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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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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우수(雨水) 단상/최광숙 논설위원

    ‘좋은 비는 시절을 안다’(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는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첫 구절이다. 두보가 50세 무렵 쓰촨성 청두에 4년간 머물 때 지은 시라 한다. 이때 두보는 직접 농사를 지으며 그의 생애에서 가장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반가운 봄비를 맞는 농부이자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얼마 전 내린 비가 겨울비인지 봄비인지, 이슬비인지 보슬비인지 모르겠으나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셔’(윤물세무성·潤物細無聲) 주었다. 지난 19일은 눈이 녹아 빗물이 된다는 우수(雨水)였다. 다음달 초면 개구리가 잠에서 깬다는 경칩이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말이 있다. 계절은 바야흐로 겨울에서 봄으로 가며 생명의 싹을 틔우고 있다. 여기저기서 겨울잠에서 깨어나 생명의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시국은 거꾸로다. 남북 관계가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로 꽁꽁 얼어붙었다. 지금으로선 영영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이 차가운 관계가 꽃샘추위에 그치고 ‘우수 뒤의 얼음같이’ 슬슬 녹아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북이 바뀌지 않는다면 헛된 기대이리라.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할머니의 유모차/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산책을 하다가 어르신 네댓 분과 마주쳤다. 그런데 한결같이 유모차를 밀고 오는 것 아닌가. 할머니들은 마을 노인회관에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어울려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밥도 같이 해 먹고, 소일거리라도 생기면 용돈을 마련할 수도 있으니 아침이면 출근하듯이 노인회관으로 향하신단다. 시골 할머니들에게 유모차는 여러 가지로 유용해 보였다. 평생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한 탓에 허리가 굽고, 무릎도 상해서 이젠 무언가에 의지해서 걸어야 하는데 보행 보조차는 값이 너무 비싸다. 유모차는 훌륭한 대안인 셈이다. 지팡이에는 짐을 실을 수 없지만 유모차에는 물건도 실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할머니의 유모차 안에는 손수건, 간식거리 등이 들어 있었다. 의외의 물건도 있었다. 벽돌 석 장. 벽돌을 아기라고 생각할 리는 없다. 유모차를 용도 변경해서 사용하다 보니 울퉁불퉁한 길에서 뒤집히기 일쑤여서 아기 대신 벽돌을 실어 무게중심을 잡아 주는 것일게다. 할머니들 나름의 생활의 지혜라고 할 수 있지만 보기에 참 쓸쓸했다. 노인 복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그늘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무지렁이/서동철 논설위원

    세상 물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을 무지렁이라고 하는데 남의 얘기가 아니다. 아파트 현관문에 번호키를 달아놓은 직후, 비밀번호가 가물가물해 이러저리 누르고 있으니 뒤에서 기다리던 위층의 젊은 아기 엄마가 “제가 한번 해볼게요” 하고는 나선다. 문은 금방 열렸고 엄마와 아들은 빙긋 웃으며 가볍게 목례를 한다. 꼼짝없이 번호키 하나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중년의 무지렁이로 비친 것이다. 실제로 번호키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으니 무지렁이가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것도 할 줄 모르느냐?”고 들이대지 않은 배려는 고마운 것이었다. 며칠 전에는 치과에서도 그랬다. 젊은 간호조무사는 다짜고짜 “아버님!” 하고 부르더니만 “스케일링 처음 하시는 거지요?”한다. 속으로는 “이 나이에 스케일링 처음 하겠느냐?” 하고 외쳤지만 참았다. ‘아버님’도 그렇다. 누군가의 아버지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동네 아저씨를 부르는 용도다. 아줌마들이 왜 ‘아줌마’라고 부르면 불편해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작은 반성도 있었다. ‘그래, 내가 잘났다고 떠들어 봐야 소용 있나. 그대들의 눈에 보이는 모습이 내 참모습이지’ 하는 것이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고통의 미학/구본영 논설고문

    신앙심이 엷은 탓에 나는 어쩌다가 동네 성당에 가는 편이다. 대학 진학 문제로 속썩이는 아들 일 등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심란하던 차에 엊그제 사순절을 맞아 시인을 초청한 특강을 한다기에 가 봤다. 정호승 시인이 연사였다. 시인답게 자신의 시구를 인용한 메타포도 가슴에 와 닿았지만, 인생은 사랑과 고통 두 가지로 채워진다는 특강의 결론에 공감했다. 하긴 고통 없는 삶이 어디 있겠나. 독일의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요람과 무덤 사이에 고통이 있다”고. 문제는 삶의 도정에서 피할 수 없이 맞닥뜨리는 고통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다. 작고한 작가 박완서는 중년 시절 남편과 아들을 몇 달 사이로 연이어 떠나보낸 뒤 “고통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고 토로했단다.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하늘의 섭리라고 여기며 담담히 직시하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색채는 모든 빛의 고통이다’라며 고통의 의미를 긍정했듯이…. 문득 “인생은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는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했던 철학자 칼 포퍼의 명언이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eoul.co.kr
  • [길섶에서] 아픈 사연/오일만 논설위원

    최근 한 지인의 뼈아픈 사연을 들었다. 건실한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며 주위의 부러움을 독차지했던 인물이다. 회사 지분을 타인에게 몽땅 넘기고 자신은 월급쟁이 영업 책임자로 자리바꿈을 했다고 한다. 20대부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면서 맨손으로 일궈 놓은 회사였다.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다던, 회사를 포기하는 그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 끝이 아려 온다. 그의 몰락은 도박에서 시작됐다. 회사는 남들이 손대지 못하는 기술 독점 품목이라 날로 번창했지만 그와 비례해서 그의 긴장감은 날로 허물어져 갔다. 성공 끝에 찾아온 방심은 더 짜릿한 그 무언가를 찾았고 결국 도박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회사보다 카지노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쌓여 갔다. ‘한 방의 추억’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면서까지 도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인간사(人間事), 행과 불행이 늘 번갈아 찾아오기 마련이다. 도박이 그의 모든 것을 앗아 갔지만 초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희망은 남아 있다. ‘한 방의 헛된 꿈’을 접고 새롭게 일어서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감수성 실종 시대/임창용 논설위원

    함께 길을 걷기가 힘겨운 친구가 하나 있다.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조금이라도 눈길을 끄는 게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1인 시위든, 모금 이벤트든, 길거리 공연이든 꼭 사연을 훑어본다. 내키면 서명도 하고 돈도 낸다. 좀 지나치다 싶길래 한번은 “가자. 쓸데없이 뭔 관심이 그리 많아?”라고 했다가 한소리 들었다. “이런 감수성 없는 친구 같으니라고!”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눈물을 흘리는, 그런 감정을 감수성으로 알던 내게 친구의 꾸지람은 낯설었다. 그런데 그의 질책은 마땅했다. 감수성은 글자 그대로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성질 아닌가. 누가 억울한 일을 호소하든 무감각하게 지나친다는 건 결국 감수성 부족인 것이다. 중국 송대 유학자인 정호는 ‘황제내경’에 나오는 불인(不仁)에서 감수성의 의미를 찾았다. 이 책에선 신체가 마비돼 감각이 없는 상태가 불인이다. 마비된 다리를 꼬집으면 아무런 고통을 느낄 수 없듯 타인의 아픔에 대한 관심과 공감이 없는 세태를 나무란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지적했듯 관심은 모든 사랑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한데 우리는 감수성 실종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함박눈 단상/강동형 논설위원

    서울에 함박눈이 내렸다. 하늘에서 내리는 함박눈은 수많은 눈 결정체로 이뤄져 있다. 아름다운 눈 결정체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6개의 기둥, 부드러운 곡선과 곧게 뻗은 직선이 기하학적으로 배열돼 신비감을 자아낸다. 눈 결정체를 처음 사진에 담은 사람은 윌슨 벤틀리라는 미국인이다. 그는 1885년 눈 결정체를 찍는 데 성공한 뒤 눈을 감을 때까지 약 40년 동안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그는 5개나 7개 기둥을 가진 눈 결정체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모두 6개의 기둥이었다. 왜 눈 결정체가 6개의 기둥 형태인가 하는 물음은 사람의 눈이 왜 세 개나 네 개가 아니고 두 개인가라는 질문과 다를 바 없다. 기둥은 여섯 개지만 모습은 서로 다르다. 현대 과학은 눈 결정체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쉽게 설명한다. 하나의 눈 결정체는 무려 100억개의 물 분자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물 분자 100억개가 만들어 내는 ‘경우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까지 지구에 내린 모든 눈의 결정체가 서로 다른 이유다. 눈 결정체가 닮은 듯 다른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며 세상사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길섶에서] 괴강(槐江) 횡재/서동철 논설위원

    충청북도 괴산의 땅 이름을 이루는 괴(槐)는 느티나무를 가리킨다. 풍성하게 가지를 뻗어 넓은 그늘을 만드는 으뜸 나무다. 이 고장의 복판을 흘러가는 물길이 괴강(槐江)이다. 괴탄(槐灘)이라고도 하는데, 느티여울이라고 순우리말로도 부를 때 아름다움의 의미는 더욱 살아난다. 속리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괴산을 거쳐 충주에 이르면 달래강(達川江)이라는 예쁜 이름이 된다. 남한강의 최상류를 이룬다. 괴산은 내륙 깊숙이 자리 잡은 데다 사통팔달 교통 요지도 아니어서 자주 찾지는 못했다. 얼마 전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다 괴강의 매운탕 맛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기억이 났다. 나들목에서 매운탕촌(村)까지는 30분 남짓이나 걸렸다. 유명하다는 집은 손님이 너무 많아 옆집으로 가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다. 인심 좋게 넣은 동자개며 메기가 괴강산(産)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일행은 감탄을 아낄 수 없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미슐랭 음식점 가이드의 별 두 개는 ‘자동차를 돌려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점’이라는데, 나에게는 이 집이 바로 그런 집이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타이소(他利所)/박홍기 논설위원

    동서울터미널 앞길에 ‘타이소’라는 유리로 된 시설물이 있다. 설치된 지 1년이 조금 지났다. 출입문에는 ‘TAISO’라는 알파벳 스티커가 크게 붙어 있다. 바깥 벽에는 ‘타이소, 타인을 배려하고 이롭게 하는 곳’이라는 글귀가 있다. 안에는 ‘즐기시지 못한다면 끊어 보는 것도 좋아요’라고 쓰인 패널도 있다. 흡연 부스다. 길거리 흡연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한 공간이다. 다가가야 비로소 의미를 알 수 있다. 타이소가 마련되기 전까지 맞은편에는 커다란 깡통 두세 개가 놓여 있었다. 터미널을 이용하는 흡연자들이 자연스럽게 정한 장소였다. 유동 인구가 많은 탓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많았다. 길 위에 담배꽁초가 널려 있었다. 진풍경이었다. 지나갈라치면 담배 연기에 발걸음이 빨라지곤 했다. 타이소 효과는 제법이다. 그런데 요즘같이 추운 날 타이소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적잖다. “캐캐한 냄새가 싫어서”, “갇힌 것 같아서”. 이 때문인지 벽에는 ‘보행로에서 흡연하시면 안 됩니다’, ‘담배꽁초 등 무단투기 단속 중’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흡연을 정말 즐기고 싶다면 타이소의 취지처럼 타인을 좀 더 배려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어머니의 무릎/임창용 논설위원

    가끔 추억에 잠길 때가 있다. 옛 생각이라는 게, 한번 끄집어내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다. 며칠 전 집안을 정리하던 중 오래된 램프를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향초를 꽂아 쓰도록 만든 철제 램프다. 어릴 적 집에 전기가 없던 시절 쓰던 남포등과 비슷해선지 당시의 정경이 새록새록 떠오른 것이다. 어머니는 주무시기 전 자주 남포등 아래 앉아 바느질을 하셨다. 해어진 내복이나 구멍 난 양말을 주로 꿰매셨다. 낮엔 들일에 바빠 밤이 되어서야 시간을 내신 것 같다. 어머니의 무릎은 막내인 내 차지였다. 그땐 방안 외풍이 참 찼다. 솜이불을 턱밑까지 올리고 어머니의 무릎을 반쯤 벤 채 한 땀 한 땀 헝겊을 깁는 손놀림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10분도 안 돼 곯아떨어졌다. 쉰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그 순간만큼 포근했던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지난 주말 구순을 앞둔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신 뒤 시골집에 혼자 계신다. 다리를 제대로 못 쓰시는 아버지를 돌보시다가 어머니마저 무릎이 상한 것 같다. 죄송한 마음에 무릎을 너무 세게 주물렀는지, 어머니가 앓는 소리를 내신다. 아름다워야 할 추억이 이럴 땐 시리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아버지의 손맛 2/서동철 논설위원

    경기 파주에 10년 넘게 사는 동안 헤이리마을이 유명세를 타고 명품 아울렛이 잇따라 들어섰다.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음식점이 생겨나면서 호기심도 발동했다. 하지만, 전국 공통의 맛일 뿐 다시 가고 싶은 집은 많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오래된 단골집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문산 너머 막국수집 주인 영감님은 겨울이면 문을 닫아걸고 날이 풀릴 때까지 영업을 하지 않았다. 설 연휴 직전, 지난해 겨울에는 뜻밖에 문을 열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찾아갔지만 다시 휴업이었다. 문을 열었던 지난해 1월에도 막국수 맛은 시원치 않았다. 주방을 들여다보니 영감님 대신 아들만 보여 ‘아버지 손맛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모양이군’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다시 겨울 장사를 접은 것도 ‘무르익지 않은 아들의 솜씨’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설 연휴 뒤끝 문을 열었다기에 찾았지만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오후 6시 30분 영업을 종료한다’는 푯말만 내걸려 있었다. 너무 일찍 문을 닫는 것이 불만스러우면서도 영감님 기력이 달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문득 ‘새해에는 세상의 모든 아들이 분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친구/박홍기 논설위원

    출근해 이메일을 여는 것도 일과 중의 하나다. 직업상 메일 주소가 공개된 탓에 갖가지 메일이 쌓여 있다. 대부분은 제목만 보고 지워 버리기 일쑤다. 스팸메일도 적잖다. 오늘따라 눈에 띄는 제목이 있다. ‘친구의 정의’다. 내용인즉슨 영국의 한 출판사에서 상금을 내걸고 ‘친구’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공모했다. 응모 엽서에 쓰인 친구는 사람마다 달랐다. 기쁨은 곱해 주고 고통은 나눠 갖는 사람,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 많은 사랑을 베푸는 사람…. 1등은 ‘온 세상 사람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었다. 친구, 많기는 한데…, 콕 집어 “진정한 친구야”라고 입 밖으로 꺼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더 친하고 덜 친한지를 진지하게 따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로 친구들을 제때 만난 지도 오래된 듯하다. 때마침 한 고교 친구가 전화를 했다. 설 연휴가 끝난 뒤 고교 친구들이 모이기로 했는데 나오라는 것이다. 고교 친구 모임은 종종 다른 개인적인 모임에 밀렸던 터다. 미안함도 적지 않았지만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친구란 어떤 거창한 정의보다 ‘언제 만나도 편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윷놀이/박홍기 논설위원

    “이럴 땐 모보다 돼지야.” 윷가락을 잡은 조카의 어린 손이 굳는다. 표정도 사뭇 진지해진다. 훈수하는 쪽이 더 신나 한다. “돼지.”, “돼지.” 윷가락이 던져졌다. “돼지다.” 순간 “와~” 하는 함성과 동시에 박수 소리가, “에이…잡혔네”라는 안타까움이 뒤섞인다. 왁자지껄한 설맞이 가족 윷놀이의 광경이다. 설 윷놀이를 시작한 지도 10년쯤 됐다. 정확하게는 설 전날 행사다. 큰댁, 작은댁 등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분주하게 부치고 지지고 볶고 찌고 빚으며 설 차례상 준비를 마친 뒤 저녁 식사를 하고 벌어진다. 부부끼리, 아이들끼리, 또는 어머니와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짝을 짓는다. 3대가 어우러진 판이기에 무려 16짝에 이른다. 실력이 따로 없다. 밤나무를 깎아 만든 윷가락은 변수가 더 많다. 엎어지는 듯하다 젖혀지기 일쑤다. 부모님이라서, 자식이라서 봐줄 수가 없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붙어도 양보란 없다. 얄짤없다. 치솟았다 떨어지는 윷가락에 맡길 수밖에 없어서다. 순위가 가려지면 준비해 놓은 상품을 고른다. 1등이라고 별도 상품이 없다. 먼저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모두 흐뭇해하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인사한다. “복 많이 받으세요.”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귀성 전쟁/구본영 논설고문

    김종길 시인은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더라도 설날만큼은 따스하게 맞이하라고 했다. 즉 “따듯한 한잔 술과/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그것만으로도 푸지고/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고. 그런데도 그다지 맘이 설레지 않은 까닭이 뭘까? 제수 장만과 같은 생활인으로서 걱정만 앞서고 있으니…. 처음엔 나이가 든 증좌이려니 했다. 하지만 귀성 인파로 북적이는 서울역과 버스 터미널 풍경을 보면서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동생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역귀성하면서 서울의 난 고향 냄새를 맡을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다. 수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설날 전날이면 늘 대문 밖에서 우리 가족을 기다리셨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열차 도착 시각을 가늠해 골목 어귀에서 서성이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시작된 귀성 전쟁을 보면서 기억의 창고 속에서 다시 끄집어낸 삽화다. 그러나 귀성을 어찌 물리적 좌표로만 한정 지으랴. 부모, 형제가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누는 그곳이 바로 고향일 거라는 객쩍은 위안을 해 봤다. 문득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가서 배불리 먹고사는 곳/그곳이 고향이란다”(서정춘 시인)라는 시구가 떠오른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주먹도끼빵/서동철 논설위원

    황남빵의 존재를 알려 준 것은 고교 시절 경주 출신 국어 선생님이었다. 황남빵에 얽힌 추억을 시도 때도 없이 이야기했다. 실제로 먹어 본 것은 10년 남짓 흐른 뒤였다. 생각보다 작았지만 팥소가 넉넉하게 들어간 것이 맛있었다. 지역 특산 빵은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한다. 호두과자는 더이상 ‘천안 명물’이 아닐 만큼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대전 성심당의 부추빵과 군산 이성당의 팥빵, 영주 풍기의 생강도넛은 주변을 지날 때면 되도록 맛보려 한다. 최근에는 울릉도에서 명이빵도 나왔다. 전곡리 선사 유적지가 있는 경기 연천에서는 ‘주먹도끼빵’ 개발이 끝나가는 단계라고 한다. 구석기시대를 상징하는 주먹도끼 모양에 지역에서 나는 율무로 소를 넣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천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갖춘 것 같다. 주먹도끼빵 개발은 전곡선사박물관이 주도한다. 연천의 선사문화를 알리면서 지역 살리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주먹도끼빵 말고도 구석기 인류의 먹거리를 상징하는 70종 남짓한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연천과 선사 유적이 주는 즐거움이 또 하나 늘어나게 됐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선물과 뇌물/임창용 논설위원

    퇴근하니 현관문 앞에 과일 박스가 하나 놓여 있다. 발신인이 고향 친구다. 설이라고 보낸 모양이다. ‘고맙긴 한데, 왜 보냈지? 나도 보내야 하나?’ 예전 같으면 별 생각 없이 받았을 것을, 언젠가부터 선물을 받으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선물을 보낼 때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 난 뭘 받았지?’ 같은 금전적인 가치를 떠올리게 된다. 선물이라는 게 조건 없이, 주고 싶어 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현실에선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누군가 조카의 졸업 선물로 20만원짜리를 사 줬다 치자. 그런데 자기 아이는 5만원짜리를 받으면 서운함이 생기기 마련이다. 반면 자기는 5만원짜리를 사 줬는데 아이가 20만원짜리를 받으면? 뭔가 빚졌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선물에 대한 인간의 이런 허위의식을 파헤쳤다. 그는 선물을 줬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해야만 비로소 선물이 된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대가를 바라는 뇌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소한 준 사실을 잊으려는 의지라도 가져야 선물로서 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럼 내가 그동안 주고받은 것 중 선물이 얼마나 될까. 있기는 한 걸까? 그래도 친구의 과일 박스는 선물로 믿고 싶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자식 월급/최광숙 논설위원

    대학 졸업 후 일을 하면서 월급의 일정 부분을 어머니께 드렸다. 결혼 후에는 시댁에도 매월 똑같이 용돈을 드린다. 많이는 못 드려도 그게 힘들게 자식 키운 부모님한테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여겼다. 내 또래의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자식들이 번듯한 직장을 다녀도 경제적 지원을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지인의 딸은 유명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한다. 그런데도 지인은 딸에게 용돈은 물론 옷과 구두 등 생활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 딸의 연봉이 자신보다 많지만 딸이 어렵게 번 돈을 한 푼도 쓰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한 고위 공직자는 최근 취직한 딸에게 생활비와 대학 학자금을 내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딸이 경제 활동을 하니 그게 옳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다만 생활비는 결혼 전까지만 보태도록 하고, 학자금은 결혼 후에도 받을 것이란다. 딸도 아빠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며 매월 100만원을 생활비로 내기로 했다고 한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이 벌어 온 돈이 귀하지 않겠는가. 귀한 돈일수록 잘 쓰도록 가르치는 것도 부모의 몫이 아닐까 싶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선한 사마리아인/구본영 논설고문

    울리히 베크는 현대사회를 한마디로 ‘위험사회’로 압축했다. 최근 19년 만에 진범을 가리는 재판이 다시 열린 ‘이태원 살인사건’의 전말을 보고 이를 실감했다. 무고한 젊은이가 우연히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으니. 그것도 평소 원한이 있을 리 없는 생면부지인 인물의 공격을 받아서…. 이런 ‘묻지마 범죄’가 빈발하는 까닭이 뭘까. 전문가들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경제·사회적 불평등·불공정성이 울분과 혈기를 분출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21세기 한국 사회가 이른바 ‘울혈(鬱血) 사회’로 바뀌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 기우에 불과한 것인가. 어제 아침 출근길 지하철 서울역 환승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순간이었다. 옆 계단에서 한 청년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지나가던 남녀 여럿이 이 낯선 청년에게 응급조치를 해 주려 몰려들었다. 필자가 다시 내려갔을 때는 다행히 그 청년이 기운을 차린 뒤였다.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임을 새삼 확인했다. 이웃의 고통에 무감각한 이들보다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더 많으니 말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봉사 바이러스/손성진 논설실장

    길을 가다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숨을 내쉬면서도 선뜻 주머니를 열지 못한다. 내가 한 푼 주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지만 남을 돕는다는 게 말이 쉽지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는 어렵기 때문이기도 할 게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실천하지 못하면 허사 아니겠는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이맘때면 연탄배달 봉사를 빼먹지 않고 하는 지인을 보고 사람을 달리 보게 되었다. 일년에 몇 번일지언정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혹한 속에서 연탄을 들고 나르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같지는 않다. 메마른 듯하지만 의외로 따뜻한 구석이 많은 게 세상이다. 체온만큼 마음도 따뜻한 게 인간이다. 어렵게 번 거액을 희사하는 독지가들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을 돕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연예인들도 연탄 봉사, 목욕 봉사 등을 하고 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둡지만은 않다. 이젠 행동으로 옮겨 보려 한다. 경제 상황이 어렵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이럴 땐 더 힘들 테다. 따뜻한 마음이 바이러스처럼 퍼져 어려운 시기를 넘겼으면 좋겠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명절 스트레스/손성진 논설실장

    시골 종갓집을 지키며 사는 종손이나 종부를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제사, 시제, 성묘, 명절, 손님 치르기 등 종갓집 대소사는 사흘이 멀다 하고 닥친다. 서울에 살며 근근이 봉사(奉祀)만 하는 나로선 종손이란 이름조차 부끄럽다. 시제에 가 보면 젊은 후손들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성묘도 일흔이 넘은 어른들이 노구를 이끌고 이어 나가는 형편이다. 젊은 세대의 유교 문화에 대한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하긴 흩어져 있는 선조들의 묘 위치를 여태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도 없다. 이제 곧 설이다. 연휴에 쉬지도 못하고 음식 장만하느라 녹초가 되는 명절이 젊은 며느리들에게 반가울 리 없다. 벌써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을 게다. 제사나 명절을 둘러싼 갈등이 없는 집안은 없다. 제사 지내기 싫어 기독교로 개종하는 며느리도 있다고 하나 욕하기도 어렵다. 명절이나 제사를 집안 파티로 생각하면 어떨까. 자주 보지 못하는 일가친척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한다고 하면 마음이 좀 가벼울 것 같다. 그러자면 아들이든 딸이든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야 한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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