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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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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생각, 세 번/박홍기 논설위원

    “생각, 세 번 해보란 말 들어 봤나.” “공자께서도 두 번 생각을 말씀하셨는데….” 고전(古典) 번역 쪽에서 일하는 선배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던진 ‘세 번 생각’에 대한 대구다. 그러면서 고려의 재상 이규보의 말을 들려줬다. ‘섣불리 생각하지 말자. 섣불리 생각하면 틀리기 쉬우니. 너무 깊이 생각지 말자. 너무 깊이 생각하면 의심이 많아지니. 잘 헤아리고 절충하여 세 번 생각하는 것이 가장 알맞으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사사로운 뜻이 일어나 현혹될까 걱정해 한 말이라는 해석도 달았다. 세 번 생각이나 두 번 생각이나 취지는 똑같다. 이치를 잘 따져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일에 대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 과감하게 결정해야 할 사안에 대해 괜히 의심하다 일을 망치는 것 모두를 경계하는 지혜다. 자기 의지와 달리 갖가지 일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허겁지겁 일을 처리하고서는 세심하게 앞뒤를 재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 별 생각 없이 한 말과 행동으로 상대를 언짢게 하기도 했다. 너무 따지다 때를 놓친 적도 있다. 삶인 까닭이다. “충분히 생각하고 과감히 결단하라.” 공감이 크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봄비/손성진 논설실장

    봄비가 제법 세차게 내린다. 메마른 가슴과 타들어 가는 대지를 흠뻑 적셔주어 먼 길 걷다 만난 샘물처럼 고맙기 그지없는 비다. 이 비가 그치면 푸릇푸릇한 신록이 온 산을 덮으리라. 우리네 마음도 촉촉이 젖어 이럴 때면 파전을 곁들인 막걸리 한잔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만개한 꽃잎을 떨어뜨리는 것도 봄비이니 봄비의 분위기는 왠지 서럽고 슬프다. ‘어룰 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어룰 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서럽다, 이 나의 가슴속에는!/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그러나 해 늦으니 어스름인가/애달피 고운 비는 그어 오지만/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봄비, 김소월) 통속적인 대중가요들이 그렸듯이 봄비는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오래도록 봄비가 내릴 때쯤이면 그 비처럼 기다리던 사랑이 찾아오고 또 떠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봄비는 반가움과 기쁨의 느낌을 주는가 하면 주르륵 흘러내리는 한줄기 눈물 같기도 하다. 때로는 우산을 들지 말고 따스한 듯 차가운 봄비를 온몸으로 맞아보고 싶다. 세상사에 찌든 답답한 속까지 시원하게 씻어주지 않을까.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황금수와 꽃잎/강동형 논설위원

    아인슈타인에게 한 여학생이 방정식에서 무엇을 찾느냐고 묻자 그는 “신의 생각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숫자를 ‘신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숫자를 통해 ‘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숫자에도 황금수가 있는데 황금비(1대1.618…)를 구성하는 무리수를 황금수라고 한다. 그리고 황금수는 피보나치수를 통해 얻을 수 있다. 피보나치 수열은 1과 2를 제외한 앞의 두 숫자를 더한 값(예 1, 2, 3, 5, 8, 13, 21, 34…)으로 앞의 작은 수로 뒤의 큰 수를 계속해서 나눈 값이 황금수다. ‘신의 생각’이란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연계의 모든 꽃잎이 피보나치 수열이라는 수학 상수에 의해 철저하게 제어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정말일까? 책에 나온 내용이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책을 읽은 뒤부터 없던 버릇이 하나 더 생겼다. 꽃만 보면 꽃잎을 세어 보는 습관이다. 데이지의 꽃잎은 5장, 8장, 13장이다. 코스모스는 8장, 채송화는 5장이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길을 걷다 걸음을 멈추고 무심히 피어 있는 꽃잎을 세어 보라. 4장이나 6장짜리 꽃잎을 찾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길섶에서] 품앗이/박홍기 논설위원

    아직 봄인데 여름 같다. 바람이 있지만 덥다. 푸른 산에는 진달래꽃이 여전히 붉다. 이른 아침부터 어른들의 손길이 바쁘다. 못자리를 하는 날이다. 파랗게 싹이 난 모판을 줄지어 논에 내다 놓았다. 논에는 적당히 물이 차 있다. 가지런히 놓이는 모판은 잔디 같다. 모판 정리가 끝나자 대나무로 지줏대를 세워 비닐을 씌운다. 모가 좀 더 자라게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다. 논농사는 밭농사에 비해 품이 덜 든다. 기계화가 많이 됐다. 모내기, 벼 베기, 탈곡의 과정은 거의 다 기계의 힘에 의지한다. 농사의 진화랄까. 한편으론 농촌을 지키는 어른들이 고령화된 까닭이다. 그래도 농부의 손이 닿지 않고서는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는 게 농사다. 품앗이가 남아 있는 이유다. 동네 어른 예닐곱 분이 못자리에 나섰다. 볍씨를 모판에 뿌린 지 1주일 만이다. 흙을 넣고, 물을 뿌리고, 볍씨를 놓고, 다시 흙을 덮는 파종도 전과 달리 기계에 의존한다. 단계마다 일손이 필요해서다. 못자리가 끝날 무렵 새참을 내오셨다. 흙 묻은 손을 논물에 씻고 둘러앉아 막걸리 한 잔씩 시원하게 들이켜시더니 “올 농사도 절반이 끝났어” 넓은 들판처럼 표정도 환해지신다. 농사철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주름의 향/임창용 논설위원

    나이 쉰을 넘기면서 거울 보는 횟수가 잦아진 것 같다. 간혹 눈썹이나 콧속에서 하얀 터럭이 돌출하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다. 엊그제 출근 전 거울을 보니 터럭은 없는데 눈 주변 주름이 장난이 아니다. 언제 이렇게 주름이 많아진 거야? 큰 사고라도 난 양 떠들자 아내가 ‘오십 중반에 새삼스럽게 웬 호들갑?’ 하는 표정을 짓는다. 요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여성들이 적지 않다. 동네 카페에만 가도 외모만으론 모녀간인지, 자매간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있다. 딸이 이십대, 삼십대라면 엄마는 오십대, 육십대일 터인데 눈가에 주름 하나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 정치인들은 더하다. 십수년 전 초선 시절보다 더 젊어 보인다. 거리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성형외과, 피부과 간판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주름은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향내가 아닐까. 수십년 땡볕을 견뎌 낸 농부의 굵은 주름을 보면 묵은 흙내가 나는 듯하다. 수십 년간 민초의 아픔을 고민해 온 정치인의 주름에선 헌신의 땀내가 나야 할 것 같다. 이럴 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나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의 유난히 굵은 주름이 아름다워 보인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성공과 실패의 차이/오일만 논설위원

    대학교 때 일이다. 늘 주위에 미인이 끊이지 않던 친구가 있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장동건이나 송중기 스타일의 꽃미남은 아니다. 그렇다고 돈 많은 부잣집 도련님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 친구에게 좀 미안한 말이지만, 여자들이 좋아할 구석이 별로 없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듯하다. 한번은 그 친구와 술자리를 갖게 됐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야,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비결이 뭐냐”라고 넌지시 물었다. 그 친구 답변이 걸작이었다. “남자들은 늘씬하고 예쁜 아가씨들을 만나면 대부분 남자 친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십중팔구 말도 못 걸고 포기하지만 나는 아니다. 무조건 시도하면 성공의 확률은 절반이 된다. 반대로 시도도 안 하면 확률은 제로다.” 뭔가 머리를 때렸다. 고수에게 한 수 배운 기분으로 한잔 진하게 마신 기억이 새롭다. 삼포(연애, 결혼, 출산)를 넘어선 N포(모든 것을 포기) 세대들의 좌절이 안타깝다. 꿈조차 빼앗아 간 팍팍한 현실이 야속하고 때론 분노도 치솟을 것이다. 그렇다고 도전도 해 보지 않고 지레 포기하면 희망마저 사라진다. 실패해도 좋다는 두둑한 배짱과 도전 정신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가능성은 열려 있지 않을까.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어느 날 점심/서동철 논설위원

    점심 약속이 없을 때는 굳이 같이 밥 먹을 사람을 찾지 않는다. 오히려 신경 쓰지 않고 호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오늘은 점심 메뉴로 세운상가 근처의 칼국수집을 떠올렸다. 주변의 작은 전자부품 가게 주인인 듯 혼자 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몇 년 전 처음 갔을 때는 3500원이었는데, 그사이 4500원으로 오르기는 했다. 그래도 밥을 사겠다고 누굴 데려가기는 좀 민망하다. 다음에는 나름대로 ‘문화생활’을 하는 거다. 조계사 경내에 있는 불교중앙박물관으로 간다. 뜰에서는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김밥을 먹고 있다. 귀여운 것들…. 대웅전의 부처님도 흐뭇하시겠구나 싶다. 박물관에서는 옛 비석의 탑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입구의 보령 성주사터 낭혜화상탑비부터 인상적이다. 최치원이 썼다는 비문의 한 대목은 이렇다. ‘대사는 장년부터 노년까지 스스로 낮추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 집을 짓거나 고칠 때도 뭇 사람보다 앞장서서 노역했다. … 식수를 길어 나르거나 섶나무를 지는 일도 더러 몸소 하였다.’ 소박하게 묘사할수록 훌륭한 분이라는 믿음을 깊게 하는 매력 있는 글이다. 회사로 돌아오는데 괜히 웃음이 났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작은 결혼식’/구본영 논설고문

    셰익스피어는 “남자가 (여성을) 설득할 때는 화사한 4월”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맞는 듯 4월이 되니 청첩장이 하나둘 쌓이고 있다. 시인 하이네가 그랬다. “결혼 행진곡을 들으면 언제나 싸움터로 향하는 군대 행진곡을 떠올린다”고. 가슴 설레는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일지라도 막상 결혼 생활은 남녀가 서로 부딪치는 험난한 과정이기 십상이란 뜻일 게다. 하긴 요즘 결혼식 하객들도 한바탕 전투를 치르기 일쑤다. 몇 주 전 세 건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서울 강북에서 열린 선배 아들 결혼식엔 축의금만 대신 전달하고 강남이 식장인 친지 딸 결혼식에 얼굴을 비춘 뒤 친구 아들 피로연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 계획을 짰다. 하지만 계획은 철저히 어긋나 버렸다. 교통난으로 늦게 도착한 세 번째 결혼식 피로연은 벌써 파장이었고, 다른 커플의 하객들로 채워질 참이었다. 우리네 결혼식 풍속도가 늘 이렇다면 딱한 노릇이다. 숱한 고통을 이겨 내야 할 인생의 전장이 기다리고 있는데 새 출발 하는 남녀가 큰돈을 들이고도 쫓기듯 혼례를 치러야 한다면…. 집 주변의 학교 강당, 혹은 교회·성당 등에서 치르는 ‘조촐한 결혼식’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들꽃/이경형 주필

    옅은 황사가 끼긴 했지만 강가 버드나무에 앉아 있는 가마우지의 윤곽은 보인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둑길을 따라 걷는다. 길섶은 온통 초록색이다. 그냥 지나치면 풀밭에 불과하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관찰하면 눈앞엔 작은 풀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자주색 꽃잎의 병꽃풀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참을 걷다가 보물찾기라도 하듯 길섶을 살핀다. 노란색의 꽃다지가 흰 꽃을 피운 냉이와 어깨동무를 하며 속삭이고 있다. 게으른 봄날에 노란 꽃잎들을 날려 보낸 민들레는 벌써 갓털 씨앗을 머리에 이고 있다. 보라색의 제비꽃도 만난다. 성급한 애기똥풀은 노란 꽃망울을 몇 개씩 터뜨렸다. 앙증맞은 파란색 꽃잎에 노란 수술이 나 있는 꽃마리, 마치 광대가 부는 나팔 같은 진분홍의 꽃자루를 뽐내는 광대나물꽃들도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것들의 제 이름을 팽개치고 함부로 들꽃이라고 부르지 말자. 가까이서 보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가 넘쳐난다. 수수함 속에서도 야생화의 고집스러운 기품이 배어 있다. 나는 그동안 정말 가까이서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만이 지닌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던가.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길섶에서] 고전 영화 보기/손성진 논설실장

    책도 고전을 최고로 여기지만 음악이나 영화도 오래전에 만들어진 명작을 즐겨 듣고 본다. 위키피디아는 고전(클래식)을 ‘옛날 법식(法式), 또는 오랜 시대를 거치며 많은 사람에게 널리 가치를 인정받아 전범(典範)을 이룬 작품’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고전 영화는 옛 명배우의 모습과 더불어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영화 속의 인물과 줄거리는 허구이지만 당대를 시대 배경으로 한 영화라면 생활환경, 건물, 다니는 자동차, 주변의 행인들 등은 모두 실제이니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1961년 작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는 눈부신 오드리 헵번의 외모를 다시 보는 즐거움이 첫째라면 그다음은 55년의 격차가 나는 지금과도 어울릴, 황홀하다 할 패션 감각이다. 당시에 이미 가스레인지, 스피커폰을 갖춘 미국의 가정생활을 보는 것은 덤이다. ‘파 앤드 어웨이’(1992)는 톰 크루즈(조지프)가 니콜 키드먼(섀넌)에게 하는 이런 마지막 대사만으로도 영화를 볼 가치가 충분하다. “난 책도, 글도, 해도, 달도 몰라. 내가 아는 건 조지프가 섀넌을 사랑한다는 것뿐이야.”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잠비아 청년에 대한 추억/임창용 논설위원

    잠비아 젊은이 ‘바카리’가 4년 만에 갑자기 생각난 것은 짧은 외신 하나 때문이었다. 얼마 전 잠비아에서 젊은이 두 명이 산 채로 화형당했다는 뉴스였다. 지난달부터 잠비아 수도 루사카 시내 인근에서는 귀나 심장, 생식기 등이 없어진 잠비아인 시신들이 잇따라 발견됐다. 다른 사람의 신체 부위를 가지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 잠비아 거주 르완다인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됐다. 그리고 이를 믿은 잠비아인들이 르완다인 상가들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두 잠비아 청년을 르완다인으로 오인해 화형에 처했다는 게 뉴스 요지였다. 경찰 조사 결과 소문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소셜미디어의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밴드 등엔 줄리언 어산지를 자처하는 폭로주의자들로 가득하다. 유명인은 물론 상사나 동료, 스승, 제자, 옛 여친까지 무차별 공격 대상이 된다. 미국 연수 중 만난 바카리는 페이스북 신봉자였다. 의사가 되어 고국에서 봉사하겠다는 꿈을 지닌 젊은이였다. 고향 친구들이 소셜미디어로 인해 어이없이 죽는 걸 보고 괴로워했을 그의 표정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할머니들의 성금/강동형 논설위원

    아름다운 것에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다. 참되고 바르다는 의미를 가진 ‘진정성 있는 말과 행동’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4월 21일자 서울신문 사회면에 작지만 아름다운 기사가 실렸다. 김복동(90)·길원옥(87) 위안부 할머니 두 분이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규슈 지역 구마모토현 주민들을 위해 써 달라며 130만원을 성금으로 내놨다는 얘기다. 할머니들은 “우리는 일본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 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에게도 성금 모금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고 한다.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10억엔을 출연하기로 합의했지만 위안부 관련 단체와 할머니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성금 130만원은 보상금 10억엔에 비해 턱없이 적은 액수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성금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진정성 있는 말과 행동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들의 고운 마음이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로 이어졌으면 한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길섶에서] 소통/박홍기 논설위원

    지하철 퇴근길, 요즘 7080 노래를 듣느라 이어폰을 끼는 날이 잦다. 운 좋게 자리에 앉으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눈을 감기 일쑤다. 멍하니 앞만 보고 있는 게 그다지 달갑지 않아서다. 무심코 눈을 떴다. 맞은편 좌석에 손짓을 주고받는 젊은 두 여성이 나란히 앉아 있다. 눈길이 멈췄다.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웃는 모습은 맑았고, 표정은 예뻤다. 행복해 보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었을까, 재밌는 걸까.” 청각장애인인 줄 직감했지만 이어폰을 뺐다. 말소리가 없다. 손짓의 의미를 몰라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무심결에 궁금한 듯 귀를 쫑긋했다. 우리 삶 속에서 그들은 장애인이다. 눈으로 듣고 손으로 말하는 그들 속에 내가 있다면…. 오히려 소통하지 못하는 쪽이 장애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청각장애인은 내가 잘 모르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다. 장애인의 반대가 비장애인인 것과 같다. 일반인, 정상인이 아니다. 차이가 아니라 다름인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걸으며 생각했다. 다수의 힘을 빌려 소수의 의견을 가두려 하지는 않는지를.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배웅/서동철 논설위원

    출근길 광역버스 정류장에는 제법 긴 줄이 만들어진다. 어느 날 초로(初老)의 아주머니가 달음질치다시피 줄에 합류했다. 그러곤 조금 있다 나타난 젊은 여성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딸인 듯싶었다. 어머니의 미소는 환하기만 했다. 딸이 첫 출근을 하는 날일까. 이렇게 생각이 미치니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에서 대견스러움이 묻어나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같은 모습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딸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표정은 여전히 흐뭇하기만 했다. 딸은 신입 사원이 아니더라도 지각하면 곱지 않은 눈초리에 시달릴 사회 초년병일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배웅을 넘어 초조한 딸의 속마음까지 배려하는 것일까. 반면 딸의 표정은 무덤덤하기만 하다. 어머니가 이야기를 건네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딸이 버스에 오르면 어머니는 어디 앉았는지 이리저리 살핀다.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쳤는지 미소를 보낸다. 보지는 못했지만, 이때도 딸은 살가운 표정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잘 다녀오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모녀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50m 미인’/구본영 논설고문

    노선배 한 분이 책을 한 권 보내왔다. 팔순을 넘긴 연배에 책까지 쓴 열정은 높이 살 만했지만, ‘거리(距離)는 미(美)’라는 제목이 좀 생뚱맞아 보였다. 책 속에서 저자의 학창 시절 에피소드를 보고 제목을 단 의도는 이해됐다. 파라솔을 쓴 여학생의 멋진 뒷모습에 반해 종종걸음으로 쫓아갔지만 앞모습을 보고 적이 실망했다는 추억담을 읽으면서다. 하긴 ‘50m 미인’이란 흔한 속어도 있다. 멀리서 보면 미인인데 가까이서 보면 아니라는…. 다만,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본론은 따로 있었다. “경제나 금융 문제도 거리를 좀 두고 볼 수 있게 되니 제대로 보인다”는 대목에서 진의가 감지됐다. 반평생 가까이 경제·금융 분야에 종사하며 시중은행장과 중소기업청장 등을 역임했던 그다. 그래서 경제의 발목을 잡는 규제 개혁만은 공무원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그의 쓴소리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의 주장의 요체는 규제를 특권처럼 여기는 공직 사회와 거리를 두고 보니 비로소 객관적 현실이 보인다는 뜻으로 새겨졌다. 경제 활성화를 가로막는 온갖 추한 규제의 실상을 산업현장에선 다 아는데 정작 50m 밖 관료들은 모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여성 의원/손성진 논설실장

    ‘역사를 이끈 아름다운 여인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클레오파트라나 엘리자베스 1세, 잔 다르크 같은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생소한 여성도 많다. 가난한 집안의 사생아로 태어나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모델로 등장하는 쉬잔 발라동(1867~1938)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모델에서 예술가들의 연인이 되었다가 그 자신이 어깨너머로 그림을 배워 화가가 된 여성이다. 여성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최초로 주장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 여성 참정권 운동을 편 에멀린 굴덴 팽크허스트(1858~1928) 등은 여권(女權) 운동가들이다. 이미 여성 대통령과 총리를 배출했지만 우리나라의 여성 인권은 그리 높다고 할 수 없다. 여성이 고위직으로 올라가기 어려운 ‘유리천장’도 상존한다. 그나마 이번 총선에서는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여성 최초의 5선 의원이 등장했고 무엇보다 여성 의원 수가 51명, 17%로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여성 정치사에서 큰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오래전 고인이 된 최초의 여성 장관이자 의원 임영신, 최초의 여성 당수 박순천이 흐뭇해할지도 모르겠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까치 마음/황수정 논설위원

    속도의 시절이다. 허름한 담벼락에라도 첫 꽃을 터뜨렸으면 주인공, 간발의 차로 쏟아지게 피어 봤자 들러리. 매정한 사정을 봄꽃들이 알고 있으니 죄다 속도전이다. 어제 피었나 싶더니 힘없는 봄바람이 시비만 걸어도 오늘은 제 풀에 항복, 무더기 낙하. 목련, 벚꽃, 안 그런 꽃이 없다. 심지 없는 봄꽃들. 봄 흥(興)과 봄 근심 사이를 헤맸다는 옛 시인들 마음을 알겠다. 팥죽 끓는 마음은 계절 탓이다. 짧아 감질나는 봄꽃의 생애 탓, 초목들 태깔에 변화무쌍하라 부추기는 봄볕 탓이다. 집 앞마당은 까치들 차지다. 뭘 기다리는지 온종일 뱅뱅거린다. 은행나무, 메타세쿼이아 꼭대기에 옴팍하게 들앉은 까치집의 주인장들. 요란하게 꽃 터지는 나무에는 아예 둥지 틀지 않는 뚝심의 주인공들. 엄동에도 마당을 떠난 적 없는 텃새한테 꽃나무는 일없다. 제비가 강남을 다녀왔든 말든 남의 일이다. 짙어질 잎만 기다린다. 둥지 품어 줄 무성한 잎. 제자리 지키는 침묵으로도 득의의 삶이다. 일상을 지키는 일이 버거워 온탕냉탕 조울증, 봄바람에 팔랑귀. 내 마음, 까치 마음을 몇 번이나 저울에 올려 보는 봄날.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짜장면의 추억/강동형 논설위원

    어제 4월 14일은 ‘블랙데이’였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에 초콜릿, 사탕을 받지 못한 싱글이 짜장면을 먹는 날이라고 한다. 내게도 짜장면에 대한 추억이 있다. ‘촌놈’들의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일이다. 우리는 먼 길을 돌아 목포역 앞 중화반점에 자리를 잡았다. 선생님이 짜장면과 우동을 먹자고 했다. 검은 걸 먹고 싶은데 이름을 몰라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내 앞에 앉은 친구에게 검은 음식이 담긴 그릇을 가리키며 이름을 물었다. 그는 “우동”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아! 우동. 선생님이 “짜장면 먹을 사람” 하자 한 테이블에 앉은 우리 네 명만 가만히 있었다. 이어 선생님이 “우동 먹을 사람”이라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손을 들었다. 그릇이 테이블에 놓였고, 검어야 할 우동은 하얀색이었다. 그제야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선택을 강요한 선생님이 야속했고, 친구에게 물어본 걸 후회했다.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과 첫 대면을 했다. 상상 속의 그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은 있었다. 짜장면이란 이름만 들어도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는 건 ‘아픈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길섶에서] 첫 투표/박홍기 논설위원

    첫 국회의원 투표다. 아침 9시쯤 아버지, 어머니가 “처음 하는 투표인데 기념해 줘야지”라며 함께 나서셨다. 새벽에 내린 비에 길은 젖어 있었다. 벚꽃과 개나리꽃은 여전히 자태를 뽐내는 듯했다. 바람에 꽃잎이 날렸다. 투표장 가는 길에 “준비됐니”라고 어머니가 물으셨다. “그럼…”, 짧게 답하자 미소를 지으셨다. 거실에 있던 선거 홍보물을 훑어봤다. 선거 번호도 확인했던 터다. 투표장은 멀지 않았다. 젊은 부부가 벌써 투표를 끝내고 나오고 있었다. 안내 표시대로 따라갔다. 한산했다. 기다림도 없이 본인을 확인하고, 선거인 명부란 곳에 사인하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에 들어갔다. “정치인을, 정당을 내 손으로 선택하는구나.” 내 한 표가 의원을 만들 수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생각하니 순간 긴장됐다. 신중해졌다. 염두에 둔 후보가 있었는데…. 투표를 마친 뒤 아버지, 어머니와 번갈아 가며 인증샷을 찍었다. “누구 찍었니”라고 던지는 아버지의 농담에 “비·밀·투·표”라며 웃어넘겼다. 대단한 일이라도 한 듯 뿌듯했다. “선택한 후보가 정말 훌륭한 정치인일까, 정치를 잘할까.” 꼭 지켜볼 작정이다. 처음 참정권을 행사한 만 19세 청년의 얘기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성차별/최광숙 논설위원

    남녀 차별 얘기를 하면 혹자는 “요즘 어떤 시대인데 성차별을 하나” 하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받는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남성들이 지배해 온 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쉽게 바뀌지 않는 법. 요란하지 않고 교묘한 남녀 차별이 있다. 일부 목욕탕은 여성 손님에게 수건 2장을 준다. 여성은 수건을 많이 쓴다는 이유로 2장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은 적게 쓴다고 보고 목욕탕 안에 수건을 쌓아 놓고 마음대로 쓰게 한다. 수건을 서너 장씩이나 거리낌 없이 쓰는 남성들이 당연히 있다. 최근 헬스장에서 청소 일을 하는 한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곳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의 점심을 아주머니들이 챙긴단다. 각자 낸 돈을 모아 아주머니들이 장을 본 뒤 밥과 찌개는 물론 반찬까지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는 며칠 전 일을 그만두면서 “5년 내내 아저씨들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이제 그 황당한 성차별은 끝날 듯하다. 새로 온 청소 아주머니가 “나는 남자들 밥 못해 준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발전은 저항에서 시작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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