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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K에게

    지난 일요일이었지. 자네가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더 무거워 보이는 얼굴로 회사 옆을 지나다 선·후배에게 들켰던 게 말이야. 자넨 그리 넉넉잖은 형편에 고2 딸을 해외유학 보내려 마음을 다잡았다고 귀띔했지. 그러고는 어린 딸내미 혼자 비행기에 태우던 날, 우습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지 않았나. 그렇게 걱정했던 ‘아비, 어미’를 뒤로 하고 한 차례도 돌아보지 않은 채 너무나 씩씩하게 나갔다지. 호주 생활을 안심해도 좋거니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다른 한쪽으로는 휑하게 뚫린 듯 배신감마저 느껴졌다며.“아 어찌나 멋쩍었는지. 공항에 함께 나간 아들도 ‘누나 너무한 것 아니냐.’며 혀를….” 출국 며칠 전엔 딸이 귀를 뚫었다는 얘기도 곁들였지. 화가 치밀어 회초리를 들었다고 했었지. 그런 터에 공항에서 본 딸의 당당한 모습이 의외였겠지. 그러나 아빠 속내를 읽어 씩씩했던 딸이 기특하지 않나. 서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듬어야 ‘만사형통’이긴 가족이 아니더라도 매한가지 아닐까.송한수 국제부차장 onekor@seoul.co.kr
  • [길섶에서] 아내의 빈자리/오풍연 논설위원

    하루도 빠짐없이 읽는 신문란이 있다. 인사와 부고란이다. 바쁜 일상에 다 챙길 수 없어 간접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승진 및 전보 인사는 나중에 축하해도 된다. 하지만 부음은 그 때 못 챙기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살다가 한 두번쯤은 경험했을 터다. 지난해 한 친구가 부인을 잃었다. 부고란을 보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투병 중이라는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다. 요즘 그 친구와 종종 자리를 함께 한다. 활달한 그도 술 한잔 들어가면 감상에 자주 젖는다. 먼저 간 부인에게 너무 미안하단다. 대학강사로 대전·대구를 오가다 피로가 겹쳐 불치병을 얻었다는 것. 엄마와 강사라는 두 가지 일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친구는 아이 둘을 유학 보내고 혼자 지낸다. 집에 들어가면 허전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함께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아내의 빈공간이 너무 크다고 했다.“자네 아내한테 잘해야 하네. 죽은 다음에는 아무 소용이 없어.”남의 일 같지 않아 아내에게 신경을 많이 쓰려고 한다.“나의 진주(眞珠)여, 좋은 남편 될 게.”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열쇠/함혜리 논설위원

    아침 산책을 나갔다. 은은한 꽃 향기를 실은 바람이 상쾌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출입문으로 들어서려는데,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도 열쇠가 없는 것이다. 열쇠를 찾느라 산책 코스를 다시 훑어야 했다. 여벌 열쇠를 가진 식구들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전화기도 집에 두고 나왔고, 주머니에는 동전 한푼 없는 형편이다. 더구나 전화번호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모든 전화번호를 휴대전화에 입력시켜 놓고 사용하다 보니 머릿속에 저장된 번호가 한개도 없었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디지털 치매였다. 결국 열쇠는 찾지 못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전화를 빌려서 회사에 좀 늦는다고 전화하고, 그 다음 열쇠 수리공을 불러 일단 문을 따는 수밖에. 이참에 디지털 열쇠로 바꿔야겠다. 열쇠 잃어버릴 염려가 없도록.’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파트 출입문을 지나 현관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현관문 자물쇠에 열쇠가 꽂혀 있는 게 아닌가. 문을 잠그기만 하고 열쇠 뽑는 것을 잊고 나온 것이었다. 못 말리는 건망증이다. 디지털 열쇠는 또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윤기없는 일상/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늦은 밤 퇴근길이다. 화들짝 놀라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졸다 집앞을 지나칠 뻔했다. 황망해하던 내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웃지 않았을까. 달빛이 뒤를 따른다. 달빛은 2층 넓은 창을 따라 들어와 윤기없는 그림자를 만든다.LP판 꽂이에서 드뷔시의 ‘달빛’을 찾았다. 느릿한 피아노가 편안하다. 왜 하필 그였을까. 얼마 전 만났던 친구가 떠올랐다. 공무원이다. 커리어에 비해 ‘벼슬’은 별로다. 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부처를 옮기다 보니, 승진이 늦었단다. 부처를 옮긴 게 실수였다고 했다. 팔자려니 받아들인다고 했다. 하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누군가가 “삶이 덧없는 꿈인데 좋은 자리를 누린들 얼마 동안이며,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거들었다.‘그래 맞다.’ 맞장구를 치다 졸음에서 깨어났다. 드뷔시의 ‘달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디오의 턴테이블에선 지지직 잡음이 이어진다. 윤기없는 일상의 되돌이음처럼 들린다. 가까이서 들어도 아득하고 아득한 데서 들어도 가까운 것 같다. 자갈밭의 수레소리 같은 환청이 귓가를 맴돈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관심과 격려/오풍연 논설위원

    최근 필자의 글을 기다린다는 독자에게서 메일을 받았다.“위원님의 글에는 한조각 뜻이 있고 꿋꿋한 멋이 있어 즐겨 읽고 있습니다.”라고 먼저 치켜세웠다. 이어 “워크숍 자료를 보내오니 이 세상의 비극적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주시면 기쁘겠다.”고 맺었다. 일단 격려를 받고 보니 자료에도 관심이 갔다. 그래서 꼼꼼히 읽어 보았다. 청소년 문제에 관한 자료였다. 주제 발표자와 토론자는 조금 생소했다. 하지만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남몰래 애쓰는 모습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가정이 위기에 봉착해 있다. 젊은이들은 인생을 포기하거나 체념에 이르기도 한다. 가정은 이들을 올곧게 자랄 수 있도록 만드는 토양이다. 가정이 파괴돼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러한 관심사에 대해 조목조목 짚고 토론을 했으니 관심을 끌 수밖에…. 관심과 격려는 청소년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메시지다. 그로 인해 새 출발을 다짐하게 할 수도 있다. 주변에 홀대받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하도록 노력하자. 오풍연 논설위원
  • [길섶에서] 반나절의 재회/우득정 논설위원

    새벽부터 재촉하더니 차안에서도 아내는 줄곧 성화다. 속도 위반으로 한번 찍힌 것 같다고 해도 계속 밟으란다.3시간가량 지나자 황량한 산길이다. 민가도 드물다. 집 주변에서는 벌써 자취를 감춘 진달래가 이곳 산자락에서는 한창이다. 살벌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간판. 얼마 후 아들이 있다는 군부대다. 산비탈에 웅크린 시멘트 막사가 30년 전 모습 그대로다. “형이다.” 꼬마녀석이 소리친다.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이 조금은 낯익다. 두달 전 훈련소에서 손을 흔들며 짓던 그 웃음 그대로다. 얼굴에 약간 살이 올랐다. 읍내로 향하는 차안에서 아들은 군대 얘기를 늘어놓기 바쁘다. 아내는 용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마냥 맞장구친다. 식사를 마친 우리 가족은 읍내의 유일한 목욕탕으로 향했다. 아들은 돌침상에 누워 곯아떨어진다. 허벅지가 많이 굵어진 것 같다. 얼굴이 편안한 걸 보니 좋은 꿈을 꾸나 보다.“아빠,2년인데 뭔들 못 하겠어.”산골 어둠 사이로 서로 손을 흔들며 반나절의 재회는 끝났다. 우득정 논설위원
  • [길섶에서] 어머니의 자장면/오풍연 논설위원

    어머님이 매우 편찮으시다. 지난해 8월부터 병마와 싸우고 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는 내색을 안 하신다. 지방에 계셔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한다. 고작 하루 한두차례 전화를 하는 것으로 불효를 대신한다. 그때마다 어머님은 “괜찮으니까 너희들이나 아프지 말아라.”라고 먼저 자식 걱정을 한다.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어머님을 뵙고 왔다. 집으로 가지 않고 식당에서 만났다. 나오시기 싫다는 것을 억지로 모셨다. 서울에서 내려가기 전 식구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어머님께 자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드리고 싶다고 졸라댔다. 쉰이 다된 자식의 소원을 들어준 셈이다. 모시고 살지 않는 탓에 지금까지 한 번도 어머님과 외식을 하지 못했다.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어머님께서는 맛있게 드시는 양 했다. 그러나 음식은 비워지지 않았다. 더욱 수척해진 모습에 마음이 저려왔다. 누군가 ‘7788’이라고 했다. 일흔일곱까지 팔팔하게 살다 가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그때까지만이라도 제발 살아계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4월 강남/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봄꽃이 다퉈 제 몸을 터뜨린다. 출근길 노란 산수유가 창백하다. 지금쯤 고향엔 찔레꽃향이 지천일까. 최창일 시인을 떠올린다.“옛 친구를 만난 다음 날/새벽 산책길 활짝 핀 하얀 찔레꽃 보았네/…눈부신 하얀 얼굴 그대 미소가/내 어린시절 말하네” 가곡 ‘하얀 찔레꽃’은 그의 노래말이다. 그는 찔레꽃을 보면 고향 꿈이 생각난다 했다. 개 짖는 소리, 시누대(해장죽) 바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풋호박 된장국 냄새가 난단다. 서울 강남은 지금 시향(詩香)이 넘친다. 강남구청(구청장 맹정주) 주관의 ‘시의 달’ 행사가 봄꽃만큼 화사하다. 전광판, 지하철역, 버스정류장·백화점 주변 등엔 익숙한 시들이 흐드러졌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와 사랑을 낳는다고 했다. 나는 4월 강남의 공기에서 시에 실린 고향향기를 맡는다.‘시인과의 거리 데이트’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듯싶다. 다시 흘러가는 밤이다.“저 달의 한자리를 터서/당신의 손을 붙잡고 들어서고 싶습니다” 장성남 시인의 추억이 서럽다. 이쿠코 가와이의 바이올린 ‘코발트 문’을 듣고 싶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봄세상/최종찬 국제부차장

    사월 초순의 고덕산은 온통 봄세상이었다. 노란옷을 입은 개나리와 분홍옷을 입은 진달래가 새색시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흰옷을 입은 벚꽃은 눈부신 자태로 환상의 세계를 찍어냈다. 보라색옷을 입은 제비꽃은 해탈을 화두로 춘안거에 들어간 듯 가냘픈 몸을 잔뜩 웅크렸다. 나무와 들풀들이 저마다의 봄옷을 입고 고운 때깔을 자랑하고 있는 파노라마가 둘째아들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반짝거렸다. 자연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낙엽들은 마를 대로 말라버려 보기만 해도 형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낙엽들을 피해 나무계단을 밟고 오르는데 까치 두 마리가 한데 엉켰다 떨어졌다 하면서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날갯짓과 높은 톤의 목소리로 볼 때 짝짓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정상에도 봄이 무르익었다. 여름 기운마저 머금은 햇살이 이마에 땀방울을 선사했다. 사람들은 운동기구와 씨름하며 건강의 나이테를 만들고 있었다. 약동하는 봄기운에 빠져드니 10년은 젊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최종찬 국제부차장
  • [길섶에서] 인생의 계단/ 구본영 논설위원

    지난 주말 저녁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과 만났다. 졸업후 첫 반창회였다. 강산이 몇번이나 바뀔 만한 세월이 흐른 뒤의 만남이었던 만큼 친구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다채로웠다. 개중엔 사업에 성공해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씩씩하게 화물 트럭을 모는 여자 친구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물론 ‘잘 나가는’ 이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위암으로 투병 중인 한 친구의 근황이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남편과 사별하고 뒤늦게 목회자가 된 여자 동기생의 소식도 들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당연할 법한데도 깜빡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돈이 있든 없든, 지위가 높든 낮든 모두들 살면서 이런저런 근심거리를 안게 된다는 것을. 저마다 만만찮은 세파를 헤치며 사는 모습을 보며 “삶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던 철학자 칼 포퍼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포퍼의 명언보다 갖은 고생 끝에 중소기업을 일으킨 친구의 말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인생의 계단은 하나씩 올라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더라.”는 체험 어린 토로였기에…. 구본영 논설위원
  • [길섶에서] 세상 담는 그릇/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봄볕에 끌렸다. 새문안길을 걷는다. 시간은 저만치 물러서 있다. 잠시 공간감마저 잊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가로막는다. 걸개 포스터가 너풀댄다. 바랑을 둘러멘 동자승 표정이 성속의 경계다.‘세상을 담는 그릇, 발우전’ 승물(僧物)중 왜 하필 밥그릇 전시회일까. 하기야 구름처럼, 물처럼 떠도는 운수납자(雲水衲子)에게 몸 가릴 장삼과 발우외에 더 보탤 게 있을까. 소욕지족(少慾知足), 적은 데서 만족을 얻는다는데…. 검박한 고승들의 그림자가 발우에 묻어 있다. 소재도 다양하다. 달라이라마의 철발우가 유난히 커 보인다. 티베트 사람들의 고통이 넘치는 것 같아, 아프다. 경허와 제자 만공스님 일화에 눈길이 간다. 함께 탁발에 나섰던 경허가 물었다.“바랑이 무겁지, 내가 가볍게 해줄까.”앞섰던 경허는 물동이를 인 아낙에게 갑자기 입맞춤을 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둘은 줄행랑을 쳤다. 한참 뒤 경허는 “만공아! 바랑의 무게를 느꼈느냐.”세상사 마음이 출발이란다. 발우는 됨됨이의 또 다른 모습이다. 나의 발우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몸짱/오풍연 논설위원

    지난해 3월 중순 무렵의 일이다. 토·일 쉬고 월요일 출근해 메일을 열어 보았다. 스팸메일이 많다 보니 대충 훑어보고 지우곤 한다. 그런데 ‘몸짱’이라고 보낸 이가 눈에 확 들어왔다. 보통 때 같으면 음란메일로 생각하고 지웠을 것이다. 연(緣)이 닿으려고 그랬는지 몰라도 손이 그곳으로 옮겨 갔다. 더욱 놀란 것은 그 다음이다. 대학시절 여자 동기생으로부터 날아온 메일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필자 이름을 발견했단다. 보낸 시간을 살펴보니 토요일 밤 11시가 다 되었다. 비도 축축이 내리던 밤으로 기억된다.“잘 살고 있지? 너도 많이 변했겠지? 나도 완전 할매 다 됐단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도 집이나 휴대전화 번호는 없었다. 무조건 답장을 보냈다.“바보같은 친구야, 연락처를 알려 줘야지.” 며칠이 지나 연락이 왔다.20여년 전 목소리 그대로였다. 학교 다닐 때부터 키가 커 ‘몸짱’으로 통했다. 얼마 뒤 만났다.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친구의 가정도 넉넉함이 느껴졌다.1남 2녀의 엄마로, 착한 아내로서 친구의 행복을 빈다. 오풍연 논설위원
  • [길섶에서] 실연의 상처/ 함혜리 논설위원

    하루 휴가를 내어 지인들과 대둔산에 다녀왔다. 이른 아침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만나 함께 출발했다. 일행 중의 한명이 차창 밖을 보다 쯧쯧 혀를 찼다. 눈길 간 곳을 바라보니 훤칠한 키의 젊은 여성이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얼굴이 희고, 눈이 큰데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모습이 도회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출근길에 있는 전문직 여성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실상은 영 딴판이었다. 몇해 전 실연을 당한 뒤 그 충격으로 정신이 좀 이상해졌는데 하루종일 사방을 걸어 다닌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얼마나 강렬한 사랑이었기에 저토록 깊은 상처를 받은 걸까. 그깟 사랑이 뭐라고 정신까지 놓아버렸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젊은 나이에 저 지경이 된 그녀가 측은했다. 지나친 사랑은 독이 된다는 말이 실감났다. 드라마틱하고 격정적인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 언제나 아쉬웠다. 그러나 저렇게 상처만 남기는 사랑이라면 하고 싶지 않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세상은 만판 봄/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며칠 전 친구가 고향소식을 전했다. 경주 남산의 삼릉골 소로는 벚꽃 터널이란다. 지난해 남산자락 용장사터를 찾았던 기억이 새롭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썼다는 곳이다.‘가없는 땅덩이에 이 한 몸 붙였더니…/가슴가득 예악(禮樂)쌓이고/세상은 만판 봄이로구나.’ 천하 주유하던 무봉(無縫)의 심상이 벅차게 전해온다. 매월당은 앉은 자리서 수십 수의 시를 나뭇잎에 써, 강물 혹은 바람에 띄우고, 날렸단다. 그에겐 자연이 시였고, 시가 자연이었다. 얼마 전 한 교수가 평론집을 냈다. 매월당을 강력한 지적욕구의 천재적 우울증 환자였다고 했다. 조카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 대한 불만보다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상받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단다. 하기야 후대 잣대로 재단받는 인물이 매월당뿐일까. 어쨌든 이문구의 소설 속 이 구절만큼 매월당 삶을 더 적확하게 축약할 수 있을까.“그나마 그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고 다독거려 주는 것은, 집도 아니고 절도 아니고, 길이고 광기고 글이었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사추기(思秋期)/ 구본영 논설위원

    한 유명 여배우의 20년만의 복귀를 다룬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눈에 확띄는 단어를 만났다.‘사추기(思秋期)’란 표현이었다. 연예계 컴백을 꺼리는 남편을 그녀는 “사추기 여자의 심정을 아느냐.”면서 “일을 통해 ‘나’를 찾고 싶다.”고 설득했단다. 사추기는 요즘 절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낱말이다. 벌써 진달래가 망울을 터뜨린 새 봄에 설렘이나 청춘, 혹은 사춘기(思春期)와 같은 단어라면 또 모르겠지만. 인생 후반전을 향한, 엇비슷한 연배의 심경 토로여서 더 절실하게 와닿았던 듯하다. 특히 “이젠 꼭 주연이 아니더라도 좋은 조연도 좋다.”는 그녀의 말도 진솔하게 들렸다. 그렇다. 꿈과 희망이 어디 청소년들의 전유물이겠는가. 연령이야 사추기일지라도 새것에 대한 열정만 잃지 않는다면 정신적으론 사춘기나 다를 바 없을 게다. 다만 삶이 고단할수록 허황된 미래만 그리기보다는 현재에도 충실해야 하지 않겠는가. 로맹 롤랑이 그랬던가.“성공한 사람이란 할 수 없는 일만 바라는 게 아니라 잘할 수 있는 일을 제때에 한 사람”이라고. 구본영 논설위원
  • [길섶에서] 묵은 청첩장/이용원 수석논설위원

    물건을 잘 정리하지 않는 악습이 있어 사무실 책상에는 신문을 비롯한 잡다한 물건이 늘 쌓여 있다. 어제 저녁 큰 맘 먹고 책상을 정리하는데 신문더미 속에서 청첩장이 한장 툭 떨어졌다. 아뿔싸! 10여년 전 퇴사한 선배가 큰애를 여의는 혼사였다. 그러잖아도 그 선배가 딸을 치웠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왜 내게는 청첩을 하지 않았을까 은근히 섭섭하던 차였다. 한편으로는 그 양반에게 내가 실수라도 해서 그런가 걱정도 했다. 그랬는데 청첩장을 챙기지 못해 생긴 일이라니, 다음에 그 선배를 어이 볼꼬 싶었다. 며칠 뒤면 역시 딸을 시집보내는 다른 퇴직 선배가 청첩 범위를 상의해 왔다. 무조건 두루두루 보내시라고, 청첩장이란 게 부담도 되지만 받지 못하면 섭섭하기도 한 물건이라고 권했지만 그 선배는 “회사 떠난 지 오랜데 후배들에게 부담 주기 싫다.”며 고개를 갸웃갸웃하셨다. 바야흐로 청첩의 계절이다. 청첩도 안부의 일종이니, 편지처럼 부담없이 주고받는 건 어떨까. 부조는 못하더라도 소식은 알게끔 말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길섶에서] 야박한 세태/ 오풍연 논설위원

    살다 보면 나쁜 일을 많이 겪게 된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사다. 그래도 삶 자체엔 의미가 있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남의 얘기를 포장해 전하는 이가 적지 않다. 물론 사실관계를 정확히 모르고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당사자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당해 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 한동안 두통으로 고생을 했다. 내로라하는 병원·한의원을 다 찾아다녔어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다.‘스트레스’가 원인이란다. 하긴 명의인들 검사결과 이상이 없다면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다른 회사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다. 한 친구가 대뜸 “중병에 걸렸다며…”라고 애처로워했다.“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필자의 회사 식구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말이 와전됐으리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서운한 감정은 숨길 수 없었다. 말이란 그렇다.‘어’다르고,‘아’다르다고 했다. 요즘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닮은꼴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쉬운 때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0시의 이별

    저녁 어스름 퇴근길에 흔히 오가는 얘기가 있다.“출출하지 않아?”라고 운을 떼면 ”그래, 그냥 갈 수는 없잖아.”라고 맞장구친다. 언제나 “딱 밥만 먹고 가자.”로 시작되지만 자연스레 술자리로 바뀐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다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흘낏흘낏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지만 약속한 시간은 무너져내리기 십상이다. 집단적으로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가게 된다. ‘버스, 지하철 타고 들어가기’란 약속이 가장 많은 듯하다.‘열시 반 이후 새 이닝 안 들어가기’란 약속도 있다. 그러나 이는 시간을 늘리려고 어느 술꾼이 짜낸 잔꾀가 아닌가 싶다. 야구 용어에서 따왔는데, 술판 차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다짐일 뿐 실제론 시간제한이 없어서다.한 선배는 술자리 끝에 노래방엘 가면 꼭 ‘0시의 이별’을 목청껏 뽑는다. 집단최면에 당했지만 그제라도 귀가를 선언하는 셈이다. 노래에 얽힌 사연 또한 기막히다. 연인끼리 헤어지는 슬픔이 그득한데, 옛날 정권은 ‘통금’에 반대한 것이라며 금지곡으로 묶었다고 한다.송한수 국제부 차장 onekor@seoul.co.kr
  • [길섶에서] 꿈과 현실 사이/함혜리 논설위원

    가방을 잃어버렸다. 공연인지, 전시인지를 보러 갔다가 잠시 가방을 바닥에 놓고 딴청을 부렸는데 그만 누군가 가져 가 버렸다. 투명한 비닐 가방이었는데 그 속에는 지갑, 신용카드, 여권, 수첩 등 귀중한 것이 모두 다 들어있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일이 벌어진 것은 꿈 속이었으니까. 꿈속에서 나는 “천만 다행이다. 현실이었다면 얼마나 골치 아팠을까.”하면서 이 얘기를 ‘길섶에서’에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이렇게 글의 소재가 떠올랐다가도 잊어먹고 넘어간 게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절대 잊지 말아야지.”몇번을 다짐하고 있는데 ‘삑삑!’ 알람이 울렸다. 그렇지만 또다시 꿈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글을 엮어나갈지를 고민하며 낑낑댔다.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다.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흘러가 있었다. 허겁지겁 일어나 대충 준비를 하고 출근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꿈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남자의 눈물/오풍연 논설위원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엔 사정이 달라진 느낌이다. 텔레비전을 틀면 남자들이 눈물 흘리는 것을 곧잘 본다. 오히려 여자보다 더 실감나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눈시울을 붉히곤 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 얼마 전 동료들이 송별연을 해 주었다.“엄동을 뚫고 새 봄이 왔습니다. 하시는 일마다 희망과 기쁨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감사패를 받으며 가슴이 뭉클했다. 주는 동료도 손을 떨었다. 술잔이 돌기 시작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그러던 중 순간적으로 침묵이 흘렀다. 한 동료가 술잔을 든 채 눈물을 흘렸다. 연기가 아니어서 모두들 놀랐다. 눈물로 석별의 정을 나누는 그가 더없이 고마웠다. 남자는 태어날 때 한 번, 부모님을 여의었을 때 두 번째 울어야 된다고 배웠다. 이도 옛말이 된 듯하다. 우는 남자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남자의 눈물은 아껴야 한다. 그래도 진정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경우라면 어찌할 수 없지 않겠는가.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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