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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장수 볼펜’ 단상/박홍환 논설위원

    모나미 153 볼펜을 처음 손에 쥔 건 초등학교 5~6학년 때인 1970년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연필 몇 자루와 지우개만 담겨 있던 필통 속에 하얀색 플라스틱 몸체의 모나미 153 볼펜을 조심스레 끼워넣고 가슴 설렜던 기억이 새롭다. 연필과 지우개로 길들여진 저학년 시절과의 깨끗한 작별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꽤 유용하기도 했다. 더 이상 손에 쥘 수 없게 된 몽당연필을 몸체에 끼우면 당당한 새 연필로 재생됐다. 심이 부러질 염려가 없으니 손으로 돌리며 장난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때부터 모나미 153 볼펜은 항상 주변에 있었다. 어느새 손에는 6각형 모나미 153 볼펜이 쥐어져 있곤 했다. 반세기 동안 36억 자루가 팔려나갔다니 그럴 만도 하다. 발매 50주년 기념 한정판으로 제작된 황동 몸체의 모나미 153 볼펜이 화제다. 자루당 2만원의 고가에도 1만 자루가 이틀 새 모두 팔렸고, 추가 제작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중고사이트에서는 벌써 10배 가까이 가격이 뛰었다. ‘필기 부재’의 시대에 ‘볼펜 광풍’이라니 그 까닭이 궁금해진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사라진 문자/정기홍 논설위원

    “이상한 문자메시지 누르지 마.” 며칠 전부터 출근 전에 듣는 말이다. “흥, 그럴 리 있겠어.” 의기양양하다. “요즘 깜빡 증세가 있던데….” 이쯤이면 슬슬 생각이 고약해진다. 카드사의 개인 금융정보 유출 사고가 자존심마저 건드렸다. 다행히 “얼마에 털렸느냐”는 핀잔은 안 들었으니 자존심 상처는 진전을 멈췄다. 전 국민이 영혼 빼곤 다 털렸다니 자존심을 어림해 봤자 기대는 난망일 듯하다. 최근 며칠 간 휴대전화를 울려 대던 문자메시지의 얼굴들이 바뀌었다. 하루에 한두 개씩 오던 대출 스팸 문자가 뚝 끊겼다. 나의 신용등급이 어느 정도기에 이토록 집요할까 했던 터다. 대신 ‘돌잔치’와 ‘연말정산’으로 꼬드기는 스팸 문자는 계속된다. ‘고객님 카드번호가’라고 쓴 스미싱 문자도 들어왔다. 늑대를 피하니 호랑이인가. 제도의 개선은 기술 진도를 못 이긴다고 한다. ‘마각(馬脚)을 숨긴 문자’가 어떤 얼굴로 나를 공격해 올지 모를 일이다. 인터넷 초연결사회의 그늘치고는 짙은 그늘이다. 내 정보가 나를 다시 공격할 줄 생각이나 했었던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명함 관리/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은 명함이 3000장 안팎은 될 것 같다. 내 명함 또한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건넸을 것이다. 이 정도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영업 업무를 오래 한 어떤 중견 직장인은 책장 하나를 명함집으로 꽉 채우고 있었다. 명함집 한 권에 몇 백장을 보관하므로 100권이면 몇 만명을 만난 셈이다. 요즘 나온 스마트폰 명함 앱에도 다 보관하지 못할 엄청난 양이다. 수집한 우표를 보관하듯 처음에는 받은 명함을 분류해서 명함집에 곱게 간직했다. 그러면서 가끔은 명함집을 열어 보며 주인의 얼굴도 떠올려 보곤 했다. 지금까지 가끔이라도 연락하는 명함의 주인공은 3000명 중에 10%나 될까. 그저 명함만 주고받은 스쳐간 인연이 훨씬 많은 듯싶다. 어떤 후배가 명함을 받으면 주인공에 관해 알게 된 것을 뒷면에 깨알같이 적어서 보관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특징이나 가족 관계, 대화 내용 등이다. 작은 인연이라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다시 만난다면 명함만 찾아봐도 기억을 쉽게 떠올려 금세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설마 이런 경고가?/문소영 논설위원

    가정용 다리미 사용 주의사항 중에 ‘옷을 입은 채 다림질을 하지 마시오’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경고가 있을 수 있느냐며 사람들이 웃는다. 그런데 맞장구를 치지 못하고 애매한 표정으로 슬쩍 웃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왜냐고? 저런 경고는 나사 하나쯤을 풀어놓은 듯하거나 게으른 사람들에게 적절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제조업체의 배려 같지만, 정확하게는 소송을 회피하려는 노력이다. 외출하기 전에 양말이 떨어진 것을 발견하면 귀찮아서 신은 채로 바느질하다가 날카로운 바늘에 찔렸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 경고에 약간 뜨끔했다. 옷을 다 차려입었는데 구김살을 발견한다면 스팀 다리미를 들이대지 않을 것으로 확신할 수가 없었다. 부엌칼의 소비자 경고문에는 ‘떨어지는 칼을 절대로 잡으려고 시도하지 마시오’가, 세탁기에는 ‘고양이를 세탁하지 말라’는 경고도 있다고 한다. 한국 군대용 세탁기에는 ‘총을 세탁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반전지처(反轉之處)/정기홍 논설위원

    욕실의 담배 냄새로 고통을 겪던 지인이 ‘민원’이 해결됐다며 저간의 사정을 전해 왔다. 그는 하루에 몇 번씩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 냄새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라고 호소했던 터. 수십 차례 부탁을 하고 애원도 해 보았지만 좀체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담배 냄새를 희석시키려고 향수까지 동원하는 고약한 행위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냄새 고통은 엉뚱한 데서 해결됐다. 한 달여 전 저층 집에서 욕실문 페인트칠을 한 뒤 그 위층 주민들이 환기구를 통해 올라온 독한 시너 냄새에 하루 종일 시달렸던 것. 이후 반전이 일어났다. 그 다음 날부터 담배 냄새는 거짓말처럼 없어졌단다. 지인은 “시너 냄새가 담배를 피우던 아래층 주민에게 고통을 깨닫게 한 것 같다”고 했다. 요즘 타고난 ‘오복’(五福)에 더해 ‘육복’(六福)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회자된다. 층간소음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최고의 복’이란 뜻이다. 독한 자극제가 해묵은 이해타산을 해결한 ‘실력자’였다는 지인의 행복한 이야기가 영 개운찮은 뒷맛을 남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하이힐/문소영 논설위원

    굽이 높은 하이힐은 프랑스 왕 루이 14세 베르사유 궁에서 시작됐다. 루이 14세는 귀족과 차별된 왕의 권위를 최대화, 최적화하고자 왕궁에 화장실을 짓지 않았고, 그 탓에 베르사유 정원에는 인간의 배설물이 쌓였는데 귀족들이 이들을 피하고자 하이힐을 신었다는 것이다. 루이 14세의 초상화나 17~18세기 프랑스 남자 귀족의 초상화를 보면 통굽으로 보이는 힐을 신었다. 퐁피두 부인과 같은 여자 귀족들은 드레스 때문에 구두 코만 보이니 굽을 확인할 수가 없다. 현대에 와서 남성들은 굽이 없는 평평한 구두를 신고, 여성들은 점점 더 굽이 높아지는 하이힐에 도전하고 있다. 섹시 여배우인 메릴린 먼로의 뒤뚱거리는 오리걸음은 하이힐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이힐=섹시’라는 등식이 성립돼 노소를 불문하고 유행이다. 지난 12일 미국서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엠마 톰슨이 굽 높이 10㎝쯤 보이는 하이힐을 집어던지며, “건강을 위해 더 이상 신지 말자”고 했단다. 몸으로 먹고사는 직업군은 섹시보다 건강이 최고라는 지론 탓에 톰슨의 언행에 박수를 보낸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와송(瓦松) 단상/정기홍 논설위원

    며칠 전 기와 지붕에서 자란다는 풀을 약초라며 소개하는 방송을 보고 적이 놀랐다. 외양이 소나무의 잎과 꽃을 닮아 ‘와송’(瓦松)으로 불린다고 한다. 한갓 잡초로 여겼던 풀에 한약 성분이 들어 있다니···. 자태가 고와 관상용으로 키운다는 대목에선 자연의 위대함마저 오롯이 전해진다. 석면 투성이인 슬레이트 지붕에서 고구마를 말린 ‘삐대기’를 주전부리 삼아 먹었던 것 만큼이나 무지한 나를 탓했다. 시골에는 지천으로 깔린 게 풀이다. 농로가엔 민들레가, 밭 한가운데는 쇠비름 같은 잡초가 무성하다. 아무리 잡초라 할지라도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흥미로운 건 마을 인근 야생초에는 독초가 거의 없다는 사실. 천렵으로 잡은 민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일 때 주위에 있는 풀들을 듬뿍 뜯어 넣어도 탈이 나는 법이 없었다. 오랜 세월을 인간과 교감하며 살아온 야생초만의 힘인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산야초의 시대다. ‘모르면 잡초, 알면 약초’란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마침 시골에 갈 일이 생겼다. 길섶의 풀 한 잎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듯하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같은 나이, 다른 삶/최광숙 논설위원

    팔순을 바라보는 친척 두 분이 계신다. 가까이서 본 두 분의 삶은 너무 다르다. 한 분은 거동이 불편해 외출을 거의 하지 못해 집에만 주로 계신다. 가족들과의 대화도 별로 없고, 주위에 친구도 없다. 그러니 항상 외롭게 적적하게 지낸다. 이는 몸이 불편한 탓도 있지만 세상사 모든 일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사람들과의 교류에 소극적인 성격 탓도 있는 듯하다. 다른 한 분은 활기차다. 생활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불과 2년여 전까지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구해 용돈을 벌었다. 동창생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고스톱을 치고 술 한잔 하며 즐겁게 산다. 그 연세에 손수 운전해 볼거리를 찾아다닐 정도로 건강하다. 조카들을 만나도 어르신 티를 내지 않고 늘 웃고 농담을 나눌 정도로 젊은 감각이다. 동갑내기의 삶이 이렇듯 한 사람은 청년같이, 한 사람은 그야말로 나이 그대로 노년으로 갈린다.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어떻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가에 달린 것 같다. 과연 ‘미래’의 내 모습은 어떨까. ‘현재’를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지슬과 청야/박찬구 논설위원

    우리 현대사의 또 다른 불편한 사건을 다룬 영화 ‘청야’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6·25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 주민 719명이 국군에게 몰살당한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당시 군의 비공식 작전명이었던 청야는 벽을 튼튼히 하고 들의 곡식을 거둬들여 적의 식량보급을 끊는다는 ‘견벽청야’를 뜻한다.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어이없는 죄명으로 젖먹이와 어린이 385명을 포함해 마을 사람들은 말 그대로 초토화를 당했다. 관람 내내 제주 4·3항쟁을 그린 ‘지슬’이 오버랩됐다. 지슬과 청야, 두 편의 독립영화는 이념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영혼을 씻김굿으로 달래며, 그 광기의 역사를 우리 공동체가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화두를 건넨다. 역사물에서는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과 팩트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두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묵직하고 쓰리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청야는 툭 던진다. ‘몰랐다면 알아야 하고, 알았다면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바람길의 역습/정기홍 논설위원

    요즘 출근길에 고역 하나가 생겼다. 집 앞에 들어선 백화점 건물을 지날 때면 바람이 여간 드센 게 아니다. 예전엔 없었던 현상이다. 출근 전 ‘완전무장’을 생각하지만 “걸어서 5분 거리를 못 견디겠나” 하며 집을 나선다. 하지만 삭풍으로 돌변한 바람은 하염없이 뺨을 때린다. 건물에 부딪힌 회오리바람은 더 고약하다. 최근에서야 백화점 건물이 칼바람길을 만든다는 걸 알았다. 여름철 도심 ‘열섬현상’을 줄이려고 만든 ‘바람길’과 연관성이 컸다. 도심 고층건물 사이의 바람은 평지보다 두세 배 세지고, 겨울철 체감온도는 큰 폭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여름용 바람길의 역습을 받는 셈이다. 며칠 지속된 혹한 속 칼바람이 겨울의 운치를 앗아가 버린 듯하다. 도심 길들은 빌딩숲 바람길의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동토처럼 얼어붙었다. 서울 도심의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오르내린다. 문득 도심 칼바람길이 바바리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걷던 옛 정취마저 잊게 할까 걱정스러워진다. 퇴근길 골목에서 흘러나오던 ‘그 겨울의 찻집’ 노래가 코트 속을 파고드는 계절인데 말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귀성열차/박홍환 논설위원

    어김없이 또 설이 다가오고 있다. 그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서울역에서는 귀성열차 표를 구하려는 장사진이 펼쳐질 게다. 빼곡하게 대합실을 메운 인파가 흡사 제 태어난 강으로 몰려드는 연어 떼를 닮았다. 모두 오늘만큼은 고달픈 세상살이를 잊고 귀성열차를 타고 달려가 만나게 될 넉넉한 고향 품을 그려보겠지. 그나저나 시속 300㎞로 ‘슝’ 번개처럼 고향 땅에 떨궈놓는 KTX 시대에도 1990년대에 시인 신경림이 묘사했던 ‘귀성열차’ 풍경은 남아 있을까. 한강을 넘으면 삶은 달걀을 안주 삼아 초면에도 맥주를 주고받으며 얘기 꽃을 피우고, 모두 아래윗집의 아줌마, 아저씨 같아 정겹기만 했던, 그래서 더욱 기대됐던 그 시절의 귀성열차다. 고향역에 다다를 때쯤이면 어깨를 툭 치며 “잘 살고 있지?” 하며 살갑게 등장하던 그리운 ‘얼굴’도 있었다. 십수년 넘게 외면해온 귀성열차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14일에는 입석과 잔여석을 예매한다니 서울역에 나가봐야겠다. 어릴 적 친구를 조우한다면 더 큰 기쁨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직장 문화/박찬구 논설위원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었다. 삼겹살을 씹으며 업무 지시를 받고, 술잔을 비우며 선배에게 일의 요령을 귀동냥했다. 자정 너머 마지막까지 남으면 ‘그놈 자세 좋다’, ‘쓸 만하다’라는 입소문이 돌았다. 2000년대에도 한동안 그런 회식 문화가 이어졌다. 회식과 야근은 잦았지만 휴가는 짧았다. 휴가를 신청할 때면 왠지 주눅이 들었다. 개인보다 조직, 나보다 회사의 논리가 먼저였다. 공직에 있는 친구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직장문화 바꾸기 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는 일과 가족, 여가 등이 조화를 이루도록 근로문화를 개선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기업은 회식과 야근을 없애거나 줄이고 휴가를 장려한다고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오는 것일까. 그래도 선후배가 함께 어울리며 부대끼던 회식 자리는 그리울 것 같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20대의 61.2%가 회사에 다니는 목적을 ‘돈벌이’라고 답했다. 50대의 43.0%는 ‘자아실현’을 우선으로 꼽았다. 직장 문화가 바뀐다고 해서 사람 냄새나 열정까지 사라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버스기사의 와이셔츠/서동철 논설위원

    퇴근길 버스에 오르면 운전기사의 옷차림에 먼저 눈이 간다. 두툼한 옷을 입었으면 안심하지만, 와이셔츠 바람이면 걱정이 앞선다. 한겨울에도 와이셔츠만 입은 운전기사가 모는 버스는 내부가 후끈 달아 있기 마련이다. 더운 바람이 최대한 강하게 나오도록 히터를 틀어놓는 경우가 많다. 정류장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던 손님들이니 처음에는 버스 안의 온기가 반갑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우나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린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체질 때문이겠지만, 다른 손님들도 겉옷을 벗기도 어려울 만큼 좁은 좌석에 끼어 앉아 편치 않은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적지않은 운전기사는 버스 안이 ‘찜통 모드’에 접어들어도 히터를 끄기보다 운전석 창문을 연다. 와이셔츠 바람에도 답답할 지경이라면 방한복으로 중무장한 손님들은 오죽할까. 더구나 서울과 경기도 신도시를 오가는 광역버스의 승객석 창문은 대부분 열리지 않는 구조다. 버스기사들에게 자신이 아니라 손님을 중심으로 차 안의 쾌적함을 유지해 달라고 하면 무리한 부탁일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세탁기/최광숙 논설위원

    어릴 적 세탁기 있는 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누군가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빨래를 할 수 있었다. 지금 같은 겨울철 차가운 물에 빨래를 할라치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찬물에 빨개진 손가락을 호호 불어가며 빨래를 했다. 그러니 그 이후 세탁기의 출연은 가히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중학교 시절 한 친구는 “시집가면 아버지가 세탁기를 꼭 사주기로 했다”고 자랑했던 기억도 있다. 시중에 나왔어도 고가이다 보니 세탁기를 귀한 혼수품으로 장만하던 시절이다. 그런 세탁기가 이젠 군에도 보급돼 사병들의 손을 덜어주고 있다. 최근 전역을 하루 앞둔 병장이 총기를 손질하라는 상관의 지시를 받고 총을 분해해 옷가지에 싸서 세탁기에 돌렸다가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얘기가 괜한 소리가 아님이 입증된 셈이다. 전역에 들뜬 그의 눈에는 군인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총이 장난감 총으로 보였나.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어슷썰기/문소영 논설위원

    음력 설날에 해먹을 요량이었던 떡국을 신년 초에 느닷없이 준비해야 했다. 구이용 가래떡을 또각또각 썰었다. 흔히 떡국 떡이나 대파, 오이, 생선 등은 어슷썰기를 한다. 어슷썰기는 음식 재료를 비스듬하게 써는 것이다. 어슷하게 썰면 재료가 더 많아 보이는 효과가 있고, 단면이 넓어져 양념이 잘 밴다고도 한다. 문제는 칼질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석봉 어머니가 깜깜한 밤에 썰었을 것만 같은 어슷썰기 한 떡은 어른스러운 반면, 동그랗게 썬 떡은 어린이용 떡처럼 보였다. 고심하고 있던 차에 안동과 충주 등에선 동그랗게 썰어서 떡국을 끓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어슷썰기는 동그랗게 썰던 떡에 멋부리기를 한 유행이 굳어진 것이고, ‘전통’은 동그란 떡이라는 것. 떡국 떡은 ‘태양’이나 엽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원형이라야 한다는 해석도 곁들였다. 방앗간에서 기원을 모른 채 어슷썰기를 해놓아 떡국이 통일됐다고 하소연도 했다. 어떤 전통이 진짜인지 헷갈리지만, 동그랗게 썰었다고 잘못은 아니라니 안심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세교(世敎)/정기홍 논설위원

    새해 첫날에 남자 조카들에게 “새해 인사 문자도 안 보내나”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여조카들의 인사 문자를 받은 터여서 교육 겸 잔소리였다. 한 녀석은 여태 기척도 없다. 바쁜 일이 있겠지라며 웃어넘겨 본다. 새해 인사 문자를 여럿 받았다. 더러 남다른 내용이 있었지만 ‘복 받고, 건강하고, 두루 만사형통하라’는 등의 일상적 문투다. 내가 보내는 새해 덕담 문자는 ‘맞춤형’으로 보내기로 했다. 퇴고하듯 들여다봤다. 지인과의 지난해 일들이 새록새록 와 닿았다. 한 지인의 전화가 왔다. 의례적 문자엔 답을 안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들었단다. 그나마 신경을 썼더니 짧은 문구에 품이 든 걸 알았나 보다. 우리 조상은 ‘세교’(世敎)라 하여 주위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세교 집안, 세교 친구가 그런 유이다. 세교가 도타운 집안 간엔 도장도 바꿔 가졌다니, 이웃 간의 교류를 꽤 중시했던 것 같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문자메시지로 한 해를 보내고 맞는 요즘이다. 나만의 새해 인사 문구를 써 보자. ‘온고지신’(溫故知新) 아닌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우리 동네/서동철 논설위원

    퇴근길 아파트 단지 앞에 태권도장 버스가 멈춰 섰다. 학원 승합차의 문에 옷이 끼여 사고를 당하는 어린이가 늘어나자 안전한 승하차를 법률로 의무화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였다. 버스에선 사범인 듯 태권도복 차림의 젊은이가 먼저 내렸고 초등학교 아이가 뒤따랐다. 두 사람은 대련하듯 마주 보면서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몸짓에서는 법규에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진정성이 읽혔다. 태권도의 기술은 물론 예절까지 제대로 가르치는 모습에 뜻밖의 작은 감동이 일었다. 우리 사회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아파트 단지인 우리 동네를 보면 여전히 정상적인 것이 많다. 눈 내린 아침이면 누군가 계단을 깨끗하게 쓸어놓는다. 현관에서 마주친 아이들은 처음 보는 어른에게도 머리를 숙여 명랑하게 인사한다. 이런 사회를 비정상이라고 한다면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비정상이라는 생각은 오히려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올해는 나와 생각이 다르면 비정상이라는 생각부터 바꿨으면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노트북과 종이책/박찬구 논설위원

    책거리 때는 우유와 카스테라가 빠지지 않았다. 선생님의 덕담은 따뜻했다. 시험 철엔 성적 좋은 친구의 공책을 베껴 가며 벼락공부를 하는 애들이 많았다. 답례는 씩 웃으며 어깨 한 번 툭 치는 것으로 족했다. 묘한 동지애가 오갔다. 쉬는 시간엔 연필 따먹기를 하곤 했다. 삐걱대는 책상 위에서 상대의 연필을 겨냥해 자기 연필을 손가락으로 튕겨 댔다. 연필이 바닥에 떨어지면 환성과 탄식이 엇갈렸다. 기억의 더께에 밴 성장기 소품들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스마트교육 실험학교를 2016년부터 운영하기로 했다. 디지털 교과서에 전자칠판, 태블릿 PC 같은 전자기기가 등장한다. 미국 워싱턴DC 주변 플린트힐 초등학교는 맥북에어에 무선 인터넷, 터치스크린식 칠판을 쓴다. 반면 이웃한 워싱턴 월도프 초등학교는 옛날식 칠판에 자작나무 책상을 고집한다. 두 명문 사립학교 출신 고등학생의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성적은 평균 600점 이상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외신은 전한다. 스마트한 충족감이 어울림과 나눔의 소통을 궁핍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2014 신춘문예-시·시조 당선작] 시조 당선 소감-구애영

    [2014 신춘문예-시·시조 당선작] 시조 당선 소감-구애영

    그날, 눈이 내렸습니다. 당선의 소식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연서였습니다. “어멈아, 산 사람은 묵어야 살지야, 우리!” 눈을 감으실 때까지 서숙미음을 드셨던 어머니! 당신의 똥 싼 기저귀를 안 보이려고 거식증으로 생을 마치신 친정어머니! 두 분의 어머니에게 이 기쁨의 밥을 올리렵니다. 지난여름 유라시아 문화포럼으로 연해주에서 발해의 시원(始原), 솔빈강을 바라보았습니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깊고 잔잔하게 펼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물줄기가 시조의 3장 6구 정제된 가락의 도저함으로 나를 달뜨게 했습니다. 걷고 걸어도 이 길은 늘 내게 처음 걷는 길처럼 설레고 가슴 벅찹니다. 서투르고 느린 저를 그 사유하는 시조의 길로 이끌어 주시고 지금까지 지도해 주신 이지엽 교수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명지전문대 문창과 교수님들, 시민대 하린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와 길’ 동인들, 급우들, 여러 문우님들 격려해 주시고 힘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저희 사랑하는 가족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야간 수업을 마치고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갑니다. 길섶에서 만난 바람과 별들, 비오리 가족들, 갈잎의 향기도 모두 저의 친절한 친구였지요. 부족한 글을 흰 눈밭에 새겨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서울신문사에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우리 시조의 품격에 자긍심을 가지고 더 겸허히 공부하여 좋은 작품 쓰겠습니다. ▲1947년 전남 목포 출생 ▲목포 정명여고 교육행정직 정년퇴임 ▲현재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재학 중
  • [길섶에서] 겨울잠/문소영 논설위원

    인간에게 왜 겨울잠이 없을까. 겨울에 안전한 동굴을 찾아 동면에 들어갔다가 봄에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나오면 될 것을. 왜 원시인들은 추위에 위험한 매머드 사냥을 하는 등으로 고단하게 살았을까 안타까웠다. 그런데 최근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들은 원래 겨울잠을 잤다는 주장이 나왔다. 개구리나 곤충, 박쥐와 다람쥐류, 반달가슴곰 등처럼 인간도 겨울잠을 잤는데, 이제는 유전자에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고 한다. 다만, 이 유전적 흔적은 아데노신 같은 물질이 투입되면 방아쇠가 당겨진 것과 같은 효과를 내 겨울잠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대학에서 겨울잠이 없는 쥐를 실험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꼬리뼈처럼 진화의 흔적으로 남아야 할 겨울잠이 최근 찾아온 것 같다. 동면한 반달가슴곰처럼 졸음이 쏟아진다. 혈압이 낮은 탓에 흐리고 눈 오는 날에는 더욱 그렇다. 진화가 덜 됐나? 아주 먼 미래에 생산력과 효율성이 좋아져 서너 달씩 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된다면 인간도 한두 달씩 겨울잠을 자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망상을 해봤다. 병원에 가 보는 것이 좋을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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