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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차 없는 하루/정기홍 논설위원

    수년 전에 승용차를 판 뒤 “불편하지 않은가”라고 가끔은 자문해 본다. 은행권 대출 서류의 승용차 유무란은 아직도 가중치를 인정받고 있는 시대이다. 운동량이 적어진 중년의 요즘, 그 결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주변에서도 차를 ‘버리는’ 이가 더러 보인다. 이유는 여럿 있을 터이지만…. 가족에게도 “차 없는 불편이 없냐”고 물어보지만, 생필품은 주로 홈쇼핑에서 사는 터라 어려움을 그다지 못 느낀단다. 마트 등에서 쇼핑할 땐, 차가 있는 친척을 불러서 함께 수다 떠는 것도 나름의 재미라고 했다. 무엇보다 건강이 좋아진 것이 차를 없앤 상실감을 대신하는 듯했다. 최근 한 방송의 ‘비만 프로그램’이 제안한 ‘지하철 한 정거장 먼저 내리기’가 솔깃하게 들렸다. 앞서 내려 걷는 시간만큼 운동이 된다는 식이다. 바쁜 출근시간에 쉽진 않겠지만…. 하지만 지하철을 기다릴 때 우두커니 서 있지 말고 플랫폼을 왔다갔다하는 작은 습관도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 아닐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봄숭어/서동철 논설위원

    오래전 ‘송어의 명예를 위하여’라는 수필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음악 교과서에 슈베르트의 가곡 ‘숭어’가 실려 있는데, ‘송어’와 착각한 제목이라는 글이었다. 가사에 나오듯 ‘거울 같은 강물’에서나 뛰노는 깨끗한 물고기로 맛도 좋은 ‘송어’를 하구의 갯벌에서 흙탕물을 튀기고 다니는 흔한 생선 ‘숭어’로 표기한 것은 큰 실례를 저지른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중학생 시절이니 40년쯤 전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숭어’라는 제목은 최근까지도 고쳐지지 않은 듯 2010년에는 교과서의 표기를 ‘송어’로 바로잡겠다는 교육부의 공식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숭어가 깨끗하지도 않고, 맛도 그저 그런 생선이라는 이미지는 그 수필 때문에 굳어진 것 같다. 엊그제 만난 친구가 다짜고짜 봄숭어를 먹으러 가잔다. 큼지막한 놈으로 회를 떴다. 도다리 몇 마리도 곁들였다. 그런데 아이고 이런…. 숭어 맛이 송어만 못하다고 누가 그랬어? 거의 반세기를 속았네. 슈베르트도 봄숭어 맛을 봤으면 노래 제목을 ‘숭어’라고 했을 걸? 하며 혼자 웃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꽃 벼락/함혜리 논설위원

    지난 주말에 일본 오카야마 지방에 갈 기회가 있었다. 만개한 벚꽃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절정의 아름다운 시기를 지나 있었다. 바람에 꽃잎이 눈처럼 날리는 광경을 보며 그나마 아쉬움을 달랬다. 나오시마의 베네세 뮤지엄 식당에서 점심 도시락을 주문했다. 도시락 위에 ‘花霞’라고 쓰인 종이와 벚꽃 송이가 놓여 있었다. 일행 중에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벼락 벽’자인 듯하니 꽃 벼락이라는 뜻”이라고 그럴듯한 해석을 했다. 모두들 “꽃 벼락이라면 기꺼이 맞을 만하다”면서 즐겁게 도시락을 비웠다. 나중에 자전을 찾아보니 ‘霞’는 ‘벼락 벽’이 아닌 ‘노을 하’자였다. 감이 잡히지 않아 인터넷 일본어 사전을 검색해 보니 봄 안개를 뜻했다. 花霞(하나가스미)란 ‘꽃 안개’라는 의미이고, 좀 더 자세히는 ‘활짝 핀 벚꽃이 멀리서 보았을 때 안개처럼 보이는 것’이란다. 참으로 시적인 단어다. 그날 꽃 안개 콘셉트의 도시락을 꽃 벼락으로 알고 먹은 셈이다. 그러면 또 어떤가. 모두가 꽃 벼락을 맞고 너무나 행복했는걸.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도다리쑥국/정기홍 논설위원

    어릴 적 봄날, 밭두렁에 돋아난 쑥을 캔 뒤 한 바구니에 담는 재미가 참 좋았다. 가족이 함께한 나름의 ‘놀이’였던 셈이다. 쑥을 바구니에 담아 와 마당에 말렸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봄볕을 잘 받은 쑥잎은 나중에 쑥떡으로 빚어져 간식으로 나왔다. 더러 멸치와 된장을 넣은 쑥국도 밥상에 올랐지만, 그 쓴맛에 나의 숟가락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30~40대 때는 잦은 음주로 간이 나빠져 말린 인진쑥을 사서 끓인 뒤 마신 적도 있다. 쑥잎을 찧어 만든 솜 모양의 뜸쑥도 요즘 널리 애용되는 침구술의 하나이다. 쑥은 이처럼 식용과 약용으로 생활에 유익하게 쓰인다. ‘삼년 묵은 쑥은 칠년 된 지병을 고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최근 점심 때 먹은 ‘도다리쑥국’의 쑥향이 일품이었다. 도다리와 쑥을 넣고 끓인 국으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경남 통영의 봄철 음식이란다. 육지의 햇쑥과 바다 도다리의 절묘한 만남, 이만한 ‘산해(山海) 진미’가 또 있을까 싶다. 누구나 어렵게 살던 때, 제철 식재료를 ‘버무린’ 지혜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기다림/오승호 논설위원

    늦가을 동해로 통하는 강원도 양양 남대천 등에서는 연어가 바다에서 돌아오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바다로 가서 자란 연어가 산란을 위해 하천으로 복귀하는 행렬이다. 연어의 모천회귀(母川回歸) 본능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할까. 벚꽃과 개나리가 흐드러진 봄을 맞아 연어 방류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연어처럼 고향을 아끼는 마음을 담아 평화통일을 염원하기도 한다. 연어가 북태평양의 베링해 등을 거쳐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회귀율은 지난 2008년 0.74%에서 2011년에는 0.17%로 떨어졌다. 지구 온난화 영향이란다. 그렇다고 2~3년 뒤 하천의 거센 물살을 헤치고 힘겹게 헤엄쳐 오르는 연어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릴 수는 없으리라.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이것은 행복이고 설렘입니다. 보고픔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이 기다림으로, 기다림이 설렘으로 바뀝니다.” 장교 임관 30주년 행사를 앞두고 준비 모임 참석을 독려하는 문자 메시지의 내용들이다. 30년 지기의 만남의 장(場)에 들뜬 동기들이 적잖을 듯하다. 기다림의 미학을 떠올려 본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길섶에서] 육개장/서동철 논설위원

    ‘육개장’인지 ‘육계장’인지 헷갈리던 시절이 있었다. 개장국과 같은 조리법이지만,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한자의 고기 육(肉)은 짐승의 고기를 뜻하지만, 접두사로 쓰이면 소고기를 지칭하기도 한다. 육포, 육전, 육회가 그렇다. 육개장은 이제 대표적인 상갓집 음식이 된 듯하다. 붉은색이 잡귀를 물리친다는 민간신앙에서 비롯됐다고도 하지만, 육개장이 20세기에 태어난 음식이라니 누군가의 그럴싸한 추측일 것이다. 하긴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는 상을 당했을 때 개장국을 끓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춧가루를 많이 넣은 육개장은 대구식이라는 주장도 있다. 엊그제 동료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육개장을 먹었다. 부모님과 장인어른을 몇 년 사이에 보내 드리고 나니 이런저런 이유로 한동안 손이 가지 않던 터였다. 오랜만에 국물까지 남김 없이 비우면서도 당분간 육개장 먹을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한 육개장이 마주치지 않을수록 좋은 음식이 되었다니….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미황사 동백꽃/함혜리 논설위원

    남녘의 봄소식이 한창이다. 광양의 매화꽃을 보며 마을길을 걷는 프로그램이 있기에 가려 했지만 동행할 친구를 찾다가 예약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길 떠날 때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하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만 길동무를 찾는 게 쉽지만은 않다. 매화 구경을 내년으로 미루고 아쉬워하고 있던 차에 해남 땅끝마을 미황사의 금강 스님이 동백꽃 소식을 전해왔다. 지난겨울 그렇게 찬바람이 몰아치더니 올해 동백꽃은 유난히 붉고 소담스럽게 피었다고 한다. 스님은 꽃 구경 하며 차나 한 잔 하자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신다. 마음 같아선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질 않는다. 아! 꽃은 내가 오기만을 기다려 주지 않으니 이를 어쩔꼬. 내 마음을 아셨는지 스님께서 휴대전화로 꽃 사진을 몇 장 보내주셨다. 동백꽃 붉은 빛이 형언할 수 없이 맑다. 제법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사진으로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본다. 내년에는 꼭 가리라. 혼자서라도 기어이. 그곳에 가면 함께할 이들이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운동화/최광숙 논설위원

    남녀 ‘차별’이 한눈에 드러나는 사진 한 장을 간직하고 있다. 어릴 적 막내 오빠와 남동생이랑 집 담벼락 밑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남매들의 신발. 오빠는 하얀 고무신을, 남동생은 푸르스름한 고무신을 신었다. 나만 유독 푸른 운동화다. 딸이 귀했던 우리 집이라 딸에게 특별 대접을 했나 보다. 그런 귀했던 운동화도 구두에 밀려난 지 오래다. 하지만 요즘 ‘운도녀’(운동화를 신고 출근하는 도시 여성)가 트렌드란다. 하이힐보다 운동화의 실용성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대세라는 얘기다. 나만 해도 특별한 날 아니면 운동화를 신는다. 허리나 무릎에도 부담이 적어 좋다. 얼마 전 밥자리에서 본 김행 청와대 대변인도 ‘운도녀’여서 놀랐다. 치마 정장 차림에 하얀 운동화를 신었다. 회의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청와대 내에서도 운동화를 신고 이 방 저 방 부지런히 뛰어다닌다고 했다. 요즘 인사 문제 등으로 청와대에 곱지 않은 시선들이 많은데 운동화 끈 바짝 조여 매고 더 열심히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리라.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엄마손 김밥/정기홍 논설위원

    불황기에 눈길이 더 가는 게 서민들의 사는 모습이다. 집 근처 지하철 통로에는 오래전부터 30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자리를 지키며 김밥을 판다. 이태 정도로 여겨지는데, 홀로 지키던 김밥 좌판이 요즘 문전성시다. 지난 토요일 아침 나절에도 젊은이들이 수월찮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참 미련하다는 생각을 가졌을 정도였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하루벌이 삼아 나왔겠거니 했는데, 세월에 숙성된 김밥 맛이 이제서야 입소문을 타는 모양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다. ‘엄마손 김밥’이란 삐뚤삐뚤하게 쓴 간판(?)도 큼지막하게 다가왔다. 며칠 전, 그 옆에 6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떡 좌판을 깔았다. 짐작하건대 김밥 아주머니가 손님을 끌자 손수 빚어온 떡을 팔려고 나온 것 같다. 몇 가지 상념들이 스쳐갔다. 불경기는 우리에게 밀려왔지만 언젠가는 밀려갈 것이다. 희망이란 단어에 따옴표를 꾹 눌러 찍어본다. 이 할머니에게도 ‘희망’은 있다며….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중년 과로/정기홍 논설위원

    며칠 전, 살갑게 지내는 40대 후반의 공직자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근에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던 터라 온종일 충격으로 다가왔다. “뇌출혈이라면 필시 말이 어눌해지고, 심하면 팔과 다리 등 신체 장애가 온다던데….” 불길한 생각에 그의 동료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사고 이틀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천운(天運)이었다. 뇌출혈은 대응이 늦으면 치명적이라는데, 사고 20여분 만에 병원으로 옮겼다니 다행히 대처가 무척 빨랐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평소 새벽 6시에 나와 오후 7시 30분까지 강행군을 한다. 월요일이면 새벽 4시 30분에 출근한다고 했다. 중년의 과로는 졸지에 건강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다. 그에게도 며칠 전 과로에 따른 이상 징후가 있었다고 했다. 몸 관리는 평소에 해야겠지만, 사고 때 우왕좌왕하지 않아야 한다. 그의 직장이 안전행정부이니 장관께 ‘직원 안전’도 한번 챙기시라고 권해야 할 듯하다. 전화 속 그의 목소리가 아주 힘있게 들려 안도했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남편 렌털/오승호 논설위원

    경기가 불황일 때 웃는 업종이 있다. 대표적인 것은 대여(렌털)사업. 렌털 시장 규모는 2006년 3조원에서 지금은 10조원대라고 한다. 렌털 수요는 정수기나 사무용품 등 전통적인 제품에서 텔레비전, 냉장고, 컴퓨터 등의 전자제품과 침대 매트리스, 피아노 등 악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소비 패턴이 소유에서 렌털형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초기 비용 부담이 적고 관리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영향이 클 것이다. 욕구 충족을 위해 명품 가방이나 정장, 신발, 일상복까지도 빌리는 20~30대들도 적지 않다. ‘렌털 세대’, ‘무소유 전성시대’라는 표현이 나올 만하다. 미국에서도 20~34세를 중심으로 렌털에 의지해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2008년 금융 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상품 구매에 부담을 느낀다는 것. 우리나라에는 남편 렌털도 있단다. 골드 미스들이 부부 동반 모임 등을 할 때 돈을 주고 남편 역할을 할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란다. 렌털 비즈니스가 너무 ‘진화’하는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 보게 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길섶에서] 나무노래/함혜리 논설위원

    많은 종류의 나무들을 마주하게 되지만 정작 이름을 알고 있는 건 몇 가지뿐이다. 우리 땅에 사는 나무들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식물도감 ‘한국의 나무’ 저자와 천마산에서 자연 탐방을 했다. 걸어다니는 자연백과사전과 함께하니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겨울눈으로 나무를 분간하는 법을 비롯해 등산하면서 자주 보았던 흰꽃이 피는 나무의 이름이 귀룽나무이고, 나무가 말라 죽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달려드는 게 하늘소라는 것 등등. 자연은 정말 풍요롭고 경이로운 교과서였다. ‘나무노래’라는 재미난 구전 동요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오자마자 가래나무/십리 절반 오리나무/ 낮에 봐도 밤나무 /목에 걸려 가시나무/ 깔고 앉자 구기자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인터넷도, 식물도감도 없던 시절엔 이런 노래로 나무 구분법을 익혔을 것이다.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잠시 땀을 식히는 동안 나무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요즘 아이들이 이런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밥그릇 부처/서동철 논설위원

    가수 주병선이 1989년 발표한 ‘칠갑산’은 국악가요로는 유례없이 크게 히트했다. 지금도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로 시작하는 노래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칠갑산은 충남 청양의 명산이지만, 과거엔 그 첩첩산중에서 화전을 일구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노래 또한 화전민 어머니가 먹을 것과 바꾸어 어린 딸을 민며느리로 보내는 애끊는 사연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칠갑산 들머리에는 ‘콩밭 매는 아낙네상(像)’도 세워졌다. 칠갑산 등산로를 따라 조금 오르면 장곡사가 나온다. 하(下)대웅전의 약사여래는 중생을 병고에서 구제하는 부처다. 그런데 이곳의 약사부처는 약사발 대신 밥그릇을 들었다. 포슬포슬 잘 지은 밥을 고봉으로 담았다. 약사여래가 조성된 14세기 중엽의 청양 사람들은 약보다 밥이 더 소중했을 것이다. 가난한 이웃에게는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하는 것이 곧 고통에서 구해주는 약이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밥그릇 부처에 담은 옛사람의 마음 씀씀이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진정한 호강/최광숙 논설위원

    몇 달 전 쉬는 날을 이용해 잠시 회사에 다녀갔던 초등학교 3학년 조카가 일기장에 “이모는 회사에서 호강하고 있었다”고 쓴 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던 적이 있다. 웬 호강? 학교 교실 자신의 작은 책상과 비교해 책꽂이, 노트북이 놓여진 나의 큰(?) 책상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커피에 초코파이, 사탕과 같은 간식거리까지 봤으니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얼마 전 그 조카가 나의 손톱을 ‘꽃단장’해 줬다. 은빛 바탕에 황금빛의 크고 작은 물방울이 알알이 박힌 매니큐어 스티커를 내 손톱에 붙여준 적이 있다. 요즘 손톱에 매뉴큐어를 예쁘게 칠한 뒤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행인데 그 네일 아트의 ‘짝퉁’인 셈이었지만 그런대로 예뻤다. 주말 집에 놀러온 조카가 알로에를 사 왔다. 호기심이 많은지라, 책에서 알로에를 갈아서 마사지를 한다는 내용을 읽고 직접 실행에 옮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덕분에 마사지 혜택을 받아보지 못한 푸석푸석한 얼굴이 조카 덕분에 뽀송뽀송해졌다. 호강이 뭐 별건가. 요즘 조카 덕분에 ‘호강’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평범한 전관/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 전직 장관을 봤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운전기사가 딸린 관용차를 타고 다녔을 그가 도심 한복판을 홀로 걷고 있으니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수행 비서가 챙기고 다녔을 서류 가방은 이젠 그의 손에 들려 있다. 재킷 안에 검은 터틀넥을 입은 편안한 옷차림도 한결 자유로워 보인다. 일상의 시민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예전에 한 중진 의원이 동네 목욕탕만을 고집하는 이유를 말한 적이 있다. “잘나갈 때 호텔 사우나만 다녔다. 그런데 낙선한 이후 형편이 좋지 않은데도 선뜻 동네 목욕탕을 못 가겠더라. 훗날을 생각해 미리 대중탕을 다니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무리 고관대작이라도 관직에서 벗어나면 그 이전의 삶과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로펌 등에서 전관(前官) 예우를 받는 이들도 있지만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며칠 전 본 그 장관도 또 다른 명예나 이익을 좇지 말고 동네 목욕탕을 다니는 보통 사람들의 삶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솔로 이코노미/오승호 논설위원

    점심시간 때 간혹 ‘혼자 밥먹기’를 시도한다. 현직에 있을 때야 뭇 사람들과 식사를 하지만, 은퇴 이후엔 그러지 못할 상황에 대비한 일종의 적응 훈련이다. 식사를 혼자 하면 외톨이가 된 느낌이고, 밥 맛이 없어 소화가 안 된다고도 한다. 이젠 그런 걱정은 덜 해도 되는 시대인 것 같다. 혼자 식당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단다. 혼자 식사하러 오는 손님 비율이 전체의 40%나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1인 손님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도록 식당 구조를 바꾼다. 싱글족이 늘어나는 추세와 무관치 않다. 1인용 밥솥, 미니 냉장고, 과일 소포장…. 1인 가구를 겨냥해 제품을 판매하는 ‘솔로 이코노미’(Solo economy)가 성장세를 탈 기세다. 1인 가구의 전체 시장 규모는 8조원으로 추정된다. 침실만 혼자 쓰고 거실이나 주방, 휴식공간 등은 여러 가구가 함께 쓰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나 코하우징(Co-housing)이 우리나라에도 등장하고 있다. 1인 가구는 세계적 추세다. 우리나라도 25%를 웃돈다. 새로운 핵가족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넓히는 데 신경써야 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길섶에서] 광화문 장터/최광숙 논설위원

    몇년 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연수하던 시절의 일이다. 일주일에 한번 학교 앞에는 장이 섰다. 농부들이 인근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져와 파는 파머스 마켓이다. 학생들은 물론 주민들도 즐겨 찾곤 했다.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재배한 식품인 ‘로컬 푸드’가 인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서 파는 야채나 과일 등은 농약을 뿌리지 않고 키운 것이어서 영 볼품이 없었다. 새가 쪼아 먹어 일그러진 사과, 들쭉날쭉한 크기의 당근이며 감자들…. 일반 시장에서는 상품성이 없어 도저히 팔 수 없는 ‘못난이’였지만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믿음을 줬다. 집에서 직접 구워 온 빵과 쿠키도 그 소박한 맛과 멋에 순식간에 팔려나가곤 했다. 거기엔 진실이 있었다. 80년 전통의 미국 파머스 마켓에 비하면 우리 ‘도심장터’ 풍경은 여전히 낯설다. 그제 열린 활기찬 광화문 장터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옷가지 등 쓰던 물건과 함께 자잘한 수제품을 파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내친김에 신선한 우리 농산물을 믿고 사먹을 수 있는 ‘친환경 장터’로 한 걸음 진화했으면 좋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낙불가극(樂不可極)/정기홍 논설위원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던 중 빛바랜 노란 메모지가 툭 떨어졌다. ‘낙불가극’(樂不可極). 오래전 한 공직자가 장난기로 적어 건넨 것으로, 자료 꾸러미에 넣고선 잊고 있었다. 즐거움을 너무 누리지 말라는 뜻이다. 중국 고전 예기(禮記)의 ‘오불가장(傲不可長) 욕불가종(欲不可從) 지불가만(志不可滿) 낙불가극(樂不可極)’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는 하찮은 ‘곳’과 ‘것’에서 가끔 의미 있는 큰 발견을 한다. ‘낙불가극’도 비슷했다. 그와 알고 지낸 일상들이 사다리 타기처럼 이어졌다. 하잘 것 없고 작은 것도 추억을 반추하는 힘은 더 센 것 아닌가. 많은 것이 어기대는 요즘, 고사성어의 성수기다. 글쟁이들이 고사성어를 자주 인용하면 나라가 태평스럽지 않다고 하는데···. 새 정부의 고위 공직자 임명 작업이 한창이다. ‘낙불가극’은 당나라 대신 위징이 창업 공신들의 기강해이를 우려해 태종에게 상소한 내용에도 들어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1년 후 어떤 사자성어로 짚어질지 궁금해진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점심 효도/임태순 논설위원

    회사 인근 식당에서 친구와 늦은 점심을 했다. 직장인들이 한번 다녀갔기 때문인지 식당은 한산했다. 건너편에선 젊은 부부와 노부부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집안과 손자, 손녀들 이야기에 식사는 뒷전이었다. 아들 부부가 직장 근처 식당으로 부모를 초청해 점심 대접을 하는 자리였다. 평일 부모 초청 점심은 아주 좋은 ‘효도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소일하는 부모님으로선 자녀 또는 사위, 며느리 얼굴도 보고 시내로 소풍 가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자주 찾아 뵙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들도 점심을 나누며 조금이나마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다. 추위가 한풀 꺾인 얼마 전 청계천을 거닐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개중에는 부부 또는 친구들끼리 마실 나온 어르신들의 모습도 적지 않았다. 아마 봄기운에 집 안에 있기에는 답답했을 것이다. 바야흐로 ‘점심효도’하기 좋은 계절이다.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명예회복/오승호 논설위원

    전직 공무원 A씨는 요즘 부인이 짜증을 낸다고 귀띔했다. 기분 전환을 위해 함께 해외 여행을 갔다 왔는데도 화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란다. 집안 사정이어서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지만, 남편이 억울한 일을 당해 공직 생활을 일단 중단하고 집에 있게 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 아닌지 추측해 본다. A씨는 금품을 받은 혐의로 사법처리된 이후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명예회복을 위한 마지막 단계를 남겨 놓고 있다. 3심에서도 무죄가 확정될 경우, 그동안 겪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실추된 명예는 누가 보상해 줄까. 금융인 출신 B씨도 명예회복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다. 2심에서 일부 유죄 판결이 나왔지만, 대법원에서 역전극을 기대하고 있다. 엉뚱한 사건에 휘말려 회사를 그만둬야 했지만, 반드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아 복직한 뒤 사표를 쓰고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의도한 대로 일이 풀리길 빌어본다. 공공기관 물갈이 인사가 예고됐다. 의도적인 흠집내기나 모함, 투서로 멀쩡한 사람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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