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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여기] 양공주가 뭐예요?/최여경 문화부 기자

    [지금&여기] 양공주가 뭐예요?/최여경 문화부 기자

    “양공주가 뭔가요?” 경기 평택시 안정리에 사는 기지촌 여성에 관한 연극 ‘일곱집매’ 공연장에서 맞닥뜨린 질문이다. 공연 후 오랫동안 기지촌 여성의 삶을 연구해온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무대에 올라 기지촌 여성의 삶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이렇게 물었다. 어쩌면 별것 아닌 이 질문에 객석은 상당히 술렁였다. ‘양공주’는 1950~1970년대 미군기지 근처, 기지촌에서 생활하던 여성들을 말한다. 이 여성들은 미군을 ‘상대’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지촌이나 ‘양공주’ 혹은 ‘양색시’라는 말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질문은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진짜 모르느냐는 의문이었다.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숙제를 안기는 말이기도 했다. 이제 곧 이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고 진실을 알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연극은, 그동안 당신이 알고 있던 ‘사실’은 진실이 아니었다고, ‘미군에게 몸을 판’ 여성이 아니라 ‘국가에 이용당한’ 사람이었다는 진실을 조용히 역설했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1961년 ‘관광사업진흥법’을 제정해 서울 이태원과 경기 동두천 등 전국 104곳에 특정 윤락지역을 설치했다. “많은 외국인 내한에 대비”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무시무시하게도 ‘위안부’라 불렀다. 1962년부터는 미군의 요구에 맞춰 기지촌 여성의 성병까지 관리했다. 검진증을 늘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이 ‘깨끗한 몸’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러나 국가의 감시 아래 그들이 얼마나 인권을 유린당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8월 기지촌 여성 보호 단체들이 기지촌여성인권연대를 발족해 이들의 희생과 피해를 알리고 있지만 관심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기자 또래까지는 ‘자발적으로 몸을 판 여성에게 왜?’라는 의문을 던지고, 더 어린 세대에게는 아예 ‘없는 존재’가 된 탓이다. 우리가 아는 역사가 모두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권력은 역사를 왜곡하고 포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역사가 덧씌운 상처를 걷어내는 건 우리의 몫이다.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끊임없는 관심으로도 충분하다. kid@seoul.co.kr
  • [대선 3자대결구도] 박선숙 선거총괄역은 누구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선거총괄역을 맡게 된 박선숙 전 의원은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권유로 정계에 첫발을 디뎠다. ●김근태와 민주화운동 함께 해 1960년 경기 포천의 기지촌에서 태어난 박 전 의원은 수도여사대(현 세종대) 역사학과에 진학, 민주화운동청년연합에 참여하면서 김 상임고문과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다. 그는 현재 김 전 고문이 주축이었던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 회원이기도 하다. 박 전 의원은 고 김대중 대통령과도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한 후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수석실 공보기획관과 첫 여성 대변인을 지내면서 ‘DJ의 입’ 역할을 했다. 참여정부에서는 환경부 차관을 지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19대 총선에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4월 총선때 전국적 야권 단일화 주도 특히 그는 민주당 내 대표적 전략통으로 평가된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 협상 대표로 나서 전국적 야권 단일화를 주도했다. 총선정국에서는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직을 맡아 선거를 지휘하는 등 중요한 시기마다 굵직한 역할을 해 왔다. 이후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 대외 활동을 자제해 왔지만 안 후보의 첫 공식 일정인 현충원 참배에 함께하면서 ‘안철수의 사람’으로 커밍아웃했다. 박 전 의원은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당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민주당 후보가 결정된 상황에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면서 그간의 고심을 털어놨다. 그는 “안 후보가 대선 후보로 출마를 결정한 후 시대의 무거운 숙제를 감당하려면 함께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면서 “저의 결정이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라는 큰 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길 바라고 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연극 ‘일곱집매’로 본 기지촌 여성의 삶

    연극 ‘일곱집매’로 본 기지촌 여성의 삶

    “왜 굳이 이런 아픈 기억을 꺼내 들은 거죠?”(관객) “잊고 싶은 기억을 자꾸 끄집어내는 것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연극에서 나온 ‘닿을 수 없는 거리’라는 표현처럼, 슬픔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어 우리는 이해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이 문제를 한국에 있었던 어떤 사건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겁니다.”(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인식에 따라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관객) “할머니들의 이야기이면서 현대사의 부침에 시달린 우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제야 꺼내놓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인식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이 교수) 지난 2일 서울 혜화동 연우소극장에서는 한바탕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과연 1950~70년대 기지촌 여성들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인가, 한국 현대사의 부침 속의 희생양에 불과한가이다. 주제를 던진 것은 이날 무대에 오른 연극 ‘일곱집매’였다. 일곱집매는 주한 미군 캠프인 험프리가 있는 경기 평택시 안정리의 옛 이름이다. 일곱 집이 다정한 자매처럼 살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군사비행장을 만들기 위해 밀어버렸고, 6·25전쟁 때 미 공군 비행장으로 바뀌어 캠프 험프리가 들어섰다. 이 안정리 기지촌을 무대로, 연극은 이제는 노인이 돼 쓸쓸히 살아가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담고 있다. 무대는 할머니들이 사는 작고 허름한 방 7개에 둘러싸인 앞마당이다. 기지촌 아이들의 입양 문제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한국계 미국인 하나가 이곳을 찾았다. 냉정한 순영 할머니와 발랄한 화자 할머니, 기지촌에서 낳고 자란 청년 춘권, 미군 철수 활동가 상철, 기지촌의 젊은 여성 필리핀인 써니를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한다. 아들 마이클을 미국으로 입양 보낸 순영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려던 하나는 되레 질문을 받는다. “기자, 작가, 어린 여대생들까지 내 이야기를 듣고 갔지. 하지만 달라진 게 없어. 선생은 뭐에 쓰려고 하지? 박사학위를 따는 거 말고는, 뭐가 달라지는데?” 하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다른 기지촌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 등을 거쳐 그가 찾아온 대답은 ‘기록’이다. “인간이 단 한 명이라도 살아 있는 한 영원히 망각될 수 없도록. (할머니) 죽기 전에 슬픔을 새겨두고 떠나요. 사람들이 몰랐다고 말할 수 없도록.” 두 할머니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기지촌에 들어온 어린 순영이 미군에게 하룻밤 대가로 받은 돈은 40달러. 살림에 보태고 동생들을 공부시키는데 유용했다. 아버지는 몸을 팔았다면서 때리기 일쑤였지만 돈이 부족하면 또 순영을 찾았다. 당시 정부는 ‘외화벌이 산업역군’이라면서 미군을 ‘손님’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성병관리까지 했다. 행여 도망이라도 갈까봐 ‘애국자’라고 부추기고 “나중에 아파트 한 채 받을 수 있다.”는 사탕발림으로 유출을 막았다. 한국 현대사의 부침 속에 시달리던 여성들은 이제는 ‘자발적으로 몸을 판 양공주’라는 오명과 정부의 외면 속에서 힘겹게 생활하고 있다. 연극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처절하게만 그리지 않는다. ‘눈물을 담아둔 둑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애써 욕지거리를 해대면서 유쾌하게 포장하는 화자 할머니가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덕분에 2시간 30분에 달하는 연극은 지루할 새가 없다. 대본을 쓴 이양구(극단 해인 대표)씨는 “(화자 할머니는)긴 연극을 끌어가기 위해 설정한 인물이 아니라 실제 할머니들에게서 본 모습의 일부”라면서 “너무나 아픔이 깊어서 선뜻 꺼내 들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포장하면서도 늘 죄책감에 사로잡혀 계시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1950~70년대 우리나라의 기지촌 문제는 강제냐 자발이냐 이런 차원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에게 준 상처와 제도적·구조적 폭력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정리에서 10년째 기지촌 할머니들을 돌보면서 이 공연을 기획한 햇살사회복지회 우순덕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이 연극 ‘나비’(2005)를 통해서 확산됐듯이 이 연극으로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9일까지. 1만~1만 5000원. 070-8236-0445.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32살 조정래가 본 70년대 ‘부조리한 사회’

    호흡이 긴 작품만 써 내던 조정래가 단편소설집을 냈다. 토속적인 전라도 사투리와 맛깔스러운 생생한 대사로 근현대의 역사적 비극을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에 익숙한 독자들은 조정래의 단편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외면하는 벽’(해냄 펴냄)은 작가가 1977년부터 79년까지 문예지에 발표했던 8편의 작품을 담았다. 1999년 발간된 9권짜리 ‘조정래의 문학 전집’에서 ‘마법의 손’으로 묶어 나온 것을 이번에 제목을 바꿔 개정판으로 내놨다. 1943년생인 작가가 32살 무렵에 기록한 1970년대의 기록들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엄마를 찾아 서울로 가 철공소 직원, 짜장면 배달원, 소매치기, 소년원을 체험하고 나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부조리한 덫에 걸리는 열다섯 살의 ‘동호’(‘진화론’)나, 기지촌에서 혼혈아로 자라난 20대로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어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깜둥이’ ‘흰둥이’들(‘미운 오리 새끼’),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사상범이라는 이유로 적절한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 외딴섬 돌로 만든 감옥에서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살다가 죽는 ‘독종’(‘비둘기’)들이 나온다. 장례는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줄로 당연하게 알고 있는 현실이 1970년대는 망자가 살던 집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외면하는 벽’). 조정래는 저자의 말에서 “2010년대 지금 세월이 흘러 흘러 장강이 되었으니, 살 만한 세상이 되었는가? 우리가 좀 더 사람다운 모습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면서,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조정래는 “작가로서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녀석이 톱밥 속으로 숨어들었다. 녀석은 밀크셰이크처럼 어감이 달콤한 밀크스네이크 종이다. 먹이 줄 것과 따뜻하게 해 줄 것, 간단한 러시아 단어로 적어 놓은 메모지를 들여다보았다. 이반이 출항하기 전 남긴 글이다. 이반은 녀석의 등을 쓰다듬고 마지막 선물처럼 케이지를 앞에 내려놓았다. 한국 사람과 러시아 사람은 닮은 구석이 많아, 이반은 러시아 사람들도 개나 고양이, 새 같은 애완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뱀이라니, 나는 검정 바탕에 노랑, 빨강 줄무늬가 있는 이국의 낯선 뱀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러시아에서 뱀은 집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다고 생각해. 녀석을 보고 놀란 나에게 위로라도 하려는지 이반은 한국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는 걸 어디선가 들었다고 했다. 명자, 이반은 내 이름을 부르고 입으로 휘이휘이 휘파람 부는 흉내를 냈다. 그러면 집안이 텅 비게 돼, 녀석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종종 휘파람을 불던 내게 이반은 러시아 속담을 빗대 말했다. 나는 멀찍이 녀석을 내려다보며 이반의 익살에 웃음을 내보였었다. 이반을 만난 것은 클럽 로즈에서였다. 로즈는 P시에서 속칭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외국인 거리에 있었다. 예전에는 주로 미군들이 드나들었는데 미군이 철수하고 러시아 선원과 상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날도 나는 로즈에서 맥주를 마시며 립스틱이 번지지 않았는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젊은 러시아 청년 하나가 보드카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마담 장 앞에서 한국 얘기를 듣던 선원 중 하나였다. 술을 마실 때 거울을 보면 안 돼요, 아름다움까지 먹어버리거든요, 귓불에 입술을 갖다 대며 그가 속삭였다. 흔한 작업멘트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의 나긋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반이라고 했다. 그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처음 출발하는 곳이 고향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베리아 열차가 끝없이 달리는 드넓은 숲과 초원을 떠올렸다. 그에게 러브 오브 시베리아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양손을 허공에 올려 내 얼굴을 길게 그려보였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왼쪽 손목에 새겨진 푸른색 돛이 펄럭였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내가 여주인공과 닮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그린 얼굴이 허공에 그대로 떠 있는 것처럼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러시아 사람과 첫 대면을 할 때 영화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영화 속 여주인공을 만난 것처럼 이국의 여자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대개 영화 속 지명이나 주인공의 이름을 들먹이는 선에서 끝이 났다. 러시아말로도, 한국말로도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순간에 이르면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가 턱을 괴고 조용히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여행지처럼 나를 설레게 했다. 음악이 흘렀고, 클럽 로즈는 마치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을 품고 있는 대합실 같았다. 그의 손목에 새겨진 푸른 돛 때문이었을까, 나는 문득 그라면 함께 여행을 떠나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같이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월요일만 아니라면 언제라도 좋아요, 월요일 여행은 불행하거든요, 러시아 속담이에요. 느닷없는 제안이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나는 벽면에 붙은 러시아 달력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마치 오래 전에 만난 사람처럼 손을 잡고 아무 손님도 잡지 못한 나타샤를 지나쳐 거리로 나왔다. 밤하늘에는 만국기가 꽃잎처럼 나풀거렸고 만국기의 행렬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입을 맞추었다. 두 블록 떨어진 내 숙소로 걸어올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도 이반이 러시아 속담을 말하며 내 입술에 입을 맞출 것만 같다. 시계가 밤 아홉시를 넘겼다. 녀석은 원색의 몸을 감춘 채 아직 기척이 없다. 나는 열선을 펴서 케이지 크기만큼 접었다. 그 위에 타월을 깔고 케이지를 얹었다. 사람 옷 입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판매원이 열선 까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겨울철, 스스로 온도 조절을 하지 못하는 녀석에게 열선은 생명줄과 다름없다고 했다. 녀석에게 25도의 체온으로 이국의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불행일 수 있었다. 나는 콘센트에 코드를 꽂고 케이지에서 멀찍이 물러섰다. 거실의 불을 낮추고 이반이 남긴 메모지를 냉장고에 붙였다. 주방 창가로 가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북향으로 나 있는 주방에서 밖을 보면 아래층에 있는 중국집 ‘홍루’의 뒤꼍이 훤히 보였다. 홍루 뒤꼍에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새들었다. 쥐라도 쫓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담자락을 타고 지나간다. 지난봄, 가게의 주인이 바뀌면서 홍루(紅樓)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홍루는 붉은 다락방이라는 뜻이지만 이곳에 사는 화교들은 늙은 기생의 방이라는 별칭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변두리 사거리의 허름한 중국집 이름 홍루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거리는 스산할 정도로 빛이 꺼져 가고 휑하니 바람만 몰아 불었다. 멀리 텍사스 거리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등 뒤로 손을 넘겨 자주색 민소매 드레스의 지퍼를 올렸다. 목선이 등 뒤로 깊게 파인 드레스였다. 이반을 만났을 때 이 드레스를 입었다. 이반이 긴 허리를 굽히고 마른 등에 입술을 댈 때면 나는 수줍은 소녀처럼 간지러움을 참아내곤 했다. 나는 거울을 보며 빨강 립스틱을 덧바르고 귓불 뒤에 향수를 뿌렸다. 구제를 구입해 수선한 밍크를 꺼내 걸치고 자투리로 만든 밍크 모자를 머리에 비스듬히 얹었다.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장갑을 꼈다. 은색 스팽글이 촘촘하게 박힌 카우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텍사스촌에 접어들자 겨울 내내 공중에 걸려 있던 해진 만국기가 바람에 나풀댔다. 그 아래, 술에 취한 러시아 선원 두 명이 러시아 혁명가 스텐카 라진을 부르며 지나갔다. 나는 시애틀 노래주점을 지나고 캄차카 노래방을 지나 클럽 로즈로 걸음을 옮겼다. 로즈에는 러시아 민요인 백만 송이 장미가 흐르고 있었다. 낮고 고혹적인 중년 여가수의 목소리가 담배 연기와 흐린 불빛에 섞여 들었다. 손님이라고는 한국 선원 두 명과 러시아 선원 두 명이 전부였다. 마담 장이 표정 없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반을 만났던 자리에 앉아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얹었다. 한국 선원과 함께 있던 나타샤가 다가와 서툰 한국어로 언니, 마셔? 라고 물었다. 나는 보드카와 러시아 닭 꼬치인 샤실릭을 시켰다. 담배를 피워 물고 천천히 로즈 안을 둘러보았다. 마담 장이 무료하게 하품을 해댔다. 필리핀에서 온 구잘은 러시아 선원과 섞여 백만 송이 장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나타샤가 보드카와 샤실릭을 내왔다. 나는 담배를 끄고 보드카를 한 잔 따랐다.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시자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목까지 치닿았다. 이반은 보드카를 마시는 순간이면 고향을 떠났다는 것도, 추운 바다 위를 떠돈다는 것도 모두 잊는다고 했다. 나는 열기가 되뿜어져 나오는 목을 진정시키기 위해 샤실릭 꼬치에서 닭 가슴살 한 점을 빼 마요네즈에 찍어 입에 넣었다. 내가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미군이 철수하고 나서였다. 러시아 선원들이 골목을 차지하고 거리의 젊은 여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짐을 꾸려서 떠났다. 고작 러시아 선원의 비위나 맞추며 살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마담 장도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갔던 여자였다. 나는 미군 대신 러시아 선원을, 맥주 대신 보드카를, 영어 대신 러시아어를 몸에 익혔다. 이 거리에 나타샤와 구잘이 찾아들었다. 나타샤는 러시아에서 발레리나였고 구잘은 필리핀에서 가수였다고 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꿈을 찾아 이곳을 떠났고 또 누군가는 또 다른 꿈을 좇아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텍사스촌으로 되돌아 온 사람들은 좀체 이 거리를 다시 벗어나지 못했다. 마담 장이 러시아 민요 대신 빠른 행진곡으로 음악을 바꾸었다. 선원들이 경쾌한 해군의 노래에 맞춰 무릎과 팔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드카 병이 순식간에 비어 갔다. 시계는 벌써 열한 시를 넘겼다. 한국 선원이 나타샤의 뺨을 비비며 등줄기를 훑었다. 선원 하나가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순간 그녀가 마담 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담 장이 전화를 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아가씨가 클럽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는 여자였다. 계산을 마친 그들이 클럽 안을 빠져 나갔다. 손님은 이제 러시아 선원만 남았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밤이었다. 살집이 많은 러시아 선원 하나가 보드카를 마시며 계속 나를 주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선원은 보드카 병을 쥐고 일행을 벗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구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틀거리는 선원보다 구잘이 먼저 내 테이블 앞에 와 선다. 러시아 선원이 들으라는 듯 러시아말로 이번에도 손님을 채 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선원이 멈칫거리는 사이 구잘이 밖으로 나갔다. 선원이 내 앞에 앉는다. 그는 잔에 보드카를 따르며 자신의 고향 이야기로 말을 건넸다. 나는 그에게 이반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깨를 추켜올리며 자신이 이반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주색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며 슬쩍 어깨를 감싸 쥐었다. 해군의 노래가 끝나고 러시아 혁명가가 시작되었다. 구잘이 필리핀 친구와 함께 나타났다. 구잘의 친구가 러시아 선원의 팔을 꿰찼다. 멍청이! 저 언니 나이 많아, 주름 많아, 구잘이 선원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구잘의 말에 선원이 내 앞에 앉은 선원에게 손짓을 보냈다. 동료가 만류하는 손짓을 무시하듯 선원이 지갑을 꺼내 보드카와 샤실릭 값의 두 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지켜보고 있던 구잘이 거칠게 다가왔다. 언니 년 나빠! 그녀가 내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놀란 선원이 성급히 일어났다. 그리고 테이블의 돈을 챙겨 일행 쪽으로 가버렸다. 망할 년! 어린 년이! 마담 장이 구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언니 년, 나빠! 구잘이 악다구니 끝에 손을 풀었다. 그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샤실릭 꼬치가 꾸들꾸들 말라갔다. 러시아 혁명가가 끝나고 경쾌한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밤이었다. “이 짓도 이제 지긋지긋해, 러시아 년들을 한국 놈들에게 붙이고 필리핀 년들은 러시아 놈에게 붙이고, 이렇게 갈보 년들 불러대는 것도 신물이 난다구!” 그녀가 보드카를 마시며 넋두리를 해댔다. 쿨럭쿨럭, 천식 때문인지 잔기침이 뒤따랐다. “그래도 옛날에 이 바닥에서 명자, 하면 알아줬는데, 사내들을 홀리는 묘한 매력이 있었지, 그 시절에는 먹물 튄 년이 드문 때였으니…….” 그녀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흐릿한 불빛을 타고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거에 혹해서 사내놈들이 많이 찝쩍댔지…… 그때 한 놈 잡아 떠나지, 무슨 미련이 있다구…….” 그녀의 목소리는 무대 위에 홀로 앉은 재즈가수의 독백처럼 한없이 낮았다. “너나 나나, 진즉에 이 바닥을 떴어야 하는데……, 사나운 팔자는 이래도 저래도 막히니…….” 그녀는 마치 거울을 보듯 나를 보고 있었다. 손님은 더 이상 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코트를 걸쳤다. 카우치 백을 열어 계산을 마치고 조용히 로즈를 나왔다. 홍루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나는 홍루 앞에서 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기고 모자를 반듯하게 썼다. 보드카 때문인지 속에서 열이 올랐다. 어두운 계단을 지나 2층 현관문을 열었다. 녀석은 아직도 톱밥 속에 파묻혀 있다. 녀석에게 다가가 케이지 밑에 조심스럽게 손을 갖다 댔다. 따뜻했다. 월요일에 길을 떠나면 여행이 불행하게 된다고 했던 이반은 정작 월요일에 떠났다. 이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건 단순히 그가 월요일에 떠났기 때문이리라. 나는 욕실로 들어가 화장을 지우고 드레스를 벗었다. 거울에 깡마른 몸이 드러났다. 이반이 명자, 라고 이름을 부른 뒤 커다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그려 보이면 나는 러시아 회화 책을 뒤지듯 그가 허공에 그려낸 그림을 꼼꼼히 살폈다. 이반은 종종 그렇게 자신이 탈 배가 지나갈 곳을 손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이반의 손목에 새긴 푸른 돛이 허공에서 움직였다. 이반은 지금 어느 바다를 지나고 있을까, 나는 깡마른 몸에 샤워기의 물을 뿌렸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것은 녀석 때문이었다. 문득 녀석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반이 떠나고 녀석을 제대로 본 적도 없다. 나는 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나갔다. 케이지에서 멀찍이 떨어져 톱밥 위를 보았다.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반이 떠나고 녀석은 줄곧 톱밥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일까, 나는 케이지 안을 살폈다. 톱밥의 곡선이 흐트러짐 없이 처음 그대로였다. 나는 냉동실 문을 열고 이반이 사 놓은 먹이를 하나 꺼냈다. 먹이는 알루미늄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개수대에 따뜻한 물을 받아 포장된 먹이를 그대로 담갔다. 재스민 차를 우려내 창가로 간다. 눈이 흩날렸다. 홍루 지붕에는 엘피 가스통 4개와 물탱크,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작업복과 면장갑, 깨진 그릇이 나뒹굴었다. 그 낡은 지붕 아래 자장면과 짬뽕 옆으로 적힌, 익숙하나 한 번도 맛을 본 적 없는 횡서 끝자락의 낯선 메뉴를 떠올린다, 어쩌면 남자가 만들어 본 지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감조차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그 메뉴 밑으로 삐뚤삐뚤하게 적힌 러시아 음식들. 흑빵과 함께 홍루의 남자는 육개장과 비슷한 쌀단까나 빈대떡과 비슷한 블린 같은 러시아 음식도 만들었다. 종종 러시아 사람들이 중국 음식 중에 끼어 있는 러시아 음식을 주문하였다. 눈이 내려앉는 홍루 뒤꼍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가 등을 보이고 양파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내가 보는 것은 언제나 남자의 등이다. 남자는 마치 그림 속에 들어 있는 사람처럼 묵묵히 앉아 양파를 깠다. 넓은 고무 대야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물에 붇고 있는 양파 껍질을 벗겨 낸다. 인조털이 달린 두툼한 점퍼에 가려진 남자의 양 옆 어깨가 끊임없이 움직인다. 나는 껍질과 뒤섞인 혼탁한 물에 한 쪽 손을 깊숙이 집어넣고 남은 양파 알을 찾는 남자의 기울어진 어깨를 본다. 언뜻언뜻 삐져나오는 남자의 붉고 물에 불은 손. 남자는 허리를 펴고 위를 올려다보는 법이 좀체 없다. 남자의 등 뒤로 살금살금 나타샤가 다가간다. 그녀는 고양이처럼 허리를 익살스럽게 굽히고 남자의 등 뒤에 몰래 다가섰다. 나타샤가 두 손으로 남자의 눈을 가린다. 남자가 양파 껍질이 묻은 젖은 손을 차마 나타샤 손에 포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나타샤가 손을 풀었다. 나는 뒤돌아보고 멋쩍어하는 남자의 표정을 바라보며 식어가는 찻잔을 볼에 대고 눌렀다. 나타샤가 남자 앞에 턱을 괴고 앉는다. 분홍색 털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클럽에서와는 달리 앳돼 보였다. 남자가 양파 껍질을 벗기는 일을 멈추었다. 나타샤가 일어서더니 뒤꿈치를 모으고 양발을 벌려 발레의 폴리에 자세를 취한다. 두 팔을 뻗어 머리 위로 올리고 천천히 발 앞굽을 세워 잔걸음으로 뒤꼍을 옮겨 다녔다. 한눈에 봐도 그녀가 백조의 동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타샤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총총걸음으로 뒤꼍을 돌아 남자 앞에 섰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동그랗게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남자를 향해 웃고 있는 나타샤를 보며 식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개수대에 던져놓은 녀석의 먹이가 녹았다. 먹이를 건져서 접시에 담고 알루미늄 포장지를 벗겨냈다. 손가락 한 마디를 좀 넘긴 연한 핑크색 먹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나는 숨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쥐가 녀석의 먹이라니. 처음 기지촌에 왔을 때처럼, 처음 러시아 선원을 만났을 때처럼 무섭고 낯설었다.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집게로 새끼 쥐를 집어 올려 녀석에게로 갔다. 톱밥 위는 아직도 텅 비어 있었다. 케이지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고 먹이를 내려놓았다. 휘파람을 분다. 녀석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휘파람을 분다. 어릴 적 나는 늘 혼자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아무도 없는 집 마루에 앉아 허공을 향해 휘파람을 불어대곤 했다. 설령 어른들의 말처럼 뱀이 나온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휘파람을 불면 곁에 누가 있는 것처럼 무서움이 가셨다. 이반의 말대로 휘파람을 불어서 집이 비었는지 집이 비어서 휘파람을 불었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케이지에서 시선을 거두고 소파에 앉아 여행자를 위한 러시아 회화 책을 폈다. 90쪽 ‘거리’에서부터 120쪽 ‘모자 가게’까지는 이반이 떠나기 전 러시아어로 읽어주었다. 151쪽 기차여행 편을 한글로 따라 읽는다. ‘그제야 마구 쎄스츠 나 보예즈제?’ 어느 기차에 타야 합니까? 홍루 뒤꼍으로 함박눈이 쌓였다. 나는 눈을 밟으며 홍루로 갔다. 홍루에는 나타샤와 한국인 두 명만이 앉아 있었다. 주방 안으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종업원에게 이반이 즐겨 먹었던 쌀단까와 흑빵을 주문했다. 종업원 대신 나타샤가 내 쪽을 힐금거리며 주방 입구로 갔다. 그리고 주방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주문을 받아 전해준다. 나는 낮은 선반 위에 펼쳐진 러시아 회화 책을 잠시 쳐다보았다. 남자도 틈틈이 회화 책을 뒤지며 러시아 말을 익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폴리에 자세로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나타샤의 뒷모습이 왠지 서글퍼서 고개를 돌렸다. 쌀단까와 흑빵이 나왔다. 이반은 홍루의 쌀단까 맛이 고향의 맛과 같다고 했지만 홍루의 쌀단까 맛은 육개장과 별반 다름없는 맛이었다. 천천히 흑빵을 뜯어 입에 넣었다. 흑빵이 입안에서 거칠게 씹혔다. 나는 반쯤 뜯어 먹은 흑빵을 남기고 홍루를 나왔다. 케이지 안에 먹이가 그대로 있었다. 녀석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나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케이지의 뚜껑을 열고 먼지떨이를 거꾸로 찔러 넣어 천천히 톱밥을 휘저었다.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막대기로 커다랗게 원을 그은 뒤 안으로 조금씩 좁혀가며 톱밥을 감아 올렸다. 녀석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반이 곁에 있었다면 아마도 내가 휘파람을 불어 모든 게 텅 비어버린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녀석은 어디로 간 것일까. 눈이 녹고 있었다. 녀석이 사라진 지 일주일째, 부두에 배가 들어왔다. 텍사스 거리는 러시아 선원들과 보따리 상인들로 붐볐다. 나는 클럽 문을 열었다. 로즈도 러시아 선원들로 북적였다. 여전히 러시아 음악 백학이 흘러나왔고 조명은 더 흐려 있었다. 나는 이반을 만났던, 거울이 걸린 자리에 앉았다.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리고 카우치 백에서 담배를 꺼냈다. 언니 머? 구잘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는 보드카와 샤실릭을 주문했다. 마담 장이 새로운 선원들을 앞에 두고 예전 텍사스 거리에 몰려들었던 미군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선원들이 이야기를 채근하듯 마담 장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 시절 마담 장의 사랑을 구하려는 한 미국 병사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백만 송이 장미를 사다가 거리에 뿌렸노라고 말하자 선원들이 속았다는 듯 몸을 털며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러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백만 송이 장미에 얽힌, 가난한 화가의 슬픈 사랑이야기란 것을 이내 알아챈 모양이었다. 마담 장은 배가 들어올 때마다 선원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곤 했다. 선원들은 이국의 낯선 이야기에 자신들 나라의 이야기가 섞여 든 것을 알아채자 긴장이 풀렸는지 보드카를 연거푸 마셨다. 마담 장이 의자를 돌려 몸을 반쯤 틀고 있는 러시아 선원들을 달래듯 두 손을 들어 허공을 다독였다. 선원들이 다시 마담 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타샤는 한국인 선원들 사이에 섞여 있었고 이미 취해 보였다. 한국인 선원이 길고 곧은 나타샤의 등줄기를 더듬어 내려가다 허리를 감싸 안고 일어섰다. 마담 장이 재빠르게 나타샤와 눈길을 주고받았다. 나타샤와 한국인 선원이 계산을 마치고 클럽 밖으로 나갔다. 홍루의 남자가 클럽에 들어선 것은 내가 두 번째 담배에 막 불을 붙일 때였다. 남자는 이곳이 처음인 듯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소 들뜬 표정으로 구잘에게 주문을 했다. 그의 테이블에 맥주와 마른안주가 올려졌다. 나는 보드카를 한 모금 마셨다. 마담 장이 음악을 바꿨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었다. 러시아 선원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러시아인들의 춤은 마치 목각 인형이 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것처럼 무릎과 팔이 절도 있게 꺾어졌다. 격렬하면서도 율동 사이사이에 강한 매듭이 있는 러시아 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정신이 맑아졌다. 춤이 격렬하면 할수록 더 그랬다. 나는 선원들이 원무를 이뤄 추는 가팍을 보며 이반을 떠올렸다. 이반도 어디선가 함성을 지르며 저들처럼 가팍을 추고 있을까, 나는 보드카를 마시고 샤실릭을 한입 베어 물었다. 바에 앉아서 계속 몸을 흔들고 있던 마담 장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육중한 그녀의 몸이 빠른 리듬에 맞춰 민첩하게 움직였다. 선원들의 함성이 추임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음악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들의 춤은 자정까지 계속될 것이다. 구잘이 나타샤가 없는 빈자리를 대신하여 분주히 움직였다. 마담 장은 점점 술에 취하고 흥에 취해갔다. 가끔 이렇게 마담 장이 흥에 취해 선원들과 춤을 추면 그녀가 어김없이 해 오던 일, 러시아 아가씨를 한국 선원에게 붙이고 필리핀 아가씨를 러시아 선원에게 붙이는 일을 잊었다. 더불어 나의 존재도 잊었다. 그녀가 잊는 것은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천식처럼 오래된 이 거리의 모든 것들, 그녀를 되돌아오게 만들었던 익숙한 모든 것들, 그녀의 생 모두를 잊을 것이었다. 이반의 말대로 휘파람을 불면 무언가 텅 비게 되는 것처럼 그녀도 텅 비어가는 것이리라. 원무에 끼어 점점 격렬하게 몸을 흔들 때마다 그녀가 한줌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기라도 할 듯 깡마른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홍루의 남자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남자는 무릎 사이에 손을 찔러 넣고 눈은 줄곧 나타샤를 찾았다. 나는 마지막 보드카를 입에 털어 넣었다. 남자가 취했는지 점점 고개를 떨궜다. 녀석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문득 잊고 있던 녀석을 떠올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남자가 고개를 든다. 거짓말처럼 녀석을 찾은 것은 소파 밑에서였다. 환전소에 가기 위해 러시아 동전을 지갑에 넣는 중이었다. 소파 밑으로 굴러들어간 동전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누렇게 바랜 벽지에 노랑 빨강 검정 색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소파 안쪽 벽 틈에 일자로 붙어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가만히 녀석을 지켜보았다. 녀석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먹이를 꺼내 따뜻한 물에 담근 다음 물기를 닦아 소파 입구에 놓았다. 집게를 들고 소파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녀석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숨을 삼켰다. 먹이 앞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간 녀석이 고개를 들며 혀를 날름거렸다. 녀석의 여린 혀가 재빠르게 입속을 반복해서 드나들었다. 녀석이 먹이 앞으로 다가가 먹이를 덥석 무는 순간 집게로 녀석을 집어 케이지에 넣었다. 녀석의 입에는 삼키다 만 새끼 쥐의 여린 몸이 반쯤 물려 있었다. 로즈 앞에는 며칠째 클로즈라는 안내판만 달려 있었다. 겨울이면 도지는 마담 장의 천식 때문에 잠시 문을 닫았다고 했다. 나타샤도 가끔씩 목욕탕이나 환전소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한국 선원을 따라 이곳을 떠났다는 말도 있었고 임신을 해서 로즈에서 쫓겨났다는 소문도 있었다. 텍사스 거리는 다 해진 만국기를 걷어내는 상인들로 분주했다. 나는 만국기가 끝나는 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이반을 처음 만났던 날, 이반의 달콤한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던 순간, 나는 내 여행이 이대로 끝이 나길 간절히 바랐었다. 이반은 지금 어느 바다를 지나고 있을까? 나는 만국기가 걷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블라디보스토크 행 비행기표 판매소를 지나 환전소로 갔다. 마지막 남은 먹이를 녀석에게 넣어주었다. 녀석이 조심스럽게 먹이에 다가간다. 잠시 목을 추켜세우더니 슬그머니 방향을 틀었다. 또 먹이를 먹지 않을 모양이었다. 온수에 목욕을 시키면 좀 도움이 될 겁니다. 수의사는 전화로 간단하게 처방을 내렸다. 소화불량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정상적으로 탈피를 하기 힘들어진다고도 했다. 대야에 온수를 받아 케이지 옆에 놓았다. 케이지 뚜껑을 열고 널브러지듯 몸을 길게 풀고 있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집게를 들다가 내려놓았다. 녀석의 외피에 손을 조심스럽게 갖다 댔다. 녀석의 차가운 체온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천천히 선을 그으며 머리 쪽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녀석의 입을 지나 턱쯤에 손가락이 닿았을 때 녀석이 감미로운 몸동작으로 손에 감겨든다. 소름인지 전율인지 무언가 몸속으로 울려들었다. 나는 녀석을 안듯 들어올려 온수에 담갔다. 녀석이 천천히 물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물끄러미 녀석을 보다가 물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미끄러지듯 내 손을 비켜나가는 녀석의 꽁무니를 따라가며 손을 저어 작은 물보라를 일으켰다. 녀석이 점점 생기를 찾은 듯 작은 원을 그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뒤 작은 수건으로 민첩하게 손아귀를 벗어나는 녀석을 떠내 마른 수건을 깔아놓은 그릇에 옮겨 담았다. 녀석을 재빨리 수건 위에 굴린 뒤 케이지 안으로 털어 넣었다. 명자, 아주 잘했어, 이반이 보았더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홍루를 지나고 로즈를 지나 도로 건너편에 있는 수족관으로 갔다. 파충류 먹이 있음. 간판 옆에 적힌 글씨를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점원이 햄스터 케이지를 열다가 내 쪽을 본다. “뭘 드릴까요? 손님.” 점원이 케이지 안에서 햄스터를 꺼내며 물었다. “밀크스네이크 종인데……먹이 좀 사려고요.” 나는 나무토막을 기어오르는 비단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뱀을 키운 지 오래되셨나 봐요. 처음 키우는 사람은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거든요.” 점원이 손에 쥔 햄스터를 비단뱀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이렇게 한창 클 때는 녀석도 산 먹이를 찾아요, 그래야 탈피를 제대로 할 수 있거든요.” 나무막대를 기어오르던 녀석이 슬그머니 방향을 틀며 혀를 날름거렸다. 케이지에 던져진 햄스터가 꾸물꾸물했다. 움직임을 감지한 녀석도 먹이를 견준 채 꼼짝 하지 않다가 입을 벌리고 먹이를 물어 삼켰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점원에게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는 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 속담이 있었나요?” 점원은 손에 묻은 햄스터 털을 털어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 냉동 쥐로 드릴까요?” 점원이 물었다. 나는 햄스터의 하얀 몸이 비단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점원은 케이지에서 꿈틀거리는 분홍색 새끼 햄스터 한 마리를 꺼냈다. “녀석들이 종종 냉동 먹이를 먹지 않는데…… 그건 아마도 탈피를 하려고 그럴 겁니다. 제대로 크고 있다는 증거죠.” 나는 점원에게서 새끼 햄스터를 받아 골목으로 돌아왔다. 날이 풀리고 있었다. 곧 부두에 배가 들어온다고 했다. 나는 문이 닫힌 로즈를 지나 홍루에 들러 쌀단까와 흑빵을 시켰다. 남자는 여전히 등을 보이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탁자 위에는 너덜너덜해진 러시아 회화 책과 비닐도 뜯지 않은 발레 슈즈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흑빵을 뜯어 쌀단까에 적셔 먹었다. 맞은편 거울에 흑빵을 씹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밥을 먹을 때 거울을 보면 안돼요, 아름다움까지 먹어버리거든요, 이반이 내 귓불 뒤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속삭일 것 같았다. 홍루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 美 오늘 이라크전 종료 선언

    美 오늘 이라크전 종료 선언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31일(현지시간) 7년 5개월간 끌어온 이라크 전쟁에 마침내 역사적인 종지부를 찍는다. 미국이 스스로 ‘승리’의 이름표를 붙인 채 마침표를 찍는 이라크전은 그러나 ‘미완의 전쟁’으로 남았다. 전쟁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대량살상무기는 흔적조차 찾지 못했고, 이라크 전역에서는 여전히 폭탄테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후세인 정권을 축출했을 뿐 종파간 분쟁도 끊이지 않아 이라크 사회에 민주주의가 정착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한때 최대 17만명에 이르렀던 이라크 주둔 미군이 비전투병력 5만명만 남긴 채 지난 수개월에 걸쳐 철군하면서 이라크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라크인들의 불안감은 종파 분쟁과 저항세력의 테러 공격 등으로 전쟁이 계속될 것이라는 비관에서 비롯된다고 지난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특집기사를 통해 보도했다. “미국이 후세인 정권을 어설프게 해체시킨 탓에 종파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어 이라크인들은 철수 결정에 걱정이 태산”이라고 WSJ는 전했다. 실제로 후세인 정권 이후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으로 나뉜 이라크 사회는 종파 간 유혈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쟁의 명분이나 사회적 균열을 따지는 것은 일반시민들에게는 사치다. 미군의 완전철수로 당장 생계에 구멍이 나 버린 주민들도 속출하고 있어 사회문제로 대두될 전망이다. AFP통신은 “미군 기지 세탁소 등 미군 주변에서 일자리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온 기지촌 주민들 문제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미군 통계에 따르면 현재 미군에 고용된 이라크인은 1만 3000여명. 현지언론들은 이들의 상당수가 생계를 위해 미국 망명을 택할 것으로 예상했다. 7년여를 끌어온 전쟁 와중에 거처없이 전전하는 난민만 해도 인구 2800여만명 가운데 200만명에 이른다. 철군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대외적으로 “65만명의 이라크 정규군이 방어와 치안유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라크의 미래를 낙관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딴판이다. 미군 철수가 점진적으로 추진돼 온 동안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는 이라크에서의 활동재개를 목표로 치밀하게 움직였다. 지난 25일 수도 바그다드 등 전국 20여곳에서 동시폭탄 테러를 자행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즉각 이라크 군경은 경계태세에 돌입했고, 미군의 완전철수가 선언되는 31일부터는 대 테러 경계태세를 최고단계로 격상시켰다. 이라크 정부는 이달 말까지 바그다드 내 불특정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해 알카에다와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친위조직인 바트당 세력이 잇따라 각종 테러를 감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알카에다 연계조직인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는 최근 일주일 새 56명을 숨지게 한 동시다발 공격을 자신들이 주도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라크에서의 세력회복을 발판으로 향후 알카에다는 서남아시아, 아프리카로 세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선공약대로 이라크전에서의 완전철수를 추진하지만, 막대한 혈세를 낭비하고도 ‘이라크 재건’이라는 전쟁명분을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29일 미국 시민단체 등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이라크 침공 이후 재건비용 명목으로 쏟아부은 500억달러 가운데 10%인 50억달러(약 6조원) 이상을 낭비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건립한 교도소, 병원, 학교 등 공공시설이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고 미군 철수로 갑자기 중단된 대형 건설 프로젝트들이 속출하고 있다. CBS방송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임무 수행 종료를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59%는 “애초부터 전쟁을 일으킨 것은 미국의 실수”라고 답변했다. 황수정·박성국기자 sjh@seoul.co.kr
  • 이태원 지명 유래 說·說·說

    이태원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효종(1619~1659)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효종 때 배밭이 많은 동네라는 까닭으로 배나무 이(梨)가 붙은 이태원(梨泰院)으로 불렸다고 전해 내려온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이곳에 귀화해 살았다는 뜻으로 ‘이타인(異他人)’이 어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 왜란 중 성폭행을 당한 여성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모여 살던 동네여서 다를 이(異), 태반 태(胎)자를 써서 이태원(異胎圓)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이태원은 이방인 공동체 성격이 강한 곳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조선 때부터 군사 관련 시설이 많았다. 일제 강점기 들어 군용지로 이용되면서 일본군 사령부가 머문 뒤 군사지역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냈다.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조선에 온 청나라 군대가 1882∼1984년 주둔했고, 1910∼1945년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광복 이후엔 미군이 이곳을 차지했다. 한국전쟁 뒤 미군이 이태원 상권을 주도했다. 1970년대 미군기지에서 나온 물품들로 상권이 형성된 이태원은 미군 유흥가로 거듭나 클럽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1957년 미군의 외박·외출이 허용되면서 기지촌까지 생겼다. 1960년대 말까지 미군 대상 매춘업소가 남산3호 터널 입구부터 이태원 입구까지 해방촌과 삼각지 파출소 뒷골목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정부는 이태원 미군기지 중심으로 서빙고동, 한남동, 동부 이촌동 일대에 외국인 전용주택과 아파트는 물론 고급 외국인 주택단지까지 건설했다. 그러자 1960년대 이후 한국에 들어온 각국의 대사관이 대거 입주했고, 그 영향으로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고급주택단지가 조성됐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쇼핑지구가 형성돼 88올림픽 당시 이태원 상가 점포는 1800개에 이를 정도로 쇼핑의 중심지로 주목받았다. 올림픽 때 하루 평균 6000명의 외국인이 약 3억달러를 썼다는 연구 논문도 있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미니홈피 열전] 탤런트: 열심히 아니면 폐쇄하거나

    [★미니홈피 열전] 탤런트: 열심히 아니면 폐쇄하거나

    우리나라 국민들의 ‘중도’ 성향이 점차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에 따르면 20대는 40.1%, 30대 35.1%, 40대는 33.7%가 자신은 ‘중도’ 라고 밝혔다. 이는 2008년에 비해 20대와 40대에서 각각 0.2%, 30대에서 6.2%가 소폭 증가한 수치로 하락세를 보인 진보와 보수와 달리 소폭 증가세를 보였다. 그런데 ‘중도’ 성향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있다. 조회수 상위에 랭크된 탤런트 부문 연예인들의 미니홈피를 살펴본 결과 남녀 탤런트 미니홈피는 “하면 하고, 말면 만다” 식으로 즉 흑, 백이 분명히 갈렸다. 김혜수, 박한별 ‘골라보는 재미’ 우선 자신의 생활을 미니홈피에 세세히 기록하고 새기는 ‘세심형’에 속하는 탤런트는 김혜수, 박한별이 대표적이다. 그 대표주자가 김혜수. 김혜수는 사진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을, 글을 통해 함께 하는 삶을 말한다. 그는 사진 아래에 “사람이 그냥 다 꽃인 것 같다.” “늙어가는 게 슬픈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은 젊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서글픈 순간이 모두에게 온다.” 는 등의 글귀를 남겼고 팬들은 이에 공감하고 있다. 또 세계 최빈국 아이들의 기아실상, 아동학대, 기지촌 여성 문제 등과 관련된 내용이 가득하다. 인터넷 주소와 후원방법을 적어놓는 세심함도 보인다. 올 초 첫 번째 열애설의 주인공이기도 한 김혜수는 유해진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메신저’로서 미니홈피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미 알려진 대로 김혜수의 미니홈피 제목은 ‘one love’ 이며 홈피대문에는 ‘I love you’ 라는 글귀가 써 있다. 투박하고 소탈한 외모와 달리, 미술 음악 책 등 문화,예술 분야에 조예가 깊다고 알려진 유해진과 같이 시와 공연, 작가,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도 함께 드러낸다. KBS 일일극 ‘차차차’ 에 출연중인 박한별도 세심한 관리형 연예인에 속한다. ‘얼짱’ 스타로 연예계에 입문한 그는 영화와 드라마를 찍는 일터와 일상 생활 속 셀카 등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이 때문에 화려하면서도 소소한 맛이 있다. 박한별은 지난 해 11월 온라인 캐주얼 여성브랜드 ‘starly’ 를 론칭, 의류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미니홈피에 자신이 직접 모델이 돼 찍은 다양한 사진을 올림으로써 팬들에게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알리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스타지만 미니홈피 관리에 관심을 두기 보단 연기나 학업에 매진하는 여자 연예인들도 있다. MBC ‘파스타’ 에서 초보 요리사로 연기호평을 받고 있는 공효진이 그렇다. 공효진의 홈피는 일반팬들은 일촌평과 프로필만을 볼 수 있다. 일촌평을 통해 파스타에서의 열연과 관련해 주변 지인들의 격려와 칭찬을 살펴볼 수 있으며 프로필은 사랑에 관한 시로 연인 류승범에 대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사진은 다수 있지만 카테고리를 분류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비공개 상태다. 공효진은 프로필에 “영원히 사랑이란 단어가 나와 그대 사이에만 존재해주길 기도한다.” 는 내용의 시를 통해 이별했다 다시 만난 연인 류승범에 대한 사랑도 넌지시 고백했다. 지난 2006년에는 홈피 대문에 ‘스크린 쿼터’ 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게재하기도 했던 그다. 공효진은 “스크린 쿼터 축소는 소중한 한국영화를 축소시키는 일” 이라며 “대만, 멕시코 등은 스크린 쿼터 축소의 축소를 거듭한 끝에 현재 자국영화가 1년에 10편도 되지 않는다.” 고 꼬집어 비판했었다. 이밖에 학구파로 잘 알려진 문근영은 분위기 전환 제발이라는 홈피대문 문구를 통해 최근의 심경만 추측할 수 있을 정도이고 ’아이리스’로 연기력 논란을 불식시킨 김태희는 아예 미니홈피 회원을 탈퇴했다. ‘꽃남’ 이민호·김범 댓글 폭발적 남자 탤런트의 경우, 이민호와 김범을 세심형 연예인으로 손꼽을 수 있다. 이들 홈피의 가장 큰 특징은 방문객들의 댓글이 가히 폭발적이라는 것. MBC ‘꽃남’ 의 주인공 이민호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저마다 사진들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뜨겁다. 꽃남 촬영 후 이민호가 게시판을 통해 “팬들이 너무나 많은 선물을 보내 스킨이나 글씨체를 저장할 곳이 없다.” 며 “거절해야만 할 것 같으니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 며 양해를 구할 정도다. 그가 올린 영화 포스터 사진 아래에는 팬들간에 영화비평이 이뤄지기도. 같은 드라마 ‘꽃남’ 으로 인기덤에 오른 김범 역시 댓글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다만, 일상생활속의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교감하는 이민호와 달리 글로 교감한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 그의 화보사진,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 아래에는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또 최근 MBC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에서 박진희의 띠동갑 연하남으로 분한 그는 홈피 메인화면에 “실패는 바로 포기하는 순간” 이라며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SBS ‘미남이시네요’ 로 많은 인기를 얻은 장근석과 가요계에 이어 예능도 접수한 이승기의 미니홈피는 다소 썰렁하다. 하지만 팬들이 만든 이들 홈피는 방명록을 통해 근황이나 격려 메시지를 전하는 등 팬들 상호간의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 소지섭은 김태희와 마찬가지로 미니홈피를 아예 폐쇄해 버렸다. 사진 = 김혜수, 박한별 미니홈피/이민호, 김범, 장근석 미니홈피 서울신문NTN 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모녀가 흘린 땀과 눈물의 10년 세월 오롯이

    모녀가 흘린 땀과 눈물의 10년 세월 오롯이

    가끔 청소년 문학작품을 읽다가 문득 드는 어리석은 의문점 하나. 청소년 소설들은 보통 200자 원고지 400~500매 남짓이다. 또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쉬운 구어체로 쓰여지곤 한다. 독자로서는 두어 시간 집중하면 훌쩍 읽어내는데, 실제로 작가들도 그만큼 쉽게 쓸까, 하는 것이다. ●연애·이혼 등 구체적 생활상 투영 소설가 김연의 첫 청소년 소설 ‘나의 얼토당토않은 엄마’(실천문학사 펴냄)는 딸과 함께 살았던 10년의 세월을 정리하고 있다. 10년 동안 두 모녀가 쏟아놓은 땀과 눈물, 고함과 다툼, 깔깔거림과 토라짐이 오롯이 담겼음은 물론이다. 길게 잡아 한나절에 휙 읽어버린 이 작품이 쓰여지기까지 10년이 걸린 셈이다. 김연의 등단 작품은 장편소설 ‘함께 가자 우리’다. ‘차주옥’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제목만 들어도 내용이 얼추 짐작되듯 김연이 대학(연세대 영문과)에 다니던 중 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운동을 하며 쓴 작품으로서 당시 노동문학의 대표적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1997년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로 제2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이름을 정식으로 문단에 알린다. 그렇지만 창작은 뜸했다. 김연은 2006년 장편소설(‘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을 낸 뒤 또다시 3년이 흘러서야 이 작품을 탈고했고, 지난 8월 딸과 함께 훌쩍 미국 아이오와시티로 떠났다. 맞다. 그는 또한 ‘63년생 작가 그룹’의 하나다. 공지영, 김인숙, 한창훈, 고 김소진, 유하 등 쟁쟁한 틈바구니 안에 있다. 워낙 과작(寡作)인지라 사람들이 가끔 김연을 까먹곤하지만 말이다. ‘나의…엄마’에서는 김연의 모든 것이 거의 날것에 가깝게 투영된다. 성생활을 포함한 엄마의 연애, 이혼 후 친부와 관계 등이 ‘자장면도 배달 안 되는 첩첩산중’ 경기도 가평에서 쑥쑥 자라는 중학생 딸과 단 둘이 살아가는 그의 구체적인 생활상과 함께 드러난다. 또한 불안감, 두려움, 희망, 기대감, 자존심 등 복잡하게 얽힌 작가의 심리 상태까지 모두 집어넣었다. ●“치열하게 지켜온 딸에게 자긍심을” 그러다보니 때로는 낄낄대며 책장 넘기는 청소년 성장소설의 성격이다가도 때로는 설익은 밥을 크게 한술 떠넣은 듯 불편한 느낌을 주는 자전 소설의 성격까지 지니고 있다. 역시 쉽게 읽힌다고 해서 쉽게 썼을리는 없다. 딸의 눈높이에서 보자면 딸에게 인정받고 싶은 ‘철없는 엄마’의 분투기가 될 것이다. 또 김연의 입장에서 보자면 힘들었지만 잘 이겨온 자신의 삶을 짐짓 객관화하여 평가받고픈 욕구의 반영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더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훌훌 털어버리고자 하는 해원(解寃)의 한바탕 푸닥거리의 성격도 담고 있다. 김연은 “엄마는 모든 것을 걸고 딸을 지금까지 지켜왔으므로 너도 앞으로 그 자긍심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오와와는 2년 전 한국번역원의 후원으로 잠시 머물렀던 인연이 있다. 앞으로 2년 동안 더 머물면서 미군과 결혼한 뒤 미국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기지촌여성’을 취재해 소설을 쓸 생각이다.”고 밝혔다. 실천문학사 측에서는 책 띠지에 ‘반드시 13세 이상 소녀와 딸이 있는 엄마만 보시오.’라는 경고 문구를 남겼다. 실제로 남성 독자의 경우라면, 엄마와 딸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 라인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약간 걸릴 수 있다. 감안해서 읽으시라.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앰네스티 “이직횟수 제한 폐지해야”

    앰네스티 “이직횟수 제한 폐지해야”

    #1. 스리랑카 국적의 이주노동자 K(34)씨는 올봄 경남 진해의 선박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중 150㎏짜리 철제 파이프가 떨어지는 바람에 발가락과 손가락에 골절상을 입었다. 두 달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지만 고용주는 열흘 뒤 찾아와 “사업장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협박했다. K씨는 “다리가 아파 서 있지도 못할 정도였지만 담당자는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끌고가 노동 비자를 취소시켰다.”고 말했다. #2. 필리핀 여성 F(37)씨는 가수로 계약한 뒤 E6(예술흥행)비자로 입국했다. 그러나 고용주는 입국 첫주 그녀를 인신매매단에 팔아넘겼다. 동두천의 한 나이트클럽으로 넘겨진 F씨는 방에 갇혀 성접대를 강요당했다. 그녀의 항의에 사장은 “필리핀으로 보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일하다 손발절단땐 비자 취소 고용허가제 5년째를 맞고 있지만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로부터 구타에 시달리고 인신매매 뒤 성적착취를 당하는 등 부당한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1일 ‘한국의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보고서를 통해 이직이 어렵고 사용자가 체류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현 고용허가제로 인해 인권침해가 되풀이되고 있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브로커 비용 부담과 안전을 외면한 근로감독, 엄격한 사업장 이동 및 무차별 단속 등도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지적됐다. 앰네스티는 11개 도시와 60여명의 이주노동자를 면담한 뒤 이같은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사업장 변경 최대 3회까지 가능 이주노동자들이 3년 이상의 체류를 금지하고 있는 현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은 최대 3회까지 가능하다. 3년 이상 근로시 사업주가 재고용 의사를 밝혀야 한다. 특히 E6비자로 입국한 여성 노동자의 경우 이중 착취에 시달려도 국내법상 구제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앰네스티측은 “인신매매라는 1차 착취에 이어 기지촌 고용주가 성매매를 강요하는 2차 피해의 굴레를 쓰게 돼도 업체를 탈출하면 미등록 신세로 전락한다.”면서 “현행법상 성행위 이전에 도망치면 인신매매로 간주되지 않아 경찰도 조사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불법체류자 8만명 넘어 앰네스티는 “이직 횟수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직장을 이탈해 미등록이 된 이주노동자들이 인권침해 보상을 받고 사법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10월 현재 등록된 외국인은 85만여명, 불법체류 외국인은 8만여명이다. 한편 해외의 경우 미등록 이주 노동자 정책은 단속보다 체류 허용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대책협의회 이영 사무처장은 “영국은 14년 이상 체류시 영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하고 스페인, 브라질, 멕시코 등은 5~10년마다 사면 형식으로 체류를 합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벌금을 물린 뒤 체류를 합법화하는 방안을 행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이다. 정정훈 변호사는 “이주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다문화 사회의 순기능을 강화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연 박성국기자 oscal@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역사스페셜(KBS1 오후 8시) 삼국유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 처용(處容) 설화. 역신에게 아내를 빼앗긴 처용이 춤과 노래로 역신을 감복시켜 물리친다는 극적인 내용은 우리 문화 속에 처용무(處容舞)를 비롯해 부적, 민속의식 등 여전히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처용이 굴복시킨 ‘역신(疫神)’이 무엇인지를 추적해 보고, 처용의 정체를 밝힌다. ●다큐멘터리 3일(KBS1 오후 9시40분) 미군, 이주노동자, 가짜 명품, 트랜스젠더. 우리가 이태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태원은 60년대 기지촌의 아픔, 소위 ‘짝퉁’ 천국이라는 과거의 그림자를 넘어 2009년 현재 열린 공간으로 변신 중이다. 한국에선 볼 수 없지만 이태원엔 모두 있는 특별한 것을 찾아 새로운 이태원으로 가보자. ●솔약국집 아들들(KBS2 오후 7시55분) 대풍은 복실의 원룸을 두들겨 보지만 이미 그녀는 떠나고 없다. 한편 뒤 늦게 이 사실을 안 선풍이 대풍이에게 달려가 흥분하는 모습을 본 은지는 선풍을 이상하게 여긴다. 선풍은 얼떨결에 복실이를 좋아했었다고 고백해 버린다. 이 일로 두 사람은 첫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 ●천추태후(KBS2 오후 10시25분) 전쟁이 발발하였다는 척후가 도착하고, 천추태후의 명을 받은 강감찬과 강조는 대륙으로의 출병을 서두른다. 그러나 출병의 전초기지인 호경에 지진이 발생하여 대륙의 땅을 되찾으려는 천추태후의 꿈은 좌절되고 만다. 3년 후 목종의 치세가 안정되어 가고 천추태후는 목종에게 왕권을 넘기려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 오후 11시20분) 얼마 전, 옷 속을 뚫어 볼 수 있다는 일명 ‘알몸 투시안경’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화젯거리가 되었다. ‘투시’를 둘러싼 각종 논란을 통해 과학적으로, 그리고 인간의 능력으로 어디까지 투시가 가능한지 실험을 통해 검증해 보고, 인간의 ‘투시’에 대한 끝없는 열망의 원인을 분석해 본다. ●효도우미 0700(EBS 오후 5시10분) 시각장애 1급인 고의웅 할아버지는 선천적인 시각장애로 평생 앞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이웃의 일을 도우며 살림을 꾸려나가는 할머니는 언제나 할아버지의 눈과 손이 되어 준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며 살아가는 할아버지 부부를 만나본다. ●토마토(YTN 오전 8시25분) 40대 이후 중년 남성의 절반 이상이 전립선 질환을 앓고 있으며 최근 전립선질환 발병률이 급증하고 있다. 평소 소변을 자주 보거나 소변을 볼 때 통증이 느껴지고 시원하지 않다면 전립선에 이상은 없는지 의심해 봐야 한다. 중년남성을 위협하는 전립선질환의 치료와 예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 주민번호 뒷자리 2xxxxxx→1xxxxxx 로 가는 여정, 그 일상

    주민번호 뒷자리 2xxxxxx→1xxxxxx 로 가는 여정, 그 일상

    “난 남자야, 그냥 다른 남자.” 다큐멘터리 영화 ‘3xFTM(쓰리 에프티엠)’이 새달 4일 개봉한다. 포스터의 글귀대로 영화는 ‘다른 남자’ 3명의 일상을 기록한 작품이다. 다른 남자? 그러니까, 이들은 통상적인 ‘남·여’의 이분법적 인식에서 살짝 비껴서 있다. 모두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으로 살기를 원한다. 눈치챘겠지만 FTM은 ‘여자에서 남자로(female to male)’의 영어 약자이다. 법적 성별을 남성으로 바꾸고 싶어하지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2’에서 ‘1’로 바꾸기까지 그리고 바꾼 뒤에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영화는 이들의 성전환 배경과 과정,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상처와 극복 여정을 속깊은 친구와의 대화처럼 조근조근 들려준다. ●“누군가 한사람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성전환남성(FTM)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자체가 아예 없잖아요? 그건 존재 자체를 모르는 거고, 그만큼 FTM에 대한 한국사회의 차별과 억압이 심하다는 것을 말해주죠. 이 다큐는 FTM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한 일종의 시작점 같은 영화예요.” 개봉을 앞두고 얼마 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일란 감독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두 주인공 김명진, 한무지(이상 가명)씨도 함께 한 자리였다. 감독의 말처럼 ‘3xFTM’은 FTM에 관한 국내 첫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그동안 성전환여성(MTF·male to female)에 관해서는 연예인 하리수,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와 ‘언/고잉 홈’ 등을 통해 어느 정도 대중적으로 알려졌지만, FTM은 예술 영역에서도 거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던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 한 사람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성전환남성도 똑같은 사람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김명진) 영화는 이들이 겪는 열악한 삶의 조건을 잘 드러낸다. 김씨는 2006년 호적상 성별을 바꾸었다. 호르몬 치료만 한 상태였지만, 건강이 안 좋아 수술 받기 힘든 몸이란 병원 진단서를 일일이 제출해내서 이뤄낸 일이었다. 이후 징병검사를 받아야 했던 그는 성별변경 관련 증거서류에도 불구하고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요구에 신체검사에서 바지를 내려야 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한 결과 성전환자에 대한 징병신체검사 개정을 이끌어냈지만, 손해배상소송은 1심에서 패소해 현재 항소 중이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입사를 위해 ‘여자중학교’, ‘여자고등학교’에서 ‘여자’자만 지워 이력서를 써낸 그는 얼마 뒤 회사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다행히 무혐의 판정으로 끝났지만, 이미 잘린 뒤였다. 다시 들어갔던 대기업에서도 6개월만에 같은 이유로 명예퇴직을 당했다. 요즘 싸우고 있는 대상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다. “남자로서 가슴, 자궁을 지닌 것은 장애와 같다.”며 성전환수술에 대한 보험 적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전환수술 보험 안 되고 부작용 위험 커 한씨는 가슴 절제수술에 이어 최근 자궁 적출수술을 했다. 하지만 성별변경까지는 아직 요원하다. 성별변경을 위해서는 대법원 예규에 따라 성기수술도 해야하지만, 비용이 엄청난데다 부작용의 위험성마저 크다. 영화 속에서 “여성이라 말하고 합격했다. 연봉 2800만원에 내 영혼을 팔았다.”며 절규했던 회사에는 끝내 입사하지 않았다. ‘3xFTM’은 성적소수문화 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가 기획한 커밍아웃 3부작 중 하나다. 이후로 정치인 최현숙씨의 이야기를 담은 ‘레즈비언 정치도전기(홍지유·한영희 감독)’, 4명의 남성 동성애자들을 다룬 ‘종로의 기적(이혁상 감독)’이 계속될 예정. ‘3xFTM’은 김 감독에겐 기지촌 다큐멘터리 ‘마마상’(2005년)을 잇는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2006년 ‘성전환자 성별 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에 참여하면서 주인공들을 만났고, 그해 가을쯤 활동 성과를 정리하기 위한 차원으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면서 이들에게 출연을 제의하게 됐다. ‘3xFTM’을 찍는 과정은 녹록지는 않았다. 주인공들은 심적 부담감 때문에 촬영 도중 한번씩 다 ‘잠수’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몇 개월 안 가 스스로 돌아왔다. 김명진씨는 “감독님이 그러더라고요. ‘네가 이 다큐의 끝에서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좋겠는데, 잃는 것만 있으면 지금 와서 그만둬도 너를 잡지 않겠다.’고요.”라고 회상했다. 조바심 낼 법도 했지만, 감독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단다. “이 다큐에 응할 정도의 사람이면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거라고 봤어요. 제가 끌어들인 것도 있지만,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참여한 거라고 봤죠. 그들의 ‘자기 동기’를 믿고 기다렸어요.” 지난해 4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영화는 이후 다수의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을 받는 것은 물론 2008년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 여성영화인모임 다큐·단편 부분 여성영화인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소규모 상영을 예상하고 만들었던 영화가 일반 극장에까지 걸리게 된 건 관객의 힘이 컸다. 한무지씨는 “FTM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라고 고마워했다. ●“관객에 대한 믿음으로 개봉 용기내” 영화에서 “난 엄마 뱃속에서부터 남자”라고 했던 또 한명의 주인공 고종우(가명) 씨는 이날 아쉽게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매체 인터뷰에 대한 부담감과 아웃팅(타인에 의해 성적소수자들의 정체성이 알려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듯했다. 김씨와 한씨도 마찬가지 심정이지만, 관객을 믿는다고 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함부로 아웃팅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다만, 우리 모습이 또다른 선입견을 심어주지 않을까 걱정되긴 해요. 우리 외에도 정말 많은 FTM들이 있으니까요. 이 다큐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FTM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한무지) “영화 카피처럼 우린 그냥 ‘다른 남자’일 뿐이에요. 예전에 여자였기 때문에 조금 더 여자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남자일 뿐, 전염병을 가진 사람도 특이한 사람도 아니거든요. 관객들이 우리를 그냥 한 인간으로, 똑같은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김명진) 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가슴속 아픔 보듬은 ‘특별한 어버이날’

    가슴속 아픔 보듬은 ‘특별한 어버이날’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8일 경기 평택 ‘햇살복지회’의 담장 너머로 ‘어버이 은혜’ 노래가 울려 퍼진다. 왼쪽 가슴에 카네이션을 단 할머니 35명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스쳐갔다. 이날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에 거주하는 할머니 10여명과 ‘햇살복지회’와 함께하는 평택 기지촌 할머니 25명이 함께 어버이날을 보냈다.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할머니들은 만나자마자 금세 언니 동생이 됐다. 이날 행사는 정대협, 한소리회, 민변 여성위원회 등 여성단체들의 연대체인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하는 여성연대’가 주최했다.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는 위안부·기지촌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열어드린 잔치 마당이다. 오전 11시30분쯤, 팽성 시립 남산어린이집에서 온 어린이 20여명이 복지회 마당에 들어섰다. 아이들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드렸다. “할머니 오래 사세요.”라며 고사리 손으로 핀을 꽂더니 한약과 양말이 담긴 선물도 할머니들에게 하나씩 건넸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곧이어 아이들은 가수 박현빈씨의 ‘샤방샤방’을 부르며 재롱을 떨었다. 할머니들은 “쟤네들도 다 내 손자야. 세상 아들 딸이 다 내 아들 딸이거든.”이라며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픈 세월을 겪었던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동병상련 때문일까. 할머니들은 단 하루 곁에 있었을 뿐인데 서로의 상처를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듯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같은 아픔을 나누는 분들이라 그런지 금방 친해졌다.”며 기뻐했다. 아이들 재롱 속에 할머니들은 흥겨워했지만 그렇다고 가슴 한 편에 묻어둔 아픔까진 지우지 못한 듯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82) 할머니는 “괴롭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고통을 당하고 살았나 생각하니까….쓸쓸한 마음이야.”라며 고개를 떨궜다. 햇살복지회 우순덕 회장은 “올해 처음으로 함께 모였는데, 어버이날뿐 아니라 할머니들 주거 문제나 진상 규명을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구직처녀 불러 여관방서 신체검사

    구직처녀 불러 여관방서 신체검사

    신체검사를 해야한다며 웃옷을 벗겼다. 젖가슴을 만져본 뒤 바지도 벗겼다. 남자를 알아야 한다며 두 사나이가 차례로 덮쳤다. 그리고는 합격이라며 기지촌에 창녀로 팔아 넘겼다. 구직소녀들을 이렇게 팔아 먹는 일당 중 1명이 경찰에 잡혔다. 놀랍게도 그의 나이는 겨우 이제 20살. 어릴 것, 가슴 풍만할 것 등 3가지 기준 내세워 뽑고 지난 4월25일의 일. 『미군 「홀」여급 초보자 환영 학력불문 18~25세 침식제공 (99)4XX5』 신문광고를 본 이(李)모양(17)이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는 이들의 「아지트」인 성북구 미아동 P여관의 것. 이양은 충청도 C읍에서 무작정 상경한 가출소녀. 이양의 전화를 받은 柳모(20·구속)는 여관 근처 다방에서 이양을 만났다. 차를 마신뒤 중국집에 데려가 점심까지 사 주는 친절을 보였다. 그리고는 여관으로 데려갔다. 여관에는 공범 나(羅)모(27·미체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양을 침대에 걸터앉게 했다. 어느 새 여관방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 사나이들은 이것저것 쓸데없는 몇가지를 물어왔다. 『남자와 관계 해 본 적이 있느냐』고도 물었다. 『없다』고 대답하자 『신체검사를 해 봐야겠다』며 옷을 벗으라고 했다. 「홀」에 근무하자면 남자도 알아야 하니 성교육을 시켜주겠다며 발가벗으라고 강요했다. 유가 침대에 걸터앉은 이양을 떠밀어 누이고는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웃옷을 벗기고는 떡주무르듯 하더니 바지를 벗기려 들었다. 이양의 반항이 더욱 거칠어졌다. 보고만 있던 나(羅)가 거들기 시작했다. 이양은 깨끗이 발가벗기고 말았다. 사나이들은 할딱거리며 발버둥치는 이양을 차례로 욕보인 뒤 김(金)모(46·미체포·문산 거주)에게 넘겼다. 일금 1만원을 받고. 이들은 구직소녀들을 첫째 나이가 어려 가급적 남자 경험이 없을 것, 둘째 그러나 젖가슴이 풍부할 것, 세째 국부에 있어야 할 것이 풍부할 것 등을 기준으로 판단했다는게 유의 진술. 이렇게 하여 17살 어린 소녀의 푸른 꿈은 무참히도 꺾이고 미군상대의 창녀가 되어 버린 것. 유에 의하면 이양은 이들의 첫 손님. 그날 하루 광주(光州)에서 온 김모양(16)마저 처리한 뒤 「아지트」를 옮기고 다시 광고를 냈다. 남자를 알아야 한다면서 차례로 덤벼든 후에 “합격” 고향인 전북 D읍에서 중학교를 나온 유는 69년 무작정 상경, 외삼촌집에서 얼마를 얹혀 살다가 S식빵에 들어갔다. 20개월 정도 일하다 사고를 내고 지난 봄에 쫓겨난 뒤 형의 친구인 김에게 전화를 걸어 『먹고 잘 수 있는 곳이면 아무데고 취직 좀 시켜줄 것』을 부탁했다. 부탁을 들은 김은 처남 나(羅)를 소개시켜 주며 둘이서 광고를 내어 아가씨들을 꾀어 넘겨주면 1만원씩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로 신문에 광고를 내고 찾아온 아가씨를 팔아 먹었던 것. 잡힐 때까지 20여일 동안 5차례에 걸쳐 「아지트」를 바꿔가며 6명의 소녀를 팔아먹었다고 유는 경찰에서 자백했다. 이들이 잡힌 것은 5월16일. 욕을 본 한 처녀의 고발로 경찰이 현장을 덮친 것이다. 다섯번째 광고를 내자 시내 미아동에서 이모양(17)과 장(張)모양(16)이 함께 찾아왔다. 여관에 데려가 유와 나(羅)가 각각 1명씩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가서 남녀관계를 몸소 가르쳐 주는 성교육(?)을 하려던 순간 또다시 이들을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서 나(羅)는 새로 전화를 해 온 아가씨를 데리러 갔다. 그동안 유가 둘을 한방에 두고서는 지키고만 있었다. 나(羅)는 새로 온 아가씨를 옆방에 데려가 성교육을 실시했다. 아지트 바꿔가며 1만원에 기지촌 넘겨 그리고는 유가 있는 방으로 와서 미처 성교육을 못했던 두 소녀에게 덤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먼저 당한 옆방의 아가씨가 도망쳐 경찰에 신고했던 것. 그동안 나(羅)는 달아나 버리고 유만 잡혀 영리를 위한 유인혐의로 구속됐다. 이때 신고한 아가씨는 대구(大邱)에서 편물을 하다 신문광고를 보고 바로 전날 상경한 이모양(20). 유는 경찰에서 『처음 다방에서 만날 때 그렇고 그런 곳인데 갈 마음이 있느냐를 물은 뒤 가겠다는 아가씨들만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고 진술. 만일 오는 대로 다 데려갔었으면 40명도 넘었을 거라며 그래도 자기들은 착한 편이었다는 표정. 그러나 장·이 두 소녀는 『맥주만 날라다 주면 되며 한달 수입이 7~8만원은 거뜬하다』기에 따라 갔다고 말했다. 경찰이 김을 잡기 위해 문산 김의 집을 덮쳤을 때 김은 없고 다른 곳에서 팔려온 아가씨가 1명 있었다. 김모양(19)이라는 이 아가씨는 고향인 강원도 S읍에서 지난 4월29일 집을 떠나 이튿날 새벽 4시30분 서울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차장이 되고 싶어』서울에 올라온 김양은 청량리역을 무사히 나와 묻고 물어 마장동 시외「버스」정류장을 찾았다. 정류소 근처에서 40대의 한 남자가 『취직을 하러왔느냐?』며 친절히 물어왔다. 『차장이 되고 싶다』는 김양의 말에 이 사나이는 자기는 운전사인데 마침 차장을 바꾸려는 참이었다며 데리고 갔다. 데려간 곳이 경동시장안 D여인숙. 이곳에서 나흘 동안 갇혀 있으면서 순결을 뺏긴 김양은 5월3일 김을 따라 문산에 갔다. 문산에 도착, 김양이 인계된 곳이 김씨의 집, 이곳에서 다시 욕을 본뒤 경찰이 덮칠 때까지 있었던 것. 김양은 나이에 비해 덩치도 워낙 작고(150㎝ 미만) 몸매도 형편 없었기 때문에 미군상대로는 불합격품(?)이라 한국인 상대 창녀촌에 넘기기까지 김의 집에 갇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경찰은 김을 잡고 보면 여죄가 많을 것으로 보고 계속 김의 뒤를 쫓고 있다. 취조 형사는 『이들도 지독히 나쁜 놈들이지만 무작정 상경하는 소녀들이 없어야 이런 일이 없어질 것』이라며 안타까운 한숨을 지었다. <하(夏)> [선데이서울 72년 5월 28일호 제5권 22호 통권 제 190호]
  • 새마을 운동에 위안부도 나서

    충남 대덕군에 있는 미군 상대의 1백80명 기지촌 위안부들은「조기청소」「마을안 청소」「뜨개질 배워 자립운동」등 3가지「캠페인」을 벌여 색다른 새 마을운동. 이들 위안부들은 여자가 잘 사는 밑천이 『따로 있느냐』며 매일 돼지저금통에 푼돈을 모아 1인당 50만원씩 저축하기로 결의하고 뜨개질강습소에도 나가 「스웨터」등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는 것. -새마을운동이 따로 없지 <대전(大田)> [선데이서울 72년 3월 26일호 제5권 13호 통권 제 181호]
  • 냉정한 앵글 속 한국 현대사

    40년 남짓 한국을 기록한 일본인 보도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72)의 사진집이 출간됐다.사진전문인 눈빛출판사가 20주년을 맞아 펴낸 ‘내가 바라본 격동의 한국,구와바라 시세이 한국사진전집’이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수은 중독에 따른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1962년 일본사진비평가협회로부터 신인상을 받으면서 다큐멘터리 사진계에 입문했다.한국에서의 작업은 1964년 월간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서울에 체류하면서 시작하게 됐는데,이후 수십차례 드나들며 찍은 사진이 10만여컷에 달한다.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방대한 분야를 망라한다.1965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베트남 파병,팀스피리트 한미연합군사훈련,미군 기지촌 등이 구와바라 시세이의 렌즈에 포착된 풍경들이다.그는 “나에게 있어서 한국 취재는 ‘격동의 사반세기’였다.”며 “지금도 한국의 대지에 잠들어 있는 무궁무진하고 장렬한 역사 소재를 문자나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고 말한다.이 사진집은 그가 27세 때부터 청춘을 함께한 이웃나라이자 아내의 모국에 바치는 헌정 책과도 같다. 사진비평가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는 작가론에서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 세계를 이렇게 설명한다.“구와바라 시세이의 시선에는 한국의 사진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대상에 대해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태도가 들어있다.” 이처럼 그의 사진은 예술사진 중심의 한국사진계에 많은 시사점을 안겨 주며,현실의 핵심을 찌르는 영상미학을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집 말미에는 한국 취재 생활에 대한 작가의 회고담도 실려 있다.관세법 위반으로 강제 출국된 경험,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등 솔직하고 치열한 자기 반성 등이 낱낱이 적혀 있다. 그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오는 13일부터 내년 2월21일까지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이 열리는 것.향수를 자극하는 서울 변두리와 농어촌의 모습,북한 사진 등을 감상할 수 있다.5만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숫처녀만 골라팔던 처녀3총사, 재판중

    처녀잡는 귀신상(11월28일자 164호)=『문순자(文順子)·오옥희(吳玉姬)·「미스」홍(洪) 등 처녀3총사는 6년전부터 매달 2백여명씩 숫처녀만을 골라 사창가와 기지촌에 팔아「처녀박멸」운동에 끼친 공로가 크므로 처녀잡는 귀신 상을 줌. -가칭 총각일소협회장』 그후 재판진행중. [선데이서울 71년 12월 26일호 제4권 51호 통권 제 168호]
  • ‘맘마미아!’ 음악영화 열풍 ‘고고 70’이 바통 이어갈까

    ‘맘마미아!’ 음악영화 열풍 ‘고고 70’이 바통 이어갈까

    영화 흥행에도 타이밍이 있다면 이 작품의 개봉 시기는 꽤 괜찮은 편이다. 영화 ‘고고 70’(감독 최호·제작 보경사) 이야기다. 그룹 아바의 히트곡으로 엮은 음악영화 ‘맘마미아!’가 개봉 한달여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1970년대 음악과 청춘을 노래한 ‘고고 70’에도 영화팬은 물론 음악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실존그룹 토대로 70년대 향수 자극 영화 속에 등장하는 ‘데블스’,‘피닉스’ 등은 모두 1970년대에 실존했던 음악그룹들. 여기에 영화적 허구를 더한 ‘고고 70’은 야간 통행이 금지되고 미니스커트와 장발이 단속의 대상이 되던 70년대를 사로잡은 ‘고고열풍’을 소재로 풀어간다. 일명 ‘까만 음악’으로 불리는 ‘솔’에 꽂혀 기지촌에서 음악을 하던 멤버들을 모아 그룹 ‘데블스’를 만든 상규(조승우). 병역 기피자라는 무거운 짐과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울 듯이 쏟아내는 솔 창법으로 승화시킨 그는 가수 지망생으로 자신을 따르는 미미(신민아)와 함께 무작정 상경한다. 하지만 이들의 낯선 창법과 노래는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이후 업계에 영향력이 있는 주간지 기자 병욱(이성민)을 만나 고고클럽 ‘닐바나’의 무대에 서면서 차츰 인기를 모아간다. 미미가 결성한 ‘와일드 걸즈’라는 그룹은 고고에 맞는 춤과 패션을 선보이며 고고열풍에 불을 댕긴다. ●부족한 스토리 흡인력 채우기가 관건 ‘고고 70’은 밤이 금지된 197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시대적 아픔보다는 대한민국 로큰롤 1세대인 당시 젊은이들의 음악과 춤에 더욱 집중한다. 윌슨 피켓의 ‘머스탱 샐리’나 ‘랜드 오브 어 1000 댄스’, 샘 앤드 데이브의 ‘솔 맨’ 등 팝 명곡은 물론 그룹 ‘데블스’의 ‘그리운 건 너’와 이은하의 ‘밤차’ 등 당시 풍미했던 음악들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조승우는 ‘헤드윅’‘지킬 앤드 하이드’ 등 뮤지컬에서 다져진 가창력을 선보였다. 실제 악기 연주자들로 구성된 밴드 멤버들은 전곡을 라이브로 소화해 음악적 완성도에 공을 들였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공연장면.10대가 넘는 카메라로 연주가 끝날 때까지 한번의 중단 없이 촬영해 공연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 영화의 대부분을 당시 음악을 표현해내는 데 집중해 상대적으로 스토리의 흡인력이 떨어지는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영화 후반부에 ‘데블스’는 멤버 가운데 1명이 공연 중 화재로 숨을 거두는 사고를 겪으며 위기를 맞지만 느슨해진 극전개에 전환을 가져오기엔 다소 역부족이다. 이 영화의 성공 여부는 70년대 향수를 간직한 올드팬들과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층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설득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지난해 가을 ‘원스’‘어거스트 러시’ 등의 해외 음악영화가 열풍을 모았지만, 올여름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70년대 김추자의 음악을 영상으로 풀어낸 영화 ‘님은 먼곳에’는 상대적으로 젊은층의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고고 70’은 메시지가 강조된 음악영화와 달리 라이브 공연영화에 가깝게 구성된 만큼 관객들과 어떻게 교감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처녀 잡는 귀신들

    처녀 잡는 귀신들

    인신매매 비밀조직 곰보파가 덜미를 잡혔다. 왕초를「미스」문(文·28·문순자(順子)), 참모를「미스」오(吳·28·오옥희(玉姬)),「미스」홍(洪·19)으로 한 이「미스」자(字) 항렬의 처녀잡는 귀신들이 멀쩡한 양갓집 규수를 사창가로 팔아 넘겼던 것. 1개월에 230명을 낚기도 했다니 6년동안 이들의 올가미에 걸린 처녀들은 헤아릴수 없을듯. 여관방 사무실서「테스트」 본인도 모르게 사창가로 17일 상오 10시께. Y모양(21·여고졸), S모양(22·대중퇴)은 53국의 0320번 전화를 돌렸다.「캐디」를 모집한다는 구인광고를 읽고 낸 것이다. 전화를 받은 쪽에서 몇가지 자자분한 것을 물은 다음 우선 만나보고 나서 결정하자고 제의해 왔다. 만날 장소는 중(中)구 인현(仁峴)동 M극장앞. 서로의 인상착의를 일러주고 전화를 끊었다. Y, S양들은 약속한 시간에서 단 5분이라도 늦을세라 M극장 앞으로 달려 갔다. 도착한지 몇분 안되어 품위있게 생긴 중년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품위여성」에게 이끌려 이들은 진흥여관(중구 인현동)으로 갔다. 방안에 들어서자 책상 응접「세트」등 그럴싸한 사무실 분위기. 날씬한 20대 여자1명이 반갑게 두여성들을 맞았다.『외국어 실력은 어느정도냐』『「골프」규칙은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등 구두시험격인「인터뷰」절차를 거쳤다. 면담이 끝나자 20대「날씬여성」은『그만하면 소질이 있어뵌다. 인천(仁川)에 있는「골프」장에 취직시킬 예정』이라고 믿음직스런 장담. 그때 허우대좋은 신사가 1명 들어 왔다. 「품위여성」이『남편의 친구인데 인천에서 「골프」장을 경영하는 J사장』이라고 소개시켰다. J신사께서 다시「골프」에 관한 몇가지의 면담을 한다음 하오 5시께 여관을 나왔다. 밖에서는 검정색「코로나」자가용이 기다리고 있다가 Y, S 2명과 J사장을 인천으로 모셨다(이 자가용은 전세냈던 전시효과용). 난생 처음으로 인천에 도착한 Y, S양은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J사장의 뒤를 따랐다. 시간은 7시. 해가져서 어두웠지만 J사장이 들어가는 곳이 이상스러웠다. 멈칫거리던 그녀들은『「골프」장이 어디냐』고 물었다. J사장은『누가 밤중에「골프」를 치는가? 우리집에 가서 자고 내일 간다 』고 퉁명스런 대답. 한데, J사장이「자기 집」이랍시고 그녀들을 데려간 곳은 인천의 이름난 사창가 학익(鶴翼)동. 한번 들어갔다 하면 멀쩡한 대장부도 일을 치러야만 풀려나온다는 악명 놓은 사창가였다. Y, S양은 정신차릴 겨를도 없이 어느 남자에게 인계됐고 그 남자로부터 다시 뚱뚱보라는 별명의 노파에게 넘어갔다. 이동안 그녀들 모르게 상당한 돈이 오갔다. 4단계 중간「브로커」거처 5천원씩「프레미엄」붙여 애초 진흥여관에서 신사 J사장에게 2만원, J사장은 성명미상의 사내에게 2만5천원, 성명미상의 사내는 뚱뚱보 노파에게 3만원을 받아 챙겼던 것. Y, S양은 하늘이 노랗게 보여 실신할 지경이었다. 뚱뚱보 할머니에게 애원했지만 3만원을 내놓으면 내주겠다는 냉랭한 대답. Y양이 순간적으로 기지를 짜냈다. 『기왕 버릴 몸이니 돈이나 벌어 나가겠는데 오늘 저녁은 분위기가 마음에 안들고 피곤도 하니 내일부터 손님을 받겠다』고 통사정.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그녀들은 이튿날이 되자 다시 할멈에게 정답게(?) 의논했다. 주민등록증이니 옷가지들이 서울에 있으니 가지러 가야겠다는 것. 뚱뚱보 노파가 직접 그녀들을 인솔하여 서울에 다녀 오기로 했다. 그래서 18일 상오 10시 50분께 문제의 진흥여관에 도착했다. 11시 정각이되자 10일전부터 이들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던 서울지검 보건반의 급습을 받았다. 오랫동안 수많은 처녀들을 창녀로 처박아 넣던 곰보파가 드디어 일망타진된 것이다. 변무관(卞務寬)부장검사를 반장으로 김두희(金斗熙), 하일부(河一夫), 김유후(金有厚) 검사와 보건반 요원 11명, 노동청 직업안정관 5명등 20명의 수사요원이 이 사건에 달라붙기 시작한 것은 10월하순께. 10월 하순 어느날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전화로 애절한 호소가 들어 왔다. 「캐디」,「카지노·딜러」,「호스테스」등을 모집한다는 지상광고로 처녀들을 유혹하여 앞서 Y,S양이 빠져 들어간「코스」대로 인천을 비롯, 오산(烏山), 문산등 전방 기지촌과 사창가로 팔려간다고 일러 주었다. 이 비밀 인신매매 조직가운데「곰보파」와「외팔이파」가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는 것이 그 내용. 점조직으로 지능적 접선 1만원~3만원까지 받아 이 정보를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우선 늘씬한 정보요원 아가씨를 시켜 전화를 걸게하고 접선시켰다. 그 결과 이들의 지능적인 방법에 수사본부는 혀를 내둘렀다는 것. 전화는 엉뚱한 곳에 놓고 아무런 내용도 모르는 사람을 고용, 전화가 오면 만날 장소와 시간과 인상착의를 묻게한 다음, 고용원은「비밀아지트」로 전화를 걸어 모모한 여자가 어느 장소에서 대기한다고 보고한다. 10일께 곰보파의 소재와 영업장소를 파악 수사요원을 주야로 상주시켜 이들의 동태들 하나 하나「체크」하여 증거를 보완한 끝에 18일 상오 11시를「D데이 H아워」로 기습했던 것이고, 이 시간에 Y,S양도 우연히 구출하게 되었던 것. 이들의 취직사기에 걸려든 여성은 1개월 평균 2백30명. 이 여성 가운데 쓸만한 아가씨는 4단계를 거쳐 넘어가는 동안 중간「브로커」에 의해 욕을 당하기 일쑤. 가격도 일정하지 않아 A급은 3만원, C급은 1만원. 「미스」문(文)을 왕초로한「곰보파」의 신상명세서가 희한하다고 K수사요원은 너털웃음이다. 즉「미스」문이 단독영업하던 당시 걸려든 처녀가「미스」오(吳). 7년전 인천 숭의(崇義)동 사창가로 팔려가 신세를 망친「미스」오는 이후 각지를 전전하다가 70년 겨울, 서울에서 우연히「미스」문을 만나게 됐다. 여기서 의기투합한 그녀들이 동업으로 장사를 시작하게된 것이「곰보파」결성의 동기. 「곰보파」외에 마포(麻浦)「외팔이파」가 이번 단속에 조직이 들통났고, 현재도 수사대상에 오른 조직이 10여개파나 되며 몇몇 유료직업소개소도 인신매매의 확증을 잡고 수사중이라는 후일담이다. <환(桓)·식(植)> [선데이서울 71년 11월 28일호 제4권 47호 통권 제 164호]
  • [책꽂이]

    ●여우소녀(노라 옥자 켈러 지음, 이선주 옮김, 솔 펴냄)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 저자의 두번째 장편소설. 첫 작품 ‘종군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시각에서 전쟁의 비극을 조명했다.1960∼70년대 한국의 미군 기지촌에서 자란 두 소녀의 성장이야기.2002년 발표된 이후 영어로 쓰인 전세계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영국 문학상 ‘오렌지상’의 최종후보로도 올랐었다. 원제는 Fox Girl.9500원.●책 읽어주는 여자(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세계사 펴냄) 1990년 처음 소개된 뒤 이번에 번역을 새롭게 해 재출간했다. 책을 읽는 사람과 그것을 듣는 사람, 책 속의 이야기와 책 밖의 현실을 아우르면서 독서 행위의 특별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불문학자 김화영씨가 스승인 저자를 위해 꼼꼼하게 재수정했다. 말미에는 프랑스 문학에 관한 사제간의 대화도 실려 있다.1만 1000원.●무중력증후군(윤고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달이 여러 개로 분화한다는 엉뚱하고 대담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달이 6개까지 분화하는 과정과 함께 지구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그리고 있다. 심사위원들로부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군중의 소외감을 은유와 농담으로 표현하며 소외의 무거움은 가볍게, 상처의 잔혹함은 경쾌하게 그려나간다.”는 평을 받았다.1만원.●꿈이었을까(김용희 엮음, 생각의나무 펴냄) 젊은 문학평론가 김용희가 50편의 시를 가려 뽑아 자신만의 섬세한 해설을 덧붙였다. 신달자, 천양희, 안도현, 황학주, 김선우, 정호승, 김경주 등 지금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주요 시인들의 작품이 고루 포함돼 있다.‘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 다섯 계절로 나눠 그에 해당하는 시를 소개하고, 여러가지 해석의 스펙트럼 중 하나를 골라 감상을 써내려 갔다.1만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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