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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00년된 미라 두개골서 ‘뇌 빼는 도구’ 발견

    2400년 된 미라에서 미라 제작 시 뇌를 제거할 때 쓰는 고대 도구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대 이집트 미라의 두개골에서 발견한 이 도구는 3인치 길이로, 고대 이집트 미라 제작인들이 사망인의 두개골에서 뇌를 제거할 때 사용했다. 이 도구는 야자과 나무, 대나무 등의 식물 나뭇가지로 만들었으며, 미라를 만들 때 값비싼 금속 대신 저렴한 수술도구로 쓰였다. 당시 미라 제작인들은 긴 막대기 모양의 이 도구를 코를 통해 삽입한 뒤 뇌를 제거하는 시술을 펼쳤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있는 두브라바 대학병원의 미스라브 카브카 박사 연구팀은 사망 당시 40대 여성이었던 2400년 전 미라를 연구하던 중 송진으로 가득 찬 왼쪽 두정골과 뒤쪽 두개골 사이에서 이 도구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고대 이집트 미라 제작에서 뇌를 제거하는데 쓰는 도구가 발견된 것은 단 한차례 밖에 없었으며, 이는 이번에 발견한 것보다 200년 더 늦은 2200년 전의 도구였다. 카브카 박사는 라이브사이언스와 한 인터뷰에서 “고대 이집트 인들이 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이 도구를 뇌에 남겨둔 것 같다.”면서 “그들의 ‘작은 실수’가 수 천 년이 지난 현재에 당시의 미라 제작 과정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의학 저널인 북미영상의학회의 라디오그래픽스(RadioGraphics)에 실렸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마추픽추 너머의 페루… 사막·호수·섬

    마추픽추 너머의 페루… 사막·호수·섬

    마추픽추 없는 페루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데 역설적으로 페루에서 마추픽추를 지워야 또 다른 페루의 모습과 만나게 됩니다. 잉카 제국이 남긴 수많은 유산들에 앞서 페루의 자연을 먼저 이야기하려 하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척박함과 아름다움의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사막과 100만 마리 바닷새들이 살아가는 절해고도, 그리고 하늘이라도 능히 담아낼 것 같은 넓고 아름다운 호수를 먼저 알아야 그 안에 깃든 문화와 역사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지구 반대편에 나와 비슷한 키에 나보다 다소 검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도 그제야 새삼 깨닫게 되지요. ■ 개성 넘치는 자연, 천의 얼굴을 가진 사막 페루에는 독특한 기후를 가진 세 지역이 공존한다. 칠레까지 길게 이어진 태평양 연안의 해안지역과 안데스 산맥의 고원 지대, 그리고 아마존의 정글 등이다. 독특한 기후는 독특한 풍경을 낳는다. 마추픽추로 상징되는 오래된 풍경들 말고도 페루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많다. 다만 잉카의 유산들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수도 리마를 통해 입국한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건 1800마일(약 3000㎞)에 달하는 사막지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태평양 연안의 적갈색 땅은 그 전조였던 셈. 잉카의 제국에서 사막과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기 쉽지 않다. 유려한 곡선과 음영을 가진 전형적인 사막에서부터,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1996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그로테스크한 마을 풍경까지, 척박하고 단조로운 풍경이 주는 감동은 넓고 또 깊다. 사막으로 가는 첫 관문은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다. 북쪽 알래스카에서 남쪽의 아르헨티나까지, 남북아메리카를 잇는 2만 6000㎞ 길이의 고속도로다. 리마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300㎞쯤 남쪽으로 달리면 이카(Ica)다. 건조한 사막 도시지만, 관개농업 덕에 아스파라거스 생산량 세계 1위에 오를 만큼 농업 도시로 성장했다. 이카 외곽에 와카치나 오아시스가 있다. 오래전엔 인근에 7개의 오아시스가 있었으나, 농업용수로 끌어다 쓰는 통에 지금은 2개만 남았다.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의 와카치나에는 전해오는 설화가 있다. 오래전 한 여인이 한 달에 한 번씩 이 오아시스에 와서 목욕을 했더란다. 그러던 어느날 여인은 자신의 알몸을 훔쳐보던 한 남자를 거울을 통해 보게 됐고, 수치심에 달아나다가 오아시스의 인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딘가 우리 ‘선녀와 나무꾼’의 데자뷔처럼 느껴진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건조한 기후 탓에 오아시스가 계속 말라가고 있다. 급기야 지방 정부에서 인위적으로 물을 채워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현재는 50%만 자연적으로 용출되는 물이고, 나머지는 공급된 물이다. 와카치나 오아시스 주변으로는 300m 높이의 모래언덕이 에둘러 펼쳐져 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산을 힘겹게 오르면 놀라운 풍경이 펼쳐진다. 움푹 파인 오아시스 마을 너머 수없이 중첩된 모래산들이 황톳빛 마루금을 펼쳐낸다. 모래 언덕 위엔 샌드 보드와 버기카, 지프 등을 타며 스릴을 만끽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파라카스 국립자연보호구역 내 캘리포니아 사막도 가볼 만하다. 와카치나 오아시스에 견주자면 전형적인 사막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모래가 바람을 만나 칼날 같은 경계선을 그리고, 그 위로 햇살이 깃들며 깊은 음영을 그려낸다. 몽환적인 풍경이다. 와카치나와 달리 캘리포니아 사막은 찾는 사람들이 드물다. 대중교통은 없고, 여행사에서 운용하는 어드벤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해야 한다. 수없이 많은 모래언덕을 지프를 타고 돌아보는데, 짜릿하고 스릴 넘친다. ■ ■ 남미의 작은 갈라파고스… 바예스타스 섬 사막도시 이카와 위도상 비슷한 위치에 파라카스 반도가 있다. ‘모래바람’이란 뜻의 반도는 퍽 인상적인 풍경을 지녔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자락들이 여인의 허리를 연상시키는 곡선을 그리며 바다로 줄달음친다. 파라카스 반도의 끝자락에서 한발짝 내디디면 바예스타스 섬이다. 100만 마리가 넘는 바닷새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바예스타스 섬으로 가는 들머리는 파라카스항이다. 페루의 주요 어항 가운데 한 곳이라는데, 우리의 항·포구에 견줘 한적하기 짝이 없다. 반면 항구 앞바다는 부산하다. 돌고래들이 물고기를 쫓고, 페루비안 부비새들은 수면 가까이 떠오른 물고기떼를 공격하기 위해 날개를 접은 채 화살처럼 내리꽂힌다. 펠리컨들도 경쟁하듯 자맥질에 한창이다. 바예스타스 섬까지는 19㎞, 배로 30분 정도 걸린다. 오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이 장관이다. 저 유명한 ‘칸델라브로’(Candelabro), 이른바 ‘촛대 그림’도 바로 이 길에서 만난다. ‘촛대 그림’은 파라카스 반도 위에 그려져 있는 문양으로 나스카 라인에 빗대 ‘작은 나스카’라 불린다. 세로 길이는 180m, 가로는 70m다. 폭은 4m, 선의 깊이는 30㎝ 정도다. 현지 가이드 호세는 “주변에 유기물이 없어 탄소연대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제 만들어졌는지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며 “다만 나스카 라인이 있는 남쪽을 가리키고 있어 이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바예스타스 섬은 새들의 낙원이다. 남미 바다사자 등 포유류도 눈에 띄지만, 절대 다수는 새들이다. ‘남미의 작은 갈라파고스’라는 별명도 그래서 생겼다. 섬에 서식하는 바닷새는 모두 60여종. 페루비안 부비새와 가마우지 등이 우점종이고, 훔볼트 펭귄 등 진귀한 새들도 세들어 살고 있다. 100만 마리의 새가 한 자리에 모여 재잘대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지, 혹은 수 만 마리 바닷새가 동시에 섬 주변을 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지. 단언컨대, 그 순간 만큼은 배멀미를 하거나, 새똥 냄새에 역겨워하는 당신은 없다. 섬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새는 과나이 가마우지다. 인산질 비료로 이용되는 새똥, 구아노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섬에서 최초로 구아노를 채취한 이들은 16세기 잉카인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보통 7년에 한 번씩 채취하는데, 대개 5월에 시작해 6개월쯤 소요된다. 한번에 채취하는 양은 6000t 정도. 1㎏ 당 1.25 유로(약 1750원)의 고가에 팔린다. 재정이 취약한 페루로서는 새들에게 톡톡히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다. 바예스타스 섬은 모두 3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졌다. 자세히 보면 섬 곳곳에 구아노가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돌담을 쌓아 뒀는데, 19세기 초반 그리스인들이 조성한 것이다. 잉카의 후예들에게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 티티카카 호수다. 잉카의 창조신인 비라코차 또한 호수 남쪽 ‘태양의 섬’에서 태어났다고 페루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높이는 해발 3800m. 지구를 통틀어 배가 오갈 수 있는 호수 가운데 하늘과 가장 가깝다. 우리 백두산(2744m)도 티티카카 호수보다 낮다. 타원형으로 생긴 호수는 가장 긴 곳이 165㎞, 짧은 곳도 60㎞에 이른다. 이쯤되면 호수라기보다 바다에 가깝다. 최고 수심은 284m. 페루 북쪽의 아마존강과는 형제나 다름 없다. 같은 산에서 발원한 뒤 흘러 가는 방향만 달리한다. 호수는 페루 남쪽에서 볼리비아와 경계를 이룬다. 호수의 60%는 페루에, 40%는 볼리비아에 속한다. 티티카카에서 티티는 푸마, 카카는 회색(아이마라어), 또는 바위(케추아어)라는 뜻이다. ■ ■ ■ 잉카 후예들에게 마음의 고향… 티티카카 호수엔 건기와 우기만 존재한다. 11~4월이 우기에 속하는데, 밤이 되면 비가 쏟아지고, 낮에는 흐리거나 맑은 날씨가 반복된다. 기온 또한 낮엔 30도 가까이 치솟고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등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호수 내 섬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우로스 섬’이다. 갈대섬과 갈대배로 유명하다. 현지 관광청 직원인 훌리오 세자르에 따르면 페루 지역에만 모두 73개의 갈대섬이 물에 떠 있다. 주민수는 800여 가구에 2900여명. 유치원 2개, 초등학교 5개, 고등학교 1개가 있다. 각각의 섬에는 5~10가구가 산다. 모든 가구는 혈연으로 연결돼 있다. 주민들은 갈대섬에서 태어나 갈대섬에서 인연을 만나고, 생을 마감한단다. 믿기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갈대섬 문화는 기원전 1000년쯤 볼리비아에서 먼저 시작됐다. 갈대섬 조성 방법은 간단하다. 호수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갈대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호수 바닥과 함께 물 위로 떠오른다. 뿌리 안에 많은 양의 공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호수 바닥과 연결된 부분을 자른 뒤, 이 블록을 다른 블록과 연결하면 섬의 기반이 완성된다. 처음에는 밧줄로 블록들을 연결하지만, 5년 정도 묶어 두면 갈대 뿌리들이 서로 뒤엉켜 자라면서 자연스레 튼튼하게 연결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반 위에 싱싱한 갈대를 한 층은 가로로, 그 위층은 세로로 얹고 단단히 밟아 바닥을 완성한다. 이 위에 갈대집 ‘우타’를 짓고 생활한다. 갈대섬은 모계 중심 사회다. 낚시로 물고기를 잡거나 물새알 채집, 새 사냥 등으로 끼니를 장만한다. 갈대는 집 짓는 자재이자 식량이다. 옥수수대처럼 뿌리 쪽 하얀 부분을 먹는데, 치아에 좋은 성분이 많아 섬 주민들이 평생 치과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유명세에서는 밀릴지언정 풍경의 깊이로는 몇 곱절 빼어난 곳이 타킬레 섬이다. 섬 내 가장 높은 곳은 4050m에 이른다. 섬에 들면 먼저 유칼립투스 나무가 진한 향기로 이방인을 맞는다. 섬은 전남 완도의 청산도를 닮았다. 섬 전체에 이리저리 돌담길이 나 있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당리의 보리밭길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섬 주민들이 착용한 현란한 색상의 모자와 허리띠 등의 직물이다. 특히 남자들의 뜨개질 솜씨가 일품이다. 거기엔 까닭이 있다. 섬 총각이 장가를 들기 위해선 모자를 견고하게 잘 만들어야 한다. 혼인을 허락받기 위해 장인 앞에서 자신이 만든 모자로 시험을 치르는데, 모자에 물을 담아 물이 샌다거나, 모자를 세워 조금이라도 옆으로 쓰러지면 가차없이 퇴짜를 맞는다. 이렇게 튼튼한 모자를 만들기 위해선 꼬박 8개월~1년의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섬에서 모자는 신분의 상징이다. 결혼 유무와 섬 내 지위, 심지어 기분의 좋고 나쁨까지 모자로 표현한다. 글 사진 이카·푸노(페루)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페루의 화폐 단위는 솔(Sole)이다. 국내에서 미국 달러로 환전한 뒤, 현지에서 다시 솔로 바꾼다. 1달러에 2.5솔 정도다. 현지에서 ‘프라피노’(팁)를 줘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기므로 잔돈을 여유있게 바꿔 가는 게 좋다. >>관광지마다 전통 복장을 하고 ‘모델’로 나서는 현지인들이 많다. 특히 프라피노를 요구하며 달려드는 어린이들의 ‘습격’에는 버틸 재간이 없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누구나 프라피노를 요구하는데, 2~3솔 정도가 일반적이다. 어린이를 위해 초콜릿 등 과자나 연필 등 학용품을 선물로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계절 옷을 전부 준비하는 게 좋다. 리마 등에서는 가벼운 복장으로도 충분하지만, 안데스 등 고산 지역과 사막에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한낮에도 덥긴 하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곧 서늘해진다. >>입국할 때 반드시 비행기 왼쪽 좌석에 앉을 것. 태평양 연안을 따라 리마까지 가는 동안 웅장한 안데스 산맥의 ‘백만불짜리’ 풍경과 줄곧 동행할 수 있다. >>개별적으로 택시를 탈 땐 흥정을 잘 해야 한다. 우리처럼 계기판 요금제가 아니기 때문에 차 타기 전 목적지까지의 요금을 정하는데, 특히 화폐 단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무심코 숫자만 불렀다간 솔이 아닌 달러로 계산해야 하는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 [유권자들이 본 대선공약] (1) 대학생

    [유권자들이 본 대선공약] (1) 대학생

    18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남짓 앞두고서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공약집이 공개되고 있다. 그마저도 표심(票心)을 겨냥한 선심성, 구호성 공약이 많아 유권자의 눈높이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신문은 유권자들이 그들의 생활이나 관심 분야와 관련된 공약을 어떻게 진단하고 평가하는지 살펴봄으로써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고액 등록금과 취업난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에게 두 후보의 공약에 대한 평가와 제언을 들어봤다. 20~30대 투표율이 이번 대선의 핵심 변수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대학생들의 후보 정책 평가는 이들의 투표 참여 여부와 표심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의 인터뷰에 응한 대학생들은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각각 내걸고 있는 대학생 관련 공약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포퓰리즘 공약이다.”, “빈틈이 많다.”, “막연하다.”, “허무맹랑하다.”는 따끔한 지적을 내놨다. “하다못해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도 회장 후보들이 ‘어떻게 하겠다’며 공약 실천 로드맵을 제시하는데 이번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이걸 도대체 어떻게 실천하지’ 하는 의문만 남는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들은 두 후보의 공약을 비판하는 데 대한 논리적인 근거도 확실히 제시했다. 후보들이 미처 관심을 갖지 못했던 분야에 대해서는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며 “이제라도 공약에 반영해 달라.”고 요구했다.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생 이희오(23)씨는 10일 “대선 후보들이 반값 등록금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대학생들의 다양한 고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청년인턴제도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이씨는 “대학생들이 취업용 스펙 쌓기를 위해 여러 인턴제도에 참가하지만 단순한 소모품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결국 한 줄짜리 스펙용으로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학·공학 계열에 집중돼 있는 산학 협동 프로그램이 인문·사회과학 분야 전공과 관련된 직무 체험 기회로까지 확대됐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공약실천 로드맵 있는지 의문” 두 후보의 공약에 대한 총평에서 이씨는 “문 후보의 공약이 이행 절차와 방안에서 박 후보보다 좀 더 구체적”이라면서 “공약에 대한 의지와 역량 측면에서 문 후보가 돋보인다.”고 평했다. 반면 한림대 의학과 본과 3학년생 한정엽(23)씨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박 후보의 공약이 실현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다.”면서 “문 후보의 공약에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대학생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부분은 역시 ‘반값 등록금’ 공약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박·문 후보가 내놓은 반값 등록금 공약 모두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서강대 프랑스문화과 4학년생 황지용(25)씨는 장학금을 늘려 대학 등록금의 ‘부담’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박 후보의 공약에 대해 “장학금과 반값 등록금은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꼬집었다. 황씨는 “장학금은 일정 수준 이상의 학점을 유지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인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하는 학생과 가정이 유복해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뺏기지 않고 공부를 하는 학생 가운데 누가 더 높은 학점을 받겠느냐.”고 되물었다. 가난한 가정의 학생이 낮은 학점을 받고 부유한 가정의 학생이 높은 학점를 받는 이른바 ‘빈익저(低) 부익고(高)’ 현상이 빚어지기 때문에 박 후보의 장학금 확대를 통한 반값 등록금은 결국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등록금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문 후보의 공약에 대한 회의감도 적지 않았다. 경희대 한의학과 본과 3학년생 이나라(24·여)씨는 “반값 등록금 실현으로 인한 재원의 공백을 국민 세금으로 채운다면 결국 또 다른 부담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뿐”이라면서 “특히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의 경우 어떤 조치를 통해 등록금을 절반으로 줄일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희오씨도 “모든 대학에서 반값 등록금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집권 기간 동안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달성될 문제”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각자 자기 전공 분야의 관점에서 본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도 한계와 빈틈이 많았다. 의학을 전공하는 한씨는 “박 후보와 문 후보 모두 복지 확대에 따른 비용 증가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서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씨는 특히 문 후보의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 공약에 일침을 놓았다. 그는 “문 후보는 무상의료를 주장하다가 안 되겠다 싶으니 ‘100만원 상한제’로 이름만 바꿔 내놓았는데 부족한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짚었다. 이어 “이 공약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의사에게 지급되는 의료비 수가를 낮추거나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 이는 결국 서민들의 주머니만 터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결국 무산될 공약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씨는 “중증 4대 질환 진료비 전액을 단계적으로 국가가 부담하겠다는 박 후보의 공약은 그나마 현실성이 엿보인다.”고 평했다. 한의학과를 다니는 이나라씨는 “현 정부의 의료정책은 의료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했고 잦은 갈등만 부추겼는데 박 후보가 내놓은 의료정책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며 반론을 폈다. 그러나 “문 후보 역시 현 정부 폐해를 무마하려는 데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의료인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공약들만 나열한 느낌이 든다.”며 동시에 비판했다. ●“문화·예술분야 공약 부실” 프랑스문화과에 다니는 황씨는 후보들의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공약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두 후보 모두 일제히 문화·예술 분야에 예산을 늘리겠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문화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가난한 예술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예술인 복지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글로벌 시대] 클리넥스 효과/장홍 프랑스 알자스주 정부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클리넥스 효과/장홍 프랑스 알자스주 정부개발청 자문위원

    2012년은 세계적으로 선거의 해다. 4·11 총선을 치르고 대선을 눈앞에 둔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프랑스·일본·베네수엘라 등에서 선거가 치러졌고, 중국에서도 시진핑을 중심으로 세대 교체와 함께 새로운 지도체제가 들어섰다. 세습이나 밀실에서 권력 이양이 이루어지는 국가를 예외로 치면, 선거는 민주주의 체제를 실행하는 모든 나라에서 정기적으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절차다. 선거에 텔레비전이 동원된 이래 이미지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과 파급효과는 거의 절대적이라 할 만하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내용보다는 형식에 의해 선거의 승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각 정당은 가능한 모든 매체를 동원해 유권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넣으려고 총력전을 편다. 소위 선거 마케팅이 판을 친다. 소비가 미덕이 돼 버린 물질숭배주의 사회에서 상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개발된 마케팅은 인간의 잠재의식이나 심리를 놀라울 정도로 교묘하게 이용하는 도구가 됐다. 최대한 유권자의 관심을 유발해야 하는 정치가 이에 주목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 결과 선거도 일종의 마케팅이 된 지 오래다. 상품을 팔 듯 정책과 이미지를 팔고 표를 사는 것이다. 그리고 유권자들도 어느새 소비자로서 행위하고 반응하는 데 익숙해졌다. 마케팅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대체한 것이다. 상품은 소비자의 편리를 위해 계속적으로 새로운 것이 개발돼야 살아남는다. 정책도 시대적 요청과 국내외 여건에 따라 새롭게 개발돼야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상품과 정책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시간이라는 요소가 다르게 작용한다. 상품은 구매 즉시 용도에 맞게 바로 사용할 수 있다. 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하든가 폐기처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책은 실효를 거두기 위해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 정치적 마케팅의 자기모순이 내재한다. 선거의 승리에 매우 효과적인 마케팅이 승리 후에는 부메랑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선거에 승리한 정부나 정치인의 여론 지지도가 불과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정치 공식처럼 돼 버렸다. 선거 기간의 화려한 마케팅에 힘입어 정책이란 상품을 팔고 나면 소비자로 변한 유권자는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는 데 대해 성마른 불만을 터뜨린다. 불만족스러운 상품은 바로 반품이나 교환이 가능하지만, 정치적 선택은 한 번 하고 나면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음 선거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대선까지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국내외 정세로 볼 때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5년의 임기가 될 것이다. 그럴수록 국민의 신중한 선택이 중요하다. 선거에서 최선의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중한 선택을 위해서는 정치 마케팅 공세나 현란한 이미지 정책에 거리를 둘 줄 아는 유권자의 지혜가 절실히 요청된다. 정책을 꼼꼼히 따져보고, 그것이 자기 자신과 국가의 현재는 물론 특히 장래를 위해 실현 가능하고 바람직할까를 짚어봐야 한다. 투표에서 한 번의 선택은 단순한 상품의 선택과 다르기 때문이다. 한 번 뽑으면 싫으나 좋으나 5년이란 긴 세월을 기다려야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정당도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이미지 위주의 마케팅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차분히 정책을 설명하면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승리에 급급해 인기몰이에만 치중하다 보면 비록 대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클리넥스 효과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언제 뽑았느냐는 듯 버림당할 것이다. 나라 안팎의 사정이 어려운 시기에 클리넥스 효과는 더욱 빨리, 그리고 거세게 닥칠 것이다. 선거가 자본주의의 생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선거가 새로운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도 단순한 소비자에서 진정한 유권자로 자기 자리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 “文의 집앞 구걸정치에 安 적선정치”

    새누리당은 6일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선거지원에 대해 “구걸정치·야합정치”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다시 등장한 ‘안철수 변수’가 대선 판세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세우면서도 파급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안형환 선대위 대변인은 “문재인의 ‘운명’은 ‘안철수의 생각’에 따라 결정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의 저서 제목을 따서 안 전 후보에 의존하는 문 후보의 상황을 풍자한 것이다. 이정현 공보단장도 “문 후보의 ‘집앞 구걸정치’에 대한 안 전 후보의 ‘마지못한 적선정치’를 보게 돼 씁쓸하다.”면서 “이런 정치는 처음 본다. 정치가 아니라 구걸”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장은 또 7일 안 전 단장이 부산 유세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부산 간다고 부산표가 다 안철수 표인가.”라며 평가절하했다. 새누리당은 안 전 후보의 지원결정이 너무 늦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문 후보에 비해 우위를 보이는 현재의 판세를 바꿀 정도의 위력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조금 영향이 있긴 하겠지만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안 전 후보가 전면 지원하든 안 하든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안 전 후보가 대선판에 영향력을 과시하려다 보면 역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석에 따라 새누리당은 별도의 전략 수정 없이 기존에 해오던 대로 민생만을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박선규 대변인은 “이제 선거가 2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면서 “주변 요인에 신경 쓸 틈이 없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한혜진 “CF 끊겨도 겁나지 않아요… 젊은 세대도 그날을 알아야죠”

    한혜진 “CF 끊겨도 겁나지 않아요… 젊은 세대도 그날을 알아야죠”

    친구들은 일찌감치 TV 드라마 주역으로 데뷔했다. 은광여고 동기 송혜교, 서울예대 동기 손예진이 그랬다. 여고시절 ‘얼짱’으로 소문났던 그는 더뎠다. 10여편의 드라마·영화에서 단역과 조역을 거쳐 2005년 ‘굳세어라 금순아’, 이듬해 ‘주몽’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시청률 잘 나오는 작품을 하려고 1년 반을 고른 ‘떼루아’(2008)는 시련을 안겼다. 역대 SBS드라마 최저 시청률 톱5에 꼽힐 정도. “너무 부끄러웠다. 드라마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잘못된 선택 기준이 부끄러웠다. 인기가 아니라 내공을 쌓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목표를 바꾸니 시청률, 인기, 다른 배우와의 비교가 다 보잘 것 없었다.”(지난 10월 원더우먼페스티벌 강연 중) 그래서 택한 작품이 범죄스릴러 ‘용서는 없다’였다. 심지어 강력반 여형사 역할. 드라마로 데뷔한 20대 여배우들이 멜로나 로맨틱코미디로 충무로 연착륙을 노린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1980년 광주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누이를 잃은 유가족들이 뭉쳐 연희동 ‘그사람’을 단죄하는 영화 ‘26년’(작은 사진)에 한혜진(31)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사람들은 또 놀랐다. 물론, 그는 ‘예쁜 척하는’ 역할을 맡은 적은 없었다. ‘굳세어라 금순아’에선 과부였고, ‘가시나무새’에선 고아에 미혼모였다. ‘제중원’에선 백정 출신과 사랑에 빠졌고, ‘주몽’의 소서노 역시 운명을 개척하는 능동적 캐릭터였다. “아픔이 있는 캐릭터에 묘하게 끌린다.”고 했다. 그래도 ‘26년’은 달랐다. 자칫 의식 있는(?) 배우로 낙인 찍히면 잃을 게 더 많다. 토크쇼 ‘힐링캠프’ 공동진행자로, 광고 모델로 잘나가고 있는 그가 민감한 소재 탓에 제작이 불투명한 영화에 왜 출연을 결심했을까. “2008년 (김)아중이랑 류승범 선배가 캐스팅됐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무산됐더라고요. 올 초에도 투자가 잘 안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러다 진구씨가 캐스팅됐고, 여배우는 미정이란 기사를 봤죠. 나한테 왜 연락이 안 올까란 생각을 하다가 깜빡 잠들었어요. 낮잠에서 깨니 전화가 왔어요. ‘26년’ 시나리오가 들어왔다고. 소름이 쫙 끼치던걸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가슴이 뜨거웠어요. 평생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았죠. 조급했어요. 못 하게 될까 봐. 회사에서 시나리오를 건네주긴 했지만 정치적인 것에 연루되고 오해를 살까 봐 걱정된다고 만류했어요. ‘CF 안 해도 되냐’고도 했죠. 그래서 안 해도 된다고 했어요. 뭘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안 무섭다고. 하하하.” 그는 1980년 광주를 겪지 못한 세대다. 캐스팅이 확정되고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오월애’ 등 다큐멘터리와 ‘PD수첩’ 등 시사다큐를 찾아서 봤다. “솔직히 무지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뒤에야 자료를 찾아봤다. 너무 끔찍했다. 관련자료를 보는 내내 분노가 끓어올랐다.”고 했다. 한혜진이 맡은 심미진은 1980년 5월 계엄군 총에 어머니를 잃었다. 술독에 빠져 살던 아버지마저 연희동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국가대표 사격선수 경력을 살려 ‘그 사람’을 제거하는 거사에서 저격을 맡는다. 그는 “미진은 잃을 게 없어서 무서울 것도 없는 아이다. 얘가 왜 사격선수가 됐을까 생각해 봤다. 모든 여건이 미진이를 침묵하게 했다. 그래서 미진이가 한발, 한발 총을 쏘면서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려 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4㎏이 넘는 개량 M16 소총을 분신처럼 다뤄야 하는 터라 크랭크인 전부터 사격훈련을 받았다. 조준과 격발 자세만큼은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는 “총에 모래주머니를 매달아 5분을 버티고, 또 10분을 버티는 훈련을 했다. 덕분에 승모근이랑 팔 근육은 지금도 남아 있다.”며 웃었다. 장면 대부분을 스턴트맨 도움 없이 직접 소화했다. 도로 한복판에서 ‘그 사람’이 탄 차량을 저격하려다가 총이 과열돼 폭발하는 장면을 찍을 땐 아찔했다. “스턴트맨이 할 줄 알았는데 감독님이 직접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용증명 보낼 거예요’라고 흘겨보고는 제가 찍었죠. 나중에 액션배우 할까요. 하하하.” ‘26년’은 그에게 평생 남을 작품임에 틀림없다. “80년 광주만 아니었다면 건강하고 밝게 자랐을 미진에게는 슬픔과 함께 당차고 밝은 기운이 공존해야 했다. 혜진씨에게 그 느낌이 있었다.”는 제작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 말처럼, 한혜진은 더도 덜도 말고 미진이었다. 그는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바랐을까. “잊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시는 이런 일 있으면 안 되잖아요. 여태껏 살기 바빠서 관심 밖이었던 게 내내 죄송했어요. ‘살아도 살 수 없는 삶인 걸 아시잖아요’란 주안(배수빈)의 대사처럼 아직도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분들이 계세요. 세월이 흘러 잊히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까요. 젊은 세대들도 그날을 알아야죠.” 한혜진은 지난달 2일 부친상을 당했다. 몸도 마음도 온전치 못할 텐데 ‘힐링캠프’ 녹화와 ‘26년’의 지방 인사, 인터뷰까지 강행군이다. “차라리 다행이에요. 짬이 나면 슬픔이 주체가 안 되는걸요. 아빠한테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쉽죠. 막내딸이 하는 일이면 뭐든 기뻐하셨던 분이에요. 배우가 될 때도 그랬고, ‘26년’을 선택하고서도 가장 많이 응원을 해주셨어요. 담양에서 자랐고, 전남대를 나오셨어요. 보셨다면 자랑스러워하셨을 텐데….” 어느덧 데뷔 11년차다. 나이란 어떤 무게로 다가올까. 한혜진은 “여배우는 역시 서른부터”라며 웃었다. “20대에는 ‘주몽’처럼 대박이 나도 기쁜 줄을 몰랐다. ‘더 높이, 더 높이’ 위치에 대한 욕심만 냈다. 서른을 넘어서면서 여유도 생기고 기쁨도 누릴 수 있게 됐다. 예능이든 드라마나 영화, 강연이든 경험을 쌓고 싶다. 물론, 인기 욕심은 버렸지만 연기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퇴임 문화/임태순 논설위원

    한상대 검찰총장이 엊그제 퇴임식을 갖고 물러났다. 그는 “내부 적과의 전쟁, 즉 우리의 오만과의 전쟁에서 졌다.”며 소회를 피력했다. ‘뇌물검사’에다 ‘성검사’ 등 잇단 추문과 최재경 중앙수사부장의 항명 등 내부를 다스리지 못해 중도하차하게 됐으니,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한편으론 재임 중엔 내부의 잘못을 보지 못하다 퇴임하면서 자기 반성에 눈을 돌리게 됐으니 그의 낙마가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퇴임 문화는 관용적이라거나 포용력이 크다고 할 수 없다. 기관장이나 단체장들은 업무 인수인계를 하며 협조하기보다 불화와 반목을 빚는 게 일반적이다. 전임자에 대해 보복을 하거나 전임자의 측근에 대해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업무적 능력보다는 혈연·학연·지연 등 각종 연(緣)에 의해 인사가 이루어지고 내 편, 네 편으로 편가르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가뜩이나 부족한 인적 자원이 더욱 빈약해진다. 퇴임 대통령을 보내는 방식만 해도 미국이 우리보다 훨씬 관대하고 너그럽다. 2009년 1월 20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 국회의사당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이 끝나자 퇴임식을 갖고 고향인 텍사스 댈러스로 갔다. 물론 퇴임식에선 국방부 의장대 사열 등 의전도 정중하게 이루어졌다. 반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공식행사 없이 퇴임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별도의 행사는 없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노 대통령을 퇴임식 없이 보낸 것이 몹시 아쉬웠던 모양이다. 저서 ‘운명’에서 에콰도르 대통령 취임축하 특사로 갔을 때의 경험을 전하며 우리의 퇴임 문화가 척박하다고 했다.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 하루 전날 전임 대통령의 이임식이 열려 다른 나라 사절들과 함께 참석하게 됐는데, 퇴임 대통령이 치적을 열거하는 등 자화자찬을 늘어놓아 지루하긴 했지만 별도로 이임식을 갖는 게 좋아 보였다고 했다. 퇴임 대통령의 이임식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더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덕담을 건네며 아름답게 물러날 수도 있고 철저한 자기반성으로 후임자에게 교훈을 줄 수도 있다. 자칫 정치적 발언으로 대립과 갈등을 불러오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퇴임 대통령 문화가 인색한 것은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 실정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임 중 업적으로 박수 받는 대통령이 많이 나오면 퇴임 문화도 좀 풍성해질 것 같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역사상 가장 오래된 ‘최초의 공룡’ 밝혀졌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최초의 공룡’ 밝혀졌다?

    고생물학자들이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된, 최초의 공룡에 대한 정보를 찾아냈다고 밝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영국 BBC, 디스커버리뉴스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1930년대 남아프리카 탄자니아 지역에서 발견된 뒤 남아프리카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던 미스터리 동물의 화석이 최초 공룡의 화석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공룡은 ‘나아사사우르스 패링토니’(Nyasasaurus parringtoni·이하 N 패링토니)로, 2억 4300만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공룡 탄생 시기보다 1500만~1000만 년 더 빠른 것이다. N 패링토니는 두 다리로 걸으며 긴 꼬리를 가졌다. 몸길이는 2~3m, 몸무게는 20~60㎏정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버릿은 BBC와 한 인터뷰에서 “이 공룡이 다른 종과 구별되는 것은 매우 빠른 성장속도”라면서 “우리가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가장 오래된 공룡과 그 다음 세대의 진화 과정 사이의 미스터리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버릿이 이끄는 연구팀은 이 공룡이 ‘최초의 공룡’ 후보 중 하나일 뿐, 아직까지는 확정짓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N 패링토니의 화석은 상완골(어깨에서 팔꿈치까지의 뼈) 한 조각과 척추 6조각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만약 이 동물이 ‘최초의, 가장 오래된 공룡’으로 밝혀진다면, 공룡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지배력으로 지구를 지배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초기 공룡의 일부는 파충류로 진화했고 일부는 공룡과 연관됐으나 한편으로는 독립적인 종(種)으로 발전했다.”면서 “N 패링토니의 연구는 공룡의 중간 진화 과정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학술잡지인 바이올로지 레터스(Biology Letters) 최신호에 실렸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벌써 6년…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1’ 촬영장에 가다

    벌써 6년…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1’ 촬영장에 가다

    배우가 한 캐릭터로 6년 가까이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케이블채널 tvN의 리얼 다큐멘터리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막영애)의 주인공 김현숙(34) 얘기다. 그는 “이제 촬영장이나 길에서 ‘영애’가 아닌 현숙이라고 불리면 어색하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예전 개그콘서트에서 ‘출산드라’로 떴을 때는 가끔 그런 이름으로 불렸는데, 요즘은 열에 아홉은 영애라고 부른다고 했다. ‘막영애’ 출연을 결정했을 때는 한 지상파 방송의 CP가 불러 “왜 케이블에 나가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그는 “판타지 드라마만 판치던 시절, 시청자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을 것 같아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입 재수생 시절부터 고깃집과 분식집, 칼국수집 등 생업 전선에 뛰어든 그였기에 퇴근길 치킨과 맥주 한 잔에 위안을 찾는 직장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07년 4월 첫 방영된 드라마 ‘막영애’는 지난달 29일 열한 번째 시즌을 맞았다. 16회로 구성된 시즌마다 케이블채널로선 보기 드물게 시청률이 3%를 넘나들었다. 시즌을 마무리하고 2개월 정도 휴식을 취할 때면 우울증에 시달리는 건 시청자가 아닌 제작진과 출연배우라고 한다. 그만큼 ‘막영애’에 녹아들어 출연진이 가족이고, 이들의 일은 연기가 아니라 직장생활이다. 지난달 27일 찾아간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의 한 건물 5층. ○○제록스, ○○토건 등 실제 사업장 사이에 영애의 직장인 광고기획사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마주 본 책상, 그 위 서류뭉치까지 여느 사무실과 비슷하다. 책상 앞에 몸을 움츠리고 앉아 잡담에 열중하고, 한쪽 탕비실에선 새 사장에 대한 신랄한 뒷담화가 오갔다. 촬영팀은 남자 화장실까지 카메라를 들이민다. ‘리얼 다큐’다. 대리사장 역으로 합류한 배우 성지루(44)는 “척 하면 탁, 할 만큼 호흡이 잘 맞고 분위기가 좋다.”고 전했다. 화기애애해도 녹화 신호가 떨어져 성지루가 ‘새 사장’으로 변하는 순간,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 온 극중 커플 김현숙과 김산호(31)의 삶은 쪼들리고 직장생활은 더 팍팍해진다. “매 시즌 시대상을 반영하며 삶의 애환을 치유하려 했는데 최근 극중 러브라인이 강조되며 긴장감이 다소 떨어졌다. 이번 시즌에는 회사에 치이고 불경기에 울상이 된 직장인과 그 가족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담으려 한다.” 박준화 CJ E&M PD가 말하는 이번 시즌의 기획 의도다. 촬영장에서 만난 김현숙은 5년 전 접한 제작진의 첫인상에 대해 “진짜 막돼 먹었다.”고 떠올렸다. “라디오DJ로 활동할 때 (tvN 쪽에서) 전화가 왔는데, ‘당신을 위해 쓴 대본이 있으니 만나자’고 다짜고짜 통보하더라고요.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보자면서 갔는데 정한석 PD와 ‘막돼먹은’ 작가들이 ‘우리나라 여배우들은 왜 잘 때도 눈썹을 붙이는가, 우린 그런 것 다 타파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거예요.” 말인즉, 주인공이긴 한데, 절세미인이 아니다. 제목도 ‘막돼먹은 고소영, 심은하, 이영애’ 마구 늘어놓더니 이영애가 가장 예쁘다며 ‘막돼먹은 이영애씨’로 낙점했다가 방송 직전 영애씨로 바뀌었다고 했다. 장르는 또 어떤가. 다큐 드라마라는 생소한 장르였지만 촬영 전까지 마땅한 설명도 없었다. 담당 PD조차 “찍어 봐야 알겠다.”고 했고, 작가들은 “대본 좀 보여 달라.”는 김현숙에게 허구한 날 술만 먹였다. 배우의 특징을 세심하게 관찰한 뒤 그에 맞춰 대본을 쓰겠다는 뜻이다. 이런 제작진의 성향은 지금도 여전한지 이번 시즌에 투입된 강예빈(29)이 맞장구를 놓는다. 그도 “하루 종일 여성 작가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인 뒤에야 캐릭터가 정해졌다.”고 말한다. 시즌11까지 오면서 직장인의 애환을 보여줄 만큼 보여준 김현숙은 “이제 커리어우먼이 아닌 결혼하고 애 낳아 키우는 ‘생활밀착형’ 영애가 돼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은근 기대하는 것이 있는 듯 되물었다. 극중 애인인 김산호는 “영애와 산호를 시즌11에선 기어코 결혼시킬 것이란 얘기가 촬영장에 돌고 있다.”면서 “영애 입장에선 가장 행복한 선택 아니겠느냐.”고 거들었다. 뮤지컬 스타로, 지상파 방송의 아침드라마 주인공으로 맹활약 중인 그에게 “젊고 늘씬한 미녀들과 연기하다가 ‘막영애’에 오면 분위기가 섬뜩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유독 영애 앞에서는 풀이 죽는 그가 “이곳이 더 좋다.”며 피식 웃었다. ‘절대 영애에게 대들거나, 영애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막영애’의 불문율이 있다던데, 온몸에 각인된 듯하다. “시즌 초반 한참 영애를 괴롭힐 때는 미니홈피에 ‘길 가다 나 만나면 다친다’, ‘게이처럼 생겼다’는 쪽지가 쇄도했어요. 영애를 괴롭히던 비호감 캐릭터에서 호감형으로 돌아섰더니 오래 가네요.” 시즌6부터 ‘막영애’에 출연한 김산호가 말하는 ‘장수 비결’이다. 그러자 김현숙이 으레 그 당당한 표정으로 농을 던졌다. “그동안 극중 남자친구가 수없이 갈렸는데, 이제 산호도 만날 만큼 만났으니 싫증날 때가 됐죠.” 우리 사회가 말하는 미의 기준과 다른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막영애’는 외모지상주의의 그림자를 얼마나 걷어내려고 노력했을까. 김현숙의 대답이 걸작이다. “나는 (살과) 더불어 사는 게 더 자연스럽다. 평범해 보이려고 코디네이터도 두지 않고 가방도 늘 같은 걸 든다. 다른 영화 촬영 때 몸무게를 6㎏ 줄이고 복귀했더니, 제작진에 비상이 걸렸다. ‘매일 고기를 먹여서라도 살을 찌워야 한다’고 입을 모으더니, 두 달 만에 몸무게를 돌려놨다.” 잠자코 있던 강예빈은 고민이 많은 듯 보였다. 이종격투기 UFC의 ‘옥타곤걸’로 섹시한 이미지가 굳어진 탓이다. 두 번째 드라마인 ‘막영애’에 출연하면서 “내 모습 그대로 연기만 하면 되겠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섹시함에 가려진 다른 모습을 ‘막영애’에서 드러내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직장인들의 힐링 드라마로 자리 잡은 ‘막영애’가 얼마나 생생한 이야기와 색다른 모습을 풀어낼지 기대감이 커진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커버스토리] 1인가구 400만명 시대… 2030마저 ‘고독사 예비군’

    [커버스토리] 1인가구 400만명 시대… 2030마저 ‘고독사 예비군’

    “형님, 형님 안에 계슈? 이 양반이 왜 또 전화를 안 받는겨.”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임대주택에 사는 김혜자(75)씨는 이틀에 한 번 아랫집 윤순금(85)씨 집 현관문을 두드린다. 혹시 죽은 것 아닌가 해서다.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아 언제 삶을 마감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할머니는 철저히 혼자다. “노인네가 이제 귀가 안 들려서 가끔 전화를 안 받아. 그럼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렇게 슬쩍 두드려 본다우. 우리들은 가족도 없고 혼자들 사니까 이렇게라도 해야지.” 임대 주택 마을의 아침은 그렇게 쓸쓸히 시작된다. 혼자 사는 인구의 급증으로 무연고 사망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201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10년 기준 414만 2165가구를 기록, 처음으로 400만 가구를 돌파했다. 2000년 222만 4433가구에 비해 86% 증가한 수치다. 60대 이상 홀로 사는 고령층에게 외로운 죽음은 현실이다. 서울 서초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이순미(71)씨는 3년 전 서울대학병원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시신 기증을 약속했다. 어차피 장례식을 치러줄 사람이 없어서다. “돈이 있어야 장례도 치르고 하는 거지. 나 같은 사람은 죽으면 짐이야 짐.”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성인이 된 자식이 셋이나 있지만 연락이 끊어진 지 5년째다. 동네 교회에서 만난 동년배들과 수다 떠는 게 낙이 돼 버린 이씨는 “친구들과 만나면 주로 어떻게 하면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죽을까, 어떻게 하면 안 아프게 죽을까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고 한숨 쉬며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중순부터 무연고 독거노인의 장례를 도울 노인돌보미와 자원봉사자를 모으는 중이다. 무연고 독거노인이 사망할 경우 노인돌보미와 자원봉사자가 독거노인의 상주가 돼 죽음을 알리고 최소한의 추모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자원봉사자들은 독거노인들에게 임종노트를 작성하게 하는 일도 맡는다. 임종노트란 혼자 사는 사람이 자신이 죽었을 때를 대비해 장례 절차, 유품 처리 방법, 매장장소 등을 적는 일종의 유언장이다. 그동안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있어도 관계가 단절된 독거노인이 사망하면 관할 지자체에서 별다른 의례도 없이 시신을 화장해 일정 기간 동안 봉안해 왔다. 외로운 죽음을 맞을 가능성에 있어 젊은 빈민층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실제 고시촌 등 현장에서 만난 젊은이들 가운데는 외로운 죽음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2년째 취업준비 중이라는 A(29)씨는 독서실 총무에게 건네는 인사가 하루 중 유일한 대화다. A씨는 자취방과 독서실만 왔다 갔다 한다.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하고 홀로 남았다. A씨는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면 난방이 잘 들어오지 않아 싸늘한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곤 한다.”면서 “여기서 혼자 죽으면 아무도 모를 수 있다는 생각에 가끔 마음이 울적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독한 죽음을 막기 위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한다. 호주는 웹사이트 등을 통해 ‘독거노인 입양’(Adopt-a-pensioner)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등록한 호주인들과 독거노인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프랑스는 지역 단위의 노인클럽 활성화를 통해 노인 스스로 자립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1975년 시작된 이 사업은 현재 전국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일반적인 레크리에이션뿐만 아니라 전문 기술 습득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가족을 넘어서는 대안적 커뮤니티와 노인들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소정 남서울대 노인복지학과 교수는 “무연고 사망의 잠재적 화두는 앞으로 만들어 나갈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라면서 “우리나라에도 실버타운 등이 있긴 하지만 인기가 없고 제대로 된 주거공동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경희 보건사회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노인을 위한 일자리는 소득뿐 아니라 심리적인 만족과 사회 통합감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들어 한국의 젊은 층들이 삶의 안정성이 떨어져 결혼을 멀리하다 보니 만혼 또는 비혼자가 늘고 이것이 무연고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면서 “노인보다 제도적 장치가 적어 문제가 더 심각해 새롭게 젊은 층의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를 개편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고졸 공무원의 천기누설] (4) 출입국관리직 9급 합격 김거중씨

    [고졸 공무원의 천기누설] (4) 출입국관리직 9급 합격 김거중씨

    “기업에서는 고졸 공채와 대졸 공채를 따로 뽑는데, 유리천장이 있어요. 사원식당에서 대졸 관리자와 고졸 생산직은 겸상을 안 해요. 공무원 시험은 나이도 보지 않고, 정확하게 자기가 공부한 것으로만 평가하기 때문에 공정하다고 생각해서 응시하게 됐습니다.” 김거중(25)씨는 올해 9급 공무원 공채시험 출입국관리직에 합격해 경기 용인시 법무연수원에서 연수를 마쳤다. 내년 1월 2일 시보 발령을 받게 된다. 전남 순천 효천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씨는 모대학 법학과에 1년 정도 다니다 군복무를 마쳤다. 대학을 계속 다녀도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자퇴하고 낮에 배관공 일을 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수험기간은 모두 1년 반 정도다.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김씨를 만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비법을 들어보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공부할 때는 오후 5시쯤 집에 들어오면 7시까지 씻고 저녁을 먹고 나서 매일 밤 11시까지 하루에 한 과목씩 공부했습니다. 9급 공무원 시험은 다섯 과목을 보니까요. 토요일에는 아침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집이나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했고, 일요일에는 쉬었습니다.” 김씨는 필수과목인 국어, 영어, 한국사와 출입국관리직 선택과목인 행정법과 국제법 다섯 과목의 시험을 치렀다. 그는 다섯 과목 가운데 영어가 가장 힘들었다고 밝혔다. 영어는 7~9급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 대다수가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이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영어는 1년 반 동안 공부하면서 점수가 5점 올랐어요. 행정법과 국제법은 70~80점 올랐는데. 영어를 20년 가까이 배웠는데도 어려웠습니다. 출제위원들이 좀 치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일부러 틀리라고 내는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풍토병’이란 단어는 한국어로도 모르는데 영어 시험에 나왔어요.” 행정법과 국제법은 아예 모르니까 어렵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고 한다. 오히려 몰랐던 만큼 책을 보면 성적이 쑥쑥 올랐다. 대학을 1년 정도 다니긴 했지만, 거의 수업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도움이 되진 않았다. 군대에서 행정병으로 일했던 것이 많이 도움됐다고 김씨는 털어놓았다. 밤에 전깃불이 있고 따뜻한 데서 일하니까 일과가 끝나면 영어 단어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영어 공략법에 대해서는 “포기는 빠를수록 좋아요. 절대로 맞힐 수 없는 문제가 2~3개 있는데 영어는 만점이 85점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과목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 나아요.”라고 조언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내신 성적이 398명 가운데 380등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좋은 대학을 못 갔기 때문에 ‘그냥 대학 다니지….’란 말을 들을 때마다 학벌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텐더, 술집 매니저, 배관공, 일용직 근로자, 에어컨 설치 보조 등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으면서 ‘평등한 기회’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됐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학벌을 제외하고 정당하게 평가받는 건 공무원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경기 부천에서 친구와 자취하면서 서울 노량진의 공무원 시험 대비 학원에서 넉 달 동안 수업을 들었다. 노량진 학원에 다닐 때는 수험생활에 찌든 사람들을 보는 게 오히려 힘들었다고 김씨는 이야기했다. 그리고 노량진의 컵밥이 맛있게 느껴지고 노량진 생활이 익숙해지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컵밥은 노량진 학원가의 명물 음식으로, 바쁘고 돈 없는 수험생을 위해 밥과 반찬을 컵에 섞어 싸게 판다. “노량진 학원가는 ‘노량도’라는 섬으로 불리기도 해요. 합격배를 타고 나가야 합니다. 노량진은 물가가 싸기 때문에 공부하는 게 재밌고 편하다고 주저앉으면 안 돼요.” 김씨가 국어와 한국사를 공부한 과정은 재미있지만 눈여겨볼 만하다. 일상 생활과 공무원 시험 공부를 접목시켰다. 국어 공부는 노래방을 자주 가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9급 시험의 국어 과목에는 생활 국어가 꼭 나오는데 이번에는 국어사전의 배열 순서가 출제됐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리모컨이 아니라 책으로 찾은 덕을 톡톡히 봤단다. 한국사는 사극의 열혈팬인 어머니와의 대화가 큰 밑천이 됐다. 김씨의 어머니가 역사드라마를 볼 때마다 악당들 욕을 했는데, 실제로 아자개란 악역이 문제로 나와 도움이 됐단다. 하지만 사극은 시간 날 때나 봐야지 공부는 하지 않고 드라마만 보면 안 된다고 김씨는 덧붙였다. 면접은 하나의 잘 짜인 연극과 같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면접 준비팀을 직접 조직해 실제 면접처럼 준비했는데, 같은 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합격했다고 한다. “출근카드를 찍는 줄이 밀렸는데 출근 시간은 2분밖에 남지 않았다. 어떻게 하겠는가?”란 질문에 “최대한 빨리 출근카드를 찍어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더니 일찍 출근할 생각은 없느냐는 반박 질문이 면접관으로부터 날아왔다. “꼭 일등으로 출근하겠다.”란 패기와 재치가 넘치는 김씨의 대답에 결국 면접관도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법무연수원의 교육 과정도 그에게 큰 자극이 됐다. “보통 공무원이라고 하면 철밥통, 복지부동, 무사안일을 이야기하는데 절대 아니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더 노력하면 더 쓰임이 많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외국어 능력이 되면 해외 영사로도 파견 나갈 수 있고, 출입국관리직 공무원이 성실하게 일하면 오원춘 사건과 같은 외국인 범죄도 예방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은 김씨에게 대학을 다시 가라고 했지만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빠른 길이 있다.’며 오히려 그가 부모님을 설득했다. 돈이 없어 책을 못 사볼 때 적금을 깨서 도와준 친구 백수민씨도 고마운 존재다. 내년부터 고등학교 교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도입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기존 수험생은 지옥문이 열린다고 걱정한다. 김씨는 시험에 일찍 합격해서 손해 보는 기분은 없느냐는 질문에 “군대가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며 씩 미소 지었다. “고졸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남들보다 빨리 출발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인생은 곱셈으로 자신이 ‘0’이 아니라 ‘1이나 2’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위한 조언을 남긴 김씨는 발령받기 전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무료 과외를 할 계획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安 사퇴하자… 주가도 ‘철수’

    후보직 사퇴를 선언한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의 테마주가 일제히 급락했다. 하루 만에 시가총액 1300억원이 증발했다. ●미래산업 주가 14.95% 하락 안철수 테마주의 대표주자로 꼽혀 온 38개 종목은 26일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전 거래일보다 평균 5.25% 하락했다. 특히 안랩과 미래산업, 써니전자 등 9개 핵심 테마주는 평균 14.92%나 폭락하면서 무더기 하한가를 기록했다. 반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테마주들은 상한가를 기록해 대조를 보였다. 안 전 후보가 설립한 안랩은 3만 5250원으로 장을 마감해 전 거래일(4만 1450원)보다 6200원(14.96%) 떨어졌다. 올 1월 3일 세운 최고가(16만 7200원)와 비교하면 거의 5분의1 토막이 난 셈이다. 미래산업과 써니전자도 각각 14.95% 하락했다. 솔고바이오(14.99%), 우성사료(14.97%), 오픈베이스(14.73%), 케이씨피드(14.89%), 다믈멀티미디어(14.99%), 엔피케이(14.86%) 등 다른 테마주들도 14%의 하락폭을 보였다. 이들 38개 테마주의 시가총액은 23일 종가 기준으로 총 1조 8714억원이었다. 이날 저녁 안 후보는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뜬눈으로 주말을 보내다시피 한 ‘안 테마주’ 투자자들은 26일 장이 열리자마자 보유 주식을 던지기 시작했고, 개장 한 시간여 만에 시총이 1조 7237억원으로 줄었다. 1477억원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다. 오후 장 들어 낙폭을 다소 만회하긴 했지만 종가 기준 시총은 1조 7416억원에 그쳤다. 결국 하루 새 1300억원이 빠졌다. 38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6월 1일까지만 해도 1조 2571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선 테마주 광풍이 불면서 한때 5조 1034억원으로 4배 이상 급등했다. 주가가 폭락하자 개미 투자자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문제는 추가 하락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안랩은 상대적으로 우량기업이지만 투기적 매매자가 많은 것이 부담”이라면서 “안철수 총리설 등이 나오면 어느 정도 낙폭이 줄어들 수 있겠지만 큰 폭의 반등은 어려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근혜 테마주의 대표주자인 EG는 전 거래일보다 5850원(14.98%) 오른 4만 4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상한가다. EG의 최대주주는 박 후보의 동생인 박지만씨다. 박 후보의 복지 정책 수혜주로 꼽히는 보령메디앙스, 아가방컴퍼니, 대유신소재, 대유에이텍, 신우, 비트컴퓨터, 서한 등 관련주 8개도 동반 상한가를 기록했다. ●朴·文테마주 줄줄이 상한가 문재인 테마주도 줄줄이 상한가를 쳤다. 대표주자인 바른손이 14.93% 오른 4080원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우리들제약, 우리들생명과학, 서희건설, 조광페인트, 모나미, 바른손 등 9개 종목이 가격 제한폭까지 올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테마주는 기업 실적과 무관하게 움직이는 만큼 언제든 주가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성원기자 lsw1469@seoul.co.kr
  • ‘안철수發 부동층’ 25% 어디로?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사퇴로 부동층으로 돌아선 중도·무당파 표심의 향배가 이번 대선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안 전 후보 사퇴 이전까지 10~15%에 불과했던 부동층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 사퇴 이후 20~25%로 크게 늘었다. 이 중 상당수가 향후 안 전 후보의 행보에 따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또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아 여전히 대선 승부의 키는 안 전 후보가 쥐고 있는 상황이다. 안 전 후보 지지층의 표심을 잡기 위한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신경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박 후보 측은 안 전 후보 지지층의 20%가량이 박 후보 쪽으로 이동했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고무된 분위기다. 남은 부동층도 중도보수 성향의 유권자라고 보고 표심 잡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문 후보 측은 경제민주화 정책이 후퇴하면서 박 후보의 중도층 확장 전략이 실패했다고 보고, 안 전 후보의 결단에 따라 문 후보 쪽으로 부동층의 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광온 대변인은 26일 “문 후보의 진정성과 안 전 후보의 진심이 만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때 문 후보 쪽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 전문가들은 부동층이 두 후보의 뜻대로 움직여 줄지는 미지수라고 입을 모았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안철수 지지층의 20%가 박 후보 측으로 갔다는데, 다른 조사에서는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지지율이 동반하락했다.”며 “제각각인 여론조사에 크게 주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문 후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안 전 후보의 지원 범위에 따라 부동층이 움직이겠지만 2002년 대선 때만큼의 단일화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도 “공동선대위 구성이 우선이 아니라 안 전 후보의 새 정치 구상을 전폭적으로 수용해 ‘가치연대’를 실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 줘야 안철수 지지층이 움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단일화 결렬”이라면서 “박 후보가 부동층을 가져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부동층이 문 후보 쪽으로 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서울시장 후보 ‘양보’…대선 단일화 교착에 또 ‘양보 정치’

    야권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협상 완료의 사실상 마지노선인 23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초치기’ 협상전을 벌이며 출구를 마련하려 안간힘을 썼다. 안 후보는 전날 후보 간 회동에서조차 한 치의 진전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협상팀이 만나 봤자 진전을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후보 대리인 간 회동도 제안했다. 문 후보 측이 이를 수용해 낮 12시부터 회동이 진행됐지만 문 후보 측의 중재안과 안 후보 측의 절충안 사이에서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하고 4시간 만에 종료됐다. 안 후보는 캠프에 머물며 보고를 받은 뒤 5시간의 고심 끝에 사퇴를 결심했다. 사퇴를 선언하며 지지자들에게 문 후보를 도와 달라고 말했지만 “새 정치의 꿈이 잠시 미뤄졌다.”는 말에는 민주당을 향한 원망과 섭섭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 후보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에게 ‘조건 없는 양보’를 한 뒤 후원자로 나섰을 때 그의 양보는 정치에서의 퇴진이 아니라 ‘안철수식’ 정치의 첫걸음이었다. 그로부터 13개월 뒤 대선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문 후보에 대한 또 한번의 양보는 그의 표현대로 정권 교체를 위해 “새 정치의 꿈을 잠시 미룬” 일보 후퇴였다. 서울시장 선거 이후까지만 해도 안 후보는 자신의 행보가 대선 행보로 비칠까 봐 박 시장의 선거운동을 지원할지 여부를 놓고 고심할 정도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머뭇거렸다. 그럼에도 양보와 응원, 재산 기부 등 기성 정치를 뒤집는 행보로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고 당장 그해 12월부터 신당 창당, 4·11 총선 강남 출마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안 후보가 “전혀 그럴 생각도 없고 조금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지만 4·11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그의 영향력을 기대하는 정치권의 러브콜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안 후보는 “정치를 하더라도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겠다.”며 출마설을 일축했다. 4·11 총선 이후 긴 침묵을 지키던 안 후보는 5월 30일 부산대 실내체육관에서 ‘특강 정치’를 재개했다. 자신의 고향인 부산에서 진행된 이 강연은 대선 행보의 신호탄이 됐다. 그는 같은 달 고(故)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을 개인 공보담당으로 선임하는 등 대선 행보를 시작하기 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안철수재단을 공식 출범시키고 네트워크형 대선 조직을 띄우고 자전 에세이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 뒤 9월 19일 출마를 선언하며 대선 무대로 뛰어올랐다. 그의 대선 행보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안랩의 신주 인수권부 사채(BW) 저가 발행 논란, 국민은행·포스코 사외이사 논란, 본인과 배우자의 다운계약서 논란, 논문 표절 논란까지 끊임없는 도덕성 시비에 휩싸였고 상처를 입었다. 그러면서도 지역별로는 호남과 수도권, 세대별로는 20~30대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항마’로 입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로 안 후보는 협상을 잠정 중단했고 수세에 몰리는 듯했던 문 후보가 이해찬 민주당 당 대표 퇴진 카드로 역공에 나서면서 안 후보의 견고했던 지지율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협상은 재개됐지만 아름다운 단일화가 물 건너가고 단일화 여론조사 규칙을 둘러싼 양측의 지루한 싸움 끝에 구태 정치의 모습이 재연되자 결국 안 후보는 백의종군을 선택했다. 출마를 선언한 지 65일 만이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머리에 긴 눈썹 장식 달린 ‘천상의 새’ 등 39종 첫 공개

    ‘천상의 새’라고 불리는 극락조(Birds-of-Paradise) 39종의 모습을 담은 자료가 최초로 공개됐다. 극락조는 참새만한 크기에서 비둘기만한 것까지 다양하며 긴 부리와 꽁지가 특징이다. 주로 파푸아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등에 분포하며 특이한 구애행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극락조는 총 39종이며, 빛깔과 생김새가 아름다워 ‘천상의 새’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 코넬 대학교 조류학자인 에드 스콜스와 사진작가 팀 래먼은 8년의 시간을 들여 극락조 모든 종의 모습을 비디오와 사진으로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극락조 일부의 생태환경과 모습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종(種) 전체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료가 제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이 극락조 39종 전체를 포착한 곳은 기후와 환경 조건상 접근이 쉽지 않은 파푸아뉴기니의 열대 다우림 지역으로,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극락조의 깃털과 아름다운 구애행동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중 파푸아뉴기니에서 찾은 수컷 ‘블루극락조’는 상체의 검은색 깃털과 하체의 푸른색 깃털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아름다운 새다. 특히 두 줄의 긴 꼬리는 마치 장신구를 단 듯한 느낌을 준다. ‘임금극락조’ 또는 ‘기드림풍조’(King of Saxony Bird of Paradise)라 부르는 새는 특이하게 머리에 긴 눈썹 깃털이 늘어져 있다. 19세기 말 처음 이 새의 표본을 접한 세계적인 조류학자는 위조된 표본이라 생각하고 이를 집어던졌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외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하버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사진작가로 나선 래먼은 지난 8년 간 2000개의 비디오 파일과 사진 파일, 오디오 파일 등을 수집해 극락조 연구에 힘을 보탰다. 그는 “뉴기니 열대다우림에는 실질적으로 극락조의 포식자가 없는데다 먹이가 풍부해 번식이 용이하다.”면서 “극락조들의 아름다운 깃털과 움직임을 모두 기록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이들이 극락조 기록을 위해 8년간 쏟아 부은 열정의 결과는 BBC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됐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MBC탁구최강전 女단식] 100위의 반란…박영숙, 이현 꺾고 4강 선착

    [MBC탁구최강전 女단식] 100위의 반란…박영숙, 이현 꺾고 4강 선착

    MBC탁구최강전 여자 단체전 챔피언결정전 3차전이 끝난 지난 21일 경기 안양의 호계체육관. 국내 최강 대한항공을 누르고 한국마사회를 2012년 최강팀으로 올려놓은 박영숙(24)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 국가대표팀이나 다름없는 대한항공을 제치고 흘린 기쁨의 눈물이기도 했지만, 지난 1년간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슬럼프를 완전히 털어버린 감격의 눈물이기도 했다. 박영숙은 연초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코치진에게 “탁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왼손 셰이크핸더인 그는 당시 여자 선수답지 않은 손목 힘과 박력 있는 서브, 호쾌한 드라이브로 입단 때부터 현정화 감독 등 코치진의 기대를 잔뜩 모았다. 그러나 ‘멘털’이 문제였다. 경기의 긴장도가 높아질수록 마음도 조급해져 실력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패전이 많았다. 알긴 하되 고치지 못하는 게 자신의 성격이다. 급기야 박영숙은 “이젠 더 이상 탁구를 못 하겠다.”고 울면서 고백했다. 그러나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단체전 우승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낸 그는 “이제야 자신을 찾았다.”고 했다. 지난 1년 동안 슬럼프를 차분하게 극복하면서 원숙해진 듯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도 차분하게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고, 쫓길 때에도 침착하게 자신을 다독였다. 네트플레이 등에서 잦았던 실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코치진은 “박영숙이 이제야 한 단계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박영숙 자신은 “최근 1~2년 사이에 선배들이 팀을 옮기면서 주장인 (서)효원 언니와 내가 후배들을 이끌게 됐다.”며 “먼저 모범을 보여야 후배들이 따라온다는 책임감에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세계 랭킹이 아직은 100위에 불과한 박영숙은 22일 여자 개인 단식 16강전에서도 27위의 ‘차세대 에이스’ 양하은(18·대한항공)을 4-2(11-9, 11-9, 7-11, 8-11, 21-10, 11-9)로 꺾고 8강에 진출한 데 이어 같은 팀 서효원(25)을 꺾고 올라온 이현(20·KDB대우증권)을 4-1(7-11, 3-11, 11-7, 11-13, 9-11)로 제치고 4강에 선착했다. 박영숙은 23일 중국 귀화 선수 전지희(20·티엔민웨이·포스코에너지)와 결승 진출을 노크한다. 대한항공의 귀화 선수 석하정(27)도 8강전에서 송마음(20·KDB대우증권)을 4-1(11-8, 9-11, 11-5, 11-7, 11-7)로 따돌리고 당예서(대한항공)에게 기권승을 거둔 유은총(19·포스코에너지)과 결승 티켓을 다투게 됐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Biutiful Spain 비우티풀 스페인

    Biutiful Spain 비우티풀 스페인

    Biutiful Spain 비우티풀 스페인 <비우티풀Biutiful>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뷰티풀Beautiful을 스페인식으로 받아 적은 것이다. 다른 유럽과는 달리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발달해 온 스페인 사람들의 직관성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역사를 관통하며 무엇이든 스페인식으로 소화해 버리는 그들의 당당함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800년 이슬람이 남긴 것 Sevilla 세비야 Cordoba코르도바 Granada그라나다 유럽에서 몇년을 살 수 있다면 그 선택은 당연히 스페인이다. 언젠가 긴 여행의 중반에서 스페인에 눌러 앉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을 정도다. 당시 스페인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한달 반 정도였지만 마드리드 이남의 도시들은 가보지도 못했었다. 어느 도시를 가도 그대로 머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회가 왔을 때, 선택은 당연히 스페인의 남쪽이었다. 세비야Sevilla, 코르도바Cordoba, 그라나다Granada. 이슬람 세력이 지배했던 800년 동안 가장 번성했던 도시들, 스페인 친구들도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했던 그 도시들이었다. 눈을 부시게 하는 것이 태양인지 파란 하늘인지 알 수 없었다. 세비야의 강에 뜬 유람선도 오후의 난반사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도시의 유람선이야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풍경이지만 세비야는 내륙으로 무려 87km나 들어와 있는 과달키비르강江의 상류 도시다. 그래도 배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강이 깊고 넓었기 때문에 도시는 중요한 무역항으로 부를 누릴 수 있었다. 강변 산책을 하다 보면 어디서나 눈에 띄는 황금탑Torre del Oro도 13세기에 이슬람교도들이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시작한 기점도 이곳이었고, 콜럼부스가 머물면서 항해를 준비했던 곳도 세비야였다. 그렇게 중요한 도시를 이슬람에게서 되찾은 스페인은 그 세를 과시하고 싶었다. 1248년 모든 부와 권력을 집중해서 지은 세비야 대성당은 지금도 세계에서 3번째로 크고, 고딕양식의 성당으로는 가장 크다. 성당에 안치된 크리스토퍼 콜럼부스의 무덤은 그 어떤 왕의 무덤보다 화려하다. 에스파냐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관의 네 모서리를 메고 있는 모습이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평생 아버지의 업적을 정리하고 연구했다는 아들 페르난도 콜럼부스의 무덤도 성당 안에 있다. 고딕양식,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을 헤아려가며 성당을 둘러보느라 지친 사람들은 오렌지 나무가 도열한 정원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 모스크의 연못이 있던 곳이었다. 아직 여력이 남은 사람들은 마지막 힘을 다해 이슬람 사원의 탑을 개축한 히랄다 종탑Torre de la Giralda에 올라갔다. 땀 흘려 쟁취한 98m 높이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전경은 그만큼 달콤했다. 세비야 대성당에 비하면 코르도바의 대성당Cordoba Mezquita은 모스크의 원형에 더 가깝다.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은 이슬람 제국은 6세기에 지어진 성 빈센트 바실리카를 허물고 그 자리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모스크 ‘메스키다’를 세웠다. 4,000여 개의 기둥이 시야를 가리고 천장도 낮지만 사실은 세비야 대성당보다 면적이 넓다. 한번에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성당으로 용도가 바뀐 이후에도 큰 훼손 없이 사용되다가 카를로스 5세에 이르러 200개의 기둥을 뽑아내고 돔을 설치하는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정교한 아랍 문양에 푹 빠져 있다가 뒤로 돌아서면 화려한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이 펼쳐진다.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거점은 그라나다였다. 알바이신의 언덕 위에 거대한 아랍인 주거지역이 먼저 형성되었고 1238년에 왕과 귀족들의 거주지로 아람브라Alhambra궁전이 만들어졌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기도 한 아람브라궁전은 아랍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되는데 이름만 듣고 우아한 하나의 건물을 기대했다가는 낭패를 맛보게 된다. 평균 관람 시간만 무려 3시간이 걸릴 정도로 넓은 요새이자 수천명의 귀족들이 살았던 주거지였다. 아람브라는 사실 건축학적인 가치보다는 치수의 지혜, 높은 지대까지 물을 끌어 사용했던 아랍인들의 발달된 관개 기술이 돋보이는 장소다. 지금도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궁전 곳곳의 분수와 샘, 연못은 이슬람세력이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람브라를 찾는 관광객이 워낙 많다 보니 나스리드 궁전Nasrid Palaces은 재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일행을 따라 종종걸음을 치다 보니 군주의 별장이자 정원인 헤네랄리페Generalife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칠 때로 지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꽃향기가 전달되는 높이까지 계산해서 디자인했다는 그 정원에서 아름다운 알바이신을 바라보고 있자니, 언젠가 스페인에 살게 된다면 바로 저 마을을 선택하게 될 것만 같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아람브라 궁전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관개기술의 발달이다. 고지대에 세워진 요새임에도 항상 물이 풍부했다 2 <아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고 있던 코르도바의 거리 음악가 3 투우와 플라멩고로 유명한 세비야의 투우장 돈키호테로 살어리랏다 Toledo톨레도 Consuegra 꼰수에그라 성서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은? 답은 우기기 나름이다. <이솝우화>, <그림 형제 동화집>이 단골로 언급되고 <안네의 일기>나 <영웅문>도 유력한 후보인데다가 지인 중 한 명은 쥘 베른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페인에 오니 그 ‘정답’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1547~1616년가 지은 <돈키호테Don Quijote>로 모아지고 있었다(원제는 <재기 발랄한 향사鄕士 라만차의 돈키호테>다). 그러면 또 하나의 질문. <성서>와 <돈키호테>의 공통점은? 끝까지 읽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돈키호테>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캐릭터 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을 탐독하던 ‘키호테’라는 사람이 급기야 자신을 기사라고 착각하며 볼품없는 말 로시난데, 시종 산초 판자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그의 착각 속에서 벌어지는 일.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슈렉>처럼 반전의 캐릭터들이 주인공인 유쾌한 풍자소설이다. 하지만 이 스토리는 사실 52장의 전편 중에서 초반에 불과하고 속편까지 출판됐다. 저자 세르반테스의 삶은 키호테의 ‘착각일지라도 행복했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레판토 해전에 참가해 부상을 입은 그는 귀국길에 해적에게 잡혀 5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는 우여곡절 끝에 마드리드 근처의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1605년 소설 <돈키호테>를 발표했다. 작품이 전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인세 계약을 하지 않아 돈을 벌지 못했다. 후에 그는 74장 분량의 돈키호테 속편을 발표했으나 이듬해인 1616년에 기구한 생을 마쳤다. 그가 죽은 4월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인데 우연히도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같은 날 사망했다. 소설 <돈키호테>의 주 무대는 지금의 ‘카스티야라만차’ 지역이다. 도시를 이동하다 보니 우연히도 ‘루타 데 돈키호테’, 즉 ‘돈키호테의 길’이라는 테마여행코스를 지나가게 되었다. 푸른 기와를 이고 있는 하얀 회벽집들이 인상적인 작은 마을 푸에르토 라피세Puetro Lapice에는 돈키호테가 주인과 실랑이를 벌였던 여관 ‘벤타 델 키호테Venta del Quijote’가 있다. 벽에는 ‘돈키호테가 이곳에서 묵고 나서 투구와 갑옷 차림으로 만족스럽게 걸어 나왔다’라는 구절이 붙어 있었다. 돈키호테는 이곳에서 ‘두엘로스 이 케브란토스동물의 내장을 넣은 달걀부침’를 시켜 먹었다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라만차 와인을 즐긴다.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바닥을 깊게 판 넓은 저장고와 대형 와인통을 발견할 수 있다. 더 이상 묵어 가는 손님은 없지만 돈키호테에 대한 팬심으로 기념품을 구입하는 손님들로 마을 전체의 생업은 세르반테스에게 단단히 빚을 지고 있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착각해서 싸움을 벌였던 그 풍차들은 콘수에그라Consuegra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낡은 풍차일 뿐이지만 주변의 광활한 평원과 어우러져 스페인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풍경이다. 실제로 돈키호테 소설의 배경이 된 풍차는 다른 곳에 있다고 했지만 풍차의 모양은 거기서 거기인 반면, 풍경은 콘수에그라가 최고인지라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훼손된 상태로 오래 방치된 듯한 이슬람의 콘수에그라 성은 한창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 더 멋진 그림을 기대해도 좋다. 돈키호테가 로시난데를 타고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던 그 ‘카스티야라만차’주의 주도는 톨레도다. 우리로 말하면 경주쯤 될까, 8~15세기까지 스페인의 수도였던 도시다. 현대식 건물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중세 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는 아랍 군주의 거주지였던 알카사르를 정점으로 고깔 모양으로 층층이 퍼져 있고, 타호 강Rio Tajo이 그 주변을 휘감아 돌면서 천연의 요새를 만들고 있었다. 도시로 들어가기 전 멈춰선 전망 포인트에서 한참이나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풍경에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고딕성당이라고 불리는 톨레도 대성당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페인을 점령한 이슬람 세력은 종교를 강요하거나 문화를 파괴하지 않았기 때문에 톨레도는 ‘스페인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만큼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 유적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고 성당은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귀중한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스 출신이지만 스페인에서 주로 활동했던 엘 그레코의 작품은 물론 고야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으며 화려한 제단 장식이나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성체현시대는 이미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새로운 스페인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갱신되는 흥분이 모험에 나선 돈키호테의 마음이었을까. 끝없는 메세타이베리아 반도 중앙부의 대고원를 원 없이 달리고 싶은 충동이 더 깊어지기 전에 라만차를 떠나야 했다. 타호 강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도시 톨레도 ▶travie info 벤타 델 키호테 세르반테스가 이용했던 여관으로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가 됐다. 소품과 인테리어 등으로 당시 분위기를 재현했고, 직접 만드는 와인과 돈키호테 관련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2층은 객실이었지만 지금은 투숙객을 받지 않는다. 주소 EI Molino, 4 Puetro Lapice(Autovia de Andalucia) 문의 926-57-6110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11시(바), 오후 1시∼오후 5시, 오후 8시∼밤 12시(레스토랑) 찾아가기 마드리드 남부 버스 정류장 Estacion de Autobus Sur 역(지하철 Mendez Alvaro 역)에서 Jaen 방면으로 가는 버스 이용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Puetro Lapice에서 하차. 버스 시간 문의 91-530-4800 1, 5 돈키호테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관 ‘벤다 델 키호테’의 오래된 나무 대문과 와인저장고가 있는 바bar 2 푸에르토 라피세 마을에서는 다양한 돈키호테 기념품을 구입 할 수 있다 3 톨레도 대성당의 성모상 4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소 모양의 대형 간판들을 종종 스쳐 지나간다 6 돈키호테가 괴물로 착각하고 결투를 벌였던 꼰수에그라의 풍차들 고야의 빛과 그림자 Madrid마드리드 Zaragoza 사라고사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허락된 시간은 단 한 시간. 마치 단거리 경주에 나서듯 신발끈을 동여매고 속사포로 설명을 난사하는 가이드 수피아씨를 따라다녀야 했다. 그곳의 수많은 보물 중에서 나를 사로잡은 그림은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년의 <개The dog>였다. 고야의 다른 그림과는 다른 화풍으로 의혹을 사기도 했던 이 그림에는 모래 언덕 위로 목만 빼꼼이 내놓은 휑한 눈의 개 한 마리가 등장한다. 마치 노년의 고야 그 자신처럼 말이다. 최후의 고전주의 작가이자 최초의 현대작가로 불리우는 그의 예술적 전이는 프랑스 군인들이 스페인 민군을 총살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 <1808년 5월3일The Third of May 1808>에서 시작된다. 초상화를 잘 그려서 왕실 화가로 이름을 날린 고야는 이 작품을 계기로 민중 화가로 추앙받게 된다. 하지만 노년에 고야의 삶은 암울했다. 마흔 중반에 청각을 상실했으며 노후에 마드리드 근처의 집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고야가 자신의 집에 그린 벽화들은 마치 귀신을 본 듯 공포에 질린 표정의 검은 군상들로 채워져 있었다. ‘블랙 페인팅’이라고 불리는 그림들이다. 그중에서도 <자기 아들을 먹어 치우고 있는 새턴Saturn devouring his Child>은 끔찍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후기 작품 중 가장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고야의 고향이 바로 사라고사다. 사라고사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시내에 들어가자마자 돌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태풍이라도 왔나 싶을 만큼 퍼붓던 비는 10분 후 거짓말처럼 개이더니 하늘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고야의 삶처럼 빛과 어둠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그런 날씨였다. 사라고사에 있는 고야의 생가, 사라고사 뮤지엄, 이베르카 카몬 아즈나르 뮤지엄Ibercaja Camon Aznar Museum에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거대한 바로크 스타일의 필라르 대성당Basilica del Pilar에 있는 레지나 마티럼Regina Martyrum돔의 천장화 역시 고야의 작품이다. 이 성당에는 기도를 이루어 준다는 옥으로 된 성모상이 있는데, 그 앞에서 깊은 슬픔에 잠긴 한 노부부를 만났다. 그 처연한 표정은 사연 모르는 이방인들까지 숙연하게 만들 만큼 날카로운 슬픔을 담고 있었다. 그 감정이 지금 내 방에 걸려 있는 고야의 <개>를 볼 때마다 오버랩되곤 한다. 사라고사의 랜드마크이자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가톨릭 순례지 중 하나인 필라르 대성당. 고야가 그린 천장화를 볼 수 있다 가우디에게 영감을 준 산 Montserrat 몬세라트 Barcelona 바르셀로나 누군가 볼 때마다 시루떡이 연상된다고 했던 몬세라트Tot Montserrat는 톱니바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바위산이다. 4,000만년 전에 융기된 해발 1,200m 산의 모습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 바위투성이 산의 정상부에 베네딕트수도원이 만들어진 이유는 이곳이 유서깊은 기도장소였기 때문이다. 1,000년 전부터 시작된 순례의 행렬은 12세기에 만들어진 검은 성모상 ‘라 모레네타’가 발견되면서 더욱 길어져서 지금까지도 끊어질 줄 모른다. 두어 시간 거리인 바르셀로나에 살았던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 Cornet, 1852~1926년도 틈만 나면 모세라트를 찾아왔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몬세라트에 와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는 아예 바르셀로나의 중심에 몬세라트를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바로 바르셀로나의 명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족대성당 Basilica de la Sagrada Familia다. 스페인 교회 건축 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82년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폴라 델 빌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1년 반 후에 안토니 가우디의 손에 넘겨진다. 그후 43년 동안 가우디는 역사에 길이 남을 독창적인 성당을 완성하기 위해 일생을 쏟아 부었다.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당 내부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마치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로 뻗어 올라간 듯한 모습의 기하학적인 기둥들이다. 직선이 아니라 자연물의 형상, 그 곡선만을 사용한 가우디 원칙들이 반영된 결과다. 라 페드레라La Pedrera, 구엘 공원Pavellons Guell 등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에 남아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에서 그 고집스러운 독창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기업체의 도움 없이 오로지 신자들의 헌금으로만 세우기 원했기에 재정 문제는 언제나 발목을 잡았다. 결국 그는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고로 죽고 말았지만 성당은 아직도 그의 청사진에 따라 무려 130년 동안 여전히 ‘공사 중’이다. 전체 공정 중 절반 정도가 완성되었을 뿐이라지만 몇년 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하면 내부 공사가 상당히 진척되어 지난 2010년 7월에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모시고 축성식을 가졌다. 15년내에 완공하는 것이 바르셀로나 시의 계획이다. 1 가우디는 직선을 배제하고 자연물의 형상과 곡선만을 사용했다.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 구엘 공원 2 몬세라트 산에서 내려온 기운이 한데 모여 정점을 이룬다는 성당 안뜰 3 가우디는 몬세라트의 기괴한 모습에서 착안해 사그리다 파밀리아를 디자인했다 취재협조 에미레이트항공 www.emirates.com 페가수스 코리아 02-733-3441 ▶travie info 1 아람브라 안에 있는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 2 스페인식 애저 바비큐 요리 ‘코치닐요’ 몬세라트Tot Montserrat 몬세라트로 올라가는 꼬불꼬불 산악도로의 전면 도로는 10km, 후면도로는 13km다. 주말에는 주차장이 만원이 경우가 많으므로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 훨씬 빠른 방법. 수도원에는 뮤지엄, 레스토랑과 기념품점 그리고 호텔까지 있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에스꼴라니아라는 소년합창단Cor de I’Escolania으로도 유명한데 미사 시간을 맞춰서 가면 합창을 들을 수 있다. 문의 (0034)93-877-77-77 www.montserratvisita.com Travel to Spain 항공편 에미레이트항공을 이용하면 두바이를 경유해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이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지로 여행할 수 있다. 인천-두바이 구간을 운행하는 에어버스 A380 기종은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리는 최첨단, 초대형 기종. 인천-두바이 구간은 9시간 30분, 두바이-마드리드 구간은 8시간, 두바이-바르셀로나 구간은 7시간 가량 걸린다. 문의 02-2022-8400 www.emirates.com 두바이 시티투어 두바이에서 스톱오버를 신청해서 두바이 시티 투어(42달러), 사막 투어(99달러) 등을 경험하는 것도 색다른 여행이 된다. 에미레이트항공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정보와 스톱오버 안내책자를 다운받을 수 있다. 투어 문의 아라비안 어드벤처 +971-4-303 4888 aadops@emirates.com 스페인 일주상품 에미레이트항공을 이용하는 ‘스페인·포르투갈+바르셀로나 일주 10일’ 여행패키지 상품이 10월부터 10개 여행사 연합으로 시판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출발하는 이 상품은 11월 말까지 239만원의 특가로 한진관광, 투어2000, 레드캡투어, 투어몰, 자유투어, 노랑풍선, 참좋은여행, 하나투어, 온라인투어, 롯데관광에서 예약할 수 있다. 야디네스 알베르토Jardines alberto 그라나다의 유서 깊은 카르멘(정원과 채소밭이 있는 별장식 하우스)을 개조한 레스토랑으로 야외 테이블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기 좋은 곳이다. 커피 한잔과 함께 피오노노Pionono라는 그라나다의 전통 디저트도 별미다. 아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운 정원 헤네랄리페 입구 쪽에 위치해 있다. 3가지 코스에 와인이 곁들여 나오는 세트메뉴는 30~45유로. 주소 Paseo de la Sabika nº 1, 18009 Granada 문의 (0034) 958-221-661 www.jardinesalberto.es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Parador de Granada 그라나다의 아람브라 궁전 안에 있는 성프란치스코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로 스페인 국영 호텔 중 최고로 알려져 있다. 그라나다 수복 후 세워진 수도원 건물의 고풍스러운 멋과 특별한 위치 때문에 여행자들이 꿈꾸는 숙소지만 객실이 40여 개밖에 되지 않아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아람브라와 그라나다의 야경을 즐기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주소 Real de la Alhambra, s/n, 18009 Granada, Spain 문의 (0034) 958-22-1440 www.parador.es 팔라시오스Palacios 5kg 정도의 크기으로 자란 새끼 돼지로 만드는 애저 바비큐 요리 코치닐요Cochinillo를 먹을 수 있는 곳.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럽다. 팔라시오스는 레스토랑뿐 아니라 호스텔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싱글 요금은 30~45유로, 더블룸은 50~80유로 사이다. 주정강화와인인 셰리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하고 남은 계란 노른자를 이용한 디저트인 플란Flan도 맛볼 수 있다. 주소 C/Navarro Ledesma, 4 45001 Toledo 문의 (0034) 925-28-0083 www.hostalpalacios.net 안달루 라 토레 데 오로Andalu la Torre de Oro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에 있는 투우 테마의 바Bar. 가게 안에는 스타 투우사들의 사진과 희생된 소의 머리 박제 그리고 스페인 생햄인 하몬이 같이 걸려 있어서 묘한 느낌을 준다. 주소 Er 26 de la Plaza Mayor Calle del Arcode Triunfo, 28012 Madrid 영업시간 오전 10시∼새벽 2시 문의 (0034) 913-66-5016 La Torre del Oro 타블라오 엘 팔라시오 안달루스Tablao El Palacio Andaluz 세비야 최고의 플라멩고 디너쇼를 감상할 수 있는 곳. 공연은 하루 두 차례, 매일 저녁 7시와 7시30분에 시작되어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며 와인이 곁들여진 코스 정찬이나 타파스를 선택할 수 있다. 오페라 카르멘의 일부 장면도 플라멩고로 선보인다. 문의 (0034) 954-534-720 www.elpalacioandaluz.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하모니즘의 거목 김흥수 화백의 부인 장수현 관장 이승에서 애달프게 끝난 사부곡

    하모니즘의 거목 김흥수 화백의 부인 장수현 관장 이승에서 애달프게 끝난 사부곡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남편과 그의 그림을 지켜 주려 했던 부인. 자기 그림을 헐값에 팔아서라도 아내를 살리고 싶었던 노화백. 이승에서 애달프게 끝나 버린 그들의 사랑이 감동을 주고 있다. 화단의 거목 김흥수(93) 화백과 지난 13일 50세로 숨을 거둔 아내 장수현씨의 이야기다. 구순을 넘긴 김 화백은 죽어 가는 아내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작품을 처분하려 했지만 장씨는 “남편의 작품을 그렇게 팔 수는 없다.”며 반대했다. 부부는 이별의 순간까지 사랑과 존경을 지켰다. 20일 미술계 등에 따르면 김 화백은 최근 측근들을 통해 자신의 작품 여러 점을 미술시장에 팔려고 했다. 김 화백의 한 제자는 “한 달 전쯤 선생님께서 생활비가 부족해 그림을 팔고 싶은데 살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셨다.”고 전했다. 아내 장씨의 병세가 악화되자 병원비 등에 보태려고 작품 판매에 나선 것이다. 장씨는 3년째 난소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김 화백은 2002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자신의 이름을 건 김흥수미술관을 세우는 과정에서 많은 돈을 써 경제 형편이 좋지 못했다. 장씨는 미술관의 관장을 맡고 있었다. 오랜만에 거장의 작품이 나온다는 소식에 시장은 들썩였다. 하지만 거래는 이뤄지지 못했다. 김 화백의 측근은 “미술시장이 불경기로 얼어붙은 탓에 가격을 맞추기가 어려웠다.”면서 “김 화백은 호(號)당 500만원 정도를 생각했는데 시세는 200만~300만원 수준이었다.”고 했다. 제자와 지인들은 조심스레 “미술계 상황이 안 좋으니 가격을 조금 낮춰 보자.”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병석에 있던 아내는 반대했다. 돈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존경하는 남편의 그림이 시장에서 평가절하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한 지인은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워낙 깊은 분이라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림이 헐값에 거래되는 걸 원치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20년 결혼 생활 동안 노화백을 마음으로 섬겼던 장씨. 한 미술평론가는 “장씨는 남편의 흐트러진 모습이 남들에게 보여지는 걸 극도로 꺼렸다.”면서 “아무리 친한 손님이 와도 김 화백에게 정장과 스카프, 목걸이, 모자 등을 챙겨 드린 후에 문을 열어 줄 정도였다.”고 전했다. 김 화백이 고령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헌신적 내조 덕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 화백 부부는 1992년 결혼 때 숱한 화제를 뿌렸다. 43세 연상인 거장과 제자의 결혼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하지만 두 사람을 아는 사람들은 “서로를 너무나도 존경하는 부러운 부부”라고 입을 모은다. 미술관 운영 등 살림살이를 도맡아 했던 장씨가 세상을 떠 김 화백과 관련된 사업은 모두 멈춰 선 상태다. 미술관은 휴관 중이다. 김 화백을 돌보는 가족은 “김 화백이 워낙 고령이어서 거동이 불편하긴 하지만 여전히 건강하신 편”이라면서 “장씨가 살아서 못다 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싱가포르 라구나 골프장 가보니…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바로 옆에 자리잡은 라구나 내셔널골프장.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 시즌 최종전인 ADT캡스 챔피언십이 열리고 있는 이 골프장은 지난 2005년 삼성 레이디스 마스터스대회 이후 두 번째로 KLPGT 대회를 유치했다. 36홀 가운데 대회가 열리는 마스터스코스(파 72·6517야드)는 여자대회 코스치곤 긴 편이다. 그러나 평지에 조성해 놓은 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는 등 한눈에도 난도는 찾기 힘들다. 지난 14일 공식 연습라운드에 참가한 일부 선수들은 “코스가 너무 쉬워 제대로만 치면 우승 타수는 15~20언더파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점쳤다.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라운드를 마친 16일 선두는 김세영(20·미래에셋). 타수는 이틀 동안 8언더파에 불과했다. 이날 ‘데일리 베스트’인 4언더파 68타를 쳐 중간합계 7언더파 137타로 김세영을 1타까지 쫓아간 김자영(21·넵스)은 “18개홀이 서로 모양이 비슷비슷해 너무 단조롭더라.”고 평가했다. 2타를 줄인 합계 4언더파 140타로 공동 5위까지 치고 올라간 장하나(20·KT)도 “코스가 너무 쉬운 게 외려 어려운 점”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정작 64명의 선수들을 어렵게 한 건 뭘까. 동남아 특유의 찜통 더위다. 11월 중순은 우기에서 건기로 넘어가는 시기. 섭씨 35도는 우습게 넘어간다. 이날 낮 최고 기온은 32도에 불과했지만 70%의 습도까지 감안하면 체감온도는 37도를 웃돌았다. 첫날에는 하루 한 번씩 쏟아지는 스콜 덕에 잠깐씩 쉬어 갔지만 이날은 비 예보조차 없었다. 시즌 초반 일찌감치 3승을 올리고도 부진을 면치 못하다 오랜만에 우승권에 든 김자영은 “4타를 줄였는데 정말 쪄 죽는 줄 알았다.”고 살인적인 더위에 혀를 내둘렀다. “전반홀 더위 때문에 멍한 상태에서 쳤다. 캐디 오빠가 간간이 머리에 얹어준 얼음 주머니가 아니었더라면 오늘 기록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역시 더위를 원망한 김세영은 이틀째 선두를 달려 투어 데뷔 3년 만에 첫 승을 바라보게 됐다. 지난달 초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이후 두 번째로 마지막날 챔피언 조에서 뛰게 됐다. 싱가포르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로또 10년, 명과 암] 1등 17번·하루평균 5만명 구매… 이월 땐 줄 200m

    [로또 10년, 명과 암] 1등 17번·하루평균 5만명 구매… 이월 땐 줄 200m

    지난 15일 오후 4시 서울 상계동 스파편의점. 평일 낮이지만 17평 남짓 가게 안엔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로 이미 긴 똬리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1988년 지어진 허름한 아파트 상가였지만 ‘로또 마니아’들에게는 명당 중의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다. 지난 10년간 이 집에서만 17번이나 1등 당첨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3명의 종업원들이 연신 로또 종이를 뽑아냈지만 불어나는 줄을 줄이기는 역부족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유모차를 끌고 온 새댁, 한 손에 세탁한 와이셔츠를 들고 있는 청년,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 등 각양각색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장이규(64·노원구 중계동)씨는 “매주 목요일 이 시간쯤 로또를 사러 이곳에 온다.”면서 “1년쯤 됐으니 이젠 좋은 소식이 있지 않겠느냐.”며 활짝 웃었다. 인근 주민들에게 로또는 ‘일상’이다. 툭하면 1등이 터지니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편의점은 당첨자를 배출할 때마다 아크릴 간판에 1m 가까이 되는 큰 글씨로 ‘로또 명당 1등 ○번 당첨’이라고 새로 써 넣는다. 김현길(57) 편의점 사장은 “근처 마들역까지 줄이 2㎞ 이상 늘어진 적도 있다.”면서 “그럴 때는 세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로또를 사는데도 다들 별로 짜증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도 하루 평균 4만~5만명이 찾는다고 한다. 1등이 없어 당첨금이 이월되기라도 하면 줄은 금세 200m가 된다고 귀띔한다. 편의점 옆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이형숙(55·여)씨는 “6개월 전에 이사 왔는데 벌써 두 번이나 (옆집에서) 1등이 나왔다.”면서 “정말 1등이 나오긴 하는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덩달아 로또를 사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웃집 사장인 홍모(57·빵집 운영)씨는 “당첨자 발표가 있는 토요일에는 매출이 평일의 두 배”라면서 “근데 참 신기한 게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몰릴 때는 1등이 안 나오는데 좀 시들해졌다 싶으면 1등이 팡 터진다.”고 전했다. 10년을 옆에서 관찰한 결과다. 자신도 매주 1만원어치씩 로또를 산다는 홍씨는 “번번이 실망하지만 그래도 로또를 사서 기다리는 그 시간이 참 재밌고 즐겁다.”고 말했다. 그때 한눈에도 몸이 많이 불편해 보이는 중년 사내가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통신 관련 일을 하다가 올 1월 전봇대에서 떨어져 다친 뒤부터 이 집의 단골이 됐다는 이모(53·노원구 월계동)씨다. 그는 “집사람이 혼자 생계를 꾸리다 보니 형편이 어려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로또를 산다.”고 털어놓았다. 한 주도 안 빠지고 1만원어치씩 산단다. 만원을 차라리 살림에 보태는 게 낫지 않으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또 한 주를 버티게 해 주는 힘”이라고 했다. 동갑내기 부부인 정세창·구미자(41·도봉구 도봉2동)씨도 “로또는 꿈”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부는 “일주일을 기다리면서 웃게 된다.”며 웃었다. 하지만 긴 줄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고등학생 최민호군은 “학교에서는 ‘땀 흘린 만큼 보상받는다’고 가르치는데 이렇게 길게 줄 서 있는 어른들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친구 신영철군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지 헛된 꿈을 꾸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음료수를 사러 왔다가 긴 줄에 기겁해 되돌아 나가는 직장인 최모(33)씨를 따라 쫓아가 “여기가 명당이라는데 로또 안 사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신은 확률 낮은 게임엔 돈을 쓰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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