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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인왕산/손성진 논설실장

    인왕산 하면 떠오르는 것은 호랑이와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일 것이다. 인왕산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기록을 남긴 사서(史書)는 한둘이 아니다. 조선 태종실록에는 호랑이가 경복궁 근정전 뜰에 들어왔다고 기록돼 있다. 인왕은 높이가 338m밖에 안 되지만 산세가 제법 웅장하고 계곡이 깊어 호랑이가 서식할 만한 산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풍수지리상 낙산을 좌청룡으로,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았으니 인왕은 호랑이와 여러모로 연관이 깊다. 궂은 날씨를 무릅쓰고 인왕산에 오른다. 한여름의 장대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거추장스러운 비옷을 벗어 버린다. 빗줄기가 땀에 젖은 온몸을 시원하게 씻어 준다. 초야에 묻혀 사는 자연인이 된 것 같은 순간이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는 ‘비갤 제(霽)’ 자를 썼으니, 비갠 후의 인왕산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가려졌던 도심 빌딩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뒤를 돌아본다. 구름이 산허리에 걸린 ‘인왕제색도’가 실물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어디선가 호랑이도 뛰쳐나올 것 같았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게와 까마귀/이경형 주필

    비가 오는 날, 한강 하구와 맞닿은 곡릉천 습지 둑길을 걷는다. 썰물 때인지, 잿빛 강물이 빠른 속도로 하구로 내닫는다. 길가에 핀 망초의 작은 흰 꽃들은 시들고 있다. 달맞이꽃은 저마다 노란 댕기를 머리에 이고 뽐낸다. 손등만 한 게 한 마리가 길을 천천히 가로지른다. 인기척을 느낀 듯, 잽싸게 풀섶으로 사라진다. 게가 어슬렁거리며 옆으로만 기어간다고 누가 함부로 ‘느림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연암집에서 “검은 까마귀도 햇빛에 자세히 보면, 자줏빛으로 번쩍이다가 영롱한 비취색을 띠기도 한다”고 말했다. “누가 까마귀를 검다고만 할 수 있겠나. ‘검다’고 말한 사람은 제 눈으로, 아니면 마음속으로 까마귀는 검다고 미리 정해버린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제 눈의 안경으로 남을 멋대로 재단하곤 한다.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는 더 심하다. 일방적으로 남에게 자신의 프레임을 씌운다. 자기가 속해 있는 마을, 회사, 단체, 공동체 속에서도 패거리들은 그들의 프레임으로 상대방을 함부로 매도하곤 한다.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길섶에서] 마시멜로 실험 1·2·3/문소영 논설위원

    자제력이 뛰어난 아이가 성공한다는 ‘마시멜로 실험’이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미셸은 1966년 네 살인 꼬마 653명에게 눈앞에 마시멜로를 놓아 주고서 먹지 않으면 두 배의 보상을 하기로 약속한 실험을 했다. 15년 뒤 그 꼬마들을 추적했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두 배의 보상을 추구한 꼬마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실험 결과를 1981년 내놓았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마시멜로 실험’은 두 개가 더 있다. 미셸은 1989년 눈앞의 마시멜로에 뚜껑을 덮어 주거나, 또는 꼬마에게 재미난 생각을 하라고 제안한 뒤 실험했다. 꼬마들은 첫 번째 실험보다 더 높은 자제력을 보였다. 특히 재미난 생각을 하라는 조언을 받은 꼬마들은 평균 13분 동안 먹는 것을 자제했다. 욕망을 자제하라 하지 말고, 욕망에 방어벽을 치는 효과적 방법을 알려 주면 좋다는 뜻이다. 사회와 연결된 마시멜로 실험은 2012년 록펠러 대학에서 이뤄졌다. 신뢰 환경과 비신뢰 환경으로 나눴다. 신뢰를 경험한 꼬마들은 놀라운 자제력을 보였다. 믿음이 있는 사회에서는 인간의 자제력이 더 강해진다는 말이다. 신뢰는 그래서 중요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재미있는 버킷 리스트/주병철 논설위원

    10년 전 미국에 잠깐 있을 때의 일이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옆 차선에서 립스틱을 짙게 바른 백발의 할머니가 지붕을 접은 빨간 색상의 컨버터블을 몰고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음악 소리는 옆을 지나는 차에서도 들릴 정도로 요란했다. 깜짝 놀랐다. 옆 좌석에 앉은 지인이 웃으면서 “저분은 젊었을 때 그렇게 타 보고 싶었던 차를 사서 기분을 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일종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얼마 전 대학 총장을 마치고 ‘백수’가 된 분을 만났다. 근황을 묻자 오전에는 자동차정비학원에 다니고 오후에는 플루트를 배우러 다닌다고 했다. 평생 꼭 한번 배우고 싶은 것을 하니 신바람이 난다며 좋아했다. 자동차정비사 자격증도 딸 것이라고 공언했다. 회사의 CEO 출신인 또 다른 지인은 요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더러 마을버스도 타고 걷기도 하면서 세상을 다시 본다고 했다. 여건이 되면 하고 싶었고, 앞으로도 취미 삼아 그렇게 살아 볼 것이라고 했다. 나의 마음속에는 어떤 버킷 리스트가 꿈틀거리는지 자문해 본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재미있는 버킷 리스트/주병철 논설위원

    10년 전 미국에 잠깐 있을 때의 일이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옆 차선에서 립스틱을 짙게 바른 백발의 할머니가 지붕을 접은 빨간 색상의 컨버터블을 몰고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음악 소리는 옆을 지나는 차에서도 들릴 정도로 요란했다. 깜짝 놀랐다. 옆 좌석에 앉은 지인이 웃으면서 “저분은 젊었을 때 그렇게 타 보고 싶었던 차를 사서 기분을 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일종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얼마 전 대학 총장을 마치고 ‘백수’가 된 분을 만났다. 근황을 묻자 오전에는 자동차정비학원에 다니고 오후에는 플루트를 배우러 다닌다고 했다. 평생 꼭 한번 배우고 싶은 것을 하니 신바람이 난다며 좋아했다. 자동차정비사 자격증도 딸 것이라고 공언했다. 회사의 CEO 출신인 또 다른 지인은 요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더러 마을버스도 타고 걷기도 하면서 세상을 다시 본다고 했다. 여건이 되면 하고 싶었고, 앞으로도 취미 삼아 그렇게 살아 볼 것이라고 했다. 나의 마음속에는 어떤 버킷 리스트가 꿈틀거리는지 자문해 본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길섶에서] 간절한 마음/황수정 논설위원

    운보 김기창의 그림 ‘군작’(群雀) 앞에 한참 붙들려 섰다. 화폭 밖으로 와르르 밀려나오는 참새떼의 날갯짓 소리. 참새 수백 마리가 작고 단단한 몸통을 비벼 빳빳한 역동의 음향을 쏟아 낸다. 무방비로 낚이는 청각. 무슨 조화가 부려졌을까 답을 찾아본다. 어려서 청력을 잃어 평생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화가다. 듣고 싶은 마음, 얼마나 간절했을까. 간절함이 깊어 붓끝에 소리를 낚는 촉수를 달았을 것이다. 화폭 너머로 소리가 비어져 나오는 운보의 그림이 그러고 보니 많다. 삶의 무게를 들어 올려 주는 가장 강력한 지렛대는 언제나 간절함이다. 차가운 조각상을 마음을 다해 사랑했더니 어느 날 숨쉬는 여인으로 변했다는 피그말리온 이야기. 까마득한 신화에서부터 웅변된 족보 깊은 삶의 진실. 3포, 5포, 7포 세대로 진화하며 자조하는 청춘들이 아깝다. 시작도 해 보기 전에 마음을 비운다는 달관 세대는 더 아깝다. 발버둥쳐도 별 수 없으니 빈둥빈둥 당당히 노는 방법을 찾겠다는 니트족은 서글프다. 간절히 뜨거워 볼 수 없었던 마음들이다. 마음 비우기(放下心)의 법어는 법문집에만 가둬 놓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불평등의 기원/문소영 논설위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지 못하고 목침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만간 읽어야지’에서 ‘언젠간 읽어야지’로 모드 전환해 놓았다. ‘자본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는 지당한 격언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읽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진 탓이다. 다만, 옆에 놓고 굴리면 조금은 빠른 시점에 읽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다. 지난 5월에 김병익 평론가가 쓴 어떤 서평을 읽다가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 공저의 ‘불평등의 창조’라는 책을 샀다. ‘인류는 왜 평등 사회에서 왕국, 노예제, 제국으로 나아갔는가’가 주제인데 1000쪽을 넘긴 이 책 역시 읽지 않는다면 목침용으로 전환될 것이다. 이 책은 책상머리에 두고 그 위로 한숨을 쌓는다. ‘언제 읽을까!’라며.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불평등의 기원을 먼저 알아봐야겠다는 지극히 ‘먹물’ 같은 생각이 두꺼운 책에 막혀 괴롭던 차에 자크 루소가 1753년에 쓴 ‘인간 불평등의 기원론’을 최근 읽었다. 마르크스 ‘자본론’보다 약 100년 앞서 불평등을 질타한 이 책은 160쪽에 불과하다. ‘자유 이외에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란 표현의 저작권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루소였다. 좋은 책은 얇더라!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비구니 절 진관사/최광숙 논설위원

    절에 다니는 신도 입장에서는 스님이 비구니(比丘尼·여승)인가 비구(比丘·남승)인가를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기에 다니는 사찰도 인연 따라 가게 된다. 그런데 가끔 모르는 사찰을 방문하게 되면 비구니 사찰은 비구 사찰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비구니 사찰은 우선 아담하면서도 깔끔하다. 정원도 아기자기하게 예쁘게 꾸며 놓아서인지 여성스러움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품과 같이 포근하다. 하지만 비구니 사찰은 규모가 작다 보니 시줏돈도 적게 들어와 살림살이가 곤궁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일부러 ‘가난한’ 비구니 절만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최근 방한한 미국의 부통령 부인인 질 바이든 박사가 첫 행선지로 비구니 절인 진관사를 찾았다. 불교 신자도 아닌 그녀가 비구니 스님들의 삶과 수행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여성의 권익 신장과도 관련이 있단다. 양성평등 시대이지만 여전히 불교 교단에서는 비구니와 비구의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다. 비구니 스님의 위상과 역할 확대가 필요한 시점에 바이든 박사의 진관사 방문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배우의 죽음/손성진 논설실장

    학창 시절에 까까머리로 교복을 입고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닥터 지바고’의 감동은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음속에 잔잔하게 남아 있다. 줄리 크리스티(라라역)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던 오마 샤리프(지바고역)의 우수에 젖은 애틋한 눈빛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오마 샤리프의 짙고 긴 속눈썹과 커다란 눈망울의 매력은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을 빨아들일 만큼 강렬했다. 얼마 전 그런 오마 샤리프의 부음 기사를 접했을 때 밀려오는 아쉬움은 나만 느낀 감정은 아닐 것이다. 더는 살아 있는 그를 볼 수 없다는 묘한 허탈감이다. 2008년 오마 샤리프와 같은 83세의 나이에 폴 뉴먼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의 푸른 눈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특히 많은 팬들이 슬퍼했다. 영화 속의 배역이 남기는 아련한 환상 때문에 배우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더 커진다. 그래서 좋아하는 배우는 평생 늙지 않고 죽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가 보다. 그러나 어쩌랴, 인명은 유한한 것을. 배우는 가도 영화는 남아 있기에 다행스럽다. 오늘 밤 영화 파일을 구해 ‘닥터 지바고’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부황한’ 꿈/문소영 논설위원

    허풍이 잔뜩 들어 있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상태를 ‘부황하다’라고 한다. 1940년대 이기영의 장편소설 ‘봄’에도 등장하는 단어이건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표준어가 아니고, 북한말로 돼 있다. 어릴 때는 대체로 부황한 꿈을 많이 꾼다. “대통령이 되겠다”거나 “아인슈타인 같은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겠다”고 한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평범한 성적이면 교사나 소방관, 공무원으로 낮아지고, 성적이 좋으면 판검사나 변호사, 정치인, 의사 등으로 정리되곤 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나서면서 미국인의 영웅인 케네디 대통령과 학생 때 백악관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백악관의 주인’에 대한 오랜 꿈을 밝힌 적이 있다. 개항기 일본을 제국주의 국가로 전환한 배후에 ‘요시다 쇼인’이라는 인물이 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당시의 영토와 19세기 중엽 요시다가 그려 준 밑그림이 거의 같다. 일본 지식인 중에 ‘일본이 몸에 맞지 않는 대국의 꿈을 꾸는 바람에 곤란을 겪었다’는 사람도 있지만, 조선시대 이래 ‘소국의식’에 젖어 산 한국은 어떤 나라가 되겠다는 야망도 없이 근시안적인 목표에 매달리는 것 같아 답답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새총의 추억/최광숙 논설위원

    어릴 적 오빠들과 함께 새총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Y자(字) 모양의 나무가지를 꺾어다가 동생의 노란색 기저귀 고무줄을 끼워서 만든 새총 하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숲속에서 새총 놀이를 할 때는 솔방울을 총알 삼아 멀리 날아오르는 참새를 잡는다고 폴짝폴짝 뛰어다니곤 했다. 한창 장난기가 넘쳤던 오빠들을 따라 가끔 집에서도 새총 놀이를 했다. 2층 창문으로 치마 입은 언니들의 다리를 향해 빳빳한 종이를 여러 번 접어서 만든 총알을 쏘곤 했다. 성(性) 정체성도 없이 오빠들과 함께 뛰놀던 시절이니 나도 오빠들처럼 여성이 마치 나의 적군인 양 그들을 향해 같이 ‘공격’을 했던 것이다. 다들 실력이 없어 목표물을 적중하지 못해 안타까워했지만 그렇게 노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최근 새총을 이용한 범죄가 늘고 있다고 한다. 달리는 차에 쇠 구슬을 쏜다고 하니 새총이 흉기로 둔갑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을 해칠 정도의 위력을 가진 개량형 새총에 대해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던 새총이 이제 범죄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무서운 세상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해오라기/박홍환 논설위원

    [길섶에서] 해오라기/박홍환 논설위원

    얼마 전 청계천에서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날렵한 몸매에 키는 50㎝를 넘을까 말까. 목 뒤로 뻗은 한 가닥 흰색 깃이 일품이다. 찍어온 사진과 인터넷 백과사전을 대조해 가며 정체를 밝혀냈다. 해오라기. 백로과의 새로 10월경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철새였으나 최근에는 이 땅을 터전으로 삼는 텃새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같이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다니 볼수록 친근해진다. 그는 수표교를 지나 양쪽 천변이 비교적 울창한 부들로 뒤덮여 은신하기 딱 좋은 곳에서 항상 S자(字)로 몸을 굽히고, 흘러가는 청계천 물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발목을 물에 잠근 채 부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모습은 엄숙하기까지 하다. 숱한 물고기가 오고 가지만 미동도 않고, 그 상태로 10분 넘게 흡사 박제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찰나의 순간, 부리를 물속에 처박아 마침내 한 마리의 피라미를 낚아챈다. 땡볕 속에서 10여분간 버텨낸 인내심이 자랑스러운 듯 득의양양한 표정까지 짓는다. 성공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그의 모습에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는다. 나는 지금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어성초 엑기스/문소영 논설위원

    출근길에 수많은 전봇대를 지나치는데 그 전봇대는 뭔가 달랐다. 아랫부분에서 뭔가가 펄럭이는 것 같았다. 몇 걸음 내처 가던 길을 되짚어와 들여다보니, 개인이 손 편지처럼 쓴 전단이 붙어 있다. ‘어성초를 아침저녁으로 머리에 뿌리면 2~3개월 후 현재 머리카락이 2배로 늘어납니다. 효과가 없으면 반품받겠습니다’라며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해 놓았다. 얼마 전 한 선배도 잠잘 자리에 어성초 엑기스를 분사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직접 과실주 담는 소주에 어성초를 넣어 3개월 정도 발효시키고서 분무기에 넣어 뿌린단다. “효과? 괜찮은 거 같아”라고 했던가. 탈모 방지가 중년 남녀의 주요 관심사다. 원래 머리숱이 없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가 생기거나, 어느 날 부쩍 빠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노심초사한 사람들만이 그 고통을 안다. 어성초는 한 의사가 종편 등에서 발모팩이란 이름으로 소개했다가 올 4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지도를 받았다. 정부는 검증이 안 된 의학 시술이나 건강기능식품을 홍보·추천하는 의사인 ‘쇼닥터’를 제재하는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폐단을 알아도 시도해 볼까 하는 마음이 살랑살랑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소리와 소음 사이/황수정 논설위원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에게 서울은 시끄러운 도시다. 파리에서 오래 산 사회학자는 우리의 골목 소음이 유별나다고 한다. 트럭 지붕 위에 확성기를 달아 녹음기를 줄창 틀어 대는 소리를 서울만의 어떤 것이라 정의한다. 소음을 꼬집는 완곡어법이다. 폐가전 제품을 돈으로 바꾸라거나, 산지 직송 영광굴비가 왔으니 들여가라는 소리. 이방인의 시선에는 아파트 집집에 붙은 스피커도 이물스럽다. 아무 때나 흘러나오는 알림 방송은 이해 못할 소음이다. 내게는 불편하지도 성가시지도 않은 소리들이다. 집 안 잡동사니를 돈까지 얹어 거둬가 주면야 고맙다. 온 동네에 또박또박 육성으로 그날 할 일 단속해 주는 ‘전원일기’의 마을회관 스피커가 뭐 나쁜가. 그 양촌리 스타일의 관리사무소 방송은 여러 모로 편하다. 내 경우라면 버스 안의 일방통행 방송이 힘들다. 운전기사 마음대로 주파수 맞춘 방송을 꼼짝없이 들어야 하는 건 고역이다. 버스 안 곳곳에 TV 모니터를 달아 쭉정이 정보를 하루 종일 강요하는 경기도 버스라면 거의 최악이다. 그들을 바꾸는 것과 내 취향을 바꾸는 것. 어느 쪽이 빠를까. 말할 것 없이, 내 취향을 반성하는 쪽이 백 배 쉽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찬밥/서동철 수석 논설위원

    밥을 지어 온 가족이 먹고 나면 많건 적건 찬밥이 남았다. 적어도 보온밥솥이 없었던 시절에는 그랬다. 어릴 적에는 새 밥에 뜸을 들이는 잠깐을 참지 못해 헌 밥솥 바닥 찬밥을 긁어먹었던 기억이 적지 않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후 식은 밥을 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서 쓰던 전기밥솥이 며칠 전 완전히 못 쓰게 됐다. 처음에는 압력밥솥이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기능은 잃어버렸다. 그래도 십 년도 훨씬 넘게 ‘따스운 밥’을 먹게 해 주었으니 명복이라도 빌어 줘야 할 판이 아닌가 싶었다. 덕분에 토요일을 집에서 보내며 점심으로 찬밥을 먹었다. 워낙 무덥다 보니 전자레인지에 데워야겠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먹은 찬밥은 맛있었다. 역시 먹다 남은 호박전에 생선구이, 오이지는 찬밥과 잘 어울렸다. 요즘 TV를 켜면 이른바 ‘먹방’ 경쟁이 한창이다. 잘생기고 입담 좋은 젊은 셰프들은 벌써 스타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해진 셰프들의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어 보고 화면에서와 같은 감동을 한 적은 거의 없다. 따스운 밥을 기대했지만 찬밥을 먹고 온 심정이랄까. 엊그제 점심처럼 마음을 비우고 먹은 찬밥이 아니어서 그런가…. 서동철 수석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불편한 동거/황수정 논설위원

    청거북이 두 마리가 함께 산다.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집에 들인 지 5년. 녀석들 건사하는 일은 줄곧 내 차지였다. 새끼손가락만 했던 것들이 어느새 손바닥보다 몸피가 더 굵어졌다. 끼니 챙겨 주기에 꾀가 날 때마다 생각을 고쳐 먹는다. 상대가 누군가. 장수 운(運)을 주무른다는 영물, 거북이다. “너희들 배곯리지 않으려면 내가 하루라도 더 살아야지….” 노부부가 등 쓸어 주며 주고받는 드라마 속 대사를, 내가 해 놓고 내가 혼자 웃는다. 청거북 수명이 20년이다. 기실 웃을 형편이 못 된다. 애틋하지 못한 동거를 끝내고 싶은 마음, 진작에 굴뚝이다. 생태계를 뒤죽박죽 만든다니 한강에 방생도 못 하고.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쳐다보는 영물을 산속에 갖다 놓고 돌아설 용기도 없고. 미국 미시시피 계곡이 고향이라는데, 떵떵대며 천수 누릴 녀석들이 천덕꾸러기다. 팔자에 없는 ‘거북 봉양’에 묶인 나는 또 무슨 죈가. 아마존에, 남아프리카에 있어야 할 피라니아, 발톱개구리가 엉뚱한 데서 발견돼 사람들이 기함한다. 키우다 버리는 죄, 불가에서는 무거운 업(業)이다. 한 치 앞을 못 내다본 환경부가 여러 사람을 참 딱하게 만든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낙관주의/구본영 논설고문

    우리 사회가 바야흐로 늙어 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제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 현황과 전망’에서 읽히는 기류다. 15년 뒤에는 국민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라니 초고령 사회가 성큼 다가오는 느낌이다. 하긴 서울교동초등학교의 올해 신입생은 겨우 21명이었단다. 저출산의 심각성을 알리는 징후다. 1894년 개교해 우리나라 초등학교 최고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의 명맥이 자칫 끊길 판이니 말이다. 이런 출산율 저하 추세는 과다한 사교육비 등 자녀 양육에 따른 부담감과 무관하지 않을 게다. 물론 그 근저에는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배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노인은 추억에 산다”는 프랑스 격언이 있다. 꿈을 먹고 살아야 할 청년 세대가 지나친 비관주의에 젖어드는 건 자신들의 인생을 위해서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독일의 어느 시인은 “요람과 무덤 사이에 고통이 있다”고 했지만, 영국 시인 브라우닝은 “가장 좋은 일은 미래에 있다”고 했다. 설령 삶이 고달프다 할지라도 우리네 청춘들은 비관보다는 낙관을 벗 삼는 게 좋을 듯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원인과 결과/오일만 논설위원

    한순간이다. 최근 몸을 씻다가 순간적으로 목이 삐끗했다. 인체 206개의 뼈 가운데 고작 한 개가 문제 됐을 터인데 내 몸은 하루 종일 초비상이 걸렸다. 조금이라도 목 근육을 건드리면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로 통증이 몰려왔다. 고개를 쳐들기도 어렵고 주위를 돌아보기도 힘겹다. 파란 하늘을 쳐다보고 마음껏 두리번거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던 일인가. 의사의 진단으로는 목뼈가 갑작스런 충격으로 근육이 놀라 신경을 건드려 통증이 온다고 했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끼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며 앞으로 조심하라는 경고음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직립 보행 이후 수백만 년간 자연에서 뛰놀던 사냥꾼의 후예가 어느 순간부터 책상 주위를 맴돌게 됐다. 정상적인 뼈대의 모양새가 뒤틀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잘못된 뼈대를 원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근육들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병들이 생겨난다. 등이 굽으면 가슴이 좁아져 심폐 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고개를 숙이고 다니면 목뼈가 틀어진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 며칠 병원 신세를 지면서 새삼스레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정치인과 화안시(和顔施)/최광숙 논설위원

    어색하던 엘리베이터 안이 갑자기 환해졌다. 아래층에 사는 갓난아기가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가나 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사촌이지만 인사도 없이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갓난아기가 빵긋빵긋 눈웃음을 하며 옹알이를 하면 윗집 아저씨도, 옆집 할머니도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면서 마치 한가족처럼 된다. 불경에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말이 있다. 돈 없이도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7가지를 일컫는다. 그중에 으뜸이 부드러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화안시(和顔施)다. 둘째 말로 베푸는 언사시(言辭施), 셋째 따뜻한 마음을 주는 심려시(心慮施), 넷째 호의의 눈빛으로 남을 보는 안시(眼施), 다섯째 몸으로 돕는 신시(身施), 여섯째 남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하는 상좌시(床座施), 일곱째 남에게 쉴 공간을 마련해 주는 방사시(房舍施)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를 놓고 정국이 시끄럽다. 새누리당 회의에서는 육두문자 욕설도 오갔단다. 정치인 얼굴만 봐도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사람들이 많다. 웃는 얼굴로 국민들을 좀 편안하게 하는 것도 보시라는 걸 정치인들도 알았으면 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과공(過恭)은 장애/황수정 논설위원

    아무리 노력해도 내공이 쌓이지 않는 일이 있다. 점심 메뉴 정하기다. 뭘 먹자고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 주는 사람이 고맙다. 요즘 한창 말 많은 ‘결정장애’는 아닐 거라고 내심 우겨 본다. 누가 결정해 줄 때까지 밥을 굶고 기다릴 만큼 중증은 아니니까. 선택을 힘들어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큐레이션(Curation) 서비스가 날개를 달았다. 직장인들을 결정장애 증후군으로 몰아넣는 주범, 점심 메뉴를 골라 주는 모바일 앱이 단연 인기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투표를 맡겨 그날의 점심 메뉴를 정한다. 고민하는 수고 없이 정해진 대로 먹어 주면 되니 참 편하기도 하겠다. 실천할 것 같지 않은 망상 한 가지. 길치인 내 머리에 입력된 길로 운전할 때와 내비게이션의 비상한 도움을 받을 때의 시간차는? ‘닥치고 내비’의 뇌 기능 퇴화 장애와 맞바꿔도 좋을 만큼일까. 그러면 천만다행이다. ‘국민 앱’ 카톡의 배려 정신이 이만저만 아니다. 안 그래도 남녀노소 코를 박게 만들면서 실시간 검색 기능까지 보태줬다. 덕분에 결정장애자들은 빠져나올 일이 더 감감해졌다. 지나친 배려가 장애를 낳는 세상이다. 고맙지 않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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