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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공부하려면… /이용원 특임논설위원

    밤 11시가 가까운 전철 안에는 취객이 적잖게 섞여 있기 마련이다. 내 옆으로 두 사람 건너에 앉은 50대 남자가 그랬다. 얼굴은 불콰했으며 꾸벅꾸벅 졸면서 뜻 모를 소리를 중얼대곤 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그 앞에 서서 책을 읽는 여대생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었다. “공부를 하려면 앉아서 해야지.”라면서. 이목이 일제히 쏠리자 여학생은 당황했다. 괜찮다고 사양하는데도 남자는 굳이 “난 바로 내린다.”면서 여학생을 주저앉히곤 출입문 쪽으로 흐느적흐느적 걸어갔다. 그런데 말과는 달리 그 남자는 여러 역이 지나도록 조용히 문에 기대어 있었다. 여학생 또래 자식을 둔 아버지일까, 아니면 가르치는 걸 본업으로 하는 사람일까. 그도 아니면 저 젊어서 열심히 공부하던 기억이 되살아난 걸까. 학생들은 밤늦도록 공부하고도 귀갓길에 책을 보고, 사회는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격려한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의 눈앞에 잔뜩 낀 이 안개는 언제쯤 걷히려는가. 이용원 특임논설위원 ywyi@seoul.co.kr
  • [길섶에서] 목련/최광숙 논설위원

    목련이 필 때면 가슴이 콩닥거린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이 활짝 펴진다. 봄의 전령사 목련 앞에 서면 다들 마음이 살짝 달뜨게 마련인가 보다. 가수 양희은도 청아한 목소리로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사람~”하고 옛 연인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난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순백의 여고 시절이 생각난다. 모교엔 목련나무가 있었다. 시험에 찌들었던 갈래머리 땋은 여고생들도 목련이 피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련 주변에 모여들곤 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얀 목련꽃이 핀 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함께 추억의 사진 한장을 남기던 어느 봄날. 누군가 사진기를 가져 왔는데 교정 곳곳을 거닐다가 결국 발길이 머문 곳이 목련 앞이었다. 화들짝 꽃이 필 때 주는 극도의 화려함과 달리 꽃이 지면 너무 초라해 목련이 싫다는 이도 있다. 그래도 좋다. 눈꽃송이 같은 목련이 펼쳐지면 마치 화이트 크리스마스처럼 느껴진다. 온 세상이 환해지고 따뜻해지는 마법의 꽃이 목련이지 싶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황당한 키스/최광숙 논설위원

    그의 기상천외한 키스 세례를 받고 멍했다. 내 평생 그런 입맞춤은 처음. 아니,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런 멋진 키스를 받은 여성은 없으리라. 최근 하는 짓이 귀여운 7살 개구쟁이 조카에게 “뽀뽀 좀 해 줘.”라고 졸라댔다. 처음에는 녀석이 내 부탁을 거절하는 줄 알았다. 갑자기 오른손으로 주먹질을 해댔기 때문이다. 그러더니만 내 뒤통수에 왼손을 얹더니 내 얼굴을 자기 쪽으로 확 잡아 당겼다. 그러고는 입술을 쭉 내밀어 뽀뽀를 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한창 태권도에 쏙 빠져 있는 녀석은 팔을 뻗었다 하면 주먹질이고, 발을 들었다 하면 발차기다. 내게 날린 뽀뽀도 완전 ‘태권도식’이다. 친한 언니한테 조카의 키스 얘기를 해 줬다. “어머, 그런 터프한 키스를 받는 게 우리 여성들의 ‘로망’ 아니니?” 하며 파안대소한다. 며칠 전 여동생이 그 녀석에게 이모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더니만 안 사랑한단다. 박력 있는 키스로 나를 사로잡아 놓더니만 이젠 외면한다. 이래저래 내 애간장을 태우는 귀여운 남자(?)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보리밥/주병철 논설위원

    보릿고개(춘궁기)를 경험한 우리나라 베이비부머(baby boomer·1955~1964년생)에게 보리밥은 학창시절 아련한 추억의 ‘인증샷’쯤 된다. 보리밥은 반지르르한 하얀 쌀밥 때문에 귀한 존재로 대접받지 못했다. 거무튀튀한 색깔에 맛은 별로 없고 먹고 나면 금방 배고팠다. 보리밥 하면 중학교 1학년 때가 떠오른다. 1970년대에는 쌀이 부족해 도시락에 보리를 섞는 ‘혼식 캠페인’이 있었다. 하루는 교감선생님이 점심시간에 교실에 들러 내 도시락을 높이 들고는 ‘혼식은 이렇게 해오는 거야.’라며 칭찬을 해줬다. 쌀밥보다는 보리밥을 더 넣었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창피하던지 얼굴이 발개졌다. 이후 한동안 ‘보리밥 신드롬’을 앓았다. 까맣게 잊었던 보리밥을 다시 맛보고 있다. 건강식을 위해 식탁에 쌀밥과 현미밥이 함께 놓인 지 오래인데, 최근에 쌀밥과 보리밥이 교체됐다. 귀하게 여겼던 쌀밥은 자취를 감추고, 보리밥이 현미밥과 함께 어깨를 겨룬 것이다. 보리밥 파이팅이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막걸리/최광숙 논설위원

    막걸리 하면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일찍이 홀로돼 막걸리로 외로움을 달래셨던 할머니다. 그걸 아는 맏딸인 어머니는 할머니가 오시면 나와 남동생의 손에 주전자를 들려 막걸리 심부름을 보내곤 했다. 어린 동생이 할머니가 주신 막걸리 한사발에 취해 해롱거린 일도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 그 막걸리를 내가 마시게 됐다. 무지막지한 선배들이 신발에 막걸리를 부어 주었다. 겁에 질린 우리들은 그걸 받아 마시곤 한점 집어 먹은 안주까지 모두 쏟아 내야 했다. 어두컴컴한 뒷골목 전봇대에 기대 올려다본 하늘엔 그날 따라 왜 그리 별들이 반짝이던지…. 어느 날 옷을 입으려다가 깜짝 놀랐다. 간밤에 마신 막걸리가 청색 치마에 흩뿌려져 안개꽃이 핀 듯했다. 남자 동기들의 연애 카운슬링을 도맡아 하던 내가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한다며 마신 막걸리의 흔적. 신사임당은 치마폭에 포도넝쿨을 그렸다는데 난 막걸리 꽃이라니. 추억의 막걸리가 와인보다 항암물질이 많단다. 또다시 막걸리를 마셔야 할 이유를 찾았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보이스 피싱/박홍기 논설위원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000-000’ 번호가 찍혀 있다. 굵직한 목소리의 남성이 “○○은행입니다. 어제 ○○백화점에서 구입한 198만원어치 상품의 결제가 오늘 이뤄졌습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다시 말해 달라고 하자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같은 말을 반복한다. 순간 당황했다. “백화점에 간 적이 없다.”고 하자 “신용카드를 잃어버린 적이 없으신지요. 아니면 누군가 신용카드를 위조해 쓰고 있나 봅니다. 신고해 드리겠습니다.”라며 한술 더 뜨는 게 아닌가. 하도 사무적으로 말하는 통에 “잠깐만요.”하고 카드를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이어지는 말, “카드 번호를…” ‘보이스 피싱’ 너무나 그럴싸해 낚아채이기 직전까지 갔던 것 같다. “연락처를 달라.”고 하니 태연하게 “12번 김○○을 찾아달라.”고 말한다. 연결될 턱이 없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보이스 피싱에 잠시나마 자연스럽게 걸려들었다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낚였다면, 끔찍하다. 헛똑똑이가 따로 있나 싶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헤어드레서/이춘규 논설위원

    서울 이태원 집 근처 이발소를 몇번 이용했다. 이발 솜씨는 그저 그랬지만, 이발사가 인상적이었다. 첫째, 그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일본 손님들에 대비해 틈만 나면 일본어 공부에 열심이다. 둘째, 젊게 보이려 애쓴다. 탈모증이 있었지만 수천만원을 들여 머리를 이식했다고 한다. 젊어 보인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셋째, 감동영업이다. 오는 손님을 언제든지 맞이하기 위해 새벽에 문을 열어 밤늦게까지 대기한다. 동네 다른 이발소가 일제히 쉬는 날에도 오후에 손님을 맞는다. 넷째, 명함도 멋지다. 직업을 ‘헤어드레서’라고 새겼다. 대기 손님에겐 음료수를 제공한다. 이런 장점 덕분에 개업 초기 대기 손님이 항상 들끓을 정도로 인기였다. 하지만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너무 걸린다. 가위질도 서투르다. 요금 차별화도 없다. 이유 없이 쫓기는 도시인의 심리를 헤아리지 못하는지 “남자들이 왜 미용실에 가느냐, 기다리지 못하느냐.”며 남 탓만 한다. 안타깝지만 발길을 끊었다. 단점투성이인 나 자신을 돌아본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한복/최광숙 논설위원

    몇해 전 미국에 잠시 머물 때 카리브해로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규정상 디너 정찬 시 여성들은 드레스를 입어야 했다. 드레스가 없던 내가 입은 것은 하늘하늘한 여름철 캐주얼 원피스. 스카프를 둘러 나름대로 화려함을 보탰다. 그래도 빤짝이 드레스와 몸매가 드러나는 섹시한 드레스 옆을 지나치자면 왠지 주눅이 들었다. 어느날 멀리서 한복 차림으로 위풍당당하게 다니는 할머니를 봤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한국 할머니를 만난 것도 반가운데 거기다 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은 할머니를 만나다니…. 할머니의 선택은 참으로 아름답고 돋보였다. 한복의 고운 선(線), 화려한 색(色)의 절묘한 조화, 입체감 있는 디자인. 사실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는 드레스가 한복임을 그 할머니가 증명해 보였다. 해외에서 보니 한복은 파티복으로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드레스였다. 최근 호텔신라에서 벌어진 한복 홀대 사건을 보면서 세계 각국 사람들과 같이 선상 위를 누비던 그 할머니의 고운 한복이 떠오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환상/이춘규 논설위원

    초등학교 고학년 때 학교에서 걸어서 1시간 이상 걸리는 야트막한 산으로 소풍을 갔다. 고향집에서도 보인다. 드넓은 들판이 시작되는 곳에 능선들이 성곽처럼 이어져 있다. 그때 산 정상과 능선에서 보았던 거대한 무덤들은 수수께끼였다. 옛 왕릉일지 모른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오랜 세월 정말 왕릉인지가 궁금했다.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드디어 며칠 전 산에 올라가 봤다. 커다란 무덤들은 그대로 있었다. 새로 세워진 비석이 많았다. 한자·한글로 비문들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무덤 주인의 생전 신분과 사회 공헌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는 내용이 많았다. 무덤 주인은 그동안의 상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분들도 아니었다. 왕릉도 없었다. 이장·면장·기초의회 의장·지방관리 등이 주인공이었다. 조금 특별한 이웃의 무덤이었다. 40년 이상 간직했던 환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탓에 마음속의 환상을 스스로 깨버렸다. 환상은 깨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 좋다는데….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건강관리/주병철 논설위원

    젊을 때는 건강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언제나 건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젊음 자체를 즐긴다. 건강을 서서히 걱정하기 시작하는 때는 적어도 40대 중반 이후로 접어들면서부터다. 건강을 챙긴다며 이런저런 운동도 하고 더러 금연도 시도한다. 그러다 ‘그냥 이대로 살래.’ 하면서 자포자기하고 말기도 한다. 요즘은 젊은 층, 나이든 사람들 모두 건강에 관심이 많다. 회사 인근의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다 보면 젊은 층의 운동 열기는 폭발적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60~70대 부부다. 운동량이 젊은이 못지않다. 좀 더딜 뿐 운동 강도는 세다. 운동은 대충 하고 샤워만 하는 40~50대들은 창피하다. 건강 관리에 육체적인 운동만 있겠는가. 스트레스 해소도 건강 관리에 중요한 요소다. 어느 최고경영자(CEO)의 건강 관리 비결이라며 지인이 알려준다. ‘술은 마셔서 즐거운 사람과 마실 것, 식사 약속은 가능하면 줄일 것, 도보로 1시간 이내 약속 장소는 걸어서 다닐 것’ 한번 실행에 옮겨볼까 싶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체득의 한계/박홍기 논설위원

    며칠 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는 여학생을 만났다. 지난달 11일 도쿄에서 동일본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을 겪었단다. 5년째 살면서도 그날처럼 무섭고 겁나고 두려웠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지진이 다반사로 일어나지만 여느 때와는 달랐다는 것이다. 일본인 친구와 아파트에서 놀다가 라면을 끓이던 중 대지진을 맞았다. 매뉴얼대로 가스를 잠그고 잽싸게 식탁 밑에 몸을 숨겼다. 그런데 친구는 현관으로 달려가더니 문을 열어놓는 게 아닌가. 건물이 흔들려 현관문이 눌리거나 뒤틀어져 열 수 없게 될 경우를 대비해 미리 탈출구를 확보해 두기 위해서란다. 여학생은 고교 때도, 대학에서도 수시로 지진대피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소방서에서 실시하는 훈련 때엔 특수 차량에서 지진의 강도를 직접 체험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큰 지진을 맞닥뜨리니 먼저 당황하게 되더란다. 나름대로 지진 대피에는 익숙해졌다고 여겼는데도. 여학생은 말했다. “ 친구를 보니 몸에 밸 만큼 아직 훈련이 덜 된 것 같아요. 허둥댄 걸 보면.”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삼청동/최광숙 논설위원

    오랜만에 나들이 간 삼청동. 가볍게 걷기 좋아 간 곳인데 주말이라 사람들의 물결이 넘실댄다. 거의 한줄로 서서 걸어야 할 정도다. 삼청동 바로 옆 동네, 조선시대 여덟 판서를 배출했다고 이름 붙여진 팔판동에 살았던 터라 이곳에 오면 옛 생각이 난다. 정독도서관에서 삼청동 길로 접어드는 작은 골목길에 들어서니 내 풋풋한 20대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커트하러 갔다가 미용사 꾐에 빠져 내 생애 처음으로 뽀글뽀글 파마를 하게 된 미용실 자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당대 여학생들이 즐겨 읽던 잡지 ‘여학생’ 출판사 터는 예쁜 장신구들로 가득차 있다. 반찬거리를 사 먹던 코딱지만 한 슈퍼는 삼청동의 눈부신 개발바람에도 꿋꿋하게 버티더니만 이젠 사라졌다. 도로변 차들의 질주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작은 창문이 있던 작은 집은 화려한 옷들로 여인들을 유혹한다. 잠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듯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내 젊은 날의 추억이 담긴 삼청동, 이젠 더 변하지 말아다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미역국/허남주 특임논설위원

    미역 봉지를 탈탈 털어 미역국을 끓였다. 양지머리를 푹 삶아 맑게 끓인 미역국이 좋지만, 바쁜 아침에 복잡한 레시피는 욕심일 뿐. 지난주, 제사상에 올렸던 냉동실의 산적이 떠올랐다. 재활용 미역국을 온 가족이 맛있게 한 그릇씩 비웠다. “하루에 미역국 200그릇은 먹어야 효과 있다던데….” 아들의 말에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다시마와 미역이 방사성물질에 면역 효과가 있는 요오드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동네 마트에 다시마와 미역 사재기가 기승이라 하고, 동이 났다고도 한다. 하지만 북적대는 건어물 코너를 피해왔다. 유난 떠는 것도 싫고, 두려움 그 자체가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평소의 생각 때문이었다. 우연히 미역국을 끓였다고 말하기는 쑥스럽다. 미역국 한 그릇으로 가족 건강을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쯤은 알지만 식단에서 미역국을 제외하기도 망설여진다. 미역을 고르는 사람들 틈을 파고들지 않은 것이 정말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길섶에서] 비움/곽태헌 논설위원

    휴대전화가 나온 뒤에는 전화번호를 수첩에 기록할 필요가 없어졌다. 명함을 받으면 으레 자동적으로 휴대전화에 입력하는 게 습관 아닌 습관이 된 지도 꽤 오래됐다. 얼마 전 휴대전화에 새로운 번호를 입력하려다 실패했다. 이미 전화번호 입력 한도 1000명이 꽉 찼기 때문이다. 필요없는 것을 지우려고 저장된 번호를 순서대로 보기 시작했다. 최근 몇년간 만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전화통화조차 없던 사람들을 지워 나갔다. 앞으로 만날 가능성이 사실상 전무한 사람의 이름과도 이별을 했다. 과거 직책상 알았기 때문에 지금은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제외했다. 번호가 바뀐 탓에 특정인의 이름이 2~3개씩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니 앞으로 좋은 인연으로 만나게 될 지인의 번호를 추가하는 데 한결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필요하지도 않은 이름과 번호를 저장하고 다녔던 셈이다. 어찌 보면 게으른 탓이고, 어찌 보면 욕심 때문이다. 비워야 새롭고 좋은 다른 것을 채울 수 있는 법이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길섶에서] 커피 한잔/최광숙 논설위원

    커피 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지 싶다. 노총각이던 작은 외삼촌은 당시 귀한 커피를 즐겼다. 인스턴트 커피를 찾기 어렵던 시절인지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미제 커피였던 것 같다. 어느날 삼촌이 마시던 커피가 우리집에도 등장했다. 어머니는 커다란 양은 주전자에 커피를 진하게 끓였다. 우리 형제들은 주전자 주변에 둘러앉아 프림도 없이 시커먼 한약재 같은 커피를 마셨다. 스테인리스 대접으로 쭉 들이켰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희한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동네 개울가에서 부르던 ‘커피 한잔’ 노래도 떠오른다. 큰오빠가 노래를 가르쳐 준다며 어린 나에게 따라 부르게 한 노래가 바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봐도~”다. 그 노랫가락과 가사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 걸 보니 오빠들과 노래 부르는 것이 퍽 좋았나 보다. 커피에 얽힌 추억은 이토록 진하건만 난 커피를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세계 11위 커피 수입국이란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선반/박홍기 논설위원

    아침마다 지하철을 탄다. 늘 붐빈다. 월요일엔 더하다. 선반을 쳐다본다. 곳곳에 줄줄이 신문이 올려져 있다. 주위 사람들이 신문을 읽는다. 몇 명은 또 올려놓을 거다. 오늘도 등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 선반에 있는 신문을 수거하는 이들이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다. 가끔은 젊은이들도 있다. 처음엔 몰랐다. 나이가 지긋하고 허리마저 휜 분이 신문을 거둬 가는 게 안타까워 내려 드렸다. 누군가 혼잣말로 말했다. “안 도와 드려도 되는데.” 그분들의 밥벌이란다. 영역 다툼도 있고, 지하철 분위기를 해친단다. 그래도 냉정하다 싶었다. 아무리 생계형이라지만 노인인데…. 옆구리에 신문을 끼고 오가는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선반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쾌적한 지하철을 위해 작은 배려, 다 읽은 신문은 수거함에.’, ‘다 읽은 신문은 선반 위에 놓지 마시고, 출구 옆 수거함에 넣어 주세요.’ 그렇다. 신문을 읽고 올려놓는 사람들이 더 몰염치하다. 귀찮더라도 들고 나가 수거함에 넣으면 될 것을.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생강나무/이춘규 논설위원

    중앙선 전철이 연장되면서 서울시민들에게 한결 가까워진 경기도 양평 양수리. 양수역에 내려 느긋하게 봄기운에 취해 본다. 이름 모를 잡초들이 앞다퉈 봄을 알린다. 앙증맞은 꽃들. 작은 꽃바다. 향기 질펀하다. 큰 풀에 묻혀 버리기 전 꽃을 피워 대를 잇겠다는 생존본능이 엿보인다. 종주에 7시간 안팎 걸리는 능선에 올라선다. 샛노란 생강나무꽃이 지천이다. 잎을 비비거나 가지를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수십번 종주했지만 처음 본다. 숲이 우거지면 감춰지는 탓에 그동안 몰랐던 것 같다.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키가 3m 남짓하다. 알싸한 향기에 정신이 몽롱해진다. 연한 잎은 먹는다. 산수유 꽃과 구분이 쉽지 않다. 생강나무꽃 군락은 양수역에서 벚고개, 청계산을 지나 국수역까지 50리 가까운 능선을 따라 터널을 이룬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기 전에 꽃을 피워 열매를 맺으려는 생강나무의 가쁜 숨이 느껴지는 듯하다. 생강나무의 옹골찬 생명력을 생각하며 해질녘에야 꽃터널을 빠져 나왔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난 기르기/최광숙 논설위원

    지난해 선물 받은 귀한 난을 지켜 내지 못했다. 아주 작고 예쁜 난이었다. 그동안 번번이 실패했던 터라 이 난은 어떻게든 잘 키워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 어린 생명을 지키고자 평소 물을 잘 주고 사랑도 듬뿍 줬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래도 예전보다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런데도 시들시들하더니만 병색이 완연해지는 게 아닌가. 회사 내 난을 잘 ‘치료’하는 ‘명의’를 찾았다. “살려 달라.”는 부탁과 함께 난을 명의의 사무실에 ‘입원’까지 시켰다. 상태가 좋지 않지만 한번 해 보자고 했다. 그 이후 영양제를 맞고 있는 난 화분 모습이 휴대전화로 날아왔다. 참으로 정성을 들여 치료해 주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뿌리가 썩은 일부 난을 솎아내고 다른 난을 이식하는 등 대수술까지 감행했지만 결국 그 난을 구하진 못했다. 그래도 명의는 달라도 달랐다. 내 마음을 위로하고자 다른 난을 하나 키워 보라고 선물하는 것 아닌가. 또 한번 생명을 해칠까 봐 거절했지만 한번 키워 보란다. “난도 연애하듯 사랑을 주고 살살 잘 다뤄야 합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보톡스/최광숙 논설위원

    세월의 흔적 주름. 주름을 없애기 위한 여성의 몸부림은 가히 처절할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름방지 화장품과 마사지 등에 들어가는 공과 비용도 적지 않다. 요즘에는 이도저도 필요없다. 보톡스 한방이면 주름은 저리가라다. 덕분에 나이를 종잡을 수 없게 됐다. 특히 여성 연예인 대부분은 보톡스의 힘을 빌리고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빵빵하게 보톡스를 맞았는지 보기 민망할 정도다. 거부감마저 생길 때도 없지 않다. 세월을 거슬러도 웬만해야지… 어디 연예인들 뿐이랴. 60대 중반인 지인도 전해들은 바로는 성형수술과 보톡스의 세례를 받아 예뻐졌다고 한다. 최근 즐겨 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한 탤런트는 웃을 때 눈가의 잔주름이 안개처럼 퍼진다. 과하게 팽팽한 여배우의 얼굴만 대하다 그의 주름을 보니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진다. 돌아서 내 얼굴을 본다. 남들은 내 얼굴의 주름을 어떻게 생각할까? 영 자신이 없다. 솔직히 보톡스, 외면하기 참 어려운 묘약이지 싶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백발/박홍기 논설위원

    백발에 가깝다. 흰 머리카락이 검은 것보다 많다. 마음과 상관없이 나이 들어가는 것이 역력하다. 굳이 백발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염색이 좋을 것도 없고 해서 그대로 지낼 뿐이다. 한데 남의 눈은 다른 모양이다. 솔직히 신경 쓰이게 한다. 머잖아 오십이 되건만 아직도 남의 시선을 뿌리치지 못하는 탓인 듯하다. 언젠가 지하철을 탔을 때 젊은이가 “여기, 앉으세요.”하며 일어서는 게 아닌가. 순간 두리번거리는 척하려다 “괜찮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이럴 수가, 머리만 희끗할 뿐인데….” 황당했다. 그 후에도 두어번 지하철에서 ‘착한 젊은이’들을 만났다. 한번은 약국에 들렀을 때 바로 옆에서 의자를 오르내리며 장난치던 한 꼬마의 아버지가 하는 말, “할아버지 귀찮게 하면 안 돼.” “할아버지라니….” 흰 머리와 나이를 연결 짓는 문화라지만, 예기치 못한 일을 겪을 때 헛웃음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해 본다. “염색으로 변신을 꾀해 봐?” 그러다 바꾼다. “일단 그대로 살면서 나잇값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낫지.”라고.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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