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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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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표정/노주석 논설위원

    인간의 표정 3000가지를 촬영한 사진가가 있다. 나는 몇 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거울을 잘 보지 않는 탓에 알 도리가 없다. 감정표현에 무딘 편이다. 웃고, 울고, 화나고, 놀라고, 기뻐하고, 삐치고, 쫄고, 떨떠름해하고, 안타까워하고, 비웃고, 부럽고, 무섭고, 슬픈…. 그리고 무표정. 기껏해야 열 손가락 안일 것이라는 짐작과 달리 의외로 많다. 컴퓨터그래픽으로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 복잡미묘한 얼굴 감정표현이란다. 다윈은 “사람과 동물의 표정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다.”고 설파했다. 표정도 유전된다는 게 최신 연구 성과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루오전’에 다녀왔다. 그림을 보기 전에는 루오의 색에 관심이 있었지만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등장인물의 표정에 마음이 끌렸다. 판화 속 인간군상의 표정은 흑과 백 두 가지로도 충분히 표현되고 남았다. 간교, 음험, 사악, 비열한 표정 앞에서 치를 떨었다. 가끔씩 이상한 표정 짓지 말라는 지적을 듣는다. 이 순간 내 표정이 궁금하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겨울 산행/함혜리 논설위원

    산악회를 따라 몇 해 전 겨울에 소백산에 간 적이 있다. 추위도 추위였지만 아이젠이 자꾸 벗겨지는 바람에 고생을 제대로 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산 너머에서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정상에서는 눈보라가 몰아쳐서 잠시 서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어찌나 긴장하면서 산을 내려왔던지 온몸의 근육이 뭉쳐서 며칠 동안 고생했다. 그날 이후로 겨울 산행은 아예 하지 않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짜 산의 속살을 보고 싶다면 겨울이 제격”이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같은 산이라도 겨울에 가 보면 나뭇잎이 우거졌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능선 위로 솜털처럼 줄지어 선 나목들이 이채롭다. 흰 눈이 쌓인 산을 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기분도 색다르다. 칼바람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산은 또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겨울 산의 감동을 놓치고 사는 게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겨울이 다 가기 전에 장비 제대로 갖추고 겨울 산행에 재도전해 볼 참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반성/함혜리 논설위원

    점심 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시청앞 지하도를 나서는데 계단에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면서 앉아 있었다. 할머니 앞에 놓인 분홍색 플라스틱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참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속으로 온갖 핑계를 대면서. ‘날씨도 춥고, 시간도 없고, 지갑 꺼내기도 귀찮고….’ 그 순간 ‘찰랑’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젊은 외국인 여성이 바구니에 동전 몇닢을 넣어준 뒤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주머니 속의 지갑만 만지작거리다 그냥 지나친 내가 부끄러웠다. 한 사진작가가 들려준 인도 바라나시의 꽃 파는 소녀 이야기가 생각났다. 길에서 만난 소녀가 “나의 꽃을 사지 않으면 당신은 후회하고 말 거예요.”라며 간절하게 부탁했지만 갈길이 바쁘다며 뿌리쳤던 그는 지금껏 그 일을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잠시 멈추기를 주저하지 말고 자비를 베풀라는 그 얘기가 그제서야 진실로 가슴에 와닿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야~호/박대출 논설위원

    지난 주말 청계산에 올랐다. 103년만의 폭설이 내린 산은 맑았다. 백설을 모처럼 즐겼다. 산 아래의 불편함은 잠시 잊혔다. 발바닥엔 뽀드득 감촉이 와닿았다. 영하의 날씨에도 땀이 흘렀다. 내친김에 야~호를 외쳤다. 어릴 때 새벽 약수터 다니면서 배운 야~호였다. 백설에 매료돼 오랜만에 내질렀다. 묵은 때를 벗는 상쾌감을 맛봤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이런 무식을 일깨웠다. 산에선 야~호가 금지란다. 지리산 반달곰 15마리가 동면에 들어갔다. 야~호는 곰들을 깨우는 행위다. 자칫 깨어나 탈진할 수도 있다. 야~호는 야생 동물에 스트레스를 준다. 불임 원인까지 된다. 인간이 제생각만 하면 자연이 다친다. 뒤늦게 알았다. 동료가 위로해준다. 후지산에서 일본 사람들도 야~호를 외치더라고. 아파트 마당은 아직도 온통 눈이다. 출입문 쪽에 길을 낸 게 내가 한 일의 전부다. 응달이라 녹을 조짐이 안 보인다. 구내 방송에서 주민 협조를 구한다. 주말엔 잠시 짬을 내야겠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길섶에서]처음 그대로/함혜리 논설위원

    21세기의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면서 여느 때와는 다른 각오를 다졌건만 아직도 획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느니 생활 속에서라도 작은 변화들을 꾀하기로 다짐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법. 30분 일찍 일어나기, 아침에 기지개 활짝 켜고 5분 이상 스트레칭 하기, 세수한 뒤 거울 보고 활짝 웃기,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운동하기, 주말에 약수터 가기, 한 번 이상 붓글씨 쓰기, 가족들에게 자주 안부전화하기, 전화 친절하게 받기, 약속시간보다 5분 일찍 가기,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기, 내가 먼저 정답게 말걸기…. 노자의 도덕경에 신종여시(愼終如始) 즉무패사(則無敗事)란 말이 나온다. ‘마지막에도 시작할 때처럼 신중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란 뜻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의 마음가짐을 갖고 끝까지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을 다하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그러질 못하니 뜨끔하다. ‘처음 그대로의 마음을 끝까지 잃지 않기’도 변화 목록에 추가해야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기숙학원/이춘규 논설위원

    수도권의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면 대학입시 ‘기숙학원’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경기도 남양주시 축령산 입구에는 D기숙학원이 있다. 양평군 양수리 인근에는 다른 D학원이 있다. 강화도에는 콘도를 개조한 J기숙학원이 있다. 20여년 전부터 생긴 기숙학원 열기를 실감케 한다. 기숙학원은 온갖 유혹으로부터 격리시켜 공부에 매진케 하는 환경을 제공한다. 오전 6시께 기상해 종일 공부다. 점호를 거쳐 밤 12시에 1차 취침, 이어 오전 2시 의무취침 식이다. 단체복도 입힌다. 휴대전화나 동영상 재생기 휴대는 금지다. 외박은 3주~1개월에 1회꼴로 허가된다. 불안한 부모가 원하면 인터넷을 통해 학생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곳도 적지 않다. 규율은 군대 이상 엄격하다. 강사들이 24시간 함께한다. 안쓰러울 정도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모여든다. 막판 대학입시철 기숙학원들이 광고를 통해 재수생 유치 경쟁을 펼친다. 직영농장의 안전먹거리, 운동시설 등을 내세운다. 2011학년도 대학입시 열풍이 벌써부터 뜨겁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1월의 성탄절/노주석 논설위원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12월25일이 아니다. 1월7일이다. 지난 성탄절 러시아인 후배 가족을 집에 초대했다가 알게 됐다. 달력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력과 달리 정교회를 믿는 러시아는 율리우스력에 따라 성탄절을 맞는다. 율리우스력은 그레고리력보다 매년 11분이 늦어 지금은 13일 정도가 차이가 난다. 그레고리력은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1582년 고안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5년에 도입한 율리우스력으로 계산하면 부활절과 성탄절의 날짜가 달라지는 문제를 해소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정교회 신자들은 로마교황이 제정했다는 이유로 그레고리력을 따르지 않는다. 일상생활은 그레고리력을 쓴다. 러시안 후배는 연말엔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대신 1월1일부터 열흘 정도 신년 겸 성탄휴가를 갖는다고 했다. 음력과 양력이 혼용되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올 설날은 2월14일이다. ‘2월의 설날’이나 ‘1월의 성탄절’이나 매한가지가 아닌가.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거소증/박대출 논설위원

    A는 재미교포다.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한다. 3년째 접어들었다. 적잖은 세금을 낸다. 그는 주민등록증이 없다. 주민등록번호가 자동 말소됐다. 거소증으로 신분증을 대신한다. 불편함이 하나 둘이 아니다. 휴대전화 신청부터 안 된다. 겨우 회사 명의로 개통시켜 쓴다. 집 전화는 그래서 달지도 못했다. 케이블 TV도 못 본다. 인터넷 쇼핑도 할 수 없다. 신용카드 발급은 처음부터 포기했다. 거소증 번호는 13개 숫자로 돼 있다. 앞은 6자리, 뒤는 7자리다. 주민등록번호와 체계가 같다. 그런데도 별로 쓸모가 없다. 개인정보 입력단계에서 막힌다. 인터넷도, 은행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 회사에, 케이블 TV 회사에 따져봐야 소용 없다. 어떤 때는 화가 치민다. 납세의무까지 다하는데 권리는 없다. 국민권익위가 권고안을 냈다. 이런 불편함을 덜자는 취지다. 어릴 때 고향 동네에 화교학교가 있었다. 없어진 지 오래다. 상당수가 한국을 떠났다. 상속문제를 비롯한 여러 불편함 탓이었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길섶에서] 호호호/노주석 논설위원

    지하철의 변신이 눈부시다. 시(詩)가 등장한 것이다. 비록 자투리이지만 지하공간을 문화화하려는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된다. 전에는 전차를 기다리며 멍하게 서 있기 일쑤였다. 요즘은 시가 적힌 스크린도어 앞으로 발길이 절로 향한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문학소녀 시절이 그리운 아주머니도, 시 읽을 시간이 없는 학생들도 기웃거린다. 소의 해가 지고, 호랑이해가 떴다. 일갑자 만에 돌아온다는 귀한 흰 호랑이기도 하다. 지난 연말 지하철 곳곳에 나붙은 포스터의 문구가 재미있었다. “올해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소’ 다음해는 ‘호호호’ 웃읍시다”. ‘소’도 나오고 ‘호랑이’도 나오는 재치있는 덕담이다. 호시우보(虎視牛步)라 했다. 소처럼 우직하게 걷되 호랑이처럼 매섭게 살피라는 뜻이리라. 지난해와 올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가 여럿 소개됐지만, 십이간지의 바통을 주고받는 두 동물이 동시에 등장하는 유일한 성어가 아닌가 한다. 간과하지 말 것은 ‘호호호’ 웃기보다 쿨한 시각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착한 군인/이춘규 논설위원

    서울에 103년만의 폭설이 내린 4일 현장확인을 위해 걸어서 귀가했다. 오후 9시 태평로 사무실을 나서 남대문, 남산, 후암동 길을 지났다. 간신히 사람 다닐 정도의 길만 뚫려 있었다. 사무실이나 집앞 눈을 치운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면도로는 차가 다니지 못했다. 조심조심 걸었다. 오후 10시 용산동2가 비탈진 이면도로. 수십명의 군인들이 눈을 치우고 있었다. 취침점호가 끝나고 잠잘 시간인데. 제설용 플라스틱 삽과 빗자루 등으로 벌써 수십m를 깨끗이 정비했다. 전투복을 단정하게 입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다. 한참을 지켜봐도 요령 피우는 군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착한 군인들. 믿음직했다. 얼었던 몸이 스르르 풀렸다. 이들이 없었다면 1시간반 귀갓길은 온통 황량했을 것이다. 다설지역 고향마을 사람들은 “눈 온 날 집앞 길은 그 집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해 신경썼다. 길이 100m가 넘어도 식구들이 나서 수시간씩 눈을 쓸었다. 눈 치우기는 생활이었다. 왜 서울시민들은 제 집·가게앞 눈을 방치할까. 해결책은 없는가.
  • [길섶에서] 사제지간/함혜리 논설위원

    해남의 미황사에서 해넘이·해맞이 템플스테이를 했다. 폭설에도 불구하고 땅끝 마을의 미황사까지 새해를 맞으러 온 사람들은 60여명이나 됐다. 모든 일정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데에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컸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새해 아침에 절 마당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여섯명의 젊은이들은 양산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친구들로 올해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가고 싶은 곳도 많을 텐데 하필 절에서 자원봉사를 한 이유가 궁금했다. 중2 때 담임선생님이 미황사에서 자원봉사를 하는데 함께 하자고 권했기 때문이란다. 올해 30대 초반인 선생님에게 양산중학교는 첫 부임지였고, 그 해에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이라 각별한 애정이 여태껏 지속되고 있다. 좋은 일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 선생님과 그 뜻에 선뜻 따라나선 제자들. 모든 사제지간이 이 정도만 된다면 세상이 참 따뜻할 텐데.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작심/이순녀 논설위원

    새해 첫날, TV를 보던 남편이 담뱃갑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흡연자의 폐를 찍은 사진이 화면에 나올 때였다. 지난해 경험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작심삼일 아니야?” 툭 던지고선 아차 싶었다. 담배를 끊겠다고 마음 먹은 게 어딘데 격려는 못해줄망정 비아냥거리다니…. 미안한 마음은 하루를 못갔다. 잘 참나 했더니 결국 담배의 유혹에 지고 말았다. 작심삼일도 아니고 작심하루였다. 그나마 담배 피는 횟수를 줄이려고 껌을 씹는 노력을 계속하는 게 다행이다 싶다. ‘그 마음에서 일어나서 그 일을 해치고, 그 일에서 일어나서 그 다스림을 해친다’(作於其心 害於其事 作於其事 害於其政)는 맹자의 말에서 유래한 작심(作心)은 심사숙고하여 마음에서 결정짓는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삼일을 못간다니 한번 굳어진 습관은 얼마나 고치기 어려운가. 그래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아무리 작심삼일로 끝날지라도 작심을 멈추지 않는 것, 이것을 올해의 목표로 삼는 건 어떨까.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희망/함혜리 논설위원

    내일이면 2010년이다. 엊그제가 연초인 것 같은데 또 다른 한해가 시작된다니. 그뿐인가. 2000년이 시작된 게 바로 얼마 전 같은데 벌써 10년이 지났다. 세월유수(歲月流水)라는 말이 실감난다. 앞으로의 세월도 이만큼 빠르게 흐를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앞에 무릎을 꿇을 만도 한데 새해가 다가오니 또 다시 마음이 설레는 것은 웬 조화인지 모르겠다.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희망과 용기를 느끼면서 새로운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올해엔 꼭!’ 하면서 다짐을 하게 된다. 장자는 인생을 빛이 작은 틈새를 잠시 비추다 홀연히 사라지는 것처럼 짧고 무상하다고 했다.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날들, 정성을 다해 현재를 살라는 교훈이다. 과거에 매달려 후회해 봐야, 오지 않은 미래를 동경하거나 두려워해 봐야 소용없다. 힘든 일들, 괴로운 기억들을 모두 털어 버리고 희망찬 새해를 맞자.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믿어 보자. 가슴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희망을 품는다는 것,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역시 행복한 일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길 위의 삶/함혜리 논설위원

    몹시도 추웠던 날 인사동에서 저녁모임이 있었다. 종종걸음을 치며 약속 장소로 향하는데 골목길의 어두운 담 너머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갈 곳 없는 고양이가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기 힘들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들여다 봤지만 어둠 속에서는 찬바람만 쌩하고 불어 나올 뿐 고양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임을 마치고 다시 그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고양이는 여전히 울고 있다. 비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가여운 고양이…. 그날 밤 덕수궁 앞 지하도를 지나가게 됐다. 커다란 박스로 바람을 막고 새우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찬 기운이 올라와서 잠시 앉아 있기도 힘들 텐데 이런 데서 이 추운 날 잠을 자야 하다니 얼마나 괴로울까. 가슴이 짠했다. 길 위의 삶은 모두에게 고달프다. 고통의 정도만 다를 뿐. 몸 건강하고, 등 따뜻하게 잘 수 있고, 내 능력을 발휘할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추운 겨울에 새삼스럽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연하장/노주석 논설위원

    책을 사러 서점에 들렀다. 지하철과 이어지는 입구부터 문전성시다. 방학이라 붐비나 했더니 이유는 딴 데 있었다. 카드 코너가 입구 쪽에 설치된 때문이었다. 진열품의 대부분은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카드다. 연하장은 구색용이다. 아직 X-마스 카드란 용어가 입에 낯설다. 연하장이 익숙하다. 연하장을 고르는 사람들이 저마다 생각에 잠겨 있다. 어떤 연하장을 누구에게 보낼지 생각하는 것일 게다. 연하장을 선택하고 나서 대상자를 정할까. 아니면 사람에 따라 알맞은 연하장을 고를까. 걸음을 멈추고 표정을 살폈지만, 궁금증만 더할 뿐이다. 연하장을 사지 않은 지 꽤 됐다. 기억이 까마득하다. 연하장을 고르고, 의미 있는 글귀를 적으려고 품을 들였던 때가 있었다. 회사에서 주는 연하장에 부모님과 집안어른께 몇 자 적어 보낸 게 또 얼마 전이었던가. 십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판이다. 진열장을 부지런히 오가는 젊은이들이 가상하다. 연말연시 축하 문자나 전자우편 보내기도 슬그머니 끊어버린 무심함이 겸연쩍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앙금/김성호 논설위원

    ‘다사다난’ ‘송구영신’ ‘만사형통’…. 해마다 이때쯤이면 이런저런 모임이며 행사에서 단골로 오가는 말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즈음에서 잊고 싶고 바라는 것들이 오죽 많으랴. 나쁜 앙금을 떨쳐 정상의 복귀와 유지를 얻으려는 회심(回心)들이다. 또 나도 좋고 너도 좋아지라는 희망을 말만에라도 담으려는 희구의 표증들이다. 언제부터인가 연말 모임에 ‘망년’보다는 ‘송년’의 명칭을 즐겨 쓴다. 망년이 잊고 싶을 만큼 나쁜 것들에 대한 소멸이라면, 송년은 덤덤하게 보내자는 뜻들의 결집일 터. 이왕 보낼 것이라면 굳이 잊고 말자는 허무의 강조가 뭐 긴요할까. 이름만이라도 희망의 뉘앙스를 택하자는 의기투합이 좋아 보인다. 오랜만에 ‘송년회’아닌 ‘망년회’ 초청을 받았다. ‘잊지 못할 앙금을 하나씩 갖고 오라.’는 주문과 함께. ‘망년’ 이름도 부담이지만 만인 앞에 털어놓을 앙금 찾기가 고민이다. 좋건 나쁘건 앙금들을 공유해 희망을 나누자는 뜻이겠지. 그런데 그 앙금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지지고 볶은 일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휴대전화2/이춘규 논설위원

    평일 오전 일찍 지방으로 가는 KTX 고속열차 일반실. 주변 10여명이 2시간여동안 쉼 없이 휴대전화 통화를 한다. 진동으로 해 놓은 사람들도 상당히 있었다. 밖에 나가서 통화하는 사람도 있다. 통화내용은 지방출장을 가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 주류다. 계속되는 소란에 짜증내는 승객도 있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가능한 풍경이다. 열차 안에서도 이처럼 바쁘게 일을 처리하다니.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신호를 진동으로 해놓고 통화할 경우에는 작은 소리로 해 주변사람을 배려하라는 안내방송 영향인 듯 통화예절을 지키려 노력했다. 휴대전화 예절이 엉망인 서울공공장소 풍경과 조금 달랐다. 문명의 이기 휴대전화의 진화가 눈부시다. 터널 안, 산중 등 통화불능 지역이 하나둘 사라져 간다. 전국의 웬만한 곳에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편리하다. 엘리베이터에서도 휴대전화 끊김 현상이 개선된다고 한다. 반기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 휴대전화의 상시습격에서 잠시 벗어날 공간이 남아있길 바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너무 한가한 바람인가.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자유인/이춘규 논설위원

    올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와 중견 소설가, 번역가, 출판인 등과의 송년회를 떠올린다. 이른바 자유직업인들. 해당 직업세계에서 일가를 이룬 그들은 외부인들에게 ‘자유인’으로 불린다. 그들은 진정한 자유인일까. 조직의 속박에서 자유롭고, 시간 활용이 월급쟁이들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이들. 입담에서 대한민국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들은 문학, 정치, 경제 등을 주제로 토론하며 자유인의 특장을 보여줬다. 내년 초 보름 정도의 단체 해외여행 계획을 다듬었다. 술병들은 속속 비워졌다. 자리는 끝날 줄 몰랐다. 월급쟁이는 자정께 먼저 자리를 떴다. 그들과의 술자리는 매번 그렇게 끝낸다. 그런데 그들도 여러 면에서 그늘이 있단다. 창작활동을 위해 수도권 오피스텔 등지를 낭인처럼 떠돈다. 경제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신진기예들과의 소재·상상력 경쟁은 너무 버겁다. 눈을 혹사해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면 직업생명이 위협받는다. 대박 압박은 머리를 짓누른다. 끝모를 번뇌. 그들도 결코 자유인이 아니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서촌/이춘규 논설위원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 서울 옥인동, 체부동, 통인동 일대 서촌(西村)은 한옥이 밀집한 조용한 주거공간이었다. 서촌이 한겨울 아우성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체부동 일대를 경복궁 서측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묶으며 재개발사업이 멈춰서면서다. 곳곳에 ‘체부동 주민은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 ‘한옥보전지역을 원치 않는다.’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옥류동천 복원도 삐걱거린다. 옥류동천은 인왕산 계곡 물길이다. 서울시가 복원하려 하고 있다. 주민들은 물길 복원 사업이 옥인동과 통인시장 일대 300여 가구 주민들의 삶터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복원 반대 현수막을 여기저기 걸어놓았다. 이달 초 간담회도 개최했다. 정치권에도 호소한다. 서촌에서 공익과 사익이 충돌하고 있다. “사적인 이익 실현을 위해 공익사업을 반대한다.”는 시선에 주민들은 억울해한다. 당국은 공익을 위해 사익이 일부 훼손될 수 있지만 보상은 하겠다고 반박한다. 개발과 보전이 충돌하는 파열음도 복잡하다. 파열음 속에 세밑 스산함이 서촌에 스며든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데드라인/이순녀 논설위원

    데드라인(마감시한)은 기자의 숙명이다. 아무리 뛰어난 특종, 촌철살인의 칼럼이라도 마감을 지키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 해서 기자가 지켜야 할 첫번째 수칙은 마감 엄수다. 그러다 보니 생긴 웃지 못할 직업병도 있다. 기사가 안 써질 땐 마감이 약이다. 그렇게 안 풀리던 기사도 마감이 닥치면 마법에라도 걸린 양 손가락이 저절로 자판을 날아다닌다. 뉴욕타임스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데드라인 대통령’이란 별명을 붙였다. 주요 이슈마다 시한을 정하는 통치 스타일 때문이란다. 문제는 데드라인이 제 역할을 못 한다는 것. 에너지 관련법안, 러시아 군축협상, 건강보험개혁법안 등이 이미 마감을 넘겼다고 뉴욕타임스는 꼬집었다. 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예산안 처리, 노조법 개정 등 현안의 마감이 코앞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데드라인은 오바마 개인의 신뢰도에 영향을 주지만 예산안과 노조법은 마감을 어기면 국민이 고통받는다. ‘마감의 마법’이 일어나길 기대할 수밖에 없을까.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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