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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지하철에서/최종찬 국제부차장

    지하철 역사의 고요한 아침 풍경이 한순간에 깨졌다. 희멀건 얼굴에 갈색 단화를 신고 검은 비닐봉투를 든 30대 여인이 출현하면서부터였다. 그녀는 줄곧 혼자 중얼거렸다. 대화의 상대가 옆에 있는 것처럼 때로는 속삭이듯 때로는 목청을 높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는 전철 안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 노약자석 옆에 서서 승객들의 신경을 흐트리고 있었다. 영어가 뒤섞인 그녀의 독백은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은 채 내릴 때까지 계속됐다. 그녀의 독백을 타고 내 까까머리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 길목에서 세상에 삿대질하던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자기 집 대문에 한자와 영어, 한글로 이해하기 힘든 글들을 적어놓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분노에 가득찬 말들을 쏟아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노인은 거짓으로 미친 척했던 것 같다.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렸던 독재정권에 항거하기 위한 위장전술이었다. 지하철 속의 그녀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최종찬 국제부차장
  • [길섶에서] 돈과 우정/오풍연 논설위원

    며칠 전 대학선배가 불쑥 찾아왔다.10년도 지났기에 내가 더 놀랐다. 선배가 아직도 어려운 것 같았다.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왜 그럴까.20여년 이상 기자생활을 하다 보니 왠지 그냥 스쳐 가지 않는다. 직업 탓이라는 생각이 들자 씁쓸한 마음이 더했다.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선배에게서 도움을 청하는 전화가 왔다. 일단 만나자고 해 소주잔을 기울였다. 사정을 들어보니 너무 딱했다. 그래서 다소 여유가 있는 또 다른 선배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 선배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오히려 부탁한 게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그날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이튿날 사무실에 나와 당시로는 적지 않은 돈을 만들어 보내 주었다. 물론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 문제는 그 뒤부터였다. 지금까지 가타부타 연락이 없었다. 연락을 하고 싶어도 선배가 미안해 할까봐 다이얼을 돌리지 못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일을 잊은 지 오래다. 늦게라도 선배와 연락이 닿아 행복감을 느낀 하루였다. 오풍연 논설위원
  • [길섶에서] 아름다운 시절/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며칠 전 작가 이봉구의 ‘명동백작’서평을 봤다. 어둡지만 낭만이 샘물처럼 넘쳤던 1950·60년대 풍류객들 이야기다. 박인환 시인에 대한 회고담이 나온다. 그는 서른 나이에 술과 함께 세상을 떴다.‘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박인환은 어느 술집서 단숨에 ‘세월이 가면’을 썼단다. 저자는 박인환이 활개쳤던 명동이, 가장 아름다웠던 명동이라고 추억했다. 사랑노래가 잡힐 듯하다. 어느 문인의 황망했던 여고시절 추억담이 떠오른다. 새 학기였다. 담임 선생님이 액자를 들고 왔다. 마른기침 끝에 “반훈(班訓)을 만들어 왔다.”고 했다. 액자가 올라갔다. 칠판위 하얀 벽으로 눈동자가 옮겨졌다.‘첫 사랑을 잊지 말자’ 학생들이 까무러쳤다. 포복절도에 교실이 떠내려갔다. 첫 사랑을 그토록 상찬한 선생님은 어떤 이였을까. 박인환류의 사랑 당부였을까. 꿈 많던 시절의 추억을 잊지 말라는 주문이었을까. 사랑없는 사랑이 넘친다. 명동백작이 그리운 시대다.‘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 새삼 아프게 다가온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선행/오풍연 논설위원

    남을 돕는 게 쉬운 일일까. 말로는 못할 것이 없다. 특히 떠버리일수록 신통찮다. 결정적일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외면하기 일쑤다. 그래서 미움도 자초하게 된다. 재물이 많다고 돕는 데 앞장서지 않는다. 우리 재벌들 역시 마지못해 내놓는 경우가 많다. 말없이 선행을 쌓는 시골 친구가 있다. 그렇다고 수백만∼수천만원씩 돕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사소한 것부터 신경을 쓰는 마음씨가 아름답다. 먼저 어려운 지인부터 돕는다. 병원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친구에겐 몰래 가서 대납해 준다. 단칸 셋방을 얻어가는 이에게는 도배를 해주거나 필요한 전자제품을 배달시킨다. 실직한 이웃에게는 가끔씩 용돈을 찔러 준다. 이러한 소문을 듣고 직접 도움을 청하는 이들도 적지 않단다. 그래도 그 친구가 짜증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도와줄 수 있으니까 성의를 표시하는 거야.” 주위에서 돈자랑을 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외환위기 때보다도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호의호식하는 부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시골친구의 자그마한 선행을 들려주고 싶다. 오풍연 논설위원
  • [길섶에서] 희망의 속삭임/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나른한 오후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을 듣는다. 차이콥스키가 죽음을 예감하고 만든 곡이다. 부제 ‘비창’(悲愴)이 더 쉽게 다가온다. 일상이 지루하거나, 답답한 느낌일 때 이따금 듣는다. 무심코 다가온 가슴 속 갈증이나 삶의 아픔을 편하게 맡길 수 있어서다. 선이 굵은 키릴 콘드라신의 지휘 음반이다. 봄 향기가 함께 실려서일까. 여느 때보다 덜 무겁게 들린다. 희망, 소망이 오버랩된다. 친구가 안부를 전했다. 공직에 있지만, 생각은 끝간 데 없다. 직장이나 모임에서 궂은 일을 도맡지만, 불편한 기색이 없다. 은퇴하면 은둔하겠다며 산촌 거처도 마련해 뒀다.‘망연히 속세 밖을 방황하고, 무위(無爲)의 경계에서 거닌다’고 할 만한 친구다. 하나·둘 현업을 떠나는 친구들을 위한 덕담일까. 그는 메일에서 어느 글을 인용했다.“행복을 향해 전진하기 위해서는 희망으로 개종하라.”고. 시시각각 선명해지는 창밖 라일락의 연초록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희망은 좋은 거예요. 그리고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일탈·탈출을 꿈꾸는 어느 영화 주인공의 독백이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길섶에서] 향우회/오풍연 논설위원

    올해 초의 일이다. 고향 면민회에서 초청장이 날아 왔다.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 한 번도 향우회에 나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 초등학교 때 도회지로 유학을 떠나 고향은 늘 마음속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이번엔 느낌부터 달랐다. 왠지 참석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봉투를 뜯어 보곤 더 놀랐다. 향우회 장소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이었다. 빌리기도 어렵거니와 큰 행사를 치르는 곳이어서 더욱 의아했다. 그 궁금증은 참석해서야 풀렸다. 큰 홀을 꽉 채웠으니 400여명은 족히 될 법했다. 음식이 푸짐하게 나왔고, 여흥시간엔 유명가수와 밴드까지 선보였다. 세종홀에서 면 단위 향우회를 한 것은 두 번째라고 했다. 첫 번째는 대통령을 배출한 면에서 치렀단다. 향우회장이 사비를 털어 마련한 자리였다. 회장은 그러면서도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효자·효부를 선정해 금일봉도 건넸다. 그런 자세에서 자만심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졸부가 판을 치는 세상이어서 더 아름다워 보였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대학 등록금/유진상 출판부장

    영식이는 오늘도 화장실 청소당번입니다. 방과 후 화장실 청소를 한 지가 벌써 열흘이 넘었습니다. 영식이는 왜 붙박이 화장실 청소당번인지 잘 압니다. 월사금을 내라는 최후통첩을 받았지만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빤한 집안살림에 마냥 보채지도 못하고 끌탕할 뿐입니다. 부모인들 왜 이런 사실을 모를까요. 영식이 손에 누런 봉투가 쥐어진 것은 화장실 청소를 한 지 한 달이 다 돼서였습니다. 봉투를 건넨 어머니의 얼굴엔 수심이 그득했습니다. 사실 그 돈은 영식이 아버지가 이웃마을 박부잣집에 머슴살이를 자청하고 받은 선새경의 일부였습니다. 영식이는 이후 화장실 청소에서 해방됐지만 아버지 모습을 자주 볼 수 없었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학 등록금 때문에 부모의 등골이 빠집니다. 대학생 자녀를 둔 사람이라면 장난이 아니라며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대학을 ‘상아탑’이란 말 대신 ‘우골탑’이라고 비하합니다. 나 역시 오롯이 새경으로만 생활하는 상머슴인 것을, 닥쳐올 거친 풍파를 어찌 헤쳐 갈거나. 유진상 출판부장 jsr@seoul.co.kr
  • [길섶에서] 봄볕/함혜리 논설위원

    지난 주말 야외에 나갔다. 대지에는 봄 기운이 완연했다. 나뭇가지들은 물이 한창 올라 파릇했다. 한겨울의 추위는 매서웠지만 봄을 맞은 나무들은 벌써 그것을 잊은 듯했다. 누런 잔디 사이로 초록색 민들레 순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에 이름 모를 풀들이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나와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겨울 막바지에 우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았다. 나도 애를 먹었다. 의학적 지식이 좀 있는 사람들은 햇볕 부족에서 오는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산책을 권했다. 일조량이 줄어들면 비타민D가 부족해지고 각종 호르몬 분비량이 들쭉날쭉해져 감정의 기복도 심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날씨가 추우니 자꾸 움츠러들기만 했다. 취미생활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노래를 들으면 위로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그대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어쨌든 그 겨울은 갔다. 올해엔 봄볕이 유난히 반갑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화환/오풍연 논설위원

    슬플 때나 기쁠 때 찾는 것이 있다. 바로 꽃이다. 상갓집에는 조화, 결혼식 등에는 화환을 보낸다. 꽃은 감성을 자극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하고, 희열을 만끽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출세의 척도로 여기는 이도 적지 않다. 실제로 고관대작의 애경사에는 수십∼수백개의 화환이 보이곤 한다. 너무 많이 와 리본만 걸어두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러다 보니 그들끼리도 차별대우를 받는다. 자리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난을 많이 받았다. 먼저 있던 자리에서는 70여개 넘게 왔다. 우리 사회에서 이름 석자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분들도 여러 명 끼어 있었다. 받는 이의 고마움이야 그렇다 치자.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더 흐뭇해했다. 덩달아 신이 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들어온 난을 모든 직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이번에 또다시 자리를 옮겼다. 행여 폐를 끼칠까봐 지인들에게조차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몇몇 분은 용케도 난을 보내왔다. 감사함에 앞서 미안할 따름이다. 대신 정성스레 난을 돌볼 생각이다. 오풍연 논설위원
  • [길섶에서] 화나는 봄/이동구 사회부 차장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입니다. 봄은 또 누구에게나 희망을 노래하게 만듭니다. 도종환 시인은 “손에 손을 잡고 봄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이 희망”이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봄은 자꾸 화가 납니다. 희망의 봄소식보다는 엽기사건으로 가득합니다. 한때 유명했던 야구선수가 채 피지도 못한 여자아이 셋과 엄마를 무참히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온 국민의 가슴을 졸였던 안양의 실종 어린이 두명도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됐습니다. 이웃 아저씨의 소행이라고 합니다. 소생해야 할 이 계절에 희생만 가득합니다. 아지랑이, 꽃 향내보다 피 비린내가 날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른들에게 납치·살해되고, 이유도 모른 채 사라지고, 엄마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되고…. 그런데 이들은 이웃이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 왜 죽어야 하는지도 아직 모르는 나이입니다. 어린이를 천사라고 합니다. 미래·희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왜 어른들의 잘못으로 어린 생명들이 희생되어야 하는지, 정말 화가 치밉니다. 이동구 사회부 차장
  • [길섶에서] 개와 공중도덕/구본영 논설위원

    얼마 전 친구가 개의 심리를 다룬 책을 보내왔다. 미국서 스테디 셀러라는, 세사르 밀란의 ‘도그 위스퍼러’를 번역한 책이었다. 저자는 그동안의 통념과는 다른 주장을 펴고 있었다. 본래 개들은 앞마당에서 음식찌꺼기를 먹고 자랐다. 그러나 지금은 고급 사료를 먹으며 주인과 함께 침대에서 자지만 더 행복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골목을 누비던 개들이 이제 미용실에 다니는 팔자가 됐지만, 문제견은 늘어만 간다는 지적도 했다. 결국 인간이 개가 원하는게 뭔지도 모른 채 자신이 주고 싶은 것만을 준다는 얘기였다. 개는 자연 그대로 ‘개답게’ 살기를 원하는데도 말이다. 흥미로운 이론이었다. 다만 동물심리학에 문외한이라 그 타당성을 검증할 길은 없었다. 하지만, 퇴근길 아파트 현관에 애완견이 실례한 흔적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개들이 일으키는 문제의 원인은 개가 아닌 사람에서 찾아야 한다는, 밀란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한때 공중도덕과 인권유린 사이에서 논란을 빚었던 ‘개똥녀’사건의 본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구본영 논설위원
  • [길섶에서] 스팸 메시지/ 황성기 논설위원

    휴대전화 등으로 하루에도 몇건씩 들어오는 사신(私信)아닌 메시지들. 쌓이는 게 싫어 올 때마다 지워봐도 감미(甘味)를 찾아 출현하는 고약한 벌레처럼 막을 재간이 도통 없다. 발신처가 주로 은행이나 카드사들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가입해 둔 곳에서 보내는 메시지는 결코 스팸 그물에 걸리는 법이 없다. 고객관리 차원이라지만 꼭 받을 사람한테만 받고 싶은 걸 왜 모르는지. 그중에 특히 심하다 싶은 게 생일·결혼기념일이다. 그런 개인정보 기입을 무시했더라면 받지 않았을 기념 메시지이니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기계가 보내는 무연(無緣)의 축하에 기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혀를 차며 별 생각없이 휴대전화에 들어온 메시지를 지우려다 놀랐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결혼기념일 축하다. 깜빡 잊고는 그날 저녁 약속을 만들었다. 다행히 친구들 여럿이 하는 모임이라 연락책을 통해 불참의 양해를 구했다. 스팸 같던 메시지를 요긴하게 썼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약속/송한수 국제부 차장

    “보잉 777이 손님을 고작 다섯명 태우고 시카고∼런던을 날았다.”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어쩐 일인지 미국에서 정원을 넘겨 예약을 받았다. 다섯명이 넘친 것이다. 약속을 지키려다 ‘스페어’로 비행기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운항엔 3만파운드(약 5844만원)란 돈이 든단다. 문제는 엄청난 기름이다. 비행기는 2만 2000갤런(84t)을 하늘길에 뿌렸다. 지구의 친구들이라는 환경단체가 발끈했다. 언론들은 ‘에코 스캔들’이라고 떠들었다. 미 헌팅턴포스트는 자동차로 지구를 다섯바퀴 달릴 연료라고 빗댔다. 덩달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고비용-저효율을 뼈아프게 꼬집어 승객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43t이라고 거들었다. 통째 전세를 낸 손님들은 비즈니스 좌석으로 업그레이드 받는 횡재까지 만났다. 읽는 이들은 어리둥절하겠다.“아무튼 약속은 지켜야….”“그래도 달랑 다섯명을 실어나르려고….” 세상에 무 자르듯 결론내지 못할 일은 얼마든 많은 듯하다. 송한수 국제부 차장 onekor@seoul.co.kr
  • [길섶에서] 춘망사(春望詞)/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봄의 미망일까. 하늘이 닫혔다. 며칠 동안 뿌옇다. 빗발이 날리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나뭇가지는 아직도 거칠다. 자세히보니, 초록을 내밀 태세다. 누군가가 야외로 나가 보라고 했다. 봄기운을 맡으라 했다. 아지랑이 피던 시골길이 생각난다. 머리를 땅에 대면 아지랑이는 물이고, 산이었다. 세상이 흔들렸다. 메마른 남천(南川)엔 안개 구름이 흘렀다. 가슴엔 꿈이 피어올랐다. 시골서 우편물이 왔다. 초등학교 동기생들이 산행을 하잔다. 객지 신세를 핑계대며 외면했지만, 친구들은 변함없이 부른다. 친구는 자연의 봄을 즐기자는데, 나는 아직도 삶의 봄을 꿈꾸며 헤맨다. 안부전화를 하는 친구들의 푸른 웃음을 떠올린다. 봄의 안부를 얼마나 더 주고받을 수 있을까. 메마른 나의 삶, 나의 생각은 언제쯤 푸근해질까. 시인은 “마음은 늘 비포장이었다.”고 했다. 울퉁불퉁한 마음을 언제 다스릴 수 있을까. 시골 친구들이 그립다.‘바람에 꽃들은 나날이 시드는데/아름다운 기약은 아득하기만 하네’중국 당대(唐代)의 시인 설도의 춘망사(春望詞)’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행복론 제2막/구본영 논설위원

    지난 주말 친구 몇명과 이른바 ‘번개 산행’에 나섰다. 잔설이 녹아 질퍽거리는 북한산 자락에서 비로소 봄을 체감했다. 이미 경칩도 지나고 춘분을 앞두고 있건만…. 절기의 변화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근황에도 무신경했음을 알게 됐다. 삼삼오오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화려해 보이는 외형적 일상의 이면에 깃든 애환까지 알게 되면서다. 대학 진학을 앞둔 자식 걱정에 여념이 없는 친구는 여럿이었다. 취직 대신 고시공부하는 아들 때문에 애태우는 친구도 있었다. 세상은 공평한 것인가. 누구나 부러워하는,‘잘 나가는’ 친구에게도 실은 말 못할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쌓아놓은 이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최소한 그만큼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것도. 그렇다면 행복도 오늘의 삶을 겸허히 긍정하는 가운데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봄의 정취와 함께 그런 예감을 덤으로 느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마라톤의 반환점처럼 정해져 있는 건 아닐 터이기에.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옹알이/송한수 국제부차장

    “우리 애 말인가요. 태어난 지 석달 됐는데…. 말을 해요. 정말예요.” 곰살맞은 후배 이야기 하나 해볼까 합니다. 그가 일터에서 출산휴가를 다녀온 터였죠. 남자 후배입니다. 부인 뒷바라지를 하려고 팔을 걷어붙인 겝니다. 하늘이 딸아이를 내려주셨다면서 어찌나 뽐내는지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지 뭡니까. 그런데 다른 선배와 셋이서 저녁밥을 먹으러 나서다 작은 ‘사달’이 났습니다. 글쎄, 갓난애가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엄마, 아빠’라고 부른다는 얘기였던 듯합니다. 선배나 저나 “웃기지 마, 임마.” 하고 소리 높여 맞장구를 쳤습니다. 몇 차례 공방 아닌 공방을 벌였지만 “거짓말 아녜요.”란 대답만 돌아오고 있었답니다. 왜 뜬금없는 말이냐면, 까닭은 이렇습니다. 세상 여기저기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는 일들로 크고 작은 다툼이 빚어지니 생각도 많아집니다. 후배로선 그저 아이를 너무나 어여삐 여긴 어버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을….“우리 딸애가 말을 한다.”던 속뜻을 새겨들어야 했던 것을요. 송한수 국제부차장 onekor@seoul.co.kr
  • [길섶에서] 칼국수 한그릇/임병선 체육부차장

    “서서 기다리는 데 30분, 앉아서 또 20분이군.”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 집 칼국수를 기다리다 지친 한 식객이 투덜거린다. 이때쯤, 입에는 이미 침이 흥건하다. 점심에 한 그릇 먹으려면 사무실에서 30분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전철을 타자니 그렇고 택시나 버스도 마땅치 않다. 청계천을 건너야 하니 산만 넘지 않지, 물건너 꼬박 2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3500원. 양도 푸짐하고 맛도 그만이다. 오후 1시30분이 돼도 전혀 줄지 않은 손님 행렬을 의식해 후루룩 들이켜기 십상이다. 그러고도 밤 8시에도 시장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 그러나 굳이 이 집을 찾는 이유는 딴 데 있다. 만화영화 캐릭터 ‘왕눈이’를 빼닮은 주인 아주머니의 마음씀씀이 때문이다. 비좁은 식당 여기저기 쌓아놓은 밀가루 부대들이 정겹다. 지난가을 아주머니는 “밀가루값 오른다는 소식에 미리 사놓았지. 손님들 그러잖아도 힘들잖아. 한 일년은 우리집 값 안 올릴거야.”했던 것이다. 물가 때문에 난리라고들 하지만, 이런 식당도 있다. 임병선 체육부차장 bsnim@seoul.co.kr
  • [길섶에서] 천상의 화음/최태환 수석논설위원

    가수 이동원은 노래를 읊는다. 음유가수다.‘향수’는 1989년 테너 박인수와 함께 불렀다. 정지용 시가 노랫말이다. 둘은 명콤비였다.‘사랑하기 때문에’ ‘여자 여자 여자’도 같이 불렀다. 크로스오버의 효시였다. 이동원은 요즘 경북 청도 산골서 유유자적이다. 허름한 농가주택이 보금자리다. 납작모자와 기타는 감춰 두고,50㏄ 오토바이와 헬멧을 달고 다닌다. 그는 청도풍광이 ‘향수’ 노랫말을 닮았다고 했다. 두 가수는 지금도 서로 그리워할까. 며칠 전 타계한 테너 디 스테파노를 생각한다. 고인이 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 단짝이었다. 스테파노는 가공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나폴리 민요는 발군이었다. 그는 품성이 넉넉했다. 그녀와 자주 다퉜지만 끝까지 우정을 지켰다. 선박왕 오나시스로부터 버림받고 방황하던 그녀를 감쌌다. 듀엣의 ‘별은 빛나건만’,‘부드러운 손’이 흘러나온다. 천상의 화음처럼 들린다. 이동원, 박인수가 함께 무대에 서는 날을 기대해 본다.‘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상상만으로도 감미롭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못다 쓴 편지/우득정 논설위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달 뒤 아버지가 두툼한 서류봉투 하나를 내미셨다. 어머니가 칠순이 넘어서야 한글을 깨우치겠다며 야학 비슷한 곳을 다니면서 쓴 공책과 노인네들이 함께 부르던 흘러간 노래의 악보라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제때 밥도 차려주지 않고 ‘쓸데 없는’ 공부를 한답시고 집을 비우는 게 못 마땅해 호통을 치는 바람에 끝내 야학조차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며 때늦은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사연을 미리 전해 들은 탓에 아직도 서류봉투를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서럽게 살아온 어머니의 한평생이 고스란히 묻어 있을 게 뻔한데 새삼 확인하기가 두려운 까닭이다. 군대에 간 아들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쓰던 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그 서류봉투로 향했다.30년 전 이따금 ‘얘야 건강하게 잘 있어라.’하던 아버지의 편지는 받았지만 어머니의 편지는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 어머니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아들이 첫 휴가를 나오면 함께 봉투를 풀어헤치며 할머니의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 옛날 아들에게 속으로만 읊조렸을 편지와 함께. 우득정 논설위원
  • [길섶에서] 기다림의 세월/ 육철수 논설위원

    중학교 3학년이 된 막내가 그날 따라 무척 일찍 일어났다. 출근을 서두르는데 막내가 눈을 비비면서 거실로 들어섰다. 아침잠이 많아 늘 등교시간에 쫓기던 아이라 웬일인가 싶었다. 막내는 대뜸 “어젯밤 새벽 2시까지 공부했어.”라고 한다. 순간, 아내와 나는 눈길이 마주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구, 기특해라.”하면서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니까 3년 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짜리 막내한테 영어공부 좀 시켜보려고 외국에 몇달 보냈다. 문제는 갔다 와서 생겼다. 막내는 그곳의 생활이 맘에 들었던지, 이따금 그 추억을 떠올렸다. 귀국해서는 학업에 흥미를 잃고 펀펀 놀기만 했다. 아무리 달래고 을러도 백무소용이었다. 그러던 아이가 공부를 하겠다니, 세상에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더 지켜봐야겠지만 학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만으로 일단 청신호다. 돌이켜보니 지난 몇년동안 막내로 인해 속이 참 많이 상했다. 남들은 뭘 그런 걸 고민하느냐 하지만 내겐 기다림의 세월이었다. 그날 출근길은 발걸음이 왜 그리 가볍던지….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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