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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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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부레병/문소영 논설위원

    금붕어가 노환(老患)이다. 마트 어항에서 집 어항으로 옮겨온 지 3년째인데, 5개월 전부터 배영을 하면서 유유자적 하루해를 보낸다. ‘부레병’을 앓고 있다. 부레는 물고기가 내부 가스양을 조절해서 위아래로 헤엄치기 좋게 하는 기관인데, 부레병에 걸리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뒤집히게 된다. 흔히 오염된 물에 살면 걸린다는데 억울하다. 녹조가 조금이라도 끼면 여지없이 갈아주고 수돗물 대신 생수를 채워주기도 했는데 말이다. 집에서 금붕어를 키운 것은 7~8년 전 ‘찬물에서 금붕어의 활동 성향’이란 초등학교 과학실험을 마친 뒤에도 힘 좋게 펄떡거리는 금붕어를 아이가 싸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머리에 검은 점을 가진 그 금붕어 이름은 ‘블랙’이었고 그 뒤로 ‘화이트’, ‘골드’, ‘오렌지’, ‘탠저린’ 등으로 부르던 금붕어들을 키웠다. 블랙이 배영을 시작했을 때 인터넷을 찾아보니 비관적으로 설명해 놓았지만, 그 후 3개월을 너끈하게 살았다. 여기저기 비늘이 떨어져 나간 이 ‘무명씨’ 금붕어는 더 잘 버티고 있다. 어항 물관리에 더 심혈을 기울여 더 오래 살도록 돌봐줘야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아빠인가/서동철 논설위원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갑자기 왼쪽 엉덩이가 욱신거렸다. 넘어지거나, 엉덩방아를 세게 찧었을 때 나타나는 통증과 엇비슷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혹시 어디서 넘어졌었나? 세월호 참사 탓에 텅텅 빈 식당에서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가 반주 몇 잔으로 조용히 마무리지은 어젯밤이다. 넘어질 일도, 넘어진 것을 기억 못할 가능성도 없다. 그래도 음주에 수반된 전과(前科)가 없지 않은지라 괜히 켕겼다. 세월호 이야기가 지쳐갈 때쯤 선배의 농담도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학교에서 교사가 아이들과 사자성어 맞히기를 했다고 한다. ‘술만 마시면 고래고래 떠들고 노래 부르는 것’을 네 글자로 무엇이라고 햐느냐는 것이 문제였다. 마지막 글자가 ‘가’라는 힌트도 주었다. ‘고성방가’(高聲放歌)라고 제대로 답한 아이들이 많아 선생님은 흐뭇했다. 그런데 한 아이의 답이 걸작이었다. ‘아빠인가’였다. 술 마신 뒤 노래 부르는 버릇은 없지만, 시끄러운 선후배 및 친구와 어울리는 날이면 내 목청도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빠인가’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고 아주 장담은 못하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새끼/박홍환 논설위원

    제 새끼를 탈 없이 길러 내고픈 어미, 아비의 심정이야 짐승이고 사람이고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새끼가 사라지면 어미 종달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둥지를 오르락내리락 목젖이 찢어질 듯 울어대지 않는가. 안산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부모 또한 이렇게 절규한다. “사랑하는 내 새끼, 엄마 아빠는 아직도 너한테 줄 게 많은데, 미안해 사랑하는 내 새끼, 미안해.” 희생 학생 부모들이 그제 세월호 참사 현장을 다시 찾았다. 각자 “내 새끼를 살려내라”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이미 쉴 대로 쉬어 버린 목청으로 절규했다. 천금 같은 새끼들을 품에 묻은 그들에게 국가와 정부, 선사(船社)는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못했다. ‘내 새끼’였다면 선장과 선원들이 그대로 줄행랑쳤을까. 해경과 정부는 ‘내 새끼’였더라도 미적미적하며 구조와 수색에 인색했을까. 혹여라도 우리 역시 희생된 아이들이 ‘내 새끼’가 아니어서 안심했던 건 아닐까. 이제라도 마음을 고쳐먹자. 우리 주변의 아이들은 모두 ‘우리 새끼’라고. 우리 모두 어미, 아비로서 ‘우리 새끼’들을 탈 없이 안전하게 길러내자고.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또 다른 슬픔/정기홍 논설위원

    70대의 아파트 경비원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TV를 아예 꺼 놓는다고 했다. 그는 어린 맏아들을 바다에서 잃었다. 둘째아들과 딸이 세계 최고의 미국 기업에 다니지만 먼저 간 아들만 하지 않단다. 세월호가 노년의 그를 수십년 전으로 다시 불러세운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묘사한 유달영의 수필 ‘슬픔에 관하여’가 문득 다가온다. 작가는 그 아픔을 종교로 승화시키려 무던히 애를 쓴다. 이순신도 임진란 중에 막내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통곡했다”고 난중일기에 적고 있다. 자식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고사에서마저 눈이 먼다는 상명지통(喪明之痛)으로 표현할까 싶다. 벗의 죽음을 애달퍼 하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이나 아내와 남편을 잃은 고분지통(鼓盆之痛)과 붕성지통(崩城之痛)에 비할 바가 아닌 듯하다. 깊은 슬픔을 지우기란 수월치는 않다. 하지만 슬픈 기억을 잊는 데는 지난 영웅담 등이 긍정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사업할 때 600억원대 매출을 올린 적도 있어.” 경비아저씨의 성공담이 맏아들을 잃은 기억을 잠시나마 지웠을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소화불량/문소영 논설위원

    2주 전부터 심해졌지만, 4월 내내 먹고 체하고를 반복하고 있다. 평소 건전한 상식으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에 사는 한 동화작가는 지난 29일 오전 서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서 4차례나 분향하고, 노란 리본에 “잘 가라”는 인사를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는 “습관적으로 끼니가 되면 밥을 먹지만 체기가 있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어서 마음을 수습해야 할 텐데…” 하고 걱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이 잦아들기는커녕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것이 이번 참사의 고통스러운 특징이다. 그 역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모임에 참여할 수도 없어 최근에 시간 날 때마다 장자의 책 한 권을 세로쓰기로 베껴 쓰면서 마음을 다스렸다고 했다. 그는 “50 초반까지 살면서 온갖 불행을 내 탓이라며 수용해 왔는데 이번만은 슈퍼맨처럼 지구를 거꾸로 돌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할 것인가를 따지다 보니, 슬픈 중에 분노가 힘이 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과욕 내려놓기/구본영 논설실장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공직사회에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만난 한 노선배가 던진 한마디가 그럴싸하게 와 닿았다. 즉, “받은 뒤 잠이 안 오면 뇌물이고, 그렇지 않으면 선물이다”는 말이었다. 10여년 전 공직에서 은퇴한 그가 제시한, 선물과 뇌물을 구분하는 나름의 잣대였다. 그는 작은 선물로 알고 받았더라도 왠지 켕기면 필시 뇌물이라고 보고 꼭 돌려줘야 한다는 신조로 공직생활을 영위했다고 했다. 예컨대 고위급 공무원 시절 치른 자식 혼사 때 받은 축의금 중에서도 지나치게 많다 싶으면 반드시 돌려줬다는 것이다. ‘관(官)피아’란 신조어에서 보듯이 전·현직 관료들이 이익집단처럼 서로 챙기는 병폐가 부각되는 요즘이다. 하긴 늘 옷깃을 여미며 과욕을 경계해야 탈이 나지 않는 것은 어느 직종인들 마찬가지가 아닐까. 문득 언젠가 어느 문필가의 글에서 읽었던 역도선수의 예화가 생각난다. “역기가 너무 무겁다 싶으면 얼른 내려놓아야 몸을 크게 다치지 않고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요지의 글을 읽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새롭다. 구본영 논설실장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봄 가뭄/문소영 논설위원

    한반도의 봄 가뭄은 유명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기우제를 검색하면 세종 때 199건으로 가장 많고, 고종 186건, 숙종 177건, 영조 174건, 순조 128건 등 순으로 나온다. 조선의 논은 대개 천수답이었다. 관개시설도 변변찮았고 낮은 지대에서 높은 지대로 물을 끌어오는 수차도 없었으니 하늘만 바라봤다. ‘무식한 농부’는 그렇다 치고, 농본주의를 내세운 국가에서 왕과 신하가 수차제작과 같은 대책도 없이 기우제만 지낸 것이 의아하다. 벼농사가 잘못되면 한 해 내내 가족이 굶주리곤 했으니, 봄 가뭄이 닥치면 농민의 마음은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과 같았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모내기를 하면 이모작으로 수확이 많아지지만, 이 이앙법 대신 마른 논에 볍씨를 뿌리는 직파법을 선호했던 이유는 게으름이 아니라 봄 가뭄 탓이었다. 그래서 한반도의 봄비는 생명의 비이고, 기쁨의 비였다. 농부는 비가 오면 “나락이 떨어진다”며 반겼다. 연 이틀 비가 오고 있다. 파종한 씨앗들이 새싹을 올리지 못하는 지독한 가뭄을 끝내고, 풍요롭고 안심할 수 있는 시절로의 복귀를 예고하는 비였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눈물/문소영 논설위원

    ‘악어의 눈물’이 있다. 이집트 나일강의 악어는 홍수로 떠내려오는 사람을 잡아먹고 난 뒤 눈물을 흘린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햄릿’이나 ‘오셀로’ 등의 작품에 인용해 유명해졌고, 위선적인 행위를 일컫는 관용어가 됐다. 그러나 악어의 눈물은 눈물샘의 신경과 입의 신경이 같아서 악어가 먹이를 먹으면 저절로 눈물이 나와서 수분을 보충해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지난날 잘못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눈물을 자주 본 탓에 국민의 동정을 사려는 ‘악어의 눈물’에 손가락질을 많이 했다. 하지만 요즘엔 위선적이라는 비난 탓인지 참회의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보도하다가 JTBC의 앵커 손석희와 시사평론가 정관용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누군가는 ‘감성 눈물쇼’라고 비난했다. ‘질서 있게’ 죄 없는 300여명이 수장됐는데 어찌 울지 않을 것인가. 지금 울지 않으면 대체 언제 울고 치유할 것인가. 삭막한 ‘얼음공주’보다 눈물 흘리고 슬픔에 공감하는 기자나 TV 진행자에게 더 큰 신뢰를 보내고 싶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조문/박홍환 논설위원

    동년배의 부모상이나 장인·장모상이 빈번해졌다. 엊그제도 가깝게 지내던 사람의 장인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퇴근 후 부리나케 상가를 찾았다. 영정 앞에 헌화하고, 슬픔에 젖어 있는 상주에게 어렵사리 한마디 건넸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매번 그렇지만 조문은 괴롭다. 그 어떤 말로도 고인을 떠나 보낸 가족들을 위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상(好喪)도 말이 좋아 호상이지 세상에는 그 어떤 호상도 없다. 오죽하면 예부터 부모상을 당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여겨 천붕(天崩)이라 했고, 자식을 앞세우면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지는 상명(喪明) 또는 그 어떤 근심보다 참혹한 참척(慘慽)이라고 표현했을까. 경기도 안산시 올림픽체육관에 차려진 여객선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합동분향소에 조문 행렬이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조문객들로 분향소는 ‘눈물바다’라고 한다. 세상에 이런 비통한 조문이 또 있을까. 하기야 “미안하다”는 말 외에 그 많은 어린 고인들과 유족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잡초적 자율성/문소영 논설위원

    이른 봄엔 잡초라도 파란 싹을 올리면 기분이 좋다. 특히 시멘트 틈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은 경이롭다. 장미나 목련 등과 같이 정원에서 대접받고 자라지 못해 ‘이름 모를 잡초야’라고 노래하지만, 도시인들이 눈여겨보지 않고 변변치 않게 바라봐서 그렇지 다들 버젓하게 이름도 있다. 잘 알려진 민들레나 꽃다지, 질경이, 제비꽃 말고도 꽃말이, 쇠비름, 쇠뜨기, 큰개불알풀, 애기똥풀, 개망초, 개미자리 등도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이 3월 초부터 노란, 하얀, 보라, 파란 꽃을 피어 올리면 잡초라고 부르기 민망하고, 예뻐서 마음이 환해진다. 지난해 늦가을, 사는 지역의 공원 관리자들이 추운 겨울에 국화를 보호한다며 화단에 볏짚을 엮어 덮어놓았다. 3월에 그 덮개를 벗겨 냈지만, 4월 말에도 아무런 싹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식물과 흙, 환경의 관계를 잘못 이해해서 한참 생명이 넘쳐나야 할 화단이 텅 빈 것은 쓸쓸하다. 아무런 보호 없이 잡초는 겨울을 뚫고 자신의 꽃을 피운다. 잡초처럼 자율적·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마음이 시린 이 시기를 잘 견뎌내려고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이별/문소영 논설위원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정신적 장애가 있다는 연구가 있다. 값비싼 물건을 잘 잃어버리면서도, 일단 소유한 물건을 냉정하게 버리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해외 호텔에서 가져온 여행용 지도, 오려놓은 신문조각 등 깊이 애정을 쏟지 않은 물건들도 막상 버리려고 하면 왠지 아쉽고 조만간 필요할 것 같아서 쌓아둔다. 주변이 늘 어수선한 이유다. 쌓아둔 자료는 버리면 꼭 일주일 안에 필요하게 되는 징크스 탓에 더 꺼린다. 최근 정리정돈의 고민은 구두다. 신발을 깨끗이 2~3년 신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6개월 만에 헌 신발을 만드는 발에 톱 같은 것이 달린 사람도 있다. 발로 뛰어야 하는 취재기자라서 그렇다고 애써 변명을 하지만 평생 함부로 신발을 신어왔다. 6개월 만에 낡아 버린 구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신발장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더니 이제는 더 쌓을 데가 없다. 사치스러웠던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처럼 해외 브랜드의 값비싼 새 구두도 아닌 발 고린내가 물씬한 낡은 구두가 가득한 신발장이라니…. 여름도 다가오고 고약한 냄새 탓에 미련을 버리고 이별해야 할 텐데, 할 수 있을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세월호 식사권/진경호 논설위원

    늦은 밤 둘째 아이가 집에 돌아와서는 대뜸 명함만 한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응? 뭐니? 두 시간째 TV 속 진도 앞바다에 박아 놨던 눈을 돌려받았다. ‘뷔페식사권-세월호.’ 아이가 넉 달 전 친구 세 명과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며 탔던 배가 세월호였던 것이다. “그래? 네가 탔던 배가 바로 저 세월호였어?” 신산한 밤을 넘기고는 소파 옆 탁자에 놔뒀던 식사권을 다시 집어들었다. 밤엔 미처 보지 못했던 아이 글씨가 여백에 적혀 있었다. ‘명복을 빕니다.’ 지난밤 말끝을 흐리던 아이가 생각났다. “배 내부가 복잡해요. 배가 뒤집혔으면 아마… 몰라.” 그랬다. 아이는 기도를 했던 것이다. 내게 세월호 식사권을 불쑥 내미는 자기 방식으로…. 배 안의 동생 또래들이 기적을 만들기엔 힘이 부칠 거란 생각에 명복을 빌면서도 그래도 한 번 기적을 만들어 보라고, 제발 좀 어른들이 어떻게든 해보라고, 아빠에게 세월호의 흔적을 건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주술로 기도한 것이다. 먹먹한 날들이다. 진도 앞바다는 어찌 저리도 울렁대기만 하는가.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발산역 할아버지(2)/정기홍 논설위원

    10여일 전에 쓴 ‘발산역 할아버지’ 글의 당사자인 할아버지에게서 작은 변화가 생겼다. 역사의 구석 계단에 홀로 앉은 할아버지 앞에 최근 며칠간 천원권과 동전이 하나둘 놓이고 있다. 이전엔 못 보던 광경이다. 지나는 이들이 글의 당사자가 할아버지임을 알게 됐을까. 퇴근길에 짐을 챙기는 할아버지에게 관심을 보였건만 본체만체 묵묵부답이다. “귀가 어두우신가”해서 말을 더 붙이지는 못했다. 혹여 굳게 닫은 할아버지의 속마음마저 흔들어 놓을까 조심스러웠다. 할아버지의 글에 “마음 아프게 읽었다”는 독자들의 메일이 많았고, 기부 사이트를 소개한 이도 있었다. 지인들로부턴 “글이 너무 감성팔이를 했다”느니 “용돈을 듬뿍 드렸어야지” 등의 타박도 들었다. “세상이 만만하게 보일 아침나절 말고, 저녁쯤에 다시 읽어 보라”는 말로 떠넘겼다. 남을 돕는 데 ‘있는 사람’이 더 인색하다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 앞에 놓인 푼돈이 역사를 오가는 인근 전문대 학생들의 작은 관심이라 짐작한다. 이 ‘작은 관심’이 할아버지의 말문을 열고 아랫목 따듯한 보금자리도 찾아야 하겠다. 동전의 힘을 기대해 본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자동차 15년 타기/서동철 논설위원

    자동차를 사서 15년 동안 달린 거리가 34만Km쯤 된 것 같다. 주행거리를 합산하는 적산거리계는 27만Km에 접어들었을 때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지금은 20만Km를 가리키고 있으니 계산이 나온다. 달릴수록 회춘하는 차라고 농담하지만, 이 상태로 중고시장에 내놓으면 주행거리를 조작한 사기꾼으로 몰려도 할 말이 없다. 친구들이 측은한 눈길로 차를 바라보면 “겉은 낡았어도 속은 멀쩡하다”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곤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엔진과열로 냉각수가 끓어 넘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동네 정비공장 아저씨는 “이 차에 더 이상 돈을 들이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완곡했지만 분명한 ‘사망선고’였다. 그래도 이것저것 해보다 엔진오일이 조금 부족한 것을 발견했다. 무슨 관계가 있겠나 싶었지만, 버리는 셈치고 오일을 사다 부었다. 꺼져가는 차의 목숨이 안타까웠다기보다는 두 달 전 갈아 끼운 새 타이어가 그냥 버리기엔 아까웠을 게다. 신통하게도 차는 다시 살아났다. 거창하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누가 들으면 웃겠지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간절한 다그침/서동철 논설위원

    퇴직한 선배가 오랜만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열어 보니 뜻밖에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여객선에서 아직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문이 담겨 있었다. 설명은 없었지만, 절대자의 마음을 움직여 배에 갇힌 사람들이 살아올 수 있도록 작은 염원이라도 모으고 싶다는 소망이 읽혀졌다. 기도문을 받아볼 후배가 예수그리스도보다는 석가모니 부처와 더 친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배가 아닌가. 그럴수록 간절한 바람을 전해 기적을 이끌어 내려는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기도문은 관념적인 것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주님께서 풍랑을 잠재워 주시고, 바다의 수온이 따뜻하게 유지되게 하시어… 모든 구조대원의 눈을 밝히고 지혜 가운데 충만케 하시라”는 대목은 지금 우리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희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다 하신 주께서 신실하게 일하실 줄 믿으며 기도한다”는 마지막 구절은 감동적이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절대자의 의무’를 다하라는 ‘간절한 다그침’이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나무관세음보살/서동철 논설위원

    과거 먼바다를 오가는 뱃사람들은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중국은 물론 제주를 오가는 항해도 목숨을 내놓아야 할만큼 위험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동안 가장 중요한 예배 대상은 관세음보살이었다. 법화경의 ‘관세음보살 보문품’은 ‘만일 큰 물속에 떠내려가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닿게 된다’고 가르쳤다. 또 ‘백천만억 중생이 큰 바다에 들어갔을 때, 가령 폭풍이 불어 배가 아귀의 나라에 떠내려가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다면 모두 재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약사여래본원경’에도 구원의 약속이 보인다. 약사여래에 앞서 서원한 선명칭길상왕여래는 ‘중생이 강과 바다에서 모진 바람을 만나 배가 뒤집히려하고… 공포에 쌓였을지라도, 능히 진실한 마음으로 나의 이름을 부른다면 모두 편안한 곳에 이른다’고 했다.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여객선에 많은 사람이 갇혀 있다. 꼭 불교의 관세음보살이 아니더라도 절대적 권능을 가진 누군가를 불러보고 싶은 날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지독한 감기/손성진 수석논설위원

    감기약도 귀하던 어린 시절에 감기에 걸리면 어른들은 찬바람을 쐬지 말라고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뜨거운 설탕물을 주셨다. 그렇게 해서 땀을 흘리고 나면 감기가 쉬 낫기도 했다. 이처럼 조상들은 열이 나는 ‘고뿔’에 걸리면 열을 더 올려 땀을 내는 발한(發汗) 요법을 썼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찬 음료를 먹고 찬물에 목욕하는 정반대의 요법을 쓴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를 병으로 알아주지도 않는 사람들이 가장 야속하게 느껴진다.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면 낫는 게 감기라고 말하지만 사실 감기는 무서운 병이다. 1918년부터 5년 동안 전 세계에 번진 스페인 독감에 감염된 사람은 6억명에 이르렀고 2차 세계대전 사망자보다 많은 2129만명이 숨졌다고 한다. 몸살을 동반한 지독한 감기에서 2주 만에야 벗어났다. 중병에서 완쾌된 사람이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말하는 심정을 알 것 같다. 감기가 큰 병은 아닐지라도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것 같은 해방감은 어떤 기분과도 비교할 수 없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교훈이 새삼 다가온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꽃 축제/박홍환 논설위원

    사방 천지가 꽃이다. 겨우내 회색 살풍경에 신물난 눈은 신나게 오색 꽃을 좇는다. ‘화란춘성(花爛春盛)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山川景槪) 구경가세’ 옛 선조들의 권함이 없더라도 발길은 절로 온갖 꽃이 흐드러진 봄날 경치를 향한다. 산 정상에 거대한 진달래 군락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어디쯤의 그리 높지 않은 산에 올랐다. ‘진달래 축제’를 앞두고 있어선지 꽃산이 아니라 사람 산이다. 황망했다. 사람 숲 건너편 진달래향에 황홀할 틈도 없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다가오면서 전국 각지의 꽃축제가 그야말로 성황이다. 5월말까지 열리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봄꽃축제만 30여개에 이른다. 소규모 꽃축제까지 열거하면 그 갑절은 될 듯싶다.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을지 끔찍하다. “산천경개 구경가자”는 유산가(遊山歌)는 옛사람들의 풍류일 뿐일까. 그런데 정상에선 볼 수 없었던 진달래가 내려와 다시보니 산 전체를 연분홍색으로 물들여 놓았다. 연간 7조원대를 넘어선 아웃도어 열풍 속 꽃축제 감상법을 이제야 알았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황사 마스크 단상/박찬구 논설위원

    봄은 황사로 온다. 아지랑이나 진달래는 반나절이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 박남준의 맑은 한가(閑暇)와는 멀어도 한참 멀다. 계절을 보내고 또 맞는 설렘의 갈피를 황사가 보란 듯이 헤집는다. 며칠 전 약국에서 황사 마스크를 샀다. 안경 김서림을 막는다기에 혹했다. 사무실 여기저기 흩어진 마스크가 이미 3개나 되는 데도 말이다. 보온 겸용에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마크를 새긴 마스크까지. 그런데 아뿔싸, 지난 주말 ‘황사마스크 주의보’라는 기사가 떴다. 황사 주의보가 아니라 마스크 주의보란다. 3개 중 1개가 불량이라니…. 듣고 보는 것이 이데올로기였던 적이 있다.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거스르면 치도곤을 당하던 때였다. ‘시·대·변·명.’ 막고 싶어도 막지 못하는 황사의 도래에 의지와 신경이 움찔한다. 최소한의 보호 본능마저 불량 마스크의 위세에 주저앉는다. 일상의 체념에 인이 박인, 자디 잔 염량이라니. 여린 마음에 도리 없이 황사에 묻는다. ‘황사야, 내 마스크는 어떠냐, 나는 안전하냐.’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예수의 아내/문소영 논설위원

    기독교인에게 크게 욕 먹을 생각이지만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돼 태어났다는 것은 신화가 아닐까 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이유는 그런 신격화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땅에서 이루려는 의지와 노력, 실천력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의 아들 예수’보다 ‘인간의 아들 예수’가 가난한 사람을 더 많이 천국으로 인도할 것만 같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해 상처에 손을 넣어본 도마처럼 믿음이 부족하고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신학계에서 2012년 공개된 이래 진위를 두고 논란이 됐던 콥트어로 작성된 파피루스 파편이 기원 전후에 쓰인 진품으로 확인돼 화제다. 문서에는 예수가 ‘나의 아내’를 언급하고, “그녀는 제자가 될 수 있을 것, 마리아는 그럴 만 하다”는 놀라운 내용이 들어 있다. ‘인간적이고 공정한 예수’다. 신학자들은 ‘나의 아내’란 발언이 예수가 결혼했다는 흔적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상관없다. 다만 예수가 여제자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사제는 남성’라는 기독교의 오래된 남성중심적인 차별이 이참에 사라지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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