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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슐랭가이드 ☆☆ 일본 속 한식당

    미슐랭가이드 ☆☆ 일본 속 한식당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셰린이 1900년부터 매년 발간하고 있는 세계적 레스토랑 평가서인 미슐랭 가이드 도쿄 2014년판에 한국 전통 요리점 ‘윤가’가 새롭게 포함됐다. 지난 6일 발행된 2014년 미슐랭 가이드 도쿄에 따르면 ‘윤가’는 ‘일부러 찾아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을 나타내는 등급인 2스타를 받으며 새롭게 등재됐다. 최고 등급인 3스타를 받은 음식점 13군데 중 한국 요리점은 없으며 2스타 중에는 궁중 요리 코스 한식당인 ‘모란봉’이 지난해 3월부터 이름을 올렸다. 미슐랭 가이드 도쿄에 이름을 올린 한국 요리점은 두 곳뿐이다. ‘그 장르 안에서 특별히 맛있는 레스토랑’인 1스타에 등재된 175개 요리점 중에도 한국 요리점은 없다. 일본 도쿄 중심가인 긴자 8초메에서 ‘윤가’를 운영하는 윤미월(56)씨는 한국에서 직접 공수한 재료들로 전통 방식의 한국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상황버섯, 구기자 등 동의보감에 나온 약재들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윤가’ 측은 밝혔다. 이번에 미슐랭 가이드 심사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털게 게장, 전복한방볶음, 작약 쑥탕 등이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지상파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일본에서 제일 땅값이 비싸다는 도쿄의 긴자거리. 그만큼 경쟁도 치열한 긴자 한복판에 한식 레스토랑이 진입했다. 일본에서 김치 사업으로 성공한 윤미월씨가 바로 가게의 사장님이다. 한국에서 김치를 만들어 일본에 전량 수출하는 윤씨의 회사는 연매출 300억원의 탄탄한 기업으로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장수가족 건강의 비밀(EBS 밤 10시 45분) 요즘 대세로 떠오른 연상·연하 커플의 ‘원조’격인 윤해운 할머니와 손순복 할아버지는 어딜 가나 부러움을 받는 잉꼬부부다. 함께 한 세월이 어느덧 73년에 혼자 살아온 인생보다 같이한 인생이 훨씬 더 길다. 누구의 도움 없이 서로의 힘으로 여전히 당찬 인생을 살고 있는 백발 노부부의 따뜻한 일상을 들여다본다. ■세계를 보라(MBC 오전 11시) 하루 평균 4000여명의 관람객이 찾는 여수 아쿠아플라넷. 규모가 서울 코엑스, 부산 아쿠아리움의 3배인 이곳에서는 바이칼 물범, 러시아 흰 고래 벨루가 등 전 세계 희귀종을 비롯한 350종, 3만 5000여 마리의 수중 동물을 만날 수 있다. 바다 생물들이 수족관에서 생활해야 하므로 최대한 자연 상태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관건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오후 5시 35분) 어른 머리 둘레보다도 15㎝ 이상 큰 여섯 살 상민이. 무뇌수증을 앓고 있는 상민이의 머리 둘레는 70㎝도 넘는다. 상민이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80% 이상이 없는 상태이다. 이렇게 늘 아픈 상민이지만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가족. 이들의 사랑 속에 작은 기적이 일어나 상민이가 힘든 고비를 이겨낼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건강한 아침(EBS 오전 6시) 화병은 한국인만의 특별한 질병이다. 흔히 가슴이 뜨겁고 답답하며 숨이 막히게 되는데, 화병이 아니더라도 노년에 흔한 증상이 가슴답답증이다. 가슴답답증은 참으면 더 큰 병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날 때 빨리 완화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그램은 가슴과 어깨를 활짝 펴주면서 기분 전환에도 좋은 운동법을 소개한다. ■가족(OBS 밤 11시 5분) 경북 상주군의 깊은 산골마을에 고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흙집이 있다. 아홉 살 그림이네 가족이 사는 이곳에서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온 가족이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른, 아이, 그리고 고양이와 강아지들까지 채식으로만 끼니를 채운다. 또 유기농법을 고수하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 포도농사도 짓고 있다.
  • [커버스토리-팝업스토어 전성시대] 가로수길에서 단 한 달… ‘아이스크림 맥주’ 3만 잔 팔린 사연

    [커버스토리-팝업스토어 전성시대] 가로수길에서 단 한 달… ‘아이스크림 맥주’ 3만 잔 팔린 사연

    하이트진로가 일본에서 들여온 ‘기린 프로즌 나마’는 올 상반기 주류업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아이템이다. 얼린 맥주를 곱게 갈아 생맥주 위에 얹은 특허공법으로 ‘아이스크림 맥주’라는 애칭이 붙으면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팝업스토어인 ‘기린 이치방 가든’을 열고 한달여간 아이스크림 맥주를 판매했다. ‘지금 여기가 아니면 맛볼 수 없다’는 한정판 성격이 더해지면서 주중 한낮에도 평균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애초 이달 2일까지만 팝업 매장을 운영하려던 하이트진로는 행사를 1주일 연장했다. 하루 평균 1000명 이상이 다녀갔고 한달 동안 모두 3만 1잔이 팔렸다. 이는 1290만㎖로 맥주병 3만 9090병에 해당하는 양이다. 기린 팝업스토어는 사전 조사와 준비에만 1년 이상이 걸린 프로젝트다. 하이트진로 마케팅팀은 2년 전 기린 맥주 마케팅을 위해 일본 도쿄에 출장을 갔다. 기린이 도쿄, 오사카 등 일본 주요 도시 6곳에서 운영하는 팝업스토어를 답사하기 위해서였다. 김경훈 하이트진로 마케팅팀 과장은 “전국의 사업가들이 모여든다는 긴자 거리에서 팝업스토어가 열렸는데 맥주 한 잔을 마시려고 길게 줄을 선 것을 보고 한국에서도 ‘되겠다’는 감이 왔다”고 말했다. 보통의 맥주 신제품은 호프집에서 팔고 TV 광고를 통해 널리 알린다. 이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프로즌 나마라는 제품의 특성을 부각할 수 없다는 게 마케팅팀의 판단이었다. 이들은 일본의 팝업스토어를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다만 한국 실정에 맞게 바꾸는 것이 숙제였다. 장소부터 물색했다. 단순히 사람이 많은 곳은 배제했다. 처음부터 인터넷에 퍼지는 입소문인 바이럴 마케팅을 염두에 뒀다. 김 과장은 “프로즌 나마는 모양이 예뻐서 젊은 여성들이 좋아한다”면서 “이들이 블로그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진을 찍어 올리면 홍보 효과가 클 거라고 기대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주요 상권에 대한 분석 결과 강남역은 유동인구는 많지만 중고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혼재돼 있어 타깃 마케팅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한남동의 이태원은 주로 주말에만 젊은 인구가 유입되고 외국인 위주여서 배제됐다. 홍대는 유동인구 연령대가 30대 미만으로 분석됐다. 결국 낙점한 곳이 유행에 민감한 20~30대 여성들이 많이 찾는 가로수길이었다. 팝업스토어의 콘셉트를 ‘맥주를 재미있게 마시는 장소’로 정한 하이트진로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안주 개발을 궁리했다. 맥주와 잘 어울리도록 꿀과 시소(일본 깻잎)를 넣은 감자튀김을 와사비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 메뉴와 식감을 살리기 위해 닭고기 대신 새우를 넣은 케사디야 등의 가격을 5000원으로 정했다. 김 과장은 “다른 수입 맥주도 명동이나 강남역 등에서 임시 홍보 부스를 세우고 맥주를 무료로 나눠준다”면서 “하지만 고객들에게 가치 있는 경험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맥주 1잔(430㏄)을 실제 가격의 3분의2 수준인 8000원에 판매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폭발적이었다. 기린 팝업스토어는 SNS를 타고 소문이 나면서 목표치의 3배인 3만명이 방문했다. 기린 맥주는 장소를 부산으로 옮겨 26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해운대 노보텔 1층 테라스 카페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한다. 하이트진로는 앞으로 기린 맥주의 TV 광고 대신 매년 장소를 바꿔 가며 팝업 마케팅을 계속할 계획이다. 이재규 홍익대 공간디자인학과 교수의 ‘체험 마케팅이 적용된 팝업스토어의 공간적 특성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팝업스토어는 해외에서 이미 정착된 마케팅이다. 2002년 미국의 대형 할인점 타겟이 신규 매장 부지를 찾지 못해 단기 임대한 임시 매장을 연 것이 인기를 끌자 기업들이 이를 벤치마킹하면서 생겨났다. 정해진 기간에만 문을 열고 이후에는 매장이 없어지거나 이동하기 때문에 템퍼러리 스토어(임시매장), 게릴라 스토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선을 끌기 위해 독특한 디자인과 아이디어로 매장을 꾸미고 한정판이나 신상품을 전시, 판매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2009년 2월 홍대에 문을 연 ‘나이키’와 같은 해 10월 오픈한 제일모직 ‘구호’의 팝업스토어를 처음으로 본다. 팝업스토어는 정식 매장보다 기업이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판매를 촉진하는 효과가 크다고 평가된다. 특히 경제 불황과 맞물리면서 적은 비용으로 새 제품을 집중적으로 알리는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소비자들의 반응을 즉각 알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국내에서 팝업 마케팅이 가장 활발한 곳은 화장품업계다. 백화점 안의 고급 화장품 브랜드들은 미샤, 더페이스샵 등 저렴한 로드숍 브랜드의 인기와 소비 위축이 맞물려 매출이 추락하고 있다. A백화점의 올해 상반기 화장품 매출을 보면 랑콤, SK-II, 에스티로더, 키엘 등 해외 브랜드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 하락했다. 국내 브랜드들이 5.7%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위기’ 수준이다.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기다릴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부터 해외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화장품 업체들은 잇따라 가로수길에 팝업스토어를 열면서 ‘찾아가는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SK-II는 지난 2월 가로수길 ‘만남의 장소’인 커피스미스 카페에 팝업스토어를 냈다. 3주 만에 8000명이 방문하고 7주 동안 1만 5000만명이 찾아와 제품을 써 보고 구입했다. 지난 4월 같은 장소에서 또 한번 팝업스토어를 운영한 SK-II는 고객 반응이 좋자 이달 19일부터는 팝업 매장을 삼청동과 도산공원에 추가로 열었다. 특히 삼청점에는 지하 1층에 양조장을 재현해 화장품 원료인 피테라 추출물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도산공원점은 결혼을 콘셉트로 공간을 꾸며 예비 신부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색조 화장 브랜드 맥(MAC)은 지난 5월 가로수길 카페 ‘머그 포 래빗’을 빌려 첫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봄여름 시즌의 오렌지 색상을 주제로 메이크업 서비스와 손톱 관리 등을 해 주고 한정판 신제품도 판매했다. 색조 브랜드인 바비브라운도 다음 달 3일 가로수길에 팝업스토어를 연다. 단 하루 동안 신제품 파운데이션을 소개하고 샘플 등을 나눠 준다. 지난해 4월에는 샤넬 메이크업이 가로수길에서 한달 동안 팝업 매장을 운영하면서 한정판 신제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가로수길이 ‘팝업의 메카’로 떠오르면서 임시 대여 매장을 전문으로 알아봐 주는 부동산이 생겨날 정도라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최근에는 비상업적인 목적의 팝업스토어도 생겨나고 있다. 에너지기업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8일부터 서울 종로구 서린동 본사 앞에서 사회적 기업을 위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이달 5일까지 장애인 예술가가 디자인한 손수건, 카드지갑, 명함첩, 공정무역 커피 등 5개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판매했다. SK이노베이션은 운영이 끝난 팝업스토어를 강남장애인복지관에 기부해 장애인 예술품 기업인 액티브 아트 컴퍼니의 판매 공간으로 활용하게 했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팝업스토어는 브랜드 론칭을 알리는 기법에서 SNS의 바이럴 효과와 맞물리면서 체험 마케팅으로 진화했다”면서 “앞으로도 기업이나 브랜드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흰 거품으로 뒤덮인 도쿄거리, ‘한여름의 눈?’

    흰 거품으로 뒤덮인 도쿄거리, ‘한여름의 눈?’

    마치 눈 같은 흰 거품이 일본의 거리를 뒤덮었다. 지난 28일 오후 6시쯤 한 직원이 아무 생각 없이 싱크대에 액체 비누를 싱크대에 흘려보내 생긴 거품이 배수관을 타고 올라와 거리를 뒤덮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도쿄 긴자 거리에 있는 스미토모 빌딩 13층의 탕비실에서 한 광고회사 직원이 실수로 40ℓ의 액체 비누를 싱크대에 흘려보냈다. 물과 섞이며 대량의 거품이 만들어져 배수관을 타고 땅 위로 올라와 거리가 온통 미끄러운 흰 거품으로 뒤덮였다. 거품이 발생한 곳은 빌딩이 늘어선 곳으로 퇴근 후 돌아가는 회사원들은 거품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마치 눈이 온 것 같다”며 멈춰서 사진을 찍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과 소방관은 밤늦게까지 거리의 거품을 청소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거품은 독성물질이 없어 인체에 피해를 주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유튜브:asahicom 정선미 인턴기자 j2629@seoul.co.kr
  • 日호헌파 전국서 집회 개헌놓고 갈라진 열도

    헌법 시행 66년을 맞은 3일 일본 사회는 ‘호헌’과 ‘개헌’ 목소리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호헌파 의원들과 시민단체는 이날 개헌 반대 성명을 발표한 뒤 도쿄를 비롯한 전국에서 집회를 갖고 세 결집에 나섰다. 반면 자민당과 일본 유신회 등 개헌 추진 정당들은 개헌 당위성을 주장한 담화를 발표하고 우익들은 도쿄 시내 곳곳을 누비며 시위를 벌이는 등 양측 간 세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과 사민당 등 호헌파로 구성된 의원연맹인 ‘입헌포럼’은 이날 “국민을 소외시킨 헌법개정 움직임을 저지하고 입헌주의를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개헌 발의 요건을 완화하는 96조 개정에 대해 “헌법을 권력자 마음대로 바꾸기 쉽게 만들면 국민의 손에서 헌법을 빼앗는 결과가 된다”며 강력 비판했다. 입헌포럼은 헌법 96조 개정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의 모임으로 지난달 25일 발족했다. 민주당의 곤도 쇼이치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다. 발족 당시에는 의원 35명이 참석했지만 이후 간 나오토 전 총리와 사민당의 후쿠시마 미즈호 당수 등 중진급 의원들이 속속 참여하고 있다.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도 이날 모임에서 “개헌은 자민당과의 연정합의 범위 밖의 얘기다. 현 상황에서 개헌 발의 요건을 바꾸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개헌에 신중한 자세를 나타냈다. 개헌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도쿄 지요다구 히비야 공회당에서 시민 3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5·3 헌법집회’를 열고 아베 신조 정권의 개헌 추진을 강력 비난했다. 이들은 “일본 헌법이 중대 위기에 처해 있다”며 “오늘부터 아베 정권의 개헌 폭주를 막기 위해 강력한 반대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집회를 끝낸 뒤 긴자에서 개헌 반대 구호 등을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반면 자민당은 담화를 통해 “국민들 사이에서 헌법 개정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며 “형식적으로 호헌을 내건 세력은 이미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익들은 이날 확성기를 단 시위차를 몰고 “개헌에 반대하는 좌익들은 물러가라”고 외치는 등 시민들을 선동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탄력받은 아베노믹스, 日경제가 들썩인다

    탄력받은 아베노믹스, 日경제가 들썩인다

    20년 장기불황에 빠졌던 일본 경제가 들썩이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탄력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12월 26일 출범한 아베 신조 정권은 금융 완화, 재정 지출에 이어 기업 법인세 감면까지 검토하는 등 경기부양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살아나는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중의원(하원) 선거 직전인 지난해 12월 14일 9737.56이던 닛케이 지수가 30% 이상 급등해 9일 1만 3192.35로 마감했다. 달러당 엔화도 총선 전 85.53엔에서 이날 오후 3시 99.19엔으로 100엔대 회복을 앞두고 있다. 경기전망 지수인 경기선행지수도 지난해 12월 92.1에서 지난 2월 97.5로 치솟았다. 2007년 10월 이래 최고 수준이다. 대기업 체감경기도 3분기 만에 개선됐다. 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단칸)에 따르면 대기업 제조업의 업황판단지수가 마이너스 8을 기록해 지난해 12월 조사 때보다 4포인트 상승했다. 일본은행이 지난 1일 발표한 생활의식조사에서 “1년 후 물가가 오를 것이다”라는 응답자는 74.2%에 달했다. 이는 2008년 9월 이래 최고 수치로 지난해 12월 53%에서 무려 20% 포인트 이상 상승한 것이다. 소비 심리가 풀리면서 지난 20년간 내리막길을 걸어온 백화점에는 손님이 넘쳐나고, 긴자의 고급 술집 거리에는 수억 원대 검은 세단이 줄지어 늘어선다. 전국 백화점 매출액은 지난해 12월 전년 대비 2.4% 감소했지만 2월에는 0.3% 증가했다. 2월 신차 판매 역시 7개월 만에 최고치인 47만 7000대를 기록했다. 실물 경제가 살아나면서 거품 붕괴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부동산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주요 대도시 중심가에는 초고층 빌딩을 새로 짓는 재개발 사업이 경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새 주택 착공이 지난해 12월 88만호에서 지난 2월 94만 4000호로 늘었고, 건설공사 수주도 지난해 12월 전년 대비 4.8% 증가에서 지난 2월 16.3% 증가로 활기를 띠었다. 기업도 신바람이 났다. 엔저 기조가 지속되면서 수출이 탄력을 받고 있고, 정부는 내친김에 법인세 감면도 검토하고 있다. 일반 기업은 물론 벤처기업, 의료 등 성장 분야 기업으로 감세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도산 기업 숫자도 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시장 동향 조사회사인 도쿄 상공리서치에 따르면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기업 도산 건수(부채액 1000만엔 이상)는 전년 대비 7.8% 감소한 1만 1719건으로, 1991년 이래 가장 적은 규모다. 일본 경제의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아베 총리의 전방위 경기부양책인 ‘아베노믹스’가 자리잡고 있다. 아베 총리가 ‘3개의 화살’(금융, 재정, 성장) 정책을 통해 취임 100일 만에 일본 경제를 완전히 뒤바꿨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인위적 경기부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위적 경기 부양이 설비투자와 임금인상 등 경제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지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국내기업, 알짜 외국 업체 M&A 적기

    국내기업, 알짜 외국 업체 M&A 적기

    최근 원화가치 상승 덕분에 외국 기업 인수·합병(M&A)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국내 기업들이 잰걸음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저성장 기조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서둘러 미래성장사업을 찾으려는 다급함도 엿보인다. 이 때문에 ‘서두르다가 물건을 잘못 고르면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이 독일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기업인 노바엘이디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액은 최대 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거래가 성사되면 두산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M&A 물량을 찾아다닌 지 3년 만에 이룬 성과이다. 자문 역할을 맡은 금융업계 관계자는 “아직 가격 등 변수가 남아 있으나 노바엘이디 임직원과 주주들이 최대 거래처인 삼성전자가 있는 한국의 기업에 인수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노바엘이디는 전력 효율이 높은 다용도 OLED를 개발했고 500여건의 관련 특허를 가진 기술선도 기업으로 평가된다. 2011년 매출액은 1740만 유로(약 250억원), 영업이익은 360만 유로(약 52억원) 정도다. 국내 정보기술(IT) 업체들은 특허 등 원천기술을 가진 외국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역시 5~10년 뒤 ‘시장 개화’를 내다본 포석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반도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엔벨로를 인수했다. 또 클라우드 음악서비스업체인 엠스팟도 인수했고, 태블릿 펜 기술 특허를 다량 보유한 일본의 와콤 지분도 일부 매입했다. SK하이닉스도 이탈리아의 낸드플래시 개발업체 아이디어플래시를 인수해 자신들의 유럽 기술센터로 전환했다. 해외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포석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에는 최근 원고가 직접 수출에 부담을 주는 상황도 함께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LG생활건강은 일본 화장품업체 긴자스테파니에 이어 일본의 기능성식품 통신판매업체인 ㈜에버라이프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일본에 화장품뿐만 아니라 이너 뷰티 부문에까지 브랜드를 확장하려는 전략이다. 효성도 독일의 에어백 직물업체인 글로벌 세이프티 텍스타일스(GST)사를 인수하고, 그동안 아시아계 기업들의 진출이 어려웠던 독일과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남아공 등지를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이랜드는 지난해에만 이탈리아 등지에서 4건의 M&A를 성사시켰다. 회계법인 딜로이트의 찰스 나이트 M&A 부문 대표는 최근 시장 설명회에서 “유럽과 미국의 불경기 덕분에 시장에 나온 매물이 많은데, 반갑게도 원화의 가치는 오르고 요즘 한국의 은행에서 돈 빌리기도 쉽다”면서 “한국 기업들로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처럼 M&A 호시절을 맞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M&A 관계자는 “두산이 인수한다는 노바엘이디가 그렇게 유망한 기업이라면 삼성이 직접 인수했을 것이고, 그 회사가 지녔다는 특허의 신뢰성도 떨어지는 만큼 두산이 제값보다 비싸게 주고 산다는 말도 들린다”고 우려했다. 또 몇몇 기업은 해외기업을 인수한 이후에 당초 예상했던 시너지 효과를 보지 못하고 골칫거리로 전락한 사례도 없지 않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경운 기자·산업부 종합 kkwoon@seoul.co.kr
  • 건축에 입힌 사회에 대한 책임감

    건축에 입힌 사회에 대한 책임감

    일본의 유명 건축가 이토 도요(71)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올해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이 상을 운영하는 하얏트 재단이 지난 17일 밝혔다. 이토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의 쉼터를 설계해 사회에 대한 건축의 책임감을 보여준 점이 높게 평가됐다. 그가 지은 쉼터는 재작년 대지진과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 센다이시의 미야기노에 지은 ‘모두의 집’이라 불리는 건물이다. 나무 지붕의 작은 집은 방 몇 개와 주민들이 함께 이용하는 거실로 이뤄진 특이할 것 없는 단층짜리 건물이다. 도쿄 중심가 오모테산도의 TOD’s 빌딩과 긴자 미키모토 빌딩 등으로 유명한 이토는 ‘모두의 집’ 외에도 이와테현 가마이시 재건계획의 자문을 해주고 있다. 2년 전 동일본 대지진 뒤엔 센다이시가 입은 건물 피해들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이토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센다이 미디어테크 도서관’이 센다이시에 있기 때문이다. 6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01년 완공한 건물은 ‘튜브’라고 부르는 쇠파이프들을 가지고 지탱하는 독특한 구조다. 유리로 된 건물로 그간 센다이시의 자부심이 돼 왔다. 치명적인 피해는 아니었지만 미디어테크 도서관도 대지진으로 크고 작은 손상을 입었다. 이토는 동료 건축가들을 모아 지진 피해지역의 재건에 함께 나섰다. 이토는 “재난이 건축물을 파괴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프리츠커상의 상금은 10만 달러(약 1억 1000만원)다. 시상식은 오는 5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다. 일본 건축가의 수상은 6번째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함께할 친구가 있어 세상 두렵지 않아”

    “요지와 같은 젊은 세대는 거품 경제가 붕괴된 뒤 청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좋은 자리는 기성세대가 모두 독점해 버리고, 정규직으로 일하기도 어려웠다. 극도의 취업 빙하기가 계속되었다.”(253쪽) 거품경제가 무너진 20여년 전 일본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 사회와 놀랍도록 닮았다. 명문대를 나와도 절반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빈곤과 기회의 불평등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은 신자유주의로 방향을 튼 사회에 끊임없이 불만을 터트린다. 아쿠타가와상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 수상 작가인 이시다 이라(53)가 2011년 발표한 청소년 소설 ‘날아라 로켓파크’(양철북 펴냄)는 이 같은 혹한기를 헤쳐 나가는 두 소년 요지와 간타의 얘기를 담았다. 두 소년은 돈이 없으면 자유로워질 수도, 정당해질 수도 없는 현실에 너무 일찍 눈을 뜬다. 휴대전화 게임 회사인 ‘로켓파크’를 세우고 모바일 게임업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과정은 기존 청소년 소설에서 쉽게 접할 수 없던 독특한 소재다. 가끔 방송에서 본 고교생 사업가나 청년 최고경영자(CEO)의 얘기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설정은 성공과 좌절 속에서 다시 찾은 소중한 것들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두 소년은 성공의 마천루에서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며 추락한다. 모든 것을 잃고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지만 인생의 가치를 되찾는다. “평생 함께할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인생은 두렵지 않아”란 두 소년의 다짐처럼. 소설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적나라하다. 학교 또한 어른들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다. 절대 평등하지도, 자유롭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아이들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동정하는 법이 없고 괴롭히고 난 뒤에는 통쾌해한다. 요지와 간타가 마주한 사회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섯 살 때부터 단짝인 두 소년은 남다른 아픔을 안고 산다. 간타는 발달 장애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헤아릴 수 없고, 요지는 생계를 위해 긴자의 술집에서 일하는 엄마 때문에 늘 수군거림의 대상이 된다. 17세 때 게임기를 사기 위해 찾은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에서 마주친 불량배들과의 다툼은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간타를 지키려고 몸싸움을 벌이다 요지가 그만 불량배의 허벅지를 칼로 찌른다.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변호사를 구할 수 없던 요지가 모든 비난을 뒤집어쓴다. 촉망받던 영재인 요지는 이때부터 간타와 아르바이트에 매달리고 100만엔(약 1200만원)의 종잣돈을 모아 창업에 성공한다. 거친 세상에서 펼치는 힘찬 도전, 성공과 좌절 속에서 다시 찾은 소중한 것들을 다룬 성장 소설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세계서 상점 임대료 가장 비싼 곳은 홍콩…명동은?

    세계서 상점 임대료 가장 비싼 곳은 홍콩…명동은?

    세계의 유명 쇼핑 지역 중 가장 임대료가 비싼 곳은 어디일까? 글로벌 부동산 리서치 회사인 ‘쿠쉬맨 앤 웨이크 필드’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발표한 ‘전세계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쇼핑 지구’로 홍콩의 코즈웨이 베이가 선정됐다. 전세계 유명 쇼핑지 326곳의 임대료를 비교한 이번 조사에서 코즈웨이 베이는 11년간 1위를 지키던 뉴욕 5번가를 누르고 처음으로 1위에 올랐으며 우리나라의 명동도 지난해에 이어 9위를 차지했다. 코즈웨이 베이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1스퀘어 피트(0.092㎡)당 2,630달러(약 285만원)로 조사됐으며 지난 1년간 무려 34.9%나 임대료가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2위는 미국 뉴욕의 5번가(2,500달러·약 271만원), 3위는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1,129달러·약 122만원)가 올랐으며 일본 도쿄의 긴자(1057달러·약 114만원)와 호주 시드니의 피트 스트리트 몰(952달러·약 100만원)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명동은 1스퀘어 피트(0.092㎡)당 686달러(약 74만원)로 지난해에 이어 9위에 올랐으며 지난 1년간 임대료가 16%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쿠쉬맨 앤 웨이크 필드 측은 “세계에서 가장 상점 임대료가 비싼 10곳 중 5곳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몰려있다.” 면서 “홍콩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중국 본토에서 오는 관광객이 늘어 유명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점포를 늘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4) 1930년대 모던 보이 vs 마르크스 보이

    [선택! 역사를 갈랐다] (34) 1930년대 모던 보이 vs 마르크스 보이

    조선시대 서울의 공식 이름은 한성부(漢城府)였다. 사람들은 한양이라 불렀다. 한양은 북한산 남녘과 한강 북쪽 사이에 자리 잡은 양지바른 터전이라는 뜻이다.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면서 한성부를 경성부(京城府)로 바꾸고 경기도에 소속시켜 위상을 낮추었다. 서울을 일본의 오사카나 교토와 같은 지방 도시로 만든 것이었다. 1920년부터 1935년까지 경성의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 1935년에는 44만명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25% 남짓이 일본인이었다. 식민지 도시 경성은 청계천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청계천 이남에는 본정통(오늘날 충무로), 명치정(지금의 명동)에서 일본인 상가를 중심으로 남촌이 생겼다. 진고개 중심의 남촌 상가는 근대의 상품과 화려한 건물, ‘현대인의 신경’인 네온사인으로 덮였다. 카페, 우동집, 빙수집, 찻집이 즐비했다. 남촌은 ‘경성 속의 일본’이었다. 오늘날 명동 부근인 진고개는 본디 변두리 마을이었다.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 ‘작은 도쿄’를 세우고 주인으로 들어앉았다. 백화점과 카페, 당구장, 극장 같은 근대 유흥시설이 남촌에 몰려 있었다. 청계천 이북에는 조선인 상가가 많았던 종로통을 중심으로 북촌이 되었다. 북촌 지역은 전통 한옥과 나지막한 상점들이 있었으며 밤거리는 어두컴컴했다. 식민 도시의 ‘원주민 상가’였던 종로는 중심에서 밀려났다. 종로의 밤거리에는 온갖 ‘싸구려’ 물건을 파는 야시가 열렸다. “극도의 생활난에 빠진 빈궁한 사람들이 혹시나 입에 풀칠이나 할까 하는 눈물겨운 생각”으로 야시에서 물건을 팔았다. 경성은 식민지 지배층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하이칼라 경성’과 식민지 빈곤층과 실업자가 넘쳐나는 ‘실업 경성’의 두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쾌락 추구 ‘모던 보이’ 1920년대가 되면서 양복 입은 남자와 양장한 여성이 늘어갔다. 옷과 장신구 등은 유행 바람을 탔다. 헤어스타일도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면도를 하는 것을 ‘신식’으로 가는 길처럼 여겼다. 그럼에도 여자 단발은 아직 문제가 되었다. 단발한 여인들은 ‘단발미인’이라 하여 뭇사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몇몇 여인이 단발했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 단발이 크게 번졌다. 일부 여성은 단발에 ‘물결을 일으키는’ 파마도 했다. 겉모습만이 아니다. 생각과 취향이 남다른 사람이 생겨났다. 1920년대 중반부터 그들을 일컬어 모던 보이, 모던 걸이라고 불렀다. 모던 세대들은 사랑법도 새로웠다. 그들은 자유연애를 바랐다.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누구인지를 딱 부러지게 정의 내리기는 힘들다. 모던 세대란 도시와 서구 또는 일본문화를 즐기며 근대를 적극 받아들인 신세대로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대개 이들은 식민지 현실이나 사회모순에 관심을 두지 않고 ‘모던’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모던 보이, 모던 걸은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화가 문화 영역에서 터를 잡았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배우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축음기가 보급되면서 대중음악 시장이 커졌다. 1930년대 초반 ‘레코드의 홍수, 유성기의 천하’라는 말이 떠돌았다. 모던 보이는 근대적 유흥공간을 찾아 여가와 유흥도 즐겼다. ‘거리의 오아시스’ 다방에서 근대의 상징처럼 커피를 마시며 서양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 무렵 다방은 하나의 문화공간이기도 하고 ‘도시인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그러나 카페는 문제가 있었다. 도시의 분위기를 좇던 모던 보이를 ‘에로’의 길로 안내한 것이 바로 카페였기 때문이다. 카페란 여급이 술시중을 드는 곳에서 비싸게 술을 먹는 곳이었다. 여급에게 팁도 주어야 했다. 카페는 ‘퇴폐적 취미’를 발산하는 곳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카페를 ‘에로의 신전’ 또는 ‘향락 제작소’라고 불렀다. 모던 보이들은 백화점 가기를 좋아했다. 1930년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이 문을 연 뒤 잇달아 히라다·조지야·미나카이·화신백화점 등이 문을 열었다. 백화점의 화려한 쇼윈도는 ‘시각의 쾌락’을 맛보게 한다. 최첨단 기기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으리으리한 백화점에 들어선다. 갖가지 물건을 쓰임새에 따라 가지런하게 분류해 놓은 백화점은 ‘과학적’이다. 매장 앞에는 ‘어여쁜 숍걸’이 매우 상냥하다. 어디 그뿐인가. 백화점은 호화로운 식당과 전람회를 열 수 있는 전시공간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모던 보이들은 ‘도시의 심장’인 백화점에서 도시의 감각과 유행의 물결을 느꼈다. 모던 보이는 갑자기 닥쳐온 근대 도시의 습속을 하루라도 먼저 몸에 익혀야 했다. 그러한 모던 보이에게 경성은 근대의 훈련장이자 여가와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유흥의 도시였다. 그들은 자기가 경험하는 근대가 ‘혼종의 근대’ 또는 ‘식민지 근대’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식민 도시를 거닐고 근대를 소비했다. ●이재유의 경성 1936년 12월 25일이었다. 농사꾼, 장돌뱅이, 노동자, 학생 등으로 변장한 32명의 경찰이 ‘검거 중대’를 만들어 창동 남쪽에서 시골 농민 차림인 30대 초반의 한 남자를 체포했다. 일제에 맞서 비합법 혁명운동에 몸을 던졌던 이재유였다. 이재유는 식민지 조선에서 보통 사람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불온’했다. 이재유는 일제 식민지 체제에서 해방되고 노동자와 농민이 새 나라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려 했다. 이재유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굳게 믿었다. 이재유의 정세 판단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혁명적 낙관주의 없이 어떻게 온몸을 던질 수 있겠는가. 1930년대는 대공황이 닥쳐와 자본주의가 큰 위기에 빠졌다. 숨통을 연장하려는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농민을 더욱 수탈했다. 이에 맞서 곳곳에서 노동자 투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은 아직 공장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농민투쟁도 기껏해야 군단위에 머물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툭툭 불거지는 여러 투쟁을 한데 묶어 한꺼번에 타오르는 들불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이재유는 1920년대 노동조합·농민조합과는 다른 혁명적 노동조합·혁명적 농민조합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 조직은 선진 활동가들의 비합법 모임이다. 그러나 혁명적 노동조합과 혁명적 농민조합만으로 혁명운동을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재유가 보기에 혁명운동을 앞장서 이끌 혁명가들의 조직인 ‘조선공산당’이 없으면, 혁명이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공황을 벗어나려고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에 뛰어드는 형국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조직하려 해도 당은 꼭 있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재유는 1920년대처럼 전국적인 당 조직을 먼저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역에서 시작해서 전국으로 확장하는 당 조직을 만들려 했다. 그는 운동의 근거지를 경성으로 삼았다. 이관술, 김삼룡, 이현상, 이순금, 정태식 등 수많은 동지가 그와 함께했다. 이재유 수사기록에는 “요즈음 경성을 중심으로 일어난 거의 모든 공산주의운동의 흑막으로 이재유가 활동함으로써 수많은 청년 남녀가 해를 입었다.”고 적었다. 이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재유 조직에는 학생과 노동자, 농민도 많았다. 이재유는 피검과 고문, 옥살이, 탈옥, 재검거를 되풀이했다. 일제 탄압으로 조직이 무너지면 다시 세우면서 굽힘 없이 혁명운동을 했다. 이재유는 1932년에서 1936년 말까지 ‘경성 트로이카’, ‘경성재건그룹’, ‘조선공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을 만들었다. 이재유에게 경성은 혁명운동의 근거지이자 그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킬 발판이었다. ●모던 보이의 ‘핑크’ vs 이재유의 ‘적색’ 1930년대 일본에서 ‘에로’가 유행했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왜 그랬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1930년대 ‘공황과 전쟁의 시대’를 맞이하여 일본 청년들은 일본의 긴자거리를 배회하며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핑크’가 되거나 진지하게 사회주의 혁명을 실천하는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이 되어 ‘아카(red)’가 되는 것, 둘 가운데 하나였다.” 식민지 조선도 이와 비슷했다. 식민지 조선의 모던 보이는 경성의 혼마치(지금의 충무로)부근을 서성였다. 이 ‘핑크’들은 카페와 기생집을 드나들며 향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와 상반되는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도 조선에 있었다. 1920년대 근대 교육을 받은 젊은이 사이에서 사회주의가 크게 유행하여, “입으로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졌다.”고 했다. 이 새 세대를 일컬어 조선에서도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이라고 불렀다. 1920년대 신문과 잡지에는 거의 빠짐없이 사회주의 관련 글이 실렸고,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비롯해 주요 사회주의 글도 번역됐다. “사회주의를 믿고 안 믿는 것은 다른 문제요, 사회주의가 실현되고 안 되는 것도 다른 문제다. 다만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는 알아야만 행세를 하게 된 것이 오늘의 형편이다.”는 책 광고까지 있었다. 일제 기록에 따르면, “예전의 독립운동이 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초조해진 민중에게 사회주의운동은 일종의 자극과 광명을 주었다.” 1905년에 태어난 이재유도 ‘마르크스 보이’였다. 개성 송도고보에 다닐 때부터 ‘마르크스 보이’가 된 이재유는 동맹휴학으로 퇴학당했다. 그 뒤 그는 여러 단체에서 실천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나온 이재유는 1932년 ‘경성트로이카’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적색’ 혁명가가 되었다. ‘트로이카’란 “몇몇 지도부가 먼저 당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세 마리 말이 자유롭게 마차를 끄는 것과 같이 회원 모두가 저마다 자유롭게 선전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이재유는 “일생을 혁명가로서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로 결심했다.” 그는 감옥에서도 조선어 사용금지 반대, ‘수감자 대우 개선’ 등의 투쟁을 했다. 이재유는 형이 다 끝나고도 전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주보호교도소에 갇혔다. ‘핑크’의 모던 보이가 ‘메이크업’한 경성을 누빌 때 지하에서 혁명운동을 했던 이재유, 그는 1944년 10월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비합법 혁명운동사에서 최고의 기록을 남긴 사람”으로 기억했다. 최규진(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 [“위기 넘어 미래로” 글로벌기업 新패러다임] LG생활건강

    [“위기 넘어 미래로” 글로벌기업 新패러다임] LG생활건강

    LG생활건강은 2005년 차석용 부회장 취임 이후 공격적인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사업 다각화를 시도해 경영 안정을 꾀했다. 올해도 상반기에 일본 화장품 업체인 ‘긴자 스테파니’를 인수했고, 최근에는 미국 프리미엄 친환경 생활용품 회사인 ‘메소드’와 생활용품 합작회사인 ‘크린소울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이처럼 외형을 확장하는 동시에 ▲화장품시장 1등 위한 다양한 시도 ▲생활용품 사업 부동의 1등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한 새로운 영역 개척 ▲코카콜라음료와 해태음료의 시너지 극대화를 통한 1등 음료사업 도약 가속화 ▲현실적이고 실속 있는 세계화 전략의 체계적 전개 등 4가지 구체적 방향을 가지고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때문에 지난해 원부자재 가격 인상 등 어려운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가파른 성장을 이어 가고 있다. 올해도 생활용품, 화장품, 음료 등 전 사업부문에서 큰 폭의 매출 및 영업이익 신장이 예고된다. 올해 LG생활건강은 매출 4조원, 영업이익 4800억원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화장품의 해외사업이 탄력을 받으면서 실적 향상의 효자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중국, 베트남, 미국, 타이완 등 4개의 해외법인을 중심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랑콤, 디올 등 글로벌 화장품 기업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올해 중국 진출 17년째로 상하이, 난징, 베이징 등지에 9개 영업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백화점 500여개 매장과 전문점, 마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인지도를 높여 가고 있다. 허브화장품 빌리프는 지난해 4월 업계 처음으로 영국에 진출, 유럽시장 공략에 나선 데 이어 베트남, 싱가포르에 신규 진출해 오휘, 후 등에 못지않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22개국에 진출한 더페이스샵의 해외사업 강화를 위해 지난해 중국 포산과 헝청, 일본 이온 그룹 등과 제휴를 맺기도 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LG생건, 日화장품업체 ‘긴자 스테파니’ 인수

    LG생활건강은 일본 화장품업체인 ‘긴자 스테파니 코스메틱스의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1차로 지분 70%를 91억엔(약 1319억원)에 인수하고, 잔여 지분 30%는 3년 이내에 매입하기로 계약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LG생활건강은 긴자 스테파니를 통해 더페이스샵과 ‘숨’ 브랜드의 일본 내 판매에 박차를 가하고 ‘빌리프’ ‘보브’ 등 브랜드의 현지시장 진출도 추진할 계획이다. 긴자 스테파니 코스메틱스는 1992년에 설립됐다. 안티에이징 제품을 중심으로 통신판매를 통해 매년 1000억원 이상의 매출과 20%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회사다. 지난해 매출은 1437억원, 영업이익은 281억원이었다. 그동안 LG생활건강은 일본에서 현지 유통업체 TJI를 통해 세제, 섬유유연제, 치약 등을 수출해 왔다. 또 지난해에는 일본 최대 유통업체인 이온(AEON)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더페이스샵’ 매장을 400여개로 늘렸고, 일본 롯데닷컴을 통해 발효화장품 ‘숨’의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이번 인수로 일본 내 사업 확대를 위한 안정적인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한편 LG생활건강은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기획]최고경영자=⑥롯데그룹 신격호(辛格浩)씨

    [기획]최고경영자=⑥롯데그룹 신격호(辛格浩)씨

     종양장(種羊場)의 양털깍이 소년이 맨주먹으로 현해탄을 건넌 지 30년- 지금은 부동산만 3천억「엔」(한화 4천억원)어치를 가진 대재벌로 자라났다. 4천억원이면 우리나라 1년 총예산의 절반. 지난 해 2천억원의 매상을 올린「롯데」의 신격호(辛格浩·53)씨는 이 어마어마한 부(富)가 오직『신용과 의리』로 쌓아올린 것이라 했다.  차분하게 외곬 파고들어…신용과 의리로 쌓아올려 『저는 운이라는 걸 믿지 않습니다. 벽돌을 쌓아 올리듯 신용과 의리로 하나하나 이루어나갈 뿐이죠』  「롯데」종업원들은 아직 신(辛) 사장이 웃거나 화내는 것을 본 일이 없다고 한다. 화가 나면 오히려 음성이 낮아지고 차분해지는 것이 신(辛) 사장의 성격. 이런 내성적인 성격이기에 오늘의「롯데」를 만드는 데도 다른 경영자들과는 달리 화려하게 남의 눈에 드러나는 일 없이 차분하게 외곬으로 파고 드는「인·파이팅」전번(戰法)을 써왔다.  재일교포 사회에선『관동(關東)에 롯데, 관서(關西)엔 판본(阪本)』이란 말이 자랑스럽게 쓰여지고 있다. 신격호(辛格浩)씨와 서갑호(徐甲虎)씨가 교포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일뿐더러 일본의 어느 기업과 견주어도 결코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의 본거지인「도꾜·롯데」는 지난 해 제과부문에서 1천2백억「엔」,「레저」와 부동산부문에서 6백억「엔」을 벌어 들였다.「도꾜·롯데」는 모두 11개의 기업체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 중에는「검」「초컬리트」「캔디」「아이스크림」공장이 들어있으며「볼링」「골프」시설을 갖춘「레저·센터」인「롯데」회관,「프로」야구의「롯데·오리온즈」구단 등이 있다.「롯데」소유 부동산의 일본 은행 감정 가격은 총 3천억「엔」.  한편 12년 전부터 시작된 우리나라「롯데」는 지난 해 총 2백억원의 매상을 기록했다. 라면, 새우깡 등을 만들어내는「롯데」「검」「초컬리트」「캔디」공업이 90억원,「검」「캔디」의「롯데」제과가 45억원, 일본에 우리나라산 백삼(白蔘)을 독점 수출하고 있는「롯데」물산이 60억원어치를 팔았다. 다수 산매점 주의로 맞서…콧대센 일본 「하리스」눌러  「도꾜·롯데」에 비교하면 아직 한국「롯데」는 걸음마를 배우는 단계지만 어마어마한「도꾜·롯데」의 후광을 갖고 있는 한국「롯데」의 장래는 밝다.  「롯데」의 경영 방침은 간단하다. 첫째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낼 것, 둘째 제품이 많은 상점에 진열되어 있을 것, 세째(셋째) 선전에 힘쓸 것.  그러나 신(辛)사장의 경우는 보다 철저하다.  『평범한 속에 의외의「아이디어」가 있는 법입니다. 그「아이디어」를 찾아내고 한번 일에 손대면 철저히 하는 것-그게 성공의 비결이겠죠』  평범한 속에서 의외의「아이디어」를 찾아낸 대표적「케이스」가 바로「롯데·검」이다. 종전 직후 일본「긴자」뒷골목에서 GI들이 던져주는「검」을 줍는 일본 어린이들을 보고「힌트」를 받아「롯데·검」이 탄생된 것.  전후 일본엔 50여종의「검」이 생산되었으나「롯데」가 지금처럼 시장 점유율 65%를 자랑하는「톱·메이커」가 된 건 우수한 품질 때문이었다고 신(辛) 사장은 말한다.  또「롯데」의 평범한 경영 방침이 기업 경쟁에서 이긴 경우가 바로「하리스」와의 싸움이다.「롯데」와 함께 일본의「검」시장을 나누어 갖고 있는「하리스」는 당초엔「롯데」로선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큰 기업이었다. 그러나 도매상 중심으로 콧대 센 장사를 하고 있는「하리스」에 비해「롯데」는 다수(多數) 산매점주의로 맞서 끝내 이기고 말았다.  가정 부인들을「세일즈」에 동원, 시장 개척을 한 것도「롯데」의 기발한 판매「아이디어」의 하나였다. 다음은 선전. 「하리스」가 TV에 30분짜리「프로」를 만들면「롯데」는 1시간짜리로 맞섰다.  지금도「롯데」는 한해에 65억「엔」을 선전비로 쓰고 있다. 결국「검」싸움에서「하리스」는 「롯데」의 평범한 경영 방침에 져 현재까지 주인이 3번이나 바뀌고 말았다.  『팔리는 건 제품이지만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제 인사 관리는 간단해요. 일단「롯데」에 들어온 사람이면 스스로 사표를 내고 나가기 전엔 절대로 해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잘못이 있으면 감봉 처분이 고작이죠. 직장을 믿고 일할 수 있을 때 일이 제대로 되는 것 아닙니까?』  현재「도꾜·롯데」산하 기업체의 부사장 중 67살이 된 노인이 한분 있다. 하는 일이라곤 출근했다 퇴근하는 것뿐. 그리곤 부사장 월급을 타간다. 신(辛)씨가 종전 직후「크림」장사를 사작할 때 썼던 종업원 10명 중 유일하게「롯데」에 남아 있는 사람이란 이유 때문. 종업원은 해고 않고 전문분야 일만 시켜  한국「롯데」의 경우 이런 인사 방침은 마찬가지지만 또 하나 특징은 종사자의 업무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 이는 신(辛) 사장이『우리나라에선 전문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辛)사장의 과거는 한마디로『배 고팠다』는 것.  언양(彦陽·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서 몇 10리 들어간 경남(慶南) 울주(蔚州)군 삼남(三南)면이 신(辛) 사장의 고향. 바로 이웃 마을이 서갑호(徐甲虎)씨의 고향이다, 신(辛)씨는 울산농업실습학교를 졸업하고 곧 어느 종양장으로 양털깎이 소년으로 취직했다. 농사만 지어서 5남5녀의 10남매를 먹여 살리긴 힘든 일. 신(辛)씨는 장남으로 가장의 역할까지 겸해야 했다.  21살 되던 해『언제까지 양털만 깎고 살 수는 없지 않으냐?』는 각오로 집을 뛰쳐 나왔다. 일본의 종양장을 돌아 본다는 명목으로 현해탄을 건넜지만 신(辛) 청년의 뜻은『배고픔』을 면해 보자는 것이었다,  우유 배달을 하기도 하고 무거운 철판을 져 나르기도 했다, 그 돈으로「와세다」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제2차대전으로 대학도 문을 닫자 어느 군수기름공장의 기술자로 취직했다가 동료의 모함으로 쫒겨났다. 신(辛)씨는「커팅·오일」을 만들어 내는 공장을 차렸다. 꼭 두번 납품하고 나자 공장이 미군기의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남은 건 빚 5만「엔」뿐.  종전이 됐다. 신(辛)씨는 폐허가 된 일본에서 이제 이길 것은『평화』뿐이라고 생각했다. 소위「평화산업」이란 화장품에 처음 손댄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빚을 얻어(어느 일본 의사였는데 오직 신(辛)씨만 믿고 돈을 대준 것. 그 뒤 신(辛)사장은 이 의사에게 병원「빌딩」을 지어 주어 은혜를 갚았다) 종업원 10명으로「크림」이며 머리기름을 만들어 냈다. 수익은「크림」이 2~3배, 머리기름은 10배가 남았다.  화장품으로 중소기업인이 된 신(辛)씨는 다시『평화산업』인「검」생산에 착수했고 오늘의「롯데」를 세워 놓았다. 50년대의 부동산「붐」에서 크게 한 몫을 잡은 것도「롯데」성장의 성장제 역을 했다.  1948년 자본금 1백만「엔」으로 시작한「롯데」가 지금은 그 3백배 이상으로 자라났고「롯데·검」은 6대주 어느 곳에도 수출되지 않는 곳이 없게 됐다.  한국에 금의환향한 것은 5·16 직후. 햇수로는 12년이 되지만 가정 분규로 신장개업을 한 지는 이제 5년째다. 그 5년 동안「롯데」경쟁 기업인 삼양(三養), 해태 등과 맞먹을 정도로 자라났다.  5형제 중 맏이자 총수인 신격호(辛格浩)씨는「롯데」의 회장. 4째인 선호(鮮浩·40)씨가 형님을 도와 일본에 있으며「도꾜·롯데」산하 공장의 전무·상무직을 맡고 있다. 한국「롯데」는 3째인 춘호(春浩·44)씨가「롯데」공업 사장, 막내인 준호(俊浩·33)씨가「롯데」제과 전무로 있으며 4째 매부인 최현열(崔鉉烈·전 부산(釜山)시장 최두열(崔斗烈)씨의 동생)씨가「롯데」물산의 전무로 있다.  시작은 화장품…부동산 투자로 한몫보고 한국「롯데」의 사장인 유창순(劉彰順)씨는 인척 관계는 없으나 유(劉)씨가 한국은행「도꾜」지점장으로 있던 시절부터 신(辛)사장과 막역하게 지내던 사이. 경영의 실무는 동생들에게 맡겨 놓고 있으나 신(辛) 사장은 유(劉)씨의 인품과 경영 수완을 높이 사고 있다고. 한때 말썽을 빚기도 했던 집안의 불화는 이제 말끔히 가시고 신(辛)씨가 한국에 나오면 형제가 모두 모여 술을 나누곤 한다.  『나이 드신 탓인지 요즘은 보다 많이 모국에 투자하고 싶어하십니다. 반도「호텔」애기도 그래서 나온 것 같아요』막내 준호(俊浩)씨가 전하는 말이다, 신(辛)씨는 완전히 기틀이 잡힌「도꾜·롯데」는「레저」산업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부동산을 처분해 한국에 투자할 생각. 반도「호텔」을 인수해 객실 1천개의「딜럭스·호텔」을 지을 단계에 와 있고 74년께는 제철제강 분야에도 손을 댈 생각으로 현재 수익성 등을 검토하고 있다.  『「모리나가」「메이지」등 대「메이커」들과 과자 싸움을 벌일 땐 1주일에 겨우 하루 집에 들어 갈까 말까 였읍(습)니다. 한번 매달리면 철저한 게 제 성격이죠』  오랜 일본 생활로 일본 정계의「기시」(전 수상(首相))「후꾸다」(행정관리청 장관·전 대장성 장관)「오히라」씨(현 외상(外相)) 등 정객과도 교분이 두터워 이따금 한·일 정계의 막후에서 다리를 놓기도 한다.  술은 잘 하는 편이며 즐기는 것은 바둑. 우리나라「아마」2단의 실력으로 같은 급수인 막내 준호(俊浩)씨가 좋은 상대. 일본인 부인과 2남(男)1녀(女)를 두고 있다.  <김창웅(金昌雄)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2월11일 제6권 5호 통권 제226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오감도’ 이상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오감도’ 이상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1934년 식민도시 경성의 여름은 뜨거웠다. ‘조선중앙일보’에 7월 24일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작품 ‘오감도’(烏瞰圖) 때문이다. 작가는 2000여편 중에서 30편을 골라 연재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15회를 넘기지 못했다. 띄어쓰기 무시! 문법 파괴! 기호와 숫자가 문자를 대신하는 시! 독자들은 분노했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 당장 원고를 불살라라, 작가가 미쳤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을 미쳤다고 비난하는 독자들에게 반문한다.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년씩 뒤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그가 보기에 대중은 게으르고 편협했다. 자신은 지금 시대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뛰어넘고 있는 중인데 독자들은 아직도 구태의연한 문학관만 소비하는 중이니 말이다. ‘오감도’의 작가 이상(李箱·1910~1937). 그는 정말 시대와 불화한 천재였을까. 시대가 박제시켜 버린 천재였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이나 영감에 의지해 개성을 뽐내는 그런 천재는 아니었다. 모두가 문명화, 근대화라는 덧없는 망상 속에서 허둥댈 때, 그는 아무도 보지 못했던 문명의 메커니즘을 보고, 시대의 이면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비상(非常)한, 비상(飛上)을 꿈꾼 지식인이었다. ●모던 경성, 적빈(赤貧)의 시공간 1910년 9월생인 그는 일본어를 국어로 하는 세상에서 태어나 문화통치 기간인 1920년대에 학교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920년대 중반이 되면 제국 일본의 식민 경영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아울러 경성의 도시경관은 총독부 건물, 경성제국대학, 백화점을 중심으로 근대 도시의 풍모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 안에서 근대적 학교교육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출판산업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다. 그리하여 1920년대에는 신문과 잡지를 통해 동시대의 근대문화를 흡수하고 소비하는 ‘대중’이 유럽풍 옷가지와 장신구로 몸을 두르고 커피 한잔을 찾아 방랑하는, 보들레르가 명명했던 ‘산보객들’이 경성 한복판에 등장하기에 이른다. 경성고등보통학교 건축과 학생이었던 이상 역시 화구통을 메고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가난이었다. 끼니를 잇기 힘든 가난한 중인 가문의 장남이었던 그는 현미빵을 팔아 학교를 다녔다. 그가 배우는 최신 기하학과 건축학이 식구들과 이웃의 허기를 달래줄 날은 참으로 요원했다. 하지만 이런 물질적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의 가난이었다. 생활은 점점 더 돈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돈은 아비와 자식, 친구와 애인을 연결시켜 주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였다. 의리도 인정도 돈 앞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다. 지독한 정신의 가난은 가난한 서민들뿐 아니라 도시인 전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대중매체가 선전하는 소비와 향락, 학교에서 강요하는 청결하고 근면한 생활. 이상이 보기에 이것은 실상 일본식 유행풍속을 좇아 양복을 입고 몇 개 안 되는 다방을 전전하면서 ‘교양입네’ 하는 꼴이었다. 제국 일본의 식민도시 경성은 제대로 문명화를 구가하지도 못하면서 박래품 소비에만 열광하는 ‘무늬만 근대도시’였다 경성의 도시인들은 모두 ‘모던’(modern)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지만, 정작 자신의 텅 빈 정신은 보지 못하는 불구자들이었다. 왼팔을 들면 거울 속의 나는 오른팔을 들어 올리는 기묘한 형국처럼 도시인들은 자신을 비추는 문명의 거울 앞에서 분열증에 시달렸다. 지독한 정신의 가난 속에서도 겉으로는 잘사는 척, 문명인인 척하기에 급급한 삶이라니! 이상은 이 사태가 공포스러웠다. 그 수선스러움에 질식할 것 같았다. 이 가난에 맞서야 한다! ●나의 펜은 나의 칼이다 1930년 ‘조선’에 연재된 첫 장편소설 ‘십이월 십이일’을 필두로, ‘이상한 가역반응’, ‘삼차각설계도’, ‘건축무한육면각체’ 등 기하학과 일본어가 맞물린 시들과 ‘지도의 암실’ 등의 소설, 다양한 수필이 발표된다. 문명을 지탱하는 정신의 가난과 대결하면서 그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언어의 문제였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본어가 국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조선어다. 그는 식민지에서의 가난과 소외가 무엇보다도 언어와 그 언어 사용자 사이에 놓인 간극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1930년대를 지배하는 ‘모던’이라는 말 안에는 그 어떤 진지한 성찰도 부재했다. 도시의 소비자들은 양복(洋服), 양행(洋行)과 같이 서양풍을 내세운 습속에만 매달릴 뿐 왜 서양식 옷을 입고 서양에서 나온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문하지 않았다. ‘모던’이란 말은 식민지 조선에서 텅 빈 기호였다. 그 안에서 어떤 정신적 가치도 찾을 수 없었다. 이상은 그런 시대를 ‘활자허무시대’라고 명명했다. 이상은 그렇게 기호에 갇혀 자기 삶의 진실을 외면하는 문명인의 삶을 해부하기로 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런 그에게 문학은 대중이 기대하는 여가선용이나 위안의 도구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듯 특정한 계급의 현실을 드러내고 정치적 방향을 선동하는 이념의 도구에 머무를 수도 없었다. 문명의 매커니즘을 해부하고, 소외된 삶을 극복하는 것! 이것이 문학의 일차적인 임무여야 했다. 이상에게 펜은 그런 가난한 문명과 나태한 정신을 향해 휘두르는 칼이어야 했다. 그의 시 ‘오감도’는 숫자와 여러 가지 기호들을 통해 근대적 삶의 폐쇄성과 불구성을 해부하는 ‘메스’로서의 문학이었던 셈이다. ‘오감도’ 연재가 중단된 후 자신의 시도가 불러일으킨 적대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상은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을 몰라보는 대중을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관광객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관조하지도 않았다. 속악한 돈의 횡포나 비정한 이기주의를 직시하면서도, 그는 자신 역시 허위에 찬 근대의 산물임을 처절하게 의식했다. 박태원과 김기림 같은 지인들은 이상이 퇴폐적 카페를 열고 여급들과 연애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문학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도 문명을 비판하고 자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감추려고도, 미화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배반과 궁핍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근대문명을 고민하고, 그 안을 휘청거리며 걸었다. ●이상, 시대의 혈서를 쓰는 자 1936년 가을, 이상은 일본 도쿄로 떠났다. ‘날개’를 통해 평단으로부터 큰 주목과 호평을 받은 직후였다. ‘날개’는 돈으로 마음과 정신을 사고파는 근대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여기서 이상은 주인공이 날개를 얻어 비상할 것을 꿈꾸는 장면으로 작품을 마무리했다. 해부를 넘어 새로운 도덕을 발견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어쩌면 그 도덕적 비전이 식민지 조선 바깥에, 현해탄 건너 문명의 본산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쿄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허영의 낙원이었다. 특가품, 할인품, 온갖 상품들로 넘쳐나는 긴자 거리에서 사람들은 모두 성병에 걸린 듯 화려하게 치장한 채 돌아다녔으며, 최신 서적들은 그저 교양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거기에도 자기 삶의 정열을 태우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가 더 노골적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영국 런던에 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딜 가도 적막, 암흑, 권태뿐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새로운 도덕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20세기가 그토록 찬미해 마지않는 문명이란 정신의 가난만 키우는 황금만능의 허위 세계임을, 이상은 낯선 땅에서 뼛속 깊이 절감한다. 그해 겨울 도쿄 거리에서 이상은 불온한 조선인으로 낙인찍혀 감방에 갇히게 된다. 도일(渡日)하기 전부터 앓았던 폐병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문명의 속악성은 그의 마음에서 한 가닥 희망마저 앗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글을 쓰면서 돌파구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1937년 4월 17일. 채 십년이 되지 않는 창작 기간 동안 오직 근대문명의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글을 썼던 이상이 죽었다. 그의 죽음은 친구 김기림의 말대로 제 육체의 마지막 조각을 갖고 제 혈관을 짜서 쓴 시대의 혈서였다. 죽기 몇 달 전 탈고한 소설 ‘종생기’(終生記)에서 이상은 자신의 묘지명을 작성한다. “일세의 귀재(鬼才) 이상은 그 통생(通生)의 대작 ‘종생기’ 일편을 남기고 서력 기원후 일천구백삼십칠년 정축(丁丑) 삼월삼일 미시(未時)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하다. 향년 만이십오세와 십일개월.” 자신을 죽이고, 그 시체로부터 생과 예술의 본질을 투시하려 했던 자. 임박한 죽음 앞에서도 이상은 그렇게 끝까지 예리한 언어의 칼날을 거두지 않았다. 오선민 남산강학원 연구원
  • JAPAN TOKYO-도쿄 아주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같은

    JAPAN TOKYO-도쿄 아주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같은

    JAPAN TOKYO 도쿄 아주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같은 도쿄에서의 나흘은 조금 불편했다. 대지진의 후유증 때문은 아니었으며, 서울보다 평균 2도 높은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그곳이 도쿄였기 때문이다. 삼성과 애플의 전쟁이 마치 국가대항전이라도 되는 듯 중계되고, 스마트폰 사용자 1,000만명이 넘는 나라에 사는 사람의 눈에, 이 도시는 깊이 들여다볼수록 불편함을 감수하는 아날로그의 세계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지킬 것을 지키는 ‘진득함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도쿄와 그곳 사람들의 차분한 일상에 잠시나마 깃들어 있었다. 조바심에 길들여진 서울의 디지털적 일상이 왠지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호텔스닷컴 kr.hotels.com 1, 3, 4, 일본 동북부 대지진으로 여행을 꺼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도쿄를 여행하는 데 큰 불편은 없었으며, 도쿄 사람들은 덤덤하고 의연하게 일상을 살고 있었다 2 서울 명동만큼 많은 인파가 몰리는 시부야의 밤거리는 여전히 복작복작했다. 전통 복장을 한 거리의 예술가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도쿄의 안부를 묻는 당신에게 하네다공항에 내려 모노레일을 탔다. 일본 전역에서는 전력 사용을 줄이기 위해 공공장소의 냉방시설 가동률을 80% 수준으로 낮췄다고 했지만 실내 공기는 견딜 만했다. 사람들은 차분히 책을 읽고 있었고, 더러는 조용히 담소를 나누고 있었으며, 빈자리가 있는데도 20분 가량을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긴팔옷을 끼어 입어야 할 정도로 싸늘한, 한여름의 서울 전철과는 사뭇 달랐다. 전철을 세 번 갈아타고 숙소가 있는 도쿄의 중심가, 아카사카로 향했다. 공항 리무진버스의 배차 간격이 너무 길어 기다릴 수 없어서 이용한 전철이었는데 무거운 여행가방을 들고 수차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나흘간 도쿄의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역설적으로 도쿄의 촘촘한 전철망은 가장 큰 불편 요소 중 하나였다. 아무리 도쿄 메트로와 JR라인이 경쟁회사라지만 도무지 어느 역에서 어떻게 갈아타야 하는지 명확한 정보를 찾기란 어려웠다. 역무원들도 헷갈리는지 전화번호부만한 책을 꺼내 질문에 답해 주기도 했다. 그나마도 한참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스마트폰을 찾아보고 알았다. 세계 최대의 전자기술을 가진 나라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의외의 풍경을 나흘간 매일 마주쳤다. 직장인들이 많은 시오도메 지역에는 금권金券숍이 많았다. 겉모양은 우리의 복덕방과 흡사한데 신칸센 탑승권부터 공연 관람권, 야구경기 입장권, 맥도날드 할인권까지, ‘별의별’ 티켓이 다 있었다. 도쿄에는 온라인 쇼핑몰이며, 소셜커머스며, 할인 혜택 풍성한 카드며…, 이런 것들이 없는 세상인 것만 같았다. 아날로그 도쿄의 면모는 거리를 지나면서, 사소한 식사 한 끼를 하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많은 번화가를 제외하고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무선인터넷이 잡히는 카페라고는 도통 찾아볼 수 없고, 웬만한 가게들은 신용카드를 내밀면 ‘No, Sorry’라고 답했다.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고, 신용카드로 껌 하나까지 살 수 있는 것이 과연 ‘글로벌’한 것인지, 잠시나마 생각해 봤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지진의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큰 재난을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단서라고는 무지MUJI 매장 1층에 비치된 재난 대비 구호용품 세트가 전부였다. 도쿄인들은 평범하고 담담하게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호들갑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에노 시장에서는 늘상 그러하듯 고소한 다코야키의 향이 풍겼고, 젊은 예술가는 기치조지의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밝은 그림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말 벼룩시장, 거기 사람이 있었네 토요일의 정오, 하네다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서둘러 찾아간 곳은 센다가야역. 도쿄의 곳곳에서 열리는 주말 벼룩시장 중에서도 규모가 크기로 유명한 메이지공원이었다. 유행과 첨단의 도시보다는 사람냄새 나는 이면의 풍경을 만나고 싶어 오래 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곳이다. 야외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의 풍경은 얼핏 보기엔 우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버려도 주워가지 않을 듯한 아이템부터 장인정신이 담긴 수공예품까지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목이 없는 기타가 있는가 하면, 고급 자기제품도 있었다. 아이템이 다양하다는 것은 천차만별의 상인들이 이곳에 운집해 있다는 증거다. 한국 아이돌 공연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으면 어울릴 만한 여대생들부터, 시내에서 번듯한 중고 전문 가게를 운영하다가 경제난으로 가게를 접고 주말마다 벼룩시장을 돌며 근근이 살고 있다는 영어를 잘하던 중년 사내, 자신이 직접 만든 안경은 명품 안경보다 좋다며 호기롭게 20만원짜리 안경테를 팔고 있는 30대 남성, ‘뼛속까지’ 장사꾼인 터키인도 케밥을 팔고 있었다. 이 얼마나 아날로그적인 사람 풍경인가. 굳이 주머니를 열지 않아도 정겨운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조금만 발품을 팔고, 두 눈을 부릅뜨면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용 캐리어에 한 살림을 채울 수도 있다. 필름카메라, 자기 제품, 앤티크 장식품, 구제 가방 정도는 믿고 구매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80년대 초반 태생의 탐나는 필름카메라가 있어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가격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장 마감 시간을 기다려 상인과 약간의 실랑이 끝에 구매한 가격은 1,800엔(약 2만4,000원).나름대로 ‘득템’에 성공했다. 도쿄 재활용 운동 시민 모임은 1992년부터 메이지공원, 오이경마장, 세이부돔, 요코하마 등 수도권 근교 및 미야기현에서 벼룩 시장을 주최하고 있다. 입점비용 2,500~3,500엔을 내면 누구나 자신만의 제품을 들고 나와 ‘주말 장사꾼’이 될 수 있다. 시장 정보는 홈페이지(www.trx.jp)에 상세히 나와 있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면 위치, 운영 시간 등 핵심 정보를 어렵지 않게 취할 수 있다. 1 도쿄에 여행을 간다면 반드시 주말에 벼룩시장을 들러 볼 것을 추천한다. 쓸 만한 제품을 헐값에 건질 수도 있으며, 정겨운 사람 풍경을 보면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2 주말 벼룩시장에는 외국인도 적지 않다. 사전에 신청만 하면 누구나 자리를 깔고 생활용품을 판매할 수 있다 3, 4 벼룩시장에는 의외로 건질 만한 아이템이 많다. 반면 공짜로 줘도 쓰지 않을 것 같은 엉뚱한 물품들도 적지 않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골목길을 걷다가 느긋하게 커피 한 잔 일본인들이 도쿄에서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손꼽는 기치조지와 지유가오카의 공통점은 느긋한 분위기의 아날로그적 매력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번화한 긴자, 신주쿠, 롯폰기 등 중심가에 있다가 이곳으로 오면 시간마저 절반의 속도로 흐르는 듯하다. 사실 기치조지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브리 미술관’ 때문이었다. 헌데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 또한 ‘아날로그적’인 미술관의 정책 탓이었다. 버젓이 인터넷이 있는데도 미술관은 지정 여행사와 로손Lawson이라는 편의점에서만 입장권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마저도 입장일이 가까워지면 구하는 것도 어렵다. 나의 정보 부재를 한탄하며, ‘지브리’가 없어도 충분히 매력적인 기치조지로 향했다. 기치조지 전철역과 이노카시라 공원 사이에는 수많은 앤티크 숍과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로 가득했다.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의 주요 배경이 된 이노카시라 공원은 주말을 맞아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연인들과 수공예품을 들고 나온 예술가들로 활기가 넘쳤다. 폐품을 활용한 기괴한 모형의 장식품부터, 시중의 상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수공예품들로 가득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지유가오카로 향했다. 커피숍 2층에 앉아 전철역 앞 작은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잠시나마 권태를 즐겼다. 갓 구워낸 빵 한 조각과 커피를 즐기고,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오밀조밀한 인테리어 소품들을 구경하며, 필름카메라를 전문으로 다루는 카메라 가게를 배회하는 시간 동안 나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우 재믹스’로 조악한 게임을 즐기던 시절. 내게는 ‘닌텐도 패밀리’가 있었으며, 일본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는 물론 국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정교한 일제 학용품도 많았다. 도쿄에 살던 이모가 보내주는 선물 꾸러미가 도착할 때마다 나는 동네에서 영웅이 되었다. 지유가오카의 문구점과 장난감 가게, 낡은 건물 간판들까지…. 이 낯선 도시는 묘한 힘을 갖고 있었다. 나로 하여금 잊혀졌던 유년의 기억을 살포시 끄집어내 미소짓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5 지유가오카의 명소인 라비타는 작은 쇼핑거리로, 물의 도시 베니스를 연상케 한다 6, 7 기치조지의 이노카시라 공원은 주말마다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장이 선다. 폐품을 활용한 예술품과 일본인들의 정교한 손기술을 보여주는 실용품들이 눈길을 끈다 8 지유가오카에 위치한 뽀빠이 카메라. 필름 카메라 사용자를 위한 제품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people] 호텔스닷컴 피터 요시하라 한·일 마케팅 총괄이사 “도쿄 자유여행, 안심하고 오세요” 호텔스닷컴에서 한국과 일본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피터 요시하라 이사는 한국 여행객들에게 안심하고 도쿄를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의 자유여행 인구가 놀라울 정도로 늘고 있다. 아시아에서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일본, 호주보다도 그 성장세가 빠르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여행사인 ‘익스피디아Expedia’의 계열사인 호텔스닷컴Hotels.com이 한국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내 맘대로’ 호텔을 선택하는 자유여행객이 급증하고 있다는 증거다. 3월11일 일본 동북부 대지진으로 한국인 여행객의 발길이 뚝 끊겼지만 도쿄를 중심으로 서서히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피터 요시하라(한국이름 양성호) 이사를 만나 최근 동향을 들어 봤다. Q. 대지진으로 한국에서는 일본 여행이 급감했는데 얼마나 체감하고 있나. A. 호텔스닷컴 한국 사이트에서 도쿄는 부동의 1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대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것이 사실이다. 일부 도쿄 호텔은 방문객 감소로 영업을 중지하기도 했으며, 많은 호텔들이 방문객이 줄면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도쿄는 여행에 전혀 지장이 없으며, 지진 이전과 비교했을 때 여행객이 느끼기에 위험하거나 불편한 요소는 없으니 한국인들이 안심하고 도쿄를 여행했으면 한다. 올여름 일본에서는 오사카, 후쿠오카, 규슈, 오키나와 등의 호텔 예약이 가장 활발했다. 오사카는 올 여름, 호텔스닷컴 한국사이트에서 예약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호황이었다. 호텔스닷컴이 전세계 여행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분의 2 이상이 일본 여행에 긍정적이라고 밝혔고, 일본은 3대 선호지역으로 꼽히기도 했다. 일본 관광산업이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다. Q. 여름 휴가철 한국인들의 인기 여행지역은? A. 오사카, 뉴욕, 상하이, 홍콩, 파리 등이 인기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필리핀의 예약률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호텔스닷컴이 강점을 가진 미국 지역의 예약도 많은데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의 예약이 꾸준한 편이다. Q. 호텔스닷컴은 최근 3년간 한국에서 매우 공격적인 모습이다. A. 한국어 사이트(kr.hotels.com)를 개설한 2008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세자리 수 이상의 매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기본적인 온라인 키워드 광고 외에도 케이블 및 공중파 TV 채널에도 광고를 진행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골 고객이 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인들이 그만큼 호텔스닷컴의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다. Q.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의 반응은 어떠한가. A. 호텔스닷컴은 지난 5월 새로운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을 선보였으며,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서인지 예약이 꾸준히 늘고 있다. 아이폰을 통해 8~9건 예약될 때, 안드로이드를 통해 4~5건 예약되는 비율을 보이고 있다. 아이패드를 통한 예약도 적지 않다. Q. 최근 모회사인 익스피디아도 한국어 사이트를 오픈했는데. A. 호텔스닷컴의 강점은 ‘현지화된 서비스’다. 지금 익스피디아의 한국 사이트를 보면, 호텔스닷컴의 처음 모습처럼 어색하다. 호텔스닷컴은 ‘한국 웹사이트보다 더 한국스럽게’ 만든다는 목표로 변화를 이뤄 왔다. 현재는 웹사이트에 대한 고객불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고객들이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콜센터 직원들도 호텔스닷컴의 큰 경쟁력이다. 이외에도 올해 내에는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다양한 혜택을 줄 수 있는 항공사 마일리지 개념의 ‘보상 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다. ‘호텔스닷컴 Hotels.com’은 세계 최대의 온라인 여행사인 익스피디아의 자회사로서, 전세계 13만5,000개의 호텔을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원스톱 쇼핑 사이트이다. 2~3일간 반짝 할인, 마감 임박 할인, 주요 도시 40~50% 할인 이벤트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08년부터 한국어로 된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콜센터에서는 한국어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place] 여전히 매력적인 도쿄, 고급 호텔을 노려라 도쿄의 주요 호텔 관계자들은 “해외여행객이 크게 줄어들어 가격이 저렴해진 지금이 여행의 호기”라며 한국인들의 방문을 당부했다. 최근 인터넷을 이용해 고급 호텔을 이용하는 수요가 늘면서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는 호텔도 늘고 있다. 호텔스닷컴이 자신 있게 추천하는 도쿄의 5성급 호텔 두 곳을 들러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나눴다. 일본 전통에 서양의 미를 가미하다 캐피톨 호텔 도큐 Capitol Hotel Tokyu 수수무 토가시 총지배인 일본의 명성 높은 호텔 그룹인 도큐Tokyu는 지금의 캐피톨호텔을 2010년 새롭게 공개했다. 4년간의 대공사는 ‘개보수Renovation’의 개념이 아닌 ‘재건축Rebuliding’에 가까운 수준으로 진행됐다. 관공서, 기업체가 많은 아카사카 중심 지역에 위치한 만큼 출장자들이 많고, 한국 기업들도 주변에 많아 한국인들의 방문도 많은 편이다. 캐피톨호텔도큐는 일본 전통의 미를 철저히 표방한다. 건물 외관은 서양식이지만 객실 내부나 레스토랑, 로비 등을 최대한 일본식으로 꾸몄다. 최근 리츠칼튼, 페닌슐라 등 해외의 특급 체인 호텔들이 일본에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과 비교해도 객실 넓이는 45m2 수준으로 매우 넓은 편이다. 음식과 차도 일본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특히 식사 후에 일본식 다도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지난 3월 대지진의 영향으로 올해까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한국에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통해 고객을 유치할 예정이다. 오히려 지금은 호텔 가격이 많이 내려간 만큼 출장 목적뿐 아니라 레저 여행객들도 캐피톨호텔도큐를 찾으면 좋을 것이다. www.capitolhoteltokyu.com 최고의 전망 자랑하는 디자인호텔 파크 호텔 도쿄 Park Hotel Tokyo 마코토 엔도 영업 이사 파크호텔은 전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진 디자인 호텔Design Hotels의 유일한 일본 회원 호텔로서 독특한 디자인과 편리한 접근성, 빼어난 전망이 강점이다. 시오도메 미디어 타워의 25층부터 34층까지 호텔로 사용하고 있으며,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행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익스피디아의 직원들이 우수 호텔로 선정한 바 있으며, 미슐랭 가이드가 선정한 레스토랑도 보유하고 있다. 긴자 지역까지 걸어갈 수 있는 시오도메역에 위치한 호텔은 오다이바로 갈 수 있는 유리카모메(전용열차)를 탑승하기에도 편리하다. 객실이 전부 고층에 자리한 만큼 전망도 좋다. 도쿄타워가 가까이 보일 뿐 아니라 맑은 날에는 후지산도 보인다. 친환경적인 객실 디자인은 물론 삼각형 모양으로 34층까지 천장이 뚫려 있는 로비 등은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일본 교토식 레스토랑, 도쿄에서 가장 유명한 바텐더가 있는 펍, 아로마 테라피 등도 파크호텔의 강점이다. 현재 한국인 직원도 1명 있어 한국인들에게 더욱 친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www.parkhoteltokyo.com 1 캐피톨호텔도큐는 일본 전통의 미를 철저히 표방한다. 건물 외관은 서양식이지만 객실 내부나 레스토랑, 로비 등을 일본 전통식으로 꾸몄다 2 파크호텔은 일본 유일의 디자인 호텔의 회원 호텔로서 독특한 디자인과 편리한 접근성, 빼어난 전망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서울 명동 임대료 세계 9위

    서울 명동이 세계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쇼핑타운 9위를 기록했다. 글로벌부동산컨설팅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W)는 최근 1년간(2010년 6월~2011년 6월) 전 세계 63개국, 278개 주요 번화가의 임대료 추이를 조사한 결과 명동은 ㎡당 월평균 임대료가 60만 8100원으로 나타나 9위에 선정됐다고 1일 밝혔다. 이는 작년 동기간 대비 0.6% 오른 값이다. 강남역과 압구정 상권은 각각 작년보다 2.7%와 12.9% 올라 상승폭이 더 컸지만 실제 임대료는 50만 9920원, 13만 8566원으로 국내 임대료 1위인 명동에 미치지 못했다. 한편 뉴욕 5번가는 임대료 상승폭 21.6%를 기록하면서 10년 연속 세계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상권의 자리를 지켰다. 명동을 제외한 아시아 상권 중에서는 홍콩 코즈웨이 베이와 일본 도쿄의 긴자거리가 각각 2,3위를 차지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이병헌, 佛 꿈의 스튜디오에 서다

    이병헌, 佛 꿈의 스튜디오에 서다

     할리우드 유명 스타들의 꿈의 스튜디오이자 유명 인사의 인증으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의 유명 사진 스튜디오 아르쿠르가 동양인 남자 배우로는 처음으로 톱스타 이병헌의 모습을 촬영해 20일 공개했다. 흑백 영화의 조명 방식을 그대로 적용해 모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듯 깊이 있는 흑백 사진 기법과 연출된 듯한 느낌의 인물 사진으로 유명한 스튜디오 아르쿠르에서 지난달 9일 촬영한 이병헌의 사진은 강하고 차가운 카리스마를 풍기면서도 어딘지 애수가 가득하고 시크한 분위기가 압권이다.  스튜디오 아르쿠르는 1934년 설립된 사진 스튜디오로 마를레네 디트리히, 장 가뱅 등 흑백영화 시대를 풍미한 은막의 스타를 비롯해 저명인사들의 프로필 사진으로 이름을 알린 곳이다. 프랑스의 유명 평론가인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저서 ‘신화’(1957년)에서 “프랑스 배우치고 스튜디오 아르쿠르에서 사진을 찍어보지 않았다면 배우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그 시대의 유명 인사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으로 손꼽혔으며 지금도 전통과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할리우드와 프랑스 유명 인사만을 촬영해 오던 스튜디오 아르쿠르는 올해 처음으로 동양 배우의 촬영을 기획하고 남자 배우를 찾던 중 이병헌이 지난달 ‘KBS 희망로드 대장정’ 아프리카 말리 편 촬영에서 돌아오는 길에 파리를 경유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섭외해 이뤄졌다. 카트린 르나르 대표는 “한국의 톱스타 이병헌씨는 강한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을 겸비한 보기 드문 배우”라고 말했다.  스튜디오 아르쿠르는 지금까지 촬영한 프랑스 영화인들의 사진을 모아 오는 24일부터 7월 18일까지 도쿄의 긴자에 있는 샤넬 넥서스홀에서 ‘스튜디오 아르쿠르와 프랑스 영화’ 전시회를 연다. 이병헌의 사진도 전시회 오프닝에서 브리지트 바르도, 알랭 들롱, 장 르노, 소피 마르소 등 프랑스의 유명 배우들과 나란히 공개될 예정이다.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 주말마다 “원전반대”… 日인구 서쪽으로

    주말마다 “원전반대”… 日인구 서쪽으로

    직장인 무라카미 나오토(42)는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오늘의 전력량’을 꼭 챙긴다. 시계나 온도계처럼 지하철역과 시내 주요 지점에서 그날의 예상 최대 전력수요를 확인할 수 있다. 17일에는 ‘예상최대 전력수요 3410만㎾-최대 공급력의 78.6%’라는 문구가 무라카미의 시선을 잡았다. 일본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고 있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19일로 100일을 맞는다. 대지진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복구 작업이 지체되면서 일본과 일본인의 생활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모처럼 도쿄를 찾은 외국인들의 한결같은 얘기는 일본 시내가 몹시 어두워졌다는 점이다. 대지진 이후 전력 부족 현상이 심해지면서 도쿄 중심가인 긴자와 시부야, 신주쿠 등의 대형 유흥업소나 백화점의 네온사인이 부쩍 줄었다. 대지진 이전에 비해 30% 이상 거리 풍경이 어두워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공공기관이나 전철역 등 교통시설에서 엘리베이터 운행 등이 대거 중단돼 노약자나 장애인이 상당한 불편을 겪고 있다. 좀처럼 대규모 시위를 하지 않는 일본에서 주말마다 원전 반대 시위를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달라진 풍속도다. 지난 11일과 12일에는 전국 150개 지역에서 시민단체 회원 등이 참가한 가운데 ‘원자력 발전의 단계적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정부는 전력 생산량 가운데 원자력발전 비율을 현재 30%대에서 50%까지 끌어올리기로 한 기존의 에너지 정책을 폐기했지만 시민단체는 완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수십 년째 줄어들기만 하던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의 인구가 대지진 이후 늘어나고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지난 3~4월 오사카부와 교토부, 효고현, 나라현 등 4곳의 전입자 수가 전출자 수를 웃돌았다. 특히 도쿄 등 간토(關東) 지방에서 간사이 지방으로 이사하는 이들이 많아져 4월에는 전년도보다 2000명 이상 늘었다. 대지진 이후 일본 기업들이 도쿄나 도호쿠(東北) 지방 근무자를 간사이나 규슈 등지로 옮긴 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기업들의 해외 탈출도 가속화할 조짐이다. 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 등으로 부품과 원자재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거나 아웃소싱을 확대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1∼3월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0.9% 감소한데 이어 대지진의 피해가 본격화한 4∼6월에는 마이너스 폭이 2.6%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지진 이후 일본 여성들이 굽 높은 구두와 치마 대신 플랫 슈즈와 바지를 선호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지진이 났을 때 신속히 대피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긴자에 위치한 마쓰야 백화점은 지진 직후부터 5월 말까지 플랫 슈즈의 매출이 50% 늘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수돗물 오염 5개 지자체로 확산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성물질 누출에 따른 인근 지역 수돗물 오염이 확산되고 있다. 도쿄 인근의 지바현 수도국은 24일 마쓰도시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요네야마 정수장과 노기쿠노사토 정수장에서 방사성 요오드가 각각 ㎏당 180㏃(베크렐), 220㏃ 검출돼 유아(1세 이하)의 음용 기준치 100㏃을 초과했다고 발표했다. 사이타마현에서는 가와구치시에서 120㏃의 요오드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후생노동성은 전날 이바라키현의 히타치시 정수장에서 최대 298㏃의 요오드가 검출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정수장 수돗물에서 요오드가 검출된 지역은 후쿠시마현과 도쿄도, 이바라키현, 사이타마현을 포함해 5개 지자체로 확산됐다. 도쿄도는 이날 요오드 검출량이 기준치를 밑돌자 유아에 대한 수돗물 섭취 제한을 해제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수돗물이 방사성 요오드에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음료수 관련 공장 일부가 조업을 중단하고, 외식업점도 유아용 물 제공을 중지한다는 방침을 속속 밝히고 있다. 커피 체인점인 스타벅스는 어린이에게 제공하는 음료수에 얼음을 투입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 슈퍼마켓체인회사인 다이에이도 문제가 된 정수장의 물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이러한 사실을 해당 점포에 알린 뒤 다른 물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미쓰코시백화점 긴자점도 고객들의 수돗물 사용을 중지시켰다. JP홀딩스는 회사가 운영 중인 보육원에서 제공하는 유아용 음료에는 정수기로 정제된 물을 사용하기로 정하고 물 확보에 나섰다. 삿포로 음료도 위탁 공장에 음료수 생산을 80% 증대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대지진으로 인해 물류망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아 간사이 지방에서의 음료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다. 한 기업 관계자는 “다른 업종의 기업들도 종업원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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