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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부부 위패/박홍기 논설위원

    현충원을 찾았다. 큰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 영원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큰 글귀가 들어왔다. 수많은 묘비를 빼고는 산도, 나무도 온통 푸르다. 허리가 굽은 한 노인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묘역 쪽으로 걸었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가족도 눈에 띄었다. 찾는 이들의 사연은 묘비만큼 많을 듯싶다. 현충탑 뒤편 위패봉안관 왼쪽에 부부 위패비가 있다. 태극 문양의 받침돌을 한 검은 비석이다. 번호와 함께 두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한 분이라도 애국지사일 경우 함께 봉안할 수 있다. 올해 초 뒤늦게 모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곳이다. 할머니는 3·1 운동 당시 공주 장터에서 독립운동을 이끌다 체포돼 모진 옥고를 치르셨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어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묵념을 했다. 위패봉안관에 들렀다. 영현승천상이 살아 있는 듯하다. 국화 향기와 향내가 짙었다. 위패 앞에 놓인 꽃다발에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다녀갑니다’, ‘편히 쉬세요’라는 메모들이 꽂혀 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한참 위패를 쳐다보고 서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으시길래.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6월의 의미/손성진 논설실장

    6월은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기온은 계절을 앞질렀지만 6월이 되니 비로소 여름이 마음으로 느껴진다. 짙푸른 녹음과 시원한 계곡이 있기에 무더위가 싫지만은 않은데 짜증 나는 뉴스들이 올리는 체온은 견디기 어렵다. 정치인들의 싸움은 그칠 줄 모르고, 서민에게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인 100억원대의 부정한 돈에 관한 기사가 난무하고, 19세의 젊은이가 위험한 일을 하다 비명(非命)에 가고…. 양력 아닌 음력이지만 6월 15일을 유둣날이라고 한다. 유두란 ‘동유두목욕’(東流頭沐浴)에서 나온, 거의 사라진 민속명절로 이날이 되면 동쪽으로 흐르는 냇가에서 머리를 감으며 몸을 깨끗이 씻는다. 유둣날이 오면 혼자서라도 열이 오른 몸을 깨끗이 씻고 마음을 정화하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든다. 그래도 서양에서 6월은 좋은 의미가 많은 달이다. 6월에 결혼하면 운이 따른다는 말이 있다. 6월의 영어 준(June)은 로마신화의 유노(그리스 신화의 헤라)에서 이름을 따 왔는데 유노가 결혼의 여신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6월에 치러지는 결혼 청첩장을 여러 장 받았다. 새 세상을 열어 갈 그들을 축복해 줘야겠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이런 조의(弔意)/서동철 논설위원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기사를 쓰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글씨를 쓰는 손의 기능은 크게 퇴화하여 이제는 내가 쓴 글자를 내가 못 알아볼 지경이 됐다. 이런 와중에서도 갈수록 자신 있게 쓰게 되는 글자도 있으니 바로 ‘부의’(賻儀)다. 가까이하지 않아야 좋은 글자건만 써야 할 일은 더 잦아지니 이런 게 인생인가 보다. 엊그제도 그랬다. 지방 소도시 요양병원의 장례식장은 북적거렸다. 문상을 마치고 언제나처럼 부의를 전달하려 하니 받지 않는단다. 돌아가신 어르신이 유언처럼 하신 말씀이 “내가 죽거든 아무것도 받지 말고 밥 한 끼 잘 대접해서 보내 드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상청(喪廳)을 채우고 있는 농촌 동네 이웃들에게 어르신의 뜻은 더욱 사려 깊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뜻이 문상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고민을 안겨 주었다. 누군가에게 전달을 부탁하거나, 상주의 은행 계좌에 송금을 하기도 하지만 소용없어진 것이다. 결국 직접 전화를 걸어 위로하는 방법밖에는 남지 않는다. 어르신은 ‘봉투’가 아니라 목소리로 전하는 조의(弔意)를 듣고 싶으셨나. 문득 생각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경유차 정책/임창용 논설위원

    요즘 신문 읽기가 불편하다. 매일 몰고 다니는 경유차가 연일 공해의 주범으로 두들겨 맞아서다. 졸지에 내가 환경파괴범이라도 된 듯싶다. 세금을 올리느니, 환경부담금을 물리느니 하는 통에 걱정거리까지 생겼다. 억울한 기분도 든다. 연비가 뛰어나고 연료비가 싸서 샀는데 그게 죄가 되나? 10여년 전 경유 승용차 도입을 앞두고 미세먼지 논란이 일자 정부는 ‘환경부의 의견은 이렇습니다’란 자료를 냈다. 무려 16쪽짜리다. 요지는 도입하더라도 대기오염 관리에 문제가 없다는 것. 노후 버스·트럭이 문제일 뿐 최근 경유 승용차는 엔진기술이 발달해 매연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극찬까지 했다. 휘발유차보다 이산화탄소나 탄화수소는 적게 배출한다며 경유차를 ‘나쁜 차’로 인식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런 환경부가 태도를 싹 바꿨다. 그때보다 엔진기술이 나아졌고, 오염물질 배출이 줄었는데도 말이다. 당시 조사 결과는 온데간데없고, 주문제작 냄새나는 수치만 난무한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특단의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으라고 지시한 뒤부터다. 아무리 놀랐기로서니 주무 부처가 천둥에 개 뛰어들 듯 정책을 급조해서야 되겠나.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하얀나비/강동형 논설위원

    나비는 인간과 가장 친숙한 곤충 가운데 하나다. 그의 날갯짓은 중력과 사투를 벌이는 것 같아 안쓰럽다. 호랑나비, 노랑나비, 흰나비 등 나비는 색깔과 크기가 다양해 지구상에 20만종이나 서식한다고 한다. 유월의 정오. 땡볕이 내리쬐는 광화문광장 사거리 횡단보도 위에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힘겹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 사람을 이리저리 피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하얀 나비의 곡예비행을 한동안 지켜봤다. 김종길 시인의 ‘바다로 간 나비’처럼 청계천을 찾아 나선 것일까, 아니면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스친다. 횡단보도에서 만난 나비가 하얀 나비가 아니라 호랑나비였다면 눈길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특정 사물을 보면 연상되는 게 있기 마련인데 내게는 하얀 나비만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어머니다. 언제부터인지,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하얀 나비의 이미지가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소시민의 일상에서 어제도 그제도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을 잠시 잊고 있었다. 광화문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하얀 나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길섶에서] 보리/최광숙 논설위원

    이메일의 아이디(ID·Identity)로 ‘보리’를 쓴다. 가끔 자료를 받아야 할 경우 상대방에게 아이디를 불러 주면 “쌀, 보리 할 때 그 보리예요?” 하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자면 길어지니까 그렇다고 답한다. 그런데 그제 공직에 있는 한 친구가 아이디를 문자로 알려 줬더니 “참 좋다. 지혜, 깨달음…, 혹 불자니?”라고 물었다. 불교에서 보리(菩提)는 깨달음의 지혜를 말한다. 사실 보리의 뜻을 아는 이가 많지 않기에 친구의 폭넓은 상식에 다소 놀라고 있는데 확 깨는 답변이 돌아왔다. “참고로 우리 집 강아지 이름도 ‘보리’야. ㅋㅋ” 그 순간 돈벌이에 급급해 새끼 출산을 늘리고자 인위적으로 강아지를 번식시키는 ‘강아지 공장’ 논란이 떠올랐다. 어찌 새끼를 낳는 고귀한 일이 ‘출산 학대’가 되었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것이 어디 강아지 공장뿐일까.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돈 앞에 무너져 생명도, 양심도, 인격도, 도리도 저버리는 일들이 다반사가 됐다. 강아지 주인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리가 깨달음을 얻어) 열반하실 때까지 잘 모셔라.”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정(情) 맛/서동철 논설위원

    전주 가는 길, 익산역에 내리니 갈아탈 버스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역전의 작은 중국집에 들어섰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여행길에는 꼭 짜장면이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짜장면 맛은 비슷하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구미에 당기는 식당이 보이지 않자 결국 그 ‘지혜’를 떠올린 것이다. 70대를 훌쩍 넘겼을 할아버지 배달원 세 분이 있었다. 붉은 두건으로 멋을 낸 할아버지는 볶음밥 한 그릇을 배달해 달라는 전화에 “어려운데…” 하면서 머리를 긁다가 결국 응하고 말았다. 그러곤 옆의 할아버지에게 “당신이 자꾸 한 그릇도 배달해 주니까 못 한다고 할 수가 없잖아” 하고는 불평을 했다. 그러자 ‘한 그릇 배달 전문’ 할아버지는 “가까운데 내가 가지, 뭐” 하는 것이었다. 이때 걸려온 전화는 “짬뽕밥을 시켰는데 밥이 안 왔다”는 내용인 듯싶었다. ‘두건 할아버지’가 밥공기를 들고 급하게 나서려는 순간 ‘밥 없는 짬뽕밥’ 할아버지가 들어섰다. 그는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하고 수없이 자책했고, 두건 할아버지는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런 적 있어” 하고 위로하는 모습이었다. 이렇듯 정겨운 풍경을 덤으로 주는 집 짜장면이니 당연히 맛있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모내기/박홍기 논설위원

    물이 찬 하얀 들판이 파랗게 바뀐다. 파릇파릇 싹이 돋아난다. 겨우내 황량했던 들판에 물이 차더니 생명의 기운을 되찾은 것 같다. 이앙기가 지나갈 때마다 파란 뗏장이 입혀진다. 모내기다. 참 세상 좋아졌다. 모내기 땐 동네가 시끄러웠다. 집안 식구들이 전부 나섰다. 동네 어른들은 품앗이를 나왔다. 애들도 한몫했다. 어른들이 허리를 펴면 논둑에서 잡고 있던 못줄을 옮겼다. 줄지어 늘어선 어른들의 손놀림은 신기했다. 동시에 심고 똑같이 일어났다. 못줄이 정확한 간격으로 이동할 때마다 논의 빛은 점점 파래졌다. 요즘 모내기엔 애들이 없다. 못줄도 없다.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어른들은 못자리 논에서 모판을 꺼내 이앙기에 얹어 놓는 일을 맡을 뿐이다. 예전보다 많이 편해졌다. 일일이 모를 뽑아 묶을 필요도 없다. 규격화된 모판에서 모가 자라서다. 그런 만큼 동네도 조용하다. 넓은 논이 모로 채워질 즈음 멀찍이 머리에 이고 든 모습이 들어온다. 새참이다. 달려가 받아 든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풍경이다. 땀을 훔치며 모두 그늘 아래 둘러앉는다. “올 모내기는 좀 빨랐네.” 파릇한 모들이 바람에 날린다. 산에선 뻐꾸기가 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동네 미용사/최광숙 논설위원

    얼마 전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동안 미용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찌감치 진로를 고민한 끝에 정한 직업이 지금 하는 일이라고 한다. 한창 철없을 나이에 “결혼해서도 안정적으로 일할 직업이 뭘까 고민했다”고 하니 보통 야무진 성격이 아니지 싶다. 더구나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할 정도 공부를 못한 것도,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만큼 집안 형편이 어렵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미용학원에 다니겠다는 고교생 딸의 ‘반란’에 부모님들의 반대가 심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신용카드를 훔쳐 몰래 미용학원을 등록했고, 아르바이트를 해 몇 달 후 어머니 돈을 갚았단다. 처음에는 마땅찮아 하던 부모님은 이제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자리를 잡아 가는 딸을 열심히 응원한단다. 그의 꿈은 이제 돈을 좀더 모아 자신의 미용실을 차리는 것이다. 물론 한 기업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남자 친구와 결혼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누군 ‘헬조선’ 하며 절망한다는데 그는 차근차근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열심히 도전하는 이들에게 꿈은 이루어지는 법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미스김’의 귀향/구본영 논설고문

    몇 주 전 진로 문제로 방황하는 막내아들과 함께 충북 음성의 사회복지시설인 꽃동네를 찾았다. 심신이 모두 불편한 중증 장애인들을 하루 동안 돕는 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수용자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은 시설 앞마당을 산책할 때였다. 정신 지체에다 앞도 못 보는, 한 수용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나갔다. 그런 그도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수목의 향기를 맡으며 환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며 나 자신이 외려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세상사의 온갖 시름을 더는데 자연만 한 명약이 있을까 싶었다. 토종 라일락을 개량한 ‘미스김 라일락’이 귀향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미 군정 시절 자문관인 식물학자가 북한산 야생 수수꽃다리 종자를 채취해 미국에서 개량한 품종이다. 한국인 타이피스트 성을 딴 꽃 이름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라일락이란다. 그 ‘미스김’이 이제 더 예뻐진 자태와 진한 향기를 뿜으며 광릉 수목원으로 돌아온단다. 재미 교포 백영현씨의 도움으로 귀향한 미스김 라일락이 유치환 시인의 시구처럼 ‘삶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는’ 많은 사람을 힐링할 수 있다면 참 고마운 일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50대의 행복지수/임창용 논설위원

    친구들 모임에서 대화의 절반은 노후 얘기다. 50대 중반이 가까워지면서 모든 관심이 은퇴 후에 쏠려 있는 것이다. 50대는 자녀가 대학생이거나 결혼을 앞둔 사회 초년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비나 결혼비용 마련 같은 시급한 문제와 함께 은퇴 후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기다. 노후 얘기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그럴듯한 계획을 세워 놓지 못해서다. 교육과 출가부터 시켜야 한다는 강박에 은퇴 후 얘기는 뜬구름만 잡다 끝나기 마련이다. 이런 사정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며칠 전 페이스북 계정에 미국인들의 행복지수를 나타낸 그래프가 떴다. 조사기관인 닐슨이 세대별로 행복지수를 조사해 그래프로 표현했다. 행복지수가 18~21세 이후 점차 떨어지다가 50~53세에 최저점에 이른다. 노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스트레스가 극에 이름을 보여 준다. 재미있는 점은 그 이후 행복지수가 반등해 82~85세에 최고에 이른다는 것. 닐슨은 나이 듦에 대한 인정(acceptance of aging) 때문으로 분석한다. 마음을 비워서라고 해석하고 싶다. 그래프만 보면 시간이 약이다. 친구들아, 앞으로 노후 얘기는 대화 목록에서 빼자.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작은 차 예찬/서동철 논설위원

    15년 동안 30만㎞를 달린 자동차를 폐차장에 보낸 것이 재작년 이맘때다. 당시 산 새 차의 누적 주행 거리가 6만㎞를 가리키고 있으니 그동안 어지간히도 돌아다녔다. 이미 헌 차가 된 지금의 승용차는 1600㏄짜리다. 버린 차는 2000㏄ 중형급이었으니 크기를 줄인 것이지만 작은 차의 만족도는 높다. 이른바 준중형 승용차를 타고 보니 엔진의 배기량은 분명히 작지만 차의 크기가 중형차보다 작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제원을 찾아보니 최근의 준중형차는 20년 전에 타던 2000㏄ 중형차보다 폭이 오히려 넓었다. 준중형차는 중형차만큼, 중형차는 대형승용차 버금가게 커졌음을 알 수 있었다. 작은 차의 장점은 연비가 좋다는 것이다. 디젤차가 경제적이라지만 휘발유 값에 큰 부담을 느끼지 못했다. 무리한 운전을 하지 않아 사고 위험도 그만큼 낮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힘이 넉넉하지 않으니 급가속이나 급추월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한다. 미세먼지 논란이 불거지면서 장점이 늘었다. 하이브리드차만큼은 아니지만 디젤차는 물론 중형차보다 공해물질 배출량이 훨씬 적다는 것이다. 작은 차를 산 것이 아주 잘했지 싶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장애인 주차구역/박홍기 논설위원

    급했다. 여느 아침과 달리 서둘렀다. 병원에 들른 뒤 수업에 늦지 않게 딸을 학교까지 태워다 줄 요량이었다. 딸이 전날 감기 기운이 있더니 결막염 증세까지 보였다. 감기라면야 학교에 보내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눈병은 다르다. 전염 가능성 탓이다. 진단에 따라 등교를 결정할 참이었다. 동네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과 같이 쓰는 상가 주차장에 들어갔다. 꽉 찼다. 주차 공간이 없다. 딱 한 군데가 이빨 빠진 듯 비었다. 장애인 주차구역. “이러면 안 되는데”, “잠깐인데”…. 찜찜함과 죄책감이 뒤섞여 오가던 중 결심했다. 빈 곳을 채웠다. 딸 손을 잡고 3층 병원으로 걸었다. 마음은 달리고 있었다. 진료는 30분쯤 걸렸다. 다행히도 전염성이 아니었다. 이젠 학교다. 부리나케 내려왔다. 승용차 앞유리에 웬 흰 종이. “헉! 딱지다.”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 과태료 10만원 통지서가 꽂혀 있었다. “잠깐인데”라는 안이함과 무책임이 딱 걸렸다. 딸을 학교에 내려주고 구청으로 달렸다. “위반하면 정말 안 되는 거 알면서도…, 죄송합니다.” 병원 영수증과 통지서 발부 시간을 제시했다. “과태료가 너무 세서요.” 고교생을 둔 한 어머니의 아침 분투기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꽃의 여왕/손성진 논설실장

    바야흐로 장미의 계절이다. 집 담벼락에 만개하여 자태를 뽐내고 있는 장미꽃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름다움보다 도도함에 취했다고 할까.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면 꽃의 여왕은 가히 장미라 할 것이다. 겹겹이 겹쳐진 선홍빛 꽃잎의 아름다움은 뭇 꽃들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다. 붉은 장미의 꽃말은 ‘열정적인 사랑’이다. 사랑하는 여성에게 장미꽃을 ‘바치는’ 이유다. 그보다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한다. 장미꽃 향기에는 여성 호르몬을 자극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여자들이 향을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장미가 도도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역시 매혹적인 모습 뒤에 감춘 가시 때문이다. 어느 날 큐피드가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반해 키스를 하려는 순간 벌이 큐피드의 입술을 쏘아 버렸다. 이에 화가 난 큐피드의 어머니 비너스는 많은 벌침을 장미 줄기에 붙여 버렸는데, 이것이 가시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장미에 가시가 있는 생물학적 이유는 해충을 막기 위해서란다. 일종의 자기 방어책이다. 아무려면 어떠랴. 그저 아름다우면 그만이지.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둥지/박홍환 논설위원

    콧바람 쐬러 가끔 찾는 한강 수계의 한 수로에서 검둥오리 일가족이 부들밭 가운데에 보금자리를 짓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 흔치 않은 기회여서 한 시간 가까이 관찰했다. 연두색 햇부들이 30㎝ 정도 높이로 성기게 솟고 있는 수로의 가장자리가 이들의 새 터전이다. 겨우내 삭아 내린 부들 줄기가 켜켜이 쌓여 한눈에도 꽤 단단해 보인다. 집짓기 재료는 삭은 부들 줄기다. 주둥이로 물고 툭툭 쳐 대며 딱 맞는 재료를 골라내는 모습이 영락없는 전문가다. 한 입 거들겠다며 새끼도 나섰지만 물장구치며 장난하기 바쁘다. 둥지는 시나브로 모양을 갖췄다. 얼키설키 엮었지만 빈틈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 베이징의 올림픽 주경기장 냐오차오(鳥巢)를 빼닮았다. 곧 무성해질 부들 줄기가 울타리가 돼 주리라. 한나절 꼬리를 물며 자맥질하다가도 오리 가족은 해가 지면 어김없이 합심의 둥지로 모여들 것이다. 때 되면 가정을 이뤄 함께 터전을 만들고, 그 보금자리에서 새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것은 생명체 공통의 유전자다. 한 뼘 둥지는 고사하고, 연애조차 엄두를 못 내는 우리 젊은이들, 이러다 유전형질마저 바뀌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다음 생/최광숙 논설위원

    절에 다녔던 어머니는 윤회(輪廻)를 믿었다. 사람이 죽은 뒤 지은 업(業)에 따라 지옥도 가고 극락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살아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해 덕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의 소원 중에는 “다음 생에는 꼭 남자의 몸을 받는 것”도 있었다. “왜 남자가 되길 바라는지”를 굳이 묻지 않아도 한 남자의 아내로, 7남매의 어머니로 살아온 한 여인의 삶이 고단했음을 딸은 잘 알았다. 이 세상 많은 여자들도 “보이지 않는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 남자로 거침없이 살아 보리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이에 대해 남자들의 생각은? 마침 한 남자의 생생한 얘기를 듣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그제 ‘묻지마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다음 생엔 부디 같이 남자로 태어나요. 슬프고 미안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추모 메시지 중 마음에 드는 문구를 인용한 것이라고는 하나 애도의 표현치고는 부적절한 게 사실이다. 정치인이라면 다음 생을 운운할 게 아니라 당장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게 옳은 게 아닌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후배/임창용 논설위원

    한동안 잊고 있던 오래전의 불편한 느낌을 떠올린 건 한 대학 후배 때문이었다. 28년 만에 동문 모임에서 본 그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생생하게 기억을 복원시켰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한가운데 섰던 후배다. 항쟁의 도화선이 된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아 쓰러지는 순간 뒤에서 부축했던 친구다. 그 자신도 며칠 뒤 최루탄에 맞아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뇌 수술을 받고 가까스로 깨어났다. 이한열의 피격 순간을 담은 대형 걸개그림은 이후 6월 항쟁의 상징이 됐다. 80년대 민주항쟁에서 난 참여하는 듯 마는 듯 경계에 있었다. 당위와 현실에 두 발을 어정쩡하게 걸친 채였다. 그래선지 묵직하게 체한 듯 불편했다. 그런 느낌은 잊고 있다가도 빚쟁이처럼 불쑥불쑥 찾아왔다. 영화 ‘동주’를 보았을 때,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듣고도 그랬다. 한강은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우리 현실을 꼬집는 반어적 의미로 읽힌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에서도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며 광주가 현재진행형임을 깨우쳐 줬다. ‘깊이 잠든 한국’은 현실의 야만을 말하는 것일까.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생인손/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자꾸 욱신욱신 쑤신다. 안 하던 짓을 한 탓인가. 모처럼 선심 쓴 봉사(?)의 후유증이 이렇게 크다. 똑같이 앉아 다듬었는데, 왜 유독 나만 아픈 걸까. 지난 일요일 멸치 다듬기가 화근이다. 혼자 앉아 굵은 멸치 대가리며 똥을 발라내는 아내의 모습이 왠지 측은해 보였는데. 거들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동참하고 말았다. 평소 대수롭지 않게 봐 왔는데, 그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 자꾸 손가락을 찌르는 가시가 영 성가신 게 아니다. 30분쯤을 다듬었는데 온 손이 가시투성이다. 멸치를 다듬는 건지, 가시를 뽑는 건지…. 서툰 손짓을 흘금흘금 쳐다보던 아내가 기어이 한 말을 건넨다. “평소 그런 일을 해 봤어야….” 콕콕 찌르는 멸치 가시보다 아내의 외마디 핀잔이 더 아프다. 그러고 보니 그놈의 멸치는 아내의 손과는 아주 친한가 보다. 단 한 번도 가시 찔렸다는 소릴 못 들었으니. 멸치도 사람을 가리는가…. 손가락이 심상치 않다. 두 손가락 끝이 노랗게 곪아 가는 게. 생인손이라도 앓게 되려나. ‘서툰 봉사’의 끝치곤 너무 아픈데.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피어나는 알 수 없는 조금의 흡족함. 뭘까.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수다의 인류학/최광숙 논설위원

    가까운 이들과 미주알고주알 사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헛헛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수다가 주는 ‘힐링’의 힘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여자들의 수다를 아주 소모적인 ‘시간 죽이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이들에게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의 ‘사회두뇌이론’을 소개한다. 그가 사람들의 대화 내용을 수년 동안 엿듣고 분석한 결과 남녀 모두 정치, 종교, 철학 등과 같은 거창한 주제보다는 주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류의 두뇌가 알파고와 같은 새로운 과학 기술의 ‘도전’에 쓰이기도 하지만 주로 수다 같은 일에 더 많이 사용된다는 뜻이다. 또 수다는 입으로 하는 ‘털 다듬기’라는 주장도 있다. 원숭이 등 대부분의 영장류들이 서로 털을 만져 주고 이물질을 떼어 주면서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수다로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고 유지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뒷담화 능력이 인간의 뇌를 발달시켰다는 얘기다. 사실 스킨십이야 동물도 하지만 뒷담화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수다를 그리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덧신 두 켤레/박홍기 논설위원

    한 여자아이가 교단 앞으로 나왔다. 쑥스러워하며 작고 예쁜 꾸러미를 내밀었다. 직접 쌌는지 포장은 좀 엉성했다. 다른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조심스레 뜯었다. 앙증맞은 덧신 두 켤레가 들어 있었다. 집에서 보낸 선물이 아니다 싶었다. 용돈으로 정성스레 마련한 ‘스승의 날’ 선물이었다. “예쁘네. 고마워, 잘 신을게.” 그 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다른 아이들도 “와!” 하며 박수를 쳤다. 지방 도시의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실이다. 아이들이 손수 만든 카드를, 색종이에다 쓴 편지를 건넸다. ‘지금까지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웃고 재밌는 게임, 즐거운 수업을 해 주시실 바래요.’ ‘어른이 돼서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 ‘편지밖에 못 드려서 죄송해요.’ 내용만큼 글씨도 색색 사인펜으로 한껏 멋을 부렸다. 교육청도, 학교도 일절 선물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통보했다. 학교 밖에선 여전히 스승의 날이 곱지 않은 듯하다. 말도 많다. 하지만 참 좋다. 뿌듯하고 보람차다. 아이들을 보면 기운이 난다. 내겐 모든 게 너무나 값진 선물이다. 새내기 초등 여교사의 첫 스승의 날에 대한 감상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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