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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수식어 중독 사회/임창용 논설위원

    한 지상파 방송의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를 볼 때다. 진행자는 거의 기계적으로 ‘충격적’이란 수식어를 썼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족히 수십 번은 나온 것 같다. 시사 다큐물의 특성상 어느 정도 불가피하단 점을 고려하면서도 수식어 남발에 충격보다는 거부감이 들었다. 언론 보도나 일상에서도 자극적인 수식어가 늘어나는 느낌이다. 정치·경제·사회 등 분야를 막론하고 조금만 파장이 크다 싶으면 ‘핵폭탄급’ 사건이 된다. 핵폭탄급 깜짝 카드, 핵폭탄급 전기료, 핵폭탄급 의혹 등 대체 핵폭탄급이 아닌 게 있나 싶을 정도다. 피하고 싶은 것엔 거리낌 없이 ‘극혐’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싫어하는 음식은 극혐 음식, 비호감 남자친구는 극혐 남친이다. 별것 아닌 현상이나 사건에 ‘역대급’이란 수식어를 붙이기도 마찬가지다. 수식어를 붙이는 사람은 ‘그래야 더 사실 전달이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기 쉽다. 한데 기사는 과장으로, 말은 허풍으로 비치기 마련이다. 극혐 같은 부정적 의미를 가진 수식어 남발은 혐오를 부추기고 짙게 할 수도 있다. 세상이 정말 수식어처럼 자극적·극단적이라면 지옥이 따로 없을 것 같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화무십일홍/오일만 논설위원

    또 만추의 계절이다. 길가에 나뒹구는 낙엽들은 서둘러 겨울을 재촉한다. 엊그제 일처럼 눈앞에 선했던 푸름의 향연은 오간데 없다. 눈을 사로잡았던 만산홍엽의 광채는 밤새 내린 비 때문인지 하루 새 윤기를 잃었다. 화무십일홍, 인불백일호, 세불십년장(花無十日紅 人不百日好, 勢不十年長)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10일이 지나면 시들기 마련이고, 아무리 좋은 사람도 100일을 못 가며, 아무리 긴 권세도 10년을 못 간다는 의미다. 호가호위하던 청와대 실세들이 추풍낙엽처럼 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떨어지는 요즘, 그 의미가 새롭다. 하기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권력의 유통기간도 점점 짧아지나 보다. 5년 대통령 단임제 때문인지 10년은커녕 5년도 그 단맛을 누리지 못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권력을 향해 질주한다. 불빛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권력의 비극이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그 끝을 확인하려고 달려든다. 권력욕은 어쩌면 인간의 내재적 본능인지 모른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번득이는 통찰력을 선보인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갈파했다.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신이 되고픈 인간의 욕망이라고….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고향/박홍기 논설위원

    전북 임실이 고향인 선배 마을에서 때아닌 큰 잔치가 열렸다. 풍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왁자지껄했다.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사는 어른 40명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한때 450명이 넘던 마을이 ‘늙은 동네’로 변한 지 오래다. 현재 동네 사람은 50명도 채 안 된다. 주인 없는 문패만 덩그러니 걸린 집들도 있다. 동네는 1주일 전부터 바빴다. 천막을 치고 돼지도 잡았다. 구십이 넘은 최고령 어른이 짧게 환영 인사를 했다. “객지서 고생혀. 살게 된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고향을 잊지 않고 찾아줘 반갑고 고맙소.” 화답이 이어졌다. “따뜻하게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큰절을 올렸다. 동시에 힘찬 박수가 터졌다. “아이고, 50년 만이다~.”, “안 죽고 살아 있으면 만나는 날도 있구먼.” 손을 맞잡았다. 얼굴을 비비기도 했다. 이산가족이 따로 없다. 추억이 떠오르자 주름진 얼굴엔 젊음도 되살아났다. 그 시절로 돌아갔다. 술판도 무르익자 누군가 구성지게 노래를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온 지 몇몇해련가…꿈에 본 내 고향이….’ 곧 합창이 됐다. 시끌벅적 속에 해가 저물었다. 고향에서의 짧은 한나절, 가슴에 간직하고 버스에 올랐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고구마 단상/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매년 이맘때면 고구마를 한 상자 보내 주시는 분이 있다. 그는 시골집 앞 농지에 고구마를 심었다가 가을걷이가 끝나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내곤 했다. 고구마가 다 그게 그것이고, 한 상자 값이야 얼마 되지 않을지언정 편지와 함께 도착한 고구마는 맛을 떠나 너무나 고맙고 정겨운 것이었다. 편지가 한 통 배달됐다. 사연인즉 올해도 고구마를 보내야 하는데 행여나 받는 분이 하찮은 것 때문에 불편을 겪을 것이 우려돼 이렇게 편지만 보낸다는 것이었다. 청탁이나 특권의식과는 아무 관련 없는 고구마지만 최근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일 게다. 고구마 빚을 진 것도 아니면서 편지를 보내 양해를 구하는 그의 배려심이 또한 놀라웠다. 누군가는 최고 권력자의 뒤에 숨어 호가호위하며 국정을 쥐락펴락하고, 기업 오너들을 불러 놓고 수십억원을 뜯어냈다는데…. 국민은 법을 어길까 봐서 몇만원에 몸을 웅크리고, 마음을 주고받는 미덕마저 억누르게 만들다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동죽과 불통/강동형 논설위원

    동죽은 바지락과 함께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조개다. 말린 동죽은 조림으로 먹기고 하고 국수나 미역국에 넣어도 일품이다. 회사 동료와 점심 때에 동죽을 일컫는 사투리를 놓고 논쟁을 했다. 동죽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고 독특한 이름을 하고 있다. 서산과 태안에서는 동죽을 동조개라고 부르고, 대천에서는 물통조개라고 한다. 남해안 쪽으로 좀더 이동해 진도에서는 동죽을 귀머거리조개로 부르기도 한다. 여수·광양·하동·남해·사천·통영 등 동부 전남과 서부 경남에서는 불통이라고 한다. 논쟁의 주제는 바로 불통에 있었다. 불통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개가 있다, 없다는 ‘있다’로 쉽게 가려졌다. 그런데 왜 불통이냐고 하는 대목에서 의견이 갈렸다. 생김생김이 배가 불룩한 것처럼 통통해 불통이라 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진도에서 귀머거리조개라 부르는 것을 보면 불통(不通)이라는 의미와도 무관한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동죽의 사투리인 불통이 현 시국과 오버랩되면서 본말이 전도되는 낭패를 경험했다. 말은 때와 장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길섶에서] 구절초/손성진 논설실장

    먼 산은 더 멀어지고 삭풍은 일찍이도 찾아왔다. 영그는 계절도 끝나 가는데 난 왜 빈손인가. 열정도 지식도 가뭄처럼 건조하다. 그래도 허전한 마음이 덜한 건 순전히 가을꽃 덕이다. 한동안 국화로 잘못 알았던 꽃이 구절초(九節草)다. 국화과이니 국화의 사촌쯤 된다. 들판엔 눈이 흩뿌린 듯 구절초가 지천이다. 국화가 귀족적이라면 구절초는 서민적이다. 그래서 이름도 꽃이 아니고 풀인가. 아홉 번 꺾이고도 꿋꿋이 자란다는 뜻일까. 국화 말고도 구절초와 비슷한 들꽃이 또 있다. 쑥부쟁이, 개미취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이 들길을 여태 걸어왔다니/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안도현 시인은 ‘무식한 놈’이라는 제목의 이런 시를 썼다. 시 속에 담긴 더 깊은 뜻이야 알기 어렵지만 우리는 비슷한 듯 다른 것들을 무심코 넘긴다. 아는 게 자랑이 아니듯 모르는 게 부끄러움도 아니다. 그래도 사소한 차이에 우리는 너무 무감하다. 세상사에 지쳐 그럴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한가’인가. 작은 다름에 무심하면 큰 것에도 그렇다. 구절초는 구절초로 알아주기를 바랄 것이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 바보/황수정 논설위원

    누가 묵혀 둔 책 있거든 좀 보내 달라기에 책장을 살핀다. 이사할 때 작심 방출을 하지 않고서야 차곡차곡 탑으로 쌓이는 책이다. 켜켜이 먼지에 발목 잡힌 책들이 오늘따라 딱하다. 게으름에 건망증까지 보태졌으니 더러는 언제 내 손으로 샀나 싶은 것도 있고. 아끼던 책을 팔아 쌀독을 채우고는 몇 날을 속 끓였다던 옛 문사들 생각이 난다. 책을 되찾아 오느라 어깻죽지 빠지게 잡글을 썼다는 글꾼도 있었고. 책 귀하지 않은 지금에야 지어낸 이야기들 같다. 우리 집 대문에 헌책방에서 갖다 붙인 스티커는 숫제 통사정이다. 쓰레기장에 거저 내버리지 마시라, 후하게 쳐줄 테니 곱게 넘겨 주시라. 욕심껏 사들이고는 한 달째 겨우 앞장만 쏘삭거린 새 책들이 여럿이다. 볕을 쫓아다니며 온종일 책만 봤다는 옛날 간서치(看書癡). 이름 높은 어느 책 바보는 좋은 책을 만나면 신이 나서 끙끙댔다가 갈까마귀 우는소리도 냈다가 그랬다는데. 책 바보 흉내 내기는 당분간 또 글러 먹었다. 앞마당 구석에 은행잎 쌓이는 소리, 내 귀에는 하루 종일 천둥소리. 기껏 요 몇 줄 적으면서 한나절은 더 가을바람에 놀아났다. 이런 바보가 없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시계 유감/박홍환 논설위원

    서울의 한복판 서울광장에서 남대문이나 서소문 방향으로 발길을 옮길 때 눈길이 머무는 지점이 한 곳 있다. 갈림길 모퉁이의 건물 창에 표시되는 초대형 디지털 시계다. 기록 경기장에나 어울릴 법한 이 시계를 보고 있자면 절로 마음이 다급해진다. 시(時), 분(分), 초(秒)에 더해 10분의1초까지 표시되는 시계여서 걷지 않고 달려야 할 것 같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흔히 흐르는 세월을 활시위를 떠난 화살에 비유하는데 그야말로 쏜살같은 시간의 흐름을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시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계가 아니더라도 이미 푸른 잎을 자랑하던 가로수들이 시나브로 노란 옷, 붉은 옷으로 갈아입어 또다시 쏜살같이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일깨워 준다. 그렇지 않아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면서 극심한 경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런데 길을 걷는 순간에도 10분의1초 단위로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을 실감하라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달리는 말에 더 빨리 달리라며 채찍질하는 것과 다름없다. 잠시의 여유조차 빼앗아 버리는 참으로 ‘나쁜 시계’ 아닌가.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같이 밥 먹는 공덕/서동철 논설위원

    호남지역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친구들을 만나면 꼭 네 사람을 채워 가라고 충고한다. 순전히 이 고장 음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함이다. 개인적으로는 목적지로 가는 길에 30~40분 돌아가더라도 들렀다 가는 밥집이 강진에 있다. 한정식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게 푸짐하지만, 밥값은 백반 정도다. 사람 숫자에 관계없이 4인분을 한상으로 내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두 사람이 가도, 세 사람이 가도 한 상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언젠가 두 사람은 2만원, 세 사람부터는 일인당 8000원씩으로 밥값을 고쳐 놓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혼밥족’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이 고장에는 4인분을 한 상으로 내는 밥집이 지금도 적지 않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엊그제 점심에는 메기매운탕이 생각났다. 함께 사무실을 나선 동료에게 그동안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이 새로운 메뉴를 던졌더니 다들 좋단다. 대(大)자 메기탕은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는 맛이었다. 동료도 다르지 않았던지 ‘점심 아이디어’에 칭송이 이어졌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더 고마워해야 한다. 나 혼자였다면 이걸 먹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게 아닌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모과 예찬/임창용 논설위원

    점심 후 덕수궁에 갔다가 ‘횡재’를 했다. 대한문을 지나 만난 모과나무 두 그루에 샛노란 모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어른 주먹만 한 모과들이 어찌나 많이 달렸는지. 거무튀튀한 나뭇가지와 대비되어 황금빛을 띠는 열매가 보석 같다. 하나, 둘, 셋…. 나무 아래서 고개를 쳐들고 모과를 세어 보다가 목이 아파 결국 포기하고 만다. 두 그루 합치면 수백 개는 족히 될 듯하다. 젊었을 적부터 덕수궁에 많이 갔지만 모과는 처음 만난다. 계절이 맞지 않았을까. 아니면 감성이 부족해 눈에 띄지 않았을까. 모과는 향이 넘치지 않으면서 오래간다. 그리 진하지 않으면서도 멀리 퍼진다. 울퉁불퉁 못생겼지만 정감이 있다. 아내가 가끔 모과차를 낸다. 택배로 구입한 모과를 얇게 저며 재 놓았다가 끓여 준다. 모과의 독특한 신맛이 거북스럽지 않다. 은근하고 그윽한 향이 코끝을 맴돌 때의 느낌은 언제나 반갑다. ‘자주 마셔야지’ 다짐하면서도 잊어버렸다가 아내가 차를 내주면 다시 같은 생각을 한다. 수시로 보지는 못해도 만날 때마다 반가운 오래된 친구 같다고나 할까. 나이들수록 속 깊고 은근한 친구가 그립다. 모과가 다 지기 전에 덕수궁에 한번 더 가봐야겠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비상용 망치/박홍기 논설위원

    고향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일부러 둘러봤다. 비상용 망치, 소화기가 어디에 있는지. 망치는 앞쪽 좌석 양옆에 비치돼 있었다. 출발을 앞두고 버스 기사가 승객을 향해 서서 망치와 소화기 등 응급 공구의 위치를 알려 줬다. 뒤쪽에도 2개가 더 있었다. 망치 사용법도 설명했다. 전에 못 보던 광경이다. 항공기 승무원 같은 동작도, 영상도 없었지만 비교적 자세했다. 비상시 대처 알림은 진작부터 챙기고, 시행됐어야 할 기본 조치인데 사고를 당하고서야. 승객들은 기사의 안내에 무덤덤했다. 기사도 하지 않던 업무라 쑥스러운 듯했다. 근데 기사의 설명에는 ‘왜’가 없었다. ‘사고’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인지는 몰라도, 그러니 시큰둥할 수밖에. 사고가 날 때마다 갖가지 대책이 새로운 내용인 양 쏟아져 나오기 일쑤다. 기사의 졸음 운전 탓에 버스가 승용차를 덮쳤을 때도, 어린이가 유치원 버스 안에서 변을 당했을 때도 그랬다. 안전 관리 매뉴얼만 지켰더라면 없었을 사고인데. 언제까지 미리 손을 보지 않고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칠 텐가. 차창 밖엔 가을걷이가 끝난 휑한 논과 색색 단풍으로 뒤덮인 산들이 펼쳐졌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길섶에서] 최순실 구두/최광숙 논설위원

    뾰족하고 굽 높은 여성의 하이힐은 종종 욕망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여성의 신체 라인을 돋보여 주기에 영화에서는 성적 욕망의 기제로 사용된다. 때론 작은 마천루를 연상시키면서 성공, 출세, 권력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많은 여성은 구두에 열광한다. 신발장 안에 구두가 한가득해도 또 사고 사는 것이 구두다. 권력을 쥔 여성 정치인들의 패션을 평할 때 늘 구두는 화제가 된다. 수수한 옷차림의 엥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동네 아줌마처럼 굽 낮은 평범한 단화를 신지만 대부분 굽 있는 구두를 신는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파격적인 호피 무늬 구두는 이제 그의 심벌이 됐을 정도로 그는 구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미국 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는 이탈리아 명품 페라가모 구두광이다. 그제 구두 한 짝이 화제가 됐다. 구두 주인은 국정 농단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 검찰에 출두하는 과정에서 신발 한 짝이 벗겨졌는데 70만원대 명품 프라다란다. 그 신발을 신고 그는 기세등등 국정을 쥐락펴락했을 것이다. 땅바닥에 떨어진 그의 신발 한 짝이 추락한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 준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밥상머리 교육/오일만 논설위원

    “남에게 절대 폐를 끼치지 말아라.” 어릴 때부터 일본인들이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라고 한다. 일명 메이와쿠 문화라고 불리는 이 교육 방식은 일본인들의 조심스러운 국민성으로 발전했고 지진이라는 엄청난 재난에도 언제나 침착하게 행동하는 습성으로 변했을 것이다. 미국은 밥상머리 교육의 키워드가 ‘양보’(Yield)라고 한다. 미국의 도로 표지판에서 양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눈에 띈다. 길거리에서 보행자가 보이면 반드시 서행하거나 정차하여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나 버스, 전철을 이용할 때도 장애인, 어린이, 노약자가 우선이다. 자기보다 남을 배려하는 예절이 자리 잡은 근원으로 보인다. 한국의 밥상머리 교육은 어떤가. 아마도 “남에게 절대로 지지 말라”가 아닐까.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려라”는 인성 교육은 몰가치적 일등주의가 판을 치게 했다. 안하무인식의 언행이 속속 세간에 알려지고 있는 최순실씨. 그 딸인 정유라씨가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을 써 공분을 샀다. 어릴 적 최씨의 밥상머리 교육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알맞은 관계 문화/강동형 논설위원

    언덕 위에 서서 멀리 바라보아야 바다의 진정한 묘미를 안다고 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쓰레기 등 비본질적 요소들을 접하기 마련이다. 바다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렇다고 한다. 너무 가까이서 자주 마주치다 보면 비본질적인 요소들 때문에 그 사람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늘 한데 어울려 지내다 보면 범속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움과 아쉬움이 받쳐 주어야 신선감을 지속할 수 있다. 걸핏하면 전화를 걸고 자주 함께 어울리게 되면 그리움과 아쉬움이 고일 틈이 없다. 너무 가까이도 아니고 너무 멀리도 아닌 알맞은 거리에서 바라보는 은은한 기쁨이 따라야 한다. 법정스님의 얘기다. 우리는 알맞은 거리에서 관계를 맺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지연·학연·혈연 등 우리 사회에 내재된 연(緣)의 문화는 알맞은 거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은은한 기쁨보다는 갈등과 부정을 잉태한다. 문득 청탁금지법이 만들어진 까닭도, 미르재단으로 불거진 국정 농단도 우리의 관계 문화 탓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길섶에서] 안주 없는 소주/서동철 논설위원

    초년병 시절 선배 두 분과 팀을 이뤄 출입처에 나갈 때가 있었다. 점심이나 저녁을 자주 같이 먹을 수밖에 없는데 메뉴를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선배는 매운 것을 못 먹고, 다른 선배는 밀가루 음식을 꺼렸다. 그러니 맵지도 않고 밀가루로 만든 것도 아닌 음식을 찾아야 하는데 흔치 않았다. 주변에 이런 조건을 만족하게 하는 메뉴는 부추비빔밥뿐이었다. 된장 소스 비빔밥은 고정 메뉴가 됐다. 선후배 관계가 아니더라도 당연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런데 출입처가 바뀐 이후 즐기지 않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일은 고역이 됐다. 특히 보신탕이 그랬는데, 반려견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느냐는 비판을 떠나 도무지 맛을 알지 못했다. 몇 차례 먹어 봤지만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니 보신탕집에 가면 시늉만 했지 제대로 먹은 적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대취하곤 했다. 날배추나 고추장에 찍어 먹었을 뿐 ‘깡소주’를 마시다시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이를 웬만큼 먹은 다음에는 즐기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가 없게 됐다. 그래도 메뉴를 고를 때는 후배들 눈치를 봐야 한다. 안주 없는 소주에 취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손때/황수정 논설위원

    무슨 마음이 동했을까. 몇 해 전 값나가는 그릇을 상자째 사들였다. 크기대로 차곡차곡 쟁여 찬장 맨 위 칸에서도 맨 뒤쪽에 곱게 모셨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었다. 우리 집 제일 오지에 들앉아 세월만 묵힌 그릇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새 유행이 한물가 버린 것들을 끄집어내서는 웃어볼밖에. 대책 없는 건망증, 허랑한 살림솜씨를 타박하면서도 실은 애당초 알고 있었다. 이 반짝이는 것들이 결코 우리 집 밥상을 점령하지 못하리란 사실을. 유행에 둔한 탓도 있지만 쓰던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오래된 접시가 닳고 더러는 실금이 갔어도 도무지 거슬리지 않는다. 저장강박증 비슷한 것이 내게도 있나 싶다. 그렇거나 말거나. 어지간히 생활의 땟국이 묻은 것들이 나는 그저 좋고 정답고 편하기만 하다. 이태준의 오래된 글이 생각난다. 집에 웃어른이 없어 거만스러워지는데,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이 하나. 자신보다 나이 많은 골동품, 아버지의 연적(硯滴)이라고. 풍상을 견딘 손때는 때로 소란한 눈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묘약이다. 내게도 있으면 싶다. 두고만 봐도 이심전심 어깨 쓸어 주는, 나보다 더 나이 먹어 손때가 빛나는 선생이.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친절 바이러스/손성진 논설실장

    여전히 한국인의 질서와 배려 의식은 선진국이 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엘리베이터가 서면 당연히 탄 사람이 먼저 내리고 타야 한다. 내리기도 전에 밀치고 들어오는 비도덕은 버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무시되는 작은 예의는 더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주변 사람을 치듯이 지나다니는 사람을 자주 본다.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부딪히지 않으려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마구 끼어드는 차량, 꼬리 물기 하는 차량도 말할 것도 없다. 작은 예의가 모여서 큰 예의가 되고 민도(民度)를 높인다. 나 한 사람부터 예절을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 이웃에게 퍼져 나가도록 해야 한다. 승객이 타고 내릴 때 항상 고맙다고 인사하는 버스 기사가 있다. 그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 하루가 즐겁다. 나 또한 작은 일에도 다른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게 된다. ‘친절 바이러스’다. 예의 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무례하다고 똑같이 무례하게 대응하면 그 무례는 더욱 번져 나갈 것이다. 도리어 나를 더 낮추어 상대가 감복하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노가리/박홍환 논설위원

    노가리를 처음 맛본 것은 대학에 입학한 후였으니 30여년쯤 전인 것 같다. 친구들과 술집에서 500㏄ 생맥주 잔을 부딪칠 때 안주는 거의 언제나 노가리였다. 다른 안주보다 저렴해서 모두 시종 노가리를 씹어 대며 ‘나라가 어떻네, 사회가 어떻네, 학교가 어떻네, 사랑이 어떻네’ 하고, 정말이지 주제 불문, 입장 불문, 결론 불문의 잡설(雜說)판을 벌이곤 했다. 노가리를 씹으면서 노가리를 풀어 대는 풍경이 곳곳의 선술집에서 벌어졌다. 노가리를 앞에 둔 노가리꾼들의 입담은 차지고 맛깔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술꾼들의 안주상에 노가리보다는 오징어, 땅콩, 소시지 등이 올라오는 빈도가 잦아졌고, 그래서일까 왁자지껄한 술판도 차츰 사라졌다. 노가리가 없으니 이야기 또한 자취를 감췄다고 해야 할까. 수산 당국이 세계 최초로 명태의 완전한 양식에 성공했다고 한다. 명태의 산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니 국산 명태 새끼, 다시 말해 국산 노가리 또한 곧 대대적으로 술꾼들의 안주상에 복귀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국산 명태의 전멸, 노가리의 부재로 시작된 ‘불통의 시대’도 막을 내릴까.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장래 희망/최광숙 논설위원

    얼마 전 조카 두 명이 직업 체험한다며 회사에 왔다. 평소 집에서 받아 보던 신문의 제작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놀라는 눈치다. 그날 그들은 서울신문사를 배경으로 찍은 자신들의 사진과 견학 일정이 담긴 특별한 신문 제작에도 참여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요즘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가 시행되면서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직업 체험을 하도록 한다. 그날 이모가 아닌 멘토의 역할을 하면서 몇 가지 느낀 게 있다. 정부가 아이들의 ‘꿈’을 너무 일찍 정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 때부터 책상머리에 장래 희망을 ‘대통령’으로 적어 놓았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대기만성이라고 늦게 제 길을 찾아 성공한 경우도 많다. 꿈을 향한 여정도 개인의 성향, 능력,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책 읽기나 봉사활동 등 모든 것이 향후 진로에 ‘코드’를 맞춰야 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교육일까. 융복합 시대에 다양한 독서와 체험을 통해 기존의 형식과 논리를 깨는, 창의형 인간이 나오도록 교육해야 하는데 완전 거꾸로지 싶다. 여차하면 ‘칸막이’ ‘절름발이’ 교육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버리는 습관/임창용 논설위원

    ‘어디 갔지? 분명히 작년까지 있었는데?’ 산책하러 나가면서 예전에 입던 겉옷을 찾는데 보이지를 않는다. 아내가 딱한 듯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버리지 말라니까 말 안 듣더니. 한두 번도 아니고.” 그제야 지난여름 문턱에 옷 정리를 하면서 버린 게 생각난다. 유행에 뒤져 한동안 안 입던 터라 과감히 버렸는데,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간혹 물건 처리를 놓고 아내와 가볍게 다툴 때가 있다. 난 버리자는 쪽, 아내는 보관하자는 쪽이다. 내 개인 물건은 대체로 내 뜻대로 한다. 철마다 한 보따리씩 옷과 잡동사니를 버리기 일쑤다. 3년 이상 입지 않은 옷은 앞으로도 입을 가능성이 없고, 쓰레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정반대다. 옷은 물론 잡다한 집기 등을 버리는 데 인색하다. 지금은 싫지만 언젠가는 쓸모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간혹 아내의 예측이 맞기도 한다. 그래도 좁고 답답함을 감수하게 할 정도는 아니다. 주장으로만 보면 아내는 절약, 난 실용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비움과 채움을 추구하는 각자의 성향 차이인 듯도 싶다. 난 아내를 채워 주고, 아내는 나를 비워 주는 소통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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