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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세먼지 마스크 수입 2년새 4.6배

    미세먼지 마스크 수입 2년새 4.6배

    최근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 불안을 반영하듯 관련용품 수입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스크 수입액은 2년 만에 4.6배나 증가했다. 관세청이 최근 3년간 미세먼지 관련용품 수입액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수입액이 2억 9200만 달러(약 3377억원)로 2013년(1억 5800만 달러) 대비 1.8배 늘었다. 올해 5월 현재 수입액도 1억 5800만 달러에 이르는 등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마스크는 2310만 달러어치가 수입돼 전년(710만 달러)보다 3.3배, 2013년(510만 달러) 대비 4.6배 증가했다. 지난해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겹치면서 수입량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71만 5000달러이던 마스크 수입액은 6월에 1110만 6000달러로 15.5배나 늘었다. 지난해 수입된 마스크는 5억 1000만개로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마스크보다 저가 일회용 방진 마스크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중국산이 79.3%로 파악됐다. 평균 수입 단가는 2013년 0.055달러에서 지난해 0.045달러로 낮아졌다. 공기정화기와 진공청소기 수입도 급증하고 있다. 공기정화기는 올해 5월 기준 수입액이 4300만 달러로 지난해 수입액(3200만 달러)을 초과했다. 진공청소기 수입액도 지난해 2억 2100만 달러로 연평균 50% 이상 증가세를 나타냈다. 공기정화기는 말레이시아, 진공청소기는 베트남이 중국을 제치고 최대 수입국이 됐다. 미세먼지 필터 기능과 제균 기능이 추가된 고가품의 수입이 증가하는 추세다. 공기정화기는 청정지역 이미지를 가진 데다 미세먼지·라돈 제거 기능이 있는 캐나다산이, 진공청소기는 미세먼지·진드기 억제 효과가 높은 덴마크 제품의 수입이 크게 늘었다. 이 같은 변화로 공기정화기의 평균 수입단가가 2013년 94달러에서 지난해 113달러로, 진공청소기는 40달러에서 48달러로 각각 상승했다. 구강 위생용품 수입액은 1600만 달러로 2013년(1000만 달러) 대비 60% 증가했으며, 최대 수입국은 태국이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음압 병실’ 갖춰야 상급종합병원 지정

    문병객 통제 등 병문안 문화 개선… 비응급 환자 회송체계도 갖춰야 앞으로 최고 의료기술을 갖춘 종합병원을 뜻하는 ‘상급종합병원’ 간판을 달려면 감염병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음압격리병실을 설치하고 병문안 문화를 개선하는 등 감염관리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병원이 수준 높은 감염관리 설비와 체계를 갖추도록 상급종합병원 지정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 개정안’을 다음달 17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7일 밝혔다. 음압격리병실은 공기와 병원균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해 병원 내 감염을 막는 특수 병실이다. 감염병 치료에 꼭 필요한 병실이지만 턱없이 부족해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곤욕을 치렀다. 개정안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으로 인정받으려면 300병상 이상인 병원은 모두 음압격리병실을 1개 갖춰야 하며, 추가 100병상마다 1개씩 더 설치해야 한다. 가령 병상이 400개인 병원은 음압격리병실이 2개, 500병상인 병원은 3개가 있어야 보건당국으로부터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을 수 있다. 메르스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던 병문안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 병문안객 통제시설과 보안인력을 갖춘 병원은 상급종합병원 심사에서 3점을 더 받을 수 있다. 또 응급하지 않은 환자는 종합병원이나 의원으로 돌려보내는 ‘환자 의뢰·회송 체계’를 갖춰 응급실 환자 쏠림 현상을 방지해야 하며, 최소 3곳 이상 간호대학과 실습교육 협약을 맺어 간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또한 가장 위중한 ‘전문 진료 질병군’ 입원 환자 비율이 전체 입원 환자의 21% 이상은 돼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향후 난도가 높은 중증질환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상급종합병원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고자, 단순 질병 진료 비중을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고향 충남 공주에 ‘박찬호 골목길’ 생긴다

    고향 충남 공주에 ‘박찬호 골목길’ 생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43)가 살던 충남 공주시에 ‘박찬호 골목길’이 생긴다. 오시덕 공주시장과 박찬호는 7일 시청에서 이 같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박찬호는 공주시의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골목길이 만들어지는 곳은 박찬호가 살던 산성동 옛집에서 공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400m, 폭 2~8m의 골목길이다. 이 길에 각종 조형물을 세우고 옹벽에는 투구 모습 등을 새겨 박찬호 선수를 추억하는 장소로 꾸민다. 시 관계자는 “산 중턱에 있는 이 길은 박찬호가 초등학교 때 이사와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택과 공산성을 오르내리며 훈련과 체력단련을 하던 곳”이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산성과 산성 재래시장을 잇는 길이기도 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인기 있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주시는 또 옛집을 리모델링해 박찬호기념관으로 꾸미고 그 윗집에 야구체험관을 만들어 내년 상반기 문을 열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박찬호 부모가 수년 전 인근 무릉동으로 이사한 뒤 다른 사람이 살던 옛집과 윗집까지 매입했다. 모두 10억원이 들어간다. 박찬호는 협약식에서 “어릴 적 땀을 흘리던 길을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줘 기쁘다”면서 “(기념관에 전시할 수 있도록) 메이저리그 활동 때의 기념볼, 외국선수 사인볼, 유니폼, 승리 때 썼던 모자 등 소지품 150여점을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공주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군포시, 1년 뒤 엽서 배달하는 ‘느린 우체국’ 운영

    군포시, 1년 뒤 엽서 배달하는 ‘느린 우체국’ 운영

    “자신이나 소중한 사람에게 엽서 한 장 쓰세요.” 경기 군포시가 시청 현관 밥상머리 북카페에 ‘느린 우체통’을 설치, 운영한다고 7일 밝혔다. 시와 군포우체국이 운영하는 느린 우체통은 1년 후에 무료로 엽서를 배달해준다. 군포시는 시청을 찾은 시민들에게 초고속 디지털전자문명 시대에 느림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음미하고, 소통의 기쁨을 제공하기 위해 느린 우체통을 설치했다. 이용을 원하는 시민들은 시청 밥상머리 북카페에 비치된 전용 엽서에 자신이나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어 느린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발송 지역은 국내로 제한되며, 매년 1월 5일 우체국에 보내 발송한다. 군포우체국은 작은 우체통 1개와 우편엽서 400장을 기증했다. 시 관계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스마트폰 등으로 빨리 소통하는 삶의 속도를 잠시나마 줄이고,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기다려보는 경혐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느린 우체통’을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의약품 확대·전기차 충전… ‘편의’ 키우는 편의점

    CU·GS25 점포 첫 1만개 넘어 ‘편의점 약국’까지 등장할 태세다. 정부가 지난 5일 ‘서비스경제 발전전략’에서 편의점에서 팔 수 있는 의약품을 현재 13종에서 20종까지 우선 늘리고 이를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택배서비스, 전기차 충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부가세 환급과 가방 보관 등에 이어 새로운 서비스가 편의점에서 속속 나오고 있다. 점포수가 3만개가 넘는 편의점이 정부 규제 완화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6일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CU 점포수가 1만 106개, GS25가 1만 40개로 처음으로 각각 1만개를 넘어섰다. 한 달 사이에 CU는 117개, GS25는 210개나 늘어났다. 편의점 업계는 세븐일레븐(6월 말 점포수 8227개)까지 더해 3강 구도다. 점포수 3만개가 넘어 시장 포화라는 우려도 있지만 다양한 형태의 점포가 등장하면서 성장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편의점 매출액은 전년보다 29.6%가 늘어났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성장세가 주춤했던 백화점, 대형마트와 대조된다. 이는 인구 특성의 변화와 규제 완화가 주요 요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1인 가구 비중은 27.2%다. 1인 가구가 대세가 되면서 가까운 곳에서 조금씩 살 수 있는 쇼핑 공간이 필요해졌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편의점의 90% 이상에서 공과금 납부가 가능하다. 일부 점포에서는 주민등록등본을 출력하고 토익성적표를 발급받을 수도 있다. 제주의 GS서귀대포점은 전기차 충전 시설까지 갖췄다. 외국인에 대한 부가세 환급은 올 1월 시행된 즉시환급제 덕분이다. GS25는 올해 1000여개 점포에서 즉시 환급서비스를 실시할 계획이다. CU이태원프리덤점에는 이에 더해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24시간 짐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3시간 기준 2000~4000원으로 물건에 더해 공간을 파는 셈이다. 고객을 위해 공간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세븐일레븐은 서울 중구 명동 중국대사관점과 서울 강남구 KT강남점 2층에 아예 도시락 카페를 만들었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편의점의 기능 확대와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다양한 상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김중만(62)과의 만남은 금요일인 지난 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예정돼 있었다. 그 주 수요일부터 수영 박태환을 리우올림픽에 내보내자는 1인 시위를 국회 정문 앞에서 벌여 온 그가 일단은 그곳에서 보자고 제안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후에 쏟아진 폭우로 그는 철수를 해야 했고 결국 청담동 스튜디오로 장소가 변경됐다. 폐렴 증세가 있는데 비까지 흠뻑 맞은 그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좀 있으니 그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법원에서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자격을 인정했다는 뉴스였다. 그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 이제 정말 사자도 보고 침팬지도 보고 하마랑 코뿔소도 보고 그러는 거예요?” 1970년 여름 어느 날 저녁 나는 만세를 불렀다. 끓어오르는 희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홍대부고 1학년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는 충남 한산에서 외과의원을 운영하셨는데, 가족들을 불러 앉혀 놓고 상상도 못했던 말씀을 하셨다. “정부에서 아프리카 봉사활동 파견 의사들을 모집하는데, 거기에 지원했다. 거기 가면 여기에서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나와 동생은 기뻐 날뛰기만 했지, 아버지의 입가에 흐르는 씁쓸한 미소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대접받는 의사의 자리를 버리고,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안 되는 나라로 떠나갈 결심을 한다는 게 얼마나 깊은 번민의 산물이었을지는 나중에 좀더 철이 든 뒤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6·25 참전 군의관이셨다. 내가 휴전 이듬해 강원도 철원에서 2남1녀의 맏이로 태어난 건 그래서였다. 아버지는 군인들이 이 땅을 계속 통치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요즘 ‘헬조선’이라며 이민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46년 전에 그걸 몸소 실천에 옮기셨던 것이다. 그것도 가난과 모래폭풍이 지배하는 아프리카 오지에 가는 걸로 말이다. -아버지는 전역 후 당신 아버지의 고향인 전북 군산 대신에 어머니의 고향인 한산에 정착해 의원을 차리셨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만 해도 우리 집이 양계장을 하는 줄 알았다. 아픈 사람들이 돈이 없으면 닭을 가져왔고 아버지는 늘 그걸 웃으며 받아주셨다. 매일 닭 요리가 밥상 위에 올라왔는데, 그때 물리게 먹어서 지금도 닭을 안 좋아한다. -내가 아프리카행에 그토록 환호했던 것은 탐험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대니얼 디포의 고전 ‘로빈슨 크루소’를 주셨는데, 난생처음 밤을 새워 읽은 책이었다. 이후 내 머릿속에는 무인도나 정글 생활 같은 것들이 꽉 들어찼고, 중학생이 돼 서울로 올라와서는 틈만 나면 청계천 8가 헌책방 거리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중대 발표가 있고 보름 후 부모님과 우리 형제, 이렇게 네 식구가 탄 비행기가 서아프리카 오트볼타 상공에 도착했다. 오트볼타는 지금은 부르키나파소로 개명된 옛 프랑스 식민지였다. 하지만, 비행기가 랜딩 기어를 내릴 즈음 나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창밖의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그림이 전혀 아니었다. 밀림이나 사자는커녕 아래로 온통 시뻘건 모래사막뿐이었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사하라 남쪽에 위치한 오트볼타는 거대한 사막의 끝자락이었다. ‘아프리카면 다 똑같은 줄 알았더니….’ 게다가 우리가 살 곳은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버스로 20시간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였다. 철판으로 벽을 세운 묘한 형태의 집에 방 두 칸과 나무침대가 전부였다.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 계시는 아버지가 야속했고, 할머니와 함께 서울에 남은 여동생이 부러웠다. -아버지는 그 길로 평생을 아프리카 사람으로 사셨다. 오트볼타에서 의료 활동을 마친 후에는 더 남쪽에 있는 보츠와나로 옮기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계셨다. “내 통장에 2000풀라(보츠와나의 화폐 단위)가 있는데, 그 정도면 괜찮겠냐.” 1999년의 어느 날 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직감한 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와 병 수발을 들고 있는 나에게 물으셨다. 그게 장남인 나에게 남겨 주시는 전 재산이란 얘기였다. 아버지의 표정은 대단했다. 2000풀라면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인데, 거의 200억원을 물려주시는 듯한 그 당당함이란. 얼마 후 돌아가셨을 때 당신이 남긴 거라곤 정말로 그 2000풀라와 양복 2벌, 청진기 3개, 모자 3개, 모터 달린 자전거 1대 그리고 ‘김정’이란 이름 두 글자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위대한 유산이 그리고 이만큼 멋진 분이 또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나는 동생보다도 아프리카 생활을 못 견뎌했다. 일단 마을에 학교가 없어 답답했다. 불어를 익히는 것 말고는 나를 채워 줄 것이 없었다. 신물 나게 양배추 김치만 먹어야 하는 것도 싫었고, 독거미에 물려 사경을 헤맸던 일도 끔찍했다. 1971년 나는 아버지가 수소문한 끝에 프랑스 서부의 작은 도시 숄레로 보내져 고1부터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인생의 황금기가 열렸다. 사방이 포도밭이었는데, 모두가 와인을 만들어 먹고살았다. 학교건 기숙사건 와인이 넘쳐났다. 그리고 1500명 학생 중에 유일한 동양인인 나에 대한 남녀 학생들의 관심과 배려는 한이 없었다. 꿈결 같은 3년을 보냈다. -원래 꿈대로라면 문학을 전공해야 했는데, 그러기엔 수학 실력이 너무 달렸다. 수학 시험을 안 보고 갈 수 있는 대학 전공은 미술밖에 없었는데, 그건 자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으로 숱하게 상을 받은 나였다. 1974년 니스에 있는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에 입학해 1년을 보내고 난 어느 날, 기숙사에서 사진을 취미로 하는 법대생 친구가 인화 작업을 도와 달라고 했다. 사진 한 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처음으로 보게 됐다. 3~5분 만에 인화지에 그림이 새겨지는 건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내 그림은 석 달이 걸려도 완성이 될까 말까인데. “맞다 저거야. 내 성격엔 저게 딱이야.” 친구에게 카메라를 빌렸다. 잠자고 씻을 때를 빼고는 카메라를 품고 살았다. 풍경, 얼굴, 동물 등을 닥치는 대로 찍었다. 아르바이트해서 몇 푼 손에 들어오면 무조건 필름 가게로 달려갔다. 늘 필름에 목이 말랐다. 주변에 있는 여자들의 누드도 찍었는데, 이는 내가 작가로서 초기에 명성을 얻게 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데뷔 시절 나의 주제가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대학 2학년 때 일찌감치 아들을 보았다. 아이의 엄마는 특수교육을 전공하던 한 살 어린 프랑스인 여자친구였다. 가장이 됐으니 생활비가 필요했고 필름값도 벌어야 했다. 돈을 아끼려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아이를 몰래 돌보다 쫓겨난 적도 있었다. 주말이건 심야건 닥치는 대로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디스코텍에서 DJ도 했다. 점심때 식당 주방에 설거지를 하러 가면 늘 4~5m 높이 분량의 접시들이 쌓여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아프리카 의료 활동으로 받는 돈은 고작 석 달에 500달러였다. 멀리 프랑스에 있는 아들에게 전혀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사진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얼마 안 돼서 나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사진에 과감하게 미술적인 프레임을 접목한 게 먹혀들었다. 주어진 것을 찍는다는 생각보다는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장소를 정하고 모델을 세웠다. “니스에 동양인이 한 명 있는데 사진을 잘 찍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를 찾는 곳이 늘어갔다. ‘프랑스 오늘의 사진 80인’ 등 몇몇 중요한 상을 거머쥐고 나는 파리로 진출했다. 자연히 니스에서의 학업은 더이상 이어갈 수가 없었다. 파리에서는 유명작가들 밑에서 패션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당시는 세계적인 대가일수록 동양인 어시스턴트를 두는 게 유행이었다. 이게 나에게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어떠한 다른 동양인 사진작가도 나만큼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했다. -1977년 서울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23세 때였다. 칸 미술제 참석을 위해 프랑스에 온 우리나라 화가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내 사진을 보더니 “한국에는 이런 사진이 없다”며 전시회를 열어 보라고 했다.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인연으로 한국에 계속 머물게 됐다. 이듬해 배우 오수미(1950~1992)를 만났다. 남편인 신상옥 감독이 납북되고 혼자 살고 있던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아름다움에 현기증을 느꼈다. 얼마 후 한국에 같이 머물고 있던 첫 번째 아내에게 “새로운 운명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다. 아내는 별말 없이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떠났다. 그녀는 지금도 니스에서 전공을 살려 정신지체아들을 돌보고 있다. 지금도 아내와 아들과는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그녀는 가히 천사다. 방학이면 해마다 인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나는 테레사 수녀님을 따서 그녀를 ‘마더 테레사’라고 부른다. 지금도 우리들은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아들은 나와 같은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이 땅에서 두 번의 추방을 당했다. 1985년에는 프랑스 국적의 외국인이면서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고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1986년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정보당국에 붙들려가 일본과 미국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 보내졌다. 두 번째 추방은 신상옥 감독이 북한을 탈출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걸 계기로 오수미와는 자연스레 결별을 하게 됐다. -1988년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이 됐다. 당시 나는 프랑스에서도 톱클래스에 있었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두 번이나 나를 추방한 이 나라에 뭔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해 당시 톱 모델이던 이인혜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1995년 5월에는 서울시립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됐다. 검찰이 일부 마약사범의 진술에 의존해 나에게 대마초 흡연 혐의를 씌웠는데, 나는 이미 2년 전에 같은 혐의로 구속돼 55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했고, 이후로는 완전히 절연한 상태였다. 검찰은 소변 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자 13일간 나를 정신병원에 가뒀고, 이는 인권탄압 사례로 신문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어쨌거나 이 일로 나는 국립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강사에서 잘리고 아내에게 이혼까지 당했다.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갔다. 1년을 아이와 둘이 살고 있으니 아내가 다시 찾아왔다. LA에서 3년 동안 패션사진, 상품 카탈로그 등을 찍으며 세 식구가 괜찮게 먹고살았다. 그런데 1997년 말 한국 외환위기의 파고가 멀리 LA까지 밀려왔다. 주된 고객이던 한국 기업들이 도산을 하거나 경영난에 빠지면서 일감이 뚝 끊겼다. 결국 월세 3000~4000달러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빈민들이 사는 300달러짜리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꼬박 1년을 살면서 전당포를 세 번을 갔다.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500달러에 카메라를 잡히면 그날은 LA갈비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 얻은 건 가족애였다. 극심한 가난 속에 우리 셋은 정말로 하나가 됐다. 너무도 소중한 가치였다. -“형, 처자식 고생 그만 시킬래.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형이 사진전 좀 열 수 있도록 주선해 줘.” 1999년 LA라디오 사장이던 가수 이장희에게 귀국을 고했다. 떠나기 전에 라디오코리아에서 내 작품들의 전시회를 열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였다. 사람들에 신세진 것들 좀 갚고 남은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부모님 계신 보츠와나를 거쳐 서울로 오는 티켓이었다. 그런데 카메라 장비며 책이며 옷가지 등 해서 짐이 250kg이나 됐다. 추가 화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수중에 남은 돈이 고작 400달러 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사진 5장을 별도의 휴대용 박스에 넣고 우리가 예매한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카운터를 찾아갔다. 책임자를 보자고 했다. 후덕해 보이는 여성이 나왔다. “저는 사진을 하는 예술가입니다. 짐이 좀 많은데, 추가 비용을 낼 형편은 안됩니다. 저의 작품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게 힘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는 내 사진을 한 장, 두 장 보더니 곧바로 ‘오케이’ 사인을 냈다. 이에 더해 우리 가족의 티켓을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었다. 내가 절실할 때, 진실할 때 정성이 통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의 힘이란 걸 새삼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보츠와나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그의 30년 아프리카 여정을 기리는 뜻에서 카메라 장비를 챙겨 초원으로 나갔다. 요하네스버그, 세렝게티, 타랑기레 등의 동물들을 담아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에 한국에 돌아왔다. -막상 귀국을 하니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내 한 몸은 고사하고 아내와 아들이 머물 수 있는 집 한 칸이 없었다. 상업사진을 시작했다. 명함을 만들고 압구정동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패션, 영화포스터, 음반표지 등 닥치는 대로 작업을 했다. 3년을 일하니까 서울 전농동에 아파트 한 채를 살 돈이 모였다. 3년을 더 하니까 한 해에 15억원 정도가 손에 들어왔다. -‘이게 내가 추구하던 삶인가? 맹목적으로 일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먹고 살 만 해지니까 또 다른 생각에 발동이 걸렸다. 2006년 고비 사막으로 여행을 갔다. 보름 동안 50대, 60대의 김중만은 어때야 할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돌아와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 상업사진 그만할게. 그래도 괜찮겠지?” 6년 동안 상업사진을 찍으면서 50억원 이상을 벌었는데 남은 건 거의 없었다. 빌딩 한 채 사 두라는 주위의 말들 무시한 채 어려운 나라에 학교 지어 주고, 카메라 장비 사고, 스튜디오 운영하고, 먹고 놀고 했더니 남은 게 없었다. -2008년 관광공사의 외주를 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앵글에 담기 시작했다. 한국의 이미지는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되어 주었다. 그동안 나는 우리나라의 이미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어느날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에 갔다. ‘600년 된 학교인데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고, 옆에는 숲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600년 전에 이런 학교를 지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우리나라를 너무 피상적으로만 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이미지 촬영은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됐다. 무엇보다도 해외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극단적으로 동양적인 본질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극단적으로 서양적인 표현력을 갖고 있다’, ‘동양과 서양을 겸비한 이중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작가’ 등 평가들이 나왔다. -예술사진으로 다시 돌아와 시간이 흐르니 내 작품 가격이 2500만원, 5000만원, 7500만원 등으로 해가 다르게 뛰었다. 대부분 외국에서 구매하는데 3개월 전에 처음으로 작품 하나를 파리에서 1억원에 계약했다. 작품의 가격은 작가의 자존심이다. 5억원까지는 올려보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건 나의 철칙은 지키려 한다. 작품의 영역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순결해지자는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사진작가 김중만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다. 10대 중반 아프리카를 거쳐 프랑스에 유학해 21세 때인 1975년 니스에서 개인전을 열고 데뷔했다. 1977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에 역대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면서 주목받았다. 인물, 동물, 꽃, 풍경, 패션 등 다양한 주제에서 틀에 짜인 관습과 앵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을 창조해 왔다. 현재 스튜디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2006년부터 상업 활동을 중단하고 예술 사진에 집중하고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 지원과 캄보디아, 베트남 학교 건립 등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1954년 강원 철원 출생 ▲한산초, 홍익중, 프랑스 숄레 고등학교, 니스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 중퇴 ▲프랑스 아를 국제 사진페스티벌 젊은 작가상(1977), 올해의 패션사진가상(2000),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2010), 한국패션 100년 어워즈(2011) ▲ 작품집 ‘불새’, ‘인스턴트 커피’, ‘동물왕국’, ‘아프리카 여정’, ‘애프터 레인’, ‘네이키드 소울’, ‘오키드’ 등
  • [씨줄날줄] 글로벌 포식자 중국/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글로벌 포식자 중국/오일만 논설위원

    ‘저우추취’(走出去)는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로 중국의 핵심적인 대외개방 전략이다. 1999년 당시 장쩌민 국가주석은 “중국 기업들이 경제 글로벌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며 이 전략을 제시했다. 자국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 중국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의미다. 장쩌민의 뒤를 후진타오 주석은 저우추취 전략을 가다듬어 대규모 해외투자를 본격화했다. 1990년대 단순한 합작 형태는 국제적인 인수합병(M&A)으로 확산됐다. 초기엔 석유 등 천연자원과 첨단 기술 투자에 초점을 맞췄다. 2000년부터 15년간 중국의 에너지 국영기업들이 사들인 해외 자산만도 무려 1990억 달러(약 214조원)에 이른다. 중국의 저우추취 전략이 M&A로 활짝 꽃을 피운 것이다. 글로벌 포식자 중국의 해외 기업 사냥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중국은 올 상반기 해외 M&A 금액이 1211억 달러(약 140조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전체 해외 M&A 금액(1115억 달러)을 이미 훌쩍 넘어선 것이다. 10년 전인 2006년 전 세계 국가·지역에서 17위였던 중국의 연간 대외 투자액은 2014년 미국, 홍콩에 이어 세계 3위로 떠올랐고 올해는 미국과 우열을 다투는 투자 대국으로 우뚝 설 전망이다. 중국 기업이 최근 M&A에 열중하는 이유는 산업의 고도화를 추구하는 시진핑 지도부의 국가 정책 때문이다. 중국이 자국 생산품을 해외시장에 내놓는 ‘메이드 인 차이나’의 단계를 뛰어넘어 해외 현지법인 생산체제를 갖춰 ‘메이드 바이 차이나’의 단계로 이동하려는 전략이다. ‘현지생산-현지판매’ 시스템을 통해 중국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은 급격하게 상승했다. 중국은 2013년 말 10억 달러 이하 해외 투자의 경우 종전의 허가제를 폐지하고 신고제로 전환할 정도로 의지가 강하다. 첨단 분야 보조금을 늘리면서 국영 은행을 통한 대규모 융자로 인수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활발한 해외 기업 사냥은 우리에게 양면의 칼날로 다가온다. 중국은 지난해 55개 주요 품목 가운데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8개로 늘리며 한국과 동률을 이뤘다. 중국 기업들이 M&A를 활용해 핵심 기술과 콘텐츠, 제조 노하우를 습득해 한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줄인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평면 TV 등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시장에서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른 중국 기업들의 추격 속도다. 우리로선 기회도 된다. 산업 고도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우리와 수준이 비슷해진 중국 기업과의 협력 가능성도 커진 것이다. 우리로선 정체된 내수시장의 한계를 돌파하고 성장 활력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된다. 중국의 성장 동력을 한·중 간 윈윈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용중(用中)의 지혜가 절실하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모네·고갱·피카소… 유럽을 모은 마쓰카타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모네·고갱·피카소… 유럽을 모은 마쓰카타

    일본 최초의 현대식 공원으로 조성된 도쿄의 우에노 공원은 벚꽃 시즌의 인기 관광지로 꼽힌다. 오래 된 나무들이 안정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곳에는 넓은 호수와 판다로 유명한 동물원 외에 미술관과 박물관, 음악당 등 문화 공간들이 밀집해 있는 ‘우에노 문화지역’으로 도쿄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공원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국립서양미술관(國立西洋美術館)이 있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1887~1965)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미술관 건축으로 1959년 6월 완공됐다. ●프랑스 보관 ‘마쓰카타 컬렉션’ 370점 1959년 반환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구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근대식 교양교육의 상징이던 유럽 회화, 특히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을 유난하게 좋아해서 많은 일본 자본가들은 20세기 초 유럽 현지에서 작품을 사 모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가와사키 중공업의 전신인 가와사키 조선소 대표이사였던 마쓰카타 고지로(1865~1950)다. 국립서양미술관이 상설 전시하고 있는 걸작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마쓰카타 컬렉션’을 만든 주인공이다. 메이지시대 정치가의 아들로 태어나 예일대학과 소르본대학에서 수학한 마쓰카타는 1916년부터 1923년까지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지에서 유럽미술품과 공예품, 유럽의 일본 열풍으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우키요에(목판 풍속화) 작품을 수집했다. 도쿄에 서양미술을 보여 주는 미술관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정부가 국립장식미술관 문으로 쓰기 위해 로댕에게 주문했다가 계약 파기로 석고 상태로 방치돼 있던 ‘지옥의 문’을 브론즈로 주조하는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1927년 세계 대공황 여파로 가와사키 조선이 파산하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사재를 내놓게 되면서 일본에서 담보로 잡혔던 작품들은 여기저기로 팔려 나갔다. 런던 수장고에 보관하던 작품은 1939년 화재로 소실됐고, 프랑스에 보관하던 작품 400여점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전범국 국민으로서 책임을 물어 프랑스 정부에 귀속됐다. 일본 정부가 개인의 재산이라는 이유로 1951년부터 반환 노력을 펼친 끝에 1959년 반환이 결정됐다. 프랑스 정부는 고흐의 ‘아를의 침실’ 등 주요 작품 몇 점을 제외하는 한편 나머지 작품들도 공공을 위한 미술관에 공개한다는 조건하에 ‘기증 반환’했다. 회화 196점, 소묘 80점, 판화 26점, 조각 63점, 서적 5점 등 총 370점이 이때 일본으로 돌아왔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 설계 일본 정부는 이미 사망한 소유주를 대신해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에게 도쿄의 우에노 공원 내에 환수 작품들을 전시할 미술관 설계를 의뢰했다. 르코르뷔지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근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르코르뷔지에의 단일 건물은 파리 근교 프아시에 있는 빌라 사부아에서 보듯이 평평한 지붕을 가진 정방형의 건축물이 필로티(건물 하단부에 기둥을 세워 텅 비게 하는 구조)로 지탱하는 것이 특징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된 지상 3층, 지하 1층의 국립서양미술관 건물도 필로티로 지탱한 개방적인 공간과 나선형 복도, 자연 채광을 이용한 건축양식 등 곳곳에 르코르뷔지에의 개성이 녹아 있다. 정방형의 건축물을 필로티로 들어 올리고 그 하부의 입구로 들어가면 중앙홀에 이른다. 높은 천장에 삼각형 창문을 만들어 자연광이 들어오는 중앙홀을 지나 지그재그로 난 경사로를 따라서 2층 전시공간에 이르도록 하는 구조다. 르코르뷔지에는 평면과 단면의 모든 요소에 특유의 ‘모뒬로르’의 치수를 적용했다. 천장이 낮은 경우 유럽 성인 남자가 손을 뻗는 높이(2.26m)로 하고, 높은 경우엔 그 두 배, 더 높으면 그 세 배로 했다. ●日 국가 문화재 지정… 세계문화유산 등재 노력 일본 정부는 르코르뷔지에의 건물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8년 건물 전체를 지반에서 분리해 지진의 진동에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본관 건물에 대규모 면진 장치를 설치했고 2007년 일본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했다. NHK 보도에 따르면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이 미술관의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권고한 상태다. 중앙홀의 한 구석에는 미술관의 역사와 건설 당시의 미술관 모습,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들을 알리는 홍보물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 본관의 1층과 2층이 상설전 공간이고, 지하는 기획전시 공간이다.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쿠르베, 세잔, 마네, 모네, 르누아르, 반 고흐, 폴 고갱 등의 원화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소장 작품 중 모네의 1916년작 ‘수련’은 마쓰카타가 모네의 지베르니 작업실을 직접 방문해 1922년 작가로부터 구입한 작품으로 프랑스 정부에 몰수됐다가 1959년 일본에 돌아왔다. 지오토, 루벤스 등 중세 후기 작품에서 18세기 말까지의 성서를 주제로 한 종교화도 훌륭한 것이 꽤 많다. 이 밖에 피카소, 미로, 뒤뷔페, 폴록 등 20세기 후반의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 전반을 아우르는 컬렉션을 자랑한다. 회화 외에 조각, 소묘, 판화 작품 컬렉션도 알차고 기획전도 매우 수준이 높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삼성 “시대·조직문화 변화”…하계수련회·매스게임 폐지

    삼성 “시대·조직문화 변화”…하계수련회·매스게임 폐지

    삼성그룹이 전 계열사 공동 하계수련회와 이 기간 중 매스게임을 29년 만에 공식 폐지했다. 삼성전자가 직급 간소화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하며 그룹의 ‘스타트업 조직문화’ 확산에 시동을 건 것과 궤를 맞춘 행보다. ●수련회, 이건희 회장 취임후 개최 삼성의 하계수련회는 대졸 공채 1년차 신입사원들이 6월에 하는 행사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한 1987년부터 해마다 열렸다. 이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경영에 참여 중인 총수 가족들이 직접 참석하는 그룹 주요 행사의 하나다. 계열사별 신입사원들은 2~4주 전부터 수련회에서 선보일 뮤지컬·군무 등을 연습했다. 삼성 관계자는 “계열사별 순위가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것도 아닌데, 소속 회사 사장들이 다른 계열사 임원과 나란히 앉아 지켜보는 자리란 부담 때문에 사원들의 연습 경쟁이 치열했다”고 설명했다. ●이재용 부회장 체제이후 무산 수련회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매스게임은 1990년대 초반쯤부터 서서히 도입됐다. 1990년대 중반에 입사한 한 임원은 “큰 재해가 일어나 생략된 해도 있지만, 계열사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거의 모든 수련회마다 매스게임으로 회사별 목표를 공유하는 이벤트가 웅장하게 펼쳐졌다”고 회상했다. 2G(세대)폰인 애니콜의 외양과 영문명을 만들어 내는 삼성전자의 매스게임 영상이 2007년 유튜브에 공개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 회장이 입원하고 이 부회장 체제가 구축되던 2014년부터 하계수련회와 매스게임은 여러 가지 이유로 무산됐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추모 분위기 속에서 2박3일간 치러지던 수련회가 1박2일로 단축되며 매스게임이 생략됐고, 지난해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수련회 자체가 취소됐다. 이어 삼성은 올해부터 하계수련회와 매스게임 공식 종료를 선언했다. 삼성그룹 측은 29일 “안전사고 위험이 있고, 대졸 공채가 아닌 경력 사원들이 소외감을 갖는다는 지적도 있었다”면서 “시대와 조직문화가 변화했다는 판단에 따라 수련회를 폐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경력사원 소외감… 올부터 종료” 수련회를 대체해 올해 삼성 계열사들은 신입·경력을 막론하고 1년차 직원을 모아 선·후배, 임원 간 대화 등을 간소하게 진행했다. 몇 주 동안 땡볕에서 연습하느라 치르던 고생이 사라졌지만, 수련회 기간 탄생하던 ‘사내 커플’이나 수련회에 온 임원 앞에서 발군의 끼를 발산해 영업 부서로 전출되는 식의 ‘발탁 인사’도 함께 사라짐에 따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빅데이터·사물인터넷·AI 등 활용… ‘스마트 정부’ 만들어 재난 선제대응”

    “빅데이터·사물인터넷·AI 등 활용… ‘스마트 정부’ 만들어 재난 선제대응”

    “지난 정권에서 금기어로 여겨지던 ‘전자정부’가 되살아나고 있어요. 전자정부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지향점도 달라지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구현할 수 있는 역량도 달라집니다. 정부가 빅데이터 등 최신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활용했다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사태, 세월호 침몰 사고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라마다프라자 제주 호텔에서 열린 제1회 ‘유라시아 시대 상생발전을 위한 한·독립국가연합(CIS) 협력 네트워크 구축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한 안문석(72·행정학) 고려대 명예교수는 29일 이렇게 말했다. 안 교수는 올 4월 출범한 행정자치부 ‘전자정부추진위원회’에 민간부문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2000년 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자정부 추진을 지시하면서 이듬해 발족된 전자정부특별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아 전자조달 사업 등 11대 과제를 추진한 전자정부 전문가다. 안 교수는 “당시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진 민간에 권한이 부여됐고, 다른 정부 부처끼리 협업도 이뤄졌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는 그 바통을 이어받아 전자정부의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전자정부란 말 자체가 사라졌다. 안 교수는 “반 토막 예산에다 추진력을 잃었던 게 사실이었는 데도 2010년 유엔 전자정부 평가에서 1위를 한 것은 이전 10년의 노력 덕분이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소통, 개방, 공유, 협력을 핵심 가치로 하는 정부3.0 정책 기조에 밀렸던 전자정부 정책이 전자정부추진위 발족으로 힘을 받게 됐다. 안 교수에 따르면 전자정부 생태계를 되살린 뜻깊은 사건이다. 전자정부추진위가 말하는 전자정부 지향점은 ‘스마트 정부’다. 안 교수는 “시간 안에 문제를 과학적으로 풀 수 있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학습능력을 갖춘 정부를 만들어야 사회재난 때도 국민의 고통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을 이용하면 사회 문제를 예측하고 분석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0년대 초와 비교하면 기술력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졌다”며 “ICT 성장속도가 엄청난데, 이미 유엔 전자정부 평가 1위인 전자정부를 추진하는 데 왜 돈을 들여야 하느냐고 묻는 공무원도 봤다”고 한탄했다. 이어 “김대중 정부 땐 전자정부 유지에 필요한 ‘감가상각충당 재정’을 별도로 마련했다. 기관별로 재정의 일정 비율을 윈도 시스템, 노후한 개인컴퓨터(PC), 각종 부품 등을 바꿀 때 사용하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마트 정부 실현을 위해 전 공공기관에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CIO는 각 기관과 관련된 사회 현안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하면 문제를 ICT로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대책을 제시하는 책임자다. 안 교수는 “현안 발생 때 진정한 스마트 정부라면 ICT기술로 문제를 실시간 해결해야 한다. 그러려면 CIO의 존재가 필수”라고 말했다. 제주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유일호 부총리 “추경 편성해도 누리과정 예산 지원은 불가”

    유일호 부총리 “추경 편성해도 누리과정 예산 지원은 불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 “추가경정예산(추경)을 누리과정 예산으로는 편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 예산에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누리과정은 이미 교육청 업무이며, 교육청 일부는 예산이 이미 편성돼 있어 중앙정부 예산을 지원하면 지역 간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면서 “추경과 누리과정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부총리는 추경 편성 결정 배경에 대해 “구조조정 자체가 대량실업에 해당하느냐를 두고 걱정했지만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고용 현상이 상당히 심각한 실업의 전초가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4년간 세 번의 추경이 편성된 것에 대해서는 “지난해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자연재해 때문에, 올해는 저유가가 반등 되지 않아 수출이 감소하는 가운데 예상하지 못한 구조조정 등이 발생한데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의 요인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추경안을 7월 중으로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가족애·향토애 깃든 용두공원 조각상

    가족애·향토애 깃든 용두공원 조각상

    서울 동대문구의 지역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기증해 화제다. 동대문구는 자신의 조각 작품을 기증한 민복진(89)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28일 구청장실에서 기증증서를 전달했다. 기증받은 작품은 ‘모자상’ 등 대표작 3점을 동대문구 용두공원에 전시하고 구 문화예술 발전과 전시·연구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김 작가는 국내 제1세대 조각가이며 1960년대부터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살아온 원로 향토작가이다. 지난 6월 17일 제주조각공원에서 자리를 옮긴 작품은 ‘모자상’, ‘가족상’ 등 3점으로 민 작가의 대표작이다. 가족애를 주제로 인간의 무한한 사랑을 담아낸 이 작품들은 선생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다. 동대문구는 이번 작품 기증을 계기로 용두공원을 갤러리파크로 조성할 계획이다. 가족의 사랑과 정감을 주제로 작가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이 담겨 있는 민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지역 예술가 등의 작품을 기증받아서 함께 상설 전시공간으로 꾸미겠다는 복안이다. 또 용두공원을 멋진 작품과 어우러지는 지역 명소로 가꿔갈 예정이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용두공원을 갤러리파크로 조성하여 조각과 예술이 있는 공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동대문구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신 조각가 민복진 선생의 고마움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설렘보다 편안함 내 생애 첫 베트남②다낭, 호치민

    설렘보다 편안함 내 생애 첫 베트남②다낭, 호치민

    ●무지개 매력을 품은 휴양지 다낭Da Nang 베트남 대표 럭셔리 휴양지, 다낭. 그러나 해안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더 다채로운 매력의 여행지들이 얼굴을 내민다. 옛 항구 도시와 산 정상의 테마파크, 신비로운 대리석 산까지. 베트남의 한강을 산책하다 깨끗하고 깔끔한 다낭 시내는 강변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재밌게도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강 이름이 한강이다. 서울보다는 덜 복잡하고 한적해 운치 있는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한강 변에 접해 있는 한 마켓Han River Market은 현지인과 여행자가 함께 찾는 즐거운 장소다. 1층에는 식료품과 주전부리들이, 2층에는 의류와 신발 가게들이 주를 이룬다. 요즘 유명 브랜드의 OEM이 베트남에서 이뤄질 정도로 이곳 의류는 질이 꽤 좋다. 시장에서 흥정은 덤으로 주어지는 즐거움이다. 저렴한 가격에 득템하는 기쁨을 누려 보는 건 어떨까. 점포 뒤편에서 부지런히 미싱을 돌리며 옷을 짓고 있는 광경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장 맞은편엔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예쁜 카페도 있다. 달콤한 베트남식 커피가 쇼핑에서 얻은 즐거움을 두 배 더 배가시켜 준다. 먼 옛날 참파 왕조Cham Pa의 유적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참 박물관Cham Museum도 한 번 들러 볼 만하다. 옛 사람들이 정교하게 조각한 석상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랜 세월에 조각품들이 많이 무뎌지긴 했지만 도구도 변변치 않았을 시절에 어떻게 이런 조각품들을 만들었을지 놀랍기만 하다. 도시는 밤이 되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저녁 무렵 한강을 가로지르는 용 다리의 야경을 감상하며 유유히 뱃놀이를 즐겨 보자. 다낭의 핫 플레이스로 소문난 노보텔 호텔의 루프톱 클럽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어 보는 건 또 어떤지. 반짝반짝 빛나는 다낭 시내를 내려다보며 화끈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최적의 코스다. 음양오행의 철학이 깃든 산 다낭 시내에서 차로 약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오행산五行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이 산은 신기하게도 각각의 봉우리가 음양오행인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를 형상화하고 있다. 산길 입구부터 꽤나 가파른 계단길이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체력이 걱정된다면 중턱까지 수직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방법도 있다. 반면 계단길 중간에 세워진 절이 아름다워 일부러 걸어 올라가는 이들도 많다. 걷기 시작할 땐 온갖 푸념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절에 도착하니 그 모든 불평들이 쏙 들어가 버렸다. 하얗게 빛나는 부처님과 제자들, 사슴 한 마리가 보리수 아래 둘러앉은 조각상이 마음에 평화로움을 가져다준다. 오행산은 산 전체가 대리석이어서 더 신비롭다. 어딘가 깎여 나간 곳이나 동굴 벽면들을 만져 보면 반질반질한 촉감이 여느 산과는 다른 느낌이다. 잠깐 동안의 산행에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 오래된 항구의 정취 다낭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호이안Hoi An은 16~17세기경 동남아 최고의 무역항으로 손꼽혔던 곳이다. 투본Thu Bon강 하구에 형성된 항구 도시 곳곳에서 번성했던 그때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다낭을 비롯해 다른 지역 항구들이 부상함에 따라 호이안의 역할은 점차 퇴색되었지만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덕분에 베트남에서 세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도시가 되었다. 지금은 무역상 대신 전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여행자들로 호이안은 제2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호이안 구시가지는 과거로 떠나는 시간 여행 코스다. 전통적인 목조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길을 누비다 보면 순식간에 몇 세기를 훌쩍 넘어온 듯한 착각마저 인다. 예전 번성했던 무역도시답게 다른 나라의 건축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들도 눈에 띈다. 구시가지 끝자락에는 당시 일본인들이 놓았다는 목조 지붕을 얹은 독특한 양식의 내원교가 남아 있다. 재밌게도 다리를 가운데 두고 왼쪽은 일본인들이, 오른쪽은 중국인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구시가지는 차 없는 거리로 여행자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배려했다. 거리를 따라 기념품 숍과 갤러리, 카페, 각종 노점들이 즐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거리지만 구석구석 재미난 것들이 많아 하루 종일 이곳에만 있어도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호이안을 여행할 때는 최대한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다니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호이안의 매력은 밤에 더욱 빛난다. 오색찬란한 빛깔로 물든 밤거리는 오히려 낮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호젓하던 낮의 거리와 달리 흥겹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여행자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한다. 노천 마사지숍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어도 좋고, 환하게 불을 밝힌 노점상 사이를 오가며 못 다한 쇼핑 삼매경에 빠져도 좋다. 별빛 총총한 노천 바에 앉아 맥주 한 잔 들이키며 호이안의 밤을 맘껏 즐겨 보는 것 또한 여행자만의 특권이다. 베트남의 옛 모습을 엿보다 비나 하우스Vina House는 베트남 전통 생활 문화를 재현한 박물관이다. 베트남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Ao Dai에 논Non을 쓰고 나타난 여인이 환한 미소와 함께 전시물들을 설명해 준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이곳저곳 관람하는 동안 소박하고 손재주 많은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따뜻한 차와 다과까지 준비한 그녀의 배려 깊은 환대에 마음이 환히 열렸다. 비나 하우스Vina House Km 950, Highway 1A, Dien Ban Dist Quang Nam Prov, Vietnam +84 510 3717 888, 3717 999(102) www.vinahousespace.com 산 정상의 신기한 테마파크 다낭 북서쪽에는 높이가 1,487m에 달하는 바나Ba Na산이 우뚝 서 있다. 작년 4월, 이곳에 테마파크 ‘바나 힐스 마운틴 리조트Ba Na Hills Mountain Resort’가 개장하면서 다낭에서 가 봐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늘었다. 바나 힐스로 향하는 길은 마치 산꼭대기에 꼭꼭 숨겨 놓은 비밀의 성을 찾아가는 것 같다. 산줄기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케이블카만이 바나 힐스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다. 바나 힐스 케이블카는 전 세계 10대 케이블카 안에 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로프웨이5,801m, 17분를 자랑하며 산 중턱에 세워진 역간의 고도 차이가 1,368m에 달한다. 케이블에 줄줄이 매달린 캐빈 수만 210대, 시간당 3,0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규모에 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케이블카는 막상 탑승하니 외의로 편안하다. 유럽의 안전 기준에 맞춰 시공됐다는 케이블카는 흔들림은커녕 안정감 있는 운행에 깜짝 놀랄 정도다. 운무를 헤치며 거침없이 쭉쭉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바나 힐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 충분했다. 희뿌연 안개 너머로 바나 힐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 정상에 이런 공간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뾰족하게 솟은 성과 고풍스런 교회, 우체국, 노천에 펼쳐진 파라솔 테이블 등 프랑스식으로 꾸며진 작은 마을이 하늘 아래 펼쳐져 있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휴양지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던 곳을 이후 베트남 기업인 썬그룹에서 테마파크로 단장해 세계적인 휴양지로 선보인 것이다. 그야말로 놀랍다. 바나 힐스 안에는 탑승 기구들이 가득한 놀이동산과 유명 인사들의 밀랍인형이 전시된 왁스 뮤지엄, 사계절 꽃향기로 채워지는 리 자딘 디아모르Le Jardin d’Amour 화원과 디베이Debey 와인 저장고 등 흥미로운 시설들이 많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고속 튜브 썰매Alpine Coaster와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는 기차도 인기 있는 코스들이다. 심한 안개 탓에 고속 튜브 썰매는 타 보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즐긴 놀이동산에서 한바탕 신나게 웃고 떠들 수 있었다. 왁스 뮤지엄에서 만난 비와 싸이도 어찌나 반갑던지 함께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와인 한 잔 홀짝이며 꽃향기에 취해 있다 보니 잊고 지내던 원초적 즐거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바나 힐스에는 고성 호텔도 있다. ‘머큐리 바나 힐스 프렌치 빌리지 호텔’은 19세기 프랑스풍으로 꾸며진 멋진 잠자리와 수준 높은 식사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어간다면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의 객실과 로비, 레스토랑이 바나 힐스에서의 추억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시설을 확장 중인 바나 힐스. 다음에 찾아올 땐 어떤 즐거움이 더해질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바나 힐스 마운틴 리조트BA NA Hills Mountain Resort An So’n-Hoa Ninh, Hoa Vang Prefecture, Danang City, Vietnam +84 511 3791 999 www.banahills.com.vn/en ●사이공의 오늘호치민Ho Chi Min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정, 베트남에서 가장 번화한 대도시 호치민이다. 허락된 시간은 고작 반나절. 당연히 아쉬움이 컸다. 작은 파리 속을 달리는 오토바이 호치민의 옛 이름은 사이공Saigon이다.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미스 사이공>은 이 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영국에서 초연된 뮤지컬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사이공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 이전인 1976년 베트남 남북이 통일되면서 이미 사이공은 호치민으로 개칭되었다. 호치민시의 또 다른 별칭은 ‘오토바이 도시’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가장 먼저 보게 되는 풍경이 오토바이로 가득한 거리일 정도로 이곳의 오토바이 교통량은 어마어마하다. 소음과 매연이 심한 것은 당연지사. 호치민을 여행할 땐 마스크는 필수 품목이다. 오죽하면 이곳 주민들조차 외출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닐까.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오토바이 탑승자 모두 헬멧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헬멧 착용이 여전히 일상화되지 않는 국내와 비교해 볼 때 꽤나 신선한 풍경이다. 헬멧 미착용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고 하는데 실제 거리에서 벌어진 엄한 단속 활동을 접하고 나니 이 같은 풍경이 절로 이해가 된다. 호치민은 작은 파리로 불릴 만큼 곳곳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넘쳐난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립된 옛 건물들과 세련된 현대식 건축물이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독특한 케미가 전 세계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식민지의 부산물들을 모두 없애기보단 오히려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현재에 맞게 재활용한 베트남인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다. 호치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는 노트르담 성당과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의 걸작물인 중앙 우체국, 호치민시의 랜드마크인 인민위원회 청사 등이 서로 지척에 있어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에 좋다. 주변에 여행자 거리와 쇼핑센터, 오페라하우스, 공원 등이 자리해 구경거리도 많다. 벤탄 시장Ben Thanh Market도 잠깐 들렀으나 점포들이 빽빽이 밀집한 시장 안이 너무 더워 오래 있지는 못했다. 발품을 판 만큼 수확을 얻는 곳이라지만 이번엔 분위기만 살짝 엿보고 돌아설 수밖에. 호치민에서 보낸 시간이 고작 반나절에 불과해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여행자에게 진리처럼 내려오는 ‘아쉬워야 다시 찾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다음 베트남행은 호치민에서부터 시작해 볼 요량이다. 아아, 이렇게 베트남 첫 방문에 덜컥 발목을 잡혀 버렸다. ▶travel info AIRLINE베트남 최초의 민간 저비용 항공사인 비엣젯 항공은 인천-하노이, 인천-호치민 구간을 주 7회 매일 운항한다. 구간별 편도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국, 출국 도시를 다르게 하면 더욱 효율적인 여행 코스를 짤 수 있다. 비엣젯 항공은 국제선뿐 아니라 다낭을 비롯해 베트남 주요 도시들도 국내선으로 연결한다. 비엣젯 항공 스카이보스Skyboss 프리미엄 좌석을 이용하면 한결 편리하고 쾌적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스카이보스 프리미엄 좌석 구매시 전용 카운터를 통해 체크인할 수 있고 탑승시에도 우선권이 부여되며 인천(아시아나 항공 라운지)과 베트남 국내 공항에서 비즈니스 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호치민에서 귀국하는 경우 비행기 출발이 새벽 시간대이기 때문에 라운지 이용 혜택은 무척 유용하다. 이 밖에 기내식이 무료로 제공되며 위탁수하물(무게 20kg 미만) 체크인 및 일정 변경시 발생되는 수수료도 면제된다. VISA베트남을 15일 이내 여정으로 여행하는 경우 귀국 항공권이나 제3국행 항공권을 지참하면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단 베트남 출국 후 30일 이내에 재방문할 때에는 비자 발급이 필요하다. 베트남 입국시에는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2010년부터 입국 신고서 제도가 폐지되어 입국 수속시 여권만 준비하면 된다. TIME베트남은 한국보다 2시간 느리다. 베트남 도착 직후 시계를 현지 시간으로 맞추어 놓는 것이 편하다. 잠깐 미뤄둔 사이 박물관이나 공연 입장 시간 등을 착각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실례로 시계 맞추는 것을 깜빡한 기자는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으러 갔다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 시계가 7시30분인 것을 확인하고 느긋하게 내려갔으나 현지 시간은 5시30분이었던 것. 이미 체크아웃까지 한 상태여서 문조차 열지 않은 레스토랑 앞에서 홀로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RESORT인터컨티넨탈 다낭 선 페닌슐라 리조트Intercontinental Da Nang Sun Peninsula Resort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안 절벽에 세워진 리조트는 휴식 그 자체이다. 전용 해변과 야외 풀장, 스파, 수준급 레스토랑 등 럭셔리한 부대시설과 더불어 4개 카테고리로 나뉘는 고급 객실은 쉼에도 남다른 품격을 부여한다. 직접 자신에게 맞는 베개를 고르는 필로우 테스팅은 이곳만의 섬세한 서비스를 느끼게 한다. 다낭 시내와 호이안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해 이곳에 머물며 편하게 다낭 여행을 즐길 수 있다. SHOPPING다낭 롯데마트 식품 코너는 한국 여행자들에게 특화된 쇼핑 스폿이다. 반신반의하며 따라간 곳엔 이미 수많은 한국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여행자들은 바구니가 달린 카트를 끌고 다니며 선반에 진열된 물품들을 거의 쓸어 담다시피 쇼핑을 즐긴다. 늦은 오후에 가면 품절되어 살 수 없다는 인기 품목은 역시 커피다. 귀여운 다람쥐가 그려진 커피봉지는 베트남 여행자라면 하나씩 손에 들고 오는 대표 기념품. 커피 외에 유명한 차 브랜드도 불티나게 팔린다. 가격은 확실히 저렴한 편이다. 글·사진 Travie writer 정은주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비엣젯항공 www.vietjetair.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여야, 정부 추경안 편성 필요성은 ‘공감’···합의 타결은 ‘글쎄’

    여야, 정부 추경안 편성 필요성은 ‘공감’···합의 타결은 ‘글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부가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일환으로 10조원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가능한 빨리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한 만큼 추경안 편성을 위해 다음달 임시국회가 소집될 것으로 보인다. 2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추경안을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추경안 결산 법정 시한(8월 말)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두 야당에선 ‘결산 국회’를 명분으로 한 ‘7월 임시국회’ 소집도 논의된 바 있다. 지난해 7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및 가뭄 극복’을 이유로 편성된 11조 8000억원의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1년 만이다. 이번 추경안이 법적 요건을 충족한다는 데는 여야의 이견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재정법에 규정된 추경안 편성 요건은 ’경기침체·대량실업’에 있는 만큼 여야도 이런 이유로 정부에 추경안 편성을 강력히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추경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정무위원회를 비롯한 추경 관련 상임위원회 심사를 거쳐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의결하면 본회의에 상정, 표결로 처리되는 절차를 밟는다. 정부의 이번 추경안 편성은 야당에서 먼저 요구했으며, 여당도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는 점에서 추경 편성안의 국회 통과 자체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해고 등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여야가 정치적으로 제동을 걸 만한 명분이 없는 데다, 최근 브렉시트의 여파로 세계 경제가 휘청대는 상황은 추경 편성의 당위성을 강화하는 요인이다. 문제는 추경 편성안을 언제까지 처리하느냐, 이 과정에서 어떤 변형이나 추가 조건이 붙느냐, 또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변수다. 더민주와 국민의당 모두 추경 편성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여소야대의 3당 구도에서 추경안 통과는 두 야당의 동의가 필수적인 만큼 일정부분 정부·여당의 양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당장 더민주는 ‘누리과정 예산’을 고리로 정부·여당을 압박할 태세다. 변재일 더민주 정책위의장은 이날 “누리과정 등에서도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공언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위한 상법 개정에 정부·여당이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국민의당도 누리과정 예산에 더해 조선·해양업계 및 국책은행 부실에 대한 정부 당국의 책임자 문책, 자본확충펀드를 통한 구조조정 재원 마련 정책의 철회 등을 요구해 이들 주장에 난색을 보이는 새누리당과의 밀고 당기는 협상전을 예고했다. 지난해 추경안의 경우 ‘국가정보원 해킹 프로그램 구입 의혹’에 대한 청문회 개최나 법인세율 인상 문제 등 다른 정치적 현안이 연계되면서 여야의 협상 타결에 약 3주일이 걸린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동대문구 용두공원에 ‘1세대 조각가’ 민복진 조작가 작품 기증해

    서울 동대문구 용두공원에 ‘1세대 조각가’ 민복진 조작가 작품 기증해

    서울 동대문구의 지역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기증, 화제다. 동대문구는 자신의 조각 작품을 기증한 민복진(89)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28일 구청장실에서 기증증서를 전달했다. 기증받은 작품은 모자상 등 대표작 3점을 동대문구 용두공원에 전시하고 구 문화예술 발전과 전시·연구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김 작가는 국내 제1세대 조각가이며 1960년대부터 구 회기동에서 살아온 원로 향토작가이다. 지난 6월 17일 제주조각공원에서 자리를 옮긴 작품은 ‘모자상’, ‘가족상’ 등 3점으로 민 작가의 대표작이다. 가족애를 주제로 인간의 무한한 사랑을 담아낸 이 작품들은 선생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다. 구는 이번 작품 기증을 계기로 용두공원을 갤러리파크로 조성할 계획이다. 가족의 사랑과 정감을 주제로 작가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이 담겨 있는 민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지역 예술가 등의 작품을 기증받아서 함께 상설 전시공간으로 꾸미겠다는 복안이다. 또 용두공원을 멋진 작품과 어우러지는 지역 명소로 가꿔갈 예정이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용두공원을 갤러리파크로 조성하여 조각과 예술이 있는 공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동대문구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신 조각가 민복진 선생의 고마움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정부서울청사 로비서 치매 어르신 그림 전시

    정부서울청사 로비서 치매 어르신 그림 전시

    행정자치부는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1층 로비에서 ‘꿈과 희망’을 주제로 70~100세 치매 어르신들의 그림 전시 제막식을 열었다.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에서 136개 작품을 기증받아 ‘붙박이’ 아트타일로 깔끔하게 제작했다. 1000여개 작품 중 김영석(성신여대 미술대학 석좌교수) 정부청사관리소 미술품 운영 자문위원이 엄선했다. 2층 국무위원식당과 12층 행자부 차관실에도 각각 ‘내 마음속 고향’과 ‘기억 속의 세상’이란 주제로 나눠 아트타일 50개, 32개를 설치했다. 김성렬 행자부 차관은 “오늘날 갈수록 사그라지는 효의 의미를 돌아보고, 사회적 역할의 감소로 소외당하는 노년층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자는 취지를 담았다”며 “정부부터 노년층에게 건강과 용기를 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데 한몫을 거들기 위해 고정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막식엔 자신의 소중한 추억을 엮어 각각 ‘결혼식’과 ‘소풍 가는 날’이라는 작품을 내놓은 최선례(83)·황미숙(82) 할머니도 참석했다.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강강수월래’라는 작품도 기증한 두 할머니는 각종 전시회에 참가하는 등 빼어난 그림 솜씨를 가진 것으로 평가됐다. 신현옥 치매미술치료협회장은 “과거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회상 요법을 통해 어르신들께 삶의 목표를 제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 나눈 故 김성민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 나눈 故 김성민

    5명에게 새 생명을 전하고 세상을 떠난 배우 김성민의 빈소에 동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009~2010년 KBS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서 동고동락했던 개그맨 이경규와 이윤석, 윤형빈, 뮤지션 김태원 등은 26일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2006년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을 함께한 오지호, 김광규도 문상했다. 27일에는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에서 호흡을 맞췄던 한그루가 조문했다. 장서희, 정동하, 연예인 야구단 알바트로스, 드라마 제작사 대표와 방송사 임원 등이 보낸 화환이 빈소에 자리했다. 온라인에서도 애도가 이어졌다. ‘환상의 커플’에서 부부로 나온 한예슬은 인스타그램에 ‘친구여, 편히 쉬어요’라는 영문 글귀와 함께 하얀 국화 한 송이를 띄웠다. ‘남자의 자격’에서 인연을 맺은 뮤지컬 배우 선우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애도를 표시했다. 그는 김성민이 5년 전 그려줬다는 그림 하나를 공개하면서 “힘들 때 도움되지 못해 미안하다. 그곳에서 눈치 보지 말고 걱정 없이 행복하게 마음껏 웃으면서 함께해 달라”고 썼다. 김성민은 지난 24일 자택 욕실에서 위중한 상태로 발견됐다. 그는 이틀 만에 뇌사 판정을 받았으며 평소 뜻에 따라 콩팥과 간장, 각막 등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뇌사판정 김성민 5명에게 새 생명

    뇌사판정 김성민 5명에게 새 생명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목을 맸다가 뇌사 판정을 받은 배우 김성민(43)씨가 생명을 나누고 세상을 떠났다. 서울성모병원은 26일 서울 서초구 본원에서 브리핑을 열고 평소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던 김씨가 콩팥 2개와 간장 1개, 각막 2개를 난치병 환자 5명에게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병원은 이날 뇌사판정위원회를 열어 김씨의 뇌사 판정 기준을 따진 뒤 오전 8시 45분 최종 뇌사 판정을 했다. 장기이식센터장 양철우 교수는 “뇌로 가는 혈류와 뇌파가 소실된 상태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뇌간 기능이 정지된 상태를 두 차례 확인해 최종 결정을 내렸다”며 “김씨가 평소 가족이나 친구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면서 가족이 이틀 만에 장기 기증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장례식장은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되며 발인은 28일로 예정됐다. 앞서 김씨는 지난 24일 부부 싸움을 하고 욕실에서 목을 매 위중한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과 구급대에 의해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뇌사 상태에 빠졌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분석 등 타살 여부에 대해 수사했지만 혐의점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개관 90년된 ‘예술의 신전’ 日 도쿄도 미술관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개관 90년된 ‘예술의 신전’ 日 도쿄도 미술관

      도쿄의 우에노공원을 찾은 것은 5월 하순의 토요일 오전 9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공원 안쪽 어딘가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원래 목적 했던 국립서양미술관은 공원 입구쪽에 위치해 있는데 어디로 가는 것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국립서양미술관 개관 시간까지는 좀 여유가 있고, 궁금하기도 해서 사람들을 따라가 봤다. 공원 안 쪽에 위치한 도쿄도 미술관(東京都美術館) 앞에 줄이 뱀이 또아리를 틀듯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보니 ‘자쿠추 탄신 300년 기념전’(2016년 4월 22일~5월24일)이 열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210분 이상 대기’라고 쓴 판을 들고 안내원들이 곳곳에 서서 확성기로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모습이 이채로웠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은 놀랍기만 했다. 자쿠추가 도대체 누구이길래? 대단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이토 자쿠추(1716~1800)는 동물, 식물, 야채, 그리고 불교화에 능통했던 에도시대 중엽의 화가다. 교토의 야채상 집에서 태어나 집안일을 도우면서 살다가 40세가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중국이나 조선의 그림을 따라 그리다가 모방만으로 자기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고 집중적인 자연관찰을 통해 터득한 미감을 바탕으로 세밀하고,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한 작품을 그렸다. ‘일본적 아름다움’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들을 남긴 화가의 탄신 300년을 기념해 미술관에서는 초기부터 만년까지의 대표작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는 이토가 교토의 쇼코쿠지에 기증한 ‘석가삼존상’ 3폭과 궁내청 소장의 ‘동식채회’ 30폭이 처음으로 도쿄에서 한자리에 모이는 전시였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갔다. 마침 그곳을 찾았던 때가 특별전시 마지막 주말이어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던것이었다.  너무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자쿠추의 전시는 관람을 포기했지만 덕분에 자쿠추라는 화가와 도쿄도 미술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도쿄도 미술관은 1926년 5월 1일 개관해 올해로 90주년을 맞은 일본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다. 기업가인 사토 케이타로(佐藤慶太)가 100만엔(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10억엔 이상)을 기부해 설립됐다. 개관 당시의 이름은 도쿄부 미술관. 개관 때부터 소장품을 거의 보유하지 않고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일본미술전람회와 신인공모전 등을 주관했다. 그런 이유로 개관 당시 미술가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미술관 건물은 근대 일본에서 양식건축의 대가로 맹활약했던 오카다 신이치로(1883~1942)가 설계했다. 오카다는 도쿄제국대학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과 도쿄예술대학에서 오랫동안 가르치며 수많은 제자를 양성한 교육자이자 건축가다. 오사카시 중앙공회당(1917년), 도쿄의 가부기좌(1924년)와 메이지 생명관(1924) 등이 그가 설계한 건물로 모두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미술관 건물은 ‘예술의 신전’을 오르듯이 올라갔다가 다시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 열린 공간으로 이어지는 특이한 구조다. 조각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의 주변으로 공예 전시장, 사무실과 카페테리아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위층이 메인 공간인 회화갤러리다.  1975년 현재의 붉은 벽돌과 유리파사드가 조화를 이룬 미술관 건물이 들어선 이후 미술도서실을 운영하고 대규모 기획전을 열기 시작했다. 조각 작품을 제외한 현대미술 소장품이 1995년 개관한 도쿄도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되면서 다시 공모전 및 기획전 대관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 2012년 전시실을 전반적으로 리뉴얼하고 다양한 기획전과 문화예술교육으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미술관 설립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사토 케이타로의 이름을 딴 아트라운지도 이때 마련됐다.  6월 현재 이곳에서는 자쿠추전에 이어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인 퐁피두 센터가 소장한 1906년에서 1977년의 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하는 ‘퐁피두센터 걸작전’이 열리고 있다. 피카소, 마티스, 들로네, 칸딘스키, 보나르 등 20세기 거장들의 회화, 조각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다음으로 올 가을 시즌에는 ‘반고흐와 고갱’전이 기다리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조계종 총무원 ‘사찰 도서관’ 모집

    조계종 총무원은 출판문화를 활성화하고, 신도들의 인문 소양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부처님 글사랑 사찰 도서관’ 선정 사업을 7월 15일까지 실시한다. 이 사업은 도서관 설치를 계획하는 사찰을 대상으로 진행하며 사찰에서는 도서관 신청 동기와 공간에 대한 설명, 운영 계획 등 소정 양식을 기간 내 제출하면 된다. 선정된 사찰에는 불교출판문화협회가 후원하는 서적 1000권과 ‘부처님 글사랑’ 현판을 기증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조계종 총무원 홈페이지(www.buddhism.or.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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