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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세대차 단상/구본영 논설위원

    설날 연휴에 초등학교 동기들과 아주 오랜만에 ‘학사주점’에 들렀다. 부지불식간 막걸리 사발과 소주잔을 함께 기울이던 옛 추억을 더듬기 위해서였는지 모르겠다. 드럼통 식탁이 번듯한 통나무 테이블로 바뀌었을 뿐 머리 벗겨진 주방장 겸 주인장이 건재해 반가웠다. 그러나 달라진 기본 안주와 분위기에 놀랐다. 번데기와 생고구마, 콩나물 등을 기대했건만 방울 토마토와 떡볶이, 느끼한 돈가스 몇 조각이 전부였다. 왜 김치가 없느냐는 타박에 주방장은 “요즘 학생들은 찾지 않는다.”며 우물에서 숭늉을 찾느냐는 표정이었다. “손님들은 진작 이곳을 졸업한 분들”이라는 농과 함께. 문득 시대 변화에 둔감해졌을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혹여 집에서도 아이들에게 세대차를 무시한 채 모범적 생활태도만 ‘설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었다. “바뀌어야 할 것은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이건만 사람들은 삶 자체만 바뀌기를 바란다.”는 예반의 말이 떠올랐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명함/이춘규 논설위원

    명함은 처음 만나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수단이다. 일반적으로 성명, 직위, 직장주소, 전화번호, 전자우편주소 따위를 새겨 넣는다. 회사원이나 공무원 대다수는 직장에서 만들어주기 때문에 개성을 못 살린다. 어쩌다 멋진 캐리커처가 새겨지거나 디자인이 독특한 명함을 받으면 강한 인상이 남는다. 경험상 국적과 명함은 상관관계가 미미했다. 서양인들은 의외로 표준적인 명함을 내민다. 중국인도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은 친환경 재생종이임을 강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젊은층 다수는 사진 등을 넣어 차별화를 꾀한다. 정치인이나 기업체 영업사원, 예술인 등의 명함은 국적과 무관하게 개성이 풍부한 게 많다. 외식업체 대표로부터 인상 깊은 명함을 받았다. 전면에는 생일과 좌우명, 장래 꿈도 기입했다. 뒷면에는 ‘고객을 위해 항상 새로운 생각을 한다.’는 글을 영어 알파벳으로 새겨 외국인을 배려했다. 인상이 강렬했다. 개성있는 명함을 새겨보자. 상대방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것 같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추기경 회고/이순녀 논설위원

    그곳에 추기경이 계셨다. 귀에 꽃을 꽂은 채 환하게 웃는 추기경, 인터뷰 도중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추기경,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는 추기경. 명동성당 계단을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만나는 사진 속 추기경의 모습에 보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웃다가 울다가 그리고 경건해졌다. 언제나 가장 힘없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낮은 자세로 기도했던 ‘바보천사’ 김수환 추기경. 종교 지도자이기 이전에 우리 사회의 큰어른으로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고인의 빈 자리가 더욱 커 보이는 요즘이어서일까. 추기경이 우리 곁을 떠난 지 꼭 1년째인 16일 낮 명동성당에는 삼삼오오 사진을 보며 고인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이웃의 밥이 되어주라고 했던 고인의 유지는 지난 한해 장기기증자 급증, 나눔 바이러스 확산으로 이어졌다. ‘바보의 나눔재단’도 새달 출범한다고 한다. 명동성당 주변을 가득 메웠던 거대한 추모 인파에서 시작된 ‘명동의 기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길섶에서]역귀성/이춘규 논설위원

    설 직전 기력이 예전같지 않은 노모를 모시고 역귀성을 위해 고향에서 기차를 탔다가 놀랐다. 객차 안이 온통 허옇다. 도회지 자식들 집에서 설을 쇠기 위해 역귀성하는 어르신들이 차지했다. 이 칸 저 칸 살펴보았다. 거듭 세어 봐도 70% 안팎이 어르신들이다. 선반에는 자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싸가는 짐들이 그득했다. 명절 역귀성은 20여년 전부터 화제가 됐다. 추석보다는 설이 특히 그렇다. 요즘은 설 일주일 전부터 역귀성하는 어르신들이 많아 역 직원이나 열차 승무원들은 바빠진다. 부축해 드리기도 하고, 휴대전화로 마중나온 피붙이들과 연결시켜준다. 고속버스터미널 풍경도 유사하다. 역귀성은 자식들 귀성 고통을 덜어주면서 살아가는 형편을 살펴보는 기회도 된다. 그 역귀성이 증가일변도만은 아닐 것 같다. 찾아뵐 부모님을 여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 때 그리운 고향역 풍경도, 고향사람들도 점점 아련해진다. 명절엔 기쁨보다는 슬픔, 허망함이 절절하다는 어른들 말씀이 새롭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同伴/김성호 논설위원

    회자(會者)는 정리(定離)란다. 무상과 덧없음의 정의일 수 있겠다. 만남엔 헤어짐이 따르기 마련. 그래도 살다 보면 어디 헤어짐을 미리 알아 챙겨 만나고 맺을까. 그래서 느닷없는 별리는 항상 섭섭하고 아쉽다. 죽음의 별리야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 세상 회자정리의 극치. 차마 애써 대비하고 준비하기 어려운 난제이다. 점심때 찾아든 식당이 시끄럽다.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좋아 가끔씩 찾는 밥집. 비명에 간 동생 죽음을 못 견뎌하는 종업원 아주머니의 비탄이 안쓰럽다. 아침 사무실에서 마주한 직장동료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겹친다. 9년을 함께 살던 강아지가 심장마비로 떠났단다. 눈시울이 벌건 채 말도 채 잇지 못하는 비통.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가 유난히 을씨년스럽다. 내일모레면 설. 평상의 떨어지고 헤어진 삶에서 대하는 이런저런 만남의 순간이 각별한 명절이다. 도란도란 피우는 이야기꽃도 좋겠고. 함께 살아가는 인연들을 챙기고 도닥이는 오붓한 동반(同伴)을 생각해보자.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노후/노주석 논설위원

    부부모임. 표정이 어둡다. 오십 줄에 들고 나서 모이면 정년 이후가 단골 대화메뉴가 됐다. 몇 년 남았느니, 어떻게 살까 등등이다.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던 정치논평, 교육평론은 쏙 들어갔다. 날밤을 새우던 술추렴도, 평생 지겹지 않을 것 같던 부동산타령도 한물갔다. “‘도시농업’에 투자해야 해.” 친구가 던진 한마디.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다들 어리둥절했다. 설명인즉슨 요즘 유행하는 텃밭 가꾸기를 집으로 끌어들인 개념이란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아파트 난간이나 옥상 같은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상추도 심고, 선인장류도 키우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노후대책이란다. 건강에 좋고, 소일거리 확실하고, 집에서 먹는 채소값도 건질 수 있다며 장점을 늘어놓는다. 솔깃했다. 농사라곤 지어본 적 없지만 한번 배워볼까. 지금이라도 도시의 농부가 되어볼까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베란다 화분 가꾸기부터 시작해 종류와 양을 조금씩 늘리면 된다니 손쉬울 법도 하다. 집안 화초에 애착이 가는 간사한 마음이란.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위대한 침묵/이순녀 논설위원

    예상은 했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삶을 관조하듯 느리게 흐르는 화면 위엔 어떤 인위적인 소리도 덧씌워지지 않았다. 극장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완벽하게 고요했다. 낯설고 불편한 침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음이 가라앉으며 서서히 무음의 세계에 동화되는 것을 느꼈다. 2시간 50분의 침묵 여행은 그렇게 내면의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해발 1300m 알프스 산맥의 프랑스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영화 ‘위대한 침묵’이 소리 없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연말 서울의 한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단관 개봉한 이래 입소문을 타고 전국 9개 극장에서 8만여명의 관객을 모았다고 한다. 자급자족하는 수도자들의 생활과 묵언수행을 담고 있지만 종교 영화의 틀을 넘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인간 본연의 질문을 던지기 때문인 듯싶다. 무엇보다 말의 해악이 심해지는 시대에 침묵의 가치를 일깨워줬다는 점만으로도 진정 위대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친절/박대출 논설위원

    출근길은 전단지와의 전쟁이다. 점심 때도 마찬가지다. 가히 전단지 홍수다. 주로 아줌마들이 나눠준다. 열심히 해도 대가는 푼돈이다. 그나마 외면하는 이들이 더 많다. 야박해 보인다. 아줌마들에겐 중요한 수입원인데. 그래서 웬만해선 거절하지 않으려고 한다. 돈으로 계산해 봐도 하찮은 도움이다. 100원이나 200원어치는 될까. 아줌마들의 표정은 딱 둘이다. 무미건조형이 있고, 고맙다고 인사하는 형이 있다. 후자를 만나면 그냥 기분이 좋다. ‘말 한마디’를 인터넷 검색해봤다. 엄청나다. 사랑도 증오도 말 한마디에 달려 있다. 운명도, 세상도 바꾼다. 천냥 빚도 갚는다. 아이의 미래는 부모의 말 한마디가 좌우한다. 말은 거의 마술사다. 친절한 말 한마디는 엔도르핀 공장이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웃게 한다. 과학은 상대적이다. 한쪽을 내리면 다른 쪽은 올라가는 셈이 된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르다. 남을 깎아내리면 내가 안 올라간다. 남을 올리면 나도 올라간다. 내일은 먼저 전단지를 달라고 해봐야지.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길섶에서] 마음의 갑옷/함혜리 논설위원

    우편으로 책이 배달됐다. ‘마음의 녹슨 갑옷’. 미국의 희극작가인 로버트 피셔가 쓴 것이다. 작가 이름도, 출판사도 생경했다. 사연을 보니 이해가 갔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을 읽고 이 책을 보낸다는 출판사 대표의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알아주지 않는 현실을 칼럼에서 사례로 들었는데 그 글이 무척이나 가슴에 와닿으셨던 모양이다. ‘마음의 녹슨 갑옷’은 헛된 자존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책이다. 위대한 영웅의 소명에 심취돼 살아 온 기사의 이야기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갑옷이 오히려 족쇄가 됐음을 발견하고 벗어 버리려 했지만 너무 오래 입고 있었던 탓에 벗겨지지가 않는다. 몸에 굳어버린 갑옷을 벗기 위해 머나먼 여행을 떠난 기사는 자연의 소리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삶의 무거운 짐이 바로 늙고 고집센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갑옷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나쁜 사람들/함혜리 논설위원

    전남 구례의 운조루(雲鳥樓)는 조선 정조 때의 무관 류이주(1726∼1797)가 지은 99칸 대저택이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운조루의 외관도 아름답지만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혀 있는 커다란 뒤주와 낮은 굴뚝을 통해 보여주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나눔의 정신은 특히 감동적이다. 그젯밤 KBS 1TV 수요기획에서 운조루와 그 집에 살면서 고택을 지키는 후손들을 집중 조명했다. 재작년 봄 남쪽 여행 길에 운조루에 들렀던 터라 관심 깊게 지켜봤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고택의 원형과 가치를 보존하려는 후손들의 고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문화재 도둑들 때문에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운조루에는 무려 17번이나 도둑이 들었다고 한다. 종손 류홍수씨는 도둑들에게 머리를 크게 다쳐 2년 동안 병원신세를 졌고 지금도 건강이 좋지 않다. 여든 노모는 아들 생각에 근심이 가득하다. 도와주기는커녕 소중한 가치를 지키려고 애쓰는 후손들을 해치다니.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빠삐용/노주석 논설위원

    케이블TV에서 영화 ‘빠삐용’을 봤다. ‘다시 보고 싶은 명화’ 1위에 뽑혔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70년대 초반 빠삐용을 보았던 감회가 새로웠다. 영화의 인기와 함께 나비문신을 새겨넣거나 빠삐용이라는 별명을 붙이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때 보지 못했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이번엔 보이고 느껴졌다. 당시는 자유를 찾으려는 불굴의 의지와 우정이 영화의 뼈대라고 생각했다. 종신수 빠삐용(스티브 매퀸 분)은 독방에서 벌레를 잡아 허기를 채우면서도 탈출 공모자인 친구 드가(더스틴 호프먼 분)의 이름을 불지 않았다. 한센병자가 피우던 시가를 서슴없이 피우는 장면이나 절벽에서 뛰어내리던 장면 등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이번엔 달랐다. ‘인생을 허비한 죄’에 대한 해석 때문이었다. 포주살인죄를 끝내 부인했던 빠삐용도 인생을 낭비한 죄는 인정했다. 뜨끔했다. 나는 지금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짧지만 인생 전반기를 돌이켜보는 시간이 됐다. 좋은 영화 한 편은 고전을 거듭 읽는 것과 진배없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산격(山格)/이춘규 논설위원

    지난달 초 공부모임의 올해 첫 단체산행으로 경기도 의정부와 양주시에 걸쳐 있는 사패산(賜牌山)을 찾아갔다. 의정부세무서 뒷산 코스를 이용했다. 눈이 20㎝ 이상 쌓여 있었지만 일행은 능선을 따라 2시간이 안 돼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등산객들은 어린이에서 어르신까지 다양했다. 사패산은 조선 선조의 여섯째 딸인 정휘 옹주가 시집갈 때 선조가 하사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한동안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입산이 자유롭지 않아 보전이 잘됐다. 터널 소동이 있기까지 시민들에게 낯설었다. 동쪽으로 수락산, 동남쪽으로는 도봉산이 눈앞이었다. 남쪽엔 북한산(삼각산)의 세 봉우리가 뚜렷했다. 오르려는 사람은 다 품어주듯 부드러우면서도 사패산의 산격(山格)은 빼어났다. 북한산국립공원 북쪽 끝자락이지만 품격이 있고, 역사가 있었다. 해발 552m이지만 주변 산을 속속들이 조망할 수 있는 개성이 돋보였다. 올해 산격 있는 산들을 찾아 아직 부족한 인격을 다듬어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은 회원들에게 덤이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스마트폰/이순녀 논설위원

    최신 국산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3주쯤 됐다. 새 제품이 나오면 먼저 써 봐야 직성이 풀리는 ‘얼리 어답터’는 고사하고, 평균 이하 기계치에 가까운 처지에 남보다 앞서 스마트폰으로 갈아탄 건 순전히 5년 넘게 들고 다니던 구형 휴대전화가 말썽을 부린 덕이다. 스마트폰은 소문대로 깜짝 놀랄 만한 기능들로 가득하다. ‘손안의 PC’라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사용법만 제대로 익힌다면 활용도는 무궁무진해 보인다. 처음엔 엄두가 안 났는데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해 새로운 기능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반면 터치폰에 익숙지 않다 보니 엉뚱한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실수가 잦다. 메신저를 하다가 뭘 잘못 눌렀는지 대화상대 목록이 다 사라지는 황당한 일도 겪었다. 중요한 정보가 잔뜩 들어 있는데 혹시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더해지니 스트레스다. 변화는 늘 귀찮고, 두렵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스마트폰이 새삼 그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끔찍한 미래/육철수 논설위원

    TV 채널을 돌리다가 어느 방송사의 과학 프로그램에 눈길이 멈췄다. 앞으로 십몇년 후에는 눈·심장·뼈 같은 신체 부위를 주문 생산하는 시대가 열린단다. 그보다 10년쯤 뒤에는 말이 필요 없고 생각만으로 상대방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또 몇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의 두뇌 이식이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과학의 발전 속도로 미루어 언젠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생각과 생각만의 대화라…. 서로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얘긴데,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대방과 마주 앉았을 때 나쁜 생각이라도 한다면…. 더 골치 아픈 일은 자동차 엔진 바꾸듯 하는 두뇌이식이다. 뇌를 이식받은 사람의 기억은 자기 것일까, 남의 것일까. 생각이 바르고 머리 좋은 사람의 뇌라면 모르되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를 이식받으면? 점점 복잡하고 끔찍해진다. 그런 미래에까지 살아있을지 모르지만, 오래 살 것에 대비해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훈련부터 해둬야겠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길섶에서] 그들의 코드/ 박대출 논설위원

    재벌 일가의 사진이 있다. 딸들과 며느리들이 한눈에 구분된다. 닮고 안 닮고가 아니다. 미모 차이다. 어느 쪽인가는 굳이 말 안해도 된다. 옛날 얘기다. 손녀와 손자 며느리들은 달라졌다. 미모로는 찾기 어렵다. 닮고 안 닮고를 따져봐야 된다. 재벌가 사람이 들려준 우스갯소리다. 재벌과 유명 정치인들이 적잖이 사돈을 맺었다. 돈과 권력의 합세였다. 이런 정략 결혼이 바뀌고 있다. 돈과 돈의 합세다. 재벌들끼리 사돈을 선호한다. 권력의 무상함 탓이다. 잘나가던 정치인과 사돈을 맺었다가 정권이 바뀌면 피해만 입기도 했다. 정치인 사돈은 속된 말로 피곤하다는 것이다. 그 전에 재벌 모임은 부부동반이 대세였다. 요즘엔 가족 동반이 늘었다. 아들 딸들을 대동한다. 자연스레 짝짓기를 도모하려는 뜻이다. 코드가 맞아 성공 사례가 꽤 나온단다. 그들 세상의 얘기다. 화성인 바이러스란 케이블 TV 프로그램이 있다. 9살짜리 딸을 재벌가 며느리로 만들려는 엄마가 출연했다. 딸은 야무졌다. 그들 세상에 진입할까 궁금해진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길섶에서] 희망 예보/함혜리 논설위원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린다. 새해도 기록적인 엄청난 폭설과 한파로 시작됐다. 삼한사온은 사라졌고, 절기도 무의미해졌다. 또다시 한파가 올 것이라는 예보다. “어휴!”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 보니 아침 기온은 영하 10도 안팎인데 낮에는 많이 풀려서 영상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참 이상한 것이 아침에 나오는데 추위가 하나도 성가시지 않게 느껴졌다. 반나절만 지나면 풀릴 것이라는 희망 덕분이다. 겨울에 날이 춥고 눈이 많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축적된 농사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일 테지만 한편으로는 기나긴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한 방편으로 짜낸 지혜가 아니었을까 싶다. 추위를 녹이는 데 풍년의 희망만큼 효과적인 게 어디 있었을까. 인생도 희망을 주는 예보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잠시 힘들겠지만 조금 지나면 확 풀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역경이나 고난도 담담하게 맞고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농축산물 절도/이춘규 논설위원

    초등학생 시절 어느날 아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뒷집 한 아저씨네가 재산목록 1호 소를 밤사이 도둑맞은 것이다. 이전에 큰 절도사건이 없었던 마을이다. 그래서 아저씨 집 본채 옆의 외양간 경비 태세는 허술했다. 흙담으로 된 허름한 외양간은 고쳐지지 않은 채 그후에도 텅 비어 있었다. 소는 끝내 찾지 못했다. 아저씨는 소 도난 충격으로 웃음을 잃어 버렸다. 농축산물은 농민들에게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극진한 애정을 쏟는다. 농사 경험이 없는 도시인들은 절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농축산물에는 농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분신 같은 농축산물을 도둑맞으면 후유증은 상상외로 크다. 재기불능의 상처도 입는다. 양평 두물머리 인근에 농축산물 절도단 신고를 호소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수상한 차량이 나타나면 면사무소 등에 신고해 달라고 했다. 전국적으로도 농축산물 절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벼, 소, 인삼 등 농축산물 절도는 정말 나쁜 범죄다. 절도범들은 끝까지 추적, 엄벌해야 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썰렁개그/함혜리 논설위원

    모임의 좌장이 퀴즈를 냈다. “아이스크림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죽었대. 왜 죽었게?” 아무도 맞히지 못하자 신이 난 듯 답을 말했다. “차가 와서”. 시쳇말로 썰렁개그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가장 큰 나라는? 인도네시아(넷이야).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 히트작도 있었다. 옛날에 할머니가 과거 시험 보는 손자를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를 했다. 그런데 정화수 대신 죽을 놓고 기도를 하기에 이유를 물어보니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잖니?”. 큰 고민 없이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썰렁개그가 열기를 더해간다. 최신 썰렁개그 한두 개 정도는 알고 있어야 대화에 낄 수 있을 정도다.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수첩에 적어서 갖고 다니기도 한다. 듣고 나면 씁쓸하고 얼굴이 화끈해지는 음담패설하고는 다르다. 박장대소를 할 만큼 우습지는 않지만 은근히 재미있다. 각자 아는 썰렁개그 한 가지씩을 내놓다 보면 모임의 분위기가 금방 화기애애해진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누군가 아무리 썰렁한 개그를 하더라도 열심히 웃어주자.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안중근의 글씨/노주석 논설위원

    예술의전당 안에 서예박물관이 있다. 음식점에 갔더니 3만원 이상 이용객에게 초대권 2장을 증정했다. 공짜 표를 손에 넣었지만, 딱히 갈 생각은 없었다. 글씨구경만큼 재미없는 구경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볼 일을 마치고 발길을 돌리다 ‘안중근의사 유묵전’ 포스터와 딱 마주쳤다. 안 의사가 나를 불렀다. 안 의사의 글씨는 국가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천하의 명필이다. 동양권에서 관리를 뽑던 기준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전시된 34점의 유묵은 안 의사의 분신이다. 유묵 200여점 가운데 의사의 이름과 손바닥 도장이 찍힌 20점은 보물 제569호로 지정돼 있다. 안중근은 ‘대한의군 참모 중장’ 신분의 군인이다. ‘동양평화론 서문’을 읽어보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이유와 대의명분을 알 수 있다. 자녀교육을 원한다면 대한국인(大韓國人)의 글씨를 보여주기 바란다. 수천명의 관람객이 각자의 글씨체로 정성껏 적어놓은 ‘안중근’이라는 이름 석 자를 보는 순간 교육은 완성될 것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길섶에서] 개념녀/이춘규 논설위원

    시대의 흐름을 생생하게 반영하는 유행어의 생성과 소멸이 참 빠르다. 한 출판사 사장과 식사를 하는데 “개념녀들이 들고다닐 수 있는 책을 만들어보자.”고 사원들에게 주문했단다. ‘개념녀’라. 짐작은 가지만 익숙지 않다. 속물근성으로 꽉 찬 된장녀와 대비되는 개념의 여자란다. 속깊은, 교양 있는 여자 등등. 모 방송국 시사프로에서 군가산점 부활에 대한 인터뷰 중 남성이 군대에 가 있는 2년간 여성은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니, 남성에게 그에 따른 사회적 혜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여성을 개념녀라고 했다고 한다. 군복무기간 18개월을 3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수많은 청년들의 원성을 산 ‘군삼녀’와 대비시켰다. 이후 개념녀는 정치·경제·시사 상식을 잘 알고 남자의 군대 얘기를 들어주는, 그리고 남자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처럼 들어주는 여자 등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엔 주체적인 연기와 연애를 하는 탤런트 김혜수를 개념녀의 대표로 칭한다. 교양 있는 개념녀들이 좋은 책 많이 읽기를 희망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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