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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테이크 아웃/최광숙 논설위원

    요즘 낯익은 거리 풍경이 있다면 손에 커피를 들고 다니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는 거다. 음식을 포장·판매하는 ‘테이크 아웃’ 덕분이다. 어릴 적 나도 ‘테이크 아웃’ 심부름을 하곤 했다. 아버지가 간밤에 술을 드셔서 속이 편치 않으면 나는 다음 날 아침 시장통에 달려가야 했다. 냄비를 가져 갔는데, 그곳에 선지를 송송 썰어 넣은 해장국을 가득 담아 왔다. 중국집에 들락날락한 이유도 자장면을 먹으러 간 것보다 오빠 심부름이 더 많았다. 냄비를 가져가서 자장면을 테이크 아웃해 왔다. 당시 사춘기이던 오빠 계산으로는 냄비를 가져가면 자장면을 더 많이 준다는 거였다. 심부름하고 곁다리로 얻어먹는 자장면은 완전 ’짱’이었다. 가끔 선지 해장국에 입맛을 다시는 것도 아버지가 딸에게 남긴 일종의 ‘맛 물림’이지 싶다. 이젠 웬만한 식당에서는 종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을 예쁘게 담아서 판다. 국물 있는 음식도 포장해 준다. 참 세상 좋아졌다. 그래도 냄비 들고 테이크 아웃하러 다니던 때가 그립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경복궁의 밤/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야간 개방을 한다기에 경복궁에 갔더니 여느 때와 달리 시끌벅적하다. 국악 공연장 앞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다. 그윽한 풍악이 울리는 멋진 공연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경회루 주변도 마찬가지다. 조명을 환히 밝힌 경회루가 연못에 그림자를 띄워 내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이들이 연못가를 죽 에워쌌기 때문이다. 연못의 물결을 따라 잔잔히 출렁이는 경회루를 보며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장안의 내로라하는 사진가들은 다 모인 듯 여기저기서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떠나는 봄 밤이 아쉬워 나들이 나온 이들은 모두가 신난 분위기다. 한 아주머니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밤에 경복궁에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라면서 친구들과 즐거운 수다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5일간의 짧은 개방 탓인지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아쉬움이 컸다. 고요한 밤 경복궁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너무나 소란스러운 봄 밤이었기에…. 개방 기간이 다소 길었으면 한 것은 나만의 바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아침 잠/주병철 논설위원

    학창시절 등교 시간에 늦을까 아침부터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은 늘 어머니였다. 내 팔을 흔들기도 하고, 창문을 열어젖혀 싸늘한 아침 공기에 놀라 벌떡 일어나게도 했다. 너무 깊은 잠에 빠질 때는 큰 소리를 치며 이불을 빼앗아 버렸다. 그 목소리는 애절했지만 강했다. 어머니의 역할을 반쯤 대신해 준 게 알람시계였다. 어머니처럼 끈질지게 몰아치지는 않아서 덜 괴로웠다. 적당히 울리기를 반복하다 만다. 계속 울려대 짜증이 나면 그만 꺼 버린다. 지금은 휴대전화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나의 아침 잠을 감시한다. 하지만 어머니만큼 미덥지는 못하다. 고등학생이 3명인 우리집은 아침이면 난리다. 각자 맞춰 놓은 알람시간대가 비슷하기 때문에 아침 6시무렵부터는 집안 곳곳에서 서로 다른 멜로디가 잇따라 울려 퍼진다. 하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급기야 집사람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때서야 눈을 비비며 일어나기 시작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식한테는 어머니의 다그침과 정성이 묘약인가 보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友테크/주병철 논설위원

    40대 초반 무렵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며 지인이 이런 말을 던졌다. 마흔이 넘어 만나는 사람은 이해관계로 사귀기 때문에 만남이 진지하고 소중할 수 없다고 했다. 받는 명함보다는 받은 명함을 더 잘 관리하라고 조언했다. 동네·학교 친구, 마흔 전에 만난 사람이 최고라는 것. 그후 딱 10년. 얼마 전 만난 또 다른 지인은 반대의 얘기를 해줬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 가운데 폭을 좁혀 나와 ‘비슷한’ 부류들과 교류해야 나중에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하다는 건 경제력, 취미·기호, 연령대, 성향 등이 모두 포함된단다. “돈이 많아도 친구가 없으면 외롭지만 돈이 없어도 친구가 많으면 외롭지 않다.”는 게 지인의 지론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대수명이 80세가 넘는 고령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10년 전 지인이 말한 마흔살은 지금 기준으로는 오십살에서 예순살 사이쯤 된다. 그러고 보면 아직 사람을 가릴 때가 아닌 것 같다. 사람한테는 사람이 최고라는데 좀 더 부지런히 ‘낯설지만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야겠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사탕/최광숙 논설위원

    아이의 울음도 뚝 그치게 하는 사탕. 과일 캔디, 드롭스, 막대사탕…. 종류도 참 많다. 사탕의 가장 큰 무기는 달콤함이지만 색깔의 유혹도 뿌리치기 어렵다. 알록달록한 사탕 앞에 서면 누구나 무너진다. 그러니 간식거리가 귀하던 시절 사탕의 가치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으리라. 어릴 적 어머니는 흰색 사탕만 먹게 했다. 깡통이나 봉지에 든 사탕을 하나 집을라치면 가장 맛없어 보이는 흰색만 골라야 했다. 색 사탕은 보기에는 좋지만 색소를 넣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노란빛, 연둣빛 등 오색찬란한 색깔의 향연을 억지로 외면해야 할 때의 괴로움이란…. 그러다 어머니가 없으면 ‘반란’을 일으켰다. 진한 색 사탕만을 고집했다. 몰래 입안에 색 사탕을 넣을 때 ‘통쾌함’도 좋았다. 혓바닥에 물든 사탕 빛깔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참 현명하셨던 것 같다. 일찍이 인공 색소·조미료를 식탁에서 추방하셨다. 웰빙이란 말도 없던 시절 참 앞서 간 셈이다. 어머니의 지혜를 따라가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꽃으로도/허남주 특임논설위원

    1970년대, 그땐 학교폭력이란 말도 없었다. ‘사랑의 매’였고, 교육적인 지도였다. 아침마다 작은 규칙을 어겨 교문에 들어서기 전부터 매 맞는 아이들도 있었고, 교복치마를 입은 채 벌도 섰다. 그 선생님만은 달랐다. 폭력은커녕 거친 말투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도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는 일이 벌어졌다. “내일 하루 만이라도…” 지각하지 말 것을 그토록 당부했건만 상습 지각생은 여전히 늦고 말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험지 한장을 돌돌 말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각생의 손바닥을 내리쳤다. 아니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꽃으로도 때릴 수 없는 소녀에게 이렇게 매를 든 나를 용서하지 마라.” 선생님은 스스로에게 실망한 듯 낮게 중얼거렸다. 나무막대기도 아닌 종이 한장의 매, 교실 가득 감동이 넘쳤다. 그날 이후, 지각생은 없었다. 우리 사회의 폭력지수가 날로 높아진다. 일찍이 폭력의 야만성과 자존감을 가르쳐 주신 이인봉 선생님, 선생님이 그립다.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길섶에서] 결혼식/박홍기 논설위원

    색다른 결혼식이었다. 성혼선언문 낭독, 주례사까지는 여느 결혼식과 같았다. 내빈에 대한 신랑·신부 부모의 인사가 끝나자 신랑 아버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더니 “내빈들을 위해 나름대로 특별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아무쪼록 즐거운 시간이 됐으면….”하고는 허리를 숙였다. 지휘자의 인사와 더불어 20명가량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단이 등장했다. 성악가 5명도 출연했다. 웬만한 음악회와 견줘 규모나 격식 면에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약장수’, 오펜바흐의 첼로독주곡 ‘재클린의 눈물’ 등 명곡과 선율이 식장을 휘감았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색다른 결혼식에 지루해하는 하객도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결혼식이 아닌 음악회에 참석한 듯 흡족해했다. 신랑 아버지는 “평소 모시지 못하는 분들에게 자식 결혼을 핑계로 마음의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며 나름의 의미를 설명했다. ‘음악이 있는 결혼식’이라고나 할까. 결혼식도 마냥 진화하는 것 같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육체의 버릇/황진선 특임논설위원

    힘든 일을 끝낸 분들이 술 한잔 하는 기분을 안다. 등산을 마치고도 막걸리 생각이 난다. 기자들도 다를 것은 없다. 힘들여 쓴 글이 기사화되고 나면 한잔 생각이 난다. 그런데 한잔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문제다. 2차, 3차를 한 다음 날엔 몸이 괴롭기보다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후회스럽기보다는 우울한 쪽이 더 가깝다. 그래서 잘못인 줄 알면서도 다음 날 또 술을 마시기도 한다. 악순환이다. 얼마 전 청소년용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발견했다. 감정은 육체의 버릇이라는 것이다. 술·담배를 많이 했거나, 운동이 부족했거나, 햇빛을 덜 쪼였기 때문에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울하거나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술은 되도록 적게 마시고 일찍 자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몸이 아니라 마음을 위해서 운동을 하거나 일에 열중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울한 감정은 거의 육체의 버릇으로 생겨난다. 사실 다 아는 얘기인데 요즘 새삼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육체 탓이 아닌가 싶다. 황진선 특임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길섶에서] 화대종주/이춘규 논설위원

    화대 종주.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경남 산청 대원사에 이르는 지리산 내의 가장 긴 종주코스다. 무척 힘든 산행이지만 매력이 넘친다. 백이십리 가까워 보통 2박3일 정도 걸린다. 낮이 긴 5~7월이면 쫓기듯 이곳을 찾아든 도시 산꾼들이 당일치기 유혹에 빠져드는 곳이기도 하다. 징검다리 연휴에 홀로 화대 종주에 나섰다. 긴장됐다. 한달 전부터 준비했다. 해뜨기 전 화엄사를 출발해 해지기 직전 대원사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계획은 15시간대였다. 당일치기 종주에는 눈살 찌푸리는 사람도 있지만 음식쓰레기 등 흔적을 덜 남겨 좋다. 화대 코스에 쉬운 곳은 한 곳도 없다지만 중간지점 선비샘에서 맞닥뜨린 비바람은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폭풍우 속의 천왕봉~대원사 구간이 특히 힘들었다. 궂은 날씨 탓에 인적조차 드물었다. 거친 돌길은 몹시 미끄러웠다. 신경이 곤두섰다. 그래도 자연이 잘 보존돼 있어 행복했다. 계획대로 종주를 마친 뿌듯함에 피로도 잊었다. 원시의 속살을 드러낸 대원사 코스는 지리산의 보석이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라일락/허남주 특임논설위원

    라일락 향기가 질리도록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때는. 라일락이 필 무렵의 바람에는 심술이 담겨 있어서 그랬을까.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잡느라 휙 코끝을 스치는 향기가 반갑지도 않았다. 잠깐, 회사 앞마당에 선 나무의 존재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뿐이었다. 어느 날, 흐드러지게 핀 라일락 나무 아래에서 쉰 즈음의 선배들이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마치 꽃 향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시기라도 하듯. 넥타이를 조여매고 감색 양복 윗저고리를 입은 그들의 행동이 낯설어 보였다. “라일락 향기는 아직 잘 모르겠지?” 선배가 겸연쩍게 웃었다. 그 물음이, 웃음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라일락이 지고 있다. 금연빌딩 부근 어디나 그렇듯 라일락 나무 아래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 꽃 향기는 희석되고 만다. 오늘, 라일락 나무 앞에서 심호흡을 하다가 흠칫 놀랐다. 아, 꽃말이 ‘젊은 날의 추억’이라든가 ‘첫사랑의 감격’이라든가. 라일락 향기를 마시던 선배들도 그날, 아련한 젊은 날을 추억했던 것일까.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길섶에서] 산천/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유치원생 조카가 ‘천’자를 어떻게 쓰냐고 물어봤다. 뜬금없이 묻기에 글자를 알려준 뒤 봤더니 열차 하나를 멋지게 그려놓고 ‘산천’이라고 써놓았다. 그리고는 “이모, 앞이 뾰족한 열차는 맨날 사고가 나지?”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그보다 가방 끈이 긴 그의 초등학교 2학년 누나가 그랬다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열차 앞 모양이 기존 것과는 다르긴 하다. 꼬마 아이들도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열차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들은 KTX를 직접 본 적도, 타본 적도 없는데 벌써 그 열차가 ‘사고뭉치’라는 것을 알아 버렸다. 미래의 KTX 고객인 그들이 과연 앞으로 KTX를 타려고나 할까? KTX 산천은 강원도의 맑고 깨끗한 하천에서 사는 산천어의 외관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토종 물고기인 산천어처럼 KTX 산천도 현대로템에서 국산화에 성공한 토종 열차란다. 잦은 사고를 내는 KTX 산천을 보면서 괜히 산천어의 이미지만 훼손시키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된다. 이름값이나 했으면 좋으련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청설(聽雪)/주병철 논설위원

    기자가 된 뒤부터 주위에서 성격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얘기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성격이 급해졌다고 핀잔을 듣는다. 남의 말을 끝까지 안 듣는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친구들한테만 그런 건 아니다. 식구들과 대화할 때도 끝까지 듣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요점을 먼저 얘기하는 직업상 특성 때문일 게다. 가끔 TV로 중계되는 국회청문회(Hearings) 등을 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웃음이 난다. 의원들이 청문회 대상자나 증인 등을 불러놓고는 듣지도 않고 자기 얘기만 해대는 게 아닌가. 실컷 묻고는 답변은 안 듣고 혼만 내는 게 의원들의 고약한 습성이다. 좀 더 듣고 따져도 될 것을. 전직 고위 경제관료 H씨는 외청장 시절 ‘청설’(聽雪)론으로 주위를 감동시켰다.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듣듯이 수요자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행정에 반영하겠다는 것. 속으로는 참 별난 행정이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괜찮은 리더십이 아니었나 싶다.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그게 소통이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고마움/주병철 논설위원

    가끔씩 만나 소주 한잔을 하는 모임이 있다. 이번 모임에는 평소 잘 나오던 A씨가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궁금해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물었다. A씨가 모임의 동료인 B씨한테 서운한 게 있어 크게 삐쳤다는 게 공통된 추측이었다. 절친하던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게 도대체 뭘까. 별거 아니었다. A씨의 부탁을 믿었던 B씨가 들어주지 않으면서 생긴 일이었다. B씨 말로는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사실 A씨가 어려울 때 정말 발벗고 도와준 사람이 B씨였는데, 그만한 일로 A씨가 B씨한테 그렇게 서운해하다니. 하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지는 게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문득 ‘고마움’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A씨의 서운함도 따지고 보면 고마움을 망각한 데서 생긴 것 같았다. 누구나 고마움보다는 서운함을 더 잘 기억한다. 반대로 고마움을 잘 기억하면 서운함은 잊을 수 있다. 조만간 A씨한테 고마움에 대해 말해야겠다. “너나 잘하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서운함의 특효약은 고마움이라는 것을.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연등(燃燈) /최광숙 논설위원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면 어머니는 무척 바쁘셨다. 절에서 연등 꽃잎을 만드시느라 늘 두 손은 분홍빛으로 물이 들곤 했다. 그렇게 불자들만의 전유물 같던 연등 만들기가 점차 일반인들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지난 일요일 조계사를 찾았더니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조계사 앞도 차 없는 거리가 되면서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펼쳐졌다. 가장 인기 있는 행사가 연등 만들기다. 외국인들도 연꽃잎에 풀을 발라가며 연등을 만들었다. 한국 문화 체험에 푹 빠져 즐거운 모습들이다. 부처님 오신 날 연등을 올리는 유래는 ‘빈자일등’(貧者一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부처님께 드리는 정성을 치자면 부자의 등 만 개보다 가난한 여인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등 하나가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자신을 태워 불을 밝히는 연등. 어둠만 밝히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음(無明)까지도 밝히는 것이 바로 불가의 등 밝히기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속 연등을 달아 어리석음을 깨고, 지혜의 눈을 뜨길….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하이에나형 글쓰기/김종면 논설위원

    나는 정말 페페로니형 인간인가. 오늘 불현듯 이런 물음을 던져본다. 엊그제 어느 분이 한 말이 있어서다. 내가 글을 악랄하게 쓴다나. 물론 농담이었지만 나의 섣부른 펜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을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적어도 달콤한 파프리카형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맵싸한 페페로니? 지난 시절 비판정신이라는 방패에 기대어 얼마나 많은 투창과 비수를 날렸던가. 언젠가 시사 현안을 고사로 풀어내는 미니 칼럼을 연재하며 날 선 언어를 쏟아내던 때가 있었다. 꼬투리만 잡으면 그냥 앞뒤 맥락 살피지 않고 물고 뜯는 하이에나형 글쓰기. 그 치기가 떠오른다. 시중에선 성공을 원하거든 페페로니 지수를 높이라는 처세훈이 힘을 얻는다. 밍밍한 파프리카형 인간은 무룡태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매운 맛의 공격형 인간만이 판치는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상처란 준 만큼 되돌려 받는 법. 스스로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글살이를 좀 더 부드럽게 해야겠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외씨버선길/허남주 특임논설위원

    외씨버선길은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끌린다. 버선발로 달려나오는 정든 임인가. 지나가는 바람인 줄 알면서도 누가 올까 기다리는 늙은 어머니인가. 경북 청송과 영양, 봉화를 지나 강원도 영월에 이르는 100리 길. 꽃이 지기 전 걸어 봄직하다. 한꺼번에 걷는다는 욕심도 버린다. 봉화군 춘양면의 숲길은 그 어디보다 좋다. 춘양목이 쭉쭉 뻗은 숲길은 마음의 티끌까지 씻어준다. 영양군의 조지훈 생가는 성마른 도시인의 퇴화한 시심(詩心)마저 자극한다. ‘지훈문학관’ 현판은 시인을 그리며 산 부인의 단아한 글씨라 더욱 멋지다. ‘지훈시공원’에선 소리내어 시를 읽고 싶다. 너무 편안해서 어느덧 한숨이 나오고 마는 길. 외씨버선길에 나서니 떠나온 곳이, 돌아가야 할 곳이 아득히 멀다. 단지 길 모양이 외씨버선인 줄 알았다. ‘소매는 길어서 하늘을 덮고 돌아설 듯 날아갈 듯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시(詩)가 말했다. 아, 그 외씨버선이구나.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꽃이 지는 서울에 돌아와도 시가 맴돈다.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길섶에서] 반성문/최광숙 논설위원

    고 1때 일이다. 정식 수업 이전에 시작되는 자율학습 시간. 다른 애들은 죽어라 공부하는데 나는 항상 꼴찌로 입실했다. 음매 기죽어 하고 교실문을 슬그머니 열라치면 그때 드르륵하는 소리는 왜 그렇게나 크던지…. ‘열공’하는 친구들 앞에서 홀로 처량히 교실 마룻바닥을 닦는 벌도 소용이 없었다. 지각은 계속됐다. “늦잠 자느라 늦었다.”는 변명에 급기야 담임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잠’을 주제로 반성문을 써 오라는 것 아닌가. 당시 미혼이던 담임은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예뻐 별명이 ‘바비인형’이었다. 시(詩)를 쓰는 문인이기도 했다. 내가 써 간 반성문은 ‘곰의 겨울잠’이었던 것 같다. 겨우내 자지만 그것은 단순한 잠이 아니다. 봄에 약동하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함이라는 내용이다. 늦잠에 대한 내 ‘항변’인 셈이었다. 그 이후 선생님이 내게 주신 시집. 어느 시인지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중간쯤 “광숙이가 혼자 마루를 닦고”라는 구절에 밑줄이 쳐져 있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니 문득 선생님의 사랑이 떠오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목욕탕/주병철 논설위원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목욕탕이라는 데를 거의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읍내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 자란 탓에 버스를 타고 목욕하러 간다는 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주로 집 부엌에서 큼지막한 고무통에 팔팔 끓는 물을 부어놓고 때를 미는 정도였다. 목욕탕에는 명절 때나 갔다. 중학교 입학과 함께 큰 도시로 이사하면서 목욕탕을 자주 들렀던 기억이 난다. 일요일 새벽에 수건 등을 싸들고 아버지와 목욕탕 가는 게 큰 행사였다. 등을 보드득보드득 밀면 시원하다는 아버지의 흐뭇한 표정이 생생하다. 목욕한 뒤 아버지가 사주시는 자장면이 어찌나 맛있던지. 요즘 아들과 함께 목욕탕을 더러 간다. 아버지와 동행하는 아들의 표정이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목욕한 뒤 함께 먹는 자장면에도 그리 고마워하지 않는다. 아들처럼 나도 지금의 ‘사우나’ ‘불가마’가 옛날 목욕탕보다 더 낫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가끔 옛날 목욕탕의 분위기가 그리워진다. 옛것은 항상 좋은 추억으로 남기 때문일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어머니 展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30년 전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 자장면 안 사준다고 10리 길을 울면서 걷던 내 뒤를 묵묵히 따라만 오신 어머니….” 40대 아들은 자장면 한 그릇 사줄 수 없었던 어머니와 가난을 함께 추억한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70대라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늙지는 않나 보다. ‘사랑합니다’라는 말보다 더 진한 표현이 ‘죄송합니다’라는 사실, 새삼 알게 됐다. 어머니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야 어느 자식인들 예외가 있으랴. 과천국립과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한민국 어머니전(展)’ 한 켠의 ‘못 부친 편지’ 코너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풀어낸 노란 리본이 가득하다. 부치지 못해 안타깝고 허허롭다. 편지가 아니라도 좋다. 언제나, 쉽게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전화도 고맙다. 만날 때마다 그냥 꽉 안아드리는 것도 좋겠다. 7살 아이의 편지에서 배운다. “엄마가 안아주면 좋아요. 나도 안아줄게요.” 버킷 리스트에 ‘어머니를 300번 안아드릴 것’을 추가했다. 마음이 급해진다.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길섶에서] 어린 예술가들/최광숙 논설위원

    출퇴근길에 지나치는 광화문 지하철역. 최근 역 주변이 예쁜 설치미술품으로 장식됐다. 독도를 주제로 한 아기자기한 작품이다. 손바닥만 한 골판지 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모아 놓은 것이 마치 설치미술가 강익중의 작품 같다. 3×3인치의 작은 캔버스나 나무틀 같은 것에 다양한 그림과 기호 등을 그려 넣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강익중 말이다. 유심히 들여다봤다. 독도를 아끼는 동심이 저마다의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다. 독도 주변을 헤엄치는 물고기의 등에는 태극 마크가 선명하다. 만화 주인공 뽀로로도 태극 모자를 쓰고 용감하게 독도를 지킨다. 예쁜 꽃과 식물들도 독도 지킴이로 변신했다. 그림 위에 영어로 ‘독도는 내것’이라는 쓴 글귀도 눈에 띈다. 그림 하나하나에서 어린이들의 독도에 대한 그윽한 마음과 우리 땅을 지키겠다는 굳은 결의가 배어 나온다. 그 어느 홍보물보다 진한 감동을 준다. 어쩌다 어린이들까지 그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이 됐는지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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