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길섶에서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101
  • [길섶에서] 부지깽이 나물/문소영 논설위원

    울릉도 하면 단연 호박엿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급 한정식집에서 울릉도 특산이라며 ‘명이(茗荑) 나물’이 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춘궁기의 울릉도에서 목숨을 건지게 했다고 해 ‘산마늘’ 대신 명이라고 불렸다고 했다. 간장에 절인 이 나물에 고기를 싸 먹으면 맛있다고 해 철없이 ‘무한리필’해 먹다가 주인장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울릉도 명물에 ‘부지깽이 나물’도 있다. 울릉도에만 자생한다는데 전혀 명물 같지 않은 이름이다. 부지깽이란 아궁이 따위에 불을 땔 때, 불을 헤집거나 끌어내거나 거두어 넣거나 하는 데 쓰는 막대기이니 말이다. 찾아 보니 섬쑥부쟁이를 부르는 울릉도의 방언이란다. 가수 이장희가 이 나물을 좋아해 울릉도 주민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근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기념사업회’와 함께 독도를 방문한 길에 부지깽이 나물을 먹어봤다. 나물요리는 참기름 맛으로 먹는다고도 하지만 독특한 향취가 색다르다. 세상이 좋아져서 지역 특산물을 모두 인터넷에서 주문해 맛볼 수 있다. 핑계 삼아 인터넷 쇼핑이나 해야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수저 선물/정기홍 논설위원

    식사를 할 때면 가끔 밥상 앞에 앉은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어른이 숟가락으로 국을 뜬 뒤에야 밥을 입에 넣었던 때의 기억이다. 어린 생각에 세 끼 밥상 앞은 잔소리투성이였다. ‘흘리지 마라’ ‘젓가락질 잘해라’는 기본이고, ‘누구네 애들은’ 정도가 되면 밥이 곧이 넘어갈 리 만무했다. 언제나 ‘마이동풍’(馬耳東風) 격이다. 더러 숟가락을 밥상 위에 툭 놓고 일어났다. ‘밥상머리 교육’의 일상이었다. 얼마 전 어른에게서 수저 세트를 선물 받았다. 겉봉엔 ‘수저를 선물하는 것은, 받는 사람의 복과 장수를 기원한다’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런 의미가 있나 싶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돌잔치나 집들이 때 복(福)과 수(壽)자를 새긴 수저를 주고받은 것을 본 적이 많다. 지금은 ‘복 숟가락’을 보기조차 힘들어 그 의미가 퇴색됐지만…. 오늘 식사 시간. 수저통을 바짝 당겨 숟가락과 젓가락을 동료 앞에 가지런히 놓아볼까 싶다. 장수를 기원하고 복을 주고받는다는데 주저할 건 아니다. 동료에 대한 배려이고, 주었던 복도 되돌아오는 것 아닌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경아’/문소영 논설위원

    “안아줘요, 꼭 안아줘요.” 소설가 최인호의 타계 소식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이장희의 “깊은 어둠 속~”으로 시작하는 ‘사랑의 노래(추워요)’라는 노래 속에서 코맹맹이 소리로 ‘경아’가 “추워요, 내가 추워요”와 같이 말하는 약간 우스운 대사들이었다. 어떤 맥락인지는 모르나, “경아, 이렇게 누운 것도 오랜만이군” 하는 신성일의 느끼한 대사도 기억났다. 1974년 최인호 원작의 영화 ‘별들의 고향’은 서울관객 46만여명을 동원한 ‘대박’ 영화였다. 이 영화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역시 젊은이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경아와, 경아의 코맹맹이 소리(성우 고은정), 신성일에 대한 기억은 시대를 초월한 이 OST 덕분이다. 호스티스 영화의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비판을 받는 ‘별들의 고향’은 산업화로 물질적인 풍요를 얻었으나 정치적·사회적으로 좌절한 1970년대 순진한 청년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최인호라는 한 소설가의 죽음으로 개발독재시대와 통기타, 생맥주, 본격적인 이농(離農)으로 양산된 호스티스들의 1970년대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듀!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간고등어/서동철 논설위원

    안동 간고등어가 서울신문사와 연세대학교가 함께 준비하고 있는 ‘대한민국 지역 브랜드 대상’의 1차 심사 결과 특산물 부문에서 당당히 2등에 올랐다고 한다. 간고등어는 오래전부터 내륙지방에서 특히 인기 있는 먹거리이지만, 어느새 ‘간고등어는 안동’이라는 인식이 깊이 심어진 것이다. 사실 서울에서는 자반고등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데, 자반이란 소금을 뿌려 저장성을 강화한 음식을 말한다. 좌반(佐飯)이라는 한자 표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글자 그대로 밥을 먹도록 도와주는 반찬이라는 뜻이다. 안동 간고등어는 태백산맥을 넘나든 봇짐장수들이 흘린 땀의 산물이다. 영덕에서 봇짐장수들의 지게에 실린 생선은 숙성이 시작되어, 임하댐 건설로 수몰된 안동 임동장터에 이르면 소금을 쳐 부패를 막아야 했다. 그래서 옛날 먹던 자반고등어는 표면이 살짝 하얗게 변한 느낌이 들 만큼 깊이 숙성된 것이었다. 요즘에는 싱싱한 고등어에 그저 간을 친 뱃자반이 대부분이다. 옛 자반고등어를 부활시켜도 좋겠다. ‘임동 간고등어’로 이름 붙이면 새로운 인기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고추장/문소영 논설위원

    입맛 없을 때, 외국여행 중 더 이상 현지 음식을 견딜 수 없을 때 ‘무적의 식재료’가 있다. 고추장이다. 순한국 토종 입맛을 가진 터라 해외 출장 때면 간혹 고추장 튜브를 갖고 갔다. 최근 주영하 한국중앙학연구원 교수의 연구를 보니, 조선의 왕 영조는 입맛 없을 때 보리밥에 고추장을 쓱쓱 비벼 먹었다고 한다. 영조의 유별난 고추장 사랑은 승정원일기에도 기록돼 있다. 1749년 56세의 영조가 “요사이 고초장을 자주 먹는다”고 한 말이 나오고, 65세가 되어서는 “가을보리밥과 고초장, 그리고 즙저(외장아찌)가 구미를 당기게 한다”고 한 말도 나온다. 75세의 영조는 “송이, 생전복, 어린 꿩고기, 고초장이 4가지 별미”라고 했다. 고추는 임진왜란(1592) 전후에 한반도에 유입되었고, 고추장으로 만든 시점은 늦어도 18세기 초로 추정된다. 숙종의 어의 이시필(1657~1724)이 쓴 ‘소문사설’에 순창고초장조법이 나온다니 말이다. 점심으로 먹은 비빔밥에 뜻밖에 간장소스가 나왔다. 300여 년쯤 된 고추장 소스는 전통한식이나 궁중식이 아니라고 오해한 탓일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익숙해진다는 것/ 안미현 논설위원

    불어나는 몸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두 달쯤 전부터 ‘걷기’에 돌입했다. 약속이 없는 날에는 서울 광화문 회사에서부터 마포 집까지 걸어서 퇴근한다. 기계 위에서 뛰는 건 도통 체질에 안 맞는다느니, 3보(步) 이동 시 차량 탑승은 기본이라느니, 평소 ‘귀차니스트’ 지론을 설파하며 운동과는 척지고 살아왔던 터라 처음엔 ‘죽을 것’ 같았다. 몇 번이고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 쉬어야 했다. 4㎞남짓 가는 데 1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그런데 차츰 견딜 만해졌다. 오로지 완주만 생각하던 머릿속에 거리의 풍경과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록도 한 시간 이내로 단축됐다. 요즘에는 올레길처럼 여러 귀갓길 코스를 개발하는 여유까지 생겨났다. 그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미동도 않는 저울바늘이 최대의 적이기는 하지만 어느새 걷기는 생활 속 작은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사람과든 사물과든 익숙해진다는 것의 의미를. 누군가는 그것이 주는 나태함을 경계해 결별하라고 주문했지만 익숙해진다는 것, 참 묘한 힘을 지녔다.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길섶에서] 가족/문소영 논설위원

    “가족이란 남들 안 볼 때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66)는 정의했다. 의붓딸을 성폭행한 아버지 탓에 범인으로 내몰린 소년을 그린 ‘위저드 베이커리’의 저자 구병모는 “밝힐 수 없는 흑역사를 가진 가족들이 상당하다”고도 했다. 괜히 충격받은 척하지 마시라. 바쁘고 정신없을 땐 가족이 영 성가시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25일 타계한 소설가 최인호의 연재소설 ‘가족’도 살가운 가족을 그려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다. 가족 구성원이 갈등하고, 그 갈등을 봉합하고, 다시 사랑을 찾아가는 희로애락을 진솔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요즘 가족은 이웃보다 더 무서운 세상이기도 하다. ‘인천 모자 실종’ 사건은 도박빚 등으로 가족과 갈등을 빚던 차남이 어머니를 살해해 암매장하고 미혼의 친형도 토막살해해 암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보험금이나 유산을 노리고 피를 나눈 부모나 형제를 죽이는 일도 적지 않다. 낯선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족 사이에도 할 말과 못할 말을 가리고 상대의 감정과 상태를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감성 리더십/오승호 논설위원

    한 인사는 장관 시절 “고교 후배를 산하기관장으로 챙겼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기획관리실장을 불러 “어떻게 해서 이런 기사가 나왔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실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수직적 계통을 중시하는 전제형 리더십을 떠올리게 한다. 현직 모 은행장은 수행비서 때 은행에 불리한 기사만 나면 행장이 홍보실장을 혼쭐 내는 것을 이골이 나게 봤단다. 행장이 되고 나서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부정적인 기사가 나와도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는단다. 홍보실장을 발령내려 할 때 인사부에서는 해당자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자 행장은 “그건 언론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인사를 단행했다. “업무상 술을 많이 마실 자리가 있으면 술이 센 홍보실 직원과 함께 가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도 폈다. 수평적 소통이 요구되는 시대다. 어느 조직이든 능률을 올리고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거두는 데는 단연 감성의 리더십이 으뜸일 게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길섶에서] 마리아관음/서동철 논설위원

    일본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은 1597년 가톨릭 선교사 6명과 신자 20명이 처형된 곳이다. 언덕 아래 ‘26인 순교 기념관’에서 가장 눈길을 붙잡는 유물은 마리아간논(觀音)이다. 불교의 관음보살과 많이 닮아 성모 마리아인지 알기 어렵다. 천주교 탄압에 따른 고심의 결과지만, 자비의 실천이라는 역할에서 성모와 관음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모셔진 관음보살은 성모 마리아를 닮았다. 불모(佛母)는 성모 마리아와 성모 이미지의 소녀상으로 명성을 날린 조각가 최종태다. 그는 “땅에는 나라도, 종교도 따로따로지만 하늘로 가면 경계가 없다”고 말한다. 법정 스님이 이 상징적 불사를 그에게 맡긴 이유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신을 믿지 않아도 자신의 양심을 따르면 신은 자비를 베풀 것”이라고 말해 뉴스의 초점이 됐다. 자신의 종교만이 구원으로 이끈다는 독선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길상사 관음보살의 정신이 바로 그렇다. 마리아간논의 의미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평준화/문소영 논설위원

    인간은 외모·학력·재력·체력 등에서 각기 차이가 있고, 서로 다른 차이를 발판 삼아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간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자의식도 형성된다. 그런데 특정 연령대에 다다르면 각각의 차이가 평균에 수렴해 간다는 그럴싸한 이야기가 있다. 처음에 듣고 박장대소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40대는 미모의 평준화. 과거에 양귀비처럼 예뻤더라도 이때는 옆집 순이처럼 주름진 얼굴이나 몸매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50대에는 학력의 평준화. 젊어서는 SKY대 출신이 입사와 승진에 유리했더라도 지식의 수준이 막상막하다. 60대는 정력의 평준화. 천하의 카사노바도 비아그라가 필요한 시점이다. 70대에는 재물의 평준화. 부자라고 하루 다섯 끼 먹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80대에는 허약했든 건강했든 건강이 평준화하고, 90대에는 생사의 구분이 사라져 집안에 누워 있으나 무덤에 누워 있으나 매한가지란다. 100세 장수를 누린다고 해도 뽐내면서 빛나게 사는 시절은 길지 않다. 평준화 또는 평등을 아무리 거부해도 세월 앞에서 장사가 없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인연/정기홍 논설위원

    퇴근길에 가끔 들르는 집 근처 호프집이 있었다. 통닭을 곧잘 구워낸다. 50대 후반의 부부가 운영하던 가게인데, 두 주인장과는 제법 오랜 지인처럼 지냈다. 직장의 술자리가 겨울 때나, 입맛을 잃을 때면 즐겨 찾던 곳이다. 안주인은 20년간 통닭을 구워 왔다고…. 나에겐 남다른 집이건만 올여름 내내 들르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그곳에 전업 공사가 한창이다. “손님이 적어 장사를 접었나?” 아냐, 그런대로 손님은 있었지. “바깥주인 병이 악화돼 입원을 했을까?” 불길한 예감이 불현듯 자리를 잡는다. 단절의 허전함도 가슴을 뻥 뚫어 놓았다. 바깥주인은 다리와 팔의 마비 증세로 치료 중이다. 말은 어눌하지만 세상 사는 얘기만은 나와 구색이 맞았다. 매사 긍정적인 안주인도 보기 좋았다. 언제나 “운동을 하시라”며 살갑게 맞아 주었다. 출근길에 공사 중인 인부에게 물었다 “그분들 어디 갔어요?” 모른단다. “여긴 어떤 가게를 합니까?” 통닭전문점! 그 부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진즉 휴대전화 번호라도 적어 놨어야 했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바느질/정기홍 논설위원

    하찮은 것에 ‘살이’의 맛을 더하는 경우가 많다. 사는 재미다. 두어달 전 아내가 “기울 수 있냐”며 해진 욕실 슬리퍼를 앞에 내놓았다. 오래된 터라 가장자리가 떨어져 신기가 조금 거북한 상태였다. “얼마 안 줘도 사는데 새것으로 바꾸지···.” 누구나 정이 든 ‘몸붙이’를 버리기란 쉽지 않은 법. 자린고비의 정서도 뒤따랐을 게다. 저녁 무렵 수선 작업이 시작됐다. 재질은 딱딱하지만 바늘은 어렵지 않게 들어간다. 어릴 때 이불 호청을 바느질하던 어머니 곁에서 바늘 가는 길을 눈여겨보았기 때문일까. 작업을 시작한 지 30여분. 촘촘히 꿰맨 실밥은 제 모습을 근사하게 찾아 주었다. 바늘을 슬리퍼에 꽂느라 손가락 끝 세포는 통증으로 아우성이었지만···. 요즘 욕실에 들어설 때마다 ‘수술 자국’이 선연한 그놈 모습에 웃음 짓는다. 어느 가정이나 소소한 자존심에 부부 간 다툼은 늘 일어난다. 영원불멸의 가정사다. 수선된 슬리퍼는 하루에도 열두 번 참을 ‘인’(忍) 자를 새기게 한다. 어느 값비싼 슬리퍼가 이런 무상(無上)의 즐거움을 줄까 싶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인도 화장실/최광숙 논설위원

    인도에서 화장실 문제로 아주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1990년대 초 인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시골 길을 달리던 관광버스는 때가 되면 아무 곳에서나 섰다. 그러면 모세의 바다가 갈라지듯 남자는 오른쪽으로, 여자는 왼쪽으로 나뉘어져 각자 알아서 용변을 봐야 했다. 처음에는 지인들끼리 점퍼 등으로 가려주며 일을 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엉덩이를 내놓고, 심지어는 서로 마주 보면서 용변을 보는 ‘경지’까지 올랐다. 처음이 어렵지,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곧 적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이다. 인도인들은 그런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서인지 지금도 인도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화장실이 없다는 뉴스를 최근 접했다. 정부가 화장실 설치운동까지 한단다. 그중 하나가 ‘화장실 없으면 신부도 없다’라는 캠페인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인도 남성들의 자존심을 자극한 것이다. 화장실이 없다는 게 가난이 죄임을 뜻하는지, 특유의 문화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한 건 우리나라 신랑들은 화장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열애/문소영 논설위원

    66세의 연기자 백윤식이 30살 연하인 공중파 TV 소속의 여기자와 열애를 한다는 뉴스에 중년 남자들이 부러워 죽는다. 검색에서 ‘백윤식’을 치면 관련 검색어로 이미 여기자의 이름이 딸려 나온다. 서로의 얼굴과 몸매를 벌써 품평하고, “과연 누가 누구를 사로잡은 것이냐”며 입씨름을 한다. 젊음이냐, 연륜이냐의 대결이다. 백윤식을 그저 느끼하게 잘생긴 배우에서 특별하게 매력적인 연기자로 인식한 시점은 TV 드라마 ‘서울의 달’(1994년)과 영화 ‘싸움의 기술’(2006년)이 아니었나 싶다. 그에겐 낮고 정중한 목소리를 뒤엎는 코믹한 반전의 연기가 있었다. 영화에서 전설적인 싸움의 고수 백윤식은 학원폭력의 희생자인 ‘고딩’ 제자를 파이터로 변신시킨다. “힘이 좀 달린다 싶으면 주변의 사물을 잘 이용해. 모래라든지 돌이라든지. 그게 기본이야.” 반칙이 아니냐는 반발에 “싸움에 반칙이 어딨어? 싸움엔 룰이 없는 거야”라고 가르친다. 돌아보면 연애도 싸움처럼 주변의 모든 자원을 활용하는 거다. 시도해 봐야 결과도 알 수 있다. 모태 솔로들! 분발하자.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상가집 웃음소리/박현갑 논설위원

    며칠 전 모친상을 당한 친구 상가에 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세상 사는 얘기가 나왔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보도도 하나다. “애 얼굴을 보니 아버지가 맞는 것 같더라” “본인이 아니라고 했잖아. 그런데 이런 게 뉴스거리가 돼?”라는 등 술잔과 함께 가벼운 웃음이 섞인 대화 도중, 한 친구가 “채동욱이 누군데?”라고 물었다. 일제히 그 친구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 친구 입에서는 “먹고살기 바빠. 신문, 방송 챙겨 볼 겨를이 없어. 오늘도 어렵게 왔어”라는 말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서민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월급은 오를 기미가 안 보이는데 자녀 교육비 등 생활씀씀이는 갈수록 불어만 가니 사회인으로서의 여유가 그만큼 사라진 게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이념갈등, 공공기관장 인사 지연 등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뉴스가 남의 나라 얘기인 셈이다. 열정은 사라지고 무관심만 쌓이는 게 중년인가. 가슴 아픈 사연 없는 사람 없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어깨 한번 툭 쳐주고 함께 웃으며 위로해 보자. 세상이 좀 더 무지갯빛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맞이 대청소 단상/문소영 논설위원

    추석을 앞두고 가을맞이 대청소를 준비하고 있다. 앞베란다와 뒷베란다의 묵은 먼지를 닦아내고 커튼과 여름용 침대보, 이불 등 대형 빨래도 세탁해야 한다. 고민은 청소를 잘 못한다는 것. ‘쓸고 닦고 빠는 일을 왜 못해’라고 지적한다면, 그 정도 일은 잘할 수 있다고 답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본격적인 청소에 돌입하기 전에 하는 정리정돈을 못한다는 거다. 안 한다기보다는 불능(不能)에 가깝다. 정리정돈을 다짐해 놓고 30분도 못돼 지저분한 방안에서 코를 박고 책을 읽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일쑤다. 일종의 문자중독증과 호기심이 발동한 탓인데 어릴 때부터의 고질이었다. 초등학교 때 차례 음식을 넣어둘 다락을 청소하라는 엄마의 지시를 받고 올라가 사위(四圍)가 깜깜해질 때까지 언니·오빠가 사용했던 낡은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읽다가 내려와 엄마의 복장을 터지게 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마의 복장 터지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혼자 쓰는 방 하나를 쓰레기통에 가깝게 사용하는 청소년기 딸의 태평한 태도에서 깨닫고 있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쉼표 인생’/정기홍 논설위원

    어느 시인이 그랬다. 시는 연가(戀歌) 아니면 애가(哀歌)라고···. 요즘 시집을 옆에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십수년간 안 하던 ‘짓거리’인데, 지하철에서도 가끔 펼친다. 어느 구절 앞에선 진도를 못 낸 상념들이 난장(場)을 펼치며 속마음을 휘젓는다. 이팔청춘도 아닌데 대체 뭔 일인가 싶다. 며칠 전 ‘쉼표’의 뜻을 못 헤아린 채 시집을 덮고 말았다. 언어 조각이 이토록 읽는 이의 감정을 팔색조처럼 펼쳐낼까…. 소싯적 ‘쉼표의 꾐’에 빠진 적이 더러 있었다. 소설은 시말(始末)이 뻔하다며 그 끝을 보지 못하던 차에 ‘시(詩)쟁이’가 글길에 찍어준 쉼표에 혹했던 것. 그로부터 가끔 접한 쉼표는 삶의 길잡이로, 드잡이로 자리했다. 그제 펼친 시집에서 엄한 꾸중을 들었다. ‘무엇에나 이기면 좋고 지면 화나지/지고만 살아 와서/마음은 늘 화나 있고 몸은 늘 병든 걸… 뭐가 달라져야 말이지/내상으로 골병든 부상병인 걸’(유안진의 마이너리티 중). 악다구니가 많았냐고 죽비를 내리친다. 그러고 보니, 자존심의 ‘따옴표’만 찍으면서 살아온 듯하다. ‘쉼표 인생’도 그 얽음이 무진장할진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게딱지/안미현 논설위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다가 통 안에서 게딱지를 발견했다. 갓 지은 밥을 게딱지에 비벼 후딱 해치웠을 누군가가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가만, 게딱지가 재활용이 되는 음식물이던가? 생판 모르는 누군가의 밥상 행복에 배시시 새어나오던 웃음이 뚝 멈췄다. 며칠 전 발견했던 달걀껍질까지 중첩되면서 얼굴이 더 구겨졌다. 구청에서 받은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실시’ 안내문이 떠올랐다. 달걀껍질에 동그라미까지 쳐가며 각별한 주의를 요구하고 있었다. 신문방송에서 얼마나 떠들어댔는데 설마 아직도 달걀껍질이 음식물 분리수거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과잉친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걀에 이어 게딱지까지 목도하고 보니 그게 아니다 싶다. 다시 한번 환기하자면 생선이나 갈비 뼈, 복숭아 씨, 딱딱한 껍데기 등은 일반 쓰레기다. 한마디로 동물 사료로 쓰일 수 있으면 음식물 쓰레기, 없으면 일반 쓰레기다. 그래도 헷갈린다면 좀 더 간단한 구분법이 있다.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은 동물도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길섶에서] 광고지 차별/서동철 논설위원

    점심을 먹으러 회사 밖 무교동 거리에 나서면 광고지를 나눠주는 사람이 한 두 명은 보이게 마련이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건네곤 해서 되도록이면 받아 들겠다고 마음먹는다. 엊그제는 새로 생긴 햄버거집에서 아르바이트 학생을 시켜 광고지를 돌리고 있었다. 공짜 감자튀김 쿠폰쯤은 붙어 있겠지 하며 다가섰지만, 나에게는 내밀지 않았다. 햄버거는 도무지 먹지 않을 세대로 보인 것이다. 하긴 햄버거집에 가면 나 같은 50대 남자 손님은 많지 않다. 사 먹을 만한 계층만 집중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전략일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미장원 개업 인사라면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햄버거는 벌써부터 젊은 사람들만 먹는 음식이 아니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주지 않는 광고지가 있다. 영어나 중국어, 컴퓨터 학원 것이다. 미래를 위해 투자할 리 없는 ‘한물 간 인간’으로 비쳐진다는 뜻이다. 반면 안마나 사우나 광고는 멀리서도 달려와 쥐여준다. 하하, 나도 잘 모르는 내 마음을 어찌 그리들 꿰뚫어 보고 있는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백구두 신사/최광숙 논설위원

    아무리 멋쟁이라도 하얀색 구두는 보는 이가 부담스럽다. 대중의 눈을 사로잡을 책무를 진 연예인이라면 모를까 길거리의 평범한 이가 백구두를 신었다면 뭔가 불편한 시선이 꽂히기 마련이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정말 오랜만에 백구두 할아버지를 봤다. 한참을 내려다보고 올려다보길 몇 차례. 하늘거리는 얇은 여름철 양복은 말할 것도 없고 안에 입은 셔츠와 넥타이 등 온통 하얀색으로 꾸몄다. 하얀 중절모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 역시 은빛이다. 그래도 하얀 색깔 맞춤 패션의 완성은 역시 백구두였다. 예전에는 백구두 신사를 보면 부인 속이나 썩이는 한량(閑良)이 아닐까 의구심도 들었다. 저렇게 차려입고 어딜 가서 무슨 일을 할까 온갖 상상도 하곤 했다. 하지만 한살 두살 나이 먹어가니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 웃음도 나오고 기분이 좋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멋내며 즐기는 그레이 신사가 마냥 싫지는 않아진 것이다. 사는 게 시들시들해지면서 외모를 치장하는 것도 만사 귀찮아지는 요즘, 곱게 몸단장한 할아버지를 보니 번쩍 자극이 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