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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절 시인 기형도 등단 전 쓴 연시 ‘당신’

    요절 시인 기형도 등단 전 쓴 연시 ‘당신’

    시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사랑받는 요절 시인 기형도(작은 1960~1989)가 스물셋에 쓴 연시(큰 사진)가 공개됐다.‘당신의 두 눈에/나지막한 등불이 켜지는/밤이면/그대여, 그것은/그리움이라 부르십시오/당신이 기다리는 것은/무엇입니까, 바람입니까, 눈(雪)입니까/아, 어쩌면 당신은 저를 기다리고 계시는지요/손을 내미십시오/저는 언제나 당신 배경에/손을 뻗치면 닿을/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읍니다’시는 시인이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기 3년 전인 1982년에 쓴 것이다. 시인은 방위병으로 경기 안양에서 복무하던 시절, 안양의 수리문학회에서 활동하며 한 여성 회원에게 ‘당신’으로 시작하는 연시 세 편을 육필로 써서 건넸다. 성우제 작가는 “술자리에서 수리문학회 여자 회원들이 술값을 내면 기형도 시인이 그 보답으로 시를 써 주었다고 한다”며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최근 시를 공개했다. 성우제 작가는 기형도 시인과 대학 동문으로 절친했던 성석제 작가의 동생이기도 하다. 성우제 작가는 “안양은 마음 놓고 편안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고향 같은 분위기였을 것”이라며 “형도 형의 시는 수리문학회 시절에 일취월장한다. 그때가 아마추어에서 프로페셔널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썼다. 해당 시편들은 경기도 광명에 문을 열 기형도문학관에 기증될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양천구 새달 ‘보도기획전 동행’ 민선 6기 3년 담은기사 전시

    서울 양천구는 지난 3년여간의 발자취를 언론기사로 되짚어 보는 ‘보도기획전 동행’을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 양천구는 “지난 3년여간 우리 구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객관적인 언론보도를 통해 되돌아보고, 주민들과 함께 앞으로의 시간도 그려 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기획전은 ‘민선 6기 3주년, 언론이 바라본 양천의 발걸음’이라는 주제 아래 오는 26일부터 30일까지는 양천구청 1층 로비에서, 다음달 3일부터 7일까지는 해누리타운 2층 로비에서 열린다. 민선 6기가 출범한 2014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 3년여간 언론에 보도된 관련 기사 총 1만 7000여건 중 80여건을 선정, 전시한다. 주민과 함께 이겨낸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1동1도서관 사업에 따른 작은 도서관 개관, 우리아이 건강살피미 ‘아이원건강센터’ 운영, 서부트럭터미널 첨단물류단지 선정, 양천생활안전체험관 개관 등 다양한 기사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울 예정이다. ‘양천의 미래, 이랬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코너도 마련, 주민이 바라는 양천의 미래를 함께 그려 보는 시간도 갖는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터키의 저항 작가 ‘네집 파즐 크샤큐렉’의 작품 100여권 한국에

    터키의 저항 작가 ‘네집 파즐 크샤큐렉’의 작품 100여권 한국에

    터키의 출판인 엠라 크사큐렉(오른쪽)이 19일 국립중앙도서관을 방문해 터키의 유명 저항 작가이자 본인의 조부인 네집 파즐 크사큐렉의 작품 100여 권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했다. 엠라 크사큐렉은 지난해 6월 국립중앙도서관을 방문했다가 도서관 내 정기간행물실의 ‘터키의 창’ 서가에서 우연히 조부의 도서를 발견했다. 생각지 못한 일에 큰 감동을 받은 엠라 크사큐렉은 당시 국립도서관 관계자에게 할아버지의 작품 전질을 기증하겠다고 약속했고, 터키가 주빈국으로 참여한 ‘2017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해 이 약속을 지켰다. 엠라 크사큐렉은 “이번 도서 기증을 바탕으로 한국과 터키의 문화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기형도 미공개 연시 한편 첫 공개

    기형도 미공개 연시 한편 첫 공개

    요절한 천재시인 기형도(1960∼1989)가 20대 초반에 쓴 연시(戀詩) 한 편이 처음 공개되면서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이 시는 10∼11월 경기 광명시에 설립될 기형도문학관에 기증될 예정이라고 문화일보가 보도했다.기형도 시인과 문학회 활동을 함께했던 박인옥(한국문인협회 안양지부장) 시인은 18일 “문학회 모임에 참여했던 문우의 여동생이 갖고 있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기자 출신의 작가로 현재 캐나다에 거주 중인 성우제씨가 지난 13일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하면서부터 알려졌다. 기형도 시인이 경기 안양에서 단기사병(방위병)으로 근무할 당시인 1982년, 문학모임인 수리문학회의 한 여성 회원에게 써준 서정시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다음은 이번에 처음 공개된 그의 시다.  “당신의 두 눈에 / 나지막한 등불이 켜지는 / 밤이면 / 그대여, 그것을 / 그리움이라 부르십시오 / 당신이 기다리는 것은 / 무엇입니까. 바람입니까, 눈(雪) 입니까 / 아, 어쩌면 당신은 / 저를 기다리고 계시는지요 / 손을 내미십시오 / 저는 언제나 당신 배경에 / 손을 뻗치면 닿을 /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읍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시의회 김제리의원 “경의선 ‘화물기차 숲길 사랑방’ 탄생”

    서울시의회 김제리의원 “경의선 ‘화물기차 숲길 사랑방’ 탄생”

    서울시의회 김제리 의원(더불어민주당, 용산1)은 지난 1년 간 준비 끝에 6월 15일 오후 4시 경의선숲길 시작부에 설치된 숲길내 화물기차(화차)를 리모델링해 지역 주민 및 공원방문 시민들의 여가공간으로 개방했다. 특히 주민의견 수렴 시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와 고밀의 주상복합아파트가 있어 인구밀도가 높고 젊은 층이 증가 추세로 주변여건을 감안 다양한 프로그램보다는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특화된 내용을 기획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지역주민들이 상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랑방 기능이 필요하다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당일 식전행사로 현장예약자 50명의 코르크 화분 만들기를 시작으로 숲길 사랑방 현판식에 이어 마을 도서관 고래이야기 위원님의 도서 기증식(150권) 효창동 주민센터 동아리 모임인 주민들로 구성된 오카리나회원들의 공연으로 주민과 함께하는 축제의장이 됐다. 김제리 의원은 축사를 통해 경의선 숲길 조성 경과에 대해 설명을 하고(경의선 숲길 가좌에서 원효로 까지 총 연장 6.3㎞ 중 용산구간 새창고개 백범교 부터 원효문배체육센터 뒤편 길이 730m 용산구 구간 총사업비 46억 1천1백만 원) 숲길 사랑방 개소 시 까지 고생한 서부공원녹지사업소 공원여가과 강현주 과장을 비롯한 관계공무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상설로 운영될 어린이 목공교실과 특설인 주민 목공 기초교실 및 주민 도서기증으로 만들어진 기차책방 운영에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하고 향후 주민들의 의견 수렴를 통해 보다 더 행복한 여가공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개성상인의 ‘그 집’ 켜켜이 쌓인 예술사랑… 전통의 멋, 공유하다

    개성상인의 ‘그 집’ 켜켜이 쌓인 예술사랑… 전통의 멋, 공유하다

    1917년에 태어난 인물 중에 한국의 근현대기에 활약한 유명 인사들이 유독 많다. ‘마지막 개성상인’ 송암(松巖) 이회림(1917~2007) OCI 그룹 창업자도 그중 한명이다. 신용, 검소, 성실의 3대 덕목을 생활 신조로 삼아 사업을 일구고 불모지였던 국내의 화학산업을 개척했던 송암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물론 기업의 성장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미술품 수집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개인 송암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송암의 예술사랑의 의미는 우리 전통 예술의 멋을 음미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더욱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었다. 일찍부터 고서화와 도자기 등 골동품 수집을 시작한 그는 사업의 본거지인 인천의 학익동에 송암미술관을 지어 평생 수집한 8400점의 미술품과 함께 인천시에 기증했다. 생전에 본인의 개인 재산을 기부해 설립한 송암문화재단은 그의 장학사업과 예술후원사업을 이어 가고 있다.송암문화재단 산하의 OCI미술관에서 송암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전 ‘그 집’이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송암의 사저 터에 건립된 송암회관을 전시공간으로 개조해 2010년 개관한 미술관은 그의 예술사랑 정신이 오롯이 살아 있는 뜻깊은 장소다. 전시는 옛 그림과 도자기, 말년에 정성을 쏟아 수집했던 북한 유화 등 송암이 살아생전 수집하고 사랑했던 애장품과 OCI미술관의 프로그램을 통해 육성된 젊은 작가들의 현대미술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문화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던 송암의 의지가 후대에 이르러 이런 결실을 거두었음을 보여 준다. 석지 채용신과 우청 황성하를 비롯해 박경종, 박종호, 양정욱, 유근택, 이우성, 이현호, 임택, 전은희, 정재호, 한상익, 허수영, 홍정욱 등 작가 14명의 작품과 작자 미상의 책가도, 도자 등으로 구성됐다. ‘OCI 영크리에이티브스’와 OCI미술관 창작 스튜디오를 거쳐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 8명이 신작을 출품했다.전시는 1층부터 3층까지 전시장을 따라 올라가며 집의 바깥부터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도록 짜여져 있다. 1층은 바깥세상의 풍경이다. 개성 출신 화가 우청 황성하의 10폭 산수화를 중심으로 현대미술가들이 바라보는 하늘, 숲, 산, 호수의 풍광이 펼쳐진다. 송암이 고향을 그리며 모았던 1500점의 북한 유화 중 공훈예술가 한상익이 그린 금강산 풍경 ‘삼선암에서’(1986)도 걸렸다. 2층은 석지 채용신의 ‘팔도 미인도’ 병풍, 책가도와 도자, 전은희와 정재호 작가가 그린 오래된 집의 풍경, 양정욱의 키네틱 아트 ‘어느 가게를 위한 간판’ 등이 어우러져 북적이는 거리 풍경을 연상하게 한다. 3층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 박경종은 시공간을 넘나들듯 과거 송암이 사용하던 물건과 현대의 일상용품을 뒤섞어 설치해 놓았다.송암의 손녀인 이지현 OCI미술관 부관장은 “할아버지께서는 매일 아침 소공동 사무실에 출근했다가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붓글씨도 쓰고 사람들을 만나곤 하셨다”면서 “벽돌 쌓듯 차곡차곡 모아온 시간과 정성, 인연으로 만들어 낸 공간에서 작가들과 함께 할아버지의 정신을 기려 보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미술관이 된 그 집 5층에는 송암의 방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수준급 서예가였던 그가 사용했던 다양한 종류의 붓과 벼루, 연습하던 종이 더미가 은은한 묵향과 함께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책상 위에는 돼지저금통부터 ‘정로환’ 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양의 저금통이 놓여 있다. 한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던 송암은 동전이 생기면 무조건 저금통에 넣었다고 한다. 커다란 인삼주 병도 눈길을 끈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겼던 송암은 주변 사람들의 건강이 염려되면 “먹고 힘내라”는 말과 함께 6년근 인삼을 종이에 둘둘 말아 선물하곤 했다. 인삼은 개성의 특산품으로 그의 고향사랑이 담긴 격려품이었다. 송암의 첫 직장인 손창선 상점은 1000여가지의 물건을 취급하는 만물상이었다. 10대의 그는 자전거에 짐수레를 달고 주문받은 물건을 배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낡은 자전거는 성실하게 페달을 밟았던 젊은 송암을 보는 듯하다. 한국 경제사의 1세대 기업가로 부와 명예를 일군 송암은 어떻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사회에 돌려줄 수 있었을까. 책상 뒤 벽에 걸린 누렇게 바랜 액자 속의 휘호가 그 답일 것 같다. 그가 수시로 보고 마음에 새겼을….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 전시는 7월 1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단독] 김대중·노무현 소공동 맞춤 양복… MB, 처음 고른 캘빈클라인 슈트 기증

    마크롱 취임 때 55만원짜리 기성복 사르코지 디오르·프라다 즐겨 입어 역대 대통령들은 과연 어떤 양복을 입었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세기 양복점’에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잉글랜드 양복점’에서 만든 맞춤 양복을 즐겨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고 이병철 삼성,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단골집인 ‘해창양복점’과 더불어 한때 서울의 대표적 맞춤 양복 거리였던 중구 소공동의 양복점들이다. 수년 전부터 옷 좀 입을 줄 안다는 남자들에겐 익숙해진 용어인 ‘비스포크’(Bespoke), 즉 주문한 대로 만든(be spoken for) 양복의 원조 격인 셈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고급 기성복과 맞춤옷을 두루 입었다. 2005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1999년 난생처음 고른 양복”이라며 캘빈 클라인 슈트를 자선경매에 기증했다. 2008년 한 토론회에서 이 전 대통령이 슈트 상의를 벗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는데, 안감에 붙은 라벨이 이탈리아 명품 ‘로로 피아나’여서 화제가 됐다. 이 원단은 한 벌에 300만원대를 훌쩍 넘는다. 이 전 대통령은 또한 제일모직에서 독립한 최고급 맞춤옷집인 ‘장미라사’의 단골로도 유명하다. 해외에서도 대통령의 슈트는 관심거리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식에서 450유로(약 55만원)짜리 기성복을 입어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 언론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패션을 통해 이전 정권, 정치지도자들과 차별화하려는 것이란 해석을 내놓았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디오르나 프라다 같은 명품을 즐겨 입어 ‘블링블링 대통령’이란 별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세계 최초 금속활자 탄생의 미스터리…‘직지코드’ 예고편

    세계 최초 금속활자 탄생의 미스터리…‘직지코드’ 예고편

    프랑스 국립도서관 지하에 보관된 우리 문화재 ‘직지’를 찾아 나선 다큐멘터리 영화 ‘직지코드’의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직지코드’는 고려시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둘러싼 역사적 비밀을 밝히고자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 5개국 7개 도시를 종단한 제작진의 다이내믹한 여정과 놀라운 발견을 담은 작품이다. ‘직지’는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독일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무려 70여년 앞선 1377년에 고려 흥덕사에서 인쇄된 소중한 우리 문화재다. 그러나 19세기 말 프랑스의 수집가 콜랭 드 플랑시가 ‘직지’를 구매해 고국 프랑스로 가져갔다. 이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된 뒤 창고에 방치돼 있던 ‘직지’는 1967년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역사학자 고(故) 박병선 박사(1928~2011)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원본은 여전히 프랑스 국립도서관 지하 수장고에 보관돼 일반인들은 열람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개된 예고편에는 ‘직지’ 원본과 그것을 둘러싼 동서양 문명사의 비밀을 밝히는 제작진의 추적 과정이 생생히 담겨 있다. 특히 제작진에게 ‘직지’ 열람을 허락하지 않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석연치 않은 반응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마인츠, 파리, 바젤, 아비뇽, 아시시, 플로렌스, 로마 등 유럽 5개국 7개 도시를 종단하며 끈질기게 추적에 나선 제작진의 노력과 다큐멘터리 제작에 호의적이지 않은 도서관 관계자의 말이 대조적으로 배치돼 그들이 ‘직지’ 원본을 보여주지 않는 진짜 이유를 궁금케 한다. 이러한 상황은 구텐베르크와의 연관 여부에 대해서 의문을 자아내며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다빈치 코드’처럼 퍼즐을 차례로 조합해 단서를 찾아나가는 것에 빗대어 ‘직지코드’라고 재치 있는 제목을 만든 제작진의 감각이 눈길을 끈다. 세계 문명사를 추적하는 매력적인 다큐멘터리 ‘직지코드’는 오는 6월 28일 관객을 만난다. 전체 관람가. 102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1억 1000만원 전 재산 부산대에 기증하고 떠난 80대 할머니.

    80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평생 모은 돈 1억 1000만원을 부산대학교에 장학금으로 기증했다. 부산대는 최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이모(87) 할머니가 장학금으로 평생 모은 재산 1억 1000만원을 기탁했다고 16일 밝혔다. 1931년 경북 청도에서 2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이씨는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서 슬하에 자녀가 없이 경남 창원에서 홀로 살아오다가 요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중 최근 별세했다. 장학금 기부는 평소 할머니를 모시며 돌봤던 친척 A(50·여·경남 창원시)씨를 통해 이뤄졌다. 지난 9일 할머니의 재산을 부산대 발전기금재단에 기부한 A씨는 “할머니가 생전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에 힘이 드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오셨다”며 “유지를 받들고자 부산대에 할머니의 뜻과 재산을 대신 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름 밝히기를 극구 사양한 A씨도 2012년부터 3년간 해마다 100만원씩 300만원을 부산대 발전을 위해 기부했다. A씨는 “딸이 부산대에 다닐 때 국가장학금을 받는 등 도움을 받았다며 나도 돕고 싶어서 형편에 맞춰 기부를 약간 하게 됐다”고 말했다. A씨는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절대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으셨다”고 전했다. 전호환 부산대 총장은 “얼굴도 뵌 적이 없는데 ‘아름다운 선물’을 모두 주고 떠나신 할머니의 소중한 뜻을 깊이 새겨 ‘할머니 장학기금’을 만들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런던 아파트 화재 피해자에 몰려든 英국민들 기부

    런던 아파트 화재 피해자에 몰려든 英국민들 기부

    이제 ‘신사의 나라’ 영국의 이미지가 ‘모범적인 기부의 나라’로 바뀔 수도 있을 법하다. 주식인 빵을 포함해 수천 개의 통조림 음식과 의류품 등의 기증품이 그렌펠 타워 피해자를 돕기 위해 쇄도하고 있어서다. 14일자(현지시간) 영국 메트로에 따르면, 실제 그렌펠 타워가 있는 켄싱턴·첼시 자치구가 정말 많은 물품을 받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쇼핑 카트에 기부물품을 한 가득 채워 사고가 발생한 타워에서 몇 분 거리에 떨어진 웨스웨이 구조센터로 향했다. 낯선 이들은 집과 재산을 잃고 노숙자 신세가 된 화재 희생자들에게 자신의 소유품을 기꺼이 나눠주었다. 엄청난 양의 음식들이 센터 안 테이블마다 넘쳐 산을 이루었고, 수백 병의 물은 둘 곳이 없어 센터 밖에 차곡차곡 쌓아 올려졌다. 세면도구와 화장품, 사이즈가 다른 신발 수십 켤레와 여름옷과 겨울옷, 깨끗한 수건 더미도 기부품에 포함돼 있었다. 켄싱턴·첼시 자치 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음식과 의복, 그밖의 기타 물품 기부로 관대함을 보여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너무 많은 물품이 물밀듯 밀려들어 죄송하지만 당분간 기부를 미뤄주셨으면 합니다. 기부품이 다시 필요하게 되면 소셜미디어와 웹사이트를 통해 이를 알리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전역에서 몰려든 기부 물품 외에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 페이지들도 생겨났다. 현지 언론은 몇 시간 안에 2억 4300만원 이상을 모아들인 펀딩 페이지도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수요일 새벽 1시경에 영국 런던 서쪽 라티머 로드의 24층 아파트 ‘그렌펠 타워’에서 발생한 화제로 인해 지금까지 17명이 사망했으며, 74명이 런던 전역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정확한 실종자 숫자는 발표되지 않은 상태로, 사망자가 100명이 넘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실정이다. 사진=메트로, 데일리메일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백혈병 환자에 생명 선사한 ‘빨간 마후라’

    백혈병 환자에 생명 선사한 ‘빨간 마후라’

    공군 F15K 전투기 조종사가 생면부지의 백혈병 환자를 위해 조혈모세포(골수)를 기증했다. 공군은 15일 “제11전투비행단 소속 송준희(30) 대위가 이날 대구의 한 병원에서 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고 밝혔다.2015년 6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며 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 기증 희망자로 등록한 송 대위는 지난 4월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하는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유전자 검사와 건강 진단 등을 거쳐 이날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게 됐다. 송 대위는 공군사관학교 58기로 2010년 임관한 뒤 2012년 F5 전투기 조종사가 됐고 이듬해 주력 전투기인 F15K 조종사로 뽑혔다. 지난해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실시한 다국적 연합훈련 ‘레드 플래그 알래스카’에 참가하기도 한 송 대위는 F15K 500시간을 포함해 총 800시간이 넘는 비행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11전비 참모부인 정보처에서 임무계획담당장교로 근무하며 비행 임무를 하지 않고 있어 조혈모세포 기증이 가능했다. 송 대위는 사관학교 시절부터 헌혈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해 지금까지 헌혈 횟수도 총 28차례에 달한다. 부인의 출산을 5개월 앞둔 송 대위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기 때문에 환자 역시 누군가에게 소중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대한민국 하늘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전투조종사로서 생명을 살릴 값진 기회를 얻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이낙연 총리 “메르스 방역, 선조치 후보고하라”

    이낙연 총리 “메르스 방역, 선조치 후보고하라”

    이낙연 국무총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방역 대응은 ‘선(先)조치 후(後)보고하라’고 질병관리본부장에 주문했다.이 총리는 15일 질병관리본부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모든 방역 대응과 관련한 사항은 질병관리본부장 책임하에 선조치하고 후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질병관리본부장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의료기관 내 메르스 환자 발생이 증가함에 따라 현재도 방역체계를 가동하고 있으나, 향후 대응을 보다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에 이 총리는 “감염병 대응의 성공과 실패는 선제 대응 여부에 달려 있다”며 “의료기관들이 메르스에 대해 다시 한 번 경각심을 갖고 의심환자 발생 시 적절한 대응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또 국민이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신속히 정보를 제공하고, 권역별 치료체계 구축을 위한 감염병 전문병원 관련 예산 확보, 방역인력 증원, 긴급상황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안강구를 지시했다. 이 총리는 “여름 휴가철 (중동지역) 성지순례 등이 예상되는 만큼 국무조정실장이 관계부처 회의를 개최해 국내 방역체계 준비태세를 점검하고 감염병 대응에 만전을 기하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대병원 2세 미만 유아 폐이식 성공

    서울대병원 2세 미만 유아 폐이식 성공

    뇌사 상태 소아 장기 기증받아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 폐이식팀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2세 미만 유아의 폐이식에 성공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달 간질성 폐질환으로 입원한 정모양이 폐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난 12일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고 14일 밝혔다.정양은 생후 22개월, 체중 9.5㎏로 국내 최연소·최소체중 폐이식술로 기록됐다. 폐이식은 간이식, 신장이식과는 달리 법적으로 기증자의 조직 일부만 제공하는 생체이식을 할 수 없어 반드시 뇌사 기증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소아나 유아 환자 뇌사는 매우 드물다. 성인 뇌사자 폐도 체중 차이 때문에 이식이 쉽지 않다. 특히 10㎏ 이하 소아에게는 기증받은 폐를 절제해 이식하는 것도 쉽지 않아 국내에서 그동안 시행된 적이 없었다. 수술팀은 호흡기내과, 흉부외과, 마취과, 감염내과, 장기이식센터 의료진을 비롯해 어린이병원의 소아청소년과와 호흡기팀, 감염팀, 중환자치료팀 등으로 구성됐다. 기증자도 생후 40개월밖에 안 된 소아로, 갑자기 상태가 위독해지면서 뇌사 상태에서 여러 환자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잠룡들의 땅… 600년 권력의 용광로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잠룡들의 땅… 600년 권력의 용광로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서울사방 서촌, 사람을 품다’ 편이 지난 3일 서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투어 참가자 30여명은 이날 10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를 출발, 통의동 백송터-동양척식주식회사 관사-겸재 정선 생가터-청와대 무궁화동산-우당기념관-벽수산장터-노천명 가옥-윤동주 하숙집-수성동 계곡-이상의 집-통인시장-이상범 가옥-배화여대 캠벨기념관-필운대 등 순으로 2시간 30분에 걸쳐 서촌의 골목 골목을 누볐다. 이번 코스 중 서울미래유산은 청와대 무궁화동산, 우당 이회영선생기념관, 노천명 가옥, 이상의 집, 통인시장, 캠벨기념관 등 모두 6곳이다.초여름의 햇살이 따가운지 서울미래유산 로고가 찍힌 빨간색 스카프를 머리에 뒤집어쓴 참가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햇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이나 손목, 가방에 스카프를 맵시 있게 장식하며 멋을 냈다. 해설자 한세화 서울도시문화지도사의 구수한 입담에 탄성을 내뱉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코스는 길고 시간은 짧다 보니, 한 해설자는 지름길을 찾아 꼬불꼬불한 서촌 골목길을 내질렀고, 일행은 선두에 따라붙느라 잰걸음을 놓아야 했다. 부부, 친구, 자매 등 젊은층이 주를 이뤘고, 일본인 여성도 동행해 ‘장안의 핫플레이스’ 서촌의 인기를 실감 나게 했다.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함으로써 장소에 새겨진다”고 갈파했다. 사람이 사는 장소와 집이 그 사람을 존재케 한다는 뜻이다. 거주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집에 대한 관념이 이전처럼 그리 절대적이진 않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서촌의 형성사를 알면 애정도 깊어질 것이다. 우리는 서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서울을 좀 아는 사람은 ‘북촌보다 서촌’이라는 주장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작위적인 북촌에 비해 격은 좀 떨어지지만 서촌의 편안함에 점수를 더 얹는 식이다. 서촌에는 서울말을 사용하는 중류사회의 서울토박이들이 많이 살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해봐도 화려한 삼청동, 가회동보다 소박한 옥인동, 통인동에서 오히려 ‘한국을 더 많이 느낀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골목마다 만갈래 사연과 곡절 숨어 서촌의 이 같은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투어 참가자들에게 물어보니 북촌은 사대부와 벼슬아치 같은 지배층이 살았고, 남촌에는 퇴락한 선비들이 산 반면, 인왕산 아래 서촌에는 궁이나 관청일을 보는 아전(衙前)계층이나 고관대작의 일을 봐주는 겸인(?人)같은 중인 이하 서민층이 산 동네로 알고 있었다. 서울 걷기 열풍이 불면서 해설자들이 알려준 판에 박힌 답변이기도 하다. ‘오래 묵은 도시’서울의 정체성을 단숨에 설명하기 쉽지 않고, 뾰족한 답도 없는 게 사실이다. 서울의 역사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가치는 거대한 랜드마크가 주는 이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 녹아있는 이야기에 있다고 한다. 도시가 안고 있는 기억이 도시의 주인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촌은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거대한 실타래’ 같다. 골목골목마다 천 갈래 만 갈래의 사연과 곡절이 숨어 있다. ●한국전쟁 이후 서촌의 모습 바뀌어 인왕산 기슭 서촌에 대대로 서울의 서민층이 살았을 것이라고 알았다면 그것은 오해다. 조선 초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최고 권력의 핵심 배후지였다. 북촌보다 한 수 위였다. 지금 서촌은 해방 후 한국전쟁의 부산물이다. 월남한 피란민과 일거리와 학교를 찾아 고향을 떠나온 지방민이 무작정 정착한 결과 반세기 만에 오늘의 모습으로 변했다. 서촌의 또 다른 지명인 웃대(상촌·上村)는 경복궁 서쪽 인왕산에서 흘러내린 백운동과 청풍계의 물줄기가 수성동천, 옥류천과 합류하는 위쪽을 말한다. 경복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역으로 임진왜란 이전까지 왕족 이외엔 거주가 불가했다. 태종의 셋째 아들 세종대왕의 잠저가 통인동(옛 준수방)에 있었다는 얘기는, 태조의 다섯째 아들 태종의 집도 그곳에 있었다는 뜻이다. 방원과 왕위를 다툰 배다른 동생 무안대군 방번의 옛집도 자수궁터(옥인동 군인아파트)였다. 퇴위한 정종은 사직단 근처 인덕궁에서 머물렀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비해당이 수성동 계곡에 있었고, 효령대군이 비운에 간 조카의 집을 이어받았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 버린 뒤 세도가와 중인층이 야금야금 틈입했다. 서촌은 광해군의 잊혀진 영토이기도 하다. 광해군은 ‘왕기가 있다’며 경덕궁(경희궁), 인경궁(사직동과 내자동 일대), 자수궁 등 인왕산 아래 3곳에 3개의 왕궁을 짓느라 민가 수천채를 허물고 공사를 일으키는 바람에 인조반정의 원인을 제공했다. 누각동, 누상동, 누하동이라는 지명은 이때 지은 궁궐의 누각에서 비롯됐다. 답사단이 처음 찾아간 통의동 백송터는 영조가 태어난 창의궁이었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영조는 재위 52년간 무려 247번 이곳을 참배, 바느질 무수리였던 어머니 숙빈 최씨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영조의 부마집에 입양돼 창의궁에서 자란 추사 김정희는 서촌에 흘러들어온 서당 훈장 천수경이 결성한 문학동인 송석원 시사(詩社)와 인연을 맺어 ‘송석원’이라는 바위각자를 썼다. 인왕산이 백악산과 이어지는 기슭인 지금의 청운동과 효자동, 궁정동은 장동 김씨의 옛 터이다. 안동 김씨 서울파인 장동 김씨가 순조~헌종~철종 3대에 걸쳐 누린 세도정치의 산실이다. 답사단은 경복고등학교 교정 안에 있는 겸재 정선의 옛 집터와 그 집터에 세워진 자화상 ‘독서여가도’ 동판비를 둘러보고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는 사치를 누렸다. 300여년전 겸재가 인왕산을 바라보던 바로 그 앵글이다. 한 지도사는 인쇄해 온 한성부 지도와 인왕제색도를 일행에게 나눠줘 이해를 도왔다. 장동 김씨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장동팔경첩도, 인왕제색도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다음 코스 궁정동 무궁화동산은 장동 김씨의 영화를 있게 한 김상용·김상헌 형제의 집터이다. 척화파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가 새겨진 시비와 궁정동 안가, 효자동에 살았던 시인 박목월의 연애담으로 귀가 즐거웠다.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사당 선희궁 터에 세워진 국립 농학교와 맹학교를 지나 우당 이회영기념관을 만났다. 인왕산의 또 다른 이름 필운대의 주인 백사 이항복의 직계 11대손이다. 전 재산을 팔아 간도로 독립운동을 떠난 우당과 육형제를 기리는 기념관이 서촌 신교동에 자리잡은 것은 사필귀정이다.서촌 분위기를 깨는 유리건물 GS남촌리더십센터 고갯길을 내려가면 옥인동47번지 옛 벽수산장이 나타난다. 한때 이 땅의 주인이 서촌의 주인인 시절이 있었다. 장동 김씨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고종 대의 외척 여흥 민씨에 이어 순종 대의 외척 해평 윤씨 등 조선 말 경화사족(京華士族)들의 권력 각축장이었다. 인왕산을 주산으로 정하려던 무학대사를 물리친 정도전의 후예들이 지향한 신권(臣權)정치의 무대였다. 왕의 산, 인왕산을 차지한 신하들이 왕권을 윽박질러 당파정치, 외척정치, 세도정치를 일삼는 바람에 사화(士禍)와 반정(反正)이 되풀이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조선 권력의 배후지, 매국노가 삼켜 인왕산 기슭에서 사직단 북쪽을 일컫는 서촌은 조선초기부터 권력의 배후지이자 왕족의 세거지로 금역이었다. 장차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잠룡들의 사저이자 왕위에서 배척당한 왕족의 도피처였다. 성종 이후 사대부 세력이 조금씩 틈입해오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전소되면서 법궁이 창덕궁으로 옮겨가자 통제가 풀렸다. 장동 김씨, 남양 홍씨, 기계 유씨를 비롯한 경화사족들이 청풍계와 백운동, 옥류천을 중심으로 자리잡았으며 이들의 뒤를 따라 천수경을 위시한 중인들이 필운대와 인왕산동을 오가며 송석원시사를 열었다. 이들이 이룬 중인문화가 서촌의 한 축을 형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는 친일 매국노들의 독무대였다. 옥인동의 절반인 2만평이 윤덕영의 차지였고, 이완용도 옥인동 19번지 4000평을 매집해 못지않은 저택을 지었다. 둘 다 팔지 못할 것(나라)을 팔아서 갖지 못할 것(서촌)을 차지하고 아방궁을 지었다. 옥인동 윗동네는 윤덕영, 아랫동네는 이완용이 나눠 지배했다. 중인문화가 꽃피었던 옥류동 계곡 전체가 개인 사유지가 됐다. 지금의 서촌은 해방 후, 한국전쟁 이후 두 집의 필지를 분할한 수많은 작은 집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것이다.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다. 송석원의 역사는 곧 서촌의 역사요, 서울의 역사이자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3대 세도정치를 편 장동 김씨에게서 명성황후를 등에 업은 여흥 민씨에게 넘어갔다가, 순종효황후의 큰아버지 해평 윤씨 윤덕영이 벽수산장을 지어 소유했다. 한국전쟁 시기 서울을 점령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청사로 사용됐고, 미군과 유엔청사로 차례로 쓰였다. 프랑스풍 조선 최대의 건물, 벽수산장은 1966년 화재로 불탔고, 1973년 철거됐다. 유일한 증거가 박노수미술관이다. 청전 이상범의 제자 박노수는 집과 작품, 소장품 1000여 점을 종로구청에 기증했다. 진정한 서촌사람이다. 노주석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왕족 후원 받은 예술가 모여 ‘조선 르네상스’ 이뤄

    왕족 후원 받은 예술가 모여 ‘조선 르네상스’ 이뤄

    안평대군, 안견 후원 대표적 사례 근현대 예술가 윤동주·이중섭 흔적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7길 13 체부동과 효자동 일대에는 한옥 660여채가 처마를 맞대고 있다. 서촌의 한옥밀집지역이다.주택의 구획이나 골목이 조선시대의 기본적인 도시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 인정돼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비록 퇴락한 1920~30년대 개량 한옥이지만 이들 한옥은 근현대기 서울에 몸을 의탁했던 문화예술가들의 민족 정서와 예술혼을 일깨웠다. 북촌보다 저렴한 집값과 생활비가 그들을 버티게 했다.서촌은 조선시대 문화예술의 본류였다. 왕족과 세도가의 거주지 서촌에 그들이 후원하는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깃들었다. 안평대군의 꿈이야기를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대표적 이다. 300년 전 인왕산을 사진 찍듯 그린 ‘장동팔경첩’도 장동 김씨의 후원으로 태어났다. 청풍계에서 송강 정철의 시가문학이 싹텄고, 당대 최고의 화가 이인문과 김홍도가 중인들의 문학동호회 ‘송석원시사’의 낮과 밤을 그림으로 남겼다. 서촌에 모여든 중인 문인들이 사대부와 더불어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를 만한 골목문학인 이른바 위항문학을 낳았다. 비봉의 비석이 1200여년 전 진흥왕 순수비라는 사실을 밝혀낸 추사 김정희의 금석학과 추사체도 서촌의 산물이다. 근현대기 문화예술가들의 발자취 또한 뚜렷하다. 윤동주와 이중섭이 머물던 하숙집, 이상이 살았던 백부의 집, 천재시인과 천재화가의 앙상블로 유명한 이상의 벗 구본웅의 집, 노천명 가옥, 청전 이상범의 청전화옥이 골목마다 보석처럼 숨어 있다. 청전은 장승업과 안중식의 대를 잇는 우리나라의 대표 화백이요, 박노수미술관을 기증한 남정의 스승이다. 소설가 박완서가 다녔던 매동초등학교는 이야기 창고이다. 김광규 시인의 ‘영이가 있던 날’이나 ‘아니다 그렇지 않다’도 시인이 살던 통인동과 적선동의 그날을 노래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서촌 전체가 예술촌이다.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 소 63마리, ‘공짜로’ 풀어준 목장 주인, 이유는?

    소 63마리, ‘공짜로’ 풀어준 목장 주인, 이유는?

    목장 주인이 소를 키우는 목적은 우유를 얻거나 소를 도축장으로 보내 고기를 얻고 이를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 사는 한 목장 주인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BBC 등 현지 언론의 13일자 보도에 다르면 영국 중부 더비셔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제이 와일드(59)는 최근 자신이 키우던 소 63마리를 노퍽주의 한 동물보호센터로 보냈다. 심지어 이중 30마리는 새끼를 밴 상태였다. 가격으로 치면 4만 파운드(약 5800만원)에 달한다. 그가 애지중지 키운 수십 마리의 소를 내다 팔거나 직접 도축해 고기를 얻지 않고, 도리어 돈 한푼 받지 않은 채 구조센터로 보낸 이유는 단 하나, 채식주의자로서 소가 죽어가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기 위해서다. 25년간 채식을 해 온 와일드는 2011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목장을 물려받아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소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데다 30대 중반부터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도축장에 소를 보내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져만 갔다. 그는 “소는 기억력이 매우 좋고, 감정을 느낄 줄 안다. 소와 소는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데, 나는 소들이 우는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다”면서 “나는 소들을 보살피다가 도축장으로 보내는 일이 너무 어려워졌다. 소들도 죽음을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 소 목장 주인으로부터 소를 기증받은 동물보호센터 측은 “이 소들은 도살장에 끌려가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죽을 때까지 ‘애완동물’로서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사실 자신이 키운 소를 보호센터에 보내는 목장 주인이 와일드가 첫 번째는 아니다”라면서 몇몇 목장주들은 희생되는 소들을 더는 지켜보지 못하고, 소를 돕고 싶다며 보호센터를 찾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사진만이 나의 유일한 언어”

    “사진만이 나의 유일한 언어”

    일기를 쓰듯 순간의 감성 담아내…뚜렷한 명암대비·기하학적 화면 실험 정신 보여주는 왜곡 시리즈…헝가리·파리·뉴욕 시기로 나눠“사진만이 나의 유일한 언어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사진으로 일기를 쓰듯 순간의 감성을 진솔하게 담아냈던 앙드레 케르테츠(1894~1895). 앙리 카르티에 프레송, 브라사이, 로버트 카파 등 사진의 거장들로부터 존경받으며 사진 매체의 잠재적 표현 가능성을 끊임없이 연구했던 모더니즘 사진의 거장 케르테츠의 작품 세계를 보여 주는 전시회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케르테츠는 독학으로 사진을 익혔다. 부다페스트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 20세기 초반 프랑스 파리로 옮겨 그곳에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별세할 때까지 활동했다. 케르테츠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84년 10만점의 원판 필름과 1만 5000점의 컬러 슬라이드 소장본을 프랑스 문화부에 기증했다. 이번 전시는 그 원판으로 인화한 모던 프린트 189점으로 구성됐다. 그의 실험정신을 보여 주는 ‘왜곡’ 시리즈는 슬라이드 필름과 영상물로 전시장에 설치됐다. 케르테츠는 예술사진과 현장 사진, 아방가르드적인 표현과 감수성이 넘치는 시적인 표현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적절한 빛이 적절한 실루엣을 적절한 순간에 비추는 것’을 잡아내는 능력 덕분에 뚜렷한 명암 대비와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 리듬감이 살아 있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전시는 70여년간 활동한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을 헝가리(1912~1925), 파리(1925~1936), 뉴욕(1936~1985)시기로 나눠 보여 준다. 헝가리 시기에서는 1912년 카메라를 처음 장만한 케르테츠가 동생과 연인 엘리자벳 등 가족과 이웃을 촬영한 사진들이 주를 이룬다. 휴머니즘적 감수성, 목가적인 분위기와 동시에 아방가르드적인 실험성의 전조가 드러난다. ‘수영하는 사람’(1917)은 하이 앵글의 카메라 시점과 대각선 구도,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순간에 포착한 실험성 높은 작품으로 1933년 시작한 ‘왜곡’ 시리즈의 전조를 알리고 있다.1925년 현대미술의 본거지인 파리로 옮긴 케르테츠는 몽파르나스 구역에 자리를 잡고 다다와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를 이끄는 작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특히 만 레이, 몬드리안, 브랑쿠시, 샤갈, 콜레트와 같은 작가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예술적 역량을 키웠다. 그의 대표작 ‘몬드리안의 집에서’(1926)는 수평과 수직의 안정감 있는 화면 구성과 회색조의 뉘앙스가 조화를 이루는 걸작으로 꼽힌다. 파리 시기 케르테츠의 정물사진은 단순한 기하학적 구성과 사물의 그림자를 통한 이미지의 중첩이 특징이다. 오각형 테이블과 삼각형의 어두운 공간이 대비를 이루며 안경과 재떨이, 파이프가 지닌 원이 리듬감 있게 표현된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1926)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케르테츠는 1936년 사진대행사 키스톤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아내 엘리자벳과 함께 뉴욕으로 떠났다. 하지만 작품 스타일이 맞지 않아 계약은 1년 만에 파기되고 전시 실패, ‘왜곡’ 시리즈에 대한 몰이해, 외국인으로서의 장벽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그는 뉴욕의 풍경과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담아냈다. 케르테츠의 예술성은 인생의 후반에 들어 높이 평가받기 시작했다.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대규모 개인전을 시작으로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순회전을 가졌다. 1977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도 개인전이 열렸다. 전시는 9월 3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동네상권 살리고 이웃 만나는 김포양촌 소통광장

    동네상권 살리고 이웃 만나는 김포양촌 소통광장

    동네상권을 살리고 이웃끼리 만나는 경기 김포양촌에 소통광장이 마련됐다. 김포시는 6월 매주 금요일 오후 양촌 누산리의 모아아웃렛 광장에서 ‘마을과 마을이 만나다-야(夜)한 Meeting’ 행사를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지난 9일 첫 행사를 열고 오는 30일까지 금요일마다 개최된다. 오는 16일에는 엄마들의 패션쇼가, 23일 ‘0:AM’ 청년문화단의 공연이, 30일에는 주민노래자랑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릴 예정이다. 양촌일대에 아웃렛이 침체돼 지역 상권을 회복하고 주민 간 소통나눔을 위해 이 행사가 마련됐다. 지난 9일 행사에는 주민 500여명이 행사장을 찾았다. 이날 시 홍보대사 개그우먼 조승희와 모아아웃렛 기증품 경매행사로 걷힌 수익금 100여만원을 복지재단에 기부했다. 어려운 이웃들의 임대주택보증금 지원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행사장에는 푸드트럭 6대가 운영돼 닭강정을 비롯해 다코야끼, 쌀국수, 스테이크 등 먹거리도 마련됐다. 행사장을 찾은 한 주민은 “‘침체된 소규모 지역상권 활성화’라는 행사 취지가 좋다”라며 “가족과 함께 물건도 구입하고 볼거리, 먹거리도 있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이 행사는 김포시와 김포시종합사회복지관, 온라인 커뮤니티 김진나(김포맘들의 진짜나눔), 0:AM 청년문화단, 모아패션아웃렛, 한국푸드트럭협동조합 등이 공동 주최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창원 메르스 의심 환자, ‘음성’ 판정

    창원 메르스 의심 환자, ‘음성’ 판정

    여행 중 두바이를 들른 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 증세를 보였던 여성이 ‘음성’ 판정을 받았다.경남도보건환경연구원은 메르스 의심환자 A(67·여)씨로부터 채취한 혈액과 가래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10일 밝혔다. 보건당국은 A씨와 A씨를 이송한 119구급대원 등에 대한 격리조치를 해제할 예정이다. A씨는 지난 5월 30일 해외여행길에 올라 중동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하루 묵고 유럽으로 갔다. 귀국할 때 또 두바이에서 항공기를 갈아타고 9일 귀국했다. 귀국 3일 전부터 전신 통증을 호소한 A씨는 콧물·오한 등의 증상을 보였다. A씨는 9일 귀국하자마자 119구급차로 병원에 갔다. 병원 측은 미열과 함께 목에 통증을 느낀 A씨가 중동 국가를 거쳐 입국한 점을 확인하고 메르스 의심환자로 판단해 격리조치 했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창원 주민 메르스 의심 증상…아랍에미리트 등 방문한 60대

    창원 주민 메르스 의심 증상…아랍에미리트 등 방문한 60대

    경남 창원에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 환자가 발생해 보건당국이 정밀 검사에 나섰다. 창원에 사는 60대 여성이 아랍에미리트 등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였다.경남도와 창원시는 10일 “9일 오후 11시 50분쯤 119를 통해 창원시의 한 공공병원으로 이송된 A(67)씨를 메르스 의심환자로 분류하고 격리 조치했다”고 밝혔다. 당국에 따르면 A씨는 중동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하루 묵은 뒤 유럽을 여행하고, 귀국길에 다시 두바이에서 항공기를 갈아타고 지난 9일 귀국했다. 귀국 3일 전 유럽 국가를 여행할 때부터 콧물과 함께 한기를 느끼면서 전신 통증이 있었으나 열은 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당국은 A씨를 이송했던 119구급대원도 격리 조치하고, A씨 혈액 등을 채취해 추가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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