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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플러스] 온건·합리적인 기획통

    경찰 내 대표적인 온건·합리주의자로 통한다. 조용한 성품으로 업무처리가 깔끔하고 치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하 직원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다. 정보통이면서 기획력이 뛰어나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카리스마로 조직을 휘어잡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평. 앞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얼마나 경찰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을지가 조직 관리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서울(54) ▲용산고·서울대 지리학과 ▲행정고시 18회 ▲서울 종로경찰서장 ▲서울경찰청 형사과장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박기철의 플레이볼] 프로야구 커미셔너의 조건

    [박기철의 플레이볼] 프로야구 커미셔너의 조건

    1993년 초 새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를 찾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됐다. 자천타천의 신청서들이 매일 수십통씩 커미셔너 사무국으로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조지아주 마리에타에서 보내온 에리카 시트코프란 사람의 자기 소개서도 있었다. “나는 커미셔너를 맡고 싶습니다. 나는 야구 경기에 대해 순수한 애정과 지식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또 나는 그 자리를 맡으면 무보수로 봉사할 예정입니다. 나는 야구에 대한 기사를 매일 읽고 있으며 야구에 대해 아주 이해가 깊습니다. 학교 성적도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내가 커미셔너로서 내리는 모든 결정은 ‘야구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될 것입니다. 과거의 어느 커미셔너보다 구단주들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있습니다. 내 최대 장점은 리더십과 조직력입니다.” 선정위원회를 구성한 직후 위원들은 커미셔너는 다음과 같은 자격이 필요하다고 발표했었다.“전략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이 있어야 함. 탁월한 상품 기획력과 추진력이 있으며 명석하고 분석적인 두뇌의 소유자. 공감대를 형성하는 능력과 함께 카리스마가 있고 다정다감하며 따뜻한 성품의 인물로서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함. 역동적이고 자신감을 가져야 하며 앞장설 줄 아는 사람으로서 혁신적인 사고력과 적극적이며 강한 성격이어야 함. 언론관계를 다뤄본 경험이 있어야 하며 가장 중요한 점은 ‘야구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능력이 있어야 함.” 시트코프는 구단주들이 정한 기준에 어긋나는 점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중학교 졸업반이었다. 커미셔너 추천위원회는 직접 후보를 찾기도 했다. 후보로 추천을 해준다는데도 거절한 인물은 두 명. 걸프전의 영웅인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과 텍사스 구단주이며 대통령의 아들이던 조지 W 부시. 부시가 거절한 이유는 텍사스 주지사 출마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드 헌터 회사까지 동원된 심사 끝에 후보는 105명으로 추려졌다. 이 안에는 시트코프도 포함됐다. 코미디라고? 이보다 더 큰 코미디는 1년 뒤에 나왔다. 마지막에는 후보가 두 명으로 좁혀졌다. 그러나 구단주들은 만장일치로 적임자가 없다며 직무대행 체제를 계속 유지한다고 결정했다.1년 동안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커미셔너 찾기 소동은 결국 구단주 출신인 버드 셀릭 대행 체제를 유지하며 커미셔너를 공석으로 남겨두는 데 대한 비난을 잠재우려는 쇼였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구단주들의 이익을 위해 구단주들이 뽑는 자리다. 그러면서도 정작 노사 문제처럼 중요한 현안에 대해서는 간섭도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따라서 팬이나 선수의 이익과는 상관이 별로 없다. 다만 한국은 워낙 인프라가 열악해 팬이나 선수의 이익과도 관계가 있다. 따라서 열정과 각오가 시트코프 이상은 돼야 한다. ‘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바이올린과 현악 앙상블의 만남

    바이올린과 현악 앙상블의 만남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젊은 현악 앙상블 ‘크레메라타 발티카’를 이끌고 한국에 온다. 파가니니가 환생했다는 얘기를 듣는 크레머는 현란한 기교와 뛰어난 곡 해석, 끊임없는 실험 정신으로 음악팬들에게 변함없이 환영받는 인물. 국내에도 고정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그의 도전 정신은 루이지 노노, 슈니트케, 아르노 패르트 등 실력있는 현대 작곡가와 20세기 최고의 작곡가로 불리는 피아졸라와 누에보 탱고를 그의 음악속에 끌어들였다. 특히 그의 음악적 기획력은 높이 평가된다. 다양한 주제 한두 가지를 택해 연주하는 테마공연을 통해 바이올린 선율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전해주는가 하면 파가니니로 분장한 채 직접 대형 스크린에 뛰어들어 신들린 듯 바이올린을 켜기도 한다. 때론 영화속에서 신비로운 소리를 들려주는 등 현대의 새로운 예술 장르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다음달 6,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그의 8번째 내한 공연. 첫날 6일에는 올해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세계 처음으로 공연한 아우어바흐의 ‘슬픔의 성모에 대한 대화’를 연주할 예정이다. 또 사계중 ‘봄’을 테마로 잡아 데샤트니코프, 피아졸라, 스톡하우젠 등 봄을 노래한 현대 작곡가들의 곡을 특유의 재기 발랄함과 완벽한 앙상블로 선보인다. 둘째날인 7일에는 ‘러시아의 경의’라는 부제를 달아 거장 지휘자 예후디 메뉴힌에 의해 초연된 구 소련출신 작곡가 칸 첼리의 ‘V&V’를 비롯해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차이코프스키의 ‘플로렌스의 회상’을 독특한 해석으로 연주할 계획이다. 이번에 함께 공연하는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구 소련에서 망명한 크레머가 97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 국가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로 창단한 실내악단이다.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발틱 국가들의 음악계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이 실내악단은 1년에 5개월은 크레머와 함께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02)580-1135.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튀는’ 대학원 설립 잇따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지난 8월 문화기술대학원에 이어 내년 3월 자동차기술대학원과 의과학대학원을 개원하는 등 전통 공학을 응용한 다양한 전문 대학원을 잇따라 개설한다. 9일 KAIST에 따르면 자동차기술대학원 석사과정(50명 이내)과 의과학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 및 박사과정(10명 내외) 모집을 마감한 결과 각각 94명과 32명이 지원했다. 의과학대학원은 의사들이 임상에만 머물지 않고 생물·바이오 분야와 연계, 의약이나 진료기기 등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 앞서 개원한 문화기술대학원은 게임 등의 문화콘텐츠 개발은 물론 문화기획력을 키워주는 분야로 전통 공학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유망자격 20선] 화훼장식기사

    [유망자격 20선] 화훼장식기사

    화훼장식기사 자격이 국가기술자격으로 올해 신설됐다. 지난해 신설된 화훼장식기능사 자격보다 고도의 전문화를 꾀한, 독일의 국가공인 ‘플로리스트 마이스터’급의 고급자격이다. 이처럼 정부에서 전문 플로리스트를 양성하려는 이유는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주목받는 산업 중 하나가 화훼산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각종 행사문화가 발달하면서, 원예지식과 디자인 감각을 갖춘 전문 플로리스트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화훼장식 매니저 역할 담당 화훼장식기사는 화훼장식의 기획, 디자인, 제작, 유지 및 관리기술은 물론 인력배치에서 활용까지 전 과정을 총괄한다. 때문에 단순히 작업능력만이 아닌 원예학, 화훼유통, 경영 등에 대한 전문지식과 기획력까지 요구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화훼장식기능사는 꽃작품을 만드는 재능만 있으면 되지만 기사의 경우에는 전시기획의 매니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응시자격도 까다롭다.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자로 실무경험이 3년 이상 있거나,4년제 대학 졸업자여야 응시가 가능하다. 시험수준도 만만치 않다. 필기시험에서 ▲화훼재료 및 형태학 ▲화훼품질유지 및 관리론 ▲화훼장식학 ▲화훼장식디자인 및 제작론 ▲화훼유통 및 경영론 등의 과목에 대한 지식을 측정하고, 실기시험에서는 디자인 감각을 테스트한다. 실기시험은 특히 1시간 정도의 논술형 시험과 3시간 정도의 작업시험으로 이뤄져 있어 지원자들의 부담이 큰 부분이다. ●이미지 스케치 능력도 중요 작업시험은 전시주제를 제시하고, 작품구상과 이미지 스케치, 작품제작 등의 전 과정을 평가한다. 예를 들어 ‘신문사가 가을에 호텔에서 대규모 사진전시회를 열 경우, 그에 맞는 꽃장식을 디자인하라.’는 문제가 출제되면, 응시자는 기획을 하고, 이미지를 스케치해 실제 제작까지 해야 한다. 기사 시험에서는 작품완성까지의 모든 과정을 평가하는 것이다. 공단 관계자는 “기사는 전시장 장식을 총지휘하는 데 있어 작품을 구상하고 기능사에게 작업지시를 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미지 스케치 능력까지 체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실기시험에 앞서 응시자들에게 미리 제작에 필요한 꽃 종류를 공지하고 시험장에 준비해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또 “기능사 실기시험에서는 제시된 꽃 종류만 봐도 응시자들이 시험문제를 미리 짐작할 수 있지만, 기사 실기시험은 예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평소 탄탄하게 실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최재원 SK엔론 대표선임 ‘사연’은

    [재계 인사이드] 최재원 SK엔론 대표선임 ‘사연’은

    SK그룹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그룹 지배구조개선과 관련해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텔레콤 전략지원부문장 겸 부사장의 퇴진을 밝힌 것이다. 최 부사장은 고종사촌인 표문수 SK텔레콤 사장과 함께 ‘오너 일가’의 경영인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취지로 사퇴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후 최 부사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가 3개월 뒤인 지난해 5월 SK엔론 자문역 부회장을 맡으면서 사실상 경영에 참여했다. 당시 SK그룹측은 최 부회장의 선임에 대해 “SK엔론측의 외국인 경영인들도 최 부회장의 뛰어난 기획능력과 재무구조 설계 능력을 인정해 자문역으로의 복귀를 환영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경영일선의 복귀가 아니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실제로 최 부회장은 SK텔레콤 근무 시절 신세기이동통신의 인수합병 등 여러 계약건을 성사시키는 등 뛰어난 협상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당시 일각에서는 최 부회장의 복귀는 경영일선에 나서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최 부회장은 특유의 기획력과 재무구조 설계 능력을 인정받아 이번에 SK엔론의 경영권 안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SK㈜는 최근 프리즈마(엔론의 대주주)가 갖고 있던 SK엔론 지분 1%를 추가로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했다. 나머지 49%는 호주계 투자은행인 매쿼리가 매입했다. 이에 대해 SK그룹 관계자는 “SK그룹은 전통적으로 대주주 일가의 형제들이 회사 밖에서 머무르며 권한을 행사하기보다는 제도권 안에 들어와서 책임경영을 펴왔다.”며 “최 부회장의 복귀도 엔론의 지분매각 과정에서 SK㈜에 유리한 새로운 파트너 유치와 협상에 주도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 부회장도 대표이사로 선임된 직후 “대표이사로 선임된 것은 책임을 지고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SK엔론 계열사들의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1)-창업주 故조홍제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1)-창업주 故조홍제 회장家

    효성의 입사 면접은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예컨대 ‘한강의 물 무게는 얼마나 되나, 대한민국 바퀴벌레의 총 수는.’등의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대략, 약, 수준,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고 불확실한 답을 내놓는다면 효성에선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효성은 숫자에 관해 근거 없는 ‘적당주의’를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이는 효성 창업주인 고 만우 조홍제 회장의 경영 스타일에서 비롯됐다. 그는 어떤 사항이든 계수화해서 보고 받기를 좋아했으며, 그래야 납득을 했다. 만우 회장도 중요한 경영상의 결재를 할 때는 철저히 계수에 입각해서 처리했다. 특히 신규 사업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마저 계산에 넣고 사업을 추진했을 정도다. 시쳇말로 “1년간 지급하는 로열티와 그 기술을 이용해 얻은 이익을 금액으로 계산해 향후 10년간의 수지계산서를 만들라.”고 한다면 요즘 실무진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것이다. 그러나 만우 회장은 40년전에 이를 당연하게 지시했으며, 당시 효성 실무진도 이에 익숙했었다. 그의 이같은 ‘계수 경영’은 그만의 독특한 성냥개비 계산법을 낳았다. 그가 계산하기 위해 손가락에 성냥개비를 끼우고 슬슬 돌릴라 치면 실무자들은 계산이 혹시 틀리지 않았을까 긴장하곤 했다고 한다. 그의 꼼꼼한 경영 스타일은 창업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효성의 주력 사업으로 훗날 나일론을 선택하기에 앞서 만우 회장은 공학과와 경제학과 출신의 엘리트 10여명을 뽑아 당시엔 생소한 기획부를 구성, 무려 2년간 20여종의 유망 업종을 검토하게 했다. 오늘날 효성의 제조업 전통과 실속 우선주의, 심사숙고형 기업 문화, 철저한 계산으로 돌다리도 두드리는 사업 풍토 등은 만우 회장이 효성에 남긴 유산들이다. 또 꼬장꼬장하고 대쪽같은 그의 성격은 효성을 늘 정치권과 거리를 두게 했으며, 생전에 2세들의 분가를 마무리한 것은 ‘돈 만큼은 가족이라도 철저해야 한다.’는 그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최근 재계의 불미스러운 일련의 일들을 보면 만우 회장의 혜안이 놀랍기만하다. ●늦되고, 어리석은 만우(晩愚) 만우 회장은 모든 게 늦었다. 신학문을 접한 것이 17세였고, 고보(중·고등학교)에 들어간 것이 약관(弱冠)을 앞둔 19세였다. 또 대학을 졸업한 것이 이립(而立·30세)이었으며, 사업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 불혹(不惑·40세)을 넘어서였다. 그리고 효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독자 사업을 시작한 것이 이순(耳順·60세)을 앞둔 56세였으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는 스스로 늦되고, 어리석다는 뜻으로 호를 ‘만우(晩愚)’로 지었다. 그러나 출발이 늦었을 뿐 그의 성취는 작지 않았다.1960년대 부실기업이었던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을 정상화시켰으며, 현재 나일론 세계 4위, 타이어코드 세계 1위인 동양나이론(현 효성)을 설립했다.70년대엔 효성금속과 효성기계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한때 총 24개 계열사의 재계 5위 그룹으로 성장시켰다.40∼50대를 받쳐 삼성 성장에 일조를 했던 만우는 56세의 늦은 나이에 창업, 불과 10년 만에 효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올려 놓은 것이다.1981년 포천이 뽑은 500대 기업 속엔 만우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된 효성과 삼성이 나란히 포함됐다. ●진정한 가장은 애처가 늦었던 만우 회장이 빠른 것도 있었다. 그는 15세 때 집안 뜻에 따라 진주 하씨가의 차녀 정옥(작고)씨와 결혼했다. 당시 하씨가는 진주에서 쌀 2000섬 규모의 부호로 개화한 집안이었다. 부인 정옥씨는 신학문을 깨친 신식 여성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교 생활이 몸에 밴 만우였지만 아내 사랑만큼은 각별했다고 한다. 만우는 무슨 일이든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엔 ‘팔불출’ 소리를 들을 만한 행동이었다. 회사에 있다가도 아내가 아프다고 하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열 일을 다 제쳐놓고 들어왔다. 또 틈을 내 여행도 같이 자주 다녔다. 사업에서 물러났을 때엔 매일 아침 아내와 함께 창경원 산책을 취미로 삼았으며, 함께 시장에 나가 장을 보는 것도 즐겼다. 특히 만우 자신도 말년에 몸이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아내의 병수발을 자식 몫으로 두지 않았다.78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만우는 아내의 상청(혼백을 모시는 제단을 마련하는 일) 돌보는 일을 1년간 직접 했다. 당시 만우 자신도 간병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던 심한 신부전증을 앓고 있었다. 만우는 사람을 고를 때도 이런 점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사람을 쓸 때 세가지를 봤다. 첫째가 반골 유무, 둘째가 지론 출중이며 셋째가 진정가장(眞正家長)이었다. 반골 유무와 지론 출중은 누구든지 고려할 만한 요소이겠지만 진정 가장은 꽤 이채롭다. 만우는 가정이 제대로 서야 사회와 국가가 제대로 선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직원 중에 바람을 피우거나, 첩을 얻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내치라고 했다. 실제로 부장급의 한 직원은 여자 문제로 이혼을 하게 되자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가정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회사를 어떻게 다스리겠나.”이것이 만우의 생각이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과 동업 만우 회장의 회고록 ‘나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당시 자금난을 겪고 있던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에게 자금을 빌려준 계기로 동업을 시작했다. 만우 회장은 어린 시절 호암(고 이병철 회장의 호)의 친형인 병각씨와 지기여서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만우와 호암의 동업은 사실상 삼성이라는 대그룹의 출발점이었다. 고 이 회장의 기획력과 만우 회장의 꼼꼼한 일처리는 자산규모 1700만원의 삼성물산을 설립 3년 만에 48억원이라는 순이익을 올리게 했다. 삼성물산의 성공은 제일제당(현 CJ그룹)과 제일모직 등의 제조업 진출로 이어졌다. 특히 제일모직은 만우 회장이 자금 마련부터 기계설비 발주, 기술 숙련 등 모든 과정을 진두 지휘했다. 제일모직의 당시 ‘골덴덱스’는 영국제와 마카오 복지를 대체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듯 조·이 투톱 체제는 불과 10년 만에 삼성을 명실공히 한국 제일의 재벌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이 회장은 돌연 만우 회장에게 동업 청산을 요구했으며, 만우도 ‘이쯤에서 재산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흔쾌히 동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분 문제에 대한 의견 조율이 안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점차 깊어갔다. 이 과정에서 만우는 4·19와 5·16 군사 쿠데타로 이어진 급변하는 정국에서 삼성 대표로 부정 축재자라는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쓰고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정국이 점차 안정되면서 호암과 만우는 다시 재산 분배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옳다, 그르다 싸우기만 하면 자기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만우는 결국 3억원을 받는 것으로 삼성과의 모든 정리를 마무리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56세였다.15년간 대주주이자 경영인으로서 삼성을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키우는 데 일조를 했지만 그 ‘끝’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만우는 ‘나의 회고’에서 당시 이 결정을 이렇게 밝혔다.“오늘날 70년을 살아오는 동안 내가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수많은 어려운 결단 가운데서도 가장 현명한 결단이 아니었나싶다.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분배받을 재산에만 연연했더라면 내 독자사업은 시작도 못해보고, 재산은 재산대로 찾지 못한 채 끝나게 되었으리라.” 그러나 만우와 호암의 결별에도 양가의 인연은 대(代)를 이어 지속됐다. 만우 회장의 장남인 조석래 효성 회장과 호암 회장의 차남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다. 또 조 회장의 부인인 송광자(61) 여사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는 서울대 미대 동창이다. 3세로 내려오면 인연은 더 깊고 다양해진다. 조 회장 차남인 조현문(36) 효성 전무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친구 사이다. 장남인 조현준(37) 부사장과 이 상무는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같이 공부했다. 삼성가인 이재현 CJ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의 아들인 김재열(이건희 회장 사위) 제일모직 상무 등도 조 회장가(家)의 3형제(현준·현문·현상)와 잘 어울린다. 조 부사장은 “같은 또래인 데다 어린 시절부터 잘 어울려 요즘에도 운동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했다. ●사돈들의 활약 효성은 재벌가 가운데 사돈들의 활약이 유달리 두드러진다. 특히 만우 회장은 건강이 악화되면서 아들 후견인의 역할을 사돈들에게 맡겼다. 장남인 조석래(70) 회장의 장인인 송인상(91) 한국능률협회 회장은 만우의 지기이자 조 회장의 후견인이었다. 송 회장은 재무부 장관과 한국수출입 은행장을 두루 거친 경제계의 거물로 조씨가와 사돈을 맺기 전부터 만우와 친분이 두터웠다.78년 만우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엔 사위를 도우며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송 회장은 80년부터 16년간 동양나이론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으며, 지금은 효성 고문으로 있다. 차남인 조양래(68) 한국타이어 회장에겐 처남들의 경영 참여가 눈에 뛴다. 외환은행장을 지낸 손위 처남 홍용희씨가 고문으로 활약했으며, 또 다른 손위 처남인 홍건희 한국타이어 부회장도 경영에 참여할 정도로 한국타이어는 한때 ‘조·홍’ 공동 경영체제를 이뤘다. 삼남 조욱래(56) 동성개발 회장도 장인인 김종대 전 대전피혁 회장의 경영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만우 회장은 77년 대전피혁을 28세에 불과한 욱래 회장에게 맡기고 난 뒤, 사돈인 김종대 전 농림부 장관에게 아들의 뒷일을 맡겼다. 경험이 부족한 아들의 단점을 김 전 장관에게 보완해 달라는 뜻에서다. 김 전 장관은 회장직을 맡아 경영에 나섰다. ●양말 빠는 회장님 만우 회장은 자식들이 혹시나 ‘부잣집 아들 병’에 걸릴 것을 몹시 경계했다. 이 때문에 일부러 엄하게 대했을 뿐 아니라 확실한 경제 개념을 심어주기 위해 어릴 때부터 용돈 예산을 짜게 했다. 또 아들들이 유학을 떠날 때는 유학 기간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최소 경비를 한꺼번에 쥐어주며 돈이 남든지, 모자라든지 간에 더 이상의 용돈을 보내주지 않았다. 덕분에 2세들은 유학 시절에 툭하면 접시 닦이를 해서 학비를 벌어야 했다. 그러나 만우가 늘 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중학교에 다니던 양래가 영어책을 잃어버려 난감해 할 때 친구에게 그 영어책을 빌려오게 한 뒤, 밤새 직접 필사를 했다. 또 장남인 석래가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사업차 방문한 만우는 장남의 하숙집에 널려 있던 양말을 깨끗이 빨아 놓을 정도로 자식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는 공석에선 자식이라도 하대를 하지 않았다. 조 회장은 선친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선친은 자식을 키운다고 할까, 믿어준다고 할까 하는 점이 굉장히 강해요. 당시 일반적인 가정과 달리 아들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하고, 자식들의 결정을 무척 존중해 주셨습니다.”실제로 만우 회장은 조 회장이 전공으로 경영학을 선택하기를 바랬지만, 공학을 전공하겠다는 아들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만우는 “재산이라는 것은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가 들어오기도 한다. 자식에게 재산보다는 스스로 일해서 생활해 나갈수 있는 능력을 꼭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화려하게 뻗은 2세 혼맥 조씨가(家)의 혼맥은 여느 재벌가 못지않게 사통팔달로 뻗어 있다. 전직 대통령가(家) 뿐 아니라 정·관·재계 골고루 인연이 닿아 있다. 만우와 부인 하 여사는 슬하에 3남 2녀를 뒀다. 장녀와 차녀인 명숙(작고)씨와 명률(78)씨는 만우가 고향인 함안 군북에 있을 때, 인근 대지주 집안에 시집보냈다. 장녀 명숙씨는 진주여고를 졸업한 뒤, 진양 대지주인 허정호(80)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세브란스의전(현 연세대 의대) 학생이었던 정호씨는 신한병원 원장을 지냈다. 둘째 딸 명률씨는 산청 대지주인 권동혁가(家)의 장남인 병규(80)씨와 인연을 맺었다. 병규씨는 한때 효성건설 회장을 역임했다. 효성의 혼맥은 장남인 조석래 회장의 결혼으로 정·재계 중심부로 들어간다. 학업 때문에 결혼이 늦은 조 회장은 그의 나이 32세 때, 송인상 회장의 3녀 광자씨를 평생의 배필로 맞아들였다. 조 회장은 처가를 통해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과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과 동서지간이 된다. 또 신 전 회장가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연결되며, 이 회장가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연이 닿아 있다. 차남인 조양래 회장은 66년 지인의 소개로 법조계 원로인 홍긍식 전 변호사협회 회장의 차녀인 문자(64)씨와 혼례를 치렀다. 조 회장은 이명박 서울시장과 사돈지간이다.3남인 조욱래 회장은 경기여고 교장인 손영경씨의 중매로 김종대 전 농림부 장관의 딸인 김은주(50)씨와 결혼했다. 김 전 장관은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의 부친인 고 신덕균 전 신동방 명예회장의 처남이기도 하다. 조씨가의 혼맥은 방계도 만만치 않다. 만우 회장의 동생인 고 조성제 대전피혁 사장은 5남 3녀를 통해 관·재계의 명망가를 사돈으로 맞아들였다.3남 경래(73)씨는 홍재선 전 전경련 회장의 딸 애수(68)씨와 결혼했으며,4남 익래(70)씨는 원용필씨의 딸 정선(68)씨와 결혼했다. 원용필씨는 원용석 전 경제기획원 장관의 친형이다. 장녀 장숙(68)씨는 정종철 전 서울시장의 아들 창순(70)씨와 결혼했다. golders@seoul.co.kr ■ 조석래 회장의 ‘명문 처가’ 조석래(70) 효성 회장의 처가인 송인상(91·효성 고문) 한국능률협회 회장의 가계도를 들여다보면 화려하다는 단어가 부족할 정도다. 송씨가(家)는 고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 가문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한국 상류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가와 사돈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정·관·재·법조계에 이르기까지 ‘그물망 혼맥’으로 촘촘히 엮여 있다. 송 회장 본인도 일제시대의 식산은행을 시작으로 재무부 이재국장과 한국은행 부총재, 부흥부장관, 재무부 장관, 룩셈부르크 대사,EC대사, 한국수출입은행장, 동양나이론(현 효성) 회장 등 관·재계를 넘나드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슬하에 1남4녀를 둔 송 회장과 최연순(91) 여사는 딸을 모두 국내 대표 집안에 시집보냈다. 특히 손주들의 통혼을 통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집안과도 연결된다. 장녀 송원자(66)씨는 이봉서(69) 전 상공부 장관과 인연을 맺었다. 이 전 장관은 경기고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나왔으며, 현재 부동산임대업체인 단암산업 회장이다. 이 전 장관의 부친 고 이필석옹은 상업은행장과 국제화재 회장을 지냈다. 이 전 장관의 3녀인 혜영(33)씨는 1997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장남 정연(42)씨와 화촉을 밝혔다. 두 사람은 정연씨의 친구 소개로 만나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혜영씨는 숙명여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정연씨는 현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 회장의 차녀 길자(63)씨는 신명수(64) 전 신동방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신 전 회장과 길자씨는 2남 1녀를 뒀으며, 장녀인 정화(36)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40)씨와 결혼했다. 재헌씨는 미국 조지타운대를 나와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한나라당 이 전 총재와 노 전 대통령은 송 회장가(家)를 통해 ‘사돈의 사돈’인 셈이다. 이렇게 가지치기를 하게 되면 송 회장가는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과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김승연 한화 회장과도 이어진다. 3녀 송광자(61)씨는 조 회장과 67년 결혼해 현준-현문-현상 3형제를 뒀다.4녀 송진주(59)씨는 주관엽(61)씨와 혼인했다. 진주씨는 서울대와 예일대(박사)를 거쳐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예산 샌님’ 조홍제 前회장 만우 조홍제 전 회장의 별명은 샌님과 구두쇠였다. 만우의 고향 사람들은 그를 그냥 샌님도 아닌 ‘예산 샌님’이라 불렀다. 미리 예산을 꼼꼼하게 짜놓고 융통성 없이 그대로 집행하는 데서 비롯됐다. 당시 도움을 받기 위해 만우 회장의 사무실 문턱을 넘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만우가 배정해 두었던 예산이 바닥나기 일쑤였다. 그러면 만우는 “올해 예산이 떨어졌으니까 내년에 보자.”고 했다고 한다. 만우의 먼친척 동생인 조영제씨의 회고는 이렇다.“사회봉사도 회사 경영과 마찬가지로 예산 집행을 한다 이겁니다. 요즘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40년전에 그런 경비를 예산짜서 집행하는 기업가가 대한민국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만우는 구두쇠로도 유명했다. 그냥 구두쇠가 아닌 ‘통 큰’ 구두쇠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신발장에 남은 것은 밑창이 다 닳은 구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화다. 그는 내의도 해진 것을 기워입었으며, 양복 역시 다 떨어져 못 입게 되기전까지 새 양복을 맞추는 법이 없었다. 그의 근검절약 정신은 가족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자식들에게 용돈을 줄 때는 늘 빠듯하게 줘 낭비하는 버릇을 갖지 않게 했으며, 손자에게 주는 세뱃돈도 천원짜리 한 장으로 때우곤 했다. 만우는 자신이 먹고, 쓰고, 입는 데에는 한없이 검소했지만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엔 수십억원을 내놓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쓸 때는 쓰고, 쓰지 않을 때는 쓰지 않는, 그런 구두쇠였다. 만우가 돈을 아끼지 않은 곳은 교육 사업이었다. 대학시절 은사 권유로 교수가 될까 했던 만우는 1950년대부터 영남장학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으며, 고향 함안군의 몇몇 학교에 시설을 마련해 주었다.76년엔 운영 부실로 재정난에 빠진 동양학원의 이사장을 맡아 대규모 채무를 해결해줬으며, 학습환경 개선을 위해 당시로서는 거금인 25억원을 내놓았다. “나는 학교에서 돈 한푼 가져가지 않을 겁니다.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선생님들은 오직 좋은 교육만을 해주시기 바랍니다.”만우 회장이 이사장으로서 원했던 유일한 소망이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남자 디자이너 그거 괜찮아요

    남자 디자이너 그거 괜찮아요

      일과(日課)는 여성 접대. 돈도 벌 수 있고 잘하면 인기명사급으로「매스콤」의「스타」가 될 수도 있다. 이런 호조건(好條件)의 남성직업이 어느 이웃나라 아닌 서울 명동의 요즘 화젯거리. 직업의 이름은「패션·디자이너」다. 자영살롱 없어도 월급 4~5만원, 선생님 경칭(敬稱) 들어가며 1월 중순 12명의 남성「디자이너」가 무더기로「데뷔」한 것이 얘기의 실마리. 30 전후의 실무출신(재단·가봉·「디자인」을 할 줄 아는)의 현직「디자이너」들인데 23명의 남녀「디자이너」가 결속한「코페드」(한국「패션·디자인」작가회의·회장 김태산)의 회원.「헬리콥터」기금모금 겸「데뷔·쇼」로 마련한 합동발표회(1월 14일 YMCA회관 강당)에서 탄생된 명사후보들이다. 이들 중 반 이상이 직영의「패션·살롱」을 가지고 있는데 양장점의 전속「디자이너」인 경우라도 월급 4만원~6만원.「선생님」의 경칭으로 불리며 독창적인「디자인」의 예술성을 간섭 받지 않는 칙사대우다. 직영의「살롱」인 경우 최소한 월 15만원의 인건비가 든다. 한 벌 1만원에서 5만원까지의 옷을 적어도 하루 두 벌 만들어 내니까 돈의 회전액이 아무리 적어도 15만원~30만원. 이것만으로 보아도 그리 작은 기업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디자이너」라는 한격 높은 호칭으로 불리는「드레스·메이커」를 찾는 여자 손님들은 옷을 옷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옷이 좋아야 할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위광(威光)을 위해서 댈 수 있는「살롱」의 이름도 필요하다. 여자 손님은 여자 디자이너보다는 좋아해… 필수조건 - 유식해 보여야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던가. 양장점마다 옥호(屋號)보다 더 중요한 전속「디자이너」를 고액(高額)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은 그런 필요의 발명. 이를테면「디자이너」는 그 양장점의 간판 구실을 한다. 위광의 문제가 최대 관심사인 여성 고객을 끌어 모으는 데는 간판 구실「디자이너」에게 몇 가지 특기가 있어야 한다. 「매스콤」의「스타」가 된다는 것이 그 하나, 대인관계에서 느낌이 좋을 것이 그 둘, 실제로 유식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 셋, 바느질과「디자인」도 좋아야 한다는 것이 그 넷. 여성「디자이너」라고 이런 조건을 갖추지 말라는 법이야 없겠지만 남성「디자이너」가 더욱 적격이다. 우선「매스콤」의 먹이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최초, 최선, 희소의 가치를 그들은 지니고 있는 셈이니까. 게다가 이성이라는 점에서 생기는 묘한 상상은 고객과의 대인관계를 무척 원활하게 한다. 그 쪽 분야에서 이미 대성했다고 자타공인하는 남성「디자이너」는「앙드레·김」씨. 개업 5년에「패션·쇼」도 10회를 넘겼고 얼마 전에는 미국에 3만 5천「달러」어치「디자인」수출을 했대서「매스콤」의「스타」다운 화제를 던졌다. “남자에게 매력 있게 보이려는 게 여성본능” 그러니 장사 잘될 수밖에 명성은「앙드레·김」씨만 못하지만「살롱」을 두 개나 갖고 기업으로 밀고 나가는「디자이너」가 이용렬(李勇烈)씨. 이밖에도 몇 명 있는 남성「디자이너」에게는 사실 구수한 구설(口舌)도 많았다.「시스터·보이」들이라느니 여성「패트론」이 뒤에 있다느니 하고. 사실이야 어떻든 그동안 이들 남성「디자이너」들이 이른바『해사한 여성적인 성격에 미목이 수려하고「살롱」안에는 현학적이거나「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해 놓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다분히 외설스런 소문과는 상관없이 영업으로서의 남성「디자이너」소유「살롱」에는 위광을 사랑하는 상류사회의 고객들이 들끓고 있다. 최근 명동에「패션·살롱」을 연 B씨는 남성「디자이너·붐」을 꽤「아카데믹」하게 풀이한다. 『남자에게 매력 있게 보이려는 것이 여성의 본능이란다면 남성「디자이너」의 영업이 잘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죠. 아무래도 여성미(女性美)제작에는 남자가 더 낫지 않을까요. 여성미를 보는 남자의 직관, 대담성에 여성고객이 끌리는 겁니다』 어쨌든「패션·디자이너」라는 것도 어엿한 남성이 가져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직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복장(服裝)학원엔 남자수련생 수두룩, 거의 대학 나온 인텔리 앞서 든「코페드」회원 12명 밖에도 서울에는 명함에「디자이너」라는 직함을 쓰는 현역 남성「디자이너」는 20여명. 각 복장학원에서「패션·디자이너」의 대망을 품고 공부하고 있는 수련생까지 합치면 대단한 숫자가 된다. 국제(國際)복장학원(원장 최경자)만 해도 지금「디자이너」수련중인 남성이 60여명. 대학 졸업생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전공과목도 다양해서 정외과 체육과 국문과 공과 생물학과 등. 공부하는 열의도 여학생보다 대단하다. 대성해야겠다는 결의가 아무래도 여성보다 굳기 때문인 것 같다는 최경자씨의 말. 지난번「코페드」의 자선「패션·쇼」의 기획진행도 남성회원들이 전담했다는 얘긴데 10여 년간 발표회 뒷얘기에 익은 서수연(徐壽延)씨(코페드자문위원)는 남성의 우수한 기획력을 알았다고 말한다. 원래 합동발표회란 것은 작품이 비교를 당하기 때문에 발표자들간에 잡음이 나게 마련이고 대개는 발표 후에「그룹」자체가 와해되는 것이 보통. 그런 것이 이번「코페드」만은 무사하게 발표도 끝내고「그룹」활동도 계속하겠다고 결의를 굳히고 있다는 상당히 희망적인 서씨의 논평이다. 68년 무역박람회「패션·콘테스트」특선 경력이 있는 손일광씨(「코페드」회원)도 그런 민완의「디자이너」. 『한국에도「피에르·카르당」만한 대가가 나올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 젊은「디자이너」들은 진짜 예술활동으로서의 작품을 만들고 있거든요』라고 기염이 대단하다. 이런 남성들의 움직임은 여성「디자이너」에게는 상당한 위협일 수도 있다.「패션」에 관한 한 여성전용(專用)이라고 마음 놓고 있을 시대는 지나갔다는 얘기니까.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여성「디자이너」가 희소가치로서「매스콤」의 먹이가 되는 희극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1/26 제2권 제4호 통권18호 ]
  • [박은영의 DVD 레서피] 게걸스런 풍자 ‘色다른 맛’

    [박은영의 DVD 레서피] 게걸스런 풍자 ‘色다른 맛’

    피터 그리너웨이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음식문화를 통해 권력과 탐욕,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보여준다. 거대한 스테이크와 바비큐, 트뤼플, 푸아그라 등 요란한 요리들이 가득 차려진 식탁에서 “더 맛있는 걸 줘.”라고 외치면서 게걸스러운 식탐을 자랑하는 도둑의 모습은 혐오스럽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폭력과 살인, 강간을 일삼던 그는 급기야 아내의 정부를 잔혹하게 살해하는데, 기막힌 반전은 이때부터다. 아내는 사랑하는 남자의 시체를 통째로 오븐에 구워 남편의 만찬에 내놓는다.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처럼 냉랭하게 “맛있게 드세요.” 한다. 복수와 살육의 카니발이라는 점에선 ‘혈의 누’도 그 못지않게 충격적이다. 피를 쏟아 붓는 난도질과 사지절단, 산 닭의 목을 쳐내는 시퀀스는 기존 한국영화의 어떤 공포보다 잔혹한 영상을 연출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천주학도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한 강 객주 일가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복수 이면에 자리한 샤머니즘과 집단주의가 더 소름끼친다. ‘연애의 목적’은 이상한 지점에서 균형을 잡는다. 강혜정도 강 객주 일가처럼 억울한 음모에 휘말려 대학을 그만두는데, 설상가상으로 전공을 바꿔 나간 교생 실습에서는 파렴치한 남교사를 만난다. 성에 대한 노골적인 대사와 폭력과 애정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웬만한 스릴러 못지않다. 강간과 희롱을 일삼는 남교사에 대한 응징과 애정이 공존하는 이상한 풍경이다. ●혈의 누 ‘요리사, 도둑’의 아내가 남편에게서 먹는 즐거움을 빼앗은 것처럼,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남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복수를 실행한다. 살인사건의 배후를 쫓는 수사과정은 꽤 과학적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각계 전문가들의 친절한 해설을 이 DVD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과 음악에 중점을 둔 2가지 버전의 코멘터리와 제작과정 전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획력 있는 부가영상들이 풍성하다. 2.35:1의 와이드 화면으로 촬영된 영상은 명료하고 투명해서 한국영화로는 최고 수준의 화질이며,DTS를 지원하는 파워사운드 역시 긴장감을 증폭시키는데 톡톡히 제 몫을 한다. ●연애의 목적 2시간의 러닝타임에도 싣지 못한 이야기가 삭제 장면에 수록되었다. 편집 중간에 삭제된 화면이 아니라, 최종 순간까지 고민하다가 시간 때문에 잘려진 장면들이 대부분이라 완성도가 높고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영화와 연애에 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 감독의 코멘터리가 없는 것이 의외다. 대신 삭제장면에 한해 감독과 박해일의 음성해설을 들을 수 있다. 이병우의 부드럽고 세련된 현악 앙상블 연주와 특유의 감미로운 클래식 기타 연주 부록은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DVD칼럼니스트·mlue@naver.com
  • [어제는 한길 오늘은 딴길] (4) 민병두 vs 정병국

    [어제는 한길 오늘은 딴길] (4) 민병두 vs 정병국

    1980년 봄. 전국 최초로 총학생회 부활을 앞두고 성균관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사회학과 3학년 정병국에게 한 동기가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운동권 대부’이자 이론가로 유명한 무역학과 민병두였다. 당시 언더 운동권의 핵심인 그가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운동권과 중도파로 표가 분산되면, 비운동권 후보와 맞서기 힘들기 때문에 중도파인 정병국에게 ‘후보 사퇴’를 제안했다. 민 의원은 “어렵사리 학생회를 부활하게 됐는데 그 열매를 비운동권이 따먹을지 몰라 학교 근처 여인숙에서 새벽 4시까지 사퇴를 설득했다.”고 불발로 끝난 당시 비화를 털어놓았다. 같은 장면에 대해 정 의원은 “총학생회 부활을 준비하면서 운동권과 MT도 가고 노선 정립 등 지도도 받았기에 곤혹스러웠다.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함께 준비한 선·후배들 때문에 출마가 불가피했다.”고 기억한다. ●“학생운동 땐 내가 정통파” 두 사람이 모두 학생운동을 했지만 동기와 위상은 달랐다. 민 의원은 목적의식적 운동그룹인 비합법 공간에서 주로 활동했고, 정 의원은 자연발생적으로 운동에 참여했다. 민 의원은 고교 시절 독서토론회 등에 가입해 일찍 사회문제에 눈을 떴다. 대학 입학 뒤 ‘인상 좋은 고교 선배’(현재 이종걸 의원)의 권유로 흥사단 활동을 거쳐 본격적으로 ‘변혁의 대오’에 나섰다. 시국은 두 사람의 거리를 좁혔다. 정 의원은 80년 광주 항쟁 소식을 접하고 잠입을 시도하다 실패한 뒤 귀경하다 용산에서 검거된다. 강제징집성으로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 정병국’은 체계적으로 운동에 참여했다. 박종철 고문 폭로대회 등 87년 당시 주요 집회장에 뿌려진 유인물은 거의 그의 작품이었다. 같은 기간 민 의원은 비합법 운동권의 거물로 자리잡았다. 대중운동을 지향한 정 의원과는 달리 철저히 ‘전위 그룹’에 속했다. 서울 난곡의 ‘낙골 야학’에서 활동한 뒤 81년 ‘학림사건’,87년 ‘제헌의회(CA)그룹 사건’으로 두 차례, 총 3년6개월 옥살이를 했다. ●“정치 입문은 내가 선배” 88년 사회주의 붕괴 등을 전후해 대부분의 민주화세력은 분기점을 맞았다정 의원은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캠프에 합류,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16·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민 의원은 ‘전국 민족민주 운동연합(전민련)’이라는 생애 첫 합법 공간에서 1년 일한 뒤 13년 동안 기자로 활동하다가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의원이 됐다. 성균관대민주동문 등 동기모임에서 간헐적으로 만나던 두 사람은 국회 문화관광위에서 본격 조우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여야 충돌의 핵심인 4대법안 가운데 정기간행물법을 놓고 격돌했다. 마주 보며 언론사 시장점유율 제한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민 의원은 초선인데도 자기 원칙이 있다. 운동권 시절 빛난 기획력이 논의의 큰 줄기를 잡는 데 큰 힘이 되는 것 같다.”(정) “국회에서 만난 정 의원은 ‘학생 정병국’이 아니었다. 야당 의원으로서의 투쟁성도 강하면서도 막무가내식 반대가 아니라 합리적 질의와 진지함이 넘쳤다.”(민) 피차 아쉬움도 있다.“소속 당의 입장이 있겠지만 굳이 한나라당의 과거를 연계해 흠집내려는 작은 정치보다 큰 정치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에너지를 쏟았으면 좋겠다.”(정) “정 의원은 재선으로 ‘뉴 제너레이션’으로서 자기가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냥 의원으로 남을 것인지 지도자가 될 것인지 정해야 할 것이다.”(민)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박은영의 DVD레서피] 氷~氷~ 갈아보는 재미

    요즘 열대야가 기승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고 맨바닥에 누워도 당최 시원하질 않다. 관자놀이가 저릿할 정도로 차가운 팥빙수 생각이 절로 난다. 한 입만 먹어도 순식간에 시원한 얼음이 명치끝까지 닿고 우유와 팥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맛은 얼얼한 혀를 달래기에 충분하다. 팥의 따뜻한 기운이 냉한 기운을 보한다고 하니 궁합도 그만이고 수박이나 여름 과일들을 썰어 넣으면 아삭하게 씹는 맛도 있다. ‘남극일기’는 눈으로 보는 빙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눈 일색이다. 실제 남극과 비슷해 보이는 뉴질랜드의 설원은 속이 확 트일 정도로 광활한 장관을 연출한다. 여기에 ‘도달불능점’이라는 목적 없는 목표와 인간의 광기가 보여주는 섬뜩함이 공포영화들과는 또 다른 서늘한 매력을 자아낸다. ‘달콤한 인생’은 팥빙수라기보다는 파르페에 가깝다. 그것도 희귀한 열대 생과일과 부드러운 수제 아이스크림을 조화시킨 값비싼 파르페다. 좋은 배우들과 스태프 등 각종 재료들이 근사하고 이병헌이 먹는 초콜릿 케이크만큼이나 달콤한 음악도 있다. 사랑에 무너지는 남자들의 의리와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은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를 비롯한 클래식한 음악들과 어우러져 서늘하면서도 서정적인 울림을 갖는다.●남극일기 한번 보는 것으로 영화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송강호의 살기어린 눈빛과 연극으로 다져진 조연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찬찬히 영화를 다시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2.35:1의 와이드 화면에서 한층 더 빛을 발하는 뉴질랜드 스노팜의 설경과 공포를 배가시키는 크레바스, 눈밭에 내던져진 여섯 배우들의 연기는 다시 봤을 때 더 매력이 있다. 부가영상에 실린 김지운, 류승완, 봉준호, 정윤철 감독의 ‘남극일기를 보는 4가지 시선’은 다른 감독들의 영화에 대한 해석과 애정 어린 평가를 확인할 수 있어 새롭다.●달콤한 인생 감독판 극장 상영 버전에서 50군데가량을 수정한 ‘감독판’이다. 장면의 추가나 가감이 많기보다는 영화의 속도감과 더불어 감각적인 이미지를 강화한 버전이다. 녹색 톤을 기본으로 붉은 색을 조화시킨 색감은 생의 마지막에 몰린 한 남자의 순수함과 분노, 이유 없이 피비린내 나는 혈투를 벌이는 사내들의 액션을 조화롭고 안정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실제 총소리를 녹음해 사용한 총격 장면은 할리우드 못지않게 사실적이다. 부가영상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다. 코멘터리와 함께 감상하는 삭제 장면들과 출연 배우들의 셀프 카메라,2가지 버전의 코멘터리, 감독과 스태프에게 묻는 ‘왜 그랬어요?’ 등 기획력이 돋보인다.DVD칼럼니스트·mlue@naver.com
  • 장학사 4000명 인텔서 ‘e-러닝’

    미국의 다국적 정보기술(IT) 기업인 인텔이 이달 말 국내 장학사와 장학관을 대상으로 전자학습(e러닝) 연수를 시작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최근 김영식 차관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 인텔과 중장기적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e러닝 관련 공동 협력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31일 밝혔다. 이에 따라 이달 말부터 교육부와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지역 교육청의 장학사와 장학관 등 4000명의 장학 요원을 대상으로 e러닝 관련 국내 연수를 실시하게 된다. 그동안 다국적기업들이 국내 일부 초·중·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e러닝 연수를 실시한 적은 있지만 장학요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연수를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수는 이달 말부터 각 시·도교육청별로 3명씩 모두 50여명으로 한 반을 구성하며,3일에 걸쳐 실시될 예정이다. 장소는 호텔이나 연수원 등을 활용할 예정이며, 인텔이 초빙한 외국인 강사 2명이 참여한다. 연수 내용은 e러닝에 대한 기초 이해를 비롯해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 중심의 e러닝 교수기법과 기획력 등을 중심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된다. 교재도 인텔이 직접 마련한 것을 활용하게 된다. 연수에 드는 일체의 비용은 인텔이 부담한다. 교육부는 일단 인텔을 시작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썬마이크로시스템스, 애플 등 다국적 IT기업들과도 교원연수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인텔은 IT 연수를 확대하기 위해 국내에 ‘교원 IT연수센터’를 세우고 교육부와 공동으로 교원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또 지난 4월 썬마이크로시스템스와 맺은 양해각서에 따라 이달부터 안산공고와 부산컴퓨터과학고, 구미전자공고 등 3곳에 각 7억원씩 모두 21억원어치의 프로그래밍 교육장비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애플과도 정보통신기술(ICT) 활용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오는 8월부터 e러닝 교육과정 개발과 관련해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김 차관은 “한국의 IT기술에 대해 다국적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발전 및 활용속도가 빠른 우리나라의 특성을 감안해 e러닝 분야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與 대변인 전병헌·비서실장 박영선의원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4일 후속당직개편에서 전병헌 의원을 대변인에, 박영선 의원을 의장 비서실장에 내정했다. 문 의장이 정동영(DY) 통일부 장관의 후원을 받으며 당의장에 선출된 만큼 DY계보 인물들을 대거 등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기획력이 뛰어나고 아이디어가 많아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꾀돌이’로 불리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전병헌 신임 대변인은 1980년대 평민당 당료로 출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청와대 정무비서관·국정상황실장·국정홍보처 차장을 지냈다. 정무적 기능이 적지 않은 의장 비서실장에 초선인 박영선 의원이 선택된 것도 의외. 문 의장의 우락부락한 ‘장비’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개선시킬 수 있다는 점이 인선과정에서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 전병헌 신임 대변인 충남 홍성(47) ▲고려대 정외과 ▲국민회의 14대 총선기획단 부단장, 대선기획단 기획위원 ▲원내부대표 ▲17대 의원(서울 동작갑) ■ 박영선 신임 의장 비서실장 경남 창녕(45) ▲경희대 지리학과 ▲MBC LA특파원·경제부장 ▲경희대 언론정보대 겸임교수 ▲대변인·원내부대표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스타 파워’ 드라마 좌지우지

    ‘스타 파워’ 드라마 좌지우지

    이른바 ‘스타 파워’가 TV드라마 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좌초위기에 처한 MBC 외주 드라마 ‘못된 사랑’의 사례 등을 보면 그 정도가 드라마 제작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비대해졌다는 지적이다. 방송사 내부에서는 이번 기회에 ‘스타 파워’에 휘둘려온 안이한 제작 방식에서 탈피, 드라마 제작 환경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뒤바뀐 ‘갑과 을’의 관계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원더풀 라이프’후속 MBC 미니시리즈 ‘못된 사랑’(DNT웍스)의 제작진은 최근 낭패를 봤다.5월 방영을 목표로 24일 첫 촬영을 계획했지만, 지난 1월 일찌감치 주인공으로 내정된 가수 비가 촬영을 코앞에 두고 돌연 출연 번복을 통보한 것. 앞서 상대역으로 거론되던 고소영도 대본 수정 문제로 출연을 거부했다. 비측은 다친 코의 수술을 이유로 들었지만, 방송가에서는 7년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하는 고소영의 출연이 무산된 것이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다급해진 MBC측은 뒤늦게 비와 고소영이 제시하는 모든 조건을 수용한다고 제안했지만, 둘다 출연불가 입장을 고수해 체면만 구겼다. 제작진은 “비를 주인공으로 정해 놓고 준비를 해왔는데, 촬영 등 드라마 제작 전반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MBC 한 프로듀서는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라면서 “스타 캐스팅의 칼자루를 쥔 대형 연예기획사·드라마제작사들이 스타 파워를 앞세워 드라마 제작의 핵심 권력으로 등장하면서 ‘갑과 을’의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연기자에 PD·작가까지 ‘스타 파워’ ‘스타 파워’는 단지 연기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엔 연예기획사가 직접 드라마 제작사로 나서거나 드라마 제작사와 합종연횡을 시도하면서 프로듀서는 물론 작가까지 ‘스타 시스템’안으로 들어왔다.60여명의 연기자를 보유한 국내 최대 연예 매지니먼트사 싸이더스HQ를 자회사로 둔 IHQ와 탄탄한 제작 인프라를 갖춘 김종학프로덕션 등은 유능한 프로듀서와 드라마 작가들을 속속 지상파 방송사들로부터 빼내 ‘스타 파워’를 강화하고 있다. 연기자 캐스팅은 물론 프로듀서, 작가 선정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만의 ‘맞춤 드라마’를 생산해내고 있다.‘슬픈연가’(김종학 프로덕션·포이보스·두손엔터테인먼트)에서 보듯 해외 판권과 O.S.T 제작 등에서 방송사보다 유리한 수익 비율(7대3)로 계약,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MBC의 한 프로듀서는 “외주제작시스템과의 ‘자본 게임’에서 방송사가 완패하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연기자 캐스팅은 이미 연예기획사·드라마제작사 등에 의해 완전 장악당했고, 최근엔 스타 작가를 잡기 위한 드라마제작사끼리의 과당 경쟁으로 불과 1∼2년 새에 작가의 몸값도 3배 이상 폭등했다.”고 말했다. 이은규 MBC 드라마 국장은 “연기자, 프로듀서, 작가 등 드라마 제작의 필수 3요소가 연예기획사·드라마제작사에 의해 완전히 장악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면서 “방송사가 채널과 기획력 측면에서만 약간의 우위를 보이고 있는 지금의 상황도 채 1년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주 드라마의 체계적 관리와 프로그램 질 향상 시급 MBC 내부에서는 ‘못된 사랑’의 연기자 출연 번복, 새달 2일 방송 예정인 ‘다섯손가락’(김종학 프로덕션)의 대본 표절로 인한 편성 연기,‘착한 사랑’(삼화프로덕션)의 납품 차질 등 최근 잇따른 외주드라마의 편성 파행 사태를 둘러싸고 “드라마제작사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행사하지 않았던 ‘힘’을 이제는 ‘관계 정상화’를 위해 써야 할 때”라며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내용보다는 스타 연기자 캐스팅, 연출자와 작가, 대략의 시놉시스만 보고 편성을 결정하고 사후 품질 관리는 전혀 하지 않는 현행 시스템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산하 ‘편성·제작부문 민주방송실천위원회’는 22일자 노보를 통해 “대형 제작사 중심의 독점 공급 체제와 관리시스템의 실패가 외주드라마 파행편성과 그로 인한 MBC드라마 전체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했다.”면서 “명확한 신상필벌과 통합적 외주 관리 전문 부서의 신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은규 국장은 “외주 제작에 익숙한 SBS나, 일일 연속극 정도만 외주 제작을 하고 있는 KBS에 비해 MBC는 외주 드라마의 파행으로 인한 타격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라면서 “드라마 제작 환경을 정상화하기 위해 제작을 둘러싼 모든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국장은 특히 “연예기획사·드라마제작사의 스타 파워에 대항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소재 개발 등 자체 제작 드라마의 품질 향상에 주력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행정도시 반대의원들과 대화 계속”

    11일 한나라당의 새 원내사령탑에 당선된 강재섭 신임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행정도시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수도권이 동북아 허브로서 역할해야 하며, 서울의 ‘네임 밸류’를 지켜야 한다.”는 말로 취임사를 대신했다. 그러면서 “행정도시법 반대 의원들과 대화를 계속하고 국회의원으로서 국회에서 할 일을 찾겠다.”고 당내 단합을 강조했다. 강 원내대표는 ‘과거 인물’이라는 비판에 대해 “나는 현정권이 과거지향적으로 하는 것을 강도높게 비판해온 사람으로,(앞으로) 하는 것을 보면 과거지향적인지 미래지향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는 대여 협상파트너인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에 대해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만큼 인간적으로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내부대표단 인선과 관련해서는 “전문성과 기동성을 갖춘 내실있는 팀으로 구성하겠다.”고 예고했다. 강 원내대표는 검사 출신으로 지난 13대 때 전국구로 정계에 입문, 대구에서만 내리 4번이나 당선되는 등 일찍부터 ‘T·K(대구·경북)의 나무 주자’로 인식돼왔다. 특유의 친화력 덕분에 TK 출신이면서도 문민정부 시절 민자당 대변인과 총재 비서실장을 지냈다. 수재형으로 기획력과 판단력이 뛰어나다는 평가와 뚝심과 집요한 돌파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동시에 받고 있다.1995년 12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따른 5·18 특별법 제정 당시 당론을 거부하며 ‘반대표’를 던지는 등 ‘소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부인 민병란(54)씨와 1남1녀.▲경북 의성(56) ▲서울 법대 ▲청와대 정무·법무비서관 ▲민자당 기조실장 ▲신한국당 대변인·총재비서실장·원내총무 ▲국회 법사·정치개혁특위원장 ▲한나라당 부총재·최고위원 ▲13·14·15·16·17대 의원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총리실 전직원 ‘혁신교육’

    국무총리실이 정부 혁신교육의 ‘선봉’을 자임하고 나섰다. 직원들의 혁신 마인드를 높여 다른 부처가 벤치마킹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억 2000만원짜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전문 위탁교육기관에 의뢰, 오는 11월 말까지 국무조정실과 총리비서실의 전 직원 300여명이 사흘 이상 혁신교육을 받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총리실은 최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위탁교육기관 공개입찰을 알렸다. 지난달 18일 희망업체들을 상대로 사업설명회를 가진 데 이어 오는 8일 공개입찰을 실시할 예정이다. 입찰내역은 ‘국무총리실 혁신능력 개발을 위한 교육체계수립 및 교육위탁 수행용역’. 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낸 임종순 총괄심의관은 1일 “정부혁신을 선도할 교육 인프라를 구축, 직원 전체의 혁신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이같은 외부위탁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총리실을 비롯해 정부 부처 가운데 별도의 자체 교육프로그램을 추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총리실만 해도 지난해까지 중앙공무원교육원이나 중앙인사위, 행자부의 민간위탁교육에 직원들을 참여시키는 정도가 전부였다. 임 심의관은 “위탁교육 프로젝트를 통해 보다 체계적이고 부서 특성에 맞는 혁신교육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성과가 좋을 경우 다른 부처의 벤치마킹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총리실은 교육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으로 ▲정책학습 ▲변화관리학습 ▲능력개발학습 등 3개 분야로 잡아 놓고 있다.‘정책학습’은 직원들의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것으로,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이슈 선점 및 문제해결 능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갈등관리과정(KDI), 규제개혁과정, 정책품질관리과정, 현장문제해결과정, 통계분석과정, 핵심인재 양성과정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변화관리학습’은 업무혁신 내용을 실제 업무에 적용, 효율성을 높이고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교육과제로 혁신리더과정, 변화주도리더십, 업무프로세스개선, 지식관리, 성과관리 및 평가, 회의진행 등이 주된 프로그램이다. ‘능력개발학습’은 기획력과 분석력, 판단력, 의사소통능력 등 일반적인 정책능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이다. 정책기획력 개발, 창의력 개발, 분석스킬 향상, 관리자 능력향상, 합리적 의사결정, 토론과 대화기법, 정책마케팅, 정보관리 등의 프로그램으로 짜인다. 혁신교육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산 2억 2000만원은 올해 각 부처에 배정된 ‘행정서비스 능력개발예산’으로 충당된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박은영의 DVD 레서피]‘썸’뜩한 스릴러 ‘완벽한’ 팬터지

    [박은영의 DVD 레서피]‘썸’뜩한 스릴러 ‘완벽한’ 팬터지

    거리의 어묵 수레는 날씨가 추울수록 호황이다. 후후 불면서 마시는 뜨끈한 국물과 김이 무럭무럭 나는 먹음직한 어묵은 겨울철 별미이기 때문이다. 어묵은 큼직하게 썬 무와 해산물을 우려낸 국물, 적당한 탄력을 유지한 육질이 맛을 좌우한다. 그러나 어묵의 참맛은 꼬치를 하나씩 뽑아서 들고 먹는 즐거움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DVD에도 꼬치를 골라 먹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바로, 스페셜 피처 혹은 서플리먼트라고도 불리는 부가영상을 보는 것이다. 영화 촬영의 뒷이야기와 극장 상영에서 삭제된 장면들, 감독과 배우들의 친절한 음성해설에는 극장에서나 비디오로는 결코 감상할 수 없었던 감칠맛이 느껴진다. ‘썸’과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의 DVD에는 모양도 맛도 가지각색인 개성 만점의 부가영상들이 꼬치처럼 꽂혀 있다.‘썸’에는 7개월 동안의 촬영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메이킹 필름,3D로 만든 스토리보드, 고속도로 추격 신에 대한 제작 과정, 색 보정 과정을 담은 영상들이 수록되어 있다. ‘완벽한 그녀에게‘에는 배우들의 학창시절 사진과 이야기들이 공개되며, 삭제장면과 NG 컷, 영화 속에 삽입된 1980년대 팝의 오리지널 뮤직비디오도 볼 수 있다. 자, 이제 입맛에 따라 하나씩 골라서 보기만 하면 된다. ●썸 범인을 쫓는 형사와 그의 죽음을 기시감으로 느끼는 교통 정보 리포터는 스릴러의 주인공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두 인물이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과정은 팬터지 로맨스에 가깝다.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DVD들에 감동했다면, 이 DVD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에서 “(여건만 되면) 매트릭스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장윤현 감독의 말처럼 한국영화의 기술력과 DVD 기획력이 돋보이는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색상 표현과 고른 톤의 영상은 DVD의 ‘보는 즐거움’을 깨닫게 한다. 감각적으로 편집한 부가영상과 화려한 메뉴 디자인도 매력적이다. 스릴러의 극적 반전을 기대하지 않는다면,DVD적인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열세 살짜리 어린애가 하루아침에 서른 살이 되는 팬터지는 누구나 한번 쯤 꿈꾸었음직하다. 제니퍼 가너의 뛰어난 연기는 그저그런 로맨틱 코미디가 될 뻔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또한 발랄하고 경쾌한 원색의 표현과 80년대 음악을 중심으로 디자인된 사운드는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영화 전체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휘트니 휴스턴의 ‘I Wanna Dance With Somebody’ 등 20곡이 넘는 올드 팝이 재생되는 스코어는 이 DVD를 감상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 고교3총사 나란히 육군장성에

    별을 꿈꾸던 고교 같은 반 3총사가 나란히 육군 장성으로 별을 달아 화제다. 주인공들은 지난해 10월 준장으로 승진해 연말인사에서 보직을 받은 정명구 국방부 조달본부 장비부장, 홍종설 육군본부 헌병감, 이규상 1군사령부 지휘통제처장 등 3명이다. 강원도 원주고 18회인 이들은 졸업반 시절인 73년 3학년 6반 급우들로 나란히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해 군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 해 원주고에서 8명이나 육사에 진학했으며 이들 3명이 육사 34기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 학창시절 출석부에는 2번 홍종설,9번 정명구,42번 이규상이라는 이름이 올라 있어 동기동창생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들을 진학 지도했던 이긍래 담임교사는 5년전 별세했지만 당시의 급훈인 ‘성실’을 좌우명으로 3명의 장군은 참 군인의 길을 걸어왔다. 정 준장은 학창시절 밴드부로 활동하는 등 활달한 성격이고, 홍 준장은 헌병분야를 주로 맡아 원칙과 정도를 중시하며, 이 준장은 군 통신분야 전문가로 기획력과 조직관리에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향인 원주 1군사령부에서 장군으로 첫 보직을 맡은 이규상 장군은 “셋이서 고교시절부터 너무 친하게 지냈고, 요즘도 수시로 전화통화나 만남을 갖고 있다.”면서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원주고 18회 동기회장인 권병호 원주시 소초면장은 “세 친구가 나란히 별을 달아 동기들의 축하인사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승승장구해 국가를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길 친구들 모두 기대하고 있다.”고 기뻐했다.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100년 가는 정당 만들자” 우리당 창당1돌 기념행사

    “100년 가는 정당 만들자” 우리당 창당1돌 기념행사

    11일 창당 1주년을 맞은 열린우리당은 2003년 국회의원 47명의 ‘소수여당’으로 출발했다.6개월 만인 지난 4월 총선에서 152석의 ‘거대여당’으로 리모델링됐다. 그 사이에 수적 열세에 밀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초유의 사건도 겪었다. 이날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열린 창당 기념행사에서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풍찬노숙(風餐露宿)을 각오해야 했던 어려운 선택이었다.”고 회고하고,“가슴 벅찬 창당 1주년의 아침에 창당의 초심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제2창당의 도목수(都木手)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정배 원내대표도 “기쁨과 환희를 맛본 영광의 순간도 있었고, 때로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속에 절치부심한 경우도 있었다.”며 “우리 모두 동지이자 동반자의 마음으로 오늘의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자.”고 호소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축하메시지를 보내 “1년 전 우리는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면서 여당의 책임론을 강조한 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성공한 정당을 만들어 보자.”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당 지도부와 문희상·유인태·김부겸·유시민 의원 등 소속의원 100여명과 당직자 등 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결의도 다졌다. 특히 김근태 장관은 열린우리당 17대 총선 출마 원외인사 연찬회에서 “당이 앞장서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어가고 개혁도 해야 한다.”며 ‘초심론’을 강조했다. 열린우리당이 이처럼 축하보다는 결의를 다지는 이유는 창당 1주년의 현실이 무작정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20%대에 불과하다.‘4대 개혁법’ 중 최대 현안인 국가보안법 폐지문제에 대한 다수 국민여론은 반대하고 있다. 일부 국민은 ‘좌파정부’라고 비판하고, 지지자들은 “개혁이 미흡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핵심적인 사업이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던 신행정수도 이전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결정이 내려져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민생·경제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당 분위기는 내년 재·보선에서 과반상실을 거의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김형식 부대변인은 “열린우리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해 공직후보자에 대한 국민참여를 전면화했고, 정치자금법·선거법 개정으로 정치문화를 개혁했다.”고 공적을 평가했다. 또한 그는 “대통령의 평당원화로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가 과거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대등한 관계로 혁신됐다.”고 덧붙였다. 숙제도 적지 않다.151명(김원기 의장 탈당)의 거대여당으로서 정치력·기획력이 복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주자 후보인 김근태·정동영 장관이 행정부에 참가함에 따라, 한나라당과의 ‘전투’에서 밀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래서 당의장에게 권한을 더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내년 3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제기되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불거질 ‘계파간 노선갈등’을 최소화하는 것도 과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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