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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R로 보는 ‘기생충’ 저택·BTS 공연… 유네스코 본부 전시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 등 한류 콘텐츠를 활용한 실감 전시회가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다음달 6일부터 16일까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한국: 입체적 상상’(Korea: Cubically Imagined)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이 전시는 유엔이 지정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제 창의경제의 해’를 맞아 코로나19 이후 미래에 대한 한국의 상상력을 세계인들과 공유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유네스코 사무국 문화다양성 협약 부서가 공동 주최했다. 전시회에서는 방탄소년단의 공연과 영화 ‘기생충’의 실감 콘텐츠를 처음 공개한다.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개최한 온라인 콘서트 ‘BTS MAP OF THE SOUL ON:E’은 3면 LED 큐브 공간에 확장현실(XR)로 구현된다. 가상현실(VR) 기어를 착용한 관객들이 360도 실감 영상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영화 ‘기생충’ 역시 관객들이 저택의 거실과 지하공간, 기택의 반지하 주택 등 영화의 배경으로 들어간 것 같은 체험을 제공하는 VR 콘텐츠로 재탄생했다. 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의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하다’와 디스트릭트의 ‘Flower’, 비브스튜디오스의 ‘The Brave New World’, 태싯그룹의 ‘Morse ㅋung ㅋung’,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허수아비’, 강이연의 ‘Beyond the Scene’ 등도 선보인다. 전시는 오는 16일(현지시간) 10시부터 온라인(www.cubicallyimagined.kr)을 통해 예약할 수 있으며 전시가 끝나는 다음달 16일부터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英 거대 반려거북, 가출했지만…엉금엉금 기어가다 ‘체포’

    英 거대 반려거북, 가출했지만…엉금엉금 기어가다 ‘체포’

    영국의 한 마을 거리에서 거대한 반려 거북 한 마리가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이 목격돼 많은 주민이 깜짝 놀랐다. 8일(이하 현지시간) BBC뉴스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일 잉글랜드 서퍽주 주도 입스위치 인근 마을 케스그레이브에 있는 왓슨박사거리에서 커다란 거북을 봤다는 신고가 잇따라 접수됐다.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해당 거북을 금세 발견했지만, 덩치가 너무 커 경찰 승합차의 트렁크 대신 운전석 바로 뒤쪽 승차 공간에 이 거북을 태웠다. 거북의 무게는 60㎏에 달하고 자꾸 움직이려고 해서 남성 경찰관 세 명이 달라붙어 간신히 차안으로 옮길 수 있었다. 이들 경찰은 타이탄이라는 이름의 아프리카가시거북(학명 Centrochelys sulcata)으로 확인된 이 거북을 실종 신고를 접수한 주인 리처드 애스턴(35)의 집 정원까지 안전하게 데려갔다. 타이탄이 발견된 거리에서 해당 가정집까지 거리는 무려 1.6㎞나 떨어져 있었다. 즉 이 거북의 최고 속도가 시속 0.48㎞ 정도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북은 3, 4시간 전쯤 탈출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거북이 생활하는 정원 울타리에 부서진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애스턴은 “울타리는 뛰어넘을 수도 없다. 높이가 90㎝에 달한다”면서 “어쩌면 타이탄이 텔레포트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조로 말했다.현지 경찰은 타이탄을 발견하고 신고해준 준법 정신이 투철한 시민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하며 문제의 거북을 포획할 당시의 모습을 촬영한 증거 사진을 공식 SNS상에 공개하기도 했다.현재 타이탄은 어떤 건강 이상 상태도 보이지 않고 함께 지내는 다른 종의 거북과 함께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술카타거북으로도 불리는 아프리카가시거북은 2종의 코끼리거북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육지거북으로 알려졌다. 사진=서퍽 입스위치 경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10년치 농구 레시피…요리만 남았다

    10년치 농구 레시피…요리만 남았다

    프로농구 서울 SK 전희철(48) 감독은 ‘농구대잔치’의 마지막 세대다. 실업과 대학 14개 팀이 자웅을 겨뤘던 이 대회를 통해 ‘허동택 트리오(허재-강동희-김유택)’를 비롯해 숱한 실업·대학스타가 한국 농구 최대 중흥기를 꽃피웠다. ‘에어본’이라는 별명이 붙은 전 감독도 그 중 한 명이다. ‘에어본’은 강습 낙하 침투를 주임무로 하는 공수부대(원)을 이르는 말이다. 7일 경기 용인 SK 체육관에서 만난 전 감독은 “한 여성팬이 ‘에어 희철’이라 쓴 플래카드를 경기장에 들고 다녔다. 마이클 조던의 닉네임 ‘에어 조던’을 본 뜬 건데 이게 부르기 쉬운 세 음절의 ‘에어본’으로 바뀌었다”고 기억했다. 낙하 지형을 가리지 않는 ‘에어본’처럼 전 감독도 코트 내·외곽을 가리지 않았다. 농구대잔치 당시 경기가 뒤집힐 조짐이 보이자 혼자 드라이브인 2개와 덩크슛, 3점슛까지 연속 9점을 뽑아내 기어코 승기를 잡은 장면을 떠올리면 그가 왜 ‘에어본’인지 짐작할 수 있다. 1996년 실업팀 동양제과에 입단한 뒤 이듬해 프로농구가 출범하며 대구 동양 멤버가 된 전 감독은 2001~02시즌 팀의 첫 챔피언 등극을 이끈 뒤 전주 KCC를 거쳐 2003년 SK에 둥지를 튼다. 그러나 은퇴가 빨랐다. 그는 “허벅지 부상 때문이었다. 2~3년은 더 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코트를 떠났다. 그때 나이 서른 여섯이었다”고 돌이켰다. 전 감독은 “2군 감독에 여자팀 감독 제의까지 받았다. 그런 선택의 갈림길에 선 적이 없었다. 고민하느라 두 달 동안 세면대가 새까매질 정도로 탈모가 왔다”며 “결국 제 등번호 13번의 영구 결번을 지켜보면서 코트와 작별했다”고 말했다. ‘에어본’의 화려한 시대를 끝낸 그는 SK 전력분석관, 운영팀장 등을 맡아 코트 바깥에서 3년 가까이 서성댔다. 평생 해본적 없는 접대까지 해야했다. 전 감독은 “갑자기 이방인이 된 것 같았지만 차라리 한꺼풀 벗은 느낌이었다. 농구 선수로서 ‘나 밖에 몰랐었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그 시간이 향후 10년 지도자 경력에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2011년부터 문경은 전 감독과 함께 수석코치로 10년을 꼬박 같이 했다. 문 전 감독이 연세대라면 전 코치는 고려대 출신으로 스타일까지 다른 탓에 ‘오래 못 간다. 분명히 깨진다’는 우려가 빗발쳤다. 지금은 ‘어떻게 10년을 동거했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했다. 전 감독은 “코트 밖에서 아픈 세월을 보내고 나니 인생이란게 내가 만들어서 가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농구 인생을 억지로 만들지 말고 물처럼 흐르듯이 가라고 말한다”고 했다. 지난 시즌 팀의 부진(정규 8위)을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 탓으로 진단한 전 감독은 “수석코치의 10년 안목을 살리겠다”며 “올 시즌 목표는 일단 4강으로 잡았다. 재료가 어떤 건지 알고 레시피는 이미 나와있는 거니까 조리 과정만 남았다. 그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아기 때 쓰레기통에 버려진 제가 돈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은요”

    “아기 때 쓰레기통에 버려진 제가 돈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은요”

    미국 플로리다주의 발명가 겸 사업가, 정보통신(IT) 백만장자인 프레디 피거스(31)가 세상 누구보다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을 것이란 사실을 알아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환경 때문에 이런저런 사람이 되게 놔두지 말라”는 것이 그의 인생 조언이다. 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2014년 세상을 떠난 네이선이 친아버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자꾸 놀려댔다. ‘쓰레기 아기’ ‘버린 자식’ ‘더러운 자식’ 등이라고, 해서 프레디는 아버지에게 이유를 따졌다. 네이선은 “잘 들어.직설적으로 말할 거야. 네 친엄마가 널 버렸어. 해서 나와 베티 메이는 널 입양 위탁시설에 보내지 않고 널 입양했어. 넌 내 아들이야”라고 말했다. 신생아일 때 커다란 쓰레기 적재함에 버려졌다는 것이었다. “난 ‘OK, 난 쓰레기구나’라고 생각했다. 원치 않은 아기였구나 느꼈다. 그랬더니 양아버지는 내 어깨를 붙들고 ‘잘 들어, 네가 그 일 때문에 괴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플로리다주 북부의 8000여명이 살던 시골마을 퀸시에서 네이선은 수선 일을 했고 베티 메이는 농장 인부라 찢어지게 가난했다. 프레디가 신생아이던 1989년에 그들은 이미 50대 나이였다. 이미 많은 아이들을 위탁받아 돌보고 있었지만 프레디가 두 살 때 입양했다. 아이들이 스쿨버스에서 깡통 쓰레기를 던지며 놀려댄다는 것을 알고 양아버지가 마중나와 있어도 아이들은 부자를 함께 놀려먹었다. ‘프레디 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다닌대요’ 어쩌구 하면서. 하지만 네이선은 훌륭한 사람이었다. 늘 사람들을 돕고, 낯선 사람을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도왔다. 홈리스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주말이면 부자는 쓰레기 하치장에 가 쓸만한 것을 주웠다. 미국 속담 ‘누군가의 쓰레기는 누군가에겐 보물’을 떠올렸다. 그 때도 프레디는 컴퓨터에 꽂혀 있었다. 어느날 중고 컴퓨터 가게에서 망가진 매킨토시 컴퓨터가 눈에 확 들어왔다. 판매원을 졸라 24달러에 산 뒤 집에 가져온 날 프레디는 뛸듯이 기뻐했다. 이미 라디오, 시계, VCR 등을 분해 조립해 본 그는 고장난 컴퓨터를 끼고 지냈다. 50번 정도의 시도 끝에 컴퓨터 전원을 켜는 데 성공했다. 컴퓨터를 고쳐보니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고통 따위는 문제도 아니었다. 열두 살 때 학교 컴퓨터가 고장나면 그가 불려갔다. 방과후 프로그램을 지도하던 여교사가 퀸시 시장이 되자 아버지와 함께 시청에 와 컴퓨터를 고쳐달라고 했다. 학교를 파한 뒤 100대 가량의 컴퓨터를 고치면서 12달러의 시급을 받았다. 2년쯤 지났을 때 시의 수압 측정 시스템을 컴퓨터로 구축하는 사업을 해야 하는데 한 회사가 60만 달러를 내라고 했다. 프레디에게 해보라고 했고, 그는 아주 싼값에 정확히 요구한 것을 해냈다. 겨우 열다섯 살 때였다. 학교를 다니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들은 실망했지만 곧바로 컴퓨터 수리 일로 창업을 했다. 공교롭게도 네이선이 알츠하이머 증후군을 앓기 시작한 때였다. 한밤중에 일어나 전날 저녁에 본 영화 ‘건스모크’ 주인공 흉내를 냈다. 라이플 소총을 프레디 머리에 갖다 대고 ‘널 이 마을에서 쫓아내고 말거야’ 대사를 따라하는 것이었다. 또하나 어린 프레디가 환장할 일은 옷을 다 입고는 신발을 안 신었다고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해서 꽤나 수익을 올린 발명품을 만들게 됐다. 신발에다 모니터링 장비와 스피커를 달아 랩톱 컴퓨터에 연결해 신발 속에서 “아버지 어디 계세요”란 자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애플과 구글 맵스가 나오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 네이선의 상태가 더 나빠지자 가족들은 양로원에 보내자고 했지만 어린 시절 버려진 경험이 있는 프레디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출장을 갈 때도 양아버지를 모셔갔다. 고객을 만날 때면 자동차 뒷좌석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라디오를 켜놓고 차 문을 잠가뒀다. 한번은 고객과 상담하는데 아버지가 창문을 내리고 기어나와 상담을 끝내고 나와야 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주차장에 앉아 있었다.네이선이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을 때 프레디는 스물넷이었다. 신발 추적 장치 아이디어를 220만 달러에 팔았다. 늘 1993년식 포드 픽업트럭과 낚시 보트를 사고 싶었는데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야말로 눈을 떴다. 돈은 아무 것도 아니며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내 온힘을 다할 것이라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 그 역시 아버지처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무렵 그는 두 번째 기발한 발명품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여덟 살 때 조지아주에 있는 어머니의 삼촌 댁을 방문했을 때 경험에 착안했다. 부모가 아무리 노크해도 삼촌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어린 프레디에게 창문으로 들어가 문을 따게 했는데 그 친척은 난롯가 의자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앉아 있었다. 당뇨병을 앓던 그는 코마 상태에 빠져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그는 당뇨 환자의 혈당을 멀리 떨어진 병원 의료진이 점검해 가까운 친인척에게 찾아가게끔 경고를 보내는 시스템을 착안했다. 미국 시골에 2G나 3G 밖에 안 깔린 데다 퀸시 주민들은 전화를 걸어 인터넷을 연결하는 점을 감안해 큰 소리로 전화 벨이 울리다가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식으로 경보가 울리게 했다. 프레디는 시골의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끌어올리고 싶어 2008년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면허를 따 자신의 회사 피거스 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더 큰 규모의 통신 사업자들이 인구 1000명도 안되는 시골 지역에 투자하도록 청원했다. 무려 394회에 이르렀다. 돈을 엄청 까먹었다. 스물한 살이던 2011년 그는 미국에서 가장 젊고, 흑인으로 유일한 통신 사업자로 이름을 올렸다. 사업 초기 혼자서 모든 일을 했다. 플로리다주 북부와 조지아주 남부에 서비스를 하고 있다. 2014년에 스마트폰 제품을 내놓았는데 피거스 F1은 운전 중에 문자를 보내거나 딴청을 피우면 이를 감지해 차의 속도를 시속 10마일로 떨어뜨리는 장치다. 2019년에 출시한 피거스 F3는 충전기로부터 5m 안에만 있으면 언제든 무선으로 충전하는 칩이 내장돼 있는데 FCC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일부 블로거가 최초의 제품이 아니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6일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 “우리 목표는 정직함과 투명함을 제공하는 것이며 질 좋고 개선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양어머니 베티 메이(83)도 알츠하이머가 시작됐다. 양아들의 성취를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그가 개발한 글루코미터(glucometer)가 삼촌의 목숨을 구했을지 모르는 “뭔가 특별한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변호사 네이틀리와 2015년에 결혼해 어린 딸을 뒀다. 불우한 환경의 어린이와 가족들의 교육과 보건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재단도 운영하고 있다. 위탁 돌봄시설의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기부하는 일, 코로나19 팬데믹과 싸우는 이들에게 개인보호장구(PPE)를 기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린 딸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세상이 아무리 차갑게 보이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자신에게 일생의 롤 모델이었던 양아버지 네이선도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포토] 장미꽃 감상하는 평양 시민들

    [포토] 장미꽃 감상하는 평양 시민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6일 ‘수도의 풍치를 돋우어주는 장미꽃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평양 시내 사진 여러 장을 실었다. 신문은 “출퇴근길과 작업의 휴식참에도 활짝 피어난 장미꽃을 보며 조국에 대한 사랑과 희망찬 내일을 제 손으로 기어이 앞당겨올 일념으로 가슴을 불태우는 우리 인민”이라고 전했다. 평양 노동신문 뉴스1
  •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2>집 앞에서 놀던 꼬마, 누나와 납치돼 형제원으로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2>집 앞에서 놀던 꼬마, 누나와 납치돼 형제원으로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집 앞에서 놀던 꼬마, 누나와 함께 납치돼 형지복지원으로수용번호 ‘83-1XXX’ 하태식(48·가명)씨는 형제복지원에 두 번 입소했다. 10살 때 누나와 함께 트럭을 탄 남자들에게 납치돼 형제복지원으로 처음 보내졌다. 3년간 수용생활을 하다가 1986년 여름, 경비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아동소대 친구와 함께 담을 넘어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해 겨울 경찰 손에 이끌려 다시 형제복지원로 가게 됐다. 이듬해 형제복지원이 폐쇄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하씨는 아동소대, 작업소대, 악대소대를 옮겨다녔다. 기합과 매질은 일상이었지만, 도망쳤다 다시 붙잡혀 왔을 때 가해진 폭력은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섰다. 중대장에게 불려가 맞고, 소대장에게 불려가 다시 맞았다. 하씨와 같은 날 재입소한 30대 수용자는 집단 구타 끝에 목숨을 잃었다. 하씨는 퉁퉁 부은 몸으로 소대장이 동료의 시신을 옮기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유년 시절 4년 동안 형제복지원에서 겪은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두렵고 세상을 향한 원망은 커져만 갔다. 퇴소 후 앵벌이, 신문팔이, 봉제공장을 전전하며 평생 생활고에 시달렸다. 지금은 물류센터에서 주 50시간씩 일한다. 자신을 ‘밑바닥 삶’이라고 표현하는 하씨는 국가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아 그간의 삶을 위로받고 싶다. 아래는 하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하태식 진술 내용: 저는 하태식입니다. 1983년 5월 어느날 저녁 부산시 가야동 육교 아래에서 친누나와 놀고 있을 때 트럭에서 건장한 아저씨들이 다가와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묻기에 제가 놀라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집에 태워준다면서 강제로 차에 태웠습니다. 1.5톤 트럭 짐칸에 탔는데 냉동 탑차 같은 형태였고 밖에서 문을 잠글 수 있게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저 멀리 있던 누나가 “왜 이러세요”라고 하면서 급히 저를 차에서 내리려고 하니까 그 사람들은 누나까지 차에 밀어 넣었습니다. 저는 겁에 질려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고 누나가 항의했지만 무지막지한 욕설을 하면서 집에 보내 줄테니까 가만 있으라면서 윽박 질렀습니다. 한 10분 흘렀을까 어느 철문 앞에 섰고 내리고 보니 형제복지원이었습니다. 83-1XXX번 제 수용번호 였습니다. 다음날 저를 데리고 간 곳은 많은 2층 건물들이 아래에서 위로 줄지어 있었는데, 그중 27소대라는 2층 건물의 1층이었습니다. 그때 누나는 23소대로 끌려갔고 제가 누나랑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니까 27소대 소대장이 신고있던 고무신을 벗더니 그 고무신으로 “뺀돌뺀돌하게 생겼네”라고 하면서 제 뺨을 힘껏 내려쳤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그제서야 제가 지옥에 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 기억에 형제원은 약 3000명의 인원이 수용되어 있었고, 총 28소대까지 있는데 1소대부터 20소대 까지는 성인소대 23소대는 유아부터 십대 초반까지의 여자 아동소대, 24소대는 십대 초반의 남자 아동소대, 25·26소대는 여자 성인소대, 그리고 27·28소대는 십대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남자 아동소대였습니다. 한 소대에 약 60~70명이 있었는데 군대 체제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소대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소대장, 그 밑에 분대장, 서무가 있었고 28개 소대를 총괄하는 사람은 중대장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생활은 기합과 빠따로 시작하고 끝났습니다. 제식훈련과 군가를 배웠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무수한 폭행에 시달렸으며 소대장 기분에 따라 아무 이유없이 폭행 당하는 일은 너무 많았습니다. 한 번은 소대장이 저를 찾았는데 약간 늦었다는 이유로 제 배를 걷어찼습니다. 저는 넘어지면서 제 얼굴이 철제 2층 침대 아래 모서리에 부딪첬는데 오른쪽 눈가 옆이 찢어져 중대장 사무실이 있는 선도부와 식당 사이에 있는 의무실에서 눈옆을 열바늘 가량 꿰맸습니다. 그 상처가 아직도 제 얼굴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욕설과 구타 당하는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아도 늘 일상적인 일이었고 당연한 일인줄 알았습니다. 84년에는 형제원 자체 내에 학교가 세워졌는데 당시 저는 12살로 초등학교 4학년으로 다녔습니다. 3·4학년은 27소대, 5·6학년은 28소대 였는데 저는 1년이 지나 다음해 5학년이 되면서 28소대로 갔습니다. 개눈깔 소대장, 매일 원산폭격·한강철교·히로시마 고문 28소대 소대장은 악명이 높았습니다. 원산폭격·한강철교 등 다양한 기합이 있었는데 그중 ‘히로시마’라는 기합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2단 철제 침대에 거꾸로 물구나무 서서 발가락 끝을 철제에 걸고 두손은 바닥을 짚고 있는 것입니다. 10분~20분 기합받고 있으면 힘이 빠져 넘어지는데 그럴 때마다 소대장에게 엄청난 구타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단체기합을 받거나 낮에 기합을 받으면 한시간 정도 지나면 기합을 끝내기도 했습니다. 저녁에 1~2명이 개인기합을 받을때가 있습니다. 이때 소대장은 제게 기합을 주고 자기는 침대에서 쉬다가 잠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끝없이 기합을 받아야 했는데 너무 힘들어 견딜수 없을 때면 저는 고육책으로 제 자신의 코를 주먹으로 수없이 내려쳤습니다. 그럼 코피가 났고 제가 큰소리로 울면 그제서야 잠에서 깬 소대장이 기합을 끝냈습니다.그 소대장 이름은 전OO이었고 한쪽 눈에 가짜 눈알을 박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 사람을 ‘개눈깔’이라 불렀습니다. 욕설과 구타, 교회당 공사 같은 수많은 작업 등등 힘들고 고통스런 일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일일이 다 진술할 수 있을지 난감합니다. 1년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날은 렉스 박사가 오는 날입니다. 형제원의 어린 원생들은 외국의 독지가들과 자매결연 같은 것을 맺었고, 저를 포함한 어린이들을 찍은 사진과 자필 편지 등을 써서 미국으로 보내면 그쪽에서 각각 양부모로 결연을 맺은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내주는 것인데요. 제 기억에 렉스 박사는 그 대표였고 1년에 한번 형제원을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렉스 박사가 오는 날 아동소대 아이들은 모두 새 옷을 지급받아서 입고, 형제복지원 입구에서 렉스 박사를 환영했습니다. 행사가 끝나면 새 옷은 모두 반납해야 했고, 다시금 누더기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그래도 맛난 과자를 먹을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매결연을 하면 주기적으로 편지와 카드를 손글씨, 그림으로 보내는데 86년 여름에 몇천장의 그림카드가 필요해 원내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저와 정기훈(가명), 또다른 형, 셋이 뽑혀 병동 밑에 어느 밀실에서 셋이서 카드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리를 뽑은 사람은 유OO씨로 수용자가 아닌 사회인이었는데 형제복지원 교회에 유년부 선생으로 일하고 있었고 중대장과 결혼했습니다. 중대장 부인의 위치에 있기에 우리는 병동 아래에 있는 어느 실내에서 맛있는 간식도 먹고, 다른 원생들과 다르게 수백장의 그림을 그리면서 편하게 지낼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병동과 식당, 아동소대 가운데에는 작은 운동장이 하나 있는데 그 운동장 위 한쪽에 개금분교가 자리 했습니다. 그 주위로 하얀 담벼락이 둘러져 있었고 담 주위는 온통 산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모든 담벼락 위엔 항상 경비가 몽둥이를 들고 촘촘히 지키고 있었는데 물론 그 경비들도 소대장들과 마찬가지로 수용자였습니다. 개금분교 2층에 있는 교무실 위와 담벼락 위의 사이는 약 2미터 정도였는데 형제원에서 유일하게 담벼락과 가까이 있는 건물이었고 평소에 그곳은 항상 경비들이 보초를 서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기훈과 그림을 그리다 잠시 쉬러 나와 운동장에 앉아 있었는데 담벼락 위에 아무리 살펴봐도 경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같은 반 친구인 김OO과 정기훈, 저 이렇게 셋이 있었는데 누군가 “저 교무실 건물타고 올라가 도망가자”고 말했습니다. 물론 장난이었고 다들 좋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정기훈이 먼저 1층 창문 창살을 타고 정말로 건물을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김OO은 놀랐습니다. 그러나 저도 얼떨결에 정기훈을 따라 창살을 타고 1층에서 2층, 2층에서 건물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김OO은 겁을 먹고 아래서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교무실 옥상과 담벼락 사이는 2m 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정기훈이 먼저 뛰어넘었고, 저도 떨어지면 죽을수도 있겠다 싶어 두려웠지만 곧 뒤따랐습니다. 처음엔 장난 반 진심 반이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현실이 돼버린 것이었습니다. 진짜로 마음먹고 계획을 짰으면 후환이 두려워 절대 불가능했을 그 일이 무엇에 홀린듯 실제 상황이 돼버린 것입니다. 목숨 걸고 탈출했지만…경찰은 다시 지옥으로 끌고갔다 간신히 담을 넘고서는 죽어라 달렸습니다. 앞에서 정기훈은 제 이름을 부르며 따라오라 하면서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달렸는데 눈앞에 큰 철조망이 산 전체에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철조망을 넘고나서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구나”라며 정기훈과 저는 기쁨에 들떠있을 찰나 저쪽에서 군인둘이 총을 들고 다가왔습니다. 형제원 철조망 밖은 바로 군부대였습니다. 군인들에게 잡혀 사색이 된 우리는 그곳의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에게 보내졌는데 우리는 그 사람에게 절대 형제원으로 돌려보내지 말아달라 사정했고 다행히도 그 분은 형제원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회로 나온 때가 1986년 7월 여름이었습니다. 갈 곳이 없고 막막했던 정기훈과 저는 신문팔이를 했습니다. 부산 양정4동에 있는 조그만 방에서 13~18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10여명 함께 지내며 한국일보를 길거리와 버스 안에서 팔았습니다. 신문 배달이 아닌 판매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버스 안에서 신문을 팔면 당가나 찌라시를 돌리곤 했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항상 대선소주나 진로소주를 한 병 가득 꼴깍꼴깍 마시고 버스를 탔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신문사 소장님이 양정에 있는 BBS 학교에 보내준다고 해 숙식제공을 받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해 11월 아침에 갑자기 순경 몇 명이 자고 있던 방에 들이닥처서 저희를 양정4동 파출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저와 정기훈, 그리고 2명 더 총 4명이 자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모여 산다는 신고를 받고 왔다고 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저희 4명을 조사하더니 조금 있다 승용차에 태웠습니다. “어디 갈 곳이 있다”며 저희를 태웠는데 처음엔 얘기를 안하더니 한참을 달린 후 차안에서 형제원으로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완강히 저항했지만 양정에서 형제원이 있는 주례는 차로 불과 20분도 되지 않는 거리였고 저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형제원에서 도망 나왔기에 다시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눈에 선명했던 것입니다. 저는 달리는 차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망설였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형제원에 점점 가까워 졌을 때 울며 불며 순경에게 사정했으나 소용 없었습니다. 결국 4개월 만에 다시 형제원에 잡혀 들어갔는데 정기훈과 저는 중대장 사무실에서 빠따를 수없이 맞고 또다른 곳에서 소대장들에게 죽도록 맞았습니다. 우리는 “나는 도망갔다 잡혀 왔습니다”라는 빨간 글씨가 적힌 마대자루를 입고 식당 앞에 온종일 서 있어야 했습니다. 당시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몇백명씩 소대별로 줄서서 기다렸는데 한두시간씩 입구 앞에서 기다려야 했기에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볼 수밖에 없었고 마치 북한에서 인민재판 하는거랑 비슷했습니다. 그때 우리 말고 20살 정도 되는 형도 도망갔다 잡혀왔는데 그 형은 우리보다 훨씬 많이 맞았습니다. 1차로 중대장에게, 2차로 소대장들에게 맞았는데 그 형은 다른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모다구리(*뭇매를 뜻하는 은어)를 당했습니다. 그 후 우리 셋은 작업소대인 14소대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작업을 나갔는지 아무도 없었고 저와 정기훈과 그 형은 거기서도 폭행을 당했습니다. 얼마 동안 14소대 안의 침대에 온몸이 부어서 누워 있었는데 잠시 후 소대장이 우리를 데리러 왔습니다. 우리는 간신히 일어났지만 옆 침대 위에 누워있던 그 형은 미동이 없었습니다. 소대장 지시에 따라 제가 흔들어 깨웠는데 자세히 보니 죽어 있었습니다. 소대장과 다른 일행들이 당황하면서 그 시체를 메고 어디론가 갔습니다.그 후 저는 13소대라는 음악소대로 보내졌습니다. 그당시 제 머릿속에 머물던 생각은 ‘다시 잡혀올 때 순경 2명과 함께 타고 있던 승용차에서 차문을 열고 뛰어내렸어야 했는데…’ 얼마나 한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때 그 승용차는 경찰차 처럼 안에서 열어도 열리지 않고 운전석에서 뭔가 작동해야만 열린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납치, 또 한번은 파출소 순경에 의해 형제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왜 기어코 저를 형제원에 보냈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형제복지원이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저를 위해 그 지옥에 보냈던 것일까요? 10살 때부터 근 4년의 형제원 생활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먹고 살기 위해 앵벌이, 껌팔이, 신문팔이, 사탕공장, 봉제공장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가까스로 버텨 나갔습니다. 형제원에서 함께 지낸 수용자 중에 사회에서 만나 함께 신문 팔며 생활해온 박OO 형이 있었는데 결혼도 하고 애도 있었는데도 형제원에서의 트라우마와 생활고로 비관하다 결국 자살했습니다. 저 또한 살아만 있을뿐 다를 바 없었습니다. 배운 것 가진 것 하나없이 사회 밑바닥 삶을 살면서 항상 피해의식과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늘 제 자신이 부끄러웠고 초라하다는 생각과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불만은 저를 부정적인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지난날 형제원에서 겪은 피해와 제 비참한 삶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입니까? 부산에서 형제원 근처에 살았던 것이 잘못이었습니까? 아니면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 저는 아직까지는 형제원 출신 피해자 중에 사람답게 번듯하게 사는 사람을 본적 없습니다. 늘 그렇듯이 힘 있는 가해자들은 잘 먹고 잘 살고 힘 없는 피해자들은 소외된 채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여전히 당연한 것입니까? 무법천지와도 같았던 지난날 국가와 개인이 행했던 잘못을 청산하고 그 피해자들에게 배상함으로써 말끔히 해결해주는 것이 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며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높으신 분들의 당연한 의무라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물류센터에서 하루 10시간씩 주 5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 걱정에 허덕이며 살고 있습니다. 결혼이나 단란한 가정, 좋은 직장은 제게 꿈같은 일일 뿐입니다. 34년 전에 형제원에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염원했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이번에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동안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 맘껏 해보면서 힘들고 고단하게 살아온 제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며 두서 없는 글 이만 맺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곰이 반려견 덜미를 문 순간, 밀쳐내 구한 17세 캘리포니아 소녀

    곰이 반려견 덜미를 문 순간, 밀쳐내 구한 17세 캘리포니아 소녀

    미국 현충일인 지난 31일(이하 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남부 브레드베리에 사는 17세 소녀 헤일리 모리니코는 집 뒷마당에서 반려견들이 짖길래 밖으로 나와봤다. 놀랍게도 어미곰이 뒷마당 담 위에 있었고 반려견들이 담 아래에서 짖으며 달려들고 있었다. 원래는 어미곰 옆에 새끼 두 마리가 있었는데 작은 덩치의 반려견들이 달려들자 황급히 달아난 상태였다. 덩치가 커다란 검정색 반려견이 맹렬히 곰과 드잡이를 벌였다. 그 반려견이 물러서자 아주 작은 반려견이 달려들었고 곰이 긴 다리를 뻗어 덜미를 물어 올렸다. 그 순간 득달같이 나타난 모리니코가 달려들어 곰을 밀어내 이웃집 담 아래로 떨어뜨렸다. 폐쇄회로(CC) TV 카메라에 생생하게 포착된 동영상을 사촌 스테파니 로페스 빌라로보스가 처음에는 가족들의 대화방에 올렸다가 사람들이 좋아하겠다 싶어 틱톡에 올렸더니 800만명 가까이 시청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 등이 다음날 일제히 보도했다. 모리니코는 KTLA-TV 인터뷰를 통해 “곰에게서 반려견 발렌티나를 떼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무조건 달아나야 했다. 그 암컷은 아직 강아지”라면서 “처음부터 곰을 밀어버려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먹혔다”고 말했다. 이웃집 담 아래로 떨어진 어미곰은 원래 들어왔던 담 아래로 간 뒤 담을 기어올라 새끼들이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물론 모리니코나 반려견들 모두 무사하다. 빌라로보스는 “사람들이 동영상을 보고 열광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가 틱톡에 올린 글은 이렇다. ‘우리 사촌 헤일리가 오늘 담장에서 곰 한 마리를 밀쳐내 반려견들을 구해냈다. 당신의 현충일은 어땠나요?! (WTF?!)’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보따리]비행기에 ‘블랙박스’ 있다면 자동차엔 ‘이것’이 있다?

    [보따리]비행기에 ‘블랙박스’ 있다면 자동차엔 ‘이것’이 있다?

    3회 : 사고 순간의 비밀 담은 EDR의 세계물리적 충격 가해지면 운행 정보 저장블랙박스·CCTV 없는 사고 유일한 단서에어백 등에 내장… 시속 70㎞ 충격 견뎌미국에선 2014년 9월부터 설치 의무화 우리가 낸 보험료가 줄줄 새고 있습니다. 보험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사건을 조작하거나 사고를 과장해 타내려 하는 일이 흔합니다. 때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남의 목숨까지 해치는 끔찍한 일도 벌어지죠. 한편으로는 약관이나 구조가 너무 복잡해 보험료만 잔뜩 내고는 정작 필요할 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들도 벌어집니다. 든든과 만만, 그리고 막막의 사이를 오가는 ‘보험에 따라오는 이야기들’을 보따리가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죽음을 마음먹은 남자의 추락 사고, 우연일까 2019년 1월 강원도 삼척의 한 절벽 인근 공원에 정차 중이던 자동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그대로 절벽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자동차는 완전히 찌그러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혼자 탑승해있던 운전자 A씨는 경상을 입는데 그쳤습니다. 진술에 따르면 공원에서 차를 세워놓고 잠시 쉬던 A씨가 후진을 하려고 변속기를 R로 변속한다는 걸 실수로 D로 변속한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밟아 3m 정도 거리에 있는 절벽으로 굴러떨어진 것이었습니다. A씨는 자동차 및 인근 시설 파손 비용 등의 명목으로 4000만원 상당의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그렇게 사건은 단순 과실에 의한 사고로 처리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차량을 살피던 보험사 담당직원은 조수석에서 A씨의 유서를 발견했습니다. 죽음을 마음먹은 남자가 마침 절벽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게 과연 우연이었을까. 의문을 품게 된 보험사에서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에 EDR 분석을 의뢰하면서 감춰졌던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났습니다. 우선 A씨의 진술과 달리 차량은 절벽까지 3m가 아닌 20m 남짓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수라고 하기엔 짧지 않은 거리였지요. 게다가 차량 운행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위치한 절벽으로 핸들을 외려 틀어 절벽을 향해 나아간 것이 확인됐습니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순간까지 차를 멈추려는 시도가 없었던 점도 일반 추락사고와 달랐죠. 추궁 끝에 A씨는 “자살을 하려고 절벽을 찾았는데 하늘이 돕질 않아 자살에 실패하고 거액의 비용만 떠안게 되자 보험금을 타내 충당하려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완파된 차량, 손끝 하나 까딱 않고 머리털 하나 안다친 운전자 같은 해 4월 전북 임실의 한적한 시골길에서도 자동차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에쿠스 차량이 전봇대와 담벼락 등을 연속해서 들이받은 것입니다. 차량 전면부가 완전히 부서져 전손 처리를 할 정도의 사고였지요. 운전자인 60대 남성 B씨는 “변속기를 D에 놓고 운행하던 중 비탈길이 나타나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그대로 전봇대 등을 들이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폐차 된 자동차와 달리 사고를 당했다던 B씨는 머리털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했던 겁니다. 하지만 차량 내부 블랙박스는 꺼져 있었고, 폐쇄회로(CC)TV는커녕 변변한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에서 증거 자료나 목격자를 찾기는 어려운 노릇이었습니다. 증거는 바로 B씨의 차 내부 EDR에 고스란히 저장돼있었죠. 분석 결과 사고 당시 변속기는 N에 놓여 있었습니다. 진술과 달리 브레이크를 작동한 흔적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과속 기어도 밟지도 않았고, 보통 사고가 발생하면 운전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 중에 핸들을 꺾기 마련인데 스티어링 휠을 조작한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B씨는 차에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알고보니 B씨는 전손처리를 할 때의 차량가액이 중고차 시세보다 높다는 점을 악용해 차를 처분하고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사고를 위장한 것이었습니다. 차에 타지 않고 기어를 중립에 놓은 상태에서 언덕 위에서 차를 밀어 혼자 굴러떨어지게 했지요. 위장사고로 보험금 7500만원을 타내려던 B씨는 보험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구속수감되는 신세가 됐습니다.흔히 ‘블랙박스’라고 불리는 항공기의 비행기록장치는 항공기 사고 당시의 조정석에서의 목소리, 교신 기록들, 조작 내용 등을 저장하는 장치입니다. 한번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항공기 특성상 사고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활용되지요. 이 때문에 사고 상황을 견딜 수 있도록 특수제작된 것이 특징입니다. 자기 무게(11㎏ 내외)의 약 3400배의 충격까지 견딜 수 있고 1100℃의 온도에서 30분, 260℃의 온도에서는 10시간까지 내부 기록을 보존합니다. 수심 6096m 아래의 물속에서도 30일 동안 살아남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지는 못하지만 자동차에도 항공기의 블랙박스 역할을 하는 기록장치가 있습니다. 차량 내부에 설치하는 영상 녹화·저장 장치 블랙박스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바로 EDR(Event Data Recorder)입니다. EDR은 자동차의 에어백이나 엔진 전자제어장치(ECU)에 내장된 일종의 데이터 기록용 블랙박스입니다. 차량 시스템 정보, 충돌 전 운행정보, 충돌정보, 에어백의 전개 정보 등과 같은 각종 사고 및 충돌정보를 기록하는 장치지요. 5㎜ 크기 작은 칩에 사고 상황 정보 저장돼 EDR은 가로, 세로 5㎜ 가량의 작은 칩의 형태입니다. 제조업체마다 다르지만 보통 저장 용량은 4~8KB정도고요. EDR은 차량에 일정한 물리적 충격이 가해졌을 경우 가동해 관련 기록을 저장합니다. 에어백이 터지는 상황이거나, 진행방향 속도변화의 누계가 0.02초 이내 시속 0.8㎞ 이상일 경우, 측면 방향의 경우에는 속도변화 누계가 0.005초 이내 시속 0.8㎞ 이상일 경우 데이터를 기록합니다. 운행 내내 5~10분씩 녹화를 반복하다가 요건을 충족할 정도의 충격이 감지되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녹화분을 저장하는 원리지요. 충돌 이전의 자동차 속도, 가속 페달 밟음의 양, 브레이크 밟음의 상태,엔진회전수(rpm) 등의 정보와 충돌 시점의 안전벨트 착용 여부, 에어백 경고등 상태, 충돌 중의 가속도, 속도변화 및 충돌에너지, 에어백이 터졌는지, 다중충돌 시 충돌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등이 모두 EDR에 남습니다. EDR은 일상에서 사용되는 부품이다보니 항공기의 블랙박스처럼 특수 제작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로 자동차 운전석 옆 센터콘솔 내부에 장착돼있어 웬만한 사고에도 손상될 위험은 낮습니다. 실제로 충돌실험 결과 시속 70㎞로 달리던 자동차가 충돌해도 EDR은 파손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만 차량이 불에 타버리거나 물에 빠졌을 경우에는 전자기기인 EDR도 망가집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테슬라 차량 화재 사건의 경우에도 차량이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EDR이 파손돼 사고 원인을 분석해내는데 애를 먹었지요.충격엔 강하지만… 화재·침수엔 ‘쥐약’ EDR에 기록된 정보는 자동차 운행기록 자기 진단 장치(OBD)단자에 데이터 추출 전용 기기를 연결해 PDF파일 형태로 내려받습니다. 자동차의 손상이 심해 전원 공급이 어려운 경우에는 에어백 모듈을 떼어내 데이터 추출 기기에 직접 연결하기도 하죠. 물론 EDR 데이터 추출을 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소유주나 운전자 등 사고당사자에게 동의를 받는 게 필수입니다. 미국에서는 2014년 9월에 제조된 신차부터는 EDR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법으로 규정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의무는 아닙니다. 현행법에는 자동차 판매자가 EDR이 장착된 차량에 대해서는 소비자에 고지해야할 의무, 또 차주가 요청할 경우 EDR 데이터를 읽어줘야할 의무만 명시돼있습니다. 다만 국내 자동차 회사 대부분이 미주지역 수출도 병행하고 있는 까닭에 2015년 이후에 국내에 유통되는 차량에도 대부분 EDR이 설치돼 있습니다.김희리·유대근 기자 hitit@seoul.co.kr
  • “인재영입” vs “시기상조”… IT기업 ‘주 4일제 실험’ 엇갈린 시선

    “인재영입” vs “시기상조”… IT기업 ‘주 4일제 실험’ 엇갈린 시선

    국내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주 4일제 실험에 나서고 있다. 주말 이외에 월~금요일 중에도 휴일을 지정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회사의 직원들은 두 손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재계에서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우려감을 드러내는 시선이 많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독서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와 신생 게임 개발사인 ‘엔돌핀커넥트’의 임직원들은 요즘 일주일에 4일만 근무하고 있다. 밀리의 서재는 회사 규모가 갑자기 커지면서 격무에 시달려 온 직원들을 위해 5~6월 두 달간 매주 수요일을 휴무로 지정해 쉬기로 했다. 엔돌핀커넥트는 매주 화~금요일만 근무하고 있으며, 향후 2년 내에는 직원들이 쉬고 싶은 요일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부분적으로 주 4일제를 하는 곳도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원래 매달 한 주만 4일제 근무를 하던 것을 지난달부터는 격주로 확대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업체인 ‘카페24’도 이달부터 매월 둘째·넷째주 금요일을 휴무일인 ‘오프데이’로 지정했고 ‘SK텔레콤’은 지난해부터 매월 셋째주 금요일을 휴무로 지정했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숙박 플랫폼 업체인 ‘여기어때’는 매주 월요일 오후 1시에 출근하도록 하는 ‘주 4.5일제’가 정착돼 있다. IT 기업들이 주 4일제 도입에 적극적인 것은 ‘적게 일하고 똑같이 벌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어 인재를 영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IT 업계가 급성장하면서 너도 나도 쓸 만한 개발자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상황 속에서 유인책으로 ‘연봉 인상’, ‘스톡옵션’(주식선택매수권) 등과 함께 주 4일제 카드가 부상한 것이다. 조용래 엔돌핀커넥트 대표는 “규모가 큰 IT 기업들과 달리 스타트업들은 연봉 인상을 단행하기 어렵다 보니 주 4일제를 들고 나온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4.5일제를 활용해 월요일 아침에 자녀를 등원시키거나 본인이 학원을 다닐 수도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창의성과 혁신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IT 기업 특성상 충분히 쉬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판단한 측면도 있다. IT 기업들은 대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직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편이어서 주 4일제 도입이 용이한 편이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도 있다. 월급은 똑같이 받으면서 근무 시간이 줄어들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IT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연봉 인상에 나서면서 우수 인재를 유치할 기반을 마련했지만 동시에 인건비도 급증해 1분기 실적에서 쓴맛을 본 곳들이 나왔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높지 않고, 노동시장도 유연하지 않은 편”이라면서 “이런 것들이 먼저 해결되지 않고 주 4일제가 산업 전반으로 퍼진다면 국가산업경쟁력 자체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쥐가 다 먹을텐데” 호주 농부 쥐때문에 농사 포기

    “쥐가 다 먹을텐데” 호주 농부 쥐때문에 농사 포기

    호주가 사람과 농작물을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쥐때문에 큰 피해를 겪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26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지역에서 쥐가 전선을 포함해 집안의 모든 것을 갉아먹는 바람에 화재가 나서 집을 잃은 가족에 대해 보도했다. 세 자녀를 둔 레베카 와드는 현지 방송인 ‘9나우’와의 인터뷰에서 “마을의 절반이 초토화됐다”면서 “쥐가 아이들 몸을 기어다니고 음식을 훔쳤다”면서 악몽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쥐는 와드의 세 자녀 몸을 밤이면 기어다녔고 신발, 가구 등 없는 곳이 없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쥐가 먹어서 식료품을 공구 상자에 보관해야만 했다. 수백만 마리의 쥐는 마을의 학교, 병원 등 뉴사우스웨일즈의 동부 지역과 퀸즈랜드까지 점령했으며 심각한 악취까지 풍겼다. 쥐들은 죽은 쥐의 사체를 먹고, 수주 안에 호주 최대 도시인 시드니까지 화물 트럭을 타고 이동해 잠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아직 호주의 농약과 수의약국 당국은 쥐를 퇴치하기 위해 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지역 정부는 5000리터의 살서제인 브로마디올론을 준비했다. 가장 쥐 피해가 심각한 20개 지역에 뿌릴 준비를 마쳤다. 쥐떼는 호주의 농업도 위협하고 있다. 쥐떼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지난해의 농작물 대풍년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호주 농부들은 농작물을 키워도 쥐떼 피해에 대한 우려때문에 아예 씨뿌리기를 꺼리고 있다. 남반구인 호주에서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기온이 떨어지면 잦아들던 쥐떼가 계절 변화에도 이번에는 요지부동이다. 올초에 수확한 수수는 쥐떼때문에 20~100% 가까이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긴 가뭄끝에 충분한 비가 내리면서 풍년을 기록했지만 이때문에 쥐떼 개체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뉴사우스웨일즈 지역의 농부인 메튜 매든은 쥐떼가 전선을 갉아먹는 바람에 불이 나서 트랙터를 잃었다. 그는 “심으면 쥐들이 다 먹을 텐데 뭐하나란 생각에 농부들이 농업을 포기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적게 일하고 똑같이 법니다”…주4일제 실험나선 IT업계

    “적게 일하고 똑같이 법니다”…주4일제 실험나선 IT업계

    국내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주 4일제 실험에 나서고 있다. 주말 이외에 월~금요일 중에도 휴일을 지정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회사의 직원들은 두 손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재계에서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우려감을 드러내는 시선이 많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독서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와 신생 게임 개발사인 ‘엔돌핀커넥트’의 임직원들은 요즘 일주일에 4일만 근무하고 있다. 밀리의 서재는 회사 규모가 갑자기 커지면서 격무에 시달려 온 직원들을 위해 5~6월 두 달간 매주 수요일을 휴무로 지정해 쉬기로 했다. 엔돌핀커넥트는 매주 화~금요일만 근무하고 있으며, 향후 2년 내에는 직원들이 쉬고 싶은 요일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부분적으로 주 4일제를 하는 곳도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원래 매달 한 주만 4일제 근무를 하던 것을 지난달부터는 격주로 확대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업체인 ‘카페24’도 이달부터 매월 둘째·넷째주 금요일을 휴무일인 ‘오프데이’로 지정했고 ‘SK텔레콤’은 지난해부터 매월 셋째주 금요일을 휴무로 지정했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숙박 플랫폼 업체인 ‘여기어때’는 매주 월요일 오후 1시에 출근하도록 하는 ‘주 4.5일제’가 정착돼 있다. IT 기업들이 주 4일제 도입에 적극적인 것은 ‘적게 일하고 똑같이 벌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어 인재를 영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IT 업계가 급성장하면서 너도 나도 쓸 만한 개발자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상황 속에서 유인책으로 ‘연봉 인상’, ‘스톡옵션’(주식선택매수권) 등과 함께 주 4일제 카드가 부상한 것이다. 조용래 엔돌핀커넥트 대표는 “규모가 큰 IT 기업들과 달리 스타트업들은 연봉 인상을 단행하기 어렵다 보니 주 4일제를 들고 나온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4.5일제를 활용해 월요일 아침에 자녀를 등원시키거나 본인이 학원을 다닐 수도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창의성과 혁신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IT 기업 특성상 충분히 쉬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판단한 측면도 있다. IT 기업들은 대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직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편이어서 주 4일제 도입이 용이한 편이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도 있다. 월급은 똑같이 받으면서 근무 시간이 줄어들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IT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연봉 인상에 나서면서 우수 인재를 유치할 기반을 마련했지만 동시에 인건비도 급증해 1분기 실적에서 쓴맛을 본 곳들이 나왔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높지 않고, 노동시장도 유연하지 않은 편”이라면서 “이런 것들이 먼저 해결되지 않고 주 4일제가 산업 전반으로 퍼진다면 국가산업경쟁력 자체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이슈플릭스] 자신 구해준 굴삭기에 ‘감사 인사’ 전하는 코끼리

    [이슈플릭스] 자신 구해준 굴삭기에 ‘감사 인사’ 전하는 코끼리

    커다란 구덩이에 빠진 코끼리 한 마리를 굴삭기로 구조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돼 화제다. 힌두스탄 타임스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주 쿠르그에 있는 한 커피 농장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져 있는 모습을 현지 주민이 발견했다. 당시 코끼리는 앞다리를 구덩이 가장자리에 걸친 채 스스로 기어나오려고 애쓰지만, 뒷다리가 미끄러져 좀처럼 올라가지 못했다. 그러고나서 주민의 연락을 받은 구조대가 굴삭기를 동원해 현장으로 출동해 구조를 시작했다. 한 주민이 촬영한 영상에서 해당 코끼리는 지친 모습을 보이면서도 힘겹게 구덩이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애쓴다. 그런데 얼마 뒤 굴삭기 한 대가 다가와 삽이 달린 부분을 능숙하게 움직여 코끼리 엉덩이 쪽을 들어올렸다. 코끼리도 굴삭기가 자신을 도와준다는 점을 아는지 겁먹거나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온힘을 다해 버틴 끝에 간신히 구덩이 밖으로 빠져나온다. 이후 일어선 코끼리는 그대로 근처 숲으로 떠날 것으로 생각됐지만 돌아서서 굴삭기 삽 부분에 머리를 비벼대기 시작했다. 귀를 펄럭거리는 모습에도 기쁜 듯한 모습이 전해져 마치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를 하는 듯해 미소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잠시 뒤 굴삭기 근처에 있던 한 사람이 발포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나는 물건을 코끼리 근처로 집어던졌다. 이는 야생의 코끼리가 스트레스 탓에 사람을 덮치지 않도록 곧바로 숲으로 돌아가도록 할 뿐만 아니라 또 다시 구덩이에 접근해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영상은 인도에서 배우로 활약하는 사티시 샤가 자신의 트위터에 게시한 뒤 24일 현재 시간 기준으로 조회 수가 170만 회를 넘을 만큼 관심을 끌었다. 댓글에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코끼리가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아 귀엽다”, “코끼리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라는 등 호응이 전해지고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경훈 세 번째, 김시우 5번째 US오픈 무대로

    이경훈 세 번째, 김시우 5번째 US오픈 무대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첫 승을 신고한 이경훈(30)이 여세를 몰아 올해 세번째 메이저 대회인 제121회 US오픈 출전권을 확보했다. US오픈을 주최하는 미국골프협회(USGA)는 25일(한국시간) 전날 발표된 세계 랭킹 기준으로 24명, 아시안 투어 등 다른 프로 투어 성적을 기준으로 3명 등 모두 27명이 다음 달 중순 개막하는 대회 출전 자격을 추가 획득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현재까지 US오픈 출전 선수는 모두 76명으로 늘었다. US오픈은 예선을 통과하거나 예선 면제 자격을 얻어야 출전할 수 있는데 예선 면제를 위해서는 최근 10년간 US오픈 우승, 최근 5년간 메이저 대회 우승, 대회 개막 3주 전과 개막 전 주에 발표되는 세계 랭킹 60위 진입 등 여러 조건이 있다. 최종 예선은 진행 중이다. 이경훈은 지난 17일 AT&T 바이런 넬슨 우승으로 세계 랭킹을 137위에서 59위로 끌어올리며 US오픈 출전의 꿈을 부풀렸으나 이어진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 PGA챔피언십에서는 컷 탈락해 불안감을 드리우기도 했다. 그러나 PGA챔피언십 직후 발표된 랭킹에서 한 계단만 하락한 60위를 차지해 기어코 출전권을 따냈다. 이경훈은 예선을 거쳤던 2014년과 2019년에 이어 세 번째로 US오픈 무대에 서게 됐다. 지난주까지 58위였던 매켄지 휴스(캐나다)가 61위로 밀려 출전권을 놓쳤다. 한국은 또 김시우(26)가 2주 연속 50위를 유지하며 5회 연속 출전권을 획득했다. 앞서 임성재(23)와 재미교포 케빈 나(38)도 지난해 투어 챔피언십 출전 자격으로 일찌감치 출전권을 따놨다. 이번에도 출전권을 얻지 못한 선수들은 6월 7일자 세계 랭킹에서 60위 이내에 진입하면 막차를 탈 수 있다. US오픈은 6월 18일부터 21일까지 미국 샌디에이고 토리파인스 골프클럽에서 열린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고마워!” 자신 구해준 굴삭기에 ‘감사 인사’ 전하는 코끼리 (영상)

    “고마워!” 자신 구해준 굴삭기에 ‘감사 인사’ 전하는 코끼리 (영상)

    커다란 구덩이에 빠진 코끼리 한 마리를 굴삭기로 구조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돼 화제다. 힌두스탄 타임스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주 쿠르그에 있는 한 커피 농장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져 있는 모습을 현지 주민이 발견했다. 당시 코끼리는 앞다리를 구덩이 가장자리에 걸친 채 스스로 기어나오려고 애쓰지만, 뒷다리가 미끄러져 좀처럼 올라가지 못했다. 그러고나서 주민의 연락을 받은 구조대가 굴삭기를 동원해 현장으로 출동해 구조를 시작했다.한 주민이 촬영한 영상에서 해당 코끼리는 지친 모습을 보이면서도 힘겹게 구덩이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애쓴다. 그런데 얼마 뒤 굴삭기 한 대가 다가와 삽이 달린 부분을 능숙하게 움직여 코끼리 엉덩이 쪽을 들어올렸다.코끼리도 굴삭기가 자신을 도와준다는 점을 아는지 겁먹거나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온힘을 다해 버틴 끝에 간신히 구덩이 밖으로 빠져나온다.이후 일어선 코끼리는 그대로 근처 숲으로 떠날 것으로 생각됐지만 돌아서서 굴삭기 삽 부분에 머리를 비벼대기 시작했다. 귀를 펄럭거리는 모습에도 기쁜 듯한 모습이 전해져 마치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를 하는 듯해 미소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잠시 뒤 굴삭기 근처에 있던 한 사람이 발포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나는 물건을 코끼리 근처로 집어던졌다. 이는 야생의 코끼리가 스트레스 탓에 사람을 덮치지 않도록 곧바로 숲으로 돌아가도록 할 뿐만 아니라 또 다시 구덩이에 접근해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영상은 인도에서 배우로 활약하는 사티시 샤가 자신의 트위터에 게시한 뒤 24일 현재 시간 기준으로 조회 수가 170만 회를 넘을 만큼 관심을 끌었다. 댓글에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코끼리가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아 귀엽다”, “코끼리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라는 등 호응이 전해지고 있다. 사진=사티시 샤/트위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꿀벌 6만 마리에 뒤덮여” 안젤리나 졸리, 샤워도 안 한 이유는?

    “꿀벌 6만 마리에 뒤덮여” 안젤리나 졸리, 샤워도 안 한 이유는?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꿀벌 6만마리에 뒤덮인 모습이 포착돼 화제다. 20일(현지시간)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사진작가이자 양봉가인 댄 윈터스가 ‘세계 벌의 날’을 맞아 졸리와 꿀벌 6만 마리와 함께 화보 촬영을 했다고 밝혔다. ‘세계 별의 날’은 2017년 12월 유엔이 생태계 균형과 생물다양성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벌의 이로움을 알리고 보호를 호소하기 위해 지정했다. 벌은 주요 수분 매개동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유엔에 따르면 야생화의 90%, 식량작물의 75%가 수분을 할 때 매개동물에 의존하며, 수분은 생태계 유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졸리는 꿀벌을 유인하기 위해 몸에 여왕벌 페로몬을 발랐으며, 체취를 풍기고자 샤워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방충복을 입은 촬영 스태프와 달리 졸리는 하얀색 드레스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졸리는 “영화 촬영에 들어갈 때도 이렇게 긴장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윈터스에 따르면, 졸리는 18분에 걸친 촬영 내내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윈터스는 “졸리는 꿀벌이 허벅지 위를 기어오를 때도 집중력을 유지했다”며 “두려움이 없는 사람 같았다. 움찔거리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졸리는 2001년부터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 특사로 활동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졸리는 유네스코 및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인 겔랑과 함께 ‘벌을 위한 여성 이니셔티브’를 진행하고 있다. 벌을 위한 여성 이니셔티브는 오는 2025년까지 꿀벌 둥지 2500개를 만들어 개체 수를 1억2500만마리 늘리고, 여성 양봉인 60명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졸리가 이번 촬영에 임한 것 또한 벌을 위한 여성 이니셔티브를 알리기 위함이라고 윈터스는 전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자 모란트를 막을 자 누구인가!

    자 모란트를 막을 자 누구인가!

    위대한 시즌을 보낸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커리다웠다. 다만 차세대 슈퍼스타 자 모란트(멤피스 그리즐리스)가 조금 더 펄펄 날았을 뿐이다. 멤피스가 2020~21 미국프로농구(NBA) 플레이오프에 합류했다. 멤피스는 22일(한국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에서 열린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117-112로 승리했다. 막차에 탄 멤피스는 24일 서부 콘퍼런스 1위 유타 재즈와 플레이오프를 시작한다. 마지막까지 승자를 예측할 수 없던 치열한 승부였다. 커리는 이날도 3점슛 6개 포함 39점 4리바운드 5어시스트 3스틸로 이날 코트를 밟은 선수 중 가장 많은 득점을 했다. 커리답지 않게 3점슛을 조금 놓친 장면이 아쉽긴 했지만 상대의 집중 견제 속에서도 커리는 무섭게 득점포를 가동하며 왜 자신이 이번 시즌 득점왕에 올랐는지를 충분히 보여줬다. 그러나 커리와 골든스테이트는 플레이오프를 향해 가는 길목에 버틴 모란트에 발목을 잡혔다. 모란트는 3점슛 5개 포함 35득점 6리바운드 6어시스트 4스틸로 맹활약했다. 3점슛 5개는 모란트의 개인 한 경기 커리어 하이 기록이다. 골든스테이트는 모란트에게 맞은 3점슛이 뼈아팠다. 골든스테이트의 새깅 디펜스를 비웃듯 모란트는 오픈 찬스에서 번번이 3점슛을 성공했다. 게다가 페인트존에서 가볍게 밀어 넣는 플로터 역시 일품이었다. 2년차 시즌에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모란트에 골든스테이트는 당황했고 끝내 무릎을 꿇어야 했다.1쿼터부터 치열한 승부였다. 멤피스가 일찌감치 22-9까지 점수 차를 벌리며 경기를 주도했지만 골든스테이트는 커리의 맹활약을 앞세워 1점 차까지 추격한 채 1쿼터를 마쳤다. 그러나 멤피스는 2쿼터에 점수 차를 더 벌렸다. 골든스테이트의 야투가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특히 3점슛 5개를 던져 1개밖에 안 들어간 점이 아쉬웠다. 멤피스가 3점슛 9개를 던져 6개를 성공한 것과 대비됐다. 3쿼터 멤피스는 달아나고 싶었지만 골든스테이트도 만만치 않았다. 결정적인 한방이 없었던 멤피스는 10점 안팎을 오가는 근소한 리드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커리에게 마지막 득점을 허용하며 78-73로 3쿼터를 마쳤다. 운명이 걸린 4쿼터. 내내 밀리던 골든스테이트는 마지막에 순식간에 동점을 만들며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5점 차로 뒤진 4쿼터 종료 1분 44초 전 조던 풀이 3점슛을 던졌는데 파울이 선언됐다. 화면상으로 슛을 던진 후에 접촉이 발생한 애매한 장면이었지만 풀은 3개의 자유투를 모두 성공했다. 여기에 커리까지 자유투를 성공해 기어이 동점이 됐다. 골든스테이트에게도 승리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골든스테이트는 마지막 동점에서 종료 직전 비어 있는 골밑을 향해 전진한 드레이먼드 그린이 마지막 슛을 실패했다. 그리고 접어든 연장에서 골든스테이트는 마지막에 모란트에게 연속 득점을 허용하며 승부를 내줬다. NBA 슈퍼스타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누구보다 화려했던 커리의 시즌도 이렇게 끝났다. 그리고 새로운 슈퍼스타 모란트가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리는 순간이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여기는 중국] 호화 복층이라더니… ‘1.3m 층고’ 中 아파트 논란

    [여기는 중국] 호화 복층이라더니… ‘1.3m 층고’ 中 아파트 논란

    호화 복층 아파트라는 직원 홍보를 믿고 아파트 분양을 받은 입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쓰촨성 청두시에 대형 건설업체가 지은 아파트 내부의 층고가 겨우 1.3m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분양 받은 신축 아파트를 찾은 까오 씨는 복층 아파트 2층 층고가 겨우 1.3m인 것을 확인하고 현지 유력 언론 쓰촨신원핀다오에 제보했다. 보도에 따르면, 까오 씨는 업체 직원으로부터 분양 계약 전 ‘호화 복층 아파트’라는 홍보 광고를 듣고 덜컥 아파트를 구매했다. 하지만 완공된 아파트를 찾은 까오 씨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신장 178cm의 까오 씨가 찾은 완공된 아파트 2층의 층고가 겨우 1.3m에 불과, 그가 올라가면 허리를 굽혀 걷거나, 무릎을 꿇은 채 기어가는 자세로만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까오 씨가 분양 받은 문제의 아파트는 현지 대규모 건설 업체가 책임 건설한 대형 아파트로 꼽힌다.  주 씨는 이 아파트를 분양 받기 위해 1제곱미터 당 1만 위안(약 170만 원)을 지불했다. 하지만 입주를 앞두고 아파트 현장을 찾은 주 씨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서 나무 계단이 시소처럼 기울어졌다”면서 “마감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내부 가구는 손으로 살짝 만져도 부서질 것 같다. 업체 측은 사람이 사람 답게 살 수 없는 집을 지어 놓고는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입주민들이 즉각적인 불만을 제기했지만 건설업체 측의 상식 밖 반응은 분양 계약서 상의 모호한 표기 방식 때문이다. 까오 씨가 건설 업체와 맺은 부동산 분양 계약서에는 아파트 층고에 대해 ‘X미터’라는 불명확한 표시가 표기돼 있었던 것.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까오 씨에 대해 업체 측은 법적 보상을 운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다.하지만 앞서 분양 업체 직원에게 받은 홍보물에는 ‘호화 장식 복층 아파트’라는 설명과 1~2층 전체 층고가 3.9m로 표기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실제 입주민들이 실측한 1층 바닥부터 2층 천장까지의 총 높이는 3.7m에 불과했다. 특히 2층 층고는 1.3m에 불과해 사실상 사람이 생활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게 입주민들의 의견이다. 한편, 이번 사건은 입주민들이 구성한 입주민 대표단이 관할 공안국과 주택건설국, 시장관리감독국 등에 사건 해결을 의뢰한 상태다. 관할 공안국 측은 관련 부서와 합동으로 사건을 조사,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추가 공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갓난아기도 목숨 건 ‘유럽행’…모로코 불법이민자 8000명 구름떼

    갓난아기도 목숨 건 ‘유럽행’…모로코 불법이민자 8000명 구름떼

    ‘아프리카의 유럽땅’ 세우타에 이틀간 8000명 넘는 불법이민자가 몰렸다. 목숨 건 유럽행에는 아직 걸음마도 못 뗀 갓난아기도 포함됐다. 스페인국민경호대는 18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서북단의 스페인령 세우타 앞바다에서 어머니 등에 업혀 국경을 넘던 갓난아기를 구조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바다를 건너 세우타로 향하는 모로코 불법이민자 행렬에 갓난아기를 안은 여성이 끼어들었다. 보트가 육지에 다다르자 갓난아기를 둘러업은 여성은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저 앞에 뭍이 보였지만 아기를 등에 업고 헤엄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페인국민경호대 소속 후안 프란시스코 경관은 재빠르게 구명튜브를 챙겨 흠뻑 젖은 아기를 건져 올렸다. 덕분에 아기는 무사히 구조됐다.구조된 아기를 포함, 17일부터 이틀간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세우타로 넘어간 불법이민자는 8000여 명, 이 중 1500명가량은 미성년자다. 모로코 북동부 해안에 자리한 세우타는 지중해 지브롤터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 대륙을 마주한 유일한 유럽연합(EU) 회원국 영토다. 스페인이 1580년 점령해 아직도 주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가난과 정치적 박해를 피해 유럽으로 건너가려는 북아프리카 난민들이 밀입국을 시도하는 주요 경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몰린 건 전례 없는 일이다. 모로코에서부터 헤엄쳐온 불법이민자와 그들이 나눠 탄 보트로 세우타 앞바다는 그야말로 물 반 사람 반이 됐다. 불법이민자들은 국경을 따라 설치된 길이 6㎞ 높이 6m짜리 철책선을 기어 올라 세우타에 발을 들였다. 스페인은 경찰과 무장병력을 동원해 밀입국 차단에 총력을 기울였다. 성인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를 제외한 불법이민자 절반은 이미 모로코로 추방했다.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이민 행렬에 스페인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프랑스 파리 방문 일정을 급거 취소하고 세우타로 향한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갑작스러운 이주민 유입은 스페인과 유럽에 심각한 위기”라며 “질서를 회복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란차 곤잘레스 라야 스페인 외교부 장관도 “정부는 냉정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페인 주재 모로코 대사를 초치해 단속 강화를 요구했다. 사상 유례 없는 불법이민의 배경에는 모로코의 감시 소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로코가 스페인을 압박할 요량으로 이주민을 일부러 통제하지 않는 거라는 해석이다. 앞서 스페인이 모로코 반군 세력인 폴리사리오해방전선 지도자 브라힘 갈리의 입국을 허용한 데 불만을 품었다는 것이다. 스페인은 코로나19에 걸린 갈리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수용했다고 밝혔지만, 모로코는 스페인이 자국에 알리지 않고 갈리를 받아들인 것은 “동반자 정신에 어긋난다”며 뒤따르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월드피플+] 1000년 수도원 40m 돌기둥 꼭대기서 나홀로 20년…고행승의 하산

    [월드피플+] 1000년 수도원 40m 돌기둥 꼭대기서 나홀로 20년…고행승의 하산

    40m 돌기둥 꼭대기에서 홀로 수행하던 고행승이 하산했다. 1993년 감옥에서 출소해 돌기둥으로 기어 올라간 지 20여 년 만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캅카스의 조지아(옛 그루지야)에는 중세 초기의 비밀을 간직한 전설의 돌기둥이 있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서쪽으로 약 200㎞ 떨어진 카츠키 마을에 우뚝 솟아있는 ‘카츠키 기둥’이 바로 그것이다. 40m 높이 석회암 기둥 꼭대기에 세워진 수도원은 조지아에서 신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있는 곳이기도 하다.수도사 막심 콰타라제(67)는 수도원의 존재가 밝혀진 후 카츠키 기둥에서 ‘주상고행’을 자처한 처음이자 마지막 주행승이다. 주상고행은 말 그대로 기둥 위에 올라가 세상과 연을 끊는 수행을 말한다. 주상고행의 첫 수도사였던 시리아 성 시메온(390~459)은 최고 20m 높이 기둥까지 올라가 은수(隱修) 생활을 했다. 그 뒤로 주상고행에 뛰어드는 수도사 행렬이 이어졌다. 이처럼 주상고행을 자처하는 수도사를 스타일라이트(stylite)라고 한다. 희랍어 스틸로스(stylos 기둥)에서 유래했으며, 우리말로 주행승 혹은 기둥성자나 주상성자라고 부른다.이런 주행승에게 더할나위 없는 수행장이었을 카츠키 기둥 위 수도원은 1944년 산악인 알렉산더 자파리드제와 작가 레반 고투아가 이끄는 탐험대에 의해 그 존재가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150㎡(약 45평) 면적의 기둥 꼭대기에는 외벽 구조물과 잔해, 수도실과 무덤 유적, 고행자의 유골이 남아 있었다. 관련 연구는 1999년부터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2006년에는 포도주 저장고의 잔존물, 2007년에는 옛 조지아어 ‘아솜타브룰리’가 새겨진 13세기 석회암 비문이 발굴됐다. 고고학자들은 9~10세기 세워진 수도원이 조지아가 주변국 손에 넘어간 15세기 버려진 것으로 결론 내렸다. 수도원에서 발굴된 유골은 600년 전 마지막 주행승 것으로 추정했다.18세기 그루지야 왕자이자 역사가, 지리학자였던 바쿠슈티가 남긴 문헌에서 수도원에 대한 기록도 발견됐다. 문헌에는 “상당히 높은 바위가 서 있다. 바위 꼭대기에는 작은 수도원이 하나 있지만 아무도 올라갈 수가 없다.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40m 높이 돌기둥까지 올라가 수도원을 세웠는지, 어떻게 꼭대기까지 오르내렸는지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수도사 막심은 1993년 41세 나이로 감옥에서 출소한 후 곧장 돌기둥으로 향했다. 하늘과 가장 가까이에서 신을 만나고자 함이었다. 마침 공산주의 붕괴로 그루지야가 구소련에서 독립하면서 정교회 불씨도 되살아난 터였다. 막심 수도사는 “내게는 침묵이 필요하다. 침묵 속에서 신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도 없는 돌기둥 위에 몸 뉠 곳이라고는 낡은 냉장고 하나뿐이었지만, 하루 7시간씩 기도하며 고행을 이어갔다.더 쉽게 기둥을 오르내릴 수 있는 사다리 ‘천국의 계단’을 설치한 막심 수도사는 1995년부터 마을 주민과 정교회 공동체, 정부의 지원 속에 본격적인 수도원 복원에 착수했다. 복원에 필요한 자재는 도르래를 이용해 운반했다. 13년에 걸친 복원 작업은 2009년 비로소 끝이 났다. 현대식으로 재건된 수도원에서도 막심의 기도는 끊기지 않았다. 일주일에 단 두 번, 설교 때나 지상으로 내려왔을 뿐 2015년까지 자그마치 22년을 홀로 기둥 위에서 살았다. 마지막 주행승의 뒤를 이어 600년 만에 수도원의 문을 다시 열어젖혔던 수도사 막심은 현재는 건강 악화로 기둥에서 내려왔다. 한때 관광객 방문이 허용됐던 꼭대기 수도원도 막심 하산 이후 2018년부터 정교회 관계자 외 방문객 출입이 제한됐다. 이로써 중세 초기 비밀을 간직한 채 수 세기 만에 모습을 드러낸 수도원의 고행자 대도 끊기게 됐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16가지 해명에도 시민들 물음표… 손씨 아버지에 동화돼 분노

    16가지 해명에도 시민들 물음표… 손씨 아버지에 동화돼 분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된 후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22)씨와 함께 술을 마셨던 친구 A씨 측이 “가족 중 수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유력 인사는 없다”고 해명했다. A씨 측이 입장을 밝힌 것은 손씨가 실종된 지난달 25일 이후 22일 만이다. A씨 측은 손씨와 휴대전화가 바뀐 경위와 실종 당시 정황 등 핵심 의문점에 대해선 “만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설명에도 손씨의 가족과 시민들은 여전히 A씨를 믿지 못하겠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A씨를 대리하는 정병원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17일 입장문을 내고 “A씨 가족 또는 친척 중 수사기관, 법조계, 언론계, 정·재계 등에 속한 소위 유력 인사는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며 “A씨의 아버지 직업도 유력 인사와 거리가 멀고, 어머니 또한 결혼 후 지금까지 줄곧 전업주부”라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A씨와 손씨가 별로 친하지 않았다는 일각의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A씨는 손씨와 각별한 사이로 국내 및 해외 여행을 수차례 함께 다녀왔으며, 올해부터 A씨가 공부에 전념하려 모임을 줄였기 때문에 손씨가 실종 전날 A씨의 술자리 제안에 의아한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 측이 이날 A4용지 17장 분량의 입장문에서 16가지 의혹에 대해 일일이 해명했음에도 네티즌들은 “기억이 안 나는 머리로 어떻게 의대를 갔느냐”, “증거인멸을 다 끝내고 이제서야 기어 나오는 것이냐”, “불리한 건 모른다고 하고 유리한 건 말이 많다”며 A씨를 강하게 비난했다. 손씨의 부친 손현씨도 “궁금한 것에 대한 해명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고, 술 취해서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전부였다”며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드러나지 않는 사건 경위와 무분별한 의혹들이 대중의 집착과 분노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원인이 분명치 않은 일에 쉽게 관심을 두고 빨리 결과를 결정하고 싶은 본능이 있지만 오랫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분노를 느끼게 된다”며 “‘잘 키운 의대생 아들’과 ‘아들을 잃은 아버지’ 등 슬픔을 키우는 내용도 시민들이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손씨 아버지에게 동화돼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아버지의 주장과 호소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전했다. 무분별한 언론의 보도 행태가 여론을 자극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손정민’이란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지난달 29일부터 이날까지 약 1200건의 기사가 송출됐다.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산재 사고로 숨진 대학생 이선호씨 언급 기사(약 400건)의 3배 수준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언론이 손씨 아버지가 제기하는 여러 암시를 사실 확인 과정이 부족한 상태로 보도하고 있다”며 “깜깜이 상태에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나오다 보니 권력이 사건을 왜곡하는 것은 아닌지 대중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알려지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떠돌고 있다’ 등의 내용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경찰도 정보 제공을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피해자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주원·손지민 기자 starjuw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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