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긴박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 무승부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 대리석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 전설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 대변인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140
  • 시대자화상 국립중앙박물관

    시대자화상 국립중앙박물관

    자화상 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빈센트 반 고흐일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자신의 그림을 그린 거장은 렘브란트로 알고 있습니다. 생전에 10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르네상스시대에 살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그에게 인간적인 패기가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문예부흥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말년에 그린 ‘쾰른 자화상’은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세상과의 오랜 불화를 견뎌낸 여유가 느껴집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다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17세기 말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입니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 사실주의 화풍의 대가입니다. 남인이었던 그는 출세길이 막혀 막막했던 심경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자화상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허울이 아닌 사실을, 시대를 녹여버릴 듯한 강렬한 눈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그의 수염은 떨리는 듯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시대,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애석하게도 웃는 얼굴이 아닙니다. 여섯 차례의 이사 끝에 겨우 마련한 집. 그러나 유명한 작품들의 상당수는 일본 등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보는 남산은 주한미군의 골프연습장에 가려 잘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헬기 소리로 요란합니다. 일제침탈과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굴곡은 이곳에선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다시 희망을 힘겹게 떠올려 봅니다. 먼 훗날에도 이 땅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고백’으로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겠지요. 당당하면서도 너그럽고, 가난하지 않아도 겸손한 우리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1층 고고관·역사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은 그 곳에 있었다. 후손들에게 기록을 남긴 역사(歷史)시대의 모습도, 지혜가 미치지 못해 문자를 남길 수 없어 유물로만 자취를 남긴 선사(先史) 시대의 모습도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박물관 건물로 들어서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동관으로 줄지어 이어진다.1층에 들어서면 상설전시관인 고고관과 역사관이 관람객을 맞는다. ●구석기 시대에서 남북국 시대까지 한눈에 동관 1층 101∼110 전시실이 바로 고고관이다. 첫 걸음을 떼는 순간 세계전도와 함께 일본·중국·대한민국·세계고고학의 연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학창시절 교과서나 사회과부도·역사부도 등의 첫 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던 ‘빗살무늬토기’(신석기시대·서울 암사동 출토)는 관람객들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유물. 이어 ‘요령식 동검’(청동기시대·황경남도 신천 〃),‘산수무늬 벽돌’(백제·충남 부여 〃) 등이 눈길을 멈추게 한다. 마치 검은 돌처럼 바싹 말라버린 선사시대 ‘도토리’(신석기시대·경남 창녕 비봉리 〃)는 ‘갈판·갈돌’(〃·서울 암사동〃)과 함께 진열돼 있었다.500년 쯤 지나면 미니홈피 배경 음악이나 배경 화면을 사고 파는 전자화폐 ‘도토리’가 나란히 소개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선을 따라 청동기·초기 철기 유물들이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듯 스치며 지나간다.4∼6세기 고구려 고분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는 벽화는 ‘사신도’가 대표하고 있었다. 비록 모사품이지만 청룡·주작·백호·현무의 모습은 그 시절 고구려인의 호방한 기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백제실을 대표하는 ‘백제금동대향로’(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 앞에서는 좀처럼 관람객들이 눈을 떼지 못한다. 신선들이 산다는 박산(博山) 굽이굽이마다 상상의 동물들과 사람들의 모습으로 장식된 향로는 백제인들의 이상향을 엿보는 듯하다. 가야실에서 볼 수 있는 ‘투구’와 ‘말머리가리개’(부산 복천동 〃)는 외국 영화의 전투장비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관’과 ‘허리띠’ 앞에서도 관람객들은 오래 머문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아니었지만 발해실의 ‘용머리 장식’이나 ‘도깨비 기와’(중국 헤이룽장성〃)는 세상의 모든 나쁜 귀신을 쫓아낼 듯하다. 반면 두명의 부처가 함께 조각된 ‘발해불상’(발해 팔련성 〃)은 이민족도 너그러이 융합했던 민족의 포용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딸을 시집보낸 왕도 범부와 다르지 않았음을… 고고관을 다돌고 나면 맞은 편 111∼120 전시실인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대표적 기록문화유산인 한글, 금속활자를 비롯해 금석문, 문서, 지도 등 당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역사관 첫 전시실인 한글실에는 한글의 과학성보다는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랜 어버이의 모습이 가슴에 더 와닿는다.‘새 집에 가서 밤에 잠이나 잘 잤느냐. 어제는 그리 덧없이 내어 보내 섭섭무료하기 가이 없어 하노라.’며 조선 현종 임금이 궐 밖으로 시집간 셋째 딸 명양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는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지도실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밑거름이 됐던 ‘동국대전도’가 2.3배 확대돼 바닥 타일로 꾸며져 있다. 허리를 굽혀 살펴보면서 걸어보면 마치 소인국의 ‘걸리버’가 된양 한반도 전체를 걷는 느낌이다.‘수선전도(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추정)’‘도성도’ 등 서울의 옛 모습을 담은 옛 지도도 직접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등기제도, 노비의 경제적 가치, 조선시대의 의술 등 선조들의 생활상을 이해하기 쉽게 배울 수 있다. 다리가 아플 때쯤이면 소파나 영상물 상영관 등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시설이 전시관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정해진 동선대로 이동하지 않으면 시대 흐름을 놓칠 수 있으니 질서를 지키며 정해진 동선을 따르는 것이 좋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2층 미술관Ⅰ·기증관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올라서면 서예·회화·불교회화 등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인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Ⅰ’과 국내·외 각계각층 213명이 아무런 대가없이 박물관에 기증한 작품들이 있는 ‘기증관’이 있다. 특히 미술관Ⅰ에는 교과서에 실려 눈에 익은 작품들도 많아 직접 실물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교과서에 실린 그림이네? 미술관Ⅰ에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보물 527호)’. 춤추는 아이, 행상, 벼타작, 담배잎썰기, 씨름도 등이 눈길을 모은다. 꽉 짜인 원형 구도에 간략한 필선으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았다. 작품 크기는 30㎝ 안팎으로 아담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씨름도’의 씨름꾼 옆에는 이들의 신발로 보이는 신발들이 내팽겨쳐져 있다. 그런데 하나는 짚신, 하나는 고급신발로 보이는 고무신이다. 신분의 차이가 나는데도 공평한 승부 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구경꾼들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경기를 보고 있다.‘허허, 저런’‘빨리 넘겨 버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구경꾼들의 긴박한 표정과는 달리 엿판을 매고 떠꺼머리 총각은 아랑곳없이 천연덕스럽게 가위를 치면서 열중하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얼핏보면 빛 바랜 누런 종이에 검은 잉크가 뭉개져 있는 듯하다. 한참 들여다보면 왼쪽 하단 현실세계를 보여주는 야산에서 오른편 상단 도원의 세계가 보인다. 세종대왕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풍경을 안견에게 설명해서 그리게 한 것이다. 전체적인 경관은 짙은 안개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잘 어우러져있다. 꿈과 현실을 한폭의 화폭에 담은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인 질문도 떠오를 법하다. 두루말이 형태로 폭이 20m에 이르는 이 작품은 당대 지적 권력이 집약된 작품이다. 작품 양쪽에 자신이 안평대군이 직접 지은 제발(題跋)뿐만 아니라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서거정, 성삼문 등 당대 20여명의 문사들의 찬시가 곁들였다. 다만 안타깝게도 진품은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려한 불교회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표현한 그림들이 모여있는 불교회화관에 들어서면 좀 더 화려해진다.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 등 선과 악을 상징하는 오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대웅전 석가모니 불상 뒤에 놓였던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은 석가가 인도 마가다국의 영취산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한 사실을 화려한 색깔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원근법을 쓰지 않아 평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어찌보면 불화의 세계가 시공(時空)을 초월한 세계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사 김정희가 쓴 자신의 별호에 대한 글인 ‘묵소거사 자찬(默笑居士 自讚)’은 날카로움 속에서 정중함과 정성을 담아 쓴 흔적이 엿보였다.‘침묵할 때 침묵하는 것은 때에 맞는 것이요, 웃어야 할 때 웃는 것은 중용에 가까운 것이다.’라는 글귀가 담겨 있다.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에서는 내면의 세계까지 드러나는 듯하다. ●문화재 사랑으로 만들어진 기증관 기증관은 11개실로 구성됐으며 이홍근 박병래 등 문화재를 기증한 이들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1946년 이희섭 선생이 금동불상 세 점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모두 213명이 청동기 금속공예 회화를 비롯한 국보 6점과 보물 32점 등 모두 2만 2091점을 기증했다. 특히 아시아민족조형문화연구소 운영자인 가네코 가즈시게 선생 등 일본인 3명도 기증자 대열에 포함돼 있어 눈에 띈다. 기증관에서는 손기정 선생이 기증한 그리스 청동 투구(국보 904호)를 볼 만하다. 투구는 1500년쯤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경기에서 승리를 기원하고 신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제작됐다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 선생에게 부상으로 주어졌다. 투구는 베를린 박물관이 보관하다가 1986년 뒤늦게 손 선생에게 돌아왔다. 그는 이 투구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것이라 생각해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3층 아시아관·미술관Ⅱ 국립중앙박물관 어느 곳이나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특히 3층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인기 유물’과 그렇지 못한 ‘비인기 유물’ 사이의 차이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교과서를 통해 숱하게 봐 왔던 익숙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인도네시아·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물도 ‘아시아관’에 전시돼 있다. ●중국·일본·중앙아시아 유물도 전시 3층에는 306∼311호까지 인도네시아·중앙아시아·중국·일본의 유물이 전시된 ‘아시아관’이 있으며,301∼305호까지 ‘미술관Ⅱ’에는 불상·청자·백자 등 우리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보통 301호부터 관람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3층에 올라오면 바로 왼쪽으로 ‘아시아관’입구인 306호가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 관람객들은 306호 ‘아시아관’을 먼저 관람하게 된다. 306호를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다시 나가 301호로 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시아관’을 얼른 둘러본 뒤 ‘미술관Ⅱ’에서 우리 유물의 아름다움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아시아관’에서 관람객들의 발걸음은 다른 전시관에 비해 조금 빨라지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12개의 팔을 가진 부처 조각상이나, 인자해 보이지 않는 부처의 미소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다른 전시관에서는 아이들에게 유물에 대해 박사 수준의 설명을 해 주던 엄마들도 이곳의 잘 모르는 유물들 앞에서는 슬쩍 조용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시아관’에서 잠시 풀 죽은 엄마들은 3층 북쪽에 자리잡은 ‘미술관Ⅱ’에서 활기를 되찾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볼것 많고 배울것 많은 고려청자 전시실 자비롭고 은은한 미소로 가득찬 301호 불교조각 전시실을 지나면, 전시된 모든 유물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친숙한 금속공예(302호)·청자 전시실(303호)을 지나게 된다.304호에는 수수한 느낌의 분청사기 전시실이 있고 305호에는 백자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유물에 대해 ‘일자무식’이라도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국보 78호 미륵반가사유상도 이곳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따로 마련된 방에 모셔진 이 불상은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전시실 자체에서 풍기는 위엄만으로도 관람객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미륵반가사유상 외에도 고려청자 전시실은 관람객들의 ‘정체현상’이 가장 심한 곳이다. 사방이 온통 비취색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걸음을 옮길 생각을 잠시 잊게 된다. 또 국보와 보물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에 메모하는 학생들의 손놀림도 빨라진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진열된 어느 것 하나 국보·보물 아닌 것이 없을 듯한데, 그 가운데서도 국보가 있고 보물이 있는 것을 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층부터 차례로 관람하면서 올라왔다면 3층이 마지막 장소다. 특히 조선백자들이 전시된 305호를 마지막으로 관람하게 된다면, 어수선하게 관람했던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차분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손목없는 부처님…왜? “엄마, 왜 부처님 손이 없어요?” 3층을 관람하면서 엄마들이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301호에 마련된 불교조각 전시실에는 많은 불상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가운데 3개 철조불좌상의 양 손목이 없다. 공교롭게도 ‘손목 없는 불상’3개 모두 철로 만들어졌으며 앉아 있는 자세도 비슷하다. 첫번째 ‘손목 없는 불상’은 301호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볼 수 있다. 약 2m크기이며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충남 서산군 운산면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두번째는 충남 서산군 보원사 터에서 출토 된 것으로 11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이며, 세번째는 10세기에 만들어져 경기 포천군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손목 없는 불상’에 대해 불상 전문가인 홍익대 김리나 교수는 “불상의 손목은 다른 곳에 비해 가늘고 몸체에서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유실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누군가 고의로 잘랐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불상의 손 모양새(손갖춤)는 부처나 보살이 깨달은 중생 구제의 소원을 밖으로 표시하기 위해 짓는 것으로 부처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수목공원·공연장…가족나들이 ‘딱’이네 “박물관도 즐기고 공원 나들이도 하세요.” 박물관은 자칫 아이들에게는 딱딱하게만 느껴질 수 있다. 유물에 서려 있는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를 공감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런 염려를 덜어도 될 것 같다.‘거울못’과 10만그루의 수목 등 다양한 자연 환경이 박물관 주위로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과 공연장도 갖추고 있다. 박물관을 싫어하는 아이도, 박물관을 구경하고 싶은 어른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연못·폭포·정원·식물원 등 눈길 박물관 바로 앞에는 도심 공원이 펼쳐져 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울못’이다. 거울못은 지름만 150m에 달하는 인공연못이다. 박물관을 설계한 정림건축 박승홍 건축가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다.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맨 처음 만나게 된다. 거울못은 성벽 모양을 한 박물관을 비추는 거울이다. 모든 물들이 한데로 모이는 저수지이자 통일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연못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연못과 박물관 정문 사이에는 언덕이 하나 있다. 박물관 정문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박물관은 겨울에는 거울못이 얼면 야외 스케이트장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열린마당’은 박물관 중심에 시원하게 배치된 수목 공원이다. 한옥의 대청마루에 해당한다.10만 그루의 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보물 2호 보신각종, 보물 365호 흥법사 진공대사탑 및 석관 등이 숨어 있다. 박물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닌 사람들이 공부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설계가의 바람이 담겼다. 박물관 왼편으로 석조물정원, 어울마당, 미르폭포 등 다양한 녹지 공간이 펼쳐져 있다. 박물관 뒤편에도 크지는 않지만 녹음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전통염료식물원에서는 개암나무, 씀바귀 등이 재배된다. 그 옆으로는 의자와 잔디밭 등이 펼쳐져 있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도시락을 먹기에 그만이다. ●뮤지컬 즐기고 도서관서 책도 보고 박물관에는 공연장과 도서관 등 다양한 문화 시설도 갖추고 있다. 전문 공연장 ‘용’은 805석짜리 중극장이다. 서관에 있다. 박물관 안 공연장으로는 국내 최초다. 클래식,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무대에 올릴 수 있다. 공연도 연말까지 계속 이어진다. 지난달에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과 금난새·정명화의 공연이 열렸다.4일부터 페리아 뮤지카의 ‘나비의 현기증’, 연극 ‘이’, 뮤지컬 ‘러브 다이어리’ 등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장점은 1층에 8석의 장애인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휠체어로 들어와서 옮겨 앉지 않고 그대로 관람할 수 있다. 다만 회전무대 등 무대시설이 부족하고 완벽한 음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흠이다. 지적인 관람객들이라면 서관 4층에 있는 도서관이 제격이다. 고고학·미술사학·역사학 전문 도서관이다.9만여권의 장서와 600여점의 디지털 자료를 갖추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그러나 한 번도 ‘제 집’을 갖지 못했다. 무려 6차례나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60년 동안 타의에 의해 ‘역마살’에 시달렸다. 전쟁과 문화 홀대의 역사를 아프게 말해주는 대목이다. 국립박물관은 광복이 된 1945년 12월 경복궁 내 건물에서 정식 개관했다. 그러나 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요 유물 2만여점은 부산대학교 박물관 등으로 전전해야 했다. ‘전세방 처지’는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53년 피란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남산 분관에 자리잡았다가 55년 덕수궁 석조전에 이어 72년에는 경복궁 현 국립민속박물관 건물로 이전했다. 86년 박물관은 옛 중앙청 건물로 네번째 이사를 갔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다는 게 문제가 됐다. 결국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96년 경복궁 사회교육원 건물로 옮겨가 지난해까지 임시 거처로 사용했다.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은 환갑이 돼서야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마련한 셈이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교통편 ●지하철 용산∼회기 국철과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정문까지 걸어서 100m도 안 된다. 박물관 입구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10분 거리다. ●버스 버스도 비교적 편리하다. 초록버스 0211번(보광동∼옥수동)이나 빨강버스 9502번(의왕 고천∼신세계백화점)을 타면 된다. 용산가족공원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서울시티투어버스(도심순환코스)를 타도 바로 도착할 수 있다. ●승용차 서문으로 입장하면 된다. 주차료는 2시간에 소형차 2000원, 대형차 4000원이다.30분당 각각 500원,1000원의 추가 요금이 부과된다. 단 종일 주차는 각각 1만원,2만원이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개관 초기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훨씬 편리하다. ◆관람료 올해 말까지 무료다. 그러나 매표소에서 무료관람권을 발급받아야만 입장할 수 있다. 관람질서 유지와 이용객 안전 등을 위해서다. 내년부터는 성인(19∼64세) 2000원, 청소년(7∼18세) 1000원의 요금이 부과된다.20인 이상 단체는 성인 1500원, 청소년 500원이다.1주일 전에 인터넷으로 신청해야 한다. 어린이박물관도 7∼64세까지 500원을 받는다. 6세 이하와 65세 이상은 돈을 안 내도 된다. 그리고 매달 넷째 토요일과 관람 시간 종료 1시간 전부터도 무료 입장할 수 있다. 국빈이나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장애인 등도 무료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립중앙박물관과 연계된 문화 기관 17곳 가운데 5곳을 이용하면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관람시간·입장제한 평일은 오전 9시∼오후 6시,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9시∼오후 7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매표는 관람시간 종료 1시간 전까지 한다. 휴관일은 1월1일과 매주 월요일이다. 최대 3000명이 동시 입장할 수 있다. 하루 최대 허용인원은 1만 8000명이다. 어린이박물관은 더 경쟁이 치열하다. 오전 9시부터 1시간30분 단위로 150명만 들어갈 수 있다. 평일에도 오전 일찍 가지 않으면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관람 유의사항·편의시설 이용법 박물관 안은 당연히 금연지역이다. 음식물이나 애완동물과 함께 들어와도 안 된다. 다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은 출입할 수 있다.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에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돌려 놓는 것은 상식이다. 전화 통화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싫다면 차라리 전화 전원을 꺼 놓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유물과 작품의 사진을 찍을 수는 있다. 그러나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삼각대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몰지각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상업적 용도의 촬영도 금지돼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유물을 관람하는 값이다.1000원짜리 두 장 냈다고 제것처럼 만지면 안 된다. 혹시 아이들이 제집처럼 뛰어다니거나 유물을 손대면 따끔하게 혼을 내자. 편의시설도 꽤 갖춰져 있다. 유아나 노약자, 장애인은 유모차와 휠체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물품보관함도 있어 가방 등을 넣어둘 수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PDA·MP3플레이어 이용하세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최대의 최첨단 IT(정보기술) 박물관을 자랑한다. 설비시설은 물론 박물관 관리에 최신 IT 기술을 접목시켰다. 무엇보다 PDA와 MP3 플레이어 등 개인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더욱 편리하고 상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은 모바일 안내 시스템을 도입했다.PDA와 MP3를 갖고 전시품 앞에 서면 단말기가 전시품 위 적외선 발생장치와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후 관람객들에게 화상과 음성으로 전시물에 대해 안내를 해 준다. 지난해 리움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소개됐다. 사용법도 비교적 간단하다.PDA를 켜면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언어 선택 화면이 뜬다. 이후 각각의 박물관 전시실과 관람 코스가 안내된다. 전시실이나 코스를 따라 돌기만 하면 된다. 또 세계 최초로 박물관 네비게이터 기능도 갖췄다. 관람객의 현재 위치를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MP3 플레이어도 유물 소개는 PDA와 마찬가지다. 다만 네비게이션만 안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PDA 300대,MP3 400대를 갖추고 있다. 현장에서는 각각 100대 이하만 선착순 대여하고 나머지는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그러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터라 오전 10시만 되면 바로 동이난다. 대여료는 종일 PDA 3000원,MP3 플레이어 1000원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내실로 금융권 빅뱅 위기 돌파”

    은행장들이 11월 들어 일제히 ‘내실 다지기’를 강조하고 나섰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1일 통합 4주년 맞이 월례조회에서 “인수·합병(M&A) 등으로 촉발된 금융권 빅뱅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규모보다 역량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밝혔다. 강 행장은 “경쟁은행과 규모 격차가 현저히 줄어든 데다 (LG카드와 외환은행 등) M&A 매물까지 시장에 나와 있어 방심할 수 없는 긴박한 여건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이어 “하지만 국민은행은 2500만명에 이르는 고객을 제대로 모시기만 해도 영업규모 경쟁에서 어떤 은행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국내에서 10년간 최대은행의 자리를 지킨 리딩뱅크가 1개도 없었다.”면서 “국민은행이 이같은 신기원을 이룩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상훈 신한은행장도 월례조회에서 “불확실한 시장상황에서 영업 성패의 관건은 은행의 기초체력”이라고 강조했다. 신 행장은 “조흥은행과의 통합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고객 이탈을 막고 영업기반을 넓혀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고객과 끊임없는 의사소통을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권석 기업은행장도 월례조회를 갖고 “중소기업대출 순증액이 지난 3·4분기까지 4조 8000억원으로 기존 목표치인 8조원에 크게 모자란다.”면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남은 2개월간 적극적인 섭외와 마케팅을 통해 영업력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김前검찰총장 ‘최후의 10분’

    “지원금 봉투에 사직서가….” 검찰수뇌부는 지난 14일 오후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한다고 발표하기 전에 이미 김종빈 전 검찰총장이 법무부에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과연 이날 검찰총장 집무실이 있는 대검찰청 8층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일 대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김 전 총장은 지난 14일 오후 4시20∼30분쯤 수사지휘 수용을 발표하라고 지시한 직후 일반 직원 한 명을 불러 ‘지원금이니 법무부 모 간부에게 전하라.’며 봉투를 건넸다. 검찰총장이 법무부 간부에게 지원금을 건네는 것은 관례였다. 하지만 장관의 수사지휘로 검찰과 법무부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지원금을 건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이 직원은 이같은 사실을 대검 간부에게 알렸다. 직원에게서 보고를 받은 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그 간부는 봉투를 뜯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봉투 속에는 지원금과 함께 김 전 총장의 사직서가 들어 있었다.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이 간부는 곧 정상명 대검차장에게 보고했다. 정 차장은 바로 옆 총장 집무실로 향했다. 정 차장은 “이러시면 안된다.”고 말렸지만 김 전 총장은 “내 뜻이니 그냥 보내달라.”며 검찰을 위한 용퇴를 참모들이 이해해주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퇴근길에 나섰다. 김 전 총장의 뜻이 워낙 완강해 정 차장은 “사직서를 반드시 반려시키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마침 박영수 중수부장 등 검사장급 간부 몇명이 올라와 퇴근하던 김 전 총장을 붙잡고 “이러시면 안됩니다.”며 앞을 막아섰다. 김 전 총장의 완강한 뜻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정 차장은 간부들을 달랜 뒤 자신의 집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정 차장 등 대검 간부들은 총장의 사퇴가 공식적으로는 알 수 없던 일이고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법무부에서 확인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거취 문제는 일단 묻어두기로 했다. 김 총장의 사직서는 법무부로 향했다. 그로부터 20분쯤 후인 오후 5시10분 강찬우 대검 공보관은 수사지휘 수용 사실을 발표했다. 김 전 총장의 거취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많이 힘들어하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靑 “경제파탄 통계 대라” 朴 “체제붕괴중” 공방

    강정구 교수의 사법처리 여부로 빚어진 ‘정체성 논란’을 놓고 청와대·여당과 야당은 19일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대책회의를 갖고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를 맹비난했고, 한나라당은 여권의 색깔론 공세에 대해 ‘구태한 색깔론’이라고 역공을 폈다. 하지만 여야는 상대방 반응을 관망하면서 확전을 삼가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이날 이병완 비서실장 주재로 정무점검회의와 정무관계수석회의를 잇따라 열고 “경제가 파탄나고 나라가 무너진다는 주장은 아무리 정치공세라 해도 도를 넘었다.”고 비난했다. 청와대는 한국의 세계 경쟁력이 117개국 가운데 29위에서 17위로, 부패지수가 47위에서 40위로, 종합주가지수가 참여정부 출범 초기 515포인트에서 1186포인트로 오른 점을 들면서 “경제가 파탄나고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는 구체적 통계와 지표가 있으면 하나라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청와대는 이날 ‘검찰의 수난사’란 자료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없던 일’로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검찰의 자존심을 손상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유신시대의 반공 이데올로기, 그 시절의 구국 결사대 같은 것을 연상케 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문 의장은 특히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으로 뜨니까 (박 대표가)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세게 나오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여권에서 뭐 좀 제안만 하면 늘 경제 위기로 핑계를 댔던 그 분이 돌연 장외투쟁이니, 정체성이니 하면서 강공으로 전환한 것은 재·보선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긴박감을 공유하려는 듯 “오늘은 특별히 의원들께 동지라고 부르고 싶다.”며 “이 나라의 체제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제1야당의 사명이 막중하니 단단한 각오로 한 마음 한 뜻으로 가달라.”고 당부했다. 강재섭 원내대표도 “박 대표의 주장은 색깔론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생사론’인데 여권이 이를 색깔론으로 뒤집어 씌우는 자체가 구태한 색깔론”이라고 공격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논평에서 “어설픈 운동권 구호로 가득한 청와대 입장을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비극”이라고 거들었다. 한편 박 대표는 이날 신보수주의 성향의 8개 단체 모임인 ‘뉴라이트네트워크’가 주최한 ‘세금폭탄 저지와 알뜰 정부 촉구대회’에 참석, 범보수층과 연대해 ‘정체성 논란’을 이어갈 포석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이종수 박지연기자 vielee@seoul.co.kr
  • 102분/짐 드와이어·케빈 플린 지음

    2001년 9월11일 아침 8시46분. 테러범들에게 납치된 민항기가 뉴욕 맨해튼 무역센터 북쪽 타워에 충돌하기 직전, 이곳에선 1만 4000여명의 사람들이 업무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어 남쪽 타워에 다시 항공기가 충돌하고, 남쪽 타워가 무너진 데 이어 오전 10시28분 북쪽 타워가 붕괴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2분. ‘102분’(짐 드와이어·케빈 플린 지음, 동아일보사 펴냄)은 9·11테러 당시 항공기 첫 충돌부터 북쪽 타워가 무너지기까지 102분 동안 빌딩안에서 숨가쁘게 벌어졌던 서사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들은 뉴욕타임스 현직기자로, 케빈 플린은 사건 당시 경찰 출입기자 캡이었다. 저자들은 수백회에 이르는 구조대원과 생존자와의 인터뷰, 수천쪽에 이르는 구술기록, 이메일과 긴급 무전 필사본 등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했다. 장애인 친구 옆에서 구조를 기다리다 끝까지 운명을 같이한 젤마노위츠. 목발을 짚은 여성을 어깨에 짊어지고 54층에서부터 내려온 토레스. 자신은 살았다는 기쁨에, 자신의 선택이 맞았다는 생각에 무심결에 손뼉을 치다 ‘젠장 그만해.’라는 소리를 듣고서야 손뼉을 그쳤던 밀러.1층까지 내려왔다가 ‘이 건물은 안전하니 사무실로 돌아가라.’는 경비원의 말을 듣고 다시 올라갔다가 참극을 당한 사람들 등등. 책은 생존의 사투와 다른 이들의 목숨을 구해낸 평범한 영웅들, 생명에 대한 인간의 욕망,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스토리들을 긴박하면서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트윈타워가 내화 성능시험을 받지 않았고, 경찰과 소방관들간 교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보잉 707이 충돌해도 끄떡없다.’고 빌딩 관계자들이 자랑한 사실 등 9·11의 새로운 진상들도 들려준다.1만 45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재앙소설 쏟아진다

    예고없이 찾아오는 재앙은 인간의 본질과 삶의 근원에 대한 의문부호를 남긴다. 인간 스스로 초래한 참사든, 자연의 무자비한 횡포든 그것은 인간 존엄성을 한순간에 짓밟고 유유히 사라진다. 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비명과 통곡만이 오래 울려퍼진다.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트리나 사태가 전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공교롭게도 ‘9·11테러’ ‘지하철 테러’ ‘유독가스 유출’등 대형참사를 다룬 소설들이 잇따라 번역 출간돼 눈길을 끈다. 외부의 폭력에 속절없이 노출된 우리 사회의 허약한 구조를 폭로하는 동시에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 내면의 심리를 통찰력있게 묘사한 소설들이다. 프랑스 작가 프레데리크 베그베데의 살아있어 미안하다(원제 Windows on the world·한용택 옮김, 문학사상 펴냄)는 2001년 뉴욕에서 일어난 ‘9·11테러’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이다. 텍사스 출신의 부동산 중개업자인 카튜 요스톤은 그날 두 아들과 함께 세계무역센터 107층의 고급레스토랑 ‘세계의 창’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오전 8시46분 아메리칸 에어라인11기가 북쪽 타워에 충돌하는 순간 평범한 부동산 중개업자이자 가장인 그의 삶은 송두리째 날아간다. 소설은 요스톤과 그의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2시간의 생생한 기록과 작가 자신이 파리의 최고층 빌딩인 몽파르나스타워 레스토랑에서 딸과 함께 식사를 하며 9·11테러의 비극을 곱씹는 이야기를 병치시킨다. 프랑스와 미국의 관계, 미국인들의 우월의식, 테러 이후 아무 일도 없는 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한 냉소가 서늘하다. 베그베데는 이 소설로 2003년 공쿠르상에 버금가는 ‘앵테랄리예 문학상’을 수상했다.9500원. 극작가, 번역가, 배우로도 활동중인 프랑스 작가 피에르 샤라스의 19초(홍성영 옮김, 민음사 펴냄)는 1995년 파리에서 일어난 지하철 연쇄 폭탄 테러를 모티프로 삼았다. 파리 시민들은 그해 7월부터 11월까지 무려 아홉차례의 폭탄 테러로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소설은 테러가 일어나기 전 19초 동안에 벌어진 상황들을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다각도로 재생하는 독특한 형식을 띤다. 20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이별을 앞둔 중년부부,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간발의 차로 전동차에 올라탄 열다섯살 소녀, 옛 애인을 그리워하는 동성애자 강사, 삶에 지친 중년 부인 등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은 물론 조직을 위해 테러를 감행했지만 그 조직에 의해 목숨을 잃는 테러리스트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카운트다운을 하듯 1초 단위로 진행되는 소설은 긴박감과 비극성을 배가시킨다.8000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탈리아계 미국 작가 돈 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강미숙 옮김, 창비 펴냄)는 테러 집단에 의한 참사를 다룬 앞의 두 작품과 달리 소비자본주의와 테크놀러지에 대한 인간의 맹신이 몰고올 자연 재앙을 경고하는 소설이다. 대학교수로 평화로운 삶을 살던 잭 글래니는 유독물질 유출로 도시가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자 피난 행렬에 합류한다. 간신히 목숨은 건지지만 오염물질에 노출된 잭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선고를 받는다. 테크놀러지를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문명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이 책은 후기산업사회의 병폐를 지적한 문명비판 소설이자 죽음에 이른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파헤친 작품이란 평을 얻고 있다.‘화이트 노이즈’는 대중매체 상업광고 등을 비롯한 무수한 잡음을 뜻한다.1만 20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DJ정부시절 국정원 도·감청 무차별적으로 하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유선중계 통신망을 통한 불법 도·감청이 대공수사나 안보 목적과는 관계없이 임의로 자행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동식 감청장비를 이용한 휴대전화 불법 도·감청은 영장 청구 등 합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일부 불법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정보원 김승규 원장은 2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과거 불법 도·감청 실태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고 열린우리당측 정보위 간사인 임종인 의원이 전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이날 발표는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특히 김 원장이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불법 감청이 이뤄졌던 흔적이 일부 드러났으나 과거와 달리 무차별적으로 행해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차별성 또한 분명하게 확인됐다.”고 말한 것을 놓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봐주기’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국정원이 이날 보고는 지난 5일 김대중 정부 시절 도청을 공개한 뒤 이어진 긴박한 정국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DJ의 갑작스러운 입원과 그에 따른 호남 민심의 악화, 이를 의식한 여권의 ‘달래기 노력’ 등 전·현 정권이 불편한 관계를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국정원은 이날 DJ정권 시절의 불법 도·감청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DJ에게 ‘상대적 도덕성’을 주려는 카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등 야권은 ‘청와대를 의식한 DJ 감싸기 발표’라며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발표 수위가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원장은 또 “불법 감청 장비지원 신청서를 통해 감청 장비를 지난 2001년 4월까지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전직 직원 등 일반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어 당시 감청 업무에 관여한 일부 직원들의 진술에 의거해 대강의 정황과 일부 문서 등을 파악한 수준”이라며 “누가 누구에게 누구를 대상으로 도청할 것을 지시하고 그 결과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은 정확히 확인할 수가 없었다.”고 보고, 축소 수사 시비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불법도청 대상에 정치인 포함 여부도 논란이 예상된다. 김 원장은 이와 관련된 야당 의원들의 거듭된 질문에 강력히 부인하지는 않았다고 한 정보위원이 전했다.이지운 구혜영기자 jj@@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달라이 라마 평전/질 반 그라스도르프 지음

    달라이 라마.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21세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티베트의 정치·종교 지도자다. 지난 198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면서 북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그는 이제 전세계 평화의 상징이자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국내에도 달라이 라마에 관한 책이 50여권이나 출간됐을 정도로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을 쉽게 풀어썼거나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자서전이나 대담, 강연집도 나와있다. 세계적인 티베트 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질 반 그라스도르프가 10여년에 걸쳐 완성한 ‘달라이 라마 평전’(백선희 옮김, 아침이슬 펴냄)은 ‘그 정치적 미스터리와 영적 카리스마의 비밀’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티베트의 정치적·종교적 현실을 냉정한 시각으로 풀어 기존 책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저자는 10여년간 달라이 라마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직접 만나고, 방대한 자료조사와 치밀한 탐구를 통해 티베트의 특수한 역사·종교·정치적 상황을 씨줄과 날줄로 정교하게 짜냈다. 그동안 티베트 안팎과 달라이 라마를 둘러싸고 벌어진 수많은 미스터리들을 긴박하게 파헤친다. 전세계에 미치는 도덕적 영향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달라이 라마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미스터리에 둘러싸여 있다. 그의 권력 승계에 있어 주변 가족들의 몫은 무엇인가?그의 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티베트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상징적인 존재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떤가?그는 자연사했는가 살해당했는가?어린 신의 주위에서 놀아난 섭정들의 물질적 탐욕과 한 섭정의 성적 유희가 ‘세계의 지붕’인 티베트를 망친 원인인가? 중국첩보국과 CIA는 이 ‘설국’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었는가? 다람살라 망명정부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결코 인정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티베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는 드러나지 않은 많은 정보들과 인물들, 특히 달라이 라마와의 대담을 통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한 문명과 한 나라의 미래를 자문하게 한다. 1933년 13대 달라이 라마의 죽음부터 2003년까지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특별한 개인을 추앙하고 미화한 전기가 아니라, 개인을 중심으로 그가 속한 나라, 민족, 문화의 느린 임종을 증언하는 가슴 아픈 평전이다.14대 달라이 라마가 가장 고심하는 것도 티베트 문화의 보존이라고 한다.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티베트를 찾고 난민을 돕기 위해 애쓰는 것도 티베트가 ‘세상의 안식처´로, 혹은 티베트인들이 자부하듯 ‘이 땅의 배꼽’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 아닐까. 티베트의 아픈 역사와 치부를 긴박한 리듬으로 세세하게 증언함으로써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다.1만 5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카운트다운 히로시마/스티븐 워커 지음

    ‘원자폭탄이 있으니 대규모 전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대가로 우리가 누릴 것은 무한정으로 연장된 평화 아닌 평화뿐이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2차대전이 종료된 후 두 달여쯤 지난 1945년 10월19일 조지 오웰은 ‘트리뷴’지 칼럼에 위와 같이 썼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오웰의 바람대로 아직 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수천배 위력을 지닌 핵폭탄에 둘러싸인 채 ‘평화 아닌 평화’ 속에 현대인은 숨죽이고 살고 있다. 8월6일은 일본인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다.1945년 8월6일,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카운트다운 히로시마’(스티븐 워커 지음, 권기대 옮김, 황금가지 펴냄)는 첫 원폭 실험에서 실제 투하까지 긴박했던 3주간의 과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 스티븐 워커는 작가이자 12년간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지난 2003년에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주제로 한 ‘히로시마:세계를 뒤흔든 그날’이란 작품으로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원자폭탄을 주제로 씌어진 책은 많았지만, 주로 원폭 개발 과정을 다룬 과학서이거나 일본측 시각에서 피폭자들의 참상을 다룬 책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이 책은 저자가 방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원폭 실험 성공(1945.7.16)부터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8.6)되기까지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저자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이 원자폭탄의 자취를 좇아 로스앨러모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과 히로시마를 비롯한 일본의 몇몇 도시들, 그리고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가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싣고 발진했던 서태평양 마리아나 제도의 작고 외딴 티니언 섬까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들 가운데 생존자들을 인터뷰했다. 원자폭탄 제작을 책임진 그로브스와 오펜하이머, 스탈린을 따돌리고 실제 투하를 결정한 처칠과 트루먼, 요동치는 B29 안에서 원자폭탄을 조립한 폭격수 모리스 젭슨 소위, 그리고 히로시마 피폭자 중 살아남은 이들 등등. 수많은 생존자들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저자는 60년 전에 있었던 사상 최대의 ‘작전’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티니언 섬 509대대 병영은 이제 정글 속에 묻혀 잊혀지고 있다. 하지만 대원들은 지금까지도 매년 친목회를 갖는다고 한다. 이미 상당수가 사망해 몇명 남지 않았지만, 그들은 “지금 당시와 같은 상황에 다시 처하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명령에 따를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마치 ‘히로시마 원폭의 망령’이 언제라도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방증이라도 하듯이 말이다.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살인을 둘러싼 ‘TV쇼’같은 수사극

    8월의 극장가는 ‘아이디어맨’ 장진 감독의 것이 됐다. 그가 원작을 쓰고 연극무대에도 올렸던 ‘웰컴 투 동막골’이 흥행몰이할 기세가 등등한 이즈음. 역시 대학로에서 인기검증을 받았던 동명 연극을 그가 직접 연출해 그 제목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겼다. 11일 개봉하는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제작 어나더썬데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독의 재기발랄함이 또 한번 강렬한 어조로 투사된 작품이다. 그러나 이번엔 사뭇 달라진 면모가 눈에 띈다. 새 영화는 감독의 그 어떤 전작보다 작품 내·외적 스케일이 커졌으며 진중한 맛이 더해졌다는 느낌이 앞선다. 영화는 살인을 둘러싸고 사건의 진실과 범인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그린 수사극이다. 그런데 연극 원작이라는 태생적 배경 탓에 이 수사극의 행동반경은 다분히 제한적이다. 한 여자가 살해된 호텔 현장에서 용의자가 붙잡히고,‘전설’로 통하는 유능한 검사가 사건을 맡아 48시간 동안 진실을 파헤치는 상황극의 얼개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이어지는 수사드라마는 자칫 답답하고 소극적일 수도 있겠지만, 감독은 끊임없는 재치로 드라마의 스케일을 키워놓는다. 상황극이 실제 규모보다 더 커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유도한 구체적인 설정은, 과학수사본부를 무대로 한 수사 진행상황이 시종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다는 것. 미모의 카피라이터 정유정(김지수)이 치정에 얽혀 살해된 다음, 베테랑 검사 최연기(차승원)와 용의자 김영훈(신하균)의 신경전은 처음부터 숨이 막힐 듯 긴박하다. 자신감과 카리스마로 김영훈을 몰아세우던 최연기, 혐의를 처절하게 부인하는 김영훈 등 완강한 두 캐릭터가 빚어내는 파열음 자체만으로도 관객들은 색다른 수사극의 여운을 맛볼 수 있다.‘투캅스’의 자지러지는 웃음 대신 냉소하듯 비튼 유머,‘살인의 추억’의 소름돋는 스릴러 대신 기묘한 미스터리를 뿜어내는 영화에는 감독만의 스타일이 구석구석에서 살아 숨쉰다. 두 남자 배우의 강렬한 에너지로 관객을 매혹시킨 영화는, 수수께끼 같은 새로운 단서들을 하나 둘 보태며 수사극에 복잡한 거미줄을 쳐나간다. 정유정을 둘러싼 주변인물들이 개연성을 갖고 차례대로 화면에 소환되는 과정에서 영화는 IQ를 있는 대로 뽐낸다. 장감독의 주특기인 ‘수다에 가까운 재담’은 다소 줄었다.“언론이나 소문에 매몰되는 진실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는 연출의도는, 한판 TV쇼 같은 수사극을 통해 충분히 흥미롭게 반영된 듯하다. 수사가 미궁에 빠지자 무당까지 동원해 신비주의로 대중을 현혹하는 등 방송과 권력의 함수관계가 감독의 재기발랄함에 ‘화려하게’ 조롱당했다.15세 이상 관람가.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美의회 휴회 앞두고 쟁점법안 대거 처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워싱턴 정가가 본격적인 휴가철에 돌입했다. 미 의회는 1일부터 휴회에 들어가 한달여의 휴가기간을 보낸 뒤 노동절 다음날인 9월6일 다시 문을 연다. 이에 앞서 미 의회는 휴회를 앞두고 지난주 중미자유무역협정(FTA), 에너지법, 애국법 등 장기 쟁점 법안들을 무더기 처리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미 의회가 공화당과 민주당간 대립으로 수년간 끌어온 장기 계류 법안들을 지난달 29일 수시간 만에 유례없이 대거 처리함으로써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에 승리를 안겨줬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과거보다 적극적인 공화당의 민주당 의견 수렴 태도와 고유가 행진으로 인한 에너지법안 처리 긴박성 등을 요인으로 분석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날 라디오 연설을 통해 9월 초 상원이 다시 열리는 대로 존 로버츠 대법관 지명자에 대한 인준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해줄 것을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같은 정치적 승리를 바탕으로, 라디오연설에서 “의원들이 8월 휴회기를 맞아 귀향활동을 할 때 나는 7개주를 순방, 주민들과 대화를 갖고 우리의 경제성장에 대해 얘기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특히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며,5% 수준으로 떨어진 실업률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어 “일자리를 원하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제 문제에 집중할 뜻과 2009년까지 재정적자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한 작업을 계속할 계획을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으로 휴가를 떠나기에 앞서 정기 종합건강검진을 받았으며, 조사 결과 “직무에 적합하다.”는 판정이 나왔다.특히 영국에서 부상을 입을 정도로 산악자전거를 열심히 탄 결과, 지난해보다 체중이 3.6㎏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dawn@seoul.co.kr
  • [영화속 수능잡기] 폰부스

    [영화속 수능잡기] 폰부스

    더 이상 휴대전화는 특별한 물건이 아니다. 만인의 필수품이 된 지 이미 오래다. 한 조사에 의하면 전 국민 10명 가운데 약 7명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고 한다. 휴대전화 대수는 일반전화 대수를 이미 넘어섰다. 손톱을 정리하고 머리에 염색을 하듯 젊은이들은 요란한 장식으로 휴대전화를 치장한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는 휴대전화 장식을 파는 장사치들이 즐비하다. 휴대전화와 관련한 제품들이 팬시점의 매출 규모를 좌우할 정도다.‘청소년 휴대전화 사용 실태 및 사회학적 고찰’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붙은 논문은 외출시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응답이 75.0%로 조사되었다는 내용을 싣고 있다. 휴대전화는 더 이상 통화기기가 아니다.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한다. 그뿐인가. 휴대전화로 TV와 동영상도 본다. 위치추적 시스템을 이용하면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추적할 수 있다. 대체 저 사람이 왜 그렇게 바쁜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휴대전화의 통화내역을 추적해보면 알 수 있다. 영화 ‘폰부스’의 감독 조엘 슈마허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길거리 통화장면을 보여준다. 길거리는 공적인 장소다. 그러나 그 공적인 장소에 휴대전화가 개입되면 공적인 장소로서의 의미가 상실된다. 휴대전화를 든 사람들은 공적인 장소를 걸어가면서도 여전히 사적인 개인으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적인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휴대전화를 든 개인은 언제든지 추적당할 수 있으며 그의 통화 내역은 언제든지 노출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방송연예 관련 잡지 편집장인 주인공 스튜는 이 사실을 명민하게 눈치채고 있다. 그는 은밀하게 사귀는 여배우와 폰부스에서 공중전화로 통화한다. 사적인 통신수단인 휴대전화보다 공적인 통신수단인 공중전화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영리한 판단이 그로 하여금 공중전화를 들게 한 것이다. 최첨단 통신기기의 시대에 구시대 통신수단인 공중전화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더 잘 보호해준다는 웃지 못할 역설을 영화는 말해준다. 그러나 자신의 은밀한 연인과 통화를 마치고 폰부스를 걸어나오는 스튜에게 공중전화로 전화가 걸려온다. 여기에서부터 악몽은 시작된다. 전화를 끊으면, 쏴 죽인다는 킬러의 협박, 스튜의 사생활을 훤히 꿰뚫고 있는 킬러는 폰부스에서 나오라며 시비 거는 사람을 쏘아 죽인다. 살인자로 몰리는 스튜, 그리고 대중에게 공개되는 그의 사생활. 영화는 긴박하게 전개된다. 첨단 문명의 시대에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어떤 위험 속에 놓여있는지를 ‘폰부스’는 말한다.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혹독한 대가를 영화의 주인공 스튜는 고스란히 치러내는 셈이다. 과연 그것이 남의 일일까. 조엘 슈마허 감독, 콜린 파렐, 포레스트 휘태커, 키퍼 서덜랜드 출연,2002년작. 김보일 서울 배문고 교사 uri444@empal.com
  • [일본을 다시본다] (12)꿈틀대는 정치권 세대교체 갈망

    [일본을 다시본다] (12)꿈틀대는 정치권 세대교체 갈망

    |도쿄 특별취재반|1866년 여름 도쿠가와 막부는 조슈 번과의 전투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다. 결국 이듬해 12월 정권은 조슈와 사쓰마 지역의 젊은 사무라이들에게 넘어가고 구태와 무능으로 일관했던 막부는 공식 폐지된다.‘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이 혁명을 주도한 핵심은 신흥계급이 아니라 기존 엘리트층인 사무라이들이라는 점이 유럽의 근대적 혁명과의 차이다. 일본은 특유의 ‘위로부터의 혁명’으로 근대화의 문을 열어젖힌 셈이다.2005년 5월. 일본 정치권에선 또다시 ‘위로부터의 개혁’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9월이지만 ‘우정민영화’ 법안으로 다음달 중의원 해산 후 조기 총선이 가시화되고 있는 긴박한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일본 젊은 정치인들의 화두는 ‘세대교체’다. 그들 대부분은 아버지의 대를 이은 2세 정치인. 그러면서도 원로 정객들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메이지 혁명’의 메커니즘과 절묘하게 닿아 있다. 젊은 의원들은 향후 정치판도를 기득권층 대 신진세력의 구도로 그리고 있다. 집권 자민당에서 ‘부간사장’이란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고노 다로(43) 중의원은 마치 다른 당을 비판하듯 신랄하게 자민당을 난타했다. 차기 총선의 전망을 묻자 “세대교체에 성공하면 계속 집권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민당은 몰락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고노 요헤이 전 자민당 총재의 아들로 전형적인 2세 정치인에 해당하는 그는 지난 총선에서 자민당이 민주당에 일격을 맞은 데 대해 “연금개혁을 추진한 사람이 원로들과 바보같은 개혁을 했기 때문”이라며 “낡은 의원들이 언제까지 해먹느냐가 문제”라고 일갈했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 따른 장단점을 설명해달라는 주문에는 “거의 다 단점이다. 자민당의 의사결정 메커니즘과 국회운영 방법은 재앙이다.”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이런 수준의 ‘자아비판’은 당혹스럽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1년 민주당에서 소장파 의원들이 동교동계를 겨냥해 정풍운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으나, 의원 개인 차원에서 고노 의원과 같은 과격한 비판은 감히 하지 못했었다. 소장파 의원들이 힘을 모아 성명을 발표하는 경우에도 수위를 극도로 조심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핵심 당직자가 원로들을 향해 대놓고 물러나라고 소리치고 있는 격이다. 그의 단호한 눈빛에서 젊은 사무라이의 섬뜩함이 연상됐다. 야마모토 도미오 전 농수산상의 후광으로 정계에 입문한 야마모토 이치다(47) 참의원은 좀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는 “현역 중 나이가 많거나 지지율이 낮은 후보자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젊은 정치인으로 물갈이시켜야 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할 수 있다.”면서 “지금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세대교체, 정당교체가 일어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마모토 의원에 따르면, 자민당내 30∼40대 젊은 의원들은 차기 총재 선거를 앞두고 세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20명선에서 출발한 ‘혁명군’이 지금은 70∼80명으로 늘었다는 주장이다. 야마모토 의원은 “이전 세대가 주축이 된 기득권 세력이 차기 총재 경선에서 또다시 승리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린다면 자민당엔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런 사태가 빚어진다면 나는 야당인 민주당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정권 자체를 교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는 충격적인 말까지 던졌다. 놀란 기자가 ‘민주당에 입당하겠다는 의미냐.’고 묻자 “실제로 가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톤을 낮추면서도 “중요한 것은 정권을 잡느냐 못 잡느냐가 아니라, 경제부흥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의 미카즈키 다이조(34) 의원도 “지금 민주당에는 자민당 출신이 많은데, 그들 대부분은 자민당식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며 “지금처럼 민주당이 국민에게 자민당과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총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책 한두개로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진정한 세대교체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 공천 과정에서 대규모 세대교체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일본은 파벌간 나눠먹기에 의한 하향식 공천이 대세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지역구 예산 확보에 대한 기대로 다선(多選) 중진 정치인들을 선호하고 있는 경향도 공천 혁명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우리가 유념할 대목은 젊은 유망 정치인들의 ‘위로부터의 혁명’의 기세가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일본 정치의 구질서를 혁파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또한번의 ‘기득권층의 변신’으로 기록될 수 있다. 민주당 미카즈키 의원은 “자민당 의원들은 자민당적인 정치방식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세대교체란 화두를 전술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지금껏 일본이 가치를 뒀던 분야가 아니라, 환경과 평화와 같은 미래지향적 가치를 위해 세대교체가 단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치의 진정한 미래는 세대교체 자체가 아니라, 세대교체의 질에 있다는 지적이다. carlos@seoul.co.kr ■ 日국회의원회관 가보니 |도쿄 특별취재반|일본 국회의 의원회관은 ‘본받을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회관의 정문으로 의원들뿐 아니라 일반 민원인들도 ‘버젓이’ 출입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의원회관은 오직 의원들만 햇볕이 잘드는 정문의 커다란 유리 자동문을 통과할 수 있다. 보무도 당당하게 붉은 카펫을 밟으며 출입하는 의원들의 자태에서 ‘민주’(民主)의 이미지를 찾는 일은 허망하다. 의원들을 수행하는 보좌관들도 ‘감히’ 이 자동문은 통과하지 못한다. 양옆에 달린 좁은 회전문이 보좌관과 일반직원의 통로다. 그래서 한국의 의원회관 정문에서는 함께 걸어오던 의원과 보좌관이 각각 다른 문을 통과한 뒤 바로 다시 ‘상봉’하는 웃지못할 촌극이 이어진다. 안타까운 것은 민원인들이다. 국회 지리를 잘 모르는 이들이 어렵게 물어물어 정문까지 왔다가, 경비직원들한테 제지당하고 다시 한참을 돌아 건물 뒤편의 지하 후문으로 가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본 의원회관의 경우 복도 곳곳에 전광판식으로 본회의 및 상임위원회 일정이 계속 ‘보도’되는 것도 인상적이있다. 의원들이 전광판을 수시로 마주치다 보면 아무래도 회의를 빼먹기가 좀 미안할 듯싶었다. 마침 의원회관 1층에서 입법 관련 공청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좁은 회의실에 사람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차 있었다. 그래도 침 삼키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는 진지했다. 자꾸 드나들어 주의를 산만하게 하거나 회의장 바깥에서 떠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carlos@seoul.co.kr ■ 日 젊은 정치인들 솔직·당당 |도쿄 특별취재반|혼네(本音·진짜 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겉으로 드러내는 마음). 흔히 일본인의 이중적 기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적어도 일본의 젊은 정치인들한테는 이 말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다분히 직설적이었고,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고노 다로 중의원은 직선적인 매너로 기자를 당황스럽게 했다. 사무실 위치가 헷갈려 약속시간에 3분 정도 늦었는데, 그는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 통역이 매끄럽지 않자 마침 곁에 있던 한국 특파원 출신 일본인 기자에게 “당신이 통역하라.”고 해 기자가 데려간 통역사를 무안하게 했다. 야마모토 이치다 참의원은 자화자찬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대화 도중 “유력한 차세대 총리 후보인 나로서는…”이란 말을 수시로 했다. 자신을 차세대 정치인으로 소개한 책자를 ‘선물’로 건네기도 했다. 기자를 가장 놀래킨 사람은 30대의 미카즈키 다이조 중의원이있다. 한참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보좌관이 들어와 귀엣말로 뭐라고 속삭였다. 순간 벌떡 일어나 수화기를 집어들더니 사무실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하이(예), 하이”하면서 90도로 연신 허리를 숙여가며 통화를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같은 당 원로 의원의 전화였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혼신을 다하는 자세에서 혼네와 다테마에의 구분은 무의미해 보였다. carlos@seoul.co.kr
  • [사설] 도청, 협박, 자해… 그 다음은 뭔가

    대통령을 제외한 고위층이 모두 국가정보기관 요원에 의한 도청대상이고, 도청테이프가 빼돌려져 협박용으로 쓰였으며, 불법행위자가 자해소동을 벌이면서 시위하는 나라. 소설·드라마보다 긴박한 상황이 연일 벌어지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국민총생산이 세계 10위권에 올라섰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후진적 행태를 극복하지 않고는 한국의 미래는 없다. 이번에 파문을 일으킨 불법도청은 과거 정권이 저질렀다. 하지만 연관된 인사들은 아직 정치권, 재계, 언론계에 포진해 있다. 차제에 깨끗이 털지 못하면 언제, 어디서 다시 폭발할지 모른다. 우선 도청 경위를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도청테이프가 불법적으로 유출되고 협박에 이용되었음에도 법적 제재없이 넘어간 사실도 규명되어야 한다. 남아있는 도청테이프를 전면조사해 앞으로 문제될 부분은 공개하고, 상응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를 중심으로 특정그룹이 안기부(현 국정원) 도청팀을 사조직처럼 운용했다는 의혹은 심각하다. 사실이라면 김영삼 정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지고, 당시 국정파행상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도청을 실행한 미림팀장은 테이프와 녹취록을 빼돌려 제3자와 공모, 협박에 이용했다. 국가정보기관 요원의 공직윤리는 완전히 실종됐으며, 안보분야에서는 허점이 없는지 궁금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천용택 전 국정원장은 테이프 200여개를 수거했으나 관련자를 사법 제재하지 않았다. 물밑 거래설이 나오고, 녹취록에서 김 전대통령 부분이 삭제됐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야당은 특검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과 검찰, 국정원이 전부 간여된 사안이므로 특검에 맡기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검찰과 국정원이 이미 사건조사에 착수했다. 여야가 특검법협상을 하는 동안 물타기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검찰이 의혹을 해소하는 모습을 보고 특검 도입을 검토해도 된다. 검찰과 국정원은 삼성을 봐주려 한다거나, 야권의 잘못만 부각시킨다는 오해가 없도록 공명정대한 조사를 벌여야 할 것이다.
  • 하나로 “파워콤서 빌려쓰는 인터넷망 걱정되네”

    하나로 “파워콤서 빌려쓰는 인터넷망 걱정되네”

    “파워콤은 자사 사용 망과 경쟁사에 빌려주는 망의 품질을 차별화하는 작업을 이미 진행 중이다. 따라서 허가 조건에 이행 사항을 세세하게 적시해야 한다.”(하나로텔레콤 주장),“케이블 TV망은 모든 사업자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어 특정업체의 망 품질 차별은 불가능하다.”(파워콤 주장) 초고속인터넷망 임대사업자였던 파워콤이 일반가입자(소매업)도 모집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시장에 긴박감이 감돌고 있다. 정통부는 오는 27일 정보통신 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파워콤의 시장진입 조건을 최종 결정한다.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으로 보이는 하나로는 걱정과 불만이 태산과 같다. 당초 예상보다 앞당긴 정책심의위 일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책심의위 한 위원은 “예상보다 빨리 회의가 열리는 것 같다. 대부분 위원들이 교수인데 지금은 방학이고 휴가 때여서 참석을 많이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면서 “회의에 참석해 봐야 상황을 알겠지만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시장 상황은 ▲하나로의 법정관리였던 두루넷 인수 ▲KT의 초고속인터넷 지배적 사업자 선정 ▲망 사업자였던 파워콤의 소매시장 진출 ▲케이블방송사업자(SO)들의 인터넷시장 저가 공세 등 판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절반의 시장을 갖고 있는 KT는 영향권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반면 2위권인 ‘하나로+두루넷’ 진영과 ‘데이콤+파워콤’ 진영간의 기싸움은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하나로,“모든 게 불리하다” 하나로, 두루넷, 온세통신 등 후발 사업자들은 “소매업을 시작하는 파워콤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자가망과 임대망을 분리, 망 품질을 차별화하는 작업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심의위에서 동등한 품질 보장 등을 허가 조건에 적시해야 하고, 정통부로부터 이행 상황도 점검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하나로는 “파워콤이 기존 임차망은 성능개선을 하지 않고 자가망의 케이블모뎀종단시스템(CMTS)만 새로 구축할 경우 임차업체들은 불공정한 경쟁환경에 처하게 돼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통부에 대해서도 이같은 여건을 감안, 동등한 조건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허가를 내준 마당에 정책에 반기를 들 수는 없지만 망을 빌려주는 파워콤이 경쟁사들의 가입자 신상 DB를 갖고 있어 언제든지 가입자 이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하나로와 두루넷의 파워콤망 임대 비중은 높은 편이다. 하나로는 광동축혼합망(HFC) 가입자의 35%인 48만명, 두루넷은 77%인 98만명이 파워콤망을 사용하고 있다. 하나로는 “5000억원 가까이 주고 산 두루넷의 시너지 효과를 보기 전에 가입자 방어에 대한 우려가 앞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장 진입 빨리 끝내자, 무거운 입 데이콤측은 KT가 최근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묶여 운신의 폭이 좁아졌고, 파워콤의 소매시장 진출 허가로 발걸음이 가볍다. 하지만 데이콤측의 행보는 물밑작업 낌새만 감지되지 겉으론 묵묵부답이다. 일단 분위기를 잡았다는 계산 아래 경쟁사 등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심산이다. 파워콤은 그동안 대정부 창구 등을 풀가동해 소매업 진출 일정을 빨리 끝내고 서비스를 시작하는 작전에 올인해 왔다. 데이콤 정홍식 사장은 전 정통부 차관이다. 데이콤과 파워콤은 데이콤의 기존 20만 가입자와 파워콤의 마케팅으로 50만 가입자 모집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데이콤 이민우 부사장도 올해 초 “파워콤과의 조기 합병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파워콤을 내세워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안착하겠다는 계산이다. 최근엔 데이콤이 자사 초고속인터넷 사업 담당인력 56명을 파워콤으로 전출시키기로 했다. 데이콤은 최근 광대역통합망(BcN) 시범사업을 업계에서 제일 먼저 시작해 파워콤의 초고속인터넷망과의 파워풀한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또 올해 대당 3000∼5000가입자를 수용할 수 있는 케이블모뎀종단시스템 장비를 발주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의 탓도 크다 정통부의 정책 잘못을 지적하는 말도 나온다. 당초 사업자를 많이 허가한 것도 향후 시장 판단을 잘못했다는 주장들이다.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이것저것 다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정통부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시장이 포화되면서 3위 사업자인 두루넷이 법정관리에 들어서게 됐고 하나로가 두루넷을 인수, 해결책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데이콤 역시 어려워지자 정통부는 파워콤에 가입자 모집 허가를 내줬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지역 케이블방송사업자에게도 사업권을 내줘 초고속인터넷사업자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이 과정에서는 하나로과 데이콤 두 진영의 물밑 경쟁이 치열해져 학맥 등과 연관한 말도 무성하게 나왔다. 정통부 관련 부서 관계자마저도 “책을 한권 만들 정도”라고 토로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규모의 경영’을 해온 업체들로선 현 상황을 외면하면서 사업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짜릿찌릿 7일간의 DVD여행

    본격적인 한여름 무더위와 함께 기다리던 휴가철이 시작되었다.‘인도차이나’의 하룽 베이나 ‘리플리’의 배경이 되었던 나폴리 같은 곳으로 휴가를 떠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게 문제다. 그렇다고 가까운 해수욕장에 가려니 수많은 인파와 바가지요금과 씨름하기란 또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자칫 피서가 아니라 ‘피로’ 여행이 될 수도 있다. 7일간의 휴가 중 하루이틀쯤은 집에서 얼음물에 발 담그고 보고 싶었던 DVD를 실컷 보는 게 어떨까. 가벼운 발마사지와 더불어 적당한 수면을 취하고 여유롭게 DVD를 감상한다면 바캉스 이상의 충전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살얼음이 살짝 도는 시원한 오미자 화채 한 그릇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속을 파낸 통 수박에 꿀을 넣은 오미자 냉차와 배, 수박 속을 섞으면 여름철 더위는 물론 피로회복에도 그만이다.7일간의 휴가 동안 하루하루 꺼내 볼 수 있는 DVD 다이제스트를 소개한다. 오미자 화채만큼이나 다양한 맛을 내는 영화들을 만나다 보면 한여름 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박은영 DVD칼럼니스트·mlue@naver.com ■ MON-주먹이 운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칠선의 도움으로 도시의 무협 초인이 되었던 교통경찰 상환이 이번엔 열아홉 살의 소년원 복서 상환으로 돌아왔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형제인 류승완 감독과 배우 류승범은 벌써 4편의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 전작 ‘아라한 장풍대작전’이 코믹한 도시 무협극이었다면 ‘주먹이 운다’는 류승완 감독의 농익은 연출과 성숙한 류승범 연기가 어우러진 비장미 넘치는 복싱 드라마다. 류승완 감독은 DVD 마니아로 유명하다. 수집에도 남다른 열의가 있지만 자신의 영화를 DVD로 제작하는데 있어 국내 어떤 감독보다도 적극적이다.‘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지난해 우수 DVD로 선정될 만큼 깨끗한 화질과 사운드로 주목받았는데,‘주먹이 운다’ 역시 극적인 영화의 구성과 인물들의 우여곡절 많은 인생을 표현한 시각적인 효과와 섬세하고 예민한 사운드가 빼어나다.6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찍은 신인왕전 장면의 메이킹 필름과 감독의 열정적인 코멘터리도 부가영상에 수록되었다. ■ TUE-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하나와 앨리스 최근 일본 멜로영화들이 조용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일본 열도를 열광시킨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결혼을 앞둔 한 남자가 백혈병 소녀와의 첫사랑을 추억하는 내용이다. 다소 신파조의 이야기임에도 첫사랑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을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으로 풀어내 국내 극장가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첫사랑 영화의 원조는 누가 뭐래도 이와이 지의 ‘러브레터’가 아닐까. 이와이 감독은 꾸준히 비슷한 심상을 지닌 영화들을 만들어왔는데 특히 최근작인 ‘하나와 앨리스’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귀여운 이야기다. 한 소년을 사이에 두고 예기치 않은 삼각관계에 빠진 두 소녀의 귀여운 거짓말과 성장과정이 동화처럼 전개된다. 순수한 사랑의 느낌을 살린 색감과 배우들과 감독의 교감을 확인할 수 있는 메이킹 필름이 인상적이다. 특히 5분간의 발레 장면은 다시 보고 다시 봐도 예쁘다. ■ WED-프렌즈, 24 만약 이 시리즈들을 보기 시작한다면 앞으로의 DVD 감상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될지도 모른다. 시리즈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일단 보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즌 9까지 출시된 ‘프렌즈’가 바로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남자 셋, 여자 셋으로 구성된 여섯 명의 친구들이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매우 일상적이면서도 생활 속에 배어나는 감칠맛이 있다. 뚜렷한 성격을 지닌 캐릭터들과 가족 이상으로 따뜻하게 서로를 감싸안는 우정,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즐거운 기대감이 있다. 잭 바우어의 테러 진압기 ‘24’를 보려면 한층 더 강한 결심을 해야 한다. 제목 그대로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실시간으로 따라가므로 중독성이 한층 더 강하기 때문이다. 테러방지단의 활약과 대통령을 둘러싼 음모가 유기적으로 전개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된다. 웬만한 액션 스릴러보다 긴장감이 넘치며, 키퍼 서덜랜드의 안정감 있는 연기는 발군이다. ■ THU-나비효과, 리컨스트럭션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의 태풍을 만든다는 ‘나비효과’는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거의 작은 변화는 오히려 걷잡을 수 없는 현재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이 DVD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감독판과 극장판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는 것인데 삭제된 7분과 더불어 극장판과 다른 결말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로 이동할 때의 프레임을 뒤흔드는 시각효과와 날카로운 굉음은 DTS 사운드를 통해 입체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색보정을 거친 영상에선 개성이 넘친다. ‘나비효과’가 자신의 의지대로 과거를 수정했다면,‘리컨스트럭션’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상황이 재구성되는 경우다. 애인을 두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판 순간 애인과 관련된 모든 이들이 자신을 잊어버린다.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감각적인 카메라는 다양한 질감의 화질을 보여 준다. 독특한 이야기와 연출이 어우러진 지적이며 아름다운 영화다. ■ FRI-맨추리안 캔디데이트, 쏘우 ‘맨추리안 캔디데이트’의 원작인 1962년 버전은 한국전이 배경이었다. 그러나 조나단 드미 감독은 9·11 테러를 겪고 우경화된 미국에서 걸프전에서 대량 기억 조작이 있었다는 가설을 내세운다. 고도의 정치적 함수관계와 심리전이 얽히고 신화적인 상상력까지 더해져 보는 이들에 따라 영화의 해석의 폭도 달라진다. 섬뜩할 정도의 차가운 인물로 분한 메릴 스트립과 덴젤 워싱턴, 리브 슈라이버 등의 연기도 뛰어나다. 영화촬영 전 6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미국의 현실에 대해 토론하는 영상 등 부가영상에도 무게가 실렸다. ‘쏘우’는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영문도 모르는 채 끌려와 살인마의 지령을 따라야 하는 두 남자의 8시간을 긴박하게 쫓는다. 밀폐된 공간 안의 현재와 죄의 원류를 쫓는 과거가 교차되면서 고도의 심리전이 전개된다. 한순간도 예측하기 어려운 긴장감과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지는 공포가 입체적인 DVD 사운드로 한층 더 섬뜩하게 표현되었다. ■ SAT-에비에이터, 콘스탄틴 마틴 스코시즈의 역작 ‘에비에이터’는 미국 영화와 항공업계의 신화인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쫓는다. 미국 항공전문가들이 조언을 구했을 정도로 그는 비행기와 영화에 미쳐 있는 인물이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신경증과 결벽증을 두루 갖춘 인물을 완벽에 가깝게 표현해냈다. 비행기를 좋아하던 그는 추락하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철저한 자기 소외를 경험하면서 쓸쓸히 죽었다. 부가영상을 통해 실제 하워드 휴즈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이 방대한 영화의 제작과정 다큐멘터리를 확인할 수 있다. 시온을 구하려 했던 레오가 ‘콘스탄틴’에서는 악마의 세력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려는 엑소시스트가 되었다. 절묘하게도 레오와 콘스탄틴은 닮은꼴이다. 어찌 보면 ‘매트릭스’의 외전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적들의 세력은 강하고 고군분투하는 폐병쟁이 영매의 싸움은 눈물겹다. 화려한 영상은 영웅의 활극만큼이나 파워가 넘치고 부가영상 패키지도 묵직하다. ■ SUN-그루지, 링 슬프고 무서운 살인의 기억이 원혼으로 남아 집에 들어온 사람들을 죽인다. 덮고 있는 이불 안에서 푸르고 창백한 얼굴의 소년이 기어 나오는 장면만 떠올려도 ‘주온’은 충분히 공포스럽다. 일본 TV 시리즈로 제작되었다가 영화로 제작되었고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일본 대표 호러다.“끼익”대는 기분 나쁜 소리와 음침한 집의 구조는 공포를 배가시키며 DTS로 예리하게 날을 세운 사운드는 순간순간 소스라치게 만든다. 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TV판 1,2편과 일본 극장판 1,2편 그리고 이례적으로 할리우드판의 연출까지 맡았다. 그러나 일본 공포영화의 최고봉은 여전히 ‘링’이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소설을 원작으로 사다코라는 여인의 원한과 복수, 죽음 바이러스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공포 코드를 만들었다. 개봉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이상의 공포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고어 버번스키 감독의 할리우드 버전과 비교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44명의 처녀를 찾아라

    44명의 처녀를 찾아라

    『44인의 표류된 처녀를 찾아라』- 서해안 일대에 새벽의 비상망이 쳐졌다. 폭풍과 눈보라 속 절해고도에서 44명의 조개잡이 처녀들이 실종된 지 만 1주일. 군경과 미군까지 동원된 합동수색대는 조난 1주일 만에 성냥갑만한 노도(怒濤)속의 한 섬에서 치마를 찢어 흔드는 일단의 처녀군(處女群)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뭍에서 120km의 무인도, 쌀 두 말로 영하의 연명을 그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육지에서 120km나 떨어진 작디 작은 무인 고도- 눈보라 속의 그 섬을「헬」기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만도「천우」요「신조」일 수밖에 없었다. 44인의 처녀와 인솔자인 한 사람의 총각이 서해의 외딴 섬인「새뱅이」섬에 표류한 것은 지난 4일. 그들은 구출된 10일까지 쌀 두 말과 고구마 두 말의 식량으로 영하의 조난을 이겼다. 44인의 처녀와 1인의 총각이 엮는「인간개가(凱歌)의 장」은 이러했다. 충남 서산군 소원(所遠)면 모항(茅項)리의 작은 어촌에는 1백여호의 어민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가난」을 유일한 재산으로 하루 1백원 정도의 굴따기, 조개잡이로 생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 어촌의 처녀 44명은 11월 4일 같은 마을 홍은표(洪殷杓)씨(22·남)의 인솔로 모항(茅項)에서 120km나 떨어진「새뱅이」섬이란 무인도로 굴을 따러갔다. 하루 160원의 벌이를 위해-. 이날 아침 인천으로 가는「경문호」(8톤·선장·송응남)에 편승. 쌀 두 말과 고구마 두 말을 동네에서 꾸어가지고 폭풍과 기아와 공포가 기다리는「새뱅이」섬으로 떠난 이들은 출항 4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 경문호는 다음날 귀로에 이들을 마을로 데려가기로 약속하고 인천으로 떠났다. 조개잡이배 태풍만나 구조경비정까지 표류 그러나 경문호가 다음날 인천을 출발하려 할 때 뜻밖에도 태풍주의보가 내렸다. 주의보가 해제되기를 기다리기 1주일-. 선장 송씨는 기다리다 못해 10일 육로로 서산에 돌아가 이들의 조난 사실을 경찰과 육군○○사 주둔부대에 신고했다. 서산경찰서는 김태주(金汰株)서장 진두지휘 아래 즉시 경비정「한산호」를 출항, 이들의 수색에 나섰으나 4m의 파고와 짙은 안개로 목적지도 찾지 못한 채 15명의 승무원을 실은 경비정마저 표류하기 시작했다. 김서장은 두 시간에 걸친 파도와의 싸움에 기진, 해군함정에 SOS를 타진했으나 해군함정마저 심한 풍랑으로 출동하지 못한다는 절망적인 회신만 보내왔다. 미군「헬리콥터」가 구출, 치맛자락 찢어 소리쳐 51사단 이준희대위와 김서장의 끈덕진 설득에 감동된 미44 포병대 4대대 C중대의 중대장「달튼」대위는 평택 ○항공대의 친구의「사빈스」준위에게 사태의 긴박함을 연락, 드디어 하오 5시 미군의 대형「헬」기가「사빈스」준위의 조종으로 현장에 출동했다. 그러나 30분간이나 현장 상공을 배회한「사빈스」준위는 악천후로「새뱅이」섬을 찾는데 실패, 급기야는 자신의 생명에까지 위험을 느껴 기지로 돌아오고 말았다. 구조본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먹을 것도 없이 이 눈보라 속의 절해고도에서 1주일을 견딘다는 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론 도저히 불가능하다. 김서장과「달튼」대위는「사빈스」준위를 다시 설득,「헬」기에 동승하여 다시 현장에 출동했다. 하오 6시 30분- 흰 눈보라 속에서 치맛자락을 찢어 목이 메어라고 소리치며 흔드는 44명의 처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성공이다!』「헬」기 속에선 세 사람의 함성이 터졌다. 조종사「사빈스」준위는「새뱅이」섬 상공을 5회나 선회한 끝에 결사적인 착륙에 성공, 이들 전원을 구출했다. 정영숙(鄭英淑)(17)양 등 10여명의 처녀들은 이미 동상과 골절의 중상을 입고 있었으며 추위와 기아에 지친 일행은 완전히 아사직전의 초췌한 모습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동굴파고 돼지감자 캐고 눈보라 속에서 동상까지 이 44명의 처녀들이 조난한「새뱅이」섬은 길이 300m, 폭 100m의 작은 무인도. 그들은 예정대로 4일 작업을 마치고 5일 배를 기다렸으나 배는 10일까지도 오지 않았다. 이들이 가지고 온 쌀과 고구마는 45명의 하루 식량 밖에 안 된다. 바다의 기상에 밝은 이들은 배가 오지 못할 것을 예감, 식량을 아끼고 섬의 바위틈에서 나오는「돼지감자」눈을 캐 모으기 시작했다. 일부는 동굴을 팠다. 단 한 사람의 남자인 홍은표씨는 44명의 처녀를 거느린(?) 행복감에 도취할 새도 없이 이들을「리드」하기에 초인적인 안간힘을 썼다. 6일부터는 하루에 밥 1회, 감자 1회씩을 먹었고 8일부터는 날감자를 약간씩 씹어 입의 침이 마르지 않도록 연명했다. 9일부터는 식량이 그나마 다 떨어져 굶기 시작했다. 44명의 처녀들은 주림과 추위 속에서 생을 체념, 가난하나마 단란했던 고향의 식구들을 생각하며 마지막 운명의 순간만을 기다라고 있었다. 10일 하오 6시 30분. 섬 상공에「헬」기가 나타났다. 몰아치는 태풍, 200mm나 쌓인 눈. 그 속에서 기진맥진해 쓰러져 있던 처녀들은 순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일어나 입었던 치마를 벗어 허공에 대고 흔들었다. 서산으로 공수된 이들은 미군 C중대의 식당에서 배를 불리고 중상자들은 부대의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번 처녀구출작전에서 수훈을 세운「달튼」대위는 미「인디애너」주 출신의 ROTC장교, 김태주 서산서장은 고시 행정과 출신의 젊은 총경서장이다. <서산=장석호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1/24 제1권 제10호 ]
  • [씨줄날줄] 연령차별금지법/우득정 논설위원

    근로기준법 31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고용조정)는 정리해고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 회피 노력, 대상자의 공정한 선발, 성실한 협의 등 4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중 대상자 선발은 연령, 근속기간, 부양의무의 유무, 건강상태 등 근로자 각자의 객관적 사정을 기초로 사회적 보호를 덜 필요로 하는 근로자부터 해고하여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례다. 나이가 젊고 근속기간이 짧으며 결혼하지 않은 건강한 근로자부터 자르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근속기간이 긴 고령자부터 퇴출된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사실은 인건비 부담이 퇴출 기준이다. 다만 정리해고를 했다가는 패소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퇴직금에 몇 푼 더 얹어주는 명예퇴직 방식이 동원된다. 어느 새 명예퇴직은 기업 경영의 선택이 아닌 필수 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주된 직장’ 퇴직연령이 남자는 55세, 여자는 52세다. 정년을 채워 직장을 떠나는 근로자는 11.8%에 불과하다. 특히 은행권은 50세 이상 재직자가 4.5%, 정년 퇴직자는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주요 선진국들이 고령화사회를 맞아 연금 부담을 덜기 위해 정년을 늘리거나 정년을 금지하는 입법을 통해 하루라도 더 일자리에 붙들어매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 추세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인해 고령화 진행속도가 가장 빠르다. 한국이 2050년까지 현 수준의 노동 공급을 유지하려면 은퇴연령을 11년 정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보고서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않는 조기 퇴출 풍조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며칠 전 정부가 고령화 대책의 일환으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정리해고되거나 급여 또는 업무 배치에서 불이익을 당할 경우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연령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2년 전에도 의원 입법형태로 유사한 법 제정이 추진되다가 꼬리를 감춘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도 그리 큰 기대를 가질 바는 못될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거꾸로 가고 있는 사이 고령화의 그늘은 점점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누가 앞장서 외칠 것인가.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아마’ 윤원철 “으랏차차”

    윤원철(27·구미시청)이 쟁쟁한 프로선수들을 물리치고 아마추어로서는 20년 만에 민속씨름 69대 금강장사 타이틀을 두 손에 거머쥐었다. 윤원철은 30일 경북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김천장사대회 둘째날 금강급 결승(3판2선승제)에서 박종일(30·기장군청)을 저돌적인 밀어치기로 2-1로 꺾고 장사 꽃가마를 탔다. 프로-아마의 대결장에서 결코 뒤지지 않은 기량을 선보인 아마추어 선수들간의 불꽃튀는 결승 접전이었다. 윤원철은 준결승에서 금강장사 타이틀을 5차례나 차지한 ‘금강급의 최강자’ 장정일(28·현대삼호)을 기습적인 잡치기로 눌렀다.박종일 역시 1차전에서 2번의 금강장사를 거친 김유황(24)을, 준결승에서 김형규(29 이상 현대삼호)를 물리치고 함께 결승에 진출했다. 윤원철은 첫판에서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마치 황소를 연상케하는 저돌적인 밀어치기로 박종일의 엉덩방아를 찧게 만들었다. 둘째판에서 박종일의 기습적인 돌림배지기에 한판을 내준 윤원철은 셋째판 7초를 남긴 긴박한 상황에서 다시 밀어치기로 박종일을 무너뜨렸다.이로써 윤원철은 1985년 11월 진주대회에서 장사에 오른 유영대(영남대)이후 아마추어 선수로서는 20년 만에 금강장사 트로피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남북 관급회담] 北 ‘6자복귀 날짜’ 깜짝선물 줄까

    15차 남북장관급회담은 시기적으로나 정황적으로나 종전의 장관급회담과는 관전 포인트가 확연히 차별화된다.이번 회담은 거시적으로는 북핵 위기가 한창인 때에, 미시적으로는 ‘6·17 정동영·김정일 면담’ 직후에 열린다는 점에서 긴박감을 준다.북측이 처음으로 남측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려 들고, 우리 정부도 이참에 북·미 사이에서 주도권을 움켜쥐려고 팔을 걷어붙이는 등 역학관계에서도 미묘한 상황이다.●북핵 `南창구´ 활용 시사… 기대감 솔솔 ‘정·김 면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이 북한을 인정·존중하고 그것이 확고하면 7월에라도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 따라서 이번에 북측이 구체적인 복귀 날짜를 밝힐지가 최대 관심사다. 물론 예전같으면 이런 기대는 공염불에 불과했다. 과거 북한은 체제보장 문제는 미국과만 상대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6·17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북핵 문제를 남한을 창구로 해결한다는 의중을 내비쳤기 때문에, 이번 기대감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평가다. 반면 ‘북한을 존중한다.’는 미국의 메시지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언급을 피할 가능성도 많은 편이다.●6·17합의 모두 반영될까 김 위원장이 구두로 합의한 사항이 공동보도문에 활자로 명시될지 주목된다. 과거 김 위원장이 남측 인사들한테 구두약속을 하고도 지켜지지 않은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이행을 담보받는 게 중요하다.구두합의 내용은 ▲8·15 이산가족 상봉 및 화상상봉 ▲8·15 행사 당국대표단 파견 ▲장성급 회담 재개 및 수산회담 개시 ▲서울∼평양 직선 항로 추진 ▲경의선 우선 개통 등 전방위적이다. 과거 북측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찔끔찔금 합의해 주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섣부른 기대는 이르다.●‘중대 제안’ 내용 밝혀질까 6·17면담에서 김 위원장은 우리 정부의 ‘중대 제안’에 대해 “신중히 연구해 답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에서 그 답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정부가 한사코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중대 제안’의 내용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회담문화 바뀔까 6·17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호방하게 말한 대로 남북 회담문화가 ‘기싸움’의 구태를 버리고 생산적 모델을 창출해 낼지도 관심이다. 우리측은 워커힐호텔 회담장에 이례적으로 원형테이블을 들여놓는 등 분위기부터 바꾸려 애쓰는 모습이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