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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학력 표기/진경호 논설위원

    동료 기자의 학력, 정확하게는 출신 대학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에 대한 관심 부족 때문이랄 수도 있겠으나 그가 발이 빠른 기자인지, 손이 빠른 기자인지, 아니면 머리가 빠르거나 이도저도 아닌 부류인지 가르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걸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하다. 출신 대학을 모르는 건 50년 넘게 살아 보니 그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더라는 경험칙 때문이다. 한 중견 언론인 모임이 내는 잡지를 뒤적이다 눈길이 걸려 넘어졌다. 글쓴이의 얼굴 사진과 이름 아래 ‘○○대 ○○과 졸업’이라는 학력 표기가 생뚱맞게 적혀 있었다. 뒤로 넘겨 보니 죄다 똑 같았다. 그래도 우리 사회의 양식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잡지가 이렇다니…. 대체 그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왜 알려야 하며 왜 알아야 하는지, 알면 또 어쩌라는 건지, 그가 쓴 글과 그의 출신 대학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이젠 우리 사회도 학력은 개인 신상정보로 간주해 보호하는 수준쯤은 돼야 하지 않는지, 입만 열면 학력 철폐와 학벌 타파를 외치면서 언론 스스로 이렇게 이름 밑에 출신 학교를 매달아도 되는 건지, 무심한 관행은 어찌 이리도 끝을 모르는지…. 개탄이 꼬리를 문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겨울 독서/문소영 논설위원

    독서의 계절을 가을이라고 한다. 가을에는 단풍(丹楓)이 더 붉게 더 노랗게 익어 가는데 놀고 싶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어떻게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싶다. 또 독서의 계절로 가을을 지목한 전통을 중세에서 찾기에도 애매하다. 국가 경제가 농업에 달려 있어 1년 먹을 식량을 갈무리하는 수확에 바쁠 시기에 어떻게 책을 읽느냐 말이다. 귀족이나 양반이라면 몰라도. 따라서 평범한 이들의 독서의 계절은 가을보다 겨울이 아닐까 싶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고사성어를 봐도 가을 이야기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꽁무니에서 신비로운 불을 밝히는 반딧불이는 6월에 나타나는 곤충이고, 눈은 겨울의 산물이 아닌가. 물론 등화가친지절(燈火可親之節)이 가을이고, 등불 아래서 책을 읽는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밖은 춥고 집 안은 따뜻해 꼼짝하기 싫은 겨울이야말로 나 홀로 숨어 책 읽기에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주말 소설가 박완서의 수필 ‘호미’ 개정판을 읽었다. 봄날 뚝뚝 떨어지는 목련꽃이 보기 싫어 베어낸 둥치에서 아무리 훑어 내도 새잎을 내더라는 글을 읽으니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도 그립고, 아직 오지 않은 봄도 미치도록 그립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대도무문(大道無門)/서동철 논설위원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하나는 오디오광(狂)이다. 걸핏하면 “어디서 좋은 기계가 나왔는데 있는 것과 바꿔야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럴 때마다 “음향을 듣지 말고 음악을 들으라”고 했지만 당연히 마이동풍이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소리의 경지가 열리는 즐거움을 모르니 그러는 것”이라더니, 언제부턴가 “좋은 소리로 들으려고 노력하는 게 음악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며 제법 그럴듯하게 자신을 정당화한다. 주변에 이런저런 전문가가 늘어난다. 음향기기 전문가가 비교적 오래전 뛰어든 전문가라면 요즘엔 와인 전문가, 중국차 전문가, 커피 전문가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붙잡히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지 못해 안달이다. “어, 그래?” 하고 장단은 맞춰 주지만, 그럴수록 “이건 내 취미는 아니네”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엊그제 만난 오디오 전문가는 어느샌가 진짜 음악 전문가로 탈바꿈해 있었다. 나는 “소리가 아니라 본질을 들으라”는 둥 일련의 망발을 ‘전문 취소’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와인, 중국차, 커피 전문가들에게도 존경심을 표시할 날이 곧 올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상가(喪家) 단상/정기홍 논설위원

    50대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여성분의 상가(喪家)를 찾았다. 생전에 엄청 밝게 살았던 분이다. 늘 얼굴엔 함박꽃이 피었고 좌중에서는 활달했다. 고인을 앗아간 병은 이름도 생소한 부신암이다. 부신은 신장 위쪽에 있고, 아직 희귀암으로 분류된다. 무정한 종양의 공격에 척추를 내주고 말았다. 생활과 주변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다양화하면서 이전에 듣도 보도 못한 불치병 환자가 많아졌다. 나중엔 이들도 치료가 쉬운 ‘친숙한 병’이 되겠지만…. 웃는 것은 심신을 윤활하고, 생명 연장줄로도 대접받는다. 삶의 가운데 우울증이 자리한 요즘엔 뻑뻑함을 푸는 단방약 정도로 모두가 치켜세운다. 수치화한 웃음은 건강학에서 필수과에도 속한다. 그래서 천진하게 웃어야 젊게 산다고 한다. 젊다는 건 병에도 강하다. ‘일소일소’(一笑一少)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문상을 하던 지방분이 “서울의 공기가 많이 탁하다”고 했다. 뜬금없다는 듯 들었지만 생활 미세먼지가 많기는 많다. 이곳 사람만 인지하지 못하고 지낼 뿐이다. 크든 작든 난()한 게 많은 지금이고 난치(難治)의 시절이다. 고인이 병원이 아닌 자연 치유력에 몸을 맡겼으면 병의 차도가 어땠을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버스 스트레스 탈출법/서동철 논설위원

    예전에는 승용차를 몰고 출퇴근했지만 요즘에는 버스를 탄다. 언제부턴가 아침부터 한 시간 남짓 운전을 하고 나면 하루가 피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스를 타니 출근 시간 내내 자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잠깐 조는 것만으로 머리가 맑아졌다. 운전하고 출퇴근할 때는 광역버스며 시내버스가 일종의 ‘흉기’로 보였다. 차로 서너 개쯤 넘나드는 것은 예사고, 웬만한 신호는 지키지도 않는다. 멀쩡히 가는 것 같아도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니 이른바 방어 운전이란 버스를 조심하라고 나온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니 난폭한 버스를 만날 때마다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버스를 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난폭 운전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교통환경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이라도 먼저 가려 곡예 운전을 하는 버스도 많지만 이해심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엔 휴일에 운전을 할 때도 웬만하면 버스에 양보한다. 운전대를 잡으면 보행자를 탓하고, 길을 걸으면 운전자를 탓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지만 저 버스에 내가 탔겠거니 생각하면 운전 스트레스도 덜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만약에 말입니다”/정기홍 논설위원

    최근에 끄적여 놓고 팽개쳤던 메모 글들을 찾아 읽었다. 그중 눈에 띈 주제가 ‘만약에’와 ‘말입니다’다. ‘만약에’의 글은 스쳤던 개인 생각을 모아 썼고, ‘말입니다’는 남의 글을 옮겨 적어 놓은 것이다. 둘 다 은연중에 자주 하는 말로 입에도 붙어 있다. 사전의 뜻으로 ‘만약(에)’은 가정과 경우의 수가 전제로 깔려 있다. ‘말입니다’는 군대 은어다. 각을 세우는 군대에서 끝말에 ‘요’를 못 쓰게 하고 ‘다’와 ‘까’로 통일하니 파생한 문구다. 주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써 예의를 갖춘다는 의미가 담겼다. 문법에는 맞지 않은 어구다. ‘말입니다’는 시집 서문에서 뽑아서인지 글맛을 당긴다. ‘큰 길 말고 말입니다. 뒤로 가면 아무렇게 난 한적한 오솔길이 있다 말입니다. 그 작은 길에 큰 소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 딱 붙어 나는 작은 민들레가 있다 말입니다.’ 글쓴이의 의도처럼 호젓한 길에 홀로 자리 잡은 민들레를 귀하게 만든 게 이어진 ‘말입니다’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둘은 말로는 제값을 못 받는 것 같다. 말에 전제가 있으면 부정 이미지가 끼고, 말투에 덧대면 군더더기가 돼 듣기에 거북하다. 가시지 않은 글맛 뒷끝에 중얼거린다. “만약에 말입니다.” 글맛과 말맛은 다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주차난 단상/구본영 논설고문

    이른 아침 대학 입시를 치르는 아들을 고사장으로 데려다주고 출근하려다 낭패를 당할 뻔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잘못 주차한 다른 차 때문에 빠져나오느라 진땀을 흘리며 시간을 허비하면서다. 이웃을 탓하기에 앞서 주차난을 감안해 전날 밤에 나오기 좋은 곳에 세워 둘 걸 하고 자책했다. 사실 며칠 전 의정부 화재 사고 때도 주차난이 인명 피해를 키운 게 아닌가. 아파트 입구 길 좌우 편에 불법 주차하고 있던 차량을 밀어내느라 소방차들의 진입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불법 주정차와 좁은 진입로가 조그만 화재를 대형 참사로 번지게 했을 수도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만성적인 주차난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될 게다. 학교 운동장이나 근린 공원 지하에 공영 주차장을 짓는 것도 좋은 대안일 듯싶다. 나아가 차를 많이 팔려고 하는 자동차 메이커들의 입장만 고려할 게 아니라 국민 생명과 안전 제일의 관점에서 차고지증명제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다. 무슨 일이든 사고 후 수습보다는 예방하는 게 최선이란 차원에서다. 문득 ‘바람이 잔잔할 때 돛을 고쳐야 한다’는 경구가 생각났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우동학교/서동철 논설위원

    주말, 일본 시코쿠 지방 다카마쓰시(市)의 재미있는 우동집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자기가 먹을 우동을 직접 반죽하고 썰어 보는 체험을 하는 이 집은 ‘우동학교’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다. 가끔 칼국수를 만들어 먹던 기억이 있는지라 마음대로 반죽을 했더니 70세는 넘어 보이는 ‘교수님’이 대뜸 ‘빵점’이란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이우환 미술관이 있는 세토내해(內海)의 나오시마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때는 우동 만드는 법을 제대로 배워 우동집을 차리면 어떨까 한다고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다. 그러니 관광객을 상대로 재미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동학교 방문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실습이 시작되자마자 ‘소질 없음’ 판정을 받았으니 우동을 우습게 알아도 너무 우습게 알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SNS에 우동 만드는 사진을 올리니 다들 앞치마에 칼을 잡을 모습이 어울린다고 덕담을 한다. 와중에 한 선배가 진지하게 말을 건네 왔다. “퇴직이 이제 얼마 안 남았지?” 하며…. 여행이 아니라 진짜로 우동을 배우러 일본에 간 줄 알고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술/문소영 논설위원

    삐쩍 마른 몸으로 농촌에서 날품팔이하던 서른 살의 총각 ‘아Q’가 일감이 똑 떨어져 생계를 걱정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자오 나리 집에서 일하는 청상과부를 희롱한 탓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술이 ‘웬수’다. 어느 날 저녁 술을 마신 뒤 아Q는 길에서 마주친 젊은 비구니를 골려 주려고 폭언과 함께 비구니의 매끈매끈한 볼을 손가락으로 꼬집었다. 그런데 아뿔싸! 아Q는 그 촉감을 잊지 못해 여자 생각을 떨쳐 내지 못했고 청상과부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루쉰은 단편소설 ‘아Q정전’에서 아Q라는 인물을 통해 신해혁명 전후 1910년대 중국의 봉건적 사고와, 모욕을 받아도 저항하지 않고 자만하는 ‘정신 승리법’을 비판했다. 그런 거시적인 안목으로 읽기보다 술을 마신 뒤 아Q가 알딸딸한 취기에 저지르는 소란과 바보짓에 혀를 끌끌 찼다. 가수 바비킴이 기내 난동으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은 게 지난 주말의 화제였다. 술에 취해 여자 승무원의 팔과 허리를 잡는 등 성희롱도 했단다. 한국은 술김에 일어난 성추행·성폭행, 일반폭행, 폭언 등에 너그러웠는데 그런 시절은 사라지고 있다. 술을 끊어야지!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매듭/구본영 논설고문

    지난 연말부터 엽기적 사건이 속출하고 있다. ‘땅콩 회항’ 사건을 비롯해 아파트 경비원 분신 사건과 백화점 주차장에서 모녀 고객이 주차원을 무릎 꿇게 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사건의 경위는 더 규명해 봐야겠지만, 우리 사회 ‘갑’(甲)들의 감정조절 실패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로 인해 이른바 감정 노동자인 피해자들도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게 돼 결국 갑과 을 모두에게 불행한 사태다. 전문가의 진단처럼 극심한 스트레스와 경제·사회적 불공정성이 21세기 한국 사회를 울분, 혈기의 분출이 가득한 거대 ‘울혈(鬱血) 사회’로 만들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정초에 읽은 한 심리학자가 쓴 글이 그럴싸했다. 야구나 골프 경기가 관중뿐만 아니라 선수 본인에게도 재미있는 건 잘했든 잘못했든 한 이닝이나 홀을 끝내고 늘 새로운 기분으로 다른 이닝과 홀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 비유에서 ‘울혈 사회’를 완치할 사회적 해법은 아닐지라도 개인의 정서적 치유법은 될 법한 단서를 찾았다. 안 좋은 기억들은 훌훌 털어내 묵은 해를 매듭짓고 새해를 시작하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대나무가 매듭을 지으면서 성장하듯이 말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행운의 동전/정기홍 논설위원

    서울 청계천의 동전 던지는 곳에서 지난 한 해 건져 낸 동전이 8000만원이라고 한다. 행운을 빌며 던져 본 동전들이다. 평소 지나며 무심했는데 액수를 접하니 적이 놀랍다. 복원이 완료된 2005년부터 모인 총액은 2억 3000만원에 이르고, 입소문을 타면서 투척하는 돈은 늘고 있다. 동전의 국적도 50~60개국이나 되는 모양이다. 일본 동전이 제일 많았는데 최근에 중국 돈에 1위 자리를 내놓았다. 특이한 것은 태국 돈이다.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대개 여행에서 남겨 온 동전일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트레비분수에 동전을 던져 본 적이 있다. 여행 가이드의 말은 엄숙하고 장황했다. “분수대를 등지고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로….”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첫 동전과 두 번째, 세 번째 동전의 의미는…”이라는 설명에 귀가 쫑긋해진다. 첫 번째 동전이 로마를 다시 방문한다는 것인데, 다음은 사랑과 이별의 동전이라 세 번을 던져야 찜찜하지 않다. 가벼운 재밋거리이고 지나 보면 추억이 된다. 청계천 동전엔 얘깃거리가 없다. 소원을 빌고 이웃 돕기에 쓰인다는 것뿐이다. 트레비분수 동전 던지기가 괜히 샘난다. 개천변 빨래하던 이야기인들 어떤가 싶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겨울 냉면/서동철 논설위원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한 친구에게 냉면이 어떠냐고 했더니 좋단다. 얼어 죽을 지경인데 무슨 냉면이냐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이다. 그동안 먹는 재미를 좀 가르쳐 놨더니 ‘슬슬 사람이 되어 가는 군’ 하는 생각에 흐뭇했다. 사실 냉면은 이렇게 몹시 추운 계절이 아니면 만들어 먹을 수 없는 겨울 음식이었다. 여름 같으면 줄을 서도 길게 서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한겨울에 손님이 그렇게 있겠느냐는 생각에 느지막이 도착했다. 그런데 냉면집에 들어서니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냉면 열풍이 불었다더니 젊은 사람도 많이 보였다. 당연히 삶은 돼지고기와 소주를 먼저 시켰다. 기름기를 적당히 뺀 제육과 시원한 냉면김치에 소주는 궁합이 잘 맞는다. 냉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도 이 맛에 따라나서곤 하는 동료도 있다. 소주 몇 잔에 군불이 지펴지듯 식었던 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진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친구와의 정담(情談)도 한겨울 냉면집 공기를 훈훈하게 한다. 냉면 그릇 바닥이 보이도록 차가운 육수를 모두 비우고 일어섰다. 앞서 냉면집을 나서던 이가 “어, 날씨가 더 추워졌네” 한다. 허허, 이 사람아 추워지긴…. 그게 겨울 냉면 맛이라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담배 만상/정기홍 논설위원

    연초에 훌쩍 오른 담뱃값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다양하다.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까치담배’로 불리는 개비담배가 어느새 가게에 깔렸다. 한 개비가 무려 300원짜리다. 요즘 세상에 누가 사겠나 싶지만 가게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잊었던 추억거리가 귀환한 듯해 달리 반갑기는 하다. 꽁초를 찾는 빈곤층도 있단다. 담뱃값 인상이 그늘진 곳을 들춰내 기분은 씁쓸하다. 곰방대에 눌러 피우던 봉지담배 시절을 생각하는 게 나은 게 아닌가 한다. 연말에 담배를 듬뿍 사 놓은 골초들의 발품 판 무용담도 들린다. 출퇴근 때마다 두어 갑씩 사 재었다는 이야기다. 노력이 가상하다. 담배도 오래되면 맛이 떨어진다는데 골초들의 입맛을 맞춰 낼까 싶지만…. 반면 전자담배를 입에 문 군상의 금연 결기는 올해만은 ‘작심삼일’이 아닌 듯하다. 끊을까 말까 머뭇거리다가 담배를 챙겨 놓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하루 물림이 열흘 간다’는 속담이 딱 어울려 보인다. 더 측은해 보이는 건 딴 데 있다.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하루에 몇 번을 고층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 직장인이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가수 김추자)’라던 끽연가의 호시절이 절로 생각날 만도 하겠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님아… ’의 공포/진경호 논설위원

    89세 소녀 감성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로맨티스트 조병만 할아버지의 곰살맞은 사랑과 이별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불러낸 관객이 마침내 지난 주말 42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봄이면 들꽃을 따다 할머니 머리에 꽂아 주고, 여름이면 개울에 나가 물장구를 치고, 깊은 가을엔 쓸어 모으던 낙엽을 냅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에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이면 쌓인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는 서로 제 눈사람이 잘났다며 티격태격하고…. 가슴 떨리는 사랑의 감정을 빚어내는 호르몬 옥시토신은 길어야 2년 남짓 나오는 게 고작이라는데 7년도 아니고 76년을 얼굴 맞대고 살아온 부부로서, 대체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싶건만 아무려나 삶은 무엇이고, 사랑은 또 무엇인지를 묻고 찾는 행렬은 당분간 문 꼬리를 놓지 않을 모양이다. 불길한 예감은 절대 비켜 가는 법이 없다던가. 도무지 조병만 할아버지를 흉내낼 재간이 없는 터, 애써 영화를 외면했건만 기어코 오늘 아침 아내의 한마디가 뒤통수에 꽂혔다. “지금껏 당신은 화장실 앞에서 노래 불러 준 적 있어? 있냐고?”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늙는다는 것/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우연히 TV에 방영된 1969년 작 영화 ‘시실리안’을 통해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프랑스 영화배우 알랭 들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이가 궁금해 찾아보니 1935년생, 올해 만 80세다. 서양의 원조 꽃미남 배우도 나이를 피할 수 없으니 늙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한가 보다. 학창 시절에 ‘해바라기’를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던 육감적인 외모의 소피아 로렌도 이젠 81세의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됐다. 여배우 중에는 젊었을 때의 환상을 깨지 않으려고 나이가 들어서는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깜찍한 외모를 떠올리며 올리비아 허시의 현재 모습을 보면 좀 충격적이긴 하다. 그래도 로렌이나 허시는 꾸준히 영화에 출연하며 늙어 가는 모습을 감추지 않고 팬들에게 보여 주었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본연의 욕망이다. 과학자들은 노화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냈다지만 더 진전을 보지는 못하고 있다. 누구나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세상이 오면 그 자체가 재앙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연의 섭리는 거스를 수 없으니 순응해 살아야 한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과욕/서동철 논설위원

    TV 채널을 돌리다가 진천 보탑사를 다룬 프로그램이 스쳐 지나갔다. 1996년 창건된 보탑사는 불사(佛事)를 마무리한 것이 2003년이라니 역사랄 것도 없는 새 절이다. 하지만 새로운 큰법당의 유형을 만든 삼층목탑을 비롯해 과거의 재현에 머물지 않은 됨됨이가 인상적이다. 언젠가 찾은 보탑사에서 기억에 남는 전각의 하나는 와불(臥佛)이 있는 적조전(寂照殿)이었다. 부처가 열반한 쿠시나가라의 풍경을 벽화로 그려 놓아 사실성을 강조했다. 언제부터인가 좌탈입망(坐脫立亡)이라는 표현을 가끔 대한다. 수행이 지극한 경지에 이른 고승이 앉은 상태로 입적하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런데 예부터 열반하는 부처의 모습은 보탑사처럼 누워 있는 상태로 묘사하고 있으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부처가 오히려 경계했다는 좌탈입망은 누구의 가르침일까. 깨달은 척하려는 자의 과욕이거나, 스승의 명예를 높이려는 자의 무리수일 것이다. 깨달음 없는 자가 억지로 앉은 채 세상을 뜨는 것은 불교에서도 그저 좌사(坐死)라고 한다.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지만 새해 벽두 지나친 욕심을 버리라는 가르침은 고마운 일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개시(開市)/정기홍 논설위원

    새해 첫날 출근길에 지하철 상가에서 들린 큼지막한 목소리에 눈길을 돌렸다. “올해 첫 개십니다. 고맙습니다. 대박 나십시오.” 가방가게 주인은 30대 부부 손님에게 가방을 건네며 “나도 이 자리에서 대박 나겠습니다”라며 배웅했다. 이른 시간대의 첫 손님이니 개시는 그에게 다분히 남달랐을 법하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첫 손님 징크스’를 부적과 같이 여길 정도로 중시한다지 않는가. 개시하는 모습을 처음 본, 흔치 않은 경험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잠시 후에 색다른 장면이 기다렸다. 지하철 승강장을 한동안 거닐던 비둘기 한 마리가 지하철 문이 열리자 기웃기웃하더니 몸에 밴 듯이 슬며시 통로를 비켜 준다. “요녀석 봐라. 알 건 다 아네.” 짐짓 비둘기가 지하철을 타는 둘도 없는 경험을 하지 싶었는데 비둘기의 행동은 거기까지였다. 미물의 깊은 속내라고 생각을 돌려놓고 보니 마음이 포근해진다. 새해 첫날에 의미 없는 일이 있을까만 고개를 드니 주위가 퍽 활기차다. 자전거 하이킹을 가는 중년들, 손을 꼭 잡은 노년의 부부, 조잘대는 아이들…. 신년 벽두의 모습과 단상들이다. 연초에 좋은 일을 많이 만들어야 하겠다.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단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2015년 의기양 ‘양’/문소영 논설위원

    2015년 을미년(乙未年)은 ‘양’의 해다. 십이간지에 존재하지만 한반도에서 양을 기르지는 못했다. 양 대신 염소였다. 그래서 민간에서 양띠를 익숙한 ‘염소띠’라고 부르기도 했다. 두툼한 털과 양젖, 별미인 양고기가 매력적이었지만 조선시대 중국에서 들어온 양은 7~8월 한반도의 장마철 습기와 더위를 견디지 못해 죽었다. 어린 시절을 염소띠로 살다가 어느 날 양띠로 정정하면서 화들짝 놀란 기억이 새롭다. 예수가 ‘99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맨다’고 한 덕분인지 양에 대한 이미지는 순하고 착하고 보살펴 줘야 하는 존재다. ‘착한 양’이라는 이미지에 넌덜머리를 내는데, 친구가 양은 이미지와 달리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라고 주장해 솔깃한 적이 있다. ‘무더운 한여름에 양들이 꼭꼭 붙어서 지내는 것은 친구들이 시원한 게 싫어서 그런 것이고, 추운 겨울에 모두 떨어져 지내는 것은 친구들이 따뜻한 게 싫어서’ 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실체적 진실을 떠나 심통 부리는 모습에 낄낄거렸지만, 양의 행동 양식이 그렇다면 바보짓이다. 내가 잘되려면 남도 잘돼야 한다는 상식이 통해야 좋은 공동체다. 함께 의기양양한 2015년을 기대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한 해의 언저리/정기홍 논설위원

    세밑 아침 햇살이 일찍 잠을 깨우더니 “남은 한 해 옹골차게 채우라”며 채근하는 듯하다. 자고 나면 놀래키게 한 모진 사고가 한둘이었나 싶어 햇살이 마뜩잖다. 국가정보원이니, 세월호니 가슴속을 후벼 판 사고로 비장(悲壯)한 한 해였다. “일도 일도 이리 많은가”라던 이웃집 아주머니의 말도 새삼스럽다. 그 이면에 끼어든 앙칼지고 추잡한 이해관계의 잔영도 많이 쌓인 터다. 서민의 찌든 일상사를 얼마나 더치게 한 지난 일들인가. 그럼에도 안부가 오가는 해넘이의 언저리다. 올 한 해 고마웠고, 내년엔 더 잘 살자고들 한다. 한 해를 보내는 이들의 손놀림이 겻불같이 온기로 다가선다. 돌이켜보면 크고 작은 사고에 비껴 서 몸뚱이 하나 온전히 간수한 것도 하늘이 내린 복인 한 해였다. 지인들의 오랜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왔다며 자족한다. 내년은 양(羊)의 해다. 벌써 순둥이 양이 천방지축 달려온 드센 말 앞에 “길 비켜라”라며 엉버티고 섰다. 내년은 올해의 액운을 훌훌 털어내고 ‘순하디 순한 세상’이 돼야 하겠다. 양을 잃은 뒤 우리를 고친다는 고사 ‘망양보뢰’(亡羊補牢)가 유독 와 닿는 연말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길섶에서] 목수/문소영 논설위원

    호모 하빌리스, 즉 ‘도구의 인간’은 사냥을 하려고 돌도끼 등을 뚝딱뚝딱 만들거나 동굴 안쪽에 물감과 자신의 손을 활용해 그림을 그렸다. 정착생활이 시작된 1만 2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석기들은 구석기 때의 엉성한 돌무기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날카롭게 벼린 돌화살이나 돌칼 등으로 진화했다. 장기 거주를 위해 움집이나마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 이때가 아닐까 싶다. 조개 등을 쉽게 채집할 수 있는 강원도의 해안선을 따라 신석기 유물이 발견되는데, 강원도 고성의 유적은 6000년 전쯤 그 해안선에서 내륙으로 걸어서 2~3시간 거리에 있는 산 아래다. 바닷바람을 피해 농사도 지었다. 움막을 짓고자 땅을 성형한 흔적들도 있다. 현대적 의미의 목수는 아니더라도 목수 일을 한 것이다. 국제 해비탯의 ‘사랑의 집짓기’에 참여해 직접 집을 지어 온 ‘세계적 목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세운 카터센터가 한국 대법원에 우편으로 “대한민국 현직 국회의원인 이석기 의원의 유죄 판결을 우려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1982년 설립 이후 처음인 한국 정치인 구명 요청이라는데, 영 신경이 쓰인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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