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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두 극단 사이의 40%를 찾아서/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이 시점에서 노대통령과 여당은 지난 1년간 자신들이 빚어낸 충돌과 갈등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갈등의 많은 부분이 사실은 단순한 정치대결과 감정과잉,대통령의 언사에서 비롯되었음을 성찰해야 한다. 야당에 의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은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될 수 있다.대통령과 국회가 정통성의 충돌관계에 놓이게 되는 한국식 대통령제의 구조적 모순,여야의 총선전략,지도부 교체를 둘러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내부 역학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맞아떨어져 나온 결과였다. 현재까지 여당은 탄핵의 원인(原因)을 야당에서 찾고,반대로 야당은 탄핵의 원인(遠因)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찾고 있다.야당은 원인(原因)이 무엇인지 가리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야당의 부도덕성에 분노하고 있고,여당은 원인(遠因)을 부인하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은 집권그룹이 원인(遠因)을 제공하였음을 부인하지도 않고 있다. 탄핵안 가결 이후 여야에 대한 지지율은 드라마틱하게 반전되었다.우선 정치적 어젠다가 탄핵 전 ‘친노 대(對) 반노’의 대결구도에서 탄핵가결 후 ‘반(反)탄핵 대 찬탄핵’ 구도로 전환되었다.탄핵 전 노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한 30% 지지율은 탄핵가결 후 70%의 반탄핵 지지율로 반전되었다.결국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대세력과 야당의 탄핵안 의결에 대한 투쟁세력은 각각 30% 정도이고,가운데 자리한 40%를 공집합으로 서로 세력지배를 교체하는 형국이 된 셈이다. 현재 양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40%를 위한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양 극단의 30% 목소리만이 극단적으로 대결하고 있을 뿐,어느 토론자리에도 40%를 위한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실종된 40%의 향방을 성찰하지 않고서는 노대통령이 헌재에서 무혐의로 승리하고 여당이 총선에서 과반을 득표해도 진정한 국민적 통합은 불가능해 보인다.양 극단의 싸움 속에 파묻힌 40%를 그저 양비론(兩非論)으로 치부하는 한,사회적 안정을 도모할 현명한 처방은 마련될 수 없을 것이다. 그 다음 표와 자원 사이의 간극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순수하게 권력공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노무현 정부는 정치적 ‘틈새정권’이다.자신의 덩치보다 몇 배가 되는 두 개의 완강한 벽 사이에서 탄생하였고 그만큼 노무현 정부는 두 벽과 충돌함으로써 스스로의 공간을 넓혀갈 수밖에 없는 특성을 지니고 출발하였다.유권자들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선출은 하였으나 국회권력과 사회적 자원의 소유에 있어서는 3분의1에도 못 미치는,다분히 소수정권의 특성을 안고 출발한 것이었다.현대 한국의 정치사에서 노무현 정부의 경우처럼 표를 가진 집단과 자원을 가진 집단이 유리된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노대통령과 여당은 지난 1년간 자신들이 빚어낸 충돌과 갈등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지난 1년간의 갈등이 우리 사회의 그 어떤 구조적 개혁,예를 들어 부의 재분배 같은 정책이나 미래발전을 위한 대안을 둘러싼 갈등이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갈등의 많은 부분이 사실은 단순한 정치대결과 감정과잉,대통령의 언사에서 비롯되었음을 성찰해야 한다.‘모든 개혁은 저항을 받기 마련이며,그러한 기득권층의 저항에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사고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모든 기득권층이 극복의 대상이 될 수는 없으며,더구나 저항이 크면 그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가 없다.30%에 이르는 야당 지지자들 외에 중립지대의 40% 국민들도 개혁의 내용을 선뜻 지지하지 않는 상태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4·15총선에서 노대통령과 여당은 일단 안정적 수준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여당이 과반의석을 획득한다고 해도 40%의 돌연한 반전을 생각한다면,집권그룹에 대한 안정적 지지율이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노대통령과 여당은 겸허히 탄핵의 원인(遠因)을 돌아보고 무엇을 위한 갈등이었는지 비판적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그리고 사회적 분열을 봉합해야 하는 일차적 책임이 노대통령과 여당에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이것이 탄핵가결을 규탄하며 반노에서 반탄핵으로 이동한 40%의 목소리이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
  • YMCA의 산증인 ‘오리선생’ 전택부씨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라는 구절이 제 삶의 원칙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하늘 나라를 위해서는 YMCA 일을 했고 땅의 나라를 위해서는 ‘한글 운동’을 했습니다.” 한국기독교청년회(YMCA)의 산 증인 전택부(全澤鳧·89).이름 뒷글자인 ‘오리 부(鳧)’자 덕에 ‘오리 선생’으로 불리며 70년대 좌담회와 80년대 ‘사랑방 중계’ 프로그램 등에서 구수한 입담과 재치있는 유머 감각으로 넉넉한 웃음을 안겨주었던 서울 YMCA명예총무가 최근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수필선집 ‘자화상을 그리듯이’(범우사 펴냄)를 완간했다.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만난 전택부 선생은 건강한 모습으로 무욕(無慾)의 삶을 살고 있었다. “7년 전 주위에서 자서전을 내라고 권유했는데 뭐 내세울 만한 것도 없어 반대했는데 하도 극성스럽게 말을 해 자서전은 뭐하고 해서 그 동안 낸 글모음집을 내기로 했어.그 속에 내 삶이 들어 있거든.” 60세까지 발표한 글을 모은 1권과 YMCA를 떠난 뒤 낸 수필을 담은 2권에 이어 이번에 낸 3권은 근래에 발표한 수필로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YMCA 숨결 불어넣은 ‘영원한 Y맨’ 함남 문천에서 1915년 태어난 그의 삶은 YMCA와 뗄래야 뗄 수가 없다.고 장준하의 부탁으로 사상계 초대 주간을 맡은 뒤 57년 YMCA에 들어가 이듬해 사무국장,64∼75년 서울 YMCA총무를 역임했다.그 기간 1938년에 일본에 의해 해산된 뒤 유명무실해진 한국 YMCA에 숨결을 불어 넣었다. 78년 10여년 동안의 자료를 일일이 모아 ‘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1903∼1945)를 펴냈고 6·25 때 불타버린 서울시 종로구 YMCA회관 건물을 10여년에 걸쳐 다시 지었다. 또 지난해 ‘Y새끼다리들이여’를 펴내 서울YMCA 개혁운동에 길을 터주며 ‘영원한 Y맨’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1848년 시작한 YMCA운동의 기본정신은 정의와 자유야.산업혁명 뒤 영국에 몰려든 노동자들이 비참한 삶에서 헤어나려 자발적으로 주창한 이 운동은 한국에서는 독립운동이라는 특수성까지 맞물려 젊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어.” 2001년 쓰러진 뒤 거동은 불편하지만 기억력은 비상했다.삶의 주요한 장면을 들려줄 때 연도까지 정확히 짚어냈다.아마도 유머를 강조하며 실천해온 것이 기억력을 유지해온 비결인 듯 싶다. “YMCA운동의 핵심은 교파와 인종을 초월하는 통합정신과 유머를 강조하는 방법론이야.사회 정의를 실천하되 유머스럽게 하자는 거지.그런 의미에서 YMCA는 한국 유머의 발상지야.” 그의 유머감각은 많은 일화를 남겼다.‘사랑방 중계’패널 시절 초대손님으로 나온 중광스님에게 “앞으로 당신을 중광 목사라 부를 테니 저를 오리 스님으로 불러 달라.”고 해 방청객을 웃긴 일은 유명하다.또 2003년 낸 책 ‘Y새끼다리여‘의 ‘새끼다리’도 YMCA간사를 뜻하는 영어 ‘Secretary’의 음을 빌려 만들 정도로 감각이 탁월하다. ●한글사랑 온몸으로 솔선수범 오리 선생의 삶의 다른 축은 ‘한글 사랑’.함흥 영생학교 시절 민족주의자인 조선어선생 조정우에게 한글의 과학성과 편리함에 감화를 받은 뒤 한글에 대한 애정은 평생 이어졌다.일본 유학길에 조선어학회가 발간한 잡지 ‘한글’ 창간호부터 싣고 갔고 창씨 개명마저 거부했다. 해방후에는 초등학교 선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54년 이승만 대통령이 ‘한글 간소화’를 추진하자 사상계에 특집기사를 실어 강력하게 항의해 철회시키기도 했다. “일본 신학교 본과에 다니던 40년 한글을 못쓰게 하자 이에 항의,학교를 자퇴하고 조선총독을 죽이고 나도 죽자고 마음먹기도 했어.그게 뜻대로 되겠어? 화병으로 건강이 악화돼 고향으로 돌아왔지.” 차분한 목소리가 한글날 대목에 이르자 언성이 높아졌다.“글이 없는 민족이나,있어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민족은 망해.만주족을 봐.유엔에서도 인정한 보배 같은 한글을 무시하고 국경일에서 빼는 얼빠진 나라가 어딨어?” 2000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던 도중 2001년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글날을 살려달라.’는 내용의 글을 전하고 오다 쓰러져 입원하기도 했다. ●“온통 돈주고 해처먹는 소리만 들려” 그의 삶은 ‘한 우물’로 정의될 수 있다.“평생 야인으로 살면서도 정권과 명예 앞에 굽실거리지 않았어.YMCA를 떠난 뒤 퇴직금으로 빚갚고 나니 생활에 쪼들릴 때 이름만 걸치면 월급을 주겠다는 제의도 거부했어.”라는 그가 바라보는 현실은 당연히 어둡고 답답하기만 하다. “온통 검은 돈 주고 돈 받아먹은 소리밖에 안들려.지조나 신의도 없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 당 저 당 떠다니는 정치가들을 보면 개탄스러워.”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서울 YMCA인물 70인전’을 펴낼 준비에 분주하다.그의 ‘YMCA 사랑’도 한결같았다.“YMCA운동만 잘해도 나라가 잘돼.” 이종수기자 vielee@ ■걸어온 길 △1975년 서울YMCA 명예총무 △1981년 외솔회 이사 △1986년 한국상록회 고문·인간상록수 △1987년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고문 △1999년 Hulbert 이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 △1999년 성재 이동휘선생 기념사업회 이사 △2000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 △2002년 한글인터넷주소 추진 총연합회 의장˝
  • 송두율 15년刑 구형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오세헌)는 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4부(부장 이대경)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논고를 통해 “피고인은 73년 노동당 입당 이후 30년간 북한의 지령에 따라 대남 공작활동을 벌여왔다.”면서 “국가보안법이 적용돼 기소된 최고위급 인사인 데다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최후진술에서 “국보법은 지상유일의 분단국가가 통일된 민족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반통일적 장애물”이라면서 “학문적 양심에 따른 학술활동을 시대착오적 법률로 재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검찰은 “피고인은 91년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뒤 ‘경계인’이란 가면을 쓰고 주체사상을 남한사회에 전파하는 대남공작활동을 펼쳐왔다.”면서 저서·기고문 작성과 남북학술대회를 사례로 들었다.이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명언을 들어 검찰은 “피고인은 남파공작원으로 남한 주요인사를 암살하진 않았지만,선전·선동 활동으로 우리 사회에 더 많은 해악을 끼쳤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 변호인단은 이날 “황장엽 북한 전 노동당비서도 ‘외국인이 정치국 후보위원이 될 순 없다.’고 진술한 데다 국정원 자료에서도 북한은 ‘김철수’란 이름을 외부인사를 부를 때 흔히 사용했다.”며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증거 또한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송두율교수 최후진술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국내외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진행된 이번 재판에 많은 노고를 기울여주신 재판부에 우선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 드려 여러 재판 과정을 거쳐 지금에까지 이른 저의 심정은 여러 가지로 착잡합니다. 한편으로는 악몽 같기만 했던 지난 일이 일단 끝난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분단시대를 뒤로하고 이제 바야흐로 통일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기뻐하며 가슴 가득 희망에 부푼 많은 분들에게 이번 재판의 결과가 어떤 의미를 던질 것인지를 가늠해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 보안법의 실체 외국 땅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저로서는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하면 겨우 ‘반국가단체’, ‘고무-찬양’, ‘잠입-탈출’, ‘회합-통신’과 같은 단어정도를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넉 달 넘게 ‘국정원’ 조사로부터 시작해서 검찰의 심문조사를 거치며 지금까지 숨 가쁘게 이어져온 수 차례에 걸친 재판 과정을 통하여, 저는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몸으로 터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국가보안법’을 저에게 적용하려는 검찰의 시도가 얼마나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저의 변호인단 측에서 법적으로 충분히 지적했기 때문에 그것을 재차 여기서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국가보안법’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서는 짧은 언급이나마 절실한 듯이 보입니다. 여러 가지 가운데 우선 두 문제만 지적하고자 합니다. 베를린 시의 중심에 있는 쇠네베르거 우퍼(Schoeneberger Ufer) 거리에는 재독 ‘대한민국’ 대사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부터 자동차로 겨우 10분 정도 떨어진 글린카 거리(Glinkastrasse)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외국인이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대사관을 방문하여, 입국사증의 신청 등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런데 검찰의 ‘공소장’은 제가 이 대사관을 방문한 것이 “국가를 참칭한 반국가단체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들어가 ‘반국가단체’의 성원과 ‘회합-통신’한 죄를 범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지금 평양에 상주하는 독일대사관 직원들은 모두 ‘국가보안법’의 위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서울에 있는 괴테 문화원(Goethe-Institut) 원장은 평양에 있는 괴테 문화원의 ‘독서실’을 함께 관장해야 하기 때문에, 자주 평양을 방문해야 합니다. 검찰의 논리를 따른다면 이러한 행위 역시 당연히 ‘잠입-탈출’ 죄를 범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제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은 독일인들은 한국이 드디어는 ‘국가보안법’을 독일에까지 수출하려 하느냐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합니다. 뿐만 아니라 16년 전에 제가 독일말로 쓴 책의 내용을 문제삼아 역시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양 검찰이 논리를 세우는 것을 보고 모두 아연실색하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매년 10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제 도서박람회(Buchmesse)’가 열립니다. 이 행사기간 1871년 독일제국헌법을 제정 통과시킨 제국의회가 열렸던 파울교회(Paulskirche)에서는 인류문화의 지적보고인 책을 통해서 평화에 기여한 인사에게 유명한 평화상(Friedenspreis)도 수여됩니다. 내년 2005년에는 한국이 이 박람회 측에서 특별 선정한 ‘손님나라’(Gastland)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해서 ‘고금상정례문’이나 ‘직지심경’등을 인쇄해서 인류문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문화 국에 대한 당연한 예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라임에도 아직도 사상 관련 저술에 중세 때나 가능한 마녀 사냥 식의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반문화적인 현실을 이 세계는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오늘의 세계는 문화를 존중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우리의 공안 검찰은 이러한 반문화적인 작태를 태연히 자행함으로써 한국의 국위를 너무나도 심각하게 실추시키고 있습니다. 검찰은 ‘실정법’이라는 이유를 들어 ‘국가보안법’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지상유일의 ‘분단국가’가 통일된 민족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반통일적 장애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법은 세계화의 기치아래 ‘세계 시민사회(Weltbuergergesellschaft)’를 지향하는 오늘의 국제적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대학이 있는 뮌스터 시에는 ‘30년전쟁(1618~48)’을 종결시킨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Westfaelischer Friedensvertrag)’이 체결된 회의실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근세 국제법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평와 조약이라고 불리우는 이 평화조약의 정신은 칸트의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을 거쳐 나치 독일을 피해 미국에 망명, 법을 통한 평화를 설파해서 초국가적인 평화기구인 UN의 설립정신에 기여한 한스 켈젠(Hans Kelsen)의 법철학의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민족국가를 기초로 해서 국성 이러한 평화개념은 이제 민족 국가의 국경개념을 희미하게 만드는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국가대신에 ‘시민사회’에 근거한 보다 보편적이고 사해동포적인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탈현대적(postmodern)인 법 이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이미 밝히고 있는 원칙, 즉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특수한 관계’도 인정치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에 말한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이 전제하고 잇는 국민 , 국토, 그리고 주권이라는 기본요건마저 무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17세기 중반의 법 이해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법 아닌 법입니다. 나의 ‘통일철학’ 그러나 저는 이 기회에 -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심정으로 - 이러한 ‘국가보안법’이 이해하려고 시도하지도 않고 또 이해할 수도 없는 저의 통일 철학의 핵심을 간략히 밝히고자 합니다. 통일 문제를 말할 때, 언제나 저는 제일 먼저 ‘상생(相生)’의 원칙을 강조해 왔습니다. 불교적 용어로 이해되고 있는 ‘상생’은 ‘연기(緣起)’라는 개념을 전제합니다. 즉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이 가르침은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민족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는 ‘남이냐, 북이냐’라는 양자택일의 논리가 아니라 ‘남과 북’이 공유하는 관계를 중시하는 논리로서, 저는 큰 대나무와 저 작은 대나무가 실은 땅속에서 뿌리를 통하여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비유를 들어 이 관계를 설명합니다. 1989년 봄, 비엔나에 있는 유명한 ‘문학의 집(Literaturhaus)’에서 행한 ‘탈현대의 고고학(Zur Archaelogie der Postmoderne)’이라는 강연에서 저는 대나무와 도토리나무의 비유를 들어 현대의 인식론적인 문제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어미 대나무(母竹)로부터 뿌리가 옆으로 퍼지면서 일정한 거리에 죽순이 나오는데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번식하면서 무성한 대나무밭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토리나무는 도토리가 땅에 떨어져 떡잎이 나오고 어느 정도 성장하지만 어미 도토리나무의 무성한 잎의 그늘 때문에 이 어린 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습니다. 대나무는 ‘관계철학’, 도토리나무는’주관철학’을 각각 상징합니다. 또 ‘관계철학’은 ‘상생’을, ‘주관철학’은 나만이 옳다는 ‘아만(我慢)’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상생’의 원칙에 입각할 때, 비로소 남과 북은 서로를 ‘자기 속의 타자(他者)’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게 됩니다. 남과 북이 똑같다면 이미 통일이 이룩된 상태일 것이고, 남과 북이 완전히 다르다면 통일이야기를 꺼낼 필요조차 없는 상황일 것이기 때문에,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남북은 긴장 속에서도 계속 줄기찬 여유를 지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태도는 통일을 어떤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전개되는 ‘과정’으로서 바라보는 훈련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반세기 이상 서로 이질적으로 형성되어온 남북의 체험공간은 서로의 기대 지평을 달리 만들어 왔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라는 ‘과정’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서로가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그리하여 서로의 관점을 바꾸어 보는 ‘합리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적 수단을 통해 갈등을 해결한다는 이러한 원칙을 우리의 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체제의 수립이라는 ‘적극적’ 의미의 평화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전쟁이 없다는 의미에서는 ‘소극적’인 의미의 평화 정도만이라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오늘의 한반도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상생’, ‘자기 속의 타자’, ‘과정’, ‘합리적인 대화’ 그리고 ‘평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제 스스로의 ‘통일철학’의 실현을 위해 ‘배제하고 동시에 통합하는 제3의 무엇’을 지향하고자 하는 ‘경계인’의 삶을 “기회주의적”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제 뇌리 속에는 초기 불교의 성전 ‘쌍윳따 니까야’의 함축적인 비유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즉, 흰 소와 검은 소가 서로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대개는 검은 소가 흰 소에, 또는 흰 소가 검은 소에 묶여있다고 보는데, 사실은 이 두 소를 서로 묶고 있는 것은 단지 ‘끈’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남과 북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유는 남이 북에게, 또는 북이 남에게 묶여 있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이 남북의 ‘사이’를 생각해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이라는 ‘제3의 공간’이 전 한반도로 확장된다면, 위에서 지적했습니다만, 전쟁이 없다는 뜻에서의 소극적인 평화 정도는 가능하다는 발상으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경계인’의 의미 37년 만에 ‘경계인’으로서 제 조국 땅을 밟으면서, 저는 ‘조직 사회학’에서 종종 거론되는 다섯 마리 원숭이에 대한 우화를 생각했습니다. 원숭이 사육사가 매일 아침 나무 꼭대기에 신선한 바나나를 매달고, 그 근처에 전류를 통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먹으려고 나무에 오르다가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곧 포기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원숭이도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연이어 포기했습니다. 이튿날 새롭게 우리 안에 들어온 다섯 번째 원숭이가 걸려있는 바나나를 보고 나무에 오르려고 하자 이미 혼난 경험이 있는 네 마리 원숭이가 다 나서서 그를 말렸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번째 원숭이는 이 만류를 뿌리쳤습니다. 사육사가 이미 전류를 끊었는데도 네 마리 원숭이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 우화는 지식의 역할이 사회에서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즉 ‘지식은 조직을 멍청하게 만든다(Intelligenzmacht Organisation dumm)’는 역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를 항상 깨어있게 하는 지식은 기존의 선입견을 파괴하고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는 이른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Andersdenkender)’을 요구합니다. 국가보안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국가정보원’과 ‘공안검찰’ 및 이른바 ‘거대 언론’,그리고 이에 덧붙여 기존의 선입견을 ‘지식’으로 포장하고 확대 재생산시켜온 이른바 ‘지식인들’이 바로 위에서 지적한 네 마리 원숭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이 사회를 항상 깨어있게 만드는 많은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번째 원숭이는 ‘해방 이후 최대간첩’이니 ‘말 바꾸는 지식인’이라고 저를 매도하는 네 마리의 원숭이가 벌이는 그 시끄러운 굿판(Affentheater) 속에서도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회를 건강하고 새롭게 만드는 지식체계의 구성은 사실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특히 사회의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이를 예방하는 문제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복잡해질수록 더욱 어려운 과제로서 등장합니다. 또한 ‘위험사회’니 ‘보험사회’니 하는 말처럼, 위험이 항시적으로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우리들의 감각이 둔화하기 때문에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생태철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은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어 점차적으로 조금씩 온도를 높여서 가열하면 이 개구리는 끊는 물 속에서 그만 죽습니다. 그러나 만약 끊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이 개구리는 펄쩍 뛰어 밖으로 도망치려고 시도합니다. 이 비유는 분단 시대를 오래 살아온 우리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국가보안법’이 민주화 진전에 따라 유명무실하게 되었다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입국을 전후해서 생긴 소용돌이는 분명히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민족분단을 확대 재생산해온 우리의 의식구조 속에서 제 문제가 충격적이라면, 저는 차라리 이 충격이 지속적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놀라게 했던 모든 사건도 곧 잊혀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또 한번의 가능한 충격을 곧 있을 재판의 결과에서 기대해 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네 마리 원숭이가 벌였던 그 시끄러운 굿판이 결국 도깨비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몰고 올 또 한번의 충격을 기대해 봅니다. 그러한 충격은 우리의 정신적 위기상황을 적극적으로 깨닫게 하는 일종의 ‘정신 생태학(Oekologie des Geistes)’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러한 ‘정신생태학’은 자연환경을 문제시하는 ‘생태학’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저의 문제를 계기로 해서 분단된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나라로 한 걸음 더 다가섰으면 하고 저는 바랍니다. 최후진술을 마치면서 저는 부모가 난 땅을 난생처음 밟았다가 기대가 실망으로 뒤바뀐 엄청난 충격을 경험했던 저의 자식들이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거는 기대도 같은 맥락이라고 믿습니다. 이 나라가 깨어있고 또 건강해서 바로 그 때문에 사랑할만하다는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판결을 저의 가족들이 기다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민족과 세계를 함께 생각하면서 걸어온 지난 40년 가까운 학자생활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아 또 한번 비상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그러한 재판의 결과를 기대합니다. 온 나라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재판부의 미래지향적인 판결에 희망을 걸면서 저의 최후진술을 경청해주신 재판부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2004년 3월 9일 송두율 ˝
  • 허재 은퇴 공식선언

    “몇점을 넣었는지는 이제 관심이 없습니다.당신이 뛰는 모습만 봐도 절로 힘이 솟습니다.‘이태백’ ‘삼팔선’ ‘오륙도’가 넘쳐나는 힘든 세상,당신은 희망이었습니다.” ‘농구 대통령’ 허재(39·TG삼보)가 권좌에서 명예롭게 내려왔다.서울 상명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농구공을 잡은 이후 30년 가까이 투혼을 불사른 허재는 8일 서울 논현동 KBL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팬들의 사랑을 가득 품은 채 코트를 떠난다.”고 밝혔다. 허재는 이날 은퇴를 선언했지만 TG가 정규리그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함에 따라 챔피언결정전 2연속 제패를 위해 이번 플레이오프까지는 뛸 계획이다.이후 5월쯤 2년간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난다.TG는 그의 등번호 ‘9’를 영구결번으로 공시할 예정이다. ●챔프전 끝으로 5월 美지도자 연수 한국농구의 ‘고봉’인 김영일-신동파-이충희의 뒤를 이은 허재는 70년대에는 ‘농구신동’으로,80년대에는 학원스포츠의 우상으로,90년대에는 농구대잔치 간판스타로,2000년대 들어서는 30∼40대의 희망으로 늘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물론 한국농구가 낳은 ‘지존’이라는 데 토를 달 이는 별로 없다. 허재는 97년 KBL이 출범하자 33세의 늦깎이로 프로에 뛰어들었지만 열살 아래의 후배들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원년시즌 소속팀 기아를 정규리그 및 챔피언결정전 통합챔피언에 올려놓았고,97∼98시즌에는 기아가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그쳤지만 ‘붕대 투혼’으로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02∼03시즌에는 TG 플레잉코치로 변신,후배들을 다독이며 다시 한 번 챔피언트로피를 품었으며,값진 모범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허재의 전성기는 역시 아마추어 시절이었다.78년 용산중학교에 입학해 그해 4개 전국대회를 휩쓴 것을 시작으로 중앙대 졸업 때까지 그는 ‘우승 인증서’로 통했다.86년 가을철대학연맹전 단국대전에서는 혼자 75점을 넣는 진기록을 세웠다.88년 기아에 입단한 뒤에는 8차례의 농구대잔치 가운데 7차례 우승을 이끌며,세 차례나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그때까지 그는 자신이 이기겠다고 마음먹은 경기에서는 진 적이 없다는 ‘불패신화’의 주인공이었다. ●대학연맹전서 75득점 진기록·MVP 3회 용산고 3학년 시절,대학들은 ‘농구 천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됐다.허재가 어느 인터뷰에서 “중앙대도 가고 싶고,고려대도 가고 싶다.”고 하자 양교는 사활을 건 총력전을 펼쳤다.당시 중앙대 감독이던 정봉섭 현 중앙대 체육부장은 낚시에 전혀 취미가 없었음에도 낚시광인 허재의 아버지 허준씨를 밤낮없이 쫓아다녀 결국 데려왔다. 30년 농구인생 가운데 가장 뼈아픈 기억은 97아시아선수권(ABC).당시 허재는 음주운전으로 입건돼 대표팀에서 제외됐다.공교롭게도 최강 중국은 최약체 팀을 파견했고,한국은 우승했다.허재로서는 15년 대표선수 생활에서 유일하게 우승이란 두 글자를 새길 기회를 날려버렸다.허재는 “내 주량이 얼마인지 나도 모른다.”는 애주가이자 시합전에도 담배를 태우는 자유분방한 선수였다.그러나 이 모든 것도,서른이 넘어서도 밤 새워 슛을 던지고 승리를 위해 쥐가 난 다리를 스스로 옷핀으로 찌르면서까지 출전을 강행하는 승부사의 진면목을 덮지는 못한다.팬들은 이제 ‘천재 지도자’ 허재를 기다리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盧 “1년뒤엔 변화된 대통령될것”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은 25일 “저는 학습효과가 뛰어난 대통령”이라고 소개한 뒤,“저에 대해서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대해달라.”고 주문하는 등 2년차의 각오를 밝혔다.언론에도 “도와달라.”면서 국정운영에 협조를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출입기자 188명을 영빈관에 초청해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1주년 마감하는 뜻으로 여러분을 만났다고 생각하지 않았고,2주년 첫날 새출발하는 기분으로 만났다.”면서 “지난해 얼굴 먼저 붉히고 시작한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웃는 얼굴로 시작하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도 다소 긴장,갈등 있을 수 있지만 서로 이해하고 좀더 잘 되도록 노력해보자.”면서 “허물,분한 마음을 털고 도와달라.기자의 자부심,애환,추구하는 미래가치가 저와 충돌할 수 있다는 것 인정하고 수용한다.”고 포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노 대통령은 언론과의 갈등을 “현실적 이해의 차이보다는 선입견·편견”이라고 규정하고,“선입견·편견없이 다시 시작해보자.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향적인 태도를 취했다. 스스로의 변화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저는 빨리 배우고 빨리 변화한다.”고 말했다.이어 “스스로 1년 전의 나와 뭐가 달라졌는지 분석한다.오늘 제가 잘 하기 때문에 1년 뒤에도 잘 할 것이라고 자신하지 않지만,어제와 다른 노무현,대통령으로,1년 뒤에는 오늘과 다른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노 대통령은 “훌륭한 대통령이 여러분이지만,다른 부분은 몰라도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데,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서 “가장 효율적인 정부를 이끌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지난날 정치과정에서 저를 ‘투사’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은 사회의 분열적 요인과 싸워왔다.”며 “계층간 갈등,소외계층을 능력있는 사람들이 끌어안고 함께 가야 하고,대화하고 타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이번 총선을 통해 지역간 분열이 해소되고 통합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상대를 이길까,고비를 어찌 넘길까,불안해하기보다 진취성,즐거운 일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면서 “대통령이 하는 일이 덜 중요하게 느껴지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 수석·보좌관들과 미역국으로 조찬을 함께하며 취임 1주년 기념행사를 대신했다.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기술혁신,사회적 합의,효율적 정부’ 등을 취임 2년차를 맞은 참여정부의 3가지 지향점으로 제시했다고 이병완 홍보수석이 전했다.이어 노 대통령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면,불만은 개혁의 아버지”라며 “열심히 하자.올해는 정말 잘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
  •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이철승 이사장

    소석(素石)이 요즘 바쁘다.서울평화상 준비 때문이다.몸보다 마음이 더 바쁘다.그는 1996년부터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3대 이사장이다.올 가을 7번째 수상자를 탄생시킨다. 소석 이철승(李哲承·82).그는 보수 우익의 대부로 더 잘 알려져 있다.건국기념사업회장,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의장,자유민주총연맹 총재,반탁반공 학생운동기념사업회 총재.10년 넘게 갖고 있는 직함들이다.이 외에도 몇몇 더 있다.그는 요즘도 보수진영의 집회나 시위가 있으면 거리로 나선다.화법은 여전히 직설적이다.지금의 반미·친북 분위기의 시발은 국민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이라고 단언했다.“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가의 기둥과 나사를 모두 빼버렸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60대 초반쯤으로 보인다.20여년 전 가까이서 처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다.정확한 기억력도 변함이 없다.얼굴엔 잡티조차 없다.만능 스포츠맨이었던 그는 요즘도 헬스클럽에서 러닝과 스트레칭으로 몸을 관리한다.스트레스를 몸에 담지 않고 평생 술,담배를 멀리한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했다.“세상이 어지러워 나이를 잊고 산다.”고 했다. ●“서울평화상은 대한민국의 긍지” 그는 “서울평화상은 이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상으로 컸다.”고 소개했다.수상자 면면을 보면 상의 권위와 경륜에 수긍이 간다.사마란치 전 IOC위원장이 첫 수상자였다.이어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국경없는 의사회,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오가타 사다코 유엔난민고등판무관,분쟁지역의 난민과 빈민을 돕는 NGO 단체인 옥스팜 등이 2년 간격으로 뒤를 이었다.국경없는 의사회와 코피 아난 총장은 서울평화상을 받고 몇 년 뒤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아난 총장은 우리 정부의 방한 요청을 몇 차례 거절했다.북한을 의식해서였다.하지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기꺼이 방한했다.국경없는 의사회와 옥스팜 관계자들은 시상식에 참석하는 과정에서도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회고했다.비즈니스 클래스의 비행기 티켓을 보내겠다고 하자 이코노미석을 주문했다.행사를 간소하게 해달라는 요청도 했다.식사도 싸구려 찌개집을 고집해 시상식 관계자들에게 감명을 줬다.오카다는 세계의 고통받는 어린이를 위한 재단을 만들면서 상금을 기금으로 내놓았다.또 한국 내 일부 반일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에게 서울평화상을 준 데 대해 일본인들이 놀라워했다고 소개했다. 소석은 “일본은 우리보다 국력이 크지만 서울평화상만한 상이 없다.”고 했다.자긍심을 가질 만하다고 했다. ●각 국의 로비전 치열 그는 요즘 외교사절 등의 면담 요청을 피한다.서울평화상 후보 선정과 관련한 잡음을 피하기 위해서다.얼마 전 외교부에서 열린 공관장회의에 참석했던 몇몇 대사들로부터도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하지만 완곡하게 모두 거절했다.직원 등을 통해 주재국에 훌륭한 후보가 있으면 공식 절차를 거쳐 추천해 달라는 답변 정도만 했다.일부 주한 외교사절의 면담 요청도 있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실제 역대 후보 선정 때도 로비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았던 유수한 국가의 정치인들로부터 로비를 받기도 했지만,끝내 이들을 수상자로 선정하지 않았다. “수상자를 고르는 작업이 참 힘들어요.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전력에도 흠이 없어야 하거든요.이념적 경향성 등의 시비도 없어야 하고요.” 세계 각 분야의 권위자로 구성되는 추천위와 심사위원회가 있지만,최종 선정작업은 항상 긴장되고 힘든다고 설명했다.지구촌의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나 단체를 골라야 상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추천위는 1000여명으로 구성되고 매회 후보들만 100여명에 이른다.그동안 수상 거부 등의 불상사나 수상자 선정과 관련한 잡음이 한번도 없었다.서울평화상의 품위와 명성을 높여나가는 요인이 됐다.상금은 30만달러에서 20만달러로 낮아졌다.금리가 낮아 기금의 수익금이 줄었기 때문이다.노벨평화상 상금은 90만∼110만달러 수준이다. 그는 “기금 수익금이 줄어 중단됐던 해외인사 초청 연수도 새롭게 계속하고,평화상 금액도 다시 올리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여야도,정치도 없는 상황 안타까워” 소석은 현대 정치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1970년 DJ,YS와 제1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쟁을 벌였고,엄혹했던 박정희 정권의 유신시절 신민당 대표를 지냈다.지역구(전주)의 심판을 받아 7차례 국회의원이 됐다.80년대 말 정계를 떠날 때까지 삶의 궤적은 3김씨와 더불어 현대 정치의 살아 있는 기록이었다. 소석은 그러나 스스로를 “3김 정치의 낙제생이었다.”고 회고했다.69년 말 김영삼,김대중씨와 함께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야당의 리더로 떠올랐던 그다.48세 때였다.YS는 43세,DJ는 45세였다.박정희 독재에 맞서 중도통합론과 내각제를 주창한 그는 ‘시대를 앞서나간 정치인’이었다.한 발짝 앞서나간 그의 주장은 배척받았고 결국 양김으로부터 밀려났지만 일관된 소신과 논리를 굽힌 적이 없었다. 그는 정치 얘기가 나오자 “참으로 걱정스럽다.”고 했다.여도 야도 없고,국민들이 기댈 만한 정치지도자도 없다고 했다.이리저리 둘러봐도 검찰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그는 “평생 야당생활을 했지만 지금처럼 막가는 정치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소석은 “진정한 보수를 대변할 정당을 만드는 데 중심이 돼 달라는 요청이 있지만 정치에 나설 생각은 없다.”고 했다.그러면서도 “반미·친북 분위기가 날로 기승을 부려 안타깝다.”고 했다.그는 해방후 맨손으로 나서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결정을 배격하고 좌익을 물리치고 나라를 세운 반탁·반공 세대다.“58년 전 했던 반공운동을 지금 또다시 거리에서 해야 하나 생각하면 한심스럽고,팔자가 기구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는 “한나라당이 진정한 보수를 대변할 능력을 상실한 것 같다.”고 했다.더 이상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도 했다.그러면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깨부수고 새로 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완전 해체한 뒤 이념이 같은 사람끼리 구락부 같은 것을 만들어 총선에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보수 원로다운 제언이었다. ■ 서울평화상 이란 서울평화상은 ‘88 서울올림픽’이 성공리에 개최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1990년 제정된 국제평화상이다. 이 상은 국적,인종,종교,이념을 초월해 모든 분야에서 세계평화와 인류화합 증진에 업적이나 공적이 있는 개인·단체에 수여하고 있다.사망자는 수상자가 될 수 없고 반드시 수상자는 한국을 방문해 상을 받아야 한다.그동안 개인 4명과 2개 단체가 수상했다. 최태환 편집국부국장 yunjae@˝
  • 의협, 건보 전면개편 요구 안팎

    “건강보험도 사(私)보험을 도입해 경쟁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의사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건강보험 제도를 전면적으로 손질하라는 게 핵심 요구사항이다.지금같은 공보험 단일체계에서 벗어나 이른바 ‘민간보험(사보험)’도입을 적극 검토하자는 것이다.대한의사협회가 주축이 돼 움직이고 있다.오는 22일에는 서울 여의도 63빌딩앞 둔치에서 전국의사궐기대회도 갖는다.행사에는 의사 등 10만명 참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지금과는 달리 의약분업의 선택적 적용을 요구하는 등 대정부 압박수위를 한층 높일 방침이다.의약분업 철회 요구도 지난 3일 경남 산청군 4개면 주민 500여명이 자발적으로 의약분업 반대시위를 벌인데 한껏 고무돼 있다. 의사들의 파업에서 비롯된 2000년 ‘의료대란’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의사들이 또 한번 ‘집단행동’을 벌이겠다는 전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의협은 그러나 이런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집회날짜도 일부러 휴일을 택했고,풍선을 들고 참석하는 등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총선을 앞두고 의사 출신은 물론 친의료계 인사들의 국회진출 등 정치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에 8만 의사들의 ‘힘’을 보여주는 자리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의약분업 철폐나 건강보험제도 개편 등 모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인 만큼 ‘의정(醫政)갈등’은 갈수록 깊어질 전망이다. ●사회주의 vs 자유주의 의협은 이미 오래전부터 참여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을 ‘사회주의식’이라고 비난해 왔다.지난 달 31일 임시 대의원총회에서는 현재 강제적용중인 의약분업을 선택제로 돌리는 것이 의협의 공식입장이라고 선언했다.환자가 병원이나 약국 두 곳 중 한 곳을 골라 약을 지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총투쟁을 선언하고,‘개원의사=30만원,전공의=5만원’ 등 기준을 정해놓고 회원들을 상대로 모금도 벌이고 있다.이른바 ‘의권(醫權)’수호투쟁이다. ●건강보험도 경쟁체제 도입해야 의협은 의약분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건강보험의 틀을 바꾸자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현재의 건강보험(공보험)과 경쟁하는 민간보험(사보험)의 도입을 검토하라는 요구다.의협이 주장하는 민간보험 도입방안은 단순하다.지금은 모든 국민이 똑같이 공보험인 건강보험 한 가지만 적용받고 있지만,소득에 따라 자동차보험처럼 책임보험과 종합보험 방식으로 나눠서 가입하자는 얘기다. 예컨대 저소득자는 보험료를 적게 내는 반면 공보험인 책임보험만 가입하고,소득이 많은 사람은 돈을 많이 내는 대신 민간보험인 종합보험까지 가입하는 방식이다.이때 보험자는 현재의 건보공단 한 곳에서 보험회사 등 여러 곳의 다(多)보험자로 바꿔서 경쟁을 유도해 나가자는 주장이다.국민에게 선택권을 주되,의료 사각지대의 발생을 막기 위해 저소득층인 의료급여 대상자에 대한 지원은 강화해야 한다는 부대조건도 달고 있다. 의협 권용진 부대변인은 “재정 절감을 위해 의료기관 이용을 줄이기만 하려는 현행 건보제도에 대해서는 국민이나 의사 모두 불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면적인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의료서비스 빈부격차 커져”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현행 건강보험의 틀을 완전히 깨트리는 방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지난해 7월 오랜 논란 끝에 어렵사리 건강보험의 재정통합까지 마무리한 상황에서 20여년간 지속된 해묵은 논란을 재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공보험이 아직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사보험을 도입하면,의료서비스에서도 빈부(貧富) 격차가 커지고,의료 사각지대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이다.자칫 현행 건강보험이 ‘빈자(貧者) 보험’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복지부 보험정책과 관계자는 “의협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현재로서는 (사보험 도입을)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도 사보험 도입은 추후 논의가 필요하기는 하지만,지금은 이르다는 쪽이다.건강보험 적용 비율이 절반에 불과한 현 상황에서 논의하기는 어렵고,적어도 70∼80% 정도까지는 올라간 뒤에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수기자 sskim@˝
  • 도·소매 판매 상승세 반전

    지난 12월 도·소매업 판매액이 11개월 만에 상승세로 반전했다.그러나 주요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은 올 1월 다시 큰 폭의 감소세로 꺾여 본격적인 소비 회복을 기대하기는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분석이다.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비심리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는 낙관론과,접대비 규제·특별소비세 폐지 예고·신용불량자 문제 등 악재가 겹쳐 소비회복이 더뎌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맞선다.정부의 부동산 투기억제 대책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부동산 중개업이 5개월 만에 매출 증가세(10.7%)로 돌아선 점도 눈에 띈다. ●통계 착시? 소비 호전? 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3년 12월 서비스업 활동동향’에 따르면 도·소매업 판매액은 1년 전과 비교해 0.6% 증가했다.1월(3.0%) 이후 11개월 만이다.소비가 미약하나마 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지만 통계전문가의 분석은 다르다.통계청 김현중 서비스업통계과장은 “산업생산과 달리 서비스업 통계 때는 도·소매업에 업종별 부가가치 가중치를 더 매긴다.”면서 “도·소매업 지수가 플러스로 나온 것은 이같은 통계방식의 영향이 작용한 데다 증가폭 자체도 미미해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가중치가 적용되지 않는 ‘산업활동 통계’상의 도·소매업 판매액은 12월에도 11개월째 감소세(-1.5%)를 기록했다. ●백화점·할인점 신년매출 ‘꽝’ 산업자원부가 같은 날 발표한 ‘2004년 1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성적표’도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설 특수와 대대적 세일행사가 무색하게 백화점(-9.4%)과 할인점(-5.2%) 모두 매출이 전년동월대비 크게 뒷걸음질쳤다.산자부측은 “광우병과 조류독감 파동이 겹친 데다 접대비 규제강화로 법인단체의 선물수요가 크게 줄어든 탓”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2월에는 졸업·입학시즌과 밸런타인데이 특수 등이 있어 백화점과 할인점 모두 7%대의 플러스 신장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측했다.재정경제부 강호인 종합정책과장은 “소비자기대지수는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호전되고 있다.”면서 “백화점 명품 매출도 살아나고 있어 고소득층에서부터 소비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샤워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부,소비 걸림돌 ‘신불자’ 해결 주력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최근 소비심리 지표들이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앞서 반영한 것”이라면서 “경기회복이 여전히 불투명한 데다 370만 신용불량자 문제 등이 가로막고 있어 본격적인 소비회복은 내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재경부도 소비 회복을 위해서는 신용불량자 선결이 시급하다고 보고,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통합도산법 가운데 ‘개인회생 절차’만 따로 떼내 조기입법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안미현기자 hyun@˝
  • ‘아듀 2003’ 국내·외 진 별/스러져간 거목… 역사는 기억하리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던가.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뜻이다.계미년 한 해는 국내외 가릴 것없이 유난스레 혼란스러운 일들이 많았고,각계의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스러져 갔다.의미없는 죽음이 있으랴만 우리들 가슴에 살아 숨쉬었던 이들의 소멸은 각별한 회한을 남겼다.은하수처럼 사라진 이들의 뒷 모습을 지우며 삶의 허망함을 되새기기도 하고,뻥뚫린 가슴을 채우지 못하는 씁쓸함을 달래기도 했다. 국내 ●정계 ‘국민의 정부’에서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 자리에 올랐던 박정수(71) 전 의원이 죽음으로 정계를 은퇴한데 이어 이종근(81)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박씨는 11·13·14·15대 등 5선의원을 지낸뒤 국회 통일외무위원장·국제의원연맹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이종근 의원은 5·16 때 준장으로 예편했으며 3공시절 국회의원에 출마,90년대까지 6선을 기록한 인물이었다. 저물어가는 마지막 달에는 허주(虛舟) 김윤환(71) 신한국당 전 대표가 유명을 달리했다.노태우 김영삼 두 대통령을 만들어 내 ‘킹 메이커’란 별명을 얻은 고인은 유정회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11·13·14·15대 의원으로 국회를 지켰고 정무수석과 비서실장을 거쳐 여당 사무총장,원내총무,정무장관,여당대표를 거푸 지내면서 1980∼90년대 한국정치사 한 복판에 서있었던 인물이다.97년 대선에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실패한 뒤 민국당을 창당해 재기를 시도했지만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재계 올해 국민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죽음은 정몽헌(55) 현대아산이사회회장의 투신자살일 것이다.정주영 명예 회장의 5남인 정 회장은 현대를 이끌어갈 후계자로 주목됐으며 정 명예회장을 이어 남북경협을 주도했던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 중 한 사람이었다.2000년 3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현대아산 회장에 취임했지만 대북송금문제에 연루돼 한 여름 현대 계동사옥 12층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창업주들도 유난히 많이 세상을 떠났다.차(茶)산업을 번창시킨 것으로 유명한 서성환(80) 태평양 창업주를 시작으로 50여년간 섬유사업 외길을 걸었던 백욱기(83) 동국무역 창업주,동원탄좌 회장과 대한석탄협회장을 지낸 이연(88) 동원회장,권철현(78) 연합철강 창업주,삼립식품 창업주 허창성(83) 명예회장이 그들이다. ●문화예술계 구수한 입담과 향토색 짙은 문체로 문단을 풍미했던 ‘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62)씨,한국시단의 로맨티스트로 불렸던 조병화(82),한국현대시인협회 명예회장을 지낸 신동집(79) 시인,평생 우리말 바로쓰기에 앞장섰던 아동문학가 이오덕(78)씨,‘어린이날 노래’와 ‘기찻길옆 오막살이’ 등 불후의 명곡들을 남긴 윤석중(92)옹의 타계는 우리 문단과 사회의 큰 손실이다. 판소리 다섯바탕을 완창하며 국악을 진흥시킨 박동진(87) 명창과 국내 최초의 판소리 인간문화재 정광수(94) 명창,70년대 ‘얄개’시리즈로 하이틴영화 붐을 일으킨 석래명(64) 감독,‘동백아가씨’‘동숙의 노래’ 등 4000여곡으로 작곡분야 최다기록을 세운 작곡가 백영호(83)씨와 해외 배낭여행 1세대 김찬삼(77)씨도 별세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종교계 불교계에선 역대 총무원장과 종정을 지낸 원로들이 대거 입적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게 됐다.봉암사 조실 서암 스님,통도사 방장 월하 스님,앉은 채로 입적해 세인들의 관심을 모았던 백양사 조실 서옹 스님이 모두 종정을 지낸 대덕들로 이들의 열반으로 조계종의 역대 종정은 모두 사라졌다.성륜사 조실 청화 스님은 평생을 수행에만 전념한 당대의 선승,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정대 스님은 당대 최고의 행정승이었다. 1987년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그 유명한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은 조작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해 6·10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김승훈(64) 신부의 선종은 우리 사회의 양심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했다. 국외 세계 곳곳에서도 저명 인사들이 유명을 달리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정계 세르지오 비에이라 데 멜루(55) 유엔 특사의 죽음은 각별했다.이라크 재건을 돕던 중 8월19일 바그다드 주재 유엔 본부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숨진 멜루 특사는 미국이 주창한 대 테러전의 상징인 동시에 희생양으로 각인됐다.브라질 출신으로 33년간 유엔에서 활동하며 헌신적인 국제 조정관으로 이름을 떨쳤던 그의죽음에 국제사회는 고개를 떨궜다. 스웨덴의 촉망받던 여성 정치인 안나 린드(46) 외무장관도 허망하게 희생됐다.차기 총리감으로 꼽히던 그는 9월10일 스톡홀롬 시내에서 쇼핑하던 도중 괴한의 흉기에 찔려 하루 만에 숨을 거뒀다.스웨덴의 유로화 통합에 앞장섰던 린드 장관의 죽음은 그의 진보 성향에 불만을 품은 신나치주의 조직의 범행으로 추측되고 있다. 10월23일에는 장제스(蔣介石) 전 타이완 총통의 미망인 쑹메이링(宋美齡) 여사가 향년 106세로 타계했다.1949년 중국이 공산화될 때 장제스와 함께 타이완으로 건너갔던 쑹 여사는 중국 근대사의 핵심 인물이자 반공의 상징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장기간인 48년간 의원직을 지낸 미 의회의 산 역사 스트롬 서몬드 전 상원의원도 6월26일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문화·예술계 홍콩 스타 장궈룽(張國榮·46)의 투신 자살은 아시아 문화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일대 사건이었다.영화 ‘영웅본색’,‘패왕별희’ 등으로 아시아 최고의 인기를 누린 장궈룽.만우절인 4월1일 홍콩의 한 호텔 24층에서 뛰어내린 그의 거짓말 같은 자살은 원인을 둘러싼 추측만 무성한 채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별 중의 별 그레고리 펙(87)이 6월11일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대표작 ‘로마의 휴일’에서 만인의 연인으로 떠오른 그는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함께 의식있는 연기자라는 찬사까지 거머쥐었다.한 시대를 풍미했던 연기파 배우 캐서린 햅번(96)도 같은달 29일 뒤이어 세상을 떠났다. ‘황금연못’ 등의 영화로 4차례에 걸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기록을 세운 햅번은 1999년 미국영화연구소로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배우’로 선정되기도 했다.또 미국에서 20세기 최고의 광대로 꼽히는 영국 출신의 코미디언 보브 호프(100)와 ‘황야의 7인’으로 유명한 미 액션배우 찰스 브론슨(81)이 각각 7월27일과 8월30일 폐렴으로 숨졌다.그리고 천재 감독이라는 찬사와 나치의 마녀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독일의 기록영화 감독 레니 리펜슈탈(101)도 올해 9월8일 영욕의 생을 마감했다. 김성호 강혜승 기자 kimus@
  • [열린세상] 학교평준화를 위하여

    다시 한 해가 저물어간다.연말이면 거리에 구세군의 자선남비가 나타나고,사람들은 그 곁을 지나며 우리 사회에서 불우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기억한다.올해에는 어느 이름모를 중년신사가 자선남비에 수천만원의 거금을 넣고 사라졌다는 보도도 있었다.그 손길에 복이 있기를. 그러나 자선남비에 적선하고,그렇게 모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일이라 하더라도,처음부터 사회에서 낙오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노력을 기울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스피노자가 말했듯이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한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는 전체 사회 곧 국가가 나서서 사회 복지의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인 것이다.그런데 우리 사회는 개인적 적선을 칭찬할 줄 알아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사회 복지의 차원에서 제도적 노력을 기울이는 일에는 너무도 게으르다 못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이를테면 올해 서울대 정운찬 총장을 비롯하여 여기 저기서 터져나온 평준화 폐지론만 보아도 그렇다.국가가 책임져야 할 모든 복지제도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복지이다.국가는 공교육체제를 통해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공교육의 혜택이 없다면 사회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자기실현의 기회를 제공한다.그리고 이를 통해 국가는 기성세대의 사회적 불평등이 자녀세대에게 대물림되거나 확대증폭되는 것을 방지한다.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자녀들이 어릴 적부터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어울리게 함으로써 그들이 가정에서 경험하는 삶의 조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적인 마당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하며,이를 통해 그들이 자라서도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서로 소통하고 결속하여 더불어 하나의 조화로운 사회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정신적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국민의 평등한 자기실현을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남보다 좋은 대학 가서 남다른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의 장치이다.그리하여 한국에서 공교육 체제란 사회적 평등과 통합이 아니라 정반대로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장치이다.그런데 천만 다행으로 그런 가운데서도 대다수 지역에서 중고등학교들이 평준화되어 있는 까닭에 교육이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분열을 촉발하지 않을 수 있었다.그러니까 학교평준화는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가난한 계층의 자녀들이 사회에서 낙오하고 소외되지 않도록 만드는 방파제인 동시에,사회통합적 관점에서 사회구성원들의 정서적 및 문화적 단절을 방지해 주는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그러나 평준화 폐지론자들의 주장에 따라 중등학교에서 평준화가 폐지되면 가뜩이나 위기상황에 처한 한국의 공교육은 그나마 남아 있던 사회적 평등과 통합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자녀의 학력이 전체적으로 부모의 재력에 비례한다는 것은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인데,평준화가 폐지되면 부잣집 아이들이 일류학교에 다닐 때,가난한 집 아이들은 삼류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다.가뜩이나 대학 서열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중고등학교의 서열이 부활되면 일류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이 땅의 대다수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학벌차별의 굴레 아래 신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문화적 단절과 사회적 차별 그리고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증오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자라서 더불어 조화로운 사회와 통일된 나라를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는가?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작은 아파트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 담장을 쌓는 것만으로도 이 나라 부유층의 몰상식은 차고 넘치는데,배운자들까지 평준화 폐지를 선동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이 나라의 상류층은 어찌 그리 하나 같이 몰상식한지,이 나라에서 살아야 할 아이들이 불쌍할 뿐이다. 김 상 봉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
  • “정치권 부패구조 청산하고 새집 짓자”/우리당 ‘Remember 12·19’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 1주년인 19일 오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전·현직 국회의원과 지구당 운영위원장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 행사를 갖고 대선승리를 다시 한번 자축했다.정치개혁과 내년 총선승리도 다짐했다. 행사장에는 ‘새로운 정치로 물결쳐라,번영의 한반도여’,‘국민의 선택,국민의 승리’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으나 청와대측의 메시지는 없었다. 김원기 공동의장은 기념사에서 “지난해 12월 19일은 한국정치사에 영원히 기억될 감격의 날이며 새로운 희망의 싹을 돋아나게 했다.”면서 “이제 정치권의 부패구조를 청산하고 새로운 집을 짓자.”고 역설했다. 대선때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정대철 의원은 후보단일화와 국민통합21 정몽준 의원의 지지철회 당시 상황을 소개한 뒤 “이제 안정과 함께 변화와 개혁을 결의하자.”고 목청을 높였다.배기선 의원도 “노 대통령은 현재 기득권 세력의 도전을 받고 있으며 내년 총선은 제2의 대선”이라며 개혁세력의 총집결을 주문했다. 그러나 외부 참석인사들은 비판적 목소리를 서슴지 않았다.경기대 김재홍 교수는 인사말에서 “열린우리당의 개혁초심이 현실과 타협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면서 “개혁의 구호가 아니라 콘텐츠를 준비해야 하며 개혁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매체인 ‘서프라이즈’ 서영석 대표도 “내년 총선 승패의 핵심은 우리당 내부혁신에 있다.”고 꼬집었다.우리당은 행사를 마치면서 결의문을 통해 지역구도 타파와 투명한 정치,원내정당화를 약속했다. 이날 저녁엔 김원기 의장과 정동영 의원 등이 ‘노사모’가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대선승리 1주년을 맞아 주최한 ‘리멤버(Remember) 1219’라는 행사에 참석했다.전국 희망돼지 관련 기소자들의 촛불행사와 함께 참여정부 1년간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됐으며 우리당 전자정당위원회 산하 ‘국민과 함께P’ 단장인 명계남씨의 연설과 깨끗한 정치를 바라는 유권자 선서 등이 이어졌다. 김상연기자 carlos@
  • DJ “장준하씨와 유신반대 역할분담”/의문사委, DJ와 40분간 면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장준하 선생이 지난 75년 7월29일 밀담을 갖고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위한 역할 분담을 합의한 것으로 밝혀졌다.김 전 대통령이 당시 가택연금으로 대외활동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을 감안,장준하 선생이 재야세력을 통합하는 실무책임을 맡았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18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5층 집무실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과 관련,의문사진상규명위와 가진 면담에서 “장준하 선생이 야당과 재야 통합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나와 합의했다.”고 밝혔다.이같은 사실은 당시 분열된 야당과 재야세력을 통합하려는 장준하 선생을 중앙정보부 등 유신체제가 집요하게 감시,탄압한 배경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장준하 선생의 사망 이전 행적을 청취하기 위해 40여분 동안 진행된 이날 면담에서 김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 중이던 75년 7월29일 오전 11시부터 3시간 남짓 장준하 선생과 점심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장준하 선생은 당시 ‘본인이 모든 것을 버리고 유신분쇄에 앞장 서겠으며 모든 희생도 감수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김 전 대통령은 이어 “당시 나는 가택연금 상태로 직접 움직이면 동지들이 다치는 상황이었다.”면서 “때문에 야당과 재야세력을 통합하는 실무책임을 장준하 선생이 맡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장준하 선생은 “야망이나 대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오로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매진하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김 전 대통령이 기억했다고 의문사위는 전했다. 이유종기자 bell@
  • 故김윤환前의원 행적/昌 검찰가던 날 ‘세상 마감’ 노태우·YS정권 킹메이커

    ‘한 사람은 저승으로,또 한 사람은 검찰로…’ 15일 허주(虛舟) 김윤환 전 의원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길은 이렇게 갈렸다.그들 사이에는 애증(愛憎)이 교차한다.한때는 ‘이와 잇몸’의 관계였고,또 한때는 원수지간으로 지냈다.이날 헤어지기 전,두 사람이 진정으로 화해했는지는 그들만이 알 일이다. 다만,김 전 의원은 지난 대선 직전 ‘반(反) 이회창’의 깃발을 내리고 그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이 전 총재는 얼마 전 허주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이 전 총재의 부인 한인옥씨도 허주의 부인 이절자씨에게 “여러 가지로 미안하다.너그러이 용서해 달라.”고 거듭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부인 이씨는 눈시울만 붉혔다고 한다. ●‘킹 메이커’ 김 전 의원은 ‘킹 메이커’로 기억된다.노태우·김영삼 정권의 창출에 핵심이었다.여소야대였던 노태우 대통령 시절,3당 통합을 이끌어내 거대여당을 탄생시켰다.1992년 대선에선 TK(대구·경북) 출신이면서도 ‘TK 배제론’을 내걸며 PK(부산·경남)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세론을 선도했다.그는 예리한 정세 판단력과 현실 정치에서의 적응력,위기국면에서의 조정능력을 보여주었다. 허주는 늘 정치의 중심에 섰다.우리 정치사에 비교대상이 흔치 않을 만큼,정치 행적도 화려했다.유신말기인 지난 79년 유정회 의원(10대)으로 정계에 입문,5선을 기록했다.5공말 청와대 정무수석·비서실장을 거쳤고,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에서 여당 대표와 사무총장을 각각 2차례,원내총무 2차례,정무장관을 3차례나 했다. 그도 한때 대권의 꿈을 꾼 적이 있다.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9룡(龍)의 하나로 나섰다.그러나 이를 접고,당내 지지기반이 전혀 없었던 이회창씨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변신했다.‘영남후보 배제론’으로 당 경선에서 드라마 같은 성공을 거둬 정치적 저력을 과시했다.이후 98년 이회창씨가 한나라당 총재로 복귀할 때도 그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빈 배로…’ 그런 그에게 좌절이 찾아온 것은 2000년 4월 16대 총선을 앞두고서다.정치인 사정 정국에서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고전하던 중 이 전 총재에 의해 공천에서 탈락하는 쓴잔을 마셔야 했다.이후 민주국민당을 창당,‘반창(反昌)연대’의 핵심에 선다.그해 경북 구미에 출마하면서 재기를 노렸으나 낙선,정치적 낭인 신세가 됐다. 지난해 대선 직후 신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으며,올 1월부터 9월까지 미국에서 치료를 받다가 병세가 악화돼 귀국했다.그에게는 ‘타협과 조정의 명수’‘정치계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는 호평에서 ‘변화와 적응의 달인’‘변신의 천재’‘권력의 중간상인’이라는 비판이 공존했다. 이지운기자 jj@
  • 삼성 두사장 사업권 혈전

    삼성 전자계열사 사장들간에 신경전이 날카롭다.삼성SDI 김순택 사장과 삼성전자 LCD사업부 이상완 사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10일 삼성 등에 따르면 디스플레이 사업분야에서 ‘선의의 경쟁’ 관계인 이들은 유기EL(전계발광소자) 사업권을 놓고 양보할 수 없는 일전을 벌이고 있다.해당 회사 주주들의 반발 등을 감안할 때 그룹의 조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어서 사업권 갈등의 전개 방향이 주목된다. ●“유기EL,우리가 최적” 김 사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유기EL은 삼성SDI가 하기로 전자 사장단에서 이미 결정난 사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달여전 이 사장이 “소형 유기EL은 SDI가 맡기로 했지만 대형은 아직 누가 할지 결정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개발을 계속하고 있다.”며 유기EL 사업 진출 가능성을 언급한데 따른 반응이었다. 김 사장은 “연구개발하는 것이야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면서도 “소형이든 대형이든 유기EL은 반드시 우리가 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이미 한차례 유망 사업권을 삼성전자에 넘긴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실제 TV·모니터용 브라운관 전문업체였던 삼성SDI는 브라운관 시장의 쇠퇴 가능성에 대비,삼성전자에 앞서 LCD사업에 손을 댔지만 92년 그룹 결정에 따라 사업을 송두리째 삼성전자에 넘겨준 전력이 있다.당시 그룹은 반도체 공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거액의 투자비가 든다는 이유 등으로 LCD사업을 삼성전자에 통합시켰다.아이로니컬하게도 당시 그룹 비서실에 근무했던 김 사장은 사업권 통합 1년 뒤 삼성SDI로 자리를 옮겼다. ●‘교통정리’ 제대로 될까 유기EL은 전류를 흘려주면 스스로 빛을 내 문자와 영상을 표시하는 디스플레이.상대적으로 전력 사용량이 적고,동영상 구현 능력이 뛰어나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주목받고 있다.두 회사가 모두 눈독을 들이는 까닭이다. 그룹 안팎에서는 한 품목을 두 계열사가 경쟁하듯 생산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사업권 통합 얘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지난해 초 삼성전자가 디지털카메라 사업을 삼성테크윈에 양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유기EL 사업의 경우 그룹의 조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계열사들에 대한 그룹의 지배권이 현격히 약화된 데다 사업권을 넘기는 회사의 소액주주들이 이를 묵과할리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김 사장은 “기술력이 앞선 회사가 사업을 포기하면 주주들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반문했다.삼성그룹이 유기EL 사업을 어떻게 조정할지 주목된다. 박홍환기자 stinger@
  • 한나라 심규철의원 주장/ 정대철 SK200억 수수설 파문

    21일 열린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심규철 의원이 “정대철 의원이 우리 당의 가까이 지내는 동료의원에게 ‘대선 때 SK로부터 200억원을 받았는데 한나라당도 할 수 있으면 얻어쓰라.’고 했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심 의원은 이어 “당선가능성만 보고도 그 정도인데 당선되고 나서는 얼마나 더 줬겠느냐.”면서 검찰 수사를 요구했다. ●검찰 수사 요구 심 의원은 발언 직후 기자들과 만나 “요 무렵 사석에서 몇몇 의원들이 모여 최돈웅 의원 건을 논의하다가 그분(동료의원)이 ‘(정 의원 건을) 적절하게 문제삼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담담하게 얘기했다.”고 밝혀 대정부질문 전에 일정한 양해가 있었음을 시사했다.그는 또 “그분이 정 의원과 개인적으로 잘 안다고 하는 만큼 근거없이 장난으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신빙성을 강조했다.그는 동료의원이 중진이라고만 밝혔다. 심 의원은 “이 얘기를 듣자마자 지난번 정 의원이 대선자금 200억원을 말한 것이 혹시 SK자금이 아닌가 생각했다.”면서 “그 후 돼지저금통이 포함됐느니 아니니 하면서 민주당은 입으로만 수사했다.”며 검찰 수사의 형평성을 문제삼았다. ●“최돈웅 의원에 말했다” 이에 대해 심 의원과 같이 얘기를 들은 한나라당 P의원은 “그 동료의원이 사실은 최돈웅 의원”이라면서 “다만 최 의원 자신이 얘기했는지 다른 의원이 전해 줬는지는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최 의원은 정 의원과 경기고 동문으로 평소 친하게 지낸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 같은 자리에서 얘기를 들은 한나라당 K의원은 “최 의원이 정 의원의 말을 들은 것은 대선 전”으로 “이후 최 의원이 정 의원 충고대로 SK 돈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K의원은 당에서 10여명 정도 이 사실을 안다고 덧붙였다. K의원은 또 ‘SK가 한나라당에 풀베팅했다.’는 시중의 설에 대해 “사실은 반대”라며 “한나라당이 보험금 성격”이라고 주장했다.그러면서 “최 의원이 검찰에서 (정 의원 건을) 진술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최 의원측은 “이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는 방안을 며칠 더 생각해 보겠다.”고 밝힌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현재 통합신당 소속인 정대철 의원은 본회의 신상발언을 통해 “근거없는 낭설이자 신당에 대한 조직적 음해”라며 즉각 부인했다.정 의원은 “민주당이 대선 당시 모금한 액수가 150억원이 안 된다.”면서 “6하원칙 하에 들은 내용을 밝히라.”고 심 의원에게 촉구했다.그는 그러나 “심 의원이 법대 15년 후배인 만큼 사과하면 남자들끼리 괜찮다.”고 말해 확전을 원치 않음을 내비쳤다. 박정경기자 olive@
  • [대한포럼] 재신임과 ‘대통령사람들’

    ‘노무현식’ 정치다.재신임은 고비마다 정치적 승부수로 상황을 돌파하고,안 되면 한동안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노무현 승부정치의 결정판이다.양길승 전 청와대 부속실장의 회한섞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다시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의 금품수수 의혹으로 참여정부에 암운이 드리워지자 승부사의 칼집에서 꺼내든 초강수다. 노 대통령은 아주 멀게는 YS의 3당통합에 반기를 든,가깝게는 지난 대선때 국민경선으로 어렵게 쟁취한 집권여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정몽준 의원의 단순 여론지지도와 맞바꾸는 승부수를 거리낌없이 던진 비주류의 정치인이다.어찌 보면 잃을 게 별로 없는 단신(單身)의 지도자다.그러다 보니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으로 인정이나 해주었느냐.”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혼돈은 권력 아마추어리즘이 낳은 예고된 불상사다.권력경험의 새내기들이 겪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노 대통령의 승부사적 기질은 정치적 상승작용을 일으킨 촉매제일 뿐본질은 아니다.‘대통령 사람들’을 둘러싸고 제기된 끝없는 부패 연루 의혹이 촉발요인이다.최측근인 최 전 비서관이 대선이 끝난 지 며칠 뒤 거액의 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 위기가 비등점을 넘어선 절체절명의 국면이 되어버린 셈이다. 집권초기인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로서는 사면초가인 현 상황을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는 억울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으로 짐작된다.헌법에도 없는 재신임을 공표한 것에서 소수정권의 한계에 항거하고 싶은 복잡한 심사가 묻어나온다. 작금의 위기는 정치입문 이후 거의 영일이 없었던 노 대통령과 ‘대통령의 사람들’이 별 준비 시간을 갖지 못한 채 권력의 향유와 맞닥뜨리게 된 데 1차적 원인이 있다.도덕성이 무너지면 단 하루도 정권을 지탱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가슴에 새기지 못하고 청와대에 입성한 결과이다.말로는 ‘정권이 순수성을 잃으면 끝장’이라고 숱하게 되뇌었으나 행동이 여기에 따라가지 못한 것은 아닐는지.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의 일이다.풀기자단(대표 취재)에서 순서가 되어행사장을 취재하다가 어쩌다 김대중 대통령과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고생한다.”거나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는 체를 하는 몇몇 기자들이 있었다.야당 총재때부터 오랫동안 지근거리에서 취재해온 기자들이라 오늘은 무슨 기사를 썼는지,심지어 성향까지 파악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그러다가 청와대 안에서부터 “어느 기자가 총애를 받고 있다.”느니,“영향력이 가장 센 것 같다.”느니 하며 구설이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다.혹 김 대통령이 행사중에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특정인에게 각별히 관심을 나타내거나 애정을 표시하면 그 사람 주변으로 사람들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확인할 길은 없었지만,입소문이 기자들 귀에까지 닿았으니 사실이었음에 틀림없다.그 후 김 대통령은 행사장에서 누구에게도 눈에 띄는 관심표시를 하지 않았다.그저 의례적인 악수와 인사로 일관했던 기억이 난다. 권력의 메커니즘이란 이런 것이다.출입기자와 한낱 초청인사들도 이럴진대,대통령의 사람들은 어떻겠는가.대통령을 독대(獨對)한 것도 아니고,의전행사에 한차례 참석한 대통령 지인에게까지 선을 대려고 야단인 것이 권력이 지닌 마력이다.권력에 취해 깜박했다간 저도 모르게 청주 나이트클럽에서 향응을 제공받고 있는 것이 권력의 메커니즘이다. 권력은 안으려 들면 형해(形骸)도 없이 태워버린다.등을 지고 똑바로 설 때 자유롭다.대통령의 사람들이 이번 일로 권력의 달콤함을 경계하게 된다면 참여정부의 미래를 위해 ‘재신임’을 묻는 결단 못지않은 ‘보약’이 될 것으로 나는 믿는다. 양 승 현 논설위원 yangbak@
  • [시론] 新4黨,국민위한 경쟁 나서라

    이제 우리 정치는 사상 초유의 새로운 경험에 들어섰다.집권당의 분당으로 1988년에 이어 새로운 4당체제가 된 것이 그렇고,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소속당을 탈당해 무당적 상태가 된 것도 그러하다.가뜩이나 경제사정도 좋지 않고 안보환경도 어려운데 과거 4당체제의 혼란을 기억하는 국민은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한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자신의 정치노선과 맞지 않는 정당에 형식적으로 적(籍)을 유지하는 것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고,예측가능하지 못한 정치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분명히 지는 것이 도리에 맞다.마찬가지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은 만약 지금이라도 자신의 정치 노선이 통합신당과 가깝다면 그 당을 선택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그것이 헌법이 규정한 정당 책임정치와 대의정치의 원칙이다. 특히 무소속이 된 노 대통령은 다음 두가지 유혹을 버려야 한다.하나는 현 국정난맥의 탓을 정당 협조를 못받은 것에 돌리고 국회에 책임이 있는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대통령은 정부의 수반(首班)이자 모든 일의 최종 책임자다.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것은 국민의 불행이기도 하다.다른 하나는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싶은 유혹을 버려야 한다.정치는 국민합의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택한 또 다른 대표자다.그래서 대통령제는 ‘이중 정통성(dual legitimacy)’을 특징으로 하는 체제다.자신은 정통성이 있고 국회는 문제가 있다는 사고는 버려야 한다.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은 오직 국민일 뿐이다. 그럴 때 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스스로 말했듯이 국정과제에 집중하고 경제문제에 전념하는 일이다.총선을 염두에 두고 국민에게 불쌍히 보여 동정을 받고 지지를 받으려 해서는 앞으로도 이 나라에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나라경제를 안정시키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면 국민의 지지는 요구하지 않아도 몰려올 것이다.그 때는 국민도 행복할 것이고 그 대통령을 선택한 것에 대한 자부심도 느낄 것이다.그것이 스스로 말한 ‘창조적 파괴’의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신 4당체제가 해야 할 일도 하나밖에 없다.대통령을 공격해서는 이제 얻을 것이 없다.국민 지지도가 이미 땅에 떨어진 마당에 대통령을 더 흔든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나라에 보탬이 될 것도 없다.공격보다는 대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정책 대안과 인물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국민이 보고싶어 하는 것은 대안의 적절성과 설득력일 뿐이지 그 어떤 것도 아니다.불가피하게 조성된 4당 체제라면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책임을 다하는 각축(角逐)을 보고 싶다.특히 민주당은 대통령을 탓할 위치에 있지 않다.오히려 선거에 이기기 위해 자기 정체성과 다른 대통령후보를 공천하고 국민에게 선택해 달라고 호소했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이제 와서 야당이라며 자신들이 추천했던 대통령을 공격한다면 또 다른 총선전략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원내 과반수를 점한 한나라당의 책임은 더욱 크다.한나라당은 대통령과 함께 이중 정통성의 한 축을 맡고 있으며 대통령과 함께 국가를 운영해야 할파트너다.이제 대통령 임기 7개월째다.대통령이 맘에 안 든다고,지난 대선이 억울했다고 딴맘부터 먹으려 한다면 국민의 심판은 준엄할 것이다.어쨌거나 대통령의 실패는 나라의 실패다.국민을 위한다면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성찰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정치가 국민이 가야 할 길을 여는 작업이라면 대통령과 4당은 길을 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란다. 김 광 동 나라정책원장 정치학박사
  • [씨줄날줄] 추석 선물

    추석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지난 주말과 휴일에는 성묘객들로 도시 외곽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한국인들은 없이 살아도 명절만큼은 고향을 찾아 가족과 이웃들과 함께 따뜻하게 지내려고 한다.손에는 자그마한 선물꾸러미를 들고.‘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그래서 생긴 것일 게다. 올해 추석은 5일 연휴가 된다.백화점 등 쇼핑업체나 여행업계에서는 추석특수 잡기에 여념이 없다.벌써부터 선물을 나르는 택배업체 차량들로 곳곳에서 지체현상이 빚어지고 있다.하지만 이런 들뜬 분위기와는 달리 우울한 소식도 들린다.이번 추석에는 근로자들이 노는 날은 늘어났으나 전체적으로 추석 보너스 지급액수는 줄어들었다고 한다.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가난으로 인한 자살비율이 3년 전보다 2배나 증가했다고 한다.행정자치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말 현재 자살자 6005명 가운데 빈곤으로 인해 자살한 사람은 408명에 이른다고 한다.자살 얘기까지 해서 좀 뭣하지만 전반적으로 불황이 서민들을 옥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저께 민주당의 정대철 대표가 기자들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 끝에 역대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명절선물을 공개했다고 한다.박정희 전 대통령은 봉황문양이 새겨진 인삼과 수삼을,전두환 전 대통령은 봉황문양이 새겨진 인삼을,노태우 전 대통령은 100만∼200만원을 국회 의원회관으로 보내왔고,김영삼 전 대통령은 멸치를 보내왔으며,김대중 전 대통령은 시시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정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은 선물이 없어 자칫 정을 잃어버릴 수 있다.”며 “대통령은 판공비를 써서라도 선물을 보내야 한다.”고 권유까지 했다.청와대측은 노 대통령이 추석 선물로 전북 고창 복분자술과 경남 합천 한과를 묶음으로 한 ‘국민통합형 선물’을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사회지도층,여야 정치권 인사 등에게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마움을 표시하고 정성을 나누는 것은 많을수록 좋다.하지만 각종 비리니 불황이니 하는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청와대와 여당 대표가 선물얘기를 주고받은 것은 뭔가 ‘엇박자’인 듯한 느낌이 든다.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얘기가 아니라 남의 얘기처럼 들리게 하기 때문이다. 김경홍 논설위원
  • 美 ‘최악의 정전’ 진정 기미

    14일(현지시간) 발생한 미국 최악의 정전사태는 이튿날까지 그 피해가 계속됐다.당초 예상보다 복구가 늦어져 피해지역 시민들은 15일 아침에도 전기가 끊어진 전날 밤 상황을 그대로 맞아야 했다.그러나 이날 오전 9시30분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이 정상 개장되고 복구상황이 진척을 보이는 등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 ●15일 날이 밝자 무더위를 피해 맨해튼의 타임스퀘어에서 밤을 보낸 뉴요커들은 지친 얼굴로 잠에서 깨어 가장 먼저 정전상황을 체크했다.그러나 뉴욕시민들은 교통·통신 시스템이 여전히 마비된 상황을 확인하고 지하철도 운행되지 않는 출근길 러시아워를 맞아야 했다.통합 에디슨 전력회사측은 300만명 정도의 뉴욕시민들이 전력을 공급받을 정도로 회복됐다고 밝혔다.북미 전력공급위원회에 따르면 밤사이 정전된 설비 전체의 30%정도가 복구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증시는 이날 평소와 같은 9시30분에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의 타종과 함께 거래를 정상적으로 시작했다.나스닥 시장도 같은 시간에 개장했다.뉴욕 맨해튼 월가에는 오전 7시까지 전력이 복구돼 이 지역에 위치한 거래소와 주요 증권업체들은 비상전력을 가동할 필요가 없이 정상운행됐다.지수에는 큰 변동이 없었으며 아침거래는 한산한 양상을 보였다.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날 중으로 전력 공급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또 뉴욕시민들에게 이날 가능하면 출근을 자제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할 것을 당부했다.뉴욕시측은 전력공급이 재개되더라도 전철 통근선과 지하철 시스템이 다시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6∼8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정부에서도 전력상황이 50% 정도 회복됐지만 가능한한 전기사용을 하지 말아달라고 권고했다. ●2년 전 9·11테러의 악몽을 생생히 기억하는 뉴요커들은 제2의 9·11테러니 뭐니해서 뒤숭숭하던 차에 이번 정전사태로 식은 땀을 흘렸다.14일 정전사태로 지하철과 교외 통근기차 등 600대가 일제히 운행이 중단되면서 교통수단을 확보하지 못한 수만명의 뉴욕커들은 걸어서 다리를 건넜다.다리를 가득 메운 뉴요커들의 끝없는행렬은 9·11테러 직후 맨해튼을 빠져나가려는 뉴욕 시민들의 모습을 연상케했다.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14일 4만명의 경찰 및 소방 인력을 치안유지에 투입했다.브루클린에서 신발가게와 장비렌털센터 등을 약탈하다 26명이 체포됐지만 우려했던 것만큼 심하지는 않았다.또 이날 60건의 화재가 발생했으며 1명이 더위로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 ●정전사태의 원인을 둘러싸고 미국과 캐나다의 책임공방은 가열되고 있다.캐나다측은 정전 원인이 나이애가라 폭포 미국쪽 지역의 콘 에디슨발전소에서 낙뢰에 의한 화재 때문이라고 총리실을 통해 발표했다.그러나 조지 파타키 뉴욕주지사는 캐나다측이 지목한 나이애가라 발전소는 완벽하게 가동돼왔다면서 “이 때문에 뉴욕주 서부지역에는 전력이 정상공급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파타키 주지사,블룸버그 뉴욕시장 등 미 지도부는 정전사태가 발생하자 일제히 “테러공격 가능성은 없다.”고 밝혀 초기에 시민들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데 주력했다.9·11테러 이후 테러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 창설된 미 국토안보부는 그러나 정전사태가 테러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는 데 무려 90분이나 걸렸다. 김균미기자 외신 kmkim@
  • 독자가 만들고 우리가 읽겠습니다/창간99돌 아침 새 발행인의 다짐

    존경하는 대한매일 독자 여러분. 대한매일은 오늘로 창간 99주년을 맞습니다.1904년 배설·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 선각자들에 의해 창간된 대한매일은 내년이면 창간 100주년을 맞는,우리 현대사의 산 증인입니다.대한매일의 창간 정신을 되새기는 한편 민영화 2년을 맞는 독립언론 대한매일의 시대적 소명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독자 여러분 앞에 옷깃을 여미고자 합니다. 대한제국 말기에 민족의 갈 길을 비추던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는 국채보상운동 등을 주도하며 민족혼을 일깨운 한국언론의 뿌리입니다.그 정신은 오래도록 우리 마음속에 살아 남았고 광복후 서울신문 시절을 거쳐 2002년 사원들이 최대 주주인 민영화를 이룩하여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대한매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민영화 이후 대한매일은 이념적으로는 자유시장 경제의 바탕위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온건합리주의 개혁노선을 지향해 왔습니다.민족문제와 남북 공동체 회복,인권,시민의 권리 신장,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서는 진취적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민영화 이후 제2대 사장으로서,대한매일에서 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사원들에 의해 선출된 사장으로서,저는 이같은 대한매일의 정체성을 계속 지켜가면서 독자들에게 더욱 다가가는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세대간·계층간 갈등과 혼란으로 크게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대한매일은 복잡한 갈등 구조를 조정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앞장 설 것입니다. 우리 경제는 지난 1995년 이래 국민소득 1만달러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세계의 경제강국 일본과 무서운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중국과의 틈바구니에 끼여 질식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살 길은 소득 2만달러 시대를 하루빨리 앞당기는 길밖에 없다고 봅니다.그러자면 우리의 모든 역량을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제고에 결집해야 합니다.기업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경영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겠지만 근로자들 역시 세계 경쟁기업의 근로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생산성을 일궈내야 합니다. 대한매일은 기업과 근로자들의 경쟁력을 높이고,한국이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로 우뚝서는 데 언론으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특히 저는 대한매일의 재계출신 첫 CEO로서 미래지향적인 경영방식을 통해 독립언론의 길을 탄탄히 닦아 나가고 신문시장의 공정한 경쟁과 여론 형성의 균형성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대한매일은 참신하고 차별화된 신문,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무한경쟁의 신문 시장에서 다른 신문과는 구별되는 뚜렷한 개성을 가지면서 독자들이 찾는 신문,읽고 싶은 신문,독자들의 기억에 남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특색없는 백화점식 제작은 지양할 것입니다. 우리 언론은 그동안 공급자의 입장에서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뉴스를 제공해 왔습니다.그러나 대한매일은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신문,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신문,독자의 편에서 느끼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그래서 독자 여러분의 사랑을 받고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좋은 신문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대한매일 발행인 채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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