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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병원 일가 미용 목적 제대혈 사용 사실로

    산모들이 연구 목적으로 기증한 제대혈을 차병원 일가가 미용·보양 목적으로 재사용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는 26일 차병원의 제대혈 주사 불법 사용 의혹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1월부터 차광렬 회장은 3차례, 차 회장의 부인은 2차례, 차 회장의 아버지는 4차례 제대혈 주사를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진료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앞서 차병원은 제대혈 불법 사용 의혹과 관련해 “노화에 관한 임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초기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이 어려워 차 회장이 한두 차례 임상 목적으로 시술받은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산부인과에서 출산 후 버려지는 제대혈은 산모가 연구용으로 기증하는 경우에만 활용할 수 있으며 기증받은 제대혈이라도 질병관리본부의 승인을 받아 치료·연구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차병원 일가는 합법적으로 사용한 제대혈 임상연구에도 친인척을 동원했다. 제대혈 임상연구 대상자 160명 가운데 48명이 차 회장의 지인이나 친척이었다. 복지부는 제대혈법과 의료법 위반으로 차 병원을 경찰에 수사 의뢰할 방침이다. 제대혈이란 태아의 탯줄에서 나온 혈액으로, 혈액을 생성하는 조혈모세포와 세포 성장·재생에 관여하는 줄기세포가 풍부하게 함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中 한한령 뚫은 삼계탕 버스 광고

    中 한한령 뚫은 삼계탕 버스 광고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25일 중국 베이징의 534개 시내버스 전 노선에서 한국산 삼계탕 홍보 동영상을 방영한다고 밝혔다. 삼계탕 중국 수출은 한국 축산업계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우리 정부는 2006년부터 검역위생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정부와 협상을 진행했고, 지난 6월부터 수출길이 열렸다. 광고는 베이징 시내버스 전 노선의 스크린을 통해 하루 40회씩 방영된다. 베이징 시내를 누비는 버스는 2만 6000대이며 하루 이용객 수가 3700만명이다. 15초 분량으로 제작된 동영상은 삼계탕의 유래, 재료 및 효능, 레토르트 삼계탕의 안전성과 맛의 우수성 등을 홍보하고 있다. aT는 지난 11월에 오리온, 금호타이어, 만도기계 등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중국 근로자들에게 삼계탕 1만개를 제공하는 시식행사를 실시했으며, 연말연시에 양로원, 고아원 등 사회복지시설에 삼계탕을 기증하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aT 중국본부 이필형 본부장은 “한류 제한령을 뚫고 성사시킨 홍보 동영상”이라면서 “조류독감(AI)으로 실의에 빠진 한국 양계 농가에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기아차 노사, 차량 18대 기증

    기아차 노사, 차량 18대 기증

    기아자동차는 국내영업본부 노사합동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전국 사회복지단체에 차량 18대를 전달한다고 25일 밝혔다. 기아차 국내영업본부 내 서비스 부문 노사는 지난 23일 경기도 시흥에 있는 거모종합사회복지관에서 기증식을 갖고 전국 사회복지단체에 레이 9대를 기증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신용정보원 사랑의 연탄 3만장 기증

    신용정보원 사랑의 연탄 3만장 기증

    민성기(오른쪽) 한국신용정보원장이 지난 24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마을에서 ‘사랑의 연탄 나누기’ 봉사활동을 한 뒤 허기복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와 함께 연탄 기증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국신용정보원 제공
  • 팔 없이 태어난 남자, 32년 만에 ‘새 팔’ 얻다

    팔 없이 태어난 남자, 32년 만에 ‘새 팔’ 얻다

    선천적으로 팔이 없는 채 태어난 한 남성이 30여 년 만에 새 팔을 이식받게 됐다고 폴란드 현지 언론이 22일 보도했다. 표트르(32)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선천적인 결손증으로 인해 왼쪽 팔이 없이 태어났다. 하지만 지난 주 갑작스럽게 사망한 사람의 팔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고, 13시간 동안의 대수술 끝에 난생 처음 왼팔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수술을 집도한 브로츠와프 의과대학병원 의료진은 “전 세계에서 최초로 선천적 결손이 있는 성인에게 팔을 이식하는 수술을 진행했다”면서 “이는 신경생리학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진은 수술 전 많은 연습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선천적 결손이 있는 상태에서 팔을 이식받은 환자는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이번 수술은 선천적으로 손이나 팔이 없이 태어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팔이나 손 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은 전 세계에서 8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와 캐나다에서 표트르와 가장 유사한 팔 이식 수술이 있었는데, 수술을 받은 환자는 성인이 아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샴쌍둥이였다. 의료진은 “티타늄을 이용해 환자의 어깨와 기증자의 팔을 연결한 뒤 나사를 이용해 이어 붙였다. 이후 환자의 힘줄과 근육, 혈관 등을 잇는 순서로 진행됐다” “표트르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직은 회복하는 과정이지만, 머지않아 따뜻함과 차가움 등 다양한 감각을 느끼는 동시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EPA·연합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한화건설 ‘꿈에그린도서관’ 60호점 개관

    한화건설 ‘꿈에그린도서관’ 60호점 개관

    한화건설은 22일 경기 광주시 초월읍 ‘꿈에그린도서관’ 60호점을 개관했다고 밝혔다. 꿈에그린도서관 조성 사업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함께 멀리’ 경영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한화건설이 추진하고 있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꿈에그린도서관은 장애인 시설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도서관을 만드는 사업이다. 한화건설은 2011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그린내’에 꿈에그린도서관 1호점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5년째 봉사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이날 60호점 개관식에는 직접 철거와 붙박이장 조립, 페인트 칠 등에 참여했던 봉사단 30여명이 참석해 도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5년간 사업을 진행하며 3만권이 넘는 도서를 장애인들에게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한화건설은 서울시 장애인복지시설협회, 어린이재단, 지역복지관 등과 연계를 맺고 지난해 100회 이상의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임직원만 2000명이 넘고, 시간으로 따지면 1만 시간에 이른다. 최광호 한화건설 대표이사는“꿈에그린도서관 등 건설사의 특·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내 이웃 작은 등불] “가슴 한쪽 잃고도 모유 기증… 새해 모성애 더 번지길”

    [내 이웃 작은 등불] “가슴 한쪽 잃고도 모유 기증… 새해 모성애 더 번지길”

    “모유 기증자를 늘리는 건 저희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모성애라는 공통점 하나로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모유를 보내오는 엄마들을 보고 있으면 거룩함마저 느끼죠. 저희 책무는 그 따뜻한 빛이 꺼지지 않게 돕는 거고요.” 지난 21일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모자보건센터 내 모유은행 사무실에서 만난 박은영(54·여) 모유은행장과 김인영(41·여) 간호사는 “올해는 모유은행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난 게 피부로 느껴져 뿌듯한 한 해였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들은 서울신문 보도<2월 27일자 2면> 이후 모유 기증에 대한 문의가 증가했다고 전했다. “기증을 문의하는 사람도 늘었지만 모유를 기증받는 분들의 감사 인사도 많아졌어요. 모유 기증부터 그렇게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몰랐다고들 하세요. 올해 8월에는 서울시간호사회에서 주최하는 ‘간호사와 함께하는 아가사랑’ 행사에 초청받아 처음으로 모유은행을 소개하는 부스를 열기도 했습니다.” 박 모유은행장이 말했다. 올해 모유 기증량은 지난달 말까지 1840ℓ로, 월평균 167.3ℓ를 기록했다. 지난해 월평균 기증량인 125.2ℓ와 비교해 33.6%나 늘었다. 김 간호사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지난해 기증량이 평년보다 다소 적기는 했지만 모유 기증 자체가 아직 낯선 것을 감안하면 감소하지 않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말했다. “사실 기증량보다 감사한 건 모유에 담긴 엄마들의 마음이죠. 얼마 전에는 유방절제술로 한쪽 유방을 잃은 산모가 모유를 보내왔어요. 다행히 다른 한쪽만으로 자신의 아이를 먹이고도, 모유를 기증할 수 있다고 했죠.” 이곳은 국내 대학병원 중 유일하게 모유은행을 운영한다. 산모가 비닐팩에 넣어 냉동시킨 모유는 일주일간 까다로운 멸균·가공 과정을 거쳐 수혜자에게 보내진다. 올해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200명의 산모가 모유를 기증해 281명의 아이에게 전달됐다. 박 모유은행장은 “병이나 신체적 문제로 모유를 먹일 수 없는 엄마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설명했다. 병원 측은 지난 5월 28일 지속적으로 모유를 기증한 20명의 산모를 초청해 감사장을 건넸다. 지금까지 18만 9000㏄를 기증한 여성도 있었다. 김 간호사는 모유병(180㏄) 약 1050개를 채울 분량이라고 설명했다. “기증자들이 나중에 아이에게 ‘네 것을 남과 나누면서 자란 아이’라는 걸 알려 주겠다며 감사장에 아이 이름도 적어 달라고 하세요. 모성애가 나눔으로 번지는 모습에 미소를 짓게 되죠.” 박 모유은행장은 정책 지원으로 전국에 모유은행 네트워크가 생겼으면 한다고 전했다. “종종 제주도에서도 기증·수혜 문의가 오는데 여건상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혈액을 똑같이 재현할 수 없듯이 모유도 분유와 엄연히 달라요. 모유가 부족한 엄마들이 건강한 모유를 공급받을 수 있는 모유은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용하길 바랍니다.” 글 사진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동서·동서식품, 유니세프 등 6억 기증

    동서·동서식품, 유니세프 등 6억 기증

    김창수(왼쪽) 동서식품 부사장이 21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억원을 기부하고 박찬봉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서와 동서식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억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1억원을 각각 기부했다. 기부 성금 총 6억원 중에는 김상헌 고문과 김석수 회장의 개인 성금 2억원이 포함됐다. 김석수 회장은 “연말연시를 맞아 소외 아동 및 청소년들에게 따뜻하고 희망찬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자 성금을 기탁한다”고 전했다. 동서식품 제공
  • 놓치기 쉬운, 그러나 놓치면 안될 암의 7가지 증상

    놓치기 쉬운, 그러나 놓치면 안될 암의 7가지 증상

    사람들 대부분은 암의 증상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 가슴에 생기는 멍울, 설명하기 힘든 피로감, 갑작스런 체중 감소 등은 감출 수 없는 대표적인 암 증상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덜 알려진 증상들을 주시하면 질병의 조기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뉴질랜드헤럴드는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암의 초기 증상 7가지를 소개했다. 아래에 나온 증상을 인식하고 그밖에 예사롭지 않은 조짐이 나타나거나 몇 주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면 병원에 가서 정밀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허스키하고 쉰 목소리 감기 걸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과 흡사하지만, 계속되면 검사를 받아야 한다. 호흡 및 발성에 관련된 기관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할 수 있어서다. 이는 초기에 치료 가능한 두경부암(머리와 목에 발생하는 암)일 수 있다. ▶대량의 식은땀 여름 더위나 여성의 폐경 시작 시에 식은땀이 더 많이 날 것 같지만 림프종(면역체계의 림프세포에서 생기는)의 증상일수도 있다. 림프종이 있는 사람들은 림프 세포가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신진대사가 높다. 잠옷을 갈아입거나 침대 시트를 바꿔야 할 정도로 식은땀에 흠뻑 젖는다. ▶지속적인 속쓰림 일반적으로 속쓰림은 맵거나 지방이 많은 식사 뒤에 따르는 흔한 징후다. 그러나 2~3주 지속되고, 주기적으로 제산제(위속의 산을 중화하는 약재)가 필요하다면 위암 또는 식도암의 신호일 수 있다. 때때로 췌장암과 난소암과도 연관될 수 있다. ▶허리·등의 극심한 통증 대다수에게 요통은 근골격계 문제로 인해 발생한다. 그러나 복부 위쪽 통증은 췌장암의 증상일 수 있다. 윗배와 배꼽 주위의 복통으로 시작해 등 쪽이나 가슴, 아랫배 쪽으로 뻗어간다. 명치 부위의 위 뒤쪽에 있는 췌장이 커지면 혈관 등의 주요 장기를 침범한다. 식욕이 없거나 피로와 체중 감량과 같은 증세가 함께 올 수 있다. ▶폐경 후 출혈 폐경 후 출혈은 자궁 내막암의 징후일 수 있다. 폐경 후 출혈을 한다면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자궁 내막암은 또한 과체중과 관련 있다. ▶소변문제 남성들이 나이가 들면 전립선이 비대해진다. 이로 인해 특히 밤에 소변을 해야 하는 횟수가 증가한다. 소변을 볼 때 어려움이 있거나 더 자주 소변을 누고 싶다면 전립선암 초기증상을 의심해봐야 한다. ▶구내염 구강궤양의 과반수는 바이러스성 감염에서 온다. 3~4일 후 사라지지만 꽤 고통스럽다. 입속 또는 혀에 생긴 궤양이 3~4주간 지속될 경우 아프거나 아프지 않을 수도 있는데 암을 의심해봐야 한다. 또한 혀나 혀 측면에 흰 반점이나 이물질, 흰색 거미줄 모양의 염증이 생기면 의사의 진찰을 받아봐야 한다. 사진=포토리아(©vitanovski)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한화건설, ‘서산 동문 꿈에그린’ 분양 중…생활 인프라 등으로 주목

    한화건설, ‘서산 동문 꿈에그린’ 분양 중…생활 인프라 등으로 주목

    서산 동문동 명문주거단지에 위치한 ‘서산동문 꿈에그린’이 분양 진행 중이다. 단지가 위치한 동문동은 쾌적한 도시환경을 갖추고 있는 관공서 밀집 지역으로 주거선호도가 높다. 또한 서산지역은 2020년까지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으로 10만여명이 넘는 고용인구가 창출되며 지속적인 인구 유입이 예상되어, ‘서산동문 꿈에그린’은 투자성과 환급성을 모두 갖춘 상품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서산 동문 꿈에그린은 우선 주변 교통과 생활 인프라 환경이 좋다. 서산 도심권과는 약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진, 태안, 대산, 홍성 등 인근지역 진·출입이 용이하고 서해안고속도로를 통해 수도권 이동이 편리하다. 또한 단지 인근 성연-음암간 신설도로(2017년 예정) 개통 예정으로 서산 일반산업단지, 대산산업단지 등으로 접근성이 향상될 예정이다. 서산시청과 가깝고 부춘산체육공원, 을음산공원 등 자연친화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서산 동문동은 쾌적한 주거환경과 더불어 학군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지역이다. 서산 동문 꿈에그린은 서산시 명문학교인 서령중·고교와 인접하고 있다. 인근에 동문초교, 서동초교, 서산시립도서관, 청소년 수련관 등 위치하여 최적의 교육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서산 최초 ‘스쿨버스 기증’을 통한 안전한 자녀 통학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서산 동문 꿈에그린이 가진 뛰어난 상품성도 주목할 만 하다. 전세대 남향 위주로 단지를 배치하였으며, 소비자 선호가 높은 전용면적 84m2이하, 혁신 4베이 설계를 도입하였다. 단지 중앙에는 하늘광장을 배치하였으며, 어린이집, 도서관,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주민편의시설 및 공용공간을 갖추고 있다. 서산은 서산테크노밸리, 한화이글스 서산구장, 대산산업단지 내 한화토탈 등으로 한화그룹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지역이다. 한화건설은 서산 동문 꿈에그린 역시 인기리에 분양을 완료하여 또 하나의 지역 랜드마크로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한화건설 김기영 마케팅팀장은 “서산동문 꿈에그린은 한화건설이 공급하는 대형 브랜드 단지로서 교육, 교통, 인프라 등 주변 입지 및 환경이 매우 우수하며 경쟁력 있는 분양가로 서산지역 내 실수요자 및 투자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산동문 꿈에그린의 견본주택은 서산시 예천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주는 2018년 7월 예정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3·1운동 유적 ‘딜쿠샤’ 자료 한국 온다

    3·1운동 유적 ‘딜쿠샤’ 자료 한국 온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일 최근 1919년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미국의 기업인이자 언론인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L 테일러로부터 서울 종로구 사직로2길 17 딜쿠샤 관련 자료 451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1896년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운산금광의 직원으로 일하던 앨버트 테일러는 UPI 통신사의 서울 특파원을 겸임하면서 금광 사업과 무역상을 했다. 독립선언서를 입수, 세계에 타전해 3·1운동을 알렸고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에 적극 협조했다. 1923년 준공된 서양식 가옥 딜쿠샤는 ‘희망의 궁전’, ‘이상향’이란 뜻으로 앨버트 테일러는 1942년 조선총독부의 외국인 추방령에 따라 미국으로 쫓겨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딜쿠샤는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서양식 가옥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에 거실, 응접실, 서재, 드레스룸, 식품 저장실, 하인들의 방을 갖췄다. 2층에는 앨버트의 아내인 영국 연극배우 출신 메리의 화실이 있었다. 메리가 이곳에서 그린 김주사, 최서방 등 여러 한국인의 초상과 한강 수채화 등도 이번에 기증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내년에 연구 등 정리작업을 거쳐 2018년에는 전시회를 연 뒤 2019년 딜쿠샤 복원이 이뤄지면 기증된 자료를 가옥 내부에 전시할 계획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송혜교, 中 윤봉길기념관에 한글안내서 기증 “아직도 없는 곳 꽤 있어”

    송혜교, 中 윤봉길기념관에 한글안내서 기증 “아직도 없는 곳 꽤 있어”

    배우 송혜교와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중국 상해 윤봉길 기념관에 한글안내서를 기증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일을 기획한 서 교수는 “윤봉길 의사 순국일인 12월 19일에 맞춰 상해 윤봉길 기념관에 한국어 및 중국어로 제작된 안내서 1만부를 기증하여 오늘부터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번 안내서에는 윤봉길 의사의 생애 및 홍커우 공원의 의거, 일본에서의 순국, 윤봉길 의거의 대외적인 영향, 윤봉길 기념관에 관한 전반적인 소개 등이 전면 컬러로 상세히 설명돼 있다. 안내서 제작을 후원한 송혜교는 “아무리 중국 내에 있는 대한민국 역사 유적지라고 하지만 아직도 한글안내서가 없는 곳이 꽤 있다. 이런 작은 일 하나가 국내외 방문객 유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해외에 있는 대한민국 역사 유적지 보존 상황이 썩 좋은편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유적지를 자주 방문하는 것만이 타국에 있는 우리 유적지를 지켜 나갈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중경 임시정부청사 및 LA 도산 안창호 하우스 등 전 세계 대한민국 역사 유적지 12곳에 한글안내서를 꾸준히 기증해 왔으며 특히 올해 광복절에는 일본 우토로 마을에도 한글 안내서를 기증해 화제가 됐다. 특히 서 교수는 “앞으로도 송혜교씨와 함께 한글안내서가 없는 곳에 지속적으로 기증을 할 예정이며 향후 음성 서비스 및 앱 서비스 등 다각적인 방법으로 대한민국 역사 유적지를 홍보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편 송혜교와 서 교수는 지금까지 뉴욕 현대미술관(MoMA), 보스턴 미술관, 토론토 박물관(ROM) 등 세계적인 유명 미술관 및 박물관에도 한글안내서를 꾸준히 제공해 왔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무등산 초입 ‘詩畵마을’ 첫걸음… 멈추지 않는 ‘문화자치’ 발걸음

    [명인·명물을 찾아서] 무등산 초입 ‘詩畵마을’ 첫걸음… 멈추지 않는 ‘문화자치’ 발걸음

    ‘물살 아직 잔잔하다/그러나 그 자국 너무 깊어/흐르는 모든 것들/속으로만 늘 그렇게 슬픈 흔적을 내는가’(백수인의 시 ‘강변에서’) 지난 13일 찾은 광주 북구 문화동 ‘시화가 있는 문화 마을’. 낡은 아파트 옹벽과 골목 주택가 벽면 곳곳에 나붙은 시와 그림들이 행인의 발길을 붙잡는다.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과 광주 제2순환도로 교량이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 벽면엔 시와 그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타일 벽화로 새겨진 서정시, 동양화, 인근 초·중·고교생의 시와 그림, 유명 시인의 글 등이 눈길을 끈다. 주변의 소로변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각종 설치 조형물이 우뚝 서 있다. 요즘이야 도시의 골목길이 새롭게 단장되고 각종 테마가 있는 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지만, 이곳 ‘시화문화마을’은 2000년 초부터 주민들에 의해 꾸며진 터라 전국 지자체의 견학지로 자리를 굳혔다. 이곳 시화마을이 스토리를 입히고 볼거리를 선사하는 ‘마을 가꾸기’ 사업의 모델로 손꼽히는 이유다. 무등산을 찾는 외지 관광객들도 으레 이곳에 들러 쉬어 가곤 한다. 실제로 옛 단독 주택 길에 조성된 ‘골목 미술관’은 한때 전국적인 ‘명물’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아기자기한 벽화로 이뤄진 골목미술관이 사라진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곳은 마을 상류의 저수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수렁을 이루고, 야산 자락과 맞닿은 변두리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방치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커뮤니티센터와 미술관, 작은 도서관이 자리한 어엿한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시화문화마을은 5·18 국립묘지, 광주비엔날레관, 무등산 시가문화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으로 이어지는 광주의 북쪽 관문이다. 무등산 둘레길인 ‘무돌길’의 시작점으로 행락철이면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외지인들이 관광버스를 이용해 무등산을 오르는 길목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주민 이모(74)씨는 “10여년 전만 해도 저수지에서 넘친 물이 주택가로 흘러들면서 주변이 습하고 쓰레기와 오물투성이였으나 지금은 쾌적한 산책로로 바뀌었다”며 “잘 가꾸고 보전해 지역 명소로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허름한 변두리 골목길이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것은 2000년부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화마을 만들기 사업에 뛰어들면서부터이다. 1만 4000여명이 거주하는 문화동은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시화가 있는 마을’을 구상하고 주변 정비에 나섰다. 쓰레기를 치우고 조그만 쌈지공원을 만들고 잔디와 나무를 심었다. 각화저수지 둑에 주민 화합을 상징하는 바람개비를 설치했다. 지역 예술인 등은 가가호호 골목길 벽면에 시화판을 모자이크 타일로 꾸미고 등산객 쉼터와 산책로를 조성했다. 2004년 처음으로 학생 등이 참여하는 시화백일장을 열었다. 이듬해인 2005년 주민 20여명이 ‘시화마을추진위원회’를 꾸리고 본격적인 마을 가꾸기에 힘을 보탰다. 백일장 입선작의 자필 원고를 활용한 시화판 부착과 집집마다 문화 문패 달기 운동도 펼쳤다. 이때쯤부터 ‘문화’와 ‘자치’가 만나는 독창적 마을공동체 모델로 주목받았다. 주민들은 이를 발판으로 광주시와 중앙정부의 공모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2007년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의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범도시로 선정됐다. 실개천, 쉼터, 시화갤러리 등이 조성됐다. 이듬해엔 국토해양부의 지원으로 ‘천·지·인’ 문화소통길과 역사공원 등이 새로 생겼고 같은 해 열린 제8회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주민자치위는 이어 대주아파트 옆에 보행로를 설치하고 별자리학습장, 테라스 쉼터, 마을 샘 복원 등도 추진했다. 2011년엔 각화저수지 주변 유휴지를 활용해 도시농업 체험장도 만들었다. 환경예술제, 골목미술관, 공연, 벼룩시장, 환경캠프, 전통놀이 체험, 나눔장터 등을 열었다. 2013~2015년 국토부의 개발제한구역 주민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누리길 조성, 각화저수지 보강공사와 데크 설치 등이 이뤄졌다. 광주시와 북구는 이곳을 주민 참여형 문화 브랜드로 육성키로 하고 지난해 6월 저수지 아래 빈터 1만 6000여㎡에 91억여원을 들여 연면적 1800여㎡ 규모의 문화관을 건립했다. 문화관은 커뮤니티센터와 금봉미술관 등으로 이뤄졌다. 커뮤니티센터엔 오픈 커피숍과 작은 도서관, 홍보관 등이 들어섰다. 봄과 가을 사이엔 작은 음악회와 어린이집 발표회 등 가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11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도서관에는 3200여권의 장서가 마련됐으며 누구나 열람 또는 대출할 수 있다. 이 건물 맞은편에 자리한 금봉미술관 2층 전시실에는 금봉 박행보(82) 화백이 기증한 290여점의 작품이 걸려 있다. 1층 전시실은 국내외 작가의 기획전과 청년작가전 등 각종 전시회가 열린다. 오는 31일까지는 지역 한국화 작가인 박종석의 ‘약무 광주전’이 진행 중이다. 10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은 또 지역작가가 참여해 문인화반과 흙내음 도예반을 운영해 호응을 얻고 있다. 이처럼 주민 스스로 가꾼 문화마을의 활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각급 기관단체와 지자체, 해외 언론 등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1100여개 기관단체에서 2만 5000여명이 견학했다. 미국 버클리대, 일본 도쿄 이과대 교수진, 세계도시 정상단 등이 방문해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사업’이 국제교류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일본 NHK 등 국내외 언론 보도만 해도 500여 차례에 이른다. 시화문화마을 조성은 계속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내년에는 각화저수지 주변 산책로와 생태문화공간 조성사업이 마무리된다. 수변 데크 설치와 수목 식재, 호안정비 등이다. 또 다목적 광장과 테마공원, 인공분수대, 갈대숲 등 사색공간이 설치된다. 양옥균(54) 주민자치위원장은 “각화저수지 주변은 무등산 둘레길인 무돌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라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다”며 “시화마을과 연계한 생태환경을 조성하고 낡은 벽화 정비와 교체 등을 통해 아름답고 쾌적한 동네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이우환의 편지 속 삶은…

    이우환의 편지 속 삶은…

    한국 근현대미술 아카이브 박물관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올해 마지막 기획전으로 ‘작가가 걸어온 길-화가와 아카이브’전을 오는 20일부터 연다. 그동안 기증받은 아카이브들을 중심으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작가가 살아왔던 환경과 그 속에서 비롯된 삶을 살펴보고자 기획된 전시에는 아카이브 400여점과 기증 작품 4점이 소개된다. 고 김종하 화백의 동경제국미술학교 졸업장(1931·①)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우환이 1969년 자신의 논문 ‘사물에서 존재로’를 언급하며 이세득에게 보낸 편지(②), 서양화가 류경채가 1965년까지의 경력 및 화력을 자필로 기록한 이력서를 볼 수 있다. 김정 화백이 1988년 1월 2일 이만익, 이남규, 최경한 등 14명과 함께 경기도 용인의 장욱진 화백에게 신년 인사차 갔다가 그린 장 화백의 얼굴 드로잉(③)도 있다. 김달진 관장은 “작품을 통해 본 창작자로서의 화가는 개별적인 존재로서 독창성이 부각되지만, 아카이브를 통해 본 화가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존재들로서 친근감이 느껴진다”면서 “아카이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특정 작가의 아카이브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아카이브의 유형을 보여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4월 29일까지. 한편 박물관에서는 전시와 연계해 다양한 무료 강연 및 체험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성인 대상 강연으로 내년 1월 25일 ‘문화가 있는 날’에 김 관장이 직접 ‘나의 미술 아카이브 수집 이야기’라는 주제로 40년간 지속한 자료수집 일화를 들려준다. 가족 및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자료 수집·분석·조사·정리 체험프로그램은 1월 17, 19, 24일 진행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안익태 선생 스페인 집, 기념관으로

    애국가 작곡가인 고(故) 안익태 선생이 생전에 살았던 스페인 마요르카의 집이 기념관으로 바뀌어 개관행사를 15일 갖는다고 주스페인 한국대사관이 13일 밝혔다. 지중해 마요르카 섬 팔마시에 있는 안 선생의 집은 그동안 개·보수 공사가 이뤄졌다. 1층은 안익태 선생의 유품 전시공간으로 꾸며졌으며 2층은 안 선생의 막내딸 레오노르 안씨의 생활공간으로 만들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1층에는 안 선생의 악보와 사진 등 기록물이 전시된다. 안 선생이 1965년 사망할 때까지 말년을 보낸 팔마 집은 현재 한국 정부 소유이며 레오노르 안씨가 살면서 관리하고 있다. 안 선생이 남긴 집은 1990년에 스페인 교포인 권영호씨가 매입해 정부에 기증했다. 팔마에는 ‘안익태 거리’로 이름 붙은 대로와 안익태 기념비도 있다. 15일 개관 행사에는 박희권 주스페인 대사와 팔마 시장 등 양국 정치·문화계 인사가 참석할 예정이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복지 사각지대 줄이는 ‘용산 나눔의 메카’

    복지 사각지대 줄이는 ‘용산 나눔의 메카’

    “난방비 낼 돈조차 없는 사람들한테는 전기장판이 생명줄 같았는데…온수매트가 생겨 너무 좋네요.” 13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에 사는 독거노인 김명근(가명·73)씨는 동 주민센터 직원으로부터 온수매트를 건네받고 오랜만에 웃었다. 온수매트는 지역에 본사를 둔 한 기업이 “저소득층을 위해 써달라”며 용산복지재단에 기증한 제품이었다. 구 관계자는 “복지재단이 생긴 덕에 그동안 돕기 어려웠던 복지 사각지대를 살뜰히 챙기게 됐다”고 말했다. 용산구가 용산복지재단을 ‘엔진’ 삼아 겨울철 활발한 저소득층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재단은 지난 5월 37억원을 종잣돈 삼아 문 열었다. 먹고살기 어려운 형편인데도 “서류상 자녀가 있다”는 등의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서 빠져 공적 지원을 못 받는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서다. 구는 이런 복지 사각계층이 지역에 5만명쯤 사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복지재단이 생기자 각계에서 자선금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금껏 모두 2억여원의 후원금을 거뒀고 정기후원자는 2000여명에 이른다. 마음을 울리는 사연도 많다. 건강 문제로 기초생활수급대상이던 30대 남성은 최근 취업에 성공하자 매달 1만원씩 재단에 보내고 있다. ‘자신도 사회의 도움을 받았으니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때문이다. 또 지난 4월 암 투병 중 숨진 기초생활수급대상자 고 강천일씨도 전 재산 3600만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최근에는 구 공원녹지과 직원들이 ‘2016 정부합동평가 산림분야 우수상’ 포상금 전액인 200만원을 재단에 내놨다. 구 관계자는 “모인 돈으로 뇌출혈 수술을 받은 40대 남성에게 수술비를 긴급 지원했고 공과금 체납으로 단전 위기에 처한 독거노인 가구 등에도 지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재단 측은 저소득층이 고생하기 쉬운 겨울철을 맞아 맞춤형 지원을 준비 중이다. 구 관계자는 “저소득층 자녀에 겨울 점퍼를 선물하는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구는 재단 사업과 별개로 14일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하는 ‘2017년 따뜻한 겨울나기’ 사업을 벌여 지역민과 기업, 학생들에 기부를 유도할 계획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100년이 흘러도 유지되는 복지재단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서 “재단을 중심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구민의 복지 체감도를 높일 수 있도록 맞춤형 서비스를 확대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2016 공직열전] 신종 감염병·질병 감시·관리… 국가 방역 ‘최첨병’

    [2016 공직열전] 신종 감염병·질병 감시·관리… 국가 방역 ‘최첨병’

    미국에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질병관리본부(KCDC)가 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같은 신종 감염병을 감시하고 만성질환을 비롯한 모든 질병을 관리, 예방하는 국민 건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이후 차관급 기관으로 격상되면서 인사권과 예산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국가 방역전담 기관으로 거듭났다. 행정고시 출신이 포진한 다른 부처와 달리 질병관리본부는 의학이나 생물학을 전공하고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특채 출신 전문가들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 9명의 본부 고위공무원 가운데 단 1명만 행정고시 출신이다. 메르스 초기 대응 실패로 직원 12명이 징계를 받는 등 큰 상처를 입었지만, 차관급 질병관리본부장 취임 이후 조직을 추스르며 내상을 극복하고 있다. 지난 2월 임명된 정기석(58·정무직) 질병관리본부장은 호흡기내과 전문의로 한림대 부속 성심병원장을 지냈다. 병원장으로서 보여 준 조직관리 능력과 호흡기 내과 분야의 권위자란 강점이 선임 배경이 됐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기존의 공무원 마인드로만 조직을 세팅하는 게 아니라 민간의 관점을 공직사회에 접목해 조직을 이끌며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이 임명됐을 당시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때 “방역 컨트롤타워로서의 자부심을 갖자”며 사기를 북돋고 다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사람이 정 본부장이다.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직설적이며 열린 사고를 한다. 정은경(51·연구관 특채) 긴급상황센터장은 메르스, 지카바이러스,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신종 감염병으로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24시간 감시하고 대응하는 ‘야전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 신종플루가 퍼졌을 때는 보건복지부 신종플루 대책본부 총괄팀장을 맡았고 메르스 때는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현장점검반장을 맡아 방역 현장과 정부 청사를 오가며 최일선에서 대응했다. 당시 자신에게서도 메르스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자 직접 검체를 뽑아 검사한 일화가 유명하다. 다행히 메르스가 아닌 파라인플루엔자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밝혀져 사흘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온 힘을 다해 일하는 스타일로 차분하면서도 꼼꼼한 일 처리가 돋보인다. 곽숙영(51·행시 36회) 감염병관리센터장은 질병관리본부 고위공무원 중 유일한 행시 출신이다. 감염병 관리를 총괄 기획하는 자리여서 전체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넓은 시야와 상황 관리력, 정무적 판단력이 필요한데 이런 자리에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복지부에서 복지행정지원관, 한의약 정책관 등을 지냈다. 감염병관리센터는 80여종의 감염병을 일상적으로 감시·관리한다. 고운영(51·연구관 특채) 질병예방센터장은 에이즈와 결핵, 만성질환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예방의학 전문의로 늦게까지 업무 자료를 파고들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스타일이다. 2009년 신종플루 때는 예방접종관리과장을 맡아 부족한 신종플루 백신을 구해 오기도 했다. 에이즈·결핵관리과장으로 오래 일해 이 분야의 전문성이 상당하다. 장기이식관리센터장도 겸직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내에는 국립보건연구원(NIH)이란 또 하나의 조직이 있다. 감염병 바이러스 검사를 담당하고 진단, 실험, 만성병 발생 원인을 연구하는 말 그대로 연구자 집단이다. 정 본부장이 직접 지휘하는 KCDC의 업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 박도준(56·개방형 임용) 국립보건연구원장은 내분비내과 전문의로 서울대의대 분자유전체의학 교수, 서울대병원 갑상선센터장을 지냈으며 지난 4월 NIH의 수장으로 임명됐다. 오랜 연구자 생활을 한 연구통으로, 직원들에게 항상 전문성을 쌓을 것을 강조한다. NIH의 성원근(56·연구사 특채) 감염병센터장은 감염병 관리를 위한 실험, 진단, 검사 업무를 실질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20년 이상 감염병만 연구해 온 전문가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독성평가연구부장으로도 일한 적이 있어 관련 부처 전반의 사정에 밝다. 폐쇄적인 연구자 집단에서 다른 기관의 사례를 참고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전략 기획자로서의 역할도 맡고 있다. 지영미(54·개방형 임용) 면역병리센터장은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WPRO)에서 7년간 근무한 NIH의 ‘국제통’이다. 국제기구에서 오래 근무하며 쌓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제 연구 동향, 백신과 치료제 개발 동향 정보를 파악하고 제공하는 등 면역병리센터장의 임무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허영주(54·5급 특채) 생명의과학센터장은 가정의학과 전문의 출신으로, 정 센터장이 메르스 현장점검반장을 맡기 전 메르스 초기 대응을 담당했다. 국립인천공항검역소장, 감염병관리센터장을 지냈고 복지부 본부와 질병관리본부를 오가며 다양한 직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한복기(58·연구관 특채) 유전체센터장은 2009년 3월부터 7년간 유전체센터에서 집중적으로 근무했다. 정밀의료, 맞춤형 의료 등에 필요한 유전자 분석 업무를 맡고 있다.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과 국립줄기세포재생센터를 설립하는 데도 많은 역할을 했다. 오송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56만부→47만부… 聖書 보급 줄었다

    올해 국내외 성서 보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대한성서공회 제126회 정기이사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올 한 해 국내에 보급된 성경은 총 47만 7177부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56만 8554부)에 비해 9만 1437부 줄어든 수준이다. 해외 성경전서 보급도 533만 3969부에 그쳐 지난해의 549만 5345부에 비해 무려 16만 1376부나 줄어들었다. 대한성서공회 권의현 사장은 올해는 아프리카, 르완다, 마다가스카르, 말라위, 부룬디, 모잠비크,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등 18개국, 중남미 수리남, 아이티, 에콰도르, 온두라스, 칠레, 쿠바, 파라과이 등 17개국, 유럽·중동 지역의 그리스, 러시아, 루마니아, 터키, 폴란드 등 10개국,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라오스, 방글라데시, 파푸아뉴기니 등 7개국에 성서를 지원했다고 보고했다. 해외 성서 무료 기증사업을 위한 모금은 지난해보다 21%에 해당하는 5억여원이 증가한 30억여원에 달했다고 덧붙였다. 대한성서공회에 따르면 국내에 보급된 성서는 총 898만 8286부에 달하며 공회로부터 개역개정판 본문 사용에 대한 저작권을 승인받아 출판한 주석성경 1082만 2079부까지 더하면 전체 2000여만부의 개역개정판 성경이 보급된 셈이다. 1973년 해외 성서 보급을 시작한 이래 총 1억 6400만여부의 성경이 제작·보급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특히 올해 52개 성서공회에 53만 8442부의 미자립성서공회 성서 지원을 확대해 현재 100개 성서공회에 총 218만 7650부의 성서를 무상으로 기증한 것으로 보고됐다. 한편 성서공회는 2012년 시작한 ‘새한글 성경전서’(가칭)가 지난 10월 기초번역을 완료했으며, 55%의 번역 검토와 17%의 문장 검토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신찬호, 전남 보물찾기 영상콘테스트 최우수상 수상

    신찬호, 전남 보물찾기 영상콘테스트 최우수상 수상

    전남도 보물찾기 영상콘테스트 공모전에서 신찬호(54·순천 모아치과)씨의 ‘시가 있는 풍경 운주사 천불천탑’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전남도는 8일 2016 전남도 보물찾기 영상콘테스트 공모전 심사 결과 최우수상 1명, 우수상 3명, 장려 6명, 입선 10명 등에 대한 입상 작품을 발표했다. 최우수 작품은 많은 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운주사의 천불천탑의 아름다운 모습을 영상과 시로 표현해 최고상의 영예를 안았다. 입상 작품들은 앞으로 전남도를 홍보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영상콘테스트는 전남 지역의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과 문화관광을 알리기위해 도가 주관해 매년 열린다. 신씨는 2011년에도 순천만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아하 순천만’으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 순천만국가정원을 알리는 영상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수개월간 자원봉사 활동하면서 뛰어난 작품들을 제작해 순천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31>MC계의 ‘팔방미인’ 허참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31>MC계의 ‘팔방미인’ 허참

    허참(67)은 얼마 전 경기 남양주에 있는 자기 농장을 일반에 오픈했다. 음식을 먹고 노래를 듣는 전원형 레스토랑으로 꾸미고 ‘참스팜스’라는 간판을 세웠다. 2층은 일종의 기록실로 만들었다. 자신의 예능 40여년 역사가 담긴 사진, 포스터, 앨범들을 여기에 모았다. 자기 그림 작품들도 여러 점 걸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서울 여의도 KBS 녹화홀에서 25년 동안 실제로 썼던 ‘가족오락관’ 네온사인이다. “창고에 처박아 두면 그냥 썩는다고, 방송국에서 선물로 주더군요. 그걸 여기 가져와서 전원을 연결하니까 불이 들어오는데, 눈물이 납디다. 그 오랜 시간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느라 고생했다. 이제는 내가 널 지켜봐 줄게, 이렇게 다짐했어요.” ●1973년 여동생 결혼 밑천인 3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 -기차가 덜컹거리며 부산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아무 대책 없는 ‘무작정 상경’의 주인공이 내가 되다니…. 군에서 막 제대한 1973년 어느 날이었다. 지갑 속엔 3만원이 들어 있었다. “오빠가 나중에 돈 벌면 몇 배로 갚아줄게.” 결혼 밑천 삼는다고 고이 모아 온 여동생의 돈이었다. -서울살이는 예상보다도 힘들었다. 집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으니 군대나 고향 친구들 집을 번갈아가며 하루하루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정동 MBC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됐는데, 자전거로 채소나 생선 같은 것들을 배달해 주며 공짜 숙식의 대가를 치렀다. 그러고 있다 보면 코미디언이 됐든, MC가 됐든, DJ가 됐든 뭐라도 하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왔다. 그해 겨울 군대 친구와 함께 종로에 나갔다가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를 지나치게 됐다. 문앞에 탄산음료 ‘오란씨’ 시음 행사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한 잔 얻어먹을 요량으로 안에 들어갔다. (입구에 유난히 코가 큰 사람이 서 있었는데, 쉘부르의 주인이자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PD 겸 DJ로 활동하던 이종환 선생이었다) 무대에서는 이태원, 전언수씨로 구성된 통기타 듀오 ‘쉐그린’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래를 마친 뒤 객석 손님들에게 경품을 주는 행운권 추첨을 시작했다. 내가 딱 걸렸다. “무대로 잠깐 올라오세요.” 나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내 몇 마디에 공연장은 폭소와 박수로 가득 찼다. 정신없이 웃던 이태원씨가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그게…기억이 안 나네요.” “허 참, 자기 이름도 몰라요?” “앗,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나요? 저는 허참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이종환 선생이 나를 불렀다. “여기에서 일해볼 생각 없나?” -월급은 없었다. 먹여주고 재워주면 그걸로 족했다.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면서 틈틈이 손님들 신청곡 받아 노래를 틀어주는 게 나의 일이었다. 그러다 잠깐씩 무대에 올라 짤막하게 MC를 볼 일이 생겼는데, 차츰 “쉘부르에 명물이 하나 들어왔다”고 입소문이 났다. 날 보러 오는 손님들이 하나둘 늘면서 몇 달 후에는 어니언스, 쉐그린, 김정호, 김세화, 권태수 같은 포크 스타들의 공연을 진행하는 정식 MC로 승격이 됐다. 스탠딩 코미디와 노래를 섞은 ‘허참쇼’라는 코너도 만들어졌다. -MBC의 라디오 PD 겸 DJ였던 박원웅 선생이 어느 날 나를 불렀다. “우리 회사에서 ‘청춘은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DJ 해볼 생각 없나.” 현기증이 났다. ‘얼마 전까지 자전거에 동태 궤짝이나 채소 꾸러미를 싣고 지날 때마다 그토록 높게 보였던 MBC 사옥. 그곳에 내가 입성한다.’ 나는 그때까지도 쉘부르의 객석에서 소파 몇 개 붙여놓고 슬리핑백에서 잠을 자는 신세였다. 노래 ‘편지’의 성공으로 형편이 나아진 어니언스 임창제가 물려준 슬리핑백이었다. 방송 DJ를 시작하면서 동대문 근처에 방을 얻은 나는 임창제의 슬리핑백을 의기양양하게 다른 친구에게 물려주고 쉘부르 시대를 마감했다. ●남다른 입담…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서 운명의 MC 제안 -우리 집안의 뿌리는 황해도다. 나도 거기에서 태어났는데, 이듬해 6·25 전쟁이 났고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월남을 했다. 어쩌다가 땅끝인 부산까지 와서 부민동에 터를 잡고, 법원 공무원으로 취직했다. 그 덕에 적당히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소고기 반찬을 싸 주면 나보다 못사는 아이가 배급받아온 옥수수빵과 바꿔 먹기도 했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1956년 부민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나가 여러 번 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그려 팔아 용돈을 벌기도 했다. 미술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었다면 남다른 끼와 말솜씨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소풍 가서 사회자는 늘 내 차지였다. 그래선지 말이나 행동에 남다른 스타 의식이 강했다. 이를테면 아침에 교문에서부터 영화배우처럼 겉멋을 부리며 걸었다. 저 멀리 3층 교실 창문에서 나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여자애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웅변대회에도 단골로 나갔다. 주위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만들었던 것은 나의 성우 흉내였다. ‘삼국지’, ‘수호지’,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라디오 드라마를 듣고 외워 목소리 흉내를 내면 식구들, 친구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국어 시간에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으로 시작하는 고전 ‘조침문’을 ‘전설 따라 삼천리’의 성우 유기현씨 목소리로 읽어주면 교실은 난리가 났다. -공부는 못했다.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영남상고에 들어갔는데, 막상 졸업을 할 때가 되니 아버지는 “네가 장남인데 대학을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재수를 시작했는데, 길게 하지는 못했다. 공부 의욕도 떨어졌지만 집안 형편이 크게 기울어졌다. 안 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공부에 대한 아쉬움은 지금도 크다. -1972년 군 복무 중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박정희 정부는 전군에 ‘문화선전대 경연 행사’를 열어 유신의 필요성을 병사들에게 홍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사단 웅변대회 선수로 뽑힌 나를 대대장이 불렀다. “이상용, 너는 오늘부터 웅변 대신에 문선대 경연 준비를 해라.” 유신헌법이 뭔지를 내가 알 리 없었다. 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우리 몸에는 우리 옷을 입어야 하는데, 유신헌법이야말로 우리 몸에 맞는 옷이다’를 주제로 코미디를 구성해 연기했고, 사단에서 1등을 했다. 그때부터 MC 겸 코미디 담당으로 예하부대를 돌며 유신 홍보 공연을 다녔다. MC와 코미디언으로서 능력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얼마 후에는 사단 내 방송 DJ도 맡게 됐는데, ‘쌀’을 ‘살’로 발음하고 ‘의사’를 ‘어사’라고 말하는 억센 부산 사투리가 문제가 됐다. 문선대 공연에서야 사투리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수단이었지만, 아무래도 방송에선 아니었다. 교정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매일 책과 신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 또한 나중에 사회에 나와 큰 도움이 됐다. ●‘수그려라’가 제 좌우명… 저를 방송인으로 남게 한 건 8할이 ‘노력’ -박원웅 선생의 스카우트로 MBC 라디오 데뷔를 한 이후 몇몇 프로그램이 나를 더 따라왔다. 사람들은 나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리듬감 있는 말투를 좋아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위기가 찾아왔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가요계를 평정할 때였으니 1976년쯤인 듯한데, MBC 라디오의 간부 한 분이 나를 호출했다. “라디오 진행자를 전부 아나운서로 교체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다. 미안하다.” 교통정보 프로그램 ‘푸른 신호등’에서 하차하라는 말이었다. 방 한 칸 신혼살림에 아내는 첫아이를 임신한 상태. 세간이라곤 쌀통 하나뿐이고, 찬장도 없어 사과상자로 대신하고 있던 우리 부부였다. “저, 좀 더 잘하겠습니다. 이거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집니다.” 소용없었다. 다시 실업자가 됐다. 폭음을 하고 들어가 아내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방송하는 사람은 방송국에서 안 불러 주면 끝이다. ‘푸른 신호등’에서 졸지에 잘린 뒤 나는 장사를 하기로 했다. MBC 근처에 신발가게를 차렸다. 동대문 시장에서 패션구두 같은 것을 떼어다 아내와 같이 팔았다. 조용필이나 이은하 같은 스타들이 찾아와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6개월도 안 돼 망했다. 장사는 말주변만 갖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었다. 묘하게도 신발가게를 폐업하자 방송 요청이 연달아 들어왔다. 잠깐 동안의 실업자 생활과 신발가게 실패를 통해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에 간단한 것은 없다.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 -라디오로 주가가 오르면서 TBC ‘7대 가수쇼’ MC로 TV 데뷔를 했다. 운현궁 공개홀에서 남진, 나훈아, 이미자 등 당대의 스타들과 인사를 했다. ‘내가 여기까지 왔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시 고려진씨와 짝을 이뤘는데 최초의 남녀 공동 MC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150명 정도의 여성 MC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얼마 후에는 MBC ‘토요일 밤에’와 함께 주말 저녁을 양분하고 있던 TBC ‘쇼쇼쇼’의 MC로 위키리(이한필)의 뒤를 이어 발탁됐다. 쇼쇼쇼에서 나와 최고의 콤비를 이뤘던 정소녀씨를 만났다. ‘허참’ 하면 ‘정소녀’, ‘정소녀’ 하면 ‘허참’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나와 같이 MC를 보던 정혜경씨는 내 이름에 이어 자기 이름을 말하는 순서에서 돌연 ‘정소녀’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보기 드문 방송사고를 내기도 했다. -한창 때에는 새벽부터 심야까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방송을 했다. 방송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극심한 스트레스다. 수십년을 해도 마찬가지다. 거기에서 오는 긴장과 피로, 고독감을 술로 달래면서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한밤중 방송이 끝나면 심신이 허기져서 무교동 낙지골목 등을 훑고 다녔다. 그렇게 일에 술에 파김치가 돼서 집에 갔다가 새벽에 나오는 생활이 이어졌는데, 방송국에서 쓰러져 응급차로 실려간 적도 있었다. -나를 대표하는 ‘가족오락관’은 1984년 4월 3일 벚꽃이 한창일 때 처음 전파를 탔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공교롭게 마지막 1237회 녹화일이 2009년 4월 2일이었다. 하루도 어긋나지 않는 만 25년. 나의 청춘과 중장년이 그대로 녹아 있는 사반세기와 좀 더 따뜻하게 이별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은 참 아쉽다. 새로운 포맷의 참신한 가족오락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해서 갑자기 관두게 됐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KBS는 가족오락관 후속으로 ‘가정오락관’이란 프로그램을 편성했지만, 몇 번 내보내고는 시청자 반응이 안 좋다며 폐지해 버렸다. 지금은 온 가족이 모여 볼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수그려라’가 나의 좌우명이다. 남을 존중하고 경청하려고 애쓴다. 남들 앞에 과하게 나서지 않으려 한다. 나는 항상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염두에 두고 무대에 오른다. 후배들한테 말한다. 분위기 뜨고 흥겹다고 해서 객석에 마이크 들이대며 반말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방송인으로서 나의 능력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끼’는 타고났을지 몰라도 나머지를 채운 것은 나의 부단한 노력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젊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 위해 시중에 있는 거의 모든 유머집을 구입해 외우고 또 외웠다. 소설이건 수필이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중요한 부분을 메모해 암기했다. 교수, 의사, 성악가, 요리사, 언론인 등 자기 분야의 고수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다. 그들과의 얘기는 모두가 살아 있는 공부였고, 나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단련될 수 있었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허참은 누구 본명은 이상용. 194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MC’ 중 한 명이다. TBC 동양방송, KBS 한국방송, MBC 문화방송에서 수많은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26년 동안 진행한 KBS ‘가족오락관’은 그의 이름과 동일시된다. 코미디언, 가수,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영남상고, 동아대,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수료 ▲TV 프로그램 TBC ‘7대 가수쇼’ ‘쇼쇼쇼’ ‘전국 TOP10 가요쇼’, KBS ‘가족오락관’ ‘도전! 주부가요스타’ ‘왕건오락관’ ‘지구촌 노래자랑’, MBC ‘젊음은 가득히’ ‘지붕뚫고 하이킥’, 대전MBC ‘허참의 토크&조이’, SBS ‘빙글빙글 퀴즈’ ‘잉꼬부부 재치부부’, MBN ‘엄지의 제왕’ ▲라디오 프로그램 MBC ‘싱글벙글쇼’ ‘푸른 신호등’ ‘청춘은 즐거워’, SBS ‘허참의 즐거운 저녁길’ ▲음반 ‘왜 몰라주나’(1976년) ‘추억의 여자·소낙비’(2007년) ▲제29회 한국방송대상(2002년) 제12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2005년) KBS 연예대상(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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