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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s Go] 포천 오색 웰빙여행

    [Let´s Go] 포천 오색 웰빙여행

    포천은 추억의 공간이다. 서랍 한구석 빛바랜 사진처럼 눈을 감으면 아련해지는 그 시간들, 그 기억들이 있는 곳이다. 15년 전 아니면 25년쯤 전이었을까. 쏟아질 듯한 별빛 아래 20~30명이 모여 밤새 떠들썩한 술자리가 이어진다. 그(녀)는 몇 자리 떨어져 앉아 있다. 가끔 모른 척 눈빛이 스치곤 한다. 스무살 덜 여문 가슴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다. 그뿐이랴. 이곳은 청춘의 한 자락을 푸른 군복 입고 지낸 곳이기도 하다. 자대 배치 뒤 첫 휴가 받아 부대 정문을 나선 뒤 한껏 잡힌 각 풀고 으쓱거리던 터미널 앞, 늦은 밤 경계근무 마친 뒤 얻어먹은 한 젓가락의 ‘뽀글이 라면’, 축축하게 젖은 전투화에 퉁퉁 부은 발 욱여넣던 혹한기 훈련, 그 무심하게 눈 쌓인 밤 떠오른 어머니 얼굴 등이 철컥철컥 슬라이드 사진처럼 멈춘 듯, 흐르는 듯 머릿속을 스쳐 간다. 뒤늦은 청춘송가(靑春送歌)를 부르고픈 곳 포천을 갔다. 보내 버린 청춘의 적을 더듬으려 다시 찾은 포천은 ‘오색 웰빙여행의 메카’로 거듭나 있었다. ●꾸민 듯, 자연인 듯… 식물원을 거닐다 명성산, 지장산, 백운산 등 산도 많고 계곡도 많은 ‘강원도 같은 경기도’ 포천에는 동물원보다 재미있는 식물원들이 많다. 붉은 양귀비의 화려함이 그대로 살아 있는 뷰식물원도 있고, 국내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아이리스를 볼 수 있는 아이리스 전문 유식물원도 있다. 그뿐인가. 알프스산맥의 에델바이스를 비롯해 로키, 백두산 등 고산지대 식물을 야생에서 고스란히 키워 내는 평강식물원은 식물원이 어디까지 흥미롭고 재미있을 수 있는지 알려 준다. 또한 각종 허브를 만져 보고 냄새 맡고 즐길 수 있는 허브아일랜드는 웰빙 식물원 여행의 마침표가 될 수 있다. 150만평 국립수목원(광릉수목원)은 익히 알려진 데이트, 가족여행 코스의 고전임은 물론이다. 저마다 나름의 향기와 색깔로 손짓하지만 어느 식물원이건 공통의 미덕은 자연미다. 오랜 시간 공을 기울인 결실들이지만 마치 뒷산 어귀에 자연스럽게 피어난 꽃무더기인 듯 어디를 둘러봐도 편안하다.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난 폐채석장 폐허에서 피어난 한 떨기 꽃은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수십년간 산을 깎아 화강암을 캐던 곳, 그리고 이제는 쓸모없다며 버림받고 10년 가까이 흉물스럽게 방치됐던 곳이 절경으로 재탄생했다. 버려진 채석장을 활용해 만든 ‘아트 밸리’는 오는 10월 정식 개장이지만 입소문을 타고 주말이면 수백명씩 다녀가며 ‘준(準)인공’의 절경에 감탄사를 쏟아낸다. 중국의 스린(石林) 혹은 적벽이나 되는 듯 우뚝 솟아오른 바위들이 웅장하기만 하다. 그 아래 자연적으로 조성된 15~20m 깊이의 물은 버들치, 꺽지, 가재가 한가로이 노니는 1급수다. 제법 만만치 않게 급하고 긴 경사 진입로에서 모노레일(420m) 공사가 한창 마무리 과정에 있다. 나이 드신 분들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한 배려다. 앞으로 조각 심포지엄, 미술전, 인디밴드 공연, 암각화 등 공공예술 중심 문화공원의 화려함까지 더해지면 발걸음은 더욱 잦아질 것 같다. 이미 155억원을 들였고, 앞으로 53억원을 추가로 들여 완성시키는 이번 사업에 포천시에서는 아예 아트밸리팀을 만들어 지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친환경 복원의 성공적인 사례로 내년부터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 실릴 것이라니 이미 진심은 통한 듯하다. ●젖소와 한과가 아이들을 열광케 하다 아이들이 숨넘어갈 듯 열광하는 곳도 있다. 송아지 우유주기, 젖소 젖짜기, 아이스크림 만들기, 직접 치즈 만들기 등 낙농체험목장인 ‘밀크스쿨 아트팜’은 서울, 경기북부 지역 유치원들의 필수 방문 코스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젖소, 비육우 등 110마리의 소와 함께 당나귀와 산양 등이 있어 아이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주기에 맞춤이다. 트랙터를 타고 목장을 돌아보는 것으로 3시간 체험 프로그램이 끝난다. 넓은 초원을 뒤로하고 돌아서야 하는 아이들을 쉬 달래기 어려울 수 있다. www.art-farm.kr (031)536-5216. 또한 영북면 산정리에 있는 한가원은 전통 한과의 맛과 멋을 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유치원 아이들의 단체 견학, 체험 코스로 자리잡다 보니 화장실에는 앙증맞은 유아용 변기가 아예 따로 있을 정도다. (031)533-8121. ●콩을 갈고 찧고 끓이니 두부가 되다 웰빙 여행의 화룡점정은 역시 먹거리다. 단순한 입만의 즐거움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이들의 수고로움과 뿌듯함을 직접 겪어볼 수 있는 기회까지 누릴 수 있다. 풍혈산 유원지 근처의 순두부촌은 아예 ‘슬로푸드 마을’로 이름을 바꿨고, 순두부 체험관까지 갖췄다. 이곳에서는 포천에서 직접 재배해 수확한 ‘대풍콩’을 맷돌로 갈고, 절구로 찧고, 깨끗이 씻어 불린 뒤 끓여 두부 또는 순두부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덜 바쁜 시절 농촌의 여유로움인 토끼잡기, 물고기잡기, 감자·고구마 캐기 등 다양한 농투성이 삶을 엿볼 수 있으니 도시생활에 지친 아이, 어른들이 모두 좋아할 만한 곳이다. 순두부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은 한 사람당 1만 5000원이다. 여기에 감자·고구마 캐기 또는 물고기 낚시 등 체험을 더하면 2만원이다. 한 사람당 1만원에 묵을 수 있는 민박이 있다. (031)532-6592. ●여름을 당겨라! 케이블 웨이크보드 ‘보드족’들을 위한 시설도 있다. 바로 케이블 파크의 웨이크보드다. 그동안 북한강 등에서 웨이크보드를 1~2시간만 즐기려 해도 20만원이 훌쩍 넘어서니 엄두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케이블을 이용한 웨이크보드를 도입해 웨이크보드의 문턱을 확 낮췄다. 모터보트가 아닌 케이블로 보더를 끌고 가는 방식이다. 덕분에 7만 7000원(회원가입비 1만원 별도)이면 아침부터 밤중까지 보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1시간 2만 2000원이다. 무료로 가르쳐 준다. (031)533-0711. 배상면주가에서는 전통 술과 관련된 자료를 꼼꼼하게 전시한다. 10가지가 넘는 술을 시음할 수 있어 어른들이 입맛 다시며 꼭 들르는 곳이다. (031)531-9300. 너무나도 많은 곳을 봤다. 세월은 흘렀지만 지금도 식물원 어느 숲길, 혹은 노란색 오뚜기마크, 입 벌린 호랑이마크 붙여진 산등성이 등 이곳의 여러 군부대에서는 많은 청춘들이 후회와 아쉬움, 풋풋함, 지긋지긋한 불안을 겪으며 흘러가고 있다. 가버린 청춘에게 이제는 진짜로, 안녕을 던질 때다. ●여행수첩 ▲가는 길 43번 또는 47번 국도를 타면 포천으로 연결된다. 동서울터미널, 수유시외버스터미널 등에서 한 시간 반 남짓이면 도착한다. ▲먹을거리 유식물원, 뷰식물원, 평강식물원, 허브아일랜드 모두 꽃비빔밥 또는 칼국수, 산채정식 등을 파는 식당이 있다. 또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백운계곡 입구에 숯불갈비의 대표선수 이동갈비촌이 있다. ▲묵을 곳 산정호수 가족호텔이 산정호수 위쪽에 호젓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묵었다면 설령 전날 가족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더라도, 혹은 벗들과 함께 흘러간 청춘을 안주로 통음했더라도 새벽녘에는 반드시 일어나 산정호수 주변을 걸어볼 일이다. 물 위로 스멀거리며 퍼져 가는 물안개가 뾰로롱거리는 새소리와 어우러져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031)532-2266. 글ㆍ사진 포천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정부 경제기조 유지] ‘新내우+외환’… 본격 회복 힘 부치나

    [정부 경제기조 유지] ‘新내우+외환’… 본격 회복 힘 부치나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심리 호전이 중요한데 정부가 희망적인 얘기를 너무 자제하는 것 같다.” 윤증현 장관을 비롯한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요즘 외부 인사들을 만나면 이런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한다. 경기가 회복 기미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지표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신중론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다. 하지만 정부의 고민은 요즘 들어 더욱 깊어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15일 “경기가 저점(바닥)에 다다른 것 같긴 한데 위로 치고 올라갈 것이라는 느낌은 좀체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 하강이 시작돼 저점에 이르기까지의 ‘1라운드’는 비교적 선방한 가운데 끝났지만 뚜렷한 상승세로 이어지느냐가 관건인 ‘2라운드’에는 고전이 예상된다는 뜻이다. ●파란불과 동시에 켜진 빨간불 우리 경제는 지난 1·4분기에 전 분기 대비 0.1%의 플러스(+) 성장을 실현한 데 이어 2분기에도 2% 수준 성장률이 예상되는 등 기대 이상의 조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내외 상황은 향후 여건이 결코 녹록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국내 수입원유의 기준인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11일 배럴당 71.19달러로 마감, 지난해 말의 2배 수준이 됐다. 다른 원자재 가격도 급등해 대두는 지난해 말 대비 30.3%, 구리는 73.4%, 알루미늄은 10.1% 각각 상승했다. 3월 초 달러당 1570원대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15일 1262원으로 하락해 수출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 고용사정도 다시 나빠졌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1만 9000명이 줄어 10년래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미사일과 핵 실험 등 북한발(發) 리스크와 영국 및 동유럽의 금융 불안 등 우리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악재도 많다. ●글로벌 재정확대 부담도 우려 이런 가운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각국의 막대한 재정 투입과 금리 인하 조치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세계 경제에 새로운 충격을 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세계경기가 오는 9~10월 전환점을 맞겠지만 위기가 끝나면 급격한 인플레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요 20개국(G20)이 내년 말까지 경기부양을 위해 5조달러를 집행하기로 하는 등 세계적 경기 부양 공조로 돈이 많이 풀린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 것이다. 최악의 경우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부, 낙관론 버리나 정부가 향후 상황을 낙관하지 못하는 데는 재정집행 여력이 이전만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자리한다. 그동안 경제가 근근이 버텨온 데에는 재정을 통한 공공지출 확대의 힘이 컸다. 이를테면 올 1분기에 민간이 발주한 건설수주는 전년 동기 대비 38.4% 줄었지만 공공발주 물량이 22.0% 늘면서 전체 감소폭을 16.5%로 완화할 수 있었다. 올해 책정된 재정의 70%를 상반기에 몰아서 배정한 결과다. 당연히 하반기에는 재정투입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공백을 민간부문(소비·투자)에서 메워 주면 다행이지만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쉬운 얘기가 아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늦둥이/김옥애

    [엄마와 읽는 동화] 늦둥이/김옥애

    등을 구부린 할아버지는 사과나무 밑동을 다독거렸다. ‘너는 올해도 꽃을 피우지 않는구나. 그래도 언젠가는 피겠지.’ 엄마가 뱃속에 들어 있는 자기 아이를 기다리듯 할아버지는 사과 꽃 피기를 기다렸다. 삼 년 전 봄에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충청도 여행을 떠났다. 속리산과 충주댐을 둘러본 후 휴게실에서 잠시 쉬었다. 그때 계단에서 묘목을 늘어놓고 있던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불렀다. “할아버지” “나 불렀는가?” 대머리 할아버지가 묻자 젊은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옆에 서 계신 눈이 크고 얼굴이 새까만 할아버지요.” 무슨 일이냐며 할아버지가 다가가자 젊은 남자는 어린 나무 한 그루를 집었다. “이거 가져다 심으세요.” “그게 무슨 나문데?” “사과나무요. 그냥 가져가세요.” 할아버지는 공짜라는 말에 머뭇머뭇했다. “나한테만 왜 줘?” “삼 년 후면 열매가 열릴 거네요.” 젊은 남자는 어린 나무의 뿌리를 물기 묻은 거적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당당하게 할아버지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자기 아버지와 얼굴이 꼭 닮아 묘목을 한 그루 드리고 싶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무를 받아 든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자라는 손녀의 모습을 떠 올렸다. 하얀 피부에 웃으면 보조개가 팬 손녀가 늘 보고 싶었다. 여섯 살이지만 요즘은 뭐가 그리 바쁜지 전화 목소리 듣기도 힘들다. 할아버지는 그런 손녀를 생각하며 입을 헤헤 벌렸다. 벌써 빨간 사과 알들이 또르르 손녀 손으로 굴러갔다. 새콤하고 단 맛이 나는 빨간 사과를 베어 먹으며 손녀가 흠뻑 웃는다. 잠시 손녀의 생각에 잠긴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다음 날 할아버지는 텃밭으로 나갔다. ‘삼 년 후면 열매가 열릴 거네요.’라고 했던 젊은 남자의 말을 곱씹으며 흙구덩이를 팠다. 구덩이 안에 거름과 흙을 섞어 뿌렸다. 뿌리를 얕게 심은 후 흙을 다독다독 밟았다. 맨 나중엔 지주대도 세워 줬다. 4월은 아지랑이처럼 소리 없이 지나갔다. 텃밭은 고추와 상추와 무 같은 푸성귀들로 가득 채워졌다. 며칠만 게으름 피우면 푸성귀들을 제치고 풀들이 쑥쑥 자랐다. 할머니를 먼저 보낸 할아버지는 낡은 기와집에서 그 텃밭을 가꾸며 혼자 살았다. 가끔 마을회관 옆에 사는 대머리 할아버지가 드나들긴 했다. 그 날도 대머리 친구가 찾아왔다. 텃밭에서 풀을 뽑던 할아버지는 잠시 일손을 놓았다. “석주야, 풀 없애는 약을 뿌리면 될걸. 고생을 사서하는구나.” “고생은 무슨.” 대머리 친구가 할아버지 옆으로 와서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저 사과나무는 올해도 꽃이 안 피었네.” “응, 난 필 줄 알았거든.” 대머리 친구가 할아버지를 놀려댔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 난 처음부터 엉터리 나무라 생각했었다.” “설마? 사람을 믿고 살아야지.” 대머리 친구는 킥킥 웃었다. 차라리 나무를 뽑아 버리고 믿는 곳에서 새로 구해 심으란 말까지 했다. 그러더니 마을에서 생긴 소식을 하나 전해 줬다. “야, 우리 마을에 앞으로 요양 병원이 들어선다고 하더라.” “병원이 생기면 좋겠지.” 머지않아 할아버지도 그 병원에 들어갈 것만 같아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는 찬성이냐, 반대냐? 병원이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 “양쪽 다 이유가 있겠지.” “대답이 그게 뭐냐? 나 그만 갈란다.” 이 집 저 집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아줌마처럼 대머리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정신 좀 봐. 우리 집 개한테 아침 밥 주는 걸 잊었네.” 대머리 친구는 엉덩이를 털었다. 할아버지는 친구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한참을 더 앉아 있었다. 날씨가 무더웠다. 햇볕이 뜨거워진 8월에도 할아버지는 텃밭에 나갔다. 얼굴에 선 크림을 바르고 붉게 익은 고추를 따냈다. 할아버지는 고추를 한바구니씩 따 와 마당 평상 위에 부었다. 빈 바구니를 들고 다시 밭 가운데를 지나치던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었다. 사과나무 앞에서 입을 떡 벌리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슬머슬 사과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초록의 긴 꽃자루에 하얀 꽃잎들이 달려 있었다. 처음에 할아버지는 반가움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곧 걱정이 앞섰다. 꽃이 피는 것은 열매를 만들기 위함이 아닌가. “이일을 어찌한담. 내가 늦둥이를 어떻게 키워?” 할아버지는 안타까움에 속이 타 들었다. “이 녀석아, 남들은 벌써 굵직한 사과를 달았는데….”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익은 사과가 거리에 쏟아질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 일을 생각하니 사과나무의 꽃이 반가우면서도 안쓰러워졌다. 할아버지는 늦둥이 사과나무를 찬찬히 살폈다. 잎 뒤에 누런 벌레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벌레가 아삭아삭 잎을 갈아먹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귓속에서 벌레의 움직임이 삭삭거렸다. “이런 고약한 것들! 언제부터 이 나무에 붙어 있었던 거야?” 할아버지는 사과나무 잎사귀들을 하나씩 들추며 벌레들을 없앴다. 벌레가 있는 걸 미리 알지 못해 사과 꽃이 늦게 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양분을 죄다 빼앗기고도 늦게 꽃을 피운 사과나무를 할아버지는 칭찬했다. “너는 훌륭해! 대단한 나무야.” 할아버지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자세이지.” 할아버지는 담배를 뽑아 물었다. 앞으로는 사과를 잘 길러야 할 엄마의 입장이 된 것 같았다. 사과나무는 하얀 꽃잎을 떨구고 마침내 콩알만 한 열매들을 달았다. 콩알만 하던 열매는 날마다 쑥쑥 자라 풋감만 하게 커졌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싸늘해졌다. 할아버지는 자나깨나 사과나무 걱정에 잠겼다. 추워지면 땅 속 뿌리가 물을 빨아올리기 힘들 거였다. “너를 잘 키워야 하는데, 어쩔거나?” 이파리들을 쓰다듬으며 할아버지는 나무에게 물었다. 사과나무는 대답이 없다. 할아버지도 방법을 못 찾았다. 할아버지는 하늘을 보며 부탁을 했다. 해야, 해야, 뜨거운 빛을 보름동안만이라도 더 쏟아 주렴. 그때 할아버지의 바지 주머니에서 손 전화 신호 음악이 울려왔다. 랄 라라 랄 라라. “여보세요.” “나야, 대머리.” “무슨 일인데?” “지금 마을 회관 쪽으로 빨리 와 줄래?” “왜?” “우리 초등학교 친구를 오십 년 만에 만났다. 네가 보고 싶대.” 대머리 친구는 점심을 함께하자며 할아버지를 불렀다. “와! 그 친구가? 알았다. 곧 갈게.” 할아버지는 간단히 몸을 씻은 후 나갈 때에 입을 옷을 골랐다. 벽에 걸려 있는 회색 바지와 윗도리 황토 옷을 집어 들었다. ‘에 헴’ 기침소리를 낸 후 할아버지는 텃밭의 사과나무에게 나들이를 알렸다. “얼른 다녀오마.” 할아버지는 골목을 빠져나와 사거리의 꽃가게 앞을 지났다. ‘무지개 꽃가게’란 간판만 붙었지 꽃보다는 비어 있는 화분들이 더 눈에 띄었다. 그동안 마을회관을 들락거릴 때 눈으로 스쳐만 다니던 가게였다. 바쁘게 걷던 할아버지가 그 꽃가게를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옳지! 바로 그것이야. 내가 진즉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할아버지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 손뼉을 ‘탁’ 쳤다. 가게 유리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저기 저 큰 화분 얼마요?” 할아버지가 가리킨 갈 색 화분은 곡식을 빻는 절구통만 했다. 손녀의 키만큼 높아 사과나무가 편안하게 자랄 수 있어 보였다. 가게 아줌마가 놀라는 눈치였다. “저렇게 큰 화분을 어디다 쓰시려고요?” “아니, 그런 건 묻지 말고 얼마냐고요?” “그 화분 새 것 아닌데요. 옛날에 우리 집에서 쓰던 걸 놓아 뒀어요.” “그래도 가격을 알아야지요.” “필요하시면 할아버지가 그냥 가져가세요.” “그냥?” 이상하다. 사과나무를 준 젊은 남자처럼 꽃가게 아줌마도 ‘그냥 가져가세요.’라는 말을 했다. “허허허. 그것 참. ” “제가 마을 어르신한테 왜 거짓말하겠어요. 크기에 비해 무겁지 않아 할아버지가 들고 가실 수 있을 걸요.”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아줌마는 화분을 끄집어냈다.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화분 밑바닥엔 붉은 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깨끗한 옷에 흙 묻겠어요.” “그런 것 염려할 것 없소. 옷이야 다시 빨면 되니까.” 할아버지는 화분을 들고 집으로 다시 왔다. 그러고는 텃밭의 사과나무 앞에 그 화분을 내려놓았다. “이제 됐다. 추워지기 전에 너를 보호해 줄 수 있게 됐다니까.” 잽싸게 일할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할아버지는 화분 맨 밑바닥의 구멍을 막았다. 그 위에 비료 흙을 절반이 넘게 채워뒀다. 그러고는 사과나무 지주 대를 떼어냈다. 할아버지는 나무의 뿌리가 다치지 않게 가만가만 삽질을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흙을 떠 낸 할아버지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천천히 사과나무 뿌리가 드러났다. 할아버지는 사과나무를 화분으로 옮겨 넣었다. 할아버지 바지 주머니에서 손 전화가 울렸다. 흙 묻은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왜 늦느냐.’는 대머리 친구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할아버지는 친구에게 한마디 들은 뒤끝을 바투 마무리했다. “나 지금 못 간다. 아주 소중한 일이 생겼어. 그러니까 그 친구 데리고 네가 이리로 오너라.” 할아버지는 사과나무가 심어진 화분에 흙을 뿌렸다. 친구들을 부른 후엔 손 움직임이 느려지고 꼼꼼해졌다. 그들이 오면 함께 따뜻한 방으로 화분을 옮길 참이다. 이제 사과나무는 남쪽 창가에서 햇볕을 받으며 잘 지낼 것이다. 할아버지는 겨울에 주렁주렁 달린 빨간 사과를 손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과나무야, 너를 늦둥이로 만들어 미안하다.”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할아버지가 사과나무에게 소곤소곤 속삭였다. ●작가의 말 늦게 난 자식을 늦둥이라 부릅니다. 부모들은 그 늦둥이를 키우며 각별한 사랑을 퍼붓지요. 내가 아는 50대 초반의 어떤 아저씨는 틈만 나면 자기 배 위에서 아이를 키우더라고요. 늦둥이 아이처럼 늦둥이 과일나무를 나는 보았어요. 사람이든 식물이든 기르고 가꾸는 엄마의 마음은 똑같은가 봐요. 그런데 나무의 엄마인 할아버지는 몇 점 엄마가 될 것 같나요? ●약력 전남 강진에서 출생했다.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우물가를 맴도는 아이들’과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너는 어디로 갔니?’가 당선됐다. 전남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동화집 ‘이상한 안경’ ‘너는 어디로 갔니?’ ‘별이 된 도깨비누나’외 다수를 펴냈다.
  • 휴대전화 너 없인 불안해

    ■월평균 320분 사용 獨의 3배·日의 2.3배 우리나라 국민의 월평균 휴대전화 사용시간은 320분으로 독일의 3배, 일본의 2.3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KT경제경영연구소가 메릴린치 자료를 인용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기준 우리나라 국민의 월평균 휴대전화 사용시간은 320분이었다. 이는 발신자 과금, 착발신 과금 시스템을 모두 포함한 49개 조사대상 국가 중 8번째로 긴 것으로 미국(829분), 홍콩(447분), 캐나다(444분), 중국(434분), 인도(430분), 싱가포르(377분), 이스라엘(353분) 등 7개국만이 우리나라에 비해 휴대전화 통화시간이 길었다. 우리나라에 이어 프랑스(246분), 핀란드(244분), 노르웨이(237분), 호주(218분), 말레이시아(216분) 등도 월평균 휴대전화 사용시간이 200분을 넘겼다. KT 관계자는 “우리나라 국민은 집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긴 데다 집 안에서도 유선전화 대신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휴대전화 월평균 사용시간이 주요국 중에서 긴 편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사용시간은 길지만 요금은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으로 조사됐다. 분당 요금을 뜻하는 RPU(Revenue per Minutes)의 경우 우리나라가 0.08달러였고, 호주가 0.11달러, 영국과 핀란드가 0.12달러 등이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교체 주기 2년 채 안돼…가구당 폐전화기 1.5개 안 쓰는 폐휴대전화(일명 장롱폰) 개수가 가구당 1.5개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녹색소비자연대가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지역 소비자 8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가구당 휴대전화 사용 개수는 평균 3.39개이며 가구마다 폐휴대전화 1.5개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단체,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이 폐휴대전화 수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장롱폰’이 줄지 않는 이유는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수거 대책 부재, 이동통신사들의 ‘공짜폰’ 경쟁, 휴대전화 제조업체의 서비스 부재 등이 엉켜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1인당 휴대전화 교체주기는 2년이 채 안 되며 폐휴대전화 수거율은 17%에 불과하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실버세대 희망 Job기]”내 고향 알린다”…유망직업 ‘투어토커’ ☞이선균 “한예종이 좌파라고? 군대도 아닌데…” ☞中CCTV 미모 앵커우먼 간첩 혐의 체포 ☞삼성·LG 가전3총사 好好好 ☞여대생도 군입대 휴학 보장 ☞靑 “DJ ‘독재자 발언’ 국민혼란·분열 조장”
  • 박지윤, 생애 첫 단독 콘서트 열어

    박지윤, 생애 첫 단독 콘서트 열어

    가수 박지윤이 생애 첫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다. 6년 만에 싱어송라이터로서 가요계에 새로운 걸음을 내딛은 박지윤이 오는 7월2~5일 서울 서강대 메리홀에서 데뷔 이후 첫 콘서트를 연다. 박지윤은 이번 공연을 통해 지난 6년이라는 긴 공백 기간 동안 묵묵히 혼자 써 내려갔던 많은 이야기들을 이제는 공연장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관객과 함께 나눈다. 또 콘서트를 찾는 팬들을 위해 ‘성인식’ ‘난 사랑에 빠졌죠’ ‘소중한 사랑’을 새로이 편곡한 박지윤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어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박지윤은 콘서트와 함께 새로운 꽃으로 피어오르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꽃, 다시 첫 번째’라는 타이틀의 새 앨범을 발매한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아마존의 복수/함혜리 논설위원

    아마존강은 남아메리카 페루의 안데스 산맥에서 발원해 적도를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대서양으로 들어간다. 브라질, 페루,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에 걸쳐 펼쳐진 이 강의 총 길이는 7062㎞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긴 이 강은 지류만도 1000개가 넘고 아마존강 유역의 밀림은 지구의 열대우림 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열대우림의 총 면적은 500만㎢로 지구전체 삼림면적의 3분의1에 해당한다. 규모가 이처럼 막대하다 보니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아마존강 유역 열대우림은 경이로운 자원의 보고일 뿐 아니라 지구 전체 산소공급량의 5%를 제공하는 산소공장이다. 동시에 인류가 생산하는 이산화탄소 등 오염물질을 흡수하고 걸러내는 역할도 한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은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고 부른다. 불행하게도 아마존 분지의 열대우림이 인간의 손을 타면서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 아마존 개발에 따른 무차별한 삼림벌채, 화전농업과 목초지 조성, 댐 및 도로 건설 등으로 지난 15년간 24만 3000㎢의 열대림이 파괴됐다고 한다. 열대림 파괴의 영향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지구의 허파였던 아마존이 이제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경고다. 과학잡지 사이언스 최신호에 따르면 아마존은 난개발에 따른 무분별한 벌목에 맞물려 2005년 극심한 가뭄을 경험한 뒤 정화기능을 상실하면서 도리어 연간 30억t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적으로 나무들이 광합성을 할 때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방출하는 양보다 많지만 그 균형이 이동하게 된 것이다. 열대림의 파괴는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고, 온난화는 다시 열대림 파괴를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욕심은 그칠 줄을 모른다. 급기야 페루에서는 아마존 지역을 개발하려는 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원주민 사이에 유혈충돌까지 빚어졌다. 인간에 의한 파괴행위로 자연의 재해가 겹치고, 결국 인간끼리 뒤엉켜 싸우는 불행한 사건이다. 인간을 상대로 한 ‘아마존의 복수’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다섯째 낳고 싶어도 교육비 부담이…”

    “복덩이를 낳았어요.” 서울 강남구로부터 넷째 아이 출산장려금으로 1000만원을 받게 된 맹지희(34·개포동)씨는 7일 서울신문과 전화 통화에서 “넷째를 건강하게 낳은 것만도 기쁜데 출산장려금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큰 돈을 받게 됐다.”며 이 같이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과 2학년인 아들 둘과 6살 난 딸에 이어 지난달 26일 넷째를 출산한 맹씨는 강남구가 전날부터 시행한 획기적 출산장려정책의 첫 수혜자다. 강남구는 둘째 100만원, 셋째 500만원, 넷째 1000만원, 다섯째 2000만원, 여섯째 이상은 30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지원하는 등 출산에 따른 지원 규모를 대폭 확대했다. 맹씨는 “원래 넷째를 낳으면 300만원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아기 아빠가 다시 확인해보더니 제도가 바뀌어서 1000만원을 받게 됐다고 하기에 장난치는 줄 알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넷째 아이 출산장려금 1000만원 가운데 절반인 500만원을 출산 직후 받았고, 나머지 500만원은 첫돌이 지나면 받는다. 맹씨는 강남구에 사는 동안 다섯째를 낳으면 출산장려금으로 2000만원을 받게 되지만 아직 다섯째를 낳을 계획은 없다고 수줍어했다. 그는 “출산장려금 때문에 아이를 더 낳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겠느냐.”며 “그나마 다른 구보다는 강남구가 자녀들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해주긴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의 교육비”라고 걱정했다. 사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실을 감안할 때, 남편이 평범한 회사원인 맹씨 역시 교육비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맹씨는 “구청에서 양육비 지원폭도 크게 늘리긴 했지만 정상적인 가정에서 먹고 사는 걸 걱정하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느냐.”며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의 교육여건만 갖춰진다면 다섯째는 물론 여섯째도 못 낳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미국 출생’ 바니 “순대국 좋아하는 완전 한국인”(인터뷰②)

    ‘미국 출생’ 바니 “순대국 좋아하는 완전 한국인”(인터뷰②)

    (인터뷰 ①에 이어) 1시간 넘도록 바니와 마주하며 가장 크게 느껴진 것은 그의 ‘배려’였다. 천방지축 말괄량이 모습을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바니는 차분했고 생각도 많았다. 하지만 평소 낯을 가린다는 바니는 “‘악녀일기’ 촬영으로 만난 성남방송고등학교 친구들한테도 연락처를 다 알려주지 않았어요. 제가 만약 전화번호 알려주고 나서 제대로 연락을 못 챙겨주면 더 상처를 줄 수 도 있잖아요.”라며 제법 누나다운 모습까지 보였다. 미국과 싱가포르 등 줄곧 해외에서 살았던 바니에게 문득 조만간 한국을 떠날 계획을 갖고 있냐고 질문을 던졌다. 바니는 토끼같은 동그란 두 눈을 더 크게 뜨며 “절대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다.”면서 갑자기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저는 정말 한국만 좋아해요. 아니 사랑해요. 전 외국으로 여행가는 것도 싫어해요. 많은 사람들이 유럽여행가고 싶다는 데 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아요. 사진으로 이미 다 봤기 때문에 집이, 한국이 좋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집순이’라고들 부르더라고요.” 갑자기 바니는 “제가 한국을 얼마나 좋아하냐면요.”라고 운을 떼더니 “일부러 대학도 싱가포르 대학교에 입학했어요.”라고 답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묻자 바니는 “한국이랑 가까워서요. 부모님 몰래 주말마다 한국에 나와서 친구들이랑 친척들 만나고 돌아갔었어요.”라는 무용담(?)을 들려줬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인들한테 ‘민족의 힘’을 느꼈어요. 미국에 있을 때 한국 유학생들 보면 자기네들끼리 뭉치는 게 있거든요. 제가 미국에서 자라서 그렇지 김해 김씨 완전 한국인이에요.” 바니가 ‘악녀일기’ 출연을 통해 많은 팬들을 얻었지만 무엇보다 ‘친언니’ 같은 에이미(본명 이윤지)를 만나게 된 게 가장 큰 행운이 아닐 런지. 처음과 다르게 요즘에는 ‘친자매’ 같다는 생각을 많기 하게 됐다는 바니는 “옛날에는 제가 언니한테 막 대들고 싸웠어요. 정말 안 볼 것처럼 막 싸우다가도 그 다음날은 칼로 물 베기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에는 서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거의 싸우지 않아요. 이제는 정말 친언니 같아요.”라며 에이미를 걱정했다. 사실 인터뷰가 있던 날, 에이미 역시 ‘악녀하우스’로 올 것을 약속했지만 에이미는 바쁜 스케줄과 쇄약해진 심신 탓에 갑자기 쓰러져 그날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는 사고가 있었다. 현재 바니는 에이미랑 함께 여성의류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꾸려가고 있었다. 본인은 그저 “배우는 단계일 뿐”이라던 바니는 “저도 물건 떼러(?) 동대문가고 싶은데 저만 안 데리고 가는 거 있죠. 제가 특이한 옷 위주로 고른다고 안 된대요. 사실 저는 남들과 다르게 입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도 제가 입고 찍었던 옷이 더 많이 팔린대요. 다행이에요.”라며 사업가다운 기질을 그러냈다. 사실 바니는 에이미와 함께 비싼 해외 명품 브랜드 의상과 소품들을 애용해 ‘명품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특히 젊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바니와 에이미는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보세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기자와 인터뷰 하던 날 입고 있던 의상 역시 보세의류라고 소개했다. “제가 갖고 있던 명품은 ‘악녀일기 시즌3’ 바자회 때 경매로 다 팔아버렸어요. 이제는 명품만 고집하지 않아요. 그거야 어릴 때 집착했던 거죠. 또 제 친구들이 유학생이라 더욱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이제는 봤을 때 예쁘면 시장 물건이든 백화점이든 신경 안 쓰고 사요.” 쇼핑몰 매출이 좋다고 들었다는 기자의 질문에 바니는 “자세한 건 모르지만…”이라고 대답하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옆에 앉아있던 바니의 측근이 “그런데 치사하게 밥 한번, 술 한 번 안 사줬다.”고 하자 바니는 정색하며 “진짜 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술을 끊어서 그래요.”라며 갑자기 먹는 이야기로 화제를 ‘급전환’시켰다. ‘악녀일기 리턴즈’ 촬영 때문에 미국에 머무를 당시를 떠올린 바니는 “미국에서 오로지 순대국만 생각났어요.”라며 갑자기 무릎을 내리쳤다. 바니는 “다른 음식들 생각은 안 났어요. 다 질렸어요. 그런데 정말 가끔은 무의식중에 순대국이 땡길(?) 때가 있어요. 들깨와 새우젓, 부추, 풋고추 등의 절묘한 조화가 거기에 다대기(다진양념)가 추가되면 완벽한 순대국이 되는 거죠.”라며 금방이라도 순대국을 들이킬 기세로 입맛을 다셨다. “사람들이 제가 조리한 순대국을 먹고 싶어 해요. 제가 필이 오는 대로 제조하면 정말 맛있거든요. 그런데 미국에서 먹었을 때는 맛이 달랐어요. 음식의 맛은 역시 재료가 중요하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순대국을 남긴 건 태어나서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절대로 후회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던 바니는 “오늘을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는 말이 있잖아요. 만약 지금 당장 눈을 감으면 전 절대 눈을 못 감을 것 같아요. 못해본 게 많아서 후회가 크잖아요. 앞으로 후회가 남지 않게 일도 다 해보고 문제 생길만한 행동들도 하지 않을 거예요.”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하나 둘 밝혔다. “제가 워낙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잡지나 화보 촬영부터 하게 되지 않을까요?(웃음) 일단은 ‘악녀일기’ 끝났으니까 마음의 여유를 찾고 나서 시작해야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긴 한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탈이죠. 한국에서 대학도 가고 싶고 정식으로 공부해서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사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들도 있고요.” ([현장습격]인터뷰에 계속)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 / 사진=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열리는 지갑… 내수 살아나나

    열리는 지갑… 내수 살아나나

    신용카드 사용액이 증가하고 백화점 매출과 자동차 판매가 늘면서 내수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냐는 희망섞인 관측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지표가 호전되기는 했지만 정부 정책 등에 편승한 일시적 현상일 뿐 본격적인 소비회복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며 신중한 태도다. 5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달보다 8.66% 늘었다. 올 들어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지난해 말 시작된 경기침체로 신용카드 사용액은 올 1월 증가율(전년동월대비)이 3.89%로 주춤했으나 2월 6.67%, 3월 6.22%, 4월 7%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올해 1~5월 소비자물가 평균상승률(3.6%)을 고려하면 실질 카드소비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내수지표인 백화점 매출과 자동차 판매도 크게 증가했다. 롯데백화점의 지난달 매출은 1년 전보다 12.1%(전 점포 기준) 늘어났고, 신세계백화점도 같은 기간 20.3% 증가했다. 5월 한달간 자동차 판매량은 12만 4442대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5.3% 늘었다. 고환율에 따른 외국인 여행객 증가와 정부의 노후차량 세제지원 등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심리지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소비자심리지수(CSI)는 105로, 지난해 1·4분기(102) 이후 처음으로 100을 넘어섰다. CSI가 100을 넘으면 생활형편이나 수입 등이 좋아질 것으로 보는 소비자가 나빠질 것으로 보는 소비자보다 많다는 의미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는 소비회복 지표로 일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 “지금 경제상황은 내수 침체로 수입이 줄면서 불황형 흑자를 기록하고, 고용 부진도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큰 숲에 잠시 해가 비치는 것’과 같은 일시적인 현상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임형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최근 주가 상승 등 소비기대심리가 늘면서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의 매출이 늘었지만 소비 회복 신호라고 보긴 어렵다.”면서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1% 늘었지만 실질국민총소득(GNI)은 0.2% 감소해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오히려 떨어졌다.”고 환기시켰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전지현, ‘블러드’서 95% 영어 연기 “비교적 능숙”

    전지현, ‘블러드’서 95% 영어 연기 “비교적 능숙”

    배우 전지현이 글로벌 프로젝트 영화 ‘블러드’에서 영어 대사를 비교적 능숙하게 소화했다. 전지현의 영어 대사와 생애 첫 액션 연기 등은 4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영화 ‘블러드’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공각기동대’의 오이시 마모루 동명의 원작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한 ‘블러드’는 일본, 홍콩, 프랑스 3개국이 합작 제작한 3,500만 달러(한화 약 500억 원) 규모의 글로벌 프로젝트다. 크리스 나흔 감독이 연출을, 전지현, 코유키가 주연을 맡았으며 ‘와호장룡’ ‘영웅’ 제작진이 CG를 작업했다. 전지현은 인류의 미래를 걸고 최후의 결투를 벌이는 뱀파이어 헌터 사야로 등장해 강도 높은 액션 연기와 영어 대사를 소화했다. 특히 전지현은 일본어 대사가 몇 분 나오긴 하지만 영화 시작부터 엔딩크레딧이 오르면서 끝날 때까지 모두 영어로 연기해 눈길을 모았다. 인간을 헤치는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사야는 시종일관 카리스마를 유지해야 하는 캐릭터다. 때문에 냉철하고 자신감에 찬 눈빛을 보여줌과 동시에 몸으로 선보여야 하는 액션이 많았기에 긴 호흡이 필요한 대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단답형 영어 대사가 많았지만 전지현은 어색하지 않은 발음을 선보여 언론시사회 장을 찾은 기자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날 한 언론사 기자는 “전지현의 영어 발음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며 “어떤 발음들은 원어민 수준에 가까울 정도였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기자는 “전지현의 모든 영어 발음이 원어민 수준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고 말했다. 전지현은 최근 서울신문NTN과의 인터뷰에서도 “하나의 발음을 수십 번, 대사 한 줄을 수백 번도 연습한 적이 있다.”며 영어 연기에 대한 고충을 밝힌 바 있다. ‘블러드’는 오는 11일 개봉된다.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Let´s Go] 여수 거문도와 백도

    [Let´s Go] 여수 거문도와 백도

    지도에서 보면 전남 여수는 날개를 활짝 편 나비 모양이다. 생김새처럼 여수는 화려한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가 그 동력이다. 100개국 800만명으로 예상되는 국내외 손님을 맞기 위해 개최 장소인 여수 신항 일대는 대대적으로 탈바꿈을 하게 된다. 온갖 첨단 시설이 들어서고 친환경적으로 정비된다. 가장 반가운 변신 중 하나는 2011년이면 KTX가 오간다는 것이다. 서울~여수 3시간대 주파로 물리적인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도 가까워진다. ■거문도, 100여년 된 등대로 가는 1㎞ 길 장관 조만간 여수를 찾을 요량이라면 지금의 모습을 카메라에 가득 담으시길 바란다. 오늘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집이, 마을이 또 한번 같은 얼굴로 당신을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대규모 성형수술로 국제 기준에 걸맞은 곱고 화려한 자태를 갖게 되겠지만 수수하고 투박했던 옛 모습이 불현듯 그리워질 수도 있지 않은가. 늘 한결같이 외지인들을 반길 곳은 비취색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일 것이다. 여수가 보유한 섬은 모두 317개(유인도 49개, 무인도 268개). 가장 쉽게 닿을 수 있는 섬은 오동도이다. 768m의 긴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돼 있으니 섬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하지만 여전히 여수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원래 오동나무 잎을 닮아서, 또는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도로 불렸으나 오동나무는 현재 4그루뿐이다. 철없이 아직도 피어 있는 빨간 동백꽃이 길손들을 맞으며 섬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오동도 등대에서 보았던 여수의 전경을 저녁에는 유람선을 타고 볼 수 있는데 솔직히 바깥 구경보다 이 유람선이 더 가관이다. 어두운 바닷길을 달려야 하니 환하게 눈에 들어야 하는 것은 알겠지만 변두리 나이트클럽도 아니고 네온사인 띠로 치장한 유람선은 경관 감상을 방해한다. 유람선의 감각도 좀 높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수의 섬 가운데 거문도는 역사책에도 나오는 친숙한 지명이다. 1885년 영국함대가 불법점령했던 그 섬이다. 고도·동도·서도 등 3개의 섬이 바다를 병풍처럼 둘러 싸 천혜의 항구 역할을 하니 열강들이 군침을 흘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114.7㎞ 거리에 있는 거문도로 가는 뱃길은 심술을 잘 부리기로 유명하다. 어제까지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화가 나 으름장을 놓는 게 한두 번이 아니란다. 다섯 번 거문도행을 계획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는 사람도 있다. “덕을 많이 쌓은 사람만이 갈 수 있다.”는 속설을 수차례 들으니 거문도로 향하는 날 새벽, 숙소를 나설 때 살짝 떨렸다. 배멀미를 우려해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여수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오전 7시40분쯤 거문도행 ‘오가고호’에 몸을 실었다. 시속 70㎞의 배로 약 2시간 정도 달려야 한다. 대마도 쪽에서도 가까워 옛날 일본 사람들이 몰래 들어와 살기도 했다고 한다. 간간이 눈에 띄는 일본식 적산 가옥들이 거문도의 굴곡 진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바다는 다행히 순순히 길을 터주었다. 일본 쪽에서 저기압이 올라와 전날보다 파고가 높고 안개가 살짝 끼었지만 더 이상 가는 길을 막지는 않았다. 무사히 거문도에 안착. 초행인데 거문도가 두팔 벌려 안아주니 일행들과 “우리가 쌓은 덕이 많은가.”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거문도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등대. 1905년 준공, 점등된 등대가 서도 수월산 정상에 우뚝 서 있다. 해발 196m에 위치한 등대를 보러 가는 1㎞의 길은 가장 운치 있는 곳으로 꼽힌다. 문화·예술인들이 이 매력 넘치는 길을 밟으며 영감을 충전해 가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길은 동굴 같다. 우거진 수풀을 뚫고 햇살이 고개를 디밀려고 애를 쓴다. 하늘이 내린 자연림이 발산하는 산소는 일반 수목원보다 2배나 많다. 풍부한 산소량에 경사도 완만해 등대에 다다를 때까지 숨도, 발걸음도 가볍다. 이 길은 겨울에 오면 더 장관이라고 한다. 길 양 옆에 빽빽이 들어선 동백나무에서 붉은 꽃을 피우면 그야말로 자연산 ‘레드 카펫’이라고. 100살이 넘도록 늠름하게 서 있는 등대 너머로 하늘과 바다는 푸르게 한몸을 이루고 있었다. 외지인의 눈에는 바다가 청량하기 그지없는데 “해조류 산란기라서 물빛이 탁하다. 8~9월에 오면 쪽빛 바다의 본색을 볼 수 있다.”고 섬사람들은 말했다. ■백도, 자연이 빚어놓은 기암괴석 탄성 절로 바다와 섬의 축복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 떨어진 백도는 거문도보다 더 깐깐하기로 소문난 섬. 그래서인지 가는 길은 좀더 험했다. 멋모르고 여객선 2층에 앉은 게 화근이었다. 놀이공원의 바이킹을 타는 것처럼 배가 출렁이는데 그 때마다 뱃속의 내장들도 함께 출렁인다. 거문도 사람들에게도 삼세번만에 겨우 한번 얼굴을 내민다는데 이 정도 파도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이 지긋한 안내원 할아버지는 “어제까지 바다가 참기름을 발라 놓은 것처럼 반질반질 잔잔했거든, 바다 고운 거랑 여자 얼굴 예쁜 거는 일을 낸다더만 내 이럴 줄 알았지.”하며 껄껄 웃는다. 백도는 무인도로 상백도와 하백도로 구분된다. 36개의 섬으로 이뤄진 백도는 한자로 白島라고 표기하는데 멀리서 보면 하얗게 보인다 해서, 또 물 밑에 가라앉은 섬이 63개로, 섬을 다 합치면 100개에서 하나 빠진다 해서 일백 백(百)자에서 한 획을 빼 이렇게 표기한다. 40여분 지나서 배가 속도를 늦추는 것 같더니 안내원 할아버지가 올라와 좌우측, 후면의 문을 힘껏 열어젖힌다. 확 쏟아져 들어온 상쾌한 바닷바람이 답답했던 가슴 한편을 시원하게 도려낸다. 우르르 다들 일어나 재빨리 갑판으로 달려 나왔다. 힘센 바람과 싸우듯 힘겹게 한발짝씩 떼어 뱃머리로 향하는데 저 멀리 백도가 희미하게 인사를 건넨다. 할아버지가 갑판 중간에 자리를 잡고 마이크를 들었다. 이윽고 기암괴석들의 ‘쇼쇼쇼’가 시작됐다. 무성영화에 숨결을 불어넣는 변사처럼 그는 구수한 사투리로 무뚝뚝해 보이던 백도의 표정들을 살갑게 바꿔 나갔다. “귀를 쫑긋 세우고 섬을 지키고 있는 진돗개바위, 귀여운 아기곰아, 어딜가니? 아기곰 바위~, 저기 저 사이 좋은 물개부부바위, 서로 멀리 떨어져 애틋하구나아~, 서방바위·각시바위…” 할아버지의 쩌렁쩌렁한 호령과 손짓에 따라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바위들과 눈을 맞추고 미소를 교환했다. 20분간 짧고 강렬한 선상유람이 끝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자연보다 더 솜씨 좋은 예술가는 없다는 것을. ●여행수첩 ▲가는 길:여수여객선터미널(061-663-0116~7)에서 거문도로 들어가는 배는 하루 2차례(오전 7시40분, 오후 1시40분) 있다. 편도 요금 3만 2100원. 거문도에서 백도로 가는 배를 바꿔 타는데 관광객 수와 날씨만 허락되면 수시 운항한다. 백도 일주 2만 6000원. 청해진해운 (061)663-2824. ▲맛집:‘하모’라고 부르는 갯장어가 유명하다. 회로 먹기도 하고 샤부샤부처럼 물에 살짝 데쳐 양파 등 야채와 곁들여 먹는 ‘하모 유비끼’는 여수에서만 볼 수 있는 맛이다. 만석궁 (061)641-8724. 남경전복은 자연산 전복을 회부터 구이, 찜, 초밥, 튀김, 죽까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코스로 내놓는 곳이다. (061)686-6653 ▲묵을 곳:지난해 문을 연 디오션리조트. 탁 트인 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물놀이 시설(파라오션 워터파크)까지 있어 아이들과 함께 가기 좋다. (061)689-1000. 글ㆍ사진 여수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4일 20돌 맞는 中 톈안먼 사태]쇠울타리로 광장 봉쇄… ‘톈안먼’ 여전히 금기

    [4일 20돌 맞는 中 톈안먼 사태]쇠울타리로 광장 봉쇄… ‘톈안먼’ 여전히 금기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여전히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양 어깨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세계인민 대단결 만세’라는 엄청난 구호를 짊어진 채 그는 여전히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톈안먼 사태 20년, 지금의 톈안먼에는 20년전 광장을 가득 메웠던 청년학생들의 민주화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중국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톈안먼 사태 20주년 기념일을 나흘 앞둔 지난 31일 오후, ‘혹시나’ 하는 기대와 함께 향했던 톈안먼 광장행은 ‘역시나’로 막을 내렸다. 20년전인 1989년 5월의 마지막날 중국의 청년학생들은 중난하이(中南海·중국 고위관리 집무 지역)를 향해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뜨거운 목소리를 토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2009년 5월의 마지막날 톈안먼 광장에는 함성은커녕 조용한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깃발’을 따라 움직이는 국내외 관광객들은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톈안먼에 내걸린 마오쩌둥 초상화를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단오절 연휴를 맞아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올라왔다는 왕청(王誠·24)은 톈안먼 사태를 지칭하는 ‘6·4’에 대해 물어보자 “들어보긴 했지만 아주 어릴적 일이라 잘 알지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 중국에서 ‘톈안먼’은 철저히 봉쇄돼 있다. 광장 전체를 쇠울타리로 둘러치고, 출입자에 대한 삼엄한 소지품 검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곳곳에는 공안(경찰)과 무장경찰이 배치돼 눈을 번득이며 수상한 거동자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톈안먼 사건은 이미 금기어로 지정돼 있다. 인터넷 검색어로 ‘톈안먼 사건’과 ‘6·4’를 입력하면 “검색 결과 법규와 정책에 맞지 않아 보여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뜬다. 하지만 강요된 침묵은 오래갈 수 없고, 원천봉쇄 역시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6521공정’(건국 60주년, 티베트 봉기 50주년, 톈안먼 사태 20주년, 파룬궁 금지 10주년을 지칭) ‘20주년’ 등의 검색어를 이용해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고, 진실을 알리려는 배달부들은 그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 지난달 10일 베이징에서는 톈안먼 사태 재평가와 관련된 학술토론회가 비공개로 열렸다. ‘6·4 민주운동 토론회’로 명명된 이날 토론회에는 베이징대와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작가, 유가족 등 수십명이 참석했다. 마침 당일은 중국의 ‘어머니날’이기도 해 참석자들은 토론회 시작에 앞서 모두 일어나 20년전 소중한 아들딸을 잃은 어머니들에 대한 위로의 마음을 담아 3분간 묵념했다. 첫번째 발표자로 나선 베이징대 첸리췬(錢理群) 교수는 “20년전 많은 학생들이 중국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칠 때 교수로서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큰 한으로 남아 있다.”며 “정치가들은 ‘6·4’를 재평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학자들이 나서서 ‘6·4’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쉬유위(徐友漁) 연구원은 ‘1989년부터 2009년까지’라는 제목의 발표 논문에서 “당대 중국 역사와 정치, 그리고 사상의 분수령이었다.”고 톈안먼 사태를 평가한 뒤 “비록 중국의 정치제도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정치제도 변화를 준비하는 사상적 조건에 대해 말한다면 ‘6·4’는 정치제도 변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표된 논문들은 블로그를 통해 비밀스럽게 인터넷상에서 유통되고 있다. 강요된 침묵을 비집고 솟아나오는 이런 ‘반발력’을 중국 정부가 과연 끝까지 통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stinger@seoul.co.kr
  • SG워너비 “바보 삼형제? 바가지머리 그리워” (인터뷰)

    SG워너비 “바보 삼형제? 바가지머리 그리워” (인터뷰)

    지난 31일 SBS ‘인기가요’를 통해 컴백 후 첫 ‘1위’에 등극한 그룹 SG워너비(김용준·김진호·이석훈). 약 한 달 간의 활동을 돌아보며 SG워너비가 6집 활동의 초기 콘셉트였던 ‘바가지 머리’를 고수하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놨다. SG워너비는 최근 서울신문NTN과의 인터뷰에서 “저희는 끝까지 바가지 머리를 지켜내고 싶었다. 꼭 적어 달라.”고 강하게 어필했다. ◇ 바가지 머리? NO~ 모델은 ‘비틀즈’ 6집 앨범 ‘Gift From SG WANNA BE’에 대해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을 닮고 싶었던 초심으로 돌아간 앨범”이라고 소개한 SG워너비는 “그런 의미에서 의상과 스타일도 복고풍을 택했다.”고 밝혔다. ’바가지 머리’는 이같은 고심 끝에 60년대를 대표하는 팝 밴드 ‘비틀즈 (Beatles)’를 스타일 모델로 선정하면서 탄생했던 것. ”올드(old)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밴드였던 만큼 스타일적인 면에서도 뛰어났다고 생각해요. 또 저희 6집 음악색이 ‘본연(本然)으로의 회귀’를 모토로 삼고 있는데 이 부분도 통하고요.” ◇ ‘바보 삼형제?’… 충격! 근사한 이유로 미용실을 다녀왔지만, 막상 사장님 앞에 선 세 사람이 들은 첫 마디는 “바보 삼형제 같다.”였다고. ”일명 ‘바가지 머리’ 라고 하죠? 사장님께서 저희 머리를 보시고는 바로 웃음을 터뜨리셨어요. 나란히 서있는데 ‘바보 3형제 같다!’고 하셨죠. 충격이 컸어요.”(용준) ”게다가 의상도 복고 정장이다 보니 교복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벌써 6년차 그룹인데…. 학생머리에 교복이라니 당황스러울 만도 하죠. 솔직히 저희는 귀여울 줄 알았거든요. 하하.”(진호) ◇ ‘스타일’로 주목받긴 처음! 그래도 자켓 촬영과 두 번의 컴백 스폐셜 무대는 SG워너비의 초기 스타일 그대로 진행됐다. 당시 팬들의 반응을 묻자 SG워너비는 “음악보다 스타일로 주목받기는 처음이었다.”며 웃어보였다. ”반응이 상당했어요. 특히 저는 ‘라라라’ 때 고수했던 안경을 벗자 떠들썩 했죠. ‘써라, 벗어라’ 등 의견이 극과 극이었는데 정말 난감하더라고요. 이러다 평생 무대에서 안경만은 못 뺄지도 몰라요!”(석훈) ◇ 솔직히 지금도 아쉬워… 결국 SG워너비는 ‘바가지 머리’를 다시 다듬어 도시적이고 세련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쉬움까지 잘라내진 못했다. ”솔직히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걸요. 조금만 더 밀고 나갔다면 개성으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저희가 추구하는 음악색을 스타일로 표출했던 첫 시도였거든요.”(진호) 그럼에도 불구, 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묻자 김용준은 “대중이 워너비(wanna be)’하는 부분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에서 SG워너비는 ‘성숙’과 ‘회귀’의 기로에 서게 됐어요. 6년차에 들어 저희가 깨달은 건, 변화도 중요하지만 저희 본연의 모습을 지켜내는 것도 소중하단 거예요. 발전하지만 변함 없는, 즉 ‘노련한 초심’을 잃지 않는 SG워너비가 되겠습니다.”(용준) 사진 = SG워너비 6집 ‘Gift From SG WANNA BE’ 자켓 이미지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강한섭 영진위 위원장 “영화투자·제작·보험·상영 총괄 시스템 구축하겠다”

    강한섭 영진위 위원장 “영화투자·제작·보험·상영 총괄 시스템 구축하겠다”

    불황, 침체, 위기…. 지난 1년간 한국영화계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단어들이다. 그 시간 동안 영화진흥위원회도 진통을 겪어야 했다. 영화정책과 관련해 영화계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조직 내부에서는 불협화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러나 취임 1주년(28일)을 맞아 지난 26일 서울 홍릉 영진위 사무실에서 만난 강한섭(51) 4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의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임기 2년을 향한 자신감과 희망으로 가득 차 보였다. →취임 1주년이 됐는데 소감이 궁금하다. -올해가 장기 L자 곡선으로 가느냐, U자로 올라가느냐 영화산업의 갈림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주요 해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각광받는 등 재도약의 신호들이 보이고 있다. 상승 초기국면이다. 이 와중에 지난 6일 영화산업 상생협약 선언식에서 한국영화 산업을 선순환 구조로 바꿀 수 있는 정책들을 발표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2011년 도입한다는 자동 제작지원제도는 매출액의 1.5%를 적립해 제작자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액수가 적고 도입 시기도 너무 늦다는 얘기가 있다. -늦다고 보기 힘들다.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다. 제작사, 메인투자자 등 지원금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등 세부 디테일은 차차 마련할 계획이다. →2010~2011년 지급보증 계정 설치에도 영화계의 관심이 많다. -제1금융권에서 대출받을 수 있게 보증해 주는 거다. 우리 기금 100억원과 보증기관의 100억원이 동시에 들어간다. 영화산업이 금융기관으로부터 프로젝트를 갖고 대출받는 것이니 획기적인 정책이다. 내년부터 소규모로 할 계획도 있다.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을 위탁운영제에서 공모제로 전환하려다 반발 때문에 철회했다. 내년에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있나. -민간단체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시스템이 정확하지 않다. 어떤 건 지정위탁사업이고, 어떤 건 공모사업이라 돼 있는데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국회 가면 ‘무슨 근거로 지원하고 평가는 어떻게 하느냐.’ 얘기가 계속 나온다. 공모제가 맞다고 본다. 정당한 절차에 따라 지원하는 방안을 만들고 있다.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추진계획은 완전히 백지화된 건가. 강 위원장이 예산을 더 확보하려다 좌초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건 허위보도다. 더 잘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사실인데, 법적으로 불가능한 사업이었다. 서울시와 영진위가 250억원씩 투자하기로 했던 것인데, 법에 2개 기관이 예산 합쳐서 공동등기할 수 없도록 돼 있다. 3기에서 이 사실을 모르고 진행한 것이었다. 어찌 됐건 최근 인프라 조성 특위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다시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을 추진할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장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다. -그렇게 말하면 억울하다. 현장과 항상 열려 있었다. 내가 설득력이 부족해서인 듯하다. 새로운 정책을 알리는 진통이라 생각한다. →의사결정 방식이 독단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내가 좀 개성이 강하다. 주장이 강하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민간행정위원회이고 위원 9명의 의사가 골고루 반영되는 구조다. →노조와의 갈등이 심한 듯하다. 지난 3월 노조원을 폭력행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노조와 대화를 시도하긴 했는데, 경영자들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 사건은 현재 경찰에서 수사 중인데, 궁극적으로는 법보다는 대화로 풀고 싶다. 아직 그런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2년 동안 가장 주력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투자, 제작, 보험, 상영에 이르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영화산업은 굉장히 부침이 심한데, 모두 시스템이 제대로 없어서다. →영화평론가, 학자로 일하다 행정일을 하게 됐다. 어렵진 않나. -이게 더 재밌다. 많은 이들이 학자가 영화정책하는 것은 외도라고 보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이론·미학의 최고 꽃이 영화정책이다. 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사자(死者)가 빈소를 떠나 묘지로 향하는 절차인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은 이날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 옆 분향소에서 엄숙하게 진행됐다. 발인에는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씨, 형 건평씨 등 유족과 친인척,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각료, 봉하마을 주민, 광주 노씨 문중, 시민 등 2만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발인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선두로 육·해·공군 의장대 운구병 10명이 태극기에 싸인 고인의 관을 운구차에 옮기는 것으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 사위가 영정 모셔 이후 상주가 술과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견전(遣奠)과 축문 낭독, 유가족이 다시 절을 올리는 재배의 순으로 10여분간 진행됐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긴 채 고인의 영정을 묵묵히 바라봤다. 시민들은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을 외치며 통곡했다. 5시18분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영정을 모시고 고인이 생전 에 머물던 사저로 향했다. 권 여사도 딸 정연씨의 부축을 받으며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모르는 손녀 서은(5)양은 언론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는 등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권 여사는 사저에 들어서는 순간 쓰러지듯 휘청이며 몸을 가누지 못하기도 했다. ●운구행렬 오전 6시께 봉하 떠나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전 5시56분 시민 대표 한 명의 절을 받은 뒤 국화꽃으로 장식된 캐딜락 운구차에 실려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을 향했다. 당초 예정보다 30여분 늦은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났다. 경찰 오토바이 5대가 앞장선 운구 행렬은 선도차에 이어 영정차, 운구차, 상주 및 유족 승용차, 장의위원장 및 집행위원장 승용차, 친족 버스 5대, 장의위원 대표단 버스 5대 등이 긴 줄을 이었다. 후미에는 구급차 2대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영구차, 경찰 사이드카 3대가 뒤따랐다. 장례 행렬 뒤로는 마을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오열하며 뒤따랐다. 진영읍에서 왔다는 오지은(31·여)씨는 “아직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밤이 되면 한 줌 재로 돌아오실 텐데 그때까지 마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운구 행렬은 길 양편에 늘어서 오열하는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서히 이동했다. ●권 여사 한때 쓰러지듯 휘청여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준비한 노란색 종이비행기도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마을을 벗어나자 인도에 늘어선 진영중학교 여학생들과 시민 등 수백명이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를 외치며 고인을 배웅했다. 운구 행렬은 오전 6시20분 봉하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동창원나들목을 지나 남해고속도로에 올랐다. 이후 시속 120여㎞의 속도를 유지하며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칠원분기점(6시35분)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청원~상주간고속도로(7시56분)를 지나 청원분기점(8시50분)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입장휴게소(9시23분)에서 20여분간 휴식한 뒤 다시 출발, 10시20분쯤 궁내동 서울요금소를 지나 오전 10시48분쯤 영결식이 열리는 경복궁 앞뜰에 도착했다. 이날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육교나 휴게소, 도로가 등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손에 민들레를 들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경기 용인부터 서울요금소까지는 시민들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열해 노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잠시 머문 입장휴게소에서는 광주노사모 회원 등 시민 50여명이 노 전 대통령 운구차 곁에 서서 고인을 기렸다. 김해 김승훈 이재연 박성국·수원 오달란·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 발인 마치고 노 전 대통령 서울로 출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치고 힘들었던 육신을 관 속에 누인 채 마지막 상경길에 올랐다. 29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엄수될 국민장(國民葬)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이 오전 5시 김해 봉하마을에서 숙연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발인제를 마친 운구 행렬은 예정보다 28분쯤 늦은 5시58분 서울을 향해 먼 길을 떠났다. 5시 정각에 군 의장대가 관에 태극기를 두르면서 발인식이 시작됐다.의장대는 관을 빈소였던 봉하마을 마을회관 밖으로 옮겨 앞마당에 미리 준비해둔 운구차에 실었다.특수제작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쓰는 평범한 관이었다.이어 5시10분쯤 마을회관 앞마당에 차려졌던 분향소에 영정을 두고 견전제가 이어졌다.2분 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사라반드’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맏상주 건호 씨가 엎드려 부친과의 긴 이별을 고했다.형 건평씨,부인 권양숙 여사,딸 정연 씨와 손주 등 유족들이 슬픔마저 마른 듯한 표정으로 지켜본 뒤 역시 바닥에 엎드려 마지막 예를 다했다.노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과 동영상에 등장했던 손녀가 모습을 비쳐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견전제를 마치고 영정이 노제 형식을 빌어 사저로 향하자 발인식을 지켜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많은 조문객들이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든 영정은 고인이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골목길을 통해 산새들이 우짖는 새벽 공기를 뚫고 사저로 향했고 영정은 사저를 한 바퀴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운구차가 5시25분쯤 마을회관 앞을 떠나 사저 쪽으로 이동하자 조문객들이 날린 수백개의 노란색 종이비행기가 허공을 날아 차체 위에 내려 앉았다.종이비행기에는 노 전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심경을 담은 글들이 적혀 있었다. 사저를 한 바퀴 돈 영정이 5시35분쯤 사저를 빠져나와 예정보다 20분쯤 늦은 5시50분쯤 운구차에 올라 국민장을 위해 서울로 향했다.한달 전 쯤에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떠날 때 걸어 내려왔던 길을 영정이 대신 걸어 내려온 것이라 조문객들이 오열할 만했는데 조문객들은 흐느낌마저 유족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조문객들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고인의 시신과 영정을 실은 운구차는 선도차가 준비를 갖출 때까지 지체했다가 5시58분쯤 먼 상경길의 첫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1만명으로 추산되는 조문객들이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고인의 마지막 상경길을 따라 걸으며 배웅했다. ●오전 11시 경복궁 영결식 3000여명 참석 영결식은 오전 11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정·관계 주요 인사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시민들의 애도 속에 노제를 지낸다.경찰은 낮 12시부터 노제가 끝날 때까지 경복궁 앞뜰~서울광장에 폴리스라인을 설치,차량 진입을 전면 통제한다. 이어 만장 2000여개가 뒤따르는 가운데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한다.만장은 불상사를 우려한 정부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불교 형식인 대나무 대신 플라스틱으로 제작됐다.이 때는 일부 차로만 통제한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후 3시쯤 수원 연화장에 도착, 화장식을 치른 뒤 봉하마을로 옮겨져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된다.밤 9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후 5시까지 분향소 운영 한편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추모인파는 절정을 이뤘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만 지금까지 100만명을 넘어섰고 전국적으로는 450만명을 돌파했다. 분향소는 새벽에만 잠시 한산했고 날이 밝자마자 추모객들이 장사진을 이뤄 헌화에 참여했다. 정부는 29일 오후 5시까지 전국 각지에서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이다.봉하마을 분향소는 밤 12시까지 운영될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발인 마치고 노 전 대통령 서울로 출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치고 힘들었던 육신을 관 속에 누인 채 마지막 상경길에 올랐다.  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엄수될 국민장(國民葬)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이 오전 5시 김해 봉하마을에서 숙연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발인제를 마친 운구 행렬은 예정보다 28분쯤 늦은 5시58분 서울을 향해 먼 길을 떠났다.  5시 정각에 군 의장대가 관에 태극기를 두르면서 발인식이 시작됐다.의장대는 관을 빈소였던 봉하마을 마을회관 밖으로 옮겨 앞마당에 미리 준비해둔 운구차에 실었다.특수제작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쓰는 평범한 관이었다.이어 5시10분쯤 마을회관 앞마당에 차려졌던 분향소에 영정을 두고 견전제가 이어졌다.2분 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사라반드’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맏상주 건호 씨가 엎드려 부친과의 긴 이별을 고했다.형 건평씨,부인 권양숙 여사,딸 정연 씨와 손주 등 유족들이 슬픔마저 마른 듯한 표정으로 지켜본 뒤 역시 바닥에 엎드려 마지막 예를 다했다.노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과 동영상에 등장했던 손녀가 모습을 비쳐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견전제를 마치고 영정이 노제 형식을 빌어 사저로 향하자 발인식을 지켜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많은 조문객들이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든 영정은 고인이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골목길을 통해 산새들이 우짖는 새벽 공기를 뚫고 사저로 향했고 영정은 사저를 한 바퀴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운구차가 5시25분쯤 마을회관 앞을 떠나 사저 쪽으로 이동하자 조문객들이 날린 수백개의 노란색 종이비행기가 허공을 날아 차체 위에 내려 앉았다.종이비행기에는 노 전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심경을 담은 글들이 적혀 있었다.  사저를 한 바퀴 돈 영정이 5시35분쯤 사저를 빠져나와 예정보다 20분쯤 늦은 5시50분쯤 운구차에 올라 국민장을 위해 서울로 향했다.한달 전 쯤에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떠날 때 걸어 내려왔던 길을 영정이 대신 걸어 내려온 것이라 조문객들이 오열할 만했는데 조문객들은 흐느낌마저 유족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조문객들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고인의 시신과 영정을 실은 운구차는 선도차가 준비를 갖출 때까지 지체했다가 5시58분쯤 먼 상경길의 첫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1만명으로 추산되는 조문객들이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고인의 마지막 상경길을 따라 걸으며 배웅했다. ●11시 경복궁 영결식 3000여명 참석  영결식은 오전 11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정·관계 주요 인사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시민들의 애도 속에 노제를 지낸다.경찰은 낮 12시부터 노제가 끝날 때까지 경복궁 앞뜰~서울광장에 폴리스라인을 설치,차량 진입을 전면 통제한다. 이어 만장 2000여개가 뒤따르는 가운데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한다.만장은 불상사를 우려한 정부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불교 형식인 대나무 대신 플라스틱으로 제작됐다.이 때는 일부 차로만 통제한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후 3시쯤 수원 연화장에 도착, 화장식을 치른 뒤 봉하마을로 옮겨져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된다.밤 9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 오후 5시까지 분향소 운영 한편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추모인파는 절정을 이뤘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만 지금까지 100만명을 넘어섰고 전국적으로는 450만명을 돌파했다. 분향소는 새벽에만 잠시 한산했고 날이 밝자마자 추모객들이 장사진을 이뤄 헌화에 참여했다. 정부는 29일 오후 5시까지 전국 각지에서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이다.봉하마을 분향소는 밤 12시까지 운영될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윤태영 전 대변인 “보고 싶습니다. 미치도록…”

    윤태영 전 대변인 “보고 싶습니다. 미치도록…”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떠난 고인에 대한 애정을 절절히 표현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어떤 책을 읽고 생각을 했는지를 ‘미래를 말하다’ ‘유러피언 드림’ 등의 짧은 독서목록과 함께 소개했다. 다음은 윤태영 대변인이 쓴 글의 전문이다.  1.사저 안마당으로 통하는 작은 대문이 입주한 이래 항상 열려있었던 기억을 지워버릴 정도로 굳게 닫혀 있었다. 뒤편 가운데 위치한 대통령의 서재는 유난히 어둡고 침침해졌고, 남과 북으로 면한 통창의 절반 이상까지 황갈색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따스한 온기를 담고 지붕 낮은 집을 찾던 남녁의 햇살은 대문 밖에서 서성이거나 안마당 위의 허공을 맴돌았다. 창문 틈의 그림자까지 잡아채려는 취재진들의 렌즈가 내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부터 사적인 영역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조치가 만들어낸 사저의 분위기였다.  4월 중순, 대통령의 사저는 생기를 잃어가면서 때로는 적막감마저 휘감고 돌았다. 그 안에 선 대통령은 유난히 머리가 희여 보였다. 사저를 둘러싸고 형형색색들의 꽃들이 피어나 울적한 대통령을 위로하려 했지만, 대통령의 시야에 드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특유의 농담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이제는 부산 사투리의 억양마저 없어진 듯 나지막하고도 담담한 대통령의 어조가 서재 밑바닥으로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형님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대통령은 지인들의 사저 방문을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대통령의 만류에 많은 참모와 지인들이 발길을 돌렸지만, 2009년 새해 첫 날에는 그래도 적지 않은 손님들이 사저를 찾았다. 이어지는 설 명절, 대통령의 만류는 더욱 강해졌고 손님의 숫자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서울로부터 여러 명이 참모들이 내려오는 일이 있으면 대통령은 주말을 이용해 1박 2일로 다녀갈 것을 주문했다. 긴 외로움으로 생겨난 마음 속 빈 자리를 그렇게 해서라도 채워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4월, 봄이 되면 재개될 것으로 생각했던 방문객 인사는 고사하고 대통령은 오히려 사저 안으로 안으로만 갇혀질 수밖에 없었고, 사저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은 더욱 더 뜸해졌다. 5년 전 탄핵의 봄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유폐생활에 대통령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있었다.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는 위로와 격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오히려 마음의 부담만이 커지고 있는 듯했다. 원래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기에 기약 없이 계속되는 혼자만의 시간이 더욱 길었을 법하다. 재임시절 내내 은밀한 독대는 거부하면서 회의실 의자가 동이 나도록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대통령에게 홀로 앉은 텅 빈 서재는 참으로 낯선 풍경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뇌하는 캐릭터,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워크홀릭, 대통령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진보주의 연구’ 등에 대한 생각을 천착하고 다듬어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작업은 예상만큼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틈틈이 대통령은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겠나?’, ‘이렇게 된 내가 이 이야기를 한다 해서 설득력이 있겠나?’라는 회의를 스스로에게 때로는 참모들에게 던지곤 했다.  4월초의 어느 날, 대통령을 둘러싼 파란이 시작되기 1주일여 전, 대통령은 구술회의를 마치고 서재를 나서다가 무언가 아쉬움이 남은 듯 출입문 앞에서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던졌다.  “내가 글도 안 쓰고 궁리도 안하면 자네들조차도 볼 일이 없어져서 노후가 얼마나 외로워지겠나? 이것도 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글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네들과도 인연을 접을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없으면 나를 찾아올 친구가 누가 있겠는가?”  차마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질문을 남긴 채 서재를 나선 대통령. 그 뒤에서 참모들은 한동안 멍하니 있거나 아니면 뒤돌아서서 소리 없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2.길고 고독한 시간들. 그 피폐한 시간들 속에서도 서재 안 대통령의 자리 앞에는 언제나 수북이 책들이 놓여 있었다. 대통령은 끊임없이 책과 자료를 찾았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그 속에서 다시 두 권의 책을 찾았고, 심지어는 외신에 등장하는 기고들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독서가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더욱 치열하게 하고 생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었다. 한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그 주제 속으로 파고들어 애초의 줄거리에서 일탈하는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예전엔 그다지 흔치 않았던 일이었다. 작은 주제 하나를 이야기하는 데 인용되는 책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인간의 기원으로부터, 유전자, 국가의 기원과 역할, 지나간 우리 역사에 대한 회고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탐구하는 주제와 소재들은 방대했다. 방대한 넓이만큼이나 그 천착의 깊이도 땅속으로 끝없이 뻗친 큰 나무의 뿌리와도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지식의 수준과 양의 측면에서 대통령과의 격차를 느끼던 참모들은 이 시절을 거치면서 그 격차가 더욱 커져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쉽고 편안한 대중적 언어를 구사하는 대통령이었지만, 이미 그 철학과 사상의 깊이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책을 향한 깊은 몰두를 보며 오죽하면 고시공부 할 때 독서대를 개발했을까 하는 생각에 새삼스럽게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단순히 혼자만을 위한 지적 호기심 충족은 아니었다. 대통령은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읽은 책 가운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강력히 추천했다. 아니, 직접 수십 권을 구입해서 나눠주곤 했다. 작년에는 폴 크루그만의 [미래를 말하다], 최근에는 유럽의 사회보장체제를 설명한 [유러피언 드림]. 대통령은 특히 이 책을 최고의 책으로 평가하고 찬사를 보내며 이런 책을 꼭 한번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  말 잘하는 대통령이란 세평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확실히 말보다 글을 선호했다. 독서를 좋아한 이상으로 글을 잘 쓰고 싶어 했다. 글에 대한 욕심이야말로 대통령의 수많은 욕심 가운데 최대의 것이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기막힌 카피도 종종 튀어나오고 또 말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스타일이었지만, 그래도 대통령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글로 정리하는 것을 즐겼다.  소박하면서도 서민적인 언어를 구사하다가 수많은 공격을 받아 시달린 경험 탓이었을까? 대통령은 말로서 사람을 설득하기보다는 한 권의 책으로 설득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집착 이상의 것이었다. 글을 잘 정리하는 사람을 옆에 앉혀두고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야겠다는 집념이었다.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카페를 열고 시스템을 만들어 공동창작을 모색했다.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서 각종의 문제를 제기하고 댓글을 다는 순간, 대통령은 분명 미래를 꿈꾸며 사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공동창작을 위한 시스템이 뼈대를 갖추었던 날, 사저의 모든 비서들이 참으로 오랜만에 대통령의 생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  글을 쓰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약한 허리에 상당한 무리를 주고 있었다. 진퇴양난이었다. 글을 쓰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수록, 허리를 비롯한 육체의 건강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고 손을 놓자니, 밖으로부터 다가오는 힘겨움과 그 긴 시간들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을 이겨내기 위한 책과 글에 대한 집념이 건강을 갉아먹는 악순환의 늪으로 대통령을 서서히 끌어들이고 있었다.    3.2004년 하반기.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순방의 강행군은 대통령의 건강을 무력화시켰다. 대통령은 극도로 지쳤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치의와 진료의는 금연을 강권했다.  돌이켜보면 대통령의 정치역정은 흡연과의 전쟁이었던 셈. 번번이 대통령은 패배했다. 후보 시절의 금연 패치가 그러했고, 이 때의 금연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는 손님이 오면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내심으로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한 두 개비씩 조심스럽게 피우던 담배는 2005년 대연정 제안으로 인한 상처가 깊어지면서 이전의 애연가 수준으로 완전히 회귀하고 말았다.  봉하마을로의 귀향. 어쩌면 그것은 대통령이 금연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만 비서로부터 개비로 제공받는 제한적 공급에 동의했다. 이 방식이 얼마나 담배를 줄이는 데 기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나마의 끽연조차도 작년 말 건강진단 후에는 의료진의 강력한 금연 권고 앞에서 다시 중단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다.  건강은 완벽한 금연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작년 말부터 시작된 상황은 대통령의 손에서 담배가 끊어지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담배, 어쩌면 그것은 책, 글과 함께 대통령을 지탱해준 마지막 삼락(三樂)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남긴 글에서 말했듯이 책 읽고 글 쓰는 것조차 힘겨워진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기댈 수밖에 없는, 유일하지만 허약한 버팀목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담배로는 끝내 태워 날려버릴 수 없었던 힘겨움.  지금이라도 사저의 서재에 들어서면 앞에 놓인 책들을 뒤적이다가 부속실로 통하는 인터폰을 누르며 ‘담배 한 대 갖다 주게’하고 말하는 대통령, 잠시 후 배달된 한 개비의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대통령이 ‘어서 오게’ 하며 밝은 미소를 짓는 대통령.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그 모습이 영결식을 앞두고 다시금 보고 싶어진다. 미치도록….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카드 결제액 잘아졌다

    개인의 신용카드 결제액이 잘아졌다. 1만원 미만 소액 카드 결제에 불이익을 주려는 정부와 국회 일각의 법 개정 방침이 강행될 경우 소비자들의 반발이 클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넘치는 유동성에 금융기관 사이의 뭉칫돈 거래도 크게 줄었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2009년 1·4분기 중 지급결제 동향’에 따르면 개인의 신용카드 구매금액은 건당 5만 9000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6만 5000원)보다 6000원 줄면서 6만원대 아래로 내려 앉았다. 유리 한은 결제안정팀 조사역은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이용건수와 이용금액이 모두 늘었지만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결제 단위를 줄이면서 개인구매액은 소액화되는 추세”라고 풀이했다. 신용카드 이용건수는 하루평균 1203만건, 이용금액(현금서비스와 개인·법인실적 모두 포함)은 1조 2390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각각 17%, 2.2% 늘었다. 흥미로운 점은 금융기관 사이의 뭉칫돈 거래도 줄었다는 점이다. 금융기관간의 거액결제시스템을 통해 오간 돈은 하루 평균 161조 7890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177조 3640억원)보다 15조 6000억원(8.8%) 감소했다. 통상 연말보다 줄어들긴 하지만 지난해 1분기 감소 규모가 3조 4000억원(-2%)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감소세다. 시중에 단기자금이 넘치면서 콜(금융회사들끼리 빌려주고 빌리는 초단기 거래자금) 거래가 21조원이나 줄었기 때문이라고 한은은 분석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나는 왜 내 맘이 내 맘대로 안되노? /박선미

    [엄마와 읽는 동화] 나는 왜 내 맘이 내 맘대로 안되노? /박선미

    아아아, 벌써 아침이란 말이가? 야야는 환하게 밝은 방문을 흘기면서 이불을 끌어다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 썼어. 어찌된 셈인지 실컷 잤는데도 밤새도록 힘든 일을 한 것처럼 피곤해. 지난 밤 꿈에는 얼굴도 보이지 않는 키 큰 어른한테 호되게 야단을 들었어. 어찌나 서럽던지 엉엉 우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아. 꿈속에서도 그게 어찌나 답답하던지…. 잠을 깨어 뒤척거리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선생님이 나타나서 호되게 꾸짖는 거야. 무얼 그리 잘못했던지 야야는 꿈속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코만 쿨쩍쿨쩍 하고 있었어. 밤새도록 그렇게 혼나는 꿈만 꾸어댔으니 아침에 개운할 리가 있겠나. 야야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다리를 쭈욱 뻗어 이쪽저쪽 더듬거려봤어. 어, 아무것도 걸리지 않아. 그제야 이불을 살짝 내리고 방안을 둘러 봤어. 고모가 덮었던 이불은 착착 개어서 반닫이 위에 반듯하게 올려놓았어. 고모 베개랑 경주 베개도 그 위에 나란히 올려져 있고. 아아, 진짜. 모두다 와 이래 일찍 일어나노? 다시 이불을 덮어쓰고 눈을 꼭 감았어. 문 열고 나가면 경주 얼굴부터 마주칠 건데, 그러면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생각할수록 마음이 어수선하기만 하거든. “야야, 안즉 자나?” “벌써 깨서 똥구멍으로 숨 쉬고 있을 끼다. 어서 나오라 캐라.” “야야, 학교 빨리 안 가나? 이번 주에는 아침에 방과 후 교실 한다며?” ‘아, 맞다. 아침 공부하기 전에 방과 후 교실 한다고 했지? 아아 순 엉터리야. 방과 후 교실은 공부 다 마치고 진짜로 방과 후 남는 시간에 해야지. 아침부터 무슨 방과 후 교실을 하냐고?’ 이번 주에는 선생님들 오후 출장 때문에 아침 일찍 방과 후 교실 공부를 한다고 했지. 마침내 엄마가 방문을 열어젖히고 큰 소리를 내고 말았어. “야야, 안 일나나? 해가 하늘 똥구멍을 찌르거마는.” “아아아이, 엄마 쪼꼼만 더.” “쪼꼼만 더는. 어서 안 나오나?” 으으으, 야야는 어깨를 웅크린 채 턱을 달달거리며 마당에 내려섰어. 대빗자루로 싹싹 쓸어서 빗자루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말간 마당이며, 감나무 끝에 대롱대롱 걸린 채 거무스름하게 쪼그라져가는 홍시 두어 개와 그 너머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이 더욱 으스스 추웠어. “아아아, 추워. 겨울도 아닌데 와 이래 춥지?” 먼저 나온 식구들 보기 민망해서 더 추운 척 어깨를 웅크리는데 엄마가 또 한 마디 했어. “봐라, 경주는 벌써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 빗고 다 했다.” 그러고 보니 경주는 벌써 머리도 감아 빗었어. 경주가 머리 감은 물을 마당에 촤악 뿌려. 물이 흩어지면서 비질한 마당에 공기방울이 송송송 일어. 자잘한 흙구슬을 뿌려 놓은 것 같아. 다른 날 같으면 ‘이번에는 내다. 누가 많이 생기나 해 보자.’ 하고 얼른 세수하고 물을 뿌렸을 거야. 그러나 야야는 경주랑 눈 마주치는 것도 슬슬 피하면서 세숫대야만 뺏듯이 받아 챘어. “봐라 봐라. 경주 걸레 짠 것 좀 보래이. 장골이가 짜도 갱물 한 방울 안 떨어지겠다. 머리 빗는 것도 좀 봐라. 야야 니도 본 좀 받아라, 본 좀.” ‘아이씨, 또 경주 본받아라는 소리제?’ ‘치이, 내가 경주보다 잘하는 것도 얼마나 많은데. 엄마는 맨날맨날 경주만 잘한다카고.’ 엄마 아버지랑 떨어져서 경주 혼자만 야야네 집에 남아 있는 게 안쓰러워서 저렇게 감싸는 건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상해.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물만 몇 번 찍어 바르고 축담에 올라서니 경주가 기둥에 걸린 낯수건을 떼어서 건네줬어. ‘고맙다 해야 되는데.’ ‘그저께부터 말도 한마디 안했는데 어떻게?’ ‘아아참, 그냥 놔두면 내가 가져다 닦을 건데 뭐하러 수건은 갖다주고 그라노?’ ‘그래도 고맙다 하면 어떻노? 사실, 경주하고 내 하고는 싸운 것도 아닌데.’ 그 짧은 시간에 머릿속에는 한꺼번에 너무도 많은 생각이 일었어. “고맙….” 혼자서 속시끄럽게 생각만 하다가 겨우 입을 달싹거리는데 경주는 벌써 정지간으로 들어갔어. 야야는 경주가 들어가는 걸 보고 혼자서 겨우 말을 맺었어. “고맙다.” “너거 둘이 이번 주에 일찍 간다면서? 어서 밥 한 숟가락 먼저 뜨고 가거라.” 야야는 경주 얼굴을 흘깃 건너다보고 젓가락으로 밥을 조금 집어 올렸어. 경주도 야야한테 눈길을 한번 주더니 아무 말 없이 밥을 떠 넣었어. “너거 둘이 싸웠나? 제비겉이 재재굴거리더마는 오늘은 와 이래 조용하노?” “그라고 보이 너거들 어제도 말 한마디 안 하는 것 같더라. 뭔 일이고?” “하여튼 딸래미들은 웃긴대이. 별 거 아닌 거 가지고 말도 안 하고 골려묵고.” 고모랑 오빠가 뭐라든 둘은 낯빛 하나 안 바꾸고 밥만 떠 넣었어. 밥알이 살아서 입안에 데굴데굴 도는 것이 무슨 맛인지도 몰라. 경주를 흘끔 봐. 경주도 무슨 밥맛이 있겠노? “같이 있을 때 잘 지내래이. 천년만년 살 것 같제? 눈앞에 있다고 날마다 있을 줄 알제? 오늘 이래 얼굴보고 있어도 내일 일은 모르는 기다.” 아버지하고 따로 밥상을 받아 드시던 할매도 한 마디 하셔. “할마씨. 아아들이 그 말을 알겠소? 아침부터 뭔 말을 그래 하요?” 요즘 들어 몸도 자주 아프고 마음 약한 말을 자꾸 하는 할매가 못마땅한지 고모가 놀란 듯이 입막음을 해. 할매까지 걱정하게 하나 싶어 야야도 얼른 한마디 했어. “안 싸웠어예. 잠이 덜 깨서 그러지.” 하긴 그래. 경주하고 싸우지도 않았거든. 그저께 청소 시간에 잠깐 밖에 나갔다 온 사이에 영주랑 행지랑 아이들 몇몇이 그러는 거야. “인자 우리는 경주하고 안 논다. 야야 니도 안 놀 거지?” “와? 경주가 우쨌는데?” “그냥. 맨날 선생님 앞에서 얄랑얄랑하고 눈꼴시어서 못 봐주겠다.” 둘러선 아이들을 돌아보니 순덕이도 영희도 끄덕거려. 야야는 고개를 끄덕하긴 했지만, 집에 오면서 경주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어수선해. ‘아아 진짜. 집에 가면 밥도 같이 묵고 잠도 한 방에서 같이 자는데. 우예 같이 안 노냐고. 말도 어째 안 섞을 수가 있냐고. 안 보고 싶어도 눈만 뜨면 눈앞에 얼른거리는데.’ ‘가시나. 고마 아이들 하고 좀 잘 지내지. 또 우쨌길래 영주한테 밉보여서 골려먹게 만드노?’ 야야는 자기도 어쩔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그만 따돌림 받는 경주가 슬며시 원망스러워. 저녁 먹고 오빠가 빌려온 만화책을 볼 때도 야야는 경주를 피해서 고모 옆에 엎드렸어. 고모를 사이에 두고 둘이서 만화를 보는 것도 참 싱거워. 그렇게 서먹서먹하게 굴다가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도 멋쩍고 쑥스러운 건 그대로야. ‘아아참, 내가 경주랑 싸운 것도 아닌데. 영주가 안 논다고 나도 따라서 안 놀겠다고 하느냐고? 으이그 이 빙신!’ 야야는 스스로 생각해도 자기가 참 못났어. 경주 편에 서서 말도 한 마디 못하고 영주를 따라하는 게 참 바보 같은 거야. 지난번에도 행지를 골리다가 선생님한테 불려갔어. 그때도 영주가 행지하고 안 논다고 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따라했거든. 겁 많은 순덕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어. “샘예, 저는 안 그랬는데예. 그냥 옆에만 있었는데예. 욕도 안 하고예.” 순덕이 말을 듣다가 선생님이 불같이 화를 냈어. “앞장서서 욕하고 골리지 않았다고 잘못이 없는 줄 아나? 아무 말 안 해도, 그 옆에 서 있는 것만도 똑같아. 암 똑같지.” 선생님은 말을 쉬더니 침을 꿀꺽 삼켰어. 유난히 도드라진 목울대가 크게 꾸물럭해. 다시 아이들을 휘이 둘러보고 소리를 조금 낮춰 말을 이었어. “잘못하는 걸 보고 가만히 있는 그 놈들도….” 선생님은 또 화가 치솟는지 말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었어. “나서서 골리고 욕하는 아이한테 두 배 세 배로 힘을 보태 주는 거거든. 아무 말 안 하고 서서 보고 있는 동무가 둘, 셋, 넷 많을수록. 혼자 당하는 아이를 생각해봐라. 지 혼자 얼마나 힘들고 외롭겠노?” 야야는 부끄러워서 그 자리에서 스르르 녹아 없어졌으면 싶었어. 속으로는 ‘나는 직접 욕도 안 하고 심하게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하고 있었거든. “혼자 서서 그 눈길을 다 받아야 되는 한 사람. 그 사람이 얼매나 힘든지 아나 말이다.” 그 뒤로 얼마나 됐다고 또 경주하고 이러냐고. 나는 경주하고 안 싸웠으니까 함께 놀 거라고 딱 부러지게 말했어야지. 너거들도 별 거 아닌 일로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 그 말까지는 못하더라도 말이지. 경주는 학교에서도 하루 종일 혼자 지냈어. 혼자 놀고 혼자 밥 먹고. 화장실에도 혼자 갔어. 야야는 그런 경주가 자꾸 눈에 밟혀. 공부시간에도 책만 들여다보고 고개도 한번 제대로 안 드는 경주를 보니까 자꾸 마음이 짠해졌거든. ‘우짜지? 오래가면 어른들한테 걸릴 건데. 집에서는 말할까?’ ‘이웃에 아이들이 다 볼건데. 내보고 약속도 안 지킨다고 안 할까?’ ‘아아 그러게. 나는 안 싸웠으니까 안 골릴 거라 진작 말하지.’ 아이들이 놀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때 제대로 말을 해야 하는데. 때를 놓치고 나니 제 맘대로 되질 않아. 집에 돌아와서 숙제 좀 하고, 선생님이 읽어오라는 책도 다 읽고 나니 집이 조용해. 늘 함께 있던 경주도 없어. 하긴 서로 말도 안 하면서 둘이서만 집에 있기도 열없겠지. ‘바깥새미에 걸레 빨러 갔나?’ 동네 들머리 바깥새미로 나갔어. 빨래도 하고 허드렛물도 쓰는 바깥 새미에는 걸레 빨러 온 아이들, 양말 몇 짝 들고 나온 아이들 몇몇은 늘 있거든. 그럼, 그렇지. 경주가 두레박질을 하고 있어. 얼마나 심심했으면 지 혼자 빨래를 들고 나왔겠노 싶으니 또 마음이 짠해. 그런데 경주가 활짝 웃으면서 뭐라뭐라 종알거리고 있어. ‘혼자서 그라나, 누가 옆에 있나?’ 가까이 가보니 그 옆에 영주가 앉아서 걸레를 흔들어 빨고 있어. 경주가 퍼 주는 물을 받아서. ‘경주 가시나. 지 걱정했더만, 지 혼자 살째기 영주 꼬셨나보지?’ ‘칫, 영주 가시나. 지가 먼저 말 안 한다 했으면서. 지만 살째기 화해하고.’ 야야는 경주랑 영주가 다시 환하게 웃는 걸 보니 마음이 놓여. 또 한편으론 경주가 얄미워. 영주는 얼마나 야속한지. 혼자서 속 끓이고 있었던 걸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둘 앞에 서서 또 딴말을 하는 거야. “너거들 걸레 빨고 있네. 내가 물 퍼 주까?” 야야는 그러는 자기가 참 싫어. ‘나는 왜 내 맘이 내 맘대로 안 되노?’ ●작가의 말 돌아보면 나는 내 맘속에 있는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돌아서서 후회하고 마음 아파하던 일이 참 많았다. 꼭 해야 할 말을 못하고 때를 놓쳐서 내 맘과 다르게 일이 번져나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고, 뒤늦게 후회해도 맘먹은 대로 잘 안 되어서 마음 졸이고 속상해 하고. 혹시 나 같은 아이가 하나라도 있다면 야야 이야기를 두고 엄마랑 동무들이랑 속에 있는 얘기를 실컷 풀어봤으면 좋겠다. ●약력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으로, 스무 해 넘게 초등학교 교사로 살면서 아이들과 함께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공부를 했다. 지금은 학교를 그만두고 부산에서 혼자 공부하며 지낸다. 그동안 ‘달걀 한 개’ ‘산나리’ ‘욕시험’ ‘내가 좋아하는 과일’ 등의 동화를 썼다. 자라면서 겪은 일을 특유의 사투리와 ‘입말’로 생생하고 재미나게 풀어 써서 ‘이야기 문학의 자리’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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