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주의 정신의 모색/차동세 한국개발연구원장(시론)
지금 우리경제는 고비용·저효율의 족쇄에 걸려 경쟁력이 떨어지고 성장이 둔화되는 등 여러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다.그런데 최근 한보사태 등 일련의 정치·경제 사건들을 살펴보면,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정신의 결핍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며,이것이 경제 전반에 걸친 고비용·저효율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건전한 시장경제의 발전에는 그에 걸맞는 제도 뿐만 아니라 각 경제주체들의 사회적 책임의식과 도덕성의 확립이 필수적인 조건이다.서로 믿는 마음과 약속을 지키겠다는 마음,그리고 시장경제체제 유지를 위한 각자의 역할분담이 없이는 건전한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가 없다.
한 나라의 자본주의 정신 내지 가치체계는 그 나라 경제의 성격,양상,발전경로 등을 반영하는 동시에 규정한다.우리사회의 미래의 모습과 장기적 효율성이 자본주의 정신에 달려 있다고 본다면,우리경제의 구조개혁을 논하기 전에 먼저 선진화를 뒷받침할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부터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그리고 이는 부의 축적 및 사용에 대한 정당성과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기업가와 부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존경을 확립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부의 축적에 대한 사회의 긍정적 인식과 태도는 자본주의 발전의 밑바탕이 되는 요소이다.
우리는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부의 정당성을 인정하는데는 매우 인색하다.정당하게 얻은 부조차도 사회적 명예와 존경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풍토이다.이는 청빈이라는 유교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지만 우리 경제의 발전과정에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투기이윤과 정치적 특혜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도덕성 확립이 필수 조건
정치적 끈이나 비생산적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일부 사례로 인해 부의 정당성이 의심받게 되었고 부의 사용방식과 상속과정도 부와 명예간의 연계를 약화시켰다.그 결과 부의 축적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뿌리깊게 자리잡게 되었으며 특히 대기업들에 대하여 긍정과 부정,기대와 불신이 뒤섞인 이중적 인식과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
반재벌적 국민정서는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사회내에 실재하는 하나의 큰 영향력으로서,이를 바탕으로 대기업의 사업활동,투자지분,사업영역 등에 대한 각종 규제와 제약이 가해져 왔다.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해소되지 않는 한,앞으로도 공기업 민영화,금융산업 구조개편 등의 주요 현안과제에 있어 대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철폐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기업들은 그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해소가 자유기업주의의 창달과 직결되어 있는 절실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스스로 이러한 부정적 정서와 불신을 불식시키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무엇보다도 법을 준수하는 기업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부의 획득과정의 투명성을 확립하고,과거에는 반대급부를 노리고 정치인에게 주던 정치자금을 이제는 새로운 사회적 책임의식하에 공공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할 것이다.나아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적정한 소유·지배구조를 모색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도 많다.먼저 공정한 경쟁규칙의 확립,규제개혁 등을 통해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공정한 경쟁 및 그 결과의 승복은 시장경제의 핵심적 작동원칙이다.그러나 우리 사회의 평등주의적 사고방식,경쟁제한적 정책과 관행,정책과정의 불투명성 등이 이 원칙의 확립에 장애가 되어 왔다.
그래서 공정한 경쟁의 결여 및 패배인정을 거부하려는 태도가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정부는 각종 진입 및 퇴출장벽을 제거하고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규칙과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투명하고 균등한 사업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그렇게 하여야만 경쟁의 승자들이 정당성을 인정받을수 있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 규칙 확립을
또한 정부는 부당한 부의 원천을 제거함으로써 부의 획득이 근면,올바른 사업판단,위험감수 등에 대한 응분의 대가로 인식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특히 정치적 특혜의 소지를 제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공공부문을 최소화하고 공기업을 조속히 민영화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목적을 위한 부의 사용을 권장하는 반면,부의 포괄적 세습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선·집행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투기이득에 대한 철저한 과세와 권력에 의한 특혜를 배제함으로써 부의 정당성을 강화하면서 부가 생산적 활동에 투입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