않으려 했다. 몇 차례나 허리를 다친 데다 골다공증 증세도 있는데 말이다. 경향 각지에 흩어져 사는 3남2녀가 모두 불혹을 넘긴 나이인데도 어머니에겐 아직 어린애인 듯했다. 며느리가 셋인데도 아직 미덥지 않기는 매한가지인 모양이다.“올해만 마지막으로 담그겠다.”는 말이 벌써 몇년째다.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어릴 적의 김장철은 언제나 추웠다. 국민 대다수가 가난했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느낌으로만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집집마다 어머니들이 고무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김장을 담그지 않았던가. 형제들은 부엌에서 어머니가 입안에 넣어주는 겉절이 김치를 받아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번 더 어머니의 김장을 말릴 요량인데도 배추 고갱이의 고소한 맛을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입안엔 군침부터 돈다. 그땐 왜 어머니의 시린 손 끝은 보지 못했는지….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선글라스/육철수 논설위원

    아내가 어느 날 다짜고짜 안경점에 같이 좀 가잔다. 내 안경은 멀쩡한데 아내는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선글라스를 맞춰 주겠단다. 웬 떡이냐 싶어 흔쾌히 따라나섰다. 예기치 않게 도수가 들어간 멋진 선글라스를 난생 처음 갖게 됐다. 십여년 전 탈착식 선글라스를 하나 사서 한동안 요긴하게 썼다. 하지만 안경에 붙였다 뗐다 하는 게 귀찮고, 무엇보다 알이 너무 커서 선글라스의 기본이랄 수 있는 ‘폼’이 제대로 나질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아내에게 불평을 했다.“도수 있는 선글라스 한 번 써봤으면 평생에 원이 없겠다.”고. 별뜻 없이 한 말이라 이내 잊었는데, 아내는 그게 가슴에 콱 박혔다고 나중에 털어놨다. 한밤중에 아이들 앞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한껏 폼을 잡았더니 “아빠가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깔깔댔다. 얘들 보기에도 내 행동이 꽤 유치했던 모양이다. 무심코 던진 말을 흘리지 않은 아내가 고맙다. 행복은 작은 걸 신경써주는 데서 온다더니, 그 말이 정말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길섶에서] 고덕산/최종찬 국제부차장

    배추가 없는 배추밭에 을씨년스러움만 감돌고, 사람이 없는 약수터엔 물병만 줄 서 있었다. 산 입구 된바람의 축복을 받지 못한 작은 나무들의 잎사귀는 말라붙을 대로 말라붙었다. 손길만 닿아도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냈다. 백사장의 모래처럼 부드러웠던 낙엽의 매트리스는 더 이상 발바닥에 기쁨을 주지 못했다. 뒤늦은 겨울나기 준비가 한창인 청설모는 인적도 못 느낀 채 도토리를 모으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무 꼭대기에 자리잡았으나 보호막이 모두 사라져 둥지가 걱정되는 청까치 부부는 이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홀연듯 나타난 돌풍에 앙상하게 말라붙은 가지에 위태롭게 걸려있던 나뭇잎들의 낙하훈련이 시작됐다. 마지막 남은 잎새가 떨어져나가는 그런 표정으로 나뭇잎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땅으로 떨어졌다. 잎들의 공수훈련에 산을 오르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춘 채 잠시 상념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 같았다. 산의 겨울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최종찬 국제부차장 siinjc@seoul.co.kr
  • [길섶에서] 펜과 잉크/최태환 수석논설위원

    회사 주변에 대형 서점이 3곳이나 된다. 광화문, 종로, 을지로 입구를 지키는 명물이다. 이따금 들른다. 신간 서적·음반·DVD에서 문구류, 액세서리까지 웬만한 것은 다 있다. 내 나름으로 세상을 만나는 충실한 통로다. 어느 문구 코너의 깃털 달린 펜과 잉크 세트가 눈길을 잡는다. 수입품이다. 영화 ‘오만과 편견’,‘비커밍 제인’에서 곱게 글을 써 내려가던 주인공이 떠오른다. 나스타샤 킨스키 주연의 동화같은 ‘테스’도 연상된다. 영화속 주인공뿐일까. 누구든 펜을 들면 어쩐지 애상이 넘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요즘도 펜 글씨를 쓰는 이가 얼마나 될까. 최근 만난 문인 가운데 최인호, 김 훈씨가 펜을 고집한다. 국내 최고 작가의 아날로그 감성이 새삼스럽고, 살갑다. 어느 시인은 “편지를 연필이나 만년필로 쓰는 시간만큼은 지금도 주먹만한 좌심실이 쿵쿵거린다.”고 했다. 가슴 속에 품었던,40도쯤 뜨거워진 봉투를 우체통에 밀어넣던 사춘기 시절이 그립단다. 문득 필통에 잠든 만년필을 다시 만지작거리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길섶에서] 머리로 쓰는 편지/우득정 논설위원

    올 연말 고교 동기 망년회 때 마지막을 장식할 편지 한통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지 한달이 넘었다.40쌍 남짓한 부부 모두의 심금을 울려달라는데 통 자신이 없다. 모두의 마음을 꿰뚫는 관심사와 단어는 무엇일까? 밤마다 자문해 보다가 또다시 내일을 기약하며 잠속으로 달아나 버린다. 그러고 보니 편지를 써본 지도 20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결혼 전 매일 밤늦도록 통화하고도 무엇이 모자라는지 지금의 아내에게 감언이설로 꼬드기는 내용을 얼핏설핏 휘갈겼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내는 아직도 그 편지를 보관하고 있다지만 혈중알코올 농도 최소한 면허정지 이상인 상태에서 썼으니 안 봐도 내용은 뻔하다. 30여년의 만남. 한해의 끝자락에 서서 무엇을 읊조려야 할까. 서로 다른 색깔의 삶을 살아왔는데. 술잔을 높이 쳐든다고 갑자기 한마음으로 엮어질까.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서로에게 손을 내밀자고 하자니 쑥스럽다. 아마도 망년회 하루 전날까지 머릿속으로만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간 지워야 할 것 같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길섶에서] 마지막 당직/송한수 국제부 차장

    수첩을 쥔 그 굵은 손마디가 파르르 떨렸습니다. 제 흐려진 눈자위에 비쳐서인지, 당신의 눈망울도 촉촉한 듯했고…. 어느 선배가 일터를 떠나가며 후배들에게 작별인사만은 해야겠다며 준비한 글을 숨차게 읽어 내려갔습니다. 11월 마지막날이었지요. 선배는 “30여년 직장생활 마지막날에 맡겨진 야간당직을 허락해줘 후배들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제 이별하는 마당에, 또 마지막날을 일터에서 당직으로 마감하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며 ‘허’ 웃었죠. 사실 이전엔 선배를 잘 몰랐습니다. 맘씨 넉넉하다는 점을 몇해 전 한 부서에서 일하며 알게 됐지 뭡니까. 그저 만교(萬敎)라는 그 이름이 왠지 좋았습니다. 만교(晩交)로 이해했습니다. 중년에야 만나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큰 형님처럼 포근한 가슴을 가진 선배이구나 하는 생각도 그때그때 마음에 스치기만 했지요. 마지막 당직이 영광이라는 말을 듣고야 깨달았습니다.“이제껏 선배는 차곡차곡 정을 쌓아왔구나∼.” 송한수 국제부 차장
  • [길섶에서] 순애보2/함혜리 논설위원

    얼마전 ‘순애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이때 쓰려다가 너무 개인적인 것 같아 빼놓은 이야기가 있다. 친구 어머니의 이야기다. 올해 94세인 그분은 최근까지 머리를 쪽 찌고 사셨다고 한다. 딸들이, 요즘 할머니들은 다 머리 커트하고 파마한다며 아무리 머리를 자르라고 권해도, 당신께서는 한사코 쪽 찐 머리를 고집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행여 꿈에라도 찾아왔을 때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남편이 자식 여덟을 남기고 홀연히 떠난 지 40년. 자신은 한시도 남편을 잊은 적이 없지만 그 사이 머리는 하얗게 세고, 얼굴에는 조글조글 주름이 한가득이 됐다. 이렇게 변한 당신 모습이 못 미더웠을 것이다. 그러다 결국 머리를 자르셨다. 병고와 싸우느라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있다 보니 더 이상 긴 머리를 간수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딸들은 “쪽 찐 사진을 항상 옆에 놓아줄 테니 걱정마시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친구 어머니께서는 며칠 전 먼길을 떠나셨다. 그리도 그리워하던 남편 곁으로.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과거로의 여행/우득정 논설위원

    “그때 그대로야. 저기 안쪽이 내 방이야. 마당의 정자도 그대로 있는데.”아내는 북악스카이웨이 중턱, 공사가 진행 중인 보행자 길 옆 야트막한 담장에 매달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줄곧 감탄사를 토해낸다.24년만에 찾아온 옛집이다.“저기 파란색 지붕은 김 사장집이고, 저기는 이 교수집이야.” 올 들어 갑자기 정릉 옛집을 보고 싶다는 채근에 이끌려 길을 나섰다. 몇 차례 길을 묻고 자동차를 되돌린 끝에 아내는 북악스카이웨이와 계단식 뒷문으로 맞닿은 옛집을 찾아냈다. 단독주택 50가구 정도밖에 없었다던 그곳은 앞뒤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곳곳이 연립주택이다. 옛집의 마당에도 단독주택 두 채가 들어섰다. 여름철이면 돌아가신 장인 어른이 정자에서 닭백숙을 손으로 뜯어주시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단다. 장인 어른과 다녔다는 냉면집에서 때늦은 점심식사를 하면서도 아내의 회상은 끊이질 않는다. 폭설이 쏟아진 날 언덕길을 엉금엉금 오르던 일, 창밖에 활짝 펼쳐진 녹음…. 마침내 소원을 풀었다는 듯 아내의 얼굴이 밝게 피어났다. 우득정 논설위원
  • [길섶에서] 새가 된 시인/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송수권은 언젠가 그랬다. 길거리 모퉁이를 돌 때마다 우체통이 하나 둘 사라져 우울하다고.‘스륵스륵 향 연필 깎는 밤/창밖에선 눈 오는 소리/인터넷 세상 속에서도/바람 불고 비가 오는 걸까’그는 요즘도 우체국에서 편지와 원고를 보낸다.‘새 대가리 시인’이라고 했다. 점잖게 말해 ‘새가 된 시인’이란다. 이따금 엘리베이터 안에서 운전 핀을 잊고 맹하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면 ‘나 완전히 새 됐다.’고 내뱉는다. 주위를 돌아보면 사라져가는 향수가 우체통뿐일까. 어둠 깔린 덕수궁 길에서 만난 빨간 공중전화 부스가 쓸쓸하다. 시립미술관 입구다. 찾는 이가 없다. 분홍 얼굴의 가로등만이 외롭게 공중전화 부스를 지킨다. 동병상련일까. 잠시 쉬는 낮 동안 부스가 사라지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하는 것 같다. 공중전화가 취기에 전 나를 부른다. 휴대전화 던져버리고 다가오라고 손짓한다. 할 말이 없느냐고.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오늘도 홀로 서 있는 공중전화가 고맙고, 또 미안하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길섶에서] 다이어리/함혜리 논설위원

    내년도 서울신문 다이어리를 받았다. 문득 10여년 전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고집불통인지라 식구들에게 그다지 인기는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일본 주오대에 유학을 하신 인텔리로 6·25 전후로 원주·횡성·영월 군수를 지내셨다. 대쪽 같은 성질 탓에 일찍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칩거하기엔 아까운 분이었다. 한문 실력과 한자 붓글씨 솜씨는 탁월했다. 특히 당신 자신에게 매우 철저했다. 수십년을 하루에 두 끼만 드시고, 냉수마찰과 건포 마사지를 거르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영어로 일기를 쓰셨다. 대학노트를 사용하던 할아버지께서는 언제부터인가 서울신문 다이어리의 애용자가 됐다. 연말에 다이어리가 나오면 즉시 할아버지께 갖다 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종이질이 좋은 데다 칸이 넓어 일기쓰기에 안성맞춤”이라며 고마워하셨다. 연말연초면 여기저기서 다이어리를 받는다. 어떤 것은 사용하지도 않은 채 책상 서랍에서 일년을 보낸다. 영어 일기는 아니더라도 내년에는 나도 다이어리에 일기를 적어 보련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빨간 피터/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일산 호수공원이 한가하다. 나목(裸木)들이 호수에서 비틀대고 있다. 카메라 앞에서 목을 내밀며 원숭이 흉내를 내는 아이들 표정이 익살스럽다. 어느 책에선가, 원숭이는 살기 위해 공격하고, 살아남기 위해 화해한단다. 바로 인간의 모습 아닌가. 연극인 추송웅을 떠올린다. 배우 추상미의 부친이다.‘빨간 피터의 고백’은 그를 독보적인 모노드라마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철망에 갇힌 원숭이의 독백을 통해 소통없는 현대인의 소외, 고독을 전했다.130좌석의 삼일로 창고극장엔 1만명의 예약자가 대기했다. 공연 보름만이었다.8년 동안 장기 공연했다. 빨간 피터는 관객이 던진 300장의 손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축 처진 어깨의 슬픈 원숭이, 추송웅은 1985년 짧은 생을 마감했다.44세였다. 오늘처럼 찬바람 부는 겨울이었다. 남의 인생, 거짓 연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닌지 끊임없이 반문했던 그다. 우리를 떠난 빨간 피터는 지금도 묻고 있다. 여러분은 얼마나 진지하게 살고 있는지, 또 얼마나 진실된 연기를 하고 있는지를.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컬러링/구본영 논설위원

    요즘 스페인에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행한 카를로스 국왕의 호통이 ‘컬러링’으로 대유행이라고 한다.“입닥쳐!”(Why don’t you shut up!)정도로 번역되는 점잖지 않은 말이다. 공개석상서 자국 전 총리를 무례하게 비판한 외국 국가원수에게 반격을 가한 데 대해 스페인인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한 통의 휴대전화가 걸려왔다. 대뜸 “왜 컬러링 음악을 없앴느냐?”는 말부터 했다. 작년에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다시 다운로드 받는 게 귀찮아서 포기한 컬러링 음악이 생각났다.‘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란 중국 노래였다.‘첨밀밀’(甛蜜蜜) 등 숱한 히트곡으로 덩샤오핑 못잖은 신화로 남은 여가수 고 덩리쥔(鄧麗君)의 곡이었다. 중국을 전공하는 학자인 그에겐 그 곡이 퍽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뜬금없는 물음에 새삼 깨달았다. 컬러링은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전화를 걸어오는 이를 ‘배려’하기 위한 통신서비스란 사실을.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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