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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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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슬픈 육체, 슬픈 정신/김종면 논설위원

    엊그제 몇몇 신문에 북한 무용수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야하게 춤을 추는 사진이 실렸다. 한 탈북자가 최근 북한 사회에 선정적인 내용의 동영상이 암암리에 유포되고 있다며 공개한 것이다. 북한 왕재산경음악단의 공연 장면으로 추정된다. 왕재산악단은 주로 북한 고위층이 주최하는 비밀파티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당국자는 당 간부의 비밀 댄스파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했지만 궁금증은 여전하다. 파리의 물랭 루즈에서 보던, 서울 이태원 주점에서 보던 것과는 뭔가 다른 북한버전 캉캉춤? 캉캉이란 게 본래 옷자락을 펄럭이며 요란스레 발을 차올려 추는 춤이지만 다리를 180도로 보꾹까지 들어올리며 추는 캉캉춤은 처음 봤다. 오뚝오뚝한 하이힐, 눈부신 반짝이옷, 물구나무 선 알 밴 다리….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가 말했던가. “육체는 슬프다.” 그러나 정작 슬픈 건 고단한 몸뚱이가 아니라 그 화석화된 정신, 도둑맞은 영혼인지 모른다. 무엇을, 누구를 위한 캉캉인가. 동포 여인의 캉캉춤 사진 한 장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가족의 빈자리/육철수 논설위원

    K씨 집안은 가족 상호관계가 흥미롭다. 전업주부인 아내는 K씨에게 대체로 밀리는 편이다. 경제권을 움켜쥔 K씨가 강력하게 권한을 행사해서다. 대신 아내는 대학생 아들에게 강세다. 아들은 엄마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고 효성도 남다르다. 그런 아들이 고등학생 여동생에겐 오빠의 권위를 발휘할 때가 종종 있다. 딸도 만만찮다. 아빠를 꼼짝 못하게 하는 재주를 지녔단다. K씨 가족은 ‘아빠-엄마-아들-딸-아빠’로 이어지는, 이른바 순환형 먹이사슬 구조다. 불화가 생겼을 땐 일단 사이클을 한 바퀴 돌아 각자 화풀이를 해야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단다. 독주하는 식구가 없는 게 이 집안 화목의 비결이기도 했다. 얼마전 K씨의 아내가 암으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 가족의 역학관계는 당연히 헝클어졌다. K씨는 아내의 빈자리를 보면 자꾸 눈물이 나온단다. 잘 해주지 못한 게 두고두고 가슴에 맺히는 모양이다. 가족이란 물과 공기 같은 것. 함께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르는…. K씨와 아들·딸이 서로 아끼며 슬픔을 이겨냈으면 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길섶에서] 혜존(惠存) /함혜리 논설위원

    저자의 서명이 들어간 책을 받으면 감흥이 남다르다. 작가와의 유대감도 느껴지고, 왠지 나를 각별히 생각해 주는 것 같아서다. 나를 생각하면서 서명을 했을 작가의 모습을 잠시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책장을 펼친다. 파리특파원을 지내고 온 뒤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프렌치 리포트’를 보완해서 최근 ‘프랑스는 FRANCE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비평서를 냈다. 정성스럽게 첫장을 넘겨 ‘∼님 혜존(惠存)’을 쓴다.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책으로 보답하기 위해서다.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혜존’이라는 두 글자에 담는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였으니 어여삐 여기고 받아 간직해 주십사 하는 마음, 부족한 점이나 지적이 있다면 달게 받겠다는 마음, 다음에는 좀더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겠다는 마음, 계속 아끼고 사랑해 달라는 마음 등. 한편으로 걱정도 된다. 챙긴다고 챙겨도 빠진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연락을 주시면 좋으련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마마보이/오일만 논설위원

    어느 술자리에서 ‘외국어 고등학교’가 화제가 됐다. 외고 출신들이 각종 고시를 휩쓰는 현실 때문이다. 우수한 영재들이라 ‘당연하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그때 돌연 고위관료 한 분이 반기를 든다. “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이에요…”. 말씀인즉, 부하 직원 가운데 외고 출신들이 단연 머리는 좋으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 손에 이끌려 각종 학원·과외를 전전하면서 단순한 ‘시험 기계’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는 창의력이 떨어진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말을 받은 한 교수는 창의력 부재의 문제는 외고 출신에 국한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스스로 추진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푸념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 특히 ‘엄마’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창의력이 부족한 암기식 교육 풍토를 주범으로 꼽았다. ‘양식장’에 갇혀 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대어보다 망망대해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는 ‘자연산’이 생존능력이 뛰어난 법이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인생의 점프스타트/김종면 논설위원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등을 켜두고 주차하는 바람에 배터리가 방전된 경험이 한번쯤 있을 법하다. 그럴 때 필요한 게 점프스타트다. 자동차 엔진을 다른 차의 배터리와 연결해 시동을 거는 것이다. 그러나 필요한 점프선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지면 방전이 더 흔히 일어난다.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배터리는 소모품이니 적당한 때가 되면 갈아 줘야 한다. 미등이나 안개등도 껐나 잘 확인해야 한다. 트렁크에 점프선도 갖춰 둬야 한다. 인생살이도 자동차를 닮았다. 아무리 대비를 해도 점프스타트가 필요할 때가 있다. 평소 하던 일이 부쩍 힘들어질 때, 번다한 인간관계가 왠지 시들해질 때, 모든 것 내려놓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그럴 때 말이다. 하지만 세상엔 나홀로족이 넘쳐난다. 좀처럼 시동 꺼진 남의 인생에 충전의 선(線)을 이어주려 하지 않는다. 점점 두껍게 내려앉는 ‘가족자아(family ego)’의 더께를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인생의 배터리가 되어 주자.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군대 예찬/이목희 수석논설위원

    우체국 택배로 배 한 상자를 받았다. 보낸 사람의 이름이 큰아들과 같았다. 큰아들은 육군 병으로 복무 중인데…. 아들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주위에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있는지 며칠을 찾았다. 그때 걸려온 아들의 전화. “배 맛있게 드셨어요. 놀라게 하려고 봉급을 아껴 깜짝 선물했어요.” 그제는 공군 병으로 백령도에서 복무 중인 둘째 아들이 전화를 해왔다. “백령도 특산물인 백색 고구마를 부쳐드리겠다.”고 했다. 아내는 그저 놀랍다는 반응이다. 두 아들을 한꺼번에 군에 보내놓고 처음에는 눈물깨나 흘리더니, 이게 웬일인가 싶은가 보다. 입대 전에는 선물은커녕 대화를 나누는 일조차 어려웠던 두 아들이었다. 군에 가더니 이제는 아내에게 전화하면 “어머니, 사랑합니다.”라는 낯 간지러운 말도 서슴없이 한다. 아내에게는 “군대 가면 철든다.”는 진부한 이야기가 새록새록 가슴에 와닿는 눈치다. “제대하고 한 달만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온다더라.”고 기대수준을 낮춰 보려 했지만, 아내는 이미 ‘군대 예찬’에 푹 빠져들고 있다. 이목희 수석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길섶에서] 반면교사/진경호 논설위원

    못된 상사가 있었다. 요즘 잣대로 보면 간이 부었던 게 틀림없다. 휴가 떠난 부하에게 서슴없이 일감을 던졌고, 심사가 틀어지면 욕설부터 튀어나왔다. 부득이한 일로 회식에 빠지면, 언제가 됐든 기어코 응징했다. 적당히 어르고 달래는 노회함도 갖췄다. 불의(不義) 그 자체였으나 부하들 누구도 변변히 항거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도 잠시…. 인사발령이 나 간신히 그의 압제에서 벗어났다. 아무리 좋은 상사라도 없는 상사만 못하다지만 제 아무리 못된 상사에게도 얻을 건 있다. 인내심과 면역력. 가슴에 사표를 품고 하루하루 견디다 보면 어느덧 부처 곁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중에 그 어떤 못된 상사를 만나도 아무개보다는 낫다며 씩 웃게 만든다. 한마디로 역경지수를 높여준다. 저러지 말자 싶은 반면교사들이 다시금 늘기 시작했다. 출근길에서도 ‘저러지 말자’, 퇴근 후 한 잔 하면서도 ‘이건 아니지’. 아무래도 잘못되고 있는 모양이다. 속이 좁아지고 있는 게다. 정작 늘고 있는 건 나를 반면교사로 삼는 인사들일 터이건만….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타기/김성호 논설위원

    계절을 몹시 탄다. 가을을. 꼭 질풍노도기의 열병처럼 아프다. 욕구불만? 아니 되지못한 감정의 사치? 궁금하다. 청년기 이맘때, 낙엽이 뚝뚝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쓰나미처럼 치밀던 만추병. 오랜만에 가을타기가 도진 이유가. 누군가의 진단처럼, 정말 마음보다 부쩍 뒤처지는 몸에 대한 조바심일까. 사추기(思秋期)란다. 사춘기와 연결짓는 발상이 가슴에 콕 박힌다. 내 몸·마음자리의 속도 차로 생겨나는 계절성 우울증이라니. 아무래도 이것저것 마음에 담는 게 많은 탓이겠지. 몸은 따르지 않은 채 마음만 앞서 뛰니. 몸 따로 마음 따로의 시간차 병 ‘사추기’. 그럴듯하다. 그래도 질풍노도의 우울증엔 터럭만큼의 낭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제3의 청춘’이라 했던가. 예순을 넘겨 할 일 다하고 사는, 아니 더 보람찬 삶을 살아내는 이들도 많은데. 이까짓 사추쯤이야. 어차피 낙엽지면 새싹이 돋을 테고. 20대의 쓰나미를 보냈듯이 가을타기를 떳떳하게 한번 즐겨 볼까. 아주 센 진통제를 한 대 맞고서. 그런데 그 진통제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왕릉지킴이/노주석 논설위원

    매번 지나쳤다. “한번 가 봐야지.” 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빚진 기분이었다. 입으로 얘기하면서 눈으로 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헌인릉 말이다. 서울 내곡동에 있는 헌인릉에는 조선 제3대 태종의 헌릉과 제23대 순조의 인릉이 모셔져 있다. 개성에 있는 정종의 후릉 등 2기를 빼고 남한에 남은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다. 가서 보니 왕릉 구경보다 왕릉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했다. 왕릉도 스토리가 없으면 죽은 자의 무덤에 불과한 것 아닌가. 왕릉 지킴이로부터 조선시대 장의문화에 대한 무지를 깨쳤다. 왕릉 지킴이는 문화유산 자원봉사자들이다. 20여명으로 구성된 즉석 왕릉교실 학생들은 지킴이의 인도에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왕릉은 왕이 하루 안에 다녀올 수 있도록 왕궁에서 10~100리 떨어진 곳에 지어졌다. 왕릉 순례에 나설 참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조선왕릉은 조선의 정신이자 우리의 뿌리가 아닌가. 왕릉에 눈뜨게 해준 지킴이들의 활약에 박수를 보낸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개나리와 시금치/육철수 논설위원

    늘상 품격있는 언행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도를 닦은 성인군자라도 때론 상소리나 욕을 하고 싶을 때가 어디 한두 번이랴. 그래도 극단적인 욕설을 비켜가는 ‘지혜’를 발휘하면 오히려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어 위안이 된다. 어느날 드라이브에 나섰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코미디언 J씨의 말에 한바탕 웃었다. 누군가에게 참다못해 욕지거리를 하고 싶을 때 “이런 ‘개나리’ ‘시금치’ 같은….”이라고 했단다. 점잖은 체면에 ‘개XX’ ‘시XX’처럼 원색적인 상욕을 대놓고 할 수 없어서 그런 표현으로 화를 풀려고 했단다. 그랬더니 웬걸, 뜻을 금방 알아차린 상대방이 기분나빠하기는커녕 웃는 바람에 분위기는 의외로 확 바뀌었단다. 개나리나 시금치가 들으면 불쾌하기 짝이 없을 일이다. 왜 가만히 있는 자신들을 욕으로 둔갑시키느냐고…. 하지만 어쩌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화를 풀고 품위있는 언어생활을 하려는데 그 정도의 희생과 명예훼손쯤은 참고 견뎌줬으면 싶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길섶에서] 霜降단상/김종면 논설위원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는 ‘고백록’에 이렇게 썼다. 걷기와 사유에 관해서라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한명의 사상가가 있으니 실존철학의 대가 키르케고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은 걸으면서 구상한 것이라고 일기에 적고 있다. 일제강점기 공주 마곡사에 숨어 지내던 김구 선생도 태화산 길을 포행했다고 하지 않나. 어떻게 하면 떠오르는 영감 속에 명상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사유의 방편으로 걷기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삼보탑승족에겐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때는 바야흐로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할 지금 들녘은 가을걷이가 한창인데, 텅빈 글 곳간을 지키는 이 몸은 외로운 추수꾼. 씨 뿌린 게 없으니 거둘 게 없는 건 정한 이치 아닌가. 노결위상(結爲霜)이라고 했다. 이슬이 맺혀야 서리가 되는 법이다. 이제라도 마음밭에 씨를 뿌리자. 고금동서의 위인들은 하나같이 걷기는 글감의 씨앗이라고 웅변하고 있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부암동/진경호 논설위원

    처음엔, 신기한 표정으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그들이 신기했다. ‘어머~ 이런 동네도 있네’ 하며 기웃대는 중년의 그네들이, 갓 하루 된 ‘이런 동네 사람’의 처지로 기연미연 신기했다. ‘그런가? 신기한가?’ 풀어 놓은 이삿짐이 자리를 찾고, 집 둘레를 돌던 발자국이 점점 멀어지던 어느 날, 그네들이 동네 어귀에 터뜨려 놓고 간 말이 절로 입속을 맴돌다 새어 나왔다. ‘정말 이런 동네가 다 있었네.’ 소설가 엄흥섭이 서울 바닥에선 만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양미만괴(凉味萬魁)라 했던, 북악산 자락의 부암동은 그렇게 도심 속 시골의 속살을 마루 끝 처마그늘에 던져진 달빛마냥 조용히 내보였다. 대형 마트도 없고, 변변한 학원도 없고, 빵빵한 집도 없고 그래서 땅 투기도 없는 곳. 그래서 좋지 않으냐 묻는 바람이 담쟁이덩굴을 간질이곤 도롱뇽 물질하는 백사실 계곡으로 미끄럼 타는 곳. 공영주차장 없어도 좋으니 그냥 이대로 살게 내버려 달라며 구청에 하소연하는 주민들이 사는 곳. 부쩍 늘어난 셔터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들까 점점 겁이 나는, 그냥 그곳. 진경호 논설위원
  • [길섶에서] 刹那/김성호 논설위원

    눈깜짝할 사이다. 출근길 동네 횡단보도를 막 건너려던 순간. 오토바이가 배꼽을 스치며 무서운 속도로 내달린다. 밉다. 욕을 막 내뱉기 직전. 아뿔싸. 그 오토바이, 버스 꽁무니를 들이받더니 고꾸라지고 만다. 주섬주섬 땅에 떨어진 물건들을 챙겨 일어나는 걸 보니 다치진 않은 모양. 다행이다. 눈깜짝할 사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지하철로 향하던 길. 20대 여성이 갑자기 내 몸을 밀치고 냅다 뛰어 역사입구 유리 문으로 향한다. 가슴이 다시 콩닥콩닥 뛴다. 기분이 언짢다.“아가씨.” 조금 거칠게 말을 내뱉으려는데. 그 여성, 발 뒤꿈치가 유리문 틈에 끼인 채 울음을 터뜨린다. 안쓰럽다. 눈깜짝할 사이다. 이른 아침 거푸 사고를 겪다니. 일진이 안 좋다. 플랫폼에 서면서도, 또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 두리번두리번. 굉음을 울리며 도착한 전철 안에 들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다시 떠오르는 좀전의 횡액들. 엉겁결의 일들이 황당하기만 하다. 하마터면 싫은 소리를 심하게 내뱉을 뻔한 찰나(刹那)들. 찰나가 문제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자라섬/함혜리 논설위원

    경기도 가평군 자라섬. 자라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무분별한 모래 채취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비만 오면 물에 잠겨 쓸모없는 땅으로 버려졌던 이곳이 2004년 이후 ‘일년에 단 한번 떠오르는 재즈의 섬’으로 바뀌었다. 지난 주말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올해로 6회째밖에 안 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축제이자 아시아를 대표하는 재즈페스티벌로 자리매김했다고 가평군은 자부한다. 과장이 아니었다. 반짝이는 별빛 아래서 돗자리를 깔고 따뜻한 담요로 몸을 감싼 채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두꺼운 점퍼에 맥주와 통닭, 와인, 따뜻한 커피와 간식거리까지 단단히 챙겨 온 것을 보면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의 고수들이 분명했다. 지인의 느닷없는 전화를 받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와서 벌벌 떨어야 했지만 재즈 선율에 흠뻑 취할 수 있었던 10월의 밤은 즐거웠다. 내년엔 나도 남부럽지 않게 준비해서 자라섬을 찾으리라.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구룡마을/오일만 논설위원

    구룡마을이란 곳을 처음 가봤다. 지인들과 구룡산 산행을 마치고 하산길에 우연히 이곳을 지나쳤다. 1970년대 흔히 볼 수 있었던 달동네의 전형적 모습이다. 그래서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별칭이 붙었단다. 고불고불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남루한 슬레이트 지붕과 색바랜 시멘트 벽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의 무대 같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쫓겨난 철거민들이 모여 마을을 이뤘다. 부자들이 많은 강남구에서 유일하게 남은 미개발 지역이다. ‘황금의 땅, 빈자의 휴식처’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한 채에 50억원이 넘는 도곡동 타워팰리스 아파트가 멀리 보이고 그 사이로 빈부를 갈라 놓는 분계선처럼 양재천이 흐른다. 이곳은 겉으론 평화로운 농촌마을과 다름없다. 속내는 재개발 문제로 한창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투기꾼들도 가세했다. 마을 곳곳에 찬성과 반대를 표시하는 현수막들이 요란하다. 자신들의 ‘결사항전’ 의지가 시뻘건 대자보로 적혀 있다. 한몫 잡으려는 인간들의 욕망이 번득거린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꽈리의 추억/김성호 논설위원

    ‘생활의 발견.’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이득과 지혜를 강조한 말이 재치 있다. 살다 보면 이득의 발견만 있을까. 원치 않는 손해도 보고 양보도 해야 하고. 코앞의 빤한 이득을 놓아야만 하는 고의적 손실이 태반인데. 봐도 못 본 척, 안 봐도 본 척. 가끔씩은 그렇게 살아감이 더 나은 생활의 발견인 것을…. 많은 것을 잃고 잊어 간다. 일부러 잃고 잊어 낸다고 해야 할까. 나쁜 쪽일 바에야 버리고 놓아버림이 더 나을진대. ‘뜰 앞의 장미만 봐도 가슴이 덜컥한다.’는 시인의 고백. 꽃으로 반추하는 핏빛 참혹의 기억이다. 한데 거꾸로 가슴이 내려앉을 만큼의 좋은 옛 기억을 만날 때가 있다. 드물긴 하지만. 꽈리다. 어릴 적 친구들과 들판에 누워 때굴때굴 입속에 굴리며 깔깔대던 주홍 열매. 오랜만에 찾은 성남 모란시장에서의 만남이 반갑다. 50줄 나이에도, 수십년 기억이 이렇게 다시 생생할 줄이야.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잊어 갔을까. 시인의 말대로 그 많던 꽈리는 다 어디 갔나. 지금 입속에 넣어 굴려 보는 꽈리는 옛날 그대로인데.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늑대영혼/김종면 논설위원

    국내 최고 디스플레이 전문회사인 S기업의 모 사장은 요즘 임직원들에게 “늑대가 되라.”고 강조한다고 한다. ‘전략을 사용하는 유일한 야수’인 늑대의 야성과 조직력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목표를 달성해 나가자는 것이다. 지당한 말이다. 20∼40마리씩 무리지어 사는 늑대는 누구도 대장 늑대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는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강한 조직력이 생명이다. 불과 십수만명의 기병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휩쓴 칭기즈칸의 신화도 몽골 초원의 늑대 무리에서 비롯됐다. 대 로마제국 역시 늑대 정신으로 무장했다. 성서에는 ‘양의 가죽을 쓴 늑대’라는 표현이 있다. 늑대는 탐욕, 굶주림, 잔인, 엽색, 불협화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러나 늑대에 얽힌 신화와 전설은 진한 감동을 전한다. 호랑이는 먹이를 잡으면 혼자 먹지만 늑대는 무리 안의 눈먼 늑대, 새끼에게 젖먹이는 암늑대까지도 생각한다고 한다. 기업도 인간도 그런 걸 배워야 한다. ‘울프(wolf) 리더십’이라고 할까. 내 안에 잠든 늑대의 영혼을 일깨우자. 우리는 여전히 늑대를 모른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낙엽/함혜리 논설위원

    집앞 공원을 산책하는데 ‘툭’소리가 났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바람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찬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자 다른 나뭇잎들도 질세라 ‘후두둑’하며 떨어진다. 마음 한구석이 ‘휑!’해지면서 그 충격이 머리를 때린다. 아, 세월이 가는구나. 후회와 회한이 밀려왔다. 해 놓은 것도 없는데. 조금 걷다 보니 다시 그 나무들 앞을 지나가게 됐다. 내 마음을 그렇게 뒤흔들어 놓았던 나무는 무심하게 서 있었다. 나뭇잎 떨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조금 소리는 냈지만 그뿐이었다. 천지만물은 봄·여름에는 무성했다가도 가을과 겨울이 되면 시들고 만다. 그러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어김없이 다시 온다. 그것이 생명의 순환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나무는 그저 담담하게 서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며, 살아 있는 것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하물며 나무도 자연의 섭리를 터득하고 의연하게 버티고 있거늘 낙엽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다니…. 어리석은 마음을 다잡고 나니 스산하기만 했던 바람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나무에게서 오늘도 한 수 배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동해안 포구/오일만 논설위원

    속초시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달린다. 별안간 한적한 어촌 마을이 보고 싶었다. 가장 가까운 곳이 백도 포구였다. 대포항이나 주문진처럼 번잡하지 않고 ‘한적하다’는 말이 아주 어울리는 곳이다. 어귀부터 신선한 비린내가 코를 자극한다. 포구에 도착하니 자그마한 어선이 들어온다. 갓 잡아온 쥐치와 가자미, 도다리, 광어가 파닥파닥거린다. 어민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직거래가 이뤄졌다. 횟집의 절반 가격을 내니 즉석에서 회를 쳐 준다.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회는 일품이다. 어민들은 수협 공판장에 내다 파는 것보다 수익이 좋다고 싱글벙글이다. 나 역시 자연산 회를 싼값에 맛볼 수 있어 즐겁다. 어민들은 별다른 판로가 없어 도매상에 헐값에 넘긴다고 푸념이다. 그래서 약속을 했다. 서울에서 주문을 하면 택배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하루 정도면 신선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제철에 잡히는 다양한 어종을 맛볼 수 있어 벌써부터 설렌다. 당장 털게부터 주문할 생각이다. 어민들을 돕는 거래니 마음도 기쁘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스페어/노주석 논설위원

    낭패로다. 서울 강남 교보생명사거리 교차로에서 신호정지 중 옆 차선 승용차의 빵빵거림에 창문을 내렸다. 운전자가 승용차 뒤편을 가리킨다. 조수석 뒤 타이어에는 큰 못이 깊숙이 박혀 있었고 바람이 빠져 쭈글쭈글했다. 차를 몰고 엉금엉금 교차로에서 기어 나왔지만 멀리 갈 형편은 아니었다. 어쩐다. “스페어 있어요?” 동승했던 후배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스페어 타이어가 있었지, 그런데 있기는 있나? 어디에 있지?” 허둥대는 내가 딱한지 후배는 트렁크를 열라고 했다. 스페어 타이어와 교체용 공구가 보석처럼 숨어 있었다. 미국 연수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후배는 능숙했다. 우리는 30여분 만에 교체를 끝냈다. 자동차를 몰고 다닌 지 20년째다. 가물가물하지만 십수 년 전 첫 번째 위기 때는 대가를 치렀다. 구멍 난 스페어를 싣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번엔 운이 좋았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벌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스페어 안경이 사라진 뒤의 깜깜함도 가끔 상기해야겠다. 스페어는 여분의 기회니까.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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