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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가을 길 걸으며… 사랑 한 발짝… 건강 두 발짝…

    서울 가을 길 걸으며… 사랑 한 발짝… 건강 두 발짝…

    서울시가 ‘가을에 걷기 좋은 서울길’ 10곳을 선정해 소개했다. 시는 시내 133곳의 생태문화길 중 보도여행 전문가의 추천을 받아 가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10곳을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선정된 10곳을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도보여행 손성일 이사장의 추천을 받아 야경이 아름다운 길, 가족과 걷기 좋은 길, 연인과 함께하는 길 등 세 가지 주제로 나눴다. 먼저 가을 밤의 낭만과 함께 서울의 아름다운 밤 풍경을 느낄 수 있는 ‘야경이 아름다운 길’에는 동대문 서울 성곽길(3.4㎞, 1시간 30분)과 성동생태길(10.4㎞, 3시간 30분), 광개토대왕길(5.9㎞, 2시간 20분) 등 3곳이 선정됐다. 동대문 서울성곽길은 낙산공원 정상에서 서울 도심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며 성동생태길은 서울숲과 응봉공원, 독서당공원, 호당공원 등 여러 공원을 두루 둘러볼 수 있다. 광개토대왕길은 아차산 정상에서 한강과 어우러진 도심 야경을 볼 수 있다. 가족이 함께 소풍 가는 기분으로 나들이할 수 있는 ‘가족과 걷기 좋은 길’에는 정릉 숲길(7.4㎞, 2시간 30분), 성북동 고택 북촌 문화길(8.7㎞, 3시간), 인사동문화길(4.5㎞, 1시간 30분), 서리골 서리풀 공원길(3.9㎞, 1시간 20분), 배봉산 중랑천 둑길(7.1㎞, 2시간 30분) 등 5곳이 추천됐다. 이 가운데 정릉 숲길은 계곡과 약수터가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어린아이들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며, 서리풀 공원길은 프랑스마을인 서래마을이 있어 외국인을 자주 만나는 이국적인 코스다. 성북동 고택길에서는 고풍스러운 수연산방과 한용운 선생이 살았던 심우장, 길상사 등을 만날 수 있으며 인사동 문화길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거리를 산책할 수 있다. ‘연인과 함께하는 길’에는 해질 무렵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월드컵공원 순환길(14.8㎞, 4시간 30분)과 남산순환 산책 1길(9.8㎞, 3시간)이 뽑혔다. 월드컵공원 순환길에는 해질 무렵 노을이 가장 아름답다는 노을공원이 있으며 남산순환 산책1길에 있는 N서울타워의 사랑의 열쇠탑은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자주 찾는 명소다. 한편 걷기 좋은 서울길 10곳을 포함한 생태문화길 113곳에 대한 자세한 코스 정보는 ‘서울의 공원’(parks.seoul.go.kr)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산촌농부 변신 이계진 前 아나운서

    [김문이 만난사람] 산촌농부 변신 이계진 前 아나운서

    ‘자 이제 돌아가자/고향산천이 황폐해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지금까지 정신을 육체의 노예로 삼아온 것을/어찌 슬퍼하고 서러워만 할 것인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첫 대목이다. 이뿐만 아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헤르만 헤세의 ‘전원생활 이야기’, 타샤 튜터의 ‘정원’ 등에도 ‘귀거래사’와 같은 ‘돌아감’의 행복을 진솔하게 다루고 있다. 천상병 시인도 ‘나 이제 돌아가리라~’로 ‘귀천’을 읊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귀(歸) 철학’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터. ‘국영수’로 정신없이 치열하게 세상을 살다가 결국 ‘예체능’을 택하듯이 말이다. 이계진(66) 전 아나운서. 얼마 전 방송을 통해 1996년부터 산촌생활을 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물론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재선 국회의원과 강원도지사 출마 등 정치활동을 했지만 이때에도 개인생활의 주거는 산촌이었다. 따라서 산촌생활은 올해로 꼭 16년째인 셈이다. 최근에는 세속과의 인연을 아예 단절하고 시골 농부로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다. 직접 밭을 갈고, 씨 뿌리고, 퇴비 주고, 땀 흘려 수확하는 행복에 푹 빠져 있는 것. 지난 13일 낮 경기도 한 산촌에 사는 이씨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자신의 집 주소가 알려지면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일부러 세상 시름 잊기 위해 조용한 곳을 찾아왔기 때문이란다. 이씨의 집에 도착하자 그는 “옥수수는 금방 찐 것이 맛있어요. 제가 직접 농사를 지은 것입니다.어서 드세요.”라고 활짝 웃으면서 권했다. 그러면서 방울 토마토를 꺼낸다.“이것도 직접 기른 것입니다. 제가 주스 만드는 솜씨를 보여드리지요.”라고 하면서 야외 살강 쪽으로 간다. 허름한 청바지 차림에 밀집모자를 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앞마당에는 365일 걸려 있다는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고 바로 옆에 오래된 산벚나무가 있었다. 그 아래에서 옥수수와 토마토 주스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눴다. ●직접 기른 옥수수·방울토마토로 손님 맞아 “집 주변으로 쭈욱 밭이 연결돼 있습니다. 대부분 자갈밭인데 흙을 구해다가 50㎝정도 두께로 덮고 농사를 지었지요. 그러느라 처음에는 고생 좀 했습니다. 지금은 여러 농작물이 잘 자라 보람을 느끼고 있지요.”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집과 마당, 밭을 포함 모두 5610㎡(1700평)이다. 그 넓은 밭을 어떻게 혼자 일구고 농사일을 할까. 궁금해하자 “경운기 등 필요한 농기계를 다 장만했지요. 또 ‘건농회’라고 있습니다. ‘건달 농민 모임’을 줄인 말입니다. 교장선생님, 무역회사 사장, 건축사 등 이른바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로 모임이 결성됐는데 그분들과 함께 농사를 짓기도 합니다.”라고 설명해준다. 거침없이 나오는 말이 프로 농군이다. “감자는 대개 장마가 지기 전인 하지 무렵에 캡니다. 고구마는 지금 막 크기 시작했는데 며칠 전 멧돼지들이 습격해 싹쓸이하고 가버렸습니다. 주로 밤에 공격을 하는데 진돗개 한 마리가 이들을 저지하지만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밤에 잠 들려고 하면 개 짖는 소리에 랜턴을 들고 진돗개를 응원하러 나가 보지만 멧돼지들이 워낙 동작이 빨라서 말입니다.” 이씨는 주변 농가들도 대부분 그런 피해를 입는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뱀이나 멧돼지 한 마리만 나타나도 큰 뉴스거리로 취급하지만 여기에서는 밤마다 나타나는데도 아무런 뉴스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며칠 전에는 집 앞마당에 독사, 능구렁이, 꽃뱀 세마리가 나타나 잡았단다.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은 동물을 함부로 잡지 말라고 주장하지만 인간을 공격하는 동물들을 그냥 나둘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가 현재 재배하는 농작물들은 어떤 것일까. “많습니다. 고추, 가지, 토마토, 옥수수, 호박, 참외, 파, 오이, 상추, 쑥갓, 토란, 고구마, 그리고 올해 새로 심은 인디언 감자까지 포함해 20여가지는 되지요. 다 잘 자라지는 않습니다. 농약을 안 쓰니 전멸하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말없는 흙에서, 식물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는 농약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잠시 얘기한다. 프로 농부인 경우 최고 품질의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에 농약을 안 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과실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는 것. 다만 시장에 출하하기 7일전까지만 농약을 치면 광분해와 수분해를 거쳐 농약성분이 없어지는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다. “제가 16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저농약 농법을 한 번 정도 해 봤지요. 완전 무농약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옥수수, 고구마, 호박, 부추, 토란, 상추 등은 농약을 안 쳐도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배추는 새끼 때 살짝 한 번 (농약을) 쳐 주면 되구요.” 그가 맨처음 산골에 왔을 때 주위에서는 왜 왔을까 많이 의아해했단다. 잘 나가는 아나운서가 땅을 사서 값이 오르면 팔고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투기로 생각했다는 것. 그러나 지금은 정다운 마을 주민이 됐다. 농법을 가르쳐주는 청년도 있고 경조사때 초청하는 이웃들이 많아졌다. 산토끼 잡았으니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오면 막걸리 몇병 사들고 가서 같이 웃고 즐긴다. 화제를 바꿨다. 그는 법정스님을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어떤 까닭일까. “오래 전 집사람이 가족들과 함께 송광사 수련회를 간 적이 있었지요. 이때 처음 인연이 됐습니다. 이후 길상사 창건할 때에도 만났고 제가 여기 집을 지을 때도 오시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에게 농사를 지을 때 비닐을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흙에도 미생물이 있는데 비닐농법을 하면 죽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농사를 지을 때 비닐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뭐든지 적게 쓰고 덜 쓴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저는 법정스님의 유발상좌(삭발하지 않고 은사스님을 따르며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지요. 다비식때에도 그런 자격으로 참여했습니다.” 법정스님이 생전에 권한 소로의 ‘월든’이나 타샤의 ‘정원’도 유발상좌가 되면서 읽었고 산골행을 결심한 것도 이때였다고 술회했다. 법정스님한테 계를 받았고 법명은 향적(香積)이다. “원래 제 집사람이 건강이 안 좋았는데 여기 와서 많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농사일을 노동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운동으로 여기고 있지요. ‘이땅은 당신의 건강을 지켜주는 종합병원’이고 ‘당신의 두 팔과 다리는 명의’라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즐겁게 농사일을 합니다. 숲속의 삶은 곧 어지러운 세상의 삶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욕심이 없어지고 선한 생각이 저절로 생겨나지요.” 그의 앞마당에는 조그마한 개울이 있다. 봄이 되면 개구리며 도룡뇽 수천마리가 ‘봄의 왈츠’를 노래한다. 이씨는 행여나 도룡뇽 알이 잘못될까봐 개울 물길을 이리저리 살피며 자연스럽게 잘 성장하도록 도와준다. 그는 밭 가장자리에 해바라기를 많이 심었다. 왜 그랬을까. “해바라기의 진실을 혹시 아세요. 흔히 해바라기라고 하면 권력이나 또 어떤 곳의 눈치를 보는 아부의 상징이라고 하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해바라기는 자기가 태어난 곳만 항상 바라보는 우직함이 있지요. 동쪽을 바라보며 태어났으면 죽을 때까지 동쪽만 바라봅니다. 아부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요.” ●태어난 방향만 바라보는 우직한 해바라기 사랑 인터뷰가 거의 끝날 무렵 아랫마을에 도토리묵 음식을 잘하는 곳이 있는데 간단히 식사하자고 권했다. 그리하여 장소를 옮겼다. 안주와 시원한 막걸리가 나왔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궁금했던 것 한 가지를 물었다. 그는 고려대 국문학과 재학 중 학군단(ROTC) 훈련과정을 모두 마치고 임관 직전 불가통보를 받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처음 밝히는 내용이라고 했다. “임관할 때에는 신체검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결핵환자이니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멀쩡한 폐가 왜 결핵이지 의아해 하면서 이젠 군대도 못 가겠구나 생각했지요. 대학 졸업후 국어교사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군 입대 통지서가 왔어요. 신체검사를 다시 했습니다. 그런데 결핵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등병으로 군에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 제대를 했습니다. 제대후 KBS 아나운서로 입사해 일하던 어느 날 고려대 학군단장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한번 보자고 해서 만났더니 당시 학군단장이 대학 4학년 때 데모대열에 합류한 사실 때문에 일부러 결핵 판정을 내렸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어이없더군요. 어쨌거나 지금은 ROTC 8기 동기모임에도 나가고 병장 제대 모임에도 나갑니다(웃음).” 그와의 술잔이 길어졌다. 우주와 자연, 영화와 문학 등에 대해 질펀하게 대화를 나눴다. 헤어지면서 그는 “낭만인을 만나 오랜만에 대취했다.”며 먼 길 잘 살펴가라고 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이계진 前 아나운서는 고교 국어교사 재직하다 입대→KBS 시작 30년간 방송진행→2004~2010년 재선의원 의정활동 1946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1965년 청소년 시절까지 고향에서 자랐다. 원주고를 나와 1970년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ROTC 훈련을 모두 마쳤으나 임관 직전 불가 통보를 받고 원주 대성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있던 중 일반 병으로 입대, 1974년 병장으로 만기제대했다. 군복무 중 KBS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해 1992년까지 KBS에서 일했고 이후 SBS 아나운서로 2년동안 지내다가 프리랜서로 일했다. 30년동안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11시에 만납시다’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연예가 중계’ ‘한밤의 TV연예’ ‘체험 삶의 현장’ ‘TV내무반 신고합니다’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재선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했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가 됐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 ‘이계진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솔베이지 노래’ 등이 있다. 2010년에는 ‘주말농부 이계진의 산촌일기’를 펴냈다.
  • [만화는 내 사랑] (4) 이효재 한복디자이너

    [만화는 내 사랑] (4) 이효재 한복디자이너

    “여자들은 대개 예쁜 옷, 예쁜 보석, 예쁜 가방을 갖고 싶어 하잖아요. 모든 사물에 ‘예쁜’이라는 말을 차례로 붙인다면 1순위는 바로 만화예요. 밤하늘의 밝은 별과 맑은 보름달, 낮에 나온 반달은 볼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잖아요. 제가 볼 수도 있고 가질 수 있는 1순위, 그것도 바로 만화죠.” 서울 성북동 길상사 맞은편 2층집에는 만화방이 하나 있다. 일반에 공개된 곳은 아니지만 내부 공간이나 장서의 규모가 상당한 수준이다. 한복 디자이너이자 보자기 예술가로 유명한 이효재(54)씨의 만화 서재다. 만화가 좋아 하나둘 사 모으다 보니 어느새 서재 벽면 천장까지 채우게 됐다. 그의 만화 읽기는 남다르다. 우선 손을 깨끗이 씻는다. 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들은 화장실에서도 읽는다지만 그의 만화책들은 좀체 보금자리를 빠져나가는 법이 없다. “책을 몰래 가져가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꽃과 우산, 만화는 가져가도 도둑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며 웃었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도 매우 느리다. 다른 사람이 예닐곱장을 읽을 시간에 한장을 겨우 읽는다. “그림 한칸 한칸, 대사 한줄 한줄, 캐릭터 표정 하나하나를 곱씹어가며 정독해요. 젊었을 땐 소설도 꽤 읽었는데 나이가 든 지금도 제 곁을 지켜주는 건 만화밖에 없네요.” 그에게 어릴 적 만화방에 대한 추억은 없다. 낯가림이 심하고 결벽증까지 있었던 탓에 만화방에 가지 않았다. 만화와의 첫 만남은 집으로 배달되는 어린이 신문을 통해서였다. 그는 신동우의 ‘풍운아 홍길동’과 몇몇 공상과학(SF) 만화들을 떠올렸다. “어린이 신문을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만화를 보면서 그때는 불가능해 보였던 우주시대를 꿈꾸곤 했죠. 인간의 상상력을 만화로 그려내기 때문에 결국에는 과학이 만화를 쫓아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만화를 처음 구입한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다. 20년여 전 친구의 부탁이 계기가 됐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너무 보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서 친한 서점 주인을 통해 빌려 달라고 했다. 그 마음이 너무 절실해 보여 자기 지갑을 열어 통째로 사서 건넸다. 그때부터 틈날 때마다 만화책을 사들였다. 서점에 갈 때마다 차 트렁크를 만화로 한가득 채워 왔다. 마음에 드는 만화를 보면 완결 시리즈를 보관용, 독서용, 대여·선물용 등으로 따로 샀다. 순정 장르와 SF 장르를 즐기는 그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 그림이 예뻐야 하고 음란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아야 한다. 직업상 의상이나 디자인을 소재로 한 만화를 좋아하지 않을까 했는데 고개를 가로젓는다. “직업과 취미는 달라야 해요. 직업 외 다른 세계에서는 제가 편해야 하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보지 않아요. 같은 업종 이야기는 외면하게 되죠.” 국내 작품에서는 허영만의 ‘짜장면’과 황미나의 ‘레드문’, 이미라의 ‘은비가 내리는 나라’를 필독서로 추천했다. 외국 작품에선 ‘천재 유 교수의 생활’ ‘캔디 캔디’ ‘마스터 키튼’ ‘팻숍 오브 호러스’를 꼽았다. ‘은비가 내리는 나라’는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그림만 봐도 행복해지는 ‘천재 유 교수의 생활’은 여행길에 꼭 동행시킨다. 그래도 단연 최고는 ‘짜장면’이다. 에피소드와 대사를 줄줄 읊을 정도다. 어깨너머로 같이 보던 남편이 이 작품을 모티브로 곡을 짓기도 했다. 그의 남편은 피아니스트 임동창(56)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만화에 대한 편협한 시선이 많다고 했더니 돌아온 답이 이렇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좋은 점을 발견하겠죠. 그것을 발견하고 안 하고의 차이이기 때문에 독립운동 하듯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요. 만화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무심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만화를 함부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 해석만 달리하면 세상은 천국이에요.”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길섶에서] 아날로그의 추억/구본영 논설위원

    방송에서 서울 강남의 한 대형서점이 곧 문을 닫는다는 뉴스를 들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책을 고르던 ‘만남의 공간’이 옷가게로 바뀐다니 여간 안타깝지 않다. 미국의 유명 서점인 ‘반즈&노블’도 뉴욕 맨해튼 지점을 폐쇄했다니, 오프라인 서점의 퇴조는 세계적 추세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나 스스로도 영어 사전을 펼쳐본 지가 참 오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으로 외신 기사를 읽다가 모르는 단어를 만나더라도 마우스를 한번 클릭하면 뜻을 새길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며칠 전 ‘디지털 세상’이 도래했다고 무조건 아날로그 방식을 폐기 처분할 이유도 없음을 실감했다. 최근 부친상을 당했던 친구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고나서다. 공직에 있는 그가 사양한다고 미리 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조문객들이 놓고 간 부의금을 길상사 등 사찰의 복지재단에 기부한다는 내용이었다. 고위직 직함보다는 꾹꾹 눌러 쓴 그의 육필 사인으로 인해 문자 메시지에서는 감지하기 힘든 진정성이 느껴졌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종교플러스]

    영적 서적 독후감 공모전 가톨릭출판사는 영적 서적 읽기를 장려하는 독후감 공모전을 개최한다. 대상 도서는 지난해 가톨릭출판사가 펴낸 가톨릭 고전시리즈 ‘준주성범’ ‘신심생활입문’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과 ‘길에서 잡은 고래’ ‘나의 멘토 나의 성인’ 등 5권이며 마감은 4월 7일까지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30장 안팎으로 수상자는 5월 13일 발표한다. (070)8233-8215. 17일 법정 스님 추모 법회 2010년 입적한 고(故) 법정 스님을 추모하는 법회가 오는 17일 오전 11시 서울 길상사(주지 덕운스님) 경내 설법전에서 봉행된다. 추모 법회에는 문도 대표 덕조 스님을 비롯한 문도들과 길상사 자문위원, 맑고 향기롭게 임원, 길상사 신행단체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행사에서는 법정 스님 추모영상 상영과 음성 공양이 진행되며 보성 스님(조계총림 송광사 방장)의 법문도 있을 예정이다. 평신도학교 ‘공의회 과정’ 천주교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3월 19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2012년 평신도학교 ‘공의회 과정’을 진행한다. 1년 기간의 이번 과정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교회에 미친 영향을 살필 수 있는 평신도 전문 교육과정이다. 전 과정을 이수하면 교구장 명의의 수료증을 수여한다. (02)777-2013.
  • 서규용 장관후보의 ‘나눔의 삶’

    서규용 장관후보의 ‘나눔의 삶’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의 ‘나눔의 삶‘이 관가의 화제다. 개인적 길상사(吉喪事)로 걷힌 부의금과 축의금, 퇴직금 등을 주위의 어려운 이들과 나누며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농식품부 내에는 불의의 재난이나 신병 등으로 생활이 어려운 직원을 돕기 위한 ‘정성분 상조기금’이 있다. 이 상조기금은 지난 2000년 4월 서 후보자가 농림부 차관보 시절 모친인 정성분 여사가 작고했을 때 조문객들로부터 받은 부의금 2283만원을 어려운 직원을 위해 써달라고 기탁하면서 설립됐다. 서 후보자는 2002년 3월 부친이 작고했을 때도 부의금 1300만원을 쾌척했고, 그해 6월엔 자녀 결혼 축의금 중에서 500만원을 떼내어 기탁했다. 자신의 퇴직금에서도 570만원을 기금에 보탰다는 후문이다. 농림부 차관 시절부터 마사회 감사, 한국농어민신문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매월 월급에서 50만원을 자동이체 방식으로 기탁해 3150만원을 기탁하는 등 총 8003만원을 기금에 쏟아부었다. 이 기금은 2000년 선천성 저신장증을 앓는 직원의 자녀 치료비에 100만원이 지원된 것을 비롯해 암투병 직원 치료비 등 지금까지 31명의 직원에게 총 6900만원이 전달됐다. 서 후보자는 2008년 2월 한국농어민신문사 사장에서 물러나면서 받은 퇴직금 등 1740만원을 어려운 농어민신문사 직원들을 위해 써달라며 기탁했다. 농어민신문사는 이를 ‘서규용 기금’(가칭)으로 운영해 나갈 예정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금 서 후보자를 둘러싸고 몇 가지 잡음도 없지 않지만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서 후보자의 모습도 공정하게 평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부고]

    ●김남용(삼성전자 홍보팀 상무)씨 모친상 강원창(제주도청)씨 장모상 7일 제주 부민장례식장, 발인 10일 오전 7시 (064)744-4444 ●김현성(윤선생영어학원장)재희(영국 거주·화가)씨 모친상 전용준(무등일보 사장)씨 장모상 7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10일 오전 10시 (062)250-4413 ●김각경(삼덕철강 대표이사)씨 별세 주기정(삼덕철강 재무이사)씨 남편상 김재홍(가치 대표이사)씨 장인상 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30분 (02)2258-5953 ●오제은(숭실대 교수)씨 부친상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2227-7580 ●이영환(전 서울변호사회 부회장·전 기독법조인 애중회 총무)씨 별세 병준(조안 은혜교회 담임목사)씨 부친상 창조(우송대 학생처장)씨 조부상 8일 건국대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2030-7906 ●정수경(현대모비스 이사)원제(컴인포 〃)원칠(동아시아연구원 선임연구원)씨 부친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11시 (02)3010-2295 ●김영수(사단법인 민족사진가협회장)씨 별세 6일 서울대병원, 발인 9일 오전 5시 30분 (02)2072-2033 ●권희숙(로얄그리인코리아 대표)영진(로얄그리인코리아 이사)영준(부길상사 대표)씨 모친상 김기만(디지틀조선일보 부국장)씨 장모상 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30분 (02)2258-5969 ●김기만(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김성철(서울 동북중 교감)씨 장모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30분 (02)3010-2237 ●이억기(강원테크노파크 원장)씨 부친상 7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2650-2743 ●서만철(공주대 총장)씨 장모상 8일 충남대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10-4906-0554
  •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현장스님 신임 이사장에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현장스님 신임 이사장에

    덕현 스님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인해 공석이 된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신임 이사장에 현장 스님이 선임됐다. ‘맑고향기롭게’는 2일 오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긴급 이사회를 갖고 전남 보성군 대원사 주지이자 고(故) 법정 스님의 속가 5촌 조카인 현장 스님을 새 이사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법정, 덕현 스님에 이어 3대 이사장이다. 이사회에서는 현장 스님을 제외한 나머지 7명 이사 전원과 감사, 사무국장이 최근의 내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 수리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지난 1일 폐쇄됐던 길상사 홈페이지는 다시 열렸으나 신도들의 엇갈린 의견이 계속 올라오는 등 ‘덕현 사퇴’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덕운 “내분 죄송… 은사 스님께 깊이 참회”

    덕운 “내분 죄송… 은사 스님께 깊이 참회”

    꼭 1년 전 서울 성북동 길상사 앞마당을 가득 메웠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법정 스님 입적 1년을 맞은 길상사는 다소 한산한 분위기 속에 조용히 추모 법회(다례재)를 치렀다. 어지러운 길상사 안팎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했다. 28일 오전 11시 법정 스님의 문도(門道·제자) 스님을 비롯해 속계 5촌 조카인 현장 스님, 송광사 주지 영조 스님, 일반 신도 등 400여명이 모여 다례재를 봉행했다. 법정 스님은 지난해 3월 11일(음력 1월 26일) 입적했지만 음력을 따르는 불교식 전통에 따라 이날 추모행사가 치러졌다. 길상사 주지직을 돌연 사퇴한 덕현(법정 스님의 넷째 상좌) 스님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도 등 400여명 다례재 봉행 법정 스님이 출가(出家)한 사찰인 송광사의 방장 보성 스님은 법문을 통해 “한평생 무소유를 수용하고 붓과 혓바닥으로 간담을 드러내서 유연 중생과 무연 중생을 제도하더니 인연이 다하자 조계산에서 낙조를 보이도다.”(受用無所有 筆舌露肝膽 廣度有無緣 曹溪示照)라는 추모 법문을 발표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은 추모사에서 “법정 스님의 주옥 같은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가슴에 사무친다.”면서 “스님의 큰 덕화를 되새기며 이 땅을 맑고 향기롭게 만드는 일에, 세상과 대중을 일깨우는 일에 매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경옥 한양대 음대 교수가 첼로로 가곡 ‘성불사의 밤’을 연주했으며 길상사 합창단은 스님이 생전 좋아했던 노래인 ‘청산은 나를 보고’를 부르며 스님을 기렸다. ●다비식 장면 등 추모영상 상영 길상사 후임 주지로 내정된 덕운(법정 스님의 다섯째 상좌) 스님은 최근 사형(師兄)인 덕현 스님의 갑작스러운 사퇴 등과 관련해 “법정 스님의 1주기를 앞두고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죄송하고 은사 스님께 깊이 참회한다.”면서 “앞으로 길상사가 은사 스님의 정신에 따라 맑고 향기롭게 화합하고 수행 정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법회에서는 김범수 원광대 교수가 새로 제작한 법정 스님의 진영(眞影·초상화)도 공개됐다. 스님의 생전 모습과 말씀, 다비식 장면 등을 담은 추모영상이 상영될 때는 숙연한 침묵이 흘렀다. 길상사에는 밤늦게까지 일반 신도들의 참배 발길이 이어졌다. ●덕현 스님 불참… 추모 인파 급감 하지만 1년 전 입적 때나 49재 때까지만 해도 설법전, 극락전, 앞마당 등 길상사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던 것과 비교하면 인파가 눈에 띄게 줄었다. 최근 불거진 길상사 및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내부 분란에 대한 일반 불자들의 불편한 심경이 반영됐다는 해석에서부터 궂은 날씨 탓이라는 주장까지 해석이 분분했다. 불자인 오모(51·경기 성남시)씨는 “지난해에는 법정 스님의 운구를 따라 전남 순천 송광사까지 따라 내려갔고, 49재에도 참석했지만 1주기 추모법회에는 불참했다.”면서 “길상사 등을 둘러싼 잡음이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가신 큰 스님의 뜻을 어기는 것 같아 (참석) 의지를 꺾었다.”고 털어놓았다. 길상사와 ‘맑고향기롭게’ 측은 조만간 주지와 이사장 후임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덕현 스님은 지난 20일 길상사 홈페이지에 ‘그림자를 지우며’라는 글을 남기고 두 직함에서 모두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길상사 새 주지에 덕운스님 내정

    덕현 스님의 갑작스러운 사퇴 선언으로 공석이 된 길상사 새 주지에 덕운 스님이 사실상 내정됐다. 불교계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24일 “(지난해 입적한) 법정 스님의 문도 스님들이 모여 논의한 결과, 다섯째 상좌(제자)인 덕운 스님이 길상사 주지를 맡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이어 “길상사가 전남 순천 송광사의 말사인 만큼 송광사와의 협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문도 스님들의 의견을 존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의 유지(遺志)를 잇기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측도 “오는 28일 큰스님(법정) 1주기 추모법회를 치르고 나서 덕운 스님을 길상사 주지로 공식 임명하는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덕운 스님은 법정 스님의 일곱 상좌(덕조, 덕인, 덕문, 덕현, 덕운, 덕진, 덕일) 가운데 다섯째다. 길상사는 사찰(私刹)이 아니라 공찰(公刹)이기 때문에 본사인 송광사에 주지 후보를 올리면 송광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에 최종 품의를 올리게 된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길상사는 법정 스님이 창건한 절인 만큼 통상 (주지 선임 때) 문도 스님들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해 덕운 스님 임명 건이 무난히 통과될 것임을 시사했다. 공식 선임절차를 거치면 덕운 스님은 사형인 덕조·덕현 스님 등에 이어 길상사 7대 주지가 된다. 일각에서는 맏상좌인 덕조 스님이 주지를 다시 맡을지 모른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의 덕운 스님이 주지로 내정됨에 따라 ‘길상사 사태’가 해결 국면을 맞을지 불교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길상사, 덕현스님 글·동영상 홈피서 삭제

    ‘길상사 사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길상사는 23일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이사장직과 길상사 주지직에서 돌연 물러난 덕현 스님이 떠나기 전 마지막 남긴 글인 ‘그림자를 지우며’와 동안거 해제 법문이 담긴 동영상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길상사 측은 “(지난해 세상을 뜬) 법정 스님 문도 스님들과 사중 소임을 맡고 계신 스님들이 신중하게 논의한 끝에 삭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삭제한 글을 다시 올리거나 곡해 글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도 곁들여 논란 확대를 경계했다. 하지만 게시판은 여전히 법정의 맏상좌 덕조 스님(길상사 전 주지)과 법정 유언장을 통해 길상사 주지로 지명된 덕현 스님을 각각 지지하는 신도들의 글로 어지럽다.한편 ‘맑고향기롭게’ 측은 “법정 스님의 저서 7만 370권을 전국 교도소와 군부대, 도서관 등 공공시설에 기증하기로 했다.”면서 “이로써 ‘절판 합의’에 따른 모든 상황이 정리될 것이며 다음달 31일까지 반품 도서의 인세 환불 또는 공제 등 후속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출판사들과 최종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증이 확정된 책이 법정 스님의 재고 도서 50여만부 가운데 극히 일부여서 합의가 쉽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나머지 반품 도서들은 폐기 처분된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길섶에서] 소임/김성호 논설위원

    담임 선생님의 반장 선택은 탁월했다. 고교 3학년 때 반장. 반장은 언제나 공부 잘하는 최고 모범생 몫이었는데… 상습 꼴찌를 불쑥 반장으로 지명했으니. 엄청난 파격 인사에 처음엔 동요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학급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반장 노릇이 어찌나 탁월했던지. 모든 학우들에겐 파격 임명 못지않은 충격이었다. 벌써 30여년 전 일. 그때 사건이 머릿속을 스칠 때마다 꼴찌 반장에게 슬며시 미안해진다. 꼴찌는 반장을 맡으면 안 되는 것이었던지. 되지못한 집단의 선입견이 입힌 상처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내색 없이 태연하게 반을 이끌어 갔던 꼴찌 반장 녀석은 꽤나 성숙했던 것 같다. 본분과 소임. 제 분수는 제가 가장 잘 알 터인데. 세상엔 본분과 소임의 무리한 엇갈림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세상이 사람을 잘못 보는 것인지, 세상을 향한 사람의 욕심이 많은 것인지. 지난해 입적한 법정 스님이 간택한 길상사 주지 스님이 느닷없이 물러났단다. 그 본분과 소임 또한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법정 입적 1주기] 법정 1주기 앞두고…길상사 주지 덕현스님 갑자기 절 떠난 까닭은

    [법정 입적 1주기] 법정 1주기 앞두고…길상사 주지 덕현스님 갑자기 절 떠난 까닭은

    오는 28일(음력 1월 26일)은 법정 스님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되는 날이다. “그 어떤 비본질적인 행위로도 죽은 뒤의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이 무참하게도, 스님의 유지(遺志)를 잇는 길상사와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맑향)가 내분에 휩싸였다. 1주기 추모 법회를 불과 일주일여 앞둔 지난 20일 맑고향기롭게 이사장이자 길상사 주지인 덕현 스님이 돌연 사퇴하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불거졌다. 법정 스님의 ‘말 빚을 거두는 문제’(절판)도 출판사 측과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길상사 측은 “조만간 입장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덕현 “회의 때마다 봉변당하는 기분” 덕현 스님은 길상사 홈페이지(www.kilsangsa.or.kr)에 남긴 ‘그림자를 지우며’라는 글을 통해 “스승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분부를 거역할 수 없어 그동안 여기 있었고, 지금은 설령 법정 스님 당신이라 해도 여기를 떠나는 것이 수행자다운 일일 것 같아 산문을 나선다.”고 밝혔다. 길상사 주지 임기는 2년, 맑고향기롭게 이사장 임기는 3년 넘게 남은 상태다. 덕현 스님은 “맑고향기롭게를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이끌어 가려 했지만 회의 한번 할 때마다 봉변당하는 기분이었다.”면서 “나(자신)와 선의를 가진 불자들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거의 없다. 이 무상의 흐름 속에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자각을 이룰 것이다.”라고 밝혀 맑고향기롭게 이사진과의 갈등이 사퇴 배경의 한 요인임을 시사했다. ●맑향 “직무정지 가처분신청 사실무근” 실제 맑고향기롭게 운영 방향 등을 둘러싸고 시민봉사단체로서 정체성을 주장하는 쪽과 종교적 색채를 띠도록 하려는 덕현 스님의 주장이 부딪치며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자경 맑고향기롭게 사무국장은 “(임원들이 덕현 스님을 상대로) 이사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는 등의 얘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심각한 갈등이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김 국장은 “덕현 스님께서 오랫동안 수행만 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조직 운영 등에서 많이 힘들어하신 부분은 있었을 것”이라며 “어른 스님(법정) 입적 1주기를 앞두고 이런 일이 터져 우리도 당황스럽고 뒷수습하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법정 제자들 간에 견제 있었나 제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이견을 사퇴 배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법정 스님이 수많은 책의 저작권과 대형 도심사찰 등 너무 많은 것을 남기고 갔기 때문에 후대의 다툼을 필연으로 보는 시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법정 스님이 입적하기 전 병실을 자유롭게 출입한 상좌는 덕현 스님뿐이었으며 사후에도 (덕현 스님 주변에서) 덕조 스님을 많이 견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덕현 스님이 공개한 법정 스님의 유언장 (덕조는 10년간 수행을 떠나라 등의) 내용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고 전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절판 유언도 법정 스님의 진짜 뜻인지 심각한 의심이 간다.”면서 “절판이라는 조치로 자신들은 명분을 챙기고 출판사들은 잇속만 차린다는 비판에 놓이게 만들었다.”고 맑고향기롭게 측을 비판했다. 맑고향기롭게 측은 “절판과 재고 도서의 기증은 원칙적으로 합의가 이뤄졌으나 출판사마다 입장이 달라 (후속 조치가)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법정 스님의 책은 재고만 50만권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불교 신자는 “정확한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무소유의 삶을 온몸으로 살다 간 법정 스님의 추모 분위기가 무색해진 것만은 사실”이라며 “부끄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법정 입적 1주기] 맏상좌 덕조스님 “28일 추모법회 예정대로 진행”

    “추모 법회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입니다. ” 법정 스님의 맏상좌인 덕조 스님은 2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사승(師僧)의 1주기 추모 법회(다례재) 준비에 분주한 그는 “길상사 문제는 큰스님 1주기 법회를 마친 뒤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덕조 스님은 제자들 간에 갈등이 있는 것처럼 세간에 비쳐지는 것이 곤혹스러운 듯 극도로 말을 아꼈다. 덕조 스님은 “10년간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하라.”는 법정 스님의 유언장 내용에 따라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서 수행하다가 1주기 준비를 위해 21일 서울로 올라왔다. 덕운 스님을 비롯해 덕인·덕문·덕진·덕일 스님 등 다른 문도(門徒)들도 길상사로 이미 왔거나 곧 올 예정이다. 사퇴 발표를 한 뒤 짐을 챙겨 떠난 덕현 스님은 추모 법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회는 5분 분량의 추모 영상 상영, 송광사 방장인 보성 스님의 추모 법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추모사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작곡가 노영심씨가 작곡한 국악 현악곡 연주와 길상사 합창단 공연도 이어진다. 길상사 측은 법정 스님의 뜻에 따라 가급적 간소하고 조촐하게 법회를 봉행할 방침이다. 법정 스님의 유언장과 관련해 여러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도는 것과 관련, 덕조 스님은 “(그런 말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겠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추모 법회를 마친 뒤 이번 사태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해 수습 의지를 밝혔다. 덕조 스님은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길상사 주지를 지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법정 입적 1주기] 법정스님이 남긴 말말말

    [법정 입적 1주기] 법정스님이 남긴 말말말

    나 죽은 다음에 시줏돈 걷어서 거창한 탑 같은 것 세우지 말고, 어떤 비본질적인 행위로도 죽은 뒤의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법정이 입적 전에 지인들에게 남긴 말)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1997년 길상사 창건 법문 중)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봉선사로 갔다. 그 길로 허둥지둥 돌아왔다. 뜨거운 햇볕에 잎이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이때 온 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1976년 수필집 ‘무소유’ 중)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수필집 ‘일기일회’ 중) 인간의 업이란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한번 깨달았다고 해서 수백 생의 습이 사라지지 않는다. 깨달음은 수행으로 완성된다. 설령 이치로는 알았다 해도 실제 현상에서는 실천하지 못한다. 수행이란 ‘행(行)’이 그 근간이 되어야 한다. (2010년 입적 직전 남긴 ‘수심결’ 서문)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수필집 ‘물 소리 바람 소리’ 중)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랴. 흰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제자 현장에게 써준 게송)
  • [씨줄날줄] 오진암/김성호 논설위원

    한국 정치의 음습한 과거사엔 흔히 안가(安家)와 요정이 들춰진다. 안가가 1960∼70년대 군사정권 시절 은밀한 모임이 열리던 군부·권위주의의 공간이라면 요정은 70∼80년대 정치인, 고위관리, 기업인들의 회동이 이어진 막후정치의 산실. 말이 좋아 안가, 요리집이지 야합·공작의 현장이자 검은 거래의 중심이었다. 정치와 생활상의 변화로 사라져 갔지만 여전히 폐쇄적 뒷거래의 상징이다. 군사정권 시절 청와대 인근엔 12곳의 안가가 있었다. 군사정권 이후 대체처로 각광받은 요정도 수십 곳이 활황을 누렸다. 그중에서도 세상에 회자된 요정이라면 단연 오진암, 삼청각, 대원각(현 길상사) 등이 꼽힌다. 이른바 ‘밤의 정치’의 대표 무대. 걸어 들어오는 사람은 있어도 소형 차를 타고 오는 사람은 없다던 문턱 높은 음식점에서 콧대 높은 여종업원들의 시중을 받기란 서민들에겐 턱도 없었을 터. 그 문턱 높은 요정들이 이젠 복합문화공간(삼청각)이며 수행공간(길상사)으로 바뀐 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니 세상은 많이 변했다. 밀실의 안가를 대체한 요정정치의 효시격 공간은 오진암이라 한다. 마당에 멋진 오동나무가 있다 해서 반세기 전 고급 한정식집을 연 주인이 이름을 지었다는 ‘서울시 등록 1호식당’. 요정정치의 산실이라지만 예부터 유명한 문화공간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말기 당대의 화가였던 이병직이 살던 집이요, 경기민요의 대가 안비취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후진을 키운 현장이다. 세상에 휩쓸려 변해 갔지만 그 터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고급 요정으로 명성을 떨치던 오진암의 거취가 화제다. 오진암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관광호텔을 짓겠다던 부동산개발사가 서울시의 이전·복원 요청을 받아들였단다. 오진암 본채며 행랑채, 정원 모습을 그대로 살려 옮긴다니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은 피한 셈이다.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의 박성철 제2부수상이 만나 7·4남북공동성명을 논의했다는 역사적 현장.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거물 인사들의 단골요정에서 허름한 밥집으로 전락해 지난해엔 성매매 알선의 추태까지 전했던 오진암의 유전이 예사롭지 않다. 오진암이 문화재로서의 보존가치가 없다던 서울시가 오진암 이전·복원을 결정한 이유로 역사성을 들었다고 한다. 남아 있는 유·무형의 잔재는 고귀하기만 한 것일까. 사라지는 모든 것이 아름답진 않겠다. 이왕 역사성을 들춰 복원할 거라면 겉모습만 말고 그 안의 숨결도 숨김없이 살리는 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상사는 박헌영 비자금으로 지었다”

    “길상사는 박헌영 비자금으로 지었다”

    서울 성북2동 길상사는 익히 알려졌듯 ‘아름다운 사연’이 깃든 불교 사찰이다. 길상사는 원래 요정 대원각이었다. 한데 대원각 주인 자야(본명 김영한·1916~99)가 법정 스님의 에세이집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은 뒤 당시 시가 1000억원이 넘는 약 2만 4000㎡(약 7000평) 규모의 대원각을 선뜻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다. 월북 시인 백석에 대한 자야의 순애보가 알려지면서 대원각 스토리는 세간에 무던히도 오르내렸다. 여기에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간’ 박헌영(1900~55) 사연까지 더해진다. 박헌영은 ‘조선의 레닌’으로 불렸던, 사회주의 이론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남과 북에서 모두 버림받은 비운의 정치인이기도 했다. 남쪽에서는 남로당을 이끌고 월북한 공산주의 수괴로 낙인 찍혔고, 북쪽에서는 ‘종파주의자’ ‘미제 간첩’ 등의 혐의로 내몰리다가 끝내 처형당했다. 자야와 백석, 그리고 법정, 여기에 박헌영까지 얹고 나선 이는 다름아닌 박헌영의 남한 내 유일한 혈육인 원경(70) 스님이다. 경기 평택 만기사 주지인 원경 스님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요약하면 이렇다. ●백석 흠모한 자야 모종의 거래 요정 대원각은 원래 박헌영의 비자금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모 인사가 항일독립운동에 써달라며 박헌영에게 거액을 기부했고, 박은 이 돈으로 대원각을 지었다. 자야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대원각을 되돌려주겠다고 원경 스님에게 누차 약속했다.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하기 전인 1989년쯤에도 원경 스님에게 이 같은 뜻을 두어 차례 밝혔다. 스님은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주변 지인들에게 “대원각을 돌려받으면 사찰을 세워 한국전쟁 때 희생당한 혼령들을 달래고, 한 쪽에는 시민학교를 세우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야는 1997년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덜컥 시주해버렸다. 한사코 거절하던 법정 스님은 결국 시주를 받아들이면서 일정액, 정확히는 50억원을 떼 자야가 평생 흠모한 백석의 기념사업에 내놓기로 했다. 원경 스님이 더러 사석에서 대원각이 자신의 아버지(박헌영) 소유라는 말은 종종 했지만 “(박헌영) 비자금으로 지어졌다.”며 구체적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과연 원경 스님의 ‘충격 증언’은 사실일까. 비자금의 특성상 기록이 남아 있을 리 없지만 일단 추적해보기로 했다. 첫 힌트는 1915년 박헌영의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 입학 학적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박헌영의 신원보증인으로 ‘조용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양반’이며 ‘관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용구는 가난하고 집안도 변변치 않은 충남 예산 시골 출신 박헌영이 경성고보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이후 내내 정치적 후원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전쟁 뒤 몰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번째 힌트는 길상사 등기부 등본이었다. 등기부에 따르면 자야가 길상사 땅을 취득하기 전 소유주는 ‘조봉희’라는 사람이었다. 원경 스님은 “조봉희가 바로 (박헌영의 후원자였던) 조용구 집안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자야가 대원각 땅을 취득한 시기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으로 몹시 혼란스러울 때였다. 당시 그녀는 정계 실력자들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이 모든 정황을 감안하면 박헌영이 자기 사람(조봉희)을 가짜 명의로 내세워 대원각을 지은 뒤 자야를 비자금 세탁창구로 이용했다는 원경 스님의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법정스님 입적후 미궁속으로 하지만 진실의 한 끝자락을 쥐고 있을지 모를 법정 스님이 지난 5월 입적하면서 대원각 미스터리는 영원히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 자의반타의반 어린 시절 출가(出家)한 원경 스님은 “그 땅(대원각)을 운용하지 못한 것도 인연이자 업보”라면서 “나의 작은 그릇에 담기 어려운 큰 내용이 오려고 하자 인연이 일부러 뒤틀린 것 같다.”고 무심하게 말했다. 어찌됐든 대원각을 둘러싼 그간의 미담과 지고지순한 러브 스토리에 개운치않은 뒷맛이 남게 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플러스] 해설사 설명들으며 역사문화탐방

    성북구(구청장 김영배) 문화유산해설사 설명을 들으면서 문화재를 돌아보는 역사문화탐방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4일과 11일에는 오전 10시부터 3시간 동안 조선시대 누에치기 풍요를 기원하는 제향이 열리던 선잠단지에서 길상사, 성락원, 서울성곽을 거쳐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던 심우장을 탐방한다. 15일과 29일에는 오후 2시 서울성곽~말바위쉼터~숙정문~삼청각~성락원~최순우 옛집을 둘러본다. 초등 3학년 이상이면 전화신청 뒤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문화체육과 920-3051.
  • ‘사랑나눔’은 행복입니다

    성북구 길음2동에 사는 최옥순(가명·74)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번 18세 소녀로 되돌아간다. 통장과 안암교회 봉사단이 찾아오는 날들이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보며 마을버스도 닿지 않는 작은 골목을 지나 외진 곳까지 오는 그들이 더없이 고맙다. 최 할머니는 현재 전세 700만원에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방 한 칸짜리 집에 홀로 살고 있다. 9년 전 남편을 여의고 건물청소와 안암동 2가 주변 아이들을 돌봐 가며 어렵게 생활해 왔으나 퇴행성 관절염과 노환 등이 심해져 일을 그만둔 상황이다.. “통장님과 교회봉사단이 반찬과 과일을 가져다 줘. 말벗도 해주고…, 그런데 어딘지 모르지만 회사직원들이 매달 20만원씩 후원금을 보내줘.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건지….” 성북구가 구청 홈페이지에 운영하는 성북사랑나눔 코너에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실었는데 이를 접한 MIG 무역 직원들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거둬 매달 계좌로 이체하고 있다. 9일 구에 따르면 성북사랑나눔 코너에 1개동에 2건씩 그늘진 이웃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실어 소외계층 ‘1대1 희망나눔’ 운동을 펼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홈페이지에 실린 이웃들은 모두 홀몸노인이거나 소년소녀가장, 한부모가정, 저소득장애인 등 취약계층이다. 후원금 기탁은 물론 쌀·반찬·생활용품 나눔, 말벗·간병 등 정(情)나눔을 통한 1대1 결연사업이 희망바이러스로 멀리 퍼져 나가 지친 이웃들의 주름을 조금이나마 펴준다. 현재 1대1 희망나눔에 동참한 이웃들은 모두 40명. 작은 나눔이지만 깊고 큰 울림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최갑수(가명) 할아버지에게도 이 희망나눔이 한줄기 빛이 되고 있다. 뇌병변 장애를 지닌 아내와 정신장애 아들을 둔 할아버지의 딱한 사정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후원이 잇따르고 있다. 인근 길상사에서는 매주 금요일 맑고 향기로운 반찬을 배달하고 있으며, 동네식당에서도 매달 5만원씩 정기후원을 하고 있다. 특히 사회 초년생 송모(29)씨도 할아버지의 사연을 접하고 따스한 손을 내밀었다.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월급의 일정액을 후원하기로 했지만 알릴 일은 아니라며 이름 밝히기를 꺼렸다. “사회 초년생이라 보태는 돈이 적어 죄송하다.”는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아들 병원비에 보태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법권 복지정책과장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이웃들을 보듬는 이웃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감동했다.”면서 “1%를 나누면 누군가는 100%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랑나눔을 몸소 실천하려는 후원자는 성북구청 복지정책과(920-4439)로 문의하면 된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여야 석탄일 佛心잡기

    공식 선거운동 이틀 째인 21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여야 후보들은 불심(佛心) 잡기에 총력을 쏟았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한나라당 오세훈·민주당 한명숙 후보는 오전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 법요식에 나란히 참석해 불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오 후보는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뜻이 서울시내 어두운 곳, 밝은 곳 어디든지 비추어주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천안함과 연계시키는 언급이나 야당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은 사찰에서는 일절 삼갔다. 오후에도 성북동 길상사, 봉원동 불상사 등을 찾아 불자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며 표심을 다졌다. 반면 한 후보는 삼성동 봉은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명진 스님이 “이명박 정부는 말로만 친서민 운운하고 4대강 사업으로 인간 외 생물들을 짓밟으려 한다. 브레이크를 밟아달라.”고 말하자 “4대강 사업 반대를 꼭 이뤄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김현 대변인이 전했다. 한 후보는 또 “봉은사 신도들이 기를 엄청 줬다. 강남 부자절이라고 소문났던데 명진 스님이 온 뒤 많이 변한 것 같다.”고도 말했다. 이에 명진 스님은 “봉은사 신도들이 내가 온 뒤 많이 변했다. 아직도 한나라당을 당연히 찍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남아 있지만 생각보다 많이 변했다.”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여야 대변인들도 부처님 오신 날과 지방선거를 연계하며 날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한나라당 정옥임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북한은 전세계가 인정하는 진실 앞에 순응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거짓말을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망어지옥근‘(妄語地獄近)의 명언을 되새겨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반면 민주당 김유정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지금 우리는 미물까지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신 부처님의 뜻과 정반대로 가는 고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면서 “국민의 소중함을 모르고 국민의 요구와 목소리에 귀막은 정권에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한나라당 김문수·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는 경기 수원 용광사와 남양주 봉선사 등을, 인천시장에 출마한 한나라당 안상수·민주당 송영길 후보는 흥륜사 등 인천시내 사찰을 나란히 방문하며 지방선거 필승을 다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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