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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져가는 ‘공중전화’ 그들의 넋두리 “존재감 찾고 싶어요”

    사라져가는 ‘공중전화’ 그들의 넋두리 “존재감 찾고 싶어요”

    저희는 요즘 무척 외롭답니다. 땟자국을 뒤집어쓰고 있거나 유리가 깨져 있거나, 세련되게 단장한 것들이라 해도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기 일쑤입니다. 우산을 챙기지 않은 이들의 비 긋는 노릇으로나 존재의 의미를 이어갈 따름입니다. 저희도 잘나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 잊으셨겠지만 2001년만 해도 전국에 50만의 동료가 있었습니다. 저희들의 쓰임새는 숱한 시와 노래의 소재로 등장한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1년 전 ‘015B’의 객원가수 윤종신이 불렀던 ‘텅빈 거리’의 노랫말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눈물을 흘리며 말해도/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에/외로운 동전 두 개뿐’에는 저희를 즐겨 찾던 이들의 낭만과 회한, 감성이 오롯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걸까 말까 망설이며 만지작대던 동전의 감촉을 플라스틱 카드의 밋밋함이 대신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쓸쓸히 잊힌다는 사실이 더 견딜 수 없는 아픔입니다. 저희가 사라질 운명임을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3월 말까지 전국에 12만 2604대의 동료가 있는데 식당, 카페 등에서 설치해 운영하는 자급형을 뺀, 길거리의 저희 숫자는 8만 8000대입니다. 10년 전의 4분의1이 됐고 3449억원이던 매출도 지난해 512억원으로 7분의1 토막 났습니다. 지난 한 해 관리비로만 600억원을 쓰게 했으니 88억원의 손실을 끼쳐 천덕꾸러기도 이런 천덕꾸러기가 없습니다. 이용하는 이는 줄고 수십억원의 손실을 보는데도 저희를 없애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누구나 휴대전화 한 대는 갖고 있다지만 아직도 저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인 관광객 스튜어트는 “영국 휴대전화라 여기서 작동하지 않네요. (나처럼) 휴대전화가 안 된다면 (공중전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독산동에 사는 40대 신용불량자 박모씨는 “사기를 당해 전화도 뭐도 다 끊긴 상태입니다. 뭐라도 해서 먹고 살려고 일자리 센터를 통해 일을 알아보는데 나 같은 처지의 사람에게 아주 유용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희를 관리하는 KT의 장인석 홍보실 대리 얘기를 들어볼까요. “경제 논리로 보면 공중전화는 없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외된 계층에게는 공중전화가 아직도 중요한 통신수단입니다. 또 휴대전화를 잃어버리거나, 배터리가 다 되었을 경우에는 요긴한 대체 수단이 됩니다.” 저희를 즐겨 찾는 분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 어린이, 유학생, 외국인 근로자 등과 학교, 군부대, 병원 등 특수지역 이용자들입니다. 실제로 수도권에서 많이 이용하는 지역을 살펴보니 동두천과 양주시, 서울 동대문구처럼 역이나 터미널 주변, 종합병원과 군부대 근처, 외국인 근로자가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3·11 동일본 대지진 직후 며칠 동안 저희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저희 쓰임새가 더 각인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장 대리는 “무선 통신이 마비됐을 때 유선 서비스가 튼튼히 받쳐 줘야만 큰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능력이 대단하다던 북한의 해킹 공격으로 무선 통신망이 와해됐을 때 유선 통신망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저희 숫자는 올해에도 줄어들 겁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보편적 서비스 개선안에 따라 3월 말의 8만 8000대를 연말에는 8만대로 줄일 계획이랍니다. KT는 그러면서도 쓰임새를 넓히는 쪽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토해양부가 주관한 마포구의 ‘U시티’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것처럼 주변 상가나 길 안내는 물론 공연 및 문화 정보, 인터넷과 다국어 서비스 등을 갖춰 멀티 스테이션 기능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지요. 또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의 ‘디자인 거리’와 가로 정비 사업에 발맞춰 디자인 측면을 강화해 도시의 상징물로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여기에 공익 목적의 옥외광고를 게재하도록 해 수익을 보전하는 식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셈법입니다. 어떠세요. 저희 사연 들으셨으니 퇴근 길, 가로등 불빛 아래 처연히 서 있는 저희를 한 번 더 돌아보실 거죠? 서봉원기자 murrow04@seoul.co.kr ●6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 ‘TV 쏙 서울신문’ 방영
  • [사설] 어린이날 우리 어린이의 행복을 생각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이날이 돌아왔다. 오늘 하루 전국 유원지와 놀이시설, 공연장·백화점 등지에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나온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퍼질 것이다. 부모들 또한 오늘만큼은 최선을 다해 자식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이 평상시에는 얼마나 행복할까.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함께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지수는 65.98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평균점수 100점에서 한참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바로 위인 헝가리와도 20점 넘게 차이 나는 참담한 수준이다. 하긴 올해 새로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2009년부터 3년 연속 60점대 점수로 이 부문에서 꼴찌를 기록해 왔다. 부모는 제 자식을 신주 받들 듯 하는데도 막상 어린이들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원인은 복합적이겠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가 아이들을 함께 키우지 않고 부모에게 그 책임을 전적으로 떠맡기는 현 체제에 있다고 본다. 아이들은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 등에 상관없이 일정한 정도로 성장할 때까지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공정한 경쟁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공정한 경쟁을 경험해 봐야 이기고도 겸손할 줄 알며 지고도 다시 일어서게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본인의 능력·노력보다 외적인 힘이 우열을 결정짓는 상태에서는 아무도 행복하지 못한 무한경쟁에서 헤매게 될 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공교육 현장이 무너진 교육 부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터이다. 우리사회가 어린이 문제에 무심하다는 사실은 정치권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8대 국회에서 그동안 아동 관련법 개정안은 모두 32건 나왔는데 그중 1건만이 ‘의원 자진철회’로 처리됐고 나머지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법으로마저도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과연 국가·사회의 미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린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건 결국 어른들의 잘못이다. 우리 사회가 다같이 아이들을 키우고, 그럼으로써 우리 미래가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도록 어른들이 통렬히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 사살소식 후 주가 껑충·달러 강세 “알카에다 예측불가… 반짝 호재”

    사살소식 후 주가 껑충·달러 강세 “알카에다 예측불가… 반짝 호재”

    오사마 빈라덴의 사살 소식에 세계 주가는 오르고 원자재값은 떨어지고 미 달러화는 강세를 보였다. 호재이긴 하지만 구심점을 잃은 알카에다의 행동이 예측 불가능이라는 점에서 반짝 호재에 그친다는 전망이 대세다. ●코스피 2228.96… 사상 최고치 2일 코스피 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36.60포인트(1.67%) 오른 2228.96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닛케이지수도 154.46포인트(1.57%) 상승한 1만 4.20에 마감됐다. 지난 3월 14일 이후 처음으로 1만선 돌파다. 장 초반부터 오름세를 기록하다가 빈라덴 사살 소식에 상승폭이 확대됐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6.15원 내린 1065.34원으로 급락했다. 2008년 8월 25일(1064.10원) 이후 최저 수준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5% 안팎의 하락세를 보였고 금·면화 등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빈라덴 사살 소식이 세계 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미국 소비 심리 개선과 소비 확대→미 경제 회복 가속화→세계 경제에 긍정적 영향 등의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 우선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의 ‘경고’까지 받았던 미 재정적자의 축소 가능성이다. 빈라덴 사살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지대에서 10년간 벌어지던 미국의 추격전은 끝날 전망이다. 홍순표 대신증권 시장전략팀장은 “전쟁이 끝나 군비지출이 줄면서 재정 건전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도 “미 경제와 증시의 신뢰감을 높여 준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직접 영향보다 美소비심리 개선 긍정” 지난달 말 발표된 4월 미 미시간대 소비자신뢰지수는 69.8로 전월보다 개선됐다. 빈라덴 소식 외에도 야외 활동이 많은 드라이빙 시즌에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설 빌미가 제공됐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미국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서서히 개선되고 있는 고용시장까지 가세하면 소비 심리 개선의 증폭 효과가 크다. 미국 소비의 증가는 우리나라를 포함, 세계 각국의 수출 증가로 이어진다. 돌발변수는 알카에다의 후속 대응이다. 김중관 동국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알카에다가 점조직이라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의 활동을 벌여 왔다는 점에서 빈라덴 사살이 알카에다의 무력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경하·오달란기자 lark3@seoul.co.kr
  • [일본통신] ‘이승엽 극도의 부진’ 어찌하오리까

    [일본통신] ‘이승엽 극도의 부진’ 어찌하오리까

    이승엽(35. 오릭스)의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때를 같이해 오릭스도 동반 침체, 이젠 어떠한 계기를 만들지 못하면 이승엽 본인이나 팀 모두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직면할수도 있다. 오릭스가 지난해 이승엽을 영입한 것은 팀의 주포라고 할수 있는 외국인 타자 알렉스 카브레라(소프트뱅크)와의 재계약이 불투명 했기 때문이다. 카브레라가 사실상 팀을 떠날 것이 확실시 될 무렵 이승엽은 오릭스에 새 둥지를 틀었고 그 기대만큼이나 올 시즌에 대한 각오도 남달랐다. 그것은 이승엽이 카브레라 만큼 해줘야 오릭스의 전력누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이승엽은 바닥을 헤매고 있다. 지난해 부진이 밑바닥이었다면 지금의 부진은 밑바닥에서 더 파낼곳도 없는 총제적 난국이다.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인지, 어쩌면 주중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3연전이 이승엽의 올 시즌 운명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3일 경기엔 일본최고의 선발투수인 다르빗슈 유가 출격하기에 반전을 기대할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승엽은 현재까지 25개의 삼진을 당하며 리그 최다를 기록중이다. 타율은 .140(57타수 8안타) 홈런 1개에 5타점이 고작이다. 무려 44%에 이르는 삼진율은 이젠 ‘모 아니면 도’ 수준을 뛰어넘을 정도다. 오릭스 코칭스태프들은 물론 지켜보는 팬마저도 희망을 끈을 잡고 있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올 시즌은 유달리 외국인 타자들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그중 이승엽이 가장 심각하긴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마치 도미도 현상처럼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 선수는 각팀 전력의 핵심이다. 그중에서도 퍼시픽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타자들의 부진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단체로 애물단지가 돼 버린듯한 느낌이다. 올해 소프트뱅크로 이적한 카브레라는 현재 타율 .203, 홈런3개, 9타점, 그리고 19개의 삼진을 기록중이다. 걸리면 넘어가는 무시무시한 파워는 물론 매우 정교한 타격스타일을 갖춘 카브레라의 부진은 뜻밖의 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카브레라의 부진은 일시적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비록 지난해 부상으로 인해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진 못했지만 항상 무더워지기 시작하면 방망이가 불을 뿜었던 전례를 감안하면 그렇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니혼햄이 장타력 보강을 위해 야심차게 영입한 호프파워(31) 역시 일본야구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걸 실감하고 있다. 홈런은 4개를 쏘아올리며 한방능력은 인정받고 있지만 타율 .196 그리고 20개의 삼진이 말해주듯 공갈포 성향도 다분하다. 그나마 호프파워는 팀이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어 심리적으로는 여타의 외국인 선수에 비해 여유(?)로운 편이다. 당초 우승후보 팀으로 분류됐던 세이부의 부진은 뜻밖이다. 현재 리그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세이부의 부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두명의 외국인 타자들 때문이다. 바로 호세 페르난데스와 디 브라운이다. 특히 검증된 타자 페르난데스의 부진은 팀 공격력을 갉아 먹고 있는 원인인데 자신의 장기인 정교함이 사라져 버렸다. 페르난데스는 타율 .203 홈런2개를 쏘아올리고는 있지만 정교함과 장타력을 동시에 겸비한 타자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다. 브라운은 타율은 낮더라도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한방을 쳐줄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홈런은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고 있고 타율 역시 .161에 불과하다. 정교한 일본투수들을 상대로 너무나 큰 스윙을 하는게 부진의 원인이다. 앞으로 세이부가 꼴찌에서 탈출해 반등을 하기 위해선 이 선수들이 하루빨리 되살아나야 한다. 라쿠텐은 매우 좋은 외국인 투수 2명(라이언 스파이어,로무로 산체스)을 갖게 됐지만 공갈포 타자 랜디 루이즈로 인해 걱정이다. 루이즈는 분명 한방능력을 갖춘 선수이긴 하지만 선구안이 부족해 어이없는 공에 방망이를 휘두르는 경우가 잦다. 현재 타율 .174 홈런2개를 기록중인 루이즈는 20개의 삼진이 말해주듯 지난해와 비교해 별반 달라진게 없어 보인다. 이렇듯 퍼시픽리그 외국인 타자들의 성적은 한결같이 부진하다. 그나마 선두 싸움을 하고 있는 니혼햄과 소프트뱅크에 속해 있는 선수들은 자신들의 부진이 묻혀 보이지만 그 밖의 선수들은 체면이 말이 아니다. 만약 오릭스의 팀 순위가 상위권에 있다면 이승엽의 부진은 2군행과 더불어 잠시 엔트리에 빠져 있어도 된다. 하지만 오릭스의 선수구성을 감안하면 이승엽이 빠진다 해도 대체할만한 마땅한 선수도 없는 실정이다. 외국인 타자 마이크 헤스먼이 있긴 하지만 이 선수 역시 선발 엔트리에 들어 갈만한 수준이 못된다. 시즌 전, 올 시즌 오릭스 성적의 키는 이승엽이 쥐고 있다는 전망이 현재까지는 팀 꼴찌로 대변해주고 있다. 오카다 감독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장하다 조은지 기자! 여자 럭비 국가대표 도전기

     내 꿈은 국가대표다. ‘태극마크 앓이’는 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 취재를 다녀온 직후 심해졌다. 대한민국 대표로 국제무대에 나간다는 자체가 숨 막히게 근사했다. 그 뒤에 숨은 피와 땀을 결코 가볍게 보는 건 아니지만 태극마크를 다는 건 엄청난 로망이 됐다.  ‘썰매박사’ 강광배 감독은 스켈레톤을 추천했다. 생소했고 무서웠다. 컬링을 알아봤다. 은근 선수층이 두꺼웠다. 어느덧 20대 후반이 됐다.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체육기자를 지망할 정도로 스포츠에 대한 갈증은 심했지만 그 뿐이었다. 태극마크는 영원한 ‘꿈’으로만 남는 듯했다.  그러다 눈이 커졌다. 여자럭비 국가대표 선발전 공고를 봤을 때. 당장 대한럭비협회에 신청서를 냈다. 선발전 전날 비가 많이 내렸다. 어두컴컴한 밖을 보며 ‘대회가 연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주까지 시간을 벌어 럭비공을 잡아보고 차보면 뭔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생생한 체험기나 쓰지.’라며 마음을 비우려 했지만 열망은 커져만 갔다.  1일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선발전이 벌어질 연세대 종합운동장으로 가면서 심장은 더 크게 뛰었다. 오전 10시, 나까지 52명의 ‘운동깨나 한다는 여자들’이 모였다. 견제하는 눈빛과 묘한 긴장감. 첫 종목은 지그재그런. 민첩성과 순발력을 보는 코너. 대학시절 테니스와 핸드볼로 다져진 발놀림 덕분인지 제법 빨랐다. 팔굽혀펴기는 40개를 채웠고, 윗몸일으키기는 30개를 했다. 50m도 8초 2에 끊었다. 지옥은 이때부터였다. 100m를 뛰면서 죽음을 맛봤다. 100m가 이렇게 긴 줄 미처 몰랐다. 피니시라인에서 코치들이 “끝까지! 지나가!”를 외치는데 아득하게 느껴졌다. 기자 4년차에 몸은 ‘저질’이 돼버렸다.  한숨 돌리며 수다를 떨었다.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에 나갔던 ‘얼짱’ 채성은(18)이 뒷번호. 갑자기 “네? 27세요? 안 힘드세요?”라며 측은하게 바라본다. 회사에서는 막내급 귀염둥이(!)지만, 여기선 ‘왕왕왕언니’였다. 주변엔 해맑은 ‘고딩’들이 바글거렸다. 풀린 다리가 충전되기도 전에 800m가 시작됐다. 다른 도전자들이 스타트부터 너무 빠르게 달려나가길래 곧 뒤처질 줄 알았다. 맨 뒤에서 느긋하게 뒤쫓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두 번째 죽음을 맛봤다. 꼴찌는 면했지만 이미 내 다리는 내 신체이길 거부했다.  드디어 럭비공을 만졌다. 캐치와 킥. 대부분이 초보라 능숙도보다는 발전가능성과 감각을 본다고 했다. 나는 날아오는 럭비공을 갓난아기라도 되는 양 받았다. 두번 모두 사뿐하게 잡았다. 킥은 망했다. 공의 모양이 얄궂어서 어디를 차야 할지 난감했다. 회전 없이 쭉 뻗더니 이내 착지. 투포환의 궤도 같았다. 마지막 관문은 태클. 강하게 어깨를 미는 자세는 생소하고 어려웠다. 지난해 대표 김아가다(21)는 “어깨랑 갈비뼈 나가는 건 기본이에요.”라고 겁을 줬다.  2시간 30분의 선발전이 끝났다. 결과는 일주일 내 개별적으로 연락해 준단다. 한동호 감독은 “2~3개월간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칠 생각이다. 24명을 추려 합숙훈련을 한 뒤 최종적으로 12명을 뽑겠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메달이 목표”라고 말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서태지 입장표명하자 이지아 소송취하… 왜?

    서태지 입장표명하자 이지아 소송취하… 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태지·이지아 사태가 서태지의 입장 표명과 이지아의 소송 취하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그들의 결혼과 이혼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지 열흘 만의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많아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서태지는 열흘 만인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지아와 1997년 10월 미국에서 둘만의 혼인신고를 마치고 부부 생활을 시작했으나 성격과 미래상이 달라 2000년 6월 별거를 시작했고, 2006년 8월 부부 관계가 종결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지아와의 만남에 대해 “1993년 미국에서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편지와 전화로 연락하며 호감을 갖게 됐고, 1996년 은퇴 후 미국 생활을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지내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둘은 결혼한 지 2년 7개월 만에 별거를 시작했고, 2006년 1월 이지아의 이혼 요청이 있은 후 6월 12일 이지아 측이 단독으로 미국 법정의 이혼 판결을 받으면서 8월 9일 부부관계가 종결됐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날 공식홈페이지인 서태지닷컴을 통해 14년 동안이나 결혼과 이혼을 숨겼던 이유와 심경을 밝혔다. 서태지는 “1996년 은퇴 후 가수 서태지가 아닌 평범한 자연인 정현철로 돌아가 보통의 사람들과 같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는 평범한 생활을 소망했다.”면서 “은퇴 이후 힘겹게 얻은 최소한의 보금자리와 처음으로 누려 보는 평범한 일상을 보호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을 밝히지 못한 데 대해서는 “2000년 이후 상대방과 헤어지는 수순을 밟으며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가수 서태지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미 헤어져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상대방을 세상에 발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내 마음에 담아둬야 할 비밀이 됐다.”고 설명했다. 서태지가 입장을 표명하자, 이지아도 같은 날 55억원의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취하했다. 서태지 측이 2주 동안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소취하가 성립되며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재판도 종결된다. 하지만 이지아가 14년 동안이나 지켜 온 서태지와의 결혼과 이혼에 대한 비밀이 공개될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번 소송을 감행한 이유와 돌연 소송을 취하한 배경을 둘러싸고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특히 서태지의 입장 표명과 이지아의 소송 취하가 같은 날 이뤄져 사전에 양측의 교감이 있었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들의 결혼과 이혼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고, 인터넷에서는 둘의 사생활 파헤치기 광풍이 불었다. 이처럼 파문이 커지자 양측은 이번 소송을 장기적으로 끌고가는 데 부담을 느꼈고, 합의를 통해 서둘러 소송을 종식시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연예계 일각에서는 “양측이 10억원대의 합의금에 소송을 취하했다.”는 물밑 합의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서태지 측은 1일 “이지아의 소 취하 사실을 몰랐다. 거액 합의설도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이지아도 이날 밤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소를 취하하며 그 어떤 합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지아가 소송을 제기한 배경도 미스터리다. 드라마 ‘태왕사신기’, ‘베토벤 바이러스’, ‘아테나: 전쟁의 여신’ 등을 통해 주연급 스타로 부상한 그가 자신의 결혼과 이혼 사실이 모두 알려질 것을 알면서도 한국에서 이번 소송을 진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물론 55억원이 큰돈이긴 하지만 이미지 타격으로 입을 손해는 더욱 막심하고, 앞으로 주연급 스타로 계속 활동하기 위해 포기할 수도 있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이지아는 사건이 터진 지난달 21일 사태가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밝혔지만, 소송에 따른 파장과 결과에 대해 사전 대비나 각오가 전혀 없었는지도 의문이다. 특히 두 사람의 관계는 2000년 6월 이후 사실상 끝난 셈인데 11년이나 지나서야 재산관계를 정리하겠다고 나선 배경도 의문이다. 또 디자이너를 꿈꾸던 그녀가 굳이 한국으로 와 전 남편이 활동하는 연예계에 데뷔한 이유 등 이번 소송을 통해 불거진 의문점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은주·이민영기자 erin@seoul.co.kr
  • ‘저질체력’ 4년차 조은지 기자 女럭비 태극마크 도전기

    ‘저질체력’ 4년차 조은지 기자 女럭비 태극마크 도전기

    내 꿈은 국가대표다. ‘태극마크 앓이’는 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 취재를 다녀온 직후 부쩍 심해졌다. 대한민국 대표로 국제무대에 나간다는 자체가 숨 막히게 근사했다. 그 뒤에 숨은 피와 땀을 결코 가볍게 보는 건 아니지만 태극마크를 다는 건 엄청난 로망이 됐다. ‘썰매박사’ 강광배 감독은 스켈레톤을 추천했다. 생소했고 무서웠다. 컬링을 알아봤다. 은근 선수층이 두꺼웠다. 어느덧 20대 후반이 됐다.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체육기자를 지망할 정도로 스포츠에 대한 갈증은 심했지만 그뿐이었다. 태극마크는 영원한 ‘꿈’으로만 남는 듯했다. 그러다 눈이 커졌다. 여자럭비 국가대표 선발전 공고를 봤을 때. 당장 대한럭비협회에 신청서를 냈다. 선발전 전날 비가 많이 내렸다. 어두컴컴한 밖을 보며 ‘대회가 연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주까지 시간을 벌어 럭비공을 잡아보고 차보면 뭔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생생한 체험기나 쓰지.’라며 마음을 비우려 했지만 열망은 커져만 갔다. 1일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선발전이 벌어질 연세대 종합운동장으로 가면서 심장은 더 크게 뛰었다. 오전 10시, 나까지 52명의 ‘운동깨나 한다는 여자들’이 모였다. ●운동 좀 하는 52명, 2시간30분 사투 견제하는 눈빛과 묘한 긴장감. 첫 종목은 지그재그런. 민첩성과 순발력을 보는 코너. 대학시절 테니스와 핸드볼로 다져진 발놀림 덕분인지 제법 빨랐다. 팔굽혀펴기는 40개를 채웠고, 윗몸일으키기는 30개를 했다. 50m도 8초 2에 끊었다. 지옥은 이때부터였다. 100m를 뛰면서 죽음을 맛봤다. 100m가 이렇게 긴 줄 미처 몰랐다. 피니시라인에서 코치들이 “끝까지! 지나가!”를 외치는데 아득하게 느껴졌다. 기자 4년차에 몸은 ‘저질’이 돼버렸다. 한숨 돌리며 수다를 떨었다.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에 나갔던 ‘얼짱’ 채성은(18)이 뒷번호. 갑자기 “네? 27세요? 안 힘드세요?”라며 측은하게 바라본다. 회사에서는 막내급 귀염둥이(!)지만, 여기선 ‘왕왕왕언니’였다. 주변엔 해맑은 ‘고딩’들이 바글거렸다. 풀린 다리가 충전되기도 전에 800m가 시작됐다. 다른 도전자들이 스타트부터 너무 빠르게 달려 나가길래 곧 뒤처질 줄 알았다. 맨 뒤에서 느긋하게 뒤쫓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두 번째 죽음을 맛봤다. 꼴찌는 면했지만 이미 내 다리는 내 신체이길 거부했다. 드디어 럭비공을 만졌다. 캐치와 킥. 대부분이 초보라 능숙도보다는 발전가능성과 감각을 본다고 했다. 나는 날아오는 럭비공을 갓난아기라도 되는 양 받았다. 두번 모두 사뿐하게 잡았다. 킥은 망했다. 공의 모양이 얄궂어서 어디를 차야 할지 난감했다. 회전 없이 쭉 뻗더니 이내 착지. 투포환의 궤도 같았다. 마지막 관문은 컨택. 강하게 어깨를 미는 자세는 생소하고 어려웠다. 지난해 대표 김아가다(21)는 “어깨랑 갈비뼈 나가는 건 기본이에요.”라고 겁을 줬다. ●“능숙도보다 발전가능성 보고 선발” 2시간 30분의 선발전이 끝났다. 결과는 일주일 내 개별적으로 연락해 준단다. 한동호 감독은 “2~3개월간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칠 생각이다. 24명을 추려 합숙훈련을 한 뒤 최종적으로 12명을 뽑겠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메달이 목표”라고 말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분당·김해·강원 51% 辛勝 무얼 시사하나

    분당·김해·강원 51% 辛勝 무얼 시사하나

    4·27 재·보궐선거의 3대 접전지였던 경기 성남시 분당을, 경남 김해을, 강원도의 승자가 공교롭게도 모두 51%의 득표율로 신승(辛勝)했다. 손학규·김태호·최문순 당선자는 저마다 취약 지역에 도전장을 냈기 때문에 완승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지역·이념 지향적 투표 성향이 옅어지고, 단일화를 통한 ‘1대1’ 구도가 잦아지면서 ‘51% 당선’이 한국 선거의 새로운 흐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념·지역성향 줄고 생활문제 이슈화 ‘51% 당선’은 정치권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선 안전한 ‘텃밭’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내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만한 후보를 위해 기꺼이 지지 정당을 바꾸는 ‘스윙 보터’(swing voter)가 많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30~40대 중산층이 다른 정당에 번갈아 가며 투표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맹목적인 구호나 색깔론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변화’를 꼽았다. 부유한 보수층이 밀집한 분당을이 민주당 손학규 후보를 선택한 것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짙은 김해을에서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가 당선된 것을 단순히 ‘심판’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표심 유동성 커져 ‘안전한 텃밭은 없다’ 김 교수는 “실리에 따라 투표하는 중산층의 변화 욕구에 대응하지 못하면 누구든 심판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도 “분당 우파, 강남 좌파라는 말은 정치 분석의 도구일 뿐”이라면서 “유권자는 자신의 경제·사회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높아지는 투표율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하염없이 내려가던 투표율이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반등세로 전환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때 형성된 ‘세대 변수’와 2007년 대선 때의 ‘거주지 변수’가 혼합돼 과거의 ‘지역·출신 변수’를 밀어내고 있다.”면서 “유권자들이 생활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져 진보층이나 보수층 모두 투표에 적극 참여했고, 이 과정에서 박빙의 승부가 연출됐다.”고 분석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51% 당선’의 주역으로 30~40대 직장인을 꼽았다. 윤 실장은 “특정 정당에 대한 관성적인 지지를 거부하는 이들이 2007년 대선에선 한나라당에 승리를 안겨줬고, 지난해 지방선거와 이번 재·보선에선 야당에 힘을 실어줬다.”면서 “이들의 욕구를 충촉시키는 게 정당의 큰 숙제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은 현 정부의 정책 수행능력에 큰 의문을 표시했다.”면서 “표심의 유동성은 갈수록 커지기 때문에 어느 정당이 이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창구·강주리 허백윤기자 window2@seoul.co.kr
  • [씨줄날줄] 타자기/박홍기 논설위원

    ‘일단 전원을 연결하면 탱크의 캐터필러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가 음산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한 줄이 쳐지면 간단한 키의 조작으로 포탑이 움직이듯 ‘철커덕’ 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후우웅…타타타타…철커덕…투타타타…철커덕, 콰광. 그렇게 해서 무수한 문자와 글과 이야기가 생겨나고 사라졌다. 하염없이, 거침없이, 쉼없이’ 소설가 성석제의 책 ‘즐겁게 춤을 추다가’에 나오는 ‘레밍턴 전동타자기’의 한 대목이다. 실용 타자기는 1874년 기관총을 만들던 회사인 레밍턴사가 처음 제작했다. 글쓰기 기계의 효시다. 발명가 크리스토퍼 숄스가 동료들과 함께 개발한 기계식 필기장치를 가지고 레밍턴사를 찾아간 지 2년 만이다. 레밍턴사는 ‘톰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에게 ‘홍보’ 차원에서 타자기로 작품을 쓰도록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1874~1880년에 팔린 타자기는 5000대에 불과했다. 개인을 판매 타깃으로 잡은 탓이다. 당시만 해도 개인적인 서신은 직접 손으로 써야 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던 때다. 이후 기업에 접근한 결과, 1886년까지 6년간 5만대가 팔렸다. 사무실 필수품으로 자리잡는 사무 혁명의 출발이다. 우리나라에 타자기가 소개된 것은 1914년이다. 재미교포인 이원익이 영문타자기에 한글활자를 붙인 한글타자기를 고안했다. 그 이래 몇 가지 한글타자기가 나오긴 했지만 실질적인 한글타자기는 1950년 공병우에 의해 개발됐다. 한글타자기의 시초다.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안과개인병원인 공안과를 개원한 의사다. 이른바 ‘공병우 세벌식타자기’는 한글의 원리를 타자기의 자음·모음·받침의 글쇠로 구현한 것이다. 정부는 1961년 모든 공문서를 타자기로 작성토록 제도화하기에 이르렀다. 한때 작가들 사이에서는 ‘글쓰기 도구가 아닌 서구 신문명의 매개물’로 입에 오르내릴 만큼 널리 사용됐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품 타자기도 1980년 말부터 컴퓨터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100년 영광’을 내주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 타자기 생산은 1996년 중단됐다. 고물상,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타자기를 생산하던 인도 뭄바이의 ‘고드레지 앤드 보이스’라는 회사가 주문이 없어 문을 닫았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그제 보도했다. 최후의 타자기 공장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기술 발달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인데 어쩌랴. 굿바이 타자기!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데스크 시각] 반면교사 삼아야 할 풍도/손원천 문화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반면교사 삼아야 할 풍도/손원천 문화부 부장급

    새삼스러운 얘기 하나 하자. 자연을 아끼자는 것이다. 요즘 얼마나 많은 이들이 환경보호를 위해 애쓰는데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힐난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서해에 풍도(豊島)라는 작은 섬이 있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안산시에 속한다. 승봉도와 대난지도 등 서해의 명승지와 인접한 섬으로, 주변에 수산자원이 풍부해 ‘풍(豊)도’라 불린다. 풍도가 뭍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데는 무엇보다 이른 봄 피어나는 야생화의 공이 크다.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등이 양지바른 언덕에 많이 자란다. 이 섬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식물도 두 종이나 길러냈다. 풍도바람꽃과 풍도대극이다. 풍도가 ‘야생화의 천국’이라 불려 온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그 탓에 섬이 몸살을 앓는 역설도 생겼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양탄자처럼 숲을 뒤덮었던 몇해 전과 달리, 최근엔 야생화 개체수가 확연히 줄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했던 숲 사이로 ‘번듯한’ 오솔길도 생겼다. 한 사람이 걸어 간 흔적을 따라 뒷사람이 걷고, 그러다 보니 길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야생화를 뿌리째 캐 가기도 하고 꽃을 보호하는 낙엽도 흩어 버린다며 아우성이다. 급기야 안산시 측에서 섬을 야생화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꽃과 사람들 사이에 인위적인 장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너나없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가까운 거리에서 자연과 함께할 수 있었을 것을, 이젠 먼 발치에서 바라봐야 할 지경에 이르고 만 셈이다. 올해 초 방문한 충남 태안의 가의도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 섬 역시 야생화 많기로 은근히 입소문이 났다. 취재 중 만난 몇몇 섬 주민들은 신문에 홍보를 잘 해 많은 사람이 찾게 해달라고 하면서도, 섬에 야생화가 많으냐고 물으면 어김없이 “많긴 많은데….”라며 말수를 줄였다.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건 좋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발길에 섬 야생화들이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일들을 꼽자면 부지기수다. 특히 해마다 열리는 꽃축제장에서는 어김없이 볼썽사나운 일들이 빚어진다. 지난해 가을 전북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의 옥정호 구절초 축제장에서 겪었던 일이다.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야트막한 동산에 소나무 군락지가 있고, 그 안에 구절초 꽃밭이 조성돼 있었다. 듣던 대로 휨새 좋은 소나무들과 어우러진 구절초 꽃밭의 자태는 장관이었다. 워낙 입소문을 탄 곳이어서 이른 아침부터 사진작가들이며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찾아 들었다. 그런데 인적 드문 축제장 한편에서 아주머니 몇분이 난간을 넘어 슬며시 꽃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철퍼덕 주저앉아 꽃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리디여린 구절초로서야 그네들이 디딘 만큼 상처를 입을 수밖에. 이번엔 일단의 사진작가들이 꽃밭을 찾았다. 그들 역시 아무렇지 않게 난간을 넘어 성큼성큼 꽃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좀 더 자신이 원하는 구도를 잡기 위해서였을 터다. 도무지 거리낌 없는 행태에 부아가 치밀어 그렇게 마구 꽃밭에 들어가도 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던지고는 사진 찍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 꽃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걸까. 늘 그렇듯 말썽을 빚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하지만 이런 일부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 때문에 자연은 상처받고 신음한다. 한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에 ‘풍도 야생화의 비극’이란 글을 올려 “풍도 야생화 단지에 가면 늘 후회하고 꽃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고백했다. 풍도에 인위적인 장벽이 쳐진다고 상상해 보자. 흠집 내지 않고 꽃의 아름다움을 완상할 자신이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이 의심받는 것 같아 몹시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요즘 자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다. 하지만 여전히 상식이 미치지 않는 곳도 있다. 상처 입은 풍도를 보며 다시 한번 자연을 아끼는 마음을 다져야 할 때다. angler@seoul.co.kr
  • 세계에서 가장 긴 협궤열차, 강풍에 탈선사고

    세계에서 가장 긴 관광용 협궤선에서 강풍에 열차가 밀려 쓰러지면서 탈선사고가 났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서 23일(현지시간) 관광용 협궤 열차 ‘올드 익스프레스 파타고니아’가 철로에서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열차는 파타고니아 지방 나우엘판 열차역을 출발해 산 사이로 놓여 있는 철로를 타고 에스켈 열차역을 향해 신나게 달리다 100km 강풍을 만났다. 줄타기를 하듯 좁은 철로 위를 달리던 열차는 바람에 밀려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사고 당시 열차에 타고 있던 승무원은 “기관차가 기우뚱하더니 쓰러지면서 뒤따르던 객차가 줄줄히 철로를 이탈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열차에는 관광객 150여 명이 타고 있었지만 다행히 큰 부상자는 나지 않았다. 현지 언론은 “관광객 20명 정도가 가벼운 타박상을 입어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지만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고 보도했다. 열차는 ‘트로치타’(좁은 길 또는 협궤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단어)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관광용 협궤 열차로 1945년 개통됐다. 열차가 달리는 궤간은 불과 75cm. ’트로치타’는 이 좁은 궤간을 타고 400km를 달린다. 세계에서 가장 긴 코스를 달리는 명물 협궤 열차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나와 통일] (9) 현정화 前 탁구국가 대표팀 감독

    [나와 통일] (9) 현정화 前 탁구국가 대표팀 감독

    1991년 4월 29일 남북한 7000만명의 시선이 지름 40㎜짜리 흰색 공 하나에 집중됐다.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 ‘코리아’로 출전한 리분희·유순복(이상 북한), 현정화팀의 여성단체전 결승전. 3시간 40분에 걸친 숨막히는 접전 끝에 우승 금메달을 따낸 이 시합은 아직도 탁구사(史)의 명승부로 꼽힌다. 20년이 지난 2011년 그날의 감동과 선수들의 우정을 영화로 제작한다. 영화 ‘코리아’의 시나리오 작업부터 출연배우들의 연기지도까지 애정을 아끼지 않고 있는 현정화 당시 국가대표 선수를 만났다. 그는 금메달을 땄을 때 “아, 우리가 작은 통일을 이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배우 하지원이 본인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하지원씨는 내가 추천했다. 시크릿 가든이 막 끝날 때쯤이었는데, 하지원씨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었고, 주변에서도 “너랑 닮은 것 같다.”고 했다(웃음). 리분희 역할은 배두나씨다. →영화에서 새로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영화에는 연애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북한 남자선수와 남한 여자선수의 애정전선이 형성되지만, 대회가 끝나면서 남북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벌써 20년 전 일인데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까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당시 영상을 다시 봤다. 경기하던 장면, 리분희 선수와 만났을 때와 헤어지던 모습 등을 다시 보니까 가슴이 울컥했다. 불현듯 리분희 선수도 보고 싶고. →리분희 선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 -1993년 국제대회에서 보고 못봤다. 최근에 듣기로는 2010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왔다고 한다. 장애인 스포츠 지도자 활동을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녀가 뇌성마비여서 이쪽으로 더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다. →리분희 선수를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는. -세월이 20년이나 흘렀고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각자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낳았고, 지도자를 했다. 다시 만나면 수많은 얘기를 쏟아놓을 것 같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는지 물어보고 도와주고 싶다. →리분희 선수와 원래 친했나. -1986년 국제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워낙 라이벌이었지만 내가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만날 때 카세트테이프나 한국 드라마 테이프를 건네주곤 했다. 한국이 어떻게 사는지, 가요,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다. 돈은 얼마나 버는지도 궁금해 했다. 당시에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코리아’는 남북 단일팀의 합숙기간 30일, 시합 16일 등 총 46일간의 기록이다. 남북한 선수들은 46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때로는 동료로 때로는 형제, 자매처럼 살가운 시간들을 보냈다. 긴 시간 함께 지내면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여자 선수들은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없었다. 각자 방에 찾아가서 놀고 수다를 많이 떨었다. 이십대 초반의 여자들이다 보니 남자 친구가 공통의 화제가 됐다(웃음). 리분희 선수는 동료선수인 김성희와 사귀고 있는데 결혼할 거라고 했고, 나는 김성만 선수와 결혼할 거라고 했다. 둘만 아는 비밀이었다. 마지막 날에 엄마가 챙겨주신 반지를 줬다. 내 이름이랑 리분희 선수 이름이 쓰여진 한 돈짜리 금반지다. 영화에서는 내가 끼고 있던 반지를 주는 것으로 나온다. →일본에서의 합숙생활은 어땠나. -일본은 매우 미묘한 곳이다. 우리 덕분에 처음으로 민단과 조총련이 만났다고 했다. 우리가 일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합숙을 했는데 지역마다 민단과 조총련이 환영회, 환송회를 열어주었다. 헤어질 때는 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가장 긴장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중국과의 결승전 게임스코어 2대2였다. 경기 전에 유순복 선수한테 가오쥔을 이길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 이젠 졌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유순복 선수가 1세트를 19점으로 이기고 2세트에서도 21대 19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이겼을 때 기분은 어땠나. -이번에 영상을 보니 탁구 테이블 하나에 쏠린 관중석의 눈들이 보이더라. 한꺼번에 환호하고, 이긴 순간 기자들이 확 뛰쳐 나오는 것도 보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땐 너무 많이 울어서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경기하면서 한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그때는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울었나. -내가 경기를 끝냈으면 그렇게 안 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게 있었던 것 같다. 남북한 7000만 동포가 지켜보고 있었고, 기자들이나 단장님, 남북 관계자들이 그런 사실을 많이 주입시켰었다. 특이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냈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시상식 때 아리랑이 나왔는데 기분이 어땠나. -아리랑이 사실은 가락이 매우 슬픈 노래다. 희비가 교차했다. 기쁘다기보다는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끝나면 우리는 헤어질 것이고 단일팀은 연속적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약간 미묘한 감정이 있었다(당시 남북 합의 하에 국기는 흰 바탕에 파란색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 국가는 ‘아리랑’을 연주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하나된 남북이 세계 정상에 섰다.’고 대서 특필을 했다. -그 시합을 계기로 남북한 스포츠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거라고 기대했다. 정말로 ‘아, 통일이 되는구나.’ 했다. 그러나 남북 청소년 축구 단일팀이 단 한번 이뤄진 후 그 다음부터는 교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정치적으로 반짝했던 이벤트였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리분희 선수를 다시 남북한 선수로 만났다. 나는 태극기, 그쪽은 인공기를 달았다. 나는 남북 단일팀 당사자였기 때문에 당시에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느꼈었다. 그런데 다시 적으로 맞붙게 되니까 기분이 미묘했다. 나는 남북 분단을 몸으로 느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런 고통을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인 이벤트를 할 바에야 차라리 단일팀 같은 거 하지 말고 각자 국가를 인정하고 사는 게 낫다는 마음이 굳혀졌다. →아이들한테도 그런 얘기 하나. -우리 딸이 11살인데 이런 얘기는 잘 모른다. 이번에 영화가 나오면 통일에 대한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통일을 잊고 사는 세대 아닌가. 나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세대지만 아이들 세대는 나름의 인생계획이 있고, 그 삶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아 하는 세대다. 누구를 도와주고 끌고 가겠다는 생각이 부족하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건 영화사도 마찬가지다. →영화 제작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1년 전쯤 감독님한테 영화 얘기를 들었다.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감사했다. 전쟁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아픔을 주는 것이고 문화적인 소재는 간접적이지만 더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고, 남북 선수로 나오는 20명에게 매일 3시간씩 탁구를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도 탁구 장면을 찍을 때 디테일한 기술적인 면 등 모든 것들을 가르쳐 줄 예정이다. →통일이 되기를 바라나. -나는 사실 반반이다. 원하는 것도 있고 그냥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준비를 해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빠져서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도와줘야 한다. 정말로 손을 떼어버리는 상태까지 가면 안 되지 않나. →통일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스포츠만큼 (남북 간)물꼬를 트기에 좋은 게 없다. 정치적 배경 없이 순수하게 교류하고, 남북을 오가면서 시합을 하다 보면 종목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지 않겠나. 스포츠도 이제는 마케팅이다. 관심 있는 기업도 생기고,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길도 생긴다. 북한 친구들은 실력은 있는데 돈이 없어 대회에 못 나온다. 차비가 없어 스무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중국 대회밖에 못 나가고 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돕겠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6) ‘붉은 책’ 카를 구스타프 융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6) ‘붉은 책’ 카를 구스타프 융

    “이봐요 의사 양반, 어서 저기, 태양을 좀 봐요. 태양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요? 당신도 나처럼 머리를 움직여요. 이렇게. 보이나요? 태양의 남근(pallus)이. 그게 바람의 근원이랍니다. 이렇게 머리를 움직이면 태양의 남근도 움직이고, 그럼 바람이 만들어지는 거지요.” 정신병 환자 에밀 슈비처는 정신없이 바쁜 젊은 의사를 붙잡고 자신의 환상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 의사는 어느새 이야기에 매혹되어 함께 태양을 바라보았다. ●무의식, 인간 안의 자연 4년 뒤, 그 젊은 의사 융은 이 황당한 환상을 독일 역사학자의 고대 미트라교 연구서에서 만난다. 이게 도대체 뭔 일? 가난한 집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한 슈비처가 미트라교를 알 리 없었다. 게다가 이 책은 슈비처가 환상을 이야기한 지 4년 뒤에 출판된 것이 아니던가. 시간을 가로질러 반복되는 이야기들. 융은 이것이 인간 정신의 공통 구조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916년, 중년이 된 융은 ‘무의식의 구조’에서 이런 구조를 ‘집단 무의식’이라고 불렀다. 모든 종(種)은 자신의 생명을 실현시킬 적합한 방식을 찾아 진화했다. 신체가 그런 진화의 산물이듯, 정신 역시 그렇다. 생명의 힘을 실현한 역사의 표현으로서의 정신. 경험에 앞서, 경험을 산출하는 조건. 삶의 지혜를 담은 온갖 민담과 신화, 종교적 이야기의 생산 공장. 정신은 인간 속의 자연이었고, 삶을 위한 창조적 힘을 담고 있었다. 이것이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이다. 이런 무의식은 우리의 의식과 의지에 앞서 존재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을 불쾌하게 느낀다. 하지만 불쾌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융은 말한다. 양배추가 똥거름에서 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똥거름 냄새가 좀 불쾌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악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융에게 무의식은 그런 똥거름, 선악의 저편에 있는 자연이었다. 성적인 것만으로 환원되기에는 너무도 풍부한 자연! ●프로이트와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 집단 무의식의 발견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1875년 스위스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융은 익살과 민담을 들려주던 가난한 농부들과 책들로 빼곡하게 들어찬 아버지의 서재를 오가며 자랐다. 융은 학문의 길을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이 타협점으로 바젤 의과대학을 선택한다. 1900년 공부를 마친 융은 취리히 주 정신의학 대학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한다. 융은 그곳에서 정신의 병이 무의식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았다. 치유의 단서는 무의식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단서에 이를 것인가. 이때 그에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계시처럼 찾아왔다. 융은 거기서 두 개의 길을 발견한다. 하나는 무의식에 이르는 길로서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로서 자신을 인도해줄 ‘프로이트’라는 길. 1906년 자신의 이러한 마음을 담아 융은 프로이트에게 편지를 보낸다. 당시 학계에서 찬밥신세였던 프로이트는 주목을 받기 시작한 젊은 의사의 지지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어진 7년간의 우정. 그 우정은 1913년, 완전한 자유를 가져가라는 프로이트의 편지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융의 답장으로 막을 내린다. 프로이트가 말한 ‘완전한 자유’란 사상적 자유를 말한다. 융은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성격을 오로지 성(性)으로 환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융이 일하고 있는 병원은 국립병원으로, 당시 그곳은 에밀 슈비처처럼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이 찾던 곳이었다. 그런 환자들의 병은 성에 의한 도덕적 갈등보다는,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양한 문제들 때문에 발생했다. 더욱이 어릴 때 듣던 농부들의 이야기는 어떠했는가. 그 이야기들은 성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 속에 사용된 성적 은유는 말 그대로 은유일 뿐, 삶의 다양한 힘들을 표현할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융은 이런 생각을 담아 1912년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을 출간한다. 그렇게 융은 프로이트를 떠나 자신의 길로 들어선다. 프로이트와의 이별 전까지, 융의 삶은 프로이트에게 경도되어 있었다. 이런 삶을 무의식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정신의 자가 조정 체계로서 무의식이 극단적으로 치우친 의식을 바로 잡기 위해 밀려왔다. 이렇게 시작된 무의식의 반란은 프로이트와의 결별 후 더욱 심해졌다. 길을 잃은 의식으로 기괴한 꿈과 환상들이 마구 밀려왔다. 내 안에 있는 낯선 것들, 그 타자들. 여기서 정신줄을 놓으면 심각한 환자 신세가 될 판이었다. 이제 그에게 선택은 하나.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는 것! 치유의 첫 단계는 내 안의 타자들을 긍정하는 것이었다. 무의식이 표현하는 타자들은 그 자체로 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의 자연일 뿐, 병은 오히려 의식이 그것을 대면하지 않고 도망가는 데서 왔다. 융은 그 타자들을 긍정하고 무의식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노트에 적어 내려갔다. 그것은 일종의 받아쓰기 작업이었다. 중구난방으로 펼쳐졌던 환상들이 언어 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럴수록 융은 점점 안정되어갔다. 이렇게 여섯 번째 노트를 완성할 즈음, 융은 받아쓰기를 멈췄다. 거기에는 오직 타자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자신이 그간 프로이트의 이름만으로 살아왔듯, 그곳에도 자신의 목소리는 없었다. 융은 타자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받아쓰기에서 번역하기로! 현실 속의 삶,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내야 할 삶. 그 삶의 문법으로 타자들의 이야기를 융합하기. 융은 새로운 노트에 그 융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융은 1913년부터 4년간 이런 글쓰기를 계속했다. 그의 노트를 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융은 그 자신이 걸어 다니는 정신병원이자 그 병원을 책임진 의사였다.” 융에게 글쓰기는 치유였다. 이것은 훗날 그의 치유 방법 중 한 가지로 이용된다. 융은 환자들에게 자신의 꿈과 병을 스스로 관찰하고 기록하도록 요구했다. 환자들은 융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 글쓰기를 통해 자신 안의 자연을 만나고 통합하는 법을 배웠다.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시오! 이제 제법 희끗한 머리를 가진 의사 융. 그를 만나고 나온 환자. 투덜거린다. “뭐 저런 의사가 다 있어. 진단도 안 내리고, 딱히 처방도 안하고, 그렇다고 안쓰럽다고 위로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상담을 마친 환자들은 뚱하고 불친절한 융에 대해 한번쯤은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다시 융을 찾았다. 그들은 느꼈다. 의사가 일방적으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법을 하사할 때 얻을 수 없던 것을. 그것은 환자가 의사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며, 자신이 능동적으로 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융의 진료실은 여느 진료실과 달랐다. 그곳에는 반쯤 누운 상태에서 의사의 이야기를 편안히 받아들이도록 고안된 환자용 의자도, 그 뒤에서 환자를 은밀히 관찰하는 의사용 의자도 없었다. 대신 의사와 환자가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뿐. 그 의자에 앉아 융은 그저 물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죠?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융은 의사로서 말하는 대신 환자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주었다. 그러고 나면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병의 문제부터 치유 단서까지 찾아내는 것이었다. 병의 심판자로서, 치유의 구원자로서 의사라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융은 알았다. 융의 성격이 원래 좀 퉁명스러웠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융은 굳이 직업적 친절함으로 그것을 가리지 않았다. 그것은 의사에게 쉽게 의존하는 환자의 성향을 막고, 환자를 독립적인 대화상대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의사와 환자는 병이 던져준 수수께끼를 함께 푸는 놀이의 참가자였다. 거기서 길을 만드는 것은 환자의 몫이었고 의사는 조력자일 뿐이다. 오늘날 너무도 병원에 의존해 사는 현대인을 보면 융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긴 안목으로 보아도 유효한 치료란 없습니다. 삶은 언제나 다시금 새롭게 획득되어야 하는 법이지요. 병을 만든 것도, 그 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도, 그리고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십시오! 신근영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현정화 “1991년 세계탁구 金 따고 작은 통일 느껴”

    현정화 “1991년 세계탁구 金 따고 작은 통일 느껴”

    1991년 4월 29일 남북한 7000만명의 시선이 지름 40㎜짜리 흰색 공 하나에 집중됐다. 일본 치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 ‘코리아’로 출전한 리분희·유순복(이상 북한), 현정화팀의 여성단체전 결승전. 3시간40분에 걸친 숨막히는 접전 끝에 우승 금메달을 따낸 이 시합은 아직도 탁구사(史)의 명승부로 꼽힌다. 20년이 지난 2011년 그날의 감동과 선수들의 우정을 영화로 제작한다. 영화 ‘코리아’의 시나리오 작업부터 출연배우들의 연기지도까지 애정을 아끼지 않고 있는 현정화 당시 국가대표를 만났다. 그는 금메달을 땄을 때 “아, 우리가 작은 통일을 이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배우 하지원이 본인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하지원씨는 내가 추천했다. 시크릿 가든이 막 끝날 때쯤이었는데, 하지원씨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었고, 주변에서도 “너랑 닮은 것 같다.”고 했다.(웃음) 리분희 역할은 배두나씨다.   이번 영화에서 새로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영화에는 연애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북한 남자선수와 남한 여자선수가 애정전선이 형성되지만, 대회가 끝나면서 남북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벌써 20년전 일인데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까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당시 영상을 다시 보게 됐다. 경기하던 장면, 리분희 선수와 만났을 때, 헤어지던 모습 등을 다시 보니까 가슴이 울컥했다. 불현듯 리분희 선수도 보고싶고.   리분희 선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 -1993년 국제대회에서 보고 못봤다. 최근에 듣기로는 2010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왔다고 한다. 장애인 스포츠 지도자 활동을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녀가 뇌성마비여서 이쪽으로 더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다.   리분희 선수를 만나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가? -세월이 20년이나 흘렀고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각자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낳았고, 지도자를 했다. 다시 만나면 수많은 얘기를 쏟아놓을 것 같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는지 물어보고 도와주고 싶다.   리분희 선수와 원래 친했나? -1986년 국제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워낙 라이벌이었지만 내가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만날 때 카세트 테이프나 한국 드라마 테이프를 건네주곤 했다. 한국이 어떻게 사는지, 가요,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다. 돈은 얼마나 버는지도 궁금해 했다. 당시에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코리아’는 남북 단일팀의 합숙기간 30일, 시합 16일 등 총 46일간의 기록이다. 남북한 선수들은 46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때로는 동료로 때로는 형제, 자매처럼 살가운 시간들을 보냈다. 긴 시간 함께 지내면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여자 선수들은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없었다. 각자 방에 찾아가서 놀고 수다를 많이 떨었다. 이십대 초반의 여자들이다보니 남자 친구가 공통의 화제가 됐다.(웃음) 리분희 선수는 동료선수인 김성희와 사귀고 있는데 결혼할 거라고 했고, 나는 김성만 선수와 결혼할거라고 했다. 둘 만 아는 비밀이었다. 마지막 날에 엄마가 챙겨주신 반지를 줬다. 내 이름이랑 리분희 선수 이름이 쓰여진 한 돈 짜리 금반지다. 영화에서는 내가 끼고 있던 반지를 주는 것으로 나온다.   일본에서 합숙생활은 어땠나? -일본이 매우 미묘한 곳이다. 우리 덕분에 처음으로 민단과 조총련이 만났다고 한다. 우리가 일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합숙을 했는데 지역마다 민단과 조총련이 환영회, 환송회를 열어주었다. 헤어질 때는 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학생들이 한반도기 모양의 수를 놓아서 가져오거나 한반도 모양의 떡을 만들어 가져오면 잘라서 먹고 웃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1991년 2월 12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분단 후 46년만에 처음이었다.   당시 탁구 단일팀이 어떻게 구성됐나? -어떻게 구성하게 됐는지 그 배경은 모른다. 통일부에서 주선해서 급하게 진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스포츠 교류를 통해 물꼬를 트려고 했던 것 같다.   가장 긴장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중국과의 결승전 게임스코어 2대2였다. 마지막 게임에서 유순복 선수가 가오준 선수를 이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경기 전에 유순복 선수한테 가오준을 이길 자신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 이젠 졌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유순복 선수가 1세트를 19점으로 이기고 2세트에서도 21대 19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이겼을 때 기분은 어땠나? -이번에 영상을 보니 탁구 테이블 하나에 쏠린 관중석의 눈들이 보이더라. 한꺼번에 환호하고, 이긴 순간 기자들이 확 뛰쳐 나오는 것도 보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 땐 너무 많이 울어서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경기하면서 한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그 때는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울었나? -내가 경기를 끝냈으면 그렇게 안 운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게 있었던 것 같다. 남북한 7000만 동포가 지켜보고 있었고, 기자들이나 단장님, 남북 관계자들이 그런 사실을 많이 주입시켰었다. 특이한 상황이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해냈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시상식 때 아리랑이 나왔는데 기분이 어땠나? -아리랑이 사실은 가락이 매우 슬픈 노래다. 희비가 교차했다. 기쁘다기 보다는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끝나면 우리는 헤어질 것이고 단일팀은 연속적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약간 미묘한 감정이 있었다. (당시 남북 합의 하에 국기는 흰 바탕에 파란색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 국가는 ‘아리랑’을 연주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하나된 남북이 세계 정상에 섰다.’고 대서 특필을 했다. -그 시합을 계기로 남북한 스포츠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거라고 기대했다. 정말로 “아, 통일이 되는구나.” 했다. 그러나 남북 청소년 축구 단일팀이 단 한번 이뤄진 후 그 다음 부터는 교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정치적으로 반짝했던 이벤트였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리분희 선수를 다시 남북간 선수로 만났다. 나는 태극기, 그쪽은 인공기를 달았다. 나는 남북 단일팀 했던 당사자였기 때문에 당시에 우리가 하나라는것을 느꼈었다. 그런데 다시 적으로 맞붙게 되니까 기분이 미묘했다. 나는 남북 분단을 몸으로 느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런 고통을 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인 이벤트를 할 바에야 차라리 단일팀 같은 거 하지 말고 각자 국가를 인정하고 사는 게 낫다고 마음이 굳혀졌다.   아이들한테도 그런얘기 하나? -우리 딸이 11살인데 이런 얘기는 잘 모른다. 이번에 영화가 나오면 통일에 대한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통일을 잊고 사는 세대 아닌가. 나는 통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한 세대지만 아이들 세대는 나름의 인생계획이 있고, 그 삶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아 하는 세대다. 누구를 도와주고 끌고가겠다는 생각이 부족하다. 그런 생각을 가르쳐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건 영화사도 마찬가지다.   영화 제작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1년전쯤 감독님한테 영화 얘기를 들었다.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감사했다. 전쟁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아픔을 주는 것이고 문화적인 소재는 간접적이지만 더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고, 남북한 선수로 나오는 20명에게 매일 3시간씩 탁구를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도 탁구 장면을 찍을 때 디테일한 기술적인 것 모든 것들을 가르쳐 줄 예정이다. 하지원씨가 운동신경이 좋아서 자세도 좋고 잘 따라온다. 당시 촌스러웠던 내 커트머리를 그대로 했다.(웃음)   통일이 되기를 바라나? -나는 사실 반반이다. 원하는 것도 있고 그냥 ‘안했음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준비를 해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빠져서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도와줘야 한다. 정말로 손을 떼어버리는 상태까지 가면 안되지 않나.   스포츠인으로서 통일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스포츠만큼 (남북간)물꼬를 트기에 좋은 게 없다. 정치적 배경없이 순수하게 교류하고, 남북을 오가면서 시합을 하다보면 종목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지 않겠나. 스포츠도 이제는 마케팅이다. 관심있는 기업도 생기고,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길도 생긴다. 북한 친구들은 실력은 있는데 돈이 없어 대회에 못나온다. 차비가 없어 스무시간 넘게 차를 타고 중국 대회 밖에 못나가고 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돕겠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프로농구] 이겨도 져도 웃는 ‘절친 許·姜’

    [프로농구] 이겨도 져도 웃는 ‘절친 許·姜’

    허재(왼쪽) KCC 감독과 강동희(오른쪽) 동부 감독은 “우리 둘이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나면 정말 좋겠다. 꼭 결승에 오르자.”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상상만 해도 흐뭇한 그림이었다. 중앙대·기아자동차를 거치며 13년간 한솥밥을 먹었고, 코트 안팎에서 친형제처럼 자랐던 둘이 프로농구 챔피언을 다투는 모습은 선수 시절부터 그려온 오랜 로망이었다. 그러나 막상 결승에 올라 ‘장군 멍군’을 부르는 상황이 되자 생각처럼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고. 이기면 좋으면서도 미안하고, 지면 속상하면서도 내심 상대가 대견하다. 챔프전에 오른 둘은 ‘잠시만 안녕’을 외쳤었다. 2년 전 강 감독이 동부 사령탑에 오른 뒤 항상 경기 전날 식사를 같이하던 두 감독이 챔프전 때 ‘절연’을 선언한 것. 경기에 집중하고 서로를 배려하자는 이유였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전주에서도, 원주에서도 둘은 만났다. 승부도 갈라놓을 수 없는 각별한 우정이었다. 지난 20일 챔피언결정 3차전에서 동부가 이기면서 ‘동생’ 강 감독이 먼저 2승(1패)을 챙겼다. 강 감독은 통화하기가 머쓱해 허 감독에게 위로문자를 보냈다. 득달같이 허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야, 계집애처럼 무슨 문자냐. 잘했어. 고생했어. 다음 경기에서 두고 보자.” 왠지 미안하고 조마조마하던 동생 강 감독의 마음은 한순간에 누그러졌다. 둘이 워낙 돈독하다 보니 벤치풍경도 확 바뀌었다. 휘슬 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무대지만, 심판판정에 대한 항의는 없다. 허 감독은 얼굴만 빨개지고, 강 감독은 손수건을 꺼내 땀만 닦는다. 참 밋밋하다.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외국인 선수들만 야속한 눈길로 ‘우리 감독님이 변했어요.’를 외칠 뿐이다. 강 감독은 “형하고 얘기해서 딱 2번씩만 항의하든가 해야지, 원. 그런데 보기 좋지 않아요?”라며 웃었다. 서로를 각별히 생각한다지만 승부에는 양보가 없다. 특히 ‘도전자’ 입장인 강 감독의 눈빛은 뜨겁다. “허재형은 대한민국 농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선수다. 그런데 감독으로는 내가 꼭 이겨보고 싶다. 이번 아니면 기회가 또 있을까.”라고 욕심을 내비쳤다. 물론 “우리가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진심으로 박수 쳐 줄 수 있다.”고 덧붙였지만. 둘의 비밀협약(?)도 공개했다. 국가대표팀에서 한 배를 타자는 약속이다. 챔피언팀 감독이 5월 소집되는 국가대표팀을 맡아야 하는데, 지는 감독이 대표팀 코치를 맡자는 얘기다. 강 감독이 ‘형’ 허 감독을 코치로 부릴 순 없겠지만 그만큼 뜻이 통했다. 강 감독은 “허재와 강동희가 ‘장군 멍군’ 외치면서 명승부 펼치는 게 재밌지 않나?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승컵을 향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정은 깊어진다. 원주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모욕죄 소송’에 떨고 있는 수험생들

    ‘모욕죄 소송’에 떨고 있는 수험생들

    최근 다음 카페 ‘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들’(http://cafe.daum.net/9glade) 등 공무원 시험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모욕죄 공포’가 퍼지고 있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의 유명 강사 김모씨가 인터넷에 자신을 비방하는 게시물과 댓글을 쓴 네티즌을 무더기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피고인 대부분이 악성 댓글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합의금을 노린 변호사의 과잉 영업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변호사 “게시물·댓글 모욕죄 해당” 김씨는 “이 계열에서 유명하다 보니 경쟁 학원 또는 강사들이 사람을 고용해 나를 음해하는 글을 쓰는 일이 많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면서 “다른 일로 알게 된 최 변호사에게 소송을 부탁했다.”고 설명했다. 소송은 수험생 사이에서 잘 알려진 책의 저자이기도 한 최모 변호사가 맡았다. 최 변호사는 김씨 대리인 자격으로 2006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인터넷 카페 등에서 김씨에 대한 비난 글을 쓴 네티즌 63명을 모욕죄와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이 가운데 9명은 신원 불명으로, 4명은 합의를 봐 고소를 취하했다. 20일 현재 50명의 네티즌이 경찰 조사를 받았거나 받을 예정이다. 최 변호사는 “돈OO(이름) 발로 쓴 OOO(수험서) 오타는 의도된 것” “수강생년 따먹고 수업시간에 뺨 처맞은 ×× 아니냐?” “여러 가지로 본다면 김 강사 인간성은 ×××임” 등의 게시물과 댓글 등은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는 “수험생들이 가장 많은 정보를 나누는 곳이 인터넷 수험 카페이기 때문에 이 공간을 활용한 근거 없는 비방은 강사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서 “피고소인들이 쓴 글은 모두 정당한 비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신문과 연락이 닿은 수험생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2009년 3월 수험생 카페에 “돈OO, 괜히 돈OO가 아닙니다.”라는 한 줄의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피소된 수험생 고모(35)씨는 “심각한 욕설을 쓰지도 않았고, 그 강사가 쓴 책 초판에 오·탈자가 많았는데 개정판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여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도 변호사는 ‘합의를 보지 않으면 별도의 민사소송도 제기할 것이며 더 큰 액수의 위자료를 물게 될 것’이라면서 합의금으로 300만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형법 311조에 따르면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이 밖에 “강의력으로 김 강사를 칭찬하는 글이 있다는 것에서 참…대단합니다.”, “정 강사 강의도 들어보고 김 강사 강의도 들어 봤는데 김 강사의 강의가 좋긴 하지만, 인격적인 면에서 비난의 글들이 많더군요.”, “암튼 김 강사는 넘 싫어요~!” 등의 댓글과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히면서 김 강사의 수업을 평가한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 등도 모욕죄 혐의로 고소당했다. ●“변호사의 지나친 영업 조사해야” 이와 관련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류제성 변호사는 “개인의 인격적인 가치를 명백히 저해한 표현이라면 벌을 받아야겠지만, 강의와 강사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교환은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집단 소송은 수험생을 상대로 한 변호사의 지나친 영업으로 보인다.”며 “변호사협회 차원의 조사가 필요한, 변호사 윤리에 관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최 변호사는 “김 강사의 의뢰로 착수금 없이 합의금만 받는 조건으로 소송을 시작했기 때문에 고소장 작성비용 140여만원 외에도 추가 경비를 자비로 충당해 합의금만 받는 것”이라면서 “63명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형사 합의가 될 사람의 3분의1 또는 그 미만이 될 것으로 보이며 합의금도 100만~150만원 사이”라고 해명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수험가에 때아닌 모욕죄 소송 공포

     최근 다음 카페 ‘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들’(http://cafe.daum.net/9glade) 등 공무원 시험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모욕죄 공포’가 퍼지고 있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의 유명 강사 김모씨가 인터넷에 자신을 비방하는 게시물과 댓글을 쓴 네티즌을 무더기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피고인 대부분이 악성 댓글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합의금을 노린 변호사의 과잉 영업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김씨는 “이 계열에서 유명하다 보니 경쟁 학원 또는 강사들이 사람을 고용해 나를 음해하는 글을 쓰는 일이 많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면서 “때마침 수임료 없이 무료로 소송을 맡아주겠다는 변호사를 소개받아 고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송은 수험생 사이에서 잘 알려진 책의 저자이기도 한 최모 변호사가 맡았다. 최 변호사는 김씨 대리인 자격으로 2006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인터넷 카페 등에서 김씨에 대한 비난 글을 쓴 네티즌 63명을 모욕죄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이 가운데 9명은 신원 불명으로, 4명은 합의를 봐 고소를 취하했다. 20일 현재 50명의 네티즌이 경찰 조사를 받았거나 받을 예정이다.  최 변호사는 “돈OO(이름) 발로 쓴 OOO(수험서) 오타는 의도된 것” “수강생 건드렸다가 수업시간에 뺨 처맞은 ×× 아니냐?” “여러 가지로 본다면 김 강사 인간성은 ×××임” 등의 게시물과 댓글 등은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는 “수험생들이 가장 많은 정보를 나누는 곳이 인터넷 수험 카페이기 때문에 이 공간을 활용한 근거 없는 비방은 강사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서 “피고소인들이 쓴 글은 모두 정당한 비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신문과 연락이 닿은 수험생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2009년 3월 수험생 카페에 “돈OO, 괜히 돈OO가 아닙니다.”라는 한 줄의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피소된 수험생 고모(35)씨는 “심각한 욕설을 쓰지도 않았고, 그 강사가 쓴 책 초판에 오·탈자가 많았는데 개정판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여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변호사는 합의금으로 300만원을 요구했고, ‘합의를 보지 않으면 별도의 민사소송도 제기할 것이며 더 큰 액수의 위자료를 물게 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형법 311조에 따르면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이 밖에 “강의력으로 김 강사를 칭찬하는 글이 있다는 것에서 참...대단합니다.” “이론강의를 정 강사 강의도 들어보고 김 강사 강의도 들어봤는데 김 강사의 강의가 좋긴 하지만, 인격적인 면에서 비난의 글들이 많더군요.” “암튼 김 강사는 넘 싫어요~!” 등의 댓글과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히면서 김 강사의 수업을 평가한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 등도 모욕죄 혐의로 고소당했다.  이와 관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류제성 변호사는 “개인의 인격적인 가치를 명백히 저해한 표현이라면 벌을 받아야겠지만, 강의와 강사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교환은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집단 소송은 수험생을 상대로 한 변호사의 지나친 영업으로 보인다.”며 “변호사협회 차원의 조사가 필요한, 변호사 윤리에 관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서울, 경기, 부산 등 각 지역의 경찰 사이버수사팀 수사관들도 “고소장이 접수돼 조사는 하고 있지만, 모욕죄는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수사관은 “변호사는 넘쳐나는데 일이 없다 보니 무작위로 소송을 남발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에게 판단이 애매한 모욕죄로 소송을 걸면 수험생은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여의도 블로그] 천덕꾸러기 된 黨

    성남 분당을에 출마해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핵심 전략은 ‘당색(黨色) 지우기’다. 기호 2번을 알리는 어깨띠를 풀어 놓고 유세를 하는가 하면 선거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에서 ‘민주당’이란 세 글자를 찾기도 힘들다. 보수적인 중산층이 밀집한 지역 특성상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민주당’보다는 서울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경기지사 출신 ‘손학규’가 표를 끌어오는 데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런 손 후보를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은 “민주당이 그렇게 부끄럽냐.”며 맹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후보들도 당을 무시하긴 마찬가지다. 김해을에 출마한 김태호 후보는 당 대표를 선거 현장이 아닌 창원으로 불러 김해 발전 방안을 발표하게 했다. 분당을의 강재섭 후보는 “한나라당은 나른한 봄날에 배를 드러내 놓고 누워 있는 공룡”이라고 비난했다. 대학 졸업 후 줄곧 두 정당에서 활동해온 실무 당직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민주당의 당직자는 “당 대표가 당을 앞세우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했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당을 누가 망쳤는데, 이제 와서 게으른 공룡이라고 하는가.”라고 말했다. 4·27 재·보선 결과를 예측하다 문뜩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선거의 최대 패배자는 ‘정당’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말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요체는 대의 민주주의이고, 대의 민주주의의 꽃은 정당인데 정당이 이처럼 천덕꾸러기가 된 적이 있었을까.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가장 유용한 방식이 대중선거이고, 대중선거를 이끄는 주체가 정당인데 공천받은 후보자가 당을 부끄러워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정당의 위기는 정당이 자초했다. 당은 유권자들에게 ‘저 당을 지지하면 나의 정치적 신념과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 ‘국가 권력을 맡겨도 되겠다.’는 신뢰감도 세우지 못했다. 승리한 후보의 환희 뒤에서 더 움츠러들 정당의 그림자가 벌써부터 애처롭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일본통신] 김병현 ‘마무리 보직’ 가능성 있을까?

    [일본통신] 김병현 ‘마무리 보직’ 가능성 있을까?

    김병현(32.라쿠텐)은 개막전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지난 7일 연습도중 발목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부상이 완쾌되려면 최소 4-6주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는데 현재는 불펜피칭을 할 만큼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 16일 김병현은 70개의 불펜 피칭을 소화했다. 김병현은 1군에 올라오기에 앞서 이달 말 2군(이스턴리그)경기에 등판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전에 앞선 테스트 성격이 짙다. 하지만 김병현이 부상에서 벗어나 1군에 올라오더라도 당분간 마무리 보직을 맡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듯 싶다. 일본야구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은 논외로 치더라도 라쿠텐의 선수구성을 감안할때 그렇다는 뜻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라쿠텐의 전력은 지난해와 비교해 굉장히 탄탄해진 느낌이다. 타선은 신구조화가 돋보이고, 마운드는 기존의 선발 3인방(이와쿠마-타나카-나가이)에 더해 외국인 마무리 투수 라이언 스파이어(32)가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스파이어는 3경기에 등판해 벌써 2세이브를 챙겼다. 아직까지(2.2이닝) 피안타를 한개도 허용하지 않았는데 빠른 공보다는 제구력이 수준급이었다. 비록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팀이 1위(4승 2패)를 달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투타밸런스가 맞물려 가고 있서서다. 그렇다면, 김병현이 부상에서 회복돼 1군에 복귀하면 마무리 보직을 맡을수 있을까. 스파이어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언제까지 보여줄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들듯 싶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김병현을 영입할때 당장 마무리 역할을 기대한게 아니다. 시범경기와 연습경기에서 김병현을 등판시킨 것은 체계적인 훈련을 통한 실전감각을 깨우기 위함이다. 국내 언론에서는 김병현이 당장에라도 마무리 보직을 맡을 것처럼 예상했지만 라쿠텐은 외부적으로 검증된 마무리 투수감을 찾는데 치중했다. 그 투수들이 지금의 스파이어, 그리고 앞으로 선보이게 될 또다른 외국인 투수인 로무로 산체스(26)다. 로무로는 최고 159km의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로 올 시즌 뉴욕 양키스의 40인 로스터에 제외돼 라쿠텐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산체스가 호시노 감독의 기대대로만 활약해준다면 라쿠텐의 마무리 운영은 ‘더블 스토퍼’ 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김병현의 보직은 마무리가 아닌 필승불펜 요원이 된다. 여기에는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라쿠텐의 불펜은 선발 3인방과 같은 ‘쓰리마운텐즈’가 있었다. 코야마 신이치로-아오야마 코지-카타야마 히로시, 즉 이 3명의 ‘야마(山)’들은 허약한 팀 전력임에도 그나마 라쿠텐이 자랑하는 필승투수들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쓰리마운텐즈’가 해체됐다. 아오야마는 불펜에서 선발 투수로 보직을 바꿨고, 이미 지난 14일 경기(지바 롯데전)에 선발로 등판해 5.2이닝을 소화하며 합격점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이날 아오야마다음에 올라온 카타야마가 무너지며 패전투수가 됐는데 전체적으로 불펜진들의 활약이 지난해만 못하다. 한때 마무리 보직을 놓고 경쟁 중이었던 신인 미마 마나부도 아직은 믿음을 주기엔 역부족이다. 미마는 아오야마를 대신해 불펜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역시 프로 경험의 미숙함을 드러내며 오릭스와의 경기(17일)에서 패전투수(1이닝 3실점)가 됐다. 이것은 곧 라쿠텐의 불펜문제가 시급해 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미 기대만큼의 활약을 해주고 있는 마무리 투수 스파이어, 그리고 산체스까지 가세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김병현이 마무리를 맡는다는건 어불성설이다. 가장 믿음직스러웠지만 지금은 가장 불안한 곳이 된 라쿠텐의 불펜을 감안할때 김병현이 정상적인 몸상태로 복귀 한다면 그의 보직은 불펜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라쿠텐이 6경기를 치른 현재(17일 기준) 기록한 2번의 패배가 모두 불펜진(카타야마,미마)의 난조때문이라는 사실은 김병현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해준 결과다. 물론 마무리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산체스가 부진할시 그를 불펜으로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하지만 마무리에서 불안한 투수를 불펜으로 돌린다고 해서 당장에 효과가 나타날만큼 일본야구가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김병현으로서는 불펜에서 시작해 실전경험을 쌓은 후 본인 말대로 자신이 원하는 수준만큼의 구위가 회복된다면 그때 다시 마무리 보직을 노려도 늦지 않다. 김병현은 근시안적인 시각을 지닌 투수가 아니다. 야구에 대한 고집만큼이나 ‘완벽주의’ 성격답게 더 멀리 내다보며 자신의 구위 찾기를 우선시 할게 틀림없다. 복귀 후 불펜에서 시작하더라도 전혀 문제시 될게 없다는 뜻이다. 올해 일본야구, 그중에서 퍼시픽리그는 팀간 전력차이가 거의 없다. 초반에 뒤쳐지는 팀은 나중에 회복하더라도 그만큼 상위팀과의 격차를 좁히기가 힘들다. 비록 시즌 초반 라쿠텐이 1위를 달리고는 있지만 이미 불펜에 대한 걱정이 시작된 이상 김병현 역시 팀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가 됐다. 그것은 마무리 보직과는 상관없는 김병현 자신에게도 중요한 부분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관광객 1000만달성 릴레이 제언(2)] “한국, 어디까지 가 봤니?” 말할 수 있어야/최영수 롯데면세점 대표이사

    [관광객 1000만달성 릴레이 제언(2)] “한국, 어디까지 가 봤니?” 말할 수 있어야/최영수 롯데면세점 대표이사

    로마를 지금의 세계적인 여행지로 만든 일등공신은 영화 ‘로마의 휴일’이다. 특히, 등진 채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를 찾게 된다는 ‘트레비 분수’와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 안에 손을 집어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진실의 입’, 오드리 헵번이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자유를 흠뻑 만끽했던 ‘스페인 광장’은 단숨에 로마 최고의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들이 몰리는 탓이다. 순전히 ‘이야기의 힘’만으로 전 세계 관광객을 유인하는 사례들은 이외에도 많다. 높은 명성과는 달리 실제 가보면 보잘것없는 모습에 실망한다고 해서 ‘유럽 3대 썰렁 명소’로도 불리는 벨기에의 ‘오줌 누는 소년상’과 덴마크의 ‘인어공주상’,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기 소르망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세계에 내세울 만한 한국적 이미지의 문화 상품이 없는 ‘문화의 위기’ 상황이 한국이 당면한 가장 큰 위기”라고 진단한 바 있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계인에게 ‘한국’ 하면 연상되는 매력적인 문화 아이템을 가지고 있지 못한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에 2000년대부터 해외 여행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급기야 올해는 외래 관광객 수가 1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겨울연가’와 ‘대장금’이라는 두 편의 탁월한 드라마가 불씨가 돼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한류 열풍’ 덕이다. 한류 스타와의 팬 미팅이 결합한 여행 프로그램에 매회 수백명의 외국인이 몰리고, 한류 드라마의 촬영지가 한류 팬의 여행 성지로 부상한 지 오래다. 한류가 식었다고 폄하하기는 아직 이르다. 선배들이 일군 한류의 열기가 식지 않고 제2의 한류로 도약하려면 우리 스스로 한류 열풍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변화에 맞게 관광 문화상품으로 확대 재생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한류의 불꽃을 피워 한국 방문 러시로 이끌어 낸다면 1000만명 외래 관광객 목표가 올해 안에 조기 달성되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이야기가 살아 있는 새로운 한류 관광 콘텐츠를 개발한다는 목표 아래 롯데면세점은 지난 2009년 잠실 롯데월드와 소공동 롯데타운 내에 ‘스타에비뉴’란 복합한류체험공간을 오픈했다. ‘스타에비뉴 롯데월드’는 한류 스타들을 활용한 다양한 멀티미디어 체험거리를 제공하는데, 1만원의 입장료에도 한해 평균 1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특히 ‘위싱스타’의 경우 별 속의 손바닥 모형 위에 손을 올리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관광객마다 소원을 빌려고 긴 줄을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스토리가 담긴 한류 관광문화 상품 개발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21세기는 ‘한류’나 ‘이야기’와 같은 소프트 파워가 지배하는 시대다. ‘미국, 어디까지 가 봤니?’라는 국내 항공사의 광고 카피처럼 ‘한국, 어디까지 가 봤니?’라는 광고 카피가 외국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지혜와 마음을 모으는 것이 외래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맞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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