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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관폐쇄 공방”… 전운짙은 페만

    ◎“미 공격 임박설”… 이라크인,수도 탈출 러시/나토소속 미군 중동지역 이동 배치/페만운항 유조선 보험료 최고 6백%까지 치솟아/이란,“미­이라크전 불개입” 강력시사 ○…외국군이 이라크를 공격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수만명의 이라크인들이 바그다드시를 빠져나가고 있다고 24일 쿠르드족 반군들이 전언. 이들은 또 이라크군이 수백대의 탱크와 대포ㆍ병력을 쿠웨이트시내에 증강배치하고 있다고 밝히고 터키와 터키 남서쪽 나토기지에 면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자코시에 3개 사단병력을 배치했다고 전했다. ○미 외교관 12명 잔류 ○…미국은 24일 현재 이라크의 최후통첩을 무시한채 대사를 포함,12명의 대사관직원이 쿠웨이트주재 대사관을 지키고 있다. 이밖에 일본이 2명,프랑스는 대사가 휴가중인 상태에서 6∼7명이 대사관을 지키고 있다고. 스웨덴은 대사관에 1명,대사관저에 2명이 머무르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련은 대사관직원 전원이 철수를 완료한 상태. 소련 대사관측은 그러나 국제법상 소련 대사관은 계속 「열려 있는」상태라고 설명. ○…이라크와 미국간의 전쟁 발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수십척의 유조선과 화물선들은 치솟는 보험료에도 불구,페르시아만의 항로를 바쁘게 오가고 있다고 해운소식통들이 24일 전했다. 미국과 영국의 군함들이 대 이라크 봉쇄조치를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무력을 사용할 태세를 갖추고 페르시아만을 순찰하고 있으나 이들 선박에 물건을 실은 화물주들은 아직까지 가장 수익성이 높은 화물들을 운반하는 나머지 남은 항로를 통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관련,유엔이 내린 대 이라크 금수조치에 따라 페르시아만에 들어오는 유조선의 수는 격감했으며 페만 입구 호르무즈해협 부근의 푸자이라 부근에는 평상시 10∼12척이던데 비해 거의 80척이나 되는 유조선이 놀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선박 보험료가 3주전에 비해 급등,어떤 경우에는 무려 5백∼6백%나 인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ㆍ이란 및 기타 페만지역 아랍국가의 주요 석유수출항으로 통하는 항로는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식수ㆍ약품지원 호소 ○…요르단정부는 24일 수만명의 외국인 난민들이 식수ㆍ의약품 부족과 끔찍한 위생상태하에서 지내고 있다며 어린이용 분유 50만통을 비롯,기초식품들을 보내달라고 각국 정부에 호소. ○부시,두 아들과 골프 ○…부시 미 대통령은 페만의 긴박한 사태속에서도 23일 새벽 젭과 조지 등 그의 두 아들과 골프를 즐기는등 여유있는 모습을 과시. 골프를 치는 동안 페만사태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일체 답변을 하지 않았는데 최근 골프치는 동안에는 일체 심각한 사안에는 답변을 않기로 한 「새 방침」에 따른 것인 듯. 부시 대통령은 22일에도 국가안보보좌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와 보트놀이를 했고 테니스도 치는 등 여유를 보였다. ○…쿠르트 발트하임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25일 바그다드를 방문,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억류 외국인들을 석방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알로이스 모크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 24일 말했다. 모크 장관은 이날 로이터통신과의 회견에서 『발트하임 대통령은 외국인들이 이라크로부터 출국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히고 『특히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출국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은 24일 페르시아만에 집결해 있는 외국군이 나중에 철수만 한다면 이들이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강제로 물러나도록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라프산자니 대통령은 이날 페르시아만에서의 미국주도 군사력 증강에 대한 연설을 통해 『한가지 가능성은 그들이 공격을 중단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이를 개의치 않고 있으며 어느 누구로부터 오는 어떤 형태의 도움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라프산자니의 이같은 발언은 쿠웨이트를 둘러싼 미국­이라크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백히 시사하는 것이다. ○애 노동자 귀국 보장 ○…시리아는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탈출한 이집트 노동자들이 요르단을 경유,시리아의 항구를 통해 귀국토록 합의했다고 시리아 관리가 24일 말했다. 이 관리는 『시리아와 이집트 정부가 그간 접촉을 해왔으며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탈출한 이집트인들을 요르단을 통해 시리아로 이송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이집트인들은 선박편으로 귀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시리아 관리는 그러나 시리아의 타르투스ㆍ라타키아항을 통해 귀국할 이집트인의 수가 얼마나 될지는 밝히지 않았다. ○사막작전 수행 일환 ○…미국정부는 23일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기지들로부터 처음으로 미군을 중동지역으로 이전 배치중이라고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서독에 주둔하고 있는 미 육군 유럽 제7의료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이라크의 사우디아라비아 침공에 대비한 사막방어작전 수행의 일환으로 페르시아만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제7의료사령부로부터 이전 배치되는 군대 규모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국방부는 또 미 공군은 제435 공수부대의 C­130E 허큘레스수송기를 서독의 한 기지에서 페르시아만 지역으로 배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일 이라크 침공을 이끌었던 이라크 정예수비대가 쿠웨이트내 사우디 접경지역으로부터 철수,다른 부대들로 교체되고 있다고 한정보소식통이 23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은 『이라크가 공화국 수비대를 후방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 특수부대는 이라크의 사우디 공격시 언제든 전선에 투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16만명 가량의 이라크군이 여전히 쿠웨이트내에 주둔하고 있다고 말하고 오히려 더 많은 이라크군 사단들이 이라크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쿠웨이트 대사관원 소개 ○…소련은 쿠웨이트 주재 소련 대사관의 전 직원들을 대피시켰다고 유리 그레미흐츠키 소련 외무부 대변인이 24일 밝혔다. 그레미흐츠키 대변인은 소련 외교관들이 「현 중동위기로 인해 임무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쿠웨이트를 떠났다고 말했으나 이같은 소련의 조치가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생필품 배급제도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특파원은 유엔의 경제제재가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하여 이라크에서는 일부 생필품의 배급제가 실시되고 있으며 식품을 살 수 있는 곳을 아는 것은 중요한정보의 하나라고 23일 바그다드발로 보도. 이날 영국 TV기자로는 처음으로 바그다드에 들어간 BBC의 존 심프슨기자는 공항과 시가지가 전과는 달리 군복의 유니폼들만 보일 뿐 텅빈 것 같다고 첫소식을 전하면서 이라크인들이 미군의 공격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요르단,국경 재개방 ○…지난 22일 이라크와 쿠웨이트로부터 유입되는 엄청난 난민들을 미처 수용ㆍ처리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라크 국경을 폐쇄했던 요르단은 국경폐쇄 후에도 멈추지 않는 난민들의 쇄도로 국경폐쇄 조치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곧 국경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요르단 소식통들은 23일에도 2만6천명의 난민들이 이라크 국경을 넘어 입국했다고 전하면서 요르단 정부가 24일(현지시간)중 국경을 공식으로 개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르단왕 수단방문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페르시아만 사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중동국 순방의 일환으로 수단과 예멘을 잠시 방문하고 24일 상오 귀국했다. 한 정부 대변인은 후세인 국왕이 23일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과 요담을 갖고 곧바로 수단의 수도 하르툼을 방문,아마르 알 바시르 국가평의회의장과 회담을 가졌다고 말했다. ○영 15세 소년 풀려나 ○…페르시아만 사태로 이라크에서 억류됐던 스코틀랜드 소년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이라크에서 석방된 후 24일 암만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브리티시 에어웨이 항공사가 발표했다. 알렉스 카메론 바네트군(15)은 페르시아만 지역 단독 여행차 런던발 쿠웨이트행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지난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쿠웨이트에서 억류,바그다드로 이송됐었다.
  • 일 주가,30개월만에 최저/중동사태 영향/미ㆍ유럽서도 이틀째 폭락

    【도쿄=강수웅특파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페르시아만 연안의 정세에 따라 일ㆍ미ㆍ유럽의 주식시세가 21일부터 22일에 걸쳐 동시 급락,일본에서는 평균주가가 올들어 최저가격인 2만5천엔대로 떨어졌다. 22일의 도쿄(동경)주식시장은 중동정세가 긴박의 도를 더해가는 가운데 전날 뉴욕주가급락의 영향을 받아 철강ㆍ건설ㆍ전기ㆍ은행ㆍ증권 등 거의 전업종에 걸쳐 「팔자」일색이었다. 도쿄증권거래소 일경 평균주가의 이날 상오 종가는 전날 대비 1천18엔87전이 싼 2만5천2백78엔97전으로 금년들어 가장 싼 지난 13일의 2만6천1백76엔43전을 크게 밑돌았다. 하오에 들어서 2만4천8백76엔까지 떨어졌다가 2만5천2백10엔으로 올라선 가운데 끝났다. 2만5천엔대가 깨지기는 지난 88년 2월이래 약2년반만에 처음이다.
  • 기술향상만이 시장 넓힌다/홍성웅 국토개발연 연구위원

    ◎“중동역풍” 대응,해외건설업의 전략〈기고〉/고부가가치 기술투자로 경쟁력 확보를 격변하는 중동사태가 초래할 경제적인 파급효과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일시적인 유가급등은 진정된다 하더라도 배럴당 23∼25달러로 상승된 현재의 유가가 중동사태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된다는 것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우며 유가앙등에 따른 산업활동,물가,수출과 일반 경기 등에 미치는 효과는 비산유국인 우리에게는 대부분 부정적인 측면에서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동사태는 건설부문에서 더욱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우선 현지에 나가 있는 9백40여명에 달하는 우리 건설인력의 신변안전은 물론이고 공사의 차질과 현장에 보관중인 장비의 손실과 그리고 이라크와 쿠웨이트 건설의 총채권액 약 10억달러의 정상적인 지급이 어려울 경우 우리 업계는 격심한 자금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중동사태가 우리 건설업에 준 충격은 해외건설활동이 중동에 편중하여 왔다는 데서 더욱 심각하게 인식된다. 그동안 우리 업체가 중동에서 수주한총액은 해외공사 주주액 9백20억4천5백만달러중의 89.1%를 차지하였고 금년에도 리비아 대수로 공사계약으로 중동지방의 수주액이 금년도 해외공사 계약실적 54억7천1백만달러의 92.7%에 달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해외공사 수주는 중동의 크고 작은 사정에 따라 민감하게 변화하여 왔다. 80년대 중반의 유가폭락은 중동수주를 위축시켰으며 이에따라 해외건설도 침체되었다. 유가하락에 의한 건설투자 감퇴와 더불어 자국수주율의 증가추세로 말미암아 중동지역의 해외발주액은 80년대초에 비하여 89년 현재 5분의1이하로 축소돼었으며우리의 중동수주액은 같은 기간에 약 10분의1 수준으로 격감하였다. 이에따라 건설업계에서도 동남아시장과 미주 태평양연안,동구제국 등 시장다변화의 노력을 시도하여 왔으나 수주결과는 아직 미흡하여 중동건설 호황기의 수준에는 절반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금년말 종결될 것으로 예정된 우루과이라운드의 서비스교역 일반협정(GATS)에 따르면 협약서명국은 법제와 관행의 수정을 통하여 교역장벽을 점진적으로 제거하되 교역조건을 모든 서명국에게 무차별하게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협정이 발효될 92년 이후에는 해외건설은 국제적인 경쟁력에 기반을 둔 보다 첨예화된 각축장으로 진전되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긴박한 중동사태에 대비하여 정부와 업계에서는 신속하고 신축성있는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동안 추진하여 오던 건설시장의 다변화를 위한 노력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비스개방에 따른 국내건설시장의 보호와 해외시장의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술향상을 통한 국제경쟁력의 제고가 요체이다. 해외시장 다변화의 노력도 이러한 대외경쟁력에 바탕을 두지 않고서는 실효를 거둘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건설업계는 자재난과 함께 심각한 건설인력부족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건설기능인력의 부족은 신도시건설등으로 인한 건설수요의 폭등에서 온 단기적인 수급불균형이라기 보다는 소득증대에 따른 건설노동의 기피현상에서 오는 구조적인 요인에 의한 현상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해외건설사업에 투입된우리 인력의 비중은 급격히 감소되고 있다. 건설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력중 15∼30%의 관리직및 기술인력만이 우리 근로자로 충원되고 나머지 인력은 현지 또는 제3국의 저임금인력으로 충원되고 있다. 지금까지 단순시공을 위주로 하던 해외건설업은 우리 경제의 성장을 앞지르는 건설노임의 상승으로 인하여 국제경쟁에서의 상대적 우위를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업계와 정부는 기술집약적 고부가가치 건설부문인 엔지니어링 서비스에서 국제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과감한 전략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취약한 설계감리등 엔지니어링부문의 기술개발을 위하여는 지속적인 투자확대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술향상을 위한 인내가 없이는 우리 업계가 국내외의 건설시장 특히 고부가가치 건설부문에서 경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술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다른 묘책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경쟁력의 제고는 미 일 등의 선진국시장 뿐만 아니라 체제변화에 따라 사회기반시설등의 투자확충이 기대되는 동구권 국가에 진출하기 위하여 반드시갖추어야 하며 시장개방에 따라 잠식될 수 있는 국내건설시장의 보호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 건설업계의 최선의 해외진출 전략은 최선의 국내건설 보호전략과 일치한다. 이러한 기술개발을 위하여는 무엇보다 경쟁과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환경을 유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수주와 금융지원제도를 비롯한 제반 건설관련 법규와 관행은 우선 국내건설활동에서 생산효율에 바탕을 둔 경쟁을 통하여 기술향상을 이룰 수 있도록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88년이후 해외건설 발주는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나 가열되는 국제경쟁에서 금융능력의 중요성은 가중되고 있다. 수주업체가 소요비용을 조달하는 방법이나 구상거래의 방식,그리고 지분투자와 프로젝트운영을 통하여 투자자금 회수를 하는 여러가지 금융제공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금융지원제도의 개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해외공사의 관리능력을 갖추기 위하여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현지건설관리 전문가를 육성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현지 관리능력의 축척을 위해 단계적으로 건설부문을 현지에서 익히는 기술의 다양화가 「늦으나마 견실한」 시장다변화의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라크 한인보호/국적총재에 요청/김 한적총재

    대한적십자사 김상협총재는 11일 상오 제네바에 있는 적십자국제위원회(ICRC) 코르넬리오 솜마루가총재에게 전문을 보내 페르시아만 주변의 긴박한 사태속에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있는 한국인 근로자 1천3백여명의 보호조치를 요청했다.
  • 이라크는 화학무기 사용할까

    ◎“죽음의 도박” 벌여 「협상카드」 삼을 수도 페르시아만의 군사대치상황이 긴박감을 더해감에 따라 이라크가 과연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라크측은 미군의 공격이 있을 경우 지체없이 화학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의 화학무기사용은 용납될 수 없다고 경고할 만큼 인류최후의 무기인 화학무기사용이 이번 페르시아만 사태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공격을 감행할 경우 8년간에 걸친 이란과의 전쟁으로 사막전에 능숙한 이라크군과 지상대결을 벌이기보다는 전력이 월등한 해ㆍ공군력을 이용한 화력전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미국의 공중전에 대해 이라크로서는 달리 효과적인 대응책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국의 민간인들을 최대한 희생시켜 미국을 휴전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화학무기사용이란 극한 방법을 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화학무기가 1925년에 발효된 제네바협정에 의해 사용이 금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화학무기사용 우려가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이유는 이라크가 과거에도 몇차례나 사용 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과의 전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86년 두차례나 독가스를 사용,1백∼2백명의 이란 민간인 희생자를 냈고 88년에는 자치권을 주장하는 이라크 북부지역의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에 대해 수포성가스(이페리트가스)를 무차별 살포,수천명의 주민을 질식사시켜 전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화학무기는 무색ㆍ무취의 액체가스로 인체의 신경계통을 마비시켜 구토 두통 실명을 유발하고 결국은 3∼4시간내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살상병기로서 크게 수포성가스 신경가스 혈액가스 질식가스 무력화 작용제 등으로 분류된다. 이라크는 현재 수포성가스와 신경가스 위주로 6천∼7천t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두가지 가스를 혼합한 이원화화학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류에 관계없이 0.1∼0.5㎎ 정도만 체내에 들어가도 숨지게 되고 10t 정도만 갖고도 40㎢ 지역내에서 가스에 노출된 사람들의 절반정도를 사망시키는 위력을 감안하면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는 화학무기의 양은 엄청난 것이다. 게다가 이라크가 다량보유하고 있는 사정거리 5백㎞의 스커드 B미사일과 사정거리 70㎞의 프로그미사일에 화학무기를 적재해 발사하거나 폭격기에 화학무기를 적재해 뿌릴 경우 피해영역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이라크는 핵탄두 1t 제조비용이 1백만달러인데 비해 화학무기는 1만달러 밖에 안들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의 핵무기라 할 수 있는 화학무기생산을 80년대에 들어 서둘러 왔다. 이번에 파병된 미군들이 캘리포니아주의 모하비사막에서 적응훈련을 거쳤고 철저한 방독방비를 갖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섭씨 50도나 되는 사막의 무더위 속에서 중장비를 지닌 채 매일 23ℓ 정도의 식수를 마셔야 하는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화학무기 공격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 아랍국 긴급 정상회담 배경과 전망

    ◎“중동 불끄기”… 아랍 결속의 시험대로/이라크군 철수ㆍ평화군 창설 논의/후세인 반발,타협안 제시 불투명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긴박한 중동위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긴급 아랍 정상회담이 10일 카이로에서 열렸다.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의 긴급제안에 의해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은 당초 9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하루 연기됐다. 이집트 관리들은 각국 대표들의 카이로 도착이 늦어져 연기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할 뿐 내면적으로는 각국간의 이견조정을 위한 막후협상의 필요성 때문에 연기된 것이다. 이집트ㆍ사우디아라비아ㆍ요르단ㆍ리비아 등 21개 아랍연맹 대부분의 나라가 참석하는 이번 정상회담은 그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졌으며 중동사태 해결을 위한 실효성있는 방안에 합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무바라크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파멸적인」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이번 정상회담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정상회담이 외세의 개입 없이 아랍인들 스스로가 중동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무바라크대통령은 중동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군의 철수 ▲쿠웨이트 합법정부의 원상회복 ▲쿠웨이트와 이라크간의 완충역할을 할 「아랍평화군」의 창설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같은 논의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이라크가 이미 쿠웨이트와의 합병을 선언했기 때문에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이라크군의 철수와 알 사바 쿠웨이트왕정의 복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아랍평화군의 창설문제에 대해서도 무바라크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아랍국가 정상들은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의 군사력으로 이라크에 대응할 수 있는 힘과 결속력이 부족한 현실을 감안할때 아랍평화군의 실효성에 의문이 남는다. 더욱이 아랍평화군이 창설된다해도 강력한 군사강국인 이라크의 군사력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때 쿠웨이트가 가입돼 있는 GCC(페르시아만 협력협회)는 상호방위 조약을 맺고 있는 엄연한 안보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무력침공에 대한 어떤 군사적 대응조치도 하지 못했다. GCC뿐만 아니라 다른 아랍국가들도 이라크의 불법적인 침략행위에 대해 강력한 응징은 고사하고 비난성명조차 며칠 후에나 겨우 발표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무바라크대통령은 또 이라크와의 협상안으로 ▲쿠웨이트에서 자유선거를 통한 새정부 구성 ▲쿠웨이트와의 영토분쟁 해결과 이라크의 재정ㆍ전략적 이익을 인정하는 포괄적인 협상 등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라크가 마지막 순간에 아랍정상회담에 참석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라크가 이같은 「무바라크 구상」에 어느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라크가 반응을 보일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외교소식통들은 후세인이 이미 쿠웨이트를 합병하는등 강경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협상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이라크가 정상회담에 참석한 것은 이보다는 오히려 미국을 비난하고 쿠웨이트 침공의 「정당성」을 강요하기 위한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라크대표단도 『이라크는 미국의 위협에 대해 아랍권의 단결을 호소하기 위해 참석하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이라크는 실제로 쿠웨이트 합병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미국을 강도높게 비난하며 사우디에 진주한 미군의 철수를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아랍국가들은 이라크의 강변에 전혀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랍국가는 물론이고 당초 이라크의 입장을 지지했던 요르단도 쿠웨이트의 합병이후 안보의 위협을 느껴 이미 반이라크 노선으로 돌아섰다. 아랍국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이라크는 이제 더이상 형제국이 아님을 실감했을지도 모른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아랍세계에서조차도 그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것이다. 아랍국가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명목아래 정상회담에 들어갔으나 군사강국인 이라크의 야욕을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임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우디에 이미 미군이 진주하고 서방 강대국들의 함대가 페르시아만에 속속 집결하는가 하면 유엔의 각종 대이라크 제재조치가 발효되는등 이라크에 대한 정치ㆍ군사ㆍ경제적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이번 회담이 열리고 있어서 이라크도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아랍국가들은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라크로부터 중대한 양보를 얻어낼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대이라크 경제봉쇄강화와 더나아가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터키,이라크원유 수출 봉쇄/자국 항구서 선적 금지

    ◎송유관 사실상 폐쇄/미·영·소·불함 집결… 페만 긴박/이라크 “외국인 출국 허용… 압송자 석방 검토” 【앙카라·이스탄불 로이터 연합】 터키정부는 7일 자국의 지중해 항구들에서의 이라크산 원유 선적을 금지시킴으로써 이라크 원유수출량의 절반이상에 대한 수출이 사실상 봉쇄되었다. 메흐멧 케세실러 터키 석유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송유관을 폐쇄하는 것은 이라크의 결정사항이나 우리가 선적을 중단하면 이라크도 어쩔 수 없이 송유관을 폐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3·4면〉 터키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무기와 석유등 이라크와의 모든 무역을 실질적으로 금지한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른 것으로 이는 이라크를 경제적으로 마비시키려는 국제적인 노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터키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터키정부가 터키내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자산을 즉각 동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제다·바그다드·워싱턴·모스크바 외신 종합】 쿠웨이트주둔 이라크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접경지역의 진지를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영·소·프랑스 군함들이 페르시아만으로 집결하고 있어 중동지역의 긴장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현재 중동지역에는 이미 미 항모 인디펜던스호등 13척의 미 함정이 도착했고 다른 항공모함인 아이젠하워호·사라토가호 등이 지중해로 항해중이며 유도미사일을 탑재한 소련구축함 1척과 프랑스 프리킷함 1척도 페르시아만으로 항진중이다. 미 해군전투함대가 페르시아만 인근해역의 초계활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중동위기에 대비해 창설된 미국의 신속배치군(RDF) 소속부대원들이 페르시아만에 급파됐다고 외교관들이 밝혔다. 또 약 2천1백명의 미 해병대가 적전 상륙용 함정 「USS인천호」와 4척의 수륙양용 군함에 분승,중동의 미 군사력을 지원하기 위해 6일 출발했다고 한 보도가 전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 86년 미국의 리비아공습때 동원됐던 것과 같은 기종인 FB­111폭격기들이 이라크접경 터키영내로 이동했다고 확인했다. 미 국방부는 또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무역봉쇄를 실시하려면 소련을 포함한 다국적 해군의 창설이필요함을 부시대통령에게 제안했다고 워싱턴포스트지가 보도했다. 【카이로·알렉산드리아·모스크바·앙카라 AP UPI AFP 연합】 미국을 주축으로 한 다수 국가들의 석유금수조치와 기타 제재조치를 받고 있는 이라크는 7일 쿠웨이트내에서 체포,바그다드로 압송한 약 4백명의 외국인들의 석방을 검토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라크는 또 쿠웨이트나 이라크에 거주하는 미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을 포함,모든 외국인들에게 인접국 요르단을 통한 육로출국을 허용했다고 요르단 관리들이 밝혔다. 이날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는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대통령에게 자신의 특사를 파견,『현재 상황과 이의 전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이집트 소식통이 밝혔다.
  • “이라크 제재땐 보복” 쿠웨이트 괴뢰정부 경고

    ◎「페만위기」 나흘째… 긴박한 현장/“송유관 폐쇄는 대결 조장” 터키 위협/“이라크 응징”… 부시,숨가쁜 통화외교 ○…이라크의 지지를 받는 쿠웨이트 신정부는 5일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대한 제재를 하는 국가들에게 처음으로 경고했다. 쿠웨이트 신정부는 외무장관 성명을 통해 『쿠웨이트와 이라크에 보복을 하려는 국가들은 그들의 시민들이 쿠웨이트내에 남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신정부는 『쿠웨이트 신정부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는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단절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타하 야신라마단 이라크 제1부총리는 5일 터키에 대해 이라크의 송유관을 폐쇄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그는 이날 터키를 방문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나는 오잘 터키대통령에게 송유관의 폐쇄는 두나라사이에 대결의 분위기를 조성하게 될 것임을 경고했다』고 말했다. 이라크의 송유관은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하고 있으며 이와관련,부시 미대통령도 이날 오잘대통령및 사우디국왕과 전화를 통해 협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선 경제원조 동결 ○…미국과 EC(유럽공동체)가 이라크와 쿠웨이트산 원유의 도입 중단 등 대이라크 제재조치를 발표한 가운데 일본과 영국,이탈리아 스페인이 5일 이라크에 대한 각각의 제재조치를 발표했다. 일본의 사카모토 미소지(판본삼십차)관방장관은 이날 일본은 이라크와 쿠웨이트로부터 원유도입을 중단하고 이들 두 국가에 대한 모든 수출을 중단하는 한편 이라크에 대한 경제원조를 전면동결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카모토장관은 또 일본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항의하기 위해 이라크및 쿠웨이트와의 모든 자본교류를 중단하는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셰이크 자비르 알 아마드 알사바쿠웨이트국왕이 서신교환과 전화통화를 했다고 미국과 쿠웨이트 관리들이 4일 밝혔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무부관리는 부시대통령의 편지가 걸프만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사우드 나시르 알 사바 쿠웨이트대사를 만난 존 켈리차관보에 의해쿠웨이트의 「합법정부」에 전달됐다고 말했다. ○“이라크철군 의심” ○…이라크군은 5일 쿠웨이트에서 철수를 시작했다고 발표했으나 미국정부는 이같은 발표에 회의적인 견해를 표시했다. 말린 피츠워터 미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이라크군의 철군 발표에 대해 독자적으로 확인할 만한 정보를 갖고있지 않다고 밝히면서 지난 수일동안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취한 행동은 그의 의도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은 유엔 안보리 회원국들과 대이라크 제재조치문제를 놓고 협의중이라고 전하고 유엔 안보리가 5일 상오(현지시간) 회동,대이라크 제재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할 것임을 시사했다. 캠프 데이비드별장에서 주말 휴가를 보내고 있는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투르구트 오잘 터키대통령과 파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등과 전화통화를 했으며 5일 하오(현지시간) 백악관으로 돌아와 보좌관들과 최근 상황을 논의할 예정이다. ○중국,무기판매 중단 ○…중국은 5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관련,이라크에 무기를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말을 인용,『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이라크비난 결의안에 찬성했기 때문에 이라크에 대한 무기판매를 중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도했다. ○시민에 마스크 배포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때를 같이하여 이스라엘군은 곧 모든 시민들에게 가스마스크를 배포할 것이라고 군소식통이 5일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모두 8백여명 사상 ○…이라크군이 지난 2일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후 지금까지 6백∼8백명의 쿠웨이트인들이 죽거나 부상했다고 쿠웨이트의 병원 소식통들이 4일 말했다.
  • 시청자만 괴롭히는 파행 방송(사설)

    3개월 만에 또다시 시청자들은 인질이 되었다. 지난번에는 그래도 KBS­TV 2채널과 라디오들에 한정되었었지만 이번에는 MBC,CBS,PBC 등 4개 방송사가 연대로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시청자들은 모든 방송의 절뚝거리는 몰골을 한동안 지켜보아야 할 모양이다. 시청자가 곤혹스러운 것은 방송이란 것이 이렇게 간단히 제작을 거부해도 그만인 상품인가 하는 점이다. 기업이 독과점 행위를 하면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제하고 소비자보호법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방송은 그같은 제도조차도 초월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방송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신성한 언론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정치성 투쟁을 위해 시청자의 권리는 종종 유보되고 볼모로 삼아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 방송노조의 논리인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방송의 언론적 역할을 침묵시키는 방법이 과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봉사에 합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방송법 개정이 정부의 「언론장악음모」를 내포하고 있다는 논거로 방송노조들은 민방설립을 들고 있다. 방송사간의 시청률 경쟁을 유도하여 공정방송의 기능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윤을 초월하여 공영으로 존립하는 기존방송이 새로 출현할 상업방송과 경쟁하여 공정성을 지키지 못할 만큼 허약하리라고는 우리는 생각지 않는다. 그 보다는 안일하게 독과점체제로 유지하던 방송제작을,치열한 경쟁속에서 고달프게 이끌어가는 일에 미리부터 과잉으로 민감해진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이 맞다면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나태한 심산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만만한 시청자만을 골탕먹인다는 사실에 국민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방송법 개정의 과정을 통해 정부 여당이 보여준 자세에 대해서도 국민은 불쾌한 바가 많다. 처음 개정안에서 「선심」이라도 쓰듯 문제가 된 조항들을 쉽게 쑥쑥 뽑아버리는 태도가 국민에게는 참으로 허망감을 준 것이다. 무신경하고 분별없게 「독소」를 방치했다가 지적을 받고 뽑아버린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의 통과가긴박해서 그렇게 쉽게 양보했다면,그토록 긴박할 이유가 무엇인지 국민도 함께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 때문에 마치 방송정책이,현업사의 노조와 정부간에 협상할 수 있고 쟁의대상이 될 수 있는 사안인 것 같은 생각을 정당화시키는 결과도 부르지 않았나 여겨진다. 방송법이나 방송정책이 현업 방송노조의 쟁의대상이 될 수는 없다. 관련 직업인의 권리로 의견을 토로하고 주장을 펼칠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도 방송사 종사자는 「방송의 장」을 폐쇄해서는 안된다. 또한 직업인은 자기 직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마지막 행동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방송사의 「제작거부」는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패다. 그것을 너무 남용하여 우리 시청자들은 이제 파행방송에 불감증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 때문에 역으로 정부가 계획중인 새로운 민간방송의 출현을 고대할 지경이 되기도 했다. 특히 상처에서 아직도 진물이 나오는 KBS의 악몽을 생각하면 시청자 모두는 이제 참을성의 한계를 느낀다. 그래도 강행해야 할 파업의 명분이 있는 것인지 회의를 느낀다.
  • “사퇴” 충격파… 의사당엔 긴장감/본회의·법사위 이모저모

    ◎야 한때 본회의장 점거… 개의 지연/법사위선 한밤 일전대비 신경전 국회는 13일 하오 본회의를 속개,가까스로 민생관련법안등 10개의 안건을 처리했으나 광주보상법 상정여부등을 둘러싼 법사위의 여야대치 상황은 이틀째 계속되는 파란을 거듭하는 가운데 격돌의 긴장도를 더 높이고 있다. 민자·평민 양당은 이날 민생관련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돼 있었으나 쟁점법안등도 함께 기습처리를 할 것을 우려한 평민당측이 한때 본회의장을 점거,본회의 개의도 한시간 늦게 이뤄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또 평민·민주당의 일부 소장의원들의 사퇴선언등으로 이날 의사당 주변은 극도로 어수선한 분위기. ▷본회의◁ ○…이날 하오 2시 개의키로 했던 국회 본회의는 법사위와는 별도로 평민당측이 국회의장석과 의장출입문등을 몸으로 봉쇄,한시간여 여야대치 및 실랑이를 벌이는 해프닝을 연출. 평민당은 이날 본회의 저지를 위해 의장이동 저지조,의장출입문 봉쇄조,의장석 점거조 등 3개조를 편성,하오 1시50분쯤부터 행동을 개시. 이철용·정상용의원 등평민당측의 의장이동 저지조가 국회의장 비서실에서 박준규의장의 출입을 막고 있자 박의장은 하오 2시15분쯤 저지조의 「양해」를 얻어 이들의 「호위」속에 잠시 본회의장 입구까지 들어와 회의장 분위기만 살피고 다시 퇴장. 박의장이 들어오자 민자당 김영삼대표최고위원석 주변에서 대책을 숙의하던 김동영원내총무가 단상의 평민당 의원들을 향해 『민생법안은 처리키로 해놓고 여야 합의한 것도 못하느냐』고 고함을 지르자 단상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노승환 전부의장이 『야,뭐가 합의야』라며 맞고함을 질렀고 이어 민자당측 의석에서도 『야가 뭐야,국회부의장까지 해놓고…』등 야유가 난무. 또 지난 12일에 이은 법사위의 여야대치 상태가 별다른 해소기미를 보이지 않자 김중권법사위원장등 민자당측 법사위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한때 자신들끼리 법사위 운영대책등을 논의하는 모습. 그러나 평민당측의 본회의 저지가 계속되는 동안 민자당소속 대부분 의원들이 회의장을 떠나지 않았으나 평민당측의 단상점거조등에 대해 별다른 「촉발」 발언등을 자제하는등 직접 충돌은 자제. 한시간여 저지가 계속되자 박의장은 여야 총무단을 불러 이날 본회의는 민생관련법안만 처리토록 하고 본회의 속개시간에는 법사위를 열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체결토록 해 하오 3시에야 가까스로 개의. ▷법사위◁ ○…본회의 산회직후 김중권법사위원장이 국회의장으로부터 14일 상오 8시까지 계류법안을 처리토록 해 달라는 통보를 받은 뒤 의원회관내 자신의 사무실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위원장실을 떠나자 법사위원장실 및 회의실등은 평민당측 의원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점거된 채 한심한 분위기. 특히 민자당측 일부 의원들은 여야충돌을 피하기 위해 법사위 회의실등을 떠났고 나머지 의원들도 평민당측의 눈에 띄지 않는 의원회관등으로 자리를 옮겨 휴식을 취하는등 향후 격전이 예상되는 일전에 대비. 하오 9시쯤 저녁식사를 한 뒤 김중권위원장이 위원장실로 들어오자 평민당측 법사위원들은 『어제도 밤을 새웠는데 민자당측이 강행 처리를할 방침을 정했다면 몇시에 처리할 것인지 시간을 알려줘야 우리도 대비할 것 아니냐』며 느긋한 표정을 보이자 김위원장은 『총무단의 지시에 따를테니 양해해 달라』고 대답. 여당측 법사위원들이 모두 자리를 뜬 가운데 평민당 법사위원과 저지조로 편성된 의원들은 이날 밤 자정을 넘어 14일 새벽까지 회의장 점거를 계속. 그러나 민자당측 법사위원이기도 한 박희태대변인이 이날 저녁 회의장에 들러 저지조로 대기하고 있던 평민당 김태식대변인에게 『동업자로 말하는데 오늘 저녁은 편히 쉬어도 될거야』라고 언질을 준 탓인지 평민당측 의원들도 대부분 긴장이 풀린 표정. ▷여야 총무회담◁ ○…「강행통과­실력저지」의 극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날 상오 열린 여야 총무회담은 민자당의 「김영삼­김대중회담」 제의에 평민당이 지자제실시 약속 및 방송법·국군조직법 재심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응할 수 없다고 맞서 20분만에 결렬. 민자당의 김동영총무는 『원만한 국회운영을 위해 여야 대표회담을 제의했는데 평민당이 4당시절 합의내용을 들고나와 거부했다』며 『두분이 만나면 해결안이 나올텐데 당리당략을 내세워 거부했다』고 총무회담 결렬 책임을 평민당에 전가. 김영배 평민당총무는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대표회담을 제의해왔다면 어떤 타개방안을 내놔야 하는데 무조건 대표들이 만나자고만 하고 있다』면서 민자당의 임기응변식 대처를 비난.〈최태환·김경홍기자〉
  • 한반도에도 신데탕트 바람 분다/미ㆍ유럽서 본 「한국통일의 전망」

    ◎미국의 시각/동구변혁이 분단해소의 촉매로/평양 폐쇄주의가 장애물… 자유왕래 실현돼야 일찍이 공산주의의 멸망을 예고했던 미국의 석학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교수는 『유럽문제가 해결되면 국제적 관심이 한반도에 쏠려 한반도 통일 논의가 가속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한반도 통일은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체제의 승리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카터 미행정부에서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역임한 브레진스키의 이같은 낙관론은 지난봄 동북아 문제협의회에 참석한 한국 의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피력된 것이다. 브레진스키는 『2차대전후 인위적으로 분단된 한­월­독 가운데 월남과 독일은 어느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이겨서 분단문제를 해결했다』고 상기시키며 『남북한 통일문제가 한 체제에 대한 다른 체제의 승리 방식으로 수렴될 것인지,아니면 타협형이나 제3의 방식으로 수렴될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앞으로 북한 공산체제는 살아 남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과는 뻔하다』면서 한반도에서 독일식 통일의 재현 가능성을 강력히 예견했다. 북한을 압도하는 남한의 경제력과 인구도 이같은 예견의 바탕에 깔려있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남북한문제 전문가 가운데 소련의 개혁과 동구공산주의의 몰락이 앞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촉진시키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을 현실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도 아직은 없는 것 같다. 통일의 당사자인 남북한간에 기초적인 교류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문제를 운위 한다는 것이 시기상조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브레진스키의 견해도 한반도 통일의 긴박성을 역설했다기 보다 세계적 변화의 맥락에서 통일 여건이 호전 됐음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스티븐 로젠펠드는 『2차대전후 해방된 한반도를 통일국가로 건설하는데 실패했던 미국과 소련은 이제 냉전 종식과 더불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독일과 동구의 산 경험을 토대로 한반도 통일과 사회주의 국가의 자유시장 경제체제로의 전환 방안에 관한 미소의 공동 연구가 지금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이 일을 바로 추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미국정부의 정책은 무엇인가. 국무부의 리처드 솔로몬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은 한반도 통일을 환영한다. 우리는 남북한 대화가 통일달성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통일을 촉진시킨 최근 사태들은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분단된 지역의 대표들과 분단 정부의 관계관들이 긍정적인 대화를 할 경우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기반 위에서 통일의 기초가 마련된다는 교훈을 우리는 독일에서 터득했다. 한국에서도 그와 같은 사태 발전이 있기를 우리는 고대하고 있다』 솔로몬의 답변이 시사하듯이 한반도에는 아직까지 통일의 기초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시각이다. 한반도가 통일 되려면 우선 남북한 사이에 긴장이 완화되고 자유 왕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미국은 말하고 있다. 또한 신뢰구축 조치가 이룩되면 북한이 통일의 최대 장애요인이라고 주장하는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추가 감군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입장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문제들을 논의할 남북대화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판국에 어떻게 먼 통일의 시기와 방법을 예측할 수 있겠느냐고 미정부 관계자들은 반문한다. 최근 뉴욕 타임스지는 『지난해 독일 통일의 돌파구를 열었던 신뢰구축 조치가 한반도엔 아직 존재하지 않고 있다』며 남북한의 극적인 통일 가능성을 배제했다. 타임스는 그 이유를 『남한과의 서신 교환 및 전화통화를 봉쇄하고 무역도 거의 하지 않는 북한의 폐쇄주의』에 돌렸다. 저명한 아시아통인 로버트 스칼라피노교수는 통일문제 접근과 관련한 남북한 정부간의 대립,즉 남쪽은 경제 및 문화 접촉의 증진을 통한 신뢰 분위기 조성을 선호하는 반면 북쪽은 처음부터 광범위한 정치 군사 협정을 요구하고 있는 이견의 해소를 선결해야 할 큰 과제의 하나로 지적했다. 한반도 통일의 전제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북한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미국의 전문가들은한결같이 낙관론을 펴고 있다. 특히 78고령인 김일성의 사망은 북한의 변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아 강조한다. 미국무부의 북한문제 전문가 존 메릴은 『북한이 사회주의 세계에 충격을 준 민중소요를 피하려면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 시키기 위한 노력을 증대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문제는 북한이 모방할만한 경제개혁의 모델이 사회주의 세계에는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일의 관건인 북한의 변화는 이처럼 돌파구 없는 경제문제에 의해 촉발될지도 모른다. ◎유럽의 시각/「신뢰의 장」 넓힐 유연한 자세 필요/독일과는 달리 한반도문제는 예측못할 난제 한반도문제를 보는 유럽의 시각은 대체로 두가지로 분류된다. 그 첫번째는 최근의 국제정세가 한반도문제해결에 어느때 보다 성숙한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을 토대로 한 긍정론이다. 이 견해는 대세의 흐름에 힘입어 한반도문제도 이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으며 통일이라는 좋은 열매를 기대해 봄직도 하다고 사뭇 희망적인 전망에 인색치 않다. 그러나 또다른 쪽에서는 한반도문제는 여전히 앞을 내다 보기 힘든 난제중의 하나로 판단하고 있는 신중론이 만만치 않다. 이들은 남북한의 분단해소문제는 동서독의 그것과는 기초부터 다를 뿐만 아니라 분단상황이나 북한정권의 특수성 등으로 미루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동서진영간의 해빙의 물결이 도도히 흐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한반도만이 예외지역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너무도 부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이 유럽사람들의 인식이다. 파리대학의 기 소르망교수는 『한반도의 분단이 얄타체제의 산물인 점을 고려한다면 이념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얄타체제가 붕괴되어 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당연히 한반도의 분단해소를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전제,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국제정세변화는 분단해소작업의 착수를 위한 좋은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의 전문가들은 절차만 남겨놓고 있는 소련의 한국승인,중국과 한국과의 관계개선노력,미국과 북한과의 접근 움직임등은 동북아평화정착에 필수조건들이며 이러한 조건들이 하나 하나씩 충족되어 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야말로 한반도통일작업의 시작단계로 보아야 마땅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폴란드 국제문제연구소의 레세크 스즈크박사는 한국정부가 기울이고 있는 대북한 대화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아주 가까운 시기」에 그러한 노력의 성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같은 견해들은 한반도통일문제와 관련한 외적요인 또는 주변환경변화추이를 토대로 한 분석들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최근 북한의 자세가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즉 지난달의 미군유골 인도,미국에 대한 비난 중단,대서방접근 노력강화 등은 전례없는 온건노선의 표방으로 받아들여진다(프랑스ㆍ르몽드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의 움직임은 그들의 2대동맹국인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관계개선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참아내기 힘든 국제고립화 현상이 초래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역대 어느 정권보다훨씬 차원 높은 대외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이미지가 한껏 고양되어 있는 한국으로부터의 외교적 도전에 대처해야만 하는 북한은 어쩔수 없이 온건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고 개방을 준비해 나가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동ㆍ서독과는 달리 직접 전쟁을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좌ㆍ우익의 극심한 대립의 상처를 안고 있는 한반도의 분단해소문제는 상호불신의 제거작업에서부터 착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국 리즈대학의 에이든 포스터카터교수도 북한에 있어서 「변혁」이나 「개방」이라는 단어는 그들의 이른바 「주체사상」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정권유지의 틀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급격한 변화는 기대하기가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말하자면 변혁과 개방을 전제로 한반도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는 북한이 쉽사리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공산주의 또는 스탈리니즘의 패퇴,이데올로기의 가치전환으로 표현되고 있는 동구의 변혁과 같은 이념적 전환이 북한에서도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관계전문가들은 북한의 이같은 자세와 입장을 고려해 가면서 모처럼 성숙되고 있는 국제정치질서의 호기를 놓치지 말고 적절한 대응책을 세워나갈 때 한반도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에 곁들여 한국은 동구나 소련ㆍ중국과 국교를 트고 나면 북한도 어쩔 수 없이 문을 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단순논리에서 벗어나 민족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상호신뢰와 양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이며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는 충고가 뒤따르고 있다.
  • “위기극복” 통치권차원의 결의 표출/노대통령 「행동선언」의 배경

    ◎“더이상 방치하면 체제위협”상황 인식/계속 악화되면 충격요법도 배제못해 노태우대통령이 국정의 위기관리를 직접 지휘하기 시작했다. 국가통치권자로서 그동안 내각을 통해 한걸음 떨어져 국정을 운영해 왔으나 지금부터는 국정의 현장에서 강력하게 「고삐」를 당기기로 작심한 것 같다. 노대통령은 1일 이른 아침 서울시경 제1기동대와 경기 군포의 산업현장을 둘러보면서 노사안정과 법질서를 강조한 데 이어 청와대 참모들에게 별명이 있을 때까지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이에 앞서 증권값이 대폭락,증시가 붕괴현상을 보이던 30일 하오에는 물가ㆍ부동산 특별대책을 내각에 긴급지시했고 해외출장중인 재무장관을 급거 귀국토록 하는 한편 청와대에 부동산 특별대책반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심야 경제장관회의가 열렸고 1일 상오엔 고위 당정회의가 개최되었다. 이같은 일련의 긴박한 국정의 행보는 노대통령이 더이상 청와대의 깊숙한 집무실에만 파묻혀 있지 않고 국정의 최선두에 서서 정부의 정책집행을 직접 눈으로보고 피부로 느껴가면서 독려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러한 「행동선언」 배경에는 현시국과 국정상황이 단순한 일과성불만ㆍ불안차원을 넘어 「6공체제의 위기」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상황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연말 5공청산에 이어 금년들어 3당통합을 도출해냄으로써 정치의 안전판을 마련했다는 긍정적 평가는 온데간데 없고 거대여당 민자당의 잇단 내분으로 국민들은 실망감과 함께 배신감으로 팽배해 있었다. 전ㆍ월세값은 폭등하고 금융실명제의 포기에도 부동산 값은 계속 오르며 물가는 금년 목표선을 위협했다. 더욱이 1ㆍ4분기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산업현장은 KBS사태 현대중공업 파업을 계기로 전국이 순식간에 악성노사분규로 휩싸이는 조짐을 보였으며 증시는 바닥을 모르는 대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정부당국자는 금년 경제성장률 7%달성전망등 일부 거시경제지표를 들어 낙관론속에 머물렀고 집권당간부들은 보선의 참담한 패배에 대해 말로만 민심의 이반을 떠들면서도 행동은 내부권력쟁투에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집권민자당의 인기가 10%선으로 곤두박질치고 『대통령은 도대체 뭘하고 있느냐』는 민초의 소리가 드높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노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핵심참모로부터 사회저변의 이같은 위기감을 광범위하게 보고받고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비로소 정치ㆍ경제ㆍ사회 제반 분야에서 허트러진 전열을 더이상 방치했다가는 국정의 위기,체제의 위기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청와대를 엄습한 것이다. 지난 2년간 참고 기다리면서 사회전반의 자생력과 자율성을 기대해온 것이 고작 경제ㆍ사회의 불안과 혼란으로 나타나느냐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국정의 최고책임자를 발벗고 나서게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노대통령이 국정현장점검 첫날 경찰기동대와 산업현장을 둘러보았다는 것은 앞으로의 국정방향과 관련,상당한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특히 『기업이 개인의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산업현장) 『법과질서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기동대)이라고 말한 대목은 많은 시사를 던져주고 있다. 현대중공업파업 농성현장에 이어 KBS정상화 부결투표 직후 경찰력을 투입한 것은 바로 공권력에 의한 확실한 법질서확립 의지를 선보인 것이며 이같은 강공책은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 대구시경의 대학생 화염병피습사건 책임을 물어 시경국장을 당일로 경질한 것이나 전출경관의 농성사태책임을 물어 전북 도경국장을 교체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치안당국에서는 이에대한 책임추궁을 머뭇거리고 있었지만 청와대측은 대통령의 감을 재빨리 포착,이를 전달함으로써 즉각적인 인사조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문제도 이제부터는 직접 챙기겠다』고 밝힌 노대통령은 기업의 사회적 윤리를 특히 강조할 방침이다. 노대통령이 증권ㆍ단자ㆍ보험회사의 보유부동산을 매각하여 증시자금으로 활용토록 하라고 지시한 이면에는 상장기업들이 호황때는 부동산투기를 하고 불황땐 정부에 의존하는 기업의 반사회적 행태에대해 엄중히 경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자구노력을 등한히 할 경우 다소 희생이 따르더라도 차제에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것이 노대통령의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의 국정일선 등장은 국민의 사회ㆍ경제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고 국정최고책임자의 위기극복 의지를 일반에게 심어준다는 측면에서 단기적으로는 분위기조성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고 통치권자의 「행동」이 제스처로 끝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어 장기적인 면에서 어떤 효과를 가져올 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또한 대통령이 경제문제에 발을 벗고 나섰지만 물가와 부동산을 잡아 증시를 북돋우겠다는 경제처방이 당장 피부로 나타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국민의 갈등을 쉽게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으로서는 경제ㆍ사회에 관한 대통령의 긴급명령발동 등 충격적인 조치의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이나 대통령이 행동에 나섰는데도 상황이 계속 악화될 경우 그같은 조치의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을 것이다.
  • 파국은 모면… 「조건부 불씨」 잠복/KBS사태 정상화의 언저리

    ◎노ㆍ사ㆍ정 극한상황 막으려 숨가쁜 접촉/“노조요구 조건 보장” 약속이 변수로 공권력 재투입이라는 극한상황으로 치닫던 한국방송공사(KBS)사태가 사실상 파업 17일째인 28일 하오 진통을 거듭하던 끝에 극적인 타결점을 찾아 일단 파국을 모면했다. 비록 서기원사장 퇴임요구는 계속할 것이라는 단서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KBS사원들은 방송정상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일단 방송제작에 참여키로 함으로써 국민의 방송인 KBS가 더이상의 파행방송을 중단하고 정상을 되찾게 된 것이다. KBS사태가 27ㆍ28일 이틀동안 급전을 거듭하면서 자체수습기까지는 살얼음판을 밟는 듯한 숨가쁜 긴장감이 게속됐다. 울산 현대중공업사태와 맞물려 있던 KBS사태는 27일 밤 공권력재투입 결정으로 일촉즉발의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경찰은 28일 새벽을 기해 병력을 투입,강제진압하기 위해 여의도 광장에서 초읽기를 하고 있었고 현대 중공업에도 거의 동시에 경찰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정부는 이날 하오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강영훈국무총리와 서동권안기부장,노재봉 대통령비서실장,내무ㆍ법무ㆍ공보처장관ㆍ검찰총장ㆍ서기원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회의를 열고 KBS노조가 이날 밤까지 방송정상화를 결정하지 않을 경우 공권력을 투입키로 하고 그 시기와 방법은 안응모내무장관에게 일임했었다. 한편 KBS노조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하오 8시쯤 7시간동안의 마라톤회의를 끝내고 「방송재개검토」등의 4개 결의사항을 발표,사태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안내무는 최공보와 수시로 연락을 취하면서 KBS 비대위의 움직임을 전해듣고 이날 하오 11시쯤 KBS에 대한 경찰투입을 유보하고 현대중공업에만 작전을 전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최공보도 성명을 통해 『KBS가 내부적으로 방송정상화를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을 환영한다』면서 『그러나 28일 하오 2시까지 자체적으로 사태를 수습하지 않을 경우 정부는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단행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했다. 이어 김우현 치안본부장과 이종국 서울시경국장은 28일 0시10분쯤 여의도에 대기시켰던 경찰병력을 철수했고 서기원사장과 다른 임원들도 9시35분쯤 농성중인 사원들에게 공권력투입 유보사실을 알린 뒤 방송정상화에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한 뒤 귀가했다. 최공보는 최후교섭을 위해 28일 상오 10시30분쯤 KBS를 방문,서사장과의 면담에 이어 고범중 노조사무차장 등 비상대책위 대표 5명과 접촉했으나 양측의 기본입장만을 재확인 했을뿐 타협점을 찾지 못해 다시 비관적인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KBS사태가 극한 대립상황에서 수습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 것은 이날 상오 9시15분쯤 김용갑 전총무처장관이 노조사무실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김전장관은 노조대표와 만나 『개인자격으로 이번 사태해결을 위한 중재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노조측이 이를 받아들여 상오 9시40분쯤부터 1시간동안 첫 회의가 열렸다. 김씨는 이 자리에서 『나는 정부 고위당국자의 활약을 받고 왔다』고 전제,『정부로서는 외형상 양보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고 노조측도 서사장 퇴진요구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먼저 사태를 수습하고 사장퇴진문제를 빠른 시일안에 매듭짓도록 보장하겠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어 하오 1시20분부터 하오 5시까지 비대위 대표와 마라톤 회의를 계속했고 3∼4차례 정회중에는 「외부」와 전화통화를 한 뒤 서사장의 퇴진을 거듭 확인하여 노조측의 호응을 얻어냈다. 안동수 노조위원장은 회의가 끝난 직후 회의결과를 문안으로 작성,『30일부터 방송정상화에 들어가기로 했으며 서사장의 퇴진문제에 관해서는 강경투쟁을 계속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안위원장은 이때 김씨를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특사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해 노조간부 불구속문제를 비롯,사태회복 이후에 있을 각종 불이익 처분에 대한 확실한 보장도 함께 받아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KBS시태는 앞으로 30일 하오에 있을 전국사원총회에서 이번 수습안을 추인받는 문제와 서사장 퇴임문제 등의 조건부 불씨를 남기고는 있으나 수습을 위한 정상궤도를 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KBS사태 일지 ▲2월6일=감사원 「KBS 89번 법정수당 변태지급」 관련 감사완료. ▲2월26일=감사원 KBS감사결과 발표.▲3월2일=KBS이사회,서영훈사장 면직제청결정. ▲3월8일=대통령 서사장면직결정. ▲4월3일=KBS이사회 서기원씨를 KBS사장으로 제청키로 결정. ▲4월9일=대통령,서기원씨를 KBS사장으로 임명. ▲4월10일=KBS노조,「관제사장출근저지 전국사원결의대회」 개최. ▲4월11일=서사장 첫 출근 노조원 등 사원들에 의해 저지당함. 하오에 청경과 간부들이 도움으로 사장실에 들어갔으나 다시 쫓겨나옴. ▲4월12일=서사장,출근했다가 사원들이 들이닥치자 경찰투입요청. 경찰,농성해산 시키고 사원 1백17명 연행. 노조원 등 사원들 비상총회 갖고 국ㆍ실별로 제작거부 결의. 이날 하오부터 파행방송. ▲4월13일=노조원 등 사원 3천여명 「전국사원비상총회」 개최. 연행자 1백10명 훈방. ▲4월14일=경찰,KBS내에서 철수. 연행노조간부 7명도 석방. 이를 포함,9명 불구속 입건. ▲4월17일=KBS이사회 「사태수습 4인소위」 구성. ▲4월18일=MBC,동맹파업키로 결의. ▲4월19일=국회문공위,KBS사태 논의. ▲4월21일=서사장,다시 출근저지당함. ▲4월23일=내무ㆍ법무ㆍ노동ㆍ공보 등 4개부처장관 KBS사태에 관한 담화문 발표. 강경대처 시사. ▲4월24일=당정회의서 사태수습논의,KBS 「전국사원비상총회」 개최. ▲4월25일=검찰,본부장급 간부 수명 소환,참고인 조사. KBS노조원 등 사원 2천여명 남산에서 여의도까지 침묵시위. KBS이사회,「방송정상화 후 사태해결 수습방안 제시. ▲4월26일=강원용방송위원장,방송정상화와 서사장 태도변화를 동시 요청하는 수습방안에 관해 기자회견. 종교ㆍ법조ㆍ여성ㆍ학계원로 등 「KBS지키기 시민모임」 결성,사태 중재 나서기로. ▲4월27일=KBS부장 및 실ㆍ국장단,방송정상화 KBS사원에 호소. 정부,총리주재 긴급회의 개최. 검찰,안동수위원장 등 핵심간부 7명 사전구속영장 발부받음. ▲4월28일=정부,하오 2시까지 정상화 촉구 최후통첩,최병렬공보처장관 비대위 간부 만나 선정상화 요구. 비대위 공권력투입 자제 요청.
  • 분규현장 파급 “사전차단”포석/KBS사태 정부 담화의 저변

    ◎“자율복귀 안하면 강경대응” 의지 표명/방송구조 개편과 연관… 노동권연계고리 단절 겨냥 정부가 23일 내부ㆍ법무ㆍ노동부,공보처장관 등 4부장관의 명의로 「KBS사태에 대한 정부담화문」을 발표한데는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은 3가지의 뜻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는 KBS사태를 보는 정부의 시각과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시켜 KBS비상대책위원회에 대한 양보종용이며 둘째는 KBS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파생되는 각종 부작용을 우려,더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정부의 긴박한 대응의지 천명,셋째는 춘투시점에서 파급효과의 차단과 오는 25일로 예상되는 현대중공업의 총파업 움직임에 사전쐐기를 박고자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이와같은 다목적 성격의 담화문속에 특히 내재시키고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방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정부의 강경한 의지표명이라 할 수 있다. 정부가 그동안 KBS노조에 대해 방송정상화를 요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의 경우는 제작거부 사원들이 자율적으로 정상위치로돌아가지 않을때는 「타율」로라도 KBS의 파행적인 방송운영을 바로잡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공권력 재투입등에 이은 정상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겠다. 정부담화문은 종전의 권유적인 내용과는 달리 강경한 용어로 이번 사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는데다 말미에 『정부는 KBS정상화를 위해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수 없다』고 분명히 언급했다는 점에서도 정부가 KBS사태에 임하는 대응강도가 한단계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부부처에서는 아직까지 「필요한 조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KBS사태와 관련해 정부대변인인 공보처장관의 발표문이 두번 나왔으나 이번에는 공안ㆍ노동부서 관계장관들이 정부담화문에 처음으로 「합세」한 것도 시사하는 범위가 넓은 것으로 해석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제는 KBS사태를 정부의 1개 관계부처가 아닌 범정부적 차원에서 대처해 나가겠다는 「경고」의 의미로 해석되며 그만큼정부의 대응강도폭이 어떠한지를 반증해 주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몇차례의 관계기관 대책회의 결과 KBS사태가 장기화될수록 극한으로 치달아 수습의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조기수습만이 후유증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조기수습을 위한 「수순」을 밟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정부는 KBS가 언론기관이라는 점을 감안,그동안 인내심을 갖고 대처해 왔지만 이제는 그 인내에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요즈음 대기업체에서 뿐 아니라 일반 중소기업체들도 KBS에 대한 정부의 인내를 「특전」이라고 몰아붙이며 형평에 어긋난다고 비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지난 22일 노조간부의 구속을 이유로 파업을 결의하면서 『정부가 농성중인 KBS사원 1백17명을 연행했다가 전원 석방하면서 산업현장의 노조간부를 구속한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 』며 정부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라는 것이다. 지난 12일 KBS에 공권력을 투입한 직후 제작거부 사태로까지 번져 방송이 파행운영되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대화」를 기대하며 정부권위가 도전받게 방치해 둘 수 없다는 강경인식이 최근 정부내에서 다시 일기 시작한 것도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특히 KBS사태가 시간이 지날수록 수습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정부 대 전노동단체와의 대리전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고 파악,노동운동권의 연결고리 차단을 급선무로 생각하고 있다. 정부의 당초 방침이 「수의 힘」에 밀려 후퇴할 경우 그에 따른 역기능은 곧바로 노동현장에 파급돼 최근 정착돼 가고 있는 노사간의 「산업평화의지」가 크게 쇠퇴,올해에도 지난해처럼 노사분규의 회오리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와관련,현대중공업 파업움직임과 5월1일 노동절 임박도 KBS사태에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어떤 형태로 KBS사태를 조기수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것은 앞으로의 방송구조개편과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최병렬공보처장관이 지난 19일 KBS사태와 관련해 국회문공위에 출석,답변한 내용중 민간TV허용ㆍKBS 3TV(교육방송)독립ㆍ한국방송통신공사(가칭)설립 등이 향후 KBS위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KBS사태가 진정국면에 접어든 시점에서 정부의 방송구조개편은 보다 가시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방송구조개편을 하는 과정에서도 제2의 KBS사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주장대로 방송구조개편이 절대 방송장악 음모가 아니라는 합리적인 논거를 사전에 충분히 제시해야 할 것 같다.
  • 25일 시위 앞두고 소 전역 긴장 고조

    【모스크바 로이터 AFP 연합】 소련 전역에서의 민주화 시위를 사흘앞둔 22일 모스크바와 주요 도시에서는 시위도중 폭력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풍문들이 나돌고 정부관리들이 시위대의 정부기관 공격 및 대규모 혼란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등 긴박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의 한 관리는 25일 모스크바와 소련 주요도시에서 개최될 예정인 민주화 시위 와중에서 『정부기관이 공격을 당할 것이라는 소문들이 널리 퍼져 있다』면서 이번 시위가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한다고 말했다.
  • 소「민주사회주의 새 깃발」 올리다/고르바초프「도박」의 의미와 전망

    ◎정치개혁과 경제발전 연계 포석/재야흡수,온건진보정당 결성 가능성도/서유럽서 극동까지 대폭 군비축소 시도 1백40년 전에 카를 마르크스가 근로대중의 자기임금 되찾기 운동으로 제시한 공산주의 이념은 그로부터 70년후 소련땅에 현실로 적용됐다. 그런데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의해 분배받는 공산주의 이념이 소련땅에 적용된지 정확히 73년이 지난 1990년,올해의 벽두에 그만 공산주의의 깃발을 내리게 됐다. 소련은 소수 민족자치령을 국가체제로 연합하면서 유럽국가중 후발대 국가로 형성된 제정러시아를 붕괴시키면서 시작됐다. 국민의 9할 이상이 저소득계층으로 구성된 농경사회였던 제정 러시아를 1917년 소수파인 볼셰비키가 과격 공산혁명으로 무너뜨렸다. 그후 토지 자본국가공영제,중앙계획경제와 통제배급제를 실시하고 서방세계와는 중공업위주의 군수산업으로 군비경쟁을 하면서 냉전구도를 이룩해 왔다. 레닌이 심장ㆍ뇌졸질환으로 조기에 사망하자 오히려 극단적 소수파로서 민주사회주의를 건국하려던 도덕성에서 정반대의 궤를그린 사회주의 파시즘을 만들었다. 마르크스가 역사발전의 맥락에서 가설적으로 제시한 근로자의 기대임금과 실질임금의 차액을 소수 자본가가 착취함으로써 빈부격차가 극대화된 자본주의가 성숙된 사회에 공산혁명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한 논리는 소련에서는 해당될수 없는 그 당시 상황이었다. 즉,극소수 상업가ㆍ지주 외에는 성숙된 자본주의사회의 지표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중산계층이나 활발한 상업활동이 소련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정체된 후진사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신축적인 경제활성화와 생필품위주의 산업발전 대신에 군수산업 위주의 중공업 육성에 정책선택의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스탈린의 명령없이는 전 사회가 움직이지 않았으며 하부구조 구성원의 창의성은 본질적으로 봉쇄됐다. 이와같은 자기모순의 공포사회가 스탈린 이후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공산당 서기장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왔다. 말하자면 성숙된 자본주의 사회도 아니었던 후진국 러시아의 풍토속에서 다원적 공산주의 이상은 스탈린 이후의전체주의 지배자들에 의해 침묵과 복종만을 강조하는 관료적 동원체제를 구사해온 것이 핸재의 소련사회이다. 현재의 소련사회는 순발력없는 저능 거인이며 실질적 파산선고를 내린 회사와 같다. 중지한 부실기업이며 저능거인은 기초운동과 기초이론 학습부터 시작하여 거듭 태어나야 하고,부실파산회사는 처음부터 새로운 경영진에 의해 구조적으로 재조직ㆍ관리돼야 한다. 바로 여기서 개혁,재조직(Perestroika)과 만인에게의 공개성(Glasnost)을 강조하면서 정규교육을 받은 스탈린 후기세대의 대표주자로 새로운 사고를 가진 고르바초프가 통치권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주도되는 소련사회의 변혁은 미시적으로 볼때 원초적으로 빈곤했던 소련이 군사대국 유지로 인해 더욱 피폐된 생필품 절대빈곤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시장경제원리 도입,사유재산의 인정으로 민중봉기 일보직전의 긴박한 경제빈곤의 고리를 풀자는데 있다. 그런데 그같은 경제빈곤 해결은 주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국민전체가 새로운 생산기풍을 진작하는 자발적 노력의지가보여야 하는데 국민은 두려움과 의심의 눈초리로,그리고 지성인을 비롯한 여론주도계층에서는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현상황에서 그같은 노력은 아무리 신사고를 가진 개혁의지에 불타는 개혁주의자가 있다고 해도 개혁은 무위로 끝날수 있다. 인구증가와 같이 서서히 로가리즘적으로 누적되어온 소련의 사회경제침체는 아무리 자유와 개방ㆍ개혁이 뒷받침돼도 하루 이틀에 성취될 일이 아니다. 여기에 고르바초프는 정치 개혁을 통해 국민의 자발적 총의를 민생문제 해결 위주의 경제발전에 연계하려는 전략포석으로 이미 동구에서 시행돼 오고 있으며 고르바초프가 원거리에서 보호해준 바 있는 다당제 도입ㆍ자유경선ㆍ시장경제 원리도입,그리고 국가원수의 직선제 등을 도입하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로서는 그의 정치적 주사위인 대통령 직선제에 출마하여 국민의 직접 신임을 얻음으로써 지속적 정치경제사회 개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90년 초인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85년에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이래 현재까지가 개혁의 신호탄을 올린 시기라면 90년대는 개혁의 실적을 경제사회적으로 보이는 행동단계라고 보겠다. 고르바초프는 미국이 응하든 않든 서유럽에서 이제는 극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군비축소를 국내정치맥락에서 자의적으로 실시할 것이다. 또한 조만간 28차 당대회를 치르고 난후 그는 공산당을 해체하거나 구조적으로 당의 체질을 개선하여 이에 걸맞은 당명 또한 새로이 변경하면서 어쩌면 수면위에 부상하는 재야조직을 흡수하여 의외의 인물로 충원하는 새로운 온건진보정당을 조직할지도 모른다. 볼셰비키 소수 급진공산당이 해체된다고 해서 공산당 통치의 러시아 역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 사회가 소수민족의 자치도 인정하면서 제국주의적 영토팽창에 눈돌릴 수 없는 내치의 민주화ㆍ경제활성화에 당분간,적어도 2000년 이후까지 정책집행에 우선권을 유지하는 역사의 긍정적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 노력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측근인 정치국원이나 참모들은 과거 공산당의 보수적 당관료가 아닌데 그들의 전직은 해외근무 특파원,대외경제 전문가,기타 국내 각분야에서 개혁에 불타던 깨끗한 도덕정치를 표방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당면문제를 다룰때 소련 역사의 방향을 다원화된 민주사회주의 국가로 그 키를 돌리는 역사의 견인차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믿고있다. 혹한기를 피할수 있으며 대서양과 발트해를 접하고 있는 정치ㆍ상업ㆍ관광도시인 레닌그라드의 옛 이름은 성 페테르스부르크시였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공산혁명의 진원지가 된 이후로 레닌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레닌그라드(레닌시)라고 명명하였는데 이제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치가 90년에 정착돼 2000년이 되면 레닌그라드도 고르바초프의 이름을 본따 고르비그라드(고르비시)로 부를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또 이렇게 예상하는 서방인에게 소련인은 처음으로 빙그레 웃음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 「소의 통독방안」속셈 타진/베이커,왜 모스크바 가나

    ◎미 고위관리론 처음 의회서 연설도/교착상태 전략무기협상 타개 논의 미 관리들이 군축협정의 타결과 골치아픈 지역분쟁의 해결을 갈망하며 동구의 급변에 대처하기위해 뜀박질을 계속하는 가운데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5일(미국시간)프라하와 모스크바 방문길에 오른다. 소련외무장관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와의 3일간 회담(7∼9일)으로 절정을 이룰 베이커의 이번 유럽방문은 유럽의 장래와 군축협정 토의의 핵심인 독일통일문제를 둘러싸고 지난 1주일간 격렬한 외교활동이 벌어졌던 직후의 나들이여서 관심을 끈다. 가속되고 있는 통독움직임에 미소가 어떻게 선두를 유지할 것이며,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스크바에서 7일밤부터 시작되는 베이커­셰바르드나제 단독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이 확실하다. 통독문제는 동독의 급속한 정치ㆍ경제사정 악화와 3월18일 총선 때문에 최근 수주일사이에 상당히 긴박한 과제로 부상했다. 겐셔는 동독선거가 끝나면 『자유롭게 선출된 동독정부』와 통일회담을 즉각 개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와 만난 동독총리 한스 모드로브는 통독반대 입장을 철회하면서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화 통일안을 내놓았다. 겐셔는 이 제안을 거부하면서 통일된 독일은 나토에 잔류해야 하나 현재의 동독지역이 나토 군사구조에 편입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시 미행정부는 베이커의 이번 모스크바방문에서 전략무기협상의 교착상태가 타개되기를 바라고 있다. 미소는 장거리미사일과 폭격기의 검증방법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여온 복잡한 기술ㆍ정치적 문제를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금년초여름까지 해결,금년말엔 새로운 전략무기협정을 체결한다는 일정을 공약해 놓고 있다. 이번 미소 외무장관회담에서는 미소간 무역문제로부터 중동분쟁,아프가니스탄ㆍ중미ㆍ캄보디아ㆍ앙골라 등의 내전에 이르기까지 많은 다른 문제들도 논의된다. 양측은 또 이번 회담을 나토­바르샤바조약회의에서 추가 협상을 준비하는데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커는 오는 10일 이례적으로 소련의 입법기관인 최고회의의 국제문제위원회에 나가 간단한 연설을 한뒤 소련대의원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예정이며 하루앞서 미하일 고르바초프서기장도 만날예정이다.
  • 전 전대통령 특위제출 서면 답변내용

    ◎“「광주」발포 당시엔 보고 못받았다”/미 정부도 「5ㆍ17」 불가피성 이해했다/사북사태ㆍ학원소요가 계엄확대 원인 ▷다음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면으로 특위에 제출한 답변내용이다.◁ 본인이 당시 도청 앞 상황과 관련한 발포 건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국회의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 있는 이희성계엄사령관,윤흥정 전교사령관 등이 「발포 사실조차도 상황이 진행될 때에는 보고받지 못했다」라는 증언내용에 비추어볼 때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던 본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건의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청 앞에서의 이러한 발포사태는 상황이 종료된 이후 통상적인 정보보고를 통해 본인에게 보고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당시 본인은 즉각 이를 최규하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이미 계엄사령부를 통해 보고되었다고 하기에 중단한 바 있습니다. ▷미 정부역할◁ 광주사태를 전후하여 주한 미대사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관리들은 한국의 제반상황에 대하여 우리측과는 어느 정도의 인식차이가 있었다고 보며 이러한 차이는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해 제3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 있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최근에 미국무성이 보내온 광주사태에 대한 석명서를 보면 당시의 한국 안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 미 정부가 광주사태를 계기로 취한 일련의 군사 외교적 조치들과는 모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해 5월22일 미 국무성은 「불안한 사태가 계속되어 폭력사태가 과열된다면 외부세력이 위험한 오판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북한의 도발책동을 우려하며 「한국사태를 방위조약에 따라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북한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같은날 국무장관 주재로 한국사태에 대한 고위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항공모함을 위시한 기동함대와 조기경보기를 한국에 파견키로 하는 등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일련의 군사적 조치를 취했으며 당시 미 정부는 북한이 남침해 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제3의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5월26일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광주사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배고픈 호랑이같은 북한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미국은 5ㆍ17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본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미 정부의 입장과 이번의 미 국무성의 석명서에 나타나 있는 입장은 상황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기본 입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내의 일각에서는 광주사태가 특별한 의도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누구라도 정권을 위한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다면 광주사태와 같은 커다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오히려 바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 구체적인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간에 본인은 당시 정부와 군의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통령재임기간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확대조치◁ 79년 10ㆍ26사태의 충격이란 절대권력의 돌연한 붕괴가 가져온 충격이었습니다. 이 충격에서 깨어나는 80년의 봄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권위의 공동현상이 확실히 드러났고 거기에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 혼란과 무질서였습니다. 빈발하는 학원소요와 노사분규는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4월의 사북사태는 며칠 동안이나마 그 지역에 관한 한 국가기능이 정지된 상태에 도달했고 5월 중순에 학원가두소요는 전국 곳곳에 넘쳐 지역계엄령하인데도 치안 마비상태에 도달하였습니다. 5월13일에서 15일에 걸쳐 절정을 이루었던 서울소요에서는 3일째 되는 15일 서울역에서 시청광장에 이르는 도심에 대학생을 중심으로 10만의 군중이집결되었고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예가 드물게 경찰차가 방화 당하고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1백13명이 부상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같은 혼란을 틈타 각종 범죄가 난무한 것은 물론,외국바이어들이 다투어 철수하고 조업에 지장을 일으키는 등 경제생활 전반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게되자 국민들의 불안심리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편 10ㆍ26 이후 적화통일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던 북한은 이 시점이 되면서 대규모 기동훈련,전쟁물자 점검,전투태세 강화 등 심상치 않은 동향이 첩보사항으로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국가 존망지추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이 일일이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일반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그 당사자가 누구이든,국가는 국가 스스로의 자위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같은 국가의 자위조치의 당연한 귀결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역비상계엄에서는 국방장관이 계엄업무를 지휘감독하고 전국 비상계엄하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국비상계엄확대의 문제는 특정지역에 소요나 문제가 있다 없다의 기준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5월15일 신현확총리는 시위사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제를 촉구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고 그때에 진행중이던 제2차 석유파동속에서 원유 확보를 위하여 중동을 방문중이던 최규하대통령도 국내 사태의 급보를 받고 일정을 하루 앞당겨 5월16일 귀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 대통령 귀국 직후 국무총리 내무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그리고 본인 등이 참석한 시국대책회의에서 총리는 국내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하였고 주영복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상시국에 임한 군의 대책마련을 위해 다음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0ㆍ26 이후 우리 사회의 각부면의 권력과 권위가 퇴화,공동화되는 속에서 군만은 국가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사회와 국민의 막연하고도 암묵적인 기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5월17일 개최된 전문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은 당시 사태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획기적 대책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전국 비상계엄으로의 확대건의를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일각에는 학생소요를 옹호하며 전국 주요도시에서 대규모 군중궐기집회를 준비중인 세력도 있었고 5월16일에는 5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5월22일을 시한으로 계엄의 즉각 해제와 정치일정단축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전면 투쟁태세를 굳히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될 형세였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전국 비상계엄확대 건의안은 결의되었고 국방장관과 계엄사령관은 이를 신현확총리에게 보고하여 동의를 받고 최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재가받았으며 이날 저녁으로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와서 당시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 미국의 인식이 어떻다고 말이 있습니다만 물론 한국의 안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완전한 인식일치가 있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해도 당시 한국의 현존하는 안보위협에 대한 미국측의 인식과 대응의지를 과시하는 일환으로 5월13일과 14일 양일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 바 있음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계엄확대를 전후한 5월14일부터 18일에 걸쳐 전국 주요시설과 방송국들에 경계경비를 위해 인근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가 개회중인데도 의원들의 동원이 저지된 것으로 압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5ㆍ17비상계엄확대조치가 12ㆍ12를 주도한 이른바 신 군부세력의 쿠데타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쿠데타가 국권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국가를 치는 거사라 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현상이 5ㆍ17시점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다만,오늘의 시점에서 5ㆍ17을 본다면 신 군부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인들이 명확하고도 주관적인 의지는 결한 채로 시대적 상황과 국가의 요청에 밀려 덧없는 정치의 수렁으로 말려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감회가 있습니다. ▷국보위 설치경위◁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국 비상계엄하에서 대통령의 계엄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을 보좌하기 위하여 계엄당국과 행정부간에 긴밀한 업무협조를 가능케 하여 조속하게 사회 안정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대통령 직속하에 한시적인 자문보좌기관으로 설치된 것입니다. 80년 4,5월의 상황이 얼마나 위기상황이 되고 있었는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한편으로는 혼란과 비례하여 소위 말하는 「정부의 영이 서지 않는」상황이 되어가고 있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무렵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비상한 상황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뜻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 있었고,당시 「정부의 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국민들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벼랑으로까지 몰고 간 위기상황은 전국비상계엄을 불러왔고 전국비상계엄은 무엇보다도 먼저 위기관리와 난국타개를 위해 정부기능을 보완적으로 강화할 수단을 찾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가 국보위설치로써 나타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행정부의 기능을 계엄적으로 강화하는 매개 역할,이것이 국보위 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일 군으로 구성된 계엄당국에게만 당시의 문제해결이 맡겨졌다면 국가가 그렇게 단기간에 위기탈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국보위에는 계엄당국과의 매개역을 위해 군의 전문요원들도 차출되었으나 대부분은 행정부 요원ㆍ학자 및 각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나름대로의 비상대책안이 은연중에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거론되고 있었고 이같은 안들은 합수본부였던 보안사의 정보수렴과정에서 취합되고 있었으며 전국계엄으로 확대되는 것과 동시에 본인은 그동안의 정보보고를 상기하여 대책안의 구체적인 검토를 보안사 참모진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그리해서 국보위는 설치되었고 그 책임상 본인이 상임위원장직을 맡았던 것입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용어가 누구의 착상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습니다. 비상기구의 연구검토초기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을 전제하여 기구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보다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근거를 가져야 제대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결론에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는 정부조직법 제5조와 계엄법 제9조 및 제11조 등에 근거를 두고 조직되었으며 그 설치안은 5월27일 최규하대통령께 보고되었습니다. 같은 날 국보위 설치령이 국무회의에 제안되어 의결을 거친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5월31일 발족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발족됨으로써 군은 관련분야인 국방임무와 치안유지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계엄업무의 일환으로서 군이 당연히 맡도록 되어 있는 행정ㆍ사법 사무에 대한 기획조정업무는 국보위가 맡게되어 대통령이 전국계엄을 효과적으로 지도감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설치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광주사태가 조작되고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는 모양입니다만,이같은 역사인식이야말로 날조되고 왜곡된,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역사인식이요 본말전도도 유만부동입니다. 어떤 유능한 신이 있어서 광주사태의 전말을 연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계엄확대에 의한 업무추진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국보위는 설치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추진한 과외금지조치나 공직사회정화 등 일련의 충격적인 조치는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국민들의 갈채를 받았고,그 때의 국가사회가 위기상황을 탈출하고 혼란과 무질서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는 효과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국보위가 비상한 상황에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때로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여 물의를 빚은 점은 아쉽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1980년 8월 최규하대통령이 하야하게된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만 본인으로서는 최 대통령께서 하야하시면서 발표하신 성명의 내용에 비추어 헤아려볼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해 저의 주관대로 추측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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