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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재외동포 배려

    [길섶에서] 재외동포 배려

    영국 연수 시절 이야기다. 초등학교 예비과정에 다니던 딸이 짧은 방학을 할 때면 가까운 독일이나 프랑스 등으로 여행을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유럽의 3대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꼽힌다는 독일 남부의 뉘른베르크를 방문했다. 당시 해외여행에 익숙지 않아 한인 민박을 이용했는데, 민박 주인과 친구분과 저녁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들은 독일에 정착한 지 10여년이 지나 이젠 한국에 들어가면 더 불편하다고 했다. 그분들이 크게 불만을 토로했던 게 바로 모바일 인증 시스템이었다. 재외국민은 휴대전화가 없어 모바일로 인증번호를 받을 수 없는데, 인터넷으로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무조건 휴대전화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살기 더 불편하다면서 씩씩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최근에 재외국민이 한국 휴대전화 없이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모바일 신원 확인증이 출시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지난해 6월 재외동포청이 설립됐지만 아직 재외국민에 대한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불만들이 많다. 재외국민들이 한국에서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좀더 확대되길 바란다.
  • [길섶에서] 놀이터 벙커샷

    [길섶에서] 놀이터 벙커샷

    얼마 전 이른 아침 산책에 나섰을 때 일이다. 난데없이 골프공이 발 앞으로 굴러와 깜짝 놀랐다. 고개를 들어 보니 70대쯤 돼 보이는 남성이 골프채를 들고 있다. 본인도 민망한 듯 재빨리 공을 주워 반대 방향으로 바쁘게 걸어갔다. 인적이 드문 시간 산책로 주변에서 골프 연습을 하는 사람을 간혹 보게 된다. 대개 빈스윙을 하거나 공을 놓고 짧은 어프로치샷을 연습한다. 요즘은 공원이나 산책로마다 잔디가 잘 관리된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연습의 유혹을 느낄 만도 하겠다. 하지만 산책로에서의 골프 연습은 위협적이다. 무심코 지나가던 사람은 바람을 가르는 빈스윙 소리에도 깜짝 놀라기 일쑤다. 산책로 곳곳에 ‘골프 연습 금지’ 푯말이 세워진 걸 보면 구청에 민원도 적잖이 들어오는 모양이다. 며칠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어린이 놀이터에서 벙커샷 연습을 하는 남성의 모습이 올라와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았다. 모자까지 쓰고 골프채를 휘둘러 모래를 퍼내는 모습이 마치 실제 라운딩에 나선 듯했다. 정작 놀이터 주인인 아이들은 근처에 얼씬도 못할 판. 이런 무개념 ‘민폐족’은 ‘신사의 운동’이라는 골프를 할 자격조차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임창용 논설위원
  • [길섶에서] 동안 압력

    [길섶에서] 동안 압력

    ‘거울아 거울아 내가 몇 살로 보이니?’ 어느 모임에서 자신이 동안이라고 생각하는 중년들은 필히 집 바깥 거울 앞에 서 봐야 한다고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좋은 위치에 있는 집 안 거울은 왜곡되기 쉽다면서 ‘주제 파악’하기 좋은 거울이 있는 장소로 엘리베이터, 미용실, 공중화장실 등 경험에서 우러난 ‘추천’을 한다. 처진 눈밑과 깊은 팔자 주름을 적나라하게 확인하기 좋은 데는 터널을 지나는 지하철의 검은 유리창이 최고라고 너스레를 떤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게 최고의 칭찬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만큼 동안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강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조명, 반사판의 조력을 받지 않은 연예인의 주름진 얼굴을 보여 주는 유튜브 쇼츠에는 ‘그들도 인간이구나’, ‘나만 늙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등 안도의 반응이 넘친다. 서울에 대한 첫인상을 말하는 외국인의 영상에도 주제와 관련된 내용은 없고 외모 지적 일색이다. ‘얘 30살 맞아?’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 이러니 동안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한국에 오래 머물다 자국으로 돌아간 외국인들이 멋있어졌다, 예뻐졌다 소리를 듣는다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 박상숙 논설위원
  • [길섶에서] 그 소리들을 다시

    [길섶에서] 그 소리들을 다시

    객지살이를 시작했던 집은 담벼락이 낮았다. 새벽이면 산책길을 올라가는 발소리들이 수런댔다. 어느 노부부가 지날 때면 기다린 듯 나는 잠을 깨고는 했다. 잠귀가 밝지도 않았으면서 자박자박 발소리에 섞여 오던 노부부의 낮은 말소리가 듣기 좋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아무 이야기도 들은 것이 없다. 그저 무언가 나를 감싼다는 착각. 큰딸 걱정을 하겠지, 오늘은 작은아들 얘기일까. 희붐한 새벽마다 희미한 환청을 들었던 것도 같다. 얼굴도 몰랐던 말소리들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왜 물색없이 생각이 날까. 어릴 적 새벽이면 고시랑고시랑 이야기 소리가 마루를 건너왔다. 집안 어른 누구든 베개를 꺾어 베고 모로 누워서 말소리를 엮었다. 마루를 넘어오던 잔기침 소리는 눈만 감아도 달려오지만 그 새벽의 말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해도, 그 말소리가 언제나 나를 감싼다. 먼 물소리처럼, 긴 빗소리처럼. 밑도 없이 끝도 없이. 베개를 꺾어 베고 이제는 나도 새벽잠을 뒤척이는 날. 문득 알 듯하다. 사는 일은 잘 버티는 일이라고, 가만히 와서 따독따독 등을 두드려 주고 가는 말은 크고 오똑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 허름한 줄 알고 잊어버린 새벽의 잔기침 소리라는 것을.
  • [길섶에서] 사전증여

    [길섶에서] 사전증여

    부모로부터 받는 상속도 그렇지만 자식한테 물려주는 사전증여도 지인들의 화제에 곧잘 오른다. 물려받은 게 별로 없는 처지라 자식한테 생전에 증여하는 일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각자’들 말은 그게 아니었다. 법이 허용하는 ‘10년에 5000만원’ 범위에서 자식한테 돈이든 뭐든 넘겨주면 좋을 것이라 조언해 준다. 가장 큰 장점은 부모·자식 간에 사이가 좋아지고 상호 신뢰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물려받을 일보다 물려줄 일이 더 많아진 나이들이라 그런지 선각자의 경험도 귀담아들을 법하다. 자식이 옛날처럼 양손 다 펴서 숫자를 셀 만큼 많지 않고, 하나나 둘인 세상이다. 자식이 하나밖에 없다면 상속을 둘러싼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재산을 얼마 일구지 못해 입버릇처럼 “나 죽으면 너한테 다 갈 건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재벌집도 아니니 당연한 생각이다. 하지만 자식들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100세 시대인 지금 과연 “언제 돌아가시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돈이 한참 필요한 30~40대를 지나서 90에 죽어 60 된 자식한테 물려준다 한들 고마움의 정도는 다를 것이라는 게 생전 상속론자들의 얘기다.
  • [길섶에서] 어둠 속 하얀 연기

    [길섶에서] 어둠 속 하얀 연기

    같은 자연현상이라도 인간이 갖는 감정은 제각각이다. 겨울철 따뜻한 햇볕에 마음은 위로받지만, 한여름 불볕더위에는 불쾌지수만 오르게 된다. 비도 그렇다. 낮잠을 자다 ‘뚝 뚝 뚝’ 하는 소리에 깨 보니 비가 내린다. 창밖으로 내다본 어린이 놀이터의 흔들의자는 비가 좋은지 춤추고 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근심과 걱정을 빗속에 씻어 보낸다. 그런데 직접 맞는 비는 다른 느낌이다. 강수 확률 20%라고 해서 우산 없이 외출한 날이었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였지만 꾸준히 맞으니 바지가 축축해지며 달라붙는 게 불쾌했다. 어릴 때 비 내리는 날 시골 할머니 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하얀 연기가 떠오른다. 해 질 무렵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한 방울이라도 덜 맞겠다며 후다닥 집으로 내달렸다. 짙게 내리는 어둠 속에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비, 눈, 어둠은 내리고 태양, 연기, 기온은 오른다고 표현한다. 상반된 자연현상이나 둘 다 있어야 선순환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상호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회적 지위나 재산 같은 외형적 조건 때문에 차별과 편견이 생긴다. 이런 잘못된 인식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내면의 자유 의지를 키워야겠다. 박현갑 논설위원
  • [길섶에서] 백마의 기억

    [길섶에서] 백마의 기억

    지난 주말 경기도 고양시 외곽 도로를 지날 때 ‘백마부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지난달 6·25 특집으로 한 방송에서 보았던 백마고지 전투가 떠올랐다. 백마고지는 철원에 있는데 백마부대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자료를 찾아보니 백마부대는 1952년 강원도 철원군의 395고지에서 2배가 넘는 중공군 제38군단과 12차례나 고지를 빼앗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둔 제9보병사단의 별칭이다. 백마고지는 당시 엄청나게 쏟아부은 포탄이 착탄해 허옇게 드러난 부분이 멀리서 보면 흰말이 누운 형상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9사단도 백마부대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백마고지 전투의 사상자는 중공군이 1만 4000여명, 한국군이 3396명이었다. 백마부대는 월남전 파병 이후 귀국할 때 미 2사단이 맡고 있던 서부 지역으로 관할이 바뀌었다. 1971년 닉슨독트린에 따라 경기도 동두천시에 있던 미 7사단이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2사단이 그 빈자리를 채우려 이동한 뒤 2사단이 빠져나간 공백을 메워야 했던 것이다. 서울역 등지에서 종종 백마부대 마크를 단 장병들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랑스런 이 부대의 역사를 생각해 보지 못했던 무신경이 왠지 죄스럽게 느껴졌다.
  • [길섶에서] 공정한 관심

    [길섶에서] 공정한 관심

    부산에서 군 복무 중인 아들이 지난달 5박 6일 첫 휴가를 나왔다. 서울역에서 만나 먹고 싶은 음식과 필요한 것들을 사기로 했다. 서울역에 도착해 아들을 찾으면서 처음 알았다. 기차로 서울역에 도착해서 다른 곳으로 가는 군인들이 제법 있고 역사 한쪽에 그들을 위한 휴식공간도 있다는 것을. 서울역에서 기차를 종종 타니 전에도 봤을 텐데…. 관심이 없으면 눈에 보여도 스쳐 가는 풍경이 된다. 당사자에서 벗어나면 관심의 강도는 약해진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입장에 놓이지만 과거 경험이 나쁜 기억이면 감정적이 되기도 쉽다. 군대가 많이 나아졌다지만 한창 배우거나 일할 시기에 1년 6개월을 복무해야 하는 건 당사자들에게 힘든 일이다. 예전보다 세상이 훨씬 빨리 변하니 당사자들이 느끼는 시간의 무게가 비슷할 수도. 공정이 화두인 시대, 남성들은 군대 문제로 또래 여성들보다 사회 진출이 늦어지니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독박육아’가 불공정한 것처럼. 군대 복무는 휘발성이 큰 사안이다. 그래서 더욱 공정하고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하다. 그러면 모두가 만족하지는 못해도 지금보다는 나은 방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길섶에서] 뜻밖의 소득

    [길섶에서] 뜻밖의 소득

    휴일, 친구가 보내 준 병자호란 관련 책을 읽다가 갑자기 현장에 가 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철원 김화에선 평안도관찰사 홍명구와 평안도 병마절도사 유림이 이끈 근왕군이 청군에 승리한 백전전투가 펼쳐졌다. 잣나무밭이라는 뜻의 백전(栢田)이라는 땅이름을 이제 김화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홍명구와 유림의 위패를 모셨다는 충렬사를 찾아가는데 민통선 초소가 나타났다. 포기하고 돌아서려는데 초병이 “잘 다녀오시라”며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초소를 지나니 충렬사를 알리는 표석이 보였다. 마을 이름이 읍내리니 한때는 김화 고을의 중심이었나 보다. 충렬사 앞 비각에 나란히 세워진 홍명구 충렬비와 유림 대첩비가 보인다. 그런데 대첩비에 검은 페인트로 ‘영농한계선’이라고 써 놓은 것이 의아하다. 실제 영농한계선은 조금 더 남쪽이다. 대첩비를 얼마 전 옮겨 세웠다는 안내판을 읽으며 의문이 풀렸다. 한때는 대첩비가 경고판 역할도 했었나 보다. 나오는 길, 병사들은 출동명령이 떨어진 듯 조금 전과 달리 긴장한 표정으로 대기하는 모습이었다. 뜻밖에 병자호란은 물론 휴전 상태로 이어지는 6·25전쟁의 현장까지 체험한 하루가 됐다. 서동철 논설위원
  • [길섶에서] 이혼법정 풍경

    [길섶에서] 이혼법정 풍경

    올해 초 있었던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이혼남이 된 지인이 자신이 경험한 이혼법정의 새로운 풍속도를 전했는데 가히 충격적이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이혼법정에서도 슬픈 내색은커녕 오히려 농담하고 웃으며 쿨한 마침표를 찍는다는 거였다. 그게 본인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아무리 이혼이 쉬운 세상이라지만 웃으며 헤어진다니 너무 가벼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 이혼을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 TV조선의 ‘우리 이혼했어요’가 인기를 끌더니 티빙의 ‘결혼과 이혼 사이’에 이어 최근에는 JTBC의 ‘이혼숙려캠프: 새로고침’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실제 이혼 숙려 기간인 부부들이 이혼숙려캠프에서 72시간을 보내며 이혼 여부를 결정한다는 콘셉트다. 아무리 이혼이 늘어난다지만 범람하는 이혼 예능이 오히려 이런 세태를 조장하는 건 아닐까. 얼마 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 4월 결혼 건수가 1만 8039건으로 전년 대비 24.6%(3565건) 증가했다고 한다. 역대 4월 중 가장 큰 증가율이란다. 오랜만의 결혼 증가는 반갑지만, 이들 중 수많은 부부들이 이혼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한 기분이다.
  • [길섶에서] 반지하살이

    [길섶에서] 반지하살이

    1980년대 대학 시절 1년 정도 반지하방에 살던 때의 느낌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어둠과 눅눅함, 아무리 쓸고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특유의 냄새 등. 영화 ‘기생충’을 보면 부잣집 아이가 운전기사(송강호 분) 가족들에게서 같은 냄새를 맡는 상황이 펼쳐진다. 작가의 정교하고 날카로운 상황 포착에 무릎을 친 장면이다. 반지하방에서 커튼을 열면 바깥세상이 올려다보였다. 누군가 창밖 골목길을 걸어가면 얼굴은 안 보이고, 몸통이나 다리가 그림자처럼 지나갔다. 그래선지 그때는 ‘반지하에 산다는 건 올려다보는 삶’이란 자조적 인식을 가졌던 것 같다. 반지하방에서의 느낌은 비가 자주 오는 여름철 최대로 확장됐다. 에어컨이나 제습기가 없던 시절 방에 가득찬 눅눅함과 냄새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꽤 침울했던 시기였다. 반지하방에 거주한 지 1년 만에 군에 입대했는데 고된 군생활에도 불구하고 우울감은 깨끗이 사라졌다. 장마가 시작되니 반지하에 살던 기억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올라 온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반지하 대책’이 시급하다고 부산을 떤다. 40년 전 상황이 그대로인 현실에 입맛이 쓰다.
  • [길섶에서] 위로가 되는 존재

    [길섶에서] 위로가 되는 존재

    “근데 너 ‘선업튀’ 봤냐?” 부고 소식을 듣고 달려간 장례식장에서 상주인 친구와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친구 엄마는 요양원과 병원을 오가는 오랜 투병생활 끝에 지난 주말 영면에 드셨다. 딸만 셋인 집안의 맏딸로서 친구는 그간 맘고생, 몸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간의 어려움을 얘기하다가 대뜸 이 말을 꺼냈다. ‘선재 업고 튀어’라는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남자 주인공의 매력에 빠져든 여심이 엄청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고인을 추모하던 그 상황에서 드라마 얘기를 들을 줄이야. 간병생활의 스트레스를 ‘선재’를 보며 풀었다니 엄숙해야 할 장소에서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폐암 투병 중 ‘욘사마’에게서 위로를 받은 일본 작가 사노 요코가 떠올랐다. 그녀의 유작 ‘죽는 게 뭐라고’에는 소파에 누워 거의 하루 종일 ‘겨울연가’를 보며 고통과 우울을 잊는 대목이 나온다. 선재든 욘사마든, 아프고 고단한 시간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환상의 존재는 늘 필요하다.
  • [길섶에서] 지금 이 자리에

    [길섶에서] 지금 이 자리에

    며칠만 떠났다 돌아와도 집 안의 사물들이 낯설다. 얌전한 줄 알았던 화분의 푸른 것들은 장난처럼 우썩 뻗어 있다. 발이 묶인 생명들은 오며 가며 치근대는 사람이 없을 때 더 분방하게 자라는가 싶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무사(無事)를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쉬는 것. 떠났던 이유를 언제나 돌아온 집에서 발견한다. 멀리서 눈으로 귀로 챙겼던 것들은 집 뒷길에도 있다. 그늘을 넓혀서 안간힘을 쓰는 유월의 나무, 바람이 없어도 밀려가는 구름장, 길어지는 저녁해. 여행의 종착지는 마지막 여행지가 아니라 뻔질나게 걷던 이 길을 다시 걷는 이 순간이다. 시인 목월은 중년 한때 ‘앉아 있기’가 좌우명이었다. 세상의 부화뇌동에 흘려보낸 시간을 반성하노라며 어느 글에서 그렇게 썼다. 머물 줄 알면 더 크게 열리는 눈과 귀. 내 안에 나 혼자 걷는 오솔길에서 날마다 삶의 모서리를 잘 접을 줄 아는 일. 그보다 환한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앉아서도 혼자 환한 저 꽃나무처럼. 황수정 수석논설위원
  • [길섶에서] 별거혼(別居婚)

    [길섶에서] 별거혼(別居婚)

    얼마 전 일본 도쿄에 출장을 간 김에 여러 지인을 만났는데 ‘별거혼’(別居婚)이란 말을 듣고는 놀랐다. 31세의 젊은이는 누군가와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그 이유가 별났다. 만나자는 연락을 받는 게 귀찮고, “좋은 사람인데 좋아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주중에는 일 때문에 바쁘고, 주말에는 함께 밥을 먹어 줄 상대는 필요한 딜레마 속에서 결국은 이별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주말에만 함께 지내는 별거혼이 딱 어울린다고 덧붙였다. 독신의 자유와 기혼자의 안정감이 양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데 선뜻 이해는 되지 않는다. 일본에선 ‘부원병’(夫源病)이란 말도 중년 여성들에게 유행이라고 한다. 부원병이란 남편의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를 일으켜 심신의 병에 이르게 하는 증상인데 의학 용어는 아니다. 황혼 이혼의 원인으로 꼽힌다. 반대로 ‘처원병’(妻源病)도 있다. 아내의 존재로 인해 몸과 마음에 병이 깃드는 것이라는데 결혼 제도 자체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 [길섶에서] 우중 산행

    [길섶에서] 우중 산행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소소한 일이라도 선택 없이 이뤄지는 건 없다. 주말의 우중 산행도 그랬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전하며 산행 여부를 등산 모임의 총무가 묻는다. 강우량은 시간당 1㎜였지만 오전 내내 온다면 피로도를 높이는 일이기에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고민은 쉽게 해결됐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등산 고수의 반응에 다들 동의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꾸준히 내리는 비에 산길은 질척거렸으나 적당한 긴장감을 일으키며 등산의 묘미를 더했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전망이 탁 트인 산 능선에 다다르자 자연과 한마음이 되는 무아지경에 빠진다. 산 허리를 감싸며 춤추는 듯한 운무, 빗방울과 나뭇잎이 내는 음악 소리, 빗방울을 머금은 능소화는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쏟아지는 빗속을 뛰어 봐요, 부딪치는 빗방울이 즐거워요’라는 노래 가사를 만든 이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폭우만 아니라면 우중 산행은 자연과 한마음이 될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이다.
  • [길섶에서] 쌈짓돈과 비자금

    [길섶에서] 쌈짓돈과 비자금

    얼마 전 만난 선배 한 분이 “아내 눈치를 보지 않고 ‘슬기로운 은퇴생활’을 하려면 ‘작은 주머니’ 하나는 따로 챙겨 놓는 게 좋다”고 했다. 부인 몰래 쌈짓돈을 모아 일종의 비자금을 만들어 놔야 운신이 편하다는 것. 또 다른 선배는 회사에서 간간이 받는 소액의 인센티브를 조용히 별도 계좌에 넣어 오다가 부인에게 들켜 가벼운 핀잔을 들었단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1심 때 665억원이었던 재산분할액이 항소심에서 1조 3808억원으로 커진 결정적 계기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다. 300억원이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흘러가 SK가 급성장할 수 있었다는 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최 회장이 일부일처제를 존중하지 않았다고 꾸짖은 재판부에 대해 “속이 시원하다”는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노태우 비자금’의 SK 유입이 사실인지, 불법비자금을 종잣돈 삼아 맺어진 열매가 노 관장에게 귀속되는 게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박성원 논설위원
  • [길섶에서] 지방과 ‘뚜벅이’

    [길섶에서] 지방과 ‘뚜벅이’

    고향 친구들과 버스로 주왕산을 다녀왔다. 동서울터미널과 경북 주왕산터미널을 오가는 고속버스는 하루 세 편. 오전에 출발해 정오 지나 도착, 등산하고는 숙소로 가는 길에 소형 버스를 탔다. “교통카드 어디다 찍어요”라고 묻자 운전기사가 당황했다. 짧은 침묵 뒤에 나온 답은 “무료인데요.”(청송군 군내버스는 2023년 1월부터 무료였다.) 목적지 인근 정류장을 묻는 우리들 질문에 기사뿐만 아니라 승객들은 다양한 대안을 줬다. 그 덕에 주왕산터미널과 숙소 사잇길이 친숙해졌다. 자가용으로 여행 갔다면 주차장에 차 세우고, 등산하고, 밥 먹고 서울로 돌아왔을 거다. 숙박을 했더라도 주민들과의 대화는 식당에서 주문할 때뿐이었겠지. 편했겠지만 추억은 단순했을 거다. ‘뚜벅이 여행’이 자가용 여행보다 재미가 더 쏠쏠하다. 사람이 줄어들어 ‘생활인구’까지 거론되는 시대에 뚜벅이 여행이 지방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서울 촌놈 촌녀’들의 뚜벅이 여행이 많아지면 좋겠다. 전경하 논설위원
  • [길섶에서] 용미리석불을 지나며

    [길섶에서] 용미리석불을 지나며

    남한산성을 처음 찾았을 때다. 산성리에서 차를 내리면 인조가 병자호란 당시 송파로 항복하러 나섰다는 우익문을 따라 오르게 된다. 관측을 겸한 지휘소였다는 수어장대에 이르자 성남 일대가 환하게 펼쳐졌다. 하지만 청나라 군사가 몰려왔을 송파 방향은 키 큰 나무로 가로막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중요한 문화유산 현장의 역사성이 뭔가 흐려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주말 냉면집을 찾아가는 길에 파주 혜음로에서도 그랬다. 파주에 살고 있는 만큼 용미리석불입상이 있는 옛 의주대로의 일부를 종종 지나게 된다. 그런데 창밖으로 아무리 찾아봐도 석불입상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몇 해 전만 해도 큰길에서 석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는데 그새 수풀이 더욱 우거졌나 보다. 이 길을 지나는 이들의 안전을 염원하는 아름다운 배려가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다. 그 의미가 살아나도록 나뭇가지를 조금만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자연유산에는 실례가 될까.
  • [길섶에서] H마트의 추억

    [길섶에서] H마트의 추억

    영국 런던에서 해외 연수를 한 지도 어언 7년이 다 돼 간다. 당시 가장 고역이었던 건 역시 음식이었다. 런던 한복판에 있는 한식당은 무척 비싸 자주 갈 형편이 안 됐다. 미국에서 시작된 한국계 유통기업 H마트가 소규모로 몇 군데 있긴 했는데, 제대로 된 식재료를 사려면 런던 외곽의 뉴몰덴이라는 한인타운 근처의 대형 H마트까지 가야 했다. 기차를 타고 20여분, 걸어서 다시 15분을 가야 하는 장거리 코스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대형 H마트엔 한국 마트처럼 없는 게 없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K팝을 넘어 K푸드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요즈음 오랜만에 H마트 소식이 들렸다. 지난해 미국에서 신라면이 5억개 넘게 팔렸다는데 미국 뉴욕타임스가 ‘K라면 신드롬’의 산실로 한국계 유통기업 ‘H마트’를 지목했단다. 해외 유학생들에게 한식의 그리움을 잊게 해주는 단비 같은 존재였던 H마트가 이젠 현지인들의 입맛까지 바꿨다는 소식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 [길섶에서] 내시경의 위약 효과

    [길섶에서] 내시경의 위약 효과

    90대 중반인 어머니가 얼마 전 복통이 심해 한밤중에 응급실에 가셨다. 낮에 노인보호센터에서 입맛에 맞는 음식이 나오자 과식한 게 탈이 났던 것. 주사약과 수액을 맞았음에도 통증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혈액검사와 CT 촬영까지 했다. 병원에선 염증 수치만 높게 나올 뿐 특별한 이상은 안 보인다면서도 복통이 가라앉지 않자 입원을 권했다. 어머니는 위장에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위내시경 검사를 받게 해 달라고 하셨다. 의사는 너무 고령이시라 위험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수면마취도 부담스럽고 위벽이 얇아 자칫 천공의 위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입원 중에도 어머니가 계속 내시경을 받겠다고 고집하시자 결국 수면내시경을 시행했다. 어머니는 다행히 무사히 깨어나셨다. 의사는 단순 위염 외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부터 어머니의 복통이 싹 가셨다. 뭔가 단단히 고장났을 것이란 생각이 강해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던 듯싶다. 내시경 검사가 ‘위약효과’라도 발휘한 모양이다. 임창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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