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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석경의 문화읽기] 일본의 혐한

    [홍석경의 문화읽기] 일본의 혐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며 발생한 현재 한일 관계의 긴장을 보면서 깊고 긴 상념에 빠진다. 이것은 짧게는 한국 대법원의 결정과 아베 정권의 대응으로 촉발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본 내 오래된 혐한 세력이 그 뿌리이고 원인이다. 장단기적으로 자국에 별다른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될 위험이 있으며,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개별 정치인의 튀는 결정은 대부분 그의 국내 정치 기반의 지지와 항상 연결돼 있다. 현재 더욱 극렬해지고 있는 일본 극우의 혐한 시위, 서점의 혐한 코너, 한국 학교에 대한 지원 중단 등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본의 과격한 반응을 보면 오히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참으로 크다는 생각이 든다. 자존을 위해 이 정도로 대표적 타자를 만들어 증오할 만큼 일본 사회가 내적 공황 또는 정체성의 위기에 처한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답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역사적이고 인류학적인 진실에서 찾아야 할까. 필자는 프랑스에서 오래 살면서 서구의 선진성에 대한 여러 미망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게 됐다. 식민종주국이었던 유럽 국가들의 부유한 현재가 얼마나 과거의 치욕스러운 식민지 수탈의 덕인지 알게 됐고, 이 나라들의 정부와 국민이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책임을 인정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이 얼마나 그 잘못을 실질적으로 배상했는지는 여러 가지 경우와 맥락이 작동해서 짧은 글 속에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식민 주체였던 강자가 식민지였던 약자에 대한 증오를 저리 끈질기고 험하게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런던에서 혐인도 시위, 파리에서 혐알제리 시위 같은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오히려 과거 식민지 국가들에서 양국 역사에서 부당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소명과 배상 요구가 이어진다. 유럽 극우의 유대인 혐오가 있지만 이것은 결이 다른 문제다. 반인류적 행위로 법이 엄하게 금하고 있기에 드러내 놓고 외치지는 못하고 밤에 몰래 유대인 묘지를 파손하거나 그 위에 나치 문양을 그리는 수준이다. 그런데 일본은 왜 이리도 피해자인 한국을 증오할까. 일본의 혐한 담론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증오 담론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중요한 연구 주제인 증오 담론의 핵심적 사례가 될 정도다. 다행히 일본 내 혐한 인구는 아직 일부에 불과하다. 여전히 한국 가수들의 일본 공연은 문제 없이 판매되고, 한국으로 오는 일본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보도는 없다. 어찌 보면 이번 한일 대립은 일본 국민에게도 기회다. 세계적 자유무역 체인을 거스르고 자국과 이웃 나라, 동아시아를 넘어 다자 간 피해를 입힐 무리한 결정을 한 책임자와 자국의 패권적 욕망의 역사적 피해자인 이웃에게 혐오를 퍼붓는 저 끈질긴 야만과 증오의 세력을 도려낼 기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고립시킬 기회다. 일본이 저러는 한 절대로 일본은 동아시아든 세계에서든 어떤 리더십도 얻을 수 없다. 일본 문화에 매혹된 듯한 서구 지식인들이 일본의 정치에 대해서는 돌아서서 비웃는다는 사실은 일본 엘리트가 그토록 선망하는 서구에서 모두가 아는 비밀이다. 일본의 근대는 경제적으로만 성공한 절름발이 근대다. 일본 국민은 어떤 위로부터의 부당한 힘에 한국민처럼 집단적으로 저항해 본 적이 없고, 일본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리추얼로 변질돼 버렸다. 시민은 국가와 사회는 저리 돌아가도 오로지 자신의 삶에 장인적으로 몰두하는 우아한 개인주의로 도피해 버린 듯하다. 한일 간 이처럼 경직된 순간에 개봉된 영화 ‘봉오동 전투’가 이 사태를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될까 조금 걱정했다. 영화는 짓밟힌 민족의 농부들이 떨쳐 일어난 독립군이 양민을 잔인하게 살해한 중무장한 제국군을 총칼로 쓰러뜨리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민족주의적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상영관을 가득 메운 관객이 후끈 달아오르지 않고, 예상했던 박수도 전혀 없다. 이처럼 성숙한 시민을 두고 ‘노 재팬’ 배너 달기를 주장했던 서울 중구청장 같은 반응은 이제 시대정신에 전혀 맞지 않는다. 한국민이 이번 역경을 통해 더욱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한다.
  • 지난달 가계대출 5조 8000억 급증

    올 최대 규모… 주택담보대출은 ‘주춤’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이 5조 8000억원 늘어나 올 들어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주택담보대출은 주춤했지만 아파트 분양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신용대출이 크게 늘었다.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2019년 7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854조 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가계대출은 지난 한 달 동안 5조 8000억원 증가해 올 들어 최대 규모를 나타냈다. 가계대출 증가세는 지난해 12월 5조 4000억원에서 지난 1월 1조 1000억원으로 꺾였다가 점점 커지는 추세다. 그러나 한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본격적으로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전환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둔화한 반면 기타대출은 크게 불어났다. 주택담보대출은 지난달 3조 6000억원 늘어 전월(4조원)보다 증가폭이 축소됐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감소하면서 잔금대출 등이 줄어든 영향이다.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6월 2만 6000가구에서 7월 1만 8000가구로 줄었다. 반면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대출 등 기타대출은 2조 2000억원이 증가해 전월(1조 5000억원)보다 크게 불어났다. 지난해 10월 4조 2000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 분양 물량이 1만 2000가구에서 2만 4000가구로 늘면서 분양주택 계약금 대출 수요가 집중됐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한은 관계자는 “주택 매매와 분양을 위한 대출 수요가 기타대출에 집중됐다”며 “정부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이 막혀 있어 기타대출 등 다른 쪽으로 대출을 받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의 기업대출 잔액은 853조 3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1조 5000억원 증가했다. 전월 증가 규모(2조 1000억원)보다 축소된 것으로 지난 5월부터 3개월 연속 둔화세를 이어 갔다. 대기업들이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대기업 대출이 1조 1000억원 줄어든 영향이 컸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박명수 불화설 해명, 정준하와 어떤 사이길래?

    박명수 불화설 해명, 정준하와 어떤 사이길래?

    채널A가 선보이는 신개념 침묵 예능 ‘아이콘택트’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연들로 무장한 2회를 선보였다. 11일 방송된 채널A ‘아이콘택트’에선 지난 1회 마지막에 등장한 방송인 박명수와 그의 상대 정준하, 26세 싱글맘과 ‘가출 선언’을 한 7세 아들, 그리고 뇌암 투병 중인 손자와 그를 부모 대신 아들처럼 키워 주신 할머니가 세 가지 에피소드를 꾸몄다. 이날 스페셜 MC로는 홍현희가 강호동, 이상민과 호흡을 맞췄다. 먼저 이날 “이 프로그램과 안 맞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다”며 불만이 가득했던 방송인 박명수의 눈맞춤 상대는 바로 정준하였다. 최고의 인기 예능에 함께 출연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해당 프로그램 종영 이후 사이가 소원해진 듯하다는 ‘불화설’에 휩싸인 바 있다. 정준하를 보고 크게 놀란 박명수는 “어이가 없네”라고 말했고, 정준하 역시 “나도 상대를 몰랐다”며 어쩔 줄을 몰랐다. 두 사람의 만남은 제3자인 방송 관계자가 신청한 것이었다. 놀람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은 거짓 없는 눈으로 눈맞춤을 나눴다. 박명수는 “왜 연락을 자주 안 하느냐”고 타박을 하다가도 “너, 사실 보고 싶긴 했다”고 진심을 전했고, 정준하는 “사실 우리 함께 프로그램 할 때 생각해 보면 그저 너무 재미있었다”며 박명수에 대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들은 “만나서 너무 좋다”면서도 녹화 뒤 먹을 메뉴를 놓고 끊임없이 대립해 웃음을 자아냈다. MC들은 “마음과는 반대되는 말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평했고, 이런 가운데 홍현희는 강호동에게 “유재석과의 사이가 어떠냐”고 모두가 궁금한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강호동은 “와…”라고 ‘훅’ 들어온 질문에 놀랐지만 “얼굴 본 지 일주일도 안 됐다”고 말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사진 = 채널A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열여덟의 순간’ 옹성우X김향기, 본격 로맨스 시작 “대혼란”

    ‘열여덟의 순간’ 옹성우X김향기, 본격 로맨스 시작 “대혼란”

    ‘열여덟의 순간’이 열여덟 생애 처음으로 겪는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는 옹성우X김향기의 모습을 그렸다. 지난 12일 방송된 JTBC 월화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연출 심나연, 극본 윤경아, 제작 드라마하우스·키이스트) 7회에서는 가슴 설레는 쌍방고백으로 서로의 진심을 확인했지만, 자꾸만 어긋나는 준우(옹성우 분)와 수빈(김향기 분)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아픈 딸보다 망친 시험을 더 걱정하는 수빈의 ‘극성맘’ 윤송희(김선영 분)는 강제전학생 준우의 존재가 신경 쓰였다. 그가 수빈을 업고 왔다는 사실에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치며, 수빈에게는 준우와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다그쳤다. 엄마의 반대에 수빈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고백만 남기고 또다시 아무런 반응 없는 준우 때문인지 수빈은 그의 고백이 마치 꿈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혹시 이것이 자신의 환상은 아닌지 의심하고, 시도 때도 없이 상상 속에 그를 떠올리며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준우의 마음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마음에 좋아한다는 고백을 내뱉긴 했지만, 난생처음 겪는 감정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그의 솔직하고도 순수한 모습은 열여덟 소년 그 자체였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준우바라기’ 로미(한성민 분)의 직진 모드가 시작됐다. 한밤중 그를 찾아온 로미는 “네가 좋아하는 애 나야, 유수빈이야?”라는 돌직구 질문으로 준우를 당황케 했다. 그 시각 수빈의 발걸음도 준우를 향하고 있었다. 보건실에서 준우와의 일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때마침 준우와 로미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된 수빈은 묘한 실망감에 휩싸였다. 자꾸만 어긋나는 두 사람의 ‘단짠’ 로맨스는 안타까움을 더했다. 휘영(신승호 분)과 상훈(김도완 분)의 갈등에는 또다시 불이 붙었다. 중간고사 수학시험에서 문제 하나 차이로 휘영이 상훈에게 전교 1등을 뺏길 위기에 놓인 것. 결국 휘영의 엄마(정영주 분)가 또다시 나서 학교에 입김을 불어 넣었고, 유일하게 상훈만이 정답을 맞혔던 문제가 무효처리되며 전교 1등은 휘영에게로 돌아갔다. 모든 사실을 알고 분노한 상훈은 준우에게 “너 시계 도둑 누명 내가 벗겨줄게, 콜?”이라며 휘영에게 복수할 궁리를 세웠지만, 준우는 “나 떡밥으로 이용할 생각 말고 직접 해결해”라며 일침을 날렸다. 결국 휘영의 앞에 나타난 상훈은 “하긴, 네가 뭔 죄가 있겠냐. 넌 너희 엄마 아빠의 퍼펫(꼭두각시)일 뿐인데”라며 그를 몰아세웠다. 이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만한 곳에 남몰래 숨어 고통에 숨죽이며 눈물 흘리는 휘영의 모습이 공개되며 그에게 찾아올 변화에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날 방송 말미에는 로미의 끈질긴 집착과 당찬 고백에 “유수빈 좋아해, 나”라며 그의 마음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준우의 모습이 그려졌다. 수빈에게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 집 앞까지 찾아간 준우는 수빈 모녀와 다시 마주하며 묘한 기류를 형성했다. 마침내 용기 낸 준우, 뜻밖의 만남에 놀란 수빈, 싸늘한 눈빛을 보내는 수빈의 엄마까지 아슬아슬한 삼자대면이 흥미를 더하며 준우와 수빈의 ‘단짠’ 로맨스 향방을 더욱 궁금하게 했다. 느리지만 천천히, 서툴지만 진솔하게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는 준우와 수빈의 관계 변화에 귀추가 주목된다. ‘열여덟의 순간’은 드라마 부문 화제성 지수(8월 5일부터 8월 11일까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서 월화드라마 가운데 44.49%의 점유율로 3주 연속 1위를 달성했고 화제성 점수는 자체 최고를 경신했다. 8회는 오늘(13일) 밤 9시 30분 JTBC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양쯔강 6300㎞를 따라 걸은 영국인 다이크스, 352일 걸렸단다

    양쯔강 6300㎞를 따라 걸은 영국인 다이크스, 352일 걸렸단다

    중국 양쯔강을 따라 6300㎞를 죽 걸은 이가 있다. 352일 걸렸단다. 중국인인가 싶겠지만 영국인이다. 웨일스 콘위 카운티의 올드 콜윈 출신인 애시 다이크스(29)가 티베트 평원의 상류 지점에서 시작한 여정을 12일 상하이 외곽 바다로 접어드는 지점에서 마쳐 세계 첫 이정표를 세운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원래는 이틀 전에 상하이에서 여정을 마칠 수 있었지만 태풍 레끼마 때문에 늦어졌다. 25세가 되기 전 몽골과 마다가스카르를 횡단한 최초의 기록을 작성한 다이크스는 이번 쾌거가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양쯔강은 나일, 아마존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며, 한 나라를 흐르는 강으로는 가장 길다. 양쯔강을 따라 걷는 그의 행보는 중국인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켜 아디다스, 잡지 GQ에도 사진이 소개됐고, 무술 배우 제트 리(이연걸)와도 함께 하는 계기가 됐다. 다이크스는 “여기선 큰 뉴스다. 수많은 텔레비전과 잡지에 소개됐다. 다국적, 중국 다큐멘터리 팀이 취재했다. 이렇게 큰 기대를 모을줄 예상하지 못했다. 거품처럼 부풀어올랐다. 내 책은 만다린어로도 옮겨졌고 내 느낌에 이제 시작인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그는 여행을 기획할 때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을 일깨우고 서구인들이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중국의 단면을 보여주고, 환경 이슈들을 부각시킬 목적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할수록 중국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오히려 자신이 몰랐던 이들에게 정보를 나눠준다는 느낌마저 갖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나 고향 웨일스에서 가장 높은 스노든 산의 해발 고도 다섯 배에 이르는 5100m 지점에서 여정의 첫 발을 떼느라 많이 힘들었다. 그의 출발을 돕던 많은 이들이 고산병 증세나 부상 때문에 쓰러지는 바람에 두 달 늦게 출발하게 돼 겨울에 첫눈을 맞으며 영하 20도 추위에 떨어야 했다.너무 추워 곰들이 사냥을 위해 산 아래로 기어내려오는 것도 봤다. 그는 “그 녀석들에게 우리는 그저 걸어다니는 칼로리 덩어리였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나아가 가장 어려웠을 때를 티베트 평원을 통과했을 때였다고 털어놓았다. 다이크스는 “내 생각에 그렇게 한 것은 똑똑하게 해낸 것이다. 이건 중국 시장을 여는 첫 걸음”이라고 덧붙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사진 모두 본인 제공 BBC 홈페이지 캡처
  • “검경 수장 사과, 아쉽지만 의미 있어… 권한 남용 방지 제도화해야”

    “검경 수장 사과, 아쉽지만 의미 있어… 권한 남용 방지 제도화해야”

    최근 우여곡절 끝에 검찰과 경찰의 과거사 진상조사가 끝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의욕적으로 과거사 청산 작업에 나선 지 2년여 만이다. 조사의 한계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검경의 양대 수장이 고개를 숙이고 공식 사과한 것은 성과라면 성과다. 물론 사과를 받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조직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내부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과를 하라”는 권고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 검경 지휘부는 결단을 내렸다. 이제 검찰과 경찰은 과거와 단절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을까. 서울신문은 지난달 29일 검찰 과거사위원회와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으로 각각 활동한 김용민 변호사와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를 만나 그간의 소회 및 기대를 들어봤다. -검경 모두로부터 사과를 이끌어 냈다. 김용민(이하 김) “검찰은 선별적 사과를 했다. 진정성 있는 사과였는지도 의문이 든다. 그래도 사과를 하는 것은 의미 있다고 본다. 검찰총장의 사과는 피해자들을 ‘국가 폭력, 공권력 남용의 피해자’로 인정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박진(이하 박) “사과를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누차 얘기했다. 피해자들이 사과를 당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기자들 앞에서 먼저 사과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렇게 해서 공식 기자회견 전날(7월 25일) 경찰청장과 피해자들의 비공식 만남이 이뤄졌다. 피해자들은 적어도 민갑룡 청장한테는 사과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아쉽다. 사과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용산참사의 마지막 희생자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6월 말 용산참사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철거민 김모(49)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는 당시 “국가폭력이 그를 죽였다”며 “경찰청장과 검찰총장은 제대로 사과하라”고 추모 성명을 냈다. -사과는 했지만 가해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징계 시효(3년)가 지나 징계 권고를 할 수 없었다. 그러면 ‘검찰 과거사 조사 왜 했나’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과거의 위법한 상태를 그대로 놔두면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 친일파 문제도 청산을 못 하니 또 고개를 들지 않았나. 한 번은 해소하고 가야 했다. 책임자 처벌뿐 아니라 피해 구제, 제도 개선 관점에서도 과거사 사건에 접근했다.” 박 “경찰은 수뇌부가 결정하고 책임은 말단이 지는 구조다. 그래서 총경급 이상만 권고를 하자고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고 염호석(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사건은 총경급 아래가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의 사병처럼 움직였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는데 우리가 정한 원칙 때문에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하지만 경찰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다른 문제다. 그가 말단이라도 책임을 묻는 게 맞다고 본다.” -위원회 내부에서 의견이 달라 첨예하게 다퉜던 사건이 있다면. 김 “장자연 사건이다. 보통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다수 의견을 위원회가 받아들일지 결정하는데 장자연 사건은 특이하게 소수 의견을 받아들인 게 있다. 큰소리까지 쳐 가며 심하게 싸웠던 기억이 있다. 구체적 혐의점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 권고를 할 수 없다 해도 ‘수사를 통해 한 번 확인은 해 보라’는 의미의 수사 개시 촉구는 해야 한다는 게 다수 의견이었다. 소수 의견은 그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박 “제가 보기에는 첫 번째 권고(고 백남기 농민 사건)를 놓고 치열하게 논의했던 것 같다. 민중총궐기 관련 국가 손해배상소송 취하 권고를 놓고 반대 의견이 있었다. 이건 너무 나가는 거라고 하더라. 허황된 권고보다는 경찰이 이행할 수 있는 권고를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반면 최대한 권고를 해서 이행하는 걸 감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오랫동안 토론했다. 처음에 이렇게 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쉬워지더라. 두 번째 권고인 쌍용차 사건에서도 국가 손배소·가압류 철회 권고를 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조사단의 독립성은 유지됐나. 김 “검찰부터 말씀드리면 법무부 산하에 위원회와 조사단을 함께 둬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데, 검찰은 ‘조사단이 기록을 봐야 하기 때문에 대검에 설치해야 한다’며 강하게 주장했다. 그렇게 위원회와 조사단은 각각 법무부와 대검 산하로 설치됐다. 그런데 이후 검찰은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지원해 주지 않았다. 경찰과 달리 외부 조사단원을 비상근으로 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면 조사단 단장을 뽑고 단장이라도 상근으로 둬야 소통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그것마저 거부당했다. 결국 조사단은 고립됐다.” -위원회가 중간에서 역할을 할 수는 없었나. 김 “조사단은 대검이 뭘 안 해 주니 위원회밖에 없는데, 위원회도 ‘우리는 모른다’라고 손을 놓다 보니 위원회와 조사단이 서로 불신하는 상황이 됐다. 위원회라도 법무부에 의견을 개진했어야 했는데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이 모든 게 검찰이 원한 구조가 아니었나 싶다.” -경찰은 독립성이 보장됐나. 박 “경찰은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를 한 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지금과 다른 구조이긴 하지만 좀더 나은 방식이 뭔지 합의하기가 쉬웠다. 다만 독립적으로 운영됐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협조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진상조사팀이 굉장히 많은 키워드를 입력해서 발견한 것들을 요구하는데, 정보는 폐기가 원칙이라면서 ‘(관련 자료가) 없다’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염호석 사건에서도 어떤 경로로 정보가 올라갔는지 파악하기 위해 자료를 요구했는데 진행 중인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제공이 어렵다고 하더라.” -조사 과정에서 내부 반발도 있었다. 김 “검찰의 조직적 반발은 충분히 예상했다. 과거사위가 끝나고 더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 김 변호사는 한상대 전 총장과 윤갑근 전 고검장으로부터 각각 민사, 민·형사 소송을 당했다.) 그런데 조사단의 권한은 검찰총장의 감찰권에서 나온다. 따라서 현직 검사들의 반발은 검찰총장에 대한 항명이다. 과거사위와 조사단 활동 자체가 법령에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에 대한 도전이다. 필요하면 그 자체를 진상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침묵했다. 법무부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박 “전직 경찰은 조사를 거부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만 현직은 부르면 온다. 조현오, 이철성 전 청장도 다 조사를 받았다. 용산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인 김석기 의원만 조사를 안 받았던 것 같다.” -과거사 조사가 불편한 쪽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이 많다는 등 위원회 구성을 문제 삼기도 했다. 김 “못마땅한 관점에서 트집을 잡다 보니 구성원 출신까지 거론되더라. 구성 자체가 편향되는 건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위원 9명 중 6명은 법무부 장관이, 3명은 총장이 추천했다. 민변 출신(6명·이 중 1명은 중도 사임)이 많기는 하지만 과거 검찰 개혁과 관련해 활동했던 사람들 위주로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오히려 이분들 생각이 다르고 개성이 강해 의견 합치가 어려웠다.” 박 “진상조사위는 민변 출신이 위원장과 간사 두 명뿐이다. 위원회에는 경찰 지휘부(경찰청 차장, 기획조정관) 2명과 경찰 출신 위원도 1명이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건 맞지 않다.” -위원 자리는 잘해야 본전일 텐데 왜 위원을 하기로 마음먹었나. 김 “검찰개혁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과거사위 설치 권고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법무부 장관도 위원회에 들어가라고 제안을 했다. 개인적으로도 검찰권 남용을 확인하고 검찰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될 것으로도 봤다. 그럼에도 고민이 되더라. 검찰은 과거사 조사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결국 하게 됐다.” 박 “피해자 단체가 추천해 중간에 합류했다. 조사 결과가 아무리 잘 나와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흡족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피해자 측 입장을 누군가는 전해야 한다고 봤다.” -어렵게 과거사 조사를 끝마쳤지만 검찰은 마무리가 아쉬웠다. 김 “위원 입장에서는 많이 아쉽다. 법무부 장관은 충분히 입장을 표명하고 국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는데 질문을 안 받겠다는 사소한 문제 때문에 그런(기자 없는) 기자회견을 강행했다는 게 안타깝다. 이 과거사는 장관이 직접 챙긴 일이다. 오히려 국민에게 시원하게 말씀드리고 수사가 잘못됐거나 부족했다면 왜 그랬는지 설명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국민도 납득했을 텐데 장관마저 회피했다.” -경찰은 올 초 쌍용차, 용산참사와 관련한 경찰관들의 정신적·육체적 피해에 대해 전액 지원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부터 해야 되는 것 아닌가. 박 “쌍용차 사건에 투입된 경찰관을 지난해 만났는데 노동자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분노가 여전했다. 어떻게 보면 그 경찰관 역시 잘못된 시스템의 피해자일 뿐이다. 경찰 개개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경찰도 시민과 마찬가지로 지원을 받는 게 맞다. 그를 치유하는 것이 전체를 위한 일일 수도 있다.”-과거사 조사를 통해 희망을 발견했다면. 김 “처음으로 검찰 캐비닛을 열어 과거 사건들의 과오를 들여다봤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검찰 구성원에 대한 경고라는 측면도 있다. 앞으로 본인이 진행한 사건이 과거사위 사건에 선정돼 조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검사는 ‘정치적인 사건을 안 하면 문제없겠지’라고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번에 조사한 ‘선임계 미제출 변론’(몰래변론) 사건처럼 정치권력과 관계없이 검사가 어떻게 부패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건도 있었다. 권한 남용으로 검찰 스스로 부패할 수 있는 부분도 개선돼야 한다. 국민 모두가 과거사위 위원이 될 때 검찰이 나아질 것이다.” 박 “경찰과 1년 넘게 일하다 보니 한 번 방향을 잘 잡으면 거대한 조직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걸 봤다. 하지만 그 큰 조직은 변하는 것도 쉽게 변한다. 노무현 정부 때 인권 경찰을 표방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 싹 바뀌었다. 당시 현장에서 경찰관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 세상이 바뀐 거 모르시냐고. 이번 기회에 제도화해서 다시는 과거로 회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자연스럽게’ 전인화 “생애 첫 혼라이프…여행조차 간 적 없어”

    ‘자연스럽게’ 전인화 “생애 첫 혼라이프…여행조차 간 적 없어”

    MBN 소확행 힐링 예능 ‘자연스럽게’를 통해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던 리얼 라이프를 선보이고 있는 배우 전인화가 “이번 ‘인화 하우스’ 입주는 제 생애 첫 ‘혼삶’”이라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8월 10일 방송될 MBN ‘자연스럽게’ 2회에서 본격적으로 시골 살이를 시작하는 전인화는 ‘자연스럽게’를 통해 30년간 대가족을 통솔하며 살아온 ‘주부 9단’다운, 남다른 살림 스케일을 차차 공개할 예정이다. 전인화에게 ‘자연스럽게’의 ‘인화 하우스’에서 혼자 살아 보는 것은 난생 처음 해 보는 경험이다. 21세에 남편 유동근을 만나 3년 뒤 결혼에 골인한 전인화는 “결혼하고 다음날부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몇 년 전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30년 정도를 대가족으로 살았다”고 쉼 없이 살아온 생활을 돌아봤다. 젊은 나이에 결혼하다 보니, 전인화에겐 혼자 살아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곧바로 결혼을 했고, 그 뒤 바로 아이들을 낳은 데다 일도 계속하느라 집에는 늘 매니저를 비롯해 제 일을 도와주실 분들이 있었다”며 “집이 집 같지 않고 늘 북적북적했다. 친한 여자친구들도 많긴 하지만, 시간 내기가 워낙 힘들다 보니 여행도 혼자 또는 여자들끼리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던 전인화는 시어머니의 별세 이후 오롯이 4인 가족만의 생활을 시작해 지금까지 집안 살림을 이끌어오고 있다. 그는 “제가 우리 가족끼리만 있다고 해서 다 내려놓는 스타일이 아니라, 흐트러진 곳 없이 깔끔하게 청소하고 정리하는 타입”이라며 “그래서 힘들 때도 있고, ‘자연스럽게’ 촬영 때도 혼자서 완벽하게 집을 정리해 놓으려니 ‘왜 이리 어깨가 아픈가’ 싶더라”며 ‘완벽 주부’의 포스를 뽐냈다. 전인화의 ‘역대급 스케일’ 주부 9단의 살림 실력은 앞으로 ‘자연스럽게’ 속 이웃들과의 생활을 통해 점점 공개될 예정이다. 2회에서부터 전인화는 거대한 솥에 고구마를 잔뜩 쪄 이웃들에게 돌리는 센스로, 현천마을 할머니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또 복날을 맞이해 ‘인화 하우스’ 앞마당의 가마솥에서는 상당한 양의 삼계탕을 끓이기도 했다. 전인화는 “정말 완벽한 살림꾼이셨던 시어머니는 저희 딸 백일 때 2박 3일 동안 손님 300명을 불러 잔치를 하셨다”며 “저는 놀라면서도 그냥 살림은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 살았고, 그런 시어머니를 모시다 보니 은근히 그 분을 닮아간 구석도 있다”며 지금까지 몰랐던 ‘살림 큰손’의 면모를 드러냈다. 전인화가 ‘혼삶’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은 ‘지금까지 도와준 분들에 대한 생각’이다. 그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하고는 잠시 있다 보면, 과거에 저를 도와 준 사람들이 새록새록 생각난다”며 “가족뿐 아니라, 제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 덕에 내가 많은 것을 얻었구나 하는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막상 “내가 없으면 어쩌나”라고 걱정했던 가족들은 전인화 없이도 아무 문제 없이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전인화는 “집에 강아지도 많고, 나 없이 대체 집안이 어찌 굴러갈지 너무 걱정됐는데 닥치니까 아무 문제 없더라. 강아지도 굶기지 않고, 알아서 다들 잘 하고 있다”며 웃었다. 전남 구례의 청명한 환경 또한 ‘인간 전인화’를 한층 더 편안하게 만들었다. 전인화는 “아침에 일어나면 늘 눈이 아팠는데, 여기선 그렇지 않다. 하늘도 정말 너무 아름답다”며 “항상 완벽한 캐릭터의 모습으로만 카메라에 서 왔는데, 점점 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편해지더라”며 한층 더 자연스러워진 현장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데뷔 36년 만의 리얼리티 예능 도전을 통해, 남다른 스케일의 ‘큰손 주부’ 전인화의 새로운 모습을 공개할 MBN ‘소확행 힐링 예능 ‘자연스럽게’는 매주 토요일 밤 9시 방송된다. 또한 ‘자연스럽게’의 촬영 뒷얘기는 유일용 PD가 매주 수, 토요일 선보이는 유튜브 채널 ‘The자연스럽게-일용tv’(https://youtu.be/u-YR2Epb3a0)에서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는 MBN에서 매주 토요일 밤 9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한남대교 아래서 피한 소나기 잊지 못할 한강변에서의 추억

    [흥미진진 견문기] 한남대교 아래서 피한 소나기 잊지 못할 한강변에서의 추억

    오후 6시 압구정역에서 모였다. 동호대교에서 반포대교까지 한강변을 걷는 투어였다. 아직 태양은 한강 수면의 두 뼘 높이에서 작열하며 강물에 붉은 물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전철이 지나는 동호대교 아래에서 옛사람들은 한강을 강이 아니라 동호·서호·남호 등 3개 호수로 나눠 부르면서 풍류를 즐겼다는 해설 사이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천둥소리였다. 왼편에 잠원지구의 초록나무와 잔디, 오른편에 푸른 강물을 두고 한남대교를 향해 걸었다. 한강 물빛은 날과 시간에 따라 같을 때가 없다고 하는데, 회색 강물 빛이 지루하다며 잔디 쪽으로만 시선을 주는 분들도 있었다. 갑자기 후드득후드득 소나기가 내렸다. 빠른 걸음으로 비를 피할 수 있는 한남대교 아래까지 걸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즐기던 열 가지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가 한남대교 근처에 있었다던 제천정에서 하는 달구경이었다고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실눈썹같이 가느다란 초승달이 떠 있었다. 조선시대 즐겼다는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새초롬하니 마음을 간질이는 매력이 있었다. 오후 7시 30분 반포대교에서 20m 아래 한강으로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190개 경관조명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물줄기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달빛무지개분수는 2008년 영국 세계기네스협회에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분수’로 등재됐다고 한다. 한강 물이 굽이쳐 흐른다고 서릿개라고 했다가 한자 표기가 바뀌어 반포로 불리는 반포지구에 다다르자 태양은 사라지고 주변이 캄캄해졌다. 한강 건너 노란 불빛이 긴 띠를 이루고, 환하게 빛을 밝힌 한강유람선은 강물에 황금빛무리를 만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모두 50여개 노선을 운영하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대한 해설을 마지막으로 투어를 마쳤다. 한강은 차로 지나며 멀리만 바라보던 곳이었다. 햇빛과 달빛, 물빛과 풀빛, 한강변의 불빛까지 빛의 향연이었고, 어느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시구처럼 한강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경험이었다. 이소영(동화작가)
  • 가족 돌봄은 회생 어렵다… 사회적 돌봄으로 ‘젠더 갈등’ 풀자

    가족 돌봄은 회생 어렵다… 사회적 돌봄으로 ‘젠더 갈등’ 풀자

    한국 사회에 변혁의 바람을 몰고 온 ‘미투’ 운동의 진동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터져나온 여성들의 목소리는 공고하게 이어져 온 남성 중심적 폭력 문화의 민낯을 들춰냈고, 남성 중심 권력 구조에 균열을 냈다. 불법촬영 규탄 시위, 낙태죄 폐지 등 여성 관련 이슈가 주요 의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성폭력 대책과 성평등 정책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반발과 반격도 거세지고 있다. 일부 사건은 여혐 대 남혐의 대결 구도로 비화됐고, 역차별을 거론하며 페미니즘에 반기를 드는 남성들도 늘어났다. 서울신문 부설 서울젠더연구소는 출범에 맞춰 국내 대표 여성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조한혜정(71) 연세대 명예교수에게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에 대해 물었다. 조한 교수는 가깝게는 근대의 근간을 형성해 온 군사주의와 과학기술주의에 대해, 멀게는 긴 인류사를 통해 구축돼 온 가정과 공공 영역 분리에 대해 근원적 성찰을 하지 않으면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교환 영역’(시장)과 ‘재분배 영역’(국가)을 축소시키는 한편 장기적으로 공존의 원리인 ‘호혜의 영역’을 사회의 핵심으로 삼고 확장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담은 지난달 서울젠더연구소장 김균미 대기자가 진행했다.-2018년 미투 운동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재 상황을 진단한다면. “한국에서는 2005년에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의 진학률을 추월했다. 그런데 아직도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이나 노리개처럼 여기면서 폭력적으로 대하는 남성들이 남아 있다. 미투 운동은 ‘더이상 그런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단호한 선언이다. 이전의 성폭력 폭로 사건이 피해자를 대변하는 운동이었다면 현재 미투 운동에서는 당사자들이 직접 발언을 하고 나섰다. 이 현상은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의 ‘1·2차 근대’의 개념으로 풀어내면 이해가 쉽다. 1차 근대의 주역은 중세 신분제에서 해방된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산업 역군이자 제국주의 전쟁의 참전자로 1등 시민의 자리에 있었다. 여성들은 그들을 보조하는 현모양처, 가정주부의 자리에 있었다. 2차 근대에 접어들면 남녀 모두가 경제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립가능한 개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여성 운동 차원에서 보면 1차 근대에서 여성은 경제·사회적 자립을 위한 동등한 권리 운동을 펼쳤다. 그런데 2차 근대에 가면 개인의 존엄과 자율적 삶을 존중하자는 운동을 벌인다. 서지현 검사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김지은씨의 미투는 2차 근대의 대표적 사례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된 여성들이 작은 폭력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회원리 자체의 근원적 변화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최근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백래시(반발·반격)가 심각한데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 “1차 근대에서 2차 근대로 넘어서는 과도기 현상이다. 2차 근대에 접어들면 여성들도 온전한 독립이 가능해져서 공사 영역에 걸쳐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반면 직장만 있으면 결혼하고 가장으로서 어깨를 펴고 살 수 있으리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성장한 남성들에게는 수난 시대가 시작된다. 현재 한국의 ‘일베화 현상’이나 여혐 대 남혐 구도는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 나온 병리적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1차 근대적 여권 운동은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여성의 좌절’과 함께 ‘남성의 좌절’도 다루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남자와 여자 모두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되 그간의 발전주의가 파생시킨 문제들을 해결하는 협동적 주체가 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남녀 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군대 문제가 꼽히는데 교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해결 방안으로 사회복무제를 제시하셨다. “한국의 남성 의무복무제는 성차별 체계의 핵심이다. 최근까지 월급 호봉이나 공무원 채용 시험에 가산점을 주는 보상제도가 있었다. 군대를 가지 않은 존재를 따돌리거나 2등 시민으로 취급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었다. 공무원시험 시 군 가산점을 두고 여성과 장애인 대표가 위헌 소송을 내 1999년에 승소했는데, 이 즈음에 병역 제도를 2차 근대적 시점에서 개혁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병사가 총 들고 싸우는 시대도 지났고, 기강을 세우기 힘든 상황에서 군대는 청년 직업훈련소화하고 있다. 냉전 체제는 북한의 개방으로 전혀 다른 지평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년들을 위한 훈련은 이제 재난과 재앙의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젠더’를 둘러싼 논란을 해결하려면 일자리와 결혼, 돌봄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기성 정치인이나 관료, 부모들은 자기 세대의 세계에 갇혀 평생 일자리와 결혼을 전제로 해법을 내려고 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혼자서도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1차 근대는 아내가 돌봄을 맡고 남편이 돈을 벌면서 유지됐다. 2차 근대는 여자가 사회에 나간 반면 남자들이 가정의 돌봄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여자들이 사회에 나가며 만들어진 공백을 메울 것이라 예상했다. 현실은 어떤가. 어릴 때부터 입시 공부와 직장을 얻기 위한 준비만 한 여성은 남성 못지않게 돌봄에 서툴다. 그렇게 성장한 많은 ‘능력 있는’ 여성들은 출산하고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시 직장에 가고 싶어 한다. 여성들은 남성 못지않게 돈벌이에 몰두하면서 육아를 맡을 사람을 고용하거나 어린이집에 장시간 맡겨 두려 한다. 그렇게 ‘기획된 가족’의 아이들은 장시간 학교와 사교육 시장에 맡겨져 관리·보호된다.” -돌봄의 공백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보인다. “그간 가족에게만 맡겼던 돌봄을 ‘사회적 돌봄’의 개념으로 풀어내는 것이 바로 여성가족부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1차 근대에서 제기된 생산성, 곧 여성 노동과 인권 문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2차 근대의 생산성이 핵을 이루는 사회적 돌봄에 바탕을 둔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거시적 기획을 시도했어야 했다. 사회복무제는 그런 2차 근대적 기획의 핵심 사안 중 하나일 것이다. 남녀 모두가 성인이 되는 시점에 갖가지 위기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하고 아이와 약자를 보호하는 주체가 되는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근 어린이집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사회복무를 하는 청년 남녀가 참여하게 되면 지혜롭게 풀어 갈 수 있다. 스무살 즈음의 모든 국민들이 천재지변에 대비하고 약자를 돕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사회의 책임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더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족 단위 돌봄을 회생시키려 하기보다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호혜적 관계를 맺고 다음 세대를 함께 키우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새로운 인프라를 만드는 데 세금을 써야 한다.” -‘토건 국가’에서 ‘돌봄 사회’로의 전환을 강조해 오셨다.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가 쓴 ‘보이지 않는 가슴’이라는 책이 있다.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잘 굴러간다고 하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가슴’이 있어 가능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돌봄은 존재와 존재의 만남, 소통과 이해와 공존의 행위다. 그러나 도구적 합리성이 주도하는 사회에서는 이 영역을 무시해 왔다. 여성들, 특히 1차 근대에서 열렬한 운동을 했던 페미니스트들도 돌봄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가정주부 시대에 어머니들이 강요받은 비지불 노동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한 것이다. 돌봄 사회에서 말하는 ‘돌봄’은 가족을 넘어선 ‘사회적 돌봄’이다. 사회적 돌봄이 가능한 사회는 결혼을 강요하기보다 동거를 장려하고 의무적 제도가 아닌 실질적 지원을 하는 사회다. 더 나아가 돌봄은 창의의 근원이다. 창의성은 돌봄이 있는 여유로운 환경에서 나온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더 자연스럽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코리빙 스페이스’(co-living space), 자신이 원하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하는 ‘리빙 랩’(living lab), 이들이 모여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창의적 공유지,’ 이런 크고 작은 공동체적 시공간이 돌봄 사회로의 전환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성평등 교육은 중요한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무엇보다 남자들에 대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남자들은 소통을 하지 못하는 조직에서 성장하지 않았나. (그 조직에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고, 사실상 그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던 거다. 그런 이들은 나이가 들면 점점 더 귀가 잘 안 들리는 존재가 돼 간다. 여자들이 처음 공적 영역에 들어갈 때 적극적 조치가 필요했듯이 남자들을 돌봄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게 하려면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관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비폭력 대화 등 훈련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남자아이들 문제도 심각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부터 제대로 사회화되지 못하고 있다. 존경스러운 남자 모델도 없고, 어머니나 여자 교사와 거리감을 느끼면서 온라인 전쟁 게임에 몰입하거나 남자 패거리 문화에 휩쓸리게 된다. 아버지가 가르쳐 주지 못한 소통과 돌봄의 능력을 키워 줄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적 구도로 접근하면 역효과만 난다. 각자의 경험을 꺼내 놓고 함께 배워 가는 리빙랩과 같은 분위기에서 시대 변화를 배우고 스스로를 알아 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현재는 소수의 전문가들이 연구할 시간도 없이 분주하게 ‘계몽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평등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국가의 대대적인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 -젠더 이슈와 관련한 다양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발족한 서울신문 서울젠더연구소에 기대하는 역할이 있다면. “‘젠더’는 생물학적 성과 구분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으로서 남성 중심의 사회가 어떻게 구성돼 왔는지 살펴보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단어다. 남녀로 구성된 사회가 긴 인류사를 통해 왜 이렇게 적대적 사회가 됐는지 거시적 관점을 갖고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연구하고 해결해 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현재 세계가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이 작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 근대의 원리였던 발전주의적 언어를 넘어 근대를 성찰하는 언어로 시대의 문제를 연구하고 풀어낼 것을 기대한다. 페미니즘은 다음 세대가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선언이다. 서울젠더연구소가 남녀와 세대 등으로 나눠진 이들이 같이 모여 의논하고 작업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면 좋겠다. 특히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2차 근대의 성찰적 페미니즘의 토대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김균미 젠더연구소장 kmkim@seoul.co.kr정리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여성·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는… 연세대 명예교수. 1981~2013년 연세대 사회학과·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일했다. 1980년대 여성주의 동인 집단 ‘또 하나의 문화’와 함께 여성주의적 공론의 장을 열었고, 1990년대에는 서울시립청소년 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를 설립해 청소년 대안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 2000년대부터는 서울시 마을공동체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 민관 협력의 다양한 모델을 제시했다. 곳곳의 마을을 돌봄과 소통이 있는 배움터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다시, 마을이다’,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선망국의 시간’ 등이 있다.
  • ‘목동 참사’ 탈출구 왜 막았나…“계단에서 물살 피했을 줄 알았다”

    ‘목동 참사’ 탈출구 왜 막았나…“계단에서 물살 피했을 줄 알았다”

    3명이 목숨을 잃은 서울 목동 빗물 배수시설 사고현장에서 일부 작업자들이 유일한 탈출구인 방수문을 닫은 이유에 대해 피해자들이 물살을 피했을 것으로 짐작했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양천경찰서 전담수사팀은 “방수문을 닫은 작업자들은 피해자들이 ‘유출수직구’의 계단에 올라 물살을 피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고 3일 밝혔다. 사고 현장 주변에서 지상과 연결되는 ‘수직구’는 ‘유지관리 수직구’와 ‘유출 수직구’ 등 2개다. 사고 피해자들은 유지관리 수직구 지하에 있는 ‘방수문’을 통해 터널로 진입했다. 그런데 폭우로 물이 불어나자 외부에 있던 작업자들이 방수문을 닫아버린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방수문은 터널 내부에서는 열 방법이 없다. 근처 유출 수직구에는 바닥부터 이동식 비상계단이 있긴 했지만 지상까지 연결돼 있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방수문이 유일한 탈출구였던 셈이다. 그러나 현장 작업자들은 피해자들이 비상계단에서 물살을 피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설비 보호와 감전사고 등을 위해 방수문을 폐쇄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물살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한꺼번에 6만t 규모의 물이 터널로 쏟아져 내려온데다 현장에는 물에 뜨는 것을 도와줄 튜브나 구명조끼도 비치돼 있지 않았다. 경찰은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현장 관계자 등을 입건한다는 방침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멜로가 체질’ 이하늬-진선규, 지원사격 “이런 특별출연은 없었다”

    ‘멜로가 체질’ 이하늬-진선규, 지원사격 “이런 특별출연은 없었다”

    영화 ‘극한직업’의 골때리는 커플, 이하늬-진선규를 ‘멜로가 체질’에서 다시 만났다. 오는 9일 금요일 10시 50분 첫 방송되는 JTBC 새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극본 이병헌, 김영영, 연출 이병헌, 김혜영, 제작 삼화네트웍스)을 위해 이하늬, 진선규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섰다. 상황을 짐작할 수 없는 아리송한 스틸컷이 공개된 가운데, 이들이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코믹영화 ‘극한직업’에서 장형사와 마형사로 분해 1600만 명의 관객에게 웃음 폭탄을 안겼던 이하늬와 진선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커플이 ‘멜로가 체질’에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름드리 녹색의 나무가 우거진 예쁜 길 위에서 멜로틱한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모르긴 몰라도 둘의 사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보인다. 이병헌 감독과의 인연으로 두말도 하지 않고 현장으로 달려왔다는 이하늬와 진선규는 잠깐 출연에도 극한의 존재감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예정이라고. ‘멜로가 체질’ 제작진은 “짧은 출연에도 흔쾌히 응해주고, 유쾌하게 촬영에 임해준 이하늬, 진선규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이 외에도 김도연, 김일중, 김기리, 서태훈, 토니안, 레이디제인까지 반가운 얼굴들이 예측하지 못한 장면 곳곳에 등장할 예정이다. 방송을 보며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라며 예비 시청자들의 기대를 높였다. 한편, 첫 방송을 일주일 앞둔 ‘멜로가 체질’은 ‘예습이 체질’인 시청자들을 위해 오늘(2일) 밤 10시 50분 ‘멜로가 체질-서른되면 괜찮아요?!’를 특별 편성했다. 앞서 공개된 예고 영상(https://tv.naver.com/v/9290267/list/480259)에서 첫 방송이 미뤄져 절망(?)한 배우들이 참았던 수다를 모두 풀어놓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기대를 증폭시켰다. 앞서 밝혀진 극한의 특별출연 군단 역시 깜짝 등장한다. 멜로 맛집의 진수를 보여줄 천우희, 전여빈, 한지은, 안재홍, 공명 5인방과 MC를 맡은 올해 ‘서른’ 에릭남이 극한의 시너지로 특별한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JTBC ‘멜로가 체질-서른되면 괜찮아요?!’, 오늘(2일) 금요일 밤 10시 50분에, ‘멜로가 체질’ 첫 회는 일주일 뒤인 8월 9일 금요일 밤 10시 50분에 방송된다. 사진제공 = 삼화네트웍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2030 세대] 개 이야기/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개 이야기/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투키디데스는 인간의 본성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했지만, 개의 본성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었을까. 키츠는 있었다. 영국 시인 키츠의 생각에 오늘날의 개는 그리스 시대의 개와 최소한 짖는 것은 똑같을 거라 확신했다. 개가 아니라 나이팅게일의 목소리이긴 했지만. 개도 그럴 거라고 우린 짐작할 수 있다. 키츠는 시인의 말은 물갈이 되듯이 재해석되고 변질되지만, 새의 지저귐은 영원히 변함없다고 했다. 키츠의 이론이 근거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어느 옥스퍼드 교수는 조류학자를 찾아가기도 했다. 답은 ‘그럴 수도 있지만, 잘 모른다’였다. 모른다니까 더 흥미롭다. 고전학을 전공하면 사물을 길게 보게 된다. 거대한 문명들이 깨끗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우리의 유한함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프랑스 작가 폴 발레리가 말했듯이, 우리에게 니네베나 바빌론은 이제는 의미 없는 이국적인 이쁜 이름에 불과하다.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는 개 얘기가 종종 나온다. 나는 2012년에 아테네 여행을 가서 그리스의 개들을 직접 보았다. 대부분은 집 없는 개들이었다. 기억해 보니 애완견이었단 생각은 없다. 무더위를 피해 그늘 밑에 늘어져 있었다. 갈비뼈가 인상적이었다. 한없이 게을러 보였다. 그리스 문학에서 개를 다룬 작품으로 크세노폰의 ‘개들과 함께 사냥하는 법’이 있다. 크세노폰이 추천하는 “부르기 좋고 간결한” 개 이름들은 요즘 사용해도 손색없다. 기쁨이, 도움이, 태풍이, 불꽃이, 똘똘이, 하늘이, 꽃망울이, 튼튼이, 활짝이, 번개, 돌 등등. 색깔에서 영감받은 하양이, 까망이 같은 이름들도 기록에 남아 있다. 그리스 문학 최초의 충견은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아르고스 (즉 “번쩍이”)이다. 번쩍이의 주인 오디세우스는 10년의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10년 더 방황하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는데, 자신의 아내를 탐내는 108명의 구혼자들을 염탐하기 위해 거지로 분장한다. 죽은 줄 알았던 오디세우스라고 누구도 헤아리지 못하지만, 이제 노견이 된 아르고스만이 옛 주인을 바로 알아본다. 일어날 힘도 없어진 개는 귀를 내리고 꼬리를 흔든다. 자신임을 밝히지 못하는 오디세우스는 눈물을 훔치며 외면한다. 20년 만에 주인을 다시 본 충견 아르고스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오디세이아’ 후 인도, 아일랜드 서사시에도 충견 모티브는 자주 등장한다.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유디슈티라 왕도 개를 사랑했다. 그는 천국에 들어서려는 순간 개는 동반할 수 없다는 말에 차라리 지상으로 돌아가거나 지옥에 가겠다며 떼를 쓴다. 우리는 개를 얕잡아본다. 그리스에서도 “암캐”나 “개 얼굴한 놈”은 욕이다. 개에 대한 사랑과 멸시는 늘 함께했다. 윤회를 믿었던 피타고라스는 어느 날 마을 사람이 개를 패는 걸 막으며 개의 울부짖음에서 죽은 친구의 목소리를 들었다. 채찍을 맞는 말을 껴안고 울다가 미쳐버린 니체가 생각난다.
  • 미국 역대 대통령 보니, 트럼프 인종차별은 양반

    미국 역대 대통령 보니, 트럼프 인종차별은 양반

    제퍼슨 “흑인 나쁜 냄새로 저주”女노예에 지속적 성관계 강요도잭슨 “도망노예 매질하면 보상”윌슨 백악관서 KKK 찬양 영화닉슨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레이건 “원숭이들 신발 불편해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주의회 설립 400주년을 맞아 제임스타운을 방문하기 직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덜 인종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흑인이 많은 선거구를 “쥐와 설치류가 들끓는 난장판”이라고 칭하는 등 잇단 인종차별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하지만 이날 AP통신이 소개한 역대 미 대통령들의 인종주의 흑역사를 살펴보면, 트럼프보다 인종차별적인 대통령이 수두룩했다는 걸 알게 된다. 버지니아주는 미국에 유럽 이주민과 함께 아프리카 노예도 처음 도착하며 노예제 역사가 시작된 땅이다. AP통신은 이런 버지니아 주의회 설립 기념일을 맞아,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전후 논평과 정책결정에서 보여준 공적·사적 행동 중 당시에나 지금이나 인종주의적이라고 평가받는 사례를 소개했다. 조지 워싱턴(초대)부터 재커리 테일러(12대)까지 초기 대통령 대부분은 흑인 노예를 소유했으며, 원주민(인디언)과 아프리카계, 라틴계 사람들이 투표권이나 배심원 자격을 갖지 못하던 시절 권력을 장악했다. 학자나 인권 지도자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대에 흔했던 인종차별적 견해는 되풀이됐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썼다. 하지만 그는 저서에는 흑인이 “매우 강하고 기분나쁜 냄새로” 저주 받았으며, 예술이나 시를 창작할 능력이 없다고 썼다. 그는 노예제가 부도덕하다면서도 노예를 소유했고, 역사가들에 따르면 흑인 노예 중 한 명과 성관계를 지속하기도 했다. 제퍼슨은 저서에서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면 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썼다. 노예를 해방하면 흑인과 백인이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도 남부 출신 노예 소유주였으며,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04년엔 도망친 노예 한 명 당 50달러를 줄 것이며, 노예에게 매질을 하면 300대까지 100대 당 10달러씩 더 준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는 노예 150명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해방시키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조지아주에서 체로키 원주민을 강제로 제거하며 수천명을 죽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체국장이 수정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며 노예제 반대 출판물을 압수한 것을 묵인하기도 했으며 출판물들을 “반 헌법적이며 사악한 것”이라고 했다. 우드로 윌슨(28대) 대통령은 버지니아 태생으로 프린스턴대 총장 재직 당시 흑인의 입학을 금지했다. 그는 일부 흑인의 지지 덕분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집권 뒤 그와 민주당은 공무원 조직의 인종분리 정책을 뒤집는 것을 거부했다. 윌슨은 1915년 백악관에서 KKK를 영웅시하는 인종차별 영화 ‘국가의 탄생’을 상영해 논란을 빚었다. 그는 백인 폭도들이 흑인을 무차별 공격한 1919년 ‘붉은 여름’ 당시에도 폭력에 반대하는 논평을 하긴 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연방정부의 자원을 사용하진 않았다.존 F 케네디 암살 뒤 대통령직을 맡은 린든 존슨(36대)은 전임자가 추진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민권 법안을 이어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사적인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엔 존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자신이 요직에 임명한 흑인을 묘사하며 일상적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존슨의 후임자 리처드 닉슨 역시 사적인 대화 중 인종차별적 비방을 자주 했다. 그는 “우리는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little Negro bastards)을 가구 당 2400달러에 달하는 복지 대상자 명부에 더 많이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종종 유대계, 멕시코계,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에게 경멸적인 발언을 했다. 닉슨의 이런 발언은 존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십년 뒤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알려졌다.뉴욕타임스는 31일(현지시간) 로널드 레이건(40대) 전 대통령이 1971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닉슨과 통화 중에 “아프리카에서 온 원숭이들을 보기 위해, 빌어먹을”이라면서 “그들은 아직도 신발을 신는 걸 불펴해한다”고 말한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파일엔 그가 아프리카 유엔 대표부를 “식인종”이라고 부르는 것도 녹음됐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역대 美 대통령 보니, 트럼프 “난 덜 인종차별” 할만

    역대 美 대통령 보니, 트럼프 “난 덜 인종차별” 할만

    제퍼슨 “흑인 나쁜 냄새 나는 저주”흑인 노예와 지속적 성관계 강요도잭슨 “도망친 노예 때리면 보상금”윌슨 백악관서 KKK 찬양 영화 상영닉슨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 녹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주의회 설립 400주년을 맞아 제임스타운을 방문하기 직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덜 인종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흑인이 많은 선거구를 “쥐와 설치류가 들끓는 난장판”이라고 칭하는 등 잇단 인종차별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날 AP통신이 소개한 역대 미 대통령들의 인종주의 흑역사를 살펴보면, 트럼프보다 더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알게 된다. 버지니아주는 미국에 유럽 이주민과 함께 아프리카 노예도 처음 도착하며 노예제 역사가 시작된 땅이다. AP통신은 이같은 버지니아 주의회 설립 기념일을 맞아,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전후 논평과 정책결정에서 보여준 공적·사적 행동 중 당시에나 지금이나 인종주의적이라고 평가받는 사례를 소개했다. 조지 워싱턴(초대)부터 재커리 테일러(12대)까지 초기 대통령 대부분은 흑인 노예를 소유했으며, 원주민(인디언)과 아프리카계, 라틴계 사람들이 투표권이나 배심원 자격을 갖지 못하던 시절 권력을 장악했다. 학자나 인권 지도자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대에 흔했던 인종차별적 견해는 되풀이됐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썼다. 하지만 저서에는 흑인이 “매우 강하고 기분나쁜 냄새로” 저주 받았으며, 예술이나 시를 창작할 능력이 없다고 썼다. 그는 노예제가 부도덕하다면서도 노예를 소유했고, 역사가들에 따르면 흑인 노예 중 한 명과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하기도 했다. 제퍼슨은 저서에서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면 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썼다. 노예를 해방하면 흑인과 백인이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도 남부 출신 노예 소유주였으며,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04년엔 도망친 노예 한 명 당 50달러를 줄 것이며, 노예에게 매질을 하면 300대까지 100대 당 10달러씩 더 준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는 노예 150명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해방시키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조지아주에서 체로키 원주민을 강제로 제거하며 수천명을 죽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체국장이 수정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며 노예제 반대 출판물을 압수한 것을 묵인하기도 했으며 출판물들을 “반 헌법적이며 사악한 것”이라고 했다.우드로 윌슨(28대) 대통령은 버지니아 태생으로 프린스턴대 총장 재직 당시 흑인의 입학을 금지했다. 그는 일부 흑인의 지지 덕분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집권 뒤 그와 민주당은 공무원 조직의 인종분리 정책을 뒤집는 것을 거부했다. 윌슨은 1915년 백악관에서 KKK를 영웅시하는 인종차별 영화 ‘국가의 탄생’을 상영해 논란을 빚었다. 그는 백인 폭도들이 흑인을 무차별 공격한 1919년 ‘붉은 여름’ 당시에도 폭력에 반대하는 논평을 하긴 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연방정부의 자원을 사용하진 않았다.존 F 케네디 암살 뒤 대통령직을 맡은 린든 존슨(36대)은 전임자가 추진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민권 법안을 이어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사적인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엔 존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자신이 요직에 임명한 흑인을 묘사하며 일상적으로 인종차별적 비방을 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존슨의 후임자 리처드 닉슨 역시 재임 중 사적인 대화에서 인종차별적 비방을 자주 했다. 그는 “우리는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little Negro bastards)을 가구 당 2400달러에 달하는 복지 대상자 명부에 더 많이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종종 유대계, 멕시코계,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에게 경멸적인 발언을 했다. 닉슨의 이런 발언은 존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십년 뒤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이의진의 교실 풍경] 이열치열

    [이의진의 교실 풍경] 이열치열

    초복(初伏)을 거쳐 중복(中伏)마저 지났다. 어느덧 장마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드디어 열대야가 나타날 거라고 아침 방송의 아나운서가 친절하게 알려 준다. 누가 복(伏) 중 아니라고 할까봐 아침부터 덥다. 그러나 예로부터 선조들께서 말씀하시길 더위를 차가움으로 다스리지 말고 같은 열(熱)로 다스리라 했으니 이른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다. 고교 3학년 담임에게 여름방학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학하고 일주일이 지났건만, 오늘도 평소처럼 7시 반까지 출근해 자기소개서 쓰기 특강을 하고, 40여명 학생의 자기소개서 틀을 잡아 주고, 두세 시간 간격으로 3명의 대입 수시 상담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창밖이 어둑해진다. 수시 상담 기록을 갈무리하고 막 퇴근을 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인근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학부모란다. 아들이 상위 1%의 성적을 유지하는데, 특목고나 자사고를 지원할지 아니면 우리 학교와 같은(?) 일반고를 지원할지 고민이 돼 전화했단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빴고 퇴근을 앞두고 목소리마저 꽉 잠겨 나오지 않을 만큼 지쳐 있었지만,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설명을 드렸다. 특목고와 일반고의 장점과 단점, 그중에서도 특히 현행 입시 체제하에서 대학 진학과 관련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지는지를 비교해 드렸다. 우수한 성적의 아이가 일반고로 진학했을 때의 장점을 역설했다. 그랬더니 우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나 교육활동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고 하신다. 다시 또 설명을 했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덧붙여 물었다. 성적이 좋은 아이가 입학했을 때 학교에서는 어떤 식으로 관리를 해 줄 수 있으며, 소위 명문대를 보내 줄 수 있겠느냐고. 경쟁 사회에서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과 답답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대학입시라는 것이 특히나 내 아이가 열게 되는 경쟁 사회의 첫 문이 될 거라는 불안은 아이의 미래를 부모도 함께 찾아야만 한다는 절박감을 낳는다. 그것을 인정하고 가야 한다. 단지 공교육 현장의 교사 입장은 또 다를 수밖에 없다. “전혀 다른 자식 셋이 있습니다. 구태여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공부 잘하고 뭐든지 알아서 척척 해내는 모범생인 아이가 있구요, 별로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있는 듯 없는 듯 별 특징이 없긴 하지만 나름 즐겁게 생활하는 아이도 있구요, 학교 다니는 걸 참 힘들어하면서 공부는 뒷전인, 마음 쓰이는 아이가 있어요. 학교는 이렇게 전혀 다른 세 아이가 모여 함께하는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아이들 모두를 우리 사회의 건강한 시민으로 길러 내는 게 공교육 기관의 의무일 겁니다.” 그러자 그분도 가느다랗게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게요. 언제쯤 우리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까요. 저도 막상 우리 애가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하고 대학 입시가 코앞으로 닥치는 시점이 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해지기만 하네요.” 언제나 그렇듯 ‘날것 그대로의 현실’과 마주할 때면 불편하다. 나에게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시민을 길러 내는 것’과 정작 눈앞에 보이는 ‘경쟁 사회’라는 현실이 주는 괴리가 명치께 어디메쯤에 걸려서 불편함으로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불현듯 얼굴에 열감(熱感)을 느낀다. 공교육은, 학교는, 아니 교사는 이러한 개개(箇箇)의 현실과 마주하면서 어떻게 조율해야만 성숙한 교육자의 자세를 견지할 수 있는 걸까. 이제 보니 옛말 그른 게 하나 없는 듯하다. 뱃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묵지룩하니 열이 올라오다 보니 오늘같이 더운 날 더운 줄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이열치열’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나도 안 덥다. 그러나 한 가지, 오늘 정신없이 바빠서 구내식당에 삼계탕이 나왔다는데 국물 한 모금 못 먹은 건 좀 아쉽다.
  • 좀 뛸 줄 아는 그녀…소시 말고, 배우 윤아도 괜찮네

    좀 뛸 줄 아는 그녀…소시 말고, 배우 윤아도 괜찮네

    조정석과 ‘재난 탈출 액션’ 연기 호평 “가수 활동 때 와이어 공연 경험 도움 전력 질주 많아 ‘컷’ 동시에 주저앉아”“소녀시대(소시) 활동을 하면서 공연장에서 짧게라도 와이어를 타 봤던 것들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온전히 제 힘으로 전력을 다해 달리는 신들이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컷’ 하는 소리가 나자마자 주저앉아 버렸죠.” 지난 17일 영화 ‘엑시트’의 언론시사회에서는 주연 임윤아(29)에 대한 상찬이 쏟아졌다. ‘엑시트’는 청년 백수 용남(조정석)과 연회장 직원으로 취업한 대학 산악동아리 후배 의주(임윤아)가 용남의 어머니(고두심)의 칠순 잔치에서 만나 도심 전체에 퍼진 유독가스를 피해 모든 체력과 스킬을 동원해 고군분투하는 스토리다. 시종일관 달리고, 오르는 좌충우돌 ‘재난 탈출 액션’에서 조정석의 열연은 누구나 예측 가능했지만, 윤아에 대해서는 ‘판단 보류’였다. 그런데 그 긴 팔다리로 휙휙 날아다니며 시시각각 적확한 상황 판단을 내리는 한편 입꼬리가 휘어지도록 짠내 나게 우는 모습에, ‘배우 윤아’도 괜찮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아에게 ‘효리네민박’ 속 막힌 변기도 척척 뚫던 직원 윤아가 생각난다고 서두를 띄우자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으니 배역에 끌려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호응했다. “그래도 의주가 훨씬 저보다 더 용감하고 체력도 강하고…. 저는 생각만 하는 걸 의주는 직접 실행하죠. 닮고 싶은 부분이 많은 의주예요.” 영화 속 윤아는 잘도 달린다. 함께 달리던 조정석이 “너 100m 몇 초냐”고 묻는 게 대사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학창 시절, 계주 대표까지는 못해도 대표 후보 정도는 할 실력이었단다. “촬영 두세 달 전쯤부터 정석 오빠랑 연습장에 가서 김자비 선수한테 클라이밍 훈련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액션 스쿨에도 가서 건물 오르는 신 등은 미리미리 연습을 했어요.” 용남이 코를 납작하게 하는 과거 클라이밍 회상 신에도 직접 참여했다. 대역을 쓰기도 했지만 윤아 뒤태가 더 많이 나오는 이유다. 윤아는 ‘엑시트’를 포함해 여름 극장가에서 주목받는 한국영화 4편(‘나랏말싸미’·‘사자’·‘봉오동전투’)의 주연 중 홍일점이다. 심지어 영화로서는 첫 주연작. 부담이 클 법하다. “고생했던 스태프들 생각하면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그는 “차트나 순위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라며 ‘13년차 스타’의 평정심을 내보였다. “작품을 고를 때나 곡 작업을 할 때 오로지 그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 뭐가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는 그는 이젠 배우로서 차근차근 성장하는 모습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숨 막힌 검열의 시대가 낳은 ‘별들의 고향’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숨 막힌 검열의 시대가 낳은 ‘별들의 고향’

    1970년대는 한국영화가 침체와 불황의 긴 터널로 진입하는 시기였다. 1971년 202편의 제작편수를 유지했던 한국영화는 1972년 122편으로 급감했고, 이후 한국영화는 텔레비전과 대작 외국영화 사이에 끼어 호스티스 멜로와 무협 액션 같은 저예산 장르로 연명하게 된다. 1970년대가 극심한 암흑의 시대였다고 해서 청년들의 에너지와 희망마저 꺾을 수는 없었고, 영화계는 이를 포착해 작은 위안들을 발신했다. 서구영화의 뉴웨이브 정신과 교감하는 청년 감독들이 새로운 감수성과 신선한 영상감각을 앞세운 영화들로 젊은 관객들과 만났다. 그 포문은 이장호가 열었다. 그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1974)은 46만 관객이라는 초유의 흥행 기록을 세우면서 산업적 활로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청년영화’라는 새로운 방향까지 제시했다.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이 그 뒤를 이었고, 이들을 포함한 젊은 감독들은 청년영화집단 ‘영상시대’를 결성해 한국의 뉴시네마운동을 선포한다. 이번 연재는 1970년대 한국영화가 쇠퇴하게 된 배경 그리고 ‘별들의 고향’이라는 기념비적인 데뷔작을 선보인 이장호 감독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국책영화 만들어 외화 쿼터 따낼 방법에 골몰 1972년 10월 유신정권이 들어섰고 영화계 역시 더욱 경직되어 갔다. 그리고 1973년 2월 유신 체제를 반영한 영화법 4차 개정이 있었다. 영화 제작을 하려면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제작업과 수입업이 다시 통합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1973년 시점 20개였던 제작사는 12개로 줄었고, 허가받은 12개사에 제작권을 부여해 연간 제작편수를 130편으로 묶었다. 50편 내외였던 외국영화 수입권도 12개 제작사만 나눠 가졌다. 국산영화 3편을 제작하면 외화 쿼터 1편을 받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당시 한국영화는 외국영화 수입 쿼터를 받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작자들은 좋은 영화를 만들기보다 저예산으로 빨리 만들 수 있으면서 관객들의 호기심과 볼거리를 채울 수 있는 영화들로 눈을 돌렸다. 특히 대중적 신파 감성에 여성의 신체를 상품화하는 호스티스 영화, 깡패, 스파이, 무협 등으로 분화한 액션영화가 유행했던 이유다. 물론 외화 쿼터를 더 따낼 방법 역시 존재했다. 정부가 제시하는 ‘국책영화’, ‘우수영화’ 같은 기준에 부합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성웅 이순신’(이규웅, 1971)을 위시로 박정희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기획된 ‘성웅사업’ 영화들, 문학을 영상으로 옮긴 ‘무녀도’(최하원, 1972) 같은 문예영화들, ‘진짜진짜 잊지 마’(문여송, 1976)로 시작한 ‘진짜진짜’ 시리즈, ‘고교얄개’(석래명, 1976)가 대표하는 ‘얄개’ 시리즈 등 하이틴영화들이 그 대상이 됐다. ●깡패·스파이·호스티스 영화 붐으로 이어져 4차 영화법 개정으로 설립된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의 전신) 역시 국책영화 제작을 주도했다. 국가가 직접 나서 ‘증언’(임권택, 1973) 등의 전쟁영화, ‘아내들의 행진’(임권택, 1974) 같은 새마을영화를 만든 것이다. 물론 이 영화들이 실질적인 국책 전파에 기능했는지는 의문이다. 1960년대부터 이어온 국가 주도의 영화 정책은 명과 암을 동시에 지닌 것이었고, 1970년대는 그 폐해가 더 커져 갔다. 흑백이긴 했지만 텔레비전 보급률이 급증하면서, 반대로 전국의 영화관수와 관객수는 급격히 줄었다. 그리고 관객들은 외화 한편을 수입하기 위해 졸속으로 제작된 영화들과 상업성이 없어 며칠 만에 간판을 내리고 마는 우수영화들에 흥미를 잃어 갔다. 이러한 침체 일로의 영화계에 일순간 활력을 불어넣은 작품이 바로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이었다. 1945년 5월 서울에서 출생한 이장호는 영화 검열관이었던 부친 덕에 어릴 때부터 영화와 가깝게 지냈다. 아버지가 일하던 검열실에 따라가 채플린 영화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을 보기도 했고, 집에서는 아버지가 가져온 필름을 만지고 놀았다. 그의 영화적 원경험이었던 셈이다. 학창 시절 문학에 탐닉했던 그는 홍익대 건축미술학과에 입학했지만 제도권 교육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부친은 방황하던 그를 ‘신필림’으로 데려간다. 애초 배우를 희망했지만 신상옥 감독 앞에서 자존심이 상해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는 신상옥 감독의 ‘무숙자’(1968)를 비롯해 신필림에서 연출부 생활을 했으나, 적극적으로 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도에 연출부를 그만두기도 했고, 극단 일도 하면서 자신만의 일을 모색하는 쪽이었다.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한순간에 바뀌었다. 1973년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소설 ‘별들의 고향’ 판권을 치열한 노력 끝에 확보한 것이다. 사실 소설가 최인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역시 감독 데뷔도 하지 않은 친구에게 덜컥 판권을 내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장호는 동생의 대학등록금을 최인호의 집에 던져놓고 오는 막무가내식 고집을 부리며 결국 승낙을 받아낸다. 하지만 이후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도제 시스템이 확고하던 시절, 신필림에서 연출권을 확보하기 힘들 것을 직감한 그는 도망치듯 떠나 하길종 감독이 소개한 화천공사로 옮긴다. 연출부 제2 조수 출신의 영화청년이 일순간 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여하튼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데뷔작 ‘별들의 고향’이 46만 관객을 동원하는 역대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이장호는 일약 충무로의 스타 감독이 되었다. 물론 이 기록은 ‘1000만 영화’ 시대인 지금으로 치면 대단치 않아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영화 개봉이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만 이루어졌던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파로 세 달 내내 이 영화만 상영했던 결과인 것이다. 개봉관은 바로 을지로 4가의 국도극장이었다. 이후 그는 ‘어제 내린 비’(1975)로 흥행을 이었고, 1975년 8월 동료 감독 하길종, 김호선, 홍파, 이원세 그리고 영화평론가 변인식과 함께 ‘영상시대’를 결성한다. 1975년도 한국영화 흥행 1위부터 3위까지 작품이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36만),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5만), 이장호의 ‘어제 내린 비’(14만)가 랭크된 것에서 영상시대 동인들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작품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1976)으로 이장호의 1970년대 연출 활동은 갑자기 끝나버렸다. 1976년 연예인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활동 정지를 당한 것이다. 촉망받는 젊은 감독에서 순식간에 낭인으로 전락했던 4년간, 그는 말 그대로 각성의 시기를 보낸다. 특히 염무웅의 평론집 ‘민중 시대의 문학’은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1979년 12월 유신정권 종식으로 감독 자격을 회복한 그는 그간의 고민을 담아 연출한 ‘바람불어 좋은 날’(1980)로 재기에 성공한다. 이후 작가주의적 인장이 새겨진 ‘바보선언’(1983), ‘과부춤’(1983)의 흥행 실패로 위기감을 느꼈지만, 보란 듯이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을 히트시키며 뛰어난 상업적 감각을 입증하기도 했다. ●김홍준, ‘바람불어 좋은 날’ 보고 ‘감독의 길’로 이장호는 1980년대의 가장 중요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국영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인력들이 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배창호, 장선우, 김동원 등은 그의 연출부로 영화를 시작했고, 신승수, 정지영, 장길수 등은 ‘영상시대’가 개최한 오디션을 통해 영화계로 진입한 바 있다. 또 김홍준, 강우석, 임상수 같은 감독들이 처음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바로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고 나서라는 것도 잘 알려진 얘기다. 그는 1980년대 한국의 ‘뉴웨이브’ 영화, 더 나아가 현대 한국영화의 기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장호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자. 김홍준 교수가 기록한 ‘이장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작가, 2013)에서, 이장호 감독이 직접 ‘별들의 고향’의 기록적인 흥행에 관해 언급한 대목이다. “관객이 10만명 들었을 때 이 소설의 인기를 진짜 실감했어요. ‘어떻게 이 소설이 인기가 있어서 관객을 이렇게 끌어왔나.’ 10만을 넘어서 20만 되는 동안엔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면 ‘이장희 영화음악도 참 효과를 탔구나.’ 사람들이 음악 얘기를 많이 하니까. 근데 30만이 드니까 그제야 비로소 내 잃어버렸던 자존감 ‘영화도 잘 만들어서 그런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디어 싹트기 시작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30만이 넘어서 40만이 드니까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슬퍼져요, 뭔가 배신당한 느낌. 이 영화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구나, 혼자 달려가는 말 같구나, 주인 없는 말처럼 달려가는구나.”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기성 감독 누군가가 영화화를 맡았다면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별들의 고향’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당시 충무로의 수많은 선배 감독들이 판권을 탐내고 있는 상황에서, ‘초짜 감독’ 이장호는 어떻게 한국영화의 새로운 분기점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거칠고 투박하지만 신선하고 감각적인 이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그의 타고난 직관력과 돌파력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는, 카메라를 직접 잡는 신상옥 감독 특유의 촬영 현장에서 게다가 제2 조감독에 머물렀기 때문에 연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서구영화를 섭렵했던 영화 청년으로서의 세월이 그의 연출 방향을 직관적으로 알려주었다. 사실 ‘별들의 고향’은 이전의 한국영화처럼 이야기를 촘촘하게 설명하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광나루에서 한 첫 촬영부터 즉흥적으로 연출하며 장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촬영해 놓은 필름을 돌려본 편집실에서 비로소 구성을 시작했다는 이장호의 증언처럼, 그는 편집 감각을 통해 아마추어리즘을 참신함으로 바꿔놓았다. 영화는 플래시백 구조의 리듬도 균일하지 않고 차라리 복잡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지만, 이는 도리어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영화 속으로 몰입시킨다는 점에서 신의 한 수가 되었다.●이장희 음악도 큰 몫… “아마추어리즘의 승리” 영상뿐만 아니라 음악도 큰 몫을 했다. 이전의 한국영화들은 시간도 없고 돈도 없어, 영화음악의 대가들이 녹음실에 오케스트라를 불러 잠깐 맞춰본 뒤 일사천리로 즉흥적인 음악을 녹음하는 식이었다. 이장호는 고교 후배인 가수 이장희에게 음악을 맡겼고, 아예 레코드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무려 40여일을 투자했다. 물론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 혹은 잘 몰라서, 신선하게 음악을 배치한 것이 주효했다. 이장희가 부르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 소녀가 울고 있네’가 흐르는 장면들은 단연 이 영화의 백미일 것이다. 이장호가 “아마추어리즘의 승리”라고 규정한 것처럼, ‘별들의 고향’이라는 흥행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새로운 세대들이 그들의 느낌대로 과감히 밀고 나간 덕분이었다. 197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별들의 고향’은 이후 두 가지 경향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선취한 도시 속 젊은 여성의 이야기는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김호선, 1977)로 이어지며 흥행과 비평을 두루 만족시켰다. 하지만 이 작품들의 성공은 1970년대 후반, 순수한 여주인공이 호스티스로 전락하는 과정을 관음증적 볼거리로 전시하는 것에만 주력하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유행을 낳았다. 한편 새로운 감수성과 영상 감각은 ‘청년영화’의 선명한 줄기를 만들어냈다. 다음 연재를 통해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과 영상시대 활동을 살펴보기로 한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역시 강다니엘” 솔로 데뷔하자마자 20개국 정상의 자리

    “역시 강다니엘” 솔로 데뷔하자마자 20개국 정상의 자리

    강다니엘의 솔로 데뷔 앨범 ‘color on me’에 대한 글로벌 반응이 뜨겁다. 지난 25일 발매한 강다니엘의 솔로 데뷔 앨범 ‘color on me’가 발매 직후 국내 주요 음원 차트 상위권을 점령한 것은 물론, 글로벌 차트에서도 반응이 심상치 않다. 지난 26일 오후 7시 기준 아이튠즈 케이팝 앨범 차트에서 미국, 캐나다,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홍콩, 타이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터키,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캄보디아, 라오스, 마카오 등 20개국에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아이튠즈 종합 카테고리 앨범 차트에서도 싱가포르, 말레이상, 타일랜드, 홍콩, 타이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터키, 스페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캄보디아, 칠레, 라오스 등 15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팬들 역시 그를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실감케 한다. 강다니엘의 이번 앨범은 긴 공백 끝에 홀로 처음 선보이는 앨범이라는 것에도 의미가 있지만, 인트로를 제외한 앨범의 전곡에 작사로 참여하며 본인의 색을 담아내려 했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음반 판매량은 물론 음원 차트까지 솔로 행보의 출발에 청신호가 들어온 가운데, 점차 짙어질 강다니엘만의 색을 찾아갈 앞으로가 더욱 주목된다.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앨범을 준비했다는 말에 걸맞게, 강다니엘은 팬들을 위한 다채로운 컨텐츠도 준비 중이다. 지난 28일에는 네이버 생중계 채널(V LIVE)을 통해 타이틀곡 ‘뭐해’의 후렴구 안무를 직접 가르쳐주는 깜짝 댄스교실 컨텐츠로 주말을 가득 채워주었고,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긴 공백을 기다린 팬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예정이다. 한편, 강다니엘은 29일 오프라인 앨범 발매와 함께 광주, 대전 등에서 팬 사인회를 개최하며 활발한 솔로 앨범 활동을 이어나간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길섶에서] 장마 오시던 날/황수정 논설위원

    장마가 좋았다. 좋은 줄도 모르고 좋았다. 종종거리는 어머니 꽁무니에 매달리지 않아도 어머니가 종일 내 차지였다. 구죽죽 밤새 내린 비에 수채도랑 물줄기가 제법 실개천 모양으로 넘치던 아침. “천지가 내려앉겄네.” 열매알들 썩어 문드러진다고 속을 태웠는지, 손발 묶어 줘서 고맙다는 딴소리였는지. 알 듯 말 듯 장마의 내력은 아직도 아슴아슴하다. 비에 갇힌 날에는 밥상이 바빴다. 밥때마다 밥 아닌 것들이, 밥때 아닌데도 별식들이 도래소반에서 번갈아 생색을 냈다. 빗발을 뚫고 덜 여문 둥근 호박을 누구라도 따오면 속씨를 파내서는 사방에 기름내 피우며 호박전을 부쳤고, 물수제비처럼 얇게 떠진 수제비가 양은솥에서 이열치열 더운 김을 뿜거나, 지난가을 주워 놓은 도토리가 한나절 지나면 뚝딱 한 그릇 묵밥이 됐다. 밥상을 발치에 밀쳐놓고는 대청마루에서 긴 낮잠을 청했던 날. 뒤꼍에서 병풍같이 넘어오던 것은 빗소리였는지 대바람이었는지. 어쩌다가 지금은 앞뒤 이름마저 얄궂은 ‘마른 장마’라니! 질긴 비가 돌아왔으면 한다. 젖고 젖어 묶였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던 게으른 그 여름처럼. 등짝은 꿉꿉해도 배부른 낮꿈에서는 가슬가슬 삼베자락 소리가 나던 그 여름의 장마처럼. sjh@seoul.co.kr
  • 미래 불안에 우울한 ‘대2병’… 시간이 약? 치열하게 극복 노력해요

    미래 불안에 우울한 ‘대2병’… 시간이 약? 치열하게 극복 노력해요

    “대학생 때가 가장 속 편하고 좋을 때”란 말은 이제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이 시대 대학생들에겐 과거보다 더 치열해졌다는 입시 관문을 뚫고 대학에 입학해도 취업이라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거쳐 20세 성인이 된 해방감을 누릴 틈도 없이 1학년을 마치자마자 ‘현타’(현실자각 타임이라는 뜻의 신조어)를 겪으며 ‘대2병’을 호소하는 대학생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전공이 자신에게 맞는지, 진로는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대학에 와서 더 고민이 심해지는 것이다. 지난 4월 구인·구직 업체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대학생 41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자신이 대2병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4.6%가 ‘그렇다’고 답했다. ‘전공을 다시 정할 수 있다면 현재 전공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절반도 되지 않는 38.7%만이 지금 전공을 다시 선택하겠다고 답했고, 나머지는 다른 전공을 선택(39.9%)하거나 잘 모르겠다(21.5%)고 답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대2병을 ‘중2병’이나 사춘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극복되는 것으로 치부한다. 또 노력하지 않는 ‘요즘 것들’이 엄살을 부리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실제 대2병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대학생들은 대2병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해야 극복할 수 있는 ‘관문’이라고 말한다.대2병은 주변의 평범한 대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다. 충남대 심리학과 14학번인 홍석찬(24)씨는 2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한 한기를 휴학했다가 입대한 후 2018년 복학 직후 대2병을 겪었다. 4학년이 돼 일찌감치 직장을 구한 몇몇 여자 동기들이나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홍씨는 “군 입대 전까지는 막연하게 대학원에 가서 석사를 받고 싶다는 목표가 있긴 했지만 막상 주변에서 사회에 진출하거나 진출을 앞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바심이 났다”면서 “군 입대 전엔 시험 기간이 아니면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렸는데 지금은 시험 기간이 아니더라도 매일 도서관에서 한두 시간 이상 공부해야 불안감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현재 3학년 2학기를 마친 홍씨는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대2병을 극복해 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여전히 불안하고 답답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홍씨는 “주변에서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토기 사진들을 보며 시대별 순서를 외우고, 본인이 지망하는 직무와 관계없어 보이는 컴퓨터 공학 데이터 분석까지 공부한다”면서 “나도 대학원이 아닌 당장 취업을 준비했다면 그렇게 공부해야 했을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지금도 많은 대학생들은 대학 생활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스펙’을 쌓고 대2병을 이겨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화여대 디자인학부에서 벤처경영을 복수전공하고 있는 김유진(21)씨의 경우 다양한 대외 활동으로 대2병을 극복하고 있다. 17학번인 유진씨는 “디자인 전공은 실기 등의 수업이 많아 2학년이 되면서 전공에 대한 적성 여부가 다른 학과에 비해 더 정확하게 갈리는 편”이라면서 “2학년 2학기가 되면서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마케팅 분야와 연관이 있는 경영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해 전공 심화에 따른 불안감이 조금 줄었다”고 말했다. 유진씨는 비슷한 시기에 각종 기업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대외 활동을 찾아 적극 참여하면서 그나마 불안감을 줄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물론 토익 점수나 학점 관리,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만들기 등은 여전히 압박이고 스트레스”라면서 “하지만 대외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스스로 자극을 받기도 하고 배우는 것도 적지 않아 대2병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건국대 행정학과 3학년인 김하연(23)씨는 대2병을 심하게 앓다가 학교와 학과를 바꿔 편입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앞서 하연씨는 ‘점수에도 맞고 멋져 보이기도 해서’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그렇게 2학년이 되니 수업이 적성에 맞지도 않았고 주변에서 본격적으로 로스쿨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늘어나니 불안감이 커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증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문제는 그런 어려움을 겪을 때까지 누구도 옆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연씨는 “중·고등학교 때에는 ‘너는 할 수 있는 게 아직 없으니 일단 대학부터 가라’는 식으로 압박을 주다가 대학에 오니 ‘자, 이제 너는 어른이니 네 인생은 네가 스스로 선택해’라고 방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면서 “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진로 선택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거나 실질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대2병을 치유하는 과정이 조금은 달라졌을 수 있다는 게 하연씨의 설명이다. 그는 “편입을 하며 스스로 고민할 시간이 있었고 스스로 절박함 속에서 무기력을 이겨 내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하고 나니 지금은 대2병을 조금 극복한 것 같다”고 웃었다.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대학생들에게 대2병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방국립대에서 기계설계를 전공하고 있는 최성민(25·가명)씨는 대2병을 처음 들어봤다면서도 대2병의 증상을 듣자 “저도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고 공감했다. 군 제대 후 2학년 2학기에 복학해 현재 3학년까지 마친 최씨는 “솔직히 지금도 내가 선택한 전공이 정말 내 미래에 맞는지 확신이 없다”면서 대2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금까지 제 스스로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고민을 하고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면서 “입시를 목표로 앞만 보고 달려온 제 또래 중 정말 자신이 원하고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해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10%도 안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씨는 여름방학을 마친 뒤 한 학기 휴학을 하고 지금 전공이 자신에게 정말 맞는 것인지, 또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생각이다.전문가들은 우리 교육이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기는 괴리감이 학생들의 혼란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대2병이라고 진단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미래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인데 대학 교육은 이를 받쳐 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 사회의 변화 속도에 맞는 교육을 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 보니 학생들 스스로 사회 속도에 따라가려다 혼란의 시기를 겪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엽 한국교육개발원 박사는 “대학 진학 후 전공을 좀더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등 사회적으로 그 고민에 대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교육 정책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봉환 숙명여대 교수는 “2015년 진로교육법이 제정되면서 고등학교에 진로전담 교사가 1명씩 배치되는 등 과거에 비해 진로 지도를 할 수 있는 틀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면서 “이를 제대로 활용할 콘텐츠와 노하우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정책을 편다면 대2병을 좀더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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