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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202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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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실패의 교훈/ 구본영 논설위원

    “이제야 인생을 알게 됐다.”선거에 출마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한 선배의 변이다. 정무직인 장·차관만 빼놓고 여러 고위급 보직을 섭렵하는 등 순탄하기만 한 공직생활을 한 그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퍽 달라져 보였다. 항상 진지하고 모범생 분위기만 풍기던 그가 이젠 실없는 농담도 곧잘 던졌다. 일생일대의 좌절을 맛보았는데도 종전보다 더 낙천적으로 바뀐 그를 보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문은 금방 풀렸다. 그 스스로 “선거에 진후 한때 절망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실패한다고 해서 사람이 아주 죽으란 법은 없다는 요지였다. 선거의 패인도 자신의 오만에서 찾는다고 했을 때 그 말의 진정성도 느껴졌다. 그렇다.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절망의 심연에서도 희망의 샘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법이다. 염세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조차도 “강을 거슬러 좌절을 경험한 사람만이 자신만의 역사를 갖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아내/오풍연 논설위원

    천년 전 영국에서는 아내를 ‘피스 위버(Peace-weaver)라고 불렀다. 평화를 짜 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에서다. 아내의 역할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 1인3역을 한다. 그럼에도 우리네 대부분은 그것을 모르고 산다.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더 많다. 여러 사람 앞에서 면박을 주는 이들도 더러 본다. 아주 못난 사람들이다. 친구 부부와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다시 태어나도 지금 남편과 결혼할 것인가.”라는 우문을 던졌다. 친구 부인은 단박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필자 아내는 조금 뜸을 들인 뒤 “아니오.”라며 눈을 흘겼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랄까. 집에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실제로 잘해 준 것이 없었다. 지금껏 변변한 선물 하나 챙겨주지 못했다. 물론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아내의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후부턴 아내의 요구에 토를 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사랑도 실천에 달렸다. 오풍연 논설위원
  • [길섶에서] 사람의 향기 / 노주석 논설위원

    인사동을 지나다 우연히 백단향 한통을 구입했다. 제사 때 피우는 일주향(一炷香)밖에 모르던 문외한이 향을 알게 된 것이다. 가족들이 타박했지만 향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여름철엔 시골 뒷마당에서 태우던 짚불처럼 모기, 파리를 쫓아주니 ‘아로마 테라피’가 따로 없다. 용연향(龍涎香), 사향(麝香), 침향(沈香)을 3대 향으로 꼽는다. 팥꽃나뭇과의 상록교목을 벌채해 땅 속에 묻어서 썩인 다음 흘러나온 수지(樹脂)를 수집하여 만드는 침향이나 사향노루 수놈의 샘에서 분비되는 사향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져 있다. 용연향은 향유고래가 즐겨먹는 대왕오징어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해낸 소화분비물. 용연이란 말 그대로 ‘용이 흘린 침’. 귀하고 비싸다. 주위에 번지르르한 얼굴과 말로 우리를 현혹시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도종환시인이 빗댔다. 향유고래나 사향노루, 팥꽃나무 모두 향기나는 음식을 먹어서 향을 내는 것은 아니며 그들은 그저 바닷물과 풀과 햇빛을 먹었을 뿐이라고. 사람의 향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환등기/임태순 논설위원

    소설을 읽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한승원은 최근 펴낸 소설 ‘다산’에서 정조 사후 그가 총애하던 신하들이 당파 싸움에 희생돼 모두 제거되는 것을 ‘환등기’란 단어를 사용해 묘사했다.“요술을 부리던 환등기가 깨지고 그 속의 불이 꺼지자 환영들처럼 정조의 시대에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 그래, 어린 시절 환등기란 게 있었지.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시청각 수업시간이 되면 후미진 곳에 있는 시청각 교실로 이동했다. 커튼을 치고 환등기를 통해 본 선진국의 도회지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몇년 뒤 겨울방학에는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형이 사온 환등기를 수건 등으로 창문을 가린 뒤 동네친구들과 보기도 했다. 물론 수건을 걷으면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햇빛에 눈이 부셨다. 컴퓨터에 열중하는 딸아이에게 환등기를 아느냐고 물어보니 그게 뭐냐는 답이 돌아온다. 우리에게 다가왔다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어디 환등기뿐이겠는가.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이상한 열매/최태환 논설실장

    점심때다. 파스타집을 들렀다. 빌리할러데이의 노래가 흘러나온다.‘이상한 열매’(strange fruit)다.‘남부의 나무엔 이상한 열매가 열린다/…남부의 따뜻한 산들바람에/검은 몸뚱이들이 매달린 채 흔들린다/포플러나무에 매달려 있는 이상한 열매들’세상서 가장 슬픈 노래를 불렀다는 빌리할러데이다. 치자꽃을 머리에 꽂았던, 재즈의 전설이었다. 검붉은 그녀 목소리엔 인종·흑백 차별에 대한 저항의 절규가 녹아 있다. 출근길 풍경이 떠오른다. 청계천 부근 가로다. 흑백사진의 액자들이 전시돼 있다. 한국전쟁의 모습들이다. 피란행렬, 폭격 맞은 시가지, 유엔군의 도강 모습 등이 담겼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등장했다. 보수단체에서 내다 놓은 것일까. 이따금 액자들이 쓰러져 있다. 지나치기가 불편한 사람의 짓일까. 1950년대를 풍미했던 빌리할러데이다.50여년이 지난 2008년 서울 광화문에서 ‘이상한 열매’가 열리고 있다. 갈등과 불신의 흉물스러운 열매다. 오늘도 저녁 무렵이면 전경 버스들이 광화문 주변을 에워쌀까.7월의 폭염이 서늘하다. 최태환 논설실장
  • [길섶에서] 108배/노주석 논설위원

    사람의 눈, 코, 귀, 혀, 몸, 마음 등 6관(六官)을 통해 일어나는 번뇌가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平等) 3가지 작용을 거치면 18가지의 번뇌가 된다. 탐(貪)과 불탐(不貪) 2가지가 있기에 36가지가 되고 이것을 전생과 금생, 내생 등 3가지 세상에서 겪게 되므로 모두 108가지가 된다고 한다. 불교에서 108배를 올리는 까닭은 이 같은 108가지 번뇌를 씻기 위함이다. 108배를 하는 모임이 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절집 분위기를 좋아하는 터라 의기투합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조계사나 법련사, 봉원사, 부암동 불국사 같은 시내 사찰을 찾는다. 필자는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터라 108배가 끝난 뒤 부근 맛집에서 갖는 점심시간을 더 기다리는 편이다. 절하는 숫자에 얽매이지 않는다.100번을 하기도 하고 30번만 하기도 한다. 절하는 자세도 오체투지(五體投地)는 하되 체조하듯 한다. 종교의식이 아니라 온몸운동으로 생각한다. 절은 마음 비우기다. 몸과 마음을 낮추고, 굽히고, 엎드리는 자체가 좋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형님과 아우/오풍연 논설위원

    우리 말은 참 정겹다. 형님과 아우도 그중 하나다. 우선 어감부터 다정하게 다가온다. 왠지 남 같지가 않다. 비록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형제 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필자는 형님이 많은 편이다. 친한 경우 스무살 차이까지는 그렇게 호칭한다. 그들도 함께 늙어간다며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마워한다. 젊은 사람의 기를 받을 수 있어 좋단다. 형님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까. 남자끼리 만나서는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가족, 적어도 부부가 만남을 이어가야 맥이 끊기지 않는다. 집안 방문도 필수적이다. 밖에서 아무리 자주 만나도 집을 한 번 방문하는 것만 못하다. 사는 모습을 봐야 서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대한민국에 형님 아우가 5000명에 이른다고 자랑한다. 진정한 관계는 아닐 듯싶다. 올 들어 아우가 처음 생겼다. 매주 금요일이면 영락없이 안부전화나 메시지가 온다. 월요일 확인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형님, 주말 연휴 잘 보내셨어요.” 형님과 아우가 있기에 삶이 즐겁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모기장/오승호 논설위원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지난 14일 밤엔 올여름 들어 서울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밤 기온이 25도 이상을 유지했다는 얘기다. 열대야 극복 방법을 동원해 본다.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한다. 저녁 식사 후 1시간가량 걷기를 하며 땀도 뺀다. 잠을 설치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여름철에 불청객은 또 있다. 모기다. 서울 대도심 아파트 단지도 예외는 아니다. 집이 산 가까이 있으면 더 극성을 부린다. 방충망이 설치돼 있어도 소용이 없다. 모기는 종류도 많다. 전세계에 3500종, 우리나라에는 56종이 있단다. 모기향을 피워 보지만 역부족이다. 여러 차례 물리곤 한다. 호흡량이 많거나 몸에 열이 많은 사람, 술을 많이 마시면 모기에 잘 물린다고 하던가. 지난 주말 베란다 정리를 하다 사각형의 실내 모기장 두 장을 발견했다. 언제 샀는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정겹다. 어렸을 땐 여름철 필수품이 아니던가. 올여름 모기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장비이리라.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길섶에서] 능소화/김인철 논설위원

    봄날 동백이 눈물처럼 후두둑 지듯 한여름 능소화가 싱싱한 채로 통꽃 그대로 뚝 떨어진다. 황홀하지만 헤프고 천박한 꽃이라는 혹평도 뒤따르지만, 능소화는 옛날 상민이 집에 심으면 관가에서 잡아다 곤장을 쳤다는 일설이 전해지는, 이른바 ‘양반꽃’이었다. 호암 문일평은 1930년대 펴낸 화하만필에서 ‘서울에 이상한 식물이 있는데 나무는 백송(白松)이요, 꽃은 능소화(凌花)다. 능소화는 중국이 원산으로 수백년 전 연경에 갔던 사신이 들여왔다. 오늘 날 선조의 아버지 덕흥군의 사당이 있는 사직동 도장궁에 유일하게 있다.’고 썼을 정도다. 고 박경리 선생은 소설 토지에서 ‘미색인가 하면 연분홍 빛깔로도 보이는’ 능소화를 최참판댁의 상징으로 종종 등장시켰다.“환이 눈앞에 별안간 능소화 꽃이 떠오른다. 능소화가 피어 있는 최참판댁 담장이 떠오른다.” 출근길 ‘한남대교 오거리’ 시내버스정거장 옆 담장을 타고 올라 한창 꽃을 피우는 능소화를 본다. 능소화의 해금을, 양반꽃의 대중화를 생각한다. 김인철 논설위원
  • [길섶에서] 베푸는 기쁨/ 구본영 논설위원

    시골 초등학교 동기생인 A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암 치료를 받고 있는 다른 동기생 B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용건을 밝혔다. 집안 사정도 딱한 친구이니, 십시일반으로 돕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동참을 권유했다. 자영업을 하는 A도 나라 전체의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는 요즘 가게 형편이 그리 좋지 않다는 소문을 들은 터였다. 그런데도 전화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쳐났다. 그래서 요즘 사업이 잘 되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중병을 앓고 있는 옛 친구를 돕기 위해 벌써 친구들 여럿이 모금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제서야 그의 목소리가 활기를 띠고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유대인의 생활의 지혜를 담은 경구가 생각난 까닭이다. 즉,“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뿌릴 때에 자신에게도 몇 방울 정도는 묻기 때문이다.”는 탈무드의 한 구절이 떠오른 것이다. 병을 앓고 있는 친구가 쾌유하길 기원한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마처세대/노주석 논설위원

    친구들과의 저녁 모임에서 한 친구가 ‘마처세대’의 행동요령과 노후준비에 대해 들려주었다. 설명인즉슨 1950∼60년대에 태어난 우리 연배는 시대적으로 부모를 마지막으로 봉양하지만 처음으로 자식들에게 봉양을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게 된다는 얘기였다. 돌아가는 사정을 생각하면 그럴싸했다. 역사를 보면 전환시대가 아닌 시대가 없었지만 이제 우리도 할리우드영화에서 보았듯이 노인시설에 들어가 가끔씩 찾아오는 자녀를 맞이하거나 자식의 도움 없이 따로 살 길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은퇴(retire)란 영어단어는 타이어(tire)를 다시(re) 갈아끼우고 새출발한다는 뜻이 아니던가. 친구가 들려주는 처세법의 첫머리는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용돈을 줄 것, 자녀교육과 혼사에 재산을 올인하지 말 것, 제2의 직업을 찾을 것, 배우자나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가질 것 등등이었다. 병이나 사고만 없다면 90살이 아니라 100살까지도 살 수 있는 좋은 세월이지만, 믿을 것은 자신뿐인 딱한 세상이 돼 간다. 글쎄 이게 아닌데….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소통/노주석 논설위원

    그분의 육필 원고를 받아든 순간 코끝이 찡했다. 눈에 익은 필체에서 넉넉한 마음 씀씀이와 감칠맛나는 글솜씨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시계추가 그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쓰다만 원고지를 구기고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기를 얼마나 반복했던가. 나름 깔끔하게 정리해 넘긴 원고지가 그분의 펜을 거쳐 편집자에게 넘겨질 때 나는 보았다. 몇 글자 살아 남지 못한 의식의 처참한 잔해를. 소통이 화두다. 신참 외신기자가 브리핑장에서 노트북 컴퓨터에 당국자의 발언 내용을 척척 받아 적는 한국 기자들을 속기사로 오해했단다. 누구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휴대전화 문자판을 누르고, 사진을 찍는다.‘1인 미디어’시대라 할 만하다. 불통의 불화가 온 나라를 촛불의 그늘에 가둬 버린 까닭은 무엇일까. 그분의 원고엔 ‘소통’이라는 글자가 없어도 문자향은 마음을 넘나든다. 자판에 ‘소통’이라고 쳐보지만 메아리가 없다. 공허하기만 하다. 원고지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는 시대 부적응자의 헛된 상념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인연/오풍연 논설위원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모든 게 소중하다는 뜻일 게다. 따라서 매사를 가벼히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인가. 보통은 잊고들 산다. 그러다 보니 정도 메말라 간다.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네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주말 연휴를 보내고 평소 습관처럼 이메일을 검색한다. 어렴풋이 알 것도 같은 이름을 발견했다. 그래서 메일을 열어 보았다. 몇년 전 필자에게 글을 보냈던 분이었다. 고마움이 앞섰다. 논설실을 떠났다가 20여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기에 더 반가웠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기자의 신상을 대략 알고 있었다. 충청도 어딘가에서 났고, 대전에 연고가 있고,70년대 학번까지 알아 맞혔다. 마치 지인을 대하듯 친근감이 생겼음은 물론이다. 마무리 말은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요즘처럼 하루하루가 답답한 시간에 서울신문 논설위원님들의 글을 읽고 위안삼습니다.” 그렇다.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자. 거기에는 꿈과 희망이 있다. 인연도 많을 수록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물안개/ 박재범 수석논설위원

    해거름 무렵이다. 물안개가 한층 짙어졌다. 섬 뒤편에 우뚝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희뿌옇게 사라졌다.“보세요. 산이 조금 전에는 셋이었는데, 지금은 하나죠?” 삼라만상이 고요했다. 수묵화의 세계이다. 아늑했다. 태아처럼 편안했다. 사람들 악다구니와 자동차 엔진음은 끊어졌다. 바람에 휩쓸린 나뭇잎이 부딪히며 바스락댔다. 고요함은 단순함으로 이어졌고, 그 다음엔 순수함이 찾아왔다. 메말랐던 가슴에도 물안개가 포근하게 피어올랐다. 60년 인생길을 걸은 끝에 경기도 가평 남이섬 옆 이화리에 정착한 그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이제서야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지향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순에 꿈을 꾸는 사람을 뒤로하고 이화리를 떠났다. 서울 길은 소란스러움과 복잡함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헤어지기 직전 “우리 모두 손님”이라던 그의 말 뜻은 아리송했다. 다만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라는 언급만은 화두로 간직하려 애를 썼다. 박재범 수석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뚜벅이/노주석 논설위원

    걸어서 회사로 출근한 지 백일이 가까워 온다. 청계천 바람길을 따라 한시간 거리를 매번 거뜬히 걷는다. 간혹 동행자들이 “기차발통을 삶아먹었냐.”고 구시렁댈 만큼 걸음이 빨라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얼굴과 몸매가 좋아졌다고 덕담한다. 모두 걷기가 준 귀한 선물이다. 달리기가 중독성이 강하다고들 하지만 걷기도 중독성이 만만찮은 것 같다. 퇴근길도 예사로 걷는다. 유행하는 CM송 가락처럼 ‘약속이 없으면, 그냥 걷기 시작하고, 좀 걷다 보면 집에 도착하고’이다. 하루 만보 걷기는 만병통치약이란 말이 실감난다. 버스삯으로 낱담배 세개비를 살 수 있었던 학창시절, 그때 세상에 걸어서 못 갈 곳은 없었다. 그 시절 뚜벅이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지식경제부 공무원들이 매월 넷째주 수요일 ‘BMW 출근’을 한다고 한다. 버스(Bus), 메트로(Metro), 걷기(Walking)로 출근한다는 얘기다.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걸을 만한 곳에서 시작해 목표까지 그냥 걸으면 된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장미꽃 100송이/임태순 논설위원

    제 자식 좋은 대학 보내는 것이 고3 수험생을 둔 부모의 마음일 텐데, 얼마 전 ‘삐딱한’ 어느 아빠는 이런 사연을 들려줬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니 부인이 커다란 꽃바구니에서 꽃을 빼내 화병에 꽂고 있더란다. 고3인 큰딸의 남자 친구가 장미 100송이를 학교로 보낸 것이었다. 덕분에 열여덟 생일을 맞은 딸은 입시 준비에 여념이 없는 친구들에게 잠시 놀림감이 됐다. 고3 수험생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딸아이가 가져온 장미꽃 다발을 보고 “너는 좋겠다.”라고 말하고는 꽃을 꽂는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단다. 큰딸은 공부는 그럭저럭 하지만 아무래도 일류대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단다. 그러나 부부는 큰딸이 한없이 좋다고 했다. 잘 웃고, 정직하고, 친구들과 있었던 일도 집에서 곧잘 떠들어서란다. 자식에 대한 욕심을 줄여보는 것도 각박한 세상살이에 건강한 가정을 꾸리는 데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건강한 자식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자식 복의 절반은 벌써 받은 셈이니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부음소동/오풍연 논설위원

    며칠 전 아침 지인이 다급한 전화를 걸어왔다.“형, 부음 봤어.○○선배 부친이 돌아가셨던데 발인이 오늘 오후 1시야. 시간 있으면 빈소에 같이 가자.”고 했다. 조간 신문을 훑어보니 선배의 이름이 나와 있었다. 아차 싶었다. 부음은 빠짐없이 챙기는 데 간과했던 것이다. 선배의 가족 사항은 대충 들어 알고 있었다. 미국에 사는 형제도 있고, 대학 교수가 있다는 얘기를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부음란에도 비슷한 사항이 실렸다. 확신이 들자 이곳저곳 전화를 걸었다. 모두들 모르고 있었다.“돌아가신 지 이틀이나 지났는데…”하면서 반신반의했다. 몇몇은 급히 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필자는 그들 편에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런데 30분도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형, 동명이인이야.”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그 선배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똑같은 전화를 여러차례 받았단다.“아버님이 오래 사실 것 같다.”고 덕담을 나눴다. 예로부터 슬픈 일은 함께 나누라고 했다. 디지털 시대에 문자메시지 하나면 족하다.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불거지/김인철 논설위원

    청계천에 물길이 다시 난 지 3년째. 생태계가 제법 살아나면서 천변에 절로 피어나는 꽃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 전 상단엔 인동이, 물가엔 창포가 한창 꽃을 피우더니 요즘엔 비비추, 개망초, 애기똥풀, 홑왕원추리, 미국쑥부쟁이 등이 물억새와 갯버들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돌아오는 길 흐르는 물 속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손톱만 한 송사리떼의 깜찍한 재롱이 귀엽고, 손바닥만 한 붕어떼의 생동감이 활기차다. 청계광장 앞 폭포가 떨어지며 물길이 시작되는 바닥을 살펴보다 깜짝 놀란다. 폭포를 타고 청계광장으로 날아오를 듯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피라미떼를 본다. 산란기를 맞아 온몸에 붉은 색이 감도는 불거지(피라미의 수컷)의 화려한 자태는 수십년전 고향 냇가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다. “죽은 물고기만이 강물을 따라 흘러간다.”던가. 여류작가가 수필집에서 인용해 유명해진 독일 시인의 말처럼, 무릇 살아있는 물고기들은 물살을 거스른다. 살아있는 시민들이, 깨어있는 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청와대로 행진하듯 말이다. 김인철 논설위원
  • [길섶에서] 꽃상여/오풍연 논설위원

    요즘은 상여(喪輿)를 보기 힘들다. 매장 문화가 줄어든 때문이다. 하지만 상여를 멜 사람이 없는 게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시골에서도 젊은이는 도회지로 떠나 상여꾼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60대 이상 노인들이 메야 하는데 다소 무리다. 어릴 적 초상이 나면 무서우면서도 구경을 나가곤 했다. 특히 상여꾼을 지휘하는 요령잡이의 선소리는 심금을 울렸다.“간다∼ 간다∼ 나는 간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라고 선창한다. 이에 상여꾼의 “어∼허” 소리와 상제들의 “애고” 곡소리가 뒤섞여 상여는 덩실덩실 춤을 춘다. 애간장을 우려낼 듯 청승맞고 애달프기까지 했다.“꽃상여에 실려가다/흰 두건을 쓴 사람들이 꽃상여를 메고 간다/그들도 웅보가 양반들처럼 만장 휘날리며 꽃상여 타고 저승길 떠나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투병중인 어머니께서 꽃상여를 타고 갈 수 있다며 좋아한다. 고향 어른들이 자청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마을 사람들이 고맙다. 그래서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라고 했던가.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경적/노주석 논설위원

    대한민국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인격유지가 안 된다. 어떤 점잖은 기업인은 자동차 안에다가 1번부터 4번까지 번호를 매긴 욕설용 메모를 붙여놓고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이런 1번 같은 XX”라고 욕을 내뱉는다고 한다. 이 분의 욕 가운데 가장 수위가 높은 1번은 신호가 바뀔 때 뒤에서 “빵”하고 경적을 울리는 경우다. 대개 영업용 택시와 버스는 1∼2초, 개인택시는 2∼3초, 일반 승용차는 3∼5초쯤 뒤면 여지없이 울린단다. 경적(警笛)이란 말 그대로 경고의 피리소리다. 실제 그렇게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남발하는 때가 더 많다.“빵”하고 한번 울리면 “도대체 뭐하니?”,“빵빵”하고 두 번 울리면 “정신차려 이사람아”,“빵-”하고 이어지면 “한번 맞아볼래”란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필자는 오래전부터 경적 울리지 않기를 습관화하고 있다. 지나친 경적울리기는 자신에겐 스트레스의 발산이지만 상대방에겐 소음공해이다. 단 1초도 참지 못하는 조급함이자 빨리빨리병이다.“빵”소리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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