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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책 한 권만 읽기/석영중 고려대 노문학과 교수

    [열린세상] 책 한 권만 읽기/석영중 고려대 노문학과 교수

    러시아 시인 만델슈탐은 평생 동안 딱 한 권의 책만 읽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독자라고 했다. 예전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시인이라서 뭔가 비유적으로 말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나라 청소년의 독서 현황을 접하다 보니 새삼 만델슈탐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출판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2010년 국민독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은 한 학기에 평균 29.5권의 책을 읽는다. 고등학생은 대학 입시 때문에 그렇겠지만 그보다 훨씬 적은 7.6권을 읽는다. 고등학생이 한 학기에 7.6권을 읽는 것이 적당한 것인지 부족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9.5권이건 7.6권이건 그것이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면접에 응하는 학생들이나 연구실에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꼭 지난 3년 동안 주로 어떤 책을 읽었는지 물어본다. 학생은 매우 곤혹스러워하며 어렵사리 몇 권의 책을 생각해 낸다. 그러면 나는 그 중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에 관해 말해 보라고 한다. 학생은 아까보다 더 곤혹스러워한다. 대부분의 경우 오래전에 읽어서 잘 생각이 안 난다, 읽긴 읽었는데 정리가 잘 안 된다, 이런 식의 답변이 되돌아온다. 더 심한 경우에는 아예 책의 저자와 내용을 다 뒤섞어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한다. 나는 청소년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이 읽어서, 혹은 너무 많이 읽으려고 애를 써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일선 교사들도 모두 독서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독서 강박증이 생긴다. 여러 출판사와 기관과 단체에서 제공하는 ‘○○○를 위한 권장도서 목록’, ‘필독 100선’, ‘필독 50선’ 같은 독서 목록들은 원래 책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작성된 것이지만 이제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조급증을 선사하고 있다. 시간은 촉박한데 목록에 있는 100권은 기필코 다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독서 목록과의 전쟁이 벌어진다. 인터넷을 떠도는 온갖 정보들과 고전에 대한 내용 요약은 이 전쟁의 필수적인 무기다. 전쟁이 끝난 뒤 머릿속에 남는 것은 제목과 저자의 이름뿐일 때가 많다. 이런 식으로 읽을 거라면 일 년에 100권을 읽건 1000권을 읽건 별 의미가 없다. 차라리 무거운 고전 한 권을 제대로 읽는 것이 훨씬 낫다. 만일 일 년에 딱 한 권의 책만 읽어야 한다면 우리는 그 한 권의 책을 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사를 할 것이다.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여러 권장 도서 목록을 비교도 해보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장르가 무엇인지 자문도 해볼 것이다. 이 과정 자체가 이미 독서다. 필독서 목록에 있는 책을 1번부터 숨 가쁘게 읽어 나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런 다음 꼭꼭 씹어 먹듯이, 관련 서적도 읽어 가며, 마음에 와 닿는 대목에는 줄도 쳐 가며, 이런저런 생각도 해 가며, 긴 호흡으로 책을 읽는다. 일 년에 한 권만 읽을 예정이므로 시간은 충분하다. 이렇게 읽다 보면 해당 책뿐 아니라 해당 책의 내용과 관련된 온갖 지식과 정보가 자연스럽게 나의 것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책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우리의 뇌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장기증강(LTP)이란 것인데, 함께 연결되는 신경세포들의 연결 강도와 빈도가 회를 거듭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그 영향력이 매우 장기화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처음 할 때는 언제나 시간과 노력이 많이 요구되지만 하면 할수록 시간과 노력이 단축된다는 뜻이다. 이 장기증강 덕분에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결국 수월하게 10권, 100권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 학생 일인당 평균 독서량은 지난 2008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오고 있다. 아마도 각급 학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를 장려해 온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독서량의 증가가 곧 지적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독서 방식의 질적 제고를 위한 좀 더 현실적인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 세계선수권을 통해 본 박태환의 런던올림픽 적수는?

    세계선수권을 통해 본 박태환의 런던올림픽 적수는?

    “1년은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성실히 훈련하면 이번보다 나은 성적을 보여줄 수 있다.”(박태환, 27일 100m 준결승 직후) 그렇다. 박태환(22·단국대)은 이번 상하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실력을 가늠했으니 이제 내년 런던올림픽에서 꽃을 피울 태세다. 절정의 기량을 선보일 박태환과 대적할 만한 적수는 누가 있을까. 주종목인 자유형 400m에서 박태환은 3분 42초 04로 금메달을 따며 이 종목 최강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러나 안심할 수만은 없다. 은메달(3분 43초 24)을 딴 쑨양(20·중국)이 런던에서는 더욱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린을 제치고 중국의 기대주로 떠오른 쑨양은 실력이 급상승하고 있다. 호주의 수영 영웅 그랜트 해킷의 스승인 데니스 코터렐(호주) 코치의 지도를 받으면서부터다. 쑨양의 또 다른 장점은 강한 승부욕이다. 주종목은 자유형 800m지만 박태환을 이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다. 쑨양은 이번에도 “박태환이 출전하는 400m를 반드시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자유형 200m는 박태환에게 그동안 ‘메달권’이 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아쉽게 4위(1분 44초 92)에 그쳤지만 금메달의 라이언 록티(미국)와 불과 0.48초 차이에 불과했다. 박태환에게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기엔 충분한 기록이었다. 이번에 드러난 단점만 보완한다면 런던에서는 금메달도 노려볼 수 있다. 이번 자유형 200m 결승에서 박태환은 출발 반응속도가 0.66초로 가장 빨랐지만 스타트가 좋지 않아 초반에 고전했다. 처음 50m 구간에서는 5위, 100m에서는 6위까지 밀려났다. 마지막 50m 구간에서는 결승 진출자 중 가장 빠른 26초 35를 기록해 막판 폭발적인 스퍼트를 냈음에도 역전이 어려웠던 이유다. 런던에서 가장 큰 경쟁자로 떠오른 선수는 록티가 아닌 프랑스의 신예 야닉 아넬이다. 아넬은 이번 대회에서 1분 44초 99로 5위에 머물렀지만 나이가 어리고 상승세가 무서운 선수다. 202㎝, 80㎏의 훌륭한 체격 조건을 갖춘 아넬은 유럽 수영의 샛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유럽 수영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고, 자유형 200m와 400m 프랑스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에서 자유형 200m 은메달, 접영 200m 금메달을 따며 건재를 과시한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에 대한 경계도 늦출 수 없다. 박태환은 200m 경쟁자로 펠프스를 꼽았다. 박태환은 자유형 100m 출전을 고심한다. 지난 27일 100m 준결승에서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묻자 “뛰면 좋긴 한데 제가 다 나가면 다른 한국 선수들이 못 나가지 않나.”라며 확답을 하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 ‘스프린터’로의 면모를 보여줬지만 자유형 100m에서는 아직 세계의 벽이 높다. 그러나 주종목인 400m와 200m에서 스피드를 끌어올린다면 100m에서의 승부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아무리 퍼내도 흙탕물…” 복구중 폭우로 대피

    전날 사상 최악의 폭우와 산사태로 18명의 생명을 앗아 간 서울 우면산 일대는 28일에도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오전 8시쯤 방배2동 전원마을은 가구와 가재도구 등이 떠밀려온 토사와 나뭇가지 등으로 뒤엉켜 폭격을 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낮은 지대인 전원말2길 쪽 주택가에는 진흙과 쪼개진 나무조각들이 가득 들어차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 위쪽 우면산 자락에서는 거센 흙탕물이 콸콸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주민들은 섣불리 복구작업에 나서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산기슭 아래 쪽에 사는 최기숙(58·여)씨는 새벽 6시부터 4시간이 넘도록 반지하 주차장에 가득 들어찬 진흙을 걷어내던 중이었다. 5명의 소방대원이 양동이를 들고 힘을 보탰지만 흙탕물 수위는 좀체 낮아지지 않았다. 최씨는 “이 마을에서 20년을 살았는데 이런 난리는 처음”이라면서 “작년 여름 태풍 때 위태위태하던 나무들을 뽑아달라고 했는데 그냥 둬 이렇게 화를 불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27일 오전 이 마을 주민 엄모(33)씨는 출근길에 나서다 토사와 나무에 휩쓸려 숨졌다. 임시대피소인 남태령 마을회관은 성토장이 됐다. 마을주민 손모(49·여)씨는 “산을 가만두질 않고 계속 깎아대니 안 무너지고 배기겠느냐.”면서 언성을 높였다. 이에 대해 서초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태풍 곤파스로 뽑힌 나무가 많아 지반이 완전히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집중호우가 쏟아져 산사태가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오전 9시쯤 방배3동 래미안아트힐 아파트에서는 경찰·소방·군 병력 600여명이 동원돼 아파트 1~4층을 뒤덮은 진흙을 퍼내고 있었다. 한 삽씩 일일이 퍼내야 해 속도가 더뎠다. 우면산 쪽에 가까운 103·104동의 피해가 가장 컸다. 주민 홍윤상(56)씨는 “지난해에도 우면산 계곡쪽 토사가 남부순환도로 위로 넘어온 적이 있다.”면서 “이 때문에 구청이 배수로와 맨홀을 넓히는 공사를 하고 있던 것으로 알았는데 여름이 다 돼서 하면 뭘 하느냐.”고 지적했다. 이 아파트를 마주 보고 있는 예술의전당도 복구작업이 더디긴 마찬가지였다. 오전 내내 내린 비에 흙탕물 계곡은 전날에 비해 줄지 않았다. 오락가락하던 빗줄기가 오전 10시쯤 점차 굵어지자 복구작업 지원을 나온 공무원 20여명은 결국 삽을 놓고 버스정류장 밑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한편 27일 방배동 윗성뒤마을에서 산사태로 실종됐던 김모(67·여)씨가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자신의 집에서 250m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또 방배동 전원마을에 매몰됐던 이모(68·여)씨와 우면동 송동마을의 김모(77·여)씨의 시신이 발견되는 등 사망자 수는 전날에 비해 3명 늘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김계관 “6자회담 통해 비핵화로 전진”

    김계관 “6자회담 통해 비핵화로 전진”

    북·미접촉을 위해 26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피력했다. 김 부상은 뉴욕 JFK공항 입국장에서 이번 북·미접촉의 목표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6자회담을 통해 비핵화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6자회담 재개 의지는 물론 비핵화와 남한에 대한 도발 중단 등에 대해 논의할 여지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어서 주목된다. 김 부상은 ‘6자회담 재개를 낙관하는가.’라는 질문에 “낙관한다.”고 답했고, ‘북·미관계 개선도 낙관하나.’라는 물음에는 “세상 모든 나라들이 서로 화해하고 살아가야 할 때니까 그 방향에서 낙관한다.”고 했다. 그는 미리 말할 내용을 준비하고 나온 듯 취재진에 “한 말씀 해도 되나.”라고 물은 뒤 “나는 이번에 미 국무부의 초청에 의해 쌍무관계와 현안문제들, 또 6자회담 문제 등 관심사들을 논의하러 왔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6자회담 재개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핵사찰 수용과 핵개발 모라토리엄을 수용할 의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런 얘기는 (북·미접촉이) 끝난 다음에 하자.”라고 했다. 민감한 내용에 대한 즉답을 피한 것이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부정을 하지 않은 것은 타협의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만나느냐.’는 질문에 “(나를) 만나자고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답했고, ‘워싱턴DC를 방문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사람들(미국)이 계획하는 대로 하는 것”이라고 말해 미국 쪽에 협상의 형식이나 의제를 맞춰줄 의사가 있음을 드러냈다. 이날 분위기를 요약하면, ‘일이 되는 쪽’으로 협상을 해보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따라서 28일 보즈워스 대표와의 회담에서는 상당히 깊숙한 부분까지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다룰 문제는 다 다룰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특히 김 부상은 ‘언제까지 체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확답을 피해, 회담 추이에 따라서는 미국에 비교적 오래 머물면서 미국과의 다단계 협상을 갖는 수준까지 기대하는 기색을 보였다. 김 부상을 수행한 북한 대표단에는 리근 외무성 미국국 국장은 물론 북한 측 6자회담 차석대표를 맡고 있는 최선희 부국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항 입국 현장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뉴욕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엄마, 살인마가 총을 쏴” 노르웨이테러 母女의 문자

    “엄마, 살인마가 총을 쏴” 노르웨이테러 母女의 문자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잔혹한 총기난사테러 당시 한 소녀가 몸을 피한 채 어머니와 몰래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가 공개됐다. 2시간에 걸쳐 주고받은 이 메시지에는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가 총을 난사했던 당시 아비규환 분위기가 생생히 드러나 있었다. “엄마 사람들이 죽어가요.” 지난 22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우퇴위아섬에서 열린 노동당 청년캠프에 참석했던 줄리 브렘네스(16)가 어머니 마리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건 오후 5시 10분. 하르스타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쉬고 있던 마리안은 처음에는 딸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몰랐다. 상황을 알아보려고 TV를 켜자 뉴스에는 한 남성 테러범이 우퇴위아섬에 있던 아이들에 무차별 총기를 난사했다는 속보가 타전되고 있었다. 마리안은 “순간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고 당시의 충격을 전했다. 이내 침착을 되찾은 마리안은 딸에 “경찰이 곧 도착할 게다. 제발 5분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서 살아있는 지를 알려주겠니.”라고 문자를 보냈고, 모녀의 문자메시지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줄리는 해안에 있는 바위에 몸을 숨기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함께 캠프에 참석했던 남동생은 범인이 총기난사를 시작하자마자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구했다. 줄리는 재빨리 소년 2명과 한 소녀와 함께 바위 뒤에 숨어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줄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테러범의 총에 희생됐다. 줄리는 “엄마, 경찰에게 서둘러 달라고 해줘요.”, “바위 뒤에 숨어 있어요.”, “미친 남자가 계속해서 총을 쏘고 있어요.”라며 어머니에게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어머니는 이에 “뉴스를 보니 테러범이 경찰복을 입고 있다.”, “테러범이 완벽하게 제압되기 전까지는 나오지 말라.”고 침착하게 당부했다. 위급한 순간이었지만 줄리와 어머니는 문자메시지로 뜨거운 정을 확인하기도 했다. 줄리가 “엄마, 가끔 제가 소리를 지르긴 하지만 정말 사랑해요. 무섭긴 하지만 용기 잃지 않을게요.”라고 사랑을 고백했자 어머니는 끓어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잘 알고 있어, 딸아. 엄마도 똑같은 너와 마음이야.”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둘의 마지막 메시지가 오간 건 오후 7시 1분. 드디어 광기어린 테러범이 대테러 경찰들에 제압되고 줄리가 경찰에 무사히 구조된 것. 줄리는 “어떤 뉴스가 나오고 있나.”고 묻자 “경찰이 섬에 도착했고 이제 널 구해줄 거다. 경찰이 범인을 잡았다는 구나.”란 마리안의 대답으로 이들의 긴박했던 대화는 끝이 났다. 한편 폭탄테러와 총기난사로 총 76명의 생명을 앗아간 브레이빅은 극우주의자로, 무슬림 이민자로부터 서유럽을 구하려고 이 같은 테러를 자행했다고 밝혔다. 애초 단독범행을 주장해왔지만 최근 열린 첫 재판에서 브레이빅은 연계된 조직이 2개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탄저균을 사용해 생물학테러를 일으키려 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한국 애니 안 된다는 편견 확 깰 겁니다”

    “한국 애니 안 된다는 편견 확 깰 겁니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의 가정집을 개조한 명필름 사무실. 곳곳에 ‘D-8’이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개봉(27일)이 임박한 탓인지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2005년 황선미 작가의 베스트셀러 ‘마당을 나온 암탉’의 판권을 산 지 꼬박 6년. 난산 끝에 ‘옥동자’를 낳았다. 하지만 관객의 평가를 받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제작사인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와 공동제작 및 연출을 맡은 오성윤 감독에게 치열했던 지난 6년을 들어봤다.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1963년생 동갑내기는 대화를 나눌수록 묘하게 어울렸다. ‘짝패’란 꼭 닮아야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1986년 서울극장 기획실에 몸담은 이후 충무로에서만 25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제작자 심 대표는 “명필름이 제작한 꼭 30번째 영화다. 그런데도 기자 대상 시사회 전날 잠이 안 오더라.”고 털어놨다. 어릴 때부터 그림이 너무 좋아 미대(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했지만, 연극에 더 끌렸다. 대학을 졸업한 뒤 애니메이션 기획과 프로듀서로 활동하다가 20여년 만에 ‘입봉’한 오 감독은 “데뷔작이지만 마음은 심 대표와 똑같다.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요즘 설사를 많이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마당’을 먼저 발견한 건 오 감독이다. 심 대표는 “가족영화 소재를 찾던 터에 원작을 읽었다. 출판사에 확인해 보니 오 감독이 구두계약을 맺고 영화 기획에 돌입한 상태였다. 마침 남편(이은 명필름 대표)과 오 감독이 아는 사이인 데다 애니메이션 전문제작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손을 내밀었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실사영화 경험이 많고 배급을 뚫을 수 있는 영화사가 필요했다. 0순위로 명필름을 올려놨는데, 외려 제안이 들어왔으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프로덕션(실사영화 촬영 단계)에 돌입하기 전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심 대표는 “시나리오 작업만 3년이 걸렸다. 한번도 제작일정이나 개봉 시기가 계획과 어긋난 적이 없는데 ‘마당’은 1년이 늦어졌다. 긴 시간을 버티다 보니 자금을 동원하는 파이낸싱 작업도 힘들었다. 작품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메이저 투자배급사가 나서야 했는데 다행히 올 초 롯데(롯데엔터테인먼트)와 얘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마당’의 장점은 수십명의 애니메이터들이 2년여 동안 ‘엉덩이로 그린’(업계에서 ‘애니메이션은 손이 아닌 엉덩이로 그린다’는 말이 있다) 12만장의 밑그림에서 얻은 아름다운 화면이 전부는 아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자유의지와 타인에 대한 배려·희생, 모성애 같은 묵직한 주제의식을 ‘잎싹’과 ‘초록’ 등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녹여냈다. 가르치듯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도록 한다는 게 영화의 또 다른 미덕이다. 심 대표는 “암탉(잎싹)이란 미물이지만, 평범한 인간은 상상도 못할 존재다. (문)소리씨한테 ‘한국 영화 사상 가장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규칙과 질서에 의구심을 갖고 왕따를 불사하면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잎싹의 삶은 미국 할리우드 만화에서 꿈을 이뤄가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고도 했다. 오 감독 역시 “사자(디즈니의 ‘라이온킹’)쯤 돼야 영웅의 면모가 나올 텐데 하찮은 암탉이 정체성을 찾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설정이야말로 평범한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다. 선악 구도가 분명한 디즈니나 픽사,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우리만의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마당’의 순제작비는 31억원, 마케팅비용을 더하면 50억원에 육박한다. 150만명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에 이른다. 더군다나 올여름은 ‘트랜스포머3’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 ‘퀵’ ‘고지전’ 등 국내외 블록버스터들까지 맞붙는 상황. 일단 첫번째 목표는 한국 애니메이션 최다관객 기록을 보유한 ‘로보트 태권V’(2007·72만명)를 넘어서는 데 있다. 심 대표는 “100만명만 넘어도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를 새로 쓰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한다. 그래야 ‘한국 애니메이션은 안 된다’라는 선입견을 없앨 수 있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이어 “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고 가서 보여줄 수 있는 영화라고 자부한다. 물론 ‘애들 영화’가 아니라는 입소문이 나서 젊은 층도 많이 봤으면 한다. 그래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며 웃었다. 오 감독도 “20여년 만에 입봉한 작품인데 손익분기점만으로는 어림없다. 한을 풀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6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으니 또 뭉칠 법도 하다. 심 대표는 “하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니다. 투자자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마당’이 잘 되면 적극적으로 애니메이션을 고민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오 감독은 “몇 작품이 될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이 장르로 자리잡기 전에는 영화사와의 공동작업이 필수다. 명필름과 계속하면 좋을 것 같은데…”라며 심 대표를 슬쩍 쳐다봤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마당을 나온 암탉 2000년 5월 초판 발행 이후 100만부가 넘게 팔린 황선미 작가의 동화를 애니메이션화했다. 알을 얻으려고 길러진 난용종 암탉 ‘잎싹’(목소리 연기 문소리)의 꿈은 한 번만이라도 알을 품어보는 것. 양계장을 탈출하던 날, 잎싹은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족제비를 만나 죽을 뻔 한다. 다행히 청둥오리 ‘나그네’(최민식)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잎싹은 우연히 청둥오리 알을 품어 ‘초록’(유승호)을 아들로 얻는다. 하지만 초록이 클수록 엄마와는 다른 종(種)이라는 데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 조폭과 북파공작원 출신이 서로 한판 붙으니…

    조폭과 북파공작원 출신이 서로 한판 붙으니…

    애국가와 함께 단정한 태권도복을 입은 한 중년 사내가 입장한다. 다른 선수들보다 10살 이상은 더 많아 보인다. 강한 포스가 느껴진다.애국가에서 갑자기 빠른 비트의 음악으로 바뀌고 사내가 도복을 벗어 던진다. 24일 오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국내 유일의 프로종합격투기 ‘로드FC 003 EXPLOSION’.대회의 7번째 경기에 출전한 조직폭력배 출신 파이터 이한근(42·정심관 소속)선수와 국군정보사령부 부사관 출신 김종대(31·팀포스)선수가 8각의 케이지 안에서 우뢰와 같은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서로를 노려본다. 국군정보사령부는 과거 북파공작원 양성으로 유명했던 육군 첩보부대 HID(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의 후신. 조폭과 북파공작원이란 독특한 이력을 지닌 두 선수의 스페셜 매치는 경기 이전부터 화제가 됐다. 프로경기는 두 선수 모두 처음인데 대략 승리는 김 선수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몸놀림이 빠른 김 선수의 펀치가 이어졌다. 이 선수는 갑작스런 공격에 무릎을 꿇는 등 2차례 다운 위기를 맞으며 금세라도 무너질 듯 보였다. 간간이 손과 다리를 뻗어 보긴 했지만 육중한 덩치 때문에 경기가 쉬워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일방적인 공격에 당하는 찰나, 두 선수가 서로 카운트펀치를 날렸다. 그 충격에 이 선수가 먼저 쓰러지는 듯 했으나 이내 바로 몸을 곧추세웠다. 반면 지칠 줄 모르던 김 선수는 밑동을 잘라낸 나무마냥 “쿵”하는 소리를 내고 링에 쓰러졌다. 관중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파상공세에 밀리던 이 선수가 관중석의 예상을 깨고,1라운드 1분18초만에 짜릿한 KO승을 쟁취한 것이다. 이 선수는 경기 직후 링 위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데니스강 등이 출전하는 로드FC의 미들급 토너먼트에 도전해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까지 운동 파트너로 동생이 많이 도와줬는데 앞으로도 계속 (나와)함께 한다면 하겠다.”라고 밝혀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다음은 선수 대기실 앞에서 서울신문과 단독으로 가진 인터뷰 주요 내용. →오늘 경기 어땠나? 승리의 요인은 뭔가. 힘 좋은 젊은 선수들과 하면서, 난 나이가 많은 노장 선수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을 대신해서 뛴다고 생각했다.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두려고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 김종대 선수도 열심히 했지만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이번 계기로 격투기 종목이 많이 흥행됐으면 좋겠다. →이 순간 지금 누가 가장 생각나는지. 시합 중 세컨드(격투기 경기 중 선수를 돌보는 사람)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실제로 현재 아무런 생각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처음 프로 무대에서 경기를 한 소감은. 다른 좋은 선수들도 많은데 나 같은 선수에게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 노력한 만큼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쉽지만, 오늘 KO로 좋은 결과가 나와 좋다. →운동을 왜 시작했고 얼마나 됐나. 주먹만 믿고 의미 없이 방탕하게 살다 후회했다. 체육관을 하면서 의미 있는 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하면서 달라진 점은. 예전에는 쉽게 포기하고, 비전 없이 막 살았다. 운동을 접한 후 지금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정신이 생겼다. 또한 체육관을 차리려는 비전도 생겼다. →조폭 시절 실전과 격투기와 어떻게 다른가. 예전에 막 싸움은 기 싸움이니 안 밀리고, 한·두번 주먹질에 싸움이 끝났다. 하지만 이 운동은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과 하나 뻗으면 두 개 나오는 식의 공식이 있다. 예전에는 내 기세대로 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강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이 무섭고 내가 움츠려 든다. →종합격투기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이 먹고 운동을 하려다보니 힘도 들고, 특별한 직업도 없으니 경제적 부담도 든다. 게다가 젊은 선수들 감각을 쫓아 가려다보니 힘들다. 동영상을 찾아보고 해야 하는데 부족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정도까지는 시합을 뛸 수 있으면 몸 관리를 잘 해서 나이가 많아 직접 못 뛰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계속 뛰고 싶다. 그 후 환경이 된다면 체육관을 장만하여 보람되게 살고 싶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무런 기술도 없이 벌써 42살이다. 다른 일을 하려는 마음은 있어도 42살에 돈도 없고 무엇을 하겠나? 나 같은 경우 운동을 하고 있으니깐 망정이지 마음이 있어도 못하고 있는 분들 많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고 생각한다. 용기내서 열심히 하길 바란다. 나는 현재 종교가 있다. 하늘에 계신 높은 분 무서워하면서 성실히 살려고 노력중이다.. 취재 성민수PD 촬영 장고봉PD globalsms@seoul.co.kr
  • 죽은 아버지가 보낸 ‘천국의 편지’ 감동

    죽은 아버지가 보낸 ‘천국의 편지’ 감동

    죽음의 문턱에서도 오직 자식만 생각했던 한 영국 남성의 아름다운 부성애가 많은 이들을 감동으로 적셨다. 생사를 오가는 암 투병 중에도 이 남성은 자녀들을 위해 훗날 자신의 빈자리를 대신할 아름다운 선물을 준비해뒀다고 데일리메일이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경제학 교사였던 폴 플래내건은 2009년 11월 5세 아들 토마스와 1세배기 딸 루시를 남기고 45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플래내건은 피부암을 진단받은 지 9개월 만에 암이 온몸으로 전이되는 고통 속에서도 자녀들을 위한 선물을 묵묵히 준비했다. 최근에야 공개된 그의 선물은 위대했다. 평소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던 폴은 자녀들을 위한 편지 수백통을 손수 써서 집안에 숨겨뒀다. 또 성인이 되기 전까지 매년 생일에 토마스와 루시가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스무 개 남짓의 선물을 손수 사뒀다. 뿐만 아니었다. 플래내건은 자신이 감명 깊게 읽었던 책들로 서재를 꾸민 뒤 모든 책에 감명을 받았던 이유와 읽고 난 뒤의 소소한 감정을 적었다. 나중에 자녀들이 컸을 때 아버지와 책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 특히 플래내건은 ‘삶에 만족하는 28가지 방법’(On finding fulfilment)이란 긴 메모를 컴퓨터에 남겼다. ’천국의 편지’에서 플래내건은 행복한 인생을 위해선 ‘충성’, ‘진실성’, ‘도덕적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몇 주 전 말기암 판정을 받은 뒤 나는 슬픔 속에서도 지혜를 찾으려 노력했다.”면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공식은 의외로 매우 간단하고, 너흰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격려했다. 이 아름다운 선물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부인 맨디(44). 그녀는 “남편이 남긴 뜻밖의 선물을 보고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면서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남편은 자신을 동정하려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생각했다. 지혜롭고 다정했던 아버지다운 따뜻한 선물에 나 역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플래내건의 사연은 영국 전역에도 큰 감동으로 전해졌다. 영국의 많은 네티즌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한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에 감동했다.”, “행복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알려줬다.”며 그의 위대한 사랑을 곱씹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명품 쓰니 행복하십니까…年 5兆 ‘봉’ 노릇한 당신

    명품 쓰니 행복하십니까…年 5兆 ‘봉’ 노릇한 당신

    한국 소비자는 외국 명품업체들의 ‘봉’인가. 지난 1일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가장 관심을 모았던 부분은 이른바 ‘명품’으로 불리는 유럽산 고가 브랜드들이 가격을 낮출 것인가였다. 관련 업계 관계자들에게 문의할 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모른다.”거나 “아닐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FTA가 정식 발효되면서 10% 안팎의 관세가 철폐됐지만 가격을 낮추겠다고 밝힌 업체들은 극소수다. 에르메스가 평균 5.6%, 샤넬이 3% 인하를 발표했을 뿐 나머지 업체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실 국내 명품 가격의 거품은 관세 때문이 아니다. “외국 수입 제품은 한국에 들어오면 최소 4배 뻥튀기를 한다.”는 한 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고가 전략으로 소비자의 욕망을 부추기고 이를 통해 매출을 극대화하려는 업체들의 얄팍한 상술이 작용한 것이다.  22일 서울신문 조사에 따르면 샤넬의 인기 제품 클래식 캐비어(M)의 한국 판매 가격은 579만원. 반면 일본에선 523만원, 중국 556만원, 미국 420만원으로 한국 소비자가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 고가 전략은 명품 업체들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국내에 들어온 명품 브랜드 가운데 매출 1위인 루이비통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매출 4273억원·영업이익 523억원을 기록했다. 구찌코리아도 지난해 2730억원의 매출에 43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프라다코리아는 1756억원의 매출에 영업이익은 437억으로 24.8%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보였다. 유한회사로 등록된 샤넬은 연간 매출액이나 수익 등이 베일에 싸여 있지만 최근 몇년 새 여성들 사이에서 샤넬 백이 혼수 품목으로 떠올라 짭짤한 매출 증가를 누리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소비생활연구원 정책연구팀 이혜영 실장은 “명품 가격도 기본적으로 시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업체 중심으로 가격이 결정되면서 유통질서도 왜곡되고 있다.”면서 “명품을 선호하는 소비사회이긴 하지만 소비자가 약자 입장이 되는 가격 결정 구조를 바로잡는 정책이 뒤따라 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래에셋증권 자료에 따르면 국내 명품 시장은 해마다 20%대의 성장을 거듭, 연간 5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05년 8670억원이던 5대 백화점의 명품 부문 매출이 5년 만에 3배 가까이 성장해 지난해 2조 3000억원에 달했다. 연평균 성장률은 22.4%에 달한다. 이뿐 아니라 면세점 명품 매출도 급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루이뷔통의 면세점 매출은 지난해 400%나 뛰었다. 이러다 보니 유명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체들이 명품 업체를 모시기(?) 위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백화점 입점 명품 매장의 수수료는 10~15%로 알려져 있지만 지방 신규 출점 점포에 입점시키기 위해 한 자릿수대의 수수료만 받는다는 소문도 떠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국내 명품 시장이 크고 있다지만 명품 업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아주 작은 시장에 불과하다.”면서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명품 업체들이 뻣뻣하게 구는 이유는 한국에선 가격을 올리면 오히려 더 잘 팔린다는 통념 때문이다. 보통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른바 ‘베블런 효과’라는 기이한 현상이 명품 산업에서 두드러진다. 롯데백화점의 올 상반기 명품 매출은 지난해보다 36.7% 증가했다. 특히 지난 4월엔 전년 동월 대비 67.5%나 폭등했다. 샤넬이 5월부터 가격을 올린다는 소식이 소비심리를 자극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들도 ‘샤넬 효과’라며 놀라워했을 정도다.  사실 명품 산업의 활황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면서 가처분소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명품병은 더 유별난 점이 있다. 우리 사회 특유의 비교와 경쟁 심리가 ‘명품욕’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회문화적 동질성과 거주 밀집성으로 인해 처절할 정도로 이웃과 비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삶의 만족감이 이웃과의 비교로 결정되는 이른바 ‘이웃효과’는 한국인의 삶의 전 국면을 지배하고 있다. ”고 지적하기도 했다. 과시적이며 모방적인 소비문화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현대인의 바쁜 일상에서 찾기도 한다. 소득은 늘어났지만 장기여행이나 레저 등으로 느긋하게 삶을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값비싼 가방이나 시계 구매를 통해 스스로에게 보상하는 소비행태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지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 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러운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벨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 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 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은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 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 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 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힌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러운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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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G영화라면 톱 배우보다 잘 놀 수 있죠”

    “CG영화라면 톱 배우보다 잘 놀 수 있죠”

    영화 ‘퀵’의 주연배우 강예원(31)을 만난 지난 15일,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 팔판동의 카페에서 만난 강예원은 “(관객 1100만명이 든) ‘해운대’ 시사 때 비가 왔는데 ‘퀵’의 시사 때도 그랬다. 오늘도 비가 온다.”며 활짝 웃었다. 느낌이 좋다는 얘기다. 20일 개봉하는 ‘퀵’은 100억원(순제작비 80억원)이 투입된 액션 블록버스터다. 전설적인 폭주족에서 퀵서비스맨으로 변신한 기수(이민기)는 생방송 시간에 쫓기는 걸그룹 멤버 아롬(강예원)을 방송국에 데려다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웬걸, 가 보니 고교 때 여자 친구 춘심이다. 그때 전화가 울린다. 기수의 헬멧에 폭탄이 장착돼 있고, 30분 안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폭파시킨다고. 생존을 위해 도심과 빌딩 숲을 헤짚는 질주가 시작된다. ‘퀵’은 블록버스터 전쟁의 복판에 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트랜스포머 3’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가 이미 개봉했고, 한국 영화 경쟁작 ‘고지전’이 같은 날 개봉한다. 그런데도 강예원은 자신만만했다. “재미로만 따지면 여태껏 나온 한국영화 중 최고의 오락 영화”라며. →오토바이 헬멧을 계속 쓰고 촬영하는 게 고역이었겠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찍었다. 여름에 너무 숨 막혀 목디스크에 두통까지 생겼다. →스턴트맨이 있지만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고 들었다. 언제 가장 힘들었나. -헬멧을 쓴 채 옷을 모두 벗고 샤워하며 펑펑 우는 장면이 있는데 감정이 잡히지 않아 힘들었다. 일각에서 ‘오버 연기’를 지적하던데 결코 오버가 아니다. 머리에 진짜 폭탄이 장착돼 있다고 생각해 봐라.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나. 홍상수 감독님 영화 속 인물처럼 연기한다면 어울렸을까. 물론 만화적인 설정이 많아 배우들도 처음엔 손발이 오글거렸다. 하지만 그걸 의식하기 시작하면 관객들이 볼 땐 더 어색하다. 그때부터 난 ‘춘심이로 사는 5개월이 하나도 안 창피해’란 식의 세뇌를 계속했다. →‘해운대’, ‘하모니’, ‘헬로우 고스트’ 등 여러 흥행작에 출연했지만 실질적인 주연은 처음이다. 기획·투자 단계에서 “배우가 약하다.”는 말도 많았는데. -CJ가 돈이 남아돌아서 무모한 캐스팅에 투자했겠나. 윤제균 감독님이 제작하는 것도 컸겠지만 나나 민기씨가 ‘해운대’에서 1000만명을 넘기지 않았다면 캐스팅하지 않았을 거다. ‘해운대’에서 특수촬영을 한 것은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이었다. 덕분에 ‘퀵’에서 또 다른 경험을 했다. (특수효과가 많은 블록버스터) 경험을 안 해본 톱배우보다 현장에서 더 잘 놀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민기씨가 “강예원씨가 비명을 너무 잘 질러 힘들었다.”고 하던데 설정된 리액션인가. -내가 한 건 연기가 아니고 모두 ‘리얼’이다. 음악을 해서 그런지 소리에 예민하다. 폭탄이 터질 때마다 하도 비명을 질러 처음엔 주위에서 걱정하더니 나중에는 ‘(터질 줄) 다 알면서 왜 또 저래’라며 웃더라. 나는 겁이 나 죽겠는데…(웃음). →음악 얘기 좀 해보자. 성악 전공(한양대 음대)인데 왜 진로를 바꿨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선명회 어린이합창단 활동을 했다. 대학에 가니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웃음). 중·고교 때부터 가수나 연기를 해보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음악으로 연기를 하는 게 성악이라면, 말로 연기를 하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어른이 된 뒤 진로를 결정하고 싶어서 당시 기획사 제안은 모두 거절했다. →2004~2007년 사이 경력이 비었던데. 또래 배우들에게 뒤처지는 초조함은 없었나. -휴학했던 대학을 다시 열심히 다녔다. 연극영화과가 아니어서 봐주는 것도 없고 1주일 내내 레슨받고 빡빡하게 살았는데 재밌더라. 작품이 들어오긴 했는데 안 끌렸다. 크게 초조하지는 않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기획사에서 가수 제의도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땐 연기에 대해 뭘 알았던 것도 아닌데 왜 그리 고집을 피웠는지 모르겠다. 하하. →혈액형이 O형인데 실제 성격은 어떤가. -밝고 긍정적이다. 다 잘될 거라고, 할 수 있다고 늘 다짐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싫다. 험담도 싫다. 사랑하며 살기도 빠듯한 세상 아닌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그때그때 푼다. 솔직한 편이다. →출연작들마다 흥행이 잘됐다. 선구안이 좋은 건가. 운인가. -운명인 것 같다(웃음). (시나리오를) 고를 입장도 아니고, 몇 개 오지도 않는다. 그중에 진짜 하고 싶은 것만 한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최우선 선택 기준이다. 슬프고 우울한 영화는 힘들다. ‘블랙스완’을 보고 1주일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반면 ‘파수꾼’은 좋았다. 또래 친구들의 미묘한 감정선에 공감이 갔다. →‘고지전’과 같은 날 개봉인데. -‘퀵’이 이겼으면 좋겠다. 영화계에서는 한국 영화가 두루 잘돼야 한다고 하지만, 남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다(웃음). →킥복싱을 배운다고 들었다. -(이종격투기 선수) 노재길 선생님께 5개월째 배우고 있다. 액션 영화를 할 수도 있으니 시간 있을 때 발차기라도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재능이 있더라(몇 차례 시범을 보이는데 운동한 태가 났다). 선생님이 “(권투 챔피언에 오른 배우) 이시영씨보다 더 잘할 수 있다.”며 본격적으로 대회에 나가 보자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다. 스파링부터 하고 싶은데 매니저들이 사색이 된다(웃음). →롤모델은 누구인가. -극과 극을 오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김하늘 선배의 희극 연기와 전도연 선배의 비극 연기, 하지원 선배의 액션 연기를 닮고 싶다. 장점을 요리조리 갖춘 종합선물세트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욕심이 많아서 힘들기는 한데, 욕심이라도 부려야 선배들 절반쯤 쫓아간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제이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런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밸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이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 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의 머릿 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 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혀진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런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 [에코붐세대를 말한다] ‘따로 또 같이’ 베이비부머·에코부머 소통하라

    [에코붐세대를 말한다] ‘따로 또 같이’ 베이비부머·에코부머 소통하라

    7월 5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교정, 지루한 장마 가운데 끼인 맑은 날이었다. 등록금 투쟁, 청년실업,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앞둔 정년연장 논쟁 같은 세대 갈등이 그칠 것 같지 않던 날, 베이비붐 세대와 에코(echo·메아리)붐 세대는 소통했다. ‘58년 개띠’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와 ‘28세 젊은 논객’ 한윤형씨는 ‘우리와 너희 그리고 함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세대는 모두 공동체를 중시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민족주의로, 에코붐 세대는 공부나 취직 등 필요에 의해서다. 장래 선택은 부모의 결정이 중요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에코붐 세대는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기대야 하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노후가 고민이고 에코붐 세대는 취업과 은퇴하는 어른들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가 힘들다. 인구학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이 에코붐 세대다. 그래서 두 세대는 같고도 달랐다. ●서로의 세대에게 -(정과리 교수)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거리응원에서 나타났던 역동성은 굉장하다. 난 에코붐 세대를 카르페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기라’는 의미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와 유명해짐), 즉 현재주의자라고 생각한다. 현재를 즐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현재와 과거·미래를 연결하기 싫거나 두려운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가 부족하다고 느껴야 미래가 있는데 현재를 부족하다고 느끼기 싫은 것 같다. 힘은 좋지만 비전이 구체적이지 못하다. 본인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노동과 고통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윤형) 잘 짚어 주셨다. 뭔가 없어도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 우울한 현실보다 낫긴 한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고리가 없어진다는 느낌이다. 대중문화에서도 매일 여러 작품이 나오니 3~4년전 걸작조차 관심이 떨어진다. 반면 기성세대는 전반적으로 자기 자식에 대해 말하는 것과 사회 젊은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정반대다. 청년 실업이 70만명이라는 데 대해 좌·우파가 공히 청년들이 도전하지 않고, 좋은 곳으로만 가려 한다고 지적한다. 공무원 시험에 매몰된 학생들을 비판하지만 집에서는 자식에게 반대로 얘기한다. -(정 교수) 사실 우리 세대가 자기모순이 심하긴 하다. 젊은 시절 트로츠키나 마르크스주의자가 자기 자식은 미국에 유학보내면서도 갈등이 없다. 사회적 요구도 강하고 개인적 욕망도 강해 고민하기 힘드니 이 둘을 분리해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다. ●공동체의 향수 -(정 교수) 베이비붐 세대에는 민족주의가 지배했다. 1987년 이전까지 개인은 곧 민족이었다. 지배권력이든 저항세력이든 마찬가지였다. 국민교육헌장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민족의 에이전트(대리인)였다. 그래서 유학을 가는 것도 꺼림칙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자유로운 개인이 생겨났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공동체의 요구를 떼어내고 자기를 생각하는 세대가 됐다. 2000년대에 절정이었고, 에코붐 세대는 오히려 자신의 요구에 의해 공동체를 형성하는 세대로 보인다. -(한윤형) 학교에 밥터디가 있다. 한때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취업 공부나 학교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밥을 같이 먹는 것이다. 반면 동아리는 황폐화됐고, 취업스터디모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필요에 의해 다시 공동체를 원하는 것이 맞다. ●젊음의 편린 -(정 교수) 장래에 대해 부모님의 요구가 강했고 거부하기 힘들었다. 대학 때는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자신이 원하는 미래와 살아야 하는 미래가 다른 경우가 많았다. 반면 1970년부터 국민총생산(GNP)이 북한을 넘어서고 중동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대림건설, 외환은행 등 좋은 직장도 대학만 나오면 취업했다. 석사학위로 충남대학교 교수직에 취업했다. 제5공화국 시절, 독일 유학파인 이규호 교육부 장관이 졸업정원제를 실시하면서 대학수와 입학생이 대거 늘었다. 서강대 공대에서는 졸업이 안 될까 불만을 품은 학생이 교수를 칼로 찌른 사건도 일어났다. 1987년 민주항쟁에 대학생들이 쏟아져 나온 이유도 이때 입학생을 늘렸기 때문이라는 모순이 있다. -(한윤형) 2001학번인데 아직 대학을 다니고 있다. 한때 부모에게서 벗어나 독립하는 것이 널리 퍼졌다면 요즘은 다시 부모님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다. 부모와 자식은 한 팀이다. 부모가 알아서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먼저 요구를 하고 서로 발맞추어 나간다. 어떤 기성세대는 자식들이 ‘엄마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엄마도 해방된다는데 에코붐 세대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부모가 경제적으로 다소 넉넉하고 자식도 공부를 잘하는 경우지만, 그 밖의 대학생은 부모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등록금도 비싸고 취직해 독립하기도 힘들고, 부모가 최후의 도피처 아닌가. ●취업, 은퇴 그리고 재취업 -(정 교수) 최근에 프랑스에서 정년을 연장하려다 고등학생까지 데모하는 것을 봤다. 우리나라도 일각에서 정년 연장 논의가 있는데 후속 세대의 사회 진입을 위해 정년은 지켜야 한다. 단, 퇴직한 이들이 포스트 사회를 이룰 정도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젊은 세대가 주인공이 된 기존 사회와 협력과 갈등을 통해 서로 발전할 수 있길 바란다. 생물학적으로도 같은 종을 모아놓으면 퇴화하지만 다른 종을 붙여놓으면 환경이 진화한다. -(한윤형) 정년 연장 문제가 민감하지만 이로 인해 청년을 덜 뽑을 수 있는 대기업과 공기업 등에 한정된 문제는 아닐까 싶다. 청년 인구가 줄고 있으니 노년층을 부양하는 의무가 많아질수록 청년들도 정년 연장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부모가 좋은 자리에 있다면 내 취업 준비 기간은 늘어난다. 아직 에코붐 세대에게 정년 연장은 이슈화되지 않은 것 같다. ●등록금이라는 업보 -(정 교수) 학교가 현상유지만 하는 게 아니라 세계적인 경쟁시스템에 들어갔다. 발전 강박에 휩싸인 채 진화를 해야 하니 재원이 필요하고 등록금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프랑스 등 유럽식으로 국가에서 등록금을 해결해 주든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먹고살 수 있도록 해 대학 진학률을 낮춰야 한다. 물론 힘든 문제다. 기여입학제 역시 형평성 논란에 하위권 대학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으니. -(한윤형) 유럽처럼 대학생 수를 줄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공공주택으로 집값을 다소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국립대에서 싼 등록금으로 학생을 빨아들이면 등록금 경쟁의 평형을 깨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리 이경주기자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kdlrudwn@seoul.co.kr 정과리 1958년생, 서울대 불문학과 졸업. 2008년 한국 사회의 변화에서 ‘청년’이 가진 의미를 분석한 평론집 ‘들어라 청년들아’를 출간했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한 정치 세력이 ‘청년 문화’를 많이 이용했지만 ‘청년’은 한국인이 자신의 이상적 자아를 투사해 온 중요한 상징체라고 지적했다. 또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주눅들 필요가 없으며 젊은 세대는 신인류가 아니라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강조해 왔다. 한윤형 1983년생, 서울대 철학과 재학중. 고 3때 서울대와 조선일보가 공동주최한 논술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거부하면서 유명해졌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뉴 라이트 사용 후기’, ‘안티 조선 운동사’,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 등 사회 서적을 꾸준히 출간해 오고 있다.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국민 건강 위해 공공기관 ‘8 to 5 출퇴근’ 꼭 도입해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국민 건강 위해 공공기관 ‘8 to 5 출퇴근’ 꼭 도입해야”

    “국민건강을 위해 저녁 7시 이전에 저녁 식사를 마치도록 오후 5시 퇴근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서울신문 창간 107주년을 맞아 지난 15일 과천 청사 집무실에서 이뤄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특별인터뷰에서 그는 오후 5시 퇴근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달 민생 점검 장·차관 국정토론회에서 그가 제안한 ‘공공기관 오전 8시 출근·오후 5시 퇴근제’(현재 오전 9시 출근·오후 6시 퇴근)를 꼭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녁 7시 이전에 저녁을 마치는 습관이 뇌졸중 예방 등 국민 건강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육아 때문에 오전 8시 출근이 힘든 여성 등은 오전 9시 출근·오후 5시 퇴근을 하면 된다고 했다. 임기가 끝나는 공공기관장 및 감사의 인사에 대해서는 민간 전문가의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유사들의 ‘100원 할인’이 끝난 뒤 치솟는 휘발유 가격에 대해서 유류세 인하는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관세 인하는 검토 중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건설업계 건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육아부담 여성은 ‘9 to 5’로 가능 →현재 공공기관의 오전 9시 출근·오후 6시 퇴근제를 오전 8시 출근·오후 5시 퇴근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정책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있다. -지난달 1박 2일로 진행된 장·차관 국정토론회에서 직접 제안했다. 요점은 저녁 6시가 아니라 오후 5시에 퇴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건강과 가족 생활에 좋다. 뇌졸중 등을 예방하고 국민 건강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저녁 7시 이전에 저녁 숟가락을 놓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은 아침과 점심식사의 시간 간격은 너무 짧고 점심과 저녁 식사의 시간 간격은 너무 길다. 7시 저녁 약속을 6시로 만들어야 한다. 이는 직장인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길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육아부담이 있는 여성 등은 오전 8시 출근이 힘들다. 재정부와 같은 중앙부처 공무원은 일이 몰리면 밤 12시 퇴근도 종종 있는데 잘 되겠나. -육아부담이 있는 이들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면 된다. 또 중앙부처 공무원도 매일 자정까지 일하는 것은 아닐 뿐더러 현재 오후 6시 퇴근제를 지키는 공공기관 직원이 대다수다. 예전에 삼성이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제를 하다가 실패한 것은 홀로 시행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저녁 7시에나 저녁 식사 약속을 할 수 있으니 어차피 삼성 직원들은 퇴근 후 이들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 오후 5시 퇴근제는 대다수의 기관이 동시에 실시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민간 기업을 제어할 수는 없으니 공무원, 공기업 직원, 학교 직원 등이라도 동시에 해보자는 것이다. ●삼성 ‘7 to 4’ 중단은 홀로 시행한 탓 →하반기에 임기가 끝나는 공공기관 기관장이나 감사들이 많은데 인선을 지금보다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대안이 있는가. -우선 정부와 청와대도 고심을 많이 해서 인사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저 낙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모 절차와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관점에서 검토를 한다. 지난 정부와 비교할 때 민간 전문가들을 많이 영입했다. 소위 낙하산에는 정치권 인사와 공무원 출신 두 종류가 있는데 그 비중이 지난 정부보다 많이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향후 공공기관에 민간 전문가가 더 늘어난다고 보면 되나.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에 금융계 출신인 최종석씨가 임명된 사례를 봐도 그렇고, 그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증여세 과세 방안은?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끼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수혜를 얻는 기업의 가치가 단기간에 급등하고 일부 주주들에게 세금 없이 부(富)가 대물림된다는 의혹에 따라 정부는 증여세 과세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8월에 과세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고민할 부분이 많아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사실 과세는 국민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행위여서 상당히 엄격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어떤 상황을 일감 몰아주기로 정의할 것인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때 과세할 것인가, 또 어떤 편법이 나타날 것인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다른 방식의 증여와 세율의 균형도 맞추어야 한다. →다주택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 완화를 언급한 바 있는데 1가구 다주택 양도소득세 중과제 폐지도 포함되는지. 또 일각에서 주장하는 종부세 폐지도 추진하나. -우선 종부세 폐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은 전·월세난이 향후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자기 집을 보유하려는 유인은 낮아지고 1인·2인 가구와 만혼·미혼 가구도 증가하면서 소형주택의 전·월세 임차수요가 늘고 있다. 또 임대주택 공급도 줄어든 상황이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일 것이다. 우선 집값이 안 오를 것이라는 예상에 집에 투자할 필요 없다는 실망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또 다주택을 보유할 때 징벌적 과세가 제한 요소로 작용하면서 전·월세 공급이 줄었다는 점이 있다. 결국 소형주택의 임대 공급 물량을 늘려야 하는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임대주택을 늘리겠지만 민간부문에서도 부동산 임대 전문회사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또 개인 중에서 자산 여력 있는 이들이 나서서 소형 주택을 임대하도록 해야 되는데 이 경우 징벌적 중과제가 제약이 된다. →양도세만 징벌적 중과세는 아닐 텐데. -아직 상세히 말할 시점은 안 되지만 양도세 중과제를 포함해서 제재조치에 상응하는 것들을 검토하는 단계다. 또 양도세 중과제를 완화하는 것이지 과세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내년부터 10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의 중소형 공공공사에도 최저가 낙찰제가 확대되는 것에 대해 보완책을 내놓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DTI 규제 완화 건설업계 요청은 안 돼 -사실 최저가 낙찰제에 대한 보완책 언급은 안 했다. 건설업계의 많은 건의사항을 듣고 가부를 명확히 했다. 원도급 업체들의 건의사항으로 하도급 업자들이 임금·자재 장비 등을 제대로 2,3차 하도급 업체에 지급하는지 확인할 장치를 만들어 달라는 것은 ‘하겠다’고 했다. 하도급 업체가 부도 나면 원도급 업체가 책임져야 하니 가을에 개선 방안이 나오도록 하겠다. 하지만 DTI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청은 안 된다고 했다. 양도세 중과제 문제점도 지적됐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공감하며 소형 임대주택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양도세 중과제는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위한 거라고 생각해서 제도가 유지되는 건데 소형주택이 늘어나면 전·월세입자들이 이익을 본다는 점도 봐야 한다. 공인중개사들도 전·월세 물량이 없어 계속 가격이 오른다고 하더라. 임차인이 아닌 임대인의 마켓이 된 셈이다. →ℓ당 2000원 넘을 이유 없다고 발언했던 기름값이 시끄럽다. 유류세, 관세 인하는 고려중인가. -유류세는 ℓ당 130달러 초과할 때만 검토한다는 원칙에 변함 없다. 관세는 계속 검토중이다. 관세도 가격이 급하게 오를 때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이어서 국제 유가가 기준이다. 또 국제 유가가 올라도 환율로 인해 국내 유가는 안 오를 수도 있다. 정유사들이 100원 할인 행사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를 비교하면 원·달러 환율이 꽤 내렸고, 유가도 아직은 불안하지만 당시보다 내렸다. 주된 요소만 가늠해도 정유사가 할인했다고 주장하는 폭까지 환원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휘발유 가격이 ℓ당 2000원이 넘지 않을 거라고 말한 바 있는데 실제 오늘(15일) 전국 평균이 1933원이다. 여전히 전국 평균은 2000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 단, 정유사들이 2000원까지는 올려도 된다는 의미로 오해할까 염려스럽긴 하다. ●임금체계 성과급 요소 단계적 높여야 →임금이 최근 크게 상승하면서 물가와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우려가 있다. -임금 상승이 공급 측면에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물가가 상승하는 것이 맞다. 다만 정부가 민간부문 임금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가격에 바로 개입하는 것이어서 안된다. 결국 노사 관계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 임금체계는 연공급적 요소가 강하고 성과급적 요소가 약해 불공정하다. 물론 이를 하루아침에 다 바꾸는 것도 젊을 때 상대적으로 월급을 적게 받은 후 이제 나이 들어 많이 받으려 하는 세대에게 불공평할 수 있다. 단계적으로 성과급 요소를 높이고 임금피크제를 강화하는 것이 방편일 것이다. 또 임금 외에 우리사주제도 등을 통해 노사가 일심동체에 가깝게 만드는 방안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의 이익을 종업원이 공유하고 책임도 함께 갖게 하는 것이다. →청년 실업 쇼크의 원인이 대졸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고졸자들이 좋은 직장을 갖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공공기관부터 쿼터제를 실행하자는 제언이 많다. -사실 공기업도 자율책임경영을 해야 하는데 청년, 지방학생, 취약계층, 장애인에 고졸자까지 비율을 정해주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지는 의문이다. 일부 은행이 이미 고졸사원을 뽑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정책으로 검토할 수 있겠지만 고졸 사원 채용을 의무적으로 제도화하면 그것이 또 학력 차별에 안 걸릴지 모르겠다. 인터뷰 전경하 차장·정리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1955년 경남 마산 출생, 행시23회 ▲부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정책학 석·박사 ▲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한나라당, 2004년 5월~2008년 2월 ) ▲대통령실 정무수석·국정기획수석비서관(2008년 2월~2010년 10월) ▲고용노동부 장관(2010년 8월~2011년 5월) ▲기획재정부장관(2011년 6월~)
  • 중국 산시성-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중국 산시성-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중국의 현대를 보려면 상하이를, 중국의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오천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산시성 山西省 ‘중국의 현대를 보려면 상하이를, 중국의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오천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아찔한 현대 발전상보다는 중국에 대해 품고 있는 로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가장 중국다운 장소를 찾는다면 산시성이 그 답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더 비밀스럽게 빛나는 곳, 산시를 소개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김명희 취재협조 (주)레드팡닷컴 02-6925-2569 핑야오구청 平遙古城 평요고성 유네스코가 감탄한 성곽 도시 베이징에서 고속열차로 3시간여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시성山西省은 그 면면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소한 점이 더 많은, 매력적인 곳이다. 일단 세계 3대 문명인 황하문명의 발상지이면서 세계 면 요리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 ‘누들로드’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활발한 교류와 무역으로 중국 금융 중심지로서 융성했던 명·청대의 모습이 그대로 잘 보존된 세계문화유산 고성까지 지니고 있는 까닭에서다. 산시성을 여행할 때는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어 보자.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중국의 진짜 모습을 잰 걸음으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역사 유적지가 많은 이곳 산시에서도 핑야오가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바로 핑야오구청 때문이다. 핑야오구청은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당시 그 보존 상태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로 2,500년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고성이다. 성벽 둘레 길이 6,163m, 성 전체 면적은 여의도의 5배의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으로 성문 안으로 발을 디디면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명·청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성의 골목이나 성벽의 구멍 개수까지 공자의 제자수를 따라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핑야요구청은 중국의 유교문화를 가장 잘 나타낸 곳으로도 꼽히며 그 자체가 하나의 큰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1970년대 개발의 급류를 타고 허물어질 뻔했던 고성은 생각 있는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원래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고, 현재는 유럽인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중국 내 여행지 10위’를 차지할 정도로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다. 느긋하게 옛 중국을 만끽하다 완벽에 가깝게 보존된 유네스코 지정 고성이라 유명 여행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호객 행위며 시끌벅적한 상업화의 모습을 볼까 걱정했던 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크게 상업화되지 않고 잘 보존되었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는 조용히 고성의 정취를 느끼는 일이 가능하다. 핑야오구청에서라면 골목들을 탐험하는 일조차 설레는 ‘여행’이 되어 줄 것이다. 계획도시였음을 알려주듯 반듯하고 널찍하게 뻗은 골목들에는 14세기 명나라 때 지어진 건축물이 줄지어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명·청 시대의 건축이나 발전 모습 등 그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붉은 등을 매단 상점과 식당 등을 지나 조용히 걷노라면 몇백년전 사람들도 이곳을 지나다니며 같은 풍경을 봤으리라는 생각에 묘한 기분에 빠져든다.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말답게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적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중국 최초의 근대 은행인 표호票號나 불교, 도교 사원, 각종 박물관들이 도처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민가 구역으로 들어가면 예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의 모습들이 고성과 역사를 같이하며 빛이 바랜 집들과 어우러져 정감어린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활기찬 고성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고성에서 가장 높은 시루에 오르기를 추천한다. 핑야오구청에서 가장 멋진 전망을 제공함과 동시에 훌륭한 포토 포인트가 되어 준다. 1 핑야오구청 거리에서 마임을 하는 예술가 2 국제학교 학생들이 저마다 예쁜 중국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모습이 이국적이다 3 핑야요구청에는 중국의 옛모습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복판에 위치한 시루는 이곳의 랜드마크이자 전망대 역할을 한다 4 시루에서 내려다본 핑야요구청 거리. 예스런 모습의 거리지만 활기가 넘친다 산시성의 면 요리 맛보기! 혹시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전해 준 면요리가 지역에 맞게 변형된 것이 스파게티라는 설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이 ‘누들로드’의 시발점이라고 불리는 산시성은 쌀보다는 메밀이나 밀, 귀리 등이 많이 나는 기후 때문에 예부터 면 요리를 즐겨먹었다. 현재 380여 가지가 넘는 면 요리를 가지고 있으며 9월에는 면 축제도 열린다니 가히 면 요리의 중심지라 할 만하다. 산시성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면 요리들은 중국 요리 특유의 향이 진하지 않아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는 편이다. 오히려 맛이 다소 심심하면 함께 나온 소스들을 넣어 먹으면 된다. 핑야오구청을 즐기는 6가지 방법 2,500년 전 세워진 이 고색창연한 성 안에서는 누구든 시간을 잊고 중국 문화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 긴 역사에 압도되어 짐짓 역사책마냥 지루하거나 고루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일랑은 접어두시길. 은퇴 후 동양 문화를 즐기러 온 프랑스 노부부들만큼이나 젊은 여행자들이 많은 곳도 핑야오구청이었으니 말이다. 고성의 매력에 흠뻑 빠진 기자의 ‘핑야오구청 120% 즐기기’ 제안! 1 카페에서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들. 핑야오구청은 유럽인들이 꼽은 중국에서 가고 싶은 여행지 중 10위 안에 드는 곳이기도 하다 2 고소해서 우리 입맛에도 맞는 미니호떡 셔무미쩌무위에빙. 산책에 즐거움을 더해 줄 간식 거리들이 도처에 있다 3, 6 핑야오구청 여행을 완벽하게 마무리시켜 줄 고택 숙소. 정원이 내다보이는 오래된 중국 전통 가옥에서 보내는 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4, 5 선물로 좋을 한자로 만든 핸드폰줄과 예쁜 중국풍 신발들. 핑야오구청에서 즐기는 쇼핑은 화려하거나 떠들석하지 않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01 자전거로 돌아보는 고성의 낭만 핑야오고성 내의 주 교통수단은 전기차와 자전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전통과 환경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다. 반대로 그만큼 여유롭게 그리고 조용히 고성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걷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자전거로 고성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도 언제나 즐거운 대안이 되어 준다. 종일 타도 10위안이라는 매력적인 가격에, 자전거에 서툰 이들을 위해 다인용 자전거도 준비되어 있다. 02 고성에서 쇼핑하기 쇼핑은 도시에서만 즐길 수 있다고? 물론 다양하고 세련된 물건들이 즐비한 도시에서의 그것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이곳에는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쇼핑의 즐거움이 존재한다는 사실. 핑야오의 특산품을 찾는다면 칠기제품이 유명하지만 조금 더 가벼운 기념품을 찾는다면 종이로 화려한 예술세계를 구현하는 종이공예나 아기자기한 손거울, 한지로 만드는 핸드폰줄 등이 인기 있다. 꽃 자수가 예쁜 중국풍 신발이나 어린이용 치파오도 중국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해줄 아이템. 대부분이 정찰제로 운영되거나 무리한 흥정 혹은 호객 행위가 없어 더욱 기분 좋다. 03 하루의 피로를 푸는 마사지 중국 여행에 마사지를 빼놓기 아쉽다면 저녁을 먹고 고성 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는 마사지숍으로 가보자. 숍마다 가격 차이는 크게 없으므로 둘러보고 맘에 드는 곳으로 가면 된다. 마사지사의 실력은 종종 운에 좌우되곤 하지만 하루 여행의 피로를 풀며 휴식하기에는 충분하다. 04 고택에서 맞는 고즈넉한 밤 중국 전통 가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고택은 이곳에서의 하루를 근사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숙소. 문을 지나 높다란 담벼락을 따라 난 길을 지나면 곳곳에 위치한 정원이 운치를 더해 객실로 가는 동안의 짧은 순간에도 <홍등> 같은 중국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내게 해준다. 매번 똑같이 생긴 호텔이 지루하다면 이곳에서의 하룻밤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아침나절 정원 나뭇가지에 앉은 맑은 새소리와 햇살에 잠이 깨면 이곳을 떠나기가 무척이나 아쉬워질지도 모르겠다. 05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주전부리 골목 탐험을 하다 보면 출출해질 때쯤 새로운 주전부리들이 나타나곤 한다. 장조림 맛이 나는 핑야오 쇠고기 핑야오 뉴러우나 호두, 참깨 등이 들어가 고소한 미니호떡 셔우미쩌우위에빙 등이 그것이다. 명청가를 바라보며 즐기는 그윽한 차 한 잔의 여유도 빼놓을 수 없겠다. 06 세계의 여행자들과 나누는 시원한 맥주 한잔 고성에 어둠이 깔리고 홍등에 불이 들어올 즈음 고성 내 위치한 카페나 바에 가면 낮에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던 여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여행자들도 있고 중국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모습도 보인다. 흥겨운 음악과 시원한 칭타오 한잔을 사이에 두고 핑야오구청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자. 대부분의 고택 숙소들이 일찍 문을 닫기에 기분 좋을 만큼의 술자리 이후에는 내일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T clip 인천에서 산시성 성도 타이위엔(太原, 태원)까지 아시아나 전세기가 2011년 10월28일까지 운항된다. 월요일과 금요일 주 2회 운항하며 약 2시간 소요. 날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며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5~9월.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느림 위안화(1위안은 약170원) 일본 NHK에서까지 취재 올 정도로 건강에 좋다고 소문난 산시성 식초와 이백, 두보 등이 극찬했다고 전해지는 중국 명주인 ‘펀주汾酒 ’가 있다. 전세기 한국사업자인 (주)레드팡닷컴(02-6925-2569)을 비롯한 전국 여행사에서 산시성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멘산 綿山 면산 한식의 유래를 찾아서 핑야오구청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멘산綿山은 여행책자에서도 찾기 힘든 곳이지만 한해 130만명의 중국인이 찾는 여행지다. 중국 4대 명절 ‘한식寒食’이 유래된 곳이자 가파른 협곡을 따라 불교와 도교 사원들이 자리잡고 있어 중국 문화와 정신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인 까닭이다. 개자추 전설의 배경이 된 곳답게 멘산에는 개자추의 무덤과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무덤은 약 해발 1,80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 그곳을 향하는 케이블카에서 시원한 멘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당은 원래 있던 동굴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그가 신선이 되었다 믿는 사람들의 말을 반영하듯 화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절벽 위에 세워진 공중도시 멘산은 중국의 그랜드 캐년으로 일컬어지는 타이항太行산맥에서 나온 한 갈래다. 그 천연절경의 협곡을 따라 불교, 도교 사원들이 세워졌고 현대에 들어서는 호텔까지 더해져 공중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한 석탄 부호가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을 물려주고자 훼손, 파괴된 부분을 복원하고 전폭적인 투자를 한 덕에 명실상부한 문화 관광지가 되었다고. 절벽 동굴에 지어진 불교사원 윈펑스雲峰寺, 운봉사는 당태종 시대에 서안의 가뭄을 해결했던 고승이 있던 곳으로 108번뇌와 12간지를 상징하는 120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동굴 안쪽에서 내려다보는 사원과 멘산의 풍경이 가히 절경이며 간절한 기원이 깃든 절벽 위의 종들도 이국적이다. 이곳에서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면 발아래로 안개 낀 협곡이 펼쳐져 무릉도원이 따로 없단다. 이곳에서 갈지자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거나 엘리베이터의 힘을 빌면 정궈스正果寺, 정과사에 닿는다. 중국 남북조시대 정토교淨土敎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담란曇鸞대사를 기념하는 파고다와 법당 및 동굴에서 발견된 등신불들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도교사원인 따뤄궁 또한 절벽에 층층이 쌓여 올려진 건물로서, 금박으로 쓰여진 도덕경에서 볼 수 있듯 확연한 도교적 색채를 지녔지만 멘산의 유물들을 모아둔 전시관도 구경할 수 있어 일반인도 가볼 만하다. 저택에서 엿본 산시성의 번영기 멘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왕자다위안王家大院, 왕가대원도 산시성의 매력적인 관광지 중 하나다. 청대淸代의 명문가 저택이었던 이곳은 압도적인 크기를 지니고 있어, 흔히 얘기하는 중국의 스케일과 부유했던 산시성의 모습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4만 5,000㎡의 면적에 1,000개에 달하는 방을 가지고 있으며 건축양식으로도 유명하다. 저택 전체 모습은 왕王자 형태로 되어 있으며 곳곳에 많은 뜻이 숨겨진 디테일한 장식과 조각이 흥미롭다. 현재는 정부 관리 하에 관광지로 관리되고 있으며 미로같이 얽힌 저택 내에서 자칫 눈을 팔면 일행을 잃기 십상이다. 절벽 위의 호텔, 원펑수위안 멘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호텔인 윈펑수위안雲峰墅苑, 운봉서원은 중국 내 유일한 절벽 위 호텔로 윈펑스 옆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2,000m에 위치한 객실에서 즐기는 뷰는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다. T clip 한식의 유래가 된 개자추의 전설 멘산을 이야기하면서 개자추介子推를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며 주인인 문공을 보필한 진晋나라 충신 개자추는 아직까지도 충효를 이야기할 때 회자되는 인물. 문공이 왕위에 오른 뒤 서로의 공을 놓고 다투는 신하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바로 이곳 멘산에 칩거하게 되고,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지르지만 결국 개자추는 어머니와 불에 타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개자추가 죽은 날에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차가운 음식을 먹은 것이 바로 한식의 유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생태계 바꾼 ‘최장 장마’

    50년 만에 찾아온 긴 장마가 할킨 상처가 계속되고 있다. 일조량이 줄고 비가 많아 초여름에 한창 자라야 할 식물과 동물은 생장에 악영향을 받았다. 채소와 과일은 짓물렀고, 맹꽁이 등 양서류는 제대로 번식하지 못했다. 17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과실 작물과 채소는 집중호우로 인해 출하량이 줄어들고 가격이 올랐다. 수박의 경우 이달 1~15일 기준 반입량이 지난해 동기 대비 28% 감소했고, 2009년 같은 기간보다 5% 줄었다. 7월 과일 생산량 전망치는 사과가 작년 대비 5.1%, 평년 대비 6.1% 각각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포도 역시 지난해보다 6.3%, 평년 대비 13.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출하량이 적다 보니 자연스레 가격도 올랐다. 강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작물 중 하나인 고랭지 배추는 6월 하순 이후 계속된 집중호우로 출하량이 감소돼 이달 들어 가격이 크게 올랐다. 7월 상순 고랭지 배추의 도매가는 지난달 하순보다 52% 오른 10㎏당 3290원을 기록했다. 김봉환 농촌진흥청 원예특작과 지도관은 “비가 자주 오고 햇빛이 부족하면 식물의 뿌리가 물에 잠겨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에 약해진다.”면서 “특히 배추, 고추 등 노지 작물은 무름병이나 역병, 탄저병 등에 노출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장마는 더위와 습도에 민감한 동물의 성장과 번식을 더디게 하고 개체 수에도 영향을 미친다. 성경일 강원대 동물생명시스템학과 교수는 “긴 장마로 습도도 높아져 동물들의 평소 생활에 불편함을 줄 수 있다.”면서 “동물도 습도가 높아 잠자리가 불편해지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 영향으로 평소 섭취량이 줄어들어 잘 자라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장마철에 주로 출현하는 개구리·맹꽁이 등 양서류는 개체 수가 줄어들 처지다. 박완희 한국양서류보존네트워크 국장은 “이번 장마처럼 비가 지나치게 많이 내릴 경우 개구리 등이 낳는 알이 떠내려가서 개체 수가 줄게 되고, 또 하천변에 있는 이들의 서식지가 쓸려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윤샘이나·김진아기자 sam@seoul.co.kr
  • “입체 작품을 평면으로 풀어내 ‘선’의 미학 보여주고 싶었죠”

    “입체 작품을 평면으로 풀어내 ‘선’의 미학 보여주고 싶었죠”

    “안 그래도 이혼당할 뻔 했습니다. 허헛.” 말 들어보니 안 당한 게 이상하다. 다음 달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02-725-1020)에서 ‘厚. 我. 有. -후. 아. 유.’전을 여는 이승희(53) 작가는 홀로 중국 장시성(江西省) 징더전(景德?)에 머물고 있다. 베이징에서 차로 달려 23시간 걸리는 곳이다. 송나라 이후 대대로 관요(官窯·궁궐용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가마)가 몰려 있는 곳이라 찾긴 했지만, 살기 좋은 곳은 아니다. 이 작가 스스로도 “그냥 촌이 아닌 판자촌”이라고 실토한다. 편의시설도 없다 보니 작업 빼곤 할 일이 없다. “저녁 8시만 되면 깜깜해져서 잘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새벽 3시쯤 깹니다. 해 뜰 때까지 두세 시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긴 줄 몰랐어요.” 날씨마저 가혹하다. 1년 내내 빗줄기가 그치지 않고 실내온도는 34도를 오르내린다. 냉·난방시설은 없다. ●실용을 넘어선 도자기의 현 대성 전달 그럼에도 그곳에 빠져든 매력은 두 가지. 하나는 관요의 역사 때문에 도자기 만들기엔 더 없이 좋은 인프라다. 또 하나는 흙이다. “흙 입자가 우리나라는 원형이고 중국은 판형이에요. 도자기는 굽는 과정에서 20% 정도 줄어듭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흙으로 만들면 저렇게 넓은 판을 못 만들어요. 처지거나 깨져 버리죠. 중국 흙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흙보다는 잘 버텨냅니다.” 작품을 보면 유약이 발라져 반짝 빛나면서 볼록 솟은 부분과 유약이 없어 흙의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평평한 배경이 대조적이다. 언뜻 보면 따로 만들어 붙인 게 아닌가 싶다. 몇몇 작품은 족자처럼 만들어 배경이 종이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돋을 새김 형식으로 한판에 만들어 통째 구워낸 것이다. ●흙물 끼얹고 말리는 작업만 70여회 입체 작품인 도자기를 평면으로 풀어내되, 입체적 성격은 유지하는 셈이다. 도예이면서 조각이기도 한 셈이다. 전시 제목 그대로 ‘넌 누구냐.’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작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도자기의 현대성을 말하고 싶었다. 용(用)에 묶여 있는 기존 도자기와 달리, 선이 살아 있는 도자기 자체의 미감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작품 제목은 모두 ‘타오’(Tao)다. 타오는 도자기 도(陶)의 중국식 발음이다. 하지만 작업방식은 도(道)에 가깝다. 1차 관문은 널찍한 판을 만들어내는 것. 관요였던 덕분에 그 무거운 흙을 떠받칠 수 있는, 100년 묵은 나무로 만든 탁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 탁자 위에 깨지고 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흙을 차근차근 쌓아올려야 한다. 흙물을 끼얹었다 말렸다 반복하기를 70여회. 이 작업에만도 서너 달이 걸린다. 2차 관문은 그림 그리기다. 도예가인지라 붓을 제대로 잡아본 적은 별로 없다. 게다가 청화는 그릴 땐 안 보이고 구워낸 뒤에야 색이 나온다. ‘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자그마한 접시에 수도 없이 연습해도 며칠만 붓을 놓으면 감을 잃어요. 그리고 또 그리는 것밖엔 방법이 없죠.” 마지막 관문은 구워내기. 여기서도 관요의 덕을 본다. 한국 가마 온도는 1280도 정도인데, 중국 가마는 1380도까지 간다. 이 100도의 차이가 도자기의 탄성과 질감을 좌우한다. 그럼에도 깨지는 것은 허다하다. 10개 구우면 건지는 건 고작 2~3개. 전시를 위해 준비했던 야심찬 대작 3~4개도 굽는 과정에서 그만 깨져 버렸단다. ●“예전 번 돈 다써 이혼 당할뻔 했죠” 이런 험난한 과정이 안겨준 가장 실질적인 타격은 역시나 돈. “1990년대엔 저도 알아 주는 생활자기 작가였습니다(웃음). 아트페어 때마다 판매순위 10위권에 꼭 들었지요. 그때 번 돈을 지금 다 쓰고 있는 겁니다.” 이혼당할 사유 추가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요즘은 작업을 더 확장할 궁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백자 작업을 주로 했는데 상감기법을 이용한 청자도 슬슬 시작했습니다. 아예 영국이나 독일 도자기 같은 것을 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서양 사람들도 놀라지 않을까요.”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French Wine Tour 프랑스 와인의 깊이를 맛보다

    French Wine Tour 프랑스 와인의 깊이를 맛보다

    프랑스 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와인이다. 구세계와 신세계 와인의 총성 없는 전쟁 속에서도 프랑스는 여전히 와인 종주국의 위엄을 지키고 있다. FRANCE AQUITAINE French Wine Tour 프랑스 와인의 깊이를 맛보다 프랑스 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와인이다. 구세계와 신세계 와인의 총성 없는 전쟁 속에서도 프랑스는 여전히 와인 종주국의 위엄을 지키고 있다. 와인은 프랑스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 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의 장수 비결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키워드가 된다. 특히 아키텐을 비롯한 프랑스 남부 지역에 유명한 와인 산지들이 즐비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kr.franceguide.com, 아키텐주관광청 www.tourisme-aquitaine.fr AQUITAINE 아키텐 프랑스 와인의 ‘대명사’를 읽다 남프랑스의 여러 지방 가운데서도 와인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 아키텐Aquitaine이다. 혹시 아키텐이란 이름이 낯설지 몰라도 보르도Bordeaux는 익숙할 것이다. 아키텐은 프랑스 남서부에 자리한 주州의 이름이고, 보르도는 아키텐을 구성하는 다섯 개의 지역 가운데 하나인 지롱드의 수도다. 보르도의 유명세를 이끈 장본인은 단연코 와인. 선호하는 품종과 브랜드는 제가끔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와인 하면 즉각적으로 프랑스, 그중에서도 보르도를 맨 먼저 떠올린다. 보르도의 와인 산지는 지롱드강에 의해 크게 가르마를 탈 수 있다. 보르도시에서 약 한 시간이면 가닿을 수 있는 지롱드강을 기준으로 서쪽에 메도크Medoc가, 동쪽에 생테밀리옹Saint-Emillion이 포진한다. 강 서쪽에는 메도크 이외에도 포이약·그라브·소테른 등이, 그리고 강 동쪽에는 생테밀리옹 이외에도 포므롤·프롱삭 등이 자리한다. 와인의 성지 프랑스에서도 최고의 와인들을 생산하는 곳들이다. 보르도 와인의 쌍두마차로 인식되는 메도크와 생테밀리옹은 여러 면에서 대별된다. 우선 자갈이 많은 메도크의 땅이 거칠다면, 생테밀리옹은 진흙을 많이 포함한 탓에 무른 편이다. 토양이 다르니 주력 품종도 상이할 수밖에 없다. 타닌이 많고 떫은맛이 특징인 카베르네 소비뇽이 메도크의 대표 선수라면, 다른 품종에 비해 일찍 여물고 과일향이 풍부한 메를로는 생테밀리옹의 적자다. 1 보르도 최고의 와인 숍인 랭탕당 내부. 12m의 나선형 계단이 인상적이다 2 보르도 시의 코미디 광장에 위치한 대극장. 보르도의 문화적 자긍심을 대변하는 곳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Bordeaux보르도 3M을 탄생시킨 물의 도시 보르도의 전형적인 얼굴은 ‘포도밭이 있는 샤토’다. 고성 앞에 펼쳐진 광대한 포도밭은 시야의 무한 확장을 요구하며, 와인 저장고 역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엄청나다. 하지만 샤토의 자존심은 단순히 ‘사이즈’에 있지 않다. 누대에 걸쳐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양질의 와인 생산에 진력을 다한다. 포도의 품질을 좌지우지하는 네 가지 요소인 지형, 기후, 토양, 포도나무가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이런 부단한 노력이 더해지니 보르도에서 유수한 와인이 탄생하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보르도시는 와인 이전에 물의 도시다. 대서양에서 종내 몸을 푸는 가론강과 도르도뉴강의 두 물줄기에 에워싸인 보르도 시티는 수시로 몽몽한 안개를 피워 올린다. 짙은 안개에 싸인 도시의 실루엣은 와인이 없어도 충분히 고혹적이다. 흔히 ‘보르도의 3M’이라고 불리는 사상가 몽테뉴, 철학자 몽테스키외, 소설가 모리악도 모르긴 해도 이 안개의 도움을 적잖이 받았을 성싶다. 도시의 명소 중 하나인 부르스 광장에는 ‘물로 된 거울’이라는 뜻의 분수대가 조성돼 있다. 바닥에 얕게 물을 깔아 놓아 주변 경관이 그대로 투영된다. 분수대에서는 물이 샘솟기도 하지만 20분 간격으로 수증기가 서리서리 피어오른다. 대단할 것 없는 분수대가 삽시간에 특출한 볼거리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부르스 광장 이외에도 코미디 광장을 사이에 두고 18세기 이래 보르도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고 있는 대극장과 리젠트 그랜드 호텔,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혼합된 웅대한 생 탕드레 대성당, 유럽에서 가장 긴 거리로 쇼핑과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생트 카트린 거리 등이 보르도 시티에서 건너뛸 수 없는 곳들이다. 리젠트 그랜드 호텔 인근에 자리한 랭탕당L’Intendant은 보르도 최고의 와인 전문 숍이다. 1만5,000병에 이르는 보유량도 대단하지만 소규모 양조장의 제품도 꼼꼼하게 챙겨 놓았을 만큼 컬렉션 구성에 있어서도 빈틈이 없다. 12m의 나선형 계단이 중심을 이루는 내부 모습 또한 감탄을 자아낸다. 3 보르도 구시가지에 자리한 레스토랑 라 투피나. 다양한 훈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4 보르도의 부르스 광장에는‘물로 된 거울’이라는 뜻의 분수대가 조성돼 있다 5 보르도 와인 협의회에서의 와인 테이스팅.건물 2층에는 보르도 와인 학교가 자리한다 6 빼어난 품질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 파프 클레망의 와인 저장고 Medoc메도크 샤토 마고의 모든 것 메도크의 샤토 마고Chateau Margaux는 지롱드강 유역에 산재하는 1만여 개의 와이너리를 통틀어 가장 우뚝한 명성을 지닌 곳 중의 하나다. 샤토 라투르,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오브리옹 등과 함께 보르도 5대 샤토의 반열에 올라 있다. 샤토 마고는 진입로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좌우로 늘어선 모습이 부드러운 위엄을 한껏 풍긴다. 여전히 가족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샤토 마고는 75헥타르에 이르는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는데, 품종을 따지자면 역시 카베르네 소비뇽이 압도적이다. 카베르네 소비뇽 75%, 메를로 20%, 그리고 카베르네 프랑이 2~3%를 차지한다. 샤토 마고의 지하 저장고에는 와인을 담은 오크통들이 가득하다. 각 오크통마다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고 이를 유리잔으로 덮어 놓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와인 통이 야금야금, 최대 15% 정도를 먹어치우기 때문에 이 구멍을 통해 와인을 지속적으로 보충해 준다. 자연 손실분이 아까울 법도 하지만 와인과 오크통의 교감이 맛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스테인리스 통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샤토 마고에는 오크통을 수작업으로 만들어내는 장인이 따로 있을 정도다. 여느 와이너리와 마찬가지로 와인 테이스팅도 할 수 있다. 물론 아무 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 콧대 높은 샤토는 3개월 전에 예약을 마쳐야 맛보기의 기회를 허락해 준다. 함께 샤토 마고의 와인을 시음한 30년 경력의 베테랑 가이드는 1947·1961·2005·2009년산이 매우 뛰어난 빈티지라고 귀띔해 주었다. 알코올, 당도, 타닌, 산도의 조화가 완벽하다는 것이다. 오크통을 제작 중인 샤토 마고의 장인. 오크통은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St.Emillion생테밀리옹 와인이 없어도 특출한 풍경들 메도크보다 관광객들의 호응이 더 높은 곳은 생테밀리옹이다. 와인의 품질도 각별하지만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돼 있을 만큼 중세의 모습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디테일을 챙기기에 앞서 전체 생김새를 일별하고 싶은 사람들은 생테밀리옹 성당의 종탑에 오르면 된다. 누르스름한 빛깔을 두른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배후를 포도밭이 둘러싸고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메도크도 그렇지만 생테밀리옹도 레드 와인이 초강세를 띠는 지역이다. 몇몇 샤토에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생테밀리옹의 라벨을 붙일 수 없기 때문에 서자 취급을 받는다. 앞서도 밝혔듯이 생테밀리옹의 포도밭을 지배하는 품종은 메를로다. 생테밀리옹에서 메를로보타 카베르네 소비뇽을 더 많이 사용하는 와이너리는 샤토 슈발블랑과 샤토 퓌작, 단 두 곳뿐이다. 그러니 어지간한 샤토에 들러도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메를로 주연의 레드 와인을 맛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테밀리옹 와인 학교에서 주관하는 와인 클래스에도 참가해 볼 만하다. 보르도 와인의 이력과 내력을 살뜰하게 짚어 줄 뿐만 아니라 와인을 음미하는 데 있어 후각의 중요성도 일깨워 준다. 1 보르도 최고의 샤토 가운데 하나인 샤토 마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은‘와인의 여왕’으로 불린다 2 아르카숑의 필라 사구. 유럽에서 가장 높은 모래언덕이다 3 샤토 드 몽바지악의 포도밭. 이곳에서 생산되는 달콤한 화이트 와인은 주로 아페리티프로 애용된다 4 생테밀리옹 북서쪽 끝자락의 포므롤 접경 지역에 위치한 샤토 슈발블랑. 생테밀리옹의 특등급 와인은 샤토 오존과 샤토 슈발블랑 두 개뿐이다 Arcachon아르카숑 사랑스런 남부의 휴양지 대서양 연안의 아르카숑Arcachon은 보르도의 포도밭이 있는 풍경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계절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포근하고 잔풍한 날씨와 풍부한 일조량, 그리고 드넓은 모래사장이 아르카숑을 사랑스런 휴양지로 만든 일등 공신들이다. 해변의 부두에서 배를 타고 30분가량 나아가면 페레곶Cap-Ferret에 도착한다. 특산물인 굴 요리를 배가 동글어지도록 맛본 다음, 해변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면 만족스런 일정이 될 것이다. 아르카숑에서 남쪽으로 9km 떨어져 있는 필라사구Dune du Pilat는 아키텐에서 가장 이례적인 풍광을 선사한다. 유럽에서 제일 높은 사구인데, 종아리에 힘줄을 세워가며 경사면을 허위허위 오르면 장대한 모래언덕과 창창한 아르카숑만이 앙상블을 이루는 장대한 광경이 펼쳐진다. 프렌치 패러독스를 만든 주인공 프랑스는 길게 부연할 필요가 없는 세계적인 요리 대국이자 맛의 본고장이다. 넓고 비옥한 토양, 질 좋고 풍성한 식재료, 독특한 미적 감수성 등이 합쳐져 풍요롭고 다채로운 음식 문화를 일구어냈다. 사실 과거에는 지나칠 정도로 사치스럽기도 했다. 지금의 조리법과 식사 에티켓의 대부분은 루이 14세 때 정립됐는데, 당시 요리는 왕을 돋보이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그 화려함이 절정에 달했다고 한다. 얼마나 흥청망청 먹고 마셔댔으면, <서민 귀족> 등 사회 비판 글을 썼던 루이 14세기의 궁정 극작가 몰리에르가 “살기 위해 먹어야지, 먹기 위해 살아서야 쓰겠느냐”고 일갈했을 정도다. 프랑스 사람들은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한다. 소, 돼지, 닭, 칠면조 등 육류를 주재료로 한 메뉴가 많을 뿐만 아니라 식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버터와 생크림도 콜레스테롤이 높은 음식들이다. 프랑스인들이 별미 중의 별미로 손꼽는 푸아그라 역시 거위의 간으로 만들기 때문에 기름기가 많다. 그런데도 심장 질환에 걸리는 사람이 유럽의 여타 국가에 비해 적은데, 이를 두고 나온 표현이 바로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다. 실제로 프랑스가 장수 국가라는 것은 여러 통계에서도 입증된다. 지난 2월 발표된 아이슬란드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여성의 평균수명은 84.3세로 유럽 국가들 중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공개된 유엔인구기금의 세계인구현황보고서는 프랑스 여성의 평균수명이 일본과 홍콩에 이어 3위라고 전하고 있다. 프랑스 남성의 평균수명 역시 2007년을 기준으로 77.6세에 이를 만큼 프랑스는 국민들이 천수를 누리는 나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다채로운 분석이 뒤따르는데, 일각에서는 ‘삶의 질’을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유급휴가가 많으며 정년퇴직이 빠른 노동 문화, 그리고 안정적인 물가 등이 어우러져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프랑스의 음식 문화이고,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역설’을 가능케 한 주역은 다름 아닌 와인이다. 와인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 성분이 혈중 콜레스테롤의 함량을 낮춰 고혈압, 동맥경화 등과 같은 심장 질환을 예방해 준다는 것이다. 폴리페놀은 특히 레드 와인에 다량 함유돼 있다. 화이트 와인에 비해 무려 20배나 많다. 레드 와인 특유의 떫은맛도 포도 껍질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 성분 때문이다. 폴리페놀의 함유량은 포도의 품종과 재배 지역, 그리고 와인 제조 방법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데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폴리페놀이 유독 많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샤토 몽바지악의 스위트 와인 뒤로 보이는 몽바지악 성. 성과 와인은 곧 지역 주민들의 자존심이다 2 보르도 와인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생테밀리옹의 와인 숍. 앙증맞은 와인 병 미니어처가 눈길을 끈다 T clip 아키텐 에어프랑스(www.airfrance.co.kr)를 이용, 인천-파리-보르도 순으로 이동한다. 파리-보르도 구간의 비행시간은 약 55분. 기차(www.raileurope-korea.com)를 타면 파리에서 보르도까지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샤토 그랑 코르뱅 데스파뉴(www.grand-corbin-despagne.com)는 생테밀리옹에서 7대째 대를 이어가며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샤토 드 몽바지악(www.chateau-monbazillac.com)은 스위트 화이트 와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와이너리. 보르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라 와이너리(www.lawinery.fr)는 소극장과 레스토랑, 와인 바와 숍 등을 두루 갖춘 현대식 와이너리다. 여섯 단계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자신의 기호에 맞는 와인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인 ‘와인 별자리 시스템’이 흥미롭다. 보르도시 남쪽에 위치한 페삭-라오냥 지역의 샤토 파프 클레망(www.pape-clement.com) 역시 빼어난 품질의 화이트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와이너리다. 아키텐에서 묵어갈 만한 곳으로는 마고 마을 안에 위치한 골프 & 스파 리조트인 ‘를레이즈 드 마고(www.relaismargaux.fr)’와 보르도 최고의 호텔로 평가받는 ‘더 리젠트 그랜드(www.theregentbordeaux.com)’를 추천할 만하다. 리젠트 그랜드 내의 레스토랑인 ‘르 푸레수아르 다르장Le Pressoir d‘’Argent’은 바닷가재의 머리와 꼬리를 전용 압축기에 넣어 짜낸 즙을 소스로 사용하는 로브스터 요리와 그라브 와인을 곁들인 캐비아가 압권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경상북도 봉화-산골마을에 퍼지는 ‘워낭소리’

    경상북도 봉화-산골마을에 퍼지는 ‘워낭소리’

    경북 봉화는 ‘소’같다. 긴 속눈썹에 크고 깊은 눈망울, 무던하고 천진한 입매의 그 소를 닮았다. 봉화가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북 봉화는 ‘소’같다. 긴 속눈썹에 크고 깊은 눈망울, 무던하고 천진한 입매의 그 소를 닮았다. 봉화가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간의 채찍질에도 아랑곳없이 길가의 풀을 뜯는 소처럼, 봉화는 오지라 불러도 좋을 산골어귀에서 당신과 나의 고향인 듯 터를 잡고 있던 탓이다. 잠시 봉화라는 달구지에 몸을 실어 볼 것. 딸랑… 딸랑… 아련하고도 청량한 워낭소리가 산바람에 실려 환청인 듯 들려올 것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취재협조 봉화군청 culture.bonghwa.go.kr 1 최 노인의 집은 누추하지만 정겨웠다. 마당 한 쪽에 걸려 있는 액자에는 영화 속 장면이 담겨 있어 <워낭소리>를 추억하게 한다 2 영화의 주요 장면과 줄거리가 새겨져 있는 마을 입구의 조형물 3 최 노인과 누렁이가 논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재현한 동상도 마을 입구에 서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누렁이, 여기 잠들다 차는 봉화 읍내를 지나 내성천을 건너고 다시 봉긋한 산들로 둘러싸인 마을에 들어선다. 여기 어디쯤이라는데, 여느 호젓한 시골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풍경에 영화 <워낭소리>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넓은 논 사이로 가지런히 난 흙길을 따라 터덜터덜 느릿한 걸음을 옮기는 소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엔 거짓말처럼 영화 속 주인공인 최 노인이 달구지에 실려 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30년 넘게 반복되어 온 풍경이 그렇게 재현되고 있었다. 변한 것은 소 한 마리뿐이다. 영화에 나왔던 소는 죽어 땅에 묻혔고, 지금은 튼실해 보이는 젊은 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푸석푸석했던 털은 윤기가 흐르고 할아버지처럼 바싹 말랐던 몸은 근육질을 자랑한다. 요 녀석의 나이는 일곱 살, 이 누렁이도 그전 누렁이처럼 마흔 살(사람으로 치면 120살쯤 된다고 한다)까지, 잘 살아 줄까? 그들이 걸어 나왔던 길을 되짚어 가니 누렁이와 할아버지의 일터가 나타났다. 논밭 주위로는 영화 속 대사가 적힌 벤치들이 수시로 발걸음을 붙잡는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나한테는 이 소가 사람보다 나아요.” “농약 치면 소 먹고 죽어. 사료 먹이면 살쪄서 애 못 낳아!”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듯 생생한데, 그중 한 대사에 코끝이 찡하다. “노인네들 겨울 잘 보내라고 나무를 이레 해놓고 떠났다 아입니꺼.” 그 옆엔 누렁이가 묻힌 무덤과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누렁이(1967~2008)’ 할아버지 최고의 친구이자, 최신의 농기구, 최고급 자가용인 누렁이가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이제는 코뚜레와 워낭을 내려놓고 편히 쉬고 있을는지. 일터에서 할아버지 댁까지는 약 1km 정도. 소처럼 느릿하게 걸어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에 자리한 할아버지의 집에 들어서니 영화 속 정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이른 새벽 허연 김을 뿜어내며 쇠죽을 끓이던 솥이며, 여기저기 쌓여 있는 나뭇짐 그리고 아담한 외양간 들이 묻혀 있던 기억을 속속 끄집어낸다. 외양간에는 아까 그 젊은 누렁이가 긴 혀로 여물을 먹고 있다. 가끔씩 녀석의 턱에 매달린 워낭이 딸그랑 소리를 냈다. 그 워낭소리가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청아하게 마당에 울린다. 어쩌면 변한 것은 없는지도 몰랐다. 우직한 일소들은 하나같이 똑 닮아서 크고 깊은 눈망울에 덤덤하고 천진한 입매를 하고 있다. 그 믿음직한 얼굴과 몸짓이란. 할아버지를 부탁해! 1 거북바위와 연못 그리고 가지런한 돌다리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루는 청암정 2 충재 종택은 고향 할머니의 품처럼 넉넉하다. 소풍을 나온 아이들도 할머니 댁에라도 온 듯 마음껏 재잘거린다 3 계곡에 바짝 다가선 석천정사는 자연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옛 사람들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4 향기로운 전통차를 음미하며 청량산의 풍광까지 감상할 수 있는 안심당은 청량사의 명물이다 5 청량산의 하늘다리는 보는 것만으로 오금을 저리게 한다. 하지만 그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장쾌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금닭의 품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할아버지와 누렁이를 뒤로하고 찾아간 곳은 ‘석천정사石泉精舍’이다. 내성천의 지류인 석천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울울창창한 숲길을 지나 멋스러운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너르게 흐르던 물길은 좁아지며 콸콸콸 시원한 물소리를 내고, 그 물길만큼이나 수려한 석천정사가 자연 속에 폭 파묻힌 채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석천정사는 16세기 중반 충재 권벌의 장남인 청암 권동보가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것이다. 정사를 정자와 구분할 때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의 유무를 따진다는데, 그래서인지 꽤 규모가 크다. 돌로 축대를 쌓아올리고 계곡에 바짝 붙어선 모습은 자연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옛 사람들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정사에 올라서면 계곡과 바위와 숲이 온통 ‘내 것’인 듯 유유자적한 풍경이 펼쳐진다. 석천정사에서 더 상류로 올라가니 갑작스레 숲이 잦아들고 너른 평지가 나타났다. 그 너머로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충재 권벌이 조선시대 기묘사화로 관직에서 물러나 자리를 잡기 시작해 안동 권씨의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경주의 양동마을, 안동의 하회마을과 내앞마을 그리고 이곳 ‘닭실마을’까지를 영남의 4대 길지로 꼽는단다.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버티고 있고, 앞으로는 넉넉한 논과 밭이 이어지다간 깨끗한 물길이 마을을 감싸고 흘러간다. 마을 이름도 풍수지리적으로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는 금계포란金鷄抱卵에서 따온 것이다. 세월을 살짝 비껴간 듯한 마을은 고향의 냄새로 가득하다. 명절 때면 5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닭실마을의 한과를 만드는 손길이 분주하고, 우뚝한 솟을대문을 자랑하는 충재 종택에는 안동 권씨의 일가친척들이 모여 전 부치는 냄새가 진동할 터이다. 가지런한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기억 속의 할머니가 버선발로 달려 나올 것처럼 정감 그득한 마을이다. 닭실마을 동쪽에 자리한 ‘청암정靑巖亭’은 마을 산책의 즐거움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거북이 모양의 넓적하고 거대한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그 주위를 둥글게 파서 연못을 만들었다. 정자를 등에 진 거북이가 연못 위를 노니는 형상이랄까. 연못을 건너 정자로 넘어가는 약 6m의 돌다리도 멋스럽기 그지없는데, 우리나라의 직선으로 된 돌다리 가운데 가장 긴 것이라고. 거북바위, 정자, 돌다리, 연못이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어딘가 낯익다면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 특히 청암정의 돌다리는 <동이>와 <바람의 화원>을 비롯해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애틋한 장면이 연출되었으니 꼭 한 번 건너봐야 한다. 원수를 만나는 외나무다리가 아니라, 비껴갈 수 없는 사랑의 외돌다리(?)이니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질지도 모를 일 아닌가. 닭실마을┃주소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963 문의 054-674-0963 www.darsil.kr 열두 연꽃잎으로 감싸인 청량사 청량산(870m)으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일주문에서 시작된 가파른 길은 ‘청량사淸凉寺’까지 부단히도 이어지며 장딴지를 묵직하게 했다. 사찰의 경내로 진입해서도 마찬가지. 어찌 이런 지형에 사찰을 건립할 생각을 했던 것인지 경이로울 만큼 가람배치가 독특하다. 가파른 산의 경사면에 건물을 올리려니 높다란 석축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여느 산사들보다 더욱 입체적인 가람배치가 형성된 것이다. 이른 아침 산안개가 자욱하게 몰려드는 경내에 서 있자니 주위가 온통 봉우리들로 가득하다.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해서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화봉, 향로봉 등 12개 봉우리가 우뚝우뚝 솟아 있고, 청량사는 그 한가운데에 자리한 형국이다. 열두 연꽃잎에 감싸인 꽃술이 바로 청량사인 셈이다. 특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층 석탑에 서면 청량산의 장쾌한 풍경이 펼쳐져 산행의 고단함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원효대사가 663년 창건했다는 청량사에는 그 깊은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오고 있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을 왔다가 이곳 청량사에 들렀다고 한다. 약사여래를 모신 ‘유리보전琉璃寶殿’의 현판이 바로 공민왕의 친필이라고 하며, 사찰 오른편에 자리한 응진전에는 공민왕과 그의 부인인 노국공주의 영정이 걸려 있기도 하다. 또 통일신라 말기의 뛰어난 학자였던 최치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운대와 독서당, 명필 김생이 10년간 은거하며 글을 썼다는 김생굴, 퇴계 이황이 성리학을 집대성한 청량정사 등이 산 곳곳에서 여행객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다. 청량사에서 숨을 돌리고 다시 산길을 더듬어 한 30분 정도 오르면 ‘하늘다리’이다. 해발 800m의 높이에 자란봉과 선학봉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다리는 보는 것만으로 아찔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가장 높은 현수교라는데, 발을 디딜 때마다 조금씩 출렁이는 것이 오금을 저리게 한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면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태백산맥 끝자락에 걸린 봉화는 면적의 83%가 산이다. 산과 산들이 중첩을 이루며 하늘 끝으로 멀어져 가고, 그 사이사이 작은 마을들이 들어선 모양새는 아득하고 또 신비롭다. 청량사로 되돌아와서 산을 내려오려는데 어디선가 그윽한 차향이 흘러나온다. 시원한 통유리로 청량산의 정경을 감상하며 솔바람차, 오미자차, 작설차 등 전통차를 음미할 수 있는 찻집이다. 그 이름도 ‘안심당安心堂’이다. 차 한 잔을 시키고 창밖을 바라본다. 문득 영화 <워낭소리>가 떠올랐다. 누렁이가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 가파른 산길을 올라와 5층 석탑 앞에서 소의 영혼을 위해 기원을 드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산새소리가 마치 워낭소리인 듯 ‘딸랑’ 귓전을 스치고 지나간다. 청량산도립공원┃주소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로 255 문의 054-679-6653 mt.bonghwa.go.kr Travel to Bonghwa ▶봉화 찾아가는 길 경상북도 봉화를 찾아가는 관문 도시는 영주, 안동, 영양, 울진, 태백 등지다. 사통발달 길이 통해 있지만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시내버스나 택시로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서울에서 영주까지 기차(무궁화호)로는 3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영주와 봉화를 오가는 버스는 하루 종일 5~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봉화버스터미널 054-673-4400, 영주여객(시내버스) 054-633-0011 ▶봉화에서 가볼 만한 곳 재래시장의 질펀한 흥겨움‘봉화시장’ 봉화군청에서 철길을 건너면 왁자한 시장골목이 시작된다. 봉화시장은 예로부터 영월, 삼척, 울진, 안동, 예천 등지에서 장을 보러 올 만큼 사람들로 붐벼 ‘들락날락 봉화장’이라는 유행어까지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하는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장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해졌다. 오일장(2, 7일)이 서는 날이면 각설이 공연에 민속품 경매까지 흔히 볼 수 없는 장터 풍경이 펼쳐지니 살 것이 없더라도 눈이 즐겁다. 시장문화사랑방 054-674-2008 이몽룡은 실존인물이다! ‘계서당’ 봉화 읍내에서 내성천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이몽룡의 생가로 알려진 계서당이 나온다. <춘향전> 연구의 대가로 알려진 연세대 설성경 교수가 오랜 연구 끝에 이몽룡이 실존 인물이었음을 밝혀낸 것. 이몽룡은 본래 봉화의 성이성이란 사람이었는데, 계서당은 그가 1610년 즈음 건립하여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라고 한다. 이중으로 기단을 올려 높다랗게 지은 사랑채와 오른쪽 끝에 만들어놓은 간이 화장실(?)이 볼거리이다. 주소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 그 씁쓸하고 톡 쏘는 맛! ‘오전약수’ 봉화군에는 두내, 다덕, 오전 세 개의 약수터가 유명하다. 그중에서 물야면 오전리에 자리한 오전약수는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기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전국 약수대회에서 1등 약수로 선정됐다고도 하니 그 명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탄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톡 쏘는 맛이 강하고, 철도 많아 매우 씁쓸한 것이 특징이다. 강원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던 보부상들이 발견했다고 하여 약수터 옆에는 보부상 조각이 서 있기도 하다. ▶봉화의 맛 3선 송이돌솥밥 봉화는 매년 9~10월 즈음에 ‘봉화송이축제’를 개최할 만큼 자연산 송이가 맛난 지역이다. 송이돌솥밥은 얇게 저민 송이를 밥 위에 살짝 얹고 쪄낸 것으로 향긋한 송이의 향이 입 안을 감도는 맛이 일품이다. 봉화읍내의 ‘솔봉이’ 식당이 송이돌솥밥으로 유명하다. 송이돌솥밥 1만5,000원, 송이전골 1만5,000원, 송이구이 4만원. 주소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232-11 문의 054-673-1090 봉성돼지숯불구이 봉화군 봉성면에는 ‘봉성돼지숯불단지’가 형성되어 있어 식사 때가 되면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예전에는 이곳에 시장이 있었는데, 암퇘지 고기를 소나무 숯불에 구워내는 남다른 향에 사람들이 장보는 것도 잊고 고기를 즐겼다고. ‘상봉숯불식당’도 봉성돼지숯불단지에 자리한 식당 가운데 하나이다. 돼지숯불구이 9,000원, 생삼겹살 1만원. 주소 경북 봉화군 봉성면 봉성리 363-1 문의 054-672-9783 봉화한약우 봉화는 산악지형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작약, 당귀 등 약초 재배가 활발하다. 이러한 한약재를 첨가한 사료를 먹여 키워낸 한우를 ‘봉화한약우’라 한다. 올레인산을 비롯한 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기로 잘 알려져 있다. 봉화읍내에 자리한 ‘은하숯불회관’도 봉화한약우 전문식당이다. 육회 3만원, 생갈비살 2만원, 소고기버섯전골 1만원. 주소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352-2 문의 054-673-1303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미안해 여보, 냉장고가 텅 비었어”

    “미안해 여보, 냉장고가 텅 비었어”

    90% 이상 대부분의 가구가 구입하는 20개 품목을 나타내는 식탁체감물가의 지난달 상승률이 통계청의 신선식품물가 상승률보다 무려 61.7%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상의 물가와 주부들의 체감 물가가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 확인된 것이다. 단가가 비싸고 주부들이 많이 구입하는 돼지고기, 물오징어, 배 등의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이 주원인이었다. 정부의 수입량 확대 정책에도 물가가 안정되지 않고 폭우로 과일 및 채소 가격 상승도 예상돼 당분간 높은 식탁체감물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5일 서울신문이 우리나라 가구의 90% 이상이 구매하는 23개 품목 중 공인된 가격 정보가 있는 20개에 대해 지난 6월 식탁체감물가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6월보다 7.6% 올랐다. 통계청의 6월 신선식품물가 증가율(4.7%)보다 61.7%(2.9% 포인트) 높은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최근 발간한 ‘2010년 식품산업분야별 원료소비 실태조사’의 23개 품목을 바탕으로 실제 가구의 구입 빈도 등을 계산해 산출했다. 농산물 가격은 농수산물유통공사를 통해 조사했으며, 밀가루 및 천일염 등 가공식품 가격은 한국소비자원 자료를 이용해 구입 빈도와 구입량을 고려한 식탁체감물가를 산출했다. 가구당 구매 경험비율은 우유가 99.5%로 가장 높았고 계란(99.4%), 돼지고기(99.1%), 동태(98.7%), 밀가루(98.7%), 물오징어(98,5%), 쇠고기(98.3%) 순이었다. 가구당 구매 횟수는 우유가 연 114회(회당 1ℓ)로 가장 많았고 돼지고기 18회(1.2㎏), 파 16회(800g), 계란 15회(1.6㎏), 무 13회(4.7㎏), 김 12회(200g) 순이었다. 지난달 20개 품목의 가구당 소비액은 돼지고기(삼겹살)가 평균 4만 3788원(1.8㎏)으로 지난해 6월 2만 9851원보다 1만 3937원(46.7%) 늘었다. 배는 지난해 6월 1만 1101원에서 지난달 1만 5794원(1.3㎏)으로 4693원(42.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물오징어(냉동)도 4693원에서 8083원(530g)으로 3390원(72.3%)이 늘었고, 계란(2㎏) 지출액은 1497원(29.2%) 높아졌다. 반면 파(-54.4%), 양파(-37.2%), 동태(-36.1%), 무(-27.7%) 등은 값이 내렸다. 지난해 6월보다 가격이 오른 품목은 11개, 내린 품목은 9개로 비슷했지만 구매 비중과 단가가 높은 품목의 값이 크게 오르면서 식탁 사정이 더 팍팍해진 셈이다. 20개 품목의 가구당 지난달 총 구매액은 16만 7524원으로 지난해 6월(15만 5688원)보다 1만 1836원(7.6%) 늘었다. 이달(1~13일) 식탁체감물가는 지난해 7월에 비해 6.5% 증가해 6월 증가율에 비해 소폭 줄었으나 여전히 신선식품물가보다 높다. 특히 긴 장마로 채소 및 과일 가격이 치솟으면서 추석까지 상승세가 예상돼 체감물가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사과, 배는 평년보다 각각 5.1%, 17.1% 생산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돼지고기도 올해 말까지 지난해보다 23%의 공급량이 줄어 가계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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