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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경원 “‘달창’, ‘달빛 창문’ 축약으로 생각…비난 지나쳐”

    나경원 “‘달창’, ‘달빛 창문’ 축약으로 생각…비난 지나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0일 더불어민주당에 요구한 경제토론회와 관련해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정도가 나오면 어떤 형식이든 좋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경제청문회를 할 수 있는 협상의 마지노선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국회 정상화의 3가지 조건으로 패스트트랙 과정에 대한 사과,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합의 처리 약속, 경제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이라고 설명했다. 나 원내대표는 “(여당이) 이러이러한 것을 해줄 테니 추경을 해달라고 요구했다”며 “추경만 있으면 경제 실정이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말했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운 것에 대한 종합적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경제청문회를 주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의 (여당에 대한) 상당한 압박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청문회가 쟁점이 되는 것도 청와대 입김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본다”며 “대통령께서 저희 당을 향해 가시 돋친 말씀을 하시는 것 자체로 압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선거제 협상과 관련해서는 “민주당이 날치기로 패스트트랙에 올린 선거제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유연하게 토론하겠다”면서도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가 국회 정상화 협상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원내 상황은 저의 리더십을 존중해주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나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을 올린 것은 야당을 궤멸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보복 정치를 자행하고, 사법부, 선관위, 언론 등을 장악해 생각이 다른 세력을 억누르는 것은 공존을 거부하는 신종 권위주의”라고 비판했다. 홍문종 의원의 탈당과 관련해서는 “우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통합”이라며 “홍 의원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내 의원들의 추가 탈당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리 당에서 탈당할 의원님들이 계시지 않을 것”이라며 “김진태 의원님조차 탈당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일축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너무 오래 계신다. 법조인의 시각에서 형도 지나치게 과하다고 생각한다”며 “청와대가 적절히 포용의 정치로 풀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에 입각해 권력 분산을 위한 정치개혁이 시급하다”며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타협은 찾아보기 어렵고, 힘의 논리, 적대와 분열의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관제 민족주의가 한일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며 “6·25 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자유를 지킨 전쟁이다. 자유 위협 세력에게는 강력한 대응으로 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나 원내대표는 ‘달창’ 발언 논란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그는 “일부 기사에 ‘문빠’, ‘달창’ (단어가) 있더라. ‘문빠’라고 (줄여서) 하니 (‘달창’은) ‘달빛 창문’을 축약한 줄 알고 사용했다”며 “나쁜 말을 축약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사용했겠는가”라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바로 사과를 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좌파언론은 너무하더라. (언론은) 계속 보도하고 민주당은 시위하고 민주당 시·도당 별로 위원회 성명내는 게 끝나더니 사설로 계속 쓰더라”며 “참 정말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한국당의 ‘막말’ 논란에 대해서는 “막말은 잘못한 부분이 분명 있다.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야당의 입을 막는 프레임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막말의 원조는 민주당 아닌가. (한 의원이) ‘그 X’라고 한 것을 다 기억하실 것이다. 한국당이 스스로 조심하겠지만 야당의 건전한 비판을 막는 도구로 막말 프레임이 사용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친일 들통난 옛 서이면사무소… 헐어? 말아?

    친일 들통난 옛 서이면사무소… 헐어? 말아?

    경술국치 찬양한 상량문 발견 후 논란 퇴출본부, 문화재 지정 해제 신청 추진 “시민 1만명 서명 받아 일제 잔재 청산” “주변 상권 개발하려는 속셈” 반대도1917년 지어진 한옥건물인 경기도 안양시 옛 서이면사무소의 문화재자료 지정 해제 신청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18일 안양시에 따르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이면사무소퇴출운동본부가 조만간 경기도 문화재 심의위원회에 지정 해제를 신청할 예정이다. 지난 2000년 시가 29억원에 매입해 복원하는 과정에서 경술국치를 찬양하는 내용의 상량문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시작된 친일잔재 논란이 이번 지정 해제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서이면사무소는 지난 2003년 지역에 남아 있는 유일한 옛 관청건물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경기도 문화재 자료 100호로 등록됐다. 앞서 행정구역 통합으로 1917년 현 지역 대표상권인 안양 1번가에 자리잡은 서이면사무소는 1949년 안양면 읍으로 승격, 읍사무소를 다른 곳에 마련하면서 개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퇴출운동본부와 안양1번가번영회는 “20여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안양인의 정신과 기개를 훼손하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고 주장했다. 오는 8월 말까지 최대 1만명을 목표로 시민 서명을 받아 10월 초로 예정된 문화재심의위원회에 지정 해제를 신청한다는 목표다앞서 지난 5월 말 안양시, 시의회, 안양1번가번영회 등은 합동 간담회를 열고 문화재 해제와 이전을 촉구했다. 박영미 시 문화관광팀장은 “시는 오래 전 건물이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으나 지금은 많은 주민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어 지정을 해제시켜려 한다”고 말했다. 서이면사무소 문화재 지정 해제는 주변 상권 불이익 해소와 관련이 깊다. 이호건 시의원은 “서이면사무소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지역의 대표상권인 안양1번가 일대 건물이 증개축 규제로 재산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정 취소가 어렵다면 안양예술공원 박물관 등 다른 지역으로라도 이전을 추진해 안양 1번가 일대 상권 불이익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해제 반대 목소리도 높다. 독립운동가 후손인 이형진씨는 “기억해야 할 문화재를 없애면 가장 좋아할 쪽은 가해자”라면서 “일제의 잔재는 미래의 교훈이지 적폐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서이면사무소를 없애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당한 치욕적인 역사가 잊혀진다는 호소다. 그는 “주변 상권 관계자들의 재산상 불이익을 일제 잔재 청산으로 연결시켜 문화재 해제와 철거를 거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이면사무소는 안양 지역 독립운동과 일제강점기 수탈 자료, 소품 등 108건 202점을 전시하고 있다. 글 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이총리 “이희호 여사 꿈꾼 평화통일·국민통합 향해 전진”

    이총리 “이희호 여사 꿈꾼 평화통일·국민통합 향해 전진”

    이낙연 국무총리는 14일 “우리는 이희호 여사님이 꿈꾼 국민의 행복, 평화통일을 향해 쉬지 않고 전진하겠다”며 “영호남 상생을 포함해 국민의 통합을 위해서도 꾸준히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의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이 총리는 이날 오전 서울 신촌 창천교회에 거행된 고(故) 이희호 여사의 장례예배와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엄수된 추모식에서 두 차례의 조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여사의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이 총리는 이날 오전 신촌 창천교회에서 거행된 장례예배에서 조사를 통해 “이제 우리는 한 시대와 이별하고 있다”며 “한국 현대사의 격랑 한복판에서 가장 강인하게 헤쳐온 여사님을 보내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여사님은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지만, 보통의 행복에 안주하지 않았다”며 “대학 시절 여성 인권에 눈을 떴고 유학을 마치자마자 여성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고 고인의 생을 기억했다. 이어 “여사님은 아이 둘 가진 홀아버지(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와 결혼했고 결혼 열흘 만에 남편은 정보부에 끌려갔다”며 “남편은 바다에 수장될 위험과 사형 선고 등 5차례나 죽음의 고비를 겪었다”고 덧붙였다.이 총리는 “그러나 여사님은 흔들리지 않고 남편이 감옥에 있거나 망명할 때에도 남편에게 편안함을 권하지 않고,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맞게 투쟁하라 독려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뤘고 분단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했고, 우리 국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며 “어떤 외신은 노벨평화상 절반은 부인의 몫이라 논평했다. 정권교체의 절반도 여사님 몫이었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김 전 대통령은 여성평등기본법 제정, 여성부 신설 등 여성과 약자를 위해서도 획기적 업적을 만들었다”며 “여사님의 오랜 꿈은 그렇게 남편을 통해 구현됐다”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넉넉함 품은 막걸리 길, 골목골목 인심을 맛보다

    넉넉함 품은 막걸리 길, 골목골목 인심을 맛보다

    전주의 맛을 찾아 떠날 차례다. 전주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비빔밥뿐 아니라 시장 음식부터 길거리 음식까지 갖가지 먹거리가 풍성하다. 좋은 음식은 좋은 식재료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전주 음식을 알기 위해서는 시장을 먼저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풍남문과 전주천 사이에 전주를 대표하는 남부시장이 있는데 하천 맞은편에는 아침에만 서는 특이한 시장이 있다. 전주천을 가로지르는 싸전다리 서쪽, 하천 남쪽 둔치에는 매일 오전 4시부터 10시까지 ‘도깨비 시장’이 열린다. 동트기 전부터 하루 내다팔 물건을 바지런히 준비해온 상인들이 하천을 따라 자리를 깔고 천막을 펼친다. 맞은편 공영주차장은 빈자리 없이 꽉 찬다. 사과, 배, 참외, 파, 가지, 파프리카 등 싱싱한 과일과 채소들이 수북이 쌓였다가 아침부터 몰려든 손님들의 손에 들려 간다. 생선, 미숫가루, 잡다한 공산품도 볼 수 있다.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 물건을 다 판 상인들은 미리 자리를 정리한다. 반짝 등장했다 사라지는 시장이라 활기가 더 넘친다.도깨비 시장을 둘러본 뒤 돌다리를 건너 남부시장으로 향한다. 남부시장은 조선 중기 전주성 남문 밖에 섰던 남문장의 역사를 이은 시장으로 4개 성문 밖 시장이 일제강점기 때 통합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국의 여느 전통시장처럼 간판 정비 등을 통해 현대화됐지만, 시장과 함께 평생을 보낸 상인들과 가게의 모습에는 옛 시절 추억이 서려 있다. 2000년대 들어 시장의 중심 건물 2층에 청년몰이라는 이름의 젊은 가게들이 둥지를 틀었다. 시장에서는 볼 수 없던 일본 카레와 우동, 피자와 파스타, 미국식 브런치 등을 파는 음식점과 예쁜 카페, 디자인 용품 가게가 생기면서 전통시장을 찾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늘었다. 오랜 역사의 전통시장 위에 청년몰이 공존하는 풍경이 재미있다.남부시장에는 전주만의 특색을 품은 먹거리가 풍성하다. 콩나물국밥은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다. 삼백집, 현대옥, 왱이집을 3대 맛집으로 꼽는다. 그중 ‘토렴’을 한 국밥을 내는 것으로 유명한 현대옥이 남부시장에도 있다. 전국 곳곳에 지점을 두고 있지만 전통 방식의 토렴에 ‘남부시장식’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원조 맛집을 자랑한다. 시장 좁은 골목골목을 따라 들어가 봤다. 뜨끈한 김이 새어나오는 커다란 솥을 마주하고 주방을 보며 일렬로 앉는 좁은 좌석에 아침부터 손님이 빼곡하다. 그릇에 밥을 퍼담고 그 위에 국물을 반쯤 붓는다. 국물을 적당히 따라낸 뒤 다시 솥에서 뜬 국물을 가득 붓는다. 또다시 국물을 덜고 이번에는 콩나물을 듬뿍 올린다. 붓고 덜기를 한 번 더 반복하고 양념장을 얹은 뒤 다시 국물을 채운다. 현대옥에서는 이렇게 세 차례 국물을 더는 방식으로 토렴을 한다. 여름철 금세 쉬는 쌀밥을 장기간 보관하기 힘들던 과거에 찬밥을 국물로 따뜻하게 데워 내놓기 위해 개발된 방법이 토렴이다. 밥을 계속 끓여 걸쭉하게 되는 것을 막고 국물을 부었다 따르는 걸 반복하면서 밥알 사이사이마다 국물이 배게 해 맛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시원한 콩나물국밥에 쫄깃한 오징어가 섭섭지 않게 더해진다. 여기에 김을 직접 손으로 찢어 넣고 수란을 곁들이니 국밥이라고 얕볼 수 없는 훌륭한 한 끼가 완성된다. 남부시장에서 먹어 봐야 할 음식 중 하나는 피순대다. 두부, 채소, 곡류 등 순대소를 선지에 버무려 색이 검은 피순대는 일반 순대보다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부추·고추·마늘 등 쌈채소와 초장, 쌈장이 함께 나와 입맛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전주는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술 문화로도 유명하다. 유행을 타고 지금은 서울에도 전파된 ‘가맥’ 문화가 전주 태생이다. 가게에서 파는 맥주를 뜻하는 ‘가맥’은 1980년대 전주의 작은 슈퍼들에서 조촐한 안주를 팔면서 시작됐다.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렴한 술과 안주를 즐기는 것이 전주만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가맥으로 유명한 가게가 여럿 있지만 제일 이름난 곳은 ‘전일갑오’다. ‘전일슈퍼’라고도 불리는 이곳에는 평일에도 애주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연세 지긋한 사장님이 발갛게 타고 있는 연탄불에 직접 황태를 굽는다. 맥주 한 병과 함께 식탁에 오른 황태구이의 은근히 풍겨 오는 냄새에 절로 군침이 돈다. 손으로 쭉 찢어 입에 넣자 포슬포슬한 식감이 입속 가득 퍼진다. 이어 고소한 맛이 혀를 타고 전해진다. 맥주잔과 황태를 오가는 손이 그칠 새 없다.‘가맥’과 쌍벽을 이루는 재미있는 음주 문화를 막걸리 골목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막걸리 두 주전자에 푸짐하다 못해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안주가 나오는 가게들이 300여m 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다. 튀김, 조림, 전 등 20가지 이상의 음식으로 구성된 상차림이 막걸리와 함께 나오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술과 안주를 먹으면서 도란도란 담소를 즐기다 보면 홍어삼합, 산낙지, 게장밥, 삼계탕, 홍합탕 등이 빈 접시를 치울 틈도 없이 차례로 나온다. 넉넉한 전라도 인심이 그대로 전해진다. 젊은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개성 있는 카페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객리단길은 침체해 가던 구도심에서 최근 몇 년 새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거리다. 전주객사길 일대로 서울 경리단길의 이름을 빌려 객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색 맛집과 카페가 하나둘씩 생기면서 어느덧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북서쪽 외곽 산업단지 내에는 독특한 카페 하나가 들어섰다. 25년간 방치되던 카세트테이프 공장이 ‘팔복예술공장’으로 새 옷을 입고 지난해 3월 개관했다. 1층 카페는 옛 공장 ‘썬전자’와 노동자 소식지 ‘햇살’에서 이름을 따 ‘써니’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당시 여공을 닮은 대형인형 ‘써니’가 카페에서 오는 이들을 반긴다. 2층과 옥상 전시실에는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돼 있다. 야외 컨테이너에는 만화방과 그림방이 있어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전주에서 받은 인상을 그림으로 그리며 동심의 예술가로 돌아가 보는 것도 기억에 남는 여행의 괜찮은 마무리일 것이다. 글 사진 전주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 ‘유능한 후배들이 스스로 알아서’…책임 미루는 양승태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 ‘유능한 후배들이 스스로 알아서’…책임 미루는 양승태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수요일, 금요일 두 차례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 중계 합니다. 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사이가 그렇게 지시를 하는 사이가 아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유능한 사람이기에 알아서 하는 것이고 나는 지시한 적이 없다”, “인사심의관실에서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회 공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에서 진술한 피의자신문 조서가 일부 공개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짙어지자 집 옆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입장을 밝힐 때부터 검찰 수사 과정 내내 양 전 대법원장이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그가 검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진술을 했는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공개된 양 전 대법원장의 검찰 진술을 종합하면 “나는 지시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로 모인다. 사법행정의 최종 결재권자이자 책임자인 만큼 각종 문건을 승인한 것은 자신이 맞고 관련 내용을 보고 받은 것도 맞다고는 인정했다. 그러나 그 보고 내용들은 결국 하급자들이 ‘알아서 한 것’이고 자신은 가장 마지막에 보고를 듣기만 했을 뿐이라는 취지다.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인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관련해서 사법부 고위 관계자들이 청와대, 외교부와 재판 관련 논의를 했다는데도 양 전 대법원장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 “그런 것 하는 데 왜 대법원장 지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2013년 12월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관에서 열린 이른바 ‘소인수회의’에서 청와대와 대법원, 외교부, 법무부 고위 관계자들이 모여 일제 강제징용 사건을 논의한 데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회의에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참석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도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 들은 적이 있으면 기억하겠지만 전혀 들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2014년 3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만난 사실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분을 알지 못한다”며 부인했고, 윤 장관에게 법관의 재외공관 파견을 요청한 사실 있냐는 질문에도 마찬가지로 윤 장관을 만난 사실도 없다고 잡아뗐다. 검찰이 외교부 직원의 이메일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윤병세 장관과 조우한 계기에 양 대법원장이 재외공관 확대에 대해 논의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발견됐다고 제시하니 양 전 대법원장은 “조우라는 것은 우연히 만났다는 건데 우연히 만난 것을 일일이 기억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2014년 10월 열린 2차 소인수회의에서도 당연히 “몰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은 2차 소인수회의에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참석한 사실에 대해 “사후에 보고받아 알게 됐고 사전에는 몰랐다”고 밝혔다. “박 대법관이 다녀와서 얘기한 것 같다. 전혀 사전 보고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박 전 대법관과의 진술이 엇갈린 것이 확인됐다. 박 전 대법관은 검찰 조사에서 “그런 정도의 자리라면 대법원장에게 보고하고 참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거듭 물었다. “박 전 대법관이 2차 회의에 참석하기 전 각급 법원을 상대로 일제 식민지 시대 관련 과거사 사건의 현황을 조사한 뒤 이를 회의에 지참한 사실이 확인되는데 피고인(양 전 대법원장) 지시로 박 전 대법관이 이를 지참하고 회의에 참석 한 것 아닌가”, “피고인의 지시에 따라 박 전 대법관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챙긴 것 아닌가”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은 오히려 “처장은 업무 하나 하나마다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고 하는 게 아니다. 처장은 대법관이다”, “대법원장과 처장 사이가 그렇게 지시를 하는 사이가 아니다. (처장은) 대법원장이 사건 하나 하나를 갖고 지시를 하는 지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핵심 실행자이자 중간 책임자인 임 전 차장에게도 전혀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이어갔다. 임 전 차장이 2016년 4~5월쯤 청와대 등을 통해 외교부에 강제징용 사건 관련 의견서를 내라고 독촉한 것과 관련, 양 전 대법원장은 “임 차장이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기에 알아서 하는 것이고 나는 지시한 적이 없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어서 챙겨보라고 따로 지시해야 할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외교부와 청와대)을 직접 접촉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임 차장이 의견서를 내기로 했는데 왜 안 내냐고 했을 뿐이다. 저와 연관된 사안은 아니다.” 처장도 차장도 대법원장의 지시 없이 ‘알아서’ 청와대와 외교부를 접촉한 뒤 모든 논의가 이뤄진 뒤에 대법원장에게 결과만 보고됐다는 것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나 법원행정처 심의관을 지낸 후배 법관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과 관련, 특정 쟁점에 대해 재판연구관에게 검토를 지시한 적이 있나요?”(검찰), “지시한 적 없습니다.”(양 전 대법원장) “정다주 전 기획조정심의관(현 지방법원 부장판사)이 작성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을 알고 있나요?”(검찰), “전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양 전 대법원장) “통합진보당 행정소송을 심리하던 재판부에 법원행정처 입장이 담긴 문건을 전달하도록 승인하지 않았나요?”(검찰), “그런 것을 하는데 왜 대법원장이 꼭 지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양 전 대법원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전 고등법원 부장판사)이 통진당 소송 현황을 상시적으로 보고했는데, 대법원장의 지시가 있던 것 아닌가요?”(검찰), “제가 시켜서 보고를 한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한 것입니다”, “대법원장이 최고위급 간부에게 그런 식으로 지시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양 전 대법원장)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 결재는 시인···“인사 조치 이유는 인사실이 알아서”당시 사법부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을 밝힌 법관들을 비롯해 이른바 ‘물의야기 법관’ 리스트를 작성해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와 관련해서는 양 전 대법원장은 최종 결재를 했음은 인정했다. 그는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들이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대법원장에게 보고할 때 한 명 한 명에 대해 설명하면서 정책 결정을 받았다고 진술했는데 사실인가”라는 검찰의 질문에 “사실이다”라고 답했다. 인사조치 방안에 승인한다는 뜻으로 문건에 표시된 ‘V’표시에 대해서도 “제가 했다. 제가 했거나 옆 사람에게 체크하라고 했으니 제가 한 게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은 인사조치를 왜 했냐는 질문에는 “인사실에서 왜 그렇게 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서 “결재를 했다고 해서 이런 내용까지 다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 인사안에 대해서도 “결재는 내가 한 게 맞다”면서도 “행정처에서 올린 의견대로 결정한다. 실질적으로 대법원장이 관여하는 게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이 벌어진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이 지목됐다. 그러나 정작 그는 ‘유능한’ 후배 법관들이 ‘스스로, 알아서’ 논의하고 처리해 온 일들을 결과만 보고받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 법정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인정한 유능하고 스스로 일한 후배 법관들이 증인으로 나와 그와 마주하게 된다. 양 전 대법원장의 검찰에서의 진술을 후배 법관들이 어떻게 설명할지 주목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내일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추모열기 절정

    내일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추모열기 절정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개최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오전 10시부터 11시 10분까지 5·18민주묘지에서 약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은 1980년 신군부 세력을 거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며 일어났던 5·18민주화운동의 민주·인권·평화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 1997년 5월 9일 제정됐다. “오월 광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기념식은 내년 40주년을 앞두고 5·18민주화운동의 의미와 역사적 사실을 전 국민이 함께 공유하고 민주화의 역사와 가치 계승을 통한 ‘통합’의 메시지를 강조할 예정이다. 기념식은 오프닝공연, 국민의례, 경과보고, 기념공연, 기념사, 기념공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으로 진행된다. 오프닝공연은 5·18의 역사적 현장인 구 전남도청에서 5·18때 고인이 된 당시 고등학생의 일기를 바탕으로 작곡한 ‘마지막 일기’로 시작된다. 애국가 제창은 당시 참여학교인 전남대·조선대 학생대표 4명과 5·18 희생자 유족 4명이 선도한다. 이어 열리는 기념공연에는 5·18 당시 도청 앞에서 가두방송을 진행했던 박영순씨의 스토리텔링과 고등학교 1학년 신분으로 5월 27일 새벽 최후의 항전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한 고 안종필의 어머니의 이야기로 당시 5·18을 기억하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 치유하는 내용을 담는다.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식후에는 5·18 희생자 묘역을 참배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릴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희생자 묘역 참배 대상으로는 1980년 5월 21일 당시 중학생 시절 친구와 절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계엄군의 시민을 향한 집중 사격으로 사망한 김완봉과 같은날 동구청 근처에서 시위 도중 가슴에 총상 맞고 사망한 조삭천, 5월 19일부터 27일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한 안종필 등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기념식을 하루 앞둔 오늘 광주에서 추모행사가 진행되며 추모열기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이날 5·18민주묘지에서는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5·18민중항쟁 제39주년 추모제’가 엄수됐다. 전통제례로 치러진 추모제는 정춘식 유족회장, 김후식 부상자회장, 양관석 유족회 부회장이 각각 초헌과 아헌, 종헌을 맡았으며 이용섭 광주시장과 하유성 광주지방보훈청장 등이 참석해 추모사를 했다. 정 회장은 5·18 유가족을 대표한 인사말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악의적 왜곡과 폄훼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국가 이름의 공식 보고서가 발간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5·18 진상규명을 위해 온 힘을 다해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민주당 새 원내대표 이인영 “내년 총선 승리에 헌신하겠다”

    민주당 새 원내대표 이인영 “내년 총선 승리에 헌신하겠다”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로 당선된 이인영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헌신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신임 원내대표는 8일 당선 수락 연설을 통해 “(같은 당 의원들에게) 늘 지혜를 구하고 의원총회가 협상의 마지막 단계가 될 수 있도록 해서 집단사고에 근거해 협상하도록 하겠다”면서 “정말 말 잘 듣는 원내대표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원래 따뜻한 사람인데 정치하면서 저의 천성을 잃어버린 것 같아 속상했다. 의원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원래 따뜻했던 제 마음을 찾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고집이 세다는 평을 깔끔하게 불식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 신임 원내대표는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결선투표에서 김태년 의원을 제치고 새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김 의원은 49표를 얻은 반면 이 신임 원내대표는 76표를 얻었다. 이 신임 원내대표는 ‘86 운동권’(80년대 학번·60년대생) 그룹의 대표주자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이해찬 대표를 다시 모시고 일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면서 “87년 6월 항쟁 때 국민운동본부에서 함께 일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고 이해찬 대표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이 넓은 단결을 통해서 강력한 통합을 이루고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열심히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어비스’ 박보영X안효섭, ‘김사랑 살인범’ 찾기 공조 “꼭 잡을 거야”

    ‘어비스’ 박보영X안효섭, ‘김사랑 살인범’ 찾기 공조 “꼭 잡을 거야”

    tvN ‘어비스’ 박보영X안효섭이 박보영(김사랑) 살인범을 잡기 위해 본격적인 공조에 나섰다. 특히 안효섭이 영혼 소생 구슬 ‘어비스’로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 이성재를 살리고 이성재가 60대 노인 비주얼로 부활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안방극장에 소름 돋는 충격을 선사했다. 7일 방송된 반전 비주얼 판타지 ‘어비스:영혼 소생 구슬’(연출 유제원, 극본 문수연, 기획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네오엔터테인먼트) 2화에서는 고세연(박보영 분)-차민(안효섭 분)이 ‘고세연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그려졌다. 고세연은 자신이 살해당한 뒤 영혼의 모습으로 새롭게 부활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후 고세연은 차민과 함께 자신의 무덤 앞에서 “기다려. 내가 너 죽인 자식 꼭 잡을 거야”라고 비장한 각오를 다져 앞으로 펼쳐질 두 사람의 파란만장한 죽음 추적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그런 가운데 고세연-차민은 고세연이 살해당했던 기억을 토대로 한 살인범 찾기에 앞서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두 사람이 영혼의 모습으로 부활하게 되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무국적 무호적 신분이 된 것. 이에 고세연은 검사의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해 차민의 명품 시계, 지갑, 구두를 전당포에 팔아 급전을 마련하고 노숙자에게 얻은 정보로 대포폰 2개를 개설했으며 유통기한 지난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등 고세연-차민의 웃픈 생존법이 시청자들에게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했다. 특히 자신의 현재 모습이 그가 살아생전 제일 꺼려했던 선배 검사 이미도와 도플갱어처럼 똑같다는 것을 깨닫는 고세연의 모습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 고세연은 자신의 비주얼을 활용, 이미도로 신분을 위장하고 급기야 이미도의 전 남친이자 강력계 형사 박동철(이시언 분)에게 접근하는 등 긴장감 넘치는 롤러코스터 전개가 몰입도를 폭발시켰다. 이와 함께 고세연-차민은 편의점 앞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에서 고세연 사망 추정 시간에 포착된 차량 소유주가 엄산동 살인 사건의 유족 박기만(이철민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두 사람은 박동철에게 얻은 주소로 박기만의 자택을 찾았고 그 곳에서 두 눈을 휘둥그래 만드는 현장을 목격했다. 바로 엄산동 살인 사건의 진범이 ‘천재 외과의사’ 오영철(이성재 분)이라는 사실과 고세연 또한 살아생전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그를 쫓고 있었던 것. 그런 가운데 ‘어비스’ 방송 말미에 담긴 충격 엔딩이 시청자를 경악하게 했다. 차민이 영혼 소생 구슬 ‘어비스’로 고세연을 부활시키기에 앞서 고세연의 집 앞에서 죽어가던 의문의 사내를 우연히 살렸는데 그가 바로 살인마 오영철이었던 것. 특히 60대 노인으로 새롭게 부활한 오영철의 충격 모습과 그의 자택을 방문한 박기만의 모습이 동시에 그려져 향후 전개에 궁금증이 증폭된다. 이처럼 ‘어비스’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폭발적인 긴장감으로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복합 장르물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20년지기 절친’ 박보영-안효섭의 현실 남사친 여사친 코믹 케미와 고세연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 박보영의 팔색조 연기력이 단 1초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자아내며 시청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어비스’ 2화 시청률은 케이블, 위성, IPTV 통합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 평균 3.7%, 최고 4.4%를 기록했다. tvN 타깃 시청층인 2049 시청률은 평균 2.3%, 최고 2.8%를 기록하며 지상파 포함 전 채널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모든 예측을 과감하게 벗어나는 흡입력 넘치는 전개를 이어가고 있는 ‘어비스’ 2화에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각종 커뮤니티 및 SNS에서는 “박보영 검사짬바! 대범해”, “남여주 핑퐁 좋네 오늘 재밌어”, “박보영안효섭 같이 있을때 존잼”, “구슬이들 너무 좋다”, “오늘 존잼이라 시간순삭” 등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tvN 월화드라마 ‘어비스’는 ’영혼 소생 구슬’ 어비스를 통해 생전과 180도 다른 ‘반전 비주얼’로 부활한 두 남녀가 자신을 죽인 살인자를 쫓는 반전 비주얼 판타지. ‘어비스’는 매주 월화 밤 9시 30분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나폴레옹과 이집트학(하)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나폴레옹과 이집트학(하)

    본인 스스로가 국립학술원의 기계분과 위원이기도 했던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이 갖는 학술적 성격에 대해서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원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술 조사를 위한 준비도 잊지 않았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립인쇄소에 인쇄인력과 인쇄기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당시에는 로마에 파견을 나가 있었고, 이후 원정대의 학술팀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는 수학자 가스파르 몽주에게 라틴어, 아랍어, 그리스어, 시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의 활자를 이집트 현지에서 인쇄할 수 있도록 바티칸에서 출판사와 인쇄소를 섭외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나폴레옹이 이끌었던 이집트 원정이 군사 원정인지 아니면 학술 탐사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사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 이집트 원정을 후자라고 평가하는 쪽이 오히려 나폴레옹의 면을 세워 주는 것이다. 그만큼 이집트 원정의 군사적·정치적 성과는 별 볼 일 없었다. 프랑스군은 계속되는 영국군과 터키군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별 성과 없이 1801년 이집트에 도착한 지 38개월 만에 3분의1로 줄어든 병력으로 이집트에서 철수한다. 그러나 이 원정은 학술적으로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프랑스로 돌아간 원정대의 민간인 전문가들은 1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이집트에서 조사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바로 ‘이집트지’(Description de l’Egypte)다. 풍부한 내용과 아름다운 삽화로 가득 찬 이 백과사전 스타일의 문헌은 유럽 지식인 사회에 ‘이집트 열풍’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때 만들어진 고대 이집트에 대한 열기는 이집트학을 하나의 학문 분과로 자리잡게 하는 배경이 된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군이 원정 과정 중 발견한 로제타 스톤은 비록 발견 직후 영국군에 빼앗기기는 했으나, 1822년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 최초로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한 중요한 단초가 됐다. 이집트 원정 과정 중에 이루어진 프랑스의 학술 활동에 대해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렇게 평한다. “동양을 자신들의 편의에 끼워 맞추고 공포심을 조장하여 자신들의 우월성을 확인하려고 했던 서구의 이데올로기적 시도.” 사이드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서구에 대한 적의를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후 19세기와 20세기 동안에 서구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을 다루던 방식을 염두에 둔다면 사이드의 평은 분명히 타당한 면이 있다. 특히 피식민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사이드의 이 평은 쉽게 공감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원정을 긍정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현대 이집트인에 의한 긍정적인 평가다. 대표적 예가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가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하며 1962년에 발표한 ‘통일 아랍공화국 헌장’ 내용이다. 헌장은 프랑스 원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프랑스의 이집트 원정은 당시 이집트 국민의 혁명적 에너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원정은 이집트와 아랍문명으로부터 빌려가 유럽 문명이 완성시킨 현대 과학의 다양한 면을 다시금 이집트에 가져다주었다. 또한 이집트의 현재에 대해 연구하고, 고대 역사의 비밀을 발견해 낸 대가들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아랍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헌장답게 여기에는 이집트와 아랍문명에 대한 예찬도 들어가 있지만, 프랑스의 원정이 사실은 이집트 침략 전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면 나폴레옹이 주도한 프랑스의 이집트 원정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 오늘날 ‘이집트학’이라 불리는 ‘현대인들의 고대 이집트에 대한 열정’의 시발점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있었다.
  • ‘신상 여행지’ 떴다… 어머, 여긴 꼭 가야 돼!

    ‘신상 여행지’ 떴다… 어머, 여긴 꼭 가야 돼!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전국 방방곡곡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질 요즘 남들보다 한발 먼저 새롭게 문을 연 관광지를 방문해 보면 어떨까. 한국관광공사가 ‘신상 여행지’라는 테마로 5월 여행지를 추천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① 서울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용산구청)이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 3월 새롭게 태어났다. 녹사평역 지하 5층 승강장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는 동안 지하 미술관이 열린다. 스크린도어가 열리면 김원진 작가의 ‘깊이의 동굴-순간의 연대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기억을 지층에 비유해 시간에 따라 변하는 사유를 시각화했다고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4층으로 올라가 본다. 천장에서 치렁치렁 내려온 조형물이 보인다. 조소희 작가의 ‘녹사평 여기…’다. 알루미늄 선을 코바늘뜨기해 만든 작품으로 지하 공간이 따뜻하게 느껴지게 한다. 돔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을 활용해 만든 유리 나루세와 준 이노쿠마 작가의 ‘댄스 오브 라이트’는 이곳의 하이라이트다. 지하 공간에 펼쳐지는 풍성한 빛 한가운데를 에스컬레이터가 유유히 가르는 모습이 장관이다. 용산구 문화체육과 (02)2199-7252.② 인천 중구생활사전시관 1978년 철거된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 대불호텔이 지난 4월 40년 만에 중구생활사전시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대불호텔의 모습을 재현해 꾸민 전시관은 호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1관, 1960~70년대 인천의 생활사를 체험할 수 있는 2관으로 구성됐다. 대불호텔의 흥망성쇠는 130여년 전의 개항장 인천과 많이 닮았다. 1888년 제물포항(인천항)에서 멀지 않은 일본 조계지의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에 대불호텔이 들어섰다. 한국어·일본어는 물론 영어에도 능통한 종업원의 맞춤 서비스에 외국인 사이에서 명성을 얻었다. 개항장역사문화의거리 초입에 자리한 전시관을 시작으로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인천개항박물관이 나란히 서 있어 함께 돌아보기 좋다. 멀지 않은 신포국제시장에 들러 닭강정을 맛보면 여행이 더 맛있어진다. 중구생활사전시관 (032)766-2202. ③ 강원 고성통일전망타워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평화관광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가운데 고성통일전망타워가 지난해 12월 개관했다. 1984년부터 자리를 지킨 통일전망대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서 북녘을 조망할 수 있다. 7번 국도를 따라 북쪽 끝까지 달리다가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 신고 절차를 위해 멈춘다. 출입신청서를 작성하고 간단한 안보교육을 받은 뒤 제진검문소로 이동해 출입신청서를 제출한다. 통일전망타워는 34m 높이에 비무장지대(DMZ)의 ‘D’자를 형상화한 모양으로 지어졌다. 1층은 안내데스크와 특산품 홍보장, 2층은 전망교육실과 통일홍보관, 3층은 전망대다. 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말뚝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국군 초소와 북한군 초소가 희미하게 보인다. 금강산 관광객을 실어 나르던 도로 뒤로는 금강산 신선대, 옥녀봉 등이 장관을 이룬다. 고성군 관광문화과 (033)680-3361~3.④ 충북 제천 청풍호반케이블카 ‘육지 속 바다’라 불리는 청풍호는 충주·제천·단양에 걸쳐 있는데 충주에서는 충주호로 부른다. 이곳에 지난 3월 케이블카가 운행을 시작했다. 산과 호수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케이블카다. 일반 캐빈 33대와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 캐빈 10대가 시간당 1500명을 실어 나른다. 일반 캐빈도 스릴 있지만 크리스털 캐빈은 아찔하기까지 하다. 물태리에서 출발한 케이블카는 청풍호 한가운데 우뚝 솟은 비봉산 정상까지 9분 만에 올라간다. 정상에 오르면 청풍호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태리역으로 다시 내려와 케이블카와 같은 날 개장한 시네마360을 둘러봐도 좋다. 드론으로 제천 풍경을 촬영한 ‘공중 산책: 날아서 여행하는 청풍명월 제천’ 등이 상영 중이다. 케이블카 탑승권을 소지하고 의림지역사박물관에 가면 관람료가 무료다. 청풍호반케이블카 (043)643-7301.⑤ 전남 강진 사의재저잣거리 다산 정약용이 귀양 와 처음 머문 사의재 주변에 저잣거리가 조성된 데 이어 ‘조만간프로젝트’가 더해지면서 강진에 신바람이 불고 있다. ‘조선을 만난 시간’의 줄임말인 ‘조만간’은 강진의 역사와 인물을 재현하는 문화관광 프로젝트다. 아마추어 배우들이 신나는 마당극을 공연한다. 주모가 다산에게 차려 주던 아욱국 등 지역 먹거리, 초의선사와 메롱무당, 건달 형제 등 흥미진진한 캐릭터가 보여 주는 조선시대 재현 코너도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이 코너는 매 주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하루 2~3회 공연하는 마당극은 공연시간이 변경될 수 있으니 강진군문화관광재단에 문의하고 가면 좋다. 사의재저잣거리 인근에는 김영랑 시인의 생가가 있다. 생가를 둘러보고 생가 뒤에 조성된 세계모란공원을 산책하면 자연스럽게 시심이 일어난다. 강진군 관광과 (061)430-3114.⑥ 경북 문경에코랄라 아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배울 수 있는 이색여행지 문경에코랄라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기존 문경석탄박물관과 가은오픈세트장이 통합했고 여기에 에코타운과 자이언트포레스트 시설 등이 더해져 복합생태문화테마파크로 업그레이드됐다. 에코타운은 백두대간 생태전시관인 에코서클, 특수촬영과 영상제작 체험관인 에코스튜디오, 첨단 농업기술을 볼 수 있는 에코팜으로 나뉜다. 에코서클에서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백두대간을 잇는 산과 강, 지질구조에 대해 배우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에코스튜디오에서는 시나리오 선정부터 촬영, 편집까지 자신만의 영상물을 만들 수 있다. 날씨가 좋을 때면 야외 놀이터인 자이언트포레스트가 가장 붐빈다. 거인광장, 종이배 연못, 신기한 수도꼭지 등 독특한 놀이 시설이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문경에코랄라 (054)572-6854.
  • 전후세대 첫 일왕 나루히토 “세계평화 진심으로 희망”

    전후세대 첫 일왕 나루히토 “세계평화 진심으로 희망”

    왕가 상징물인 ‘삼종신기’ 넘겨받아 文대통령 “평화행보 이어가길” 축전“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 그리고 세계 평화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전쟁으로 점철된 근대 이후 일본에서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첫 번째 전후세대 일왕 나루히토(59)는 1일 즉위 일성으로 세계 평화를 말했다. ‘레이와’(令和)를 새 연호로 선택한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도쿄 지요다 왕궁 내 영빈관인 ‘마쓰노마’에서 즉위 의식을 가졌다. 의식은 청동검과 청동거울, 곱은 옥 등 ‘삼종신기’로 불리는 일본 왕가의 상징물을 넘겨받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어 오전 11시 10분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3부 요인과 지방자치단체장 등 300여명과 상견례를 갖고 즉위의 변을 밝혔다. 그는 “항상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에 다가서며, 헌법에 따라 일본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을 서약한다”고 말했다. 아베 정권이 ‘자위대 명기’를 규정한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첫 발언에 포함될지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헌법 수호’는 언급되지 않았다. 아버지 아키히토는 1989년 1월 9일 즉위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헌법을 지키고 평화와 복지 증진을 희망한다”고 호헌 의지를 분명히 밝혔었다. 나루히토는 그동안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헌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아베 총리는 이날 국민대표로 읽은 인사말을 통해 “평화롭고 희망이 넘쳐나며, 자랑스러운 일본의 빛나는 미래와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함께하는 가운데 문화가 피어나는 시대를 만들어 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1960년 2월생인 나루히토는 이날 59세 2개월로 역대 두 번째 고령 즉위를 기록했다. 고대 나라시대에 60세 11개월로 즉위했던 49대 고닌(재위 770∼781년) 이후 약 1250년 만에 가장 늦은 나이의 즉위다. 역대 세 번째는 아버지 아키히토(1989년 즉위 당시 55세)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루히토 일왕에게 축전을 보내 축하의 뜻을 전했다. 외교부는 “문 대통령은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퇴위한 아키히토 일왕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평화를 위한 굳건한 행보를 이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새로운 ‘레이와’ 시대를 맞이해 레이와가 의미하는 ‘아름다운 조화’가 한국과 일본, 동북아 및 전 세계에서도 이뤄지기를 기원한다”고 축전을 보냈다. 문 의장은 즉위 이후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하기를 기대한다며 나루히토 일왕의 초청 의사도 밝혔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서울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기고] 아동보호, 지자체가 나서야/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고] 아동보호, 지자체가 나서야/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동은 우리의 미래라고 하지만 그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고질적인 문제는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우선 수시로 발생한 문제에 대한 땜질식 처방으로 만들어져 ‘분절적’이다. 그리고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가복지보다는 ‘민간에 의존’한 복지 형태가 지배적이다. 아동정책과 아동보호 분야는 이러한 문제가 심각하게 지속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아동은 마지막 식민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아동에 대한 국가 책임을 확대한다고 한다. 그동안 민간에 의존해 왔던 취약아동 보호에 대한 공공성도 강화한다. 오는 7월에는 그동안 분절적으로 이루어져 온 아동보호 관련 중앙 기관들을 통합한 ‘아동권리보장원’도 설립된다. 이를 통해 아동복지 전달체계 및 정책 총괄 지원, 사업평가, 아동 중심의 이력관리 전산시스템 관리 등 중앙의 역할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쁘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 역할이 빛을 발하려면 중앙의 행정조직 설립만이 아니라 보호자가 없는 아동들에게 보호자의 역할을 대신 해 줄 실질적인 ‘사회적 부모’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사회적 부모는 어떤 이해관계에도 구애받음 없이 오직 ‘아동의 최선의 이익’만을 고려해야 한다. 이 역할을 누가 수행할 수 있을까. 지자체가 보다 책임의식을 갖고 공적 보호체계를 확충해야 하고 그 체계 내에 전문 인력들이 포진돼야 한다. 지자체가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 지자체는 ‘원가정 보호 우선, 아동의 최선의 이익 고려’의 원칙을 명확히 수립하고 모든 요보호아동을 직접 챙겨야 한다. 또한 아동이 오랜 기간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도록 지자체 아동복지공무원이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전문직공무원’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동정책 예산의 획기적인 증가가 필요하다. 이제 말만 국가 책임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력과 용기를 주지 않는다면 아동정책으로서의 존재가치가 떨어진다. 어린 왕자의 한 구절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른들은 누구나 아동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우리 사회에 이를 기억하는 어른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 남편 나루히토의 일왕 즉위를 참관 못한 왕비… 교복 차림의 공주

    남편 나루히토의 일왕 즉위를 참관 못한 왕비… 교복 차림의 공주

    왕위 계승서열 2위 왕자, ‘미성년자’여서 불참‘성인 남성 왕족만 참석한다’는 왕실전범 규정 ‘여성 덴노 도입 논란 피하려는 의도’ 분석도‘레이와’(令和)’를 새로운 연호로 채택한 나루히토(德仁·59) 새 일왕이 1일 오전 즉위했지만 그의 즉위 모습을 부인 마사코(雅子·55) 새 왕비와 외동딸 아이코(愛子·18) 공주는 직접 지켜보지 못했다. 성인 남성 왕족만 참석한다는 일본 왕실의 전범에 따른 것으로, 여성은 일본 왕이 될 수도 없게 돼 있다. 왕위 계승 서열 2위도 불참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나루히토 새 일왕은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도쿄에 있는 거처 고쿄(皇居) 내 접견실인 마쓰노마(松の間)에서 개최된 승계의식인 ‘겐지토 쇼케이노 기’에서 일본 왕실의 상징물인 삼종신기(三種神器) 등을 넘겨 받았다. 의식은 총 7분여에 걸쳐 진행됐다.나루히토 일왕은 연미복 차림으로 연단에 서서 삼종신기 가운데 청동검과 굽은 구슬, 그리고 국가의 상징인 국새와 일왕의 도장인 옥새가 인계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굽은구슬만 원래 물건이고, 검(劍)은 대체품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검은 나고야시의 아쓰타(熱田)신궁에, 이날 의식에 등장하지 않은 거울은 미에(三重)현의 이세(伊勢)신궁에 보관돼 있다. 연단 양쪽 옆에는 나루히토 일왕의 작은아버지이이자 왕위 계승서열 3위 마사히토(正仁·83)와 계승서열 1순위인 왕세제가 된 후미히토(文仁·53)가 그리고 연단을 마주본 자리에는 아베 신조총리(安倍晋三) 등 각료가 참석했다.  이같은 모습을 부인인 마사코 왕비와 딸인 아이코 공주는 보이지 않았다. ‘왕위 계승 자격을 갖춘 성인 남성 왕족만 참석한다’는 전례가 있어서다. 후미히토의 아들이자 왕위계승 서열 2위인 히사히토(悠仁·13)는 미성년이어서 불참했다. 그동안 이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나루히토 일왕이 즉위 후 첫 공개발언을 한 자리에서 “헌법에 따라 일본 국가 및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서약한다”면서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 그리고 세계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왕비도 참석했다. 교복 차림의 아이코 공주의 모습이 사진으로 포착됐다. 아이코 공주는 전날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식에도 같은 옷차림으로 참석했다. 여성 왕족 참여가 배제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른바 ‘여성 덴노(天皇)제’ 도입 논란을 피하고자 하는 보수 정부의 생각이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일본 왕실전범은 남자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개정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남성만 왕이 된다는 왕실 전범에 따라 마사코 왕비는 왕세자빈 시절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시달렸다. 마사코 왕비는 1993년 결혼 이후 2001년 딸 아이코 공주를 낳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했다. 이후 ‘아들 압박’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해져 2006년 궁내청은 그가 ‘적응 장애’를 앓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즉위한 나루히토 새 일왕에게 축하의 뜻을 전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외교부는 “문 대통령은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를 축하하고, 퇴위한 아키히토 천황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평화를 위한 굳건한 행보를 이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나루히토 천황이 한일관계의 우호적 발전을 위해 큰 관심과 애정을 가져줄 것을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고 외교부는 덧붙였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열린세상] 한반도의 길과 신한반도 체제/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열린세상] 한반도의 길과 신한반도 체제/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2014년 여름 이름도 생소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도착해 예상치 못한 행사 인파 속에 갇힌 적이 있다. 가이드로부터 ‘발트의 길’이란 행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 감동과 탄식을 쏟았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탈린에 도착한 8월 23일은 1939년 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비밀리에 ‘독소 불가침 조약’이 맺어진 날이다. 이 조약으로 인해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소련에 편입됐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89년 8월 23일 세 나라의 국민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거쳐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이르는 600㎞ 넘는 도로로 몰려나와 손에 손을 잡고 독립과 자유를 외쳤다. 당시 3국의 총인구 600여만명 중 200만명이 거리에 나와 손을 잡았다. 결국 1990년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1991년에는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잃어버렸던 나라를 되찾은 것이다. 이 사건은 인간이 만든 가장 긴 띠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독소 불가침 조약이 맺어진 지 70년 그리고 인간띠를 만든 지 20년이 지난 2009년에는 ‘발트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는 30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반도도 발트 3국처럼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졌다. 분단의 역사는 이미 19세기 중엽부터 한반도가 강대국들 간의 충돌과 대립의 공간이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한반도는 열강의 침탈과 일제 강점, 전쟁과 분단, 그리고 냉전을 오랜 기간 타자에 의해 경험하고 강요당한 고난의 산물이자 집합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스스로 이 땅의 소중함을 잊고 한반도가 중심이 아닌 주변부라는 지정학적 편견과 지리적 숙명성에 매몰돼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 본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은 지정학적 전략을 고수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 왔다.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 미래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강대국 손에 달려 있다는 우려와 서글픔이 여전하다. 한반도 미래를 제약하는 미중을 비롯한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를 극복하려면 발트 3국이 함께 손을 잡은 것처럼 무엇보다 분단을 넘어 남북이 손을 잡고 중심이 돼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사람이 중심인 새로운 한반도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2019년은 3ㆍ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로 ‘신(新)한반도 체제’를 제시했다. 지금까지 제시한 다양한 정책을 포괄해 새로운 100년을 통해 만들고 지속해 갈 ‘평화·번영의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을 제시한 국가 통치철학이자 국가 비전의 최상위 개념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신한반도 체제’는 분단 체제를 해체하고 남이 아닌 우리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고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한반도의 길임에는 분명하다. 27일은 판문점 선언 1주년 되는 날이다. 이날 인천 강화에서 강원 고성까지 비무장지대(DMZ) 인근 500㎞를 인간띠로 잇는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또 고성 지역의 비무장지대(DMZ) 내 평화 둘레길이 열려 일반 국민에게 개방된다. 비록 남북이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작은 발걸음을 통해 70년 동안 철조망에 갇힌 분단의 공간이자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로 남아 있는 소외된 접경지역 DMZ와 그 인근이 개방된 통합의 공간이자 평화의 성지로 탈바꿈하길 기대해 본다. 남북의 미래이자 희망인 소년 소녀가 판문점에서 손을 이어 잡고 부산에서 신의주, 한라에서 백두까지 남북이 함께하는 한반도의 길이 연결돼 ‘발트의 길’ 기네스 기록을 경신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 본다. 남과 북이 진정으로 두 손을 맞잡는 그날이 오면 미국도 중국도 그 어떠한 외세도 더이상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갈라 놓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어려움에도 남북이 어렵게 잡은 손을 놓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남과 북의 사람이 DMZ를 넘나들 수 있다면 앞으로의 새로운 100년으로 나아갈 신한반도 체제는 결코 한국몽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 챔프 선물 안기고… 핸드볼 여왕, 새 한계와 맞서다

    챔프 선물 안기고… 핸드볼 여왕, 새 한계와 맞서다

    7년 전부터 입단 제의 ‘파리92’ 끝내 수락 오성옥 오스트리아 진출 뒤 역대 12번째 “내가 원해 1+1년 계약… 챔스리그 진출 꿈”류은희(29·부산시설공단)는 지난 22일 끝난 2018~19 핸드볼 코리아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 최종 3차전에서 팀의 우승을 이끈 뒤 왈칵 눈물을 쏟았다. 인천시청 시절까지 합쳐 벌써 이번이 다섯 번째 챔프전 우승이라 덤덤할 법도 하지만 그래도 감정이 벅차올랐다. 동료 선수들도 “수고했다”며 류은희를 번쩍 들어 헹가래를 쳐 줬다. 올 시즌을 끝으로 유럽 리그에 진출하는 류은희의 코리아리그 마지막 경기였기에 더욱 특별했다. 대한핸드볼협회는 24일 류은희가 프랑스 여자핸드볼 1부 리그 파리92와 1+1년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연봉을 비롯한 세부 내용은 비공개다. 2010년까지 오스트리아에서 뛴 오성옥 여자청소년국가대표 감독 이후 9년 만에 한국 선수가 다시 유럽 코트에서 뛰게 된 것이다. 류은희는 유럽 무대에 진출한 역대 12번째 한국 여자 핸드볼 선수가 됐다.류은희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2012년 런던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부터 파리92 팀에서 제안이 왔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유럽에 진출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그동안은 소속팀과의 계약 기간 문제와 부상 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며 “그러던 중 다시 제안이 와서 이번에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결국 팀에서 7년을 기다려 준 셈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럽 진출과 올림픽 메달이 목표였는데 그중 하나를 이루게 됐다. 유럽 선수들과 부딪치면서 한계를 뛰어넘고 싶다”고 강조했다. 코리아리그 마지막 경기 이야기를 꺼내자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지 목소리를 떨었다. 류은희는 “부산시설공단 동료 선수들이 2차전에서 패한 뒤 ‘너랑 한 경기 더 뛰고 싶어서 진 거야’라며 농담을 했다. 동료들이 우승이라는 선물을 준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감정에 북받쳤던 것은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들이 생각나서였다”며 “우승을 하고 떠나는 것이라 너무 다행이다. 좋은 성과를 못 냈으면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류은희는 국내 여자 핸드볼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꼽힌다. 181㎝에 달하는 큰 키를 바탕으로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올 시즌에는 통산 세 번째 코리아리그 챔프전 최우수선수상(MVP)을 품에 안았다. 정규리그에서도 MVP를 받았던 류은희는 생애 최초로 통합 MVP를 완성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국내에서는 정점을 찍은 뒤 떠나는 것이지만 유럽에는 신체 조건이 더 좋은 선수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만만찮은 도전이 예상된다. 류은희는 “지금 몇 ㎏인지 밝힐 수 없지만 유럽 진출에 대비해 예전보다 몸무게를 조금 더 늘렸다”고 귀띔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요즘 류은희는 예전에 비해 다부진 체형을 자랑하고 있다. 그는 “7월 중순쯤 파리92에 합류하기 전까지 근육량을 늘리고, 안 좋은 부위는 재활도 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은희의 목표는 유럽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그는 “내가 원해서 1+1년으로 계약했다. 이 팀에서 유럽핸드볼연맹(EHF)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1년을 뛴 뒤 팀을 옮겨서라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고 싶다”며 “쉬운 길이 아니겠지만 유럽에서도 적응을 잘해 한국에 좋은 소식을 자주 전하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숨쉬기 운동만으로 혈압 떨어지고 기억력 좋아진다고?

    숨쉬기 운동만으로 혈압 떨어지고 기억력 좋아진다고?

    “너 요즘 무슨 운동해?”라고 묻는 질문에 운동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숨쉬기 운동”이라는 답을 내놓곤 한다. 그런데 최근 미국 연구진이 제대로 된 숨쉬기 운동이 혈압을 낮추고 뇌기능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 볼더대 통합생리학과 연구진은 매일 5분씩 호흡근육강화훈련(IMST)을 통해 심폐 기능을 강화시키면 혈관건강이 좋아지고 기억력도 향상된다는 연구결과를 지난 6~9일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실험생물학 2019 연례컨퍼런스’에서 발표했다. IMST는 1980년대 호흡근육이 약화돼 자가호흡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휴대용 장치인 호흡근강화장치를 통해 호흡근육을 단련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다. 마치 빨대로 힘껏 빨아들였다가 숨을 천천히 내뱉는 방식이다. 실제로 폐질환 환자에게 30분 정도씩 낮은 강도의 IMST를 실시한 결과 폐활량이 늘어난 것이 확인됐다.2016년 애리조나대 의대 연구팀 역시 수면무호흡증 환자에게 IMST를 하루 30분 이내로 IMST를 실시한 결과 코골이가 줄고 숙면을 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같은 효과들을 바탕으로 일부 사이클과 육상종목 선수들은 호흡근육훈련기를 이용하고 있으며 실제 경기능력 향상에도 도움을 받고 있다는 보고가 있기도 했다. 이에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IMST를 매일 5분씩 6주간 실시한 결과 혈압이 떨어지고 인지기능 및 기억력 테스트 점수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혈압 강하효과는 하루 30분씩 꾸준히 유산소 운동을 실시했을 때의 효과보다 더 우수한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다니엘 크레이그헤드 박사는 “호흡강화운동은 운동을 위해 따로 옷을 갈아입거나 번거로운 과정 없이 집이나 사무실 어디서든 간단히 할 수 있는 훈련이라는데 장점이 있다”라면서도 “실제 큰 부작용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심폐기능이 특히 약한 사람들은 IMST를 실시하기 전 의사의 진단이나 조언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기대 못 미치는 촛불정권…국민 통합 나서라” 민심의 쓴소리

    “기대 못 미치는 촛불정권…국민 통합 나서라” 민심의 쓴소리

    “촛불에 탈 수도 있다” “비정규직 대책을” 인도적 대북 지원·사법개혁 등 날선 지적 文 “사회 발전 위한 실용적인 사고 필요”“국민이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청와대가 약속했는데, 최근 청문회 이슈를 보면 여전히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촛불정권’이라고 하는데 이 정부가 촛불에 타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민심을 들을 필요가 있다.”(이갑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상임대표)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진보·보수 진영을 아우르는 80여개 시민단체를 청와대로 초청해 ‘쓴소리’를 들었다. 이날 행사에는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진보 진영은 물론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나라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환경과사람들, 여성단체협의회 등 보수 성향 단체와 흥사단, 소비자연맹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보수 시민단체들이 청와대에 초청된 것은 1월 시민사회계 신년회에 이어 두 번째다. 진보·보수 진영의 목소리를 골고루 정책에 반영해 사회통합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청와대 관계자는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 현장의 의견을 가감 없이 듣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두 시간가량 진행된 비공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 재벌·사법개혁부터 인도적 대북지원, 비무장지대 보존까지 건의를 쏟아냈다. 이 상임대표는 “대통령이 양보, 타협, 합의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데 다름을 인정해야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합의, 국민통합이 가능하다”고 고언했다. 문 대통령은 “보수·진보 이런 이념은 정말 필요 없는 시대가 됐다”면서 “오로지 우리 사회·국가 발전을 위한 실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엄창환 대표는 “청년 문제를 다룰 청년기본법 제정을 담당할 비서관·부서가 없어서 어떻게 진행 중인지 전해들은 바가 없다”며 “청년정책이 일자리 문제를 넘어 다음 사회를 위한 미래 정책이 돼야 하는데 행정실무 중심 논의에서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엄 대표는 비정규직 문제를 거론하며 “대통령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인천공항을 방문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울먹거려 좌중의 격려 박수를 받기도 했다. 민변 김호철 회장은 “국회의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하세월”이라고 비판한 뒤 “권력기관 개혁에 대해 대처가 부족하다. 대통령이 당정협의도 활발히 하고 야당과도 적극 소통하며 국민에 대한 홍보에도 큰 힘을 실어 달라”고 요청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법은 개혁입법의 상징과 같다”며 “패스트 트랙 협상을 더 진척시키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지금은 관계가 좋다고 믿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나”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회 통합이) 정부의 힘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협력적 국가운영 체계)를 더욱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촛불의 염원을 안고 탄생했고, 촛불혁명의 주역인 시민사회는 국정의 동반자이자 참여자”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소비자연맹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빠른 시행을 촉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하며 찍은 사진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열린세상] 저신다 아던이 일깨운 리더십의 의미/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열린세상] 저신다 아던이 일깨운 리더십의 의미/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에게 물었다. 미국이 어떤 도움을 주면 좋겠냐고. 그가 답했다. 모든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애도와 사랑을 보여 주면 좋겠다고. 뉴질랜드의 총리 저신다 아던의 얘기다.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테러 직후 트럼프와 주고받은 트위터는 아던 총리의 리더십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세계에서 가장 어린 국가 지도자인 아던 총리가 ‘최악의 테러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관용과 성숙함, 진정성, 용기 등이 세계 강대국의 리더십과 비교되면서 부러움까지 사고 있다. 아던 총리의 리더십에서 가장 큰 덕목은 진정성이었다. 아던 총리는 사건 직후 현장을 찾아 피해자 가족을 위로했는데, 그 표정과 옷차림과 태도는 ‘깊은 애도’ 그 자체였다. 무슬림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슬픔이 가득한 표정으로 피해자 가족을 안고 위로하는 모습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뉴질랜드 국민은 리더의 진정한 애도에 응답했다. 모스크 앞에는 애도의 꽃송이가 쌓이고, 마오리족은 애도를 위해 ‘하카’를 추었고, 피해자 가족에게 기부가 답지했다. 뉴질랜드의 진정한 애도에 특히 감동받은 것은 이슬람문화권이었다. 세계 최고층 빌딩인 아랍에미리트(UAE)의 부르즈칼리파 전면에는 아던 총리가 피해자 가족을 안고 위로하는 모습이 투영됐다. 아던 총리의 모습 위로 영어와 아랍어로 ‘평화’를 의미하는 단어가 함께 투영됐다. 가디언지는 ‘사랑은 카피할 수 없다: 전 세계 리더들이 아던 총리를 따라갈 수 없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그의 애도를 칭송했다. 리더가 국민의 아픔을 진정으로 공감하고, 애도를 다할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아던 총리는 보여 주었다. 아던 리더십의 두 번째 덕목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통합성이다. 그는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반자동 소총류의 판매 금지’를 결정했다. 의회 연설에서 아던 총리는 ‘범인이 얻고자 했던 악명을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절대 부르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도 ‘살인범이며 테러리스트인 남성의 이름을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범인의 이름 대신 ‘피해자의 이름을 부르고, 애도하고, 기억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그들이 바로 우리’라고 강조했다. 자칫 ‘무슬림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일어나거나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차단하면서 무슬림 이민자들도 뉴질랜드 국민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범인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것조차 차단하겠다는 단호함을 보였다. 아던 총리는 국민에게 희망과 낙관을 제시했다. 역사상 가장 처참한 사건이 일어난 위기 상황에서 그는 테러에 굴복하지 않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열어 가는 리더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연설에서 “우리는 안전한 곳을 찾는 이들과 피난처가 필요한 이들에게 고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2020년 무슬림 이민자 허용을 당초 1000명에서 1500명으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테러 이후 아던 총리가 보여 준 관용의 리더십에서 국민들은 희망과 낙관을 얻었다. 실제 뉴질랜드 이민 신청을 하는 무슬림의 숫자가 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던 총리가 이처럼 세계의 주목과 찬사를 받는 리더십으로 떠오르면서 영국에서는 탄식이 넘친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보좌관으로 오래 근무했고, ‘뉴마키아벨리: 현대에서 권력을 발휘하는 법’이라는 책을 쓴 조너선 파월은 아던과 메이, 두 여성 총리를 비교하는 분석 기사를 쓰기도 했다. 파월은 “두 사람이 여성이며, 소수 정당을 이끌고, 위기 상황의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면서 “아던이 국가를 통합하고, 희망을 주는 품격의 언어를 쓴다면 메이는 국가의 통합보다 당의 통합을 우선시하고, 분열을 조장하며, 단어 선택이 결코 적절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자초한다는 면에서 대조적”이라고 비교했다. 미국에서도 ‘왜 우리에게는 아던이 없는가’라는 아쉬움의 소리가 높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로 대표되는 국수주의, 보호주의 리더십에 대항하는 관용적이며 진보적인 리더십의 전형으로 아던 총리가 떠오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아던 총리가 던지는 파장의 크기가 만만치 않다.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봉오동전투의 잊혀진 영웅, 최운산 장군을 아시나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봉오동전투의 잊혀진 영웅, 최운산 장군을 아시나요”

    ‘장군의 손녀’ 최성주가 말하는 잊혀진 장군 ‘최운산’“99년 전 봉오동전투는 당시 세계 최강이라던 일본 정규군과 싸워 이긴 빛나는 전과입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파르티잔 특히 홍범도(1868~1943)·김좌진(1889~1930) 같은 영웅이 화승총으로 매복을 잘 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우리 독립군이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무기와 군장비를 잘 갖췄기 때문에 이긴 겁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우리 독립군이 어떻게 무장하고, 체계적으로 훈련받을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잊혀진 영웅 최운산(崔雲山·1885~1945) 장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당시 사진사를 동원해 전쟁 현장을 촬영했던 준비된 전쟁이었습니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이유이지요.”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최성주(61) 이사를 최근 한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다. 자신이 장군의 손녀라며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의 최운산 장군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학교에서 익히 배웠던 ‘홍범도·김좌진 장군의 영웅담’과는 결이 달랐다. 기자만 최운산 장군에 대해 모르나 싶었지만 최 이사는 “역사학자조차 최운산 장군의 역할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기에 지난 22일 서울신문사에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최 이사는 노트북을 들고와 현장에 다녀왔던 사진과 관련 서류들을 보여줬다. 이 봉오동 전투의 총사령관은 그의 형인 최진동(崔振東·1883~1941), 참모장은 최운산이고, 홍범도·김좌진은 그 부대의 연대장이었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봉오동 전투 현장이 수몰됐다고 했지만 실제 전투가 있었던 곳은 봉오저수지를 10km 정도 거슬러 올라간 곳”이라고 말했다. 최 이사는 거의 해마다 전투지를 답사한다고 했다. “봉오동전투 사진사 동원한 준비된 전쟁전투 모습 3장…임정에 보냈다는 기록만”- 봉오동전투 당시 현장을 촬영했다고?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최진동이 국민회에 보낸 공문(‘기안104’) 기록만 남아 있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은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기록을 보면 ‘봉오동전쟁 전황 촬영사진 3매, 상해를 보낼 예정. 별지 전쟁 촬영 사진 3매는 제2남지방의 박준재씨가 전쟁 당시 실시 전황을 보고 촬영한 것이다. 이것은 임시정부로 보내서 석판으로 인쇄하여 세계에 선전하려는 것인데 보신 뒤에 반송하기 바란다.’고 적혀 있습니다. 번역해서 문서로 남아있는 것을 역사자료실에서 찾은 것입니다. 최운산 장군은 당시 종군기자라고 할 수 있는 전문 사진사를 동원해 기록을 남기도록 했던 겁니다. 그만큼 준비가 철저했던 거지요.” - 당시 돈이 있다고 무기를 살 수는 없었을 겁니다. 우리 독립군이 어떻게 무장했을까. “최운산 장군이 러시아와 무역거래를 하고 있던 관계로 지속적으로 무기를 구입해 왔습니다. 그러나 뒷거래로 수천명이 무장할 무기를 확보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우리 독립군은 소련에 배속됐던 체코 군의 무기로 무장한 겁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소련은 체코군을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귀국시킵니다. 이들이 장기간에 걸쳐 러시아 대륙을 횡단해 1918년 말에 동쪽 끝에 도착합니다. 체코군은 무기는 필요 없고,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반면 우리 독립군은 대량의 무기 확보가 절실한 상태였습니다. 무기가 있어도 돈이 없었거나, 돈이 있어도 무기를 파는 데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겠지요. 하늘의 뜻인지 최운산 장군에게 재력이 있었고, 체코군은 무기보다 현금이 더 필요했지요. 체코군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산 무기로 무장했다고 하니 우리 독립군도 당시로서는 최신의 미국 무기를 갖췄다고 봅니다.” “독립군들, 귀향하는 체코군 무기로 무장독립군들의 무기 구매 대금 출처는 최운산1920년 토지 팔아 5만원 마련… 무기 매입”- 막대한 무기 구입 대금은 어디에서 나왔나. “이 부분이 만주 무장독립운동 연구에서 가장 미진한 부분입니다. 우리 집안에서는 최운산 장군이 지원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의병 수준의 독립군 통합 부대원들을 훈련하고 무장시키기 위해 1920년 1월 최운산 장군이 석현의 대규모 토지를 5만원에 팔아 그 돈으로 대한북로독군부 부대원 전원을 완전무장시켰습니다. 당시 5만원은 전투기 한대 가격이라 합니다. 최운산 장군의 부인인 김성녀(金性女·1894~1975) 할머니가 1969년 남편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하면서 밝힌 장비를 보면 ‘대포 10여문, 기관총 수십정, 수류탄 수천개, 장총 천여정, 권총 수백정, 실탄 수만 발’을 갖췄다고 합니다. 당시 훈련소 격인 사관연성소 병사 1인당 무장 상태를 보면 ‘소총 1정, 실탄 500발, 수류탄 1개, 좁쌀 6되, 짚신 1족이었다’는 일제의 밀정보고서도 있습니다.” - 최운산 장군, 얼마나 부자였나. “간도 제1의 거부였죠. 부를 일군 배경으로 중국이 토지 정리사업을 할 때 엄청난 규모의 황무지를 헐값에 불하받았습니다. 이를 조선 동포들과 함께 개간해 옥토로 바꿔 신한촌(新韓村)을 만들었습니다. 김성녀 할머니가 생전에 말씀하시길 ‘우리 땅은 사흘을 둘러봐도 다 못 본다.’고 하셨습니다. 1960년대 우리가 부산에 살 때 봉오동전투에 참전한 부하 한 사람이 국제시장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할머니께 인사와 우리에게 이야기하길 ‘최운산장군의 땅 면적이 이 부산의 6배였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콩기름공장·국수공장·주류공장·성냥공장·비누공장·과자공장을 비롯한 다수의 생필품 기업을 운영했습니다. 또 대곡상이자 축산업자로 한 번에 수백 마리의 소를 창춘이나 훈춘으로 몰고 가서 팔았답니다. 이 소떼와 곡물은 러시아 군대 식량으로 들어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게 연결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최재형(1858~1920) 선생이 소고기를 러시아군에 공급했다고 하는데 두 분의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겠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오늘날 삼성과 비견 되는 재벌이었지만 40여년에 이르는 무장 독립운동으로 그 막대한 재산을 거의 다 소진했습니다. 말년에 남은 것이라고는 살고 있던 집과 그에 딸린 수남촌 토성리 일대의 땅 뿐이었습니다.” “최운산… 간도 최고의 갑부이자 대지주부산 6배 넓이 땅 소유…무장투쟁에 소진”- 최운산 장군, 정확한 이름은 어떻게 되나. “일본군의 눈을 속이자면 변장이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여러 개를 썼습니다. 어릴 때는 최명길(崔明吉), 장작림 군벌에 있을 땐 중국식의 최풍(崔豊), 간도 제1의 거부로서 경제활동을 할 때는 최만익(崔萬益), 무장투쟁을 할 때는 최문무(崔文武)·최빈(崔斌)·최운산(崔雲山)을 사용했고, 러시아에서 무기를 밀매할 때는 최고려(崔高麗), 중국 장사꾼으로 위장해 첩보활동을 할 때 최복(崔福)을 사용했습니다. 8개의 이름을 가졌지만 모두 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복잡다단한 삶을 사셨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청년 시절, 장작림 군벌서 군사지식 습득중국군 이직시 자위대 조직…私兵 100여명” - 무법천지 만주에서 대규모 재산 지키자면 자위대가 필수였겠다. “최운산 장군은 청년 시절, 중국 동북3성 지배세력인 장작림(張作霖·1875~1928) 군벌에 들어갔습니다. 전투에서 장작림의 목숨을 구해준 적도 있어 장작림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습니다. 이때 형 최진동, 동생 최명순과 함께 3형제가 중국군에 복무하면서 군사 지식과 군조직 운영을 익히며 만주군벌과 혈맹의 관계를 맺은 겁니다. 최운산은 조선인과 중국인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양쪽의 신뢰를 다졌습니다. 그러다가 1912년 최운산 장군이 중국군을 이직하고 마적떼로부터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 보호 명목으로 자위부대 구성하겠다고 했을 때 장작림이 기꺼이 허락해준 겁니다. 그가 사병(私兵)을 모집할 때 1개 중대 이상의 병력이 따라 나왔다 합니다. 100명이 넘는 규모라 처음부터 정규 군대와 같은 편제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몇 명의 중국 사병이 포함된 이 자위부대가 대한민국 국군의 작은 씨앗일지도 모릅니다. 도독부(都督府)의 복장은 중국군과 같은 색깔이어서 잘 구별되지도 않았답니다. 독립군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1915년엔 봉오동 산중턱을 벌목하고 개간해 연병장과 막사를 지어 독립군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이때가 500명이 넘었습니다.” “3·1운동 후 열혈청년들 간도로 몰려 들어6개월 과정 군사학교인 사관연성소도 창설안무·홍범도 등과 함께 대한북로독군부 창설”- 대한북로독군부 창설 과정은.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수립되었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임시정부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운영하던 670명의 자위부대를 대한민국 첫 정식 군대 대한군무도독부(大韓軍務都督府)로 재창설합니다. 그때 중국 지방정부에서 일하고 있던 최진동, 최치홍 두 사람도 대한군무도독부에 합류합니다. 사령관인 부장(府長)에 형인 최진동 장군을 추대했습니다. 자신은 참모장으로 재정 등 군대 운영의 전반을 책임졌지요. 병참을 맡은 겁니다. 동생 최치홍도 참모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최운산 장군은 자신의 소유지인 서대파에 대한북로군정서를 창설합니다. 3·1운동 이후 간도로 들어오는 열혈 청년들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이들을 모두 받아들여 다음해에 6개월 과정의 군사학교인 사관연성소를 십리평에 설립했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북로군정서 무장과 사관연성소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군자금으로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소진하였습니다.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원년으로 선언했습니다. 일본군과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치르려면 대군단을 이루어야 한다는 판단을 한 최운산 장군은 만주의 독립군 모두에게 무기와 식량, 군복 등 군자금 일체를 제공하기로 약조하여 본격적인 대통합을 이뤄냈습니다. 북만주의 대소 독립군부대가 모두 합류했고 최종적으로 안무(1883~1924)의 국민회군,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에 최씨 형제의 군대를 합쳐 독립군 통합부대를 만들었습니다. 명칭은 大韓北路督軍府(대한북로독군부)였고, 통합 서약서에 서명 날짜는 대한민국 2년 즉 1920년 5월 19일이었습니다. 국민회, 신민회, 광복단 등을 비롯한 크고 작은 독립부대가 대한북로독군부 기치로 모였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군인의 신분으로 전투에 임했던 것입니다.” - 봉오동전투 상황은.“통합을 이룬 대한북로독군부는 두만강을 건너 일본 헌병대를 습격하는 등 국내 진공작전을 펼치며 실전 훈련을 쌓아갔습니다. 봉오동을 중심으로 통합부대 대한북로독군부의 세력이 커지고 있었기에 당시 일제는 독립군 토벌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정보전으로 이를 파악한 우리 독립군은 마을 주민을 미리 대피시키고, 연대별로 각 산에 주둔하고 산능선을 따라 참호를 파고 매복했습니다.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봉오동전투 현장에 가면 낙엽이 가득 차있는 참호를 볼 수 있습니다. 1920년 6월 7일 새벽 일본군 1개 연대 이상의 병력이 봉오동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봉오동을 둘러싼 산에서 맹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어서 봉초봉 아래에선 백병전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돌멩이만한 우박이 떨어지고 뿌연 안개가 앞을 가렸던 거죠. 우리 독립군이 짙은 안개와 비,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승세를 굳힐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후퇴하던 일본군이 지원부대 일본군을 독립군으로 오인해 서로 총격전을 가해 더욱 많은 사상자가 났습니다.” “봉오동전투서 적군 500여명 사살…기존보다 많아청산리전투는 봉오동전투 연장… 6일간 교전”- 봉오동 전투 전과는. “전과에서도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차이가 많이 납니다. 김성녀 할머니가 낸 진정서를 보면 ‘적군 사살이 500여명, 중상자 700여명, 경상자 1000여명입니다. 노획물자는 대포 4정, 기관총 수십 정, 장총 500여정, 탄환 수만 발에 수류탄 다수’라고 기록합니다. 홍범도 일지에도 일본군 사망자가 50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에는 여전히 일본군 전사 157명, 중상 200여명, 경상 100여명으로 축소돼 있습니다. 우리의 피해가 거의 없다고 했지만 독립군도 사망자 수십명과 다수의 부상자를 냈다고 김성녀 할머니가 증언합니다. 총상 환자 치료를 위한 의사가 부족해 애를 태웠고, 용정 제창병원에 의사를 보내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독립군 지도부는 주민들의 무고한 희생을 줄이고, 더 많은 독립군이 편하게 활동하기 위해 연해주로 이동할 것을 결정합니다. 4000여 명에 이른 독립군들이 부대별로 이동하던 중 일본군이 그해 10월 21일 청산리에서 따라 잡아 전투를 벌인 게 청산리전투입니다. 청산리전투는 하루 전쟁이 아니라 대한북로독군부의 여러 부대가 6일 동안 치른 전쟁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청산리전투가 별개의 전투가 아니라 봉오동전투의 연장전이라 생각합니다.” “최운산, 6차례 옥고…이름 8개 사용광복 40일 전 평양 장남 집에서 사망”- 최운산 장군, 역할에 비해 많이 잘못 알려졌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이 몇몇의 영웅담 위주로 신화화 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파르티잔들이 겨우 화승총으로, 청나라 및 러시아에도 이긴 세계 최강의 일본군에 승리했다는 것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역사학계도 언론도 처음의 잘못된 기록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류의 논문을 낸 역사학자를 직접 만나 물어보면 ‘앞선 논문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역사학계가 정말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운산 장군 그 뒤 어떻게 됐나. “연해주에서 자유시참변을 겪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무장독립운동을 계속합니다. 1930년대에도 우수리강전투, 나자구전투, 대황구전투, 도문대안전투, 안산리전투, 대전자령전투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장남 최봉우(일명 최치영·1922~2001)가 학도병 징집을 피해 고향 봉오동으로 돌아왔다가 일제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장례나 치르라며 내주었습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최봉우가 평양으로 숨어들자, 아버지 최운산장군이 아들을 보러 왔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 40일 전인 1945년 7월5일 평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최운산장군은 1924년~1926년 3년간 투옥된 것을 시작으로 1939년 일본 경찰서 습격과 군자금 모집, 창씨개명 거부 등으로 10개월간 감옥에 갇힌 것까지 일생동안 모두 6번 옥고를 치렀는데, 매번 심하게 고문을 당해 수레에 실려 나오곤 했습니다. 가족들도 그가 언제 감옥에 갔다 왔는지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유공자 인정 조건 뒷돈 요구에 주먹 날려1977년 서훈…동생 최치홍은 여태 안 돼”- 정부는 최운산 장군의 역할 일찍 인정해줬나. “1961년 1월 최운산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정부로부터 받고 총무처로 아버지 최봉우가 갔더니 담당공무원이 ‘뒷돈’을 요구하더랍니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모든 가산을 독립군 무장에 썼는데….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아버지가 그 공무원에게 주먹을 날렸습니다. 그 이후론 독립유공자 선정에 번번히 밀려났습니다. 십수년동안 미운털이 박혔던 게지요. 아버지는 생전에 ‘내가 욱하는 성질을 못 이겨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을 가렸다’며 후회하곤 했습니다. 그 후 할머니가 1969년에 진정서를 냈지만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뒤인 1977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셨습니다. 같이 독립운동한 동생 최치홍은 100년이 지난 올해까지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김성녀 할머니도 큰 역할을 했다. “저도 할아버지의 삶을 살펴보다보니 할머니의 역할이 과소평가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독립운동가를 내조한 차원을 넘어 무장 독립운동의 한 축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남편의 독립유공자 선정을 위해 낸 진정서를 보면 독립운동을 내조한 정도에서는 알 수 없는 당시 북로독군부의 조직 현황과 봉오동전투의 전과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봉오동전투를 바로 앞두고 최운산 장군이 집에 계시지 않을 때 도착한 중요한 정보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어 직접 산속의 본진으로 올라가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또한 군사들이 없을 때 집으로 쳐들어 온 마적들을 향해 직접 총을 쏘고 일꾼들을 독려해 무장 강도들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물론 주민 부녀자들을 동원해 군복제작과 세탁 등 의복을 조달하고 식사를 준비했지만, 한 끼에 3000명분의 식사를 마련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김성녀 할머니에 대해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장군의 부인 김성여도 무장독립운동 한 축무장독립운동사, 영웅담서 벗어나야 할 때”-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가 결성됐다. “우리 5남매는 만주 무장독립 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후손들의 주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사가들의 연구가 깊어지면 언젠가 역사가 바로 서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여태까지 바로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잘 못된 기록이 반복되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희가 직접 일제 문서를 찾고, 봉오동전투와 최운산 장군의 삶을 역사학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반가워하면서 학술적 재조명이 필요한 일이니 기념사업회를 설립하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셋째인 제가 60대입니다. 독립전쟁의 현장을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을 들은 마지막 세대일 것입니다. 우리 남매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고자 뜻이 맞는 분들을 중심으로 2016년 기념사업회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집안 자랑이 아니라 수많은 독립군들이 함께 지켜낸 만주의 무장독립전쟁의 진실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영웅담 위주의 독립운동사를 넘어서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이 봉오동전투 100주년이다. 계획한 행사는. “사실 최운산 장군이 잘 알려진 분이 아니라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5남매가 비용을 갹출해서 학술세미나 개최나 봉오동 답사 등 필요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손주들도 나이가 들어 경제활동에서 물러나 있으니 기념사업회 활동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이 어려워 필요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올해는 당시 독립군이 사용한 무기를 살펴보는 학술세미나를 열고 7월 5일 국립현충원에서 순국 74주기 추도식을 개최합니다. 100주년이 되는 내년엔 봉오동전투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행사와 최운산 장군을 연구한 책을 한 권 펴내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KB 수타즈’… KB스타즈, 창단 첫 통합챔피언 등극

    ‘KB 수타즈’… KB스타즈, 창단 첫 통합챔피언 등극

    여자프로농구 청주 KB 스타즈가 창단 이후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로써 사령탑에 오른 지 3년 만에 통합 우승의 영광을 만든 안덕수(45) 감독과 오랜 한을 풀어낸 박지수(21)의 시대가 열렸다. KB는 25일 용인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 2018~2019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를 73-64로 꺾으며 3전 전승으로 정상을 차지했다. 1998년 출범한 여자프로농구에서 유일하게 챔피언결정전 우승 경력이 없던 KB는 우리은행을 제치고 13년 만의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창단 후 첫 통합 챔피언까지 거머쥐었다. 그동안 정규리그 우승을 세 차례나 차지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5번이나 준우승에 머물렀던 석패의 기억도 싹 씻어냈다. 통합 우승의 주역은 안 감독과 박지수가 꼽힌다. 2016년 4월 KB의 지휘봉을 잡은 안 감독은 일본에서 농구를 하다 국내 프로농구 무대에서 무명의 선수 생활을 했다. 2000년 은퇴를 택한 그는 대학농구연맹 사무국장을 지내다 KB 감독으로 발탁됐다. 부임 첫해 박지수를 선발해 2016~2017시즌 3위로 정규리그를 마쳤고 두 번째 시즌인 2017~2018시즌 정규리그 2위로 한 계단 올라선 데 이어 통합 우승까지 일궈냈다. 특히 ‘경기 도중 하프타임에 와이셔츠를 갈아입는다’고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지휘한 안 감독의 리더십은 선수들뿐 아니라 스스로도 명장으로 성장시켰다.올 시즌 역대 최연소 최우수선수(MVP)에 이어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된 198㎝의 박지수는 이날 26득점 13리바운드로 승리를 견인하며 명실상부한 ‘농구 여제’에 올랐다. 지난해 4월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 활약했던 박지수는 이번 정규리그 득점 13.1점(10위), 11.1리바운드(3위), 1.7블록슛(2위) 등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다. 아울러 득점 1위(20.7점), 리바운드 6위(9.5개)로 종횡무진한 카일라 쏜튼과 국가대표 포워드 강아정 등도 막강 화력이 됐다. 여자 농구계는 패기의 안 감독과 갓 스무 살을 넘긴 박지수가 KB 전성기를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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