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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실종/김성호 논설위원

    변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아니 사라졌다고 할까. 상전벽해라더니. 여기엔 키 큰 느티나무가 섰었는데. 저 모퉁이엔 연탄집이 있었고. 건너편 점방 앞 나무의자엔 항상 혹부리 할머니가 앉아 졸고 있었지. 그 모든 것들, 모든 사람들은 사라지고. 너른 4차선 도로만 휑하니 저문 기억들을 삼키고 있네. 오랜만에 달려 보는 고향길. 어른들은 신작로라 불렀었지. 신작로라야 반포장의 울퉁불퉁한 좁은 길이었는데. 결혼하고 등졌으니 22년이 흘렀네. 논밭은 오간데 없고 아파트 숲만 울창한데. 죽마고우들은 어디서 뭘 하는지. 하기야 변하고 없어지는 것들이 하나 둘인가.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무거울까. 차를 되돌려 옛날의 그 신작로를 천천히 다시 가본다. 잃어버린 22년을 되살리려 애를 써봐도 기억은 가물가물. 실종이다. 어리고 푸른 눈에 세상은 넓기만 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지금 나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사라져 버린 것들은 되돌릴 수 없고. 아니 사라진 것은 고향, 신작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닐까. 실종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풀꽃단상/김종면 논설위원

    북한산 향로봉서 뻗어 내린 탕춘대 능선 자락. 얼마 전 동네 뒤 자연 탐방로가 새 단장을 했다. 언덕 비탈에 나무계단이 촘촘히 깔렸고 한 편엔 야생초 화단이 올망졸망 들어섰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데 북한산 풀잎은 여전히 촉촉하고 햇살은 시들 줄 모른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는 탓일까. 시인의 노래처럼 이제 초록이 지쳐 단풍들 때도 되었건만 북한산의 풀 나무는 영 이별을 마다한다. 오늘도 호젓한 산길을 지나 일터로 간다. 길섶의 이름모를 풀들을 잠시나마 들여다보는 게 내겐 위안이다. 간지러운 실바람에도 고갯짓하는 볼품없는 자잘한 꽃망울, 하늘거리는 가녀린 목줄기가 눈물겹다. 그 소박한 이름은 천의무봉아닌가. 오늘 한 떨기 풀꽃을 생각하며 걸었다. 우리나라에는 울릉도에서만 자란다는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기침에 특효가 있어 천식약풀이라고도 불리는 생명초. 헐떡이풀이다. 허위단심으로 산길을 오르다가 붙여진 이름 아닐까. 우리네 숨가쁜 세상살이가 헐떡이풀, 네 이름 같구나.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거울/진경호 논설위원

    본 적이 없는 동문의 책은 늘 설렘으로 다가온다. 이런 사람이 있었던가. 그때 그가 내쉰 공기를 내가 마셨었던가. 그는 어디로 여기까지 걸어왔던가. 그가 하는 말을 좇아 손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은 시간의 갈피를 뒤로 넘긴다. 그와 마주쳤을 그때 그곳을 더듬곤 한다. 책으로만 봤던 동문 K를 엊그제 눈으로 봤다. 동문 몇과 함께 그를 만났다. 일간지 기자를 했고, 많은 CEO들을 인터뷰했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그들을 씨줄날줄로 엮어 책을 냈고, 유명 민간연구소에서 강연을 하는 K. 밑줄 긋게 만드는 글발로 소개한 CEO들의 자질을 죄다 빼내 모은 듯한 오라(aura). 초면(初面)의 어색함은 술이 아니라 숱한 만남이 빚어낸 그의 향기에 녹아내렸다. 추억을 공유해서일까. 대화는 경계를 몰랐다. 이리 말해도 끄덕, 저리 말해도 끄덕. 이튿날 K가 메일로 말했다. “80년대 한 하늘 같은 자리에서 함께 숨 쉬었다는 것…유리창 너머가 아니라 거울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우린 거울 앞에서 잔을 들었던 게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직업병/오일만 논설위원

    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몰이를 한다. 시청률이 40%가 넘는다. 며칠 전 가족들과 이 드라마를 시청할 기회가 있었다. 김유신과 덕만(선덕여왕)과의 로맨스가 한창 진행 중이다. 역사서를 보면 김유신이 선덕여왕보다 나이가 어리다. 주인공 미실도 허구의 가능성이 크다. 미실의 존재가 기술된 ‘화랑세기’를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선덕여왕 즉위 이전에 사망했다. 역사적 허구가 가득한 드라마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도 모르게 툭 던졌다. 아내는 “제발 김 빼지 말아 달라.”며 퉁명스러운 반응이다. 본전도 못 찾았다. 아들 놈은 한술 더 뜬다. “아빠는 왜 늘 비평만 해”. 뭔가 머리를 때리는 듯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기자란 직업은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다소 부정적이다. 병아리 기자 때부터 행간을 읽고 이면을 캐내는 데 익숙해져 있다. 보도자료가 나와도 숨은 의도부터 찾는다. 어느 순간 소설보다 논픽션을 찾게 된 것도 비슷하다. 사실과 진실에 대한 집착이 직업병으로 변한 느낌이다. 고황에 들기 전에 고쳐야 하는데….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사소한 자극/함혜리 논설위원

    크게 웃고, 크게 말하고, 화장이나 옷차림도 화려한 친구가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여전히 생기발랄했다. 그런데 친구의 말이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왜 그랬는지, 또 어떻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는지 그 계기가 참 재미있다. 이제는 조용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부터 모든 코드가 ‘한물 간 사람’에 맞춰지더란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했던 친구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멈췄고, 옷도 되도록이면 수수하게 차려입었다. “이 나이에 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친구가 의욕을 되찾게 된 것은 바로 손톱의 매니큐어였다. “야한 색깔의 매니큐어를 칠해 봤는데 그게 그렇게 신선한 자극을 주더라. 손톱을 보며 깨달았어. 나에게 아직 많은 시간과 기회가 남아 있다는 걸.”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가 과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들은 사실 이런 사소한 자극들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약속/김성호 논설위원

    30년 전, 검은 교복에 몸을 가둬 살던 시절. 느닷없는 충격에 어리둥절해야만 했다. 대통령의 서거, 그것도 총격에 의한 급거라는. 라디오에 흐르는 장송곡조의 선율은 왜 그리 생뚱맞았는지. 진실은 알 수 없었고 알려주는 이도 없던 시절. 철부지들은 나름대로 왁자하게 무슨 말들을 주고받았는데. 전직 대통령의 서거. 30년 전의 충격에 얹혔을까. 늦은 밤 몸을 뒤척이다 책장에서 빼어든 고등학교 졸업앨범. 촘촘히 박힌 동그란 얼굴들이 새롭다. 어디서 뭘하며 살고들 있는지. 대통령의 죽음에 오늘 밤, 30년 전의 철없던 말들을 떠올리고 있지는 않을까. 추억의 얼굴 여행을 하다가 시선이 꽃힌 한 녀석. 맘이 통해 단짝처럼 어울려 다녔는데.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더니 이민을 가 외국인이 되었고. 30년 전 그날 유난히 대통령의 죽음을 서러워했던 친구. 오늘밤엔 뭔 생각을 할까. 앨범 갈피에 접힌 약속 메모. ‘30년 후 크리스마스 정오, 덕수궁 돌담에서 만나자 OOO’ 그러고 보니 올해가 아닌가. 한데 친구는 기억이나 하고 있으려나.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33) 동해 댓재~두타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33) 동해 댓재~두타산

    여름이 끝물이지만 맹위를 떨치는 늦더위에 시원한 계곡이 간절해진다. 여름 산의 보물은 계곡 말고도 높은 능선에 있다. 1000m가 넘는 산은 서늘한 공기를 내뿜고, 길섶에는 기화요초가 만발한다. 여름이 가기 전에 두타산(1353m)에 올라 웅장하게 흘러가는 백두대간을 감상하고 그 유명한 무릉계곡에 발을 담가 보자. ●백두대간 종주로 알려진 댓재 길 강원도 동해시의 두타산은 바다 가까이 백두대간 능선이 흐르는 구간이다. 두타산 하면 무릉계곡을 품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1300∼1400m급 웅장한 능선과 온갖 야생화와 약초가 그득한 곳이다. 그래서 여름철 능선과 계곡을 모두 즐기는 산행지로 그만이다. 산행 코스는 댓재에서 출발해 두타산까지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오르고, 하산 길에 무릉계곡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산행 들머리인 댓재(810m)는 백두대간 산꾼들만 찾는 곳이었는데, 두타산 등산객들이 몰리면서 제법 사람들이 늘어났다. 댓재 산신각 옆을 지나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여기서 두타산까지는 6㎞ 남짓, 시간은 2시간30분쯤 걸린다. 원시숲이 내뿜는 달고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30분쯤 가면 작은 봉우리 햇댓등에 올라붙는다. 햇댓등 부근에는 유독 밑동 굵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그득하다. 춘양에서 보았던 금강소나무처럼 미끈하지는 않지만 굵고 단단해 보인다. 사람이 관리하는 소나무에서 볼 수 없는 야성이 흘러넘친다. 햇댓등에서 두타산까지는 고도를 약 450m 끌어올리는 길. 부침이 심하진 않지만 뚝뚝 땀을 흘리며 묵묵히 걸어야 한다. 두타산의 두타(頭陀)가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 불교 용어라 그런지, 한걸음 한걸음이 고행처럼 느껴진다. 산행이 수행보다 좋은 점은 누구나 땀을 흘리면 정상을 만난다는 점이다. 통골목이(통골재)는 댓재와 두타산의 중간지점으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댓재, 햇댓등, 명주목이, 통골목이… 그러고 보니 지나온 곳마다 이름이 예쁘다. 통골목이에서 두타산 전위봉 격인 1243봉까지 가파른 오르막이 고비다. 1243봉부터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은 그야말로 천상화원. 말나리, 동자꽃, 모시대, 풀솜대, 눈개승마 등이 길섶에서 자꾸 발목을 붙잡는다. 실컷 꽃구경을 하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면 잡목들이 한순간 사라지고 널찍한 두타산 정상이 나타난다. 산정은 그동안 답답한 시야를 보상하듯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다. 북쪽으로 청옥산(1403m)의 넉넉한 품은 달려가 안기고 싶고, 그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출렁이는 백두대간 능선은 참으로 통쾌하다. 백두대간 능선이 감싼 깊은 계곡이 바로 무릉계곡이다.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니 아스라이 찰랑거리는 동해가 두타산 발끝을 간질이고 있다. ●두타산의 숨은 보물, 두타산성 하산은 청옥산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르지 않고, ‘무릉계곡 관리사무소’란 팻말이 붙은 북쪽 능선을 따른다. 그 이유는 두타산성을 보기 위해서다. 20분쯤 내려오면 왼쪽으로 조망이 트이는데, 놀랍게도 청옥산으로 이어진 능선 조망이 두타산 정상보다 빼어나다. 과연 명불허전, 두타산이 백두대간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산세를 가진 곳 중의 하나라는 명성이 헛되지 않다. 이어지는 쉰움산 갈림길에서 무릉계곡 방향을 따라 20분쯤 내려가면 고풍스러운 소나무들과 빼어난 암봉이 어우러져 선경을 연출한다. 이곳이 두타산이 꼭꼭 숨긴 보물인 두타산성이다. 산성은 1414년 조선 태종 때 축성했다고 전해지나 102년 신라 파사왕 때 처음 쌓았다고도 한다. 이처럼 빼어난 장소를 우리의 선인들이 그냥 놔둘 리 없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1224~1300)가 이곳에 은거하며 스스로 두타산거사(頭陀山居士)라 불렀다고 한다. 한민족이 단군을 시조로 한 단일민족임을 처음으로 밝힌 역사서 제왕운기(帝王韻紀)는 이곳에서 탄생하게 된다. 두타산성을 내려와 산성십이폭을 지나면 드디어 무릉계곡으로 떨어진다. 이곳에서는 무조건 쌍폭과 용추폭포를 감상해야 한다. 쌍폭은 바른골에서 용추폭포를 거친 물과 박달골에서 내려온 물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이루어낸 자연의 걸작품으로 쌍갈래의 폭포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2분 거리의 용추폭포는 상담, 중담, 하담으로 나누어진다. 상담과 중담은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어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보여주며, 하담은 마치 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선경을 보여준다. 이제 계곡에 탁족하는 시간만 남았다. 신발끈을 풀고 첨벙! 발을 담그면 이것이 우화등선(羽化登仙) 아닌가. 글 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동해시내에서 무릉계곡까지 버스가 수시로(06:30~21:00) 다니며 30분 걸린다. 댓재는 삼척시외버스터미널(033-572-2085)에서 1일 3회(07:30, 13:30, 16:30) 운행하는 광동행 버스를 이용한다. 무릉계곡 입구에는 민박을 겸하는 맛있는 식당이 많다. 김원기 전 백두대간 보존회장이 운영하는 반석상회(033-534-8382)의 산채비빔밥과 더덕구이가 산꾼들에게 인기다.
  • [길섶에서] 왕릉/박정현 논설위원

    늦더위를 피할 겸 경기도 고양의 서오릉을 찾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소풍을 갔던 곳이다. 서울에서 지척이건만 35년만의 방문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김밥을 먹던 장소와 친구들을 떠올려 보지만 기억이 없다. 당시에는 엄청나게 느껴졌던 왕릉들이 줄어든 듯한 느낌은 세월의 반영일 게다. 학생들의 소풍 장소였던 서오릉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그래서인지 안내 표지판들이 새롭다. 경릉·창릉·익릉·명릉·홍릉 가운데 경릉이 눈길을 끈다. 성종의 아버지 의경세자의 무덤인 경릉은 여느 왕릉과는 다르다. 왕이 오른쪽에, 왕비가 왼쪽에 모셔지던 관행과 달리 왕비가 오른쪽에 위치한 유일한 여성 상위 왕릉이다. 의경세자는 덕종으로 추존됐지만 인수대비인 부인의 생전 지위가 높았기 때문이란다. 이오장의 시집 ‘왕릉’을 펼쳐본다. 시인은 “망주석 한 없는 무덤일지라도 / 나에겐 넘치는 자리…높낮이 따져 무엇하리”라고 전한다. 왕릉과 함께 우리의 역사도 함께 보전해야 할 것 같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길섶에서] 삶의 무게/노주석 논설위원

    서울 다동 대우조선해양 빌딩 앞마당에 거무튀튀한 철제구조물이 놓여 있다. 실물크기의 닻이다. 높이 6m, 폭 3m를 넘는 거물(巨物)이다. 32만t급 유조선이 정박할 때 사용하는 닻과 동일 크기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무게다. 실물의 중량이 무려 2만 4500㎏이란다. 거대한 유조선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닻의 무게감이 실감난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돈을 빌려주는 대신 ‘1파운드의 살덩이(a pounds of flesh)’를 요구한다. 영화 ‘세븐 파운드’에서 주인공 윌 스미스는 7개의 장기(臟器)를 남기고 자살한다. 세븐 파운드는 7개의 살덩어리를 말한다. 1파운드는 계량이 불가능한 생명을 뜻하지만, 속세의 무게로는 453g에 불과하다. 어느 여가수는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노래했다. 골프 초심자는 힘을 빼고 채의 무게를 느끼라고 배운다. 낚시의 손맛도 같은 이치이리라. 삶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서 나를 머무르게 하는 닻의 실체는 무엇일까. 무게는 또 얼마나 될까.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절반의 성공/오일만 논설위원

    늦더위가 한창인 지난 주말, 김장준비에 들어갔다. 8월 중에 무와 배추 파종을 해야 늦가을 추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 4월에 심은 상추와 고추, 방울토마토는 뿌리째 뽑았다. 거름을 주고 복합 비료를 뿌려 흙속에 새로운 자양분을 줬다. 20평 남짓한 텃밭이지만 흐르는 땀이 장난이 아니다. 그나마 아내와 아들, 장인, 동서 모두가 합세해 한두 시간 내에 끝냈다. 상반기 농사 성적표는 절반의 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상추와 방울토마토는 그럭저럭 재미를 봤지만 고추 농사는 실패했다. 장마 끝에 탄저병에 걸렸다. 비를 싫어해 두툼하게 둔덕을 만들어야 하는데 되레 고랑을 만든 게 화근이 됐다. 하나하나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말라죽은 고추에겐 미안한 마음이다. 배추 농사는 처음이라 고추처럼 될까봐 걱정도 앞선다. 벌레도 많이 먹고 잔손도 많이 간다는데…. 때로는 귀찮기도 하지만 주말농장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뿌린 대로 거두고,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땀의 의미를 요즘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도시와 산] (20) 안동 학가산

    [도시와 산] (20) 안동 학가산

    백두대간에서 힘차게 뻗어 나온 문수지맥이 남쪽으로 내달리다 마지막으로 불끈 치솟았다. 경북 안동과 예천군 경계에 있는 학가산(鶴駕山·882m)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하늘로 비상하는 학을 닮아 이렇게 불린다. 안동과 예천주민들은 학가산을 그야말로 진산과 명산으로 여긴다. 산다운 산이 없는 가운데 홀로 산의 풍채를 지녔고, 이 속의 영험한 기를 받아 많은 인재가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영남 인물의 반은 안동·예천에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이를 오로지 학가산의 덕택이라 믿으며 산에 기대어 산다. 지난해 6월에는 학가산 자락의 안동·예천 땅이 나란히 경북의 새천년 도읍지로 결정되는 경사를 맞으면서 학가산은 주민들로부터 더욱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여년간 학가산을 연구하는 안동 길주초교 장두강 교장은 “학가산은 영남의 거령(巨靈), 가장 영적인 산”이라고 평가했다. ●농암·퇴계 등 수많은 인재 배출한 진산 학가산은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신라시대 의상 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인 능인 대사가 학가산에서 법문에 정진한 이래 조선 초까지 불교가 번성했던 곳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학가산 남쪽 자락에는 안동에서 가장 컸다는 광흥사를 비롯한 사찰과 암자가 200여개나 됐다. 사찰 등이 화재로 많이 소실된 지금도 ‘팔(8)방 구(9)암자’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학가산은 봉화와 안동 땅의 청량산과 더불어 ‘산수(山水) 문학’의 보고다. 한국국학진흥원 임노직 수석 연구위원은 “청량산이 퇴계 산수문학의 단일 성지라면 학가산은 예천, 영주 등 경북 북부지역의 수많은 유학자가 산의 골골을 돌아다니며 산수문학을 즐긴 곳”이라고 설명했다. 영남의 각종 문집에는 학가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주옥 같은 시 1000여편과 유산기(기행문) 30여편이 전해진다. 학가산의 문인으로는 농암 이현보, 퇴계 이황, 학봉 김성일, 은둔의 선비였던 청음 김상헌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처럼 학가산은 절경과 함께 문학이 흐르고, 불교의 문화와 정신이 골짜기마다 배어 있다. 고려 공민왕(1330~1374)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홍건적의 2차 침입으로 안동에 몽진 온 공민왕이 쌓은 것으로 알려진 학가산성이다. 성은 허물어지고 터만이 휑한 모습이다. 공민왕은 두 차례나 침입한 홍건적을 전멸시켰지만 국력을 쇠퇴시켜 왕조의 멸망을 재촉한 원인의 하나가 됐다. ●꼬불꼬불해서 행복한 광흥사 코스 인기 안동 쪽 산행코스는 모두 14개다. 광흥사 코스를 택하면 산행의 즐거움과 묘미가 더한다. 정상까지는 2시간 정도. 산 들머리인 천주(天蛛)마을까지 30여분 거리인 등산로는 숲이 울창하다. 흙길은 기름져 비단길같이 부드럽다. 풋풋한 흙냄새와 신선한 공기, 이름 모를 숱한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져 오감이 즐겁다. 평탄한 길은 꼬불꼬불 나 있어 정겹다. 마치 낙원 같다. 길섶에서 만난 윤삼숙(50·여·안동시 옥동)씨는 “등산객들은 이 구간을 ‘행복한 길’이라 한다. 산행을 전후해 몸을 푸는 구간으로는 이만 한 곳이 없다.”며 즐거워했다. 어느새 ‘하늘 거미’ 뜻이 있는 천주마을에 다다른다. 10여가구가 사는 하늘 아래 첫 동네다. 이 마을의 한 노파는 “마을에는 하늘거미가 앞산 복지봉과 뒷산 학가산에 거미줄을 치면 중앙이 마을이 된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들려줬다. 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 식복은 저절로 해결된다는 의미란다. 마을에서 산 정상까지는 선물 보따리가 널렸다. 등산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원시림과 기암괴석, 분재처럼 자란 노송은 길손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놓는다. 정상부에 오르면 능인 대사의 이름을 딴 능인굴이 나온다. 능인이 수행과 포교를 하면서 살았다는 거대한 자연 석굴이다. 굴 막장의 항상 마르지 않는 석간수는 길손에게 반가운 존재다. 학가산의 압권은 단연 정상에서의 조망이다. 정상인 국사봉에 서면 사방이 탁 트인다. 산 아래 무수한 산은 올망졸망 멋을 부리고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줄기가 간간이 시야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청량산과 일월산이, 서쪽, 남쪽, 북쪽으로는 예천, 의성, 영주의 때묻지 않은 산야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장관이다. 경북의 새 천년 도읍지가 들어설 안동 풍천면과 예천 호명면 일원은 용틀임 중이다. 안동시 산악연맹 이홍영(54) 이사는 “전국의 산 정상에서 사방이 모두 바라다보이는 곳은 학가산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산자락엔 온천·메밀밭 등 온통 즐길거리 학가산 자락은 각종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학가산 온천은 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 온천으로 첨가물을 쓰지 않는다. 메밀 꽃이 피는 가을이면 산자락의 안동 북후면 신전리 일대는 온통 하얀색으로 변하다. 메밀밭이 자그마치 20㏊에 달한다. 이 마을 입구를 지키는 수령 400여년의 이른바 ‘김삿갓 소나무’는 또 다른 볼거리다.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이 신전리 석탑사에 들렀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쉬어간 뒤 나뭇가지가 삿갓 모양으로 변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가을이면 신전리와 이웃한 옹천리 일원에서는 ‘안동 학가산 산약(마) 맛 축제’도 열린다. 학가산 예천 북쪽 계곡 140만㎡엔 자연휴양림이 터를 잡았다. 안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학가산 세 이름 안동 “도심 품은 배산” 영주 “앞산 같은 안산” 예천 “해가 뜨는 동산” 경북 안동과 예천, 영주의 중심에 있는 학가산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명칭과 해석이 제각각이다. 이들 지역의 읍지 등은 학가산 혹은 하가산(下柯山·아랫가지 산)이라 하며 안동의 서쪽 40리, 영주의 남쪽 40리, 예천의 동쪽 31리에 있다고 했다. 안동 8경 중 제5경 학가귀운(鶴駕歸雲)편에는 학가산영조삼군(鶴駕山影照三郡)이라는 말이 나온다. 즉 학가산의 그늘이 (이들) 세개 군에 드리운다는 것이다. 18세기 영주 출신의 뛰어난 문필가 송정환은 학가산의 관점에 따라 “안동에서는 작(爵)이 되고, 영주에서는 문(文)이 되고, 예천에서는 부(富)가 된다.”했다. 이는 풍수 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안동에서는 벼슬하는 사람, 영주에선 글쓰는 선비, 예천엔 부자가 많이 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 학가산 구역도 상에는 안동과 예천에 걸쳐 있다. 총 면적 1557㏊의 53%인 826㏊가 안동, 나머지 731㏊는 예천 땅이다. 또 지역마다 산의 위치에 따라 안동은 학가산이 도심을 감싸고 있다 해서 배산, 영주는 앞산이라 안산, 예천은 해가 뜨는 산이라 해 동산이라 한다. 산 정상의 생김새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영주에서는 평평해서 선비봉, 안동에선 울퉁불퉁해 문둥이봉, 예천은 인물이 수려하다 하여 인물봉으로 부른다. 이렇듯 소백산을 명산으로 하는 영주를 뺀 안동과 예천은 서로 학가산을 자기 고장의 명산이라 주장하며 자랑한다. 심지어 안동과 예천은 각각 학가산 정상(예천쪽 870m, 안동쪽 882m)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등 산을 둘러싼 자존심 싸움까지 벌이고 있다. 학가산 자연휴양림 관계자는 “몇 년 전 예천 쪽에서 학가산 정상에 표지석을 세웠으나 이후 안동 쪽에서 이를 몰래 허물어 표지석을 다시 세우는 등 지역간 신경전이 만만찮다.”고 귀띔했다. 안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길섶에서] 늦더위/함혜리 논설위원

    지난주 말 대관령국제음악제를 취재하러 간 김에 잠시 강원도 주문진 근처에 있는 남애해수욕장을 들렀다. 피크 시즌인데도 해수욕장은 한가한 편이었다. 파라솔을 빌리면서 장사가 어땠느냐고 물으니 “올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임대료를 고스란히 날리게 생겼다.”고 푸념이다. 가게 아주머니도 “장사가 형편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민박집 할머니는 “주말인데도 빈 방이 2개나 남아 있다.”며 막막한 표정이었다. 바닷가가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지만 여름 한철 장사해서 먹고사는 사람들 입장을 생각하니 마냥 좋아할 일만도 아니었다. 긴 장마로 저온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고랭지의 냉해 피해가 심각하다는 소식이다. 바닷가 사람들보다도 농부들이 더 걱정일 게다. 말복이 분명 지났건만 윤달이 끼어 있는 탓인지 뒤늦게 찾아온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원망스럽기까지 하지만 늦게라도 더위가 찾아와 준 것이 고맙고 반가운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늦더위도 견딜 만하지 않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운무/김성호 논설위원

    동반 산행이 더디고 힘들기만 하다. 높지 않은 산이건만. 나이 탓이겠지. 결혼 직후였던가? 설악 오색에서 대청봉을 단박에 함께 올랐다간 달음박질쳐 내렸었는데. 자꾸 뒤처지는 박씨가 안쓰럽다. 나이 탓이겠지. 평소 좀 더 챙겨줄 것을…. 몇 년만에 함께 맞춰 떠난 산 속으로의 휴가. 눈에 띄게 약해진 아내의 모습을 알아챈 것만도 큰 수확이겠지. 남해 12경에 드는 산. 오름길이 험하다. 정상서 굽어보는 다도해가 압권이라고. 경사가 왜 이리 가파른지. 박씨는 아주 엉긴 채 경사길을 네 발로 걷는다. ‘쉬었다 가자.’는 하소연 연발. 다도해 절경이 아른거려 박씨를 채근해본다. 되돌려지는 ‘끙끙’ 소리가 아침 산 속을 채운다. 정상 아래 깎아지른 바위. 마지막 고비인가보다. 누군가 매어놓은 바위틈 밧줄이 고맙다. 정상에 서자 사방팔방이 온통 희뿌연 운무(雲霧)뿐. 다도해 절경은 도통 보이질 않고…. 실망한 표정을 보았는지 박씨, 한마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더 좋구먼.’ 그래 맞다. 뭘 더 챙겨 보자고 기를 쓰고 올랐던 것인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고무신/함혜리 논설위원

    하이힐에 익숙한 사람들은 굽이 낮은 구두를 잘 신지 못한다. 땅으로 꺼지는 것 같고, 자기만 손해보는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키높이 구두가 보편화되고, 굽 12㎝의 킬힐이 유행하는 이유다. 나 역시 키가 큰 편이 아닌지라 적당히 굽이 있는 구두를 신어야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는다. 일주일 동안 절에 있으면서 흰 고무신을 신어야 했다. 구두에 익숙했던 터라 맨 발바닥이나 다름없는 고무신이 처음엔 너무 설었다. 그런데 지내 보니 고무신의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실용적이다. 비가 아무리 와도 젖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발 씻을 때도 편하다. 맨발에 물을 좍좍 끼얹고 탁탁 털면 된다. 깔끔하다. 아무리 더러워져도 수세미로 싹싹 닦으면 금세 깨끗해진다. 구두처럼 소리가 나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고무신은 특히 사람들의 가식을 단번에 벗겨버리는 힘이 있다. 높은 굽이나 화려한 장신구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깊은 뜻이 있는 것을 신어보지 않았다면 어찌 알았겠나. 기분좋은 발견이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마음의 악보/김종면 논설위원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는 1964년 개봉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가수 이미자가 동명의 주제곡을 부르면서 매진 사태를 빚었다. 그 노래를 만든 이가 백영호다. ‘동백아가씨’를 비롯해 ‘황포돛대’ ‘해운대 엘레지’ ‘동숙의 노래’ 등 무려 4000여곡을 작곡한 서정가요의 일인자다. 며칠전 진주에서 내과의사로 일하는 선생의 맏아들 백경권 교수가 자신이 펴낸 부친의 노래모음집 ‘백영호 음악과 인생’을 보내왔다. 이 뜻밖의 선물로 두 가지를 알게 됐다. 자신의 병원 한쪽에 백영호기념관을 운영하는 백 교수가 ‘동백아가씨’를 피아노로 연주하며 환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게 부친의 생전 뜻이라는 것, 그리고 ‘동백아가씨’가 노랫말을 넘겨받은 뒤 기타 몇 차례 튕겨 보고 두 시간만에 완성된 ‘영감의 산물’이라는 것. 그 달란트가 놀랍다. 약자에 대한 배려의 마음씨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일필휘지로 폐부를 파고드는 글을 쓸 재주는 없지만 마음의 붓끝만이라도 늘 낮은 곳으로 향하도록 해야지…. 스스로 다짐해 본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넥타이/김성호 논설위원

    좋아도 못 하고,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간절히 원해도 할 수 없는 입장이나, 죽도록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터. ‘독불장군’ 없단다. 홀로 사는 삶이 아닐진대 더불어 함께하는 방법찾기가 현명하지 않을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는데. ‘넥타이 매기 싫어 직장생활 못하겠다.’ 넥타이 혐오론을 펴던 대학동창이 있었다. 친구는 고집대로 직장생활을 접었다. 한데 20여년이 지난 얼마 전, 멋진 넥타이를 매고 보란듯이 모임에 나타난 게 아닌가. 아침마다 넥타이 골라 매는 일이 마냥 즐겁단다. 아침회의 때마다 넥타이와의 전쟁을 일삼는 선배를 만난다. 맸다가 풀기를 반복하는 선배에게 똑딱이 단추 달린 넥타이를 권했었다. 한동안 안 보이던 선배, 오늘 또 거울 앞에서 넥타이 전쟁이다. 죽기보다 싫다던 넥타이를 매고 20년만에 자랑삼아 나타난 동창생. 20여년 넥타이 생활을 하면서 여전히 넥타이와 짜증 섞인 씨름을 일삼는 선배. 두 사람의 차이는?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개포동 笑劇/박재범 논설실장

    서울 개포동은 30, 40년 전 시쳇말로 사람 살 동네가 아니었다. 작은 아파트를 잔뜩 지어 도심에서 전월세 살던 사람들을 이사 가도록 정책으로 유도할 때였다. 교통수단은 물론 자녀교육 여건도 최악이었다. 이런 탓에 “개도 포기한 동네”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런 동네가 강남개발이 상승세를 타면서 1980년대 들어 “개도 포니 타고 다니는 동네”가 되더니, 금세 “개도 포텐샤 타고 다니는 동네”로 업그레이드됐다고 한다. 1990년대 들어서는 다시 “개도 포드 타는 동네”가 됐고 요즘은 “개도 포르셰 타는 동네”로 한단계 올라섰다는 것이다. 개포동에서 30여년 줄기차게 살아온 지인이 들려준 우스개다. 개포동의 10여평 남짓한 아파트 시세가 10억원대를 넘나드는 실정이고 보니 나름대로 일리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직장인으로 평범하게 살아왔음에도 사회악처럼 몰아붙이는 세상의 시선에 그러려니 하다가도 때로는 짜증스럽다.”고. 단순한 푸념으로 흘리기에는 뼈가 들어 있었다. 박재범 논설실장 jaebum@seoul.co.kr
  • [길섶에서] 5대 필수품/박정현 논설위원

    50대 이후의 남성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건강이요, 둘째는 아내, 셋째는 돈, 넷째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친구다. 이를 줄여서 일건 이처 삼전 사사 오우라고 한단다. 사람들의 번득이는 재치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기에 50대 이후 여성에게 필요한 5가지가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됐다고 한다. 첫째가 건강이라는 점에서는 남성과 같지만 두번째부터는 달라진다. 둘째는 돈이고, 셋째는 딸, 넷째는 계 모임, 그리고 마지막이 친구라고 한다. 줄여서 일건 이전 삼녀 사계 오우란다. 남성에게는 아내가 두번째로 필요한 존재이지만 여성에게는 남편이라는 존재가 없다. 섬뜩한 해학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50대 이후 여성에게 없어야 할 한 가지가 있단다. 바로 남편이라는 존재다. 여성들에게는 공감을 줄지 몰라도 뭇 남성들을 좌절케 하기에 충분한 독설에 다름 아니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60대 나이의 선배가 “가을비에 젖은 낙엽 신세”라면서 내뿜는 담배연기가 허허롭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길섶에서] 묵언/함혜리 논설위원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는 옛말이 있다. 모름지기 말은 가려서 해야 하거늘 잘 지키지 못한다. 꼭 필요한 말들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쓸데 없는 말들을 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한다.말에서 비롯되는 재앙은 얼마나 많은가. 일주일 동안 해남의 미황사에서 묵언(默言) 수행을 할 기회를 가졌다. 수행프로그램을 관장하는 금강 스님은 “말이란 자신의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묵언을 함으로써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서 문답시간 외에는 절대 묵언을 깨지 말 것을 당부했다. 꼭 필요한 말은 적어서 보여주도록 각자에게 작은 수첩이 주어졌다. 처음으로 해보는 묵언이 쉽지만은 않았다. 마음이 다급해지고 신경이 거슬리는 순간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이러기를 몇차례 거듭하다보니 이내 익숙해졌다. 나중에는 말을 안하고 사는 게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참 많은 말을 하고 살았다. 지키지도 못한 약속들,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들을….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후회없는 삶/이목희 수석논설위원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다채로운 경력을 가졌다. 언론인으로서 주요 직책을 섭렵했고, 국회의원과 장관을 지냈으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산 분이다. 70대 중반인 지금도 책을 내고, 언론에 글도 쓰고 있다. 남 전 장관에게 언론계 후배들을 위한 충고말씀을 부탁했더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후회되는 대목 세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술을 절제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젊었을 때 두주불사가 멋져 보이지만 인생 전체로 볼 때 손해라고 했다. 둘째, 특정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더 쌓았으면 좋았겠다고 했다. 전문가로서 소양을 가지고 인생 2모작을 넘어 3모작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셋째, 칼럼을 독하게 쓰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했다. 남 전 장관이 주는 메시지는 인생을 치열하게 살라는 것이었다. 술을 줄이면 정신이 맑고, 전문지식을 쌓을 시간이 생긴다. 지식이나 취재가 부족하면 두루뭉술한 글이 나온다. 전날의 과음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지금, 남 전 장관의 말씀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이목희 수석논설위원 mh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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