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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나라꽃/노주석 논설위원

    남쪽 땅 진도에서 코끝을 찌르는 화신이 전해졌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으로 왜선 133척을 무찌른 명량해전의 격전지 울돌목이 바라보이는 해안가에 무궁화가 지천으로 피었다는 전갈이다. ‘진도 나라꽃 무궁화 전시회’가 진도군 녹진 무궁화동산 일대에서 6일까지 화려하게 펼쳐진다고 한다. 필자는 지난 4월 ‘무궁화를 보고 싶다’라는 칼럼에서 벚꽃에게조차 구박받는 나라꽃 무궁화의 딱한 처지를 개탄한 적이 있었다. 벚꽃축제는 곳곳에서 열리지만 무궁화잔치는 눈을 씻어도 찾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했다.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 진돗개의 고장,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울돌목의 급류 흐르는 소리가 20리 밖까지 들리는 진도에서는 무궁화가 온전한 대접을 받는다. 피고 지기를 백일 동안 거듭하는 흐드러진 무궁화 꽃길이 220㎞에 걸쳐 펼쳐진다. 무궁화는 진도의 가로수인 셈이다. ‘무궁화 화가’ 길산 김길록화백이 재촉한다. “아따. 내려와서 눈으로 보라니까, 그러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만리포/오일만 논설위원

    35년 만에 만리포에 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너울거리는 파도를 처음 본 곳이 만리포였다. 바닷가 어귀에서 처음 접했던, 그 비릿하고 싱싱한 바다 내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교통편은 열악했다. 서울역에서 홍성까지 완행 열차를 타고 서너 시간 시골길을 달려야 했다. 비포장도로가 어찌나 울퉁불퉁했던지 며칠 동안 엉덩이가 얼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도착하자마자 달려간 곳은 방파제 옆 갯바위였다. 갯바위 가득 하얗게 달라붙은 굴들은 여전했다. 물놀이 하다 지치면 굴을 따먹고 먹다 남은 굴을 낚시 미끼로 썼던 기억이 난다. 해변의 밤도 많이 변했다. 야영장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기타 소리에 맞춰 맘껏 소리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나이트클럽에서 울려 나오는 음악 소리가 해변을 메울 뿐이다. 문득 만리포의 밤하늘을 바라봤다. 35년 전 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무슨 꿈을 그렸는지 기억은 없다.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사주팔자에 강하게 껴 있다는 역마살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구두/박정현 논설위원

    사위는 어느날 장인으로부터 구두 한 켤레를 받는다. 상자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지만 상자 안의 갈색 구두는 계속 손을 봐온 듯 여전히 반짝거린다. 동남아 지역의 섬 이름이 상표인, 나름대로 명품 구두다. 장인은 구두를 건네면서 “이제는 구두를 신을 일이 별로 없네. 자네와 신발 치수가 비슷하니 자네가 신도록 하게.”라고 하신다. 15년 전 사위로부터 받은 선물이지만 아끼다가 한 번도 신지 않았다고 한다. 사위는 언제 어디서 사 드렸는지 기억이 없다. 아무리 아까워도 어떻게 15년 동안 신지 않고 고이 보관해왔을까. 장인은 사위로부터 받은 선물을 되돌려주는 게 마음에 걸린 듯 미안한 표정이다. 올해 75세인 장인은 “이제는 구두보다 운동화가 더 편해.”라고 하신다. 구두는 사위의 발에도 대략 맞는다. 하지만 사위는 구두를 상자에 넣어 조용히 신발장에 올려놓는다. 아무래도 구두를 신지 못할 것 같다. 15년 동안 장인이 아끼고 신지 않던 구두가 아니던가. 세상 만사에서 때가 중요한 것 같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길섶에서] 단기 출가/함혜리 논설위원

    전화 저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하루 6시간 정도 좌선합니다. 머무시는 동안 묵언입니다. 오후엔 불식(不食)입니다. 그래도 참여하시겠습니까?” 순간 온갖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얼마나 힘이 들까. 몸에 무리가 오면 어떻게 하지.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왕에 가기로 마음 먹은 일. 걱정들을 떨쳐 버리며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네. 갑니다.” 여름 휴가 동안 땅끝마을 해남의 미황사에서 하는 7박8일간의 단기출가 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에 참여했다. 결정하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절에 도착한 순간부터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오롯이 ‘나’에 집중하도록 짜여진 수행 프로그램도 좋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것은 미황사를 감싸고 있는 멋진 자연이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달마산의 장엄한 풍광, 맑은 공기와 산새 소리, 세속의 먼지를 날려버릴 듯한 바람…. 그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생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이었다. 아!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캠핑/오일만 논설위원

    지난해 여름 중학생 막내아들과 함께 동해안으로 떠났다. 강릉에서 7번 국도를 달리다 그림 같은 해안선에 취했다. 계획에 없던 ‘충동 여행’이었다. 망상 해수욕장에 내려 민박을 찾았지만 방 구하기가 쉽지 않다. 혹시나 해서 가져온 텐트를 치기로 했다. 출발 전 아들놈은 10년전쯤 가족 캠핑을 그리워했다. 당시 캠핑 도구를 산더미처럼 싣고 강원도를 헤맨 적이 있다. 오대산과 인제 내린천, 강릉 경포대를 오갔던 추억이 아련하다. 10년전을 생각하며 야영장에서 직접 밥도 해먹고 파도소리 들으며 밤하늘 가득한 별들을 이불 삼아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주문진에서 낚싯배에 올랐다. 막내아들은 첫 출정이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아들놈이 제법 큰 도다리를 잡았다. 좋아서 소리소리 지른다. 10여수나 낚았다. 회를 좋아하는 우리 부자는 자연산 회로 포식했다. 된장 매운탕 맛은 지금 생각해도 일품이다. 아들놈과 이번 여름 휴가에도 캠핑을 하기로 했다. 예약도 필요없고 방 걱정도 없다. 자유롭게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신 부자유친/박재범 논설실장

    고전을 읽다 보면 자신의 미흡함을 크게 느끼게 된다. 대표적인 게 삼십 이립에 사십 불혹, 오십 지천명 등의 경구이다. 범부필부로서 성인의 말씀을 전혀 따르지 못한다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더욱 어려운 문제가 오륜이다. 뭣 하나 쉬운 게 있으랴마는 특히 부자유친이 어렵다. 자칫하면 아버지는 아들과 견원지간이 되고, 어머니는 딸과 빙탄지간이 될 수 있다. 자녀가 독립성을 강하게 내세울 즈음 부모가 자녀와의 관계를 현명하게 풀어 나가지 못하면 서로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한 동료는 올초 대학에 들어간 아들에게 단골인 집 부근 생맥주집을 소개해 줬다고 했다.그는 “친구들과 마시고 외상으로 해 놔라. 아버지가 틈나는 대로 갚을게.”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기미가 보인다고 했다. 아들이 생맥주집에 달아 놓는 돈이 월 10만원쯤 된단다. 10만원을 용돈으로 직접 주는 것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부자유친이란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친구처럼 지내라는 뜻이 아닐까. 박재범 논설실장 jaebum@seoul.co.kr
  • [길섶에서] 3파운드 우주/김종면 논설위원

    약 1000억개의 신경단위 혹은 신경세포로 이뤄진 인간의 뇌를 과학자들은 ‘3파운드 우주’라고 부른다. 뇌가 완벽하게 기능하면 만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해 ‘신의 약국’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그 무한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뇌 용량의 4∼10%밖에 활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뇌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뇌에 안식을 주는 요가명상 수행자도 많고 브레인 트레이너(두뇌교육사) 강좌도 인기다. 바야흐로 뇌력의 시대다. 두뇌경쟁 사회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자신을 한번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 추종자라면 더욱 그렇다. 가벼운 음주조차 뇌세포를 죽인다고 하지 않나. ‘필름 끊김’ 증상을 겪는 단계라면 이미 뇌손상이 시작됐다는 징후다. 두뇌력 계발은 고사하고 퇴행만이라도 막아야겠다. 잃어버린 나날,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언젠가 들은 이탈리아 속담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반지를 잃어버렸다 해도 내겐 여전히 손가락이 남아 있어….”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영혼의 감기/노주석 논설위원

    최근 5년 사이 우울증 치료제인 ‘항우울제’ 소비량이 52% 늘어났다고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1년에 320만명 정도 우울증환자가 발병하는데 여성이 남성에 비해 2배 정도 높다고 한다. 여자의 10~25%, 남자의 5~12% 정도가 평생 한번은 우울증에 걸린다고 적혀 있다. 링컨 대통령도 우울증을 앓았다. 두 번의 우울증 발작으로 동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정도의 중증이었다. 그 이후는 고질병이었다. 미국의 문필가 조슈아 솅크가 쓴 ‘링컨의 우울증’이라는 책을 보면 링컨은 자신의 우울증을 이해하고 수용했다. 비록 자살을 노래했지만 꺾이지 않았다. 유머로 우울증에 맞섰다. 유머는 무드 스윙과 우울함의 배출구였다. 솅크는 링컨의 위대함은 우울증에서 비롯됐다고 결론 내렸다. 현대인의 우울증은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자책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감기에 걸리듯 흔한 마음병이다. 그래서 ‘영혼의 감기’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링컨의 유머처럼 마음 한번 바꿔 먹기에 따라 십중팔구 완치된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멜로의 제왕/진경호 논설위원

    ‘멜로의 제왕’ L씨와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행운을 얻었다. 드라마가 바뀔지언정 주인공은 붙박이로 꿰어찼던 그의 그윽한 눈매와 미소, 부드러운 음성은 세월조차 비켜간 듯 그대로였다. 6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기자로서의 짓궂음, 여기에 체내에 적당히 쌓인 알코올에 힘입어 예의 불문의 질문들을 쏟아냈다. “유혹이 많았을 텐데 어찌 스캔들 한번 없었나요. 소문 안 난 비결이 뭡니까.” “멜로 주인공만 도맡으셨는데 사람이 그리 없었나요.” “돈 많이 버셨죠.” 허허 하는 웃음 속에 이어진 답변들은 시간이 갈수록 꼬은 다리를 풀고 자세를 고쳐 앉게 했다. 다시 선 연극무대가 부끄럽지 않도록 30년 피운 담배를 끊은 얘기, 연기인으로 죽으려 여자는 드라마에서만 만났던 얘기, 모친과 장모를 함께 모시고 사는 얘기, 후배 연기자들의 대박주의를 걱정하는 얘기. “지금은 건강이 받쳐주니까 태우시되, 언제고 저처럼 한번 끊어야겠다 싶으시면 그땐 미련없이 끊으세요.” 초침(秒針)마저 졸게 만드는 여유로움, 진정 멜로의 제왕이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로드 페로몬/노주석 논설위원

    휴가철이다. 여행이란 우연히 만난 상대랑 운명처럼 아름다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다. 그런 사랑은 모두의 로망이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훌쩍 떠나고 싶어하지만 돈, 시간, 사정이 허락하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결단결핍증’일 수도 있다. 다른 것은 다 핑계다. 길 감식가를 자청하는 후배가 이 땅의 후천성 샛길증후군 환자들을 위한 샛길 예찬론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노동효 지음, 나무발전소 펴냄)’를 펴냈다. ‘두손모아 지구별에서 즐거운 여행!’이라는 글을 적어 책을 보내왔다. 이 땅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샛길의 비경이 가득하다. 샛길 보물지도 같다. 결혼은 패키지 여행이라고 주장한다. 상대의 조건을 보고, 능력을 맞추고, 정해진 곳에서 만남을 가지기 때문이란다. 그런 짜여진 길은 가지 말 것을 권고한다. 우연히 만난 길과 사랑에 빠지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획되지 않은 여행을 떠나라고 말한다. 부다페스트에서 빈으로 가는 기차간에서 셀린을 만난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처럼.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반차도(班次圖)/노주석 논설위원

    서울 청계천 종로2가 어름에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자기타일 벽화로 그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그림을 본다. 외국인들도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다들 사실적 묘사라며 감탄한다. 어느날 “이 그림에 등장하는 말이 몇 필이나 되는지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어 “분명히 뻥튀기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이 그림, 정확하게 ‘반차도’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반차도는 그림으로 그린 행사 계획도이고, 책으로 묶은 것이 의궤(儀軌)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의궤는 세계에서 유일한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이다. 의식의 규범이기 때문에 한치의 오차나 과장이 있을 수 없다. 이 그림은 실재하는 1300쪽 중 극히 일부다. 정조가 수원으로 행차한 8일간의 ‘모든 기록’이 그려져 있다. 정조는 물론 병사가 먹은 반찬의 종류와 재료, 양까지 죄다 포함돼 있다. 참고로 반차도에 등장하는 사람은 1799명이고 말은 779필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명품/박정현 논설위원

    명품은 항상 말썽이다.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부인이 샀다던 3000달러짜리 샤넬 핸드백은 그가 검찰총장이 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가 되고 말았다. 이쯤 되면 고위공직자 잡는 명품이다. 명품 가방을 놓고 사소한 다툼을 벌이는 부부도 적지 않으리라. 진짜 명품이든 짝퉁이든 간에 명품 하나 갖지 않은 여성이 얼마나 될까.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소비자들의 심리는 가격 상승을 불러온다. 명품 선호도에 따라 그 나라의 명품 판매 가격이 정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명품 가격은 다른 나라의 1.3배로 알려진다. 그러니 여름 휴가 때 아예 홍콩으로 가 명품 쇼핑을 하고 오면 비행기 값이 빠진다고 한다. 아내에게 3000달러짜리 명품 핸드백이 어떤 것인지 물어 봤다. 대화 끝에 아내가 명품과 짝퉁 구별법을 알려 준다. 우산도 없이 비가 갑자기 내릴 때 머리 위로 가방을 가져 가면 짝퉁, 가슴에 품으면 명품이라는 것이다. 사람 잡는 게 명품이지만, 짝퉁은 비오는 날에 머리라도 보호할 수 있지 않은가.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길섶에서] 명예 살인/김성호 논설위원

    1937년 세계를 감동시킨 ‘세기의 결혼식’이 있었다. 영국왕 에드워드 8세와 미국 유부녀 심슨의 결혼. 사랑을 위해 왕좌를 박찬 왕, 그리고 왕관까지 버리게 만든 이혼녀. 보통사람 눈에 그 결혼은 분명 ‘일탈의 맺음’이었다. 그 맺음의 고리는 초월적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숨겨진 각별한 사연이 있었을까. 사우디아라비아 공주님이 망명을 했단다. 런던여행길에 만난 영국인과의 사랑서 얻은 아기를 영국으로 건너가 몰래 낳았다는데. 그것도 함께 사는 사우디왕족 남편을 속인 채 영국으로 대동해서. 아랍 부국의 공주자리도 버릴 만큼 영국남자가 그리 좋았을까. 영국 법원은 망명신청을 받아들였단다. 공주의 튀는 로맨스만으로 보기엔 전하는 사연이 조금 슬프다. 명예살인. 순결을 잃거나 혼외정사한 여인을 아버지 아니면 오빠가 죽여 없애는 이슬람 율법상의 잔혹 처벌. 공주는 혼외정사가 발각돼 가족에게 명예살인을 당할 운명이었다는데. 사랑일까, 견딜 수 없는 악법세상으로부터의 목숨 건 탈출일까. 공주님 속을 어찌 알랴.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차이/박정현 논설위원

    원하지 않아도 하루에 수십통씩의 이 메일을 받아야 한다. 열어보는 메일이 과연 몇 개나 될까. 스팸 메일 삭제가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된 지 오래다. 기계적으로 삭제 키를 누르다가 손가락이 주춤한다. 제목에 있는 지인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자칫했으면 삭제할 뻔했다. 감사의 편지다. 고위공직자에서 교수로 전직한 지인은 새로운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소회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책을 읽고 공부하고 글쓰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을 하면서 학교생활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수와 공무원의 차이를 설명했다. 복잡한 것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하고 보고하는 게 공직사회의 문화라면 교수사회는 적응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간단한 것을 복잡하고 논리적으로, 길게 얘기하는 게 많다고 한다. 회의도 많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말만 많아지지 않을까 늘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조심이라기보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교수에서 장관 같은 공직에 들어간 이들은 차이점을 어떻게 느낄까 궁금해진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길섶에서] 심봤다/박재범 논설실장

    몇해 전 부족한 운동을 보충할 겸 심마니를 따라다닌 적이 있다. 봄가을로 주말마다 길조차 나있지 않은 산을 헤집고 다녔다. 인적 끊긴 산에는 새들만 재자거릴 뿐이었다. 예닐곱시간 곡괭이 한자루 들고 홀로 깊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땀이 비오듯 흐른다. 절로 세속 번잡사를 잊는다. 이런 즐거움에 심마니 선생이 “산에 가자.”하고 부르면 만사를 제쳐놓고 쫓아다녔다. 심마니 선생이 “여기를 잘 둘러보라.”고 알려준 곳을 한참 들여다보다 처음으로 아주 작은 산삼을 찾아냈었다. 70년대 말 화제를 모았던 배우 이대근·유지인 주연의 영화 ‘심봤다’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심봤다.”라고 소리쳤다. 심마니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다른 심마니에게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라고. 심마니 간의 갈등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관습법이 바로 “심봤다.”였다. 어렵사리 산삼을 캐낸 기쁨에서 우러난 탄성이라고 알던 것과 사뭇 달랐다. 부끄러웠다. 작은 지식과 경험만으로 나부댄 스스로의 경조부박 때문에. 박재범 논설실장 jaebum@seoul.co.kr
  • [길섶에서] 견지낚시/오일만 논설위원

    홍천강 상류를 따라 꼬불꼬불 올라간다. 팔봉산을 바라보며 강물이 굽이치는 어귀에 반곡마을이 보인다. 최근에 포장도로가 생겨 가기가 쉬워졌다. 제법 물살이 급하다가 완만하게 쉬어 가는 곳을 찾는다. 여기가 견지낚시 포인트다. 무더운 여름날엔 견지낚시만 한 피서가 없다. 흐르는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짜릿한 손맛을 느낀다. 쉬리나 피라미 몇수로 갈증을 달래다 힘이 좋은 누치를 만나 해갈을 한다. 여울물을 힘차게 거슬러 올라오는 누치의 모습은 정말 예술이다.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 속에 서 있으면 내가 강물인지, 강물이 나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런 게 자연합일인가. 저녁무렵 감자를 썰고 고추장을 풀어 매운탕까지 맛보는 날도 있다. 대학 시절 캠핑의 추억들, 부글부글 끓는 꽁치 통조림 매운탕 앞에서 군침을 흘리는 내가 보인다. 견지의 매력은 원시적인 생동감이다. 낚싯줄에서 바로 느껴지는 입질의 생생함, 말로 표현이 어렵다. 피라미가 걸려도 월척의 손맛과 진배없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남산 즐기기/노주석 논설위원

    서울에서 산 지 30년째다. 나의 ‘컨트리 혈통’은 서울 사람들은 잘 타지 않는 남산 케이블카나 한강 유람선 밝힘증 때문에 들통난다. 남산 주변에 집을 구한 것도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 와서 처음 타 본 남산 케이블카에 대한 짜릿한 추억 때문인지 모르겠다. 주말이면 금호산을 거쳐 매봉산을 지나 남산으로 오르는 산책코스를 애용한다. 대개 점심 먹으러 명동 쪽으로 하산한다. 남산3호터널 입구는 N타워에서 명동으로 내려가는 여러 갈래 길 중 하나다. 그때마다 명동에서 남산으로 손쉽게 올라갈 수 있는 시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궁즉통이라 했던가. 이곳에서 남산케이블카 승강장까지 70m를 2분 만에 오르는 무료 실외형 경사 엘리베이터 ‘남산 오르미’가 지난달 말 개통됐다. 알아보니 15일 현재 무려 3만 5730명이 이용할 만큼 인기 ‘캡’이다. 주변 보도블록도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명동 쪽에서 출발해 오르미와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에 오르는 역산행을 시도해 보리라. 남산 100배 즐기기가 흥겹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감옥서 온 편지/함혜리 논설위원

    얼마 전 후배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좋은 기사를 쓰도록 노력하자.”고 다짐을 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독자’로부터 온 편지였다. 가끔 이곳저곳에서 보고 난 신문을 모아서 보는데 얼마전 내가 ‘길섶에서’난에 쓴 ‘상팔자’를 읽고는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되살아나 적어 보낸 것이라고 했다. 글에 대한 반박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자신은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고 했다. 평생 속을 썩여도 좋으니 자식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자신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몸이 약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는데 세월이 가면서 자식 하나 없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송구스러웠다. 어차피 없는 자식을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고 쓴 글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게 현명하다. 그런 뜻은 전달되지 않고 아픈 데만 건드린 셈이 됐으니. 글 솜씨를 좀더 키워야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난향/함혜리 논설위원

    화초를 유달리 좋아하고 잘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한 친구는 귀가해서 가족들보다 베란다의 화초에게 먼저 가서 인사를 한다고 한다. 마당의 화초와 대화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는 친구도 있다.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보살핀 화초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잎사귀로 보답한다는 게 그들의 지론이다. 애정과 관심이 모자라서인지, 게으름 때문인지 화초를 잘 키우지 못한다. 잎이 파릇파릇하고 풍성했던 난도 우리 집에만 오면 시들시들하다 말라 죽기 일쑤다. 베란다에 있는 세 개의 난 화분도 거의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은 목마르지 말라고 꾸준히 물을 주고 있다. 하루는 집에 들어갔는데 그윽한 향이 가득했다. 향을 따라가 보니 시들어 버린 줄 알았던 난 하나에 꽃이 피어 있는 것이다. 코를 들이대고 맡아 보니 향기가 기가 막혔다. 조그만 정성에도 이렇게 향기로운 꽃으로 보답해준 난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런 재미 때문에 사람들은 화초 가꾸기에 빠져드나 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서울은 공사중/노주석 논설위원

    출근해서 퇴근하기 전까지 지나는 공사장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봤다. 집 앞 재개발 공사장을 지나자마자 또 다른 신축공사장을 만났다. 청계천 한 쪽길에서는 난데없는 엘리베이터 설치공사가 한창이었고, 청계천 윗길을 넓히는 공사 바리케이드가 걸음을 막는다. 점심약속 장소인 인사동으로 가는 길은 고행길이다. 시청 뒤 무교동길은 이름도 생소한 ‘글로벌 스트리트’ 공사와 공원조성 공사까지 겹쳐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멀쩡하던 인사동길도 마찬가지였다. 얼마전까지 명동을 헤집어놓더니 이제 인사동으로 옮겨간 듯하다.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외국인관광객 볼 낯이 없었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공사가 진행중인 이유가 궁금했다. 해답을 찾았다. 올 들어 6월까지 서울시내 보도블록 교체공사만 모두 87건이고, 이유는 재정조기집행 때문이었다.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말이 나옴 직하건만 다들 묵묵하게 제 갈길을 간다. 대단한 인내심이다. 불편함에 깊이 길들여졌기 때문이리라. 아! 고달픈 ‘시민고객’들이여.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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