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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시(詩)요일/진경호 논설위원

    슬그머니 다가와 넌지시 앉았다. 아는 척하지도 않았고, 모른 척 내치지도 않았다. 무심한 듯 고개 돌려 눈 한 번 맞췄고, 이내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졌다. 창비의 시 앱 ‘시(詩)요일’ 얘기다. 아니, 시 얘기다. 뭘 타고 왔는지 문득 스마트폰 창에 날아 앉았고, 시나브로 ‘시요일’이 날려 보낼 시 한 닢을 기다리는 중독이 일상에 얹어졌다. 시는 읽는 걸까, 보는 걸까. 혹시, 잠기는 건 아닐까. 읽는 것도, 보는 것도 아닌 잠기는 것, 마음을 내려놓고 추억을 길어 내고 상상에 날개를 다는 것…. 타인의 시선을 훔치고, 그렇게 훔친 시선에 살짝 마음을 데이고, 그렇게 데인 마음에 기분 좋은 몸살을 앓는 것…. 작가 이기주에겐 미안하지만 그가 쓴 ‘언어의 온도’가 해를 넘겨 베스트셀러 상단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현실은 슬프다. 말과 글에 상처 입은 세상의 신음이 그 책을 떠받치고 있다. 칼질, 도끼질이 난무하는 저 핏빛 댓글난을 시로 씻으면 어떨까 싶다. 하루하루가 시요일일 권리가, 아픈 우리에겐 있다. 그 무슨 말라비틀어진 소리냐 싶다면 당장 거울 앞으로 달려가 누가 서 있는지 보길 바란다. 그를 위해 울길 바란다. jade@seoul.co.kr
  • [길섶에서] 형식과 마음/손성진 논설주간

    매년 늦은 가을에 고향에 가서 선조의 시제를 지낸다. 그런데 시제를 진행하면서 절차를 누군가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적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젊은 세대는 시제 자체에 관심조차 없는데 어른들은 “제물을 여기에 놓아야 한다”, “술은 이렇게 따라야 한다” 하며 까다롭게 절차를 따진다.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것으로 언쟁이 붙는 일도 자주 본다. 유교적 풍습 때문이다. 제사는 밤 11시가 지나서 지내는 게 맞는데 퇴계 이황의 후손이 생활 편의상 저녁 시간으로 바꾸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유학의 거두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풍습을 버렸는데 일반 가정에서야 어떠랴. 그래도 집에서 지내는 제사의 시간이나 순서, 제물의 위치를 멋대로 바꾸지 못한다. 선조에게 죄를 짓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형식과 틀에 얽매여 살고 있다. 돌아가신 조상은 “너희가 편한 게 내가 편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데 말이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가짐일 터이다. 형식과 절차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조상을 섬기고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 [길섶에서] 잔 돌리기/황성기 논설위원

    얼마 전 여행 다녀온 일본의 고치 지방은 규슈 옆 시코쿠란 섬에 있는 4개 현 가운데 하나다. 일본 근대화를 주도한 인물 사카모토 료마가 태어난 곳이다. 일본의 고령화가 일찍이 시작된 곳으로, 대책 또한 일본에서 빨리 도입된 인구 75만명의 조그만 현이다. 기후가 온난해 우리의 프로·아마추어 야구단이 겨울 전지훈련으로 찾기도 한다. 친구 몇 명이 있어 고치에서 머무는 동안 저녁 식사에 술이 빠지지 않았다. 재미난 광경을 봤다. 술잔 돌리기다. 우리의 음주문화에서 거의 사어(死語)가 돼 가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데 놀랐다. 일본에서는 ‘헨파이’(返杯)라고 하는데 도쿄 같은 대도시는 물론 대부분 지역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고치에 잔 돌리기가 남은 이유가 재밌다. 이곳 사람들 말로는 남쪽의 태평양을 뺀 북동서가 산으로 둘러싸인 폐쇄성 때문이라고 한다. 결정적인 게 ‘주량으로 인간성을 재는’ 이 지역 습성을 꼽는다. 고치에서 배운 잔 돌리기 예법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닦아 건네는 것만은 실례라고 가르쳐 준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밤이 깊어 가는 것을 잊은 며칠이었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봄 마중/이순녀 논설위원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한 ‘삼한사온’은 옛말. 칠일은 삭풍 몰아치고, 칠일은 미세먼지 자욱한 ‘칠한칠미’가 올겨울 대세다. 쨍하게 춥거나, 숨 막히거나 둘 중 하나. 어차피 피할 수 없을 바에야 한파가 닥치면 깨끗한 공기에 감사하고, 미세먼지가 불어오면 추위가 꺾인 걸 위안 삼는 게 삶의 지혜일 터다. 자연은 이렇듯 완강한데 어느새 절기는 봄. 입춘(立春)이 내일이다. 말이 좋아 봄의 길목이지 입춘 전후의 추위는 소한, 대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성싶다.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입춘에 장독 깨진다’, ‘입춘 거꾸로 붙였나’ 같은 속담이 공연히 생겨나진 않았을 게다. 요 며칠 날이 좀 풀렸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혹한이 몰려온다는 소식이다. 다음주 중반까지는 영락없는 냉동고 신세. 그래도 마음은 벌써 봄 마중으로 달음박질친다. 꽁꽁 얼어붙은 회색빛 도시에 머지않아 따뜻한 봄볕이 내려앉아 온 세상이 생동감으로 새롭게 피어나는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입춘이란 두 글자가 마치 주문(呪文)처럼 조금만 참으라고, 조금만 버티라고 응원해 주는 것 같다.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아무나 살이’/박건승 논설위원

    살다 보면 자녀들에게 좋은 소리만 할 수 없는 법. ‘이건 하지 마’ 아니면 ‘이렇게 해’ 따위의 혹독한 잔소리를 어지간히 해댔다. 아들딸의 앞날을 위해 부모라는 이름으로. 녀석들은 용케 따라 줬지만 그들이 받았을 답답함과 숨 막힘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대학 들어가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고, 돈 많이 벌어 가정을 꾸리는 게 그간 성공의 공식이었기에. “성공엔 관심 없어! 난 ‘아무나’가 되련다”가 화두인 시대에 ‘2030’들은 외친다. “적당히 돈 벌고 좋은 사람들과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성공한 삶”이라고. ‘성공하지 못하면 불행’이란 편견을 거부하고 평범한 삶이 가장 행복한 것이란다. “(어른들은 억울하면 출세하라지만) 억울한데 왜 출세를 해야 하죠? 전 행복할 건데요”를 외치는 당당함이 부럽다. 더 치열하게 살고, 더 높이 올라가는 삶을 당연시하는 부모들로서야 허전함을 어찌할 수 없다. 부모들은 묻는다. “그렇게 정성껏 키워 놨더니 니 편할 대로만 사는 게 행복하더냐”고. 그러자 아들딸은 또 묻는다. “그 많은 성공을 어디다 쓰려고요. 그래서 행복하십니까”라고.
  • [길섶에서] 도루묵/황수정 논설위원

    오래된 까탈이 민망해질 때가 있다. 먹지 못했거나 않았던 음식을 아주 오랫동안 잘 먹었던 것처럼 먹고 있는 순간이다. 장례식장의 국밥이 이즈막에는 그렇다. 허기가 져도 문상 자리에서는 좀체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죽음의 비감은 언제나 차갑고 낯설어 식욕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국밥이 맛있다. 흰밥 한 그릇 꾹꾹 말아 비우고, 일회용 접시에 쪼그라진 마른반찬에도 입맛이 다셔진다. 소심한 입맛이 갑자기 언죽번죽해졌을 리는 없다. 시간이 저절로 그려 주는 삶 안쪽의 무늬들이 있다. 생의 질서에 줄 서는 순간은 오고야 만다. 알배기 도루묵 한입에 딸아이는 기겁을 한다. 미끈거리는 도루묵 알이 내게는 언제부터 감쪽같이 겨울 별미였을까. 톳나물의 오돌거리는 맛, 물미역의 물컹거리는 맛. 오돌거려도 겉돌지 않고, 물컹거려도 비켜나지 않는 그 맛에 입맛 길들이자고 매달린 적 없다. 가만히 두면 그렇게 되는 일들이 많다고. 기를 쓰지 않아도 삶의 쌈지를 채워 주는 것들이 있다고. 도루묵의 위로가 오늘은 밥상에서 조근조근.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라고.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황금 변기/최광숙 논설위원

    뉴욕에서 연수하던 시절 즐겨 찾던 곳 중의 하나가 구겐하임 미술관이었다. 그곳의 작품들도 구경거리였지만 달팽이 모양의 독특한 외관이 마음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난다. 최근 미국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 여사가 침실에 걸겠다며 그 미술관 측에 반 고흐의 ‘눈 내리는 풍경’을 빌려 달라고 요청했는데 미술관 측은 18K 금으로 만든 변기를 추천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현대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이 작품은 10억원에 이른다.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백악관 측의 제안을 거부하고 대신 황금 변기를 추천한 것은 황금색을 좋아하는 트럼프를 조롱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리 같으면 당장 괘씸죄에 걸릴 간 큰 행동이다. 아베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회동에서 골프광인 트럼프에게 황금 골프채를 선물했다. 트럼프의 취향을 저격한 맞춤 선물이었다. 이 골프채에 감동했던 트럼프라면 황금 변기 역시 내심 반기지 않을까. 목적 지향적인 정치인은 트럼프에게 황금 골프채로 ‘아부’했지만 권력에 저항하는 예술인은 황금 변기로 멋지게 ‘한 방’ 먹였다. 예술과 정치의 차이라고나 할까.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고목 아래서/이경형 주필

    오후엔 좀 풀려 영하 10도였다. 바람은 없고 하늘은 쾌청했다. 두툼하게 챙겨 입고 손녀의 반려견을 데리고 헤이리 마을 산책길에 나섰다. 날씨 탓인지 평소 주말과는 달리 한산했다. 1시간 반 넘게 거닐다 잔설이 있는 ‘노을 동산’ 중턱의 고목 아래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마을 상징목인 500년 된 느티나무는 몇 년 전 썩은 밑둥치 속을 긁어내고 밀봉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친구가 차 마시면서 소개해 준 ‘눈’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전라도 곡성의 할머니들이 펴낸 시집 속의 짧은 시다. “사박사박/장독대에도/지붕에도/대나무에도/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잘 살았다/잘 견뎠다/사박사박” 모르긴 해도 70~80대 할머니가 눈 내리는 날에 지나온 날들을 회상했을 것이다. 그가 겪은 삶의 궤적을 두고 ‘잘 견뎠다’는 말 말고는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겠나. 시의 감동이 진하게 밀려온다. 서쪽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다. 석양이 아름답다. 나의 인생 시계는 몇 시쯤일까. 빈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한 고목 가지를 올려다본다. 500년을 잘 견뎌 온 네 앞에서 “나도 잘 견뎠다”고 말하기가 쑥스럽다. khlee@seoul.co.kr
  • [길섶에서] 아파트 앞 눈썰매장/임창용 논설위원

    한파에 눈까지 내렸던 얼마 전 주말. 평소 조용하던 아파트 밖이 시끌벅적하다. 산책로를 따라 형성된 구릉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썰매를 타고 있다. 몇 년째 눈이 쌓이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풍경이다. 처음 입주했을 때는 종이 박스를 펼쳐 미끄럼을 타던 아이들이 이젠 플라스틱 썰매를 탄다. 눈치 빠른 문방구 주인이 갖다 놓은 모양이다. 대학생인 아들이 옛 생각이 났는지 썰매 만들어준 얘기를 꺼낸다. “그때 아빠가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면서. 작아져 신지 못하던 스케이트 날을 이용해 썰매를 만들어줬다. 산골 마을에서 자랄 때 익힌 솜씨를 부려본 것. 돌아보면 엉성한 썰매지만 아들에겐 최고의 장난감이었던 듯싶다. 아이는 눈이 얼어붙어 빙판으로 변한 아파트 단지에서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온종일 썰매를 탔다. 세대가 또 바뀐 지금, 아이들은 여전히 아파트 밖에서 썰매를 탄다. 썰매에 끈을 달아 앞에서 끌어주는 아빠, 뒤에서 등을 밀어주는 엄마를 향해 연신 함성을 지른다. 한 세대가 다시 지나면 이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썰매를 끌고 있겠지. 동심이 눈처럼 쌓인 주말이었다.
  • [길섶에서] 동네 의원 다시 보기/김성곤 논설위원

    “별일 없으세요? 어머니.” “응, 며칠 전 니 아버지가 감 따다가 대봉이 눈에 떨어져 응급실에 다녀왔는디 인자 눈도 조금씩 떠지고 나도 보인다니 괜찮은가 브다. 근디 감을 안 먹는다.” 처음엔 웃음이 나왔다.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말씀을 안 하시다가 상태가 나아지니 털어놓으시는구나’ 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방의 사립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찍고, 그 병원 안과에서도 “이상 없다”고 했다는데 한 달이 넘었는데 어지럽고 잘 안 보이신단다. 서울의 종합병원에 예약하고, 안 오신다는 아버지를 모셔 왔다. 그리고 진료 의뢰서를 떼러 동네 안과에 갔다. “혹시 백내장 수술 받으신 적 있어요? 그때 넣은 인공 수정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이해가 됐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도 검사를 하더니 감에 맞아 인공 수정체가 손상됐고, 이게 뒤로 돌아가면 눈이 안 보일 수도 있으니 당장 수술을 하란다. 일순 지방의 그 병원에 분노가 일었다. ‘첨단 장비로 온갖 검사는 다 해 놓고, 동네 의원만도 못하다니….’ 아프면 2, 3차 진료기관만 찾았던 나다. 이번에 나도 동네 의원에 눈을 떴다. sunggone@seoul.co.kr
  • [길섶에서] 작은 연못/진경호 논설위원

    거실 안 작은 질그릇 속, 금붕어 두 마리가 산다. 고작 손가락 절반만 한 몸집이건만 흐느적대는 품새가 스웩을 배운 게 분명하다. 거만하고 앙증맞다. 먹이를 주려 다가가면 쪼르륵 달려와(?) 연신 꼬리를 흔들며 뻐끔거린다. ‘밥 주세요 밥~!’ 물고기 기억력은 3초라 누가 말했나. 가당치 않다. 한데 이 질그릇 세상에서 양희은의 ‘작은 연못’ 사태가 벌어질 조짐이 보인다.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그놈 살이 썩어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덩치가 작은 녀석이 집요하게 큰놈 꽁무니를 쫓아가 물고, 큰놈은 온종일 도망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됐다. 왜 쫓고 쫓기는지도 모른 채 쫓고 쫓긴다. ‘이기적 유전자’가 만든 영역 싸움에 충실할 뿐인 녀석들에게 공존의 가치를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 떼어놓을 도리밖에 없어 보인다. 인터넷 속 작은 연못에 금붕어를 빼닮은 인간 군상들이 산다. 왜 싸우는지도 모른 채 이념과 정파로 갈려 어제도 오늘도 날 새는 줄 모르고 싸운다. 서로 싸워 다 죽을 뿐인데, 옮겨 담을 질그릇도 없는데. 금붕어만도 못한…. jade@seoul.co.kr
  • [길섶에서] 납매의 개화/손성진 논설주간

    썩어 문드러진 세상 속에서 절개와 지조는 조선시대 언어처럼 느껴진다. 오랜만에 쓰는 단어는 손끝에서부터 어색하다. 절개와 지조를 떠올린 것은 엄동설한에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 때문이다. 남녘이긴 하지만 춥디추운 대구의 수목원에서 납매(臘梅)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단다. 납매라는 말이 너무 어려워 사전을 찾아보니 ‘음력 섣달에 꽃이 피는 매화’라는 뜻이다. 따스한 봄날을 기다리지 않고 대한(大寒)의 북풍한설 속에 꽃을 피우는 매화! 지조와 절개의 상징, 매화를 두고 조선 중기의 학자 상촌(象村) 신흠(申欽)은 이렇게 읊었다.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이 시절, 이 시간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욕심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불의를 분간하지도 못하는 온통 아수라장이다. 정신도 팔고 몸도 팔고, 내 이득과 보신(保身)을 위해서라면 간도 쓸개도 다 내놓고 내팽개치는 세상이다. 그런 인간들의 아우성 속에서 매화는 올해도 보란 듯이 피었다. 작년처럼 의연하게. 그래서 더 예쁘다.
  • [길섶에서] 인연/서동철 논설위원

    내가 사는 신도시와 광화문을 오가는 광역버스를 출퇴근길에 탄다. 비슷한 시간에 같은 노선 버스를 매일 타다 보니 낯익은 사람이 적지 않다. 거리에서 마주칠 때는 반갑게 아는 척을 하려다 말고는 한다. 내가 일하는 건물, 같은 층에서도 한 사람과 마주쳤는데 상대도 흠칫 놀라는 것 같았다. 얼마 전 회사 주변 밥집에는 버스에서 자주 보는 털털한 분위기의 30대 남자가 있었다. 직장 동료인 듯한 사람들과 회사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대화 내용이야 알 길이 없지만 목소리에 자신이 있는 데다 열정이 넘쳐 좌중을 압도했다. 괜히 “나 이 친구하고 같은 동네 살아” 하고 끼어들고 싶었다. 이후 버스를 타면 ‘저런 면이 있는 친구였군’ 하고 다시 보게 된다. 아침마다 얌전한 얼굴에 공손한 표정으로 버스에 오르는 40대도 있었다. 그런데 늦은 밤 버스에서 목격할 때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술주정이 심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착한 얼굴과 자세로 돌아가 있다. 언젠가부터 이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술 때문에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나 싶기도 하고…. 별것이 다 걱정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카톡 의존증/김균미 수석논설위원

    ‘카톡 카톡’ ‘드르륵’ ‘드르륵’. 여기저기서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 소리가 들린다. 진동으로 바꿔 놓았더니 문자가 올 때마다 책상 위, 서류 위에 놓아 둔 휴대전화가 ‘드르륵’ 하고 떨린다. 진동소리도 거슬려 아예 무음으로 해 놨더니 조용하기는 한데 메시지를 그때그때 확인하지 않아 괜한 오해를 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메시지를 상대가 열어 봤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은 편리하기는 한데 ‘족쇄’가 될 때도 잦다. 문자를 확인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불만이 있어 일부러 확인하지 않는 건지 별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확인만 하고 답을 보내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도 똑같다. 연로하신 부모님이나 아이들이 휴대전화를 받지 않거나 꺼 놓으면 통화가 될 때까지 걱정이 걱정을 낳는다. 어렵사리 통화가 돼 ‘왜 이렇게 전화를 많이 했어’라는 심드렁한 소리라도 들으면 안도보다 화부터 난다. 과민도 병이라며,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며 기다려 보라는 말에는 세상이 어디 그러냐고 쏘아붙이는 게 고작이다. 과잉 접속 시대에 단속에 대한 두려움, 불편이 생각보다 크다. kmkim@seoul.co.kr
  • [길섶에서] 아침 산책의 공포/황성기 논설위원

    이른 아침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일상 중 하나인 산책은 즐겁기도 하고, 겁나기도 한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집 근처를 걷는 짧은 시간이지만 밤새 잠들었던 몸과 마음 곳곳을 깨워 주는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한강으로 난 주 산책길로 가려면 집에서 반드시 2개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이게 여간 위험한 게 아니다. 4차선 도로에서 빨간 신호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쌩쌩 달리는 무법 차량이 하도 많아서다. 트럭이나 택시, 자가용 할 것 없이 신호 무시는 365일 예외가 없다. 아마도 아침 시간대에 통행량이 많지 않은 도로인 데다 일출이 늦은 요즘은 신호 위반이 더 늘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10t 이상의 집채만 한 트럭들이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신년 해돋이를 보러 온 사람들이 경포대 소방서 앞에 빼곡히 불법 주차한 사진이 화제가 됐다. ‘나 하나쯤 질서 안 지켜도 되겠지’, ‘남들도 안 지키잖아’ 하는 생각들인가. 교통사고 사망률이 OECD 34개국 중 최상위권(6위)인 우리다. 안전대국의 길은 요원한지, 산책 때마다 절망감이 든다.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시인/이순녀 논설위원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기사 패터슨(이름이 같다)은 매일 아내가 깨지 않게 조용히 일어나 홀로 아침을 먹고, 걸어서 출근해 버스 안에서 하루를 보낸다. 퇴근 후엔 항상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단골 술집에 들러 주인과 담소를 나눈다.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버스처럼 그의 일상은 언제나 같은 궤도를 돈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는 이 남자에겐 반전이 있다. 시(詩)를 쓰는 것이다. 잠든 아내의 모습, 아침 식탁에 놓인 성냥갑처럼 익숙하고 사소한 풍경에서 반짝이는 시어를 건져 올린다. ‘시인들이 사랑하는 영화’로 입소문난 짐 자무시 감독의 ‘패터슨’을 뒤늦게 봤다. 패터슨이 매일 일과를 시작하기 전 버스 운전석에 앉아 노트에 시를 쓰는 장면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아, 시를 저렇게도 쓸 수 있구나.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신기루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시 쓰기라니. 많은 시인들이 이 영화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도 세상이 흔히 오해하듯 찰나의 영감이 아니라 매일의 성실함으로 시를 빚어내는 시인의 현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 아닐까.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AI 청소기/김성곤 논설위원

    퇴근하니 안방에 맷돌보다는 작고, 까만 둥근 물건이 똬리를 틀고 있다. ‘옳거니 이게 바로 그것이구나.’ 연초 처가 모임이 있었다. 청소 얘기가 나왔다. “1차 진공청소, 2차 물걸레질, 가구 손걸레질까지…. 가끔 해서 그렇지 청소는 잘해요.” 아내의 고자질이다. 가만히 듣던 손위 처남이 그날 바로 주문했단다. 테스트를 해보려다가 설명서 보기가 귀찮아서 그냥 뒀다. 그러다 쉬는 날 아내와 함께 이 녀석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스위치를 누르니 케이스에서 나와 촉수를 빙빙 돌리며 바쁘다. 전문가다. 벽이 나오면 한참을 생각(?)하다가 방향을 튼다. 귀퉁이 커튼 밑에선 처박혀 씩씩거린다. 걱정이 될 때쯤 돌아 나온다. 기특하다. ‘음~괜찮은 식구가 생겼네.’ 그런데 녀석은 한동안 열심인 척하더니 안방과 거실의 3분의1은 손도 안 대고 ‘청소 끝’하고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런 거였어?” 난 진공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국산이 아니어서 그런가. 아니면 인공지능(AI)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가.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이 녀석을 살살 구슬려서 청소를 계속시켜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sunggone@seoul.co.kr
  • [길섶에서] 겨울의 맛/황수정 논설위원

    겨울의 참맛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뭐니 뭐니 해도 칼바람이 제맛일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미지근한 체온으로 혹한을 건너는 것도 이 계절의 성취가 아닌가 새삼 생각한다. 내게 이즈음의 묘미는 따로 있다. 푸성귀들 한가운데서 진을 치는 섬초, 세발나물을 푸지게 집어드는 일이다. 욕심껏 눌러 담아서는 등 뒤에 따라붙는 한뎃바람을 잽싸게 따돌리고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회심의 미소마저 짓는다. 바닷가 언 땅에 엎드려 가장 달게 겨울을 이기는 계절의 주인공들. 천원짜리 두어 장에 개선장군들이 내 차지가 되니 득의에 차는 것이다. 해풍에 덤비지 않고 그저 품어 버려서 섬초는 구석구석 단물이다. 갯바람에 맞서지 않고 차라리 삼켜 버려서 세발나물은 마디마디 흥건한 갯내음이다. 섬초 붉은 뿌리에는 어째서 속속들이 겨울 볕은 깊은지. 세발나물은 갯가의 앉은뱅이인데 어떻게 해삼, 멍게 냄새까지 온몸으로 다 기억하는지. 묵묵해서 더 크게 귀를 밝히는 밥상 위의 선생들. 데쳐도 삶아도 기죽지 않는 딴딴한 맛. 시치미 뚝 떼고 이 겨울이 누구 것이냐고 묻는, 겨울의 맛. sjh@seoul.co.kr
  • [길섶에서] 모과 까치밥/박건승 논설위원

    언제부턴가 초겨울이면 노랗게 익은 모과 서너 개씩을 사다 거실에 둔다. 모두 큼직하고 매끈한 개량종이다. 작은 소쿠리에서 퍼지는 은은한 향기가 그 어떤 인공 방향제에 견줄 바 아니다. 요새는 모과에도 농약을 친다는 얘기를 들어 다소 꺼림칙하던 차에 지난달 지인이 흰 눈을 뒤집어쓴 무농약 노란 모과 사진 몇 장을 SNS로 보내왔다. 북한산 자락 자신의 집 뒤에서 자생하는 것들 중에 가을철 수확을 끝낸 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란다. 푸른 하늘가에 순백과 노랑이 앙상블을 이룬 듯하다. 날짐승을 위한 것이란 뜻에서 이름도 ‘모과 까치밥’으로 붙였다. 까치가 감이 아닌 모과를 찍어 먹는다는 것도, 모과 까치밥이란 말도 처음 듣는다. 순수한 동심이 발동했으리라. 한겨울에 못난이 모과 까치밥 몇 개를 얻은 것까진 좋았는데 일주일을 못 버텼다. 향기 대신 고약한 냄새가 나는가 싶더니 이내 썩어 버렸다. 따뜻한 실내에 들어와 긴장감이 확 풀린 탓일까. 아니면 인간이 제 먹이를 탐한 것에 까치의 분풀이가 작용한 것일까. 조상들은 ‘이눔아, 까치밥은 남겨 두어라’ 하셨거늘. 제 발 저린 도둑이 따로 없다.
  • [길섶에서] 과잉 진료/최광숙 논설위원

    며칠 전부터 감기몸살로 고생하던 지인이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일요일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환자들이 많아 거의 1시간 기다렸다. 독감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단다. 주사도 한 대도 맞았다. 진료비는 3만 6300원. 처방전을 보고 더 놀랐다고 했다. 진해거담제 및 기침감기약,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소염효소제, 위 보호약, 항알러지약 등 모두 6종류의 약을 3일치를 처방했다. 이 가운데 진해거담제 및 기침감기약은 캡슐약과는 별도로 시럽으로 된 약도 추가로 처방했으니 중복 처방인 셈이다. 약사에게 중복된 약 중 한 가지는 빼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마음대로 하란다. 약사도 의사가 불필요한 약까지 처방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약값 4500원. 일요일 진료에 독감검사 비용을 감안해도 감기 진료와 약값으로 총 4만여원이 나갔으니 너무 많은 액수다. 일요일에도 문을 연 병원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사라졌다. 과잉 진료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환자에게 결코 좋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의사일 것이다. 병원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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