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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용산에서 만난 트루먼

    [길섶에서] 용산에서 만난 트루먼

    며칠 전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들렀다. 지난달 24일 상설전시관에 ‘6·25전쟁 지도자실’이 새로 마련됐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고 직접 둘러보고 싶어서였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틀 만에 미군의 참전을 결정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과 긴밀히 소통하는 내용 등 전쟁의 전 과정이 단계별로 소개돼 있었다. 전쟁 후반 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을 우려해 정전을 추진한 트루먼과 분단 고착화를 우려해 이에 반대한 이승만이 충돌하는 과정도 사진과 함께 기록돼 있다. 트루먼의 신속한 파병 결정이 없었다면, 열세였던 6·25전쟁의 흐름을 뒤집어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트루먼의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이스라엘·이란의 전쟁에선 이스라엘을 거들어 이란의 핵시설을 직접 타격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선 일방적으로 침략을 당한 우크라이나에 조기종전을 종용하는 트럼프 대통령. 한국은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 [길섶에서] 영희와 철수

    [길섶에서] 영희와 철수

    옛 초등학교 국어책에는 철수와 영희가 자주 등장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첫 국어 교과서부터 남학생과 여학생을 그렇게 일반명칭처럼 썼다. 70년대 한때는 기영이와 순이로 바뀌기도 했지만, 1987년까지 철수와 영희는 계속 교과서의 주인공 역할을 하며 어린이들의 대표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만화와 영화 등에서 갖은 캐릭터가 넘쳐나는 요즘은 철수와 영희 같은 반듯한 이미지의 이름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1에 영희가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마스코트로 등장하면서 부활했다. 귀엽다가도 기괴한 이미지로 돌변해 게임규칙을 위반한 참가자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살인병기다. 철수도 시즌3 줄넘기 게임에서 영희와 함께 줄을 돌리는 역할을 맡았다. 줄을 넘지 못하는 참가자들을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하는 섬뜩한 캐릭터다. 한국 ‘모범 어린이’의 상징적 이름인 영희와 철수가 외국인들에게는 저승사자, 악마의 대변자로 기억될까 괜히 마음이 쓰인다.
  • [길섶에서] 에케르트 무덤

    [길섶에서] 에케르트 무덤

    서울 마포의 합정동은 세계적인 명소인 ‘홍대앞 문화권’이 확장하며 그에 못지않게 진화하고 있다. 합정역 교차로에서 양화진길을 따라 한강 방면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오른쪽에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나타난다. 내부로 들어서면 조선시대 한강을 방어하던 군사시설 양화진의 옛터도 보인다. 독일 음악가로 ‘대한제국 애국가’를 지은 프란츠 에케르트(1852~1916)의 무덤은 서울신문의 전신인 항일구국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어니스트 베델의 묘소에서 두 칸 떨어져 있다. 가정이지만 대한제국이 오늘날까지 유지됐다면 우리도 그의 노래를 안익태 애국가 대신 부르고 있을지 모른다. 에케르트는 앞서 일본에 머물면서 전통 단가를 바탕으로 ‘기미가요’를 작곡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에게도 부르도록 강요한 일본 국가다. 우리에겐 치욕스럽지만 작곡자는 죄가 없다. 일본인은 대부분 자신들의 국가를 지은 사람의 무덤이 서울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가질 역사관광 자원인 만큼 지금부터라도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 [길섶에서] OTT와 자기 통제

    [길섶에서] OTT와 자기 통제

    보고 싶은, 봐야겠다고 느껴지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케이팝을 소재로 소니픽처스가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지난 20일 넷플릭스에 공개돼 41개국에서 정상에 오르자 중국 누리꾼이 ‘표절’이라고 공격했다는 뉴스에 찾아봤다. ‘오징어 게임’ 시즌3는 지난 27일 개봉됐다. 시즌1 개봉 당시 초기 시청자는 아니었다.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됐는데 봐야 하지 않냐”는 지인 지적에 뒤늦게 몰아봤다. 시즌3는커녕 시즌2도 아직 안 봤다. 줄거리 요약 동영상도 있다지만, 원본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다. 한 지인은 보고 싶은 시리즈물이 나오면 하루에 한 편씩만 본단다.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되는 날에만. 70대 지인은 ‘넷폐인’(넷플릭스 폐인)에서 벗어나려고 2년여 구독을 끊었다가 최근 ‘폭싹 속았수다’를 보려고 재가입했다. 요즘은 수십 편짜리 시리즈물을 하루에 한두 편씩만 챙겨 본다. 지상파에서 방송된 드라마나 예능은 물론 오래전 영화, 시리즈물까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옮겨 오고 있다. OTT 앞에서의 자기 통제가 절실해졌다.
  • [길섶에서] 몸의 진실

    [길섶에서] 몸의 진실

    누구나 경험했듯 감기에 걸리기 전, 몸은 먼저 신호를 보낸다. 피로감이 쌓이고, 목이 칼칼하거나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그냥 무시했다가 며칠 앓아눕고 나서야 깨닫는다. 몸이 이미 이상을 감지했다는 것을. 진화의 관점에서도 몸은 ‘주변 환경을 읽는 감각 기관’이다. 위협을 느끼기 전 심장은 먼저 뛰고 손바닥은 땀으로 젖는다. 뇌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생존을 위해 그렇게 진화해 온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오랜 세월 몸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며 위기를 피했다. 그래서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피로, 통증, 불면 같은 증상은 단순한 고장이 아니다. 이를 무시하면 몸은 점점 더 강하게 항의한다. 두통으로, 위장 장애로, 때론 만성질환으로 나타난다. 몸은 늘 정직한데 현대인은 이 신호를 자주 무시한다. 스트레스를 참고, 피로를 카페인으로 버티며, 아픔도 약으로 눌러 넘긴다. 그렇게 몸의 호소를 외면하다 보면 결국 몸은 화를 내고 멈춰 선다. 몸은 늘 나보다 먼저 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 이것이 건강의 첫걸음이 아닐까.
  • [길섶에서] 조용한 ‘파격’

    [길섶에서] 조용한 ‘파격’

    ‘디자인 마이애미’가 오는 9월 DDP에서 열린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갤러리들이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선에 있는 컬렉터블 디자인을 선보인다. 마이애미와 바젤을 거점으로 전 세계를 순회하며 전시를 펼쳐 왔는데, 아시아 개최는 이번이 처음이다. 2023년 ‘우니베르소 페라리’에 이어 DDP가 또 한 번 아시아 데뷔 무대가 되는 셈이다. 세계적 행사들이 아시아 첫발을 내딛는 장소로 DDP를 선택하는 데는 건물의 힘이 8할 이상이다. 2014년 3월 곡선의 비정형 건축물이 공개될 때만 해도 일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받던 DDP.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낯설었던 파격은 언제 봐도 신선한 매력으로 녹아들었다. 겨울마다 222m 높이 외벽에 미디어아트를 투사하는 ‘서울라이트 DDP’는 건물을 캔버스로 바꿔 놓는다. DDP 외형에 먼저 반한 관람객이 내부로 입장하면 그 마음은 한결 더 쉽게 무장해제된다. 하품과 무기력처럼 파격도 전염력이 강하다.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퍼지듯, 맹물에 선명한 잉크를 떨어뜨리면 번져 나가듯. DDP가 그 여정을 밟고 있다.
  • [길섶에서] 무명의 ‘일본인’ 선교사

    [길섶에서] 무명의 ‘일본인’ 선교사

    우리나라의 기독교 선교 역사는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은 1885년부터 시작된다. 올해 140주년이다. ‘푸른 눈’ 선교사 이야기는 꽤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보다 기독교 전파가 덜한 일본에서도 한국에 선교사가 왔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오늘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은 일제강점기 한국에 온 무명의 일본인 선교사 두 명의 숨겨진 이야기다. 1896년 조선의 국모가 일본인에게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고 죄책감을 느낀 일본인 최초 선교사 노리마쓰 마사야스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조선에 복음을 전하겠다’며 한국행을 결심한다. 1928년 그의 정신을 잇는 또 다른 일본인 오다 나라지가 한국에 온다. ‘전영복’으로 불렸던 그는 신사참배 반대 설교를 해 일본군의 고문도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과 한국을 “가깝고도 먼 나라”,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했다. 선교 등 여러 면에서 한일 관계는 재조명될 것이 많다. 김미경 논설위원
  • [길섶에서] 오색 국수와 비빔밥

    [길섶에서] 오색 국수와 비빔밥

    정치인들의 식탁에는 통합의 의미가 담긴 음식이 오를 때가 많다. 그제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오찬 메뉴는 오색 국수였다. 다섯 가지 색의 소면이 조화를 이룬 오색 국수의 등장에 참석자들은 “이것도 통합의 의미가 있지 않으냐”면서 다 같이 웃었다고 한다. 여당과 야당이 생각과 입장은 다를 수 있어도 국민과 나라를 위해 서로 소통하고 타협해야 한다는 협치의 메시지를 품은 국수 한 그릇이었다. 정치적 통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식은 비빔밥이다. 여러 가지 재료를 한 그릇에 담아 고루 섞어 먹는 비빔밥은 각자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로 어우러지는 화합의 중요성을 잘 보여 주는 음식이다. 그런 이유로 역대 대통령들은 중요한 국면마다 야당 인사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비빔밥을 자주 식탁에 올렸다. 오색 국수든 비빔밥이든 메뉴가 뭐 그리 대수랴. 중요한 것은 언제든 마주 앉아 머리를 맞댈 수 있는 타협과 대화의 자세다. 굳이 ‘통합의 메뉴’가 필요 없을 만큼 이재명 정부와 여야 간 협치가 굳건하게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 [길섶에서] 횡재 같은 그늘 아래

    [길섶에서] 횡재 같은 그늘 아래

    횡재라는 낱말을 입에 굴리면 새까만 오디알이 생각난다. 옆집 뽕나무 때문에 어린 날의 유월은 애가 타서 흘렀다. 이마처럼 말간 여름 마당에 새들이 자꾸 검은똥을 뿌려댈 때. 가장 달게 옆집 오디가 익고 있다는 신호였다. 우리집 담장 안으로 쏟아진 가지는 어느 집 것인가. 옆집 것인가, 우리집 것인가. 할머니는 넘어온 가지를 옆집 담장 안으로 쓸어 넘기셨다. 볕이 쟁글쟁글 바람 한 점 없는 유월의 빈 마당에서 나는 꿈을 꾸듯 주문을 외웠다. 우리 할머니 몰래 바람아 불어라, 가지야 넘어와라. 할머니 몰래 소나기야 한줄금 퍼부어라. 새까만 오디알이 우리 마당으로 쏟아지게, 횡재처럼 쏟아지게. 까맣게 익어 갔던 그 횡재를 문득 만났다. 좋아하는 산자락 길에 세상에나, 오디가 소복이 떨어져 있다. 조붓한 길의 뽕나무를 그제야 알아차렸다. 넓어진 이파리들 틈새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햇빛과 하늘. 뭉칫돈을 주면 이 아득한 그늘을 살까, 그리움을 데려올까. 강보로 나를 감싸는 그늘 아래. 우물처럼 깊어지는 그늘 아래서 유월은 익고 있다. 횡재처럼 까맣게 익고 있다.
  • [길섶에서] 체중계의 배신

    [길섶에서] 체중계의 배신

    얼마 전 집 거실에 놓여 있던 체중계를 새것으로 바꿨다. 전에 쓰던 체중계의 계기판 숫자가 희미해져서였다. 그런데 새 체중계에 올라선 순간, 전에 봤던 수치보다 1.0~1.5㎏가량 더 나오는 것이었다. 말이 안 된다 생각하고 집 식구 A의 수치를 물어보니 자기도 그 정도가 전보다 더 나온다 했다. 또 다른 식구 B도 마찬가지란다. ‘그러면 그렇지’, 안도한 지 하루 뒤. 이번엔 B가 오랜만에 집 근처 헬스클럽에 다녀오더니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헬스클럽의 두 개 체중계로 정확히 측정한 결과 새 체중계에 이상이 없다는 것. 그렇다면 이전 체중계가 문제가 생겨 실제보다 체중을 덜 나가게 보여 줬을 가능성밖에 안 남는다. 그걸 실체중으로 믿고 있다가 ‘배신’을 당한 셈이다. 식구들이 모두 새 체중계를 불량품이라 확신하고 환불 또는 교체를 요구할까 했던 게 민망해졌다. 하지만 체중계가 무슨 잘못이랴. 배신자는 체중계가 아니라 ‘집단사고’에 빠져 편한 쪽으로 생각하려 했던 내 자신이다. 그래서 부정과 분노를 거두고 현실을 수용, 체중관리에 좀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 [길섶에서] 역사는 승자의 것

    [길섶에서] 역사는 승자의 것

    최근 경기 평택시 덕암산의 원균 장군 묘를 찾았다.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해 귀양 보낸 간신으로 알려졌는데 후손들은 묘를 반듯하게 정비해 놓았다. 원균은 여진족 토벌에서 공을 세우는 등 촉망받는 무관이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등과 연합 함대를 구축해 옥포, 당포, 당항포, 한산도에서 연전연승을 거뒀다. 그러나 포상 과정에서 이순신과 공로 다툼을 벌이다 불화가 생겼다. 결국 1597년 칠천량에서 패해 이순신보다 1년 먼저 전사했다. 원균 시신의 행방을 알 길이 없어 유품으로만 묘를 조성했다. 묘 앞에는 원균의 죽음을 알리려고 천리를 달려와 원균의 생가에 신발과 담뱃대를 놓고 죽은 말의 무덤인 애마총도 있다.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에는 ‘흉악하다’, ‘간흉하다’ 등 원균을 비난하는 글이 32군데나 나온다. 원균은 1604년 이순신, 권율과 함께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책록됐다. 원균은 비열한 장수였을까. 혹시 이순신을 영웅시하려고 대책점에 섰던 원균을 필요 이상으로 깎아내린 것은 아닐까. 역사는 승자의 것이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이종락 상임고문
  • [길섶에서] 고양이 역사

    [길섶에서] 고양이 역사

    국사편찬위원회는 2008년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서비스하고 있다. 검색어를 넣으면 한글번역문과 원문을 모두 볼 수 있다. 조정에서 이런 이야기도 오갔을까 싶은 내용도 있으니 재미있다. 고양이도 그렇다. 실록에 129건이나 언급됐다. ‘고양이를 기르는 집에는 쥐가 마음대로 다니지 못한다’는 옛말이 자주 등장한다. 지방 수령을 어진 인물로 뽑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탐오(貪汚)하고 잔폭(殘暴)한 수령에겐 암행어사를 보내 바로잡아야 한다는 내용이 조선시대 내내 고르게 분포한다. ‘고양이를 고양이로 바꾼다’는 표현도 나온다. 부정을 저지른 관리를 교체하면서 처신이 바르지 않은 자를 다시 내세우는 인사 난맥상을 지적하고 있으니 오늘날에도 새겨야 할 교훈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으로 온 명나라 제독 이승훈이 선조에게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달라는 공문서를 보낸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선조가 두 차례나 전교(傳敎)했는데도 고양이는 찾지 못했다. 외빈을 접대하는 책임을 맡은 접반사는 이승훈에게 사과해야 했다. 임금의 꾸짖음도 들어야 했다.
  • [길섶에서] 한철 장사 에어컨

    [길섶에서] 한철 장사 에어컨

    폭염 시작 며칠 전 다행히 천장형 에어컨 청소를 했다. 올 3월 초 아파트 게시판에 업체 광고가 붙었는데 두 달 지나니 사라졌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연락을 넣었더니 예약이 다 찼단다. 광고가 사라진 이유였다. 취소가 나오면 연락을 주겠다더니 보름 정도 지나 일요일 오후 1시로 연락이 왔다. 40대 가장 두 명이 공동대표이고 후배 한 명이 직원인 회사였다. 에어컨 분리와 재조합, 필터 세척 등을 세 사람이 나눠서 했는데 에어컨 3대 청소에 한 시간쯤 걸렸다. 에어컨 청소가 ‘한철 장사’인지라 일요일에도 일한단다. 다음 집으로 이동하기 전 정리와 준비에 시간이 걸려 하루 일곱 집이 최대 업무량이란다. 그날도 일곱 집을 방문하는데 우리집이 네 번째라고 했다. 5인 미만 회사니 주 52시간제 등은 이들에겐 남의 이야기다. 근로기준법의 많은 조항들은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한철 장사 공급자 입장에서는 예외가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인 나도 그 혜택을 누렸다. 청소비는 평일과 똑같았다. 달랐다면 나는, 아파트 주민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 [길섶에서] 달라진 여름

    [길섶에서] 달라진 여름

    덥다. 본격적인 무더위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낮 기온은 벌써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맘때 햇볕이 이렇게 강했나 싶을 만큼 기온은 빠르게 오르고 있다. 어릴 적 같았으면 친구들과 바가지 하나씩 들고 도랑물로 뛰어갔을 텐데. 양동이로 물을 퍼 올려 서로에게 들이붓고, 땡볕 아래서도 우리는 웃었다. 피부는 따갑고 머리는 어질했지만, 그것조차 여름의 일부였다. 지금은 실내 냉방과 찬 음료로 더위를 달래고 있다. 거리의 열기는 콘크리트에서 솟고 밤이 되어도 좀처럼 식지 않는다. 선풍기 하나로 버티던 때도 있었다. 밤이면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손부채질하며 잠을 청하던 그 시절. 땀이 맺힌 이마를 어머니가 닦아 주며 “더위 먹으면 고생이다” 하시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에어컨과 쿨매트를 동원해도 열대야에 지친 잠자리가 쉽지 않다. 변한 건 나이만이 아니다. 지구도 달라졌다. 더위의 강도도, 기간도 예전 같지 않다. 우리가 기억하는 여름은 과거형이다. 이제 우리 앞의 여름은 이름만 같을 뿐 어딘가 달라진 계절이 아닌가 싶다. 오일만 논설위원
  • [길섶에서] 구인난과 사양

    [길섶에서] 구인난과 사양

    ‘직’을 사양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삼고초려다. 그러나 제갈량처럼 빼어난 인물이 아닌 이상 그렇게 무작정 사양하는 일은 흔치 않다. 와병 핑계라도 대기 마련인데, 귀 먹고 침 흘리는 노인 행세로 상대를 속여 안심시킨 뒤 쿠데타를 일으킨 사마의가 대표적이다. 건강함이 차고 넘칠 땐 개인사 뒤로 숨는다. 부모 삼년상을 마치지 못했다거나 가족 병 간호를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버전은 현대에 들어 아이들의 10대에 부모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폴 라이언 전 미국 하원의장은 “주말에만 만나는 아빠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며 48세에 정계를 떠났고, 저신다 아던 전 뉴질랜드 총리는 “딸의 첫 등교를 함께하고 싶다”며 사임했다. 어제 내란·김건희·해병대원 특검 등 3대 특검 후보 추천이 이뤄지기까지 후보 물색 과정에서 구인난이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사양하는 이유를 설명하느라 가족과 생계, 생활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무수한 사양의 이유를 뛰어넘을 특검의 의의를 고민하게 된다. 홍희경 논설위원
  • [길섶에서] 닭과 달걀

    [길섶에서] 닭과 달걀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는 근육을 유지하고자 단백질을 조금이라도 더 섭취하려고 노력한다. 가성비 좋은 단백질로는 닭고기와 달걀을 꼽을 수 있다. 단백질 관점에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아니라 둘 다 소중하다. 그런데 요즘 닭고기와 달걀값에 부쩍 신경이 쓰인다. 달걀은 지난달 평균 소비자가격이 특판 한 판(30개)에 7026원으로 4년 만에 최고치다. 산란계 고령화와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가금티푸스 등 질병 발생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 탓이다. 정부 규제와 소매점 폭리가 가격 상승을 촉발했다는 지적도 있다. 닭고기 산지 가격도 1년 전의 1.5배 수준으로 올랐다. 출하량이 준 데다 크기가 큰 닭이 부족해 부분육 공급도 줄었다. 지난달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브라질의 닭고기 수입이 중단됐다는 소식에는 가슴이 아프기만 하다.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지난주 재래시장을 깜짝 방문해 고기·과일 등을 구입했다. 이 대통령은 또 최근 회의에서 라면 등 물가를 걱정했다. 새 정부가 장바구니 물가를 잡아 주길 바란다. 특히 닭고기와 달걀을 계속 가성비 최고 단백질로 접하고 싶다.
  • [길섶에서] 이중 잣대

    [길섶에서] 이중 잣대

    회사 근처 줄 서는 맛집에 가기로 한 지인이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일행이 모두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했기에 나보다 늦게 온 손님들이 먼저 입장해 식당 안은 이미 만석이 된 상황. 막 전화를 걸려던 순간 저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지인이 보였다. 회사 일 때문에 늦었다며 미안해하는 그에게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짜증이 올라왔다. 며칠 뒤, 이번에는 내가 다른 친구와의 점심 약속에 늦었다. 급한 업무 전화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양해를 구했는데도 친구는 “좀 일찍 다녀라”라며 핀잔을 주었다. 입장이 바뀌고 보니 악의 없는 농담조차 서운했다. 하지만 나 역시 약속에 늦은 지인을 진심으로 배려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봄바람처럼 남을 대하고 가을 서리처럼 자신을 살피라’는 뜻의 춘풍추상(春風秋霜)은 고사하고 나에게만 유리한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경계하며 살 일이다. 나랏일 하는 공직자라면 더더욱이나.
  • [길섶에서] 감자꽃이 피면

    [길섶에서] 감자꽃이 피면

    ‘햇’이라는 접두사가 감자만큼 잘 어울리는 것이 있을까. “햇감자” 하면 입안에 포슬포슬 감자 분이 날린다. 무슨 습벽인지 햇감자만 보면 사들이고 본다. 못난이 감자, 잘생긴 감자가 뒷베란다에 봉지봉지. 다 어쩔 셈인지. 유월이면 우리집 앞 감자밭에는 흰꽃이 활짝 피었다. 달 있는 초저녁에 할머니는 감자꽃을 꺾어 내셨다. “아가, 미안하네.” 일껏 핀 꽃을 감자알이 잘 영글라고 툭툭 분지르셨다. 아까워도 내놓아야 하는 것을 감자밭에서 알았다. 감자만 보면 쩨쩨하던 내 손이 커진다. 먹을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넘치게 삶고 본다. 그런데 이상하지. 숟가락으로 껍질을 긁어 굵은 소금에 사카린을 질러도 양은솥에 오달지게 눌어붙던 맛. 그 맛은 무얼 어찌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유월마다 미궁에 빠지는 맛. 삶은 감자 소쿠리에 딸아이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 밋밋한 것이 속깊이 감싸 줄 때가 있는데, 이 심심한 것이 허기를 뜨겁게 채워 줄 때가 있는데. 삼시 세끼 혼자 감자를 먹는다. 감자꽃이 달보다 밝았던 달밤도 먹는다. 두고 온 달밤으로 열두 번은 들락날락, 환하게 깊은 감자 먹는 밤. 황수정 논설실장
  • [길섶에서] FM 버스기사와 승객

    [길섶에서] FM 버스기사와 승객

    며칠 전 광화문에서 좌석버스를 탔다. 운전기사는 승객들에게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승객들이 모두 착석했는지 뒤쪽을 한번 돌아본 뒤 출발을 했다. 정류장에 도착할 때마다 “정차하기 전에 일어서시면 안 됩니다”라고 연신 주의를 줬다. 일부 승객은 “자리에서 출입문이 멀어서 미리 나와 있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버스에서도 수시로 “완전히 정차할 때까지는 안전한 자리에서 기다려 달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지만, 여전히 먼저 일어서는 승객들이 있었다. 기사는 “충분히 시간을 드릴 텐데 계속 나오시네”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소비자원에 접수된 버스 피해 가운데 주행 중 승객의 미끄러짐이나 넘어짐이 282건(65.9%)으로 가장 많았다. 출입문 쪽에 미리 나와 있지 않았다고 운전기사에게 타박을 받은 경험이 있는 고령자들이 피해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회사의 운행시간에 쫓기는 기사들의 눈치를 보던 승객들이 선진국형 기사들의 ‘FM 운전매너’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듯했다.
  • [길섶에서] 원주 여행

    [길섶에서] 원주 여행

    강원도 원주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문막의 막국수집은 새 건물을 지어 옮겼으니 시간이 적지 않게 흘렀음을 알겠다. 수수했던 막국수맛이 깔끔한 집으로 옮기면서 도시스러워진 것은 흥미로웠다. 옛 맛을 떠올리며 흠을 잡으려 했지만 맛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목적지는 지광국사 현묘탑을 제자리로 옮겼다는 법천사 터다. 하지만 현묘탑이 들어선 유적전시관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언덕 위의 현묘탑비만 돌아보고 발걸음을 돌리는데 잘 정비된 폐사지 모습에 마음이 흐뭇하다. 5분쯤 더 달리면 손곡리다. 조선시대 대시인 손곡 이달이 살던 동네다. 그의 시는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한때는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시비를 세우고 공원도 조성했다. 하지만 이제 손곡저수지 둑방의 공원엔 누구를 기리는지 알리는 안내판조차 없다. 지역에선 법천사, 거돈사, 흥법사 같은 고려시대 절터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 오고 있다. 하지만 큰돈을 들여 꾸미는 폐사지의 모습이 다른 문화의 흔적을 포기하는 대가라면 더이상 아름답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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