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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고향친구/정기홍 논설위원

    지난 금요일, 경남 마산어시장에서 고향친구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수년 만의 만남이라 저간의 사정이 궁금하던 차였다. 오랜만의 자리가 그렇듯 사업이야기, 직장이야기가 격의 없이 이어졌다. 뼈째 쓴 도다리회가 식감에 안 맞다고 했더니 봄도다리는 ‘세고시’로 먹어야 제맛이라고 귀띔한다. 바닷가 회는 거친 게 맛인가 보다. 친구는 재기가 넘쳤다. 학교 성적도 수위였지만, 잘생긴 외모에 성격도 시원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썰매나 팽이, 연을 만들 때 그의 손을 거치면 ‘미인’으로 탄생하던 기억이 새롭다. 어르신들이 그를 두고 “재주가 많으면 큰 출세를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총명한 친구였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작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 술기운이 돌 무렵 “만나면 칭찬하고, 헤어질 때 아쉬워하자”던 친구가 메모지에 ‘예유고아생(譽由苦我生) 다산 정약용’이라고 적어 건넨다. ‘칭찬은 자신이 힘써 일해야 생긴다’는 뜻이란다. 양복 주머니에 ‘만리장성 같은 자존심’을 넣고 사는 이 세태에 꼭 맞는 말들이다. “자네 총기는 아직 녹슬지 않았어.”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뒷담화/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지인의 소식을 들었다. 좋지 않은 일로 회사에서 입장이 어려워졌단다. 소식을 전한 이는 나와 왕래가 거의 없는 이다. 정작 주변의 가까운 이로부터는 그 얘기를 못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마치 자신이 ‘촉새’가 된 것 같다고 무안해했다. 평소 남 뒷담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가까운 이의 성품으로 봐 일부러 그 얘기를 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물었더니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며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다. 참으로 그의 인품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최근 특정인을 ‘도마’에 올려놓고 뒷담화를 조장하는 앱이 등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뒤에서 쑥덕거리던 뒷담화를 이젠 대놓고 하자는 것이니 세상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모임에 가면 유독 남 얘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칭찬보다는 주로 흉보는 뒷담화다. 불교에서는 입으로 짓는 업을 구업(口業)이라고 한다. 무심코 남에게 던지는, 좋지 않은 말들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나부터 종종 잊는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고샅길 라일락/정기홍 논설위원

    농익은 이 봄날, 만화방창 꽃잔치로 시끌하더니 초록 잎사귀가 봄꽃의 옆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있다. 벚꽃의 흐드러짐을 본 게 엊그제인데 세상의 생물은 시절을 먼저 알고 계절의 바뀜을 재촉하는 것 아닌가. 장사익이 부른 ‘봄날은 간다’의 애절한 가락처럼 이 봄이 훌쩍 떠날까봐 괜히 우울해진다. 아파트단지 담장 너머로 와 닿는 라일락 꽃향기를 즐긴 지가 얼추 보름 정도 됐다. 꽃은 화사했던 며칠 전보다 덜하지만 그 향긋함은 여전히 으뜸인 듯하다. 하얀 벚꽃과 노란 개나리, 붉은 진달래 필 때와 다른, 눈과 코의 호사다. 겨우내 먹던 묵은지를 봄나물 겉절이로 바꾼 맛이라 할까. 우리 속담에 ‘국화는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봄 개나리가 아름답기로서니 어찌 가을 국화의 우아함과 향기의 그윽함에 비할손가. 국화의 지조를 이름이다. 아직도 코끝을 건드리는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꽃마다 지닌 자태와 가치에 고개를 끄덕여 본다. 고향마을 고샅길을 지키던 라일락은 이제 향기를 잃었을까. 40년 전 추억을 떠올려 본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용감한 부부/함혜리 논설위원

    하늘도, 바다도, 산도 푸른 섬 청산도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가기엔 좀 먼 길이지만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슬로 길 걷기 코스가 잘 만들어져 있고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해 꼭 한번 가볼 만한 곳이다. 노란 유채꽃과 청보리, 신록이 어우러진 5월의 섬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영화 ‘서편제’와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를 보고 구들장 논과 돌담길로 유명한 상서마을로 이동하기 위해 순환버스를 기다리던 중 50대 후반의 부부를 만났다. 서울을 출발해 해안선을 따라 걸어서 속초까지 가는 중에 청산도에 들렀다고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남편이 배낭에서 지도와 일정표를 꺼내 보여준다. 지난 30일간의 여정이 붉은색 펜으로 표시돼 있다. 서울~속초 구간을 70일간 주파하는 게 목표란다. 하기야 둘이 함께라면 이 세상에 못 갈 곳이 어디겠나. 좀 더 기다렸다가 버스를 탈지, 그냥 걸을지를 놓고 고민하던 부부는 “이왕 걸은 것, 걷겠다”면서 미련없이 사라졌다. 용감한 부부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어버이날 꽃/박정현 논설위원

    오늘은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날이다. 카네이션이 효도와 경로의 상징물이 된 지 올해로 57년째. 부모님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기 시작한 것은 1956년 제정된 어머니날(1972년 이후 어버이날)부터이니 우리에겐 이미 오래된 ‘관습’이다. 올해는 시골에 계신 어머님에게 카네이션 달아드리는 일을 같은 동네에 사는 조카에게 맡겼다. 아침에 꼭 찾아뵙고 정성스레 달아드리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아내는 아이들에게 장미건 프리지어건 카라건 다 좋으니 한 송이만 사달라는 좀 특별한 부탁을 했다. 다만 카네이션은 좀 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모님들이 받기 싫은 선물로 카네이션이 꼽혔다는 뉴스가 기억이 난다. 100여년 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한 여인이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정을 담아 나눠준 흰 카네이션에서 비롯됐다는 어버이날 카네이션 풍습. 그런데 우리는 왜 부모님 가슴에 조화(造花)를 달아들이는 것일까. 내년엔 살아 숨쉬는 생화(生花)를 달아드려야겠다. 우리 주변에 싱그러운 5월의 꽃이 얼마나 많은가.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길섶에서] 바다이슬/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을 빙 두른 간이장터에서 녀석들을 만났다. 이제 막 꺾꽂이를 끝냈을, 주먹만 한 크기의 녀석들은 수백개의 화분에 담겨 다닥다닥 붙어 앉은 채 서울로 처음 소풍 온 산골 아이들처럼 살랑바람에 마냥 조잘대고 있었다. 그 앙증맞은 푸르름에 마음을 빼앗겨 지갑을 열었고, 세 녀석(화분)을 들고 왔다. 사무실은 그 어떤 방향제도 따르지 못할 자연의 향으로 금세 덮였다. 학명 ‘Rosmarinus’, 라틴어 ‘Ros’(이슬)와 ‘Marinus’(바다)를 합쳐 ‘바다 이슬’이란 멋진 이름을 갖고 있는 녀석들, 로즈메리. 한데 이놈들, 키우는 게 만만치가 않다. 매일 일광욕 시켜주고, 바람도 쐬어주고, 말도 건네야 한단다. 하루만 딴짓 해도 결별, 죽는단다. 볕을 좇아 복도 끝 창가로 옮겨 나르는 일과가 생겼다. “아니, 머리를 맑게 해주고, 살균·소독 작용도 하는데, 그 정도도 못해 줘요?” 글을 쓰는 동안 노트북을 훔쳐보던 녀석들이 한마디 하는 듯하다. 향기 나는 중년에 이르지 못한 처지 아니던가. 녀석들의 향기라도 탐할밖에…. ‘아냐 그럴리가~, 내 어찌 그 정도도 못하겠니?’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쑥버무리/최광숙 논설위원

    지난주 서울광장에 농산물 시장이 섰기에 구경을 갔다가 쑥을 발견했다. 오염된 도시 인근에서 자란 쑥보다는 아무래도 공기 좋은 시골에서 자란 쑥이 더 좋을 것 같아 뭘 해먹을지 생각도 않고 덥석 두 봉지나 샀다. 한 봉지로는 한정식 식당에서 맛본 쑥된장국을 끓였다. 나머지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쑥버무리를 해먹기로 했다. 쑥버무리는 이른 봄의 어린 쑥을 잘 씻어서 물기가 있는 상태에서 멥쌀가루와 섞어 쪄낸 떡이다. 향긋한 쑥내음 때문에 봄을 알리는 별미로 꼽힌다. 요즘엔 쑥버무리가 입맛 돋우는 특별한 간식이지만 쌀이 귀하던 시절에는 쑥버무리로 배를 채웠다는 어르신들의 경험담도 가끔 듣는 얘기다. 막상 쑥버무리 만들기에 나섰지만 처음에는 쌀가루를 적게 넣은 데다 너무 오래 쪄 쑥 덩어리처럼 됐다. 쑥이 너무 많아 쌉싸름했지만 먹을 만했다. 두번째 시도 끝에 겨우 쌀가루와 쑥의 적절한 조화를 이뤄 맛있는 쑥버무리가 완성됐다. 먹다 보니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그리워진다. 내가 한 쑥버무리는 왜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쑥버무리 맛이 안 날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비즈니스석 처세학/진경호 논설위원

    중진급 정치인 L씨는 오랜 공직 생활을 하면서 종종 곤혹스러운 상황 하나에 부닥쳤다고 한다. 국제선 비행기 비즈니스석에서의 풍경이다. 해외여행이 잦았던 그는 늘상은 아니지만 자주 기장과 승무원들로부터 단체인사를 받곤 했던 모양. “기장 아무갭니다. ○○까지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한데 정작 L씨는 ‘편안히 모시겠다’는 인사를 받는 순간부터 불편해진다고 했다. 비즈니스석의 기류가 곧바로 썰렁해지더라는 것. 나름대로 각계에서 힘깨나 쓸 법한 주위 승객들의 눈초리가 금세 돌변하더라는 것이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그가 터득한 요령은 두 배로 인사하기다. 기내 인사를 받자마자 주위 승객들에게 ‘아무개인데 같이 가게 돼서 반갑다’며 허리 숙여 인사해야 그나마 찬 공기가 풀리더라고 했다. 대기업 임원이 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끝에 회사를 잃고, 인터넷에서 ‘라면상무’라고 놀림당하는 걸 보면 비즈니스석은 지뢰밭이 분명하지 싶다. 두 배 이상 삯을 주고 거기에 앉을 형편이 못 되는 처지로서 걱정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멈춤의 지혜/박정현 논설위원

    모처럼 따뜻한 봄볕에 늘 다니던 점심시간 산책코스를 어제는 청계천에서 서울광장으로 틀어봤다. 초록빛 잔디가 깔려 있는 서울광장의 모습이 언제 이렇게 바뀌었나. 딱 붙어 앉아 있는 연인들,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친구, 비스듬히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는 아저씨, 사색에 잠긴 듯 도심의 고독을 즐기는 이들…. 내로라하는 외국의 유명 공원에서나 봄직한 풍경 아닌가. 시간이 멈춰선 듯한 정적인 모습이 쌩쌩 달려대는 주변의 차량 행렬과 퍽이나 대조적이다. ‘빨리빨리의 대명사’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의 모습이 맞나 싶을 정도다. 서울광장이 언제부터 이렇게 바뀌었을까. 오래된 풍경에 나 혼자 물색없이 감탄을 늘어놓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11년 전만 해도 ‘붉은 악마’의 물결로 출렁댔던 역동의 장소였기에 지금의 정적인 모습이 마치 이국 풍경처럼 비쳤을 수도 있다. 광장의 여유가 부럽다. 아무리 갈 길이 바쁘다 해도 잠시 손을 놓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짬을 내어 마음을 편히 뉠 수 있는 곳이 광장일 터.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길섶에서] 금강산과 임진강/서동철 논설위원

    남북한의 망향가라면 ‘그리운 금강산’과 ‘임진강’이 대표적이다. 작곡가 최영섭이 1961년 내놓은 ‘그리운 금강산’은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리면서 가사가 바뀌는 곡절을 겪었다. ‘짓밟힌 자리’와 ‘맺힌 원한’, ‘더럽힌 지’가 평양 측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작 시인 한상억은 이 대목을 ‘예대로인가’와 ‘맺힌 슬픔’, ‘못 가본 지’로 손질했지만 글자 그대로 북한공연용이었다. 고종환이 작곡한 ‘임진강’은 1957년 발표됐다. 북한 국가를 작사한 박세영이 만든 ‘내 고향 남쪽땅 가고파도 못 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는 노랫말은 그대로 ‘그리운 금강산’의 북한판이다. 체제 선전이 본격 등장하는 2절의 가사를 부담스러워하는 우리 가수들이 조금씩 바꾸어 부르는 것도 닮은꼴이다. 개성공단 관계자들이 임진강을 건너 돌아온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5년 만이다. 금강산과 임진강은 어찌 이런 것까지 닮았나. 남북이 공통의 노랫말인 ‘원한’부터 고쳐부르기로 합의하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무가지’ 단상/정기홍 논설위원

    지하철 입구에서 늘 ‘무가지’를 쥐여주던 그 아저씨는 요즘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그곳에서 신문을 나눠줬던 터라 꽤 낯익은 얼굴이었다. “무가지 시장이 심한 불황이라고 하던데…” 그러고 보니 지하철 객차 안에서 무가지를 모아 가져가던 할아버지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무가지는 10년 전 호황을 누리던 스포츠지를 누르고 지하철 신문시장을 평정했고, 지하철 가판대까지 퇴출시킨 장본인이다. 그런 무가지가 이제는 스마트폰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인간사에서 패한 것은 사라진다더니, 무가지를 두고 하는 말일 듯싶다. 최근 ‘OO녀’ ‘OO남’ 등 해괴한 지하철발 동영상물이 사라진 것도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에 열중하기 때문 아닐까 싶지만…. 지하철은 오늘도 쉼없이 달린다. 연어떼 같은 무리를 담고 버리며, 달리고 또 서기를 반복하며…. 그토록 붐비는 전동차 안을 비집고 폐지 수집차 무가지를 낚아채 가던 그 할아버지들은 이젠 무얼 할까. 출근길 배포대에서 힘없어 보이는 무가지 하나를 집어 본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아름다움과 슬픔에 대해/함혜리 논설위원

    아주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슬픔을 느끼거나, 티없이 화창한 날 기분이 울적해지는 경향이 있다. “나만 그런 걸까? 성격이 이상한 걸까?”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아름다움이 자극하는 슬픔이 철학자들의 흥미를 끄는 연구대상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알랭 드 보통이 쓴 ‘행복의 건축’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기독교 철학자들은 아름다운 것들이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한때 누렸던 흠 없는 완벽한 삶의 상징이며, 죄로 물든 세상에서는 누릴 수 없는 삶에 대한 상실감과 갈망 때문에 슬퍼진다고 해석한단다. 굳이 신학을 인용하지 않아도 수긍이 가는 해석이다. 내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음을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매혹적인 대상을 만나고 나서 서러움이 밀려드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우리가 아름다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순간은 우리 인생이 여러 가지 문제들로 가장 심각한 때라는 구절에서 그만 허를 찔렸다. 결국 문제는 내 안에 있었던 거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연등과 유등/정기홍 논설위원

    며칠 전 해가 저물 무렵, 서울 중구 장충동 인근 동국대 교정에 들렀다가 내걸린 연등의 화려함에 감탄사를 연발한 적이 있다. 불자들이야 연등 불빛이 부처의 자비로 와 닿겠지만, 어둠과 어우러진 연등을 즐기는 맛은 사뭇 달랐다. 다음 달 17일이 부처님오신날이니 지금쯤 전국에서는 연등달기 작업이 한창일 게다. 종로의 조계사 인근은 벌써 알록달록한 연등 불빛이 밤거리 정취를 바꿔놓고 있다. 등(燈)은 범어로 지혜를 뜻한다고 한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연등에 중생을 깨우치는 깊은 뜻이 담겼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가난한 이의 등불 하나도 더없이 큰 공덕이라는 불가의 ‘빈자일등’(貧者一燈) 의 가르침. 상실의 시대, 심신을 씻어주는 등불의 의미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의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캐나다 나이아가라 빛축제에 초대받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등불을 남강에 띄워 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막았다는 데서 비롯된 행사다. 전국에 등과 관련한 축제가 한둘이 아니다. 옛 호롱불 정취의 재발견이요 재탄생 아닌가 싶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대문사진 심리학/진경호 논설위원

    카카오톡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대문사진’은 대개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자기 얼굴 사진과 가족 사진, 풍경이나 사물 사진, 그리고 연예인 사진을 내건 경우와 아예 아무런 사진도 없는 경우다. 미술심리치료를 업으로 둔 지인이 대문사진에 담긴 심리를 들려줬다. 자신의 얼굴을 내건 사람은 자의식과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변화하는 자신을 보며 만족해하고, 남들이 이를 알아주길 바란다고 한다. 아이들 사진을 내건 경우는 누구나 짐작하듯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케이스. 그러나 사진 속 웃음이 꼭 현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토를 달았다. 풍경이나 사물에는 자신의 상황이 암시돼 있다. 타인들과 거리를 두면서 넌지시 자기 상황을 알리는 셈이다. 연예인을 내건 사람은 심리적 사춘기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아예 사진을 내걸지 않는 경우는 자기 보호의 심리가 유독 강한 케이스. 지인은 나루터에 고즈넉이 앉아 있는 자신을 내걸었다. “강 이쪽에서 저쪽으로 사람을 건네주는 뱃사공이 아닐까 싶다”면서….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울음방/임태순 논설위원

    영화나 책에서 감동적인 내용과 마주치면 왈칵 감정이 북받쳐 오르지만 울지는 않는다. 남자가 눈물이 헤퍼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살아와서다. 이따금 한바탕 시원스럽게 울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울고 나면 맺혔던 것이 뻥 뚫리고, 가슴속도 가을하늘처럼 파래질 것 같다. 하지만 마음뿐이다. ‘희망전도사’인 차동엽 신부는 힘들 땐 울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희망의 귀환’이라는 책에서 눈물을 많이 흘릴수록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해지고 행복감이 충만해진다면서 눈물을 흘림으로써 외부의 충격도 견딜 수 있고 힘든 것에서 버틸 수 있는 ‘맷집’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뉴욕에는 남자들이 실컷 울고 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고 했다. 눈치가 보여 울지 못하던 남자들이 이곳에 와 돈을 내고 실컷 울고 돌아가니 우리로 치면 ‘울음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그동안 기쁨과 슬픔을 노래방에서 많이 달래왔다. 그러나 이제는 세파에 시달리고 힘들어도 울지 못했던 아버지들을 위해 울음방이 생길 때도 됐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조의(弔意) 문자/정기홍 논설위원

    옛날 시묘(侍墓)살이란 게 있었다. 부모의 거상 중에 묘 근처에 움막을 짓고 3년간 사는 일을 말한다. 조선 말 흥선대원군은 관리들이 시묘살이를 핑계로 국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봉록만 챙기는 폐해를 막기 위해 이를 없앤 적도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부모의 죽음을 천붕(天崩)으로 여겨 이 같은 예를 갖추며 슬픔을 이겨 냈다. 부모상을 당한 지인이 며칠 전 조의(弔意)에 대한 감사함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근계시하(謹啓時下) 입춘지절(立春之節)에’로 시작되는 내용은 한참을 봐서야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대소사 땐 꼭 연락을 주라’는 문구도 빠뜨리지 않고 적었다. 예나 지금이나 경조사는 십시일반, 품앗이로 그 어려움을 이겨 내는 것이지 싶다. 하지만 요즘엔 아쉽게도 격식을 갖춘 경조사 글을 보기가 쉽지 않다. 주로 문자 메시지로 알린다. 졸지에 당한 상(喪)이라면 예를 다 갖추기가 어려울 게다. 그 때문인지 경조사 문구를 대행하는 업체도 많아졌단다. 관혼상제의 미덕을 가벼이 여기고 경박스레 사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취미생활/함혜리 논설위원

    좋아하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서 두루두루 관심은 많지만 한 가지를 진득하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 가지 취미에 몰두하고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게 된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다. 어릴 적 피아노에서부터 시작해 기타, 유화, 수채화, 꽃꽂이, 와인, 탱고, 라틴댄스, 발레, 서예…. 지금까지 배우다 그만둔 것만 나열해도 한참이다. 준비물 구입에 들어간 돈도 적지 않다. 지난해 민화를 시작해 한동안 열심히 배우러 다녔는데 재등록을 못해 잠시 쉬게 됐다. 그 틈을 이용해 요즘 새로 시작한 것이 목공(木工)과 커피다. 8주 과정의 목공 수업에서는 공구 사용법을 배우고 원하는 가구를 디자인해서 설계도를 그리고 만드는 것까지 한다. 나무 냄새를 맡으며 손으로 목재를 만지는 것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다. 커피 수업은 5주 과정인데 산지별 커피 종류와 로스팅, 드립커피 제대로 내리는 법 등을 배운다. 수업에서 배운 대로 만들어 마셔 보니 역시 맛이 다르다. 내가 만든 탁자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궁리한다. 다음엔 또 뭘 배워 볼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봄바람과 봄비/임태순 논설위원

    봄바람과 봄비의 미덕을 소개한 사자성어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바로 ‘춘풍풍인’(春風風人)과 ‘윤물무성’(潤物無聲)이다. 방송통신대학교 김성곤 교수가 온라인 강의에서 소개한 것이다. 춘풍풍인은 ‘봄바람을 사람에게 불게 한다’는 뜻으로 제나라 재상 관중이 한 말이다. 양나라 재상 맹간자가 망해서 제나라로 왔을 때 단 세사람이 뒤를 따르는 것을 보고 봄바람과 같은 따뜻한 마음과 손길로 남을 도우면서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것이다. 정녕 봄바람처럼 항시 주위를 훈훈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그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에서 유래한 윤물무성은 봄비는 만물을 적시지만 소리가 없다는 뜻이다. 봄비는 논밭을 가는 농부들을 위해 밤에 내리지만 가늘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으면서도 자신의 공로에 대해 자랑하지 않는 겸손의 미덕이 담겨 있다. 생명, 희망, 기쁨, 활기 등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봄바람과 봄비에 이러한 울림과 성찰이 숨어 있을지는 몰랐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결혼기념일/오승호 논설위원

    지난주 나비스코 챔피언십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박인비가 약혼자이자 스윙코치, 캐디 등과 함께 챔피언 연못에 뛰어드는 세리머니를 하면서 생수병에 물을 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유인즉슨 마침 우승한 날이 부모님의 결혼 25주년 기념일이었는데, 부모님께 드릴 선물로 호수의 물을 택한 것. 그만큼 우승의 기쁨이 컸으리라. 가끔 만나는 고교 후배에게 결혼기념일에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부인에게 지갑이나 핸드백, 목걸이 세트 등을 선물하면 좋다고 한다. 그 다음은 공연 보기, 외식, 여행 순으로 추천했다. 며칠 전 결혼기념일을 맞았지만 정작 무감각하게 보내고 말았으니 이를 어쩌랴. 내년에는 무심코 넘기는 일을 되풀이하지 말길 다짐해 보는 수밖에. 몇몇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결혼기념일 휴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기업들이 늘고 있다. 결혼기념일을 미리 알려주고 연차휴가를 가게 하는 관청도 있단다. 가족들의 회사에 대한 애정과 직원의 소속감을 고취시켜 업무 효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생각해 본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길섶에서] 절두산/서동철 논설위원

    언젠가 여행한 포르투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가물가물하지만, 파티마에 대한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작은 마을 파티마는 한 해에 수백만명이 찾는 가톨릭 성지(聖地)라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어느 날, 양을 치는 세 아이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 성모 마리아는 5개월 동안 매달 13일 이곳에 와서 평화를 기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침내 10월 13일, 7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모 마리아가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1930년 ‘성모 발현(發顯)’을 공인하고 1953년 대성당을 세웠다. 엊그제 서울 양화진의 절두산 성당을 찾았다. 누에의 머리를 닮아 잠두봉(蠶頭峰)으로 불리다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형으로 순교하면서 절두산(切頭山)이 됐다. 이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기록이 확인된 사람은 29명이지만, 수천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박물관에서는 포교와 박해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당시 신앙과 목숨을 맞바꾼 사람은 전국적으로 8000명에 이른다고 한국 교회는 설명한다. 절두산에 비하면 ‘파티마의 기적’은 오히려 감동이 적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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