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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청계천의 가을/김인철 논설위원

    청계천도 어느 덧 가을이다. 먼저 결초보은(結草報恩)의 풀 수크령이 보행로 가장자리에 길게 늘어서서 하늘하늘 흑자색 털을 나부끼며 가을 햇살에 부서진다. 강아지풀보다 키가 크고, 줄기와 잎이 억센 게 한 움큼씩 잡아 매면 과연 달리는 말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릴 듯 당당하다. 천변 상단에는 가을의 전령 구절초가 하나둘 순백의 꽃망울을 터트리며 자신의 진가를 알아줄 이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다. 갯버들 사이사이 좀작살나무 열매들이 자주색으로 변해가고, 귀를 쫑긋 세운 닭의장풀이 천연 남색의 강렬한 색상을 뽐낸다. 여뀌도 붉은 색 이삭형 꽃들을 세상 밖으로 내민다. 여름 내 물가를 지키던 부처꽃과 꼬리풀, 옥잠화가 지는 자리에는 벌개미취, 고마리, 흰범의꼬리, 꽃범의꼬리, 금불초, 박주가리 등이 곱고 예쁜 얼굴을 치든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던가. 이제 청계천에 가면 종종걸음을 멈추고 천변에 뿌리내린 풀, 나무들의 이름을 불러보자. 청계천이 통째로 당신의 화원이 될 터이니. 김인철 논설위원
  • [길섶에서] 교우와 동문/오풍연 논설위원

    우리나라는 지연과 학연을 중시한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둘을 비교하다 보면 금세 친해진다. 먼저 말투가 엇비슷하면 고향을 묻는다.“고향이 어디 아닌가요.”“예, 맞습니다.”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손을 덥석 잡는다. 생면부지의 사람도 낯설지 않다. 좁은 땅덩어리의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여럿이 모인 자리서 동문(同門)얘기가 나왔다. 모두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다. 누군가 후배를 지칭하며 동문이니 잘 부탁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그러자 한 선배가 틀렸다고 말을 잘랐다. 모두들 영문을 몰라 그 선배를 바라봤다. 교우(校友)라고 해야 맞단다. 그러면서 일화를 소개했다. 그 대학 총장을 만난 자리서 동문이라고 했더니 교우라며 바로 정정해 주더란다. 내내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 보았다. 졸업생을 일컬을 땐 교우라는 표현이 적절했다. 동문이면 어떻고, 교우면 어떤가. 가끔 회자되는 학교이기에 씁쓸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경계대상은 편가르기이다. 작은 것부터 신경쓸 때 사회통합이 이뤄지지 않을까.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볕/노주석 논설위원

    가을볕이 따갑다. 속담에 ‘가을볕에는 딸을 쪼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쪼인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보다 딸을 아낀다는 뜻이리라. 본래 봄과 가을은 일사량과 강도가 비슷하지만 겨울의 뒤끝인 봄볕에 노출되면 얼굴이 쉽게 그을린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배꼽쯤에 해당하는 안산(鞍山)엘 다녀왔다.296m이니 남산(262m)보다 높다. 서울의 4대 문안,4개 산을 이르는 내사산(內四山)이 있다.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 남쪽의 남산, 서쪽의 인왕산이다. 여기서는 빠지지만 서울시내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펼쳐지는 전망이 일품이었다. 하행 길을 봉원사 쪽으로 잡았는데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관음재날이니 공양을 하고 가라는 권유를 받았다.‘발우공양’에 ‘오관게’를 읊는 공양은 아니었다. 구내식당에서 접시에 나물 몇 가지 담아 된장국과 버무려 먹는 자리였다. 나올 때 밥값이라고 생각하고 초 두 자루를 샀다. 집에 와서 보니 얼굴이 그을렸다. 지구온난화 탓인지 가을볕도 장난이 아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레드카펫/노주석 논설위원

    별은 주시받을 때 빛나지만 외면받는 순간 빛을 잃는다. 영화계를 ‘은막(銀幕)’이라고 하고 배우를 ‘스타’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스타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뭇시선을 맘껏 즐기는 유일한 장소가 영화제 레드카펫이다. 나폴레옹1세의 대관식 때 깔렸던 레드카펫은 화려함과 환대의 다른 이름이다. 영어에서 융숭한 대접을 ‘레드카펫 트리트먼트(red carpet treatment)’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일 남산 국립극장에서 열린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껏 멋을 부린 스타들은 팬들의 환호와 사진기자들의 플래시를 온몸에 받으면서 30m 길이의 레드카펫을 밟고 지나갔다. 시간은 길어야 30초. 한 스타가 지나고 나면 금방 새로운 스타가 뒤따른다. 레드카펫 위 수많은 스타의 명멸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지금이 당신의 전성기인가. 아니면 전성기를 앞두고 있는가. 전성기가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이 레드카펫에 오르기 전의 기대, 걷는 찰나의 환희, 내려오고 난 뒤 엄습하는 공허감일 뿐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골목길/박재범 수석논설위원

    오랜만에 회사 이웃 종로구 청진동 피맛골을 찾았다. 점심 때다. 낯설었다. 가끔 찾던 식당의 문에는 대못이 쳐져 있었다. 널빤지에 부근 빌딩으로 이사갔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동그랑땡이며 생선구이를 팔던 맛깔진 식당들이 벌써 하나둘 줄었다. 문득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의 골목이 떠올랐다. 해외출장을 틈타 가끔 시내관광을 즐겼다. 스페인 마드리드,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에도 도심에 수백년 전 삶을 엿볼 수 있는 골목들이 남아 있다. 미국도 ‘올드 타운’이 곳곳에 있다. 큰길의 현대식 위용과는 딴판이다. 움푹 파인 옛날 마찻길이 관광객을 맞는다. 로빈후드, 장발잔 내키는 대로 생각을 펼치게 된다. 골목은 비록 비좁고 지저분할지라도 오랜 삶을 담고 있다. 피맛골은 조선 때 권문세가의 가마행차를 피해 서민들이 다니던 길이다. 골목 자체가 이야기다. 한국이 부러워하는 나라들은 골목길을 지킨다. 반면 우리는 골목길을 ‘퇴치’한다. 골목이 없어진 곳에 들어설 이야기는 무엇인가. 박재범 수석논설위원 jaebum@seoul.co.kr
  • [길섶에서] 오해와 진실/ 오승호 논설위원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그런지, 중국 칭다오에 가면 낯설지가 않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칭다오 공항까지 비행 시간은 정확히 1시간으로 제주도와 엇비슷하다. 칭다오 시내 식당에 가면 더욱 친밀감을 느낀다. 여종업원의 앞치마엔 ‘한국말을 배우는 실습생들’이라고 적혀 있다. 중국에서도 유명하다는 ‘짝퉁 시장’. 한국 관광객들이 중국 상인들과 물건 값을 흥정하는 모습은 다정다감해 보인다.‘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라는 간판이 걸린 곳엔 중국인들이 북적거린다. 한국어 간판이 내걸린 커피숍도 마찬가지다. 중국인에게 물어본다.“왜 중국 사람들은 한국을 싫어하나.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인들은 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응원했느냐.”고. 돌아오는 대답에 마음이 놓인다. 중국인들은 한국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중국인들은 일본인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인들의 ‘혐한증’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실체적 진실과 동떨어지게 과민 반응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히 짚어볼 일이다. 오승호 논설위원
  • [길섶에서] 호기심/구본영 논설위원

    며칠 전 중소기업 대표인 S 선배가 다시 이메일을 보내왔다. 첨부파일을 열어 멘델스존의 ‘베네치아의 뱃노래’를 배경음악으로,‘마음을 맑게 하는 그림’을 감상하라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그에게 이런 유의 이메일을 수차례 받았지만,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흔이 넘는 연치에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를 가까이한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웠기 때문이다. 문득 얼마 전 미국인 지인과 메신저로 대화하다가 잠시 갑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LOL!’이란 일반 영어사전에 안 나오는 생소한 단어를 여러 번 접하면서다. 나중에 우리가 인터넷 채팅 때 흔히 쓰는 ‘ㅋㅋㅋ’처럼 ‘큰소리로 웃다’(Laughing out loud)란 말의 축약어임을 알게 됐다.‘잠시 실례(bye for now)’를 ‘b4n’으로 쓰듯이. 노(老)선배의 ‘이메일 선물’을 떠올리며 인터넷 채팅어든 뭐든 하루 한가지 이상 틈틈이 새것을 익혀 나가리라 마음 먹었다. 지적 호기심이 살아있는 한 쉬이 늙지 않는다는 말도 있기에….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아기의 웃음/함혜리 논설위원

    경기도 원당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전철을 탔다. 노약자석에 말끔하게 차려입은 초로의 부부가 앉아 있고, 그들 앞에는 여자 아기를 태운 유모차가 한대 있었다. 손녀 딸을 데리고 어딘가로 나들이를 가는 것일 게다. 귀여운 손녀 딸을 바라 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얼굴에 사랑이 그득했다. 겨우 걸음마를 뗄 정도가 된 아기는 토실토실 건강해 보였다. 울지도 않고 잘 놀고, 낯가림도 없었다. 건너 편에 앉아있는 아주머니가 손을 잼잼하면서 어르자 금방 조막만한 손을 옴찔옴찔하면서 방긋방긋 웃었다. 이내 두 손을 맞부딪쳐 짝짜꿍을 하면서 흥에 겨워 까르르 웃는다. 전철 안에서 달리 눈 둘 곳이 없어 아기를 바라보던 사람들 모두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전동차 안이 금세 환해졌다. 천진무구한 아기의 웃음이 세상을 밝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마술을 부린 것처럼. 문득 2017년 한국여성 1인당 출산 아이 수가 한명에 그칠 것이라는 암울한 내용의 미래예측보고서가 떠올랐다. 이 뜬금없는 직업의식을 어찌할지….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낭설/ 노주석 논설위원

    총독부는 일(日)자, 서울시청은 본(本)자 모양으로 지어졌으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일본(日本)’이라는 형상이 드러난다고 했다. 또 북악산은 큰 대(大)자 모양을 하고 있어 북악 아래 총독부와 서울시청을 지은 것은 ‘대일본(大日本)’자를 새기려고 머리를 짜냈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 말은 허무맹랑한 낭설로 확인됐다. 본래 서울시청 자리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사가 있던 터였다. 전철이 지나가는 번화가의 정해진 땅 모양대로 지어졌다. 동경제대 출신의 일본인 설계가에 의해 ‘궁(弓)자 모양으로 설계했다.’는 문서가 남아 있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허문 것이 13년 전 일이다. 서울시청만 뜯어내면 된다는 사람이 많았다.2년 전 당시 서울시 주택국장이 신청사 건립계획을 발표하면서 “본(本)자 형상을 지워버리겠다.”고 발표했다가 망신을 당한 적 있다. 서울시가 시청사 일부를 기습 철거해 시끄럽다. 역사는 역사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되풀이된다. 혹시 또 없는 ‘본’자를 뜯어내려던 의도였나?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병(病)과 가정/오풍연 논설위원

    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현대의학이 발전했다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는 병이 있다. 환자는 고통 끝에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그래서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병은 여러 사람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고통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다. 병이 가정에 침입하는 순간 도전이 될 수 있다. 건강한 가족이 파열음을 내기도 한다. 처음에는 동정심이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에 대한 슬픔에서다. 하지만 긴병에 효자 없다고 하지 않던가. 자기들의 자유가 제한받는다고 느낄 경우 화를 낼 수 있다. 오장육부를 가진 인간이기에 그렇다.“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야 하는가.” 가정에 중환자가 있을수록 참사랑이 필요하다. 먼저 오래 참고 친절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믿음을 가져라. 가정에 우환이 없는 다른 이와 비교할 필요가 없다. 그래야 “이건 정말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지워진다. 가족간의 친밀한 유대가 제일 중요하다. 진정한 배려와 애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화해/ 함혜리 논설위원

    당숙이 한 분 계신다. 작은할아버지의 외아들인데 할머니가 친아들처럼 아끼고 거두셨던 까닭에 우리 집과는 무척 가깝게 지냈다. 명절 때에도 시골 본가에 내려가지 않으면 우리 집에 와서 차례를 지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제사 등 대소사에도 거르지 않고 참석하셨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몇해 전부터 우리 집으로 오는 발길을 끊으셨다. 선산 문제로 감정 상할 일이 있었노라고 어머니께 전해들었다. 당숙이 요즘 다시 우리 가족에게로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병 문안을 오시면서부터다. 당숙은 어느새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라고 하셨다. 공군 복장을 하고 휴가 나와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인사드리고 우리 형제들하고 어울려 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옛날 얘기를 하면서 밝게 웃다가도 누워 계신 아버지를 보시고는 눈물을 훔치셨다. 누구도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다시 끈끈해지는 관계를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눈을 꼭 감은 채 누워만 계셨지만 그렇게 우리 가족을 화해로 이끌어 주셨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충무로 영화제/노주석 논설위원

    학창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유독 극장이 많았다. 동보극장, 북성극장, 노동극장, 보림극장, 태평씨네마…. 개봉 단관에서 이본동시 상영관까지 즐비했다. 즐길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바깥세상에 대한 갈증의 해우소였다. 한번은 골목어귀 점포 벽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영화포스터를 보려고 다가가는 순간, 점포 안에서 달려나온 개에게 허벅지를 물렸다. 공수병(恐水病)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동네어른이 문 개의 털을 구해서 상처에 발라야 한다는 처방을 내린 탓에 식구들이 개털을 구하느라 고생깨나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얼마 전 서울 청계천변에서 한국영화포스터전이 열렸다. 다음달 3일 개막하는 ‘제2회 서울 충무로 국제영화제’를 기념하고 영화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행사다.‘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영화포스터는 물론 극장표 등 흘러간 영화자료 1000여점이 전시돼 옛 추억에 잠기게 했다. 한데 그때 내가 보려다 개에게 물렸던 영화의 제목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전화위복/오풍연 논설위원

    사람에겐 세 번 기회가 온다고 한다. 살맛나는 세상에 낙담하지 말라는 뜻일 게다. 그러나 대부분은 겁부터 먹는다. 그러다 보니 찾아온 기회도 잃는 경우가 많다. 복은 저절로 굴러 들어오지 않는 법.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지혜가 꼭 필요하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못생긴 흑인소녀에다 14살 때 미혼모가 된 전력이 있다. 그런 그녀가 오늘날 미국을 쥐락펴락한다.‘20세기의 인물’(타임),‘최고의 비즈니스 우먼’(포천) 등 극찬 일색이다.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저마다 지닌 장점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피터 드러커는 “위기를 기회로 보는 것이 기업가적 천재성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실패를 성공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대학생 아들 녀석이 군 입대를 앞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한편으론 측은한 마음도 든다. 잘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들에게 첫 번째 찾아온 기회이기에…. 오풍연 논설위원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게으름/김인철 논설위원

    (자다 깨다/자다 깨다/자다 깨다/자다 깨다/자다 깨다/자다 깨다(팔 바꿔서)자다 깨다/자다 깨다/자다 깨다…) 일전 감기 몸살로 이창기의 시 ‘남산 위에 저소나무’처럼 이틀간 꼼짝 않고 안방에서 자리보전을 했다. 텔레비전을 벗삼아 누웠다 앉았다 반복하는 사이 몸은 어느덧 게으름과 나태함에 익숙해져 가는데, 마음 한구석에선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불안, 초조함이 고개를 든다. 그때 모처럼의 짧은 휴식에도 불안해하는 마음을 달래준 건 조선 성종때 문인 성현(成俔)이 지은 조용(嘲)이란 글이다.“경우에 따라서는 근면은 도리어 화근이 되는 것,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도리어 복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형세를 따라 우왕좌왕하여 그때마다 시비의 소리가 분분하지만, 당신은 물러나 앉았으니 이러쿵저러쿵 시비하는 소리가 없다. 또 세상 사람들이 물욕에 휘둘리어 이익을 얻기 위해 날뛰지만 당신은 제정신을 보존하니, 궁극에 가서 어느 것이 흉한 일이 되고 어느 것이 길한 일이 될 것인가?” 김인철 논설위원
  • [길섶에서] 아량과 행복/구본영 논설위원

    요즘 베이징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는 기쁨이 쏠쏠했다. 각본없는 드라마가 주는 진한 감동 때문이다. 메달을 따내 벅찬 환희에 찬 선수들의 표정마다 오랫 동안 감내해 왔을 법한 인고의 시간들이 읽혀진다. 가슴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장면도 있었다. 유도에서 한국 선수로서 첫 금메달을 딴 뒤 감격에 겨워 우는 최민호 선수를 의연하게 격려한, 오스트리아의 루트비히 파이셔 선수의 경우가 그랬다. 은메달에 머문 아쉬움을 툴툴 털고, 자신을 메다꽂은 최 선수를 외려 일으켜 세워 포옹해 준, 그의 넓은 아량에 가슴 한쪽이 뭉클했었다. 그가 결과를 떠나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 만족했다는 증좌일 게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 주말. 그 먼나라 낯선 청년의 스포츠맨십을 상기하며 산행에 나섰다. 비를 피해 정상까지 다녀 왔지만, 소나기라도 내려 중간에 내려왔더라도 가지 않은 것보다는 나았다는 생각도 들었다.“행복은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가 아니라, 여행 중에 발견되는 것”이라던, 어느 작가의 글을 떠올리며….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세월/ 오승호 논설위원

    후텁지근했던 여름도 이제 퇴장하는가 보다. 하늘은 청명하기만 하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새벽 운동을 하기 위해 현관을 나서는데 어두컴컴하다. 출발 시간을 30분가량 늦춰야 할 판이다. 퇴근길 지하철 창 밖에 땅거미가 지는 시간도 꽤 빨라졌음을 느낀다. 신문의 날씨 안내를 보니 해가 정말 짧아졌다. 23일은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 남부 지방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국 해수욕장도 처서를 전후해 폐장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고 했던가. 한동안 귀찮게 했던 모기 극성도 사라지겠지. 앞으로는 풀도 더 자라지 않는다. 들판의 곡식과 과일들은 누렇게 익어 가리라. 올해 추석은 예년보다 빨라 제수용 과일 값이 비쌀 것이란 뉴스도 들린다. 만나는 이들마다 “세월 참 빠르다.”는 말을 한다. 너무 바삐 살아서일 수도 있고, 나이 먹는 것이 싫어서일 수도 있을 게다. 모든 이들이 연초 세웠던 계획대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빌어 본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길섶에서] 푸치니/노주석 논설위원

    어릴 적 서가에 꽂혀 있던 ‘월간음악’이라는 음악잡지를 통해 사진 위주로 음악을 섭렵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음악가가 푸치니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기모노 차림의 여주인공 사진을 보면서 이탈리아 음악가가 어떤 연고로 19세기 일본 메이지시대를 배경으로하는 ‘마담 버터플라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며칠 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푸치니를 만났다.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청소년을 위한 콘서트 ‘푸치니의 사랑이야기’에서였다. 라보엠, 마담 버터플라이, 토스카, 마농레스코, 투란도트 등 주옥 같은 아리아가 펼쳐졌다. 오페라가 아니라 콘체르탄테 형식의 갈라 콘서트여서 좋았다. 이제 “왜 작곡했을까” 식의 우문은 던지지 않게 됐다. 푸치니가 탄생한 지 벌써 150주년이란다. 그는 가고 없지만 그의 음악은 언제나 풋풋하다. 마담 버터플라이가 떠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부르는 ‘어느 개인 날’은 누구의 목소리라도 무방하다. 마리아 칼라스이거나 조수미이거나 아니면 신영옥이거나.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지방 발전/오승호 논설위원

    바쁜 생활에 쫓기다 보면 고향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고향의 이슈는 무엇인지 잊고 살기 십상이다. 최근 지인들과 함께 지방에 내려갔다가 그 지역 시장을 우연히 만났다. 뜻밖에도 90년대 초 출입처에서 알고 지냈던 분이어서 반가움은 더했다. 중앙부처 공무원 생활을 접고 고향에서 시장에 출마해 당선한 이 인사는 “몇 년 새 시(市)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다.”면서 지방 낙후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자치단체장들이 각종 대회나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조목 조목 설명했다. 현재 인구는 8만여명이라고 했다. 그 정도로 인구가 줄어든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이 인사는 중앙 부처 공무원일 때에 비해 지방 발전의 필요성을 훨씬 더 피부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서울 생활에만 젖어 지방의 어려움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의미있는 만남이었다. 이번 추석 고향 방문길이 지역 균형 발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길섶에서] 신독(愼獨)/노주석 논설위원

    은사의 좌우명이 신독(愼獨)이라는 사실을 그 분의 저서를 통해 알게 된 이후부터 이 말을 곱씹게 됐다.‘다른 사람이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가 ‘대학(大學)’에 나오는 신독의 뜻풀이다. 이 말이 얼마나 따라하기 어려운지 고통스럽다. 후회될 때도 많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오성에 대한 연구’에서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요, 이성의 동물이지만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고 갈파했다. 사실 혼자 있을 때 온갖 유혹의 노래에 솔깃해지곤 하는 나를 본다. 지켜보는 시선이 없다고 느낄 때 나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감정의 노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누가 듣거나 말거나 ‘도리’를 지킬 수 있다면 군자나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도리어 실천하는 과정이 신독이 아닐까. 신독이라는 단어를 뇌까리는 순간 삼가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깃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내리사랑/ 오풍연 논설위원

    옛말에는 삶의 지혜가 있다. 인생 교훈도 가득하다. 어른들이 스쳐지나가듯 던진 것 같은 말이 지금은 피부에 와 닿는다. 나이를 먹는 탓일까. 언제부턴가 그들을 똑같이 따라하곤 한다. 그러면서 혼자 피식 웃는다. 얼마 전 선배 두 분과 넷이서 점심을 한 적이 있다. 늘 그렇듯이 자식 얘기가 나왔다. 예순을 넘긴 분들이어서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자식에 대한 미련은 아예 버리라고 충고했다. 세상이 변했다는 게 이유였다. 두 분도 노후대책을 미리 세워 놓았단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우리 둘에게 명심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자 한 후배가 불끈한다.“저는 애들에게 해 준 것이 아까워서라도 받아야 되겠습니다.”선배가 즉각 면박을 줬다.“이 친구, 아직 정신 못 차렸군.” 선배들이 까닭을 얘기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손윗사람에 대한 사랑)은 없다는 말을 잊었느냐고 나무란다. 사랑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법. 거기에 대가를 바란다면 사랑이 아니다. 그날밤, 아내에게도 이같은 진리를 되새기게 했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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