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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매화타령/함혜리 논설위원

    작정을 하고 남쪽으로 매화 구경을 떠났다. 매화기행은 나주의 ‘죽설헌’에서 시작됐다. 시원 박태후 선생이 손수 가꾼 정원에 청매와 백매가 한창이다. 코를 대니 그윽한 향기에 뇌가 마비될 지경이다. 청매는 상큼하면서도 이지적이고, 백매는 달콤한 과일향이 강하고 고혹적이다. 죽설헌 안주인이 지난해 거둬 말린 매화 꽃차를 내놓았다. 매화 구경에 눈과 코가 황홀한데 매화차까지 즐기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을까. 다음 코스는 조계산 선암사다. 돌담길을 따라 백매와 청매가 만발이다. 아쉽게도 수령 400년이 넘는 선암매(홍매)는 아직 피지 않았다. 몇 송이가 꽃봉오리를 터뜨려 나그네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매화기행은 섬진강변에서 피날레를 장식했다. 지방도 861번을 타고 섬진강변을 따라 가니 온통 매화 세상이다.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옹기종기 들어앉은 마을마다 꽃 구름이 뭉게뭉게 내려앉아 있었다. 부지런히 차를 달려 서울로 돌아왔다. 매캐한 황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두고 온 매화가 벌써 그리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사진/강석진 수석논설위원

    어릴 적 사진 몇 장이 앨범에 남아 있다. 여러 번 보는 사진이라 특별히 감흥이랄 게 없지만 그나마 아이들과 함께 보면 상념에 잠길 틈이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쉴 틈 없이 말을 건다. 그러곤 뭐가 재미있는지 낄낄대며 웃어댄다. 그 중 한 사진에는 주인공이 산등성이를 따라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이들은 ‘오, 굉장한 걸.’이라며 잠깐 경탄사를 발하고는 다음 사진으로 눈을 옮긴다. 휙휙 넘어가는 사진 속에는 중학교 시절 앞자락을 크게 기운 교복 입고 친구랑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도 있다. 풍한서습(風寒暑濕)을 몸으로 견뎌내던 시절, 엄숙함이나 비장함이 표정에 서려 있을 것 같지만 사진 속 모습은 의외로 밝다. 그 사진을 보는 현재의 어린이들도 짤막한 경탄음과 웃음으로 과거를 소화해낸다. 괜스레 딱딱해져 있는 것은 ‘지금의 나’뿐이다. 사진 속의 주인공이 말을 건네오는 것 같다. “사진 찍습니다. 웃으세요. 김∼치.” 강석진 수석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길섶에서] 들에 핀 매화/최태환 논설실장

    선배를 만났다. 은퇴 후 돈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불교, 한학에 조예가 깊다. 금강경, 주역을 가까이 하던 그를 떠올린다. 근황이 궁금했다. 한문 모임도 하고, 참선도 한단다. 무슨 화두를 붙들고 있는지 물었다. ‘판치생모’(板齒生毛)란다. 판치는 앞니다. 나무의 옹이를 의미한다는 이도 있다. ‘앞니, 옹이에서 털이 난다.’ 내안에 부처를 두고 밖에서 부처를 찾는 미망을 경계하라는 것일까. 참선 속에 가끔 번뇌와 미망을 떨쳐 낼까. “어렵지!” 선배의 대꾸가 명료했다. 하지만 꼬리를 물던 잡념이 일시 공백이 될 때가 있다고 했다. “자넨 요즘 어떤 화두를 잡고 있냐.”고 했다. “화두는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불현듯 ‘면남견북두’(面南見北斗)가 스친다. ‘남쪽을 향해 있으면서 북두칠성을 본다.’는 뜻이다. 붙들고 싶다. 선배는 매화기행을 다녀왔단다. 고전에 등장하는 매화의 흔적을 찾는 답사였다. 진주 부근 들에 홀로 선 매화나무(野梅)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매화 한 닢 띄운 찻잔이 생각난다. 매화향이 전해온다. 찻잔에서 흔들리는 나를 본다. 최태환 논설실장 yunjae@seoul.co.kr
  • [길섶에서] ‘금(金)겹살’/박정현 논설위원

    삼겹살이 ‘금겹살’이란다. 소고기를 수입하면서 돼지 사육농가가 줄어들어 삼겹살 값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며칠 전 지인이 찾아와 회사 근처 무교동 음식점을 찾았다. 지인은 메뉴판의 삼겹살 값을 보고 놀란다. “무슨 삼겹살이 1만원씩이나 하나. 다른 곳에서는 7000∼8000원 하고, 값싼 음식점 찾아다니는 노마드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8000원으로 인쇄된 메뉴판 위에 9000원이라는 종이가 붙여져 있던 게 몇달 전인데 어느새 1만원이다. 거의 매일 무감각하게 음식점을 찾던 직장 동료들도 지인의 지적에 새삼 ‘금겹살’을 느낀다. 재개발이 진행 중인 무교동에서는 음식점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재개발 탓에 건물이 헐리면서 있던 삼겹살 집도 많이 사라졌다.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무교동에서는 삼겹살 값이 내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장인과 소시민의 대표적인 먹거리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아니던가. 황사의 계절이다. 삼겹살을 찾는 이가 늘어날 게다. 경제난에 지치고 황사에 가슴 답답한 소시민들은 금겹살에 울연하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길섶에서] 낙(樂) /함혜리 논설위원

    회사 앞에서 택시를 탔다. 기사 아저씨는 나이가 상당히 많은 편이었는데 결코 깔끔한 인상은 아니었다. 택시는 낡은 데다 찌든 담배냄새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괜히 탔다고 속으로 후회하고 있는데 웬걸, 기사 아저씨는 노래까지 불렀다. 흥얼거리는 수준이 아니라 큰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다. 그것도 가래 끓는 굵은 목소리로. 카세트 노래를 틀어놓고 그 노래에 맞춰 노래를 했다. 손님이 타고 있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는 불쑥불쑥 질문을 던졌다. “저건 무슨 공사 하는 거랍니까?” “좌회전 하지요?” “여기는 만날 이렇게 막힙니까?” 이런 식이다. 그러고는 또다시 노래를 따라한다. 묻지도 않은 푸념도 했다.“오후 3시에 나왔다가 하도 손님이 없어서 집에 들어가서 밥 먹고 다시 나왔더니 이제서야 좀 손님이 있네요.” 듣고 앉아 있기 거북했지만 참았다. 하루종일 운전하며 시내를 뱅글뱅글 돌아다니는 아저씨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낙이 차 안에서 노래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돈이 원수/오풍연 법조대기자

    “돈이 원수다.” 툭하면 내뱉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돈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원수는 원수로 갚으라고 했는데 여의치 않다. 돈 벌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돈이 행복의 전부일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형제끼리 싸우거나 외로워지는 경우도 흔히 본다. 이른바 재벌들을 보자. 우애 있다는 얘기를 듣기 어렵다. 부자, 형제간 소송도 불사한다. 대인기피증(?)에 걸린 재력가가 있다. 거의 방안에 틀어박혀 산다. 이유를 물어봤다. “두세 번만 만나면 돈을 빌려 달라고 합니다. 이제는 사람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친구도 없단다. 돈이 정상적인 생활을 앗아간 원흉인 셈이다. 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돈을 사랑하는 방법은 뭘까. 값지게 쓰는 것이다. 척박한 기부문화의 풍토를 바꾸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돈을 빌려 줄 때는 준다고 생각하라. 그러면 원수질 일도 없다. 무소유의 이치를 잊은 듯싶다. 오풍연 법조대기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농촌, 농업인/이춘규 국제부 선임기자

    고향 가는 무궁화호 열차 안 할머니들의 대화내용에 솔깃했다. 옆자리에 앉아 처음 만난 사이란다. 농촌 출신이라는 할머니들이었다. 세 할머니는 해외여행담을 길게 늘어놨다. 경쟁적으로 자랑하다 보니 조금 과장됐을지는 모르지만 농촌 실상을 보여줬다. 다른 동남아국가는 물론 최근에는 베트남까지도 다녀왔다는 분의 얘기가 인상깊게 남았다. 비용은 100만원 안팎이란다. 농촌 할머니라고 믿기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고향에도 단체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주민들이 많다. 중장년층은 물론 70대 어르신들도 해외여행을 다닌다. 1976년 말에야 전기 혜택을 받았고, 80년대까지만 해도 가난을 멍에처럼 메었던 농촌마을의 대변신이다. 한푼도 아끼던 예전의 농업인들과도 대비된다. 서울은 경제위기가 한창이지만 농촌은 아직 영향이 적어 해외여행 열기가 남아 있단다. 읍내에 해외여행 취급 여행사도 있다. 농촌에 애환이 많다지만 농촌, 농업인이 변화 중이다. 희망찬 농촌, 밝은 농업인을 소망해 본다. 이춘규 국제부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터진 만두/함혜리 논설위원

    적지 않은 나이에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님과 살고 있는 후배가 “요즘 엄마와 신경전을 벌이느라 너무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사연을 들어 보니 터진 만두가 원인이었다. 어느날 아침 식사로 만둣국을 먹게 됐는데 그릇에 담긴 만두가 터져 있더라는 것이다. 다른 식구들 그릇에 모두 온전한 만두가 들어 있는 것을 보니 서운하고 화가 나더란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건만 마음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단다.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제 처지는 생각도 않고 눈만 높은 혼기 놓친 딸이 엄마 눈에 고와 보일 리가 없다. 히스테리 폭탄과 같은 노처녀 입장에서는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이 좋은 부모 자식 간이라도 살다 보면 맘 상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후배는 “아무래도 가출을 해야 될 것 같다.”고 심각하게 말했다. 그 얘기를 들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출가를 해라.” 터진 만두 때문에 다친 가슴에 또 한번 상처를 안긴 것은 아닌지.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가족의 가치/ 황진선 논설위원

    얼마 전에 상처를 한 친구를 만나 택시를 탔는데 자신이 전에 일했던 곳을 지나게 되자 불현듯 얘기를 꺼냈다. 처와 함께 이곳을 지난 적이 있는데 ‘당신이 여기서 일하면서 한 달 가까이 집에 들어오지 못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라고 얘기를 해서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일을 핑계로 처와 아이들한테 잘못을 많이 했다고 자책했다. 그때는 처가 시한부 생명임을 통보받은 뒤인 듯싶었다. 친구는 요즘 가족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낀다고 했다. 미국에서 몇 년을 생활한 그는 미국을 떠날 즈음에야 가족의 가치를 느끼게 됐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식적인 행사에 아내와 딸의 손을 잡고 등장하는 것을 예로 들며, 우리는 가족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그래도 농반 진반으로 새장가 가야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코끝이 찡했다. 헤어질 즈음 이런 말도 했다. “공원에 나가서 손잡고 산책하는 부부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길섶에서] 바보들의 행진/오풍연 법조대기자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것 때문에 패가망신해도 집착한다. 욕망의 충족조건은 재미다. 갈수록 흥미를 더해 가기에 손을 떼지 못한다.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은퇴한 선배들과 어울렸다. 한 분이 ‘3불’ 얘기를 꺼냈다. 예순이 넘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첫째, 주식투자를 하지 말라. 둘째, 도박을 하면 절대 안 된다. 셋째, 정치에 입문하는 순간 망한다. 주변의 사례까지 섞어 얘기하니 누구도 반론을 펴지 못했다. 구구절절이 옳았다. 다른 장소에서도 같은 경험담을 들었다. “우량 주식이라고 해 투자했는데, 제네시스가 티코가 되고 말았습니다.” 1년간 외국에 나갔다 온 노()교수의 푸념이다. 셋 다 중독성이 강하다. 한번 실패해도 다음에는 꼭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들게 한다. 그러나 그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럼에도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면 바보짓이다. 우매한 게 인간이라던가. 바보들의 행진은 계속될 듯하다. 오풍연 법조대기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아들의 변화/조명환 논설위원

    입대 전에는 용돈 수령 등 공식(?)대화 말고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등굣길과 출근길이 같은 방향이어서 아침에 차를 함께 타면서도 입은 꾹 다물었다. 백미러를 통해 힐끔 훑어보면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샌 듯 토끼눈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잦았다. 책보다는 친구들과 밤새 채팅을 하거나 오락하느라 보낸 탓이다. 아무튼 대단한 야행성이었다. 주인 없는 책꽂이의 책들도 듣도 보도 못한 제목들이 대부분이다. 교과서를 제외하면 동인 활동의 결과물이거나 판타지 계열이 많다. 우편배달된 성적은 평균 평점보다 낮아 전공과 다른 세계에 놀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놀다 공군에 자원입대한 아들의 제대가 임박했다. 주말이면 전화도 곧잘 한다. 부자간에 말 길도 틔었다. 휴일이면 운동이나 종교 활동에도 참여한단다. 말끝에 복학에 대비해 짬짬이 전공 공부를 한대서 깜짝 놀랐다. 군대 갔다 오면 달라진다지만 아들의 변화가 대견스럽다. 경제위기가 젊은이들을 현실적이고 왜소하게 만드나 싶어 조금은 우울하다. 조명환 논설위원 river@seoul.co.kr
  • [길섶에서]환절기 입맛/노주석 논설위원

    얼마전 단골 곱창집엘 갔더니 주인장이 고기를 싸먹으라면서 간장에 절인 명이 장아찌를 내왔다. 연전 울릉도에 갔을 때 먹었던 감동의 그 맛이었다. 생김새는 콩잎과 엇비슷하지만 크기는 갑절 정도로 넓적하다. 명이는 울릉도 특산 산마늘이다. 냄새 한 가지를 빼면 백 가지가 이롭다는 일해백리(一害百利)의 마늘, 그 중에서도 해발 700m 이상 고산에서 자생하는 으뜸 산마늘이다.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100일 만에 사람으로 변했다지 않는가. 울릉도 도동항 어느 식당에 가도 기본 찬으로 푸짐하게 내놓지만 서울에선 값이 만만치 않다. 이름의 유래가 흥미롭다. 울릉도는 고려시대 공도(空島)정책으로 700여년간 사람이 살지 않았다. 조선 고종 때 뭍에서 100여명이 이주했다. 겨울에 먹거리가 바닥나 굶주렸는데, 눈 속을 뚫고 올라오는 싹을 먹고 연명했다. ‘목숨 명(命)’ 자를 써서 명이라 이름붙인 까닭이다. 알싸하면서 담백한 맛이 곱창구이의 느끼함을 가시게 한다. 일교차가 큰 환절기, 나른한 입맛을 자극한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네트워크/박정현 논설위원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보여 주는 두 개의 조사결과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3년 전 전 세계 메신저 이용자 1억 8000만명이 주고받은 3000억건의 메신저 기록을 분석했다.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은 평균 6.6단계를 거치면서 연결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케빈 베이컨 게임이론도 비슷하다. 20년 경력에 50편의 영화에 출연한 영화배우 베이컨이 할리우드 영화배우들과 몇 단계 만에 연결되는지 조사했다. 예를 들어 베이컨이 A배우와 함께 영화에 출연했다면 1단계, A배우가 B배우와 영화에 출연했다면 베이컨과 B배우는 2단계로 연결된다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조사했더니 할리우드의 영화배우들은 베이컨과 6단계 내로 모두 연결됐다. 얼마 전 친구가 모임이 몇 개나 있느냐고 물어 왔다. 한 달에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다. 그는 적어도 5개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게 능력이란다. 물론 온라인에 가입한 취미 동호회 등은 뺀 것이다. 모임 숫자를 세면서 세상은 좁으면서도, 세상을 좁게 만드는 게 능력인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길섶에서]나이듦/황진선 논설위원

    버스 정류장에서 줄을 섰는데 정류장 유리창 너머로 머리가 희끗하고 피로에 전 사람이 눈에 띈다. 순간, “아니, 바로 나잖아.”하고 화들짝 놀란다. 정신을 차려 앞뒤를 살펴보니 줄을 선 사람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인다. 출근시간이니까 그렇겠거니 하면서도, 잠시 내 또래는 다들 어디에 있지 하고 반문해 본다. 얼마 전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도 그랬다. 조금 늦게 갔는데 발제자와 토론자 6∼7명이 모두 ‘애들’로 보이는 것이었다. 잠시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생각하다가, 이내 그들도 마흔살 안팎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런 잡념 탓인지 요즘 잠을 잘 못잔다. 새벽에 한두 번씩 깬다. 나이듦이 없다면 자기존재의 본질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여하튼 불면의 뿌리는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요즘 거꾸로 행복해지기 위해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기로 했다. 우리는 슬프게도 무언가 시도해서는 안 될 이유들만 찾는다는 말을 새겨 보려 한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길섶에서] 왜 걱정하십니까?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한때 시인을 꿈꾸었던 그 친구는 시도 때도 없이 이메일을 날려와 잠자는 내 감성을 일깨운다. 이번에 받은 이메일의 제목은 ‘왜 걱정하십니까?’였다. 얼마 전 사다가 집안에 걸어 놓은 액자에는 제목 아래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고 했다. ‘인생의 날수를 당신이 결정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인생의 넓이와 깊이는 당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얼굴 모습을 당신이 결정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당신 얼굴의 표정은 당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중략)/ 당신 자신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을 감당하기도 바쁜데/ 당신이 결정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걱정하고 있습니까?’ 친구는 전에 읽었다는 책의 내용을 덧붙였다. 1년 전 자신이 무엇을 고민했는지를 1000명에게 물었더니 금방 대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져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기에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시인이 되다 만 오랜 친구가 있다는 건 축복 받을 일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길섶에서] 봄, 새소리/이춘규 국제부 선임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예봉산에 오르는데 나무를 투투툭 쪼아대는 울림이 크다. 한참을 올라도 소리는 계속된다. 조심스레 귀 기울이자 수m 앞에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장면이 눈앞에 들어온다. 그 순간 녀석은 꽁지빠지게 달아나 버린다. 생명활동을 방해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겨울엔 못 들었던 새소리가 골짜기 곳곳에서 정겨웠다. 하산길엔 십여마리의 때까치들이 이례적으로 무리를 지어 봄이 왔음을 다투어 알려줬다. 서울이 코앞인 예봉산~운길산 능선은 조안면(鳥安面)이란 행정구역 이름이 알려주듯 새들의 안식처다. 봄에서 늦여름까지 새들의 교향곡은 감미롭다. 4시간여 동안의 능선길은 꿈길같다. ‘휘~휘 휘 휘~’. 휘파람으로 흉내내면 소리를 따라오는 검은등뻐꾸기는 이 능선을 대표하는 여름철새다. 벙어리뻐꾸기 소리는 청아하다. 지난해 새소리 CD로 몇몇 새의 이름과 서식특성을 알고 듣자 느낌이 더 좋아졌다. 꿩, 뻐꾸기, 비둘기…. 하지만 이름 모를 새들이 많은 것이 안타깝다. 새소리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 이춘규 국제부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취미/박정현 논설위원

    얼마 전 서울 시내에서 친척 어른과 둘이서 점심식사를 했다. 70대 중반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근 사진작가로 데뷔했기에 화제는 자연 작품활동으로 모아졌다. 하루에 3㎞ 넘게 걸으면서 작품활동을 해 전시회를 가졌다고 했다. 돈 내고 헬스클럽 다닐 필요없이 건강을 챙길 수 있어서 좋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친척 어른은 공직을 그만두고서야 사진기를 만져 보기 시작했다면서, 젊은 나이에 취미생활을 하나 가져 보라고 권하신다. 사진 찍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첨언이다. 컴퓨터로 작업하기 때문에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는 말씀도 솔깃하다. 취미라면 독서, 등산 정도로 밝혀 왔던 터라 취미활동을 하나 가져 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은 식사를 마치고 어깨에 묵직한 사진가방을 메고 작품활동을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취미활동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무얼 하느냐보다는 무엇을 하겠다는 열정이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리라.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길섶에서] 라이터/강석진 수석논설위원

    ‘내가 중이 되면 고기가 천해진다.’는 옛말처럼 라이터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진 것은 15년 전 담배를 끊고 나서다. 그 이전에는 라이터를 보면 한번 만지작거리고 싶었고 외국에 다녀올 때는 한두 개 사오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담배를 배울 무렵 친구가 지포(ZIPPO) 라이터 비슷한 기름 라이터를 꺼내 불을 댕긴다. ‘너 좋은 것 갖고 있구나.’ 하며 말을 거니 남대문 시장에 많이 있단다. 며칠 뒤 시장에 나갔다. 라이터 장수의 리어카에는 카바이드 불빛 아래 집(ZIP), 지파(ZIPPA), 지푸(ZIPPU)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500원에 한 개였던가 두 개였던가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담뱃값은 가장 비싼 거북선이 300원이던 시절이다. 일회용 가스 라이터가 흔해진 요즘이지만 금연하는 사람이 늘어나니 때로는 그마저 귀하다. 제삿날 초와 향에 불을 붙이는데 집안에 라이터는커녕 성냥도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부엌의 가스레인지에서 불씨를 구하게 된다. 작은 물건의 성쇠에도 세상의 변화가 깃들어 있다. 강석진 수석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길섶에서] 성인(聖人)/ 오풍연 법조대기자

    고 김수환 추기경의 여운이 여전하다. 많은 이에게 슬픔보다는 희망을 던져 주었다. 온 국민의 추모속에 떠난 그를 다시 생각한다. 조문기간 4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명동성당에 몰렸다. 김 추기경을 40년 보필했던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는 “생각과 처지가 다른 사람들이 추위 속에 3, 4시간을 기다리며 추모하던 행렬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마지막 모습을 보러 왔다기보다는 ‘고맙다.’는 인사하러 다녀간 것 같다.”고 했다. 질서정연한 추모행렬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외신들도 이 같은 모습을 타전하기에 바빴다. 추기경님은 떠났다. 선종 후 보수 진보의 잣대로 평가했던 일부의 평이 새삼 부끄럽다. 그만 한 인물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지난 족적을 보면 그의 그림자가 너무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더욱 그리운지 모른다. 하지만 성인을 그냥 보내기만 하면 안 된다. 그분의 모든 것을 한 단계 더 승화시켜야 한다. 지금 나라가 무척 어렵다. 국난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추기경님을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내자. 오풍연 법조대기자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묻지 마/황진선 논설위원

    집들이 초대를 받았다. 알려준 대로 택시를 타고 지하철 역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를 찾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한 초저녁이었다. 하지만 친구가 사는 아파트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침 반듯한 옷차림의 소녀가 지나고 있었다. 여고생인 듯했다. “저기요, C아파트가 어디인가요?” “모르는데요.” 단박에 답이 돌아왔다. 마치 못 볼 사람이라도 본 듯,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듯 사뭇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C아파트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하튼 알아도 가르쳐 줄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연쇄 살인사건이 떠올랐다. 내 모습이 무서웠나 자문해 봤지만 누구에게도 똑같이 대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의 광풍 속에 가슴에 갑옷을 껴입고 비수를 품고 살아간다. 이제 길을 묻는 사람에게도 겁을 집어 먹고 비수 같은 말을 던지는 세상이 됐다. 나그네를 후하게 접대하고 쉴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이 우리의 미덕이었다. 우리는 과연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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