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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구 국가의 발빠른 서구화/르몽드 10월1일(해외사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유럽연합(EU)의 동방 확대문제가 긴박한 순간에 중유럽국가들은 서구진영 참여에 고무적인 신호를 보여주고 있다.베를린 장벽 붕괴 6년만에 유고슬라비아 분쟁과 같은 참담한 시나리오가 중유럽 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행복감때문에 전례없는 경제체제 전환이 잘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항가리의 4개국은 엄청난 사회변화 비용에도 불구하고 놀랄만한 적응력을 보여줬다.70년대 스페인과 포르투갈과는 달리 이들 국가들은 참담한 경제상황속에서도 자유화와 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6년만에 중동구 국가들과 옛소련국가들은 많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옛소련국가들이 힘든 변화를 겪으면서 불안한채 남아있는데 비해 이들 국가들은 어려운 유럽통합의 길을 걸으면서도 서구화에 한발한발 내딛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를 가졌던 유럽국가들 가운데 특히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같은 나라들의 구체제 붕괴는 눈에 띄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동구 국가들과 옛소련 체제의 국가들 사이의 틈은 커지고 있다. 이지역에서 최고의 경제성장을 기록하며 안정된 체코공화국은 이런 경향을 그대로 보여준다.체코는 10월1일 화폐 개혁을 하면서 공산주의 유물에 등을 돌렸다.정상화가 어느정도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아주 상징적인 사례이다. 또 폴란드에서는 두번째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왔고 라트비아에서는 이번주 두번째 총선을 실시한다.이들 국가들의 선거는 민주주의 생활이 점차 착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12월 러시아의 총선이 혼란을 몰고 올 것이라는 전망과는 대조적이다. 서구국가들이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을 자극시키지 않은 것은 옳은 것이었다.러시아도 항가리·체코·폴란드처럼 서구화로 전환하도록 해야한다.그러나 중유럽국가들의 찬양할만한 성장하는 민주주의를 희생하면서까지 러시아의 민주화를 유도해서는 안된다.
  • 중,대만 전담기구 확대/이붕·교석 등 고위인사 추가

    ◎홍콩연합보 보도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 중앙은 당내 대만관계 최고위기구인 「중앙대 대만영도소조(조장 강택민)」를 대폭 확대 개편해 날로 복잡해지고있는 대만문제를 전면적으로 처리키로 결정했다고 홍콩 연합보가 25일 북경발로 크게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 이붕총리,전인대(의회)에서 교석상무 위원장(국회의장),인민정치 협상회의에서 이서환 주석,인민해방군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인 유화청·장진 등 모두 5명이 새로 이 소조에 포함됐다. 당중앙의 이같은 결정은 대만문제의 중요성과 긴박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당은 대만문제를 최중대사로 삼기 시작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지금까지 대만영도소조는 강택민 당총서기,전기침 외교부장,왕도함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왕조국 당중앙통일전선공작부장겸 국무원대만사무판공실 주임,고춘왕 국가안전부장,웅광해 해방군 총참모부 부장조리(조이)등 6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거물급들을 대거 포함한 확대개편으로 11명이 된 새 영도소조에서는 해방군 대표가 중앙군사위 주석 강택민까지 합쳐4명으로 가장 많다.
  • 「10·26 최후만찬」 재현

    ◎심수봉씨,M­TV 「4공화국」 현장 고증/배우들 연기·소품배치 자세히 지도/공판기록 잘못된 내용도 바로잡아 10·26의 총성이 울리는 궁정동 만찬현장이 18일 상오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MBC­TV 정치드라마 「제4공화국」제작팀에 의해 재현되었다. 이날 촬영현장은 현장을 생생히 목격한 가수 심수봉씨가 현장고증을 맡아 배우들의 연기와 소품,순간적으로 벌어진 당시의 상황을 일일이 지도해 눈길을 모았다. 그는 긴박하게 돌아가던 그 순간,그 자리에 참석했던 면면들의 미묘한 반응을 마치 바로 눈앞에 펼쳐진 사건인양 리얼하게 증언했다. 또 공판기록에 잘못 기재돼 있는 당시 역사의 주역 사이에 오갔던 대화내용도 바로잡아 주었다.공판에는 김재규가 차지철을 향해 권총을 당기며 내뱉은 말이 『이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기록돼 있으나 사실은 『넌 너무 건방져!』였다는 것. 이밖에 총소리가 울리는 순간 꽁무니를 보이며 냅다 달아난 비서실장 김계원의 비열한 행동,총에 맞아 피가 철철 흐르는 손목을 붙잡고 화장실에 갔다 온 차지철이대통령 박정희에게 『괜찮으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괜찮다』며 대답하는 박정희의 곧은 자세와 지그시 감은 눈,그리고 곧이어 옆으로 쓰러지며 가래가 차오르는 듯 마지막 숨을 그렁그렁 몰아쉬며 숨져가던 독재자의 말로가 그의 입을 통해 되살아났다. 심씨는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알리는 게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 나오게 됐다』고 증인으로 서게 된 심정을 밝혔다.
  • 한강 인도교 폭파(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3)

    ◎「임진강교 폭파 실패」뒤 서둘러 준비 지시/미 참전으로 예정보다 하루 늦춰 결행 19 50년 6월25일 일요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다음날 26일 월요일에 벌써 수도 서울을 혼란에 몰아넣었다.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26일 밤 각각 긴급 국무회의와 긴급국회를 열어 27일 새벽 수원으로의 천도를 결정할 만큼 전선은 긴박하게 돌아갔다.그리고나서 28일 상오2시30분쯤 한강 인도교와 철교를 폭파해버렸다.한강다리를 폭파한 시간에 T33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 공산군은 아직 수도 서울의 중심부 밖에 있었다. ○개전 다음날 검토 착수 한강 다리 폭파계획은 전쟁 다음날 26일 상오부터 이미 검토되었다.전황이 매우 불리해지면서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공병감 최창식 대령을 불러들여 한강다리 폭파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졌다.이는 적의 진로를 차단하기 위해 임진강 다리 폭파를 시도했다 실패한 과오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공병감은 공병학교 폭파교관 황원회 이창복 중위에게 폭파준비를 서둘러 지시했다.당초 폭파시각은 27일 하오4시로 결정되었다. 이같은 결정은 육군본부가 시흥으로의 철수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그러나 이날 하오2시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미군개입 가능성과 극동미군의 전방지휘소(ADCOM)가 한국에 설치될 것이라는 전문이 날아들었다.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이 소식을 미군사고문단(KAMAG)단장대리 W H 라이트로부터 전해들었다.그래서 시흥으로 나앉았던 육군본부를 다시 용산으로 복귀시켰다.이에따라 한강다리는 결국 하루늦게 폭파되었다.이시영 부통령 일행은 폭파직전 한강을 마지막으로 건넜다. 이승만 대통령은 27일 상오2시 특별열차편으로 한강를 건너 대전으로 내려갔다.그런데 이날 한강다리가 폭파되기 30분전에 이승만 대통령의 방송이 전파를 탔다.그 내용은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원조가 있을 것이니 국민은 총궐기해 반란분자들을 퇴치하자』는 것이었는데,사실은 사전에 준비한 녹음방송이었다.한강다리의 폭파는 결국 수도 서울을 사수하던 국군장병 4만4천명을 낙오병으로 만들었다. ○국군 4만4천명 낙오 북한 공산군이 서울시내 중심부에 들어온 시각이 28일 하오3시쯤이었으니까 다리 폭파를 6∼8시간 정도 늦추어도 큰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뒷날 나왔다.이런 이유로 해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군사재판을 통해 처형되었다.그러나 폭파를 명령한 육국 참모총장 채병덕은 7월27일 하동전선의 180고지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전사했다.한강 다리가 끊겨나간 이후 육군 5개 혼성사단이 노량진 본동을 중심으로 모여 한강 방어선을 구축했다.서울에서 퇴각한 이들 부대는 명목상 사단편제였지 사실은 연대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개전한 시각에 한국의 우방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 대통령은 미조리주 인디펜던스 자기 사저에 머물고 있었다.그는 당장 워싱턴으로 돌아오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국무장관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음날 백악관에 도착했다.미국은 국제연합(UN)이 「평화에 대한 침략적 행위」로 규정지어 주기를 바라면서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지않는 전략을 취했다.그리고 미국무성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즉각개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무렵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중공)대신대만의 자유중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회원국으로 총회 안보이사회 의석을 차지하도록 결정한데 항의하여 유엔을 보이콧하고 있는 중이었다.소련이 불참한 안보이사회는 즉각적인 전투중지와 38선 이북 원위치로의 철수를 요구하는데 결의했다.이와 더불어 유엔 회원국은 이 결의의 집행을 위해 한국에 원조를 제공하고 북한에 대한 원조 자제를 요청하는 안도 결의안에 포함시켰다. 미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 공산군이 서울 근교에 접근하던 6월27일(워싱턴 시간) 미공군과 해군에 한국정부를 엄호지원하는 명령을 내렸다.이날 유엔 안보이사회는 소련이 여전히 불참한 가운데 「무력침략을 격퇴시키고 평화와 안전을 회복시키는데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다음날 28일 서울은 침략자의 손에 들어갔다.트루먼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의 경찰행위를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전 5일째가 되고 서울이 공산권 수중에 완전히 넘어간 다음날인 6월29일에는 맥아더장군이 자신의 전용기 바타안호를타고 동경에서 수원으로 비행해왔다.바타안호가 착륙하는동안 간이 활주로 한쪽 끝을 북한의 소련제 야크기가 공격했다.맥아더는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다.한편 임시수도 대전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적의 항공기로부터 요격을 피하기 위해 계곡을 따라 저공비행으로 수원에 와 닿았다.이들이 서울대 농과대학 캠퍼스에서 만나는 동안에 적의 전투기는 계속 기총소사를 해댔다. ○“미 해군 해안선 봉쇄” 맥아더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는대로 한국을 지원하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약속했다.트루먼은 6월30일 일본에 기지를 둔 미공군이 북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폭격을 승인했다.이와함께 한반도의 전 해안선을 해군이 봉쇄하도록 명령하고 맥아더 장군으로 하여금 한국에서 상당한 지상군 지원부대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따라 찰스 스미드 중령이 이끄는 미 지상군 선발대가 일본 사세보를 떠나 부산을 거쳐 7월5일 평택에 도착했다.그러나 이 미군부대는 한국군의 한강 방위선을 무너뜨리고 계속 남하하는 북한군 탱크앞에 속수무책이었다.이런 상황속에 UN안보이사회는 7월7일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는 회원국은 그 군대를 미국이 지명하는 사령관 휘하에 둘 것을 권고했다. 그 다음날 트루먼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주한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기에 이른다.개전후 뼈아픈 11일간이 지나가는 동안 유엔과 미국은 한국전쟁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그리고 16개국에 이르는 회원국이 한국을 지원하기로 한 결의를 행동으로 옮겼다.특히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의 지상전에 주동적 참전국이 된 것이다. 미국의 참전은 전선 주변에 위험한 그림자를 깔기 시작했다.그 위험은 한국군과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공산군 점령지역의 허리인 인천을 상륙한데 이어 낙동강 전선을 뚫고 북한 깊숙이 들어갔을 때 현실로 다가왔다.1950년 가을이 저문 10월19일 저녁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넜던 것이다.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은 전쟁양상을 또 한번 바꾸어 놓았다. ◎미 「국가정보평가서」/“소,「한국전 중 개입땐 대전 확산」 예측”/“유엔군 내분 조장… 전력약화 기대/필요땐 중에 소 의용군 지원 태세” 1950년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개입했을때 소련은 한국전쟁의 세계대전 비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와같은 사태발전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당시 미국은 평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입수한 「국가정보평가서­11」(NIE­11)에 따르면 소련의 통치자들이 중공의 한국전 개입을 지시 혹은 재가하면서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위험성을 인지했다고 미국은 평가하고 있었다.NIE­11은 그러나 소련이 중공군 개입과 동시에 세계대전에 돌입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NIE­11은 또 소련이 세계대전 발발여부와 상관없이 미국과 중공간의 전면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적고 있다.▲우선 미국과 연합군대를 다른 전장으로 유인해 병력을 소멸시킬 수 있고 ▲미국과 그 동맹국간 알력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의 침공으로 유엔의 단결력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것이 소련의 판단으로 추정했다. 이에따라 소련은 중공에 대해 적절한 물자와 기술인력,심지어는 의용군까지 제공해 한국에서의 중공군 작전을 지원할 것으로 판단했다.특히 유엔군의 공중공격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중국내 거점 방위가 필요하다면 비행기와 대공포를 훈련된 요원도 함께 제공할 것으로 내다보았다.또 중국영토에 대한 미군(유엔)의 대규모 작전이 있을 경우 중·소조약에 근거해 중공에 대한 소련의 공개적 군사지원이 따를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NIE­11은 이어 사태추이를 볼때 중국 공산당의 개입목적은 유엔이 한국에서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데 있다고 덧붙였다.NIE­11은 미 중앙정보부가 1950년 12월5일 국무성 및 육·해·공군의 정보관계자들을 참여시켜 작성한 1급 비밀문서다.
  • “중단없는 개혁속 국민 대화합 이룩”/김 대통령 기자간담 속기록

    ◎모두 발언/일류국 만들어 차세대에 넘기는게 소망/여론수렴미흡… 개혁 시행착오 아쉬움도/“시간 지나면 개혁혜택 실감할것”/“중기 살리기” 여러 방안 준비중/곧 안보리 진출… 국가위상 격상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후반이 시작되는 25일 낮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지난 2년반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국정구상 등을 꾸밈없이 털어놓았다.다음은 모두발언및 일문일답 요지. 오늘은 국민도 그렇겠지만 나 자신도 대단히 의미있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이런 날에 국무위원·당직자들을 만나는 자리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보다는 국민과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기자간담회를 갖게 됐습니다.그동안 광복절,민자당 전국위원회,원로모임 등 몇차례 공식적인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주로 그동안 느낀 솔직한 심정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2년6개월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그동안 나 나름대로 사심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국가보위의 책임,그리고 국민의 생명과재산을 지키는 책임에 대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취임후 9개 안가를 모두 철거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 스스로 재산을 공개했습니다. 또한 군을 개혁하고 금융실명제와 토지실명제를 실시했으며 정치개혁과 함께 공직자의 재산을 공개토록 했으며 혁명적 교육개혁도 단행했습니다. 여러 일을 치르면서 솔직히 얘기해 시행착오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또 어떤 의미에선 아쉬움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금융실명제와 같이 때로는 시행전까지 전적으로 비밀에 부치지 않으면 안되는 조치도 있어 철저한 보안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여론수렴에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그런 점에서 시행착오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광복절에 대규모 사면복권을 단행했습니다.앞으로 헌법 제79조에 의한 일반사면도 정기국회에서 동의를 얻어 단행할 것입니다.1천만명이 넘는 대상을 놓고 법무부에서 연일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내가 2년반 임기의 새로운 대통령에 취임하는기분으로,지나온 경험을 되살려 사심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국가와 민족과 겨레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자꾸 무슨 시대가 도래한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지금부터 2년6개월이 지나면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 조용히 일개 시민으로 돌아갈 것입니다.시끄러운 일도 없을 것이고 조용히 돌아갈 것입니다.2년6개월후 어떤 일을 할지 모르지만 누구와도 경쟁할 입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모든 경쟁은 끝났고 어느 누구와도 경쟁할 이유가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2년6개월동안 새로 취임하는 각오로 혼신의 노력을 다할 뿐입니다. 나에게 지난 2년6개월은 참으로 길고 힘들고 고독한 기간이었습니다.2년6개월이 마치 26년이 지난 것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중요한 결단과 결정을 할 때면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몇번이고 심사숙고해야 하는 게 대통령의 자리였습니다.청와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독한 장소입니다.훗날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지는 몰라도 저는 대통령으로서 영예만 누릴 생각은 해본 일이없습니다.제가 뼈저리게 느낀 소회입니다.비록 부덕하지만 저의 열정과 성심을 남은 임기에 모두 다 바칠 것입니다.국민 여러분도 남은 임기동안 사심없이 조국과 겨레에 봉사하고자 하는 저를 도와주시고 신한국 창조에 동행자가 되어줄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제게 소망이 있다면 일류국가를 만들고 차세대에게 훌륭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넘겨주는 것입니다.그것은 또 제 소임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속에 대단히 중요한 나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6·25때 우리가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도움을 받았지만 오는 10월 또는 11월이면 우리가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됩니다.냉전시대와는 달리 90년대들어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비토권 행사기회는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상임·비상임의 역할이 비슷해지고 있습니다.또 실질적으로 유엔이 하는 일의 80%를 안보리가 하고 있습니다.유엔기구에 한국인 참여도 늘고 있습니다.한국의 위상이 대단히 높아졌다는 점을 국민이 실감해줬으면 합니다. 전국적으로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걱정입니다.한발이 들어 물이 꼭 필요한 경북 일부에만 오고 태풍도 피해 갔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9.7%의 고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며 물가는 3.6% 상승에 머물 것입니다.고도성장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우리 경제의 미래는 밝습니다.다만 중소기업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과제입니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가지 대책을 준비하고 있고 실제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지원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습니다.시간이 가면 모두 해결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받던 문제가 몇개 있습니다.남북분단·물가고·입시지옥 등입니다.이제 물가는 어느 나라보다 안정되었습니다.입시지옥도 교육개혁을 통해 금년부터 완화될 것입니다. 하나하나 정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34년동안 하지 못하던 지방자치도 실시,문민정부가 민주주의를 완결시키는 데 중요한 일을 해냈습니다.공명선거를 통해 관권·금권시비가 없어진 것도 문민정부가 한 일입니다. 우리 국민은 마음이 상당히 급한 것 같습니다.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지리라고 기대하지 말고 때로는기다리고 같이 걱정하면서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화와 개혁,그리고 부정부패척결은 취임때와 마찬가지로 중단없이 추진해나갈 것입니다.이번에 대사면을 단행했지만 국민통합·대화합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그런 방향으로 나갈 것입니다. 오늘 정말 임기 절반을 보내는 심정을 솔직히 얘기했으니 그대로 받아주기 바랍니다. ◎일문일답/북 NPT복귀 유도 가장 어려웠다/국민은 성급함 버리고 개혁 협력을 ­강삼재 민자당총장 기용으로 상징되는 세대교체구상과 내각 및 청와대 개편구상을 밝혀주십시오. ▲김대통령=앞서 얘기했지만 오늘은 나의 심경을 얘기하는 것으로 자리를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직이 결코 영예만 있을 수 없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의미는. ▲김대통령=그것은 한마디로 고뇌와 고독뿐이었다는 얘기입니다.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한시도 고뇌하고 고민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얘기입니다. ­시행착오와 아쉬움도 있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입니까. ▲김대통령=굳이 여기서 밝히지 않겠습니다.아무튼 2년반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더 열심히,더 성실히 대통령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년반동안 제일 어려웠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김대통령=93년2월25일 취임했는데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고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해 핵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대통령의 임무중 가장 중요한 일은 국민의 생명과 국토,그리고 평화를 지키는 것인데 이것이 잘못되면 기가 막힐 일 아니겠습니까.그러나 국민에게 엄청난 불안을 안겨주고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당시의 상황을) 모두 공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는 거의 잠을 못잘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심각한 사태까지 간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그러나 마지막까지 나 자신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미국에 대해서도 자제하도록 강력히 요청,경수로를 가지고 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우리 뜻대로 경수로지원에서의 한국의 중심역할이 결정되었습니다.이과정에서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네번이나 했고 공개되지 않은 것을 포함,전화통화를 수없이 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김대통령=북한의 상황에 대해 다 알고 있지만 여기서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경제적으로 식량사정이 어렵고 비 피해도 엄청난데 구체적으로는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솔직히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대통령께서 좀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는 지적이 없지 않습니다. ▲김대통령=청와대에 들어와 생활을 간소화하고 경비를 절약해왔으며 앞으로도 그것은 계속할 것입니다.클린턴대통령이 3주간 휴가를 떠났는데 자신이 보낸 특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바로 휴양지로 갔습니다.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합니다. ­집권 후반기를 시작하면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김대통령=너무 급하게 생각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우리는 문민정부를 이룩하고 경제력을 세계 11위에 올려놓는등 엄청난 일을 했는데 이 두가지에 성공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뤄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개혁 가운데도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이 있고 토지실명제처럼 시간이 가면서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가는 것이 있다고 봅니다.이대로 가면 2000년에는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를 맞고 수출도 몇천억달러에 이르는등 큰 규모의 경제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언론도 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위해 어떤 보도가 도움이 되겠는가를 좀더 거시적으로 생각해주길 바랍니다.경쟁을 통해 외부는 이겨내야겠지만 내부적으로도 그것을 1위의 가치로 삼아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큰 차원에서 국가이익이 무엇인지를 우리 모두 생각해봅시다.
  • 영국 신도시 밀튼 케인즈(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21)

    ◎자연과 건물이 어우러진 전원도시/도시계획·건축가 공동참여해 계획 수립/주택 대부분 1∼3층… 농촌·도시 장점 취합/「이상적 신도시」 이론이 최초로 햇빛 봐 아름다운 도시는 아름다운 집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도시의 매력은 결코 장대한 기념관이나 화려한 공원만으로 탄생되지 않는다.이는 오래된 도시나 신도시를 막론하고 공통된 얘기며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확인된다. 그중에서도 신도시는 항상 당대의 꿈을 실현한 결정물로서 존재한다.정도 6백년의 서울(한양)은 조선왕조의 창립지로서 이태조에 의해,수원 화성은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의 상징으로서 건설되었다.요즘도 수많은 신도시가 정권이나 산업의 상징으로서,또는 중산층의 주택꿈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건설되고 있다. 영국의 신도시 밀튼 케인즈도 그중의 하나다.근대여명기 이상주의자에 의한 신도시 이론이 조직적 개발방식에 의해 빛을 보게된 예로써 신도시로서는 이미 고전에 속하는 곳이 이곳이라 할수 있다. 신도시 이론은 원래 영국의 에베네저 하워드의 저서 「미래의 전원도시」(1902)에서 유래한다.이 책이 제시하는 내용은 오늘날까지 모든 신도시 개발의 목표가 되고 있는데 그것은 ▲도시와 농촌생활의 장점이 적용되어야 한다 ▲인구 3만명 도시로서 사방 5㎞의 면적이 적당하다(㏊당 12명 밀도) ▲토지는 모두 시유지로 하며 개발이익금과 세금은 도시하부시설에 사용한다 등이다. ○토지는 모두 시유지 이 원칙은 근대의 도시개발에 있어 실현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실제로 건설되는 신도시는 도시와 농촌의 장점 대신 단점만 모은 것이 되기 일쑤이고 인구도 너무 적어서 규모의 효과를 내지 못하거나 너무 많아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되기도 했다.또한 토지 가격으로 인해 밀도에 있어서도 그의 주장의 10배,심지어는 1백배 이상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시당국의 부담을 줄이고 민간개발을 장려한다는 명목으로 토지를 민간에게 매각하고 투기꾼들은 투자한다는 명목으로 땅과 건물에서 투기이익을 얻은후 사라지기도 한다. 영국은 주택을 든든하게 짓는 것이 전통이지만 신도시의 주택은 에디슨 법령에 따라 특별히 높은 기준이적용됐다.이들은 1∼3층의 저층이 대부분이며 중층내지 고층 아파트형은 별로 없다.영국 국민들이 밀집을 극도로 싫어하고 이런 취향을 반영해 법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특히 신도시는 녹지를 풍부히 두며 보차 교통의 분리가 시도된다.따라서 신도시 주택은 인근에 비해 가격이 매우 높다. 신도시 밀튼케인즈는 런던의 유스튼역에서 기차로 한시간정도 서북쪽 평탄구릉지 사이에 펼쳐진다.현재 영국 컴퓨터산업과 오픈 유니버시티의 기지로 대변되는 이곳은 특히 전국적으로 대학과 연구기관의 정보센터가 되고 있다.녹지가 건물을 가리는 이곳은 도시라고는 해도 도도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더 주도적인 것으로 인상에 남는다. 신도시로의 개발은 1967년5월에 설립된 개발공사가 기존 마을 몇개를 포함한 녹지 9천㏊(약 사방10㎞)를 해당지구로 지정하고 토지매입을 하면서 시작되었다.지구내의 기존인구는 4만명이며,19 81년까지 13만명,최종목표는 1994년까지 25만∼30만명으로 되어 있다. 이 신도시는 분양을 50%이상으로 한다는 새로운 주택정책의 최초 적용사례였다.이것은 사회주택(영구임대주택)의 비중이 높은 영국에서 처음으로 소유를 장려하고 중산층 의식을 높인다는 다분히 중산층 위주의 보수적 정책이다.분양주택은 19 82년도에 이르러 43%에 달하는데 이는 전국의 32개 신도시중 상위 6번째에 해당한다.개발밀도는 전원도시운동 초기의 밀도에 가까운 ㏊당 15∼30호로서 저밀도수준이다(한국의 고층아파트단지는 ㏊당 1백20∼2백40호,최근 신도시에서는 ㏊당 3백호). 종합계획(마스터플랜)은 기존의 3∼4개 마을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약 1㎞ 격자단위의 슈퍼블록에 주거,공장,중심지구 등을 배분하고 이 단위가 근린주구의 활동과 기능을 담당하도록 하였다.1976년의 통계에 의하면 밀튼케인즈에는 2만2천6백호의 주택이 있었는데 구성은 다음과 같이 다양하다. ○평탄한 구릉지 선택 ▲신도시건설 이전의 기존 소유주택 8천1백호 ▲개발공사의 임대주택 4천2백호 ▲개발공사의 분양주택 1천6백호 ▲시당국이 건설한 사회주택 7천5백73호 ▲민간임대주택 1천2백호 신도시개발은 그 질을 확보하는데 「계획상세안」이 큰 역할을 하였다.지방행정청은 1975년부터 지역토지법에 의해 개발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있었으나 지방에 따라 여건은 상이하였다.이를 돕기 위하여 건축환경청은 여러가지 개발추진방안을 제시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민간주택개발에서의 계획상세안」(1976)이다.이에 의하면 개발업자가 자기의 기술을 발휘할 여지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밀튼케인즈 개발공사가 일을 추진하는데에 반영되었다.신도시 동북부 다운스반지구의 계획상세안은 4부문으로 구성되었다. ▲상세지형의 배치계획 ▲설계,자재,건축부품의 세부계획 ▲설명보고서(부지조건,주택의 수효,종류,비율,가격,접근,주차,건축물의 분위기와 양식 등) ▲예시적 배치도와 가능성의 전개도(주택배치,기존 및 몇년후의 식수위치,차도와 보도의 위치) 다운스반지구의 계획상세안은 주요한 윤곽만 조정하는 통제방식으로서 세세한 것까지를 규제하지는 않는다.이는 영국의 건축규제가 전통적으로 까다로웠던 것과는 대비된다.런던의 시내중심인 베드포드단지의 건물규정보다,전통적 조지안주택단지에 적용된 종전의 건축법보다,심지어는 산업혁명 초기 1774년의 유명한 까다로운 건축법보다는 완화된 법을 적용하고 있다.개발공사의 계획상세안은 일반건축규정과는 엄격한 의미에서 비교하기 곤란한데 그것은 일반건축규정이 타협의 결과인 점에 비해 전자는 과정의 첫 단계인 셈이기 때문이다.설계통제를 적극적으로 하기 위한 제도인 이 계획상세안은 기존의 소극적 방안보다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그러나 이 상세안도 한계는 갖고 있었다.그것은 ▲상대적으로 큰 부지 이외에는 사용되기 어렵다 ▲작성하기가 쉽지 않다.특히 개발업자측의 건축가로 하여금 설계착상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환경 전체에 적절한 기여를 하게끔 하는 균형을 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등이다.계획상세안은 건축가와 도시계획가 사이의 협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었다.영국건축가협회(RIBA)로서도 계획상세안제도와 설계지침제도를 분석한 결과 전자가 긍정적이라 판단하고 있다.즉 건물외관의세세한 사항을 통제하지 않음으로써 도시계획가와 건축가는 기능적·경제적·심미적 도시설계와 건물설계를 하였고,개발업자측의 건축가는 세세한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밀튼 케인즈의 주택설계시에는 이미 파커 모리스보고서(1961)가 지정한 주택기준이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상태였는데,이는 영국이 취한 기준중 가장 넉넉한 것이 이미 충분히 향유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밀튼 케인즈개발계획서(1970)는 이 기준 외에도 당해 신도시개발을 위해 별도의 조사를 하였다.한 예를 들면 인터뷰 대상자는 90%가 이미 정원을 소유하고 있거나,아니면 갖기를 원한다.밀튼 케인즈로의 이주를 바라는 가족중 60%가 자녀를 갖고 있다는 것 등이다.이러한 사실은 밀튼 케인즈의 주택소비기준설정에 활용되었다. ○개인정원 90% 소유 즉 정원의 면적규모를 예로 들면,주택의 50%는 93㎡,25%는 70㎡,20%는 70㎡이하의 소정원,10%는 전혀 개인정원이 없는 것으로 하였다.이 조사는 경제예측지표에 있어서 물가보다는 소득이 더 많이 오르고 소득이 오를수록 여유자금이 주택에 몰리므로 주택의 면적과 설비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결론적으로 저밀도의 주택개발을 요구하였다.밀튼 케인즈의 주택밀도는 이와 같이 소비자기호,시장경제동향,주택재고의 질과 적응성에 있어서의 장기전망 등을 감안하여 몇 종류로 구분,결정되었다. 밀튼 케인즈는 그것이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 저밀도로 인해,도회적 환경이 줄 수 있는 장점 중 몇가지를 구비하지 못하는 잘못을 안고 있다.그것은 끝없이 평면적으로만 펼쳐진 주택지의 나열로 끝남으로써 도회가 주는 「고밀도의 긴박감과 흥미」가 시각적으로 도출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영국의 신도시는 주택을 양적·질적으로 향상시키려는 이유에서 출발하였고 높은 수준으로 성취하였다.또하나 중요한 것은 서민주택에 관한 건축적 실험들이 저명건축가와 젊고 패기 있는 이들을 초대함으로써 가능했으며 영국 서민주택사에서 폭과 깊이를 넓힌 뚜렷한 한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 12·12사태 당시 군관계자 통화 내용 요약

    ◎합수부측 허위보고… 군 수뇌 갈팡질팡/“지금 군단장이 30단에 가 있다며?”­이건영 사령관/“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답변 회피­김성환 참모장/“9사단 30연대 어디로 출동하나”­이건영 사령관/“30연대 출동 안합니다” 거짓 보고­구창회 참모장 12·12사태 당시 하극상을 벌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측을 진압하려는 육군본부측 장성들의 전화통화내용을 당시 보안사가 감청,녹음한 테이프가 17일 처음 공개됐다. 월간조선이 공개한 이 테이프는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테이프에는 이건영 3군사령관을 비롯,윤성민 참모차장·장태완 수방사령관·노재현 국방장관 등 당시 주요관계자들이 모두 등장하고 있다. 이 테이프의 내용은 지금까지 검찰수사등을 통해 이미 밝혀진 것이지만 관계자들의 생생한 육성을 담고 있어 현장감을 전달해주고 있다. 이 테이프는 무력진압을 불사하려는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움직임과 허위보고를 하는 합수부측 장교,갈팡질팡하는 군수뇌부의 모습등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다음은 테이프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3일 새벽 1시 이건영 3군사령관과 윤성민 참모차장의 통화 ▲이=육군본부에서 명령계통이 일률적으로 나와야지 여러 곳에서 나오면 안돼요. ▲윤=저희들이 수경사에 있는데 여기서 할 것입니다. ▲이=알겠어요.장관님이 직접 말하기 전에는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계세요. ◇12월13일 새벽 2시 이건영 3군사령관과 윤성민 참모차장의 통화 ▲윤=지금 1공수에서 와가지고 육군본부,국방부에 갔단 말이지요. ▲이=예. 지금 점령이 된 것 같습니다. ▲윤=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되나. ▲이=글쎄 말입니다. ▲윤=아! 이걸 어떻게 하지,어떻게 되는 건가. ◇이건영 3군 사령관의 질문에 차규헌 수도군단장의 참모장 김성환 준장과의 통화. 김준장은 이사령관의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이=그런데(차규헌) 군단장이 왜 거기 가 있는 가,30단에 ▲김=…. ▲이=지금 군단장이 30단에 가 있다면?. ▲김=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이=(차규헌 군단장의) 부관은 지금 어디서 전화를 받나? ▲김=….▲이=부관이 지금 참모장하고 전화를 통하는게 어디서 통하지? ▲김=확인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이=직접 전화통화하지 않았다?. ▲김=예. ▲이=지금 참모장이 그 상태를 잘 모르는가,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가? ◇13일 새벽 1시50분쯤 이건영 사령관과 노태우 9사단장의 참모장 구창회 대령의 통화. 구 참모장은 거짓보고를 계속하고 있다. ▲이=9사단 30연대가 어디 출동하는 모양인데 어디 출동시키는가. ▲구=연대출동 안합니다. ▲이=어디 출동한다고 그러는데 무슨 소리야. ▲구=연대출동 안합니다. ▲이=지금 9사단 30연대장이 삼송리까지 출동한다고 전화가 왔는데. ▲구=연대 출동안합니다. ◇12일 하오 10시16분쯤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이건영 사령관의 통화. 장사령관은 30단에 모여있던 유학성,차규헌,황영시 중장 등에 대한 무력진압의사를 밝히고 있다. ▲장=「유장군님 남의 부대에 와서 왜 이럽니까」 제가 이상해서 물으니까 「에이,장장군 거 알면서 왜 그래. 이리와」「이리 오기는 어딜 와. 당신 왜 그래요. 왜 남의 부대에 한밤중에 와서 무슨 지랄하고 있어. 쏴 죽인다」 이렇게 했더니 황영시 장군한테 전화를 바꿔요. 황영시 장군이 있다가 「장태완이 너 왜 그래,알만한 사람이. 나하고 통할수 있는 처진데 왜 그래. 너 이리와」「아니 왜 이라십니까,왜 그 우리 좋은 총장님을 어쩌자고 납치해가고 왜 이라요. 정말 그라면 내 죽여」 했더니 「차규헌이도 와있고 나 와 있는데 마 이리와」「무슨. 혼자 다해먹어. 임마 난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 ◇13일밤 1시 50분 3군 사령관과 수경사령관의 통화 ▲장=이것들이 공수단… 1공수 병력 1천명 정도가 말입니다. 우리가 한강하고 각 다리를 막아놨더니 저쪽 구파발쪽으로 해가지고 육본과 국방부에 들어갔습니다. 장관님한테 협박을 해가지고 지금 총리 공관에 가신 모양인데요. 전쟁하기 위해서는 수도기계화사단 정도는 있어애 하는데…. (이때 참모차장이 들어와) 나예요. 북괴가 쳐들어 온다면 딱한 일이죠. ◇13일 신원미상의 두 영관급 장교의 잡담 ▲A=합참의장도 바뀔 것 같아.그리고 이번에 이동이 많을 것 같다.육사교장이다뭐다 해가지고 아마 오늘 내일간에 매듭이 지어질 것 같애. ▲B=원로들이 싹 바뀌더군. ▲A=그렇지요.엘리트들로…. ▲B=요샌 월급타먹고 애들하고 편히 사는 게 좋지. ▲A=참 불행한 일이야.정승화 참 그게….그 3군사령관도 그렇고 참 높은 게 좋은 게 아니야.
  • 달라지는 생활상(통신 방송/위성시대:7)

    ◎원격 의료서비스·화상회의 보편화/새로생긴 12개채널 전문방송 활용/화상연락망 구축… 기업활동 큰변화 96년 8월.고교생인 K군은 방학을 맞아 서울 J학원 유명강사의 영어강의를 대전에서 동시에 듣는다.대전 뿐 아니라 서울 J학원의 분원이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서든지 K군처럼 본원의 강의를 수강할 수가 있다. 지리산으로 휴가를 떠난 P씨는 차에 싣고 온 작은 선풍기 크기만한 직경 40㎝ 정도의 접시형 안테나를 설치하고 휴대용 TV와 연결한다.그리고 P씨는 가족들과 함께 계곡에 발을 담근채 직접위성방송(DBS)채널을 통해 고화질의 음악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깊어가는 여름밤을 보낸다. 국내 첫 통신·방송위성인 무궁화호가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상용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달라지게 될 우리의 생활상이다. 무궁화위성이 발사되면 우리의 통신환경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는다.우선 직접위성방송이 가능해져 한반도에서 난시청지역이 사라지게 된다. 지름 40㎝ 남짓한 접시형(파라볼라)안테나만 설치하면 국내의 산간오지나 도서벽지는 물론 중국 연변,러시아 연해주,일본 남부 어디에서도 깨끗하고 선명한 TV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북한땅도 예외가 아니다.안테나와 수신기만 갖추면 남한에서 방송하는 TV프로그램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된다.혁명적인 변화가 아닐 수가 없다. 무궁화위성에는 통신용·방송용 중계기 15대가 실린다.이 가운데 방송용 중계기는 3대로 중계기 1대에 4개의 채널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총 12개의 채널이 새로 생겨나는 셈이다.이 채널들은 미국이나 일본처럼 스포츠·오락·음악등의 전문 위성방송으로 활용 될 예정이다. 현재 일본·홍콩 등의 위성방송을 시청하기 위해 설치된 위성수신장치로는 무궁화위성방송을 볼 수가 없다.무궁화위성은 디지털방식인데 반해 일본등은 아날로그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위성방송은 아날로그방송에 비해 훨씬 뛰어난 첨단의 영상과 음향을 제공한다.화면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16대 9인 광폭TV(기존TV는 4대3)로서 고선명 TV 수준의 화질과 콤팩트디스크 수준의 음질을 제공해 준다.안방에서 영화관에서와 같은 장대한 영상감을 맛볼수 있다. 통신분야에서는 더 큰 변화가 예상된다.지방이나 도서벽지에서 서울 유명학원의 강의나 교회설교를 TV를 통해 들을 수 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환자를 진단·처방하는 원격의료서비스도 가능해진다. 고속컬러 팩시밀리와 신문·잡지의 원격인쇄,텔레비전화면을 통해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회의할 수 있는 원격화상회의도 보편화 될 전망이다.지금까지 화상회의는 용량이 큰 동축케이블이나 광케이블 등을 깔아야만 가능했다. 현재는 통신선로가 깔리지 않는 곳에서 대형사고가 나면 TV현장 중계가 어렵지만 이러한 문제도 무궁화위성을 이용하면 간단히 해소된다.중계차량만 접근할 수 있으면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전파로 위성에 쏘아 올려 전국 방방곡곡에 즉시 중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궁화위성은 기업활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기업들은 지금까지 지하에 구리선이나 광케이블등의 전용회선을 매설,이를 각종 업무에 활용해 왔다.그러나 위성통신시대의 개막으로 본사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지사간에 화상연락망을 구축할 수있게 된다.또 전화선이 깔려있지 않은 오지라도 소형 위성기지국 장비만 설치하면 전국 어디서나 음성통화는 물론 데이터전송이 가능해진다. 대형 유통업체는 위성을 이용한 자체 전산망으로 본사와 전국의 지사를 연결,상품판매·재고·주문등 각종 정보를 수시로 주고 받을 수 있게 된다. ◎카운트다운 현장 이모저모/막바지 안전 점검… 긴박감 돌아/국내인사 1백80여명 도착… 지대한 관심 ○…무궁화호 발사용역을 맡은 미 맥도널더글러스사는 『무궁화호는 델타로켓으로 쏘아올린 50번째 무사고위성이 될 것』이라며 광복 50주년을 맞은 한국에 귀중한 선물이 되길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 맥도널더글러스사는 지난 86년 델타로켓 발사에 실패한 뒤 8년동안 모두 49개의 위성을 우주공간에 성공적으로 띄워올렸는데 무궁화호는 델타로켓으로 발사되는 올해 첫 위성으로 기록 될 전망. ○…5일로 예정된 무궁화위성 발사를 앞두고 국내 정·재계인사 및 통신관계자들 1백80여명이 케이프커내버럴에 속속 모여들어 무궁화호의 역사적발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반영. 국내 첫 위성이 발사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정계에서는 조영장·강경식·김찬두·박근호·이용삼·이호정(이상 민자),유인태·김충현·김병오(이상 민주),강창희(자민련),정동호(무소속)의원 등 국회통신과학위원회 의원대부분이 4일까지 현지에 도착. 재계 및 통신관계자로는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현장에 달려온 것을 비롯,이해욱 한국통신 이사장,이종기 삼성화재 부회장,김주용 현대전자 사장,서정욱 한국이동통신 사장 등이 집결. ○…허리케인으로 미국 국내선 항공편이 두절되는 바람에 LA에서 발이 묶였던 이 준한국통신사장은 2일밤(현지시간)늦게 올란도에 도착,발사관계자들을 격려. 이사장은 발사일이 당초 예정보다 이틀 연기된데다 5일이후의 기상상황이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계자들의 보고를 받고 걱정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 ○…13층 높이의 무궁화위성 발사대는 최대시속 1백30㎞의 허리케인강풍에도 불구하고 외견상 깔끔한 모습.또 로켓중간부의 태극마크와한국통신표지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시련」에 굴복하지 않는 우리겨레의 저력을 과시. 발사장 주변은 보조배터리충전작업과 안전점검작업 등으로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으며 잦은 차량이동과 작업통제를 위한 요란한 긴박감마저 팽배.
  • 화학물질 위해성 감시 강화해야/이중한 논설위원(서울논단)

    우리의 환경문제 인식은 아직 얼마쯤 소박한 데가 있다.깨끗한 물에는 예민해졌다.어느샌가 물은 사먹는 것이라는 생각을 굳혔다.매연에는 개운치 않다는 느낌을 갖고는 있으나 긴박한 반응은 없다.우선 나자신이 차를 타고 다녀야 하니까 차량규제가 어떻게 될것인가 정도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 환경오염문제는 자연자원의 축소나 파괴같은 가시적 상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이보다는 비가시적이고 즉시 확인되지 않으며 장기적 잠행성을 가진 화학물질들에서의 오염이 더 큰 심각성을 갖고 있다.페인트·니스·왁스에 사용되는 폴리염화비페닐(PCB)은 19 30년대 미국에서 개발되어 70년대말 미국과 캐나다에서 사용금지되었으나,현재도 지구의 전혀 다른 지역 생물체 신체조직에서 발견되고 있다.심지어 북극 곰의 지방질에서도 어렵지않게 추출된다. ○물·매연만 환경문제 아니다 의심할바없이 기술발전은 인류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 왔다.맬더스의 우려를 무위로 만든 녹색혁명기술이 그 대표적 예이다.녹색혁명을 가능케한 것은 관개사업과농업용화학물질이다.그러나 고수확품종은 수자원을 고갈시켰고 야생동물과 사람을 중독시켰다. 이점에서 기술은 많은 면에서 양날을 가진 칼이다.20세기 산업이 암석과 토양에서 찾아낸 첨단기술의 성과라는 것은 결국 천연독성물질을 추출하여 새로운 위험물질로 만들어낸 어두운 면을 갖고 있는 것이다.그 결과 현재 대기중에는 자연상태의 3백배에 달하는 납,20배의 카드뮴,4배의 비소가 축적되었다는 평가가 나와 있다. ○화학물질은 양날의 칼 20세기후반 화학회사들은 「화학제품을 통한 더 나은 생활을 위한 더 좋은 제품」이라는 기고만장한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해왔다.화학제품 없이는 생활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만큼 사람의 삶을 변화시켰다.그러나 이 새로운 창조물들은 혜택과 건강위협이라는 양날을 갖고있다.그리고 이 위험은 이제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화학물질과 건강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일부 과학자들의 힘없는 과제였다.하지만 1991년 여름 미국 위스콘신의 윙스프레드 컨퍼런스센터에 모였던 21명의 과학자들 연구결과종합토론은세계를 상당히 각성하게 만들었다.이들은 실험실 및 야생서식지에서의 연구를 통해 광범위한 종류의 오염물질들이 동물의 생물학적 기능을 저해함으로써 전체적인 생존능력을 해칠수 있다는 증거들을 제시했다.이들이 조사한 많은 화학물질들은 신경계통,호르몬조절기능의 내분비계통,전염병 및 암으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면역계통등 생명유지와 관련된 중요한 생리계통들을 파괴함으로써 광범위하지만 포착하기는 어려운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주었다. 중추신경계통의 민감성은 더욱 중요하다.신체의 다른 세포들과 달리 신경세포는 죽으면 보충되지 않는다.그리고 어떤 독물에 노출되면 신경세포는 잃는 속도가 빨라진다.신경세포를 해마다 0.1%씩 추가로 더 잃는 사람은 60대가 되면 건강하게 산 90대 노인과 비슷한 신경세포를 갖게 된다.이 신경세포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판단된 유독화학물질에는 현재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있는 것들도 있다.살균제·방부제·합성섬유에 들어 있는 포름알데히드,드라이클리닝에 쓰이는 퍼클로로에틸렌이 그것이다. 화학물질은 산업의 경쟁적 개발대상이고 현재 개발된 것만 7만종이다.그러나 기술쪽에서는 어느 물질이 어떤 위험을 갖고있는지 확인해주지 않는다.객관적으로 환경보호차원에서 위험도의 연구와 안전관리에 나설수밖에 없는 것이다. ○환경차원서 연구·관리를 환경처가 최근 이 화학물질의 위해성 평가제도를 개선하려하고 있다.현재 우리에게서 유해물질로 지정돼 있는 것은 4백70종.이를 20 05년까지 1천종으로 늘리면서 단순한 유해물질지정이 아니라 「감시물질」제도를 만들겠다고 한다.환경문제인식의 차원을 한단계 높이고 있는 것이다. 화학물질 감시체제는 과학적으로 철저하게 만들어야 한다.당연히 물질별 평가와 경고체계를 수립해야하고 품목별로는 수입규제에도 나서야 한다.이렇게 하기위해 화학물질 정보관리조직도 있어야한다.국민을 계몽하는 역할도 필요하다.화학물질사회에서의 질병들은 상당수가 화학물질때문에 인간이 자연치유력을 잃고 면역체계가 와해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점점더 정설화돼가고 있는 것이다.
  • “사고선박서 원유부터 옮겨야”/해난구조 전문가 김종복씨

    ◎8만t 쏟아지면 엄청난 재앙/특수장비 해외서 공수 급선무 『흘러나온 기름에 대한 방제나 보상보다는 현재 사고선박에 실린 8만3천t에 달하는 원유를 빼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씨 프린스호 좌초 소식을 듣고 25일 전남 여수로 달려온 국내 유일의 해난전문 구조회사인 부산의 진일산업(주) 대표 김종복(60)씨는 『이미 유출된 기름의 방제보다는 원유를 사고 선박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특수 장비를 외국에서 공수해 오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ISU(국제해난구조 기구)멤버로 지난 해 10월 울산 앞바다에 좌초한 기중기선을 무사히 끌어 올렸던 김씨는 『사고 해역에 2차 태풍이라도 닥쳐 원유가 추가로 유출된다면 그 피해는 일본 해역에까지 미칠 수 있는 엄청난 재난으로 이어진다』며 선박에 남아 있는 원유제거의 긴박성을 강조했다. 김씨는 『독일과 네덜란드 등 2개국만 보유한 유압식 펌프 등 유조선 구조용 특수 장비를 시급히 현장에 투입,원유를 다른 선박으로 옮긴 뒤 나머지 방제작업을 계속하는 게 순서』라고 강조했다.이런 장비를 이용하더라도 상온에서 굳어 있는 원유를 제거하는데는 10여일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곳의 기온이 섭씨 28도 이하인데다 선체가 바다에 잠겨 있어 원유는 이미 응고상태』라며 『일반 펌프로 이를 뽑아 내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장에 출동한 일본의 고요마루호(2천60t급)는 유출된 기름을 걷어 내거나 제거하는 오염 방지용일 뿐 원유를 제거할 수 있는 장비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흘러 나오는 기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 안과 바깥 양쪽 모두가 용접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유출양이 많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며 『특수장비를 이용해 뚫린 구멍을 틀어 막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크림슨 타이드/탈냉전시대 액션스릴러 영화

    ◎가공할 핵전쟁 위험성 고발… “짙은 호소력”/군사 위기상황 생방송 화면처리 돋보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어버린 오늘날 동서냉전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한 영화가 얼마만큼의 호소력을 지닐 수 있을까.오는 8월5일 개봉될 액션 스릴러영화 「크림슨 타이드」(원제 CRIMSON TIDE,감독 토니 스콧)는 우선 전형적인 냉전영화의 틀을 갖추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영화는 러시아의 정정불안을 틈탄 구소련 군부 강경파가 군통수권을 장악한뒤 미국 본토를 겨냥한 3차 세계대전 가상시나리오를 구체화하면서 시작된다.미국은 그들이 핵미사일 암호를 수중에 넣기전에 진압키로 결정하고 핵잠수함 앨라배마호를 파견한다.미 핵잠수함 앨라배마호는 러시아 핵미사일 기지 근해로 향하는 도중 러시아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받고 일대 혼란에 휩싸인다.이 지점에서 영화의 초점은 잠수함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75일간 벌어지는 군수뇌부간의 긴박감 넘치는 심리전으로 옮겨진다.그 두뇌게임의 주인공은 실전파 함장 프랭크 램지(진 해크먼)와 원칙파 부함장 론 헌터(덴젤 워싱턴).전혀 상이한 성격의 이들 두 지휘관이 위기상황에 처해 벌이는 대립과 갈등이 영화의 축을 이룬다. 경직된 냉전적 사고를 바닥에 깔고 핵전쟁의 위험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 다소 철지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신뢰할만한 소재의 이야기를 깔끔한 액션에 담아낸 점이 돋보인다.특히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 러시아 내전과 군부의 권력암투,그에 따른 군사 위기상황을 미국 CNN방송의 생중계 장면으로 처리한 것은 영화의 생동감을 더해준다.행진곡풍이면서도 고전적인 장중함이 녹아있는 한스 짐머의 음악도 「군사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린다. 한편 이 작품에서 영화의 흐름과 상관없는 경주마 이야기가 해군 수뇌부 사이의 화제로 올려지고 있는 것은 흑백 인종주의 갈등을 은근히 비꼬기 위한 감독의 고단위 연출로 보인다.『포르투갈산 리피자너는 모두 백마』라는 램지 함장의 말에 헌터 부함장이 짐짓 수긍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것은 스페인산이며 태어날땐 블랙』이라고 응수하는 대목은 퍽 시사적이다. 「크림슨 타이드」는 전편을 통해 전문적인 해군용어가 범람할뿐 아니라 여성배역이 거의 없는 이른바 「가이즈 무비」(Guy‘s Movie)다.그런만큼 감각적인 오락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겐 1백28분의 상영시간이 좀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그러나 이 영화는 「진홍빛 조류」란 강한 제목이 암시하듯 가공할 핵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
  • 당 수호 아래 대책위,8월 전당대회 재확인­KT계

    ◎내일 하오 「구당·개혁 결의모임」 개최­구당파/민주 수당·구당파 동향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정계복귀와 신당창당을 선언한 18일 민주당의 이기택총재측과 구당파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이기택 총재파◁ ○…이총재측은 이날 저녁 서울 한 음식점에서 전날에 이어 「당수호비상대책회의」를 열고 김이사장의 신당창당 선언에 따른 대응책을 논의했다. 박일고문과 강창성·이규택·강희찬의원 등이 참석 한 이날 모임에서 이총재 등은 예정대로 8월 전당대회를 개최,당권 재장악에 나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20일 기자회견도 예정대로 강행키로 했다. 이총재는 이에 앞서 이날 상오 9시 마포당사로 출근,측근으로부터 김이사장의 기자회견문을 전해들은 뒤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김이사장이 정계은퇴선언을 번복하고 신당을 창당함으로써 우리정치의 신의는 무너졌다』면서 『더욱이 정통야당을 통한 정권교체라는 오랜 숙원마저 어렵게 했다』고 비난했다. 이총재는 『다음 총선에서 3김시대를 종식하고 제1야당이 될 수 있도록 개혁과 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히고 『현재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의원들의 분포도는 틀린데가 많다』며 『지금은 언론이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곁에 있던 강창성의원은 『관망파로 분류되는 의원중 최소한 4명이 우리편』이라고 주장했다. 이총재는 또 기자들과 오찬을 나누며 『신당측이 창당대회를 8월말 또는 9월초로 늦춘 것은 민주당의 전당대회를 방해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한편 이규택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김이사장의 정계복귀는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국민과 역사를 배반한 결정으로 온 국민과 함께 분노한다』고 성토했다. ▷구당모임◁ ○…김이사장의 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마포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이사장의 창당선언을 맹렬히 비난한 뒤 낮에는 여의도 한 음식점에 모여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구당모임측은 이날 회동에서 김이사장의 선언으로 사실상 창당작업을 막기 위해서는 이기택총재의 사퇴가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앞으로 이총재의 퇴진에 주력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모임의 대변인인 제정구 의원은 『비록 창당을 선언했다고 하더라도 분당사태를 막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면서 『이를 위해 이총재의 사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구당모임측은 20일 하오 국회 소회의실에서 현역의원과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이 참석하는 「구당및 개혁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어 신당반대및 이총재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작업 결과를 발표하고 당수습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 민주 3계파 긴박한 움직임 안팎

    ◎신당엔 1명도 합류 안할것­민주 구당파/조직정비·인선 매듭… 창당 돌입­신당파/“구당파와 당권경쟁 승리” 자신­KT계/신당 인정… KT 퇴진공세 강화­구당파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신당창당 선언을 하루 앞둔 17일 민주당의 신당파와 구당파,이기택 총재측은 각기 계파모임을 갖는등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신당파◁ ○…신당추진파는 이날 상오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 주재로 17인 중진모임을 갖고 19일 창당주비위와 창당기획단을 발족시키기로 하는등 창당작업 초읽기에 들어갔다. 신당파는 이날 김이사장의 기자회견 문안을 최종 정리,독회한데 이어 8월말 또는 9월초 창당을 목표로 한 전반적인 일정을 잠정 확정했다.이날 저녁에는 김상현고문과 권로갑 부총재등 신당파 지도부가 신라호텔에서 김이사장 주재로 모임을 갖고 창당주비위원장 인선을 19일까지 매듭짓기로 했다.특히 주비위와는 별도로 총재단과 고문으로 구성된 지도위를 둬 자문역을 맡도록 하는등 창당작업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이와 관련,주비위산하에는 사무국·연락국·정책국·홍보국·대변인실을 두고 창당기획단은 아이디어의 산실로 만들 계획이다. 김이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앞날에 대한 자신감은 있으나 민주당이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창당하고 집을 두채나 빼앗기게 돼 착잡하다』고 마포당사등에 강한 미련이 있음을 실토한뒤 『하지만 한 고비가 정리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다』고 말했다. 신당파는 명망있는 인사보다 젊고 유능한 전문가및 문화·예술인들을 대거 영입,당의 면모를 새롭게 한다는 방침을 정했으며 전국구 의원들은 정기국회까지 민주당에 잔류시키기로 했다. 한편 탈당 1호를 기록한 권노갑 부총재는 『새로운 인재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신당에서는 지도부를 맡지 않겠다』고 밝혔고 이에 김이사장은 『신당의 발전을 위한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칭찬했다.특히 김이사장은 『창당작업에도 경제속도가 필요한 법』이라며 「과속」하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이는 여론진무와 더 많은 의원을 흡인하겠다는 「양수겹장」식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기택 총재파◁ ○…이총재는 이날 하오 서울 합정동 한 음식점에서 강창성·정기호·강희찬·이규택 의원등과 함께 당수호대책위 첫 회의를 갖고 신당창당선언후의 대책을 논의,20일 이총재의 반박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이총재는 곧 신당파들의 집단탈당이 이뤄질게 분명한 만큼 임시대변인에 이규택 의원을 임명하는등 이번주안에 당을 정상화시킬 예정이다.강창성의원은 회견을 늦춘 것과 관련,『김이사장의 정계복귀가 중대 국면이므로 보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에앞서 이총재는 북아현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구당파의 면담제의에 언급,『신당추진파로부터 사주받은 사람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뒤 『그러나 이부영 부총재와는 얘기가 잘될 것』이라며 이부총재와의 연대를 적극 검토하고 있음을 내비쳤다.이와 함께 이총재측은 구당파와의 당권경쟁에 대비,면밀한 검토작업에 들어갔으며 한 측근은 『예상치 못한 인사들이 우리쪽에 합류할 것』이라고 예고하며 승리를 장담했다. ▷구당파◁ ○…신당 창당이 대세로 굳어지자 신당반대 내지 불참보다는 이총재에 대한 퇴진공세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김원기·김근태·노무현 부총재와 홍영기 국회부의장,제정구·유인태·원혜영·김원웅·김종완·장기욱의원,김정길 전 최고위원등 11명은 이날 낮 회동,이총재의 퇴진을 위해 계속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그러나 신당행이 점쳐지는 조세형부총재는 이날 모임에 불참했다.이들은 『신당과 이총재 사퇴는 별개의 사안』이라며 『파행적인 당운영를 펴온 이총재를 퇴진시키는데 진력할 것』이라고 밝혔다.제의원은 『분당사태의 제1 책임은 이총재』라고 주장했으며 노부총재도 『이총재 문제를 빨리 결정짓지 않으면 신당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가세했다. 이들은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대의명분을 따를 것』이라며 『신당이 출범하더라도 구당파에서는 단 한명도 이탈자가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김원기 부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신당불참을 분명히 한뒤 『나를 둘러싸고 신당파와 이총재측이 모함을 일삼고 있으나 의원직을 버릴 각오로 민주당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곽 드러나는 「DJ 신당」/김대중씨 단일 지도체제 확실/오늘 창당선언·내일 주비위­기획단 구성/8월초 발기인 모임·8월말에 창당대회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창당작업이 17일 대강의 윤곽을 드러냈다. 신당파의 「17인 중진모임」은 17일 상오 김이사장 주재로 스위스그랜드 호텔에서 회동,창당일정에 대한 대체적인 계획을 마련했다. 이 계획안에 따르면 창당대회의 개최,즉 창당이 완성되는 시점을 8월말이나 9월초로 잡고 있다.이를 위해 우선 18일 김이사장의 창당선언에 이어 19일 창당주비위와 창당기획단을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창당주비위원장은 19일까지 인선을 매듭지을 계획이며 위원장에는 고문이나 부총재급 배제원칙에 따라 김영배의원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또 창당기획단은 젊은층을 등용,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받는다는 복안아래 인물 선정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창당주비위는 사무국과 연락국·정책국·홍보국을 두고 당의 이념·정강정책·당의 이념·지도체제 등 당의 골간을 마련하는 작업을벌일 예정이다.정강정책은 임채정 의원이,당헌당규는 박상천 의원이,조직과 총무 등은 동교동계 가신이 맡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창당기획단은 외부인사 영입을 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박지원 의원은 이와 관련,『명망가보다는 30∼50대의 전문직업인·예술인·문화인의 영입을 적극 추진해 21세기를 지향하는 정당의 면모를 갖출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당파는 8월초순쯤 창당발기인 대회를 가진 뒤 8월중순 창당준비위를 구성,8월말이나 9월초에 창당대회를 열 계획이다.당초 8월중순에 열기로 했던 창당대회를 다소 늦춘 것은 「구당파」등 민주당 잔류 의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8월28일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의 결과를 지켜보기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김이사장도 17일 『자동차도 80㎞의 경제속도를 유지해야 안전하고 경제적』이라고 말해 민주당의 상황변화에 맞춰 창당일정을 조정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관심을 끄는 정강정책은 권력구조에 있어서 대통령제를 표방하되 유권자들의 뜻에 따라 내각제도 가능하도록 여지를 남겨놓을 것으로 알려졌다.또 지도체제는 김대중총재 중심의 강력한 단일지도체제로 하되 ▲총재→3∼4명의 부총재 ▲총재→대표→3∼4명의 부총재로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신당파는 당의 개혁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부총재 가운데 1명은 외부영입인사로 충원하는 방안을 긍정 검토하고 있다.이와 관련,권로갑부총재는 17일 『신당의 어떤 당직도 맡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혀 새 지도부에는 동교동계 가신그룹들이 배제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이에 따라 부총재로는 김·이·정 세고문이 맡고 대표를 둘 경우 외부인사를 영입할 공산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당명은 21세기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정당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8월 중순까지 공모한다는 방침아래 「신정치민주당」「평화통일당」「통일민주연합」「신세기 민주당」등이 거론되고 있다.당사는 이미 결정한 대로 조순 서울시장이 선거운동 사무실로 사용했던 여의도 민자당사 바로 앞의 대하빌딩으로 하기로 했다.
  • 중소의 휴전협상계획(모스크바 새 증언:23)

    ◎북측의 모든 휴전협상전략 모택동이 직접 지시/모,스탈린에 전과정 보고… 주요이슈 조언구해/「38도선 기준 완충지대 설치·외국군 철수」 제시 북한측 휴전협상 전략은 모택동이 직접 지시했다.물론 모는 스탈린에게 협상 전과정을 상세히 보고하며 주요 이슈에는 반드시 그의 조언을 구했다.스탈린은 기본적으로 모택동의 입장과 생각에 이견이 없었다.김일성은 휴전협상이 시작되면서 이전보다 더 부차적인 조역역할에 머무르며 어쩌다 한번씩 사소한 문제에 대해 모택동에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정도였다.그러면 모택동은 이를 스탈린에게 전달할 때도 있고 그냥 묵살하기도 했다. 협상에 임하며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38도선 비무장화 등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를 내놓았다.이는 한편으로는 자신감의 일단을 피력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가능한 한 더 많은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전략의 일환이었다.하지만 분명한 한가지는 중국·북한은 최소한 휴전에 관심이 있었다는 점이다.결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수 없다는 자각과함께 더 많은 희생을 줄이자는 희망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무리한 요구 휴전회담이 시작되기 얼마 전인 51년7월1일 새로 평양에 부임한 라즈바예프 소련대사는 다음과 같은 전문을 스탈린에게 보고했다.북한의 협상기본 전략을 담은 내용이었다(전문번호 N501869sh). 『1.김일성은 51년7월2∼3일중 적에게 협상개시 시기를 제시할 예정임.모스크바의 긴급한 동의가 필요 함. …중략… 3.남일이 이끄는 북조선대표단은 다음 사항을 발표할 예정임. (a)전투행위 중지시기 (b)38도선 남북으로 각각 5∼10㎞씩 병력철수 (c)전투중지와 함께 38도선 상공의 비행월경 금지 (d)조선영해에서 해군력 철수 및 봉쇄해제 (e)2개월내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f)포로교환,강제 이주주민 귀환. 김일성동지는 필리포프동지의 적절한 응답을 기다리고 있음』 그러나 이 전문보고를 받은 스탈린은 이튿 날인 7월2일 이 제의내용이 모택동과 사전협의를 거쳤는지 물으며 이를 되돌려보냈다(전문번호N101529). 『전문에서 밝힌 북조선정부의 협상제의 내용은 중국정부와의 합의를 거쳐 공동작성돼야한다는 점을 김일성에게 전할 것.앞서 보고한 김일성의 제의 내용은 모택동과 합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임』 휴전협상에서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스탈린의 의지는 확고한듯 했다.그러나 모택동은 7월3일 자신의 휴전협상전략 기본원칙을 스탈린에게 보내며 그의 의견을 물었다.다음은 모택동이 이날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전문번호N21405). 『다음의 5가지 기본원칙을 보고 함. 1.쌍방이 동시에 전투중지 명령을 내릴 것.이 조항은 적도 이의없이 동의할 것으로 보임. 2.쌍방 병력은 38도선을 따라 10마일씩 밖으로 철수할 것.그리고 38도선 기준 10마일 이내에는 완충지대 설치.적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음.우리는 이 제의가 타당하며 적이 거부하기 힘든 사항으로 봄. 3.쌍방은 조선 외부로부터 무기·병력 반입을 통한 무력증강 행위를 중지할 것.조선영토내에서 전선으로의 병력이동도 중지함.우리는 적도 이 제의를 해올 것으로 생각 함.따라서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잡아 먼저 제의하자는 것임.다음의 마지막 제의는하는 게 좋을지,하지 않는 게 좋을지 애매 함. 4.중립국감시위원회 구성.적들도 이와 유사한 제의를 해올 것으로 예상해 우리가 먼저 이 제의를 하고자 함.하지만 이 제의를 실행에 옮기는 데는 수많은 난관을 겪을 것임.적들이 추천한 중립국 감독위 회원국들은 중국­조선국경의 병력이동과 북조선내 중요 통신시설들을 사찰하게 될 것임.따라서 우리가 먼저 이 제의를 할 것인지,아니면 적이 먼저 제의해오기를 기다렸다가 이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음. 5.쌍방 모두 전쟁포로를 송환해야 함.아마 적들은 포로의 1대1 교환을 제의할 것이나 우리는 모든 포로의 일괄교환을 고수해야 함.그러나 적은 북조선군 포로숫자가 우리보다 많음.북조선군 포로중에는 남조선군 출신 포로도 포함돼 있음.따라서 이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큼.위에 언급한 5개 사항은 군사대표단 회의에서 해결돼야 할 것임. 이밖에도 몇가지 문제가 더 있음. 1.모든 외국군대는 일정기한내(예를들면 3∼4개월안에)남북한을 완전히 떠나야 함.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임.그러나적군 대표들은 이것이 정치적 문제라며 회담 의제에 포함시키지 않으려할지도 모름.우리가 이 문제를 제기해야할지,말아야할지 말해주기 바람. ○이극농 파견 임무 지시 2.피란민들은 일정기한내(예를들면 수개월내)원래의 거주지로 귀환해야 함.김일성동지는 이 문제를 반드시 제기하자고 주장 함.이 문제도 많은 이견과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큼.자칫하면 다른 중요한 문제의 해결에도 영향을 미칠수 있음.어제 우리는 외교부 부부장 이극농과 그의 보좌관들을 조선에 파견했음.이극농은 개성외곽에 머무르며 비밀리에 휴전협상 전략을 지시할 것임』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극농이란 인물의 등장이다.그는 휴전협상 내내 회담장 외곽의 비밀장소에 머무르며 모택동과 계속 전문연락을 취했고 모택동을 대신해 협상을 총지휘했다.모택동으로부터 이 전문을 받은 스탈린은 바로 같은 날인 7월3일 곧바로 답전을 띄웠다. 『첫번째 두가지 제안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음.세번째 제안의 후반부(조선영토내 전선으로의 병력이동을 가리킴=편집자주)는 삭제바람.그러나 미군측이 이를 제의하면 받아들여도 좋음.4번째 제안은 하지 말 것.만약 미군측이 유엔군 군사정전위 설치를 제의하면 유엔은 전쟁당사자라는 점을 들어 이를 거부할 것.대신 중립국 감독위 설치를 제의할 것.5번째 안은 제의한 뒤 반드시 이를 관철할 것.나머지 두가지 사안(외국군대 철수 및 피란민 문제)은 제안한 뒤 이를 관철할 것』 이렇게 북한측 휴전협상은 모택동·스탈린 두사람의 철저한 지시 아래 시작됐다.개성으로 간 이극농 외교부 부부장은 7월8일 열린 회담부터 관련보고서를 모택동앞으로 보내오기 시작했다.이극농은 이날 회담보고를 이튿 날인 7월9일 모택동에게 보내왔고 모택동은 이 보고서를 이튿 날인 7월10일 스탈린앞으로 그대로 보냈다(전문번호N21632). ○“실패할땐 결사전투” 『적 연락장교들은 대표단 신변안전 및 준비사항에 협조해 준 데 대해 우리측에 사의를 표했음.회담중 양측은 서로 인사를 교환치 않았음.회담 뒤 미군측은 군대식 경례를 했고 우리도 이에 응답했음.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상오 10시경 미군기 2개 편대가 개성상공을 무력시위 비행했음.우리는 이에 개의치 않았음.비행기 1대는 회담장 상공을 선회했음.아마 지상과 연락을 취하는 것 같았음.미군 장교들이 도착하자 이 비행기는 곧바로 사라졌음.회담시작 뒤 2시간동안 분위기는 매우 긴장됐고 휴회 직전에야 조금 풀렸음.하오 회담은 매우 조용히 진행됐음.사소한 문제를 놓고 다소 이견이 있었음.우리측 연락장교가 상대방 대표에게 필요한 사항을 말하면 도와주겠다고 제의했음.분위기는 좋았음』 7월13일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회담진행 상황을 전달했다(전문번호N21756). 『2차에 걸친 회담에서 미군측은 대중 여론을 선동하고 우리측 의도를 간파할 목적으로 기자들을 회담장에 입장시키자는 제의를 했음.이는 어리석은 속임수이므로 우리는 단호히 거절했음.다음 회담에서 만약 미군측이 기자들을 데리고 입장하면 우리는 한발짝도 양보치 않겠음. 미군측이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를 의제에 포함시키는 데 찬성해야 함.그러면 우리도 38도선 군사분계선 설정문제를 추후로 미룰수 있음.김일성동지는 38도선 분계선 설정이 합의되면 외국군대 철수는 연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이극농동지한테 분명히 밝혔음.우리는 단계적으로는 이 두가지 사안­38도선 설정과 외국군대 철수­모두 합의할 수 있다고 믿음.피란민처리문제는 김일성동지도 북조선에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에 제의할 방침임.이 문제들을 모두 검토한 뒤 지시를 내려주기 바람. 회담이 실패하면 우리는 결사적으로 전투에 임할 것임.이에 대비,전투준비를 계속하고 있음』 이 전문을 접한 스탈린은 바로 이튿 날인 7월13일 모택동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내용의 답전을 보냈다(전문번호.N4153). 이와같이 휴전협상에 임하는 북측전략의 가장 핵심은 38도선에 군사분계선 설치와 외국군대의 철수였다.이중에서도 38도선 설치가 긴박한 최우선 목표였고 외국군대 철수는 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카드로 활용할 장기목표였음을 알수 있다. ◎새로 밝혀진 사실/51년 봄 이후 모가 실질적 전쟁주도 한국전쟁의 주도권은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져들고 특히 본격적으로 휴전협상이 시작되면서 모택동에게로 넘어갔다.이러한 사실은 이번 자료에서 비로소 처음으로,그리고 구체적으로 밝혀지는 내용이다.모택동은 비록 스탈린에게 자문을 구하고 또 그와 갈등하기도 하였지만 1951년 봄 이후 전쟁의 주도권이 그에게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전쟁에의 표면적인 개입을 회피하려는 스탈린의 이중전술 때문이기도 하였고 또 실제로 병력을 파견하였느냐 아니냐의 현실적인 차이 때문이기도 하였다. 1951년 봄 이후 모택동이 실질적으로 전쟁을 주도하였다는 사실은 이번 자료에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라고 할수 있다. 흥미있는 사실은 자료에서 볼수있듯 모택동은 때로는 소련의 군사적 지원을 위해,때로는 책임 때문에라도 스탈린을 이 전쟁에 더욱 깊숙이 관여하게 하려하였다.이는 1950년 봄 전쟁을 결정할 때와는 완전히 전도된 현상이었다. 1951년 7월3일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에는 향후 2년동안 견지된 휴전협상에서의 공산측의 기본원칙과 구체적인 전략이 이미 들어있었음을 알수 있다.이에 대한 스탈린의 답신 역시 직접적이고도 아주 구체적이어서 항목별 배제사항까지 들어있다.2년간의 전략전술에 대한 대략적인 합의가 이미 협상의 시각시점에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결국 2년간에 걸친 한국전쟁의 휴전협상은 이번 자료를 통해 새롭게 드러나듯이 협상테이블의 대표들을 「입」으로한 워싱턴과 모스크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이었던 셈이다.
  • 원로 연극인 장민호(이세기의 인물탐구:78)

    ◎평생을 연극으로 살아온 연기자의 대명사/파우스트 간판배우… 별명은 “파우스트 장”/이순신서 햄릿까지 어떤 배역도 무난히 소화/칠순이 눈앞에… 식을줄 모르는 열정으로 연기생활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는 관객을 계속 끌고 나가는데 있다』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수로 활약한 샬리아핀은 말한다.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연기에 대한 끝없는 욕심과 집념어린 정열을 불태우는 이가 있다면 국립극단의 원로배우 장민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그는 평생을 연극으로 일관한 연기자의 대명사다.양심적이고 본질적인 그의 연기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일시적인 경이감이나 전율만은 아니다.연기를 통한 인간정신의 승화를 그는 무대 곳곳에서 증명해 내고 있다.예의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인 관객을 이끌어 나가는데」 한번의 실수나 실책이 있을 수 없다는 주의다. ○솔직하고 직선적 성격 그는 언제나 의욕적이다.성격은 명쾌하고 성급하며 솔직하고 직선적이다.항상 모범생과도 같은 이런 유의 성격이란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끝장을 봐야만직성이 풀리게 마련이다.또한 철두철미하고 다혈질적인 기질로 인해 곧잘 흥분하거나 저항하거나 마찰을 빚기 십상일 것이다.그러나 「칼날처럼 날카롭고 정의감에 넘치건만」 막상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에는 흑백을 가리거나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 우회적인 유연성을 지니는 것이 남과 색다르다.이는 아마도 오랜 세월 어지러운 세파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터득한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또는 이북에서 혼자 월남해온 그로서는 사방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당연한 견제일 수도 있다.그래선지 국립극단에서 40년이 넘게 한 솥밥을 먹은 동료들도 『그의 속마음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다만 무대에 서면 「온몸의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기 때문에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면 모든 것은 침묵」일수밖에 없다. 그는 해방직후 황해도 신천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연극배우가 된 케이스다.20세되던 해 원예술좌가 공연한 성극 「모세」에서 타이틀 롤을 맡으면서 연극에 입문,그로부터 10년후 하유상의 「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로 「노역」을 완성시키면서 「성공적인 연기자」의 반열에 올라섰다.이후 「대수양」「세종대왕」「성웅 이순신」에서 완곡하며 기질이 장대한 성군,「오델로」「맥베스」「줄리어스 시저」의 다이내믹한 개성,「밤으로의 긴 여로」「안네 프랑크의 일기」「햄릿」에서의 차분하고 섬세한 내면 연기 등 그에게 돌아오는 모든 배역을 「생생한 극중 인물」로 부각시키는데 한치의 허술함을 보이지 않았다.그중에서도 「역을 최후로 완성시키는 것은 디테일이 아니라 전체적인 진실성」이라고 믿는 그가 평자들에게 어필된 것은 단연 괴테의 「파우스트」를 들수 있다. ○66년에 파우스트 초연 66년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로 초연된 「파우스트」에서 그는 학문과 지식에 실망한 노박사 파우스트가 현세적 향락에 침몰되는 과정을 고뇌에 찬 연기로 그려내었고 두번째는 8년후인 74년,순결한 헬렌과의 사랑에서 미마저 구하지 못한채 이상향을 꾀하는 허탈한 파우스트,또다시 84년 한독 1백주년 기념공연에서 독일의 저명한 기싱이 연출한 세번째「파우스트」에서는 지금까지 축적된 파우스트의 진면목을 함축하여 관객은 감전된 듯 박수갈채를 멈추지 않았었다.그때 이 연극을 연출한 기싱은 『그는 인물을 스스로 움직이되 얼굴 표정이 아닌 눈빛만으로 이미 단숙을 성립하고 있다』고 했다.즉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을 붙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긴박감에서 그는 감정을 절제하거나 적절히 노출하여 역이 가리고 있던 사상의 베일을 한장 한장 벗겨내고야만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배를 띄우고 그리고 끝없이 높은 탑들을 불태운 얼굴이었던가.사랑하는 헬렌이여 단 한번의 키스로 불멸케 해다오.오! 그대는 무수한 별들의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밤하늘보다 더 아름답구나­ 가슴속에 박힌 사랑을 고백하는 이 장면은 「드라마틱한 다이너미즘과 명쾌한 표현적 리듬,응축된 긴장감과 생명의 맥박이 충만」하여 이를 앞서 연출했던 이해랑씨는 『중진 장민호의 연기가 폭풍같은 성공을 거둔 근본 요인은 이러한 관념을 최후까지 지킨 지치지 않은 탐구의 결과』라고 못밖았다.이는 50년대 후반국산 영화붐으로 연극계가 부진하자 전 연극인이 분발하여 만든 「대수양」(김동인 작 박진 연출)을 보고 『그곳에 군계일학이 있었다』고 한 이진순씨의 지적과 맥을 함께하는 찬사이기도 하다.이로써 그는 「파우스트」간판 배우로서 평생동안 영광스러운 「파우스트 장」의 별명을 갖게 되었다. 배우는 무대위에서 기왕에 정해진 다양한 운명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따라서 짙은 분장속에 감추어진 배우의 모습은 다시 그 자체가 그의 얼굴일수도 있다. 더구나 그의 묵직한 바리톤의 음색은 푸짐한 볼륨과 풍부한 음조의 변화,감정의 뉘앙스가 격하게 풍겨나와 어느 대목에서도 무기미를 느낄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중후한 음의 압력은 라디오 드라마에서도 특출난 개성을 돋보여 67년부터 그가 해설자로 등장한 대하드라마 「광복20년」은 10년 장기 연속방송으로 장안의 성가를 높인바 있다. ○연출가로도 한때 활동 그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유치진의 「소」,체호프의 「봐냐 아저씨」를 무대에 올린 창조적 상상력이 풍부한 연출가이며연극적 감각과 지성을 겸비한 영화배우·TV탤런트이기도 하다.한때는 경화 프러덕션을 설립,그가 제작한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60년대 초반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인생만사 만능은 없다」는 교훈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절감하고 그는 고향에 돌아오듯 무대로 돌아왔다. 그후 그는 하고싶지 않은 일에 참여한 적이 없다.간혹 주변에서 자서전을 내라거나 대학에서 강의를 부탁해 오거나 방송 대담프로그램등에서 초청하면 일언에 외면한다.「배우는 무대에서 말할 뿐」,연기와 무관한 일은 그에게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가족은 산행 동반자인 부인 이영애(63)씨와 출가한 남매가 있다. 지금도 젊은 후배 연극인들 사이에서 대사를 가장 잘 빨리 외우고 「내가 만약 저 역할을 맡으면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간파하여 선명하고 강렬한 생명체를 그때마다 새롭게 탄생시킨다.또 주역에서 차츰 비켜나고 있지만 역이 크든 작든 「연기자는 계급이 없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자부심과 열의로 자신의 위상과 예성을 의식하는 도도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양한 인생편력을 체험하면서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대하려는 생의 충동은 그가 맡았던 파우스트의 일면이며 결국 「연극은 눈과 귀를 통해서 영혼까지 도달해야 된다」는 연극예술과 미와 환희를 이 세상에 가져다준,우리 연극사상 그는 투철한 한 존재에 틀림없다. 그리고 더이상 열띤 대사를 읊조리지 않아도 「오델로」의 이야고나 브루터스의 배반의 이미지를 물흐르듯 되살리는 경지에서 오늘도 그는 그만의 적광의 광채를 어두운 객석에 뿌리고 있다. 기 자 입 력 □연보 ▲1927년 황해도 신천 출생 ▲45년 월남,조선배우학교 졸업 ▲46년 서울중앙방송국 제1기 성우 ▲47년 원예술좌 입단,성극「모세」의 타이틀 롤로 데뷔 ▲50년 국립극장산하「신협」입단,유치진 작 연출「원술랑」 조우 작「뇌우」출연 ▲53년 국립극단 입단,오상원 작 「녹슬은 파편」이후 해마다 출연 ▲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셰익스피어 작 「햄릿」출연 ▲66년 괴테 원작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 「파우스트」초연서주역,일본 일생극장 개관기념공연 참가 ▲67∼71년 국립극단 단장 ▲68∼89년 한국 연극협회 이사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 김의경 작 이진순 연출「북벌」 ▲79∼90년 국립극단 단장 ▲88년 조우 작 이해랑 연출「뇌우」 38년만의 재공연 주역 ▲현재∼예술원 회원,국립극단 원로배우,연극협회 자문위원 제1회 방송문화상(58년) 서울시문화상(6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68·73·78년) 연극평론가 협회상(79년) 대한민국예술상(81년) 목련장(8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88년) 예총예술문화상(89년) 연극­유치진 작 「자명고」(54년)를 비롯,「박쥐」「오델로」「느릅나무 그늘의 욕망」「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인생차압」「시라노드 벨주락」「붉은 장갑」「세자매」「안네프랑크의 일기」「나의 고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빌헤름 텔」「죄와 벌」「결혼중매」「베니스의 상인」「이순신」(신명순 작 66년)「갈매기」「북간도」「수전노」「인종자의 손」「남한산성」「전쟁과 평화」「성웅 이순신」(이재현 작 73년)「세종대왕」「허생전」등 1백70여편과 영화 TV드라마 다수 출연.8월2일부터 「눈꽃」(11일까지 우봉규 작 김석만 연출 국립극장 대극장공연 예정).
  • 이 예쁜 신세대/박순녀 소설가(기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직전에 나는 5개월가량 머물고 있던 미국에서 돌아왔다.돌아오기 바로전에 한국을 다녀온 어느 교포여성의 강연을 들었다. 그녀는 한국에 와서 꼭 1년을 머물렀는데 그녀가 본 한국은 한마디로 「미쳐 돌아가는 나라」였다.나는 옳게 보았다 하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미쳐 돌아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뛰었단 말인가.그녀의 말이 옳으면 옳을수록 나는 점점 화가 났고 그 교포여성이 밉게 보이기 시작했다. 『당신은 못본 것이 있다.빠뜨린 것이 있다』 나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하지만 자신있게 소리칠 수가 없었다.그녀가 못본 것이 무엇인지 나도 집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11일과 13일만에 두 아이가 살아나왔다.살아나오면서 남자아이는 콜라가 먹고 싶다고 했고 여자아이는 냉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했다.TV를 보면서 그 긴박한 순간에 콜라나 냉커피라는 말을 들은 나는 웃어버렸다.나라면 「물,물…」하고 지옥에서 빠져나온 얼굴을 하지 않았겠는가.그런데 그 아이들은 웃었다지않은가.구조대원이 잘못 알아들은 자기 이름을 바로 잡기도 했다지 않은가. 남자아이가 나왔을때 나는 『어머,잘생겼네』했고 여자아이가 나왔을때도 『예쁘다 얘』했다.그 아이들은 진짜로 잘 생기고 예뻤으니까.새삼스레 나는 한국의 아이들이,지금 크고 있는 아이들이 잘 생기고 예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더 예뻤던 것은 그들이 죽음에서 빠져나와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이었다.그 강인한 정신력에 그 밝은 성격이 꼬옥 껴안아 주고 싶도록 예뻤다. 온나라가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는가」하는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을 때 이 아이들이 「우리가 이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신세대」라고 나선 것이다. 이렇게 예쁜 신세대가 우리 주변에서 크고 있었다니. 희망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이런 신세대가 우리 주변에서 크고 있다면 이 나라에는 희망이 있다.미쳐 돌아가는 이 나라가 서서히 바로 잡아지리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이들을 더 이상 어른들이 쥐고 놀지 말았으면 한다.그들에게 그들의 길을 가게 했으면 한다.예쁜 신세대를 어른들이 한사람이라도 더 다치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들을 놓고 상혼을 발휘하지 말자.그들을 두번 다시 사지에 몰아넣지도 이용하지도 스타를 만들지도 말자.그들을 평범하게 밝은 아이들대로 두어두자.그들은 필요하면 다시 매장에 나설 것이고 아르바이트도 할 것이다.그래서 자기 인생의 설계도를 계속 펴나갈 것이다. 썩어빠진 기성세대­이들을 그냥 종로거리에 세워놓고 탕! 하다가도 아니지 이 예쁜 신세대를 길러낸 것도 우리지 하는 생각을 한다.그들이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라면 그들도 이 사회에 속하는 아이들이다. 그러니까 미쳐 돌아가는 나라를 다녀온 미국교포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꺼지지 않는 「희망」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 모던 타임스(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모순된 사회 풍자한 채플린의 대표작/기계부품처럼 규격화된 인간의 변모 해부 채플린 영화는 낡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그의 영화는 대부분 흑백 무성으로 만들어졌지만 50∼60년 더러는 70∼80년씩 지난 지금도 오히려 생생하고 날카롭다.화려한 색감이나 첨단의 기술,긴박한 사운드가 들어있지 않은데도 그의 영화들이 시간과 지역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모던 타임스」는 「독재자」와 더불어 채플린 영화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발성영화 제작이 일반화된 1936년에 제작한 87분짜리 흑백 무성이다.주인공인 떠돌이 찰리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소동이 영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엎치락 뒤치락 이어지는 소란과 소동은 관객들을 웃기지만 그 웃음속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성 또는 전체주의의 획일적 통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느껴진다.웃음을 통해 경제적으로 모순된 사회를 풍자하고 이념적으로 뒤틀린 시대를 해부하고있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공장에 출근하기 위해 길을 메우는 노동자들,똑같은 일을 하는 탓에 주인공은 반쯤 정신이 나가고 공장안에서나 밖에서나 습관적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최고의 생산량,일의 능률만을 생각하는 기업가의 계획에 따라 찰리는 어느새 기계부품처럼 규격화된 인간으로 변모하고 만 것이다.영화를 보는 관객은 어느새 찰리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고는 서늘한 전율을 느낄 수 밖에 없다.그 생생함은 영화가 만들어진 당시나 수십년이 지난 오늘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그래서 웃음과 재미로 채워진 채플린 영화가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은 슬픔과 눈물이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이 지적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나 이념적 획일성에 대한 비판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인간에 대한 신뢰,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희망이다.채플린 영화의 위대함은 바로 이 부분에서 빛난다. 주인공인 떠돌이 찰리가 허름하고 남루한 옷일망정 모자에서부터 구두에 이르기까지 구색맞춰 차려입고 지팡이를 흔들며 「양반걸음」을 하는 것은 가난하지만 인간적 자존심과 존엄을 잃지 않으려는 서민들의 영화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영화가 끝날때 쯤이면 또다른 세상을 찾아 방랑을 떠나는 모습 역시 아름다운 사람,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기대와 희망이다. 채플린 영화의 또다른 특징은 쉽고 명쾌하다는 점이다.비판과 풍자는 날카롭고 집요하지만 과격하거나 천박하지 않으며 누구나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즐겁고 재미있다.좋은 영화란 기술이나 장비같은 물리적 조건보다는 사회와 시대를 바라보는 사색적 깊이,인간에 대한 믿음이 묻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그것이 바로 「모던 타임스」다.
  • 김 대통령­생존자 구조현황 직접 체크(「삼풍」참사/각부처 움직임)

    ◎당직자 조찬·국무위원 오찬 취소­청와대/“광산용 플래시 투입” 현장서 지시­이 총리 붕괴된 삼풍백화점의 구조작업이 이틀째 진행된 30일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관계부처들은 전체적으로 침통한 분위기였다.사고현장에서의 보고와 TV보도를 통해 생존자가 구조될때면 그나마 밝은 표정들을 보이며 보다 신속한 구조작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관계자들은 전화지시를 하는등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청와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사건 발생에 침통한 분위기를 감추지못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예정됐던 민자당 당직자들과 조찬및 국무위원들과의 오찬 일정을 취소했다.다만 이날 상오 코르만 바누아트공화국 총리의 접견은 외교관례상 취소할 수가 없어 그대로 진행. 김대통령은 다른 일정을 갖지 않는 대신 29일 저녁 사고가 난 직후부터 수시로 한승수 비서실장과 박성달 행정수석을 불러 생존자 구조작업등 사고현황 보고를 받고 필요한 지시를 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또 김영수 민정수석 등 관계비서진에게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수 있느냐』면서 『사고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사고 관련자에 대해서는 엄중히 처벌하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소개. 김대통령은 또 전날에 이어 이날 아침에도 현장을 다녀온 이홍구 국무총리로부터 정부 차원의 대책을 보고받고 사후수습책 마련에 만전을 기하도록 당부했다. 한편 이날 상오 한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수석회의에서도 생존자 구조작업등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따른 대책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고 윤여전 대변인이 전했다. ▷총리실◁ ○…이홍구총리는 사고 2일째인 30일 회의를 주재하고 또 현장을 직접 방문하느라 긴박하고 분주한 모습. 이총리는 상오 8시 집무실에서 사고 수습대책 마련을 위한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한 뒤 상오 8시50분 정부 구조구난본부장인 김용태 내무부장관 이성호 보건복지부장관과함께 사고 현장을 방문,구조작업 상황을 살폈다. 이총리는 이 자리에서 생존자와 사망자들이 매몰되어 있는 지하가 너무 어두워 구조에 애를 먹고 있다는 최병렬 전서울시장등 관계자들의 보고를받고 광산에서 사용하는 라이트를 긴급 공수하라고 즉석에서 지시. 이총리는 또 구조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민간인 자원봉사자들과 대화하면서 『피곤하더라도 사람을 살리는 것 만큼 귀중한 일은 없다』면서 생존자와 사망자가 모두 발굴될 때까지 계속 수고해 줄 것을 당부. 이총리는 상오 10시쯤 집무실로 돌아와 현장에서 파악한 점들을 관계 장관들에게 전화로 지시.그리고 점심때도 총리실 간부직원들과 청사 구내 후생관에서 오찬을 함께 하면서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시 한번 당부. 한편 정부는 이번 사고가 웬만큼 수습될 때까지 관계장관회의를 계속 개최키로 결정함에 따라 1일 상오에도 회의를 열어 인명구조상황을 점검하고 수습대책을 논의할 예정.
  • 회의중 “붕괴” 급보… 임원진 줄행랑/사고당일 삼풍간부 움직임

    ◎위험감지 5시간 뒤 전문가 불러 점검/“균열 땜질하면 안전”에 영업 계속 지시 붕괴의 위험을 알리는 매장 직원들의 애타는 목소리가 관리사무소에 빗발치고 있던 29일 하오 삼풍백화점 임원진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들이 건물붕괴의 위험을 보고받은 것은 상오10시쯤. 이영길(52) 시설관리이사의 방으로 건축과 이완수 차장의 긴박한 전화가 걸려왔다.상오 7시쯤부터 5층 식당가 음식점 「미전」등에서 심각한 붕괴의 징후가 발견됐다는 것. 이이사는 이처럼 다급한 사실을 1시간여가 지난 11시에야 이한상(42) 사장에게 보고했다.「설마」했던 때문이었을까. 사장과 이사는 함께 5층으로 올라가 바닥과 천장에 3∼4㎝가량 균열이 생겨 콘크리트 부스러기가 떨어지고 물이 새는 것을 확인했다. 불안해진 이들은 곧바로 백화점 건물의 설계를 감리한 「우원건축설계사무소」 소장 임형제(49)씨를 불렀다. 임씨의 지시로 낮 12시쯤부터 일단 에어컨과 옥상 냉각탑의 가동을 중지시켰다. 하오 2시쯤 이사장등 임원진은 B동 3층 회의실에 모였다.하오 4시의 목요일 정례 임원회의에 참석할 이준(73) 회장에게 어떻게든 대책을 세웠음을 보고해야 했다.1차 대책회의였다. 『지은지 6년 밖에 안된 건물이 설마 무너지기야 하겠느냐』『괜히 호들갑을 떨어 고객들을 대피시켰다가는 오늘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매상에 엄청난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아직 3층까지는 괜찮은 것 같으니 좀 더 지켜보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회의는 40여분만에 후다닥 끝났다. 곧이어 하오 3시쯤 건물의 준공을 감리했던 「한」건축구조사무소의 구조기술사 이모씨(46)가 달려 왔다.하지만 30여분동안 옥상과 4,5층을 조사한 이씨의 말은 이들을 오히려 방심하게 만들었다. 『건물 침하와 균열은 일단 멈춘 것같고 신공법으로 보강공사를 하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겠습니다』 회의를 마친 뒤 이들은 마지못해 식당가가 몰려 있는 5층과 금은방·학용품점등이 들어서 있던 4층매장의 직원 및 상인들을 철수시켰다. 하오 4시 정례 임원회의.정기적인 것이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다소 긴장이 감돌았다.참석자는 이회장·이사장 부자와 시설담당이사 이씨를 비롯,영업담당 전무 이격(49),경리담당전무 이한창(38),이사 이규학(43)씨등 임원 12명. 시설담당이사 이씨는 『5층매장의 균열이 심각해 일단 4,5층 직원과 상인들을 대피시켰다』고 보고한 뒤 『우선 영업을 중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건의했다.구조기술사 이씨도 『일단 고객과 직원을 대피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회장은 그러나 『일단 오늘 영업은 정상적으로 마치라』고 한 뒤 『영업이 끝나는 하오 8시부터 매일 밤시간을 이용해 건물보강을 하라』고만 지시했다. 5시30분쯤 건물이 무너지려 한다는 다급한 보고가 회의장으로 걸려 왔다. 고작 비상사이렌만을 울리게 한 뒤 서둘러 밖으로 빠져 나온 뒤 10여분쯤 후.창업주 부자는 상황을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도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들의 눈앞에서 수많은 목숨들은 건물과 함께 땅속으로 꺼져 내려가고 있었다.
  • 북,고비마다 새주문… 합의 늦어져/남북 쌀회담 타결 뒷 얘기

    ◎5일간 10여회 대좌… 40시간 마라톤 실랑이/쌀 전달방식·회담대표 호칭문제 싸고 설전 지난 17일부터 북경에서 진행된 남북 쌀회담은 상·하오,그리고 밤에서 새벽까지 하루 2∼3차례씩 회담을 강행군,연 회담횟수 10여회,회담시간 40여시간에 이르는 마라톤협상이었다. 남북 양측 대표는 연일 새벽까지 이어진 회담에 모두 지쳤지만 회담에 쏠린 관심을 감안,잠시도 주의를 흩뜨릴 수 없었다. 당초 주초 끝나리라던 회담이 늦어진 이유는 북한측의 본국 훈령접수절차가 복잡한데다 얘기가 잘돼갈 만하면 턱도 없는 제안을 다시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한 관계자가 설명했다. 우리 대표단이 이번 회담과정을 통해 보안을 강조한 것은 주지의 사실.북경 현지의 이석채재정경제원차관이 서울로 보고하는 통로는 권령해안기부장·한승수청와대비서실장을 통해 김영삼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고위단선 라인.이 핵심인사 외에는 아무도 회담진행상황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마라톤회담을 하다보면 본국의 훈령도 하루 수차례씩 받아야 한다.우리는 몇시간이면 청와대의 결재까지 받은 훈령이 전달되지만 북한쪽은 새 훈령을 받으려면 빨라야 반나절,보통 하루씩 걸려 회담에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북한은 또 지난 18일 회담에서는 『남쪽이 그렇게 여유가 있다면 1백만∼2백50만t의 쌀과 함께 잡곡도 달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19일 회담에서는 쌀을 전달하는 방식을 놓고 설전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다.우리측이 원산지표시삭제,제3국선박이용 등을 수용했음에도 북한측은 『5만t,10만t 식으로 나누어주지 말고 한꺼번에 달라』고 요구했다.우리는 15만t을 한꺼번에 무상지원하는 대신 7월중순 2차회담 개최를 받아냈다. 우리는 또 지원된 쌀의 상환방식에 대해서도 『북한측에 일임하겠다』고 밝혀 실질적으로 무상으로 지원한다는 데 합의가 이루어졌다. 회담이 성패의 고비에 놓인 긴박한 순간은 20일 하오.북측의 전금철이 『남한이 자꾸 조건을 다는 것 같아 기분나쁘다』면서 회담장을 한때 나간 것으로 알려져 『회담이 결렬됐다』는 추측이 강하게 나돌기도 했다. 이에 우리측은 이날밤 『합의주체에 당국자를 포함시키는 것은 양보하지 말라』는 최후통첩성 훈령을 보냈고 북한대표단이 이를 수용할 듯해 21일 새벽 타결이 기정사실로 비쳐졌다. 그러나 북한은 전금철의 호칭을 「대외경제협력위 고문」으로 한 합의문에 가서명한 뒤 본국의 훈령이 다시 필요하다고 밝혀 21일 상오부터 다시 문안작성회의가 마지막으로 한차례 더 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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