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인문학의 힘
요즘 대학가에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의 몸값이 많이 오르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기초학문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지원사업이 나름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 모양이다.전체 강사 수를 감안하면 그 혜택(?)을 누리는 연구자들은 고작 10% 내외라는 불만도 있지만,첫술에 배부르길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나.일단 불이 붙은 것은 분명 고무적이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책을 읽기는 해도 체계적이고 깊이있는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워서,뒤늦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역사,미술과 미학을 두루 배울수 있는 고고학 쪽이 어떨까 했더니 주변에서 ‘21세기에웬 고고학’이냔다.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21세기니까 이제 정말 문학,역사 쪽을 공부할 때가 된 게 아닐까.‘잘 살아보세’라는 말이 슬로건이었던 시절,그때는 뭐니뭐니해도 기술이 최고였다.하지만 밥을 먹어도 단순히배부르기 위해서가 아니고,공부를 해도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 때가 되었다.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나 뒤도 돌아보고,어떻게 하면 아름답게살 것인가 심미안도 키우고,예술이 주는 윤택함도 누릴 때가 된 것이다.
고백컨대,글을 쓰기로 마음 먹으면서,이런 생각을 한 적이 내게도 있었다.전혀 다른 전공,예를 들어 의학이나 공학 혹은 법학을 공부했더라면 보다 폭넓은 글쓰기를 할 수 있을텐데….그러나 이제 나이를 조금 먹으면서 철이 드는지 생각이 달라진다.그나마 내가 잘한 일은 인문학을 선택한 것이었다.치열한 법정공방전을 쓰든,의학 관련 이야기를 다루든,문제는 법조문이나 전문용어가 아니었다.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모든 이야기는 사람에서 출발하여 사람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며 결국 사람으로 귀결되어야 비로소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을,이제야 깨친 것이다.
사람이 없는 글쓰기만 공허한가.안전을 생각하지 않은 자동차,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의술,인격을 무시한 법률….사람이 없는 것은 무엇이나 무모하다.인문학은,사람다운 사람,큰 사람을 키워내는 학문이다.큰 사람을 키워내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보이지 않는 공이 많이 든다.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그러나,사람다운 사람이 법정에 서고,컴퓨터를 만들고,정치를하게 되었을 때,머리뿐 아니라 마음도 함께 큰 ‘기능인’이 아닌 ‘지식인’이 곳곳에서 사람을 위해 일하게 될 때,비로소 인문학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다.
고은님 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