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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태규 ‘입’ 열까…떨고있는 정치권

    박태규 ‘입’ 열까…떨고있는 정치권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71)씨를 구속한 검찰 주변에서 하나 둘 정치인들의 이름이 새어나오면서 정치권이 바싹 긴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여당의 중진의원 2명이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1일 나오면서 긴장의 수위는 한껏 높아졌다. 소환설이 나온 두 의원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박씨로부터 로비를 받은 것으로 보도된 K의원은 “박씨와는 10년 전부터 알고지내는 사이이지만 최근 1년간은 만난 적이 전혀 없다.”면서 “올 초에 박씨로부터 ‘식사를 하자’는 전화와 ‘식사 약속이 취소됐다’는 전화만 받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K의원은 “박씨는 성도,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몰랐던 사람”이라며 “왜 이런 소문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만일 내가 연루됐으면 평소 검찰을 향해 강도 높은 수사를 주문했겠느냐.”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여당의 K의원 4명과 J의원 1명, 청와대 핵심 인사 3명이 검찰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실제로 박씨가 퇴출 저지 로비를 벌였다면 야당보다 여권에 관련자가 더 많을 것”이라면서 “‘부패 정당’ 이미지가 커지면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힘들어진다.”고 우려했다. 여권 인사 개입설이 주로 나오자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브로커에 대한 수사를 철저히 해 정·관계 인사가 나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색출해야 한다.”면서도 “저축은행을 부실화시켜 서민이 피눈물을 흘리게 한 캄보디아로의 수천억원 유출 의혹과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기획하고 숨어서 암약한 정권실세들을 모두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산저축은행이 무분별한 해외투자와 대출을 하던 지난 정권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라는 주장인 셈이다. 홍 대표는 특히 “수천억원을 빼돌린 막후 당사자들을 검찰이 초기에는 수사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전혀 말이 없다.”면서 “캄보디아에 수천억원이 유출된 것과 부실 PF 대출을 반드시 같이 수사해 그 배후가 누구인지 꼭 밝혀줄 것을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부산저축은행 관련 비리로 구속된 이들이 대부분 호남 인맥이고, 실제로 부산저축은행이 과거 정권에서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수사의 최종 목적지가 야권의 핵심 인사 3명 아니겠느냐는 얘기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내심 검찰이 퇴출 저지 로비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기를 바라면서 현 정권 실세까지 포함하는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로비를 받은 권력 핵심이 사태 해결을 질질 끄는 바람에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었고, 금융 불안으로 이어졌다.”면서 “박태규씨 구속을 계기로 저축은행을 둘러싼 현 정부 권력 핵심들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섭 대변인도 “검찰이 소환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당연히 응해야 한다.”면서 “더 이상 야당에 대한 표적수사는 안 되며 여야 성역 없이 철저히 수사해 권력형 로비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상적인 로비스트라면 힘 없는 야당에 로비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검찰 수사가 야권을 향할 가능성에 대해 바리케이드를 쳤다. 이창구·강주리기자 window2@seoul.co.kr
  • “노무현 정권 키워드는 영남 민주화 세력의 恨”

    “노무현 정권 키워드는 영남 민주화 세력의 恨”

    “노무현 정권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영남 민주화 세력의 한(恨)’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30일 ‘노무현 시대의 명암’이란 부제를 달고 출간한 ‘한국 현대사 산책-2000년대 편’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호남 출신의 진보적 언론학자로 꼽히는 강 교수는 이 책에서 “1961년 박정희 집권 이후 민주화 세력은 늘 영남에선 ‘찬밥’이었다. 반면 호남 민주화 세력은 독재 정권의 모진 탄압은 받았을망정 고향에선 대접받았다. 민주화는 사실상 호남화였다.”면서 “노무현에게 우선적인 건 영남 민주화 세력의 한을 풀고 자신의 고향에서 인정받고 싶은 인정 욕구 충족이었다. 노무현은 그 한풀이에 ‘지역 구도 타파’라는 명분을 동원했다. 노무현은 지역주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나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이어 “노무현이 ‘교묘한 위장술’을 쓴 건 분명하다. 문제는 위장술의 결과다.”라면서 “김영삼은 5, 6공 세력을 지켜줄 것처럼 위장했다가 숙청했고, 김대중은 김종필에게 권력을 줄 것처럼 위장해 DJP 연합으로 집권한 후 오리발을 내밀었다. 노무현도 민주당 죽이기로 처음엔 박수를 받았지만, 손뼉을 오래 치긴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었다. 노무현의 위장술은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주는 대연정으로까지 치달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영남 민주화 세력의 한을 풀기 위해 구사한 3대 이슈는 대북 송금 특검, 민주당 죽이기,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등이었다. 셋째 파격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을 ‘소용돌이 영웅’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2009년 5월 23일 이른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뒷산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서 “죽이기와 살리기의 양극단을 치닫는 한국 사회 특유의 쏠림과 소용돌이가 만들어낸 현상이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은 ‘소용돌이 영웅’이었던 셈이다.”라고 기술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男 110m 허들] 두 번의 신체 접촉… 아시아 ☆ 대구서 떨어지다

    [男 110m 허들] 두 번의 신체 접촉… 아시아 ☆ 대구서 떨어지다

    문제 장면은 9번째 허들을 넘는 순간부터였다. 초반 뒤처졌던 류샹(29·중국)이 다이론 로블레스(25·쿠바)를 미세하게 앞지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충돌이 있었다. 장애물을 넘어 착지하는 순간 로블레스의 팔이 류샹의 손을 쳤다. 경기 직후 류샹은 “로블레스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고 표현했다. 고의 여부는 단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류샹의 속도가 순간적으로 줄었던 건 확실했다. 한번 흔들린 밸런스는 다음 장애물을 넘는 순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류샹은 도약하면서 마지막 허들을 건드렸다. 여기서 다시 문제 장면이 발생했다. 로블레스가 다시 한번 류샹을 쳤다. 이미 리듬을 잃은 데다 외부 충격을 받으면서 자세가 완전히 무너졌다. 평소 류샹은 마지막 허들을 넘은 뒤 7걸음에 결승선을 통과한다. 이번에는 한 걸음이 더 필요했다. 결국 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승선에 들어서는 류샹의 표정엔 불만이 가득했다. 29일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10m 허들 결승전 모습이었다. 결국 로블레스가 13초 14로 우승을 차지했다. 제이슨 리처드슨(25·미국)은 13초 16으로 은메달. 류샹은 13초 27로 3위를 기록했다. 로블레스는 류샹을 위로한 뒤 쿠바 국기를 몸에 감았다. 승리를 자축하는 세리머니였다. 이대로 경기가 매조지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1시간쯤 뒤 기록이 정정됐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로블레스의 실격을 선언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 로블레스가 고의로 류샹의 진로를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쿠바는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판진은 “명백한 고의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자연히 2위로 골인한 리처드슨이 금메달을, 3위 류샹은 은메달을 승계했다. 4위 영국 앤드루 터너는 어부지리로 동메달을 받게 됐다. 류샹으로선 납득하기 힘든 불운이었다. 레이스 진행 상황으로 봐선 신체 접촉이 없었다면 우승도 가능했다. 길고 긴 부상 터널을 벗어나 4년 만의 세계 정상 복귀를 노린 터라 허탈함은 더 컸다. 스타디움 곳곳에서 오성홍기를 들고 응원했던 중국 관중들도 망연자실 허탈한 표정이었다. 류샹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허들 110m에서 우승하면서 아시아 선수 역대 처음으로 단거리 종목 세계 챔피언이 됐다. 2006년에는 세계신기록 12초 88을 수립했고 이듬해 오사카 세계선수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세계기록 수립과 올림픽-세계선수권을 모두 석권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세계 남자 허들 역사에서 3관왕을 이룬 선수는 류샹 뿐이다. 류샹은 “하늘의 뜻인가 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은 류샹에게도, 13억 중국인들에게도 불운한 날이었다. 대구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신경숙 “엄마는 세계 공통의 울림 한국문학 희망을 보았죠”

    신경숙 “엄마는 세계 공통의 울림 한국문학 희망을 보았죠”

    신경숙(48)이 돌아왔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IT’S BEEN ONE WEEK since Mom went missing.)로 시작하는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영문 번역본과 함께 해외 11개국 독자들과 만나는 긴 여행을 끝내고서 말이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영문판이 발간되면서 불기 시작한 세계적인 ‘엄마’ 열풍은 29개국에 판권이 팔리고 15개국에서 번역본이 발간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초판 10만부가 매진되어 중쇄에 돌입했고, 한국에서도 4월 이후 32만부가 더 팔려 180만부를 돌파했다. 29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신씨는 “영어권에서 책이 출판되고 난 이후에 이런 반응을 짐작하지 않았다. 하나의 물방울이 수많은 물방울이 되어 돌아오는 걸 보면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국경 너머의 독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경 너머 독자를 처음 생각하게 됐다” 지난해 9월 신씨가 미국 뉴욕으로 떠난 것은 쉬기 위해서였다. 작가 생활을 시작한 지 27년째가 됐고, 출세작 ‘풍금이 있던 자리’(1993) 이후 ‘엄마를 부탁해’를 낼 때까지 한번도 쉰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세계 문화의 중심지라는 뉴욕에서 일년쯤 살고 싶다는 은근한 꿈이 실현된 것은 ‘엄마’의 영문판이 나온 4월까지였다. 그전에는 온갖 인종을 만나고 전시, 공연, 영화 등 문화생활도 다양하게 체험했다. 귀국해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면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엄마’ 영문판이 나오면서 “10년간 할 여행을 1년 동안 다 했을” 정도로 작가는 세계 각국의 독자들을 쉼 없이 만났다. 세계인의 심금에 공통으로 울림을 지닌 ‘엄마’의 힘은 대단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만난 한 기자는 자신의 엄마가 생각났다며 인터뷰 도중에 눈물을 터뜨렸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작가의 아버지뻘 되는 남성은 ‘엄마’를 27권이나 사서 저자 사인을 부탁했다. 9시간이나 운전해서 신경숙 문학 행사에 왔다는 이 남성은 “당신 같은 사람이 여기 있다.”는 아내의 말에 ‘엄마’를 읽기 시작해 독서모임 회원들에게 나눠주고자 책을 샀다고 털어놓았다. 소설 ‘엄마’에서 항상 아내보다 앞서 빨리 걷는 남편의 모습은 이 늙은 미국 남자의 판박이였던 것. “책을 읽고 나서 아내와 보폭을 맞추느냐.”는 신씨의 질문에 미국 남자는 “그러려고 노력한다.”며 쑥스러워했단다. ●“외국인들이 한국문학 서사의 힘 느끼는 듯” 신씨는 외국에서 직접 느낀 한국 문학의 힘에 대해 “유럽 문학에 없던 공동체적 감각이나 인간에 대한 공감에서 희망을 찾는 듯한 기분이 많이 느껴졌다.”며 “유럽이나 미국 같은 영어권 문학에서 피로함을 느끼고 한국 문학에 대해 신선해하고 궁금해하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 문학이 가진 서사의 힘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같은 제3세계 문학에서 힘·희망·대안을 찾고 ‘엄마’에 나오는, 같이 뭔가 하려는 사랑에 대한 희망을 표시할 때가 잦아 기뻤다고 덧붙였다. 또 외국에서는 ‘엄마’의 주제를 확대시키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현대와 전통의 단절이나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대립구도로 보기도 했으며, 엄마의 실종을 물질문명이 만들어 놓은 상황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한 기자는 “엄마가 사라졌는데 왜 한국 경찰들은 열심히 찾지 않나.”라고 진지하게 질문해 3박4일 동안 13건의 인터뷰를 하느라 지친 신경숙을 웃게 만들기도 했다. 작가는 시대적 여건도 ‘엄마’가 영국에서 초판 1만부를, 스페인에서는 3쇄를 찍은 인기와 관련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시대 자체가 계속 뭔가 근원적인 것을 찾아가는 상황에 몰려 있는데, 그런 지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소설 안에 있다.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동안 우리도 모르게 잃어버린 것이 이 소설 속에 있고, 그런 것이 공감을 주지 않았을까.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2, 3세가 외국에서 많이 성장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한국 작품을 읽히고 싶어하는 부모 세대들도 일정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젠 칩거하며 글 쓰고 싶어” 여행을 좋아하지도, 많이 하지도 않는다는 작가는 이제 칩거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밝혔다. 작가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 오히려 엄마 같은 작품 ‘엄마’ 때문에 신인 작가의 기분으로 해외 독자들과 만났다는 신씨는 “나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지만 다른 작가에게는 이런 일이 두 번째, 세 번째가 되리라 생각한다.”며 한국 문학의 저력을 자신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허리도 무릎도 시원찮은데 무슨 운동할까

    허리도 무릎도 시원찮은데 무슨 운동할까

    현대인들은 운동 강박증을 갖고 산다.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상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은 물론 운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각은 운동에 머문다. 특히 나이가 들어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날도 선선해졌으니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라며 속을 태운다. 그러나 운동도 몸에 맞춰야 한다. 잘 하면 약이 되지만 못 하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걷기·등산, 척추 균형 잡아줘 허리통증 환자에게는 걷기나 등산 등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걷기는 뼈를 강화할 뿐 아니라 허리 유연성과 근육을 단련하는 데 좋은 운동이다. 몸 전체를 무리 없이 고루 움직이는 데다 심폐기능을 강화하고, 하지의 혈액순환과 장운동을 촉진시키며, 척추의 균형을 잡아줘 특히 허리 디스크나 허리통증에 좋은 운동이다. 그러나 무릎이 좋지 않은 관절염 환자는 등산을 피해야 한다. 산은 정상에 가까울수록 기압과 기온이 낮아지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관절 통증이 훨씬 심해진다. 기압이 낮으면 관절 압력이 팽창하면서 통증 신경이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또 등산 자세도 관절염 환자에게는 좋지 않다. 건강한 사람과 달리 이미 관절이 손상됐다면 등산이 관절 통증과 부종을 더 심하게 하며, 이런 부담은 내리막길에서 훨씬 크다. ●디스크 환자는 수영 피해야 수영은 관절염 환자에게 가장 권장할 만한 운동이다. 물의 부력이 체중 부담을 완화시켜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스크 등 척추질환자에게는 해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전문의들은 “특히 허리를 뒤로 젖히는 접영은 허리 부담이 크기 때문에 삼가는 게 좋다.”며 “척추전방분리증이나 척추후관절 병증이 있을 때는 절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쿠아로빅, 관절 치료에 효과 이런 환자라면 물 속에서 걷는 ‘아쿠아로빅’이 제격이다. 아쿠아로빅은 재활을 위해 고안된 운동으로, 특히 관절 치료에 효과적이다. 수영을 못 해도 상관없으며, 운동 강도를 높일수록 물의 저항이 커져 더 많은 열량을 소모하기 때문에 관절염은 물론 비만을 해결하는 다이어트운동으로도 제격이다. 여기에다 수압을 견디며 균형감각과 근력을 키울 수 있어 관절염 예방은 물론 심폐기능까지 강화할 수 있다. 또 물속에서 걷기·뛰기·틀기·차기 등 에어로빅 동작을 반복하면 혈액순환에도 도움이 되며, 부상 위험도 크지 않다. ●물 속에선 체중부담 크게 줄어 그렇다면 왜 물속 운동이 관절염 증상 개선에 좋을까. 바로 부력과 저항·온도·수압 때문이다. 관절염 환자는 무릎에 실리는 체중 부담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무릎의 부담이 클수록 연골이 빨리 닳아 관절염 통증이 심해진다. 그러나 물속에서는 부력으로 체중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보통 목이 잠기는 물속에서는 체중 부담이 90%, 가슴 높이는 75%, 허리 높이는 50%까지 감소된다. 따라서 물속에서는 관절염 환자들이 통증 때문에 못 했던 뛰기·점프 등의 운동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물은 저항력 때문에 운동 효과도 크다. 물 속에서는 저항 때문에 지상운동보다 에너지 사용량이 훨씬 많다. 1시간을 걸을 경우, 지상운동보다 칼로리 소모량이 2배나 많다. 그만큼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어서 체중으로 인한 무릎 부담을 줄여준다. 또 체온과 비슷한 30∼34도 정도의 따뜻한 물은 관절염 통증을 줄이고, 강직된 관절 근육을 풀어주며, 수압은 염증이 있는 관절의 부기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수중운동을 무리하게 하는 것은 금물. 특히 평형처럼 무릎을 많이 구부렸다 펴는 영법이나 발차기를 무리하게 할 경우, 관절 상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도움말 서울 나누리병원 임재현 원장
  • 5살에 英중등자격 시험 합격한 수학천재

    영국의 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15~16세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격시험 수학 과목에서 당당히 합격해 놀라움을 주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런던 동부에 사는 데보라 소프(6)는 영국 중등자격시험(GCSE) 수학 과목에서 E등급을 맞아 65만 명의 합격생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소녀가 시험을 본 건 5세 때였으므로, 지난해 합격한 7세 남자어린이 오스카 셀비 보다 2살이 더 어렸다. 영국 중등자격시험은 중학교 졸업생들의 실력을 가늠하는 평가기준으로 쓰이며 영어, 수학을 포함한 5과목을 등급은 A+부터 G등급까지로 나눈다. 데보라는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자신보다 10살보다 더 많은 언니오빠들이랑 어깨를 나란히 견준 셈이다. “수학을 특별히 좋아하나.”는 질문에 데보라는 고개를 저었다. 소녀는 “수학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아니다.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수학과 과학을 월등히 잘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셔서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숫자놀이를 좋아했던 데보라는 매주 토요일마다 자발적으로 TV를 멀리하고 중학생 수준의 수학 과목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번에 수학 과목에서 양호한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내년에 나머지 4과목에 도전할 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데보라는 대답했다. 아버지 찰스(44)는 “신문에 난 천재적인 어린이들을 보면서 내 딸도 꼭 그렇게 되지 못한다고는 생각하진 않았다.”면서 “앞으로도 절대로 딸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日 신용등급 강등] “日 쇼크는 없다… 美 더블딥 가능성 희박”

    [日 신용등급 강등] “日 쇼크는 없다… 美 더블딥 가능성 희박”

    “일본 신용등급 강등이 일본 경제는 물론 다른 나라에 미치는 여파는 적을 것입니다.” 전 세계 증시가 가까스로 패닉 상태를 벗어나고 있는 시점에 전해진 일본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대해 채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미국 신용등급 하락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채 원장은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경제 면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약했고 일본 경제 문제는 익히 다 알려진 것이기 때문에 시장도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의 더블딥(이중침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이 느리긴 하지만 회복 단계에 있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고 유럽의 ‘9월 위기설’에 대해서는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미국에 이어 일본 신용등급도 강등됐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심리적 영향이 컸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그동안 경제 면에서 존재감이 약했기 때문에 신용등급 강등이 일본 경제에 충격을 줄 리 없고 다른 나라에 대한 여파도 적을 것 같다. 더구나 대지진 충격에서 벗어나는 상황이라 더 나빠진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일본도 그렇고, 신용평가사들이 정치 상황을 예전보다 더 많이 고려하는 것 같다. -유럽재정 위기 대처 과정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이견,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대립에서 나타난 것처럼 정치 요소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내년이면 미국, 우리나라, 러시아 등에서 대선이 있고 중국도 차기 공산당 지도부를 선출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적 불확실성을 좀 더 고조시킬 수 있다. 반대로 정치가 잘되면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신용평가사들도 깊이 생각하고 많이 반영하는 것 같다. →미국이 앞으로 일본과 같이 ‘잃어버린 10년’이 될 가능성은. -일본처럼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은 실물경제가 살아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주택 시장과 실업률은 개선될 것으로 본다. 그동안 재정이 실물경제를 충분히 이끌지 못했지만 일본과 달리 미국은 잘할 것으로 믿는다. 물론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예측보다 훨씬 낮았다. 많은 부품 공급을 일본에 의지하는데 대지진으로 차질을 빚은 영향이 굉장히 컸다. 여기에 유럽 재정 불안,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충격까지 왔다. 그래서 침체에 푹 빠진 것처럼 보이는데 지표를 보면 등락은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 더블딥으로 갈 것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회복 자체는 지난해 말, 올 초보다는 훨씬 더디게 갈 것이다. →유럽의 9월 위기설은 실체가 있나. -9월에 그리스 채무 재조정 협상이 윤곽을 드러내고 이탈리아의 90억 유로 국채 만기가 도래한다. 실체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가능성으로 보면 위기라고 부를 수 없다. 그리스 채무 조정 부분은 이미 시장에 다 반영돼 있다. 이탈리아는 경제 펀더멘털이 좋다. 관광·서비스업도 좋지만 제조업도 튼튼하다. 무역 수지는 적자지만 다른 남유럽보다는 폭이 현저하게 적다. 저축률도 높고 국채 75%를 내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위기설은 경고를 주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갈 가능성은 적다. →26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어떤 카드를 꺼낼 수 있을까. -시장은 3차 양적완화를 기대하는 것 같은데 당장 심리적인 효과는 줄 수 있지만 글로벌 인플레이션, 달러 가치 하락 등 결국 부정적인 효과가 크다. 2차 양적완화 때도 실물경제에 영향은 크게 못 주고 인플레이션만 가져왔다. 그래서 버냉키 의장도 부담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당장 경제적 자신감, 시장 신뢰 회복이 꼭 필요하다면 미래 부담을 감수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단계가 아니다. 필요했다면 지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발표했을 것이다. 단기 채권을 장기 국채로 전환시키는 것과 같은, 간접적으로 유동성을 푸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양적완화에 비해 심리적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27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연설을 한다. -유럽 위기는 폭발하지 않더라도 계속 세계 경제를 불안하게 할 것이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재정 통합이다. 이는 유럽연합(EU)과 유로 체제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럼에도 해결책은 유로 채권이라고 본다. 그래서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 입장에서는 유럽 재정 위기 완화를 중점 사안으로 보면 EU 재정 통합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자세한 이야기는 못 해도 언급은 하지 않을까 싶다. →국내 경제가 외부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다는 지적이 있는데. -단기적으로 자본 유입 규제 장치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내수 시장을 확대하고 외국인 주식 투자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내수 비중이 낮은 것은 서비스 시장 생산성이 60%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높다고 수출을 줄일 수는 없다. 서비스 산업 생산성을 높여 국내총생산(GDP) 파이를 키우는 게 방법이다. 규제를 풀고 대외적으로도 개방해야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이 높아진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채욱 원장은] ▲1953년 전북 익산 ▲중앙고,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웨스턴미시간대 경제학 석사, 미시간대 국제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책임연구원 ▲KIEP 무역정책실장 ▲KIEP 국제경제(제도)실장 ▲KIEP 부원장(2000~2005년) ▲KIEP 한·미 FTA 연구단장(2006~2007년) ▲KIEP 원장(2008년 5월~)
  • 뮤지컬 ‘영웅’ 세계 공연계 심장부 두드렸다

    뮤지컬 ‘영웅’ 세계 공연계 심장부 두드렸다

    ‘영웅’이 세계 공연계의 심장부를 강타했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창작 뮤지컬 ‘영웅’(Hero)은 23일(현지시간) 전원 기립박수를 끌어내며 미국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뉴욕 브로드웨이 링컨센터 데이비드코크 극장 1~3층을 꽉 채운 약 1500명의 관객은 막이 내린 뒤에도 한참을 환호하며 열광적인 박수를 쏟아냈다. 그 속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숙 신임 주유엔대사도 있었다. ●‘명성황후’ 이어 두번째 브로드웨이 진출 다음 달 3일까지 총 14회 공연되는 ‘영웅’은 1997년 ‘명성황후’에 이어 한국 뮤지컬의 두 번째 브로드웨이 진출작이다. 관람료는 브로드웨이 작품 수준인 70~180달러로 책정됐다. 데이비드코크 극장은 ‘명성황후’가 공연됐던 바로 그 극장이다. 원래는 2550석 규모이지만 이날은 1500석만 개방했다. 탕! 탕! 탕! 공연은 일곱 발의 총성과 함께 시작됐다. 안 의사가 1909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쐈던 총탄 수다. 독립군과 일본경찰 사이의 숨막히는 추격전과 짜임새 있는 군무는 관객으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 안 의사 역의 배우 정성화가 거사를 결심한 뒤 절제된, 그러나 애절한 목소리로 ‘그날을 기약하며’를 부를 때는 외국인 관객들조차 숨을 멈췄다. 28억원이 투입된 대작답게 만주벌판을 달리는 3.5m 높이의 실물 기차와 3차원(3D) 영상 등 볼거리도 풍성했다. 안 의사가 어머니가 지어 보낸 수의를 입고 사형대에 오르는 장면에선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특히 감옥에 갇힌 안중근과 죽은 이토 히로부미의 환영이 “서로 다른 운명을 가졌을 뿐,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한 건 같다.”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긴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적막도 잠시, 내려왔던 커튼이 다시 올라가자 3층 객석까지 모두 일어나 갈채를 보냈다. 한국에서도 2009년 초연돼 지난해 앙코르 공연까지 가졌다. 주미 콜롬비아 대사의 부인인 파울라 나폴리는 “한국 역사를 다룬 작품이라 정확한 사실 관계를 모르는데도 공연 내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감탄을 쏟아냈다. 맨해튼에서 왔다는 영화제작자 피에르 데펜 디니는 “소재는 한국적인데 노래는 굉장히 일반적이어서 좋았다.”면서 “브로드웨이의 웬만한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한국 뮤지컬 수준이 이 정도로 높은지 몰랐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뒤 환영행사에 참석한 반 총장은 “여러분 모두가 영웅”이라며 가난과 질병에 대항하는 ‘21세기 영웅’이 돼줄 것을 주문했다. 김 대사는 “보는 내내 울컥해서 혼났다.”며 말을 아꼈다. ●애국심 강조 장면 많아 다소 불편 ‘영웅’ 공연팀의 현지 총괄 매니저 스티븐 래비는 “‘영웅’은 스토리 라인(이야기 구조)이나 음악 측면에서 매우 탄탄한 작품”이라면서 “영어 버전으로 바꾸면 미국은 물론 영국(의 대표적인 공연 중심지인) 웨스트엔드에서도 성공할 만한 작품”이라고 자신했다. 뉴욕 공연은 한국어로 하는 대신 영어 자막을 썼다. 하지만 애국심을 강요하는 대목과 매끄럽지 못한 무대장치 연결은 보완해야 할 점으로 지적됐다. 유학생 최지은씨는 “지나치게 애국심을 강조하는 장면이 많아 불편했다. 외국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라면서 “음악도 오케스트라가 아닌 엠알(MR·녹음곡)을 쓴 게 아쉽다.”고 말했다. 뉴욕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카다피 몰락] 美·유럽 “안정화” 中·러 “적극협력”… 구애 경쟁 스타트

    중국 외교부 마자오쉬(馬朝旭) 대변인은 리비아 반군이 수도 트리폴리를 대부분 장악한 지난 22일 밤 “리비아인의 선택을 존중한다.”면서 “중국은 앞으로 리비아 재건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기꺼이 힘을 합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군 지지선언에 다름아니다. 23일 오전 베이징 산리툰의 리비아 주중대사관에는 리비아 국기 대신 반군 깃발이 올랐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이날 “리비아 내전이 종말로 향하고 있으며 이제 권력은 (반군 지도부인) 과도국가위원회(NTC)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며 반군 쪽으로의 권력이동을 인정했다. 그동안 상황을 주시하며 눈치를 살피던 중국과 러시아마저도 ‘포스트 카다피’ 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반군을 지원하던 서방 측과 함께 복잡한 ‘포스트 카다피’ 방정식 풀이가 시작된 셈이다. 중국은 리비아 내전이 발발한 직후부터 중국중앙(CC)TV 등 관영 언론 기자들을 현지에 대거 파견해 전황을 면밀히 지켜봐 왔다.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리비아 내 사업장의 이해관계가 달려 있는 데다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국으로서 리비아로부터의 안정적인 원유 수급을 위해서도 카다피 측이나 반군 측 어느 한쪽을 섣불리 지원할 수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다. 물론 전황이 반군 측에 유리해진 지난 6월부터는 반군 측과의 접촉면을 확대하는 등 ‘줄타기’ 입장 변화가 감지되기도 했다. 러시아의 경우 원유 등으로 리비아와 엮여 있지 않아 다분히 ‘포스트 카다피’ 체제에서의 서방 독주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특사인 미하일 마르겔로프 상원 국제문제위원장이 “반군의 트리폴리 장악은 리비아 사태의 새로운 단계일 뿐”이라면서 “유엔과 아프리카 역내 기구의 우산 아래 양측이 휴전을 체결하고 협상에 나서도록 국제사회가 도와야 한다.”며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한 해법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측은 ‘포스트 카다피’ 체제의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걱정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반군의 구심체인 NTC가 권력 공백을 메울 임시정부 역할을 하면서 서방의 지원 아래 민주주의로의 이행 과정을 밟아 나가는 것이지만 부족 및 지역 갈등, 극단 이슬람 세력의 발호 등이 걱정거리다. 서방 입장에서 카다피 정권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긴 했지만 미국이 주도해온 대(對)테러전의 중요한 협력자였고, 유럽에는 중요한 석유 공급원이자 아프리카 난민의 대량 유입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자칫 혼란 와중에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한다면 오히려 ‘옛날’을 그리워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미국과 프랑스 등이 NTC를 통한 혼란의 조기 정상화를 노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24일 반군 측 2인자인 마무드 지브릴을 면담할 계획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한진중공업 관련 보도를 보면서/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옴부즈맨 칼럼] 한진중공업 관련 보도를 보면서/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지난달 초 유튜브를 통해 한진중공업 사태를 처음 접했다. 장장 20여분 동안 사건의 맥락과 배경을 자세히 짚은 TV보도는 우리말로 된 것이 아니었다. 자막도 한글이 아니라 해독 불가한 꼬부랑글자였다. 알고 보니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 방송에서 다룬 보도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국내 언론사의 자세한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워 답답했다. 서울신문이 보도한 ‘한진重 190일 만에 총파업 철회’기사(6월 28일 자 9면) 첫 줄에서는 “사태가 해결되었다.”라고 전하고 있었다. 국내 언론의 노사 관련 보도에 대한 무관심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지상파 방송 3사의 경우 거의 외면에 가까운 보도행태를 보였다. 국내 언론은 외면한 사건을 국외, 그것도 저 먼 중동의 TV방송을 통해 접한 대중이 “알자지라에 수신료 내야겠다.”라며 실소를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서울신문도 그로부터 약 2주 후 희망버스 관련 뉴스로 보도를 재개했다. 주로 희망버스와 관련한 단순 전달식 보도나 사태에 대한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한 것이다. 사설을 통해 여러 차례 적극적인 논평을 내고 있긴 하지만 기사내용 그 자체로는 사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태가 220여일이 넘게 진행되는 동안 그 경과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하거나 양측 입장을 정리해주는 기사가 아쉬웠다. 관련 보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사태의 파행을 불러일으킨 사측의 도덕적 해이라든지 그 배경에 대해서 사설이나 조남호 회장 국회청문회 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언급하긴 했다. 하지만, 사태가 갖는 반향과 그 무게를 고려한다면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현장에 대한 얘기 없이 현장의 ‘주변’인, 희망버스 이야기만이 거의 유일한 관련보도로 나오는 점은 아쉽다. 비록 희망버스가 사건의 확대와 양상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해도 말이다. 마무리되었다던 사태가 왜 다시 양상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점 또한 어리둥절했다. 보도의 질적인 면에서도 될 수 있으면 의미가 편향된 단어 선택을 자제하고 최대한 기계적인 중립과 공정을 지키려는 시도가 엿보이지만, 여전히 노조 측 취재원의 인용 횟수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사측의 직장 폐쇄, 정리 해고 관련 보도에서는 사측 관계자의 “불법행위 방지”라는 주장이 그대로 전해진다. 특히 지난 7월 30일 자의 ‘수해복구 경관 절반 희망버스 막으러’(9면)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제목 선정이다. 왜 서울 기동대 병력을 부산까지 차출했는지 그 배경에 대한 궁금함은 뒤로하고라도 이러한 보도는 편파와 왜곡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구조조정이란 단어와 대기업의 대규모 정리해고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낯설지 않은 중요한 이슈로 자리 잡았다. 시간을 두고 반복되는 대규모 정리해고는 더는 남의 얘기 같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관련 문제를 이제는 한 기업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사태의 해결을 노사에게 맡겨두자는 서울신문의 논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애당초 이번 사태를 당사자들만의 문제로 남겨두었다면 그나마 지금만큼의 진전을 볼 수 있었을까. 국회 출석도 거부한 채 국외로 날아갔던 조남호 회장을 청문회장으로 끌어내 앉힐 수 있었던 것은 국민적 관심과 압력이 한몫했다고 본다. 쌍용차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쌍용차 사태가 마무리된 이후로 지난 1년 동안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에도 언론의 보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정과 양상이 비슷하게 흘러간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기업 내부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언론이 모든 보도에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게이트키핑은 신문사 고유의 영역이지만 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해서는 충실히 사실관계를 전달했으면 한다. 그것이 약자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당사자들의 문제로 봉합하기에는 국민적 관심이 이를 넘어섰다.
  • 김한민 감독 “긴박·통쾌한 액션 사극 전 연령층 가슴에 꽂혔죠”

    김한민 감독 “긴박·통쾌한 액션 사극 전 연령층 가슴에 꽂혔죠”

    영화 ‘최종병기 활’의 흥행 돌풍이 심상치 않다. 올해 국내 개봉한 영화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인 개봉 11일 만에 300만 고지를 명중시킨 이 작품은 100억원대 대작들이 경쟁을 벌인 올여름 토종 블록버스터 전쟁의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청나라 군대에 여동생을 빼앗긴 신궁 남이(박해일)가 청나라 장수 주신타(류승룡)와 벌이는 추격전을 그렸다. 지난 19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김한민(42) 감독을 만나 흥행 비결을 들어봤다. →흥행 기세가 무섭다. 예상했나. -워낙 빡빡한 촬영 일정 속에 영화를 만드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격년마다 한국 블록버스터가 쌍끌이 흥행을 이끌었는데, 그중 한 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봉 첫 주 지방에 무대 인사를 갔더니 젊은 친구들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관객층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것이 흥행 청신호이자 이 영화의 정확한 지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극 중에서도 ‘왕의 남자’ 등을 제치고 흥행 속도가 가장 빠른데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극이면서도 새로운 지점이 있었던 것 같다. 활을 가지고 하는 액션과 추격의 느낌이 긴박하면서도 통쾌함을 줬고,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역사적인 정서가 충족된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영화의 구성은 단순하지만, 드라마적인 힘과 액션적인 쾌감을 관객들도 좋아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친숙하지만 다소 심심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 활을 소재로 한 까닭은. -혹시 그럴까봐 제목에 ‘최종병기’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활이란 것이 원초적인 느낌으로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활시위를 팽팽히 당길 때의 긴장감과 ‘탁!’하고 시원하게 날아가는 느낌이 좋았다. 온기를 가진 활이 대상에 꽂혔을 때 느껴지는 타격의 쾌감도 원초적으로 인간이 좋아하는 속성이 아닌가. 항상 가까이 있고 봐 왔던 무기였지만, 새로운 관점으로 세밀하게 보게 되니 좋은 점이 많았다. →‘극락도 살인사건’(2007) 뒤 ‘핸드폰’(2009)이라는 영화를 찍은 것도 그래서인가. -그때는 정보기술(IT) 강국에서 왜 휴대전화를 소재로 한 영화가 나오지 않는지 궁금했다. 이번에도 활도 잘 쏘고 각종 국제대회에 나가면 항상 금메달을 따는 한국에서 왜 활을 주제로 한 영화가 나오지 않는지 의아했다. →영화를 위해 양궁을 직접 배웠다던데. -1년간 대한궁술원 관계자에게 배웠다. 단전에 힘을 주고 깊은 호흡과 함께 활을 쏘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지고 집중력이 생긴다. →영화가 숨돌릴 틈 없이 빠르다. 그 속도감이 흥행 비결 중 하나로 꼽히기는 하지만. -몇 장면에 관객이 쉬어 갈 틈을 만들어 놓긴 했는데, 그렇게 숨이 찼나(웃음). 추격의 긴박감과 서스펜스를 강하게 주는 것이 영화의 생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속도를 늦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몰아치는 느낌보다는 전체적인 리듬감을 갖고 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완급조절을 하면서 서서히 치고 올라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후반부 추격전은 ‘조선판 추격자’라고 할 만큼 인상적이다. 각종 장애물이 많은 숲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빠른 속도로 촬영이 가능했나. -촬영감독의 역작이다. 장비를 따로 쓴 것이 아니라 감독이 핸드헬드(카메라를 손에 들고 촬영)로 찍었다. 배우들보다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다. 한명은 손에 카메라를 들고 전후좌우로 동물적인 감각으로 뛰고, 다른 한명은 먼 곳에서 줌 렌즈를 통해서 잡았다.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로 숨어서 찍기도 했다. 바로 내가 현장의 중심에서 쫓기는 듯한 느낌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대상에 밀착해 촬영했다. →활 전투 장면도 인상적이다. -활이 날창날창하게 생명력을 갖고 에너지 있게 날아가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고속카메라로 촬영하고 특수 효과로 화살이 날아가는 느낌을 살렸다. 여기에 질감 있는 사운드 등이 어우러지면서 3D(3차원) 같은 2D(일반영상)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치 관객 자신이 활을 쏘고 맞는 듯한 생생함을 주려 했는데 어느 정도 적중했다. →서사가 빈약하다는 비평도 있다. -자인(문채원)과 서군(김무열)의 멜로가 더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두 남자(남이와 주신타)의 대결을 강조하는 구성에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임진왜란의 역사 3부작을 완성하고 싶다. 근래에 위축되거나 소실된 측면이 많지만, 우리 선조들의 기개와 고귀한 정신은 현대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부러질 듯 부러지지 않고 꺾일 듯 꺾이지 않는 활 같은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그리고 싶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활을 표현하고자 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 관람불가였던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을 몰래 본 뒤 ‘영화감독이 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가슴 뛰면서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는 김 감독. 자신이 받은 상패에 적혀 있는 글귀처럼 “영화감독은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마술을 부리는 직업”이라고 말하는 그는 “아무리 어려운 이야기를 하더라도 명쾌하고 쉽게 영화를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마치 사극의 주인공처럼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를 틀어올린 김 감독이 다음엔 어떤 역사 속 이야기를 끄집어낼지 자못 기대된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1)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1)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여 완성시키고 확립시키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여 완성시키고 확립시킨다는 것은 사람 하나하나를 사랑하고 모두 완성시키고 확립시킨다는 것이다. 사람 하나하나를 사랑하여 모두 완성시키고 확립시킨다는 것은 한신, 여포와 같이 용맹스러운 자도 사랑하고, 빌어먹는 거지와 같이 비겁한 자도 또한 사랑한다는 것이다.”(‘격치고’) 생명의 세계에는 시비도 선악도, 적도 친구도 없다. 차별 없는 생명에 대한 차별 없는 애정. 그것이 이제마가 평생 지키려 했던 무사의 마음이요, 의사의 마음이었다. 이제마(李濟馬, 1837~1900)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사상의학이란 인간의 체질을 사상(四象), 즉 태양(太陽)·태음(太陰)·소양(少陽)·소음(少陰)으로 구분하고, 이에 따라 성격, 관계방식, 병증, 치료법을 설명하는 의학을 말한다. 이 분류에 따르면 이제마는 태양인이다. 태양인은 신체가 건장하고 가슴이 특히 발달했으며, 사고력이 뛰어나고, 진취적이고, 사교적이다. 실제로 이제마는 낯선 사람과도 금세 말을 섞을 정도로 친화력이 있었으며, 무사답게 일처리에도 막힘이 없었다. 하지만 음식을 제대로 못 넘기고 계속 토하는 열격반위증(?膈反胃證)에 시달렸는가 하면, 일찍부터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외로운 삶을 살았다. 그가 무사의 신분으로 의학서를 저술하게 된 데는 아마 이런 개인적 경험도 작용했을 것이다. 제마(濟馬)라는 이름은 제주도에서 건너온 온 말을 선물 받는 조부의 꿈에서 비롯되었다. 서자 신분인 이제마가 적자가 된 것도 이 꿈 덕분이다. 예지몽이었던 걸까? 이제마는 ‘물을 건너는 말’처럼 무사와 의사, 유학과 의학, 몸과 마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목적 삶을 살았다. ●의사의 마음을 가진 무사 이제마는 함흥 출신으로, 딱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가문 출신이었다. 조부와 부친을 일찍 여의고 의지할 데가 없던 이제마는 10대 후반부터 20여년간을 정처 없이 떠돌게 된다. 이 시기 그의 행적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지만, ‘동무유고’(東武遺稿)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글들로 추측하건대, 서구 열강이 조선을 침략하는 현실과 민중의 곤궁한 삶을 목도하고 여기서 느끼는 바가 있었던 듯하다. “대화포(大火砲)라는 것이 있는데 한번 발사하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뒤집히는 듯 벽력 같은 소리가 울리며, 맞으면 부서지지 않는 것이 없다. (중략) 화룡선(火龍船)은 거대하고 넓어서 그것과 비교할 만한 배가 없다. 배를 운행하는 방법은 연통을 노로 삼고 연통 밑에 석탄을 쌓은 다음 석탄에 불을 붙여 연통으로 연기가 나오게 해서 하루에 천여 리를 갈 수 있다.”(‘동무유고’) 서구 열강의 실체를 마주했을 때 이제마가 느낀 놀라움과 두려움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이다. 그는 대포·전신·화룡선 등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제국에 대항하려면 힘을 기르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병술을 익혀야 한다는 주장이나, 후당총을 보유한 10만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위태로운 조선의 현실을 목격한 이제마는 마침내 긴 방황을 접고 무관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호를 ‘동무’(東武-동방의 무사)로 짓고, 무관으로서 일생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무관으로서의 삶은 그를 무사가 아닌 의사로 살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잦은 전염병의 창궐로 수십만명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는 상황에 직면하여 병자에게 직접 약을 처방하는 한편, 병인과 발병 조건, 치료법 등을 알기 위해 그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길 위에서 ‘격치고’와 ‘동의수세보원’이 배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부인의 병사(病死)는 그의 의학적 사고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열병을 앓는 부인에게 의원이 관행적으로 열을 내리는 치료를 했는데, 부인은 결국 병이 악화되어 사망하고 만다. 이제마는 이 사건으로, 사람의 병증은 체질에 따라 다르므로 그 치료법 역시 체질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자신의 가설을 확신하게 된다. 일찍부터 내면화된 성리학적 사유에, 무관으로서 민중의 병을 관찰한 임상경험, 그리고 자신의 병과 부인의 병사 경험이 더해져 완성된 텍스트가 13년(1880~1893)에 걸쳐 쓴 역작 ‘격치고’다. ●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한 격물치지, ‘격치고’ ‘격치고’(格致藁)에서 ‘격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약자로, 이는 세계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성리학의 근본적인 공부 방법이다. 이제마는 인간의 병을 격물치지의 대상으로 삼아 ‘격치고’에서 사상의학의 기본구도를 구상하게 된다. ‘격치고’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삶의 원칙을 밝히기 위한 ‘유략편’(儒略篇), 삶의 기준점을 회복하기 위한 ‘반성잠’(反誠箴), 수양을 위한 지침인 ‘독행편’(獨行篇) 등이다. 이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격치고’는 본격 의학서라기보다 성리학적 사유에 몸의 생리에 대한 사고를 접목시킨 의철학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듯이, 사상의학의 논리는 맹자의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맹자는 사단(四端)을 통해 인간 본성의 선함을 논하고, 사단을 확충하는 수양을 통해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학문의 과제로 삼았다. 이제마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각각 태양, 소양, 태음, 소음에 연결시키고, 인의예지가 사욕(私慾)에 가려지듯이 타고난 체질의 장점이 사심(私心) 때문에 치우치게 된다고 보았다. 즉, 각각의 체질이 건강하게 발현되면 인의예지를 구현하게 되지만, 사심이 개입되면 탐비라박(貪鄙懶薄)으로 변질되어 욕심과 안일과 방종과 사사로움을 추구하게 된다. 예컨대, 태양인은 기질적으로 포용력이 있고 은혜를 잘 베풀지만, 사심이 생기면 계산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이해타산적 인간이 된다. 이런 불균형 상태를 치유하고 본래 체질의 장점을 발휘하려면 태음인의 기질인 의로움을 본받아 마음을 수양해야 한다. 병이란 체질과 마음이 치우친 상태이고,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치료라는 것. 이것이 이제마가 인간을 격치함으로써 도달한 결론이었다. ●세상을 보존하는 의사가 되어라 이제마는 ‘격치고’를 완성한 지 1년 만에 ‘동의수세보원’을 완성함으로써 사상의학을 체계화시킨다. 이 책은 성명론(性命論), 사단론(四端論), 확충론(擴充論), 장부론(臟腑論), 의원론(醫源論), 광제설(廣濟說), 사상인변증론(四象人辨證論)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는 구체적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한 처방과 병증 분석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예컨대 비대신소(脾大腎小)한 소양인은 일을 잘 벌이고 행동과 대처가 빠르지만 일의 마무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간대폐소(肝大肺小)한 태음인은 일을 쉽게 벌이지는 않지만 맡은 일을 책임 있게 완수해낸다. 이처럼 모든 체질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은 다른 체질을 가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병을 파악하고 치료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곧 마음수양이고, 이를 통해 모든 체질의 장점을 두루 갖춘 ‘성인’이 될 수 있다. 요컨대, 병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기고, 따라서 관계를 통해서만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사상의학의 핵심이다. 모든 병은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본 이제마는 약을 처방할 때도 약재, 음식과 함께 마음수양법을 자세히 적어주었다. 이제마에게 치료란 사회적 관계 맺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치료’였던 셈이다. “백 집이 있는 마을에 한 사람의 의원만으로는 사람을 살리기에 부족할 것이다. 반드시 의학을 널리 펴고 밝힘으로써 집집마다 의술을 알고 사람마다 병을 알게 된 뒤에야 수(壽)를 누리고 원(元)을 보전하게 될 것이다.”(‘동의수세보원’)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서 ‘수세보원’이란‘세상과 삶을 위해 보존해야 할 원칙’이라는 뜻이다. 이제마에게 그 원칙은 타인을 통한 배움이었다. 이제마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자신의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병이 있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병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몸과 마음이 아프거든, 먼저 내 몸에 새겨진 관계의 흔적을, 내가 관계 맺는 방식을 보라.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배우라. 그것이‘나 자신의 의사’가 되기 위한 시작이다. 무사 이제마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그리고 세상을 지키는 의사가 되었다. 박장금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실질 가계소득 3분기만에 증가세

    높은 물가로 줄어들었던 실질 가계 소득이 3분기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가구(2인 이상)의 2분기 평균 가계 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증가한 월 평균 371만 3000원이다. 물가 수준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지난해 4분기에는 1.2%, 올해 1분기에는 0.9% 감소했지만 2분기에는 0.5% 늘었다. 고용 개선에 따라 명목소득은 7분기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높은 물가 탓에 실질소득이 플러스로 전환되긴 했지만 격차는 여전히 크다. 2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2%이다. 소비 지출은 월평균 230만 4000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3% 증가했다. 보건(-6.2%), 교육(-2.7%), 주류·담배(-3.1%) 등에 대한 지출은 줄었지만 가정용품·가사서비스(11.9%), 교통(10.8%), 식료품·비주류음료(8.9%) 등에서 소비가 늘었다. 물가 수준을 감안한 실질 소비는 0.9% 증가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이젠 조폭 꼬리표 떼고 투혼의 파이터로 불렸으면”

    “이젠 조폭 꼬리표 떼고 투혼의 파이터로 불렸으면”

    “‘조폭 파이터’란 별명은 창피하니 (그렇게) 안 불러줬으면 좋겠고요. ‘생계형 파이터’란 얘기도 듣는데 이제는 많은 나이를 열정으로 뛰어넘은 ‘투혼의 파이터’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외모부터 남다르다. 짧게 자른 꽁지 머리, 1㎝ 정도 흉터가 15㎝ 길이로 가로 새겨진 이마, 높은 톤의 전라도 사투리 등이 영락 없는 ‘형님’ 모양새다. 지난달 24일 국내에 하나 뿐인 프로 종합격투기(MMA) 대회인 ‘로드FC 003 익스플로전’에서 북파공작원 출신으로 불려온 김종대(30·팀포스)를 크로스 카운터로 링에 벌렁 드러누이면서 프로 파이터의 가능성을 과시한 이한근(42·영등포 정심관)은 쉽게 털어놓기 힘든 과거를 지녔다. “먹고 살려고” 조직에 몸 담았다가 4년반 전쯤부터 파이터로 변신하며 허물을 벗고 있는 것.  이한근은 19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김종대와의 경기에서 이긴 것을 운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기에 이길 수 있었다.”며 “다음 대회에선 한 체급 올려 토너먼트 경기에 나가는 만큼 빈틈없이 준비해 실력이 뛰어남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기획사 사무실과 13일 경기 고양시 화정의 ‘익스트림 피트니스’에서 각각 진행된 일문일답.    성공적인 프로 데뷔 이후 얼굴 알아보는 이들이 늘었을텐데.  -교회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어요. 그 대회에서 가장 극적인 승부를 연출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요. 어릴 적부터의 꿈인 체육관을 함께 운영해보자는 사람도 생겼는데 1년은 (선수로) 뛴 뒤 체육관 차릴 계획이니 당장 응하진 않을 겁니다. 파이트 머니가 적어 실망하긴 했지만 내가 대회 흥행에 기름을 부었다는 말을 들으면 자랑스럽습니다.    김종대를 꺾은 것은 운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던데.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기에 이길 수 있었지요. 이긴 비결은 그 뭐, (경기 사나흘 전부터 복싱) 세계챔피언(조인주 관장)에게 물어봤어요. (김종대가) 훅은 치면은 뭘 쳐야 하느냐 물어봤더니 어퍼컷 말고 같이 훅을 걸으라고 해서, 그게 맞아떨어져서 운좋게 나온 것 같아요. 그림(?)이 좋게 나와 다행입니다.  한참 전에는 ‘타격은 강한데 그라운드 싸움에 약하다.’는 지적을 의식, 스피릿MC 웰터급 챔피언이었던 이광희에게 기본적인 수비 동작 등 레슬링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김종대의 펀치를 맞고 한 번 휘청했지 않았나.  -경기 뒤 동영상을 몇 차례 돌려 보며 꼼꼼이 분석했는데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더라. 맷집만 믿고 가드를 내리는 내 약점도 여전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종대와는 가끔 만나 통닭을 먹습니다. 지난 경기를 앞두고도 이틀 전인가 함께 밥을 먹었는데요. 종대가 앞으로도 열심히 운동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링사이드 사회자가 미들급으로 올려 데니스 강과 토너먼트를 해보면 어떠냐고 했는데 좋다고 했다.  -약간 얼떨결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왕 얘기했으니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뭐, 시합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다음 대회, 이 앞전 시합 때 토너먼트, 한 체급 위이고 하니까, 저번 시합 때 제가 운 좋게 이겼잖아요. 대진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요.  시합 끝나고 일주일 쉬었다가요, 옛날은 운동을 많이 못했는데 지금은 운동을, 나름대로 몸 상태를 좋게 하기 위해서 쬐끔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중학교 이래 늘 하던 것이고 조직에 있을 때도 꾸준히 했지요. 지금도 새벽에 배드민턴하고 오후에 아는 관장들 운영하는 체육관 여러 곳을 돌면서 2~3시간씩 운동합니다. 배드민턴은 몸의 민첩성을 키우는, 나만의 훈련 비결이기도 하지라.    데니스 강. 엄청 센 상대 아닌가.  -링에 올라가면 별로 겁을 내지 않는 편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지요. 어차피 대결은 한 방에 끝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약점을 보완하고 내 장점을 가다듬으면 한 번은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파이터로서의 자격을 거론하는 누리꾼들이 있는데.  -격투기 좋아하는 분들 모두 소중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운동해보지 않고 글로만 아는 척하는 분들 적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노는 거고.  이번 경기 뒤 인터넷 댓글들 보면서 많이 웃기도 안 했습니까. 등업(글쓰는 자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할줄 몰라 글은 남기지 않았지만 뭐라 떠들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살아온 얘기가 궁금하다.  -전남 고흥의 소록도 근처 섬에서 4남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형제 중에 제가 고졸로 학력이 가장 높아요. 세 살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두 형님이 학업을 포기하고 집안을 돌봤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두 형님께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하곤 하십니다. 큰 형은 관광버스 운전을, 둘째 형은 간판 일을 하면서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막내도 고교를 중퇴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성적표를 받아보면 ‘두뇌는 명석하나 노력을 안함’이라 써 있곤 했습니다. 고흥 도화면에서 중고교를 다녔는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인가, 태권도를 한다며 공부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흥은 원래 장사가 많은 곳 아닌가.  -그라지라. 보통 고흥 남자들은 아버지 피를 이어받아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인 사람이 많은데 우리 아버지는 체구가 왜소하셨고 어머니나 외할아버지 쪽이 그런 편이셨어요. 전남체전 같은 데서 우승한 경력도 있으니 꽤 잘했지요.    조직에 몸 담게 된 것은.  -군대 다녀온 뒤 뭘해 먹고 사나 싶었어요. 고교 시절 태권도를 가르친 분이 서울 오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 몇 개를 적어주었어요. ‘서울 가 도장이라도 차려야겠다.’고 생각해 상경했습니다. 그런데 도통 연락이 되지 않는 거예요. 사나흘 정도 노숙하다 어느 날 어떤 인연으로 조직에 들어갔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고 아는 건 운동뿐인데 어쩌다 잘못 풀린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조직의 이권 문제를 해결하려고 주먹을 썼지, 선량한 시민들 괴롭히고 그러는 데 쓰지는 않았다, 이것 하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제 조직을 떠날 생각을 했나.  -스물셋에 조직에 들어갔는데 나이 마흔이 가까워오니 겁이 덜컥 나더라. 그래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친구나 동료들에게 결심을 전한 뒤 7년쯤 걸린 것 같습니다.  ‘정화’ 받으러 ‘학교’ 갔다 나와서 보니까 제가 조금 늦게 (격투기를) 시작했어요. 4년에서 4년반 정도. 솔직히 어렸을 때 하다보니까 (조직 활동)하게 된 것인데 보람을 찾을 수 있겠어요? 그쪽에서,  제가 하다 보니까 변화가 필요했는데 전 마침 운동이라도 쪼끔씩 해오고 있었고, 변화하려고 하는, 변화되는.  안 그랬으믄 전 지금 어느 쪽으로든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냥 발만 담그고 있었을 겁니다.    조직 떠나는데 교회가 어떤 영향을 미쳤나.  -둘째 형이 발에 난 동티를 기도로 치유하겠다고 해서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함께 했습니다. 기도가 정말 통하는 걸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됐습니다. 어느날 기도를 하다 방언을 하면서 눈물 범벅으로 살아온 인생을 고해했습니다. 그러면서 완전히 하느님 말씀에 따르게 됐지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편이에요. 중고교 시절부터 폭행죄로 입건된 건만 17번이었습니다. 조직 문제로 ‘학교’에 갔을 때 자꾸 쓸데없이 건드리는 잡범들이 있어서 참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징벌방을 7~8번 드나들었는데 그때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1년반 형기를 살면서 성경을 7번 통독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대보라.  -편치 드렁크, 오랜 동안 주먹으로 뇌에 충격이 전해지면 깜빡깜빡 잊는 증상이 있습니다. 그게 저도 있는지 얘기한 뒤 5분만 지나면 까먹습니다. 사람을 만나도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로드 FC 대회에서 승리한 뒤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데 아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니 편하고 좋은 면도 있습디다.    체육관을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꿈은.  -기술도, 배운 것도, 모아놓은 재산도 없으니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1년쯤 프로 생활 더 하다 은퇴한 뒤 체육관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생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집 근처 아는 형의 카센터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니다. 격투기하는 친구들은 오랜 시간 직장에 붙들어 매어있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보통 하루 두 번 상당한 시간을 훈련에 쏟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주위에서도 쪼끔씩 도와주시지요.  하늘에 계신 높은 분 때문에 새벽 기도 가고 새벽 배드민턴 운동하고 낮에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결혼해 어엿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데 모아놓은 돈은 없고... 공개구혼이라도 해야 하나. 하하핫!  내게 격투기는 마지막 불꽃같은 열정이고요. 솔직히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이왕 시작한 거니까 그래도 나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고.    ‘조폭 파이터’란 별칭에 불편해 하던데.  -처음에 전직 조폭, 그래서 제가 뜬 건 사실이니까 불편할 일이 아닙니다. 근데 딴 사람들 댓글 보면 전직 조폭 자랑하려고 한 것처럼 잘못 받아들이신 분들이 있더라. 지금 교회에서도 집사도 하고 있고 장가도 가야 하고 그런데 그걸 좋아서 내세운 건 아니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폭 파이터는 창피하기도 하니까 (그렇게) 안 불러줬으면 좋겠고요. 투혼의 파이터로 불러주셨으면 하고 앞으로 여러분의 기대에 부족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이 마흔에 여러 모로 힘들지 않나.  -젊은 친구들 힘을 못 따라갑니다. 맷집도 약해지고 특히 나이가 들수록 턱이 약해진다고 하더라. 동영상 등을 통해 상대의 약점을 분석하는 데도 취약할 수밖에요. 먹고 사는 걱정까지,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로 인해 용기를 얻은 40대가 체육관에 나간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가끔 보면 ‘여유 있을 때 하지 뭐.’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이나 여건 때문에 못 하시는 분들을 대신해 뛰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서 그분들 스트레스 날려드리고 격투기 중흥하게 하고 발전에 도움 됐으면 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사진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사일사] “이제 조폭 꼬리표 떼고 싶어요” 파이터 이한근

    [사일사] “이제 조폭 꼬리표 떼고 싶어요” 파이터 이한근

     “‘조폭 파이터’란 별명은 창피하니 (그렇게) 안 불러줬으면 좋겠고요. ‘생계형 파이터’란 얘기도 듣는데 이제는 많은 나이를 열정으로 뛰어넘은 ‘투혼의 파이터’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외모부터 남다르다. 짧게 자른 꽁지 머리, 1㎝ 정도 흉터가 15㎝ 길이로 가로 새겨진 이마, 높은 톤의 전라도 사투리 등이 영락 없는 ‘형님’ 모양새다. 지난달 24일 국내에 하나 뿐인 프로 종합격투기(MMA) 대회인 ‘로드FC 003 익스플로전’에서 북파공작원 출신으로 불려온 김종대(30·팀포스)를 크로스 카운터로 링에 벌렁 드러누이면서 프로 파이터의 가능성을 과시한 이한근(42·영등포 정심관)은 쉽게 털어놓기 힘든 과거를 지녔다. “먹고 살려고” 조직에 몸 담았다가 4년반 전쯤부터 파이터로 변신하며 허물을 벗고 있는 것.  이한근은 19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김종대와의 경기에서 이긴 것을 운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기에 이길 수 있었다.”며 “다음 대회에선 한 체급 올려 토너먼트 경기에 나가는 만큼 빈틈없이 준비해 실력이 뛰어남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기획사 사무실과 13일 경기 고양시 화정의 ‘익스트림 피트니스’에서 각각 진행된 일문일답.    ▶ 성공적인 프로 데뷔 이후 얼굴 알아보는 이들이 늘었을텐데.  -교회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어요. 그 대회에서 가장 극적인 승부를 연출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요. 어릴 적부터의 꿈인 체육관을 함께 운영해보자는 사람도 생겼는데 1년은 (선수로) 뛴 뒤 체육관 차릴 계획이니 당장 응하진 않을 겁니다. 파이트 머니가 적어 실망하긴 했지만 내가 대회 흥행에 기름을 부었다는 말을 들으면 자랑스럽습니다.    ▶ 김종대를 꺾은 것은 운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던데.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기에 이길 수 있었지요. 이긴 비결은 그 뭐, (경기 사나흘 전부터 복싱) 세계챔피언(조인주 관장)에게 물어봤어요. (김종대가) 훅은 치면은 뭘 쳐야 하느냐 물어봤더니 어퍼컷 말고 같이 훅을 걸으라고 해서, 그게 맞아떨어져서 운좋게 나온 것 같아요. 그림(?)이 좋게 나와 다행입니다.  한참 전에는 ‘타격은 강한데 그라운드 싸움에 약하다.’는 지적을 의식, 스피릿MC 웰터급 챔피언이었던 이광희에게 기본적인 수비 동작 등 레슬링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 그래도 김종대의 펀치를 맞고 한 번 휘청했지 않았나.  -경기 뒤 동영상을 몇 차례 돌려 보며 꼼꼼이 분석했는데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더라. 맷집만 믿고 가드를 내리는 내 약점도 여전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종대와는 가끔 만나 통닭을 먹습니다. 지난 경기를 앞두고도 이틀 전인가 함께 밥을 먹었는데요. 종대가 앞으로도 열심히 운동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 링사이드 사회자가 미들급으로 올려 데니스 강과 토너먼트를 해보면 어떠냐고 했는데 좋다고 했다.  -약간 얼떨결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왕 얘기했으니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뭐, 시합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다음 대회, 이 앞전 시합 때 토너먼트, 한 체급 위이고 하니까, 저번 시합 때 제가 운 좋게 이겼잖아요. 대진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요.  시합 끝나고 일주일 쉬었다가요, 옛날은 운동을 많이 못했는데 지금은 운동을, 나름대로 몸 상태를 좋게 하기 위해서 쬐끔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중학교 이래 늘 하던 것이고 조직에 있을 때도 꾸준히 했지요. 지금도 새벽에 배드민턴하고 오후에 아는 관장들 운영하는 체육관 여러 곳을 돌면서 2~3시간씩 운동합니다. 배드민턴은 몸의 민첩성을 키우는, 나만의 훈련 비결이기도 하지라.    ▶ 데니스 강. 엄청 센 상대 아닌가.  -링에 올라가면 별로 겁을 내지 않는 편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지요. 어차피 대결은 한 방에 끝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약점을 보완하고 내 장점을 가다듬으면 한 번은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 그래도 파이터로서의 자격을 거론하는 누리꾼들이 있는데.  -격투기 좋아하는 분들 모두 소중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운동해보지 않고 글로만 아는 척하는 분들 적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노는 거고….  이번 경기 뒤 인터넷 댓글들 보면서 많이 웃기도 안 했습니까. 등업(글쓰는 자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할줄 몰라 글은 남기지 않았지만 뭐라 떠들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 살아온 얘기가 궁금하다.  -전남 고흥의 소록도 근처 섬에서 4남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형제 중에 제가 고졸로 학력이 가장 높아요. 세 살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두 형님이 학업을 포기하고 집안을 돌봤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두 형님께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하곤 하십니다. 큰 형은 관광버스 운전을, 둘째 형은 간판 일을 하면서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막내도 고교를 중퇴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성적표를 받아보면 ‘두뇌는 명석하나 노력을 안함’이라 써 있곤 했습니다. 고흥 도화면에서 중고교를 다녔는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인가, 태권도를 한다며 공부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 고흥은 원래 장사가 많은 곳 아닌가.  -그라지라. 보통 고흥 남자들은 아버지 피를 이어받아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인 사람이 많은데 우리 아버지는 체구가 왜소하셨고 어머니나 외할아버지 쪽이 그런 편이셨어요. 전남체전 같은 데서 우승한 경력도 있으니 꽤 잘했지요.    ▶ 조직에 몸 담게 된 것은.  -군대 다녀온 뒤 뭘해 먹고 사나 싶었어요. 고교 시절 태권도를 가르친 분이 서울 오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 몇 개를 적어주었어요. ‘서울 가 도장이라도 차려야겠다.’고 생각해 상경했습니다. 그런데 도통 연락이 되지 않는 거예요. 사나흘 정도 노숙하다 어느 날 어떤 인연으로 조직에 들어갔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고 아는 건 운동뿐인데 어쩌다 잘못 풀린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조직의 이권 문제를 해결하려고 주먹을 썼지, 선량한 시민들 괴롭히고 그러는 데 쓰지는 않았다, 이것 하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언제 조직을 떠날 생각을 했나.  -스물셋에 조직에 들어갔는데 나이 마흔이 가까워오니 겁이 덜컥 나더라. 그래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친구나 동료들에게 결심을 전한 뒤 7년쯤 걸린 것 같습니다.  ‘정화’ 받으러 ‘학교’ 갔다 나와서 보니까 제가 조금 늦게 (격투기를) 시작했어요. 4년에서 4년반 정도. 솔직히 어렸을 때 하다보니까 (조직 활동)하게 된 것인데 보람을 찾을 수 있겠어요? 그쪽에서,  제가 하다 보니까 변화가 필요했는데 전 마침 운동이라도 쪼끔씩 해오고 있었고, 변화하려고 하는, 변화되는….  안 그랬으믄 전 지금 어느 쪽으로든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냥 발만 담그고 있었을 겁니다.    ▶ 조직 떠나는데 교회가 어떤 영향을 미쳤나.  -둘째 형이 발에 난 동티를 기도로 치유하겠다고 해서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함께 했습니다. 기도가 정말 통하는 걸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됐습니다. 어느날 기도를 하다 방언을 하면서 눈물 범벅으로 살아온 인생을 고해했습니다. 그러면서 완전히 하느님 말씀에 따르게 됐지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편이에요. 중고교 시절부터 폭행죄로 입건된 건만 17번이었습니다. 조직 문제로 ‘학교’에 갔을 때 자꾸 쓸데없이 건드리는 잡범들이 있어서 참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징벌방을 7~8번 드나들었는데 그때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1년반 형기를 살면서 성경을 7번 통독했습니다.    ▶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대보라.  -편치 드렁크, 오랜 동안 주먹으로 뇌에 충격이 전해지면 깜빡깜빡 잊는 증상이 있습니다. 그게 저도 있는지 얘기한 뒤 5분만 지나면 까먹습니다. 사람을 만나도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로드 FC 대회에서 승리한 뒤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데 아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니 편하고 좋은 면도 있습디다.    ▶ 체육관을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꿈은.  -기술도, 배운 것도, 모아놓은 재산도 없으니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1년쯤 프로 생활 더 하다 은퇴한 뒤 체육관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 생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집 근처 아는 형의 카센터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니다. 격투기하는 친구들은 오랜 시간 직장에 붙들어 매어있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보통 하루 두 번 상당한 시간을 훈련에 쏟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주위에서도 쪼끔씩 도와주시지요.  하늘에 계신 높은 분 때문에 새벽 기도 가고 새벽 배드민턴 운동하고 낮에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결혼해 어엿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데 모아놓은 돈은 없고... 공개구혼이라도 해야 하나. 하하핫!  내게 격투기는 마지막 불꽃같은 열정이고요. 솔직히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이왕 시작한 거니까 그래도 나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고.    ▶ ‘조폭 파이터’란 별칭에 불편해 하던데.  -처음에 전직 조폭, 그래서 제가 뜬 건 사실이니까 불편할 일이 아닙니다. 근데 딴 사람들 댓글 보면 전직 조폭 자랑하려고 한 것처럼 잘못 받아들이신 분들이 있더라. 지금 교회에서도 집사도 하고 있고 장가도 가야 하고 그런데 그걸 좋아서 내세운 건 아니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폭 파이터는 창피하기도 하니까 (그렇게) 안 불러줬으면 좋겠고요. 투혼의 파이터로 불러주셨으면 하고 앞으로 여러분의 기대에 부족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 나이 마흔에 여러 모로 힘들지 않나.  -젊은 친구들 힘을 못 따라갑니다. 맷집도 약해지고 특히 나이가 들수록 턱이 약해진다고 하더라. 동영상 등을 통해 상대의 약점을 분석하는 데도 취약할 수밖에요. 먹고 사는 걱정까지,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로 인해 용기를 얻은 40대가 체육관에 나간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가끔 보면 ‘여유 있을 때 하지 뭐.’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이나 여건 때문에 못 하시는 분들을 대신해 뛰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서 그분들 스트레스 날려드리고 격투기 중흥하게 하고 발전에 도움 됐으면 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사진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글로벌 한국금융 해외서 길 찾아] 서병호 한국금융硏 연구위원 “장점인 CB 살리고 부족한 IB 보완해라”

    [글로벌 한국금융 해외서 길 찾아] 서병호 한국금융硏 연구위원 “장점인 CB 살리고 부족한 IB 보완해라”

    “지금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 국면에 들어섰지만, 국내 은행들에는 이번이 해외진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그는 “국내 은행들이 상업은행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고, 그 동안 해외은행 인수·합병(M&A)을 통한 해외진출을 꾸준히 검토해 왔다.”면서 “경제가 어려울 때 은행 지점망이 매물로 나온다면,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에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위원은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과 관련, “신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해외진출은 점점 활발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 은행의 글로벌화는 어느 정도 진행됐나. -국내 은행의 초국적화 지수는 지난해 말 3.6%이다. 초국적화 지수는 은행의 총자산과 이익, 인원 대비 해외지점의 비중을 백분율로 나타낸 지표다. 글로벌 은행의 경우 이 지수가 두 자릿수를 차지한다. 유럽계 은행의 초국적화 지수가 70~80%, 미국계는 40%, 일본과 호주계는 20% 후반 정도를 보인다.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동남아 지역 등지에서 현지 은행을 인수하는 방안이 검토되는데, 실효성 있는 방안인가. -해외진출 후발주자인 국내 은행이 현지인 대상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M&A가 필수적이다. 국내 은행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여러 차례 M&A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에 현지 사정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한다면 M&A를 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단, 현지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경영진이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톱-다운 방식의 M&A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현지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M&A에 가장 적합한 은행을 발굴해 긴 시간을 놓고 검토해야 한다. →국내 은행이 주목할 지역은 어느 쪽인가. -장점인 상업은행(CB) 부문을 살리고, 부족한 투자은행(IB) 역량을 배운다면 바람직한 해외진출 모델이 될 것이다. CB 부문에서 우리는 정보통신 기술(IT)를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과 인터넷뱅킹, 친절하고 효율적인 지점 마케팅, 신속한 지급결제와 의사결정 등을 강점으로 지니고 있다. 아직도 번호표를 뽑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창구마다 줄을 서게 하는 나라도 많다. 또 아시아는 문화적으로 친숙한 데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 이미지도 우호적이기 때문에 진출했을 때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테마로 본 공직사회] (15) ‘불 꺼지지 않는 방’ 대변인실

    [테마로 본 공직사회] (15) ‘불 꺼지지 않는 방’ 대변인실

    정부종합청사의 수많은 방들 중에 맨 먼저 불이 켜지고 맨 나중 꺼지는 곳이 있다. 대변인실이다. 정부 부처에 몸담은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상황불문하고 화를 내지 않는 ‘외계인’이 있다. 대변인과 그의 손발이 되어 호흡을 맞추는 대변인실 소속 직원들이다. 오죽했으면 “대변인 ○은 개도 안 먹는다.”는 우스갯소리들을 할까. 정부 부처의 ‘입’이 되어 최고의 대외 홍보를 절대선으로 삼고 있는 이들. 속이 썩어도 밖으로는 기자들의 심기를 살펴가며 최상의 부처 홍보를 해야 하는 특무를 띤 주인공이 다름아닌 대변인실 사람들이다. ●늦어도 새벽 5시면 출근 그러나 부처 내부 직원들도 대변인실 역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중앙부처의 한 대변인실 관계자는 “일선 공무원들조차도 우리가 하는 일이 그저 보도자료나 만들어 언론에 배포하는 게 고작인 줄 아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업무를 속속들이 알게 되면 모르긴 해도 부처내 대변인실 지원자 수는 뚝 떨어질 것”이라면서 “24시간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기자들 전화에 기꺼이 응대하며 사생활을 담보 잡힐 수 있어야 하는 만큼, 적성에 맞지 않으면 한 달도 버텨내기 어려운 3D 업무가 아니겠느냐.”고 웃었다. 주요 중앙부처 대변인실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각은 새벽 5시 안팎. 늦어도 오전 6시 30분쯤까지는 조간신문 스크랩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7시 이전에는 출근하는 장·차관들이 집무실에 들어서면 맨 먼저 찾는 것이 그날의 신문 스크랩이다. 스크랩만 일별하면 전날 부처 관련 사안들이 어떤 방향으로 보도됐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가 있다. 장·차관실 뿐만 아니라 주요 간부들 책상 위로도 어김없이 배달돼야 하는 건 그래서이다. 행정안전부 대변인실의 경우 조간신문 스크랩은 6명이 손발을 맞추고 있다. 2인 1조로 3개팀을 만들어 사흘에 한번꼴로 번갈아가며 새벽 4시에 집에서 나와 아침신문들을 점검하는 게 일과의 시작이다. 여타 부서 직원들이 출근도 하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혹여 부처 입장과 맞지 않는 기사가 한 줄이라도 나오면 이에 대한 대응수위를 조절하는 것도 이들 몫이다. 해당 부서 관계자들의 연락처를 뒤져 급히 사실확인을 한 뒤 어떤 방향으로 언론에 보충자료를 내야 할지, 짧은 시간에 해답을 찾는 순발력을 발휘해야 한다. 언론의 동향을 주시하는 일은 사실상 온종일 계속된다. 점심식사가 끝나자마자 석간과 지방신문들을 챙기고, 오후 3~4시에는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는 보도내용도 따로 챙겨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오후 6시쯤. 가판신문(멀리 떨어진 지역에 배달하기 위해 전날 저녁에 미리 찍어내는 조간신문)이 나오면 또 꼼꼼히 모니터링 한다. 저녁시간대에 주요 뉴스들이 나오는 방송을 체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저녁 숙제’다. “이 뉴스는 어떤 신문(방송)에서 얼마쯤의 비중으로 다룰지, 보도자료를 만들 때 이미 어림할 수 있다. 톱 기사 감인지, 1단짜리 단신인지, 솔직히 그 정도 감을 못 잡고서는 대변인실 밥을 제대로 먹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거 아니겠느냐.” 2년째 대변인실 업무를 해 온 중앙부처 한 과장의 얘기다. ●언론을 움직여라!… ‘보도자료’ 달인 보도자료는 말 그대로 기자들에게 보도될 사안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는 글이다. 똑같은 사안이라도 언론의 관심을 잡아끌 수 있게끔 내용을 포장하는 것은 대변인실만의 특화된 업무다. 실·국별로 주요 업무사안을 전달받아 경중을 따진 뒤 보도자료만 내면 될지, 좀 더 자세히 대 언론 브리핑을 해야 할지 여부도 결정한다. 홍보결과에만 열을 올리다 더러 사실이 과장될 때도 있어 기자실의 항의를 받기도 한다. 대변인실의 신경줄은 그러나 언론 쪽으로만 닿아있는 게 아니다. 부처의 정책홍보 평가 점수도 이들이 얼마나 기민하게 움직이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부처 기자실에 출입하지 못하는 언론을 위해 운영되는 정책홍보 사이트 ‘이(e)-브리핑’도 이들이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 관리하는 분야이다. e브리핑 시스템 활용도는 부처 정책홍보 평가의 주요 항목. 브리핑 룸의 장비를 활용해 한 달에 몇 건의 브리핑을 동영상으로 올리면 적절할지 등을 결정하는 것도 대변인실 몫이다. 브리핑실이 협소해 아예 e브리핑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는 법무부나 여성가족부 등의 경우는 그런 부담은 덜하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전혀 알맹이도 없는 내용의 e브리핑을 번번이 강행하기로 소문난 부처가 몇 있다.”는 한 관계자는 “e브리핑이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부처 간 홍보 과열 경쟁의 도구로 변질됐다고 자성하는 내부 목소리도 많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대변인실 일거리만 늘렸지, 정작 e브리핑을 촬영할 때 브리핑실에 참석한 기자가 한 명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그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e브리핑이 대변인실의 홍보업무를 계량화하는 주요 시스템인 만큼 신경을 쏟지 않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브리핑 활용도를 분석하는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과제홍보과의 담당자도 “e브리핑 실적을 의식해서인지 평균적으로 브리핑 횟수가 많은 부처는 늘 따로 정해져 있는 듯하다.”고 귀띔했다. ●‘청홍비 법칙’을 아시나요? “그 기사 때문에 장관한테 심하게 깨졌다(야단맞았다).” 기자들이 부처 대변인에게 흔히 듣게 되는 얘기 중 하나다. 부처에 대한 비판적 내용이 보도되면 여지없이 장관의 질타를 감당해야 하는 주인공. 그럼에도 대변인실을 거쳐가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이유는 이른바 ‘청홍비 법칙’ 때문이다. 관가에서는 ‘청와대 파견근무-홍보실(대변인실)-비서실’이 공직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위해 밟아야 하는 필수코스로 통한지 오래다.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그 의중을 정확히 꿰뚫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반면 역할을 탈없이 소화해내면 으레 영전이나 승진으로 보상받는 것도 대변인 몫이다. 노력과 수고가 인사권자인 장관의 눈에 항상 노출되는 ‘특권’을 누리는 셈이다. 정책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훈련을 하는 자리로도 평가된다. 한 대변인실 인사는 “특정사안을 액면 그대로가 아닌, 사회·정치적 역학관계를 따져 해석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자리”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공보관(옛 대변인) 출신 장관도 여럿 있다. 박명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총무처 공보관, 최종찬·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경제기획원 공보관과 건교부 공보관을 각각 지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인순이 “경연 탈락·혹평 감당할 수 있는 나는 도전하는 가수다”

    인순이 “경연 탈락·혹평 감당할 수 있는 나는 도전하는 가수다”

    데뷔 33년을 맞은 가수 인순이(54). 그녀가 올여름, 두 가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MBC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나가수’)와 다음 달 17일 개막하는 뮤지컬 ‘캣츠’에 출연하는 것. 그래서 요즘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가수 중 한 사람이다. 오는 15일 ‘나가수’ 첫 녹화가 잡혀 있고, ‘캣츠’ 연습도 막바지다. 그런 그녀의 시간표를 어렵게 비집고 들어가 지난 10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좀 더 나이들면 못 나갈것 같아 출연 결정” ‘나가수’ 얘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녀는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작진의 집요한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매번 거절했다. “다른 출연 가수들보다 나이도 많고, 괜히 나갔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을 것도 같아 거절했지요.” 그런데 왜 마음을 바꿨을까. “거절해 놓고도 고민은 되더라고요. 프로그램이 장수했으면 좋겠는데 우리나라에 가수가 한정돼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이런저런 핑계로 끝까지 안 나가면 나중에 후회할 것도 같고…. 좀 더 나이가 들면 아예 안 불러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웃음).” 인순이는 첫 경연 때 자신의 정규 앨범 17집 수록곡인 ‘아버지’를 부를 생각이라고 밝혔다. “첫 도전에 가장 맞는 노래여서 ‘아버지’를 선택했어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고. 파격적인 노래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제가 중견 가수잖아요. ‘나는 이런 가수다’라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인 것 같아 선택했어요. 끝없이 변신하더라도 나의 정체성, 나의 위치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혼혈인 인순이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그래 내가 미워했었다/…긴 시간이 지나고 말하지 못했던/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노래 가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삶을 안기고 떠난 미국인 아버지에게 오랜 시간 사랑과 미움, 그리고 연민의 감정을 안고 살아 왔다. 그녀의 ‘아버지’가 듣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이유다. 어려선 그토록 버거웠던 혼혈의 아픔도 이제는 세월이 흐르니 감당할 정도가 됐다며 웃는다. 분위기를 바꿔 ‘예상 성적표’를 물었다. “성적이요? 하하. 솔직히 걱정됩니다. 저는 무대에서 노래 한 곡을 부르려면 통상 두 달 정도 연습해요. 그런데 ‘나가수’는 연습기간이 길어야 2주라서 걱정돼요. 제 주위에서도 ‘늦게 흡수하는 사람이 어쩌려고 저러나’하고 걱정들 해요.” ●새달 17일부터 뮤지컬 ‘캣츠’에도 도전 또 하나의 고민은 퍼포먼스. “제가 무대에서 노출이 많았잖아요. 퍼포먼스도 화려하고…. 제딴에는 여러가지 변신을 시도해도 ‘인순이는 원래 파격적이잖아’라는 말을 들을까봐 신경 쓰여요.” 말로는 걱정된다는데 표정은 그렇게 초조한 기색이 아니다. “(‘나가수’ 경연에서) 탈락할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대중에게 욕을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수 생활) 30년이 넘어가니까 그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도전입니다.” 많은 후배 가수들이 닮고 싶은 선배로 인순이를 꼽는 데 대한 이유도 ‘도전 정신’이라고 스스로 분석했다. “저는 프로잖아요. 대중의 기대를 만족시키려면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신해야 해요. 그래서 이 나이에 핫팬츠도 입고, 머리도 볶았다가 풀었다가 하는 거죠(웃음).” 날이 갈수록 무대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그녀.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임해요. 참 비장하죠. 어쩌면 그것이 보는 사람을 부담스럽게 할지도 모르겠어요. 스스로 빠져들려고 노력하다 보니 노래를 편안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가수 인순이인 걸.” 11년 만에 다시 서는 뮤지컬 무대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시카고’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다. “인생을 살면서 적어도 세 편의 뮤지컬에 도전하겠노라 생각해왔다.”는 그녀는 두번째 작품으로 ‘캣츠’를 선택했다. “극 중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메모리’는 가수든 배우든 누구나 한번쯤 불러보고 싶어하는 꿈의 노래예요. 대중에게도 익숙하고요. 그냥 그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뮤지컬에 출연해 그 노래를 부른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그 노래 때문에 (‘캣츠’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가수이니까요.” ‘캣츠’는 12월 31일까지 서울 잠실동 샤롯데시어터에서 공연된다. 박혜미, 홍지민 등도 출연한다. 5만~12만원. 1577-3363 .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1)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1)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몸을 가진 생명이 모두 그렇다.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또 생명이 거쳐야 할 세월에는 어김없이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가 담긴다. 나무도 그렇다. “내게 큰 아픔이 있는 이유는 내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도덕경 제13장)이라는 노자의 이야기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오히려 살아야 할 세월이 장구한 까닭에 나무의 몸 깊이 새겨지는 생로병사의 자취는 사람보다 깊을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세월 동안 나무의 몸에 새겨진 고통의 자취를 바라보면 나무에게도 그만의 운명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무가 짊어진 운명도 사람의 운명처럼 고통의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병인박해 때 가톨릭 교인의 순교대로 우리나라의 나무 가운데에는 형장의 교수대가 되어 수천의 목숨을 앗아간 얄궂은 운명의 나무가 있다. 몸 가진 생명들이 모두 고통을 겪어야 한다지만, 하필이면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보아야 할 운명을 가진 나무라니…. 감옥 앞에 높지거니 서 있는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 회화나무의 운명은 말로 되지 않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 겪기 힘든 극심한 통증이 수피 곳곳에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박힌 건 145년 전인 1866년이다. 당시 해미읍성에는 가톨릭 교인들을 가두는 감옥이 있었다. 외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조정에서는 교인들에게 배교를 강요했다. 그러나 종교 안에서 삶의 위안을 얻으려 했던 신도들은 선선히 응하지 않았다. 가톨릭 신도는 곧 죄인이어야 했다. 감옥에 갇힌 그들은 아침마다 한 사람씩 감옥 바깥으로 끌려 나왔다. 재갈을 물리고, 오랏줄에 묶인 그들 앞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회화나무다. 죄인이 된 교인들은 나무 앞에 꿇어 앉은 채, 얼이 빠질 만큼 두들겨 맞았다. 그래도 신앙은 버리지 않았다. 선뜻 이해되지 않을 만큼 강한 믿음이었다. 큰 나무 꼭대기에 미리 달아 둔 철사 줄에 매달려야 했던 건 종교적 믿음과 바꾼 대가였다. 머리채를 묶여 매달린 지친 몸뚱어리로서는 이겨낼 수 없는 고통이 이어졌다. 뼛속 깊이 박힌 고통을 못 이겨 온몸을 축 늘어뜨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몸 가진 사람이 허공에 매달린 채로는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할 한 많은 죽음이었다. 나무는 자신의 몸에 매달려 참혹하게 생명의 끈을 놓아야 했던 사람들을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무려 1000명이 나무의 몸에 매달렸고, 천천히 죽어갔다. 잔혹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때의 처참한 고통을 병인박해라고 부른다. ●삶과 죽음의 아우성이 깊이 배어나 시인 나희덕은 절창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에서 “아직 서 있으나 시커멓게 말라버린 그 나무에는/밧줄과 사슬의 흔적 깊이 남아 있고/수천의 비명이 크고 작은 옹이로 박혀 있을 것”이라고 썼다. 회화나무는 전체적인 생김새가 아름다운 나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기개 있는 가지펼침이 학문의 길을 닮아 ‘학자수’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기괴하다. 삶과 죽음의 아우성이 깊이 배어든 나뭇결과 울퉁불퉁 튀어나온 옹이는 여느 회화나무와 다르다. 나무가 사람의 마을에 베푼 것이 삶을 앗아가는 일이었던 까닭이다. 서산 지역의 지방말로 ‘호야나무’라고 부르는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300살 쯤 됐다. 평범하게 자랐다면 넉넉하게 펼쳤어야 할 나뭇가지들은 대부분 부러져 빈약하다.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들던 사람들의 애달픈 한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스스로 가지를 덜어냈을지 모른다. 오로지 사람보다 높이 솟아오른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짊어져야 했던 고통을 붙들어 안고 나무는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세월이 흘러 가톨릭 순교의 피가 흐르던 해미읍성의 고통은 사라졌다. 볼 만한 문화재로, 혹은 수도권에서 가까운 관광지로 거듭나기 위해 스러진 옛 건물들을 다시 고쳐 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흔적도 없이 무너졌던 감옥도 새로 지었다. 주말이면 여느 마을 공원처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해미읍성 공터에 모여들어 뛰논다. 생명의 숨결을 가진 어느 몸에서도 고통의 흔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자연스레 나무의 옹이마다 새겨진 고통의 흔적을 탐색하는 눈길도 많지 않다. 그냥 스쳐 지나며 바라보는 ‘이상한 나무’일 뿐이다. ●나무가 보여주는 고통과 환희의 두 얼굴 회화나무 건너편으로 내다보이는 동헌 건물은 옛 영화를 간직한 채 울긋불긋 화려하다. 그 앞에는 가지를 넓게 펼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시인 나희덕이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고요히 걸어 들어가” 찾아보라고 했던 두 그루의 나무 중 하나다. 당대의 권세가들과 함께 부귀영화를 누렸던 것처럼 동헌 앞 느티나무는 회화나무와 달리 풍요롭고 온화한 자태를 지녔다. 속내야 어찌됐든 여유롭고 행복했던 권세가들에게 그늘을 드리우던 느티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다. 회화나무와의 거리는 고작 몇 걸음 안 되지만, 시인의 말대로 천천히 걸으면 두 나무 사이에 배어 있는 삶의 아득한 거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필경 나무 스스로가 원한 건 아니었을 텐데, 형틀의 운명을 띤 나무와 풍요로운 정자의 운명을 띤 나무가 이토록 다른 모습으로 살아 남았다는 게 얄궂기만 하다. 몸 가진 것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운명이 어찌 이리 극단적으로 갈라질 수 있을까. 나무가 보여주는 고통과 환희의 두 얼굴이다. 글 사진 서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우면산 산사태 계곡 상류서 시작… 생태공원 관련없다”

    “우면산 산사태 계곡 상류서 시작… 생태공원 관련없다”

    “생태공원이 이번 우면산 산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원 저수지가 제 기능을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10여명의 사상자와 상당한 규모의 재산 피해를 낸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원인을 놓고 일부에서는 우면산 중턱에 들어선 자연생태공원의 탓으로 지적했다. ‘형촌마을’을 뒤덮은 토사가 뒤쪽 생태공원 방향에서부터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은 7일 관련 전문가들과 현장을 둘러보며 생태공원이 꼭 산사태의 원인은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장에는 정창삼 인덕대 토목환경설계공학과 교수와 이경율 환경실천연합회 회장이 동행했다. 우면산 마을길은 어느정도 산사태와 수해 피해가 정리된 상황이다. 하지만 산속 생태공원은 입구부터 여전히 뻘밭 그래로였다. 입구 왼쪽으로 길게 난 산사태 흔적을 가리키면서 이 회장이 입을 열었다. “본래부터 우면산은 돌 위에 흙이 덮인 산이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올 때 흙을 붙잡아줄 뿌리를 가진 수종(樹種)이 없다. 지금껏 이런 일(시간당 100㎜대 기습폭우)이 없었으니까 당국도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산사태 피해 원인으로 지목됐던 저수지(연못)도 폐허이긴 마찬가지였다. ‘두꺼비 천국’이어서 어린이들의 자연생태 학습장으로 사랑받던 곳이지만 주변 시설물까지 모두 무너져 형태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였다. 줄줄 흘러내린 토사와 뿌리가 뽑힌 나무 등이 어지럽게 널린 현장을 찬찬히 살펴본 정 교수는 “생태공원과 산사태는 별개의 문제”라고 확고한 결론을 지었다. 이에 이 회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는데, 지형이 깎이고 토사가 흘러내린 흔적이 계곡 상류에서부터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정 교수는 “단시간에 많은 비가 내려 계곡으로 흘러드는 물이 많아지고 이것이 아래로 내려올수록 위력이 커지면서 주변 지형을 깎아내렸다.”며 계곡변에 뿌리를 드러낸 채 서 있는 나무들을 가리켰다. 이 회장은 “굴러 내려가는 눈덩이가 계속 불어나는 모양새”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이 방향 산사태는 군 부대와도 무관할 것이라 봤다. 지형이 무너진 흔적이 부대 경계보다는 아래쪽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앞서 서울시·서초구·전문가들로 이뤄진 조사단은 중간발표를 통해 산사태 3개 방향 중 한 곳은 군부대 빗물 모으는 시설에서 시작돼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국방부와 합동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교수와 이 회장은 공원의 저수지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정 교수는 “ 모양만 저수지일 뿐 제방 기준에 맞춰 제작된 것이 아니라서 제 기능을 못한 것”이라고 했다. 하천 분류 기준으로 볼 때 우면산 생태공원 저수지는 소하천인 ‘연못’이지 치수 기능을 갖춘 저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 교수는 “이는 토목이 아니라 조경의 결과물”이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이 회장은 관리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이 회장은 “흘러내린 물이 저수지에 모였다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결과적으로 이번 피해가 커진 것”이라면서 “폭우 때 저수지의 작은 수문만 열어두었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자동수위조절시스템’을 해법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여기에 정 교수도 동의했다. 그는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시대를 맞아 유권자들의 눈이 갈수록 높아지고, 요구도 많아져 공원이 곳곳에 설치되긴 하지만, 가장 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은 안전을 확보한 뒤 포장을 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실속 있는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다른 생태공원들이 이 같은 재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 교수가 내놓은 해답은 이렇다. 계곡과 연결된 연못이 있다면 우선 물길 안전진단부터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계곡물이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나는 걸 막기 위해 중간에 사방(砂防) 댐을 만들되, 그 모양보다 안전부터 따져 시설물을 설치할 것 등을 제시했다. 덧붙여 이 회장은 “뿌리가 얕은 활엽수 대신 침엽수로 수종을 보완·교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환경실천연합은 ‘1인 1나무 갖기 운동’도 추진할 예정이다. 예산에 대한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정 교수는 “국가예산 중 예비비는 사실상 매년도 방재비용으로 쓰여 왔다.”며 “이를 차라리 방재 예산으로 공식화하면 지속적인 재해 예방에 크게 도움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회장 또한 “방재는 규모가 크고 당장 눈에 띄지 않아 지자체장이 예산을 쏟아넣는 데는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이라고 동의했다. 한편 지난달 27일 발생한 산사태로 아래쪽에 자리한 형촌마을에서는 120가구 가운데 60가구가 고립되고, 사망자 1명을 포함 1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글 사진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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